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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 민통선(DMZ) 겨울 나들이 '(임진각, 도라산역, 도라산전망대, 제3땅굴) ▲ 도라산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 (휴전선과 개성 지역) ▲ 장단역 증기기관차 ▲ 경의선 도라산역 겨울 제국(帝國)이 무심히 깊어가던 연말 한복판에 파주(坡州) 민통선(DMZ)을 찾았다. 늦가을이 저물고 겨울이 천하를 지배하면서 연말(年末)과 나이 1살 누적이란 우울한 선물을 뿌려대니 이때만큼은 참 기분이 꿀꿀하다. 이럴 때 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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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 산사 나들이, 운길산 수종사 ' ▲ 수종사에서 바라본 천하 여름 제국의 위엄이 사해를 떨치던 7월의 첫 무렵, 일품 조망을 자랑하는 운길산 수종사 를 찾았다. 그곳의 일품 조망이 갑자기 당겨서 바로 짐을 꾸리고 가게 되었는데<짐이라고 해봐야 돈 과 카메라, 손수건 밖에는 없음> 그곳은 초등학교 말년에 1번 가본 것이 전부이다. 그때 가 어언 20여 년 전이니 거의 새로 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 사이 수종사는 많이 변 하여 오히려 젊어진 기분이고, 그에 반해 나는 많이 늙어버렸다. 집과 가까운 방학역(1호선)에서 1호선을 타고 회기역에서 경의중앙선으로 환승하여 운길 산역에서 내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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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룡사 사적비청룡사 직전인 청룡마을회관앞 3거리에 청룡사의 빛바랜 일기장인 사적비가 있다. 2차선 도로(청룡길) 한복판에 조금은 외롭게 자리해 있는데, 이는 도로 확장으로 그렇게 된 것이며, 길이 좁기 때문에 비석 접근과 관람에 그리 어려움은 없다. 이 비석은 1712년에 세워졌다. 비문 내용은 승려 나준이 지었고, 글은 직산현감을 지낸 황하민이 썼으며, 사헌부지평 김진상이 전액을 썼다. 비문에는 고려 후기에 나옹화상이 이곳 절을 중창했을 때,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만난 인연으로 산과 절 이름을 서운산 청룡사라 했다는 것과 조선 숙종 시절에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건물을 중건한 사실 등이 담겨져 있다.비좌 위에 빗돌을 세우고 지붕돌로 마무리를 지었는데, 지붕돌 귀퉁이마다 절의 이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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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룡사 사천왕문(천왕문)안성의 대표 명산인 서운산(548m)에는 석남사와 청룡사 2곳의 고찰이 깃들여져 있는데, 그중 청룡사는 서운산 남쪽 자락에 둥지를 틀고 있다.청룡사는 1265년 몽골 원나라에서 넘어온 명본국사가 창건하여 대장암이라 했다고 전한다. 1364년 나옹화상이 크게 중건했는데, 이때 청룡이 서기가 가득 서린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하여 산 이름을 서운산, 절 이름을 청룡사로 갈았다. 과연 청룡이 구름을 타고 하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1372년에 청룡사에서 간행한 능엄경이 전하고 있어 고려 후기에 창건된 것은 명확하다.1597년 정유재란 때 파괴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경내에는 법당인 대웅전을 비롯해 관음전, 서별당, 청룡당, 종각, 사천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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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룡사 봉향각대웅전 옆구리에 자리한 봉향각은 'ㄱ' 구조의 팔작지붕 집으로 선방 및 요사로 살아가고 있다. 2. 청룡사 명부전대웅전 옆구리에 자리한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지장보살과 시왕 등 명부(저승) 식구들의 공간이다. 3. 명부전 지장보살상과 지장시왕도푸른색 승려 머리를 지닌 금동 피부의 지장보살상이 무독귀왕과 도명존자를 좌우에 거느리며 중생들의 인사를 받는다. 그들 뒤로 화려한 색채의 지장시왕도가 후불탱으로 걸려있는데, 그는 1874년에 화승 한봉 창엽과등삼 등이 조선 왕실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다. 그때 석가여래삼불회도와 아미타여래회도도 같이 조성되었다.조성시기와 제작자, 봉안처가 분명한 탱화로 전체적인 도상과 설채법 등이 19세기 후반 서울 및 경기 지역 불화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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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성 아양동 보살입상(왼쪽)과 석불입상(오른쪽)안성은 미륵불의 고장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늙은 석불이 많이 전하고 있다. 그들 가운데 안성 시내인 아양동 주택가 속에 오랫동안 미륵불로 애지중지되던 석불 2기가 있는데, 왼쪽에 키가 큰 석불은 아양동 보살입상, 오른쪽에 키가 작은 석불은 아양동 석불입상이란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양동 보살입상은 화강암으로 조성된 것으로 고려 때 것으로 여겨진다. 믿거나 말거나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어느 젊은 장수가 무예 수련을 위해 도기리 탑산에서 훌쩍 뛰어올라 알미산을 딛고 비봉산 장수바위로 넘어가던 중에 실수로 여미륵(아양동 보살입상)의 목을 차서 부러뜨렸다고 한다. 그것 때문인지 그 장수는 전쟁에서 전사했고, 마을 분위기도 조금은 흉흉해져 마을 사람들이 석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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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모도 보문사 (보문사 극락보전)서해바다가 잘 바라보이는 낙가산 서쪽 자락에 그 이름도 유명한 보문사가 포근히 둥지를 틀고 있다. 보문사의 '보문'은 중생을 구제하려는 관세음보살의 보살행이 크고 변함이 없다는 뜻으로 동해바다의 양양 낙산사, 남해바다의 남해 보리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 추앙을 받는다. 이 절은 635년에 회정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는 금강산에서 도를 닦고 강화도로 들어와 보문사와 마니산 정수사를 창건했다고 하는데, 이를 입증할 기록과 유물은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창건 이후 무려 1,100년 이상의 공백기가 있어 창건 시기에 대해 심히 회의감을 품게 한다.다만 경내에 600~700년 묵은 늙은 향나무가 있어 적어도 고려 중/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여겨지며, 절을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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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문사의 오랜 상징이자 백미, 보문사 마애석불좌상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의 일원으로 크게 추앙을 받고 있는 보문사 경내에서 낙가산으로 난 418계단을 오르면 그 계단의 끝에 장대한 모습의 눈썹바위와 그 바위에 몸을 의지한 커다란 마애석불좌상이 모습을 비춘다. 마애불이 몸을 기댄 바위 위쪽에는 특이하게도 암석이 눈썹처럼 앞으로 돌출되어 있어 100년 동안 마애불의 우산 역할을 해주었는데, 그로 인해 석불의 건강은 여전히 청신호이다. 이 석불은 1928년 금강산 표훈사 주지였던 이화응과 당시 보문사 주지인 배선주가 관음성지의 명성을 견고히 다지고자 조성한 것이다. 왜정 때 조성된 불상의 일원이자 가장 규모가 큰 석불로 그의 얼굴을 보면 조금은 우울해 보이는데, 이는 1920년대 어둠의 시기를 살아야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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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문사 경내에서 눈썹바위, 마애석불좌상으로 인도하는 418계단 (보문사 방향)간만에 보문사 마애석불좌상과 눈썹바위를 친견하고 다시 보문사 경내로 내려왔다. 마애석불좌상과 눈썹바위는 보문사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이자 막다른 곳이라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야 된다. 2. 보문사 삼성각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산신과 독성, 칠성 등 삼성의 공간이다. 1960년에 지어졌는데, 그때는 4평도 안되는 작은 집이었다. 3. 보문사 석실보문사에는 유명한 존재가 2개가 있으니 하나는 눈썹바위에 깃든 마애석불좌상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석실이다. 그래서 보문사에 왔다면 이들 2곳은 꼭 챙겨봐야 나중에 명부(저승)에 가서도 꾸중을 듣지 않는다. 보문사 석실은 바위 밑도리에 있는 자연산 석굴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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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문사 석실큰 바위 아랫도리에 닦여진 석실은 나한상의 공간으로 나한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눈썹바위에 크게 깃든 마애석불좌상과 더불어 보문사의 주요 명물로 절을 세웠다는 회정대사가 어부들이 바다에서 건진 나한상을 봉안하고자 만들었다고 하나 신빙성은 없다. 다만 1812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어 이때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1867년에 경산이 보수했으며, 1958년 춘성이 석굴 내부를 확장, 개수했고, 1980년에 정수가 내부를 확장하여 불단 뒤와 옆에 석조탱화를 조성했다. 우리나라의 몇 안되는 석굴 법당으로 바위 밑에 난 천연동굴을 개조하여 만들었는데, '1⌒1⌒1⌒1'모양의 3개의 홍예문을 만들고 동굴 안에 30평 크기의 공간을 닦아 18나한과 석가여래상,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 송자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