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추천명소'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23.08.23 제주도 제주올레길18코스를 거닐다 <조천비석거리~연북정~죽도~닭머르~원당봉 불탑사, 불탑사5층석탑 구간>
  2. 2022.02.09 서귀포 제주올레길8코스, 대포주상절리대, 대포연대, 약천사 겨울 나들이
  3. 2021.07.31 피서의 성지를 찾아서 ~~ 서귀포 천제연폭포, 제주올레길8코스 나들이 (천제연관개수로, 선임교, 베릿내오름)
  4. 2020.08.16 제주도의 아름다운 서쪽 끝 ~ 제주올레길12코스 당산봉, 고산리유적, 엉알해안, 수월봉 나들이 (차귀도, 산방산탄산온천)
  5. 2020.02.05 아름다운 제주도의 서쪽 끝을 거닐다 ~~ 절부암, 생이기정, 제주올레길12코스 나들이 (차귀도, 와도) 2
  6. 2019.12.30 본인 제작 여행답사기 모음집 (2019년 12월 30일 기준)
  7. 2019.04.21 남해바다를 건너 찾아간 옛 탐라의 현장, 제주도 새해 나들이 (외도 월대, 수산리곰솔, 납읍 금산공원, 제주올레길15,16,17코스)

제주도 제주올레길18코스를 거닐다 <조천비석거리~연북정~죽도~닭머르~원당봉 불탑사, 불탑사5층석탑 구간>

제주도 겨울 나들이 (연북정, 제주올레길18코스, 불탑사)



' 제주도 겨울 나들이 '
(연북정, 제주올레길18코스, 불탑사)

조천 앞바다 (제주해협)

▲  조천 앞바다

제주올레길18코스 제주 불탑사5층석탑

▲  제주올레길18코스

▲  불탑사5층석탑

 



 

천하에서 가장 작은 대륙 제주도(濟州島), 그곳은 서울에서 비행기로 불과 1시간이면 닿
는 곳이나 2005년 여름 한라산(漢拏山) 이후, 이상하게도 오랜 세월 손과 마음이 가지를
않았다. 이러다가 제주도란 존재를 새카맣게 잊어버릴 것만 같아서 새해 벽두에 겨울 제
국의 핍박도 잠시 피해볼 겸, 사흘 일정으로 따뜻한 그곳에 나를 던져놓았다.

김포공항에서 이른 아침 비행기로 제주도(제주국제공항)로 넘어가 제주시내 서부에서 서
일주도로를 따라 여러 미답처(未踏處)를 흔쾌히 지워가며 서귀포 시내로 이동했다. 하루
를 꽉꽉 채우며 일정을 짜니 이 구간에서 이틀을 소비했는데, 마지막 날에는 천지연폭포
입구에 떠있는 새섬을 아침거리로 둘러보고 동일주도로를 따라 이동했다.
점심거리로 제주도의 시조인 3신인(三神人)의 혼인 설화가 깃든 온평리의 혼인지(婚姻池
관련글 보기)를 둘러보고 조천읍(朝天邑)으로 이동했는데, 본글은 바로 조천읍에서부
터 시작된다. (첫날과 둘째 날, 새섬과 혼인지 부분은 별도의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음)



 

♠  조천포구 둘러보기 (연북정, 조천진터)

▲  조천비석거리 - 제주도 지방기념물 31호

조천읍내 중심인 조천환승정류장에서 연북정으로 인도하는 조함해안로를 2~3분 정도 들어가면
검은 피부의 비석들이 우루루 나와 마중을 한다. 그들이 조천비석거리로 이름 그대로 비석이
늘어선 거리인데, 모두 9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중 7기가 지방기념물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나머지 2기는 20세기 이후 비석들)

비석의 주인공은 제주목사 김수익(金壽翼, 1600~1673)과 이원달(李源達, 1783~1857), 채동건
(蔡東健, 1809~1880), 백희수(白希洙, ?~?), 이의식(李宜植, 1848년에 재직함), 제주판관 김
응빈(金膺斌, 1846~1928) 등으로 이 땅에 흔한 관리들의 선정비(善政碑)와 불망비(不忘碑)이
다.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으로 비석 뒷면이 다들 아작나면서 비석의 건립 연대는 알 수가
없으며, 비석 6기는 대머리 스타일, 나머지 3기는 지붕돌 머리로 지붕돌 비석은 빗돌 부분을
감실(龕室)처럼 만들고 그 안에 빗돌이 따스하게 안겨져 있다.

관리들이 이곳을 통해 육지를 오가다 보니 여기에 그들의 비석을 세웠는데 (인근 화북포구도
비슷한 이유로 선정비가 많이 세워졌음;) 의미는 참 좋은 선정비이나 그 비석을 받을 자격이
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는지 저들에게 묻고 싶다. 아마도 상당수는 고개를 떨구겠지. 딱
히 공적도 없으면서 백성들을 들들 볶아 비석을 세우거나 돈 떼먹기용으로 비석을 남발한 관
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 조천비석거리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3470 (조함해안로 26)


▲  평화로운 모습의 조천포구

조천비석거리 서쪽에는 제주해협을 향해 가슴을 연 조천포구(조천항)가 펼쳐져 있다. 지금이
야 조그만 어항(漁港)으로 머물러 있지만 화북(禾北)포구와 함께 대한제국 시절까지 제주도와
육지를 잇던 포구로 바쁘게 살았던 제주도의 대표 관문이다. 조정에서 보낸 관리와 육지 사람
들이 이곳과 화북포구를 통해 제주도를 오갔으며, 제주도 사람들도 이 포구로 육지와 다른 세
상으로 나갔다.
조천이란 이름은 천자(天子)의 나라에 조회하러 간다는 뜻으로 그 천자란 제주도를 다스렸던
고려와 조선을 뜻한다. 조정에서 보낸 관리와 왕명(王命)이 이곳을 통해 제주도로 들어왔으며
, 그 중요한 현장에 조천진성과 나를 이곳으로 부른 연북정이 있다.


▲  조천진성(朝天鎭城) - 제주도 지방기념물 68호

조천진성(조천진)은 제주도의 특산물인 현무암으로 다져진 단단한 성곽으로 연북정을 품으며
제주해협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고려 때 조성된 것으로 제주도에 설치된 9개 진성(鎭城) 중
하나인데, 포구 관리와 수비를 담당했다.
1374년에 조천관(朝天館)이 세워졌으며, 1590년 제주목사 이옥(李沃)이 중수하여 둘레 428척,
높이 9척, 성문 1개를 지닌 성곽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이후 초루(礁樓)와 객사(客舍), 청
사(廳舍), 군기고(軍器庫), 포사(砲舍) 등이 세워졌으며, 조방장(助防將) 1명을 중심으로 치
총(雉摠) 2명, 성정군(城丁軍) 92명, 유직군(留直軍) 103명, 서기(書記) 12명이 배치되었고,
사후선(伺候船) 1척을 보유하고 있었다.

고약했던 왜정(倭政) 시절, 연북정을 제외한 시설물은 위치 확인도 어려울 정도로 모두 지워
져 연북정과 성곽만 겨우 남아있다. 성곽은 거의 잘 남아있으며, 성곽 동쪽에 동문터가 있고
북쪽은 북쪽은 바다와 접해있다.
현재 남아있는 성곽의 둘레는 128m, 외벽 높이 2.2~4.3m, 상부 폭 1.6~3.1m 정도이며, 2017~
2018년에 발굴조사를 벌이면서 성곽을 손질했다.

흔히 연북정만 알려져 있으나 그는 엄연한 조천진성의 망루이자 시설물이며, 조천진성과 연북
정은 하나의 몸이나 다름이 없다. 나도 연북정만 생각했지 조천진성의 존재는 생각도 못했다.


▲  조천진성 발굴 현장 (2018년)
이곳의 숨겨진 이야기를 캐내려는 굳은 집념으로 성곽 내부를 싹 뒤집어
조사를 벌이고 있다.

▲  연북정(戀北亭) - 제주도 지방유형문화재 3호

조천진성 성곽(城郭) 위에 기단을 다지고 높이 들어앉은 연북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 정자이다. 정자 안에는 마루가 있으며, 사방이 활짝 열린 모습으로 기둥의 배열과 건축
재료, 배열 방법은 제주도 주택과 비슷하다.
제주목사 이옥이 1590년 조천진성을 중수하면서 조천관을 중창해 쌍벽정(雙璧亭)이라 했으며,
그 쌍벽정이 1599년 중수되면서 연북정으로 이름이 갈렸다.

제주도는 조선 때 유배지<流配地, 귀양지>로 인기가 높았는데, 유배를 온 관리들이 연북정에
올라 육지에서 기쁜 소식(서울로 돌아오라는 제왕의 조서)이 날라 오기를 애타게 고대하며 북
쪽(서울)에 있는 임금을 그리워했다. (한편으로는 격하게 원망했을 듯) 그 연유로 연북정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고 전한다.
조천진의 망루 역할을 했으며 평소에는 제주목사 등의 높은 관리와 지역 양반들이 유흥을 즐
기거나 유배자들이 바다 너머를 바라보며 돌아갈 날을 기다렸다.

제주도에 가면 이 연북정은 꼭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서 이렇게 들리게 되었는데, 조금은 각박
한 성곽 계단을 오르면 연북정에 이르게 된다. 정자 내부까지 들어갈 수 있으며, 여기서 바라
보는 조망과 바닷바람 맛이 일품이다. 또한 제주올레길18코스가 연북정 옆구리를 지나가 예전
보다는 찾는 이가 좀 늘었다.


▲  연북정 현판의 위엄

하얀 피부 현판에 짙은 검은색으로 연북정 3자가 쓰여있다. 북(北)자는 마치 '터지(址)'처럼
보이며, 연(戀)은 가운데 '言'이 너무 격하게 솟아나 제자리로 속히 돌아가고 싶은 유배자들
의 마음과 자신들의 밥줄을 쥐고 있는 제왕에 대한 연모(한편으로는 원망)의 마음이 활활 타
오른 듯한 모습이다.

* 연북정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690


▲  연북정의 옆 모습

▲  연북정에서 바라본 조천포구와 원당봉

저 멀리 아른거리는 산이 원당봉(원당오름)이다. 조천에서 제주올레길을 따라 무려 저곳까지
도보로 이동하기로 했는데, 다행히 일몰 직전에 도착해 원당봉에 깃든 불탑사5층석탑까지 싹
둘러보고 기분 좋게 나들이를 마무리 지었다.


▲  서쪽에서 바라본 조천진성
오른쪽에 보이는 기와집이 연북정이다.

▲  두말치물

연북정 서쪽 해안에는 용천수가 치솟는 두말치물이라는 큰 샘터가 있다. 용천수란 빗물이 지
하로 스며들어 대수층(帶水層)을 따라 흐르다가 암석이나 지층의 틈새를 통해 바깥으로 나오
는 물로 그 틈새가 해안 지역에 많이 나타나 호랑이가 담배를 태우기 이전부터 그 주변에 마
을이 형성되었다. 제주도는 까칠한 현무암 피부라 비가 내리면 거의 지하로 내려가 물 문제가
늘 컸는데, 그 문제를 이런 샘터들이 해결해준 것이다.

두말치물은 물을 1번 뜨면 2말을 뜰 수 있다고 해서 유래된 것으로 그만큼 물이 풍부했다. 용
천수가 솟는 주위로 현무암으로 둑을 다져 바다와 경계를 그었는데, 지금도 물은 넉넉히 나오
고 있으나 상수도 시설에 밀려 거의 이용하지 않아 이제는 동네 명소나 옛날 유물 같은 신세
가 되어 버렸다. 사람도 그렇고 사물이나 건물이나 뒷전으로 밀려난 모습은 참으로 쓸쓸해 보
인다.


▲  두말치물에서 바라본 조천진성과 연북정



 

♠  제주올레길18코스 거닐기

▲  제주올레길18코스 조천리 해안 구간

제주올레길18코스는 조천만세동산에서 제주시내 간세라운지까지 이어지는 19.8km의 긴 올레길
이다. 이 코스에는 조천만세동산과 연북정, 닭머르, 불탑사, 사라봉 등의 명소가 있으며. 읍
내(조천읍)와 포구, 해안마을, 바다, 산, 들녘, 도시 한복판을 두루 거쳐 제주도의 다양한 모
습을 살펴볼 수 있다. 나는 18코스 구간 중 약 ⅓ 정도인 연북정~삼양해수욕장 구간만 거닐었
는데, 코스를 이리 짠 것은 연북정과 불탑사5층석탑을 모두 잡기 위함이다.
연북정에 이른 시간은 거의 15시, 일몰까지는 2시간 정도 밖에 남지 않아 서둘기는 했으나 전
투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아닌 듯. 한편으로는 여유롭게 할 것은 다하면서 움직였다.


▲  조천리 황씨종손(黃氏宗孫) 가옥 - 제주도 민속문화재 4-5호

올레길에 진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수상한 기와집이 살짝 눈빛을 보낸다. 그 눈빛에 이끌려
가보니 조천리 황씨종손 가옥을 알리는 안내문이 마중을 한다. 나를 이곳으로 부르기는 했으
나 사람이 사는 집이라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으며, 현무암으로 다진 제주도 스타일의 담장이
높이 둘러져 있어 아무리 까치발을 하여도 그 속살을 볼 수가 없다. 그렇다고 월담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입을 봉한 대문과 담장만 둘러보고 바로 물러났다.

이 가옥은 네모난 마당을 중심으로 남쪽에 자리한 안거리(안채), 북쪽의 밖거리, 서쪽의 모커
리가 'ㄷ'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동쪽에 대문을 지닌 문간거리(문간채)가 있다.
4칸 규모의 안거리는 16세기에 지어졌다고 전하며, 3m(약 10척)가 넘는 상방의 주칸은 제사를
지내는 종가(宗家)의 모습을 보여준다. 안뒤 공간과 연결된 2칸의 뒷낭간은 집안의 사적인 공
간이며, 3칸짜리 밖거리는 1940년에 지어졌다. 밖거리는 머릿방과 협문이 있는데, 이는 대한
제국 이후 제주도 상류 주택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집의 규모는 크지 않으나 제주도 상
류 기와집의 품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조천리 황씨종손 가옥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373 (조천9길 7)

황씨종손가옥과 멀지 않은 올레길 주변에 수륙
물이란 용천수 샘터가 있다. 샘터 주변을 돌담
으로 둘러 동네 여인들의 목욕 공간으로 만들
었는데, 아들을 얻지 못한 여인들이 자식을 점
지해줄 것을 빌던 곳으로 그 연유로 수덕물이
라 불리기도 한다.
허나 지금은 식수는 커녕 목욕 장소로도 거의
쓰이지 않아 한가로운 모습이며, 사진 중앙에
움푹 들어간 곳에서 용천수가 쏟아져 나와 찾
는 사람 거의 없는 수륙물을 늘 채워준다.

▲  조천리 수륙물(수덕물)

▲  제주올레길18코스 죽도 동쪽 구간
(신촌리 방향)

▲  제주올레길18코스 죽도 동쪽 구간
(조천리 방향)

조천리 구간을 지나면 바다와 땅이 뒤엉킨 곳이 나온다. 그곳의 중심에는 '죽도'란 섬이 있는
데, 남북으로 500m 정도 되는 작은 섬으로 동과 서, 남쪽이 둑방길로 제주도와 단단하게 이어
져 있다. 제주올레길18코스가 그런 죽도의 한복판을 지나가며, 섬 남쪽에 집 몇 채가 있을 뿐
대부분이 경작지와 주름진 바위 해변이다.


▲  지그재그 이어진 제주올레길 18코스 죽도 동쪽 구간

▲  제주해협을 향해 작게 입을 벌린 신촌포구 방파제

▲  신촌리 앞바다
저 까마득한 수평선 너머로 육지가 있다. 그곳이 혹시 보일까 싶어서 눈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살펴보았으나 역시나 거리 때문에 전혀
보이지가 않는다. (솔직히 보일 수가 없음)

▲  닭머르 해변

신촌리 마을을 지나면 닭머르란 해안이 나온다. 닭이 흙을 파헤치고 그 안에 들어앉은 모습처
럼 생겼다고 해서 닭머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는데, 기암괴석이 쭉 늘어서 있고 물고기들이
많아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다. 해변 정상에는 정자가 닦여져 있는데, 저곳까지 가는 것이 도
리가 되겠으나 원당봉까지 갈 길이 멀어 쿨하게 통과해버렸다.

이 날은 아침에는 날씨가 청명했는데 조천에 이른 직후부터 잔뜩 흐려졌다. 바다 또한 흥분기
를 보여 거친 파도로 해변을 마구 때려대고 제주도 특유의 바람까지 거세어 체감 날씨는 겨울
이상이었다. 제주도가 따스한 남쪽이라고 하나 바다 바람이 그 따스함을 크게 떨어트린다. 하
여 해변이나 한라산 나들이 때는 옷을 제대로 갖춰 입어야만 뒷탈이 없다.


▲  닭머르 해변을 거세게 쪼아대는 바다

▲  서쪽에서 바라본 닭머르 해변과 정자

제주올레길18코스 구간 중 신촌리 어촌계 탈의장에서 닭머르입구 구간(1.8km)은 해안누리길의
일원인 '닭머르길'이란 간판도 지니고 있다.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재단에서 선정한 걷기 좋
은 해안길의 일원으로 여기서 '문서천'이란 개천을 따라 5~6분 들어가면 습지 형태의 남생이
못이 있는데, 닭머르에 왔다면 그 습지도 같이 둘러보면 여로(旅路)가 더욱 살찔 것이나 나는
일몰 시간의 압박으로 닭머르만 총알처럼 지나가 버려 남생이못까지는 챙기지 못했다. 핑계이
긴 하지만 언제나 시간이 문제이다.


▲  닭머르 서쪽 해변

▲  점점 멀어지는 닭머르

▲  시비코지 주변 해변

▲  들판과 억새밭을 지나는 제주올레길18코스 (시비코지 남쪽)

조천부터 계속 바다를 따라 다녔던 제주올레길18코스는 시비코지 이후부터 잠시 바다를 버리
고 내륙으로 빠진다. 올레길 주변에는 현무암 돌담으로 구획된 밭들이 정겹게들 펼쳐져 있고
누렇게 뜬 억새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며 나를 반긴다.


▲  들판 사이를 지나는 제주올레길18코스 (시비코지 남쪽)



 

♠  이 땅에서 유일한 늙은 현무암 탑을 지닌 곳
원당봉 불탑사(元堂峰 佛塔寺)

▲  맞배지붕을 지닌 불탑사 사천왕문(四天王門)

들판을 달리던 제주올레길18코스는 원당봉(171m) 자락으로 들어가 불탑사 앞으로 나를 인도한
다.
삼양동 동쪽에 낮게 솟은 원당봉(원당오름)은 겉으로 보면 꽤 평화로운 모습이나 그는 측화산
(側火山) 출신이다. 즉 용암을 내뿜던 무시무시한 화산이었다. 그는 7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뫼로 왕년에는 용암과 화산재를 요란하게 내뱉었으나 몸이 노화되면서 한라산처럼 죽은 화산
이 되었다. 정상부에 있던 분화구는 물이 고여 습지가 되었으며, 이 습지를 '거북못'이라 불
렀는데, 근래에 연못으로 바뀌어 이곳이 먼 옛날 화산의 입이었음을 살짝 귀띔한다.
원당봉이란 이름은 몽골(원나라)의 기황후(奇皇后)가 세운 원당사란 절에서 비롯된 것으로 조
선 때는 원당악(元堂岳)이라 불렸으며, 정상부에 봉수대(烽燧臺)가 있어 이를 원당봉수라 하
였다.

원래 이번 나들이에서 불탑사와 원당봉을 제일 처음 찾아가 그 정상까지 가려고 했으나 코스
가 반대로 바뀌면서 마지막 답사지가 되었다. 또한 일몰 직전에 도착하여 원당봉 정상부는 가
지도 못하고 불탑사만 둘러보고 빠져 나와 다소 아쉽다. 허나 인연이 그것 밖에 안되는 것을
어찌하리요. 나머지 부분은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으로 쿨하게 넘겼다.


▲  불탑사 대웅전(大雄殿)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불탑사의 중심 건물(법당)이다.


원당봉 북쪽 자락에 포근히 둥지를 튼 불탑사는 14세기 중반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창건설
화에 따르면 몽골(원나라)의 제왕인 순제(順帝)가 아들이 없어 무척 애태우던 중, 꿈 속에서
승려가 나타나
'북두의 명맥이 비친 삼첩칠봉(三疊七峰)의 터를 찾아 절과 탑을 세워 기도하면 아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오'
하였다.
하여 신하들을 닥달하여 천하를 수소문해 제주도 동북 해변에서 그 삼첩칠봉을 찾았고, 그곳
에 탑과 절을 세워 사람을 보내 기도를 하니 마침내 아들을 얻었다고 한다.

순제의 2번째 황후가 그 유명한 기황후로 이 양반이 행주기씨 집안이자 친원(親元) 패거리의
핵심인 기철(奇轍)의 여동생이다. 몽골에 공녀(貢女)로 들어갔으나 고려 출신 환관이자 기황
후와 같은 지역 사람인 박불화(朴不花, ?~1364)의 도움으로 궁궐로 들어갔고, 순제의 총애까
지 받게 되어 아들까지 낳게 된다. 그 기세를 몰아 순제를 현혹시켜 기존 황후(皇后)를 내쫓
고 자신이 황후에 올랐으며, 권력까지 손에 쥐어 몽골을 통치했다.
순제가 아들을 얻고자 제주도 원당봉에 절을 세운 것은 기황후의 득남을 기원하고자 그리 한
것으로 여겨진다. 순제는 이미 건장한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들은 기황후의 모함을
받아 크게 고통을 받았음) 어쨌든 아들을 얻자 기황후가 원당사를 세운 것으로 여겨지며, 그
시절 제주도는 몽골이 설치한 탐라총관부(耽羅摠管府)의 관리를 받고 있었다.

원당사는 현재 불탑사와 맞은편 원당사 자리까지 아우른 규모로 법화사(法華寺), 수정사(水精
寺)와 함께 제주도의 대표적인 절이었다. 조선 중기까지 무탈하게 있었으나 숙종(肅宗) 시절
제주목사 이형상(李衡祥)이 제주도에 있던 절과 당집을 대거 정리하면서 파괴되고 만다. 그
시절 제주도에는 당(堂) 오백, 절 오백이 있었다고 전해 그만큼 무속신앙과 불교가 성행하고
있었다. 그러니 유교와 성리학(性理學) 사상이 뼛속까지 파고든 이형상의 눈에 곱게 보일 턱
이 없었다.
조선 후기에 재건되었으나 3번이나 불을 만나 쓰러졌으며, 1914년에 비구니 안봉려관(安蓬廬
觀)이 중건하면서 절 이름을 불탑사로 갈았다. 이후 1949년 4.3사건 때 파괴되었다가 1950년
대에 승려 이경호가 재건했고, 승려 양일현이 중창불사를 벌여 지금에 이른다.

조촐한 경내에는 대웅전과 심우당, 사천왕문 등 5~6동 정도의 건물이 있으며, 그 흔한 일주문
(一柱門)을 아직 갖추지 못해 사천왕문이 절의 정문 역할을 도맡고 있다. 소장문화유산으로는
보물로 지정된 현무암 피부의 5층석탑이 있으며, 발굴조사로 발견된 옛 원당사 시절의 금당터
와 요사터가 있다. 절 남쪽에는 불탑사의 옛 이름을 취한 원당사가 있으며, 제주올레길18코스
가 절 앞을 지나간다.

* 불탑사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1동 696 (원당로16길 41, ☎ 064-755-9283)


▲  불탑사 5층석탑 - 보물 1187호

대웅전 뜨락에는 불탑사의 꿀단지이자 상징물인 5층석탑이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딱 하나
밖에 없는 오래된 현무암 탑이자 제주도에서 가장 늙은 탑으로 불탑사란 이름은 바로 이 탑에
서 비롯되었다.
제주도에 걸맞게 현무암으로 닦여진 시커먼 피부의 탑으로 1단의 기단(基壇)과 5층 탑신(塔身
), 머리장식을 지니고 있는데, 기단은 뒷면을 뺀 3면에 안상(眼象)을 얕게 새겼으며, 무늬의
바닥선이 꽃무늬처럼 솟아나도록 조각했다. 1층 탑신 남쪽 면에는 감실(龕室)을 두었고, 지붕
돌은 윗면의 경사가 크지는 않으나 네 귀퉁이가 뚜렷하게 치켜올려져 있으며, 꼭대기에 올려
진 머리장식은 아래의 돌과 그 재료가 달라서 후대에 별도로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전체적인 탑 모습이 조형성이 적고 무겁게 보인다고 하여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
며, 불탑사 창건설화에 탑이 등장하는데 그 탑이 이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시대가 비슷하므
로 그런데로 맞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천하의 유일한 늙은 현무암 탑으로 제주도 지방유형문
화재 1호
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으나 1993년 국가 보물로 특진되었다.


▲  검은 피부가 매력적인 불탑사 5층석탑 (정면에서 본 모습)

▲  옛 원당사의 요사(寮舍)터

불탑사 경내를 싹 뒤집어 발굴조사를 했을 때, 여기서 건물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독립 기초
가 나왔다. 이곳은 요사(요사채)터로 여겨지며, 기단석과 주춧돌을 수습해 저 밑에 고이 묻고
그 위에 곱게 잔디를 입혔다.


▲  옛 원당사의 금당(金堂, 법당)터
건물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독립 기초와 요사채터와 연결된 계단이 발굴되었다.
이곳 역시 주춧돌을 묻고 그 위에 잔디를 입혔다.

▲  서쪽에서 바라본 옛 원당사의 금당터

불탑사를 둘러보니 어느덧 18시가 넘었다. 이곳을 끝으로 제주도 나들이는 모두 마무리가 되
었으며, 계획한 답사지는 3곳을 제외하고 모두 발자국을 남겼다. 알차고 보람차게 여로를 마
무리 지으니 마음이 뿌듯했으나 한편으로는 '벌써 제자리로 돌아가야 되나?' 싶어 아쉬운 마
음도 실로 컸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를 더 머물고 싶었으나 이번 나들이는 계획대로 여기서
쿨하게 정리했다. 제주도는 바다를 건너거나 하늘을 넘어야 되는 부담감이 있어서 그렇지 언
제든 찾을 수 있는 곳이니 다음 인연을 기다리면 된다.

제주올레길18코스를 마저 타고 삼양동 시내로 내려왔으나 너무 아쉬운 마음에 삼양해수욕장을
저녁거리로 둘러볼까 했다. 허나 바닷바람도 차고 몸도 지쳐서 시내버스를 타고 제주국제공항
으로 넘어갔다.
공항에 들어서니 서울이나 부산, 광주 등 육지로 가려는 사람들과 외국 방면 사람들로 북새통
을 이룬다. 예약한 비행기표를 발권받아 탑승 수속을 밟고 비행기 기다리는 곳에서 제주도 감
귤 초콜렛 2상자를 기념품으로 구입했다.
시간이 되자 김포공항으로 가는 티웨이(T-Way)항공 비행기에 나를 담았는데, 비행기가 탑승동
에 몸을 대지 않고 활주로에서 대기하고 있어서 그곳으로 인도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2~3분 정
도를 가서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는 예정시간보다 30분 늦게 제주공항을 출발했고, 50분 정도를 날다가 서울의 하늘 관
문인 김포공항에 가뿐하게 착륙했다. 사흘 만에 서울 공기를 다시 맡으니 확실히 차긴 차다.

이렇게 하여 제주도 나들이는 다음의 인연을 고대하며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 까페(동호회)에 올린 글은 공개일 기준으로 1주까지만 수정,보완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
  집니다. <단 블로그와 원본은 1달까지임>
* 본글의 내용과 사진을 퍼갈 때는 반드시 그 출처와 원작자 모두를 표시해주세요.
* 오타나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즉시 댓글이나 쪽지, 연락 등으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외부링크 문제로 사진이 안뜨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모니터 크기와 컴퓨터 사양에 따라 글이 조금 이상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 공개일 - 2023년 8월 10일부터
* 글을 보셨으면 그냥 가지들 마시구 공감이나 추천을 흔쾌히 눌러주시거나 댓글 몇 자라도
  달아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 본인의 네이버(naver) 블로그 ☞ 보러가기
* 본인의 티스토리(tistory) 블로그 ☞ 보러가기
 

Copyright (C) 2023 Pak Yung(박융), All rights reserved

서귀포 제주올레길8코스, 대포주상절리대, 대포연대, 약천사 겨울 나들이

서귀포 대포주상절리대, 제주올레길8코스, 약천사



' 서귀포 겨울 나들이 '
(대포 주상절리대, 제주올레길8코스, 약천사)

중문, 대포 해안 주상절리대

▲  대포 주상절리대 (중문, 대포해안 주상절리대)

약천사 대적광전 대포연대

▲  약천사 대적광전의 뒷모습

▲  대포연대



묵은 해가 저물고 새해가 열리던 1월의 첫 무렵, 천하에서 가장 작은 대륙인 제주도(濟
州島)를 찾았다.

하늘을 타고 오랜만에 발을 들인 제주도에서 3일을 머물며 여로(旅路)를 듬뿍 살찌웠는
데, 첫날에는 제주시 서부 지역(외도, 애월, 한림, 한경)을 돌았고, 둘째 날은 서귀포(
西歸浦) 중문 지역으로 들어서 천제연폭포(天帝淵瀑布)를 시작으로 제주올레길8코스(월
평~대평포구, 19.6km)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했다. 본글은 제주올레길8코스의 일원인 대
포주상절리대 서쪽에서부터 시작된다. (대포 주상절리대 이전과 약천사 이후 내용은 별
도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음)


♠  제주올레길8코스 대포해안 주상절리대(柱狀節理帶) 주변

▲  대포 주상절리대 서쪽 산책로 (제주올레길8코스)

제주올레길8코스 대포 주상절리대 서쪽 구간은 도시 속의 큰 공원(ex. 여의도공원)처럼 길이
잘 닦여져 있다. 숲길과 쉼터, 온갖 소소한 볼거리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고, 남쪽에는 늘 바
다가 함께하고 있으며, 북쪽에는 제주부영호텔앤리조트(Hotel and Resort)와 제주국제컨벤션
센터가 넓게 자리잡고 있다.


▲  남국(南國)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산책로 (올레길8코스)
뾰족한 잎을 지닌 야자수가 길게 가로수를 형성하며 따스한 남쪽 풍경을 진하게
그려낸다. 바다 건너 북쪽은 겨울 제국(帝國)의 핍박으로 아주 죽을 맛인데
여기는 몸에 걸친 잠바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덜 쌀쌀하다.

▲  옹기종기 모인 선인장들

제주도는 이 땅에서 유일하게 선인장이 뿌리를 내린 곳이다. 제주도 선인장의 고향은 한림읍
월령리로 그곳 선인장이 사람과 자연의 의해 제주도 전역으로 세력을 넓혔다. 이들의 원산지
는 이역만리 떨어진 멕시코로 그 씨앗이 바다를 타고 무려 여기까지 들어와 싹을 틔운 것으로
보고 있다.
아무리 해류를 잘타더라도 엄청난 시간이 필요한 머나먼 거리인데 그들의 강인한 근성과 이곳
으로 그들을 인도한 대자연 형님의 조화에 적지않은 경외심이 솟구친다.

▲  올레길8코스에서 만난 돌기둥 장식물과
붉은 피부의 항아리들

▲  슬슬 모습을 비추는 지삿개
대포해안 주상절리대


올레길8코스가 지나는 지삿개 해변에는 '대포 주상절리대(대포 주상절리)'라 불리는 명품급의
해안 벼랑이 깃들여져 있다.
요즘은 '대포 주상절리대'로 속세에 너무 알려져 이곳의 원래 이름은 '지삿개'가 거의 잊혀질
정도인데, 칼로 싹둑 다듬은 듯 4~6각형 형태의 돌기둥과 돌무늬가 계단처럼 늘어서 신비로운
경관을 자아내고 있다. 이들은 한라산(漢拏山) 등이 흥분하여 뿜어낸 용암이 이곳으로 내려와
바다와 만나면서 급히 냉각되어 형성된 것인데, 반대 성향을 지닌 뜨거운 용암과 차가운 성질
의 바닷물이 격하게 부딪쳐서 이루어진 현장이다.
현무암질(玄武巖質) 용암류에서 나타나는 수직 절리(節理)로 높이는 10~40m, 해변 길이는 1km
정도이다. 허나 소소하게 펼쳐진 주상절리까지 포함하면 약 3.5km로 이 땅의 주상절리 중 최
대 규모를 자랑한다. 현무암 용암이 굳어질 때 일어나는 지질현상과 해식작용에 의한 해안지
형의 발달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고마운 지질자원으로 그 가치가 뛰어나 '중문,대포해안 주
상절리대
'란 이름으로 국가 천연기념물 443호로 지정되었다.

그 길쭉한 주상절리대 해안 중의 가장 핵심부가 이곳 지삿개 해변이다. 예전에는 해안과 벼랑
밑도리까지 접근이 가능했으나 천연기념물의 감투를 받은 이후에는 접근이 통제되었으며, 지
정된 길로만 고분고분 움직여야 된다. 허나 그 길만 따라가도 주상절리대의 멋진 경관을 충분
히 누릴 수 있다.
서귀포시는 지싯개 해변 주변에 담장을 둘렀는데, 가파른 벼랑으로 이루어진 서쪽 해안과 동
쪽 해안은 담장을 두지 않고 그 벼랑 자체로 경계선을 삼았다. 그리고 동쪽과 서쪽에 출입문
을 내어 바로 북쪽에 지나가는 올레길8코스와 연결을 시켰다.
허나 주상절리대 내부를 유료의 공간으로 삼아 수입을 챙기고 있다는 함정이 있다. 입장료는
어른 기준으로 무려 2,000원, 대자연이 오랫동안 부린 재주로 서귀포시가 호주머니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쿨하게 무료 공간으로 바꾸거나 입장료 1,000원이 적당해 보이는
데, 싹수가 있는 곳에 담장을 두르고 대놓고 입장료를 받아먹는 행태가 영 좋아보이지는 않는
다.

서귀포시의 지나친 상업주의 본능에 크게 혀를 차며 그냥 지나칠까 했으나 고양이가 생선가게
를 그냥 못지나친다고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 대포주상절리대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2768-1, 2769 (이어도로 36-30,
  ☎ 064-738-1521) 


▲  인공이 가해진 듯, 신비로운 모습의 대포 주상절리대
사람이 빚은 것보다는 자연산이 훨씬 우수하고 섬세하다.

▲  거친 물놀이를 즐기는 주상절리대 밑 부분

마치 불규칙한 계단처럼 켜켜히 들어선 돌기둥들, 그 기둥이나 벼랑에 부딪친 파도는 아주 심
할 때는 높이 20m까지 솟구친다고 한다. 허나 내가 갔을 때는 절리대의 밑도리만 살짝 어루만
지는 정도로 순한 모습을 보였다.
이곳 해안은 대자연의 완성된 작품이 아닌 여전히 미완(未完)의 현재진행형이다. 제주도의 거
센 바람과 파도에 의해 굼벵이 속도로 조금씩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0,000년 뒤에는
지금보다 10~20% 정도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싶다.


▲  대포 주상절리대에서 바라본 남해바다와 중문 서쪽 지역
<저 멀리 우뚝 솟은 산은 산방산(山房山)>

▲  층층이 주름진 주상절리대 밑도리
거친 피부나 두꺼운 껍질을 지닌 무시무시한 생명체가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 같다. 밤에 와서 보면 염통이 제대로 쫄깃해질 것 같은 기분.

▲  주상절리대 밑도리에 계속 채찍질을 가하는 바다
파도가 뽀얀 거품을 내며 주상절리대를 거칠게 어루만진다. 그렇게
절리대는 아주 조금씩 세월을 타며 늙어간다.

▲  방파제처럼 튀어나온 주상절리대 밑도리
예전에는 낚시터로 쓰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지체 높은 천연기념물
구역이라 사람들의 발길을 금하고 있다.

▲  주상절리대 동쪽 자갈해안
이곳은 언제든 발을 들일 수 있는 자유 구역이다. 저 주름진 벼랑을 넘으면
바로 주상절리대 핵심부이나 저 벼랑 역시 엄연한 금지된 구역이니 애써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 (자갈해안만 자유 구역임)

▲  자갈해안과 바다의 끊임없는 속삭임, 그리고 그 속삭임을
훔쳐 듣는 나.

▲  율동을 부리며 경쾌하게 흘러가는 제주올레길8코스 (대포연대 방향)

▲  야자수가 펼쳐진 올레길8코스
(대포연대 방향)

▲  올레길 속으로 자꾸 나를 집어넣다.
(대포연대 방향)


♠  제주올레길 8코스 대포연대, 대포포구

▲  대포연대(大浦煙臺) - 제주도 지방기념물 23-12호

올레길을 거닐다가 남쪽 소나무 숲에 시커먼 피부를 지닌 무엇인가가 눈에 아른거린다. 예사
로운 피사체가 아닌 듯 싶어 올레길을 잠시 버리고 그에게 다가서니 봉수대처럼 생긴 커다란
대포연대가 나를 반긴다.

연대(煙臺)는 제주도 스타일의 옛 통신수단으로 봉수대와 비슷하다. 제주도는 봉수대 외에도
연대까지 갖추어 섬 수비에 만전을 기했는데, 이들이 다른 점이 있다면 봉수대는 산꼭대기에
있었고, 연대는 조망이 좋은 해변과 구릉에 설치되었다. 횃불과 연기로 주변과 연락을 취했으
며, 평상시에는 1개, 수상한 배가 나타나면 2개, 그 배가 땅으로 접근하면 3개, 육지에 발을
들이면 4개, 전투가 벌어지면 5개를 올렸다. 이는 봉수대와 같다.

대포연대는 조선 후기에 현무암으로 지어진 것으로 근래에 정비되었으며, 동쪽으로 마희천 연
대, 서쪽으로 별노천 연대와 신호를 주고 받았다. 연대의 높이는 4m 정도로 북쪽으로 계단을
늘어뜨렸는데, 계단이 협소하고 안전시설이 없어 주의가 필요하다. 계단을 통해 정상으로 오
르면 바로 남쪽으로 바다가 보이며, 서쪽으로 중문해변과 산방산, 동쪽으로 월평포구가 시야
에 들어와 조망도 그런데로 괜찮다. 게다가 주변에 높은 존재가 없다보니 마치 허허벌판에 홀
로 솟은 봉우리에 오른 기분이다.

▲  대포연대 돌계단
계단 폭이 좁으니 통행에 주의하기 바란다.

▲  대포연대 정상부
정상부 테두리에는 낮게 돌담을 둘렀다.


▲  대포연대에서 바라본 서쪽 (중문, 산방산 방향)

▲  정면에서 바라본 대포연대

올레길과 가까운 곳에 있지만 조금 구석진 곳이라 찾는 이는 거의 없다. 소나무숲에 홀로 자
리해 고독을 즐기는 연대 정상에 오르니 시원한 바닷바람이 나를 감싼다. 이곳이 문화재보호
구역이라 출입금지를 알리는 붉은 테두리의 금표가 붙어있으나 돌계단 앞에 뻥 뚫린 문이 있
어 사실상 해방된 상태이다. 딱히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면 올라가도 상관은 없다.

* 대포연대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포동 2506


▲  대포연대 동쪽 해변

▲  올레길8코스(대포 포구 서쪽)에서 만난 제주도 스타일의 무덤
제주도는 현무암으로 무덤 테두리에 낮게 경계선 돌담을 다진다.

▲  평화로운 모습의 대포포구
북쪽과 서쪽은 해안, 동쪽은 방파제로 감싸인 조그만 포구로 여기서는
요트 투어와 제트보트, 제트스키 등의 해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  대포포구에서 만난 절터 주춧돌

대포포구를 지나려니 검은 주근깨가 다소 피어난 하얀색 큰 돌이 발길을 붙잡는다. 얼핏 보면
그냥 버려진 자연석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인공(人工)이 가해진 돌임을 알 수 있는데, 옆에
자리한 안내문에 따르면 이곳에는 고려 때 조그만 절이 있었다고 하며, 저 돌은 그 절의 주춧
돌이었다고 한다.
이곳에 둥지를 틀며 바다를 바라봤을 절은 어느 세월이 급하게 잡아갔는지 이름을 남길 틈 조
차 주지 않았으며, 절터의 흔적도 마을이 닦이면서 겨우 저것만 남았다. 절의 비밀을 저 돌은
다 알고 있겠지만 워낙 충격이 커서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기 이전에 절이 있었던 것만 살짝
알려줄 따름이다.

제주도는 제주올레길 외에 '불교성지순례 절로가는 길'이란 도보길도 내놓았는데, 그중 4구간
이 이곳을 지나간다. 4구간은 '선정(禪定)의 길'이란 간판을 내걸고 있으며, 천제연폭포 동남
쪽에 있는 천제사에서 주상절리, 대포연대, 대포포구 주춧돌, 약천사를 거쳐 법화사(法華寺)
까지 이어지는 10km의 길이다. 그중 천제사~약천사 구간은 제주올레길8코스의 신세를 지며,
약천사에서 법화사까지 4.1km 구간은 독자적인 길을 이용한다.


▲  대포포구 동쪽 해안

대포포구에 이른 올레길8코스는 편한 신작로를 잠시 버리고 울퉁불퉁한 해안길을 따라 대포동
2356-1(이어도로)까지 이어진다. 이 구간의 해안 풍경도 제법 일품으로 검은 피부의 바위들이
파도와 온갖 풍상을 견디며 소소하게 눈요깃감이 되어준다.


▲  올레길8코스가 지나는 대포포구 동쪽 해안 ①

▲  올레길8코스가 지나는 대포포구 동쪽 해안 ②

대포포구 동쪽 해안을 지난 올레길8코스는 '이어도로'와 다시 짧은 만남을 갖는다. 배튼개 입
구 정류장에서 올레길은 북쪽으로 빠지나 나는 올레길을 버리고 편안한 이어도로를 택해 동쪽
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걸으니 왼쪽(북쪽)으로 커다란 기와집이 내 침침한 두 눈에 들어온다. 그
곳이 제주도 현대 사찰의 하나인 약천사로 그곳은 원래 일정에도 없었고, 20세기 현대 사찰에
는 별로 관심이 없어 쿨하게 지나치려고 했으나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지나칠 수가 없다고 잠
깐 살펴보기로 했다. 허나 그 잠깐이 무려 1시간이 될 줄은 누가 알았으랴, 고색도 익지 않은
겉모습과 달리 은근 시간 도둑이었던 것이다.


♠  동양 최대 규모의 법당을 지닌 제주도의 대표적인 현대 사찰
약천사(藥泉寺)


▲  남쪽 '이어도로'에서 바라본 약천사

서귀포 대포동에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현대 사찰인 약천사가 크게 둥지를 틀고 있다. 절 뒷쪽
에 숲이 우거진 야트막한 언덕이 있으나 그 덩치는 매우 작으며 주변이 거의 경작지와 들판이
라 거의 평지 사찰이나 다름이 없다.
절은 바다가 있는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남쪽 전방 1리 거리에 바다가 넝실거리고 있어 여기
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이 아주 진국이다. 게다가 경내 주변으로 제주도의 특산품인 감귤(柑橘
)나무가 귤을 가득 머금고 있어 따스한 남쪽 사찰의 이색 풍경을 진하게 보여준다.

약천사란 이름은 이름 그대로 약수(藥水)란 뜻이다. 머나먼 옛날부터 절 자리에는 '돽새미'란
우수한 수질의 약수터가 있었는데, 샘터 주위로 그 물을 먹고 자라는 논과 감귤나무 밭이 펼
쳐져 있었다. 돽새미는 이후 '도약샘(道藥泉)', '돽샘'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을 '절터왓'이란 부르기도 했는데, 고려 후기부터 '약천사'라 불리는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 절은 돽새미란 약수를 든든한 후광(後光)으로 삼아 꾸려진 것으로 보이며, 제주도
2대(또는 3대) 사찰의 하나였던 법화사와 가까워 그에 속한 조그만 절이 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허나 이를 입증할 역사 기록과 유물이 전혀 없어 아직은 뜬구름 같은 이야기이다.

1960년대에 '김형곤'이란 학자가 병을 치료하고자 이곳의 조그만 굴에서 100일 관음기도를 올
리다가 꿈에서 약수를 받아마시고 병이 나았다고 한다. 하여 그 인연으로 작게 약수암(藥水庵
)이란 조그만 암자를 짓고 포교에 전념하다가 입적했다.
이후 18평짜리 초가 법당만 남아있던 것을 혜인이 이곳 일대를 사들여 절을 크게 일으켜 세웠
으며, 이곳에 있던 약수터의 존재감을 살려 절 이름을 약천사라 했다.

혜인은 제주도에 국제적으로 큰 사찰을 짓고자 적당한 터를 물색하다가 현재 자리에 퐁당퐁당
빠졌다. 하여 1981년부터 열심히 벌어들인 돈으로 약수암 주변을 조금씩 매입했으며, 지역 주
민들과 신도들, 그리고 우리의 옛 해양 영토인 왜열도에 거주하는 재일교포와 왜인(倭人)들까
지 그의 뜻에 호응해 많은 돈을 보내왔다.
1988년 어느 정도의 토지를 확보하자 3층 규모의 큰 법당을 짓기 시작하여 1991년 9월 완성을
보았다. (법당 설계와 조감도는 혜인이 직접 했음) 법당이 완성된 그해 상별당이 지어졌으며,
이듬해(1992년) 자모당을 짓고, 큰법당에 단청(丹靑)을 그렸다. 이는 단일 건물로는 가장 큰
규모의 단청불사로 꼽힌다.

1993년 3월에는 인근 마을 노인들을 초청해 제1회 경로잔치를 열었으며, (경로잔치는 매년 가
지고 있음) 1993년 큰법당에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봉불식(奉佛式)을 가졌다. 이 불상을 만
들고자 백두산에서 가져온 나무로 조성을 했으며, 단일 목불좌상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 그리고 1996년에는 대웅전 낙성대법회와 나한전 상량식을 가져 비로소 지금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1997년 혜인은 약천사 회주(會主)로 물러나고 덕조가 새 주지가 되었으며, 1998년 영천 은해
사(銀海寺)의 말사로 등록하여 조계종의 일원이 되었다. 이때 절 건물과 토지는 모두 조계종
소유가 넘어갔다.

2001년 10월, 새 범종을 만들어 공개했는데, 그 소리가 매우 맑고 아름답기로 명성이 자자했
다. 2001년 10월 30일에는 오백나한 봉안식과 국제가사불사 회향대법회를 열었으며, 이때 국
제사찰음식 교류전을 가졌는데, 이 행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었다.
2002년 5월 템플스테이(Temple Stay)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특히
외국인의 참여가 많다.
2007년 1월에는 문화관광부 지정 전통사찰이 되었으며, 2009년 11월 26일에는 제주도의 지원
을 받아 태평양전쟁희생자 위령탑을 세웠다. 그리고 그해 12월에는 중증장애인요양시설인 자
광원을 설치해 복지사업에도 손을 뻗었다.

새집 냄새가 진동하는 경내의 대지 면적은 12만㎡로 법당인 3층짜리 대적광전을 비롯해 요사
채, 후원, 칠보각, 삼성각, 나한전, 굴법당, 상별당, 자모다원 등 1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
이 있으며, 요사채와 후원 앞에는 연못이 닦여져 있다.
고색이 아직 여물지 못해 문화유산은 없으나 대적광전에 깃든 목조비로자나불과 목각탱이 아
주 어린 나이임에도 서귀포시 지정 향토유형유산 5호의 작은 지위를 지니고 있다. 또한 제주
올레길8코스가 경내를 가로질러 동,서로 흐르며 '불교성지순례 절로가는 길' 4구간이 여기서
법화사로 흘러간다.

대적광전은 제주도에서 가장 큰 목조 건물로 유명한데, 절 자체가 서귀포 지역의 주요 관광지
로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무척 잦다. 또한 대적광전과 경내에 있는 많은 불/보살상과 탱
화는 전통 양식을 지닌 1990년대~2000년대 불상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어 100년 이후에는 불
교미술사에서 크게 다뤄질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존재를 미리 잘 봐두는 것도 좋을 듯 싶다.

* 약천사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포동 1165 (이어도로 293-28 ☎ 064-738-5000)
* 약천사 홈페이지와 템플스테이 정보는 아래 사진을 클릭한다.


▲  야자수가 마중을 하는 약천사 극락교 주변

▲  주황색 감귤이 주렁주렁 열린 경내 앞 숲길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  길쭉하게 자리한 요사(寮舍)채 (동쪽은 후원)

경내 중심부로 들어서러면 요사채 가운데에 뚫린 문이나 요사채 옆구리를 지나야 된다. 이곳
요사는 2층 규모로 그 꼭대기에 대적광전 앞뜨락이 있는데, 가운데 문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후원과 공양간이 있으며, 나머지 공간은 요사에 걸맞게 모두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예
불 편의를 위해 대적광전을 잇는 지하 통로를 닦아 날씨에 상관없이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요사 양쪽 모서리에는 팔작지붕의 1층 누각을 달아놓아 범종과 법고를 봉안하여 범종루(梵鍾
樓)와 법고루(法鼓樓)로 삼았다. 범종루에 담긴 범종은 2001년에 장만한 것으로 1997년에 조
성된 범종이 있었으나 종소리가 영 좋지가 못해 새로 만들었다.
법고는 지름 2.4m의 큰 북으로 하루에 3번(새벽예불, 사시예불, 저녁예불) 종과 함께 몸을 풀
며, 여기서 바라보는 바다와 주변 풍경은 약천사 제일로 일컬어진다. 또한 요사채 앞에는 연
못이 누워있고 그 복판에 다리가 놓여져 있으며, 연못 남쪽에는 키가 큰 야자수가 1렬로 늘어
서 이색 풍경을 자아낸다.

▲  요사채 앞 연못과 야자수들

▲  약천사 나한전(羅漢殿)

경내 서쪽에 자리한 나한전은 석가여래와 그의 열성제자인 오백나한(五百羅漢)의 거처이다. 2
층 규모로 2층이 나한전으로 쓰이고 있는데, 오백나한전, 영산전(靈山殿)이라 불리기도 하며,
오백나한은 2001년에 봉안된 것으로 이 땅의 5,000만 인구처럼 가지각색의 모습을 지녔다.


▲  나한전의 주인인 금동석가여래상
석가여래의 체격이 꽤 늠름하고 단단해 보인다. 그의 좌우로 조그만 500나한이
길게 늘어서 그를 호위한다.

▲  오백나한의 일원들
표정과 자세가 참 여유로워 보인다. 저들은
나처럼 생계 걱정은 없으니 그런듯..

▲  나한전 오백나한상
표정과 손에 들고 있는 물건 등 어느
하나 같은 모습이 없다.

       ◀  약천사 샘터 <수각(水閣)>
약천사의 이름 유래가 된 샘터로 이곳을 찾은
나그네들의 갈증 해소를 책임진다. 약천(藥泉)
이라고 해서 내가 요즘 환장하는 탄산약수는
아니며, 이 땅의 흔한 약수의 맛이다.
대자연의 넉넉한 마음이 담긴 듯, 물은 늘 끊
이지 않고 나와 연꽃 석조를 가득 채운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  약천사의 상징, 대적광전(大寂光殿)의 위엄

대적광전은 이곳의 법당(法堂)이자 상징물로 지하 1층, 지상 3층(실제는 5층) 규모의 팔작지
붕 집이다. 조선 초기 불교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그는 높이 29m에 키다리로 단일 법당 중에
동양에서 가장 크다. 그리고 면적은 지하 강당을 포함해 1,043평(3,380.84㎡)에 이른다.
화엄사(華嚴寺) 각황전(覺皇殿)의 웅장한 구조를 기본으로 하고, 금산사(金山寺) 미륵전(彌勒
殿)의 3층 구조를 응용해 설계한 것으로 이 땅에서 가장 큰 목불(木佛)인 비로자나불이 봉안
되어 있다. 그의 좌우에는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이 자리해 있는데, 약사여래불은 이곳에 있
던 약수를 마시고 많은 이들이 병치료를 했다는 이야기를 토대로 약사여래불이 그 역할을 계
속 해주길 바라는 뜻에서 봉안했고, 아미타불은 서귀포라는 이름이 서방정토(西方淨土)로 귀
의하려는 사람들의 소망에서 유래된 것이라 하여 그를 봉안했다. (서방정토의 주인이 아미타
불임)
건물을 받치고 있는 4개의 기둥에는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황룡과 청룡의 모습이 깃들여져
있으며, 2층에는 절을 세울 때 돈을 낸 사람들의 원불인 8만 개의 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사람을 개미로 만들 정도로 아주 크고 콧대가 높은 건물로 이를 두고 절의 지나친 외형 키우
기와 무조건적인 큰 건물, 큰 불상 일변도(一邊倒)에 혈안이 된 오늘날 불교계를 꼬집기도 한
다. 하지만 크게 만드는 것도 다 시대적 유행이라고 보면 되며, 우리 역사를 보더라도 고려시
대까지 궁궐과 관아, 왕족과 귀족들의 저택, 절, 불상 등은 정말 크게 만들었다. 그게 조선시
대로 오면서 규모가 싹 작아진 것이다.
사찰 건축물 같은 경우 그 성격에 충실하게 활용하고 공익에 위배되는 행위를 경계한다면 굳
이 쓴소리를 낼 이유는 없다고 본다. 약천사가 유명해진 가장 큰 이유도 저 커다란 대적광전
때문이다.


▲  대적광전 1층에서 만난 관세음보살상

비로자나불 불단(佛壇) 좌우에는 뒷쪽 방으로 인도하는 문이 있는데, 그 문을 들어서면 관세
음보살(觀世音菩薩) 누님의 공간이 있다.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 관세음보살상, 18,000불
등 봉안된 존재들도 참 많고 공간도 연병장처럼 넓다보니 각 공간마다 보살 아줌마들이 지키
고 있는데, 그들은 각자의 공간을 관리하고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절과 예불을 친절하게 안
내하며 커피와 티백차를 제공한다. (의자와 쉼터가 마련되어 있음)

나는 관세음보살 공간을 지키는 보살 아줌마와 불교와 제주도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홀
로 나들이나 답사를 다닐 때면 객수(客愁)도 달랠 겸, 절이나 답사지 등에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나그네들과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는 나홀로 답사의 재미 중 하나로
그 이야기를 통해 그 지역과 해당 명소에 대한 많은 정보를 챙길 수 있다. 여기서도 보살 아
줌마와 20여 분 이야기꽃을 피우며, 절과 제주도의 여러 정보를 들었다. 물론 커피와 녹차 티
백도 얻어마시고 말이다.


▲  3층에 있는 잘생긴 윤장대(輪藏臺)
대적광전 3층에는 4개의 윤장대가 있다. 윤장대란 서적을 보관하는 책장으로
이것을 돌리면 불경을 이해한 것과 같고, 소원도 이루어진다며 속세에
오랫동안 영업을 벌이면서 기존의 성격과는 많이 달라졌다.

▲  3층에서 바라본 비로자나3존불의 위엄

대적광전의 주인장인 비로자나불은 백두산에서 가져온 나무로 1993년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는
4.5m, 대좌의 높이는 4m에 이른다. 이 땅에서 가장 큰 목불로 3층에서 봐도 저 정도로 후덜덜
한 크기인데, 1층에서 보면 제대로 주눅이 들어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진다.
그들 뒤에는 거대한 후불목각탱이 든든히 자리해 있는데, 목조비로자나불과 목각탱 4점은 이
제 30년 남짓 묵은 어린 나이임에도 서귀포시 지정 향토유형유산 5호의 지위를 지니고 있다.
이들 목각탱은 문경 대승사(大乘寺)에 있는 늙은 후불탱을 참조하여 만들었다.


▲  1층에서 바라본 비로자나3존불과 후불목각탱의 위엄

▲  대적광전 3층에서 바라본 요사채와 남해바다
대적광전은 3층까지 싹 둘러볼 수 있다. 내부 계단을 통해 오르면 되며, 3층에서
비로자나불과 창 밖에 펼쳐진 경내와 바다를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니
꼭 3층까지 둘러보기 바란다.

▲  굴법당 주변 감귤나무 숲길

▲  굴법당 바깥에 자리한 하얀 피부의 마애불
마애불 좌우로 굴법당으로 인도하는 굴이 있고, 마애불 앞에는 연꽃
석조(石槽)를 지닌 샘터가 있어 시원한 약수를 제공한다.

▲  굴법당(窟法堂) 내부

경내 뒷쪽 숲속에는 컴컴한 동굴 스타일의 굴법당이 있다. 이곳은 경내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
운 곳으로 대적광전이 지어지기 이전에 조성되었는데, 정교한 최신 공법으로 지어져 제주도에
널린 용암동굴과 비슷한 모습이다. 허나 현실은 인공 땅굴이다.
불단에는 약사여래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그 좌우로 백의관세음보살(白衣觀世音菩薩)과 지장
보살이 자리하여 약사3존상을 이룬다. 그들 옆에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두광(頭光)을 지
닌 존재가 있는데, 그는 부동명왕(不動明王)으로 약천사의 모든 재앙을 물리쳐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봉안했다.

굴법당을 끝으로 1시간에 걸친 약천사 관람은 마무리가 되었다. 처음에 10여 분 정도 생각하
고 발을 들였는데, 그게 6배 가까이 늘어나 그만큼의 시간을 앗아간 것이다. 그래도 생각 밖
으로 볼거리도 많고 여수(旅愁, 객수)도 조금 풀었으니 들리길 잘했다.

약천사 주차장으로 나오니 서귀포시내버스 645번(약천사↔중앙로터리)이 바퀴를 접고 쉬고 있
었다. 이곳이 그들의 종점이라 그런 것인데, 마침 버스 1대가 기지개를 켜고 있어 타려고 하
니 운전사가 어디로 가냐고 물어본다. 하여 시내(중앙로터리 주변)로 간다고 답을 했으나 이
버스는 신시가지로 크게 돌아간다며 다른 것을 타라고 그런다. 나는 괜찮다고 그랬으나 끝까
지 이것을 타면 큰일이 날 것처럼 말을 하며 저기 입구로 나가면 520번과 521번이 많이 다니
니 그것을 탈 것을 강하게 권했다.
하여 645번을 포기하고 약천사 입구로 나와서 버스를 기다리니 서귀포시내버스 520번(제주국
제컨벤션센터↔효돈중학교)이 나타나 활짝 입을 벌린다.

그 버스를 타고 서귀포 시내로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외돌개를 오랜만에 볼까 했으나 버스는
그 부근으로는 가지를 않아서 마냥 타고 가다가 서귀포 원도심으로 진입, 천지연폭포 부근인
솔동산입구에서 내렸다.
일몰까지는 1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어 천지연폭포 남쪽에 있는 새섬을 이날의 마지막 메뉴로
보려고 햇으나 시커먼 구름이 나를 겨낭했는지 서귀포의 하늘을 가득 메우며 빗방울을 투하한
다. 빗방울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고 만약을 대비해 우산도 챙겨왔으나 시커먼 날씨에 새섬을
보려는 의지가 뚝 떨어졌다. 게다가 너무 여로를 살찌웠는지 몸도 무척 무거워 새섬은 내일로
쿨하게 미루고 오늘은 일찍 쉬기로 했다.
그래서 천지연폭포 입구에 적당한 모텔을 잡아 여장을 풀고 다음날 아침까지 푹 쉬었다. 이렇
게 하여 제주도 둘째 날은 흔쾌히 마무리가 되었다. 이후 내용은 별도의 글에서~~~


* 까페(동호회)에 올린 글은 공개일 기준으로 1주까지만 수정,보완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
  집니다. <단 블로그와 원본은 1달까지임>
* 본글의 내용과 사진을 퍼갈 때는 반드시 그 출처와 원작자 모두를 표시해주세요.
* 오타나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즉시 댓글이나 쪽지, 연락 등으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외부링크 문제로 사진이 안뜨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모니터 크기와 컴퓨터 사양에 따라 글이 조금 이상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 공개일 - 2022년 1월 22일부터
* 글을 보셨으면 그냥 가지들 마시구 공감이나 추천을 흔쾌히 눌러주시거나 댓글 몇 자라도
  달아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 본인의 다음(daum) 블로그 ☞ 보러가기
* 본인의 네이버(naver) 블로그 ☞ 보러가기
 

Copyright (C) 2022 Pak Yung(박융), All rights reserved

피서의 성지를 찾아서 ~~ 서귀포 천제연폭포, 제주올레길8코스 나들이 (천제연관개수로, 선임교, 베릿내오름)

서귀포 천제연폭포



' 서귀포 천제연폭포 겨울 나들이 '

천제연폭포 제1폭포

▲  천제연폭포 제1폭포 (천제연)

천제연폭포 제2폭포 천제연폭포 제3폭포

▲  천제연폭포 제2폭포

▲  천제연폭포 제3폭포



 

겨울 제국의 차디찬 한복판인 1월의 첫 무렵, 천하에서 가장 작은 대륙인 제주도(濟州
島)를 찾았다.

아침 일찍 김포공항에서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1시간을 내달려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정말 오랜만에 제주도에 나를 던져놓았으나 정처(定處)는 싹 정해둔 상태라
그곳만 얌전히 찾아가면 되는데, 첫날은 계획대로 외도동 월대(月臺)를 시작으로 서일
주선을 따라 모슬포(摹瑟浦)까지 여러 주옥 같은 명소와 올레길을 둘러보고 20시 넘어
서 산방산(山房山) 부근에 자리한 '산방산 탄산온천 게스트하우스(게하)'에 여장을 풀
었다.
첫날 여로(旅路)가 너무 배불렀는지 눕자마자 바로 꿈나라로 직통하여 9시간 가까이를
푹 잤다. 여관(모텔)이나 호텔, 펜션, 민박 등은 많이 이용해보았으나 게하는 첫 이용
인데, 그렇게 게하란 존재를 체험하고 아침 일찍 탄산온천에서 몸을 푹 끓이고 말리고
다진 다음 길을 나섰다. (탄산온천 숙박객에게 온천 이용권을 줌)

둘째 날은 첫날 못지 않게 아주 빵빵한 수준의 답사 코스를 준비했다. 천제연폭포를 시
작으로 서귀포(西歸浦) 시내까지 움직이는 일정으로 외도 월대부터 이곳까지 신세를 쭉
진 제주도 간선 202번을 타고 20분 정도를 달려 천제연폭포 정류장에 두 발을 내렸다.



 

♠  천제연폭포(天帝淵瀑布) 제1폭포와 제2폭포

▲  천제연폭포 정문

천제연폭포 정문에 이르니 매표소가 나그네의 호주머니를 부담스럽게 노려본다. 여기서 입장
료를 내야 폭포로 들어설 수 있기에 비싼 입장료를 치루고 유료의 공간으로 들어선다.

제주도의 남부를 이루고 있는 서귀포에는 천제연폭포와 천지연폭포(天地淵瀑布), 정방폭포(正
房瀑布) 등 3개의 유명 폭포가 있다. 이들은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기 이전부터 지역 명소로
크게 두각을 보인 존재로 그중 천지연폭포와 정방폭포는 까마득한 과거가 되버린 초등학교 시
절(1988년)에 인연을 지었고 천제연폭포는 무려 30여 년이 지난 이제서야 인연을 짓는다. (이
들 폭포 외에 소정방폭포와 엉또폭포, 원앙폭포도 있음)

정문을 지나면 천제연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오고 이내 2갈래로 갈라져 오른쪽(북쪽)은 천
제연폭포(1폭포), 왼쪽(남쪽)은 천제연2폭포, 3폭포로 이어진다. 제2폭포 남쪽에 걸린 선임교
를 건너 여미지식물원과 롯데호텔제주 일대까지 접근이 가능하며, 제3폭포를 지나 제주올레길
8코스와 베릿내오름, 대포 해변(주상절리)까지 접속이 가능하다. 그래서 천제연폭포만 보고
돌아갈 요량이 아니라면 '폭포 정문 → 제1폭포 → 제2폭포 → 선임교 주변과 천제루 → 제3
폭포 → 폭포 후문 → 제주올레길8코스(베릿내오름, 대포해변)' 순으로 이동하길 권한다. 그
러면 영양만점의 여로가 될 것이다.

* 천제연폭포 소재지 :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동 2232 (천제연로 132, ☎ 064-760-6331)


▲  천제연폭포 제1폭포

제주도 최대의 관광단지인 중문관광단지 한복판에 천제연폭포가 자리하고 있다. 천지연폭포와
정방폭포는 1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곳은 무려 3개의 폭포를 지녀 조금은 단조로운
저들과 크게 차별화된 모습을 보인다.
천제연폭포 3형제는 편의상 제1폭포, 제2폭포, 제3폭포라 불리나 제1폭포가 원래 천제연폭포
이다. 폭포의 높이는 22m에 이르며, 그 앞에 펼쳐진 못을 천제연(天帝淵, 웃소)이라 부르는데
, 못의 밑바닥이 흔쾌히 보일 정도로 수질이 좋으나 겉보기와 달리 21m의 깊이를 지녀 만만히
보면 안된다.

호랑이가 담배를 알기 훨씬 이전에 옥황상제 직속의 선녀 7명이 밤이면 이곳에 내려와 목욕을
했다고 한다. 그 선녀의 주인이 옥황상제라 그 명칭을 따서 '천제연'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
는데, 이는 상상 속의 존재인 선녀와 옥황상제가 군침을 흘릴 정도로 빼어난 절경을 지녔다는
뜻이다. (옛 사람들은 경승지에 학이나 용, 신선, 선녀 등을 엮어놓는 것을 좋아했음)
조선시대에는 천제연 동쪽에 중문원(中文院)을 두었는데, 제주목사(濟州牧使, 현 제주시장)가
이곳에 쉬면서 폭포의 경치를 즐겼다. 이때는 폭포 양쪽 언덕에 표적을 세우고 군사들에게 활
쏘기를 시켰으며, 양쪽 언덕 사이로 긴 줄을 걸어놓고 줄에 매달려 건너가 화살을 수거하도록
했다. 바로 중문원에서 서귀포 시내의 서부를 이루는 중문(中文)이란 지명이 생겨났으며, 천
제연폭포를 빚은 계곡을 중문천이라 부른다.

제1폭포는 대자연이 절묘하게 빚은 주상절리(柱狀節理)식 벼랑으로 실로 감탄을 머금게 한다.
그런데 그 폭포 위(북쪽)에 천제교란 다리가 걸려있어 적지 않은 옥의 티를 내고 있다. 그 다
리는 서귀포시내와 모슬포를 잇는 다리로 차량의 왕래가 빈번하여 이곳의 적막을 수시로 아작
을 낸다. 도로와 다리를 놓는 것은 좋지만 꼭 폭포 윗도리에 저렇게 볼썽사납게 개설해야 했
는지 의문이 든다. (다리가 보이지 않게 좀 북쪽에 지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폭포라고는 하지만 정작 위에서 떨어지는 물은 없고 음악 무대의 뒷배경처럼 주상절리 벼랑만
덩그러니 있다. 이는 겨울 가뭄으로 중문천 상류에 물이 거의 없어서 그렇다. 그런데 이상한
건 폭포 앞 못(천제연)에는 물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보통 폭포가 쏟아낼 물이 없으면 그 밑
의 못도 갈증을 겪기 마련인데 말이다. 허나 이곳은 절벽과 점토층 사이에서 물이 꾸준히 나
와 천제연을 채우고 있고 폭포 동쪽 동굴에서도 물이 나와 아무리 상류에 물이 증발해도 전혀
물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곳 물은 제2폭포, 제3폭포를 빚으며 유유히 바다로 흘러간다.

제1폭포의 폭포다운 모습을 보고자 한다면 비가 한바탕 온 직후에 가기 바란다. 그 외에는 병
풍처럼 멀뚱히 서 있어 이곳이 폭포인지 단순히 못인지 햇갈리게 만든다.


▲  천제연폭포 제1폭포와 옥처럼 맑은 천제연(웃소)

폭포 동쪽 벼랑에는 조그만 바위동굴이 있다. 그 천장에서는 얼음보다 차가운 물이 흘러내리
고 있는데, 예로부터 물맞이 명소로 백중(百中)과 처서에 이 물을 맞으면 만병통치가 된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허나 지금은 폭포 보호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접근을 통제
하고 있어 물맞이를 할 수 없다.


▲  물맞이 명소로 유명했으나 지금은 그림의 떡이 되버린
천제연 동쪽 바위동굴

▲  천제연 제1폭포 앞 계곡(중문천)

천제연폭포와 계곡 좌우에는 푸른 빛의 숲이 짙게 우거져 있다. 제주해협 건너 북쪽은 겨울
제국의 핍박으로 남쪽 바닷가를 제외하고는 자연산 푸른 잎사귀가 거의 사라졌으나 제주도는
겨울의 힘이 미약해 푸른 잎의 나무와 숲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그만큼 제주도는 따뜻한
남쪽 땅이다.

이곳을 장식하고 있는 숲은 보통 숲이 아닌 따뜻한 기후대에서 뿌리를 내리는 난대성식물(暖
帶性植物)의 보금자리로 희귀식물인 솔잎란과 백량금, 죽절초, 담팔수나무, 구실잣밤나무, 조
록나무, 참식나무, 가시나무, 감탕나무, 바람들칡, 마삭줄, 남오미자, 왕모람 등이 식구를 이
루고 있다. 희귀식물과 난대성식물이 어우러진 이 땅의 대표적인 난대림지대로 '천제연 난대
림(暖帶林)
'이란 이름으로 국가 천연기념물 378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제1폭포 서쪽 벼랑에는 높이 13m, 둘레 2.4m 규모의 담팔수(膽八樹)나무가 있는데, 그는
별도로 '천제연 담팔수나무'란 이름으로 제주도 지방기념물 14호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담팔
수나무는 아주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나무로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에만 있다. 천제연계곡에는
20여 그루의 어린 담팔수가 자라고 있는데, 주변에 여러 나무와 뒤섞인 상태라 일반 사람들은
구별하기가 어렵다.


▲  세월을 간지나게 탄 제1폭포와 제2폭포 사이 계곡(중문천)

▲  제1폭포에서 제2폭포로 인도하는 산책로
천제연계곡(중문천) 벼랑에 닦여진 길이라 벼랑 구간이 많다.

▲  천제연 관개수로(灌漑水路) - 등록문화재 156호

천제연폭포 구역에는 대자연이 빚은 중문천(천제연계곡) 외에 사람들이 만든 조그만 관개수로
도 존재하여 2개의 물줄기를 보여주고 있다.
천제연폭포의 작은 운하인 관개수로는 마르지 않는 샘인 천제연 물을 농업용수로 활용하고자
닦은 것으로 대정군수를 지낸 채구석(蔡龜錫, 1850~1920)이 이재하(李載廈), 이태옥(李太玉)
등과 함께 중문과 창천, 감산, 대포리 지역 사람들을 동원하여 2회에 걸쳐 만들었다.

채구석은 제주도에서 오랫동안 관리를 지낸 제주 토박이로 제주판관(判官)과 대정군수를 지냈
다. 1894년 제주판관 시절에 제주도에 흉년이 들자 자신의 봉급을 털어 백성을 구제했고, 대
정군수 시절인 1895년에는 주민들이 갑오개혁(1894년)으로 생겨난 신제도에 반발해 경무청을
파괴하자 이를 진압했다. 또한 1901년 이재수(李在守)의 난을 진압한 공로가 있으나 군수에서
파직되어 3년간 금고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중문에 거주하면서 바다로 매일 버려지는 천제연 물을 보며 '저 물을 이용해 논 농사를
할 수 없을까?'
궁리하다가 3년 동안 폭포 주변 지세를 직접 조사했고 천제연 물을 활용하여
논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하여 1907년 천제연 토지신(土地神)에게 토신제(土神祭)를 지내고
공사에 들어갔다.
 
천제연계곡에는 암반과 벼랑이 많아서 공사가 꽤 힘들었는데, 소주 원액을 쏟아붓고 장작불로
바위를 폭파하기도 했으며, 제1폭포 주변 창구목과 화폭목은 가장 난공사 구간으로 화약을 구
해 화포를 만들어 바위를 건드리거나 장작불로 바위를 부셨다. 그렇게 1년의 공사 끝에 1908
년 수로가 완성되었고, 성천봉(星川峯, 베릿내오름) 밑에 5만여 평(약 231,000㎡)의 논을 닦
으면서 논농사의 불모지였던 제주도에 한줄기 빛을 선사했다.
그리고 1917년 2월, 2차 공사에 들어갔는데, 이때도 채구석과 이재하, 이태옥이 돈을 내어 추
진했다. 하지만 1920년에 채구석이 사망하는 등, 여러 진통이 있었으나 1923년 공사가 마무리
되어 2만여 평의 논밭이 추가로 개척되었다. 하여 중문마을은 동쪽에 자리한 강정마을과 함께
제주도의 대표 쌀 생산지로 번영을 누렸다. (공사에 참여한 일꾼의 일당은 3돈이었다고 함)

1차 공사 때는 천제연폭포(웃소)에서 베릿내오름골 앞을 돌아 국제컨벤션 앞 밀레니엄관까지
수로를 닦았고, 2차 공사는 천제연 제2폭포(알소)에서 국제컨벤션까지 닦았는데, 이들 수로는
채구석, 이재하, 이태옥이 중심이 된 '성천답회'에서 관리하다가 1957년 국유화되어 서귀포시
에서 관리하고 있다.
천제연의 물을 먹고 자란 성천봉 밑 옥답은 중문관광단지가 닦이면서 싹 사라지고 말았다. 제
주도 논농사의 성지(聖地)와 같은 곳인데 일부를 기념으로 남겨두어 약간의 논농사라도 했으
면 좋았을 것을 개발 지상주의는 그마저 허용하지 않았다.

수로의 길이는 1.9km로 최근 정비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콘크리트 떡칠이 되었으나 논농사가
힘들었던 제주도의 자연환경을 극복한 현장으로 그 시절 농업환경을 전해주는 존재라 등록문
화재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허나 이제는 물을 대줄 논도 모두 사라져 무늬만 남은 상태이며,
일부 수로는 아예 물이 말라버렸다.
그래도 산책로 옆에 이렇게 100년 묵은 수로가 물을 머금고 흘러가 조촐하게 볼거리를 선사하
니 천제연폭포에서 생각치도 못한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다.


▲  오늘도 묵묵히 흘러가는 천제연 관개수로
한때는 농업용수 수송으로 바쁘게 살았으나 이제는 천제연폭포를 수식하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  제2폭포로 인도하는 벼랑 산책로

산책로 오른쪽(서쪽)은 깎아지른 듯한 천제연계곡 벼랑, 왼쪽(동쪽) 역시 주름선이 진한 벼랑
이다. 저 단단한 벼랑과 암벽을 뚫고 힘들게 관개수로를 닦았으니 제주도 농업 발전과 식량확
보에 대한 강인한 집념이 없었으면 불가능하다.


▲  산책로 옆 바위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관개수로
바위들이 목이 많이 말랐는지 이곳 수로는 물이 말라버렸다.

▲  위에서 바라본 천제연폭포 제2폭포

▲  천제연폭포 제2폭포

제2폭포는 제1폭포와 비슷한 높이로 그 앞에 '알소'라 불리는 못(소)이 형성되어 있다. 제1폭
포와 달리 물이 굉음을 내며 떨어져 귀신도 놀라 도망칠 정도인데, 만약 비가 와서 수량이 많
았다면 지금보다 소리가 더 요란했을 것이다.
알소 남쪽에 닦여진 관람공간까지 접근이 가능하나 그 이상의 접근은 통제하고 있다. 제1폭포
는 그래도 못과 계곡의 물을 만질 수 있으나 아랫 폭포로 내려갈수록 자유의 공간이 절반 이
상씩 줄어든다. (제3폭포는 아예 접근도 불가능하여 위에서 바라봐야됨)


▲  확대해서 바라본 천제연폭포 제2폭포의 위엄
폭포 좌우에 우거진 나무들은 '천제연 난대림'의 일원이다.

▲  제3폭포로 흘러가는 제2폭포 앞 계곡(중문천)



 

♠  선임교(仙臨橋) 주변

▲  선임교 (동쪽에서 바라본 모습)

선임교는 천제연협곡(중문천)에 높이 걸린 다리로 제2폭포와 제3폭포 사이에 무지개처럼 걸려
있다. 7명의 선녀가 천제연폭포에서 노닐었다는 전설에 맞추어 다리 밑도리에 하얀 피부의 칠
선녀상을 달았는데, 밑도리 옆구리에 각각 7명씩, 총 14명의 선녀상이 새겨져 있다.
선녀의 길이는 1명당 20m로 각자의 악기를 든 선녀 누님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
을 웅장하게 자아냈다. 하여 칠선녀다리, 칠선녀교, 구름다리 등의 별칭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오작교(烏鵲橋) 스타일의 아치형 다리로 가운데 부분이 하늘로 향해 볼록 솟
아있으며, 다리 길이는 128m, 폭 4m로 230톤의 무게를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다. 또한 야경까
지 고려하여 100개의 난간 사이로 34개의 석등을 설치해 햇님의 퇴근 이후, 일제히 빛을 쏟아
내게 했다. 하여 이곳 야경은 천제연폭포에서 가장 일품으로 칭송이 자자하다.

천제교와 천제2교 사이, 천제연협곡에 걸린 유일한 다리로 이렇게 구름다리처럼 높이 닦은 것
은 협곡이 깊고, 천제연 난대림이 우거져 있어 그들의 피해가 덜 가게끔 하고자 함이다.
오로지 뚜벅이를 위한 다리로 그것을 건너면 천제루 구역이며, 중문관광단지의 일원인 여미지
식물원과 이어진다. 허나 천제루 구역만 천제연폭포 관람료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 이상을 가
려면 폭포 서문을 나와서 접근해야 된다.

▲  잘생긴 석등이 마중하는 선임교 동쪽

▲  볼록 솟은 선임교 한복판


▲  선임교에서 바라본 바다 방향 천제연협곡(중문천)
계곡은 천연기념물 난대림에 둘러싸여 있어 금지된 공간이 되었다.

▲  선임교에서 바라본 제1폭포 방향과 한라산(漢拏山)
멀리 구름에 감싸인 높은 뫼가 제주도의 심장이자 성역인 한라산이다.
제주도는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모두 한라산이 바라보인다.

▲  선임교에서 바라본 제2폭포와 무성한 천제연 난대림

▲  나그네의 동전을 노리는 오복천(五福泉)

선임교는 그 길이가 128m라고 하지만 다리 높이가 상당해 은근히 염통을 쫄깃하게 만든다. 하
여 체감거리는 2배 이상으로 다가온다.
다리를 건너면 천제루 구역으로 오복천이란 분수대가 마중을 한다. 여기서 오복(五福)이란 장
수를 뜻하는 거북이와 부자를 뜻하는 돼지, 귀함을 뜻하는 용, 사랑을 뜻하는 원앙, 자식복을
뜻하는 잉어를 뜻한다. 그 동물상 앞에는 복주머니로 포장된 돌통이 각각 설치되어 있어 거기
에 동전이 들어가면 해당 동물상의 복을 받는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그리고 그렇게 긁어
모은 동전은 나중에 불우 이웃을 돕는데 쓴다고 안내문에 당당히 적혀있다. (정말로 그럴까?)


▲  천제연폭포의 칠선녀 전설과 폭포 안내문을 머금은 돌병풍식 석물

▲  꽃길만 걷자~~ 동백이 화사하게 꽃길을 이룬 천제루 주변 산책로
동백(동백꽃)은 친 겨울파의 꽃으로 초봄까지 제주도와 남해안 지역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  천제루 주변 동백 산책로 ①
동백이 붉은 입술을 도도하게 드러내며 나그네의 정처 없는 마음에
마구 돌을 던진다.

▲  천제루 주변 동백 산책로 ②

▲  천제루 주변 동백 산책로 ③

▲  밑에서 바라본 천제루(天帝樓)
선임교 서쪽 높은 곳에 자리한 천제루는 천제연협곡 전망대용으로 세워진 2층
누각이다. 1층은 매점으로, 2층은 전망대로 쓰이며, 2층에 오르면
천제연협곡과 제2폭포가 훤히 시야에 들어온다.

▲  천제루에서 바라본 천제연폭포 제2폭포와 천제연 난대림

▲  선임교 동쪽에서 바라본 천제연협곡(중문천)과 천제연 난대림

▲  선임교에서 천제연폭포 제3폭포로 내려가는 길

▲  제3폭포로 인도하는 나무데크길

▲  제3폭포 입구 주변 천제연 관개수로
이곳 관개수로는 제2폭포에서 성천봉 옥답을 잇는 수로로 1917년에 닦기 시작하여
1923년에 완성을 보았다.

▲  제3폭포 입구 갈림길



 

♠  천제연폭포 제3폭포와 대포해변

▲  천제연폭포의 막내, 제3폭포

제3폭포는 높이가 10여m로 제2폭포보다 넓은 못(소)을 가지고 있다. 폭포수는 실타래를 굵게
풀어놓은 듯 제2폭포보다 장쾌하게 쏟아지고 있으며 못은 청정하고 요염한 색깔을 보이고 있
다. 아무리 따뜻한 남쪽이라고 해도 엄연한 겨울의 한복판이라 폭포의 유혹이 먹히지 않아서
그렇지 만약 여름의 한복판에 왔더라면 그 유혹에 일부러 넘어가 접근 금지를 무시하고 풍덩
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접근이 어느 정도 허용된 제1폭포, 제2폭포와 달리 폭포 주변 접근이 통제되어 있어 폭
포가 보이는 전망대에서 이렇게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된다.

제1폭포와 제2폭포, 선임교 주변까지는 관광객들이 많았으나 선임교 남쪽부터는 사람 구경하
기가 힘들다. 다소 구석진 제3폭포 주변까지는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기 때문이다. 허나 제3
폭포도 엄연한 천제연 식구이고 제2폭포 못지 않은 외모를 지녔으니 꼭 살펴봐야 나중에 저승
이나 하늘나라에 가서 옥황상제에게 꾸중을 듣지 않을 것이다. (보통은 선임교까지만 둘러봐
도 충분하다 여기고 천제루 구역 쪽으로 빠지거나 천제연폭포 정문으로 되돌아감)


▲  시원하게 쏟아내는 제3폭포의 위엄
폭포 앞 못에 모인 중문천(천제연계곡) 물은 여기서 마지막 휴식을 취하고
지척에 보이는 바다로 길을 재촉한다.

▲  제3폭포 입구에 세워진 성천답관개유적비(星川畓灌漑遺跡碑)

천제연폭포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천제연 관개수로를 만들어 제주도 농업사의 커다란 빛
을 주었던 채구석이다. 제3폭포 입구에 채구석을 기리고자 2003년 2월에 세운 '성천답 관개유
적비'가 자리해 있는데, 비좌(碑座)와 검은 피부의 비신(碑身), 이무기가 새겨진 이수(螭首)
를 고루 갖추어 맵시도 좋다.
천제연폭포 정문 주변에도 1957년 8월 대정 지역 유림들이 세운 '통훈대부 채구석기적비(通訓
大夫 蔡龜錫紀蹟碑)'가 있는데 그 기적비는 존재를 몰라서 지나치고 말았다.


▲  제3폭포에서 폭포 후문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와 관개수로(왼쪽)

▲  제주올레길8코스와 만나는 천제연폭포 남쪽 후문

제3폭포 입구에서 나무데크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뻥뚫린 남쪽 후문이 나온다. 철저하게 금
줄을 치며 입장료를 챙기는 정문, 서문과 달리 후문은 지키는 사람도 없고, 제재하는 시설도
없어 그냥 대놓고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 (내가 갔을 때는 그랬음)
이곳은 밖으로 나가는 문이지 폭포 구역으로 들어가는 문은 아니며 일루 들어가지 말고 정문
을 이용할 것을 권하는 경고판이 인상을 쓰며 지키고는 있으나 정작 지키는 사람이 없으니 그
경고가 먹혀들어갈 턱이 없다.
천제연폭포의 개구멍 같은 곳으로 이곳의 존재를 알았다면 조금 돌아가더라도 이곳을 이용하
는 것인데, 역시 아는 것이 힘이다. 서귀포시는 이렇게 후문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매표소를
두어 후문 수요라도 좀 챙기기 바란다.


▲  베릿내오름 서쪽 자락 제주올레길8코스

남쪽 후문에서 제주올레길 8코스와 만난다. 8코스는 월평에서 대평포구까지 이어지는 19.6km
의 긴 올레길로 천제2교에서 베릿내오름(성천봉) 서쪽 자락을 지나 폭포 후문을 거쳐 베릿내
오름 정상을 찍고 다시 천제2교로 내려간다. 하지만 나는 오름 정상은 가지 않고 서쪽 자락길
을 통해 천제2교로 내려가 한참이나 떨어진 약천사까지 올레길의 신세를 졌다.
제주올레길 장거리 탐방은 전날 절부암에서 수월봉까지 제주올레길12코스에 이어 2번째이다.


▲  베릿내오름 서쪽 자락길에서 바라본 천제연계곡(중문천)
계곡 너머 언덕에는 중문관광단지의 일원인 별내린전망대와 씨사이드아덴리조트가
둥지를 틀고 있다.

▲  중문천을 바다로 흘려보내는 천제2교와 너른 남해바다
(베릿내오름 서쪽 자락길에서 바라본 모습)

▲  베릿내오름 서쪽 자락길 (제주올레길8코스)

▲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제주올레길8코스 (제주부영호텔앤리조트 옆 구간)

베릿내오름을 완전히 내려가면 천제2교가 나온다. 여기서 올레길8코스는 '중문관광로'를 따라
동쪽으로 조금 가다가 제주부영호텔앤리조트 직전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트는데, 그 길을 3분
정도 가면 남해바다와 스킨쉽을 즐기는 대포 해변이 나온다.
대포주상절리까지 제주부영호텔과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남쪽을 지나가는데, 이 일대는 예전 천
제연 물을 먹고 자랐던 제주도 제일의 옥토, 성천답이 있던 터이다. 열심히 농사를 지어 식량
을 조달하던 농업 현장이 이제는 휴식과 여흥의 장소로 싹 바뀐 것인데, 이곳 옥토에 대한 미
련이 없어질 정도로 세상이 조금은 살만해진 모양이다. (밥은 굶지 않게 되었으나 삶이 팍팍
한 것은 여전함)


▲  제주부영호텔앤리조트 옆 제주올레길8코스 (북쪽 방향)

▲  평화로운 바닷가 풍경, 제주올레길8코스 대포 해변 ①
저 멀리 봉긋 손짓을 하는 산이 산방산이다. 내가 저 부근에서 여기까지
이동을 한 것이다. (천제연폭포 정류장부터 여기까지 도보 이동)

▲  평화로운 바닷가 풍경, 제주올레길8코스 대포 해변 ②

▲  제주올레길8코스 대포해변 숲길 (대포주상절리 서쪽)
여기서 동쪽으로 조금 가면 대포 해변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대포주상절리가 나온다.
본글은 분량상 여기서 끝. 이후 내용은 별도의 글에서 꺼내도록 하겠다.


* 까페(동호회)에 올린 글은 공개일 기준으로 1주까지만 수정,보완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
  집니다. <단 블로그와 원본은 1달까지임>
* 본글의 내용과 사진을 퍼갈 때는 반드시 그 출처와 원작자 모두를 표시해주세요.
* 오타나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즉시 댓글이나 쪽지, 연락 등으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외부링크 문제로 사진이 안뜨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모니터 크기와 컴퓨터 사양에 따라 글이 조금 이상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 공개일 - 2021년 7월 13일부터
* 글을 보셨으면 그냥 가지들 마시구 공감이나 추천을 흔쾌히 눌러주시거나 댓글 몇 자라도
  달아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Copyright (C) 2021 Pak Yung(박융), All rights reserved

제주도의 아름다운 서쪽 끝 ~ 제주올레길12코스 당산봉, 고산리유적, 엉알해안, 수월봉 나들이 (차귀도, 산방산탄산온천)

 


' 제주도 겨울 나들이 '
(제주올레길12코스, 고산리유적, 수월봉)

당산봉에서 바라본 와도와 차귀도

▲  당산봉에서 바라본 와도(앞쪽)와 차귀도(뒷쪽)

제주 고산리유적 엉알해안

▲  제주 고산리유적

▲  엉알해안


 

겨울 제국의 추위 갑질이 한참이던 1월의 첫 무렵, 천하에서 가장 작은 대륙인 제주도(
濟州島)를 찾았다.

햇님보다 훨씬 일찍 김포국제공항으로 달려가 제주도로 가는 6시대 비행기에 나를 담고
1시간 정도를 움직여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하늘 비행시간 50분, 활주로 방황시간
10여 분)
제주도에서 정처(定處)는 이미 정해둔 상태라 그곳만 얌전히 찾아가면 되는데 제주도에
발을 딛자마자 서쪽으로 길을 잡아 여러 명소를 둘러보고 15시 경, 한림읍 용수리에 이
르렀다.
용수리에서 절부암(節婦岩)을 먼저 둘러보고 그날의 주메뉴인 제주올레길12코스(용수리
~무릉리, 17.5km)에 발을 들인다. 12코스의 ⅓ 정도 되는 해안길을 따라 수월봉까지 이
동하기로 했으나 햇님의 칼퇴근 본능으로 일몰 전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물
론 가기야 하겠지만 해가 떨어지면 사진 출사도 거의 불가능해지고 속세와도 떨어진 외
진 곳이라 무서움까지 발생할 수 있다. (외딴 산길이나 제주올레길은 가급적 일몰 전에
마치는 것이 좋음) 하여 일단 수월봉 북쪽인 고산리유적을 1차 목적지로 삼고 12코스에
나를 던져놓았다.
12코스를 따라 용수마을 방사탑 2호와 생이기정 등의 조촐한 명소를 둘러보고 올레길을
1굽이 지날 때마다 포즈를 조금씩 달리하는 차귀도와 와도(누운섬)를 옆구리에 끼며 가
다보니 어느덧 당산봉에 이르렀다. 본글은 바로 당산봉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산봉 이전 절부암, 생이기정, 제주올레길12코스 부분은 ☞ 이곳을 클릭한다)


 

♠  제주올레길12코스 (당산봉, 고산리 유적)

▲  바로 밑으로 바라보이는 와도와 차귀도(遮歸島)

차귀도와 고산리, 남해바다를 굽어보고 있는 당산봉(堂山峰)은 해발 148m의 낮은 뫼이다. 지
금이야 이 땅에 흔한 뒷동산으로 조용히 누워있어 실감은 나지 않겠지만 수억 년 전, 화산이
내뿜은 마그마나 용암이 바닷물과 만나 격하게 이루어진 수성화산체이다.
용암이 물을 만나면 용암은 급히 식고 물은 펄펄 끓는다. 이런 냉각과 가열반응은 격렬히 일
어나 수증기를 포함한 큰 폭발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를 수성화산활동이라 한다. 작은 알갱이
와 수증기로 이루어진 분출은 제법 패기가 있어 이들 화산쇄설물(火山碎屑物)은 멀리까지 날
라가 퇴적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형성된 오름을 응회구(凝灰邱)나 응회환이라고 한다. 응회
구는 성산일출봉(城山日出峯)이 대표적으로 높이가 꽤 되며 응회환은 그 다음 수준으로 수월
봉, 당산봉, 송악산이 이에 해당된다.

당산봉은 산방산, 용머리와 더불어 제주도에서 제일 오래된 화산체이다. 예전 이름은 당오름
으로 산기슭에 뱀을 신으로 봉안한 차귀당이 있었는데 그 신을 '사귀(蛇鬼, 뱀신)'라고 했다.
바로 그 당집 때문에 당오름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이후 그 사귀가 와전되어 '차귀'가
되었고, 봉우리 이름도 잠시 '차귀오름'으로 갈렸다고 전하며, 현재 이름인 당산봉은 당오름
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
봉우리 정상에 넓적한 바위가 있는데 마치 닭벼슬처럼 보여 계관산(鷄冠山)이라 했다는 이야
기도 덧붙여 전해오며, 당산봉 서쪽 꼭대기에는 봉수대가 있었는데 북쪽으로 판포봉수, 남동
쪽으로 모슬봉수와 연락을 했다.

올레길12코스는 당산봉 서쪽 기슭을 지나갈 뿐, 꼭대기는 거치지 않는다. 대신 꼭대기와 당산
봉 주위를 도는 둘레길이 별도로 있어 그 길을 이용하면 완벽한 당산봉 투어가 가능하다. 시
간이 되면 당산봉도 보너스로 거닐고 싶었으나 일몰 시간을 구실로 바로 고산리 유적으로 넘
어갔다. 그때 나에게는 그저 수월봉만 보일 뿐, 당산봉 자체는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 당산봉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고산리


▲  오르락 내리락이 반복되는 제주올레길12코스 당산봉 구간

▲  드디어 시야에 들어온 수월봉과 고산리유적
바다를 향해 길쭉하게 고개를 내민 해안 언덕이 바로 수월봉이다. 사진 가운데
벌판은 고산리 유적으로 일몰은 코앞인데 아직도 길이 저만치나 남아있어
발걸음의 고삐를 더욱 조이게 한다.


당산봉을 내려가면 고산리 벌판과 함께 2차선 노을해안로가 나타난다. 제주올레길12코스는 그
길의 신세를 지며 차귀도포구(고산포구)로 이어지는데 그 포구와 엉알해안을 거쳐 수월봉으로
달려간다. 12코스를 정석대로 거쳐야 엉알해안까지 둘러볼 수 있으나 시간도 그렇고 수월봉에
너무 정신이 팔려 올레길12코스를 잠시 내버리고 고산리유적으로 바로 질러가는 편법(?)을 썼
다. 난 그때까지 수월봉 밑도리가 엉알해안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수월봉 북쪽 해안이 엉알
해안)


▲  동쪽에서 본 고산리 유적 (억새 너머 벌판이 고산리 유적임)

▲  제주 고산리(高山里) 유적 - 사적 412호

수월봉과 당산봉 사이 벌판에 고산리 유적이 넓게 누워있다. 유적의 면적은 약 98,465㎡로 풀
이 뒤덮힌 들판 수준이라 이곳이 무슨 유적인가 물음표를 던지겠지만 유적은 보존을 위해 그
밑에 고이 묻어두었으며, 유적 변두리에는 개인 경작지가 존재하고 있다.

이곳은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 유적으로 제주도의 대표적인 선사시대 유적지이다. 1987년 5
월, 고산리 주민들이 흙을 채취하고자 땅을 파다가 석창과 긁개를 발견했다. 그 소식을 들은
제주대학교는 그것이 발견된 곳을 답사하여 찌르개, 긁개, 돌도끼 1점을 발견하면서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고산리유적이 슬슬 깨어나게 된다.
1988년 1월, 영남대학교 대학원생인 강창화가 수월봉에서 북쪽으로 150m 떨어진 곳에서 융기
문토기 1점을 수습했다. 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 이전에 쓰이던 것으로 그때는 기원전 4,000
년 이전 것으로 파악했으나 지금은 기원전 6,000년으로 보고 있다.

1991년과 1992년 겨울, 제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정밀 지표조사를 벌였다. 그때 자구내포구에서
하천변을 따라 수월봉에 이르는 유물산포지를 확인했고 지번별로 약 6,000여 점의 유물을 건
졌다.
1994년 신창~무릉간 해안도로가 신설되면서 고산리 유적을 관통하게 되자 그해 6월부터 8월까
지 발굴조사를 벌였다. 발굴 범위는 수월봉에서 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서 포구에 이르
는 약 200m, 폭 12m 구간으로 출토 유물은 석기와 토기 등 3,000여 점이며, 고산리식 토기라
불리는 섬유질토기의 파편이 확인되는 등 성과가 대단했다. 하여 국제학술세미나를 통해 구석
기시대 후기에서 신석기시대 초기로 넘어가는 과도기 유적으로 평가를 받게 된다.
허나 유물의 절대연대자료가 부족하고 유적의 층위 분석도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경작으로 유
적과 그곳에 깃든 유물이 계속 파괴되고 고통을 받자 1997년 다시 발굴조사를 하였다. 이때는
17,000여 점의 석기와 1,900여 점의 토기를 끄집어내는 성과를 거둔다.

1998년 11월부터 1999년 2월까지 다시 조사를 벌여 170여 점의 타제석기와 토기를 발굴했으며
, 사적으로 지정될 구역 외 지역에 대한 조사를 벌여 유적의 범위를 파악했다. 그리고 이듬해
국가 사적의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

2012년 1구역 시굴조사와 발굴조사를 벌여 원형움집터 26동, 수혈유구 295기, 야외 불피던 곳
10기, 구상유구 2기, 토기류 87점, 석기류 278점을 발견했는데, 1만년 이전 것으로 파악이 되
어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특히 석촉과 한쪽을 뚫은
옥귀고리 1점은 그 재료가 제주도에는 없는 것들이라 궁금증을 증폭시켰는데, 2013년 1구역을
다시 조사하여(2차 발굴조사) 주거지 7동, 수혈유구 227기, 야외 불피던 곳 3기, 구상유구 1
기, 유물 215점을 건졌고, 석촉 등의 석기가 남해안 일대 암석으로 확인되면서 전남, 경남 지
역 남해안과 교류가 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4년 1구역 3차 발굴조사로 주거지 4동, 수혈유구 78기, 소토(燒土)유구 3기, 구상유구 2기
가 추가로 나왔으며, 2구역 조사에서 문화층의 잔존 범위와 지상식 주거지를 확인했다. 특히
남부지방 신석기시대 전기를 대표하는 토기인 영선동식 토기가 나왔으며, 고산리유적 거주기
간이 2,000년 이상으로 늘어났다.
2015년 1구역 4차 발굴조사로 주거지 1동, 수혈유구 19기, 소토유구 1기를 건졌으며, 화덕시
설로 추정되는 돌무지 시설을 중심으로 거의 원형으로 기둥 구멍들이 배치되어 있고 그 안에
석기 제작과 관련된 유물이 나왔다. 그리고 2구역 2차 발굴조사에서도 여러 석기들이 나왔다.
이후로도 계속 조사를 벌여 지금까지 고산리유적이 쏟아낸 유물은 성형 석기 5,000여 점, 박
편 94,000여 점 등 석기 99,000여 점과 토기조각 1,000여 점 등 도합 10만여 점에 이른다.
또한 구석기 후기와 신석기 초기를 연결하는 유적이 없어 무척 애를 태웠는데 그 고통을 바로
고산리가 속시워하게 풀어준 것이다. 기원전 12,000~10,000년경 눌러떼기 수법으로 지어진 석
기와 섬유질 토기가 다량으로 나와 이 땅에서 구석기시대가 신석기시대로 자연스럽게 넘어갔
음이 드러난 것이다.
하여 시베리아와 연해주, 만주 등 우리의 옛 땅과 우리나라 등 동북아시아 신석기 초기 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며, 우리나라 신석기 초기 문화의 형성 과정을 밝히는데 중요한
유적으로 애지중지되고 있다.

이곳이 신석기를 비롯한 옛 사람들의 터전이 된 것은 바로 옆 수월봉에서 나온 화산재가 이곳
에 덮히면서 기름지고 평평한 땅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땅에 경작이 이루어지고 있는
데, 여기서 터전을 일구던 신석기 사람들은 구석기 후기 시절에 수렵과 채집 집단의 석기 제
작 전통을 이어나갔고, 초보적인 형태의 토기를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나온
석기는 석재를 기초 원석으로 직접 타격하여 박편(薄片)을 만든 다음, 간접 타격 또는 눌러떼
기로 2차 가공해 제작했다.
토기는 원시형 적갈색 섬유질 토기 조각과 덧무늬토기 조각 등이 나왔고, 특히 원시형 적갈색
섬유질 토기는 제주도 스타일의 유일한 토기 형식으로 '고산리식 토기'라 불린다.
덧무늬토기는 양양 오산리 신석기시대 유적과 부산 동삼동 패총(貝塚) 등에서 나온 기하학적
태선 덧무늬토기 형식으로 옆면이 굴곡이 있는 선으로 표현되었다.

* 고산리 유적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3628,3650-1 등 (고산리유적안
  내센터 ☎ 064-772-0041)
* 고산리 유적 홈페이지는 아래 사진을 흔쾌히 클릭한다.


▲  너른 들판 같은 고산리 유적

▲  고산리 유적에서 바라본 당산봉
내가 용수리에서 저 당산봉을 넘어 여기까지 왔다.


유적 일대는 거의 들판으로 고산리유적안내센터와 안내문이 전부이다. 유적도 그 보존을 위해
모두 흙으로 덮어놓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유적 남부를 가로질러 가면 2차선의 신창~고산 해안도로(노을해안로)가 나온다. 그 도로는 차
귀도포구에서 나온 길로 그 길을 따라 남쪽으로 조금 가면 수월봉입구가 마중을 한다.


 

♠  제주도의 서쪽 끝을 잡고 있는 수월봉(水月峰)

▲  영산(靈山) 수월봉 표석의 위엄

수월봉입구에서 길은 5갈래로 갈린다. 여기서 동쪽으로 가면 한경면의 중심지인 고산리로 그
곳에 있는 고산6거리(고산리 중심부)까지 1.1km 거리이다. 대중교통으로 수월봉을 찾을 경우
102, 202번 등 제주도 서일주 노선을 타고 고산환승정류장(고산6거리)에서 내려 도보로 접근
하는 것이 편하다.
북쪽 길은 차귀도포구와 고산리 유적으로, 남쪽 길은 고산리 서남부, 서북쪽은 엉알해안, 서
남쪽은 수월봉이다. 당산봉을 내려와서 잠시 버려둔 제주올레길12코스를 여기서 다시 만나서
수월봉으로 같이 가게 되는데, 설마설마했던 수월봉에 일몰 바로 직전에 도착을 한 것이다.


▲  수월봉 북쪽 엉알해안 (수월봉 화산쇄설층 - 천연기념물 513호)

엉알해안 산책로는 차귀도포구 서남쪽 고산출장소에서 수월봉입구까지 이어지는 1.1km 정도의
해안 벼랑 길이다. 여기서 '엉알'이란 바닷가 언덕 밑을 뜻하는 제주도 사투리로 그 이름 그
대로 벼랑 밑을 지나는 것인데, 이 벼랑이 수월봉의 백미(白眉)이다. 수월봉에 왔다면 수월봉
도 좋지만 이 벼랑길도 꼭 거닐어야 나중에 저승에 가서도 꾸중을 듣지 않는다.

엉알해안 벼랑은 제주도 화산들이 한참 몸을 풀던 시절에 당산봉과 수월봉이 수성화산활동(水
性火山活動)으로 빚어지면서 생겨난 것이다. 수월봉과 당산봉은 느긋한 봉우리이나 그 밑 벼
랑은 직각에 가까운 가파른 모습이다. 특히 수월봉은 화쇄난류(火碎亂流, pyroclastic surge)
라 불리는 독특한 화산재 운반작용으로 닦여진 화산체로 화쇄난류층 종류에서 세계 최고의 수
준을 자랑한다. 하여 그와 관련된 논문과 보고서들이 수두룩하게 나와있다.

엉알해안은 수월봉 밑도리까지로 그곳까지는 산책로를 닦지 못하고 수월봉 북쪽 밑까지만 길
을 내었다. 이 산책로도 살펴봐야 했으나 일몰 압박과 코스 혼돈의 무지(無知)로 인해 가지
못하고 이렇게 수월봉 북쪽 입구만 기웃거리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었다.


▲  바다를 향해 고개를 내민 수월봉

▲  수월봉으로 인도하는 길 (제주올레길 12코스)

수월봉은 제주도 본토의 서쪽 끝을 잡고 있는 해발 77m의 해안 언덕이다. (제주도의 서쪽 끝
은 차귀도) 북쪽과 서쪽은 절벽이고 동쪽과 남쪽은 부드러운 산세로 이루어져 있는데, 옛 사
람들이 붙여놓은 수월과 녹고 남매의 슬픈 전설이 속세에서 오염된 두 눈에 이슬을 맺히게 한
다. 수월봉이란 이름은 바로 '수월'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전설은 정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
으나 살펴보면 대략 이렇다.

조선 중기에 수월과 녹고 남매가 홀어미를 모시고 수월봉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 그 어머니가
갑자기 중병에 걸리자 온갖 약을 구해보았으나 좀처럼 차도가 없어 애 태우던 중, 집 앞을 지
나던 승려가 그 사연을 듣고 100가지 약초를 알려주었다.
하여 수월 남매는 제주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99가지를 구했으나 나머지 하나인 오갈피를 찾
지 못해 마을 앞 수월봉에 올라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봉우리
벼랑에서 오갈피가 눈에 아른거리는 것이다. 오갈피에 난데없는 등장에 그들은 너무 기뻤으나
문제는 절벽 중간쯤에 있다는 것. 그래도 그것을 구하겠다는 신념으로 수월은 남동생인 녹고
의 손을 잡고 벼랑으로 내려가 그것을 뜯어 녹고에게 건넸다. 그것을 받은 녹고는 너무 기쁜
나머지 탄성을 지르다가 그만 실수로 수월이의 손을 놓고 말았다. (또는 수월이가 벼랑을 기
어올라 오갈피를 구했다가 떨어져 죽었다고 함)

수월은 그대로 벼랑 밑으로 떨어져 죽었고, 녹고는 넋을 잃고 17일 동안 누이를 부르며 울었
다. 그 눈물이 바위 틈을 거쳐 엉알해안 벼랑으로 떨어지니 세상은 그 물을 '녹고의 눈물'이
라 불렀다. (현실은 해안 절벽의 화산재 지층을 통과한 빗물이 화산재 지층 밑에 진흙으로 된
불투수성 지층인 고산층을 통과하지 못하고 흘러나오는 것임) 그 사연으로 봉우리 이름이 수
월봉이 되었다고 한다.

전설이라고 하지만 현실성이 나름 있는 일이라 아마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이
이야기를 짓기 좋아하는 지역 선비들이 효도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그럴싸하게 각색하여 수월
봉 전설로 내놓았을 것이다. 허나 병든 어미 때문에 아리따웠을 것으로 여겨지는 딸이 꽃도
피지 못하고 비명횡사를 했고 남동생은 누이를 죽게 했다는 충격의 도가니에 빠져 힘든 삶을
살았으니 그들의 팔자도 나처럼 참 박복하다.


▲  수월봉에서 바라본 차귀도(왼쪽)와 와도(오른쪽)
저들은 용수리 절부암부터 이곳까지 나를 따라다니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어
내 눈을 심심치 않게 해주었다. 누워있는 여인의 모습과 비슷했던 와도는
여기서 보니 그저 그런 모습으로 보인다.

▲  수월봉에서 바라본 와도(왼쪽 섬)와 엉알해안, 당산봉

▲  수월봉 지붕에 자리한 수월정(수월봉 전망대)

수월봉 정상에는 8각형 모습의 수월정과 고산기상대가 자리해 있다. 수월정 서쪽은 벼랑으로
안전펜스가 설치되어 있는데, 여기가 제주도 본토에서 중원대륙과 가까운 곳이다. 우리가 장
차 점유하고 누려야될 중원대륙이 혹여 보일까 싶어 이마에 주름선이 간드러질 정도로 두 눈
을 부릅뜨고 서쪽을 노려봤으나 대륙은 보이지 않았다. 가깝다고는 하지만 실제 거리는 엄청
나다.
바닷바람은 일몰 후광에 힘입어 얼마나 매서운지 내가 날라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 정도
이다.

제주올레길12코스 용수리~수월봉 구간을 일몰 바로 전에 도착하니 마치 수월봉을 모두 가지게
된 듯 무척 기뻤다. 허나 엉알해안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실수를 범했으니 하나를 얻고 하나
를 잃은 셈이 된다. 하여 나중에 또 와야되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허나 이런 곳은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나중에 또 오고 싶은 아름다운 곳이다. 


▲  수월봉 지붕 남쪽에 자리한 고산기상대

▲  수월봉 정상에서 바라본 고산리 서남부와 신도리(대정읍) 지역
수월봉은 당산봉을 제외하고 주변이 온통 바다와 들판이라 낮은 높이에
비해 조망의 품격은 우수하다.

▲  수월봉 정상에서 바라본 차귀도와 와도, 주름선을 진하게
보이며 뭍과 섬을 세차게 때려대는 남해바다

▲  수월봉 정상에서 바라본 와도와 엉알해안, 당산봉

수월봉을 둘러보니 어느덧 18시, 그날 목적한 곳을 모두 둘러보아 마음이 참 뿌듯하다. 수월
봉입구로 나오면서 앞서 지나쳤던 엉알해안을 잠시 거닐까도 했으나 땅꺼미가 자욱하여 언제
가 될지 모를 다음으로 내던지고 고산리로 움직였다.
바람의 섬인 제주도에 걸맞게 바다 바람이 얼마나 춥고 징한지 바람을 맞은 스마트폰 밧데리
가 순식간에 70%에서 0%로 떨어져 폰이 급 기절하는 참사까지 발생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
라 다소 당황했으나 이내 진정을 되찾고 길을 재촉했다.

고산리에서 제주도 급행버스 102번을 타고 모슬포(대정)로 나가 유명한 밀면집에서 저녁으로
시원한 밀면 1그릇을 섭취했다. 거기서 폰 충전을 꾀하니 잠시 혼절했던 폰이 다시 깨어난다.
이래서 먼 길을 갈 때는 무조건 폰 충전 케이블을 가지고 간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제주도 간선 202번을 타고 산방산(山房山) 서북쪽에 자리한 산방산탄산온
천을 찾았다.
요즘 숙박시설의 하나인 게스트하우스(게하)가 인기라 체험이나 해볼 겸 탄산온천에 딸린 게
하에서 하룻밤 머물렀는데, 말로만 듣던 8인용 도미토리 방에서 잠을 잤다. 숙박비도 모텔에
비해 많이 저렴했고 이곳 같은 경우는 온천 이용권 2장을 서비스로 주어 저녁과 아침에 뜨끈
한 온천물에 들어가 몸을 푹 끓이며 편하게 씻을 수 있는 잇점이 있다. 허나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방에서 잔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다음날에는 돈 더 주고 마음 편하게
모텔에서 잤음)
내 듣기에는 같은 방에 자는 사람들끼리 술도 1잔 하고, 게하에서 자체적으로 저녁에 파티도
한다고 하나 파티 같은 경우 별도의 돈을 내야 되고, 몸도 완전 방전된 상태라 땡기지도 않는
다. 다행히 내가 잔 방은 딱 절반만 차서 번잡함은 별로 없었고, 다들 자는 분위기라 22시 넘
어서 잠을 청했다.

이렇게 하여 제주도 첫날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후 내용은 별도 글에서~~


* 까페(동호회)에 올린 글은 공개일 기준으로 1주까지만 수정,보완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
  집니다. <단 블로그와 원본은 1달까지임>
* 본글의 내용과 사진을 퍼갈 때는 반드시 그 출처와 원작자 모두를 표시해주세요.
* 오타나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즉시 댓글이나 쪽지 등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외부링크 문제로 사진이 안뜨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모니터 크기와 컴퓨터 사양에 따라 글이 조금 이상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 공개일 - 2020년 7월 25일부터
* 글을 보셨으면 그냥 가지들 마시구 공감이나 추천을 흔쾌히 눌러주시거나 댓글 몇 자라도
 
달아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Copyright (C) 2020 Pak Yung(박융), All rights reserved

아름다운 제주도의 서쪽 끝을 거닐다 ~~ 절부암, 생이기정, 제주올레길12코스 나들이 (차귀도, 와도)

 


' 제주도 겨울 나들이 '

(절부암 주변, 제주올레길12코스)

성김대건신부 제주표착기념관에서 바라본 와도와 차귀도

▲  성김대건신부 제주표착기념관에서 바라본 와도(왼쪽)와
차귀도(오른쪽)

절부암 용수리 제주올레길12코스

▲  절부암

▲  용수리 제주올레길12코스


 

묵은 해가 아쉬움 속에 저물고 새해가 막 기지개를 켜던 1월의 첫 무렵, 천하에서 가장
작은 대륙 제주도를 찾았다.

달님이 하늘 높이 걸린 새벽 3시, 도봉동(道峰洞) 집을 나서 심야시내버스(N버스)를 줄
줄이 이어타 김포공항으로 이동했다. 비수기 평일임에도 제주도(濟州島)와 따뜻한 남쪽
을 꿈꾸는 사람들로 김포공항 국내선청사는 이른 아침부터 북새통을 이룬다.
공항에 도착하여 탑승 수속을 마치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나를 제주도로 옮
겨줄 6시대 비행기에 몸을 담는다. 시간이 되자 비행기는 만석의 기쁨을 누리며 활주로
를 10여 분 정도 방황하다가 창공 속으로 높이 날개짓을 펼친다.
이륙 시간을 기준으로 제주공항 착륙까지는 50분 정도가 걸렸고 활주로 이동 시간을 포
함해 1시간이 소요되었는데, 이 소요시간은 내가 처음 제주도에 갔던 1988년과 별로 차
이가 없다.
제주공항 서쪽 활주로에 사뿐히 착륙하니 공항청사로 인도할 셔틀버스가 넉넉히 대기하
고 있었다. 하여 그 버스에 탑승하여 3분 정도를 달려 제주공항청사로 들어선다.

제주도에 나를 떨어트리긴 했지만 이미 정처(定處)는 싹 정해둔 상태이다. 남들은 거의
렌트카를 이용해 이동을 하지만 나는 극서민이라 마음 편하게 대중교통을 택했다. 제주
도는 육지보다 시내버스 차비가 저렴하고 무엇보다 무료환승이 아주 휼륭하여 섬 1바퀴
(180km)를 기본 요금(1,250원, 카드는 1,150원)에 도는 것도 가능하다. (제주도 간선노
선인 201번과 202번을 이용하면 됨)

제주국제공항을 나와서 제주시내 서부와 애월읍의 여러 명소를 둘러보고 제주도 간선노
선 202번(제주터미널~고산리~서귀포등기소)을 타고 용수리 충혼묘지에서 내렸다. 202번
은 외도 월대(月臺)부터 다음날 가는 천제연폭포까지 쭉 신세를 진 노선으로 제주도 급
행버스 102번과 함께 서일주(일주서로) 구간을 책임지고 있다. (동일주는 급행 101번과
간선 201번이 맡고 있음)

정류장 바로 남쪽에 용수교차로가 있는데, 여기서 용수리포구로 인도하는 용수1길로 접
어들어 15분 정도 걸으니 이곳에 상륙했던 조선 최초의 신부, 김대건(金大建)을 기리는
'성(聖)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기념관'이 잠깐 들리라며 손짓을 한다.
원래는 계획에 없던 곳이라 통과하려고 했으나 그냥 지나치기가 조금 아쉬워 여로(旅路
)를 좀 살찌울 겸, 기념관의 손짓에 응했다. 하여 그곳을 둘러보고 커피까지 기분 좋게
얻어 마시며 바로 서쪽에 자리한 용수리 포구로 이동했다.
표착기념관은 옥상을 개방하고 있는데 거기서 바라보는 차귀도와 와도, 용수리 지역 조
망이 제법 괜찮으니 꼭 누려보기 바란다. (성김대건신부 제주표착기념관에 대한 내용은
생략함)

용수리 포구에는 나를 이곳으로 부른 절부암이 있는데, 바로 그곳을 시작으로 수월봉까
지 제주올레길12코스(용수리↔무릉리, 17.5km)를 거닐었다. 앞서 둘러본 명소들은 코스
요리에서 앞에 먹는 맛보기 음식이고 이번에 다룰 제주올레길 12코스는 그날의 중심 메
뉴라 할 수 있다. 
이 코스는 남해바다와 산, 해안 절벽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해안 올레길로 용수리 방
사탑과 생이기정, 당산봉, 고산리 유적, 엉알해안 등의 상큼한 명소가 있으며, 바다 너
머로 차귀도와 와도가 다양한 각도로 포즈를 취해 눈과 마음이 지루할 틈이 없다.
나의 정처없는 마음을 수없이 앗아가고 놓아준 올레길 12코스, 우리집과 가까웠다면 즐
겨찾기 명소로 삼아 두고두고 누리고 싶지만 서로의 제자리가 너무나 머니 실로 아쉽다.
(내가 조물주라면 우리 동네로 그대로 옮겨오고 싶음)


▲  성김대건신부 제주표착기념관 옥상에서 바라본 용수리 지역
저 멀리 구름에 감싸인 곳이 제주도의 심장이자 성지인 한라산(漢拏山)이다.
제주도는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모두 한라산이 바라보인다.

▲  용수리 포구에서 바라본 성김대건신부 제주표착기념관
김대건이 청나라 상해에서 라파엘호를 타고 귀국하다가 풍랑을 만나 용수리에
표착했다. (차귀도에 먼저 표착했다고 함) 그때 타고 온 배는 복원되어
저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깃든 바닷가 언덕, 절부암(節婦岩)
- 제주도 지방기념물 9호

▲  서쪽에서 바라본 절부암

바다를 향해 입을 벌린 용수리 포구에 이르면 유난히 나무가 우거진 언덕이 시선을 붙잡는다.
온갖 나무와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뒤섞여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은 그 언덕은 용수리의 오랜
상징이자 나를 이 머나먼 남국(南國)으로 오게 한 절부암이다.
서쪽을 바라보고 선 절부암은 이름 그대로 절개를 지킨 부인을 기리는 바위로 다음과 같은 슬
픈 이야기가 속삭이듯 서려있다.

때는 1863년 경, 용수리에는 강사철(姜士喆)과 16살(또는 19세) 먹은 고씨 여인이 살고 있었
다. 그들은 서로 좋아하여 혼인까지 했으나 살림이 영 좋지 못해 차귀도에서 대나무를 베어와
바구니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혼인 며칠 후, 강씨는 바구니를 만들 재료를 취하고자 마을 사람들과 테위(테배)를 타고 차귀
도로 건너갔다. 허나 정오가 지나면서 갑자기 강한 바람이 몰아치자 서둘러 마을로 돌아오다
가 강풍의 희롱에 제대로 흥분한 바다 파도로 배가 뒤집혀 모두 죽고 만다. (다른 이야기로는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강풍으로 침몰해 죽었다고 함)
졸지에 남편을 잃은 고씨는 크게 통곡하며 바닷가에 나가 남편의 시신을 찾을 수 있기를 절절
히 빌었다. 그렇게 3달을 빌었으나 남편의 시신은 소식이 없었고,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 결
국 해안 절벽에 있는 팽나무에 목을 매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그때까지 행
방이 묘연하던 남편의 시신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고씨가 목을 맨 자리 밑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 해괴한 일에 지역 사람들은 중원대륙 조아(曹娥)의 일과 같다며 감탄을 했다. 여기서 조아는 조간의 딸로 그가 강을 건너다 급류에 빠져 죽자 조아는 70일 동안 아버지를 찾아 헤매다가 너무 비통하여 강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5일 뒤에 아버지의 시신을 안고 물 위에 떠올랐다고 한다.
고씨 부인의 이야기를 들은 대정(모슬포) 사람 신재우(愼哉佑)는 크게 감동을 먹고 자신이 과
거에 붙으면 고씨의 열녀비(烈女碑)를 세워주겠다고 공언했다. 하여 바다를 건너 서울로 올라
가 과거에 응시했으나 정성 부족인지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만다.

풀이 죽은 신씨는 고향으로 가다가 답답한 마음에 점집에 들렸다. 점쟁이는 한 여인이 따라다
니고 있으니 그를 잘 모시면 급제를 할 것이라 답을 했다. 허나 그 여인이 누군지 전혀 알 수
가 없었고 집에 와서도 계속 머리를 굴렸으나 딱히 떠오르는 여인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고씨 부인의 이야기가 나왔다. 하여 예전에
자신이 했던 말이 떠올라 그 여인이 고씨라 여겨져 고씨의 묘를 참배했다. 그리고 다시 상경
하여 과거에 응시해 드디어 급제를 하였다.
그는 대정판관(大靜判官)의 직을 제수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조정에 상소하여 고씨의 열녀비를
세우는 한편, 70냥을 지원해 고씨 부부의 묘를 당산봉(고산봉) 서쪽 비탈에 합장해 매년 3월
15일에 제사를 지냈다. 또한 고산과 용수 마을에 100냥을 내주어 제사를 꼭 챙기도록 했으며,
고씨가 목을 맨 절벽을 절부암이라 이름 지었다.

왜정(倭政) 때는 왜정의 태클과 재정 문제로 제사가 잠시 중단되기도 하였으나 마을 부인회가
돈을 모아 300평 정도의 절부암전을 마련하여 그 소출로 매년 꾸준히 제를 지낸다.


▲  북서쪽에서 바라본 절부암

절부암 언덕에는 사철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 포나무, 느릅나무, 박달목서(환경부 지정 멸
종위기 야생생물 2급) 등이 모진 바닷바람을 이겨내며 우거져 있다. 예전에는 절부암 바로 앞
까지 바닷물이 넝실거렸으나 개발의 칼질이 여기까지 마수를 뻗치면서 적지 않은 변화를 강제
로 받게 되었다.
절부암 앞에 돌로 다져진 산책로가 닦여 바닷물은 서쪽으로 조금 밀려났으며, 그 앞바다에 도
로가 생기고 항구가 생겼다. 게다가 절부암 뒤쪽에도 집들이 마구 들어서 마치 도시 속에 갇
힌 외로운 공간처럼 되었다. 이곳이 대도시 한복판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으나 엄연한 시골 포
구이다. 개발의 칼질에 절부암의 공간이 다소 쪼그라든 느낌을 주며, 절부암 바로 뒷쪽에 옥
의 티를 선사하면서까지 건축 허가를 내줬어야 했는지 제주도 철밥통들에게 실로 회의감이 든
다. (무분별한 난개발로 계속 망가지고 고통받고 있는 제주도의 현실임)


▲  절부암 앞 산책로 (북쪽 방향)

▲  절부암 앞 산책로 (남쪽 방향)

산책로가 닦여진 이곳에는 층층이 주름진 바위들이 있었고 그곳까지 바닷물이 손을 내밀어 절
부암과 진한 정을 나누었다. 산책로 조성으로 절부암 접근이 좀 쉬워지긴 했으나 1980년대 절
부암 사진과 비교해보니 개발이 씌운 굴레에 단단히 갇혀있는 듯한 모습이다.


▲  절부암 제단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을 갖춘 이곳에서 절부암 제사가 이루어진다.
평소에는 먼지가 놀이터로 삼을 정도로 한가하지만 3월 15일만 되면
아주 바쁜 시간을 보낸다.

▲  세월을 너무 간지나게 탄 절부암 바위들

▲  절부암 바위글씨의 위엄
감동 김응하(監董 金應河)가 글을 짓고 동수 이팔근(洞首 李八根)이 글씨를 썼다.
제주도에서 유일하다는 전서체 바위글씨로 독특한 글씨라 절부암이면서도
아닌듯한 아리송한 모습이다.

▲  신재우가 남긴 바위글씨

절부암 바위글씨 주변에는 '同治丁卯紀平三字(동치정묘기평삼자, 여기서 '동치정묘'는 1867년
)','判官愼裁佑撰(판관 신재우찬)' 바위글씨가 있다. 이들은 절부암을 있게 한 신재우의 흔적
들로 그 주변 바위에는 절부암 제사를 주관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어 절부암의
과거와 현재가 깃든 소중한 일기장 같은 곳이다.

* 절부암 소재지 : 제주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4241-5


▲  바다를 향해 작게 입을 벌린 용수리 포구
방파제 너머로 보이는 섬은 와도와 차귀도이다. 저들은 용수리에서
수월봉까지 다양한 각도로 아주 지겹도록 구경을 했다.

▲  차귀도(遮歸島)

손에 닿을듯 가까이 떠있는 차귀도는 0.16㎢의 조그만 섬으로 제주도의 서쪽 끝을 잡고 있다.
지실이섬, 죽도, 와도 등의 작은 섬을 거느리고 있으며, 1970년대까지 약간의 사람들이 거주
하고 있었으나 박정희 정권 시절에 여러 번 터졌던 북한의 도발 행위(1968년 김신조 공비 패
거리 서울 침투, 1974년 공비단 추자도 침투 등)로 외딴 섬들의 안보 취약이 문제가 되자 섬
사람들을 제주도 본토로 이주시켜 무인도가 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금지된 섬이 되어 완전 자연의 공간으로 남아있다가 2011년 이후 개방되어 섬
나들이가 가능해졌다.
차귀도는 고산리 차귀도 포구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면 되며, 낚시터로도 유명하여 참돔과 돌
돔 등 다양한 물고기들이 잡힌다. (1~3월, 6~12월에 많이 잡힘~) 이번에는 그림의 떡처럼 차
귀도를 대했지만 다음에는 저곳에 꼭 발을 들이고 싶다.

차귀도 일대는 '차귀도 천연보호구역'이란 이름으로 천연기념물 422호로 지정되었다.


▲  와도(臥島, 누운섬)

와도는 차귀도에 딸린 작은 바위 섬으로 용수리에서 보면 마치 여자가 누워있는 모습으로 보
인다. 얼굴과 가슴(조금 뾰죡하게 나온 부분은 젖꼭지), 다리 부분이 제법 현실감있는 모습으
로 대자연 형님의 위대한 작품성을 느끼게 한다. 허나 용수리에서 볼 때나 그렇게 보이지 당
산봉과 고산리, 수월봉에서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여자가 누워있는 모습의 와도 때문인지 그곳과 가까운 고산리에는 예로부터 과부들이 많았다
고 한다.


▲  바다에 나란히 떠서 물놀이를 즐기는 와도와 차귀도(오른쪽)

▲  용수마을 방사탑(防邪塔) 2호 - 제주도 민속문화재 8-9호

제주도에는 방사탑이라 불리는 동그란 돌탑들이 많이 전하고 있다. 이 땅에 흔한 서낭당이나
돌탑 스타일의 탑으로 마을의 재앙을 막고 비보풍수(裨補風水)에 따라 허한 곳을 채워주는 용
도로 지어졌는데, 답, 답데, 거욱, 거왁, 답단이, 거욱대 등의 별칭을 지니고 있으며, (주로
쓰이는 명칭은 '방사탑') 탑 위에는 돌하르방 모양의 돌이나 사람 얼굴 모양으로 다듬은 돌,
새 모양의 돌을 추가로 올려놓는다.

용수리포구에는 남쪽과 북쪽에 총 2개의 방사탑이 세워져 있다. 차귀도 주변은 바다가 툭하면
심술을 부려 배가 자주 좌초되었고 그때마다 죽은 이들의 시신이 마을로 밀려왔다. 하여 마을
주민들은 그런 재앙을 막고자 탑을 세웠다고 전한다.
화성물 가까이에 있어서 화성물답, 화성물탑이라 불리기도 하며, 탑의 꼭대기에 새의 부리와
비슷하게 생긴 길쭉한 돌이 바다와 차귀도가 있는 서쪽을 향해 세워져 있다. 새 부리 비슷하
게 생긴 돌이 놓여 있어서 '매주제기'라 불리기도 한다.
새는 예로부터 인간과 하늘을 이어주고 인간의 소리를 하늘로 전해주는 존재로 여겨져 용수리
앞바다에 사고가 없게끔 하늘에 민원을 넣는 용도로 단 것으로 보인다.

* 용수마을 방사탑2호 소재지 : 제주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4288-6번지

▲  가까이서 본 용수마을 방사탑 2호

▲  방사탑 주변 바닷가


 

♠  제주올레길12코스 거닐기

▲  제주올레길12코스 (용수리 방사탑2호~생이기정 구간)

제주올레길 12코스는 용수리 절부암에서 무릉리까지 이어지는 17.5km의 올레길이다. 이 올레
길은 용수리에서 제주올레길 13코스(용수~저지, 15.9km)로 간판이 바뀌며 무릉리에서 제주올
레길 11코스(무릉~모슬포, 17.3km)로 이름이 바뀌어 각자의 방향으로 달려간다.
나는 12코스 구간 중 가장 꿀단지라 할 수 있는 용수리~수월봉 구간을 거닐었는데, 12코스 전
체의 ⅓ 남짓 정도 된다. 허나 일몰 시간의 압박이 내 마음을 크게 흔들어놓는다. 2시간 내에
수월봉까지 가야 일몰의 눈치를 피하며 마음 놓고 사진 셔터를 누를 수 있고, 안전하게 모슬
포(摹瑟浦)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두워지면 출사도 힘들고 올레길 이동도 힘들어짐)

햇님의 퇴근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일단 12코스에 나를 던지기로
하고 길에 임했다. 이 구간은 생이기정 북쪽에 이르면 고산리 유적까지는 완전 속세(俗世)와
등을 지게 되므로 적어도 고산리 유적까지는 무조건 가야 된다.
12코스 구간 중, 용수리~수월봉 구간은 해안 구간으로 당산봉을 넘어가며, 수월봉~무릉리 구
간은 내륙이다. 해안길 중 용수리 방사탑~당산봉까지는 거의 벼랑길로 키 작은 줄난간 외에는
안전시설이 없으므로 괜히 사진 찍는다고 안전선을 넘는 일이 없도록 한다. 게다가 속세와 떨
어진 외진 곳이라 가급적 일몰 전까지는 산책을 마쳐야 뒷탈이 없을 것이다.


▲  누렇게 뜬 억새들이 나그네를 반기는 제주올레길12코스
(용수리 방사탑2호~생이기정 북쪽 구간)


12코스는 제주도의 야심작인 올레길의 일원이라 길은 잘 닦여져 있다. 방사탑2호 남쪽 구간에
는 무려 박석(薄石)까지 입혀져 있어 마치 시내 해안 공원을 거니는 기분이다.
제주도가 아무리 따뜻한 남쪽이라고 하지만 바닷바람이 얼마나 격한지 두 손이 얼어붙을 정도
이다. 그날 제주도 기온은 영상 4~9도라고 나왔으나 체감온도는 거기서 7~8도 정도는 빼야 했
을 정도이다. 너무 두꺼운 잠바까지는 아니더라도 패딩 잠바나 덜 두꺼운 잠바를 입어야 무리
가 없을 것이다. (모자 달린 잠바를 입으면 더 좋음) 대신 내륙 지역은 바닷바람의 간섭을 덜
받아 조금 따스하다.


▲  여기서도 변함없이 나와 놀아주는 와도와 차귀도
마치 양이(洋夷)들이 말하는 천지창조의 현장 같다. 와도와 차귀도가 막
빚어진 듯한 모습, 하늘은 저들을 만드느라 체력이 방전되었는지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다.

▲  가까이서 바라본 와도의 위엄

12코스를 거닐면 꼭 따라다니는 존재가 있다. 바로 차귀도와 와도이다. 이들은 수월봉까지 계
속 나를 따라다니며 그들의 다양한 모습을 비춰준다. 절부암과 용수리포구에서는 윗 사진처럼
보였으나 올레길을 1굽이 돌 때마다 조금씩 다른 자태를 보여주며, 고산리에 이르면 누워있는
여자가 아닌 그저 평범한 바위섬으로 모습이 바뀐다. 사물과 사람을 하나의 각도가 아닌 다양
한 각도로 봐야된다는 진리를 이 올레길12코스가 몸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허나 사람은 동물과 신(神)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자리만 축내는 존재들이라 그 당연하면서 단
순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  해안 벼랑으로 이루어진 제주올레길12코스 (생이기정 북쪽)
이곳은 바다 낚시터로 좋은 곳이라 낚시도구를 챙기고 벼랑 밑으로
내려가는 낚시꾼이 여럿 눈에 띄었다.

▲  제주올레길 12코스 생이기정 북쪽 해안 벼랑
오른쪽에 보이는 섬은 와도와 차귀도이다.

▲  잠시 뒤를 돌아보는 여유 (생이기정 북쪽)
인생이란 이렇게 뒤를 돌아보는 여유도 챙겨야 정신 건강에 좋다. 너무
앞만 보고 달리는 것도 썩 좋은 것은 아니다.

▲  저만치 멀어진 용수리

올레길 12코스 경관에 퐁당퐁당 홀리다보니 어느덧 이곳에 우두커니 선 나를 발견했다. 여기
가 용수리~수월봉 구간의 ¼ 정도 되는 곳으로 길은 한참이나 남았다. 과연 수월봉까지 일몰
직전까지 갈 수 있을까? 수월봉은 내 조급한 마음을 외면하며 아직도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
고 있다.


▲  생이기정 북쪽에서 바라본 용수리 앞바다
바다 파도는 제법 패기 있는 모습으로 뭍을 때려대고, 바닷바람은 태풍 같은
기세로 홀로 거니는 나를 때려댄다. 오늘도 고통 받는 내 인생...

▲  바람개비로 정신이 없어 보이는 용수리

제주도 해안과 앞바다에는 거대한 바람개비가 많이 닦여져 있다. 제주도의 거센 바람을 활용
해 풍력발전(風力發電)을 얻고자 설치한 것인데, 바다에 설치된 것들은 해질녘이나 저녁, 흐
린 날에 보면 마치 커다란 괴물이 칼 같을 것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듯 무시무시해 보인다.


▲  슬슬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와도와 차귀도 (생이기정 북쪽)

▲  생이기정에서 바라본 와도와 차귀도
이렇게 보니 와도가 전혀 누워있는 여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차귀도 또한
용수리에서 보이지 않던 숨겨진 남쪽 속살을 비추기 시작한다.

▲  생이기정
난간 너머로 억새들이 펼쳐져 있는데 겉으로 보면 완만해 보이지만 그건
억새가 나그네를 낚으려는 함정이다. 완만해 보이는 억새밭 너머에
천길낭떠러지가 도사리고 있으나 가급적 난간을 넘지 말자.
 

용수리 포구와 고산리 유적 중간에 '생이기정'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제주도 사투리로 새를
뜻하는 '생이'와 절벽을 뜻하는 '기정'이 합쳐진 것으로 새가 날아다니는 절벽길이란 뜻이다.
올레길에서 보면 생이기정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지만 차귀도나 바다에서 보면 꽤 높은 벼랑
으로 화산재와 용암이 바다로 흘러가 켜켜히 쌓여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생이기정도 그
렇고 엉알해안과 수월봉 모두 용암이 빚은 대작품들이다.


▲  생이기정 남쪽에서 바라본 와도와 차귀도 ①
와도의 숨겨진 남쪽 속살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누워있는 여인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

▲  생이기정 남쪽에서 바라본 와도와 차귀도 ②

▲  당산봉에서 바라본 수월봉과 고산리 유적
드디어 수월봉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다를 향해 자라 목처럼
고개를 내민 해안 언덕이 바로 그 수월봉이고, 사진 가운데 들판이 
고산리 선사유적이다.

본글은 분량상 여기서 끝, 이후 내용은 별도의 글에서 ~~~


* 까페(동호회)에 올린 글은 공개일 기준으로 1주까지만 수정,보완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
  집니다. <단 블로그와 원본은 1달까지임>
* 본글의 내용과 사진을 퍼갈 때는 반드시 그 출처와 원작자 모두를 표시해주세요.
* 글씨 크기는 까페와 블로그는 10~12pt, 원본은 12pt입니다.(12pt기준으로 작성됨)
* 오타나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즉시 댓글이나 쪽지 등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외부링크 문제로 사진이 안뜨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모니터 크기와 컴퓨터 사양에 따라 글이 조금 이상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 공개일 - 2020년 1월 17일부터
* 글을 보셨으면 그냥 가지들 마시구 공감이나 추천을 흔쾌히 눌러주시거나 댓글 몇 자라도
 
달아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Copyright (C) 2020 Pak Yung(박융), All rights reserved

본인 제작 여행답사기 모음집 (2019년 12월 30일 기준)

 

서울 - 118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글 공개시기

글 링크
1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심우장, 성락원, 선잠단터 2013, 11

☞ 블로그글 보기

2 종로구 경복궁, 인사동 2006, 1

☞ 블로그글 보기

3 종로구 창경궁 (1) 2006, 10

☞ 블로그글 보기

4 종로구 창경궁 (2) 2006, 10

☞ 블로그글 보기

5 강남구 봉은사 1 (사월초파일) 2007, 5

☞ 블로그글 보기

6 강남구 봉은사 2 (사월초파일) 2007, 5

☞ 블로그글 보기

7

종로구
서대문구

세검정, 대원군별장, 홍지문
옥천암 마애좌상

2007, 8

☞ 블로그글 보기

8

종로구

북한산 금선사

2008, 7

☞ 블로그글 보기

9

금천구

호암산 호압사

2008, 11

☞ 블로그글 보기

10

금천구

호암산 (호압사, 석구상, 한우물, 호암산성) 2009, 3

☞ 블로그글 보기

11

종로구

선희궁터, 청와대분수대, 청와대앞길,
경복궁신무문, 인사동

2009, 4

☞ 블로그글 보기

12

강남구

대모산 불국사 (사월초파일)

2009, 5

☞ 블로그글 보기

13

은평구

북한산 삼천사 (사월초파일)

2009, 5

☞ 블로그글 보기

14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이종석 별장

2009, 6

☞ 블로그글 보기

15

노원구 수락산 학림사 2009, 8 ☞ 블로그글 보기

16

종로구 북악산 백석동천 2009, 12 ☞ 블로그글 보기

17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 2010, 4 ☞ 블로그글 보기

18

은평구 태화산 수국사 2010, 7 ☞ 블로그글 보기

19

종로구 부암동 뒷골마을, 북악산길, 창의문 2011, 3 ☞ 블로그글 보기

20

관악구

관악산 관음사, 효민공이경직묘역,
사당동백제요지, 구벨기에공사관

2011, 4 ☞ 블로그글 보기

21

성북구

돈암동 흥천사

2011, 5 ☞ 블로그글 보기

22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2011, 5 ☞ 블로그글 보기

23

종로구

가회박물관, 삼청동(북촌), 인사동

2011, 9 ☞ 블로그글 보기

24

성북구

성북동 삼청각, 홍련사, 북악산

2011, 10 ☞ 블로그글 보기
25 도봉구

방학동 은행나무, 원당샘, 안맹담/정의공주묘
목서흠묘역

2011, 12

☞ 블로그글 보기

26

종로구

북악산 백석동천 2012, 2 ☞ 블로그글 보기
27

종로구

장의사지당간지주, 세검정, 석파정별당, 홍지문

2012, 2 ☞ 블로그글 보기
28

강서구

구암공원(광주바위), 허가바위, 허준박물관

2012, 3 ☞ 블로그글 보기
29

노원구

불암산 학도암, 이윤탁한글영비

2012, 4 ☞ 블로그글 보기
30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2012, 5 ☞ 블로그글 보기
31

동작구

상도동 사자암

2012, 5 ☞ 블로그글 보기
32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창빈안씨묘역, 호국지장사)

2012, 6 ☞ 블로그글 보기
33

종로구

북악산 백석동천(백사골)

2012, 8 ☞ 블로그글 보기
34

성북구

북악산 북악하늘길(김신조루트), 북악산길

2012, 9 ☞ 블로그글 보기
35

성북구

성북동 심우장, 최순우옛집, 선잠단터

2012, 10 ☞ 블로그글 보기
36

종로구

북촌문화센터, 관상감관천대, 계동길, 창덕궁길,
요금문, 고희동가옥, 백흥범가옥, 빨래터

2013, 1 ☞ 블로그글 보기
37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 2013, 4 ☞ 블로그글 보기
38 종로구

석파정별당(석파랑), 부침바위터, 무계정사터,
현진건집터, 청계동천, 반계윤웅렬별장

2013, 4

☞ 블로그글 보기

39

종로구

재동백송, 재동초교, 백인제가옥, 북촌3경 일대,
정독도서관(서울교육박물관), 안국동 윤보선가

2013, 5

☞ 블로그글 보기

40

강북구

북한산 본원정사

2013, 5

☞ 블로그글 보기

41

성북구

정릉동 경국사

2013, 5

☞ 블로그글 보기

42

종로구

북악산 백사실(백석동천) 2013, 7

☞ 블로그글 보기

43

도봉구

도봉산 (자운봉, 포대능선, 만월암, 도봉서원,
광륜사)

2013, 10

☞ 블로그글 보기

44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2013, 10

☞ 블로그글 보기

45

금천구

호암산 (석구상, 호암산성터, 한우물, 불영암,
칼바위)

2013, 12

☞ 블로그글 보기

46

종로구

윤동주시인의 언덕(윤동주문학관), 청운공원

2014, 3

☞ 블로그글 보기

47

종로구
중구

서울연등회 (서울연등축제)
조계사, 우정국로, 청계천, 광통교

2014, 4

☞ 블로그글 보기

48

종로구

북한산 승가사 (구기동 마애여래좌상) 2014, 5

☞ 블로그글 보기

49

중구

환구단(원구단), 덕수궁 대한문, 성공회 서울성당,
양이재, 구세군 중앙회관

2014, 6

☞ 블로그글 보기

50

서대문구

봉원사 (서울연꽃문화축제) 2014, 8

☞ 블로그글 보기

51

종로구

동대문성곽공원, 이화마을, 낙산(낙산공원) 2014, 9

☞ 블로그글 보기

52

성북구

성북동 선잠단터, 최순우옛집, 삼청각 2014, 10

☞ 블로그글 보기

53

종로구

인왕산 인왕사, 국사당, 선바위, 해골바위 2015, 3

☞ 블로그글 보기

54

종로구

서울연등회(연등축제), 조계사 2015, 5

☞ 블로그글 보기

55

성북구

정릉 봉국사 2015, 5

☞ 블로그글 보기

56

동작구

국립현충원(창빈안씨묘역, 부안군이석수묘역),
동작충효길(현충원길), 이수폭포

2015, 6

☞ 블로그글 보기

57

종로구

북악산 백석동천 (백사실)

2015, 8

☞ 블로그글 보기

58

성북구
종로구

북악산 주능선 (숙정문, 촛대바위, 청운대,
백악마루, 창의문)

2015, 11

☞ 블로그글 보기

59

종로구

배화여고생활관, 이상범가옥, 백호정, 자수궁터,
송석원터

2015, 12

☞ 블로그글 보기

60

종로구

창덕궁 후원뒷길, 흥덕사터, 북묘하마비,
우암 송시열집터

2016, 1

☞ 블로그글 보기

61

종로구

북촌(고희동가옥, 기기국번사창, 삼청동길) 2016, 2

☞ 블로그글 보기

62

중구
용산구

한양도성 장충동 지구, 남산공원길, 남산 정상
(팔각정), 남산야외식물원

2016, 4

☞ 블로그글 보기

63

도봉구

도봉산 천축사, 마당바위, 자운봉, 포대능선

2016, 5

☞ 블로그글 보기

64

서대문구

인왕산 개미마을, 환희사, 큰절골

2016, 5

☞ 블로그글 보기

65

강동구

암사동 선사유적지

2016, 6

☞ 블로그글 보기

66

서대문구

봉원사 (서울연꽃문화축제)

2016, 8

☞ 블로그글 보기

67

종로구

인왕산 수성동계곡

2016, 8

☞ 블로그글 보기

68

강북구

북한산 구천폭포(구천계곡),
북한산둘레길 흰구름길

2016, 8

☞ 블로그글 보기

69

은평구

북한산 진관사, 진관사계곡

2016, 8

☞ 블로그글 보기

70

성북구

심우장, 수연산방, 최순우옛집

2016, 9

☞ 블로그글 보기

71

강남구

대모산, 불국사, 구룡산

2016, 10

☞ 블로그글 보기

72

종로구

부암동 무계원, 무계정사터(안평대군 이용집터),
청계동천, 반계 윤웅렬별장

2016, 11

☞ 블로그글 보기

73

종로구

한양도성, 행촌동 은행나무, 딜쿠샤, 홍난파가옥
, 월암근린공원

2016, 12

☞ 블로그글 보기

74

금천구

호암산 (삼성산성지, 호압사, 호암산 정상)

2016, 12

☞ 블로그글 보기

75

서대문구

안산, 무악동봉수대 (안산자락길, 무악정)

2017, 1

☞ 블로그글 보기

76

종로구

중앙고등학교(본관, 서관, 동관), 창덕궁 신선원전

2017, 2

☞ 블로그글 보기

77

성북구

보문동 보문사 2017, 3

☞ 블로그글 보기

78

광진구

홍련봉 보루, 아차산생태공원, 아차산성,
아차산1/5/6보루, 고구려정

2017, 4

☞ 블로그글 보기

79

동대문구
노원구

회기동 연화사
월계동 기원사

2017, 5

☞ 블로그글 보기

80

성북구

개운산 보타사 2017, 5

☞ 블로그글 보기

81

동작구

국립현충원 호국지장사 2017, 6

☞ 블로그글 보기

82

종로구

북악산 백석동천 (백사실)

2017, 7

☞ 블로그글 보기

83

종로구

삼청공원, 북악산 말바위

2017, 8

☞ 블로그글 보기

84

은평구

북한산 삼천사 (삼천사계곡)

2017, 9

☞ 블로그글 보기

85

관악구

강감찬생가터, 낙성대(안국사), 난곡로 느티나무,
신림동 굴참나무

2017, 10

☞ 블로그글 보기

86

종로구
성북구

한양도성, 낙산공원, 비우당, 자지동천,
삼군부총무당(삼선공원)

2017, 10

☞ 블로그글 보기

87

종로구

서촌 박노수가옥(박노수미술관), 옛 윤덕영 집

2017, 11

☞ 블로그글 보기

88

종로구
은평구

북한산둘레길 옛성길, 구름정원길, 탕춘대성 암문

2017, 12

☞ 블로그글 보기

89

강서구

양천향교, 궁산, 소악루, 양천고성터, 관산성황당

2017, 12

☞ 블로그글 보기

90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

2018, 1

☞ 블로그글 보기

91

종로구

장면 가옥, 흥덕사터, 북묘 하마비, 송시열집터

2018, 2

☞ 블로그글 보기

92

강서구

능말 은행나무/느티나무, 풍산심씨 문정공파 묘역,
개화산 약사사

2018, 3

☞ 블로그글 보기

93

종로구
서대문구

세검정, 석파정 별당(석파랑), 홍지문과 탕춘대성
옥천암과 옥천암 마애보살좌상

2018, 4

☞ 블로그글 보기

94

동대문구

선농단(선농대제), 선농단 향나무,
선농단역사문화관

2018, 5

☞ 블로그글 보기

95

성북구

안암동 개운사

2018, 5

☞ 블로그글 보기

96

종로구

낙산 청룡사

2018, 5

☞ 블로그글 보기

97

강북구

북한산 화계사

2018, 6

☞ 블로그글 보기

98

은평구

북한산둘레길 내시묘역길, 마실길, 구름정원길,
경천군 송금비, 백화사, 화의군묘역

2018, 8

☞ 블로그글 보기

99

노원구

수락산 벽운동계곡, 염불사, 영원암, 귀임봉

2018, 9

☞ 블로그글 보기

100

구로구

궁동저수지생태공원, 정선옹주묘역, 구로올레길,
지양산

2018, 10

☞ 블로그글 보기

101

종로구

윤동주시인의 언덕, 윤동주문학관, 청운공원

2018, 11

☞ 블로그글 보기

102

성북구

북악산 북악하늘길1산책로, 2산책로(김신조루트)

2018, 11

☞ 블로그글 보기

103

광진구

아차산성, 아차산1보루, 3보루, 5보루

2019, 1

☞ 블로그글 보기

104

성북구

성북동 최순우옛집, 수연산방(상허 이태준 가옥)

2019, 2

☞ 블로그글 보기

105

종로구
서대문구

박종화가옥, 보현산신각, 홍지문, 산모퉁이까페
옥천암 (옥천암 마애보살좌상)

2019, 4

☞ 블로그글 보기

106

종로구

북한산 금선사 (목정굴)

2019, 4

☞ 블로그글 보기

107

중랑구

숙선옹주묘역, 봉화산(아차산봉수대터),
봉화산둘레길, 충익공 신경진 묘역

2019, 5

☞ 블로그글 보기

108

노원구

불암산 학도암, 중계본동 느티나무

2019, 5

☞ 블로그글 보기

109

강북구

수유동 분청사기가마터, 신익희묘, 김병로묘,
유림묘, 북한산둘레길 순례길

2019, 5

☞ 블로그글 보기

110

도봉구

무수골, 무수골느티나무, 전주이씨영해군파묘역

2019, 7

☞ 블로그글 보기

111

서대문구

봉원사(서울연꽃문화축제)

2019, 8

☞ 블로그글 보기

112

노원구

수락산 노원골, 수락산보루, 동막골, 도선사

2019, 8

☞ 블로그글 보기

113

종로구

북촌문화센터, 김형태가옥, 이준구가옥,
북촌 가회동 일대

2019, 9

☞ 블로그글 보기

114

도봉구

북한산둘레길 도봉옛길, 능원사, 도봉사, 윗무수골

2019, 10

☞ 블로그글 보기

115

종로구

월암근린공원(한양도성), 홍난파가옥, 딜쿠샤,
행촌동 은행나무, 황학정

2019, 10

☞ 블로그글 보기

116

관악구

봉천동 마애미륵불좌상, 관악산 사당능선,
선유천국기봉, 관음사국기봉, 관음사

2019, 11

☞ 블로그글 보기

117

종로구

청운문학도서관, 청운공원, 인왕산자락길
(이빨바위, 가온다리, 산들수목원약수터)
수성동계곡

2019, 11

☞ 블로그글 보기

118

금천구

호압사, 호암산, 석구상, 호암산성터,
한우물, 불영암, 칼바위

2019, 12

☞ 블로그글 보기

 

경기도, 인천 - 43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글 공개시기

글 링크

1

부천

야인시대촬영장, 루미나리에축제 2003, 10

☞ 블로그글 보기

2 고양 북한산성(대서문, 중흥사터, 북한산행궁터) 2007, 1

☞ 블로그글 보기

3 고양 북한산성(태고사, 산영루터, 북한산성계곡) 2007, 1

☞ 블로그글 보기

4 성남 망경암, 봉국사 (사월초파일) 2007, 6

☞ 블로그글 보기

5

오산
수원

오산 물향기수목원 / 수원 팔달문

2007, 12

☞ 블로그글 보기

6 남양주

수락산 흥국사

2008, 3 ☞ 블로그글 보기
7 남양주

덕릉마을 산신각, 덕흥대원군 묘역

2008, 5 ☞ 블로그글 보기

8

파주 용미리 마애2불입상, 용암사 2008, 10 ☞ 블로그글 보기
9

안양

안양사, 석수동마애종, 석수동석실고분 2009, 3 ☞ 블로그글 보기
10

안성

서운산 석남사 (사월초파일)

2009, 5 ☞ 블로그글 보기
11

하남

춘궁동동사지(동사지3/5층석탑), 광주향교

2010, 2 ☞ 블로그글 보기
12

안양

삼성산 염불암, 중초사지당간지주, 안양예술공원

2010, 12 ☞ 블로그글 보기
13

양평

용문산 사나사, 사나사계곡

2011, 5 ☞ 블로그글 보기
14

강화

강화도 선원사 (연꽃축제)

2011, 8 ☞ 블로그글 보기
15

고양

북한산성 중성문, 노적사, 중흥사터, 봉성암,
산영루터

2011, 8 ☞ 블로그글 보기
16

포천

반월성, 청성공원, 포천향교

2011, 10 ☞ 블로그글 보기
17

하남

선법사(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2011, 11 ☞ 블로그글 보기
18

고양

한미산(노고산) 흥국사

2011, 12 ☞ 블로그글 보기
19

고양

중남미문화원, 벽제관터

2012, 5 ☞ 블로그글 보기
20

강화

장정리 석조여래입상, 장정리5층석탑, 고려궁터,
김상용 순절비

2012, 8 ☞ 블로그글 보기
21

이천

관고리 석불입상, 설봉공원(설봉저수지),
설봉서원, 설봉산 영월암

2012, 10 ☞ 블로그글 보기
22

양평

용문산 용문사,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

2012, 11 ☞ 블로그글 보기
23

파주

고령산 보광사

2013, 2 ☞ 블로그글 보기
24

화성

제암리 3.1운동순국유적 2014, 3 ☞ 블로그글 보기
25

파주

용미리 마애2불입상, 용암사 2014, 12 ☞ 블로그글 보기
26

의정부

도봉산 회룡사, 석굴암, 회룡골 2015, 7 ☞ 블로그글 보기
27

고양,
서울
종로구

북한산 북한산성계곡, 태고사, 행궁터,
금위영이건기비, 금위영유영지, 경리청상창터,
대남문, 문수사

2015, 12 ☞ 블로그글 보기
28

의왕

청계산 청계사

2016, 2 ☞ 블로그글 보기
29

강화

외포리, 석모도 보문사

2016, 7 ☞ 블로그글 보기
30

포천

백운산 백운계곡, 흥룡사

2016, 7 ☞ 블로그글 보기
31

양주
서울

우이령길(교현리~우이동), 우이동유원지

2016, 11 ☞ 블로그글 보기

32

인천

소래철교, 소래포구(소래어시장), 장도포대지
(댕구산), 논현포대

2017, 2 ☞ 블로그글 보기

33

수원

서호(서호공원), 항미정 2017, 6 ☞ 블로그글 보기

34

광명

광명동굴, 가학산 2017, 7 ☞ 블로그글 보기

35

양주

오봉산 석굴암, 우이령길 2017, 11 ☞ 블로그글 보기

36

안양

안양예술공원, 안양사지, 김중업건축박물관,
석수동 마애종, 안양사

2018, 1 ☞ 블로그글 보기

37

강화

월곶돈대, 연미정, 강화평화전망대

2018, 6 ☞ 블로그글 보기

38

과천

관악산 문원계곡, 문원폭포, 문원하폭포,
일명사지, 마애승용군, 보광사

2018, 7 ☞ 블로그글 보기

39

군포

수리산(철쭉동산, 수리산 산림욕장, 수리산
둘레길), 수리사, 반월호수

2018, 9 ☞ 블로그글 보기

40

인천

양주성금속비, 용궁사, 영종도 백운산

2018, 12 ☞ 블로그글 보기

41

연천

전곡리 선사유적지 (구석기 겨울여행축제)

2019, 1 ☞ 블로그글 보기

42

강화

교동도 (교동읍성, 교동향교, 화개사, 화개산)

2019, 6 ☞ 블로그글 보기

43

화성

봉림사, 구봉산 당성

2019, 10 ☞ 블로그글 보기

 

강원도 - 23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글 공개시기

링크

1

양양

낙산사, 홍련암, 오색약수, 성국사, 설악산 주전골 2004, 3

☞ 블로그글 보기

2 강릉 객사문, 오죽헌, 경포대, 굴산사터, 신복사터 2004, 6

☞ 블로그글 보기

3 평창 대관령 양떼목장 2006, 8

☞ 블로그글 보기

4

강릉
동해

경포대해수욕장, 등명낙가사, 묵호항 2006, 8

☞ 블로그글 보기

5 동해 감추사, 감추해변 2007, 2

☞ 블로그글 보기

6 태백 구문소 2007, 2

☞ 블로그글 보기

7

양구

양구 선사박물관 2010, 1

☞ 블로그글 보기

8

화천

토고미마을(산천어축제), 딴산 2011, 1 ☞ 블로그글 보기
9

화천,양구
춘천

화천 평화의댐, 세계평화의종공원,
춘천 윗샘밭

2011, 2 ☞ 블로그글 보기
10

평창

남산공원, 송학루, 노산성

2011, 12 ☞ 블로그글 보기
11

삼척

미인폭포(통리협곡), 여래사

2012, 6 ☞ 블로그글 보기
12

정선

정선5일장, 봉양리뽕나무, 아우라지

2012, 7 ☞ 블로그글 보기
13

영월

보덕사, 금몽암, 낙화암, 금강정, 금강공원

2013, 11 ☞ 블로그글 보기
14

태백

태백산 (당골, 석탄박물관, 석장승, 눈꽃축제장,
단군성전)

2014, 2 ☞ 블로그글 보기
15

동해

추암(추암해수욕장, 촛대바위), 해암정,
추암조각공원, 북평5일장

2014, 7 ☞ 블로그글 보기
16

화천

화천 산천어축제(화천읍내, 북한강) 2015, 1 ☞ 블로그글 보기
17

정선,태백

함백산, 만항재 2015, 9 ☞ 블로그글 보기
18

정선

아라리촌, 아우라지 2015, 12 ☞ 블로그글 보기
19

양구

팔랑폭포, 팔랑계곡 2016, 6 ☞ 블로그글 보기
20

삼척

미인폭포(통리협곡), 여래사

2016, 7 ☞ 블로그글 보기
21

홍천

삼봉약수, 삼봉자연휴양림, 운두령

2017, 6 ☞ 블로그글 보기
22

춘천

사명산 추곡약수, 천전리 고인돌

2018, 2 ☞ 블로그글 보기
23

원주

치악산 구룡사, 구룡사계곡, 학곡리 황장금표

2019, 3 ☞ 블로그글 보기

 

충청북도 - 11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글 공개시기

링크
1

보은
대전

보은 삼년산성
대전 동춘당 / 송애당 / 법동 석장승

2003, 12

☞ 블로그글 보기

2 영동 영동향토민속자료전시관, 가학루, 황간향교 2008, 12

☞ 블로그글 보기

3 충주

단호사, 사문리당산나무숲, 미륵리사터,
하늘재, 충주호

2009, 10

☞ 블로그글 보기

4 단양

사인암, 청련암, 중선암, 북상리 시골

2011, 11

☞ 블로그글 보기

5 괴산

각연사 (각연사계곡)

2012, 1

☞ 블로그글 보기

6 괴산

원풍리 마애2불병좌상, 홍범식고가, 개심사

2012, 3

☞ 블로그글 보기

7

옥천

정지용 생가(정지용문학관), 육영수생가,
죽향리초교 구교사, 죽향리사지3층석탑, 옥천성당

2016, 6

☞ 블로그글 보기

8

청주

낙가산 보살사, 명암약수터, 명암저수지

2017, 3

☞ 블로그글 보기

9

단양

북상리 시골, 사인암, 청련암

2017, 8

☞ 블로그글 보기

10

단양

구인사 (구봉팔문)

2018, 3

☞ 블로그글 보기

11

괴산

산막이옛길 (괴산호, 등잔봉)

2019, 7

☞ 블로그글 보기

 

대전, 충청남도, 세종 - 16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글 공개시기

링크
1 천안 태화산 광덕사 2009, 7

☞ 블로그글 보기

2

당진
태안

행담도, 꽃지해수욕장, 방포항, 안면도자연휴양림,
안면암

2009, 8

☞ 블로그글 보기

3 대전

식장산 고산사

2009. 11 ☞ 블로그글 보기
4 공주

계룡산 동학사

2012. 3 ☞ 블로그글 보기
5 공주

계룡산 남매탑, 삼불봉, 천진보탑, 용문폭포

2012. 3 ☞ 블로그글 보기
6 공주

계룡산 갑사

2013. 2 ☞ 블로그글 보기
7 태안

신진도(안흥외항), 마도, 안흥항, 안흥성(태국사)

2013, 8 ☞ 블로그글 보기
8 홍성

용봉산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용봉산자연휴양림)

2014, 6 ☞ 블로그글 보기

9

당진
아산

장고항, 삽교호관광지, 외암리민속마을

2015, 11 ☞ 블로그글 보기

10

예산

금오산 향천사

2016, 1 ☞ 블로그글 보기

11

대전

계족산(계족산성, 계족산 황톳길), 장동산림욕장

2016, 10 ☞ 블로그글 보기

12

보령

성주사지, 성주천 가로수길

2017, 2 ☞ 블로그글 보기

13

서산

해미읍성, 해미순교성지

2017, 12 ☞ 블로그글 보기

14

대전

장태산자연휴양림, 형제산

2018, 7 ☞ 블로그글 보기

15

천안

태조산 각원사, 성불사 2019, 1 ☞ 블로그글 보기

16

세종

비암사, 도깨비도로 2019, 3 ☞ 블로그글 보기

 

전라북도 - 15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글 공개시기

링크

1

부안 상록해수욕장, 내소사, 곰소항 2003, 9

☞ 블로그글 보기

2 장수 의암사(논개사당) 2008, 11

☞ 블로그글 보기

3

무주
장수

한풍루, 무주향교
의암송, 장수향교

2009, 3

☞ 블로그글 보기

4 전주 전주한옥마을, 오목대(이목대), 한벽당 2012, 1

☞ 블로그글 보기

5 군산

동국사, 은적사, 발산초등학교

2012, 12

☞ 블로그글 보기

6 군산

응항, 선유도, 고군산군도 일주

2014, 7

☞ 블로그글 보기

7 순창

강천산(강천산계곡, 구장군폭포), 강천사, 삼인대

2015, 8

☞ 블로그글 보기

8 임실

오수 의견비, 오수망루, 오수리석불, 해월암

2015, 10

☞ 블로그글 보기

9

김제 망해사, 새만금바람길, 심포항 2016, 3

☞ 블로그글 보기

10

부안 변산 내소사 2016, 9

☞ 블로그글 보기

11

무주 적상산(적상호, 적상산성, 적상산사고), 안국사 2016, 12

☞ 블로그글 보기

12

무주

무주머루와인동굴, 덕유산무주리조트(곤도라),
덕유산 설천봉

2017, 1

☞ 블로그글 보기

13

김제 모악산 귀신사 2017, 11

☞ 블로그글 보기

14

완주 종남산 송광사 2018, 4

☞ 블로그글 보기

15

완주 모악산 대원사, 수왕사 2019, 12

☞ 블로그글 보기

 

광주, 전라남도 - 14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글 공개시기

링크

1

장성
담양
나주

장성 방울샘,
담양 관방제림 / 담양읍 5층석탑 / 석당간
나주 남고문 / 정수루

2004, 1

☞ 블로그글 보기

2 영광 내산서원 2007, 4

☞ 블로그글 보기

3

나주
광주

정수루, 금성관
광주 풍영정

2007, 4

☞ 블로그글 보기

4

순천 금전산 금둔사 2009, 11 ☞ 블로그글 보기

5

순천 개운산 동화사 2010, 1 ☞ 블로그글 보기

6

순천 조계산 천자암 2010, 2 ☞ 블로그글 보기

7

장성 백암산 백양사 2011, 9 ☞ 블로그글 보기

8

광주 무등산 원효사 2011, 10 ☞ 블로그글 보기

9

구례 지리산 천은사(천은제) 2012, 4 ☞ 블로그글 보기

10

곡성 동리산 태안사(태안사계곡) 2013, 5 ☞ 블로그글 보기

11

광양 백계산 옥룡사터 (동백나무숲, 운암사) 2015, 4 ☞ 블로그글 보기

12

목포

노적봉, 유달산(목포시사), 달성사,
국립해양유물전시관, 갓바위

2017, 9 ☞ 블로그글 보기

13

나주

덕룡산 불회사, 불회사 석장승

2018, 12 ☞ 블로그글 보기

14

영광

불갑산 불갑사(꽃무릇군락지)

2019, 9 ☞ 블로그글 보기

 

대구, 경상북도 - 23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글 공개시기

링크

1

경주

반월성, 석빙고, 남산 서쪽(용장사터, 천룡사터)

2003, 5

☞ 블로그글 보기

2

문경 문경새재(여궁폭포, 혜국사, 주흘산, 주흘관) 2006, 12

☞ 블로그글 보기

3

달성 비슬산(유가사 / 암괴류), 현풍석빙고 2007, 10

☞ 블로그글 보기

4

구미 의구총, 낙산리고분군, 낙산리3층석탑 2009, 2

☞ 블로그글 보기

5

예천
상주

개심사지5층석탑
용화사(증촌리석불좌상/입상), 전고령가야왕릉

2009, 4

☞ 블로그글 보기

6

경주

남산 불곡 석불좌상, 신문왕릉 2009, 7 ☞ 블로그글 보기
7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불무사)

2009, 9 ☞ 블로그글 보기
8

영덕
울진

고래불해수욕장, 후포항, 월송정, 월송해변 2011, 6 ☞ 블로그글 보기
9

달성

다람재, 도동서원, 이노정 2012, 12 ☞ 블로그글 보기
10

청도

남산 낙대폭포 2013, 7 ☞ 블로그글 보기
11

달성

비슬산 용연사 2014, 2 ☞ 블로그글 보기
12

예천

회룡포, 비룡산 2014, 7 ☞ 블로그글 보기
13

경산

팔공산 갓바위, 선본사 2014, 11 ☞ 블로그글 보기
14

경주

효소왕릉, 성덕왕릉, 성덕왕릉귀부 2014, 12 ☞ 블로그글 보기
15

경주

남산 보리사(미륵곡 석조여래좌상) 2015, 10 ☞ 블로그글 보기
16

안동

도산서원 2016, 1 ☞ 블로그글 보기
17

대구

팔공산 파계사, 대비암, 성전암 2016, 4 ☞ 블로그글 보기
18

경주

효현동3층석탑, 법흥왕릉, 율동 마애여래3존입상 2016, 11 ☞ 블로그글 보기
19

의성

문소루, 구봉산, 금성산고분군, 문익점면작기념비 2016, 12 ☞ 블로그글 보기
20

예천

개심사지5층석탑, 동본리석조여래입상과
3층석탑, 초간정(초간정 원림)

2018, 3 ☞ 블로그글 보기
21

상주

장각폭포, 오송폭포(성불사), 옥양폭포

2018, 6 ☞ 블로그글 보기
22

영주
봉화

휴천동 지석 및 입석
오전약수, 삼계서원, 석천계곡, 석천정사

2019, 6 ☞ 블로그글 보기
23

경주

감산사, 연지암, 숭복사(숭복사터)

2019, 8 ☞ 블로그글 보기

 

부산 - 17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글 공개시기

링크
1

수영구
강서구

광안리해수욕장, 가덕도(외양포, 대항, 세바지)

2008, 4

☞ 블로그글 보기

2

강서구
서구

망상도/유주암, 송도해변, 송도해수욕장

2008, 9 ☞ 블로그글 보기
3

기장군

불광산 (장안사. 장안사계곡) 2009, 1 ☞ 블로그글 보기
4

기장군

불광산 (척판암, 백련암) 2009, 1 ☞ 블로그글 보기

5

서구
북구

내원정사, 만덕사(만덕사 당간지주), 알터유적 2009, 9 ☞ 블로그글 보기

6

금정구

금정산(금정산성, 국청사) 2011, 1 ☞ 블로그글 보기

7

금정구

금정산 미륵사, 금성동 2011, 1 ☞ 블로그글 보기

8

강서구

가덕도(가덕도등대, 외양포, 대항, 새바지) 2012, 7 ☞ 블로그글 보기

9

사상구
강서구

백양산 운수사, 백양산 숲길,
범방동3층석탑, 부산경남경마공원

2012, 12 ☞ 블로그글 보기

10

사하구

몰운대, 다대포

2013, 7 ☞ 블로그글 보기

11

남구

백운포, 오륙도 (오륙도등대, 등대섬) 2014, 1 ☞ 블로그글 보기

12

사하구
서구

승학산, 구덕문화공원 2014, 11 ☞ 블로그글 보기

13

금정구

금정산(고당봉, 금샘), 원효암, 금정산성 2015, 4 ☞ 블로그글 보기

14

해운대구

해운대 동백섬, 해운대해수욕장, 미포,
달맞이길, 문텐로드, 청사포, 구덕포, 송정해수욕장

2015, 7 ☞ 블로그글 보기

15

연제구

배산, 배산성터

2016, 9 ☞ 블로그글 보기

16

기장군

죽성리해송, 죽성리왜성, 황학대, 두호포구,
기장성당, 월전포구

2017, 4 ☞ 블로그글 보기

17

기장군

월전~대변 해안가, 대변항, 죽도, 연하리 해변,
오랑대, 해동용궁사

2017, 7 ☞ 블로그글 보기

 

울산, 경상남도 - 21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글 공개시기

링크

1

울산
부산

처용암
옥련선원 / 정묘사(배롱나무)

2003, 9

☞ 블로그글 보기

2 창원 무학산(관해정), 가포해변 2006, 11

☞ 블로그글 보기

3

김해

김해 수로왕릉

2006, 11

☞ 블로그글 보기

4

진주
사천

진주 금선암
사천읍성(산성공원), 대방진굴항

2008, 1 ☞ 블로그글 보기
5

함안
창원

함안박물관, 말산리/도항리고분군
진해 우체국

2008, 1 ☞ 블로그글 보기
6

창원

불모산 성흥사, 대장동계곡

2008, 9 ☞ 블로그글 보기
7

밀양

밀양 표충비, 무안리 향나무(홍제사) 2009, 1 ☞ 블로그글 보기
8

양산

천성산 홍룡사(홍룡폭포), 원효암 2009, 6 ☞ 블로그글 보기

9

울산 일산해수욕장, 대왕암공원 2009, 7 ☞ 블로그글 보기

10

창녕

창녕석빙고, 송현동석불좌상, 송현동고분군,
진흥왕척경비, 만옥정공원, 남지철교

2010, 5 ☞ 블로그글 보기

11

거창

수승대(귀연서원, 요수정)

2011, 7 ☞ 블로그글 보기

12

울주
밀양

서생 나사리해변,
밀양 얼음골(천황사)

2011, 7 ☞ 블로그글 보기

13

함양

상림공원, 한남군묘역

2012, 7 ☞ 블로그글 보기

14

산청

목면시배유지, 배산서원, 덕천서원, 남명조식유적

2012, 9 ☞ 블로그글 보기

15

남해

호구산 용문사, 남해자생식물단지, 미국마을,
용소리/금평해변

2012, 11 ☞ 블로그글 보기

16

통영

통영 달아공원

2013, 3 ☞ 블로그글 보기

17

울주

가지산 석남사 (석남사계곡)

2013, 9 ☞ 블로그글 보기

18

고성

연화산 옥천사, 공룡발자국화석

2013, 11 ☞ 블로그글 보기

19

창원

불모산 성주사 (성주사계곡)

2014, 10 ☞ 블로그글 보기

20

울주

서생포왜성

2016, 6 ☞ 블로그글 보기

21

산청

덕양전, 전 구형왕릉, 왕산(유의태약수터,
왕산사지)

2018, 10 ☞ 블로그글 보기

 

제주도 - 1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글 공개시기

링크

1

제주

외도 월대, 수산봉, 수산리곰솔, 납읍리
납읍 금산공원(납읍리 난대림)

2019, 3 ☞ 블로그글 보기


 

기타 지역 - 1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글 공개시기

링크

1

왜열도

동경 지역(긴자, 록뽕키, 우에노, 도쿄도청타워,
아사쿠사<관음사>, 신주쿠, 코쿄, 디즈니랜드)

2002, 6

☞ 블로그글 보


1. 천하에 공개된 글 중에서 하자가 없는 글만 선정해서 지역별로 모았습니다.
2. 2003년 4월 이전 글은 모두 제외했습니다.
3. 답사기 내용과 사진을 전체 혹은 일부라도 퍼갈 경우, 반드시 출처와 원작자(박융) 이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4. 사진이 일부 뜨지 않는 글들이 약간 있습니다. 이 점 널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5. 공개된 글 중, 추후 업데이트 판이 나올 경우, 이전 판은 모음집에서 삭제 될 수 있으며 2개 이상의 시리즈로
   작성된 글 중 추후 본인 필요에 따라 1개나 2개로 통폐합 정리될 수 있습니다.
6. 지역 별로 분류했으나 지역이 2개 이상 겹치는 글은 먼저 간 곳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7. 최종 업데이트 2019년 12월 30일

남해바다를 건너 찾아간 옛 탐라의 현장, 제주도 새해 나들이 (외도 월대, 수산리곰솔, 납읍 금산공원, 제주올레길15,16,17코스)

 


' 제주도 겨울 나들이  '
(외도 월대, 수산봉, 납읍리 금산공원)

▲  제주해협이 바라보이는 외도 해변

수산리 곰솔 납읍리 금산공원 (납읍리 난대림)

▲  수산리 곰솔

▲  납읍리 금산공원

 


 

묵은 해가 아쉬움 속에 저물고 새해가 막 기지개를 켜던 1월의 첫 무렵, 사흘 일정으로
천하에서 가장 작은 대륙, 제주도(濟州島)를 찾았다.
제주도는 거의 13년 만에 방문으로 비행기나 장거리 여객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야 되는
부담감 때문에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다. 허나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수천~수만 리가 되
는 것도 아니고 고작 500km 남짓에 불과하며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로 1시간 내외면 충분
히 닿는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천하를 마음대로 주유한다는 내가 제주도에게 너무나 소심하게 대한
것 같고, 이러다가는 제주도란 존재를 깜빡 잊어먹을 것만 같았다. 하여 나를 제주도에
팍 떨어트리기로 작정하고 부랴부랴 준비를 했다. (준비라고 해봐야 비행기표 예약밖에
는 없음)

평일 아침 6시대 비행기라 널널하게 새벽 2시에 도봉동 집을 나서 심야시내버스(N버스)
를 1회 갈아타고 다시 일반시내버스로 환승하여 5시에 김포국제공항 국내선청사에 도착
했다. (2시 50분대에 방학사거리에서 N15번 시내버스를 타고 종로2가로 이동 → 3시 50
분대에 N26번 시내버스를 타고 공항시장까지 이동 → 4시 50분대에 공항시장 건너편 정
류장에서 6629번을 타고 김포공항 진입)

공항은 여행 비수기인 겨울 평일임에도 이른 아침부터 제주도를 꿈꾸러 온 사람들로 거
의 북새통을 이루었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30여 분 정도 지루하게 시간을 때우다가 제
주로 가는 아시아나항공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시간이 되자 비행기는 그 작은 입을 닫
고 넓은 활주로를 10분 남짓 방황하다가 드디어 하늘 높이 비상한다.
제주도에 처음 발을 들였던 초등학교 시절, 김포공항에서 50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하
고 있다. 그 소요시간은 여전히 유효하여 제주국제공항에 착륙하여 바퀴를 멈출 때까지
딱 50분이 걸렸다. (보통은 활주로 방황 시간까지 포함하여 1시간~1시간 10분을 소요시
간으로 잡고 있음)

활주로 한쪽에 멈춰선 비행기에서 내려서니 공항청사로 인도하는 저상형 셔틀버스가 대
기하고 있었다. 그 버스를 타고 3분 정도를 달려 공항청사로 이동했는데 공항이 바닷가
와 가까워서 그런지 바람이 다소 매서웠다. 제주도는 여름에만 와봤지 겨울에는 처음이
다. 따뜻한 남쪽이라 별로 춥지 않을 것이라 방심을 하였으나 바닷가는 바람 때문에 오
히려 본토 이상만큼이나 추웠다. (단 내륙 쪽은 따뜻함)

제주도에서 이미 정처(定處)는 정해둔 상태라 그곳만 얌전히 찾아가면 된다. 남들은 렌
트카로 많이 이동을 하지만 난 마음 편하게 대중교통을 선택하여 돌아다녔다. 제주도는
비록 일부 노선을 제외하면 버스 배차간격은 긴 편이나 본토보다 시내버스 차비가 저렴
하고 무료환승제가 아주 휼륭해 섬 1바퀴(180km)를 기본요금(현금 1,200원, 카드 1,150
원)이면 돌 수 있다. (제주도 급행버스와 공항버스는 제외)

제주국제공항에서 첫 답사지인 외도 월대를 가고자 제주시내버스 315번(국제여객선터미
널↔수산리)을 탔다. (다른 노선들도 있으나 그것이 먼저 와서 탔음)
버스는 오랜만에 건너온 나에게 신제주 일대를 신나게 강제투어를 시켜주고 8시가 조금
넘어서 외도초교 정류장에 나를 가져다 주었다. 외도초교에서 남쪽으로 가면 광령천(光
令川)이 있는데 바로 그곳에 나를 여기로 부른 월대가 있다.


 

♠  달놀이와 은어로 유명했던 제주시내 외곽 명승지
외도 월대(月臺)

▲  현무암으로 닦여진 월대

월대는 광령천(외도천)과 도근천<都近川, 수정천, 조공천>이 만나는 곳에 닦여진 명승지이다.
월대 앞을 흐르는 광령천을 따로 월대천이라 부르기도 하며, 남해바다도 이곳까지 손을 대고
있어 자연히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수심이 깊고 청정해 예로부터 은어
와 숭어, 뱀장어가 많이 노닐고 있다. (지금도 많이 서식하고 있음)

월대 주위로 하천을 따라 200~300년 숙성된 팽나무와 해송이 멋드러지게 늘어서 있는데 이곳
지형이 반달과 비슷하다고 하며, 달님이 뜰 때 주위와 어우러져 수면에 비친 달빛이 아주 예
술이라고 한다. 반달을 닮은 곳에 달빛 또한 그윽하니 이곳에 퐁당퐁당 빠진 옛 사람들은 누
대(樓臺)를 짓고 신선이 내려와 달놀이를 하던 곳이란 의미로 '월대'라 하였다.

월대는 제주도에서 가장 흔한 현무암으로 낮게 네모난 기단을 깔고, 그 위에 동그란 낮은 대
를 다져 4각형 위에 동그라미가 있는 모습처럼 되었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이른바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돌로 쌓은 석대만 있을 뿐, 건물은 없으며 선비와 관리들, 지역 사람들이 앞다투어 찾아와 시
를 짓고 낚시를 하며 풍류를 즐겼다. 그들은 월대를 포함한 외도동(外都洞) 일대에 적당한 풍
경 8곳을 골라 외도팔경(外都八景)이라 이름 짓고 찬양을 하니 그 8경은 다음과 같다.

1. 월대피서(月臺避暑) - 월대에서의 피서
2. 야소상춘(野沼賞春) - 들이소(월대천 남쪽)에서의 봄구경
3. 마지약어(馬池躍漁) - 마지(연대입구 마이못)에서 뛰는 물고기
4. 우령특송(牛嶺特松) - 우왓동산의 큰 소나무
5. 대포귀범(大浦歸帆) - 큰 포구(조공포)로 돌아오는 돛단배
6. 광탄채조(廣灘採藻) - 넓은 여에서 해조를 캐는 모습
7. 사수도화(寺水稻花) - 절물 벼밭에 벼꽃이 핀 모습
8. 병암어화(屛岩漁火) - 병풍바위에서 고기잡이 불구경


▲  시커먼 피부의 월대 비석
비석 피부에 쓰인 '월'이 그 흔한 '月'이 아니라 거의 초승달 같은 모습이다.
(사람이나 동물의 삐뚤어진 눈처럼 보이기도 함)
비석까지도 달을 표현했으니 이곳은 그야말로 달을 찬양하는 공간이다.


월대 주변은 완전 시골이었으나 제주 시내가 동/서/남으로 크게 살을 찌우면서 그 주위로 시
가지가 형성되었다. 하여 옛날의 운치는 다소 깎이긴 했으나 월대와 광령천, 하천을 따라 늘
어선 나무들은 거의 그대로이며, 광령천 동쪽은 전원(田園) 풍경을 여실히 간직하고 있어 월
대의 위엄은 아직 녹슬지 않았다. 또한 제주도의 야심작인 제주올레길 17코스(제주시내 원도
심~광령, 18.1km)가 이곳을 살짝 지나가며 올레길 뚜벅이들을 인도한다.


▲  월대 주변에 자리한 키 작은 비석 4형제
난쟁이 반바지 접은 것보다 작은 비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들은
지역 사람들의 공덕비로 기단석은 현무암으로 지어졌다.

▲  월대 해송 - 제주시 보호수 13-1-15-30(2) / 13-1-15-30(3)호

월대 옆에 제주시 보호수로 지정된 해송 2그루가 있다. 이들은 280년 묵은 것들로(1982년 보
호수로 지정될 당시 추정 나이가 250년) 지정 번호가 앞선 것을 기준으로 높이는 각각 10m와
3m, 나무둘레는 3.2m와 2m이다.


▲  월대 산책로의 평화로운 아침 풍경 (제주올레길 17코스)

▲  월대 산책로와 오래된 해송<제주시 보호수 13-1-15-30(1)호>
정면에 보이는 수형(樹形)이 좋은 소나무가 제주시 보호수인 해송으로 앞서 언급한
해송들과 나이(약 280년)가 비슷하다. 나무높이는 12m, 나무둘레 3.2m

▲  이제는 무늬만 남은 고망물(수정천)

월대가 있는 외도동에는 조부연대(煙臺)와 고인돌(지석묘), 마이못, 고망물, 수정사(水精寺)
터, 제주도에서 유일한 자갈해변인 알작지 등의 소소한 명소들이 전하고 있다.
나는 월대와 수정사터만 알고 있었지 다른 명소는 전혀 몰랐다. 여기서 덤으로 알게 된 그들
을 싹 보고 가면 좋겠으나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도 여의치 않았고 마음은 벌써부터 다음 행선
지를 재촉하고 있어서 월대에서 가까운 고망물만 보기로 했다. 그곳은 월대교에서 광령천 천
변길(통물길)을 따라 2~3분 정도만 가면 된다. (제주올레길 17코스가 그 길을 따라감)

고망물은 오래된 샘터로 외도동에 크게 둥지를 틀었던 수정사의 샘터로 전해진다. 그래서 수
정천이란 이름도 지니고 있다.
수정사는 고려 충렬왕(忠烈王, 재위 1274~1308) 때 원나라(몽고)의 황후(皇后)가 물이 잘 나
오기를 기원하고자 세웠다고 한다. 몽고 왕비(또는 몽고 조정)가 그들과 전혀 관련도 없을 것
같은 머나먼 제주도에 왜 절을 세웠나 싶겠지만 그 시절 고려는 몽고의 그늘에 있었고, 몽고
는 고려의 영역이던 제주도, 함경남도, 평안도, 요동(遼東) 지역을 강제로 접수해 그들 땅에
넣어버렸다. <평안도와 요동에 동녕부(東寧府)를, 함경남도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 제주
도에 탐라총관부(耽羅摠管府)를 설치하여 통치함>
기마병 중심인 몽고에게 말은 꽤 중요한 전투 자원으로 제주도는 말목장으로 아주 휼륭했다.
그러니 몽고의 제주도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으며, 절도 여럿 설치하여 통치수단으로 삼았다.
그런 배경에서 태어난 수정사는 제주도에서 제법 덩치가 있던 절로 서귀포에 있던 법화사(法
華寺)와 함께 제주도 2대 사찰(또는 3대 사찰)로 꼽혔다. 허나 17세기 말 화마(火魔)의 먹이
가 되어 부질없이 사라졌으며, 20세기 이후에 새로운 수정사가 들어서 작게나마 옛 터를 지키
고 있다.

고망물은 늘 물이 풍부하게 나와 동네 사람들의 식수가 되었으며, 왜정(倭政) 때 지금의 모습
으로 정비하고 그 기념비를 세웠다. 여전히 물은 나오고 있으나 개발의 칼질이 주변까지 미치
면서 수질은 장담이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그러니 아무리 갈증이 나더라도 이곳 물은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  세월이 씌워놓은 온갖 주근깨로 범벅이 된 수정천 신축기념비
왜정 때 고망물을 손질한 기념으로 세워진 것으로 옆구리에 조성시기가 쓰여있다.
허나 시대가 시대인지라 서기 대신 왜왕(倭王)의 연호가 쓰여있었고,
1945년 이후 그 부분은 뜯겨졌다.

▲  고망물에서 바라본 한라산(漢拏山)의 위엄
제주도는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모두 한라산이 바라보인다. 한라산은
제주도를 빚은 장본인이자 제주도의 어머니와 같은 큰 존재이다.

▲  광령천과 바다가 만나는 외도 해변 <조공포(朝貢浦)>

고망물에서 광령천을 따라 월대를 거쳐 외도 해변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고려와 조선 때 제주
도에서 조정으로 보내는 공물선(貢物船)이 오가던 포구로 조공포라 불렸는데, 그 조공선은 도
근천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하여 도근천을 조공천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늘에 점점이 떠있는 구름 밑으로 푸르기 그지없는 제주해협이 넓게 펼쳐져 있다. 혹시나 추
자도(楸子島)나 본토가 보이지 않을까 싶어 주름선이 일그러질 정도로 눈에 힘을 주고 살펴봤
으나 역시나 거리 때문인지 보이지가 않는다. 바다 파도는 조금 흥분기를 보이며 뭍을 때리고
있었고 바닷바람은 그리 춥지 않았다.


▲  외도 해변 (대원암 동쪽)
왼쪽에 보이는 돌탑은 대원암에서 만든 것이다.


외도 해변 서쪽에는 천하 유일의 해수관음보살(海水觀音菩薩) 와상(臥像)을 봉안한 대원암이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에 지어진 조그만 절집으로 내가 갔을 때는 와상의 존재도 전혀 몰랐
고, 그곳에는 딱히 손이 가지 않아 해변만 잠깐 기웃거리고 외도초교 정류장으로 나왔다.

* 외도 월대 소재지 : 제주도 제주시 외도2동 230, 240, 241일대


 

  제주해협을 바라보고 있는 조그만 오름(봉우리)
수산봉(水山峰)과 수산리(水山里) 곰솔

▲  수산봉 충혼묘지(모감동) 기점 (제주올레길 16코스)

외도초교 정류장에서 제주도 간선 202번을 타고 하귀를 지나 모감동에서 내렸다. 202번은 제
주터미널에서 제주도 서쪽 일주로(애월, 한림, 고산, 대정, 화순, 중문)를 따라 서귀포 중앙
로터리(서귀포등기소)까지 가는 긴 노선으로 외도부터 다음날 찾아간 천제연폭포(天帝淵瀑布)
까지 쭉 그의 신세를 졌다. (총 5번을 탔음)
이 노선은 달랑 1km를 가던, 40km를 가던, 전 구간을 가던 무조건 기본 요금이며, 제주시내버
스(300, 400번대)와 서귀포시내버스(500, 600번대), 제주시와 서귀포 외곽버스(700번대), 제
주도 장거리 간선버스(200번대)와 무료환승이 가능하다. (100번대 제주도 장거리 급행버스도
환승이 되나 약간의 차액이 나가며 구간요금 있음)

모감동 정류장 남쪽에 야트막한 산이 손짓을 하니 그곳이 수산봉이다. 차량의 왕래가 빈번한
도로(일주서로)를 신호등의 도움을 받아 건너면 수산봉으로 인도하는 길이 마중을 나오는데,
제주올레길16코스(고내~광령, 15.8km)가 그 길을 따라 수산봉 남쪽까지 이어진다. 16코스는
광령에서 17코스로 간판을 갈아 월대와 제주시내로 달려가며, 고내에서는 15코스로 이름을 바
꾸고 한림읍으로 이어진다.


▲  수산봉 북쪽 산길 (1)

수산봉은 해발 122m의 낮은 뫼로 '수산봉오름','수산오름','물메오름','물메' 등의 별칭을 가
지고 있다. 옛날에는 주로 물메라 불렸는데, 이는 봉우리 정상에 못이 있어서 그렇게 불린 것
이다. (물뫼, 물메)
지금은 딱히 특별한 것이 없어보이는 평범한 뒷동산이나 그 태생은 무시무시했던 화산으로 화
산 폭발로 못과 지금의 산이 형성되었다. 이런 식의 산은 제주도에 매우 많다.

조선 때는 정상에 물메봉수를 두었는데 동쪽에 도두봉수, 서쪽으로 고내봉수와 연락을 했으며,
기우제를 지냈던 터가 있어 영산(靈山)으로 추앙을 받기도 했다. 해송이 울창해 솔내음이 그
윽하며 서쪽 자락에는 애월읍 충혼묘지가 닦여져 있어 호국(護國) 신들이 안식을 취하고 있다.

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크게 모감동(충혼묘지), 대원정사, 수산리 곰솔 등 3개가 있는데, 산이
작다보니 어디로 올라가든 10분 안에 정상부에 닿는다. 산 정상은 군부대가 있어 금지된 곳이
되었으며, 봉수대터는 그 안에 있어 관람이 어렵다.
내가 수산봉을 찾은 것은 봉우리보다는 산 남쪽에 있는 수산리 곰솔을 보고자 함이다. 그곳으
로 가려면 수산봉을 거쳐가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  수산봉 북쪽 산길 (2)

▲  수산봉 북쪽 산길 (3)
겨울의 한복판이지만 해송 외에도 많은 나무들이 버젓히 푸른 옷을 걸치고 있어
겨울임을 무색하게 만든다. 그만큼 제주도는 따뜻한 남쪽이다.

▲  수산봉 정상부
바다가 바라보이는 정상부에는 쉼터용 정자와 여러 운동시설이 닦여져 있다.

▲  수산봉 남쪽 숲길

▲  수산리 곰솔 - 천연기념물 441호

수산봉 동남쪽에 곱게 늙은 곰솔이 있다. 수산저수지를 거울로 삼으며 도도한 모습을 드러내
고 있는 그는 높이 11.5m, 나무둘레 4.7m, 수관폭 26m로 400년 정도 묵은 것으로 여겨진다.
나무의 눈덮힌 모습이 마치 백곰이 물을 마시고자 웅크리고 있는 모습처럼 보여 곰솔이라 불
리며 나무 껍질이 검은색이라 흑송(黑松)이라 불리기도 한다. 또한 바닷가에 많이 자라고 있
어 해송이란 이름도 지니고 있다. 지상 2.5m 높이에 원줄기가 잘려진 흔적이 있고, 거기서 4
개의 큰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으며, 호수 쪽 가지가 밑동보다 2m 정도 낮게 물가에 드리워
져 있어 나무의 자태가 곱다.

이 나무는 수산봉 밑에 마을이 지어졌을 때 그 기념으로 심어진 것이라 전하며, 수산리 사람
들은 그를 수호목으로 삼아 애지중지하고 있다. 나무 북서쪽에는 나무에게 당제를 지내는 맞
배지붕 당집이 있다.


▲  물을 향한 마음, 호수로 뻗은 남쪽 가지
물이 많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아니면 갈증이 심했는지도) 나무의 남쪽 가지가
계속 호수로 손을 내밀고는 있으나 호수는 액체라 그의 손을 잡을 만한
것이 없어 서로 뻔히 보임에도 전혀 닿지를 못하고 있다.

▲  수산봉과 곰솔의 잘생긴 거울, 수산저수지

수산저수지는 현무암 피부를 지닌 제주도에서 거의 흔치 않은 저수지이다. 예전에는 유원지가
들어서 한때 시끌벅적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 흔적들이 거의 지워져 고요하다. 다만 그 고요
함을 툭하면 건드리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제주공항으로 착륙하는 비행기들이다.
이곳은 비행기들이 제주국제공항으로 진입하는 길목으로 5분이 멀다하고 지나간다. 비록 소음
이 있긴 하나 형형색색의 비행기들이 날개를 낮추며 들어서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으며, 저렇
게 많은 비행기가 들어오고 그만큼 바깥으로 나가니 제주도의 위엄과 인기를 정말 실감케 한
다. (현재 제주공항은 거의 포화상태임)

수산봉을 넘어온 제주올레길16코스는 저수지 서쪽을 지나 남쪽으로 흘러가며, 나는 곰솔과 당
집 주변만 둘러보고 다시 수산봉 정상부를 거쳐 모감동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  수산리 곰솔에게 제를 지내는
마을 당집

▲  곰솔 맞은편에 자리한 무덤들
현무암으로 무덤 경계를 닦았다.

* 수산봉 소재지 :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
* 수산리 곰솔 소재지 :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 1935


 

♠  오래된 난대림을 간직한 납읍리의 상큼한 언덕
납읍 금산공원(錦山公園)


▲  납읍리 돌담길

모감동 정류장에서 다시 202번을 타고 애월을 지나 한림읍내에서 내렸다. 여기서 제주도 간선
291번(제주터미널~한림읍)으로 환승하여 금산공원을 간직한 납읍리에 두 발을 내린다.
모감동에서 여기까지 바로 가는 292번 버스가 있으나 운행횟수가 너무 적고 시간이 전혀 맞지
않아서 부득이 한림으로 돌아간 것이다. (한림읍에서 납읍리로 가는 버스가 30~40분 간격으로
있음)
애월읍 납읍리(納邑里)는 제주도에서 이름난 양반 마을로 꼽힌다. 14세기에 마을이 조성된 것
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납읍을 중심으로 사방 10리 이내에 곽지, 애월, 고내, 상가, 하가, 어
음, 봉성 등 7개의 마을이 들어서 있어 그것을 아우르는 뜻에서 동네 이름에 읍을 쓴 것으로
보인다.
납읍리 지역에서 처음 사람이 산 곳은 곽남(郭南)으로 여겨진다. 그곳의 처음 이름은 곽지남
동으로 그것을 줄여 곽남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이후 '곰팡이','둥덩이' 등지에 사람들이 터
전을 닦으면서 마을이 확대되었다.

현재 납읍리는 본동, 서동, 중하동 등 3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본동에 나를 이곳으로
부른 금산공원이 있다. 제주시(북제주)에서 가장 감귤이 잘되는 동네로 제주올레길15-A코스(
한림~납읍~고내, 16.5km)가 납읍리와 금산공원 내부를 지난다.


▲  귤나무밭을 가르는 납읍리 돌담길

▲  금산공원 정문

납읍리사무소 정류장(반대편 정류장은 '납읍리')에서 납읍로2길을 따라 9분 정도 들어가면 무
성한 숲을 드러낸 금산공원이 모습을 비춘다. 납읍리사무소에 이르면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양
쪽 길이 비슷하게 생겨서 햇갈리기가 쉽다. (이정표도 없음) 여기서는 무조건 서쪽(진행 방향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된다.
현무암 돌담과 귤나무, 마을 가옥이 잘 어우러진 제주도의 전형적인 시골 마을로 귤나무 가지
에 감귤이 달린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띄어 제주도 한복판에 왔음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금산공원은 납읍리의 허파이자 아름다운 뒷동산으로 33,980㎡(약 13,000여 평) 면적에 후박나
무와 생달나무, 종가시나무, 모밀잣밤나무, 동백나무, 식나무, 아왜나무, 자금우, 마삭줄, 송
이 등 200여 종의 식물이 우거진 상록수림(常綠樹林)이다. 다른 말로는 난대림(暖帶林)이라고
도 한다. 제주시 서부에서 평지에 남아있는 유일한 상록수림으로 온난한 기후에 적합한 식물
들이 강인한 협동심을 보이며 1년 내내 삼삼한 모습을 자랑한다.

허나 금산공원은 원래부터 숲동산은 아니었다. 옛날에는 돌만 가득한 돌언덕으로 볼품이 없었
다고 하며, 그 언덕 건너편으로 금악봉(430m)이 훤히 바라보여 마을에 화재가 잦았다고 한다.
그래서 비보풍수(裨補風水)의 일환으로 금악봉이 보이지 않게끔 돌언덕에 나무를 심었고 마을
제사를 지내는 포제단을 담으면서 마을의 성역으로 부상하게 된다. 성역을 품은 숲은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것이 법칙이라, 마을에서는 나무 벌채나 식물 채취를 엄격히 금하여 숲이 마음
놓고 자라게끔 배려했으며, 숲 주위로 돌담을 둘러 속세와 숲의 경계를 분명히 하였다.
처음에는 숲 벌채를 금한다는 뜻으로 금산(禁山)이라 불렸으나 나중에 이름을 순화시켜 비단
뫼를 뜻하는 금산(錦山)으로 한자를 갈았다고 한다.

공원을 덮고 있는 숲은 '납읍리 난대림'이란 이름으로 천연기념물 375호의 지위를 누리고 있
으며(예전에는 천연기념물 182-4호였음) 공원 전체가 국가 천연기념물 보호 구역이라 지정된
탐방로 외에는 접근을 금하고 있다. 아무리 공원 감독이 느슨하다고 해도 자연보호를 위해 탐
방로를 벗어나거나 식물을 괴롭히는 행동, 나뭇잎과 식물을 따는 행위는 절대로 해서는 안된
다.


▲  금산공원 정문 갈림길

원시림과 같은 공원으로 들어서면 길은 3갈래로 갈린다. 넓은 흙길로 된 중앙 숲길은 이곳의
성역인 포제청으로 이어지며, 서쪽 숲길과 동쪽 숲길은 흙길과 나무데크길이 섞여있다. 어느
길로 가든 남쪽에서 모두 만나며, 다시 정문으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공원으로 들어서는 문은
정문 1개 뿐이며, 공원 밖에는 경작지가 펼쳐져 있다. 즉 밭 한복판에 숲이 있는 것이다.


▲  송석대(松石臺)

정문 동쪽(진행 방향 왼쪽)에는 송석대란 높은 대가 있다. 이곳은 정헌 김용징(靜軒 金龍徵)
이 후학을 가르치던 곳으로 1850년대 말에 그의 제자들이 지었다. 구릉지를 다듬어 3개 층으
로 겹돌을 쌓아 터를 다진 다음 반지름 4.5m의 원형 정자를 닦았는데, 현재 정자는 없고 완전
히 개방된 공간으로 있으며 매년 여름마다 애월문학회에서 시낭송회와 출판기념회를 열고 있
어 문학 공간의 기능은 녹슬지 않았다.


▲  인상정(仁庠亭)

송석대 맞은편(정문 서쪽)에는 인상정이라 불리는 공간이 있다. 이곳은 천문에 능했던 현일문
(玄日文)이 공부를 했던 곳으로 1889년 그의 후학들이 구릉지를 다지고 인상정이라 불리는 공
간을 지었다. 송석대처럼 정자가 없는 그냥 열린 공간으로 그 한복판에 오래된 나무가 자리하
여 고품격의 그늘을 선사한다.


▲  난대림 속에 나를 숨기다 (공원 서쪽 숲길)
아무리 따스한 남쪽이라고 해도 동남아나 아프리카가 아닌 이상은 이렇게까지
푸른 잎을 대놓고 드러내며 무성하기가 쉽지가 않은데 이곳은 계절의
변화도 안중에 없는 별천지 같은 곳이다.

▲  밀림처럼 우거진 서쪽 숲길 (1)

▲  밀림처럼 우거진 서쪽 숲길 (2)

통행 편의와 식물 보호를 위해 서쪽 숲길과 동쪽 숲길 일부에 나무데크길을 닦았다.


▲  정낭이 걸쳐진 포제단(酺祭壇) 출입구

금산공원 한복판에는 돌담에 둘러싸인 포제단이 있다. 이곳은 납읍리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는
마을의 성역으로 서쪽에 제주도 스타일의 정낭이 있는 출입구가 있어 그곳으로 들어서면 된다.
허나 제삿날을 제외하면 정낭이 모두 걸쳐져 있어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다행히 정낭이
그리 높지가 않아서 실례를 무릅쓰고 살짝 안으로 발을 들였다.

▲  포제청 건물
제사 때를 제외하고는 늘 적적한 모습이다.

▲  난대림에 둘러싸인 포제단 뜨락
저 끝부분에 3개의 단이 있다.


이곳에서 지내는 제사를 '납읍리 포제','납읍리 마을제'라고 하는데, 남자들이 행하는 유교적
마을제인 포제와 여자들이 하는 무속 마을제인 당굿을 같이 벌이고 있다. 예전에는 음력 정월
초정일(初丁日)에 춘제(春祭)를 지냈고, 7월 초정일에 추제(秋祭)를 지냈으나 20세기 중반 이
후부터는 춘제만 지내고 있다. 그리고 마을에 일이 생겨서 정월 초정일에 제를 지내지 못하는
경우, 그 다음 중정일(中丁日)에 제를 지내는 융통성도 가지고 있다.
포제단으로 들어서면 남쪽(오른쪽)에 포제청이란 기와집이 있다. 이곳은 제를 지내고 준비하
는 건물로 원래는 초가였으나 최근에 기와집으로 손질했다. 북쪽(왼쪽)에는 3개의 조그만 석
단(石壇)이 누워있는데 이들 단은 손님신을 봉안한 포신단(酺神壇), 마을의 수호신을 봉안한
토신단(土神壇), 홍역이나 마마신을 봉안한 서신단(西神壇)이다.
예전에는 포신, 토신, 서신에게 모두 제를 올렸으나 홍역과 마마가 사실상 사라진 상태라 포
신과 토신에게만 제삿밥을 올린다.

이곳 제사는 '납읍리 마을제'란 이름으로 제주도 지방무형문화재 6호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  현무암으로 닦여진 3개의 제단 (서신단, 토신단, 포신단)
제단 앞에는 술이나 향로 등을 두는 조그만 돌이 있고, 단 위에는 위패 역할을
하는 키 작은 돌이 세워져 있다.

▲  금산공원 동쪽 숲길 (1)

▲  금산공원 동쪽 숲길 (2)

▲  주황색 피부를 드러낸 납읍리 감귤

금산공원을 1바퀴 둘러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서쪽 숲길로 들어서 포제청을 찍고 동쪽 숲
길로 나왔으니 공원의 공개된 공간은 모두 본 셈이다. (통제구역은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음)

이렇게 금산공원과의 인연을 마무리 짓고 다음 답사지로 가고자 제주도 간선 291번을 타고 한
림읍으로 나왔다. 이후 내용은 분량상 별도의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 금산공원 소재지 :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1457


* 까페(동호회)에 올린 글은 공개일 기준으로 1주까지만 수정,보완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
  집니다. <단 블로그와 원본은 1달까지임>
* 본글의 내용과 사진을 퍼갈 때는 반드시 그 출처와 원작자 모두를 표시해주세요.
* 글씨 크기는 까페와 블로그는 10~12pt, 원본은 12pt입니다.(12pt기준으로 작성됨)
* 오타나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즉시 댓글이나 쪽지 등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외부링크 문제로 사진이 안뜨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모니터 크기와 컴퓨터 사양에 따라 글이 조금 이상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 공개일 - 2019년 3월 25일부터
* 글을 보셨으면 그냥 가지들 마시구 공감이나 추천을 흔쾌히 눌러주시거나 댓글 몇 자라도
 
달아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Copyright (C) 2019 Pak Yung(박융), All rights reserved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