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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9 무등산 뒷쪽에 깃든 호남 가사문학의 성지 ~ 광주 환벽당, 취가정, 담양 식영정
- 2022.01.18 광주 무등산옛길3구간, 충효동, 광주호 겨울 나들이 (풍암정, 원효계곡, 충효동요지, 충효동 왕버들군, 광주호호수생태원)
- 2020.03.31 광주의 남쪽 변두리, 대촌동~칠석동 둘러보기 (괘고정수, 고원희가옥, 고싸움놀이, 칠석동은행나무, 부용정)
- 2011.10.07 가을맞이 산사 나들이 ~ 광주 무등산 원효사 1
- 2005.08.03 # 봄을 찾아 떠났던 남도기행 1편 ~ 광주지역 (월계동 장고분 / 무양서원) 1
무등산 뒷쪽에 깃든 호남 가사문학의 성지 ~ 광주 환벽당, 취가정, 담양 식영정
' 무등산 뒷쪽에 깃든 호남 가사문학의 성지,
광주 환벽당, 취가정, 담양 식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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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벽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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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가정 |
▲ 식영정 |
겨울 제국이 한참 위엄을 떨치던 새해의 첫 무렵, 덜 추운 날을 가려서 호남 가사문학의 |
♠ 사촌 김윤제의 별서로 송강 정철이 그의 후광을 받으며 몸을 일으켰던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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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호의 동쪽 끝이자
광주와 담양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충효교 남쪽 언덕에 환벽당이 살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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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소는 송강 정철(松江
鄭澈, 1536~1593)이 우연한 물놀이로 사촌 김윤제(沙村 金允悌, 1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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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짝 열린 환벽당 정문(대문) |
▲ 환벽당으로 인도하는 돌계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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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벽당은 충효동(충효마을)
출신인 사촌 김윤제가 1540년대에 지은 별서(別墅, 별장)이다.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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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남쪽에서 바라본 환벽당 |
▲ 환벽당의 뒷모습 |
환벽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방 2칸과 마루를 지니고 있다. 처음에는 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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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씨가 몸을 푸는 것 같은 |
▲ 활짝 열린 방문과 주인이 가고 없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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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벽당을 받쳐들고 있는
석축 밑에는 3단으로 이루어진 화계(花階)와 네모난 연못이 누워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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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령 장군의 원통한 넋을 기리고자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정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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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한 풍경의 환벽당을 둘러보고 동남쪽으로 향하는 '환벽당길'을 3분 정도 들어가면 취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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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가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방 1칸과 툇마루를 지니고 있다. 6.25때 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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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운회가 쓴 취가정 현판의 위엄 |
▲ 취가정 상량문(上樑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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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 임억령의 별서이자 정철이 지은 성산별곡의 무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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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벽당과 쌍벽이자 콤비를 이루고 있는 식영정은
1560년에 김성원이 장인인 석천 임억령(林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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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서각(藏書閣)과 고직사(庫直舍) |
▲ '송강 정철 가사의 터' 비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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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마크가 그려진 성산사 정문(삼문) |
▲ 성산사(星山祠) |
성산사는 석천 임억령, 서창 조흡, 정철의 5대손으로 1721년부터 식영정을 지켜온 소은 정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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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면 볼수록 정감이 넘치는 식영정의 뒷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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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무등산 겨울 나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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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등산 옛길 3구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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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으로 얼룩졌던 묵은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해가 또다시 밝았다. 새해만 되면 심리 |
♠ 무등산 옛길 3구간과 풍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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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옛길은
광주광역시가 무등산에 닦은 도보길로 무등산 북쪽 자락의 여러 길을
잇고 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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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후재의 주인인 사촌
김윤제(沙村 金允悌, 1501~1572)는 그 유명한 송강 정철(鄭澈)의 스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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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후재를 지나
편백림으로 들어서면 원효계곡 상류에서 내려온 무등산 의병길(제철유적지~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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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암정3거리(풍암정
입구)에서
잠시 곧게 뻗은 길을 버리고 풍암정으로 인도하는 오른쪽(남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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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에서 풍암정으로
가려면 반드시 원효계곡을 가르는 징검다리를 건너야 된다. 큼지막한 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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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암정은
원효계곡(元曉溪谷)
하류에서 가장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해 있다. 좌/우 2칸, 총 4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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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에서 바라본 풍암정 |
▲ 풍암정사(楓巖精舍) 현판 |
뒤늦게 형들의 공을
인정한 조정은 그를 달래며 달콤한 벼슬을 주려고 했으나 모두 쿨하게 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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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암정은 '풍암정사'란 별칭도 가지고 있는데, 김덕보와 친분이 있는 문인(이안눌, 안방준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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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이나 늦봄에 왔더라면 정자 마루에 벌러덩 누워 낮잠을 청했을 것이다. 무등산 산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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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암제를 지나면 무등산국립공원 경계선을 알리는 안내문이 나온다. 그 안내문의 서쪽(풍암정 |
♠
무등산의 흙으로 분청사기와 백자를 빚었던 옛 가마터 유적 |
풍암제에서 동쪽(충효동 방면)으로 10분 정도를 가면 무등산 분청사기전시실이 마중을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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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전시실은 독립적인 박물관이 아닌 광주역사민속박물관 소속의 전시실이다. <광주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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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전시실 옆구리에는 충효동 2호 가마터를 품은 가마터 보호각이 있다. 지금이야 누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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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효동 광주호 주변 명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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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동 요지를 둘러보고 바로 북쪽에 있는 금곡마을로 이동했다. 여기서 환벽당과 취가정, 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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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의 포로가 되버린 채, 개골(皆骨) |
광주호 호수생태원 진입광장 맞은편에 장대한 세월을 머금은 왕버들 3형제가 있다. 이들은 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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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버들 곁에는
기와집으로 된 정려비각이 자리해 있다. 이곳 출신인 김덕령과 그의 부인(흥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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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정원은 광주의 대표 명물인 무등산 수박을 상징화하여 닦은 조촐한 공간이다. 대나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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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와 전남 담양(潭陽) 경계에 자리한 광주호는 영산강(榮山江)의 주요 지류인 고서천(古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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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생태원은 햇님 퇴근 시간이 임박해옴에 따라 간단히 1바퀴 둘러보고 마무리를 지었다. 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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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남쪽 변두리, 대촌동~칠석동 둘러보기 (괘고정수, 고원희가옥, 고싸움놀이, 칠석동은행나무, 부용정)
~~~ 봄맞이 광주 대촌동, 칠석동 나들이 ~~~
▲ 칠석동 은행나무
겨울 제국이 드디어 무너지고 봄이 천하 평정에 열을 올리던 3월의 끝 무렵, 남도의 중심 |
♠ 광산이씨 이선제(李先齊)의 후손과 생사고락을 같이한 600년 묵은 |
포충사 북쪽 만산마을 입구에는 괘고정수라 불리는 거대한 나무가 있다. 남부 지방은 산수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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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석동(漆石洞)에서 만난 명소들 | |
대촌동 남쪽에 자리한 칠석동은 옻돌마을이라 불린다. 이 땅에 흔한 시골 마을의 하나로 이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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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싸움놀이테마파크(이하 고싸움공원) 동쪽에 자리한 부용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 | |
▲ 고싸움놀이테마파크(공원) 표석 |
▲ 돌담 안에 담긴 널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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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싸움공원 남쪽에는 앞서 괘고정수를 능가하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자리해 있다. 덩치가 얼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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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아직은 정정하다고 해도 늙은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600년 이상의 노구를 지탱하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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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고싸움놀이4D영상체험관(이하 영상체험관)에 잠시 발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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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맞이 산사 나들이 ~ 광주 무등산 원효사
' 광주 무등산 원효사(無等山 元曉寺) '
▲ 원효암에서 바라본 무등산 동쪽 줄기
♠ 작지만 알차 보이는 원효사 둘러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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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외부에서 절 경내로 들어서려면 2층 규모의 누각 비슷한 건물을 지나야 되는데, 원효사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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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산조당에 담겨진 만수사 동종(萬壽寺銅鍾)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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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운 인상의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로 부처의 경호원인 금강역사(金剛力士) 2인이 서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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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6.25전쟁의 처참한 흔적 ~ 대웅전 좌측 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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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정에는 달고 맛있는 이슬과도 같은 옥계수가 콸콸 쏟아져 나와 중생의 목마름을 제대로 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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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여 작지만 알찬 원효사 경내를 모두 둘러보았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곳의 오랜 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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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남쪽 변두리, 대촌동~칠석동 둘러보기 (괘고정수, 고원희가옥, 고싸움놀이, 칠석동은행나무, 부용정) (0) | 2020.03.31 |
# 봄을 찾아 떠났던 남도기행 1편 ~ 광주지역 (월계동 장고분 / 무양서원) (1) | 2005.08.03 |
# 봄을 찾아 떠났던 남도기행 1편 ~ 광주지역 (월계동 장고분 / 무양서원)
' 봄을 찾아 떠났던 남도 기행 (2005년 4월 5일)'
'상편 ― 신도시에 숨겨져 있는 옛 유적들 (광주광역시)'
♠ prologue
길고 긴 겨울이 지나고 이제 바야흐로 2005년의 봄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러나 춘분(春分)이 지나고 4월에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겨울의 잔여 세력들이 다시
겨울의 제국을 꿈꾸며 계속해서 반란을 부리는 통에 정작 봄은 우리 곁으로 다가오지도 못하고
저 멀리서 맴돌 뿐이다.
그러다 보니 따뜻해야 할 시기임에도 여전히 두꺼운 외투를 입고 다녀야 됨은 물론 3월 중~하순까지
눈이 버젓히 내리고 꽃과 나무의 잎이 피어날 시기임에도 좀처럼 그들이 피어나지를 못하니
이러다가는 정말 봄이란 존재가 완전히 망각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이상하리 만큼 추운 날씨 속에서도 식목일은 바로 다음 날로 성큼 다가왔고 그 날, 남도(南道)라
불리는 광주와 전라도 지역을 오랜만에 가보기로 하였다.
4월 4일 월요일 저녁, 일과 공부로 파김치가 되버린 몸뚱아리를 억지로 이끌며 사람들로 가득한
천안(天安) 방면 전철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간다.
천안역에 이르러서 0시 14분에 광주(光州)로 가는 입석표를 사들고 조용히 그 시간을 기다리니
이윽고 4월 5일 새벽 0시 15분, 용산을 출발하여 광주로 가는 심야 무궁화호 열차가 천안역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수면실과 다름 없었던 객차 안에서 입석으로 가면서 주요 역을 정차할 때마다 틈틈히 빈자리를
노렸으나 자리가 좀처럼 빠지질 않는다. 김제를 지나서야 겨우 자리 하나를 차지하여 앉아
갈 수가 있었지.
새벽 3시 24분, 열차의 마지막 역인 광주역에 도착, 닭이 울 때까지 역사(驛舍) 맞이방에서
자리 2개를 떡하니 차지하며 약 3시간 동안 열심히 잠을 청했다. 얼마나 잠이 잘 오던지 머리를
의자에 기대자마자 바로 잠이 들어버렸지. 얼마나 피곤했으면 그렇게 잠이 들었을까..
어느덧 식목일의 여명은 밝아오고 아침 7시 경에 잠에서 깨어나 부근 편의점에서 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는 전날(4일) 계획했던 식목일 답사 일정에 따라 제일 먼저 첨단지구라 불리는 광주서북쪽의
신도시를 찾아갔다.
첨단지구에는 세상에 알려지기를 꺼려하는 문화유산 2곳이 숨어 있는데 하나는 서원(書院),
다른 하나는 특이한 구조의 오래된 무덤들로 내가 그 곳을 선택한 이유는 별로 특별한 것은 없다.
그냥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이니까..
* 이번 답사 코스
' 서울 → 천안역 → 광주역 → 무양서원 → 월계동 장고분 → 담양읍 → 관어공원,관어정 →
관방제림, 담양향교, 죽녹원 입구 → 순창읍 → 순창향교/단성전 → 순창객사/정려비와 효자비 →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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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시 속에 자리한 고색창연한 기와집 ~ 무양서원(武陽書院)
첨단지구의 서남쪽 월계동에 있는 무양공원, 그 공원의 서쪽자락 양지 바른 곳에는 '무양서원'이라
불리는 조그만 서원이 자리해 있다.
이 서원은 1927년, 탐진최씨(耽津崔氏) 문중에서 유림(儒林)들의 도움을 받아 세웠으며 광주 지역
유교교육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서원의 이름인 무양(武陽)은 광주의 옛 이름인 무진주(武珍州)의 양지(볕)에 있다는 뜻인 무진지양
(武珍之陽)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곳은 탐진최씨의 시조(始祖)인 최사전(崔思全, 고려 중기 때 인물)을 비롯하여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여진족을 정벌했던 최윤덕(崔潤德) 장군과 금남 최부(錦南 崔溥) 등 문중의 유명한 인물 3명과
광주권 출신 인물로 미암일기(眉巖日記)의 저자(著者)인 미암 유희춘(眉巖 柳希春), 충렬공 나덕헌
(忠烈公 羅德憲) 등을 배향(配享)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陰曆) 9월 6일에 제사를 지낸다.
서원에는 사당인 무양사(武陽祠)와 강당으로 쓰이는 이택당(以澤堂)을 비롯하여 성지재(誠之齋),
낙호재(樂乎齋) 등의 서재가 있으며, 현재 탐진최씨 문중에서 이 서원을 소유, 관리하고 있다.
무양서원은 광주광역시 지방문화재자료 3호.
※ 무양서원 찾아가기 (2005년 8월 현재)
* 광주시내버스 1,25,35,88,120,771번 이용, 무양서원 입구에서 하차하여 도보 3분
* 서원 앞에 조그만 주차장이 있다.
▲ 무양서원 뒷쪽 담장 | |
▲ 담장너머에서 바라본 무양서원 | |
▲ 서원 동쪽에 있는 제단(祭壇) | |
▲ 조촐한 분위기의 제단(祭壇) | |
◀ 탐진최씨 선조 제단에 세워진 비석 | |
▲ 무양서원 이택당(以澤堂) | |
▲ 이택당(以澤堂)에 걸려있는 '武陽書院' 현판 | |
![]() | ◀서원 내부로 들어서는 합인문(合仁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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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장 밖에서 바라본 무양서원 |
◀서원 앞에 높이 자라난 나무 - | |
![]() | ◀ 서원 안에 피어난 동백꽃들 |
▲ 무양공원에서 만난 개나리꽃 |
♠ 옛 백제, 마한사람들의 무덤, 1500년 전의 수수께끼를 간직한 체
말 없이 누워있는 특이한 형태의 무덤 ~ 월계동 장고분(長鼓墳)
무양서원을 둘러보고 다시 버스가 다니는 대로(大路)로 나와서 비아동 쪽으로 3분 정도 걷다보면
'장고분4거리'라 불리는 4거리가 나온다.
그 사거리 북서쪽에 제법 넓은 공원이 하나 있는데 그 공원에 특이한 모습의 거대한 고분(古墳) 2기가
따사로운 봄햇살을 즐기며 누워있으니, 바로 장고분이라 불리는 옛 무덤들이다.
장고분에서 장고(長鼓)는 우리 전통 음악에 많이 등장하는 장고를 말하는데 이 무덤이 마치 그 장고와
비슷하다 하여 후대 사람들은 이를 '장고분'.'장고형고분'이라 부르고 있고 고분 주변에 있던 마을
(지금은 첨단지구 신도시로 변해버림) 이름 또한 '장구마을'이라 하였다,
이 고분의 조성시기는 발굴조사결과 대략 4~5세기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 시기는 백제(百濟)가
전라남도에 남아 있던 마한연맹(馬韓聯盟)의 잔여세력을 때려잡고 국력을 대내외로 급속히 팽창시키던
시기였다.
이 고분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아직 속시원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현재 그 의문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대체로 (나의 의견도 포함)
1. 이 지역을 다스렸던 마한연맹의 어느 소국(小國)의 지배층 무덤
2. 백제에 투항한 이 지역 지배층의 무덤,
3. 백제정부에서 지방관리로 파견한 왕족, 귀족들의 무덤
4. 백제정부의 명령 혹은 필요에 의해 소환된 왜인(倭人, 여기에는 왜열도로 진출한 백제인, 그의
후손들도 포함)들의 무덤 <KBS 역사스페셜에서 주장한 내용>
5. 전남지역을 다스렸던 왜국 관리의 무덤 (왜국 사학자 다수가 주장하는 내용..)
이 무덤은 네모와 둥그런 모습이 혼합되어 있는 형태로 이런 형태의 무덤은 오직 영산강(榮山江) 유역―
광주, 함평, 나주, 해남―에서만 발견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14기 정도가 발견되었다.
이런 무덤 양식은 고대(古代) 왜국(倭國)에서 주류를 이루며 만들어졌던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과
비슷한 양식으로 이를 두고 왜국에서는 "전방후원분은 우리 왜국만의 독특한 무덤 형태이다.
한반도 남부 지방에서 발견되는 이들 무덤으로 미루어 볼 때 왜국 야마토조정이 일찍이 한반도의
남부지방을 지배했음(임나일본부)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심지어
왜국 역사교과서에도 이런 내용을 실었다고 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을 뿐이다.
그러나 4~5세기 이전 왜국의 수준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한반도 남부지역으로 진출이 불가능하며 오히려
백제(百濟), 가야(伽倻) 사람들이 대거 왜열도로 진출하여 기존의 토착민을 때려잡고 그들을 자신들에
맞게 동화시키면서 왜열도를 다스리던 시기라 할 수가 있다.
현재 왜왕(倭王)도 백제와 가야에서 건너간 사람들의 후손이라 할 수 있으며 이들 나라(백제, 가야..)
에서 건너간 사람들 중에 자신의 힘으로 혹은 그들 나라의 지원으로 왜왕이 된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영산강 유역에 남아 있는 이들 장고분의 기원은 현재로써는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에 주류를 이루며
만들어졌던 둥그런 무덤(圓墳)과 네모난 무덤(方墳)의 형태가 혼합되어 만들어진 것이라 하며 그것이
백제와 가야 등이 왜열도를 점유(占有)해 가는 과정에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혼합형태는 이상하게도 왜국에서 크게 유행, 발전하면서 왜왕(倭王)과 지배층들의 무덤으로 많이
만들어졌다,
이 무덤은 마한, 가야의 무덤 양식이 왜국으로 전파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왜정(倭政) 때 왜인들이
도굴하여 파괴한 것을 1990년대에 전남대에서 대대적인 발굴조사를 벌였는데 이 때 금귀고리, 쇠화살촉,
여러 모습의 토기조각, 유리구슬, 동그란 모습의 토기 등 유물 수십 점이 1500년의 기나긴 잠을 깨고
우리에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전남대 박물관에 있음)
지금의 고분은 발굴 이후에 복원되었으며 첨단지구 신도시 조성에 따라 무덤을 중심으로 공원이
조성되면서 이 지역 사람들의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월계동 장고분은 광주 지방기념물 20호로 지정되었다.
※ 월계동 장고분 찾아가기
* 무양서원에서 도보 5분 거리,
* 광주시내버스 1,25,35,88,120,771번 이용, 라인아파트에서 하차,
* 광주 광산구마을버스 75번 이용, 장고분4거리에서 하차,
* 주차장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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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고분 공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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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워있는 장고분(동쪽 무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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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고분의 서쪽 무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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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고분 동쪽 무덤의 주구(周構)와 갈대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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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고분 동쪽 무덤의 주구와 갈대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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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고분 서쪽 무덤의 북쪽 주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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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고분 서쪽 무덤의 남쪽 주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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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고분 서쪽 무덤의 모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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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고분 서쪽 무덤 석실(石室) 입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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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고분의 석실 내부를 구경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인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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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석실로 가는 길을 찾았다. |
![]() | ◀ 드디어 고분의 석실입구에 도착했다.
|
![]() | ◀ 무덤 안을 살펴보자.. (1) |
▲ 무덤 안을 살펴보자 (2) |
이렇게 월계동 장고분을 약 30분 동안 둘러보니 시간은 어느덧 10시가 넘어버렸다.
첨단지구에서 이렇게 목적지 2곳을 별다른 헤매임 없이 둘러보게 되어 참으로 뿌듯하다.
첨단지구에서의 볼 일을 이렇게 마치고 이제 어디로 가야 될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본다.
극락강역 부근에 있는 '풍영정'이란 조선시대 정자(亭子)를 찾아갈까 아니면 소쇄원(瀟灑園),
광주호 지역을 갈까? 아니면 계획대로 담양 관방제림으로 갈까? 결국 결론은 나와버렸다.
담양 관방제림으로 가기로..
~~ 아쉽지만 상편은 여기서 끝. ~~
* 상편 작성 시작일 - 2005년 4월 5일
* 상편 작성 완료일 - 2005년 4월 25일
* 상편 수정,보완,편집 ~ 2005년 4월 25일 ~ 8월 3일
* 공개일 - 2005년 8월 3일부터
* 중,하편은 각각 8월 4일에 공개할 예정
Copyright (C) 2005 by Park Yung,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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