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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3.13 늦겨울 무진장(무주,장수) 나들이
- 2008.11.14 논개 누님을 만나다 ~ 장수 의암사(논개사당)
- 2008.03.08 장수 논개사당(의암사) 주변
- 2008.03.02 장수향교
- 2006.08.28 [전북/전주] 조선왕조의 고향, 전주 - 오목대 / 전주8경 한벽청연의 현장, 한벽당 1
- 2006.08.27 [전북/임실] 오수 의견비 / 관촌 사선대, 운서정
- 2006.07.04 임실 오수 의견비, 사선대
늦겨울 무진장(무주,장수) 나들이
~~~~~ 전북 무진장 늦겨울 나들이 ~~~~~
▲ 꽁꽁 얼어붙은 무주 남대천 (남쪽↔북쪽)
(남쪽 한편에는 2008년에 개장된 얼음썰매장이 있다)
전라도의 지붕이라 일컬어지는 진안고원(鎭安高原)에는 무주(茂朱), 진안(鎭安), 장수(長水)
3개의 고을이 자리해 있다. 이들 지역은 간단히 줄여 '무진장'으로 통하는데 끝이 없을 정도
로 많다는 뜻의 명사 무진장(無盡藏)과는 별개의 단어이다.
'대전~통영고속도로'와 '익산~장수고속도로'의 등장으로 서울에서 3시간 정도면 거뜬히 닿는
이들 지역은 2003년 이후, 오랫동안 인연이 없다가, 2008년 억지로 인연을 만들어 발을 들이
게 되었다.
▲ 굳게 빗장을 걸어잠근 무주향교 | ▲ 외삼문과 달리 활짝 열려진 대성전 앞 |
♠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향교 건축물 ~ 임진왜란 때도 피해를 | |
장수향교는 조선시대에 세워진 지방 중등교육기관이다. 얼핏 보면 앞에 언급한 무주향교 등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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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 입구에는 보기만 해도 정덜미가 뚝 떨어질 것 같은 홍살문과 높고 낮은 사람 모두 말에서 | |
▲ 외삼문 앞뜰에 세워진 비석들 | ▲ 향교를 지키고 관리하는 향교재단 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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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석은 1746년(영조 22년) 장수현감 정주석( | |
그의 꾸짖음에 단단히 쫄은 왜장은 그 용기에 감복하여 '이곳은 성전이니 침범하지 말라'는 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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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복비 옆 문으로 들어서면 고요함에 사로 잠긴 향교 경내가 펼쳐진다. 제일 먼저 나그네를 |
▲ 향교의 서재(西齋)인 진덕재(進德齋) | ▲ 서재를 마주보고 있는 동재(東齋) |
◀ 사마재(司馬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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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09년 3월 12일부터 / 최종 수정 - 2009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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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누님을 만나다 ~ 장수 의암사(논개사당)
♠ 논개 누님을 만나다 ~ 장수 의암사(義巖祠) ♠
▲ 친일화가 김은호가 그려 바친 의암 논개의 영정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고
불붙은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꽃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수주 변영로(樹洲 卞榮魯)
|
때는 1593년 7월 7월, 우리나라 3대 누각의 하나로 명성이 높은 진주 촉석루(矗石樓)에서 왜장(倭
將)들의 진주성 점령기념 승전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강제 징발된 기생들을 하나씩 옆구리에 끼며 부어라 마셔라, 춤추자~ 흥이 오른 왜장들 중에는 진
주성 공격의 주장(主將)인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도 있었다.
술잔을 들이키며 취기를 즐기는 게야무라는 문득 강가를 바라본 순간 저도 모르게 넋을 잃고 말았
다. 강가에는 왠 이름모를 아리따운 여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에
게 단단히 눈이 도망간 게야무라는 술취한 몸뚱이를 간신히 겨누며 강가로 내려갔다. 논개는 계속
웃음을 띄워 보내며 그를 유혹하고, 게야무라는 콩닥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비틀비틀 그녀에게
다가선다.
논개는 가락지를 낀 팔을 벌려 그를 안으려고 하고, 그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이게 왠 떡이냐 싶어
군침을 삼키며 그녀에게 안기려 든다.
떡 안긴 순간, 논개는 그를 힘껏 껴안으며 도도히 흐르는 남강에 몸을 던졌다. 그녀는 왜장의 목
숨을 선물로 진주성 싸움에서 숨져간 군사와 백성, 그리고 남편 최경회의 곁으로 떠났던 것이다.
이상이 코 흘리게 어린애도 줄줄 외고 있다는 논개의 순절 부분이다.
논개는 임진왜란이 낳은 수많은 영웅 중의 하나이다. 비록 칼과 활을 들고 싸우진 않았고, 남자가
아닌 연약한 여인네였지만, 왜군과의 싸움에서 숨져간 이들의 복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던
진 논개의 의기와 충절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는다.
이순신(李純臣)과 더불어 삼척동자도 다 아는 대중적인 위인~ 논개, 하지만 논개의 성씨를 비롯하
여 그녀의 생애, 신분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너무 적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진주성에서 몸을
던진 부분만 너무 크게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평양 기생 계월향(桂月香)과 더불어 임진왜란 시절, 조선 여인의 의기를 잘 보여준 논개는 장수지
역 3명의 의인(義人)을 뜻하는 장수 3절(節)의 하나이자, 장수 고을이 낳은 여걸(女傑)로 장수 사
람들의 자랑이다.
장수 고을에는 논개의 흔적이 곳곳에 서려있다. 장계면 대곡리에는 그녀가 태어나고 살았던 생가
가 복원되어 있고, 장수군청 앞에는 그녀가 심었다고 전하는 '의암송'이란 소나무가무럭무럭 자
라고 있다. 또한 읍내 동남쪽에는 그녀의 위패를 모신 사당, 의암사(義巖祠)가 있다.
그중에서 내가 문을 두드린 곳은 의암사로 이미 2003년 1월에 다녀간 바가 있다. 그럼 5년여 만에
다시 찾은 장수 의암사를 둘러봄에 앞서 논개 누님의 생애를 먼저 짚어보도록 하자.
♠ 의암 주논개(朱論介, 1574 ~ 1593)의 생애
충의의 고장 장수가 낳은 인물, 논개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621년 어우당 유몽인(於于堂 柳夢 寅)이 저술한 '어우야담(於于野談)'이다. 하지만 논개의 집안이나 생장과정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었다. 18세기 초, 진주 사람들은 논개의 순절을 널리 알리고 기려줄 것을 나라에 건의했다. 이에 조 정에서는 경상우병영(慶尙右兵營)에 논개의 후손을 찾아 포상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우병영은 영남 일대에 관문(官文)을 띄워 후손을 수소문했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논개는 후손이 없음) 그 후, 논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국가차원에서 논개에 대한 조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에 이른다. 우선 18세기 중반 권적(權適)의 '경상우병사 증좌찬성 최공시장<慶尙右兵使 贈左贊成 崔公 諡狀 , 여기서 최공은 최경회(崔慶會)>'을 비롯하여,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호남읍지(湖南邑誌) ','동감강목(東鑑綱目)','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일휴당실기(日休堂實記)','매천야록(梅泉野 錄)' 등의 여러 문헌과 장수, 진주 지역에 전해오는 논개 관련 이야기들, 그리고 노공(老公)들 의 증언을 통해 논개에 대한 많은 정보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 논개의 탄생 논개는 1574년 9월 3일 밤, 지금의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주달문(朱達文)의 외동 딸로 태어났다. 주달문은 선비로 마을에서 서당을 꾸리고 있었으며 부인은 밀양박씨이다. 논개의 집안은 '신안주씨(新安朱氏)'로 넉넉하진 못했지만 기풍이 서린 양반가의 집안이었다. 일부에서는 논개가 기생 출신으로 알고들 있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논개는 특이하게도 4갑술(갑술년, 갑술월, 갑술일, 갑술시)의 사주를 타고 태어났다고 한다. 갑 술년은 개의 해인데, 월과 일, 시(時)까지 모두 개를 상징하는 시간에 세상에 나온 것이다. 주달문은 딸의 사주를 살펴보고는 장차 크게 될 인물이라며 크게 기뻐했다. 딸에게 어여쁜 이름 을 지어줄 만도 하지만 그는 계집의 이름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논개'란 이름을 지어주었 다. 그 이유는 딸을 술시에 낳았으니, 개를 낳은(놓은) 것과 같고, 그것을 거꾸로 읽으면 '놓은 개'가 된다. '놓은개'를 빨리 발음하면 '논개'로 발음되니 그 발음 그대로 이름을 삼은 것이다. ♣ 순탄치 않은 논개의 어린 시절 논개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비범했으며 효행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녀의 집안은 그런데 로 화목을 누리며 살았으나, 5살 때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뜨면서 논개 모녀는 몇년동안 모진 고초를 겪는다. 의지할 곳이 없던 모녀는 같은 마을에 사는 숙부, 주달무(朱達武)의 집에 얹혀 살게 되었다. 주달무는 형과 달리 거의 인간말종에 가까운 위인이라 매일 노름에 빠져 가산(家産) 말아먹기에 바뻤다고 한다. 결국 집까지 죄다 날려먹자 숙부는 풍천마을에 사는 김풍헌(金風憲)이란 사람에 게 조카 논개를 민며느리로 팔고는 멀리 줄행랑을 쳤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모녀는 외가가 있는 함양 안의(安義)로 급히 피신했으나, 김풍헌의 고발로 장수 관아로 압송되고 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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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 숙부 주달무에게 죄가 있음이 드러나면서 논개 모녀를 무죄 방면한다. 최경회의 부인인 나주김씨는 그들이 오갈게 없는 처지임을 알고 내아(內衙)에서 지낼 것을 권했 다. 최경회 내외의 배려로 내아에서 생활하게 된 논개는 낮에는 잔심부름을 하거나, 김씨 부인 을 간호하고, 저녁에는 공부를 하였다. 몇 해가 흘러 논개의 어머니가 별세하고, 최경회의 부인마저 병으로 죽는다. 서로의 소중한 존 재를 잃은 최경회와 논개는 서로를 더욱 의지하며 같이 살게 된다. 두 세대에 버금가는 엄청난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이를 초월한 그들의 연분은 점점 커져만 가고, 결국 담양부사(潭陽府 使) 재직 중이던 1590년 혼인을 하기에 이른다. 이때 최경회의 나이는 58세, 논개는 겨우 17세 였다. (아우 부러워라 ~~ ) 1591년(혹은 1590년 후반) 모친상을 당한 최경회는 3년상(喪)을 위해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능주(綾州, 화순군 능주면)로 가면서 논개를 장수로 보냈다. ♣ 임진왜란 발생과 최경회의 죽음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최경회는 다시 장수를 찾았다. 그는 월강리 들판에 의병청(義兵聽) 을 세우고 의병을 모아 매일 훈련에 임했다. 논개는 동네 아낙들과 함께 의병들의 식사와 병영 청소, 빨래 등을 도맡아 하며 최경회를 도왔다. 그의 의병은 무주 우지치에서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군을 격퇴시킨 것을 시작으로 산청, 김천, 성주 지역에서 계속 승리를 거둔다. 1593년 4월 조정에서는 그의 공에 대한 답례로 경상우도 병마절도사(慶尙右道 兵馬節度使)를 재 수하였다. 최경회는 논개를 데리고 부임지인 진주로 떠났는데, 진주로 온지 채 1달도 되지 않은 1593년 6 월 19일, 왜군의 13만 대군이 진주성을 공격했다. 전쟁이 한참일 때 최경회는 성 밖으로 나가 후일을 기약하라고 하였다. 그의 권유에 논개는 밖 으로 빠져나가 외진 곳에 숨어 있으면서 전황을 살폈다. 1592년 진주성 대첩과 달리 이번에는 왜군에게 승리의 여신이 돌아가면서 성은 끝내 함락되고 만다. 6만의 관,군,민은 거진 전사하고, 최경회는 김천일(金千鎰)과 함께 남강에 뛰어들어 장렬 한 최후를 마친다. ♣도도히 흐르는 남강 위에 한송이 꽃이 되어 떨어지다. 진주성이 함락되고 최경회가 죽었다는 소식에 논개는 비통에 사로 잠겨 어찌할 바를 몰랐다. 힘겹게 진주성에 입성한 왜군은 1년 전, 김시민(金時敏)에게 당한 개망신을 만회한 기쁨을 누리 고자 7월 7일 기생들을 죄다 불러놓고 촉석루(矗石樓)에서 승전연을 열기로 하였다. | |
| 논개는 이 때가 기회다 싶어 진주 수안기생(首安妓生) |
그 여인에게 단단히 눈이 도망간 게야무라는 저도 모르게 강가로 내려갔다. (진주 기생들이 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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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후 | |
♠ 논개의 혼과 정신을 모신 사당, 장수 의암사(義巖祠, 논개사당) | |
친일 화가인 김은호가 자신의 마누라를 모델로 삼아 논개의 영정을 그려 바쳤다. 196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의암사 성역화 사업이 추진되면서, 지금의 자리에 2만여 평에 대지 를 마련하여 사당을 옮겼다. 경내에는 논개생향비를 비롯하여 기념관, 의암사 등이 있으며, 사당 앞에는 '의암공원'과 '두산 제'란 호수를 만들어 군민과 관광객의 휴식처로 꾸몄다. 의암사는 장수를 찾은 관광객들이 거의 꼭 들르는 장수 지역의 대표적인 명소이자, 장수 사람들 의 자부심이 깃든 곳으로 그들의 의암사에 대한 애정은 실로 지대하다. ※의암사 찾아가기 (2008년 11월 기준) *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장수행 직행버스 1일 4회 운행 * 대전동부터미널에서 장수행 직행버스 1일 8회 운행 * 광주터미널과 남원에서 장수행 직행버스 1일 9회 운행 * 전주에서 장수행 직행버스 1일 17회 운행 * 장수시외버스터미널에서 의암사까지 걸어서 12분 거리 * 승용차로 갈 경우 (의암사 앞에 주차장이 있음) - 대전~통영고속도로 → 익산~장수고속도로 → 장수나들목에서 장수방면 19번 국도 → 계남 → 장수읍내 → 장수교 → 의암사입구에서 좌회전 → 의암사 - 88올림픽고속도로 → 남장수나들목 → 장수 방면 19번 국도 → 장수읍내 못미쳐 의암사입구 에서 우회전 → 의암사 ♣ 의암사 관람 정보(2008년 11월 기준) * 입장료와 주차료는 무료이며, 관람시간은 9시 ~ 18시 * 매년 음력 9월 3일, 의암공원을 중심으로 장수군의 축제인 '의암 주논개 대축제'가 열린다. 축제기간은 2~3일 정도로 첫날에 의암사에서 대제(大祭)를 지낸다. (축제 문의는 장수군청 산림문화관광과 063-350-2535) * 소재지 - 전북 장수군 장수읍 두산리 산3 (의암사 관리사무소 ☎ 063-350-2561, 351-4837) |
♠ 의암사를 들어서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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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앙문을 들어서면 좌측으로 논개생향비가, 우측으로 기념관이 자리해 있다. |
♠ 의암사 경내 | |
▲ 내삼문(內三門)인 휘광문(揮光門) | ▲ 의암문(義巖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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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암사 앞에 펼쳐진 휴식공간 ~ 의암공원과 남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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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그림처럼 베풀어진 두산제, 의암사 뒤에 자리한 마봉산 등의 산과 호수 주변 나무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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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사, 촬영 일시 - 2008년 2월 21일
* 상편 작성 시작일 - 2008년 3월 8일
* 상편 작성 완료일 - 2008년 3월 12일
* 숙성기간 ~ 2008년 3월 12일 ~ 2008년 11월 12일
* 공개일 - 2008년 11월 12일부터
그 이후는 편의상 본글의 원본에만 업데이트 작업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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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씨 크기는 블로그와 까페는 10pt, 원본은 12pt입니다. (12pt 기준으로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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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전주] 조선왕조의 고향, 전주 - 오목대 / 전주8경 한벽청연의 현장, 한벽당
' 전북 전주 ~ 임실 역사기행 (2006년 6월 24일)'
'하편 ― 전주(全州) 지역 (오목대, 한벽당, 전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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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명물, 콩나물국밥으로 두둑히 배를 채우고, 한벽당으로 가던 중, 푸르른 은행나무 한 그루가 나의
발목을 붙잡고 좀처럼 놓아주지를 않는다.
▲ 녹음(綠陰)으로 가득한 수령 600년의 은행나무 | |
▲ 은행나무길 표석 | |
◀ 태조로(太祖路) 표석 |
♠ 태조 이성계가 종족(宗族)들을 모아 연회를 배푼 ~ 오목대(梧木臺)
- 전북 지방기념물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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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고려가 한참 기울어져 가던 14세기 후반, 왜구(倭寇)는 고려와 명나라를 골고루 침범하 오목대는 언덕의 이름이 아닌 거의 비석의 이름으로 굳어지다 싶이 하였는데, 비각(碑閣) 주변으로 |
▶ 오목대 동쪽 누각 ▶ |
◀ 누각 내에 걸린 현판 ◀ | |
▲ 정면에서 바라본 오목대 누각 ~~ 오목대 찾아가기 ~~ |
▲ 옛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전라선(全羅線) 터널 | |
◀ 월당 선생 찬시비(讚詩碑) |
♠ 전주 8경의 한 곳, 한벽청연(寒碧晴烟)의 현장 ~ 한벽당(寒碧堂) -
전북 지방유형문화재 15호
오목대에서 가까운 전주천(全州川)변 바위에 들어앉은 정자로 전주 8경의 하나인 한벽청연(寒碧晴烟) | |
이 곳은 1400년월당 최담(崔霮) 선생이 낙향하여 세운 |
◀ 나무 사이로 고개를 내민 한벽당 ◀ |
◀ 한벽당 내에 걸려진 |
▲ 한벽당 기와수막새에 들어앉은 용 |
▲ 한벽당에서 바라본 전주천 주변 풍경 |
▲ 한벽당 바로 옆으로 뚫린 17번 국도 |
한벽당은 2001년 여름, 전주에 외가(外家)를 둔 친구와 같이 온 적이 있었다.
그 때는 한벽당을 끼고 도는 전주천의 수위가 낮아 많은 사람들이 피서를 와서, 너도나도 천(川)에 들어가
발을 담구고, 개구쟁이 어린이들은 온몸을 내던지며, 물과 찐한 스킨쉽을 즐겼지.. 우리는 여벌의 옷이 없어
그냥 다리와 발만 실컷 담구고..
그러나 근래에 전주천을 정화하면서, 수위가 높아져 물로 풍덩 들어가는 것은 어렵게 되었다.
▲ 전주천 징검다리 |
수양버들이 시원스런 전주천 길을 걷다보면 '비빔밥', '콩나물국밥'과 더불어 전주 지역의 별미(別味) '오모
가리탕' 주막촌이 나온다.
오모가리탕이란 뚝배기에 쏘가리, 메기, 모래무지 등의 민물고기와 풋고추, 파, 당면 등을 넣고 온갖 양념으로
범벅을 하여 끊인 일종의 생선 매운탕으로, 한벽당에서 전주교(남부시장)까지 그 음식을 취급하는 주막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몇몇 집은 벌써 매스컴을 요란하게 타기도 하였지,
더운 여름날, 이 곳에서 매물탕의 매운 맛에 땀도 흘리고, 거기에 전주천에서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후식 삼아
땀을 식히면서, 지인들과 곡차(穀茶)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이렇게 하여 전주, 임실 역사기행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
* 답사, 촬영 일시 - 2006년 6월 24일
* 상편 작성 시작일 - 2006년 7월 11일
* 상편 작성 완료일 - 2005년 7월 13일
* 상편 숙성기간 - 2006년 7월 15일 ~ 8월 26일
* 공개일 - 2006년 8월 27일부터
Copyright (C) 2006 by Park Yung,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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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임실] 오수 의견비 / 관촌 사선대, 운서정
' 전북 전주 ~ 임실 역사기행 (2006년 6월 24일)'
'상편 ― 임실(任實) 지역 (의견비, 사선대, 운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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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상, 하 2부로 나누어 작성했습니다.
♠ 주인을 구하고 숨져간, 충의로운 견공(犬公)의 넋이 서린 ~
오수 의견비(義犬碑) - 전북 지방민속자료 1호
주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개의이야기는 워낙에 유명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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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김개인은 술에 잔뜩 취한 상태에서 집으로 | |
몇 시간 뒤, 간신히 잠에서 깨어난 그는 자기 옆에 쓰러져 있던 개의 모습을 보고는 모든 상황을알게 |
그 이후, 오수 사람들은 의견을 위해 비석을 세웠으며 이를 동 * 오수 의견비 찾아가기 (2006, 9월 현재) |
▲ 원동산공원 정문과, 오래된 느티나무 | |
정문에서 의견비는 정면으로 바로 보인다. |
▲ 공원 구석에 있는 비석군(碑石群) ◀ 오수고적기실비(獒樹古蹟記實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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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수 느티나무 |
▶ 의견상(義犬像) ▶ | |
꽃목걸이가 걸려져 있어 눈길을 끈다. 이는 동네 사람들이 걸어준 것으로, 그 개에 대한 존경과 자랑이 |
♠ 4명의 신선과 4명의 선녀가 어울려 놀았다는 경승지 ~ 사선대(四仙臺)
진안 마이산(馬耳山)에서 시작된 두꺼비의 강, 섬진강 |
그 후, 신선과 선녀는 하늘로 승천했다고 하는데, 그런 |
사선대는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으며, 인근 전주, 익산, 남원권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승지이다. ※ 사선대, 운서정 찾아가기 (2006, 9월 기준) |
◀ 섬진강 위에 걸쳐진 저 다리를 | |
◀ 나무로 무성한 사선대 절벽 위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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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조각공원의 어느 하얀 돌조각 |
▲ 사선대에서 놀고 갔다는 4명의 선녀를 | |
조각공원을 둘러보고, 연못 건너 절벽 위에 솟아난 운서정으로 가기 위해 길을 찾았으나, 길이 쉽게 나 |
▲ 연못 위에 살짝 걸린 돌다리 - | ▲ 철제 다리 - |
이렇게 다리 2개를 건너면 운서정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길이 나온다. |
◀ 운서정으로 가는 숲길 |
♠ 사선대의 꽃, 그러나 지금은 절의 부속 건물이 되어버린 ~
운서정(雲棲亭) - 전북 지방유형문화재 135호
사선대 언덕 꼭대기에 들어앉은 정자로 1928년 관촌 지역에 부호(富戶) 김승희(金昇熙)가 그의 부친 |
운서정에 오르면 사선대 공원과 오원강, 관촌시내가 한눈에 바라보이며, 사선대의 꽃으로 전주, 임실 |
▶ 천정에 매달린 용머리 2개 ▶ |
◀ 운서정 추녀 밑에 매달린 풍경물고기 ◀ |
▲ 운서정에서 바라본 사선대 공원, 오원강, 관촌시내 | |
◀ 빨래만이 가득한 사선사 선방(禪房) | |
◀ 보 사이로 오묘히 들어앉은 하얀 토끼 - | |
▲ 사선사 정문 운서정과 더불어 사선사도 이렇게 보너스로 둘러보고, 다시 사선대 관광지로 내려왔다. | |
▲ 콩나물국밥 정식 주문하고 10분 뒤, 맛깔스러운 국밥 정식이 내 앞에 떡하니 차려진다. |
~~ 아쉽지만 상편은 여기서 끝. ~~
* 답사, 촬영 일시 - 2006년 6월 24일
* 상편 작성 시작일 - 2006년 7월 4일
* 상편 작성 완료일 - 2005년 7월 11일
* 상편 숙성기간 - 2006년 7월 12일 ~ 8월 25일
* 공개일 - 2006년 8월 25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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