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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의림지


~~~ 제천 의림지 ~~~
제천 의림지
▲  남쪽에서 바라본 의림지

'못가에 휘늘어진 푸른 버들은
봄에 오는 시름을 아는 듯
꾀꼬리 서로 불러 마지않으니
아서라, 이별의 슬픔을'

'조선 순조 때 소녀 시인 김금원(金錦園)이 의림지에서 지은 시'
 


여름 제국이 조금씩 빈틈을 보이던 8월의 끝 무렵, 제천(堤川)의 대표 명소로 꼽히는 의
림지를 찾았다.
의림지는 10여 년 만에 방문으로 아침 일찍 청량리역에서 영동선 무궁화호를 타고 2시간
남짓 달려 제천역에 두 발을 내렸다. 여기서 세명대로 가는 제천시내버스를 타고 북쪽으
로 계속 직진하면 남북으로 길쭉한 제천 시내(市內)가 끝나면서 경작지와 녹지대가 펼쳐
지고 이내 의림지가 도도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제천역에서 의림지까지 5km 거리로 시내에서 무척이나 가까우며 시내버스도 자주 운행해
접근성은 아주 좋다.


♠  의림지(義林池) 입문

▲  넓고 평화로운 모습의 의림지

그 이름도 익숙한 제천 의림지는 이 땅에서 가장 늙은 저수지의 하나로 학생들 교과서는 물론
시험문제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유명한 존재이다. 호수가 얼마나 늙었는지 귀신도 의림지의 나
이를 모를 정도인데, 조성 시기가 아리송하다 보니 많은 설들이 나타나 궁금증에 잠긴 속인(
俗人)들의 귀를 간지럽히고 있다.
신라 진흥왕(眞興王) 시절 우륵(于勒)이 충주에 머물면서 지역 사람들을 움직여 제방을 쌓고
가야금을 벗삼아 풍류를 즐겼다는 설, 13세기에 제천현감 박의림(朴義林)이 단단하게 쌓아서
의림지라 했다는 설이 그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설일 뿐이며, 삼한시대 언젠가에 조성된
것을 나중에 우륵과 박의림 등이 손질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의림제(堤)라 나오는데, 그 시절 규모는 길이 530척, 관수 면적 400
결이었다. 1457년 정인지(鄭麟趾)는 체찰사(體察使)가 되어 영월로 유배 간 단종(端宗)과 관
련된 복위 운동을 경계하고자 제천에 머물면서 3도에서 군사 1,500명을 동원해 2차례에 걸쳐
크게 보수했다.
1910년에 5년에 걸쳐 크게 수리를 했고, 1972년 대홍수 때 제천 시내 범람을 막고자 일부 구
간의 둑을 터트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호수 바닥에서 큰 샘이 발견되었다. 이후 1973년 복구
하여 지금에 이른다.

의림지를 닦은 이유는 바로 농업용수 확보 때문이다. 의림지에 모인 물은 주변 경작지를 충분
히 어루만져 풍년으로 인도했으며, 여러 차례 손질을 거치면서 저수지 주변에 소나무와 버드
나무, 전나무, 은행나무, 벚나무를 가득 심어 경관도 고려했다. 그러다 보니 호수와 숲,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치를 지녀 제천의 대명사격인 명소로 깊이 찬양을 받았으며, 충청도 동
부 4군<제천, 단양, 영춘(단양군 영춘면), 청풍(제천시 청풍면)>의 대표 명소로 격하게 추앙
을 받았다.
또한 해빙기에 산란을 하러 빙어들이 많이 찾으면서 빙어 먹방의 성지(聖地)로도 인기를 누렸
으며, 순채(蓴菜)라 불리는 다년생 수초도 유명했다. 그 순채잎으로 순채차, 순채국, 순채회
를 해먹었는데, 그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는 것이다. 허나 1914년 제방을 고쳐 쌓은 이후 이상
하게도 씨가 말라버려 한 토막 전설이 되고 말았다.

의림지의 규모는 둘레 1.8km, 만수(滿水) 면적 15만㎡, 총면적 211,038㎡, 저수량 50만㎥로
수심 8~13m이며, 충청도를 흔히 호서지방(湖西地方)이라 부르는데, 이는 의림지의 서쪽을 뜻
한다. 즉 지역 이름까지 만들 정도로 의림지의 명성과 위엄은 실로 대단했다.


▲  의림지 동쪽 둑방길 (남쪽에서 바라본 모습)

의림지를 둘러싼 둑방길에는 영호정과 경호루, 우륵정 등의 정자와 누각이 있고 호수 북부에
는 순주섬이란 작은 섬이 띄워져 있어 의림지의 경관을 크게 돕고 있다. 특히 둑방 소나무숲
길이 아주 곱다.
2,000년 이상 묵은 의림지의 이해를 조금이나마 돕고자 호수 북쪽에 의림지역사박물관(☎ 043
-641-6571)이 닦여져 있으며, 의림지 너머 북쪽으로 크고 길쭉한 산줄기가 바라보이는데, 그
는 제천의 북쪽 지붕인 용두산(870m)이다.

의림지는 충북 지방기념물 11호로 지정되었으나 2006년에 '제천 의림지와 제림(堤林)'이란 이
름으로 국가 명승 20호로 특진되었다.

* 의림지 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 241일대 (의림지 관광안내소 ☎ 043-651-7101)


▲  의림지 남쪽 둑방길로 들어서다

▲  영호정(暎湖亭) - 제천시 향토문화자료 12호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어우러진 남쪽 둑방길로 들어서면 영호정이란 정자가 마중을 한다. 의림
지를 든든한 후광(後光)으로 삼으며 풍류를 그윽하게 날리는 그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 정자로 1807년에 이집경(李集慶)이 세웠다.

1907년 7월 제천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義兵) 활동을 벌였던 이강년(李康秊)이 여기서 부하들
과 정치를 논했으며, 도창의대장(都倡義大將)으로 추대되었으나 사양했다. 6.25 때 파괴된 것
을 이집경의 후손인 이범우(李範雨)가 1954년에 중건했는데, 그는 1919년 3.1운동 때 제천 지
역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  영호정 주변 의림지 남쪽 둑방길

▲  솔내음이 나래를 펼치는 의림지 남쪽 둑방길 ①

▲  솔내음이 나래를 펼치는 의림지 남쪽 둑방길 ②

▲  언제 봐도 늘 시원한 의림지
의림지 너머로 첩첩히 둘러진 산줄기는 제천의 북쪽 지붕인 용두산(870m)이다.

▲  의림지 남쪽 둑방에서 모산동 들판으로 빠지는 수로와
소나무숲길

▲  두껍게 닦여진 의림지 남쪽 둑방

▲  의림지 표석 주변 둑방 소나무숲길

▲  의림지 표석(왼쪽)과 누워있는 나무 의자

농경문화의 발상지를 강조하는 의림지 표석 앞에 길쭉한 나무 의자가 있다. 그는 100년 묵은
소나무로 만든 것으로 그 나무는 2015년 5월 고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운명하고 말았다.
하여 그를 활용해 잠깐 두 다리를 쉴 수 있는 나무 의자를 만들었고 죽어서까지 아낌없이 내
주는 그를 기리고자 '백년의 휴(休)'란 제목에 안내문을 세웠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나 여기에서 100여 년을 살면서 의림지 둑을 지키고 그들에게 그늘을 주었다. 이제 고사목(
枯死木)이 되어서 그들에게 쉴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려 한다. 내 몸이 썩어 없어지는 그날까
지 나를 찾는 이들에게 아름다운 휴(休)로 남고 싶다' (2017년 9월)


▲  의림지 표석 주변에서 바라본 의림지
둑방 소나무와 버드나무, 주변 산과 하늘까지 의림지를 거울로 삼으며
그들의 매뭇새를 다듬느라 여념들이 없다.

▲  의림지 서쪽 둑방길
영호루 외에는 아무런 집도 없던 남쪽 둑방길과 달리 서쪽 둑방길에는
경호루 등의 정자와 식당, 까페가 여럿 있다.

▲  의림지 서쪽 둑방길에서 바라본 남쪽 둑방길

▲  경호루(鏡湖樓) - 제천시 향토문화자료 23호

의림지 서쪽 둑방에 자리한 경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2층 누각이다. 1948년에
제천군수 김득연, 제천경찰서장 김경술의 발기로 서울의 홍순관, 오세진의 지원을 받아 지은
것으로 이제 80년 남짓 묵었는데, 늙은 영호정과 함께 의림지를 소소하게 수식하고 있다.


▲  두 호수 사이를 지나는 의림지 서쪽 둑방길
경호루를 지나면 둑방길 서쪽에도 호수가 나온다. 서쪽 호수는 의림지 수식용으로
근래 닦여진 것으로 인공폭포와 수경분수를 지녀 늙은 의림지와 달리
신세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  분수대가 율동을 부리고 있는 서쪽 호수
서쪽 호수는 분수대를 부리며 늦여름을 조금이나마 단죄하고 있다.

▲  의림지와 서쪽 호수 사이를 지나는 다리와 맞배지붕 문

▲  서쪽 둑방에서 바라본 의림지
이제 의림지를 절반 정도 돌았다. 길도 좋고, 풍경도 좋고, 호수 바람이
무더위로부터 나를 지켜주니 걷는 길이 썩 지루하지 않다.


♠  의림지 마무리

▲  의림지에 두둥실 뜬 순주섬

순주섬은 의림지 수식용으로 달아놓은 조그만 섬으로 제천 시내의 유일한 섬이다. 나무 여러
그루가 뿌리를 내려 그들만의 작은 세상을 일구고 있는데, 섬으로의 접근은 통제되어 있으며,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된다.


▲  북쪽 둑방길에서 바라본 의림지와 남쪽 둑방, 서쪽 둑방길

▲  북쪽 둑방길에서 바라본 의림지 순주섬

▲  동쪽 둑방길에서 바라본 의림지와 순주섬(왼쪽 섬)
의림지 1바퀴도 이제 그 끝에 이르고 있다. 풍경에 취해, 옛 추억 회상에 취해,
호수 바람에 취해 홀린 듯 걷다 보니 어느덧 이곳에 이른 나를 발견한 것,
의림지는 그야말로 시간을 순간 삭제(순삭)시키는 시간 도둑이다.

▲  동쪽 둑방길에서 바라본 의림지

▲  우륵정(于勒亭)

의림지 동쪽 둑방 한복판에는 우륵정이란 조그만 6각형 정자가 있다. 우륵이 의림지를 축조하
면서 인근 돌봉재에서 살았다고 전하는데, 그의 믿거나 말거나 유적으로는 우륵당 옛터와 우
물인 우륵정, 가야금을 탔다는 제비바위 등이 있다.
제천시는 2007년 의림지 명소화 사업으로 우륵의 예술혼을 기리고자 이곳에 정자를 짓고 우륵
정이라 했으며, 그렇다고 이곳이 우륵당의 옛터는 아니다.


▲  우륵정에서 바라본 의림지

▲  우륵샘 표석

우륵정 부근 길(의림대로) 건너편에 우륵샘이 있다. 우륵샘은 이름 그대로 우륵이 이용했다는
샘터로 이병연(李秉延)이 1910년부터 1937년까지 긴 시간에 걸쳐 작성한 조선환여승람(朝鮮寰
輿勝覽)에 우륵정이 의림지 동북쪽 벼랑 밑에 있다고 나와있다.
우륵이 가야금을 탔다고 전하는 우륵대가 있어 그 동쪽인 현 자리로 파악하고 있는데, 벼랑
밑에 있다는 기록이 있으니 지금 자리가 딱 산 밑에 있다. 하여 조선 때까지는 벼랑 밑이 늪
지였을 가능성이 있어 2009년 당시 늪지로 있던 모산동 245-1번지 토지를 매입해 샘을 파고
우륵샘이라 했다.

샘은 2010년 6월 30일에 완성되었으며, 비록 우륵이 사용했다는 우륵샘은 아니나 지역 사람들
은 물론 나그네들까지 찾아와 물을 뜨거나 마신다. 내가 갔을 때는 물을 뜨러 온 사람들이 많
아서 우륵샘은 사진에 담지 못했으며, 물 한 모금 들이키고 표석만 사진에 담았다.


▲  동쪽 둑방에서 바라본 의림지의 푸른 풍경

▲  의림지를 마무리 짓다

의림지 정류장에서 시작된 의림지 산책은 남쪽 둑방(영호정), 서쪽 둑방(경호루), 북쪽 둑방,
동쪽 둑방(우륵정)을 거쳐 다시 의림지 정류장에 이르렀다. 즉 의림지를 완전히 1바퀴 돈 것
이다. 그냥 가기는 아쉬워 남쪽 둑방과 서쪽 둑방을 다시 복습하다가 다음 행선지가 나를 부
르고 있어 의림지를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 인연에 맡기며 제천역으로 나가는 제천시내버스에
나를 담는다.

버스는 의림지에 외마디 부릉소리를 남기며 제천역으로 나를 가져다 주었다. 이후 내용은 생
략하며 의림지 늦여름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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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4년 9월 19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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