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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은 오장환 생가

보은군 회인면의 중심지인 중앙리 마을 북쪽 부분에 오장환의 생가와 문학관이 둥지를 틀고 있다.

오장환(1918~1951)은 보은 회인 출신의 시인으로 1918년에 아버지 오학근과 어머니 한학수 사이

에서 4남4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말이 별로 없는 조용한 성격이었다고 하며, 대신 귀염성과 진실한 성격을 가지고 있

었다. 회인공립보통학교에 들어가 3학년까지 다니다가 경기도 안성에 있는 안성공립보통학교로 전

학을 갔으며, 그곳을 졸업하여 1931년 4월 서울 휘문고보에 입학했다.

 

휘문고보 시절에 옥천 출신인 시인 정지용에게 시를 배웠으며,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학교 교지인

'휘문' 편찬 작업에도 참여했다. 1933년 2월 발간된 '휘문' 임시호에 오장환의 첫 작품인 '아침'과 ' 화

염' 두 시가 실렸으며, 이후 '시인부락','낭만','자오선' 등의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활발하게 창작 활동

을 이어갔는데, 그 시절에 낸 시집인 '성벽'과 '헌사' 등을 통해 문학계에서 '시단에 새로운 왕이 나왔

다'며 격하게 찬사를 받기도 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병든서울'을 통해 해방의 기쁨을 감격적으로 노래했는데, '병든서울'은 '해방기

념조선문학상' 최종 후보에 오르는 등 문학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그의 시 '석탑의 노래'는

1947년 중학교5,6학년 국어 교과서에 절찬리에 실리기도 했다.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리던 시기에 전국을 돌며 활발하게 문화 활동을 했으나 미소공동위원회

가 결렬되고 문학예술인에 대한 탄압과 테러가 자행되면서 그 과정에서 심하게 부상을 당했다. 그래

서 이후 월북했으며, 북한과 소련 땅을 오가면서 신병을 치료했다.

1950년 5월 '붉은기'를 발표했는데, 그것은 신병 치료를 위해 모스크바 볼킨병원을 찾으면서 쓴 기행

시이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시집이었으며, 1951년 북한에서 병사하니 그의 나이 33살이었다.

 

월북시인인 탓에 40년 가까이 그의 이름 3자와 작품은 거론되지도 못했으며, 1988년에 비로소 월북

문인에 대한 해금조치가 시행되면서 그와 그의 문학작품에 대한 연구와 학습이 가능해졌다.

1996년 '제1회 오장환문학제'가 열렸으며, 2005년에 그의 생가를 복원하고 그 옆에 문학관을 건립하

여 그와 그의 문학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내가 보은 회인면을 찾은 것은 소소한 문화유산들을 보

고자 함이었는데, 오장환과 오장환문학관의 존재는 여기서 처음 알았다.

 

2. 오장환문학관

이 땅 유일의 오장환 시인의 문학관으로 그의 생애와 작품, 그리고 그의 유물과 관련 자료들이 들어있

다.

 

3. 시인 오장환생가터 표석

오장환이 태어난 초가는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사라지고 없는 것을 2005년에 복원 재현했다.

 

4. 오장환 생가의 부엌

오장환의 문학 활동에는 부엌에서 만들어진 따끈한 밥과 음식의 도움이 컸다. 제아무리 천재 시인이

고 문학가라고 해도 밥을 먹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5. 오장환 생가에서 바라본 회인면 중심지 마을(중앙리)과 매곡산성을 품은 매곡산

 

6. 장식용으로 놓여진 장독대들 (오장환 생가)

 

7. 오장환 생가의 뒷모습

오장환 생가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큼직한 초가로 방과 마루, 부엌 등을 지니고 있다. 집 주위로 초

가 돌담이 정겹게 둘러져 있으며, 돌담 서쪽에 오장환문학관이 자리한다.

 

8. 주인이 가고 없는 오장환 생가의 안방

 

9. 오장환문학관에서 바라본 오장환 생가

 

10. 근대문학 최초의 장시(긴 시)로 추앙을 받는 '전쟁'

오장환은 200자 원고지 72매 분량의 '전쟁'이란 장시(긴 시)를 쓰고 출판 허가를 받고자 조선총독부에

제출했다. 그 시절 신문과 문학, 서적 등 출판을 위한 글은 무조건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받아야 했는

데, 그것을 검열한 작자는 친일파로 경성제대 법문학부 출신인 김성균 검열관이란 자였다.

그 작자는 9곳 51행을 지적해 이들을 지우는 조건으로 1935년 1월 16일 출판 허가를 내주었다. 허나

오장환은 출판을 하지 않고, 그 시를 자신의 책상 서랍에 그대로 놓아두었다. 그로 인해 그 원문은 그

대로 남게 되었다.

'전쟁'은 1936년에 김기림이 쓴 423행의 '기상도'보다 훨씬 긴 628행이며, 시기도 1년 이상이나 앞서

있어 이땅 근대문학의 최초 장시로 꼽힌다.

 

오장환은 '전쟁'이란 시를 통해 전쟁의 실상과 참혹한 현실을 힘주어 표현하면서 왜국의 전쟁 행위를

반대했다.

 

11. 오장환이 북한에 있던 시절에 쓴 '남조선의 문학예술' (조선인민출판사 발행)

 

12. 오장환의 손을 거쳤던 휘문고보의 '휘문' 임시호와 11호

 

13. 오장환의 첫 작품인 '아침'과 '화염'이 실렸던 휘문 임시호 (1933년 2월 22일 발간)

 

14. 교과서 속 오장환의 시

'절정의 노래'는 1943년 6월 춘추에 실린 오장환의 시이다. 오랜 세월 아름답고 고고하게 서 있는 늙

은 석탑과 순간에 지나지 않는 인간의 유한한 삶을 대비하며 탑을 노래하고 있다.

그 시기 오정환은 이 땅의 문화유산을 많이 찾아다녔다고 전한다. 그 문화유산을 통하여 이 땅의 과

거를 보고 미래를 생각하며 장기적으로 역사적 전망을 찾아보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해방

까지 왜정을 찬양하는 시를 하나도 쓰지 않았다.

 

'절정의 노래' 시는 1947년 중학교 5,6학년 교과서에 '석탑의 노래'란 제목으로 실렸다.

 

15. 1947년 '중등국어교본' 하권에 절찬리에 실린 오장환의 '석탑의 노래'

 

16. 오장환이 활동했던 '시인부락'과 '낭만', '자오선'에서 발간한 문학잡지

 

17. 오장환문학관 로비에 재현된 오장환 (오장환 포토존)

오장환 생가를 뒷배경으로 한 의자에 오장환 인형이 마치 실제 인물처럼 앉아있다.

 

18. 남쪽에서 바라본 오장환 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