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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족산 백족사로 인도하는 숲길
하얀 발을 뜻하는 백족사는 청주 가덕면 백족산 남쪽 자락에 깃든 고찰이다. 속세에서 그곳을 찾으
려면 청주 시내에서 청주 211, 213, 215번 시내버스를 타고 병암3리에서 하차하여 걸어가야 되는데,
211번은 충북도청, 상당공원, 청주대학교에서 이용하면 되며, 석교동(육거리 동남쪽) 이남부터는
213, 215번도 이용 가능하다. (211번은 20분 내외 간격이나 나머지 노선은 배차간격이 무지하게 김)
병암3리 정류장에서 서북쪽으로 이어지는 '은행상야로'로 들어서 조금 들어가면 충북교통연수원 직
전에 백족사로 인도하는 1차선 크기의 숲길이 모습을 비추는데, 그 길을 25분 정도 올라가야 된다.
차량도 마음 놓고 바퀴를 굴릴 수 있게끔 포장길로 이루어져 있는데, 경사는 대체로 완만한 편이나
중간중간에 흥분된 경사 구간이 있다. 소나무에 푹 묻힌 숲길이라 솔내음이 아주 그윽하며, 백족산
정상도 이 길을 이용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2. 솔내음이 가득한 백족사 숲길
3. 백족사 납골탑공원에 있는 석조아미타불입상
백족사 직전에 부도탑을 여럿 지닌 납골탑공원이 있다. 이곳은 부도탑(승탑) 스타일의 납골탑을 지닌
곳으로 그앞에 하얀 피부의 잘생긴 석조아미타불이 자리해 납골탑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책임진다.
4. 백족사 유래비
백족사는 백족산 남쪽 자락 350m 고지에 높이 자리한 작은 고찰이다.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백족산
산신도 모르는 실정이나 경내에 고려 때 것으로 보이는 늙은 석불과 석탑이 있어 고려 때나 빠르면
신라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7대 제왕인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를 찾고자 청주 땅을 지나던 중, 백족산 밑 계곡에서 잠시 쉬
었다. 그는 발냄새가 진동하는 두 발을 꺼내 계곡에 씻었는데, 발이 백옥처럼 깨끗해졌다고 한다. 기
분이 좋아진 세조는 이곳 산에 백족산이란 이름을 내렸다고 하며, 백족사의 전신인 '심진암'도 덩달아
백족사로 간판을 바꾸었다고 전한다.
이안눌(1571~1637)이 쓴 '동악선생집'에 백족사 관련 내용들이 들어있으며, 조선 중/후기까지 그런
데로 법등을 굴리다가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사라지고 없는 것을 1930년대에 중건했다. 이후 승근
이 이곳에 머물면서 꾸준히 불사를 벌여 지금에 이른다.
조촐한 경내에는 1930년대에 지어진 대웅전을 비롯해 요사, 산신각 등 4~5동 정도의 건물이 있으며,
3층석탑과 석조여래좌상 등의 지방문화재 2점을 지니고 있다. 내가 이곳을 찾은 것은 미답처 개척 및
이곳에 깃든 늙은 3층석탑과 석조여래좌상, 그리고 백족산 정상을 찍기 위함이다.
5. 백족사 경내에 이르다
돌로 막 지어진 막돌탑들이 나그네를 맞이한다. 그들 너머로 대웅전과 산신각, 3층석탑, 여러 석불 등
이 시야에 들어온다.
6. 백족사 대웅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이곳의 법당이다. 건물 내부에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석조여래
좌상이 들어있으니 꼭 살펴보도록 하자.
7. 경내 한쪽에 옹기종기 모인 막돌탑과 여러 석불들
8. 칼과 삼지창을 든 석불
이곳을 지키고자 칼과 삼지창을 쥐어든 모양이다. 석불보다는 금강역사나 인왕상, 장군상의 변형 버
전 같으며, 둥근 넓쩍한 얼굴과 귀, 두상을 지닌 조금은 귀여운 모습이다.
9. 백족사3층석탑
난쟁이 반바지 접은 것보다 작은 석탑으로 고려 때 것으로 여겨진다. 탑 높이는 2m, 초층 탑신 높이
31cm, 폭 41.5cm 크기로 조선 중기 이후 절이 사라지면서 산산분해된 것을 1940년대에 조각난 석
탑 덩어리들을 발견하여 일으켜 세웠다. 허나 워낙 없어진 부분이 많아서 탑의 왕년 시절의 크기와
모양새는 파악하기가 힘들다.
바닥돌로 보이는 판석 위에 탑신형의 중대석과 갑석을 지니고 있으며, 1층 탑신은 남아있는 부재가
부실하여 시멘트로 때웠다. 탑신석에는 우주가 모각되어 있고 옥개석에는 4단의 층급 받침과 낙수홈
이 조각되었으며, 낙수면은 경사가 완만한 편이다. 그리고 3층 옥개석은 파손이 심해 처마 부분이 떨
어져 나갔다. 탑 머리장식부분 역시 모두 사라진 것을 새로 채워넣었다.
10. 3층석탑 스타일로 조성된 승근 사리탑
탑의 주인공인 승근(1924~2015)은 경기도 여주 출신으로 9살에 동자승으로 출가했다. 18살에 구족
계를 받았으며, 1943년 백족사에 들어와 수행하면서 절을 현재의 모습으로 일으켜 세웠다.
그는 백족사에서 거의 평생을 살았으며, 2015년 8월 4일(음력) 여기서 열반에 들었는데, 금색과 은색,
흑색, 옥색, 분홍색, 초록 무지개빛 사리 48과가 나왔다고 한다. 또한 절에 큰 도움을 주었던 최정화
보살이 2015년 7월 17일에 입적했는데, 그의 몸에서는 무려 8과의 사리가 나왔다고 한다. (사리가 나
오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들이 분분함)
이후 2016년 절에서 3층 사리탑을 마련해 그들의 사리를 봉안하여 크게 애지중지하고 있다.
11. 석조미륵불입상
20세기 중반에 마련한 석불로 늘씬한 맵시를 지녔다.
12. 석조미륵불입상과 화사석이 무지하게 큰 석등
13. 백족사 산신각
1칸짜리 맞배지붕 집으로 산신의 공간이다.
14. 장대한 세월에 짓눌려 크게 낮아진 백족사3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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