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에서 일주문까지 가는 길은 다른 유명 사찰이나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식당과 가게, 민박 집들이 즐비하다. 절 밑에 형성된 마을을 3자로 사하촌(寺下村)이라고 하는데, 이 마을도 내소 사의 덕을 보는 일종의 사하촌이자 관광단지이다. 식당들은 산채비빔밥과 도토리묵, 파전, 향토 음식 등 갖은 음식과 술을 내밀며 관광객들을 진하게 유혹한다. 마치 절을 목전에 둔 속세의 마 지막 유혹이라고나 할까?
먹거리의 유혹을 휼륭하게 물리치고 관광단지를 지나면 내소사가 일주문을 내밀며 중생을 맞는 다. 이 문은 내소사의 정문으로 속세와 절의 경계를 가르는 역할이다. 문이라고는 하지만 여닫 는 문짝은 없으며 허공처럼 뻥 뚫려 있어 부처나 관음보살 누님, 대자연 형님의 마음처럼 누구 든 가리지 않고 맞이한다. 사람들이 일주문의 절반만 닮았다면 이 세상은 참 아름다울텐데, 신 (神)과 동물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자리만 축내고 있는 존재라 아마 안될 것이다. 내소사 일주문은 1982년에 승려 원조가 3평의 팔작지붕 건물로 만든 것으로 1984년 우암혜산이 단청을 칠하고 지금의 모습으로 고쳤다. 문 정면에는 '능가산 내소사(楞伽山 來蘇寺)'라 쓰인 현판이 있어 이곳의 정체를 알려주는데, 글씨가 차분하면서도 맵시가 있어 보인다. 이 글씨는 1983년에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縣)이 쓴 것이다.
일주문 바로 너머에는 그리 반갑지 않은 매표소가 중생들의 발길을 강제로 붙잡으며 그들의 호 주머니를 탐낸다. 이곳 입장료는 무려 3,000원씩이나 한다. (성인 기준) |
수각과 보종각 사이에는 내소사에서 가장 오래된 보물인 느티나무가 있다. 이 나무가 일주문 남 쪽에 있는 700년 묵은 느티나무인 할아버지 당산나무의 배우자로 할머니 당산나무라 불린다. 나이는 무려 1,000년을 헤아린다고 하며,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세월을 양분으로 삼은 끝에 높이 20m, 둘레 7.5m의 거대한 나무로 자라났다. 내소사의 오랜 내력을 귀뜀해주는 존재로 굵직 한 기둥과 줄기에는 덧없이 깃든 오랜 세월이 잔뜩 묻어난다. 그럼 여기서 잠시 내소사의 내력(來歷)을 간단히 짚어보고 넘어가도록 하자.
※ 변산반도(邊山半島) 굴지의 고찰, 능가산 내소사(來蘇寺) - 전북 지방기념물 78호 변산 능가산(관음봉) 남쪽 자락에 포근히 둥지를 튼 내소사는 백제 무왕(武王) 시절인 633년에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것이 맞다면 천하에 몇 남지 않은 백제 후기 사찰 이 된다. 허나 이를 입증할 기록과 유물이 전혀 없어 아쉽게도 신빙성은 적으며, 그나마 오래된 존재가 할머니 당산나무라 불리는 1,000년 묵은 느티나무가 고작이라 길게 잡으면 신라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어쨌든 창건 당시에는 2개의 크고 작은 소래사(蘇來寺)가 있었는데, 대소래사(大蘇來寺)는 내소 사 서쪽 원암마을 뒷쪽 아차봉 밑에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관련 기록이 없어 어떻게 돌아갔는 지는 알 수 없으나 1887년 부안군에서 발행한 부안지(扶安誌)에 1870년 경오년(庚午年)에 산불 로 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소소래사(小蘇來寺)는 지금의 내소사로 대소래사와 마찬가지로 창건 이후 조선 중기까지 소상한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다만 고려시대에 조성된 3층석탑이 서 있고, 1414년에 조성된 봉 래루가 있으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소래사란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고려와 조 선 때도 그런데로 법등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1633년에 청민선사(靑旻禪師)가 중건했는데, 이때 내소사의 제일 가는 보물인 대웅보전이 탄생했다. 1865년(고종 2년)에는 관해선사(觀海禪師)와 만허선사(萬虛禪師)가 중수하고, 1983년에 크게 중 창하여 지금에 이른다. 옛날 변산에는 내소사 외에도 선계사(仙溪寺), 실상사(實相寺), 청림사(靑林寺)등의 절이 있었 다고 하며, 이들 절을 변산 4대 명찰로 꼽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내소사만 달랑 남았다.
소래사가 내소사로 바뀐 시기에 대해서도 여러 설들이 있으나 조선 성종 때 편찬된 동국여지승 람(東國輿地勝覽)에 소래사로 나온 것으로 봐서 그때까지는 옛 이름을 쓰고 있었음을 보여주며, 1870년 대소래사가 사라진 이후, 내소사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660년에 신라(新羅)와 함께 백제(百濟)를 공격한 당나라 장수 소정 방(蘇定方)이 이 절에 시주를 했는데, 그런 연유로 소정방이 왔다는 절, 즉 내소사로 이름이 바 뀌었다는 것이다. 허나 이는 전혀 근거도 없고, 말도 되지 않으며, 소래사(蘇來寺)나 내소사(來 蘇寺)나 글 순서만 다를 뿐, 한자와 뜻은 모두 같다.
경내에는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설선당, 삼성각, 무설당, 봉래루, 보종각, 봉래선원, 관음전, 벽안당 등 20동에 가까운 건물이 있으며, 청련암(淸蓮庵)과 지장암 (地藏庵) 등의 부속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소장문화유산으로는 대웅전과 고려동종, 영산회괘불탱(보물 1268호) 등 보물 3점과 3층석탑, 설 선당과 요사 등 지방문화재 2점을 간직하고 있으며, 백지묵서묘법연화경(보물 278호)도 가지고 있었으나 현재는 서울 조계사(曹溪寺)에 있는 불교중앙박물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절 전 체는 전북 지방기념물 78호로 지정되었다.
다른 굴지의 고찰과 달리 소장문화유산이 매우 적은 편이고 절의 역사도 조선 중기 이후를 빼고 는 상당수 흐릿하지만 그에 비해 인지도는 상당히 높아 변산에서 꼭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변산 의 대명사와 같은 명소로 해인사(海印寺)나 순천 송광사(松廣寺)만큼이나 속세에 널리 알려졌다 . 휴일이나 피서철이 되면 찾는 중생의 발길이 전나무숲길을 가득 메우며, 대웅보전에 서린 백 의관음보살의 눈동자와 목침이 하나 덜 입혀진 부분을 찾느라 부산하다.
변산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사람들의 발길이 너무 잦아 고적한 멋은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늘씬 하게 솟아 하늘을 앞다투어 가린 전나무숲을 비롯하여 삼삼한 숲과 계곡에 둘러싸여 있어 그런 데로 산사의 향기를 우려내고 있다.
※ 내소사 찾아가기 (2016년 9월 기준) ① 부안까지 * 서울 강남고속터미널(센트럴시티)에서 부안행 고속버스가 50~60분 간격으로 떠난다. *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부안행 직행버스가 1일 2회, 동서울터미널에서는 1일 6회 떠난다. * 인천, 고양, 성남, 광주에서 부안행 직행버스가 1일 2~6회 정도 다닌다. * 전주, 익산, 군산에서 부안행 직행버스 이용 ② 현지교통 * 부안터미널에서 내소사행 군내버스가 1일 19회 정도 다니며, 직행버스가 1일 1회 다닌다. * 정읍터미널에서 내소사행 직행버스가 1일 3회 다닌다. * 승용차로 가는 경우 ① 서해안고속도로 → 줄포나들목을 나와서 줄포 방면 710번 지방도 → 줄포우회도로 → 영전4 거리에서 좌회전 → 곰소 → 석포3거리에서 우회전 → 내소사 주차장
★ 내소사 관람정보 * 관람료 - 어른(대학생 포함) 3,000원 (30인 이상 단체 2,500원) / 청소년 1,500원(단체 1,000 원) / 어린이 500원(단체 400원) * 관람시간 : 일출 시간부터~일몰 시간까지 * 주차비(1시간 기준) - 소형차 1,000원 / 중형차 1,500원 / 대형차 2,000원 * 내소사에서는 자유롭게 머물다가는 '휴식형 템플스테이'와 사찰 체험과 여러 이벤트를 겯드린 '프로그램형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휴식형은 3박 4일까지 머물 수 있으며, 새벽예불과 저 녁예불, 공양시간, 취침시간(21시)을 꼭 지켜줘야 된다. 1박 2일은 5만원으로 하루 추가될 때 마다 5만원씩 더 받아먹는다. 프로그램형은 '참 나를 찾아서(2박 3일)', '트래킹 템플(2박 3일)','연밭체험, 연꽃차 만들기 (2박 3일)','달빛 맞이 추석템플스테이(3박 4일)' 등이 있으며, 3시간만 머무는 '템플라이프' 도 있다. 템플스테이 신청은 내소사 홈페이지 템플스테이 부분을 참조하면 되며, 자세한 일정과 참가비 , 일정 관련 문의는 홈페이지 참조 (문의 ☎ 063-583-3035) * 소재지 -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268 (내소사로 243 ☎ 063-583-7281) * 내소사 홈페이지는 아래 사진을 클릭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