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둘레길'에 해당되는 글 35건

  1. 2015.10.15 주인을 구하고 숨진 의로운 개의 넋이 서린, 임실 오수 의견비 (오수리석불, 해월암)
  2. 2015.06.24 도심 속의 푸른 허파 ~ 서울 국립현충원, 동작충효길 나들이 (현충원숲길, 창빈안씨묘역)
  3. 2014.08.05 본인 제작 여행답사기 모음집 (2014년 8월초 기준)
  4. 2013.12.13 볼거리와 조망이 일품인 서울의 숨겨진 명산, 호암산 (석구상, 한우물, 칼바위...)
  5. 2013.04.11 서울에서 가볼만한 명소 360곳 (2013년 4월 기준)

주인을 구하고 숨진 의로운 개의 넋이 서린, 임실 오수 의견비 (오수리석불, 해월암)

 


' 의견(義犬)의 고장, 임실 오수 나들이 '
오수 의견비
▲  오수 사람들의 자랑, 오수 의견비


 

울 제국이 한참 위세를 부리며 천하를 핍박하던 1월 한복판에 전북 중심부에 자리한 전주
(全州)와 임실(任實)을 찾았다.

전라도의 오랜 중심지인 전주에서 여러 명소를 둘러보고 오후에 임실 땅으로 넘어가 의견의
고장인 오수를 찾았다.
임실군에 속한 오수는 임실읍과 남원시(南原市) 사이에 둥지를 튼 고을로 17번 국도와 전라
선(全羅線) 열차가 고을 한복판을 관통해 교통은 제법 괜찮은 편이다.

오수에는 이곳의 자랑인 의견비가 있으며, 오수지구대 앞에는 오래된 망루가 있다. 또한 오
수 시내 서쪽을 흐르는 오수천(獒樹川) 서쪽 너머에는 오수리석불과 해월암 등의 이름 없는
명소가 숨겨져 있어 볼거리도 넉넉하다. 의견비를 중심으로 2시간 정도 발품을 팔면 오수에
서린 4곳의 명소를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  주인을 구하고 숨진 의로운 견공(犬公)의 넋이 서린
오수 의견비(義犬碑) - 전북 지방민속문화재자료 1호

오수터미널에서 남쪽으로 4분 정도 뚜벅거리면 왜정 때 지어진 오수망루가 나온다. 망루 부근에
의견비를 알리는 커다란 갈색 이정표가 있는데, 그의 안내를 받아 오른쪽 골목(오수3길)을 들어
서면 의견비를 품은 원동산공원(圓東山公園)이 모습을 비춘다.

의견비는 자신을 기르던 주인을 구하고 숨진 개를 기리고자 세운 비석이다. 주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진 개의 이야기는 워낙 유명하여 모르는 이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이 땅에는 오수 외
에도 밀양(密陽)과 구미(龜尾, ☞ 관련글 보러가기) 등 많은 지역에서 전해오고 있으며 다른 나
라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많아 인간들 마음에 잔잔한 감동의 쓰나미를 선사한다.
개는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여 그 주인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기도 한다. 오수 의견비는 그런 의견을 위해 후대 사람들이 세
운 비석으로 이 땅에 전해오는 의견 관련 유적의 대명사라 할 수 있겠다.

이 땅의 의견 설화의 대표격인 오수 의견 설화는 고려 무신정권 때 활약했던 최자(滋, 1188~
1260
)의 보한집(補閑集)과 조선 초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소상히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견 설화는 등장 인물의 이름과 장소만 다를 뿐, 줄거리
는 비슷하다.

때는 신라 후기인 9~10세기 경, 거령현(居寧縣, 임실군 지사면)에 김개인(金盖仁)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애지중지 기르던 개가 있었는데 어딜 가든 항상 그를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김개인은 술에 잔뜩 취한 상태에서 집으로 오다가 그만 길가에 퍽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마침 부근에서 산불이 일어났다. 산불은 삽시간에 그가 벌러덩 자는 곳까지 번져왔는
데, 개는 어떻게든 주인을 깨우고자 안간힘을 썼으나 그는 꿈나라에 깊숙히 들어가 좀처럼 깨어
나지를 못했다. 하여 개는 가까운 냇가로 달려가 몸에 물을 적시고 불에 뿌리는 형식으로 진화
작업에 들어갔다. 그야말로 온몸을 던져 화마(火魔)로부터 주인을 구하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닌
것이다.

개는 간신히 불을 진압하여 주인을 구하는데 성공했으나 너무 체력을 소비한 나머지 쓰러져 결
국 영원히 일어나지 못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간신히 꿈나라에서 나온 주인은 자기 옆에
쓰러져 있던 개를 보고 상황 파악을 하게 되었고, 그런 개를 껴안으며 목놓아 울었다.
나중에 그는 노래를 지어 개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친히 무덤을 만들어주고 그 옆에 자신의 지
팡이를 꽂았다. 그런데 지팡이에 그 개의 혼이라도 깃들여져 있는지 그것이 나무가 되어 무럭무
럭 자라나니 이 나무를 큰 개를 상징하는 오(獒)를 붙여 '오수(獒樹)'라 하였고, 그것이 이곳의
지명이 되었다.

그 이후, 오수 사람들은 의견을 기리고자 비석을 세워 이를 동네의 긍지로 삼으니 지금도 그 자
랑은 여전하다. 비석은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 속에 형편없이 마멸된 것을 1955년 4월 8일에
지금의 비석으로 새로 갈았으며, 비석에 비각을 씌우고, 주변을 정리하여 원동산공원을 닦았다.


▲  의견상과 나이 500년이 넘은 커다란 느티나무 (임실군 보호수 9-11-3호)
의견상에 늘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주는 느티나무로 높이가 무려 18m에 이른다.
허나 혹독한 겨울 제국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채, 벌거숭이의 몸으로
제국의 시련을 견딘다.

▲  글씨의 폼이 예사롭지 않은 원동산공원 정문

의견비를 품은 원동산공원은 조그만 공원으로 오수 사람들의 포근한 휴식처이다. 정문을 들어서
면 정면으로 의견비를 간직한 비각이 보인다. 그 비각까지는 돌이 박힌 돌길이 펼쳐져 있고, 그
주변으로 여러 나무들이 공원을 아름답게 수식한다.

비각에 들어있는 의견비는 1955년에 새로 만든 것으로 비각 좌측에는 나이 500년의 오랜 느티나
무가 의견비와 의견상의 우산/양산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공원에 있는 나무 중, 제일 오래된
것으로 어쩌면 의견의 주인이 심은 나무의 후예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주인의 혼이라도 서린 듯,
언제나 비석과 의견상을 지켜주는 느티나무로 서로를 보듬은 정겨운 풍경이다.

의견비 동북쪽에는 의견의 형상이 마치 위대한 인물의 동상처럼 세워져 있는데, 예전에 왔을 때
는 그의 목에 꽃목걸이가 걸려져 있었다. 허나 지금은 겨울이라서 목걸이는 없는 상태, 이처럼
오수는 의견의 고장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개를 소재로 한 보신탕으로도 유명하여 나그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의견비와 동상을 만들어 의견을 기리지만 다른
쪽에서는 개를 잡아 보신탕을 끓여먹는 것이다. 어쩌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미묘한 현장이기도
하지만 의견은 어디까지나 의견이고 보신탕은 어디까지나 보신탕일 뿐이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
는 쓸데없는 생각이나 비난은 없었으면 한다.

▲  공원 구석에 있는 비석군(碑石群)

▲  오수고적기실비(獒樹古蹟記實碑, 오른쪽)
, 오수의견비 문화재 표석(왼쪽)


▲  의견비각(義犬碑閣)에 담긴 의견비

▲  서쪽을 바라보며 서 있는 의견상

의견을 기리는 비석이나 무덤은 있어도 동상까지 갖춘 곳은 천하에서 오수가 거의 유일할 것이
다. 그만큼 동네 사람들의 긍지와 사랑이 대단한 것이다. 물론 사람 입장에서 보면 말이다. 개
의 입장에서는 이런 것을 과연 어찌 생각하고 있을까?


※ 오수 의견비 찾아가기 (2015년 10월 기준)
* 용산역, 영등포역, 수원역, 천안역, 서대전역, 익산역, 순천역, 여수엑스포역에서 전라선 무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오수역 하차
* 동서울터미널에서 오수 경유 남원행 직행버스가 1일 3회 떠난다.
* 전주, 남원에서 오수 방면 직행버스 이용 (1시간에 3~5회 운행)
* 오수터미널을 나와서 오수시장 방면 남쪽으로 4분 정도 걸으면 의견비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
  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1분 들어가면 의견비가 있는 원동산공원이다.
* 오수역에서 택시를 이용하거나 도보 20분
* 승용차로 가는 경우 (주차는 주변 길가에 하면 됨)
① 순천완주고속도로 → 오수나들목을 나와서 오수, 남원 방면 → 남악교차로에서 우회전 → 오
   수 시내, 오수 지구대에서 좌회전 → 하나로마트에서 바로 우회전 → 오수 의견비
* 소재지 -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
322


♠  오수 지역 명소 둘러보기

▲  임실 오수망루(獒樹望樓) - 등록문화재 188호

수 시내 한복판인 오수지구대(치안센터) 앞에는 고색의 때가 흠뻑 묻어난 붉은 피부의 돌탑이
있다. 그가 바로 이곳을 지키던 오수망루이다.

오수망루는 왜정(倭政) 말기인 1940년경에 지어진 것으로 붉은 벽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높이는
12m, 하부 지름이 2.4m로 이 땅에 남아있는 망루 가운데 가장 높다. 그의 역할은 마을을 지키며
통제하고 비상 상황 또는 야간 통행금지를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축조 방식은 벽돌을 원통형으로 쌓아 꼭대기에 6각형의 망대(望臺)를 두었으며, 6각의 각 면에
는 구멍을 내어 사방을 살펴볼 수 있게 했다. 망대에는 사이렌을 울리던 스피커 2개가 남아 있
으며, 망루 내부에는 지름 65cm로 벽을 따라 철제 계단이 놓여 있고, 망루 1층에는 작은 문이
있다.

2005년 국가 지정 등록문화재의 지위를 얻게 되면서 현재는 망루 내부롤 들어갈 수 없다. 얼핏
보면 공장의 굴뚝이나 교도소의 망루와도 비슷해 보이는데, 왜정부터 근래까지 오수 고을을 지
키고 통제하던 존재로 역사성과 건축학적 가치까지 지녔으며, 망루가 걸친 벽돌마다 70년 세월
의 때가 가득해 중후한 멋을 선사한다. 문화재 지정명칭은 '임실오수망루'이나 '오수망루'로 불
러도 무관하다.
* 오수망루 소재지 -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 348-6


▲  오수리 석불 - 전북 지방유형문화재 86호

오수의견비를 둘러보고 공원 정문에서 왼쪽으로 2분 정도 가면 오수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오
수천(獒樹川) 둑방길이 나온다. 둑방길에서 오른쪽(북쪽)으로 2분 가면 하천 위에 걸린 월교란
다리가 나오는데, 그 다리를 건너면 길은 좌우로 갈린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해월암로 이
어지고, 왼쪽으로 가면 바로 관월마을인데, 그 마을로 들어서 산이 있는 서쪽으로 계속 비집고
들어가면 산림과 접한 마을 서쪽 끝으머리에 '도석사'란 조그만 절과 뾰족하게 솟은 석불이 손
짓한다. 그가 바로 관월마을의 수호신 오수리 석불이다.


▲  멀리서 본 오수리 석불

동쪽으로 관월마을과 오수 시내를 굽어보며 서 있는 오수리석불은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여
겨지며, 미륵불(彌勒佛)로 일컬어진다. 하지만 불상과 관련된 기록이 전혀 없어 자세한 것은 알
지 못하며, 다만 믿거나 말거나 재미있는 전설이 한 토막 아련하게 전해온다.

대략 300년 전 마을 아낙네가 마을 뒷산에서 집채만한 바위가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저것좀 보소!!' 큰소리로 외쳤다. 그 소리를 들은 바위는 뻘쭘하여 그 자리에 멈춰 섰는
데, 그 바위가 바로 오수리 석불이라는 것이다. 그 전설을 통해 아마도 산사태나 홍수로 떠밀려
왔음을 짐작해 볼 수 있겠는데, 불상 주변에는 절터로 보이는 흔적이 없으므로 원래부터 이곳에
있던 것은 아니었던 듯 싶다. (근처 해월암에서 넘어 왔을 가능성도 있음)
하지만 불상이 입을 굳게 봉하며 비밀을 말해주려 하질 않으니 현재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어
쨌든 산에서 내려온 석불을 받아들인 마을 사람들은 그를 정성껏 모셨는데, 만약 그가 마을 앞
까지 내려왔다면 마을이 더욱 번창하고 자손들이 부귀영화를 누렸을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오수리 석불은 하나의 돌로 된 불상으로 아랫 부분이 땅속에 묻혀있어 맨땅 위에 서 있다. 석불
의 높이는 3.5m로 대체로 완만한 타원형이며, 얼굴은 거의 무표정해 보인다. 눈은 지그시 떠 있
고, 코는 볼록하며 입은 굳게 다물어져 미소는 보이지 않고 볼에는 살이 많다.
머리에는 무견정상(無見頂相, 육계)이 두툼하게 솟아있고, 두 귀는 중생의 작은 소리하나 놓치
지 않으려는 듯 어깨까지 크게 늘어져 있다.

몸에 걸쳐진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두 손은 옷 안에 들어있으며, 볼록하게 표현된 소매
자락은 법의와 함께 밑으로 내려져 있다. 얼굴과 몸 뒤쪽에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 등의 광
배(光背)가 새겨져 있는데, 화염무늬가 세심하게 수놓여 있다.


오늘도 묵묵히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그의 가호 덕분인지 관월마을과 오수는 그다지 큰 사
고는 없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불상 양식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오랜 세월을 뛰어넘은 정정한 모
습으로 마을 사람들의 친근한 벗이자 정신적인 지주로 그들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석불 옆에는 그를 후광(後光)으로 삼은 현대 사찰 도석사가 자리해 있다.
* 오수리석불 소재지 -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 550-1


▲  해월암(海月庵) - 전북 지방문화재자료 24호
해월암에서 가장 연세가 지긋한 건물로 대웅전과 달리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건물 좌측칸에는 해월암 현판이 걸려있어 이곳의 정체를 귀뜀해준다.
 

수에서 관월교를 건너면 길이 2갈래로 갈린다. 왼쪽은 앞에서 언급한 오수리석불이 있는 관월
마을이고, 오른쪽 길은 산으로 올라가는데, 그 산길의 끝에 조그만 암자 해월암이 어미 품에 안
긴 알처럼 포근히 터를 닦았다.

오수 시내가 있는 동쪽을 바라보며 자리한 해월암은 고려 후기인 1352년(공민왕 1년)에 해경(海
境)과 월산(月山) 두 승려가 창건했다고 하며, 1396년(조선 태조 4년)에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창건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여 전해온다. 절의 이름인 해월은 해경과 월산의 이름 첫 자를 딴 것
이라고 한다.

창건 이후 1556년(명종 11년)에 남원부사(南原府使)가 중건했다고 하며, 1747년에 중수가 있었
다. 1858년(철종 9년)에도 중건이 있었고, 1915년 봉인(奉仁)이 불상을 만들어 봉안하면서 절을
손질하였다. 1990년 주지 정현이 대웅전을 새로 지어 지금의 면모를 갖추었다.


▲  해월암 가는 길목에 자리한 청기와 누각
오수 사람들의 납량 피서지로 이곳에 오르면 조그만 오수 시내가 두 눈에 들어온다.


손바닥처럼 조그만 경내에는 법당(法堂)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산신각과 오래된 요사, 그리고 본
연당(本然堂)이라 불리는 새 요사 등 4~5동의 건물이 있다. 이중 대웅전 뒤에 자리한 옛 요사가
해월암의 유일한 옛 흔적으로 그가 '해월암'이란 이름으로 지방문화재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조선 후기에 지어진 옛 요사는 부엌을 갖춘 방 3개짜리 기와집으로 불전(佛殿)이라기 보다는 양
반가의 기와집이나 별당(別堂), 경치가 좋은 곳에 짓는 조그만 기와집 비슷한 모습이다.

옛 요사를 가리고 선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556년에 처음 지어졌다
고 한다. 1915년에 중수하고 1990년에 새로 지었는데, 내부에는 석가불을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地藏菩薩)이 협시한 목조(木彫) 3존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이들은 1352년 창건 당시의
불상이라고 우기고 있으나 신빙성은 없어 보인다. 불상이 있는 수미단(須彌壇)은 수려하기 그지
없으며, 건물 내외부에 그려진 단청은 절의 왜소함을 능히 덮을 정도로 화려하다.
또한 1915년에 쓰여진 '해월암중수기'와 '제해월암(題海月庵)' 현판이 있는데, 제해월암은 해월
암에 대한 시문(詩文)이다. 대웅전 앞에는 석등 1쌍이 서 있으며, 그 좌측에 새 요사인 본연당
이 방금 지어진 산듯한 모습으로 승려와 신도의 숙식을 책임진다.

▲  하얀 눈기와를 지닌 해월암 대웅전

▲  해월암 본연당

대웅전을 기준으로 우측 높은 곳에 산신각이 경내를 굽어본다. 산신각(山神閣)은 정면 1칸, 측
면 1칸의 조촐한 크기로 우리에게 친숙한 산신(山神)을 비롯하여 칠성탱(七星幀)을 머금고 있다.

해월암은 오수 지역의 유일한 옛 절로 나무가 무성하여 산속 깊숙히 들어온 기분이다. 속세와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고, 속세에 거의 알려지지 않아 찾는 이는 동네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
윽한 산중암자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적막에 잠긴 절에 지나가던 산바람이 졸고 있던 대웅전
추녀의 풍경물고기를 깨워 겨울잠에 든 절을 살포시 깨운다.
답사객의 발길이 거의 없는 탓인지 본연당에서 나온 승려가 약간 경계를 품으며 무슨 용건으로
왔냐고 묻는다. 그래서 답을 주니 그제서야 표정을 바로 고치고서는 잘 구경하라며 안으로 들어
간다. 경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대웅전 앞 뜨락은 겨울 제국이 보낸 눈이 한가득 쌓여있었
고, 날씨가 조금은 풀린 탓에 눈들도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조금씩 철수하고 있었다.

▲  경내를 굽어보는 칠성각

▲  산신각에서 바라본 해월암 경내


▲  해월암에서 속세로 내려가는 길

해월암을 둘러보니 시간은 어느덧 17시. 겨울 제국의 쫓겨 햇님도 서둘러 퇴근을 재촉하고 어두
운 기운은 다시 세상을 훔치려 든다. 이리하여 의견의 고장 임실 오수 나들이는 대단원의 마침
표를 찍는다.

* 해월암 소재지 -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대명리 715 (☎ 063-642-6161)


 * 까페와 블로그에 올린 글은 공개일 기준으로 딱 8일까지만 수정/보완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집니다.
 * 본글의 내용과 사진을 퍼갈 때는 반드시 그 출처와 원작자 모두를 표시하시기 바랍니다.
   (상업적 이용은 댓글이나 메일, 전화연락 등으로 반드시 상의바람, 무단 사용은 안됨)
 * 글씨 크기는 까페와 블로그는 10~12pt, 원본은 12pt입니다.(12pt기준으로 작성됨)
 * 오타나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즉시 댓글이나 쪽지 등으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외부링크 문제로 사진이 안뜨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모니터와 컴퓨터 사양, 사용 기기(컴퓨터와 노트북, 스마트폰 등)에 따라 글이 조금
   이상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 공개일 - 2015년 10월 6일부터
 
* 글을 보셨으면 그냥 가지들 마시구 공감이나 추천을 흔쾌히 눌러주시거나 댓글 몇 자라도
   달아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Copyright (C) 2015 Pak Yung(박융), All rights reserved

 

도심 속의 푸른 허파 ~ 서울 국립현충원, 동작충효길 나들이 (현충원숲길, 창빈안씨묘역)

 

 

' 국립 서울현충원, 동작충효길 산책 '

▲  국립현충원

 


6월 6일 현충일이 다가오면 거의 본능적으로 국립현충원(國立顯忠園, 국립 서울현충원)을 찾
는다. 그곳에 가족이나 친척이 있어서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애국심이 대단한 것도 아
니다. 다만 석가탄신일에는 그날 본능에 따라 절을 찾듯이 현충일에는 그에 어울리는 현충원
을 찾아 호국의 신으로 산화한 이들을 기리며 현충일의 분위기를 누리는 것 뿐이다.

현충원이 나라의 성스러운 공간이다 보니 나들이로 가는 것은 생각도 못할 뿐더러 그저 무덤
밖에 없는 재미없고 딱딱한 곳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서울에 살고 있어도 학생 시절 소풍
으로 간 것이 고작인 사람이 부지기수이며 그곳에 가자고 하면 거의 대부분
'현충원에 나들이를 가자고? 거기 뭐 볼 거 있어?'하면서 화들짝 놀란다. 나들이로 가기에는
왠지 부담이 가는 곳으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허나 그것은 현충원의 하나만 알지 둘은 모
르는 것이다. 그곳은 북한산(北漢山, 삼각산), 북악산(北岳山, 백악산), 남산(南山) 등과 더
불어 서울의 대기를 정화시키는 커다란 허파로 숲이 짙고 다양한 동식물이 살고 있다.
게다가 현충원을 외곽으로 둘러싼 산책로는 어디에 던져놓아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숲길로
상도동과 사당동, 흑석동 후문으로 가는 길은 오솔길의 갑(甲)을 이루며, 매년 4월에는 이곳
의 명물인 수양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조촐하게 벚꽃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또한 창빈안씨
묘역과 부안군 이석수묘역, 호국지장사 등 문화유적과 오래된 절까지 소리소문 없이 품고 있
어 오래된 볼거리까지 넉넉히 선사한다. 현충원은 3척 동자도 다 아는 곳이지만 그곳의 숨겨
진 속살을 아는 사람은 무척이나 적은 것이다.

국립현충원은 한강과 관악산 사이에 솟은 공작봉<孔雀峰, 서달산(西達山,197m)> 자락에 넓게
터를 닦았다. 1954년에 착공되어 전국에 흩어진 6.25 전사자의 유해를 안장했는데, 처음에는
지명을 따 '동작동국립묘지(銅雀洞國立墓地)'라 불렀으나 2006년부터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
름을 갈았다. (국립현충원이라 많이 부르며, 본글에서는 '국립현충원' 또는 '현충원'이라 표
시함)
이곳은 특히 명당(明堂)자리로 명성이 자자한데, 지형이 마치 공작이 아름다운 날개를 쭉 펴
고 있는 모습이라고 하며 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듯한 지세라 하여 장군대좌형(將軍對
座形)이라 부르기도 한다. 즉 동쪽인 좌청룡(左靑龍)의 형세를 보면 웅장한 산맥(山脈)의 흐
름이 용이 머리를 들어 꿈틀거리는 듯, 한강을 감싸 호위하는 형상이고, 서쪽인 우백호(右白
虎)는 힘이 센 호랑이가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는 듯하며 전후좌우로 솟은 봉우리와 산허리는
천군만마가 줄지어 서 있는 형상과 같다는 것이다.
정면 앞산을 바라보면 주객이 마주앉은 모양이고, 멀리 보이는 산은 마치 물소뿔 같으며, 한
강은 동에서 서로 흘러가니 명주 폭이 바람에 나부끼듯, 하늘거려 공작봉(서달산)을 감싸 흘
러 내려가고 있다. 마치 목마른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듯한 형상이라 명당 중의 명당으로 통
한다.
이렇게 의미가 남다른 곳에 호국의 신을 모셨으니 마땅히 그들의 후손과 이 나라가 잘되어야
하건만 아직까진 그 효과가 시원치 못하다.

본글에서는 창빈안씨묘역과 부안군이석수묘역, 동작충효길. 현충원내부순례길 등을 다루도록
하겠다. (호국지장사는 별도의 글에서 소개하겠음)


♠  국립현충원의 오랜 주인, 허나 지금은 뒷전으로 밀려난
창빈안씨묘역(昌嬪安氏墓域)
- 서울 지방유형문화재 54호

국립현충원의 배꼽 부분에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묘역이 있다. 그 서쪽에 소나무로
둘러싸인 조그만 동산이 있는데 그곳에 현충원의 숨겨진 오랜 속살인 창빈안씨묘역과 신도비가
자리해 있다. 군인과 애국지사, 역대 대통령의 유택(幽宅) 밖에는 없을 것 같은 이곳에 뜬금없
이 조선왕실의 오래된 무덤이 박혀있으니 많은 이들이 의아해 할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으
니 말이다.
허나 현충원이 들어서기 훨씬 이전부터 창빈묘역은 이곳에 오랜 주인으로 이 일대가 대부분 그
의 묘역에 속해있었다. 하지만 1954년 이곳에 국립묘지를 만들면서 묘역은 크게 축소되기 시작
했고 1965년 이승만의 묘역을 창빈묘역 북쪽에 쓰면서 묘역의 동쪽이 떨어져나갔다. 상황이 이
러니 이곳의 오랜 터줏대감임에도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나 그야말로 잉여로운 존재가 되버린 것
이다. 그래서 아는 이가 드문 것이다. 또한 2009년에는 김대중 전대통령의 묘역을 바로 남쪽에
쓰면서 남쪽 부분까지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다행스런 점은 2011년 이후 묘역 북쪽에 그의 묘
역을 알리는 커다란 안내판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어떠한 안내판도 없었음)
그래서 '이 무덤은 뭐지?' 호기심 삼아 찾는 이의 발걸음이 조금 늘었다.

묘역의 주인인 창빈안씨(1499~1549)는 조선 11대 군주인 중종(中宗)의 후궁이다. 1499년 경기도
시흥(始興)에서 안탄대(安坦大)의 딸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용모가 뛰어났다고 한다. 집
안이 어려워 1507년 궁녀(宮女)로 들어갔으며, 20세에 중종의 총애를 받고 22세에 상궁(尙宮)이
되었다.

그녀는 행동이 단정하고 정숙하며, 자비로운 성품과 근검절약하는 생활태도로 덕망(德望)이 높
았다. 그리하여 중종의 모후인 정현왕후(貞顯王后) 윤씨(성종의 왕비)의 사랑을 받았으며, 시어
미의 후원에 힘입어 31살에 숙원<淑媛, 내명부(內命婦) 종4품>이 되고 얼마 뒤 숙용<淑容, 내명
부 종3품>으로 올랐다, 중종과의 사이에서 영양군(永陽君), 덕흥군(德興君), 정신옹주
(靜愼翁主)
등 2남1녀를 두었는데, 그중에서 덕흥군(1530~1559)은 조선 14대 군주인 선조(宣祖)의 아비로
조선 최초의 대원군(大院君)으로 유명하다.
창빈은 1549년(명종 4년)에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으며, 처음에는 양주땅 장흥(현 양주시 장
흥면)에 묘역을 썼으나 이듬해 3월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조선에 수많은 후궁 묘역의 하나로 자칫 잊혀질 뻔했으나 덕흥군의 아들이자 그녀의 손자로 하
성군(河城君, 선조)이 왕위에 오르면서 잠시나마 호강을 하게 된다. 그는 왕위계승권과는 거리
가 멀었으나 때마침 적당한 인물이 없어 정말 운이 좋게도 왕위에 오른 것이다.
적통이 아닌 서자(庶子)의 아들이란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쪼잔한 선조는 자신의 권위를 높
이고자 아버지와 할머니를 높이는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막대한 공을 들인다. 1577년에는 할
머니에게 창빈(昌嬪)이란 시호를 올렸으며, 무덤의 격을 능으로 높이고 묘역을 현충원 일대로
확대시켰다. 능의 이름은 이곳의 지명인 동작진(銅雀鎭)의 이름을 따서 동작릉(銅雀陵)이라 했
으며, 아비인 덕흥군의 묘역은 백성들의 입소문과 많은 돈을 이용해 덕릉(德陵)으로 높였다.
(덕흥대원군 묘역 ☞ 관련글 보러가기)

선조는 그릇이 작고 생각이 좁았던 군주로 마땅한 업적은 없다. 임진왜란도 잘 대처했으면 일찍
종료를 시키거나 미리 막을 수 있었는데, 안일한 생각과 간신배들과 어우러진 무능한 대처로 국
토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백성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말년에는 한참 손녀뻘되는 왕비<인
목대비(仁穆大妃)>와 재미를 보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다.
그런 선조가 1608년 골로 가자 동작릉은 창빈안씨묘역으로 격하되고 만다. 허나 이는 원래의 자
리로 돌아온 것으로 창빈의 아름다운 성격상 동작릉이란 이름에 꽤 부담을 가지며 손자를 원망
했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 1683년(숙종 9년) 왕명에 따라 묘역 남쪽에 신도비(神道碑)를 세웠는
데, 비문은 예조판서(禮曹判書)를 지낸 신정(申晸, 1628~1687)이 짓고 글씨는 돈령부지사(敦寧
府知事)를 지낸 왕족 이정영(李正英, 1616~1686)이 썼다.

창빈의 아비인 안탄대는 성품이 매우 유순하고 겸손했다. 딸이 중종의 후궁이 되었음에도 부귀
영화와 출세를 멀리하고 검소하게 살았으며, 겸손이 너무 지나쳐 비굴하게 보일 정도였다고 한
다. 심지어 어린 애한테 잔소리를 들어도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일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성품을
알만하다. 그의 겸손하고 검소한 성품은 오늘날 고위 공직자 등의 권력층과 돈에 치여 사는 상
류층들이 배워야 될 인품이 아닐까 싶다.
그는 스스로 천인(賤人)이라 자처하고 계속 가난하게 살았으며, 벼슬은 종7품 유순부위(油順府
尉)가 전부이다. 그의 성격상 그건 어쩔 수 없겠지만 너무 눈에 띄어도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안탄대가 세상을 뜨자 선조는 우의정(右議政)을 추증했으며, 묘역은 안산시 반월공단에 있다.

▲  우측 문인석(文人石)

▲  좌측 문인석


▲  무덤의 주인이 쓰인 묘표(墓表)
묘표의 이수에는 소용돌이가 치는 듯한 구름 사이로 꿈틀거리는 용이 현란하게
조각되어 있어 속인들의 눈길을 끈다.


손자에 의해 한때 능의 대접까지 받았지만 창빈의 묘역은 그녀의 청렴함처럼 조촐하기 그지없다.
전형적인 후궁의 무덤 양식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적당히 부풀어오른 동그란 봉분(封墳) 앞에
는 현란한 조각의 이수를 지닌 묘표(묘비)와 상석(床石), 조그만 장명등(長明燈)이 있고, 그 좌
우로 망주석(望柱石) 1쌍이 서 있다. 봉분 뒤쪽에는 곡장이 둘러져 있고, 무덤 앞에는 문인석 1
쌍이 한결같은 표정으로 홀을 들며 무덤을 지킨다.

  ◀▲  창빈안씨 신도비(神道碑) <사진 3장>
이 비석은 1683년에 세워진 것으로 높이가 3m이
다.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를 갖춘 다른 신도
비와는 완전 차원이 다른 모습으로 네모난 바닥
돌 위에 기단석(基壇石)을 얹히고, 그 위에 곧
게 솟은 사각형 비신(碑身)을 심어 창빈의 일대
기를 적었다. 비석 꼭대기는 지붕돌로 마무리했
는데, 귀퉁이 추녀가 얕게 들려져 있다.


♠  국립현충원에 꽁꽁 숨겨진 오래된 속살, 부안군 이석수 묘역
(扶安君 李碩壽 墓域)
- 서울 지방문화재자료 29호

▲  정면에서 본 이석수 묘역
(뒷쪽에 자리한 무덤이 이석수의 손자인 이선룡 내외의 무덤)


▲  뒷쪽에서 본 이석수 묘역

국립현충원 서쪽에는 6.25시절에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경찰들의 충혼(忠魂)을 기리는 경찰충혼
탑이 있다. 충혼탑 바로 북쪽(현충원 정문 방면)에는 3거리가 있는데, 3거리에서 서쪽 산자락을
살펴보면 숲으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산길이 눈에 아른거릴 것이다. 그 산길을 20초 정도 오르면
창빈안씨묘역과 더불어 현충원의 숨겨진 속살의 하나로 지금까지 꽁꽁 숨어지내던 숨바꼭질의
달인 부안군 이석수 묘역이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이석수 묘역을 알게된 것은 2010년이다. 우연히 나의 머리에 입력된 그 묘역은 현충원 안
에 있다고 하는데, 현충원 안내도와 홈페이지에는 그 묘역의 위치를 알리는 어떠한 정보도 없었
다. 게다가 다녀간 이들도 전혀 없어 인터넷 세계에서도 그 위치에 대한 정보가 걸려들지 않았
다. 그래서 열심히 조사를 벌이다가 그 위치를 알게 된 것이다.
현충원은 참 많이도 갔지만 창빈안씨묘역은 2007년에나 발걸음을 했고, 호국지장사도 2006년에
나 처음 갔다. 이제 현충원의 숨겨진 오래된 속살은 다봤구나 싶었는데, 이석수 묘역까지 교묘
하게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그의 묘역을 찾아 술래를 면하게 되었다.

현충원의 터줏대감인 창빈안씨묘역도 처음에는 안내도에 나와있지 않다가 이제는 아주 작게나마
표시를 하고 있다. 게다가 그의 묘역을 알리는 안내판도 세워 예전보다 찾기는 쉬워졌다. 허나
이석수 묘역은 아직까지 그 흔한 안내판도 없고 현충원 안내도에서 나와있지 않다. 그야말로 아
주 극소수만 찾는 현충원의 꼭꼭 숨겨진 속살인 것이다.
내가 갔을 당시에도 충혼탑 주변과 3거리에는 사람들이 좀 있었으나 산길과 묘역에는 인적은 커
녕 움직이는 어떤 것도 없었다. 묘역을 둘러보고 내려가니 3거리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엥 저
기에 뭐있나??'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  홀을 쥐어들며 묵묵히 묘역을 수호하는 문인석(文人石)들

서달산 북쪽 자락에 자리한 이석수 묘역은 조선 성종(成宗)의 손자인 부안군 이석수(1524~1598)
와 그의 2번째 부인인 평강 채씨(平康 蔡氏)의 무덤이다. 호석(護石)도 없이 봉분만 두툼하게
부풀어져있고, 그 앞에 묘표와 상석(床石), 혼유석을 두었으며, 문인석 1쌍을 배열하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은 작고 소박한 모습으로 왕족의 무덤치고는 작은 규모이다.

이석수는 성종과 명빈김씨(明嬪金氏)의 소생인 무산군(茂山君) 이종(李悰)의 아들로 처음에 창
선대부 부안정(彰善大夫 扶安正)에 봉해지고, 나중에 명선대부 도정(明善大夫 都正)을 제수받았
으며, 임진왜란 때는 손자가 되는 선조를 호종한 공로로 선무종훈(宣武從勳)이 되었다. (선조의
할아버지인 중종과 이석수는 이복형제임)
1598년 74세의 나이로 눈을 감자 선조는 정의대부 부안군(正義大夫 扶安君)이란 시호를 내리고
창빈안씨묘역 서쪽 산자락을 주어 무덤을 쓰게 했는데, 선조가 그의 부친인 덕흥대원군(德興大
院君)묘역과 더불어 성역화시키기에 혈안이 되있던 창빈묘역의 서쪽 땅을 떼어 무덤을 쓰게 할
정도면 그의 신임이 제법 두터웠음을 보여준다.

이석수 무덤 뒷쪽에는 그의 손자인 순안군 이선룡(順安君 李善龍) 내외의 무덤이 야트막하게 솟
아있는데, 왼쪽 봉분에는 그와 전처(前妻)인 남원윤씨가, 오른쪽에는 나중에 받아들인 여흥민씨
가 묻혀있다. 이들 무덤은 봉분만 조촐하게 솟아있으며, 일체의 석물은 하나도 없어 일반 백성
들의 무덤처럼 수수하게 보인다.


▲  부안군 묘표

부안군 묘표는 지붕돌과 비신, 비좌로 이루어져 있다. 비석을 꽂은 비좌(碑座)에는 구름무늬 같
은 것이 섬세하게 묘역의 초라함을 조금이나마 커버해준다. 상태가 양호한 비신(碑身)에는 부안
군의 5대손인 이태제(李泰齊)가 1727년(영조 3년)에 비를 세웠다는 내용부터 해서 부안군의 전
처인 김해 허씨(金海 許氏)와 맏아들의 묘역이 양주 장흥에 있다는 것이 쓰여 있으며, 뒷쪽에는
비석의 조성시기가 쓰여 있다. 지붕돌은 추녀가 살짝 들려져 선의 미를 선사한다.


▲  약간 측면에서 바라본 이석수 묘역

▲  이석수 묘역 남쪽에 자리한 경찰충혼탑

※ 국립현충원 (창빈안씨묘역, 부안군 이석수묘역) 찾아가기 (2015년 6월 기준)
* 지하철 4,9호선 동작역 4,7,8번 출구에서 도보 1분, 4호선을 이용할 경우 4번 출구가 가까우
  며, 9호선을 이용할 경우 7,8번 출구가 가깝다.

★ 국립현충원 관람정보 (2015년 6월 기준)
* 개방시간 : 6:00~18:00 <동절기(11월~2월)는 7시~17시까지 / 입장료와 주차비는 없음>
* 쉬는 날은 없으나 동절기 토요일과 휴일에 한해 사진/유품전시관은 휴관함
* 국립현충원 홈페이지는 이곳을 클릭한다
* 국립현충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동작역과 이어지는 정문과 동문이 있으며, 흑석동 후문과 상도
  동 후문, 사당동 후문 등 3개의 후문이 있다.
* 국립 서울현충원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현충로 210 ☎ 1577-9090, 02-813-9625)
* 부안군 이석수 묘역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산41-2


♠  국립현충원 외곽 ~ 현충원내부순례길, 동작충효길(현충원길)

▲  호국지장사와 상도동 후문을 이어주는 현충원내부순례길

호국지장사에서 상도동 후문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있다. 이 길은 현충원의 남쪽 산책로인 현
충원 내부순례길로 상도동 후문에서 지장사를 거쳐 사당동 후문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이다. 길을
둘러싼 숲이 매우 삼삼하여 도심 속의 공간이라 사실을 까맣게 잊게 해주며, 나무들이 베푼 산
내음에 마음마저 시원해진다. 길 양쪽에는 서울의 주요 허파인 현충원의 숲을 지키고자 녹색 철
책이 빙 둘러져 있어 숲으로의 접근을 막는다.

이 숲길은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어느 정도 오르면 길은 평탄해지고 이윽고 현충원과 속세(俗世
)의 경계를 가르는 높다란 녹색 철책이 나타나 이 세상의 끝에 온 기분과 다른 미지의 세상으로
이어지는 듯한 기분을 안긴다.


▲  녹음에 묻힌 현충원내부순례길

▲  현충원 철책을 만나기 직전

▲  현충원과 속세를 이어주는 상도동 후문(상도 출입문)

지장사에서 오솔길을 따라 10분 정도 가면 속세로 이어지는 상도동 후문이 나온다. 후문이라고
하지만 개인집 대문이나 휴전선, 통제구역 철책 사이에 난 조그만 철문이며, 문 안쪽에 초소가
있어 혹시 방향을 잃어 들어올지도 모르는 속세의 나쁜 기운을 경계한다.

상도동 후문에서 동작구의 둘레길인 동작충효길과 만나게 된다. 동작충효길은 동작구(銅雀區)의
야심작으로 2010년부터 2년 동안 갈고 닦은 길이다. 구내(區內)에 국립현충원이 있는 것을 착안
해 이름도 그럴싸한 동작충효길이라 명명된 이 길은 총 6코스로 산과 녹지대, 한강변을 따라 펼
쳐져 있으며, 아직까지는 인지도가 부족해 동네 명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허나 조금씩 존
재감을 드러내고 있어 조만간 서울 굴지의 도보길로 격하게 추앙받을 것이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도보길이기 때문이다.


▲  동작충효길 안내도 (동작구청 홈페이지 참조)

현충원 상도동 후문에서는 동작충효길 1코스인 고구동산길(노들역 배수지공원~상도동 후문)과 2
코스인 현충원길(상도동 후문~동작역), 6코스인 동작마루길(상도동 후문~국사봉,빙수골마을공원
), 7코스인 까치산길(상도동 후문~사당역)이 만나는 분기점이다. 여기서 4개의 충효길이 시작되
고 끝을 맺는 충효길 교통의 요충지인 셈이다.

동작충효길이란 존재를 전혀 모르고 온 터라 생각치도 못한 존재 앞에 약간 멍을 때렸다. 원래
는 숭실대로 내려가려고 했으나 이제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동작구의 새로운 꿀단지, 충효길
에 등장으로 코스를 수정해야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길은 그냥 지나치면 정말 섭하다.
여기서 노량진으로 갈까? 아니면 사당역? 아니면 동작역? 3개의 갈림길을 두고 궁리하다가 현충
원 경계를 따라 이어진 현충원길에 호감이 더 가서 그 길을 택했다.
현충원길은 현충원의 녹색 철책을 따라 동작역까지 이어지는 길로 마치 휴전선이나 국경선을 거
니는 기분을 들게 한다. 철책 안쪽은 성스러운 현충원이요. 내가 걷고 있는 바깥은 속세로 현충
원을 많이 들락거렸지만 경계선과 주변 산책로는 처음 간다. 정말 현충원은 뜨면 뜰수록 계속
용솟음치는 마르지 않는 샘이나 물건이 마구 나오는 마술 상자 같은 곳이 아닐 수 없다.


▲  현충원 철책과 나란히 이어진 현충원길 - 상도동 후문 북쪽

▲  현충원길 학수약수터 부근

▲  현충원길 사당동 후문 북쪽 오르막길

현충원길은 현충원 남쪽과 동쪽 산줄기에 닦은 산길로 이미 두툼하게 솟은 곳이라 길의 북쪽 종
점인 동작역이나 이수폭포를 제외하고는 급하게 솟거나 내려앉는 구간은 없다. 다만 이 길이 은
근 높은 지대이기 때문에 사당2동이나 사당3동, 정금마을 등에서 오를 때는 길이 좀 각박하다.

길 중간에는 사당3동으로 내려가는 길과 남묘(南廟), 사당동 후문, 정금마을과 갯마을, 이수폭
포 등 속세로 내려가는 길이 10개 정도 된다. 이중 남묘는 동묘(東廟)와 더불어 1599년 명나라
에서 금 4,000냥을 보내 지으라고 했던 관우(關羽)의 사당으로 원래는 서울역 동쪽에 있었다.
그러다가 주변이 개발되면서 1970년대에 사당3동 산동네로 떨려났고 지금은 거의 개인 절로 쓰
이고 있는데, 현충원길에서 남묘의 두꺼운 지붕들이 보인다. 그곳도 잠시 들릴까 하다가 귀찮아
서 그냥 지나쳤다. (내부 관람이 어려운 곳임)


▲  정금마을, 동작초교 갈림길

▲  끝없이 펼쳐진 현충원길과 현충원 철책의 위엄 (정금마을 갈림길 부근)

▲  길 중간중간에 설치된 메모리얼 게이트(Memorial Gate)

현충원길에는 이렇게 생긴 문이 심심치 않게 있다. 이 문은 현충원에 봉안된 순국선열을 추모하
는 뜻에서 세운 것으로 태극기를 형상화하여 문의 지붕은 태극모양처럼 넝실거리게 했고, 기둥
은 건, 곤, 감, 리로 표현했다고 한다. 허나 그런 심오한 의미와 다르게 문의 이름은 어렵게 영
어로 되어있어 고개를 심히 갸우뚱하게 한다.
문 이름은 보나마나 동작구청 공무원들이 없는 지식 쥐어짜서 만든 이름으로 보이는데, 굳이 영
어로 이름을 삼아야 폼이 나는 것일까? 그냥 순국선열의 문이나 애국의 문으로 하면 안되는거니
? 이 땅의 정말 과하기 그지 없는 영어 숭상은 실로 역겹기 그지 없다.


▲  현충원길의 거의 북쪽 끝인 이수갈림길에서 이수폭포로 가는 소나무길

▲  이수폭포 위에 세워진 단촐한 모습의 동작정(銅雀亭)

현충원길의 북쪽 마지막 갈림길이 이수갈림길이다. 여기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동작역과 국립현
충원 동문으로 이어지며, 동쪽으로 가면 이수폭포와 동작대로로 연결된다. 나는 여기서 집으로
가는 시내버스와 보다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이수폭포로 방향을 잡았다.

이수폭포로 내려가는 길은 소나무가 무성하여 솔내음이 속세로 나가려는 나의 마음을 마지막으
로 사로잡는다. 길의 경사는 꽤 각박하여 오르기가 힘들며, 내려갈 때는 미끄러질 위험이 크게
도사린다. 게다가 길 왼쪽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는데, 거의 80도에 가까운 낭떠러지로 동작대로
와 지하철 4호선 터널이 보일락말락한다.
그 길을 정신 없이 내려가니 동작정이라 불리는 작고 단아한 정자가 나타난다. 이제 다 내려온
것이다. 정면과 측면이 1칸 밖에 안되는 동작정 안에는 어느 속인이 벌러덩 누워 책을 보고 있
었는데, 무척 그늘진 곳이라 피서지로는 딱 그만이다. 정자 앞에는 인공적으로 만든 조그만 개
울이 있는데, 정자 서남쪽에서 발원해 이수폭포로 떨어진다. 이 물은 자연수가 아닌 수돗물이다.

▲  동작정 앞에 놓인 나무다리

▲  이수폭포 윗쪽


▲  여름의 제국을 긴장시키는 이수폭포의 위엄

동작정에서 1분 정도 내려가면 서울의 주요 간선도로인 동작대로와 함께 시원하게 쏟아지는 이
수폭포가 여름의 제국을 무척 똥줄타게 만든다. 이 폭포는 자연산이 아닌 인공폭포로 동작충효
길을 닦으면서 조성한 것인데, 폭포는 2개로 이루어져 서로 아름다움과 위엄을 뽐낸다. 성난 물
줄기가 쏟아져 하얀 비단이 아래로 드리운 듯 하며, 우렁찬 소리가 바위와 주변을 뒤흔들어 현
충원에 볼일이 있어 찾아온 나쁜 기운과 여름의 제국이 놀라 도망칠 정도이다.

폭포 주변 암벽에는 소나무와 여러 수풀을 심어 폭포의 운치를 돕고 있으며, 폭포 앞에는 조촐
하게 쉼터를 만들었다. 이곳에 앉아 폭포를 하염없이 보고 있으면 정말 삼척(三陟) 미인폭포 전
설에 나오는 미인처럼 시간가는 줄도 모르며 더위도 잠시 잊게 만든다.

이렇게 하여 현충일 기념 국립현충원과 동작충효길(현충원길)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 이수폭포(동작정), 현충원길 찾아가기 (2015년 6월 기준)
* 지하철 4,9호선 동작역 3번 출구를 나오면 현충원길이 나오며, 동작대로를 따라 6분 정도 가
  면 이수폭포가 나온다. 여기서 동작정을 거쳐 각박한 길을 오르면 현충원길과 만난다.
*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2동


 * 까페와 블로그에 올린 글은 공개일 기준으로 딱 8일까지만 수정/보완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집니다.
 * 본글의 내용과 사진을 퍼갈 때는 반드시 그 출처와 원작자 모두를 표시하시기 바랍니다.
   (상업적 이용은 댓글이나 메일, 전화연락 등으로 반드시 상의바람, 무단 사용은 안됨)
 * 글씨 크기는 까페와 블로그는 10~12pt, 원본은 12pt입니다.(12pt기준으로 작성됨)
 * 오타나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즉시 댓글이나 쪽지 등으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외부링크 문제로 사진이 안뜨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모니터와 컴퓨터 사양, 사용 기기(컴퓨터와 노트북, 스마트폰 등)에 따라 글이 조금
   이상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 공개일 - 2015년 6월 16일부터
 
* 글을 보셨으면 그냥 가지들 마시구 공감이나 추천을 흔쾌히 눌러주시거나 댓글 몇 자라도
   달아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Copyright (C) 2015 Pak Yung(박융), All rights reserved

본인 제작 여행답사기 모음집 (2014년 8월초 기준)

 

서울 - 56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

글 공개시기

링크

1

은평구 진관사, 삼천사, 북한산성 2003, 5 2003, 7

☞ 글보러 가기

2

성북구 성북동(간송미술관 / 심우장 / 성락원 / 선잠단터) 2003, 10 2003, 11

☞ 글보러 가기

3

관악구

관악산(낙성대유지 / 낙성대 / 봉천동 마애불) 2004, 2 2004, 3

☞ 글보러 가기

4 성북구 성북동(간송미술관 / 선잠단터) 2004, 10 2005, 1

☞ 글보러 가기

5 종로구 북악산 백석동천 2005, 5 2005, 9

☞ 글보러 가기

6 종로구 경복궁, 인사동 2006, 1 2006, 1

☞ 글보러 가기

7 은평구 숙용심씨 묘표, 영산군 묘역 2006, 2 2006, 5

☞ 글보러 가기

8 중구 덕수궁 2006, 3 2006, 7

☞ 글보러 가기

9

중구
종로구

서울시립미술관, 정동교회, 옛 러시아공사관터,
인사동

2006, 3 2006, 7

☞ 글보러 가기

10 종로구 창경궁 (1) 2006, 4 2006, 10

☞ 글보러 가기

11 종로구 창경궁 (2) 2006, 4 2006, 10

☞ 글보러 가기

12 강남구 봉은사 1 (사월초파일) 2006, 5 2007, 5

☞ 글보러 가기

13 강남구 봉은사 2 (사월초파일) 2006, 5 2007, 5

☞ 글보러 가기

14

종로구
서대문구

세검정, 대원군별장, 홍지문
보도각백불

2006, 8 2007, 8

☞ 글보러 가기

15

종로구

북한산 금선사

2008, 4 2008, 7

☞ 글보러 가기

16

금천구

호암산 호압사

2008, 4 2008, 11

☞ 글보러 가기

17

금천구

호암산 (호압사, 석구상, 한우물, 호암산성) 2009, 1 2009, 3

☞ 글보러 가기

18

종로구

선희궁터, 청와대분수대, 청와대앞길,
경복궁신무문, 인사동

2008, 11 2009, 4

☞ 글보러 가기

19

강남구

대모산 불국사 (사월초파일)

2008, 5 2009, 5

☞ 글보러 가기

20

은평구

북한산 삼천사 (사월초파일)

2008, 5 2009, 5

☞ 글보러 가기

21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이종석 별장

2008, 10 2009, 6

☞ 글보러 가기

22

노원구 수락산 학림사 2009, 4 2009, 8 ☞ 글보러 가기

23

종로구 북악산 백석동천 2008, 11 2009, 12 ☞ 글보러 가기

24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 2008, 5 2010, 4 ☞ 글보러 가기

25

은평구 태화산 수국사 2009, 5 2010, 7 ☞ 글보러 가기

26

종로구 부암동 뒷골마을, 북악산길, 창의문 2010, 1 2011, 3 ☞ 글보러 가기

27

관악구

관악산 관음사, 효민공이경직묘역, 사당동백제요지,
구벨기에공사관

2009, 3 2011, 4 ☞ 글보러 가기

28

성북구

흥천사

2010, 5 2011, 5 ☞ 글보러 가기

29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2010, 5 2011, 5 ☞ 글보러 가기

30

종로구

가회박물관, 삼청동(북촌), 인사동

2009, 8 2011, 9 ☞ 글보러 가기

31

성북구

성북동 삼청각, 홍련사, 북악산

2010, 5 2011, 10 ☞ 글보러 가기

32

도봉구

방학동 은행나무, 원당샘, 양효안맹담/정의공주묘
목서흠묘역

2009, 10 2011, 12

☞ 글보러 가기

33

종로구

북악산 백석동천 2010, 1 2012, 2 ☞ 글보러 가기

34

종로구

장의사지당간지주, 세검정, 석파정별당, 홍지문

2010, 1 2012, 2 ☞ 글보러 가기

35

강서구

구암공원(광주바위), 허가바위, 허준박물관

2010, 3 2012, 3 ☞ 글보러 가기

36

노원구

불암산 학도암, 이윤탁한글영비

2010, 4 2012, 4 ☞ 글보러 가기
37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2011, 5 2012, 5 ☞ 글보러 가기
38

동작구

상도동 사자암

2011, 5 2012, 5 ☞ 글보러 가기
39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창빈안씨묘역, 호국지장사)

2010, 6 2012, 6 ☞ 글보러 가기
40

종로구

북악산 백석동천(백사골)

2009, 10 2012, 8 ☞ 글보러 가기
41

성북구

북악산 북악하늘길(김신조루트), 북악산길

2011, 5 2012, 9 ☞ 글보러 가기
42

성북구

성북동 심우장, 최순우옛집, 선잠단터

2010, 5 2012, 10 ☞ 글보러 가기
43

종로구

북촌문화센터, 관상감관천대, 계동길, 창덕궁길,
요금문, 고희동가옥, 백흥범가옥, 빨래터

2011, 7 2013, 1 ☞ 글보러 가기
44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 2012, 5 2013, 4 ☞ 글보러 가기
45 종로구

석파정별당(석파랑), 부침바위터, 무계정사터,
현진건집터, 청계동천, 반계윤웅렬별장

2011, 11 2013, 4

☞ 글보러 가기

46

종로구

재동백송, 재동초교, 백인제가옥, 북촌3경 일대,
정독도서관(서울교육박물관), 안국동 윤보선가

2011, 9 2013, 5

☞ 글보러 가기

47

강북구

북한산 본원정사

2012, 5 2013, 5

☞ 글보러 가기

48

성북구

정릉동 경국사

2012, 5 2013, 5

☞ 글보러 가기

49

종로구

북악산 백사실(백석동천) 2012, 7 2013, 7

☞ 글보러 가기

50

도봉구

도봉산 (자운봉, 포대능선, 만월암, 도봉서원,
광륜사)

2012, 5 2013, 10

☞ 글보러 가기

51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2012, 10 2013, 10

☞ 글보러 가기

52

금천구

호암산 (석구상, 호암산성터, 한우물, 불영암,
칼바위)

2011, 11 2013, 12

☞ 글보러 가기

53

종로구

윤동주시인의 언덕(윤동주문학관), 청운공원

2011, 8 2014, 3

☞ 글보러 가기

54

종로구
중구

서울연등회 (서울연등축제)
조계사, 우정국로, 청계천, 광통교

2013, 5 2014, 4

☞ 글보러 가기

55

종로구

북한산 승가사 (구기동 마애여래좌상) 2012, 5 2014, 5

☞ 글보러 가기

56

중구

환구단(원구단), 덕수궁 대한문, 성공회 서울성당,
양이재, 구세군 중앙회관

2010, 4 2014, 6

☞ 글보러 가기

 

경기도, 인천 - 27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

글 공개시기

링크

1

부천

야인시대촬영장, 루미나리에축제 2003, 10 2003, 10

☞ 글보러 가기

2

강화

석모도 보문사, 매음리해변 2004, 11 2005, 5

☞ 글보러 가기

3 강화 광성보, 용두돈 2004, 11 2005, 5

☞ 글보러 가기

4 강화 강화도 선원사 연꽃축제장 2005, 8 2005, 11

☞ 글보러 가기

5 고양 북한산성(대서문, 중흥사터, 북한산행궁터) 2006, 8 2007, 1

☞ 글보러 가기

6 고양 북한산성(태고사, 산영루터, 북한산성계곡) 2006, 8 2007, 1

☞ 글보러 가기

7 성남 망경암, 봉국사 (사월초파일) 2006, 5 2007, 6

☞ 글보러 가기

8

오산
수원

오산 물향기수목원 / 수원 팔달문

2006, 11 2007, 12

☞ 글보러 가기

9

남양주 수락산 흥국사 2007, 12 2008, 3 ☞ 글보러 가기

10

남양주 덕릉마을 산신각, 덕흥대원군 묘역 2006, 12 2008, 5 ☞ 글보러 가기

11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용암사) 2007, 9 2008, 10 ☞ 글보러 가기
12

안양

안양사, 석수동마애종, 석수동석실고분 2007, 11 2009, 3 ☞ 글보러 가기
13

안성

서운산 석남사 (사월초파일)

2008, 5 2009, 5 ☞ 글보러 가기
14

하남

춘궁동동사지(동사지3/5층석탑), 광주향교

2008, 10 2010, 2 ☞ 글보러 가기
15

안양

삼성산 염불암, 중초사지당간지주, 안양예술공원

2008, 11 2010, 12 ☞ 글보러 가기
16

양평

용문산 사나사, 사나사계곡

2010, 5 2011, 5 ☞ 글보러 가기
17

강화

강화도 선원사 (연꽃축제)

2009, 8 2011, 8 ☞ 글보러 가기
18

고양

북한산성 중성문, 노적사, 중흥사터, 봉성암,
산영루터

2008, 4 2011, 8 ☞ 글보러 가기
19

포천

반월성, 청성공원, 포천향교

2009, 8 2011, 10 ☞ 글보러 가기
20

하남

선법사(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2008, 10 2011, 11 ☞ 글보러 가기
21

고양

한미산(노고산) 흥국사

2008, 11 2011, 12 ☞ 글보러 가기
22

고양

중남미문화원, 벽제관터

2010, 4 2012, 5 ☞ 글보러 가기
23

강화

장정리 석조여래입상, 장정리5층석탑, 고려궁터,
김상용 순절비

2009, 8 2012, 8 ☞ 글보러 가기
24

이천

관고리 석불입상, 설봉공원(설봉저수지),
설봉서원, 설봉산 영월암

2009, 5 2012, 10 ☞ 글보러 가기
25

양평

용문산 용문사,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

2010, 11 2012, 11 ☞ 글보러 가기
26

파주

고령산 보광사

2009, 12 2013, 2 ☞ 글보러 가기
27

화성

제암리 3.1운동순국유적 2012, 3 2014, 3 ☞ 글보러 가기

 

강원도 - 18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양양

낙산사, 홍련암, 오색약수, 성국사, 설악산 주전골 2004, 2 2004, 3

☞ 글보러 가기

2

강릉 객사문, 오죽헌, 경포대, 굴산사터, 신복사터 2004, 6 2004, 6

☞ 글보러 가기

3 양구 양구 향토사료관, 심곡사 2004, 9 2005, 1

☞ 글보러 가기

4

속초
고성

속초 탑공원, 고성 청간정 2005, 6 2005, 8

☞ 글보러 가기

5 고성 건봉사 2005, 6 2005, 9

☞ 글보러 가기

6 평창 대관령 양뗴목장 2006, 5 2006, 8

☞ 글보러 가기

7

강릉
동해

경포대해수욕장, 등명낙가사, 묵호항 2006, 5 2006, 8

☞ 글보러 가기

8 동해 감추사, 감추해변 2006, 11 2007, 2

☞ 글보러 가기

9 태백 구문소 2006, 11 2007, 2

☞ 글보러 가기

10

양구

양구 선사박물관 2008, 12 2010, 1

☞ 글보러 가기

11

화천

토고미마을(산천어축제), 딴산 2010, 1 2011, 1 ☞ 글보러 가기
12

화천,양구
춘천

화천 평화의댐(세계평화의종공원), 춘천 윗샘밭 2010, 1 2011, 2 ☞ 글보러 가기
13

평창

남산공원, 송학루, 노산성

2009, 9 2011, 12 ☞ 글보러 가기
14

삼척

미인폭포(통리협곡), 여래사

2012, 1 2012, 6 ☞ 글보러 가기
15

정선

정선5일장, 봉양리뽕나무, 아우라지

2009, 10 2012, 7 ☞ 글보러 가기
16

영월

보덕사, 금몽암, 낙화암, 금강정, 금강공원

2009, 10 2013, 11 ☞ 글보러 가기
17

태백

태백산 (당골, 석탄박물관, 석장승, 눈꽃축제장,
단군성전)

2012, 1 2014, 2 ☞ 글보러 가기
18

동해

추암(추암해수욕장, 촛대바위), 해암정,
추암조각공원, 북평5일장

2012, 6 2014, 7 ☞ 글보러 가기

 

충청북도 - 10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충주

미륵리사터, 미륵리가마터

2003, 7

2003, 10

☞ 글보러 가기

2

제천

빈신사지 석탑, 덕주사, 덕주산성, 송계9곡

2003, 7

2003, 11

☞ 글보러 가기

3

보은
대전

보은 삼년산성
대전 동춘당 / 송애당 / 법동 석장승

2003, 11

2003, 12

☞ 글보러 가기

4 단양 구인사 2004, 12 2005, 2

☞ 글보러 가기

5 청주 상당산성 2005, 6 2005, 9

☞ 글보러 가기

6 영동 영동향토민속자료전시관, 가학루, 황간향교 2008, 2 2008, 12

☞ 글보러 가기

7

충주

단호사, 사문리당산나무숲, 미륵리사터,
하늘재, 충주호

2008, 9 2009, 10

☞ 글보러 가기

8

단양

사인암, 청련암, 중선암, 북상리 시골

2009, 10 2011, 11

☞ 글보러 가기

9

괴산

각연사 (각연사계곡)

2009, 11 2012, 1

☞ 글보러 가기

10

괴산

원풍리 마애2불병좌상, 홍범식고가, 개심사

2009, 11 2012, 3

☞ 글보러 가기

 

대전, 충청남도 - 12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서산 서산 마애3존불, 보원사터 2004, 8 2004, 10

☞ 글보러 가기

2 금산 진악산 보석사 (1) 2005, 2 2005, 7

☞ 글보러 가기

3 금산 진악산 보석사 (2) / 진악산 자연휴양림 2005, 2 2005, 7

☞ 글보러 가기

4 금산 칠백의총 2005, 2 2005, 7

☞ 글보러 가기

5 천안 태화산 광덕사 2008, 5 2009, 7

☞ 글보러 가기

6

당진
태안

행담도, 꽃지해수욕장, 방포항, 안면도자연휴양림,
안면암

2009, 3 2009, 8

☞ 글보러 가기

7

대전 식장산 고산사 2008, 11 2009. 11 ☞ 글보러 가기

8

공주 계룡산 동학사 2011, 2 2012. 3 ☞ 글보러 가기

9

공주 계룡산 남매탑, 삼불봉, 천진보탑, 용문폭포 2011, 2 2012. 3 ☞ 글보러 가기

10

공주

계룡산 갑사

2011, 2 2013. 2 ☞ 글보러 가기

11

태안

신진도(안흥외항), 마도, 안흥항, 안흥성(태국사)

2010, 2 2013, 8 ☞ 글보러 가기

12

홍성 용봉산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용봉산자연휴양림) 2012, 4 2014, 6 ☞ 글보러 가기

 

전라북도 - 7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부안 상록해수욕장, 내소사, 곰소항 2003, 8 2003, 9

☞ 글보러 가기

2 임실 오수 의견비, 사선대 / 운서정 2006, 6 2006, 8

☞ 글보러 가기

3 장수 의암사(논개사당) 2008, 2 2008, 11

☞ 글보러 가기

4

무주
장수

한풍루, 무주향교
의암송, 장수향교

2008, 2 2009, 3

☞ 글보러 가기

5 전주 전주한옥마을, 오목대(이목대), 한벽당 2010, 1 2012, 1

☞ 글보러 가기

6 군산

동국사, 은적사, 발산초등학교

2009, 9 2012, 12

☞ 글보러 가기

7 군산

응항, 선유도, 고군산군도 일주

2012, 4 2014, 7

☞ 글보러 가기

 

광주, 전라남도 - 11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장성
담양
나주

장성 방울샘,
담양 관방제림 / 담양읍 5층석탑 / 석당간
나주 남고문 / 정수루

2003, 12 2004, 1

☞ 글보러 가기

2 광주 무양서원, 장고분 2005, 4 2005, 8

☞ 글보러 가기

3 영광 내산서원 2006, 10 2007, 4

☞ 글보러 가기

4

나주
광주

정수루, 금성관
광주 풍영정

2006, 10 2007, 4

☞ 글보러 가기

5

순천 금전산 금둔사 2008, 11 2009, 11 ☞ 글보러 가기

6

순천 개운산 동화사 2008, 11 2010, 1 ☞ 글보러 가기

7

순천 조계산 천자암 2008, 11 2010, 2 ☞ 글보러 가기

8

장성 백암산 백양사 2009, 9 2011, 9 ☞ 글보러 가기

9

광주 무등산 원효사 2009, 9 2011, 10 ☞ 글보러 가기

10

구례 지리산 천은사(천은제) 2011, 4 2012, 4 ☞ 글보러 가기

11

곡성 동리산 태안사(태안사계곡) 2010, 4 2013, 5 ☞ 글보러 가기

 

대구, 경상북도 - 17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경주

반월성, 석빙고, 남산 서쪽(용장사터, 천룡사터)

2003, 4 2003, 5

☞ 글보러 가기

2

경주 경주읍성, 경주관아터, 옛 경주신사 2005, 11 2006, 1

☞ 글보러 가기

3

경주

노서동 고분군, 노동동 고분군 2005, 11 2006, 2

☞ 글보러 가기

4 안동 제비원 석불, 옥동3층석탑 2005, 12 2006, 3

☞ 글보러 가기

5 성주 성산관, 쌍충사적비, 성밖숲, 성산동 고분군 2006, 3 2006, 7

☞ 글보러 가기

6

성주
대구

성산동 고분군, 경상감영공원 2006, 3 2006, 7

☞ 글보러 가기

7 문경 문경새재(여궁폭포, 혜국사, 주흘산, 주흘관) 2006, 10 2006, 12

☞ 글보러 가기

8 달성 비슬산(유가사 / 암괴류), 현풍석빙고 2006, 10 2007, 10

☞ 글보러 가기

9 구미 의구총, 낙산리고분군, 낙산리3층석탑 2008, 2 2009, 2

☞ 글보러 가기

10

예천
상주

개심사지5층석탑
용화사(증촌리석불좌상/입상), 전고령가야왕릉

2007, 12 2009, 4

☞ 글보러 가기

11

경주

남산 불곡 석불좌상, 신문왕릉 2008, 7 2009, 7 ☞ 글보러 가기

12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불무사) 2008, 7 2009, 9 ☞ 글보러 가기

13

영덕
울진

고래불해수욕장, 후포항, 월송정, 월송해변 2009, 6 2011, 6 ☞ 글보러 가기

14

달성

다람재, 도동서원, 이노정 2009, 7 2012, 12 ☞ 글보러 가기

15

청도

남산 낙대폭포 2011, 6 2013, 7 ☞ 글보러 가기

16

달성

비슬산 용연사 2011, 3 2014, 2 ☞ 글보러 가기

17

예천

회룡포, 비룡산 2011, 11 2014, 7 ☞ 글보러 가기

 

부산 - 13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해운대구

해운대해수욕장, 장산(폭포사 / 장산폭포) 2005, 4 2005, 8

☞ 글보러 가기

2

중구
연제구

부산근대역사관, 연산동고분군

2006, 4 2006, 11

☞ 글보러 가기

3

수영구
강서구

광안리해수욕장, 가덕도(외양포, 대항, 세바지)

2007, 2 2008, 4

☞ 글보러 가기

4

강서구
서구

망상도/유주암, 송도해변, 송도해수욕장

2007, 7 2008, 9 ☞ 글보러 가기
5

기장군

불광산 (장안사. 장안사계곡) 2007, 11 2009, 1 ☞ 글보러 가기
6

기장군

불광산 (척판암, 백련암) 2007, 11 2009, 1 ☞ 글보러 가기

7

서구
북구

내원정사, 만덕사(만덕사 당간지주), 알터유적 2008, 8 2009, 9 ☞ 글보러 가기

8

금정구

금정산(금정산성, 국청사) 2009, 4 2011, 1 ☞ 글보러 가기

9

금정구

금정산 미륵사, 금성동 2009, 4 2011, 1 ☞ 글보러 가기

10

강서구

가덕도(가덕도등대, 외양포, 대항, 새바지) 2009, 7 2012, 7 ☞ 글보러 가기

11

사상구
강서구

백양산 운수사, 백양산 숲길,
범방동3층석탑, 부산경남경마공원

2009, 4
2009, 6

2012, 12 ☞ 글보러 가기

12

사하구

몰운대, 다대포

2011, 6

2013, 7 ☞ 글보러 가기

13

남구

백운포, 오륙도 (오륙도등대, 등대섬)

2010, 6

2014, 1 ☞ 글보러 가기

 

울산, 경상남도 - 22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울산
부산

처용암
옥련선원 / 정묘사(배롱나무)

2003, 8 2003, 9

☞ 글보러 가기

2

김해
부산

은하사, 수로왕비능, 구지봉, 초선대, 봉황동 유적
다대포(몰운대)

2004, 1 2004, 2

☞ 글보러 가기

3 창원 창원 불곡사 2005, 4 2005, 8

☞ 글보러 가기

4

거제
통영

학동해변, 옥포대첩비, 한산도 2005, 10 2005, 12

☞ 글보러 가기

5 통영 한산도 제승당 2005, 10 2005, 12

☞ 글보러 가기

6 창원 무학산(관해정), 가포해변 2006, 4 2006, 11

☞ 글보러 가기

7

김해

김해 수로왕릉

2006, 4 2006, 11

☞ 글보러 가기

8

진주
사천

진주 금선암
사천읍성(산성공원), 대방진굴항

2007, 1 2008, 1 ☞ 글보러 가기
9

함안
창원

함안박물관, 말산리/도항리고분군
진해 우체국

2007, 1 2008, 1 ☞ 글보러 가기
10

창원

불모산 성흥사, 대장동계곡

2007, 7 2008, 9 ☞ 글보러 가기
11

밀양

밀양 표충비, 무안리 향나무(홍제사) 2007, 11 2009, 1 ☞ 글보러 가기
12

양산

천성산 홍룡사(홍룡폭포), 원효암 2008, 10 2009, 6 ☞ 글보러 가기

13

울산 일산해수욕장, 대왕암공원 2008, 8 2009, 7 ☞ 글보러 가기

14

창녕

창녕석빙고, 송현동석불좌상, 송현동고분군,
진흥왕척경비, 만옥정공원, 남지철교

2008, 9 2010, 5 ☞ 글보러 가기

15

거창

수승대(귀연서원, 요수정)

2008, 10 2011, 7 ☞ 글보러 가기

16

울주
밀양

서생 나사리해변,
밀양 얼음골(천황사)

2010, 7 2011, 7 ☞ 글보러 가기

17

함양

상림공원, 한남군묘역

2009, 7 2012, 7 ☞ 글보러 가기

18

산청

목면시배유지, 배산서원, 덕천서원, 남명조식유적

2008, 10 2012, 9 ☞ 글보러 가기

19

남해

호구산 용문사, 남해자생식물단지, 미국마을,
용소리/금평해변

2009, 11 2012, 11 ☞ 글보러 가기

20

통영

통영 달아공원

2011, 3 2013, 3 ☞ 글보러 가기

21

울주

가지산 석남사 (석남사계곡)

2010, 7 2013, 9 ☞ 글보러 가기

22

고성

연화산 옥천사, 공룡발자국화석

2010, 10 2013, 11 ☞ 글보러 가기

 

제주도 지역 - 2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제주 서해바다, 한라산(성판악 / 사라악 / 진달래밭) 2005, 8 2006, 2

☞ 글보러 가기

2

제주 한라산(백록담 / 탐라계곡), 서해바다 2005, 8 2006, 2

☞ 글보러 가기


 

기타 지역 - 1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왜열도

동경 지역(긴자, 록뽕키, 우에노, 도쿄도청타워,
아사쿠사<관음사>, 신주쿠, 코쿄, 디즈니랜드)

2002, 5 2002, 6

☞ 글보러 가기


1. 공개된 글 중에서 하자가 없는 글들만 선정해서 지역별로 모았습니다.
2. 2003년 5월 이전(2개 제외) 글과 아직 공개되지 않은 답사기는 제외했습니다.
3. 답사기 내용과 사진을 전체 혹은 일부 퍼갈 경우, 반드시 출처와 원작자(박융) 이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4. 사진이 일부 혹은 모조리 뜨지 않는 글들(주로 2004 ~ 2005년판)이 꽤 많습니다. 이 점 널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5. 공개된 글 중, 추후 업데이트 판이 나올 경우, 이전 판은 모음집에서 삭제 될 수 있으며 2개 이상의 시리즈로
작성된 글 중 본인 필요에 따라 1개나 2개로 통폐합 정리될 수 있습니다.
6. 지역 별로 분류했으나 지역이 2개 이상 겹치는 글은 먼저 간 곳을 기준으로 분류했습니다.

 

볼거리와 조망이 일품인 서울의 숨겨진 명산, 호암산 (석구상, 한우물, 칼바위...)

 

~~~ 볼거리가 풍부한 서울의 숨겨진 명산, 호암산(虎巖山) ~~~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  호암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호암산 석구상

호암산성터

▲  호암산 석구상

▲  호암산성터


서울 시흥동과 신림동, 경기도 안양시에 걸쳐있는 호암산(虎巖山, 385m)은 삼성산(三聖山,
480m)의 일원으로 삼성산 서북쪽에 자리한다. 호암산이란 이름은 산세가 호랑이를 닮았다
고 하여 유래된 것인데, 다음의 사연이 걸쭉하게 전해온다.

때는 바야흐로 1394년, 고려를 뒤엎고 조선을 세운 이성계(李成桂)가 개경(開京, 개성)을
버리고 서울(한양)로 도읍을 옮겼다. 서울에 와서 주변 지형을 살피니 한강 남쪽에 호랑
이를 닮은 호암산과 활활 타오르는 불 모양의 관악산(冠岳山, 629m)이 사이 좋게 서울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즉 풍수지리(風水地理)적으로 서울을 크게 위협하는 존재로
봤던 것이다.
고구려(高句麗)의 시조인 동명성왕(東明聖王)처럼 화살을 잘쏘며 무인(武人)으로써 크게
위엄을 날렸던 이성계, 허나 대자연이 빚은 호암산과 관악산의 패기에 그만 염통이 쫄깃
해지면서 서울을 지키고자 안간힘을 쓰게 된다. 그래서 비보풍수(裨補風水)에 따라 호암
산과 관악산 밑에 절을 짓고 연못을 팠으며, 광화문(光化門) 앞에 해태상을 세우고, 숭례
문(崇禮門, 남대문)의 현판을 세로로 세우는 등, 그야말로 난리법석을 떨었다.

이처럼 호암산에는 산의 매서운 기운을 누르고자 지은 호압사(虎壓寺)를 비롯하여 서울에
서 가장 크고 오래된 우물인 한우물, 비보풍수로 세워진 석구상, 신라 때 축성된 호암산
성터, 흔적만 아련히 남은 제2한우물터와 건물 유적, 호암산의 기운을 잠재우고자 기도를
올린 자리에 세워진 불영암, 기해박해(己亥迫害) 때 처형된 프랑스 신부 3명이 묻힌 삼성
산성지(三聖山聖地) 등, 신라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옛 흔적들이 서려있어 이곳
의 중요성을 새삼 가늠케 한다. 
게다가 조망 또한 천하일품이라 서울 대부분과 안양, 광명, 부천, 인천(仁川)은 물론 북
한산(삼각산)까지 거침없이 시야에 들어오며, 호랑이를 닮은 뫼답게 멋드러진 바위가 아
낌없이 포진해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근래에는 호압사 남쪽에 넓게 소나무숲을
조성해 산림욕장을 닦았고, 벽산5단지 기점에는 비록 인공이긴 하지만 호암산폭포가 조성
되어 호암산의 새로운 명물을 꿈꾼다.

호암산은 호압사를 비롯해 벽산5단지, 신우초교, 삼성산성지, 서울대, 석수역, 시흥3동에
서 안길 수 있으며, 깃대봉과 장군봉을 거쳐 삼성산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리고 2011년
11월에는 사당역에서 낙성대(落星垈), 서울대, 호압사, 산림욕장, 호암산폭포, 시흥계곡
을 거쳐 석수역까지 이어지는 관악산둘레길(13km)이 뚫리면서 북한산둘레길에 감히 도전
장을 내밀었다.


  부드러운 곡선의 호암산 남쪽 능선
 

▲  호암산 정상 입구에서 바라본 남쪽 능선

호암산 정상 밑에 자리한 호압사에서 한우물이 있는 호암산 남쪽 봉우리까지는 소나무 산림욕장
을 거쳐가는 것과 호압사 뒤쪽에서 정상 입구를 거쳐 가는 길이 있다. 각 길마다 장단점이 있겠
지만 좀 쉽게 가고자 한다면 산림욕장 길이 좋다.

호압사 남쪽에 넓게 터를 닦은 소나무 산림욕장은 솔내음이 진하게 나래를 펼치는 소나무 숲 사
이로 산책로가 실타래처럼 이어져 있고, 곳곳에 의자와 운동시설이 심어져 속인들의 편의를 제
공한다. 그리고 숲 남쪽에는 약수터가 있어 호암산이 베푸는 약수도 마실 수 있다. 그런데 1가
지 아쉬운 것은 약수터 주변을 흐르는 계곡을 자연 그대로 냅두지 않고 시멘트를 발라 둑과 물
길을 낸 것이다. 얼마나 보기가 흉하던지 애써 가꿔온 송림의 아름다움이 무색할 지경이다.


▲  호암산 남쪽 능선에서 바라본 천하
시흥2동 벽산아파트를 비롯하여 금천구와 광명시 지역이 눈 아래 펼쳐진다.
 

▲  세상을 향해 머리를 들이민 호암산 남쪽 봉우리

반면 호압사 뒤쪽은 시작부터 꽤나 각박하여 힘겨운 산길을 올라야 되지만 그 거리는 10분 내외
로 짧다. 잠깐의 고통을 딛고 길을 올라서면 금세 호암산 정상 입구에 도달한다. 여기서부터 남
쪽 봉우리까지는 아주 느긋한 능선길(남쪽 능선)의 연속으로 능선을 따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
는 조망을 두 눈에 주어 담으며 거닐면 된다. 이 구간이 바로 호암산의 가장 큰 매력으로 산길
곳곳에 멋드러진 바위가 호랑이의 이빨과 발톱처럼 포진해 있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조망의 맛
은 정말 꿀맛이다.

내가 호암산에 퐁당퐁당 빠진 것은 잠깐의 고생 끝에 정상과 능선까지 오를 수 있고, 거기서 이
렇게 꿀 빠는 조망을 누릴 수 있으며, 능선의 곡선이 매우 부드럽고 느긋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래된 명소도 풍부하니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 착한 산이다.


▲  남쪽 능선에서 바라본 천하 (1)
흐린 하늘 아래로 서울 금천구와 구로구, 양천구, 영등포구 지역이 보인다.
호암산 능선에는 훤칠한 소나무부터 키가 작은 소나무까지 다양한 모습의
소나무가 뿌리를 내려 호암산을 아름답고 푸르게 수식한다.

▲  남쪽 능선에서 바라본 천하 (2)
시흥2동 벽산아파트와 금천구, 구로구, 광명시 지역


▲  남쪽 능선에서 바라본 천하 (3) 서울 금천구와 구로구, 광명시 지역

▲  두툼하게 솟은 호암산 남쪽 봉우리

▲  솔내음이 춤을 추는 호암산 남쪽 능선길


♠  호암산 석구상(石狗像)과 호암산성터 주변

호압사와 정상에서 부드러운 곡선의 능선을 더듬으며 남쪽 봉우리에 이르면 한우물을 200m 가량
앞둔 지점에서 산길이 2개로 갈린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바로 사방을 난간으로 두룬 돌로 쌓
은 기단(基壇)이 나오고, 그 안에 호암산의 상징물인 조그만 석구상이 북쪽을 바라보며 정말 귀
엽게도 앉아있다.

지금은 돌로 만든 개의 상, 석구상으로 통하지만 아직까지도 그 정체에 대해 말들이 조금 있는
모양이다. 예전에는 광화문 해태상과 마주 보게 하여 관악산의 화기(火氣)로부터 서울을 지키는
해태상으로 여기기도 했는데, 한우물을 발굴조사하면서 '석구지(石狗池)'라 새겨진 장대석(長臺
石)이 출토되었고, 시흥읍지 형승조(始興邑誌 形勝條)에는
'호암산 남쪽에 석견(石犬) 4두(四頭)를 묻어 개와 가깝게 하고자 하였으며 지금 현남7리(縣南
七里, 시흥동)에 사견우(四犬偶, 개의 형상 4개)가 있다'
란 기록이 있어 해태상이 아닌 석구상
으로 크게 무게가 쏠리고 있다.

석구상의 크기는 길이 1.7m, 폭 0.9m, 높이 1m 정도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발과 꼬랑지 부분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옆에서 바라본 석구상

▲  석구상 뒷부분의 위엄 (꼬랑지가 말려져 있다)

석구상의 모습을 가만히 보면 해태의 모습은 분명 아니다. 그렇다고 완벽한 개의 모습이라 하기
에는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앞 모습을 보면 강아지의 모습 같기도 하지만 양과도 비슷해 보이
며, 어떤 이는 개구리를 닮았다고도 하니, 보면 볼수록 참 답이 안나오는 기이한 상이 아닐 수
없다. 아무래도 제 눈이 안경이라 사람마다 보이는 모습이 제각기 다를 것이다. 그의 뒷부분에
는 길다란 꼬리가 말려져 있는데, 이는 개의 꼬리가 아닌 고양이나 호랑이의 꼬리와 비슷하다.

석구상의 탄생 시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는 없으나 대략 조선 중기 이후로 여겨진다. 그는 정
확히 북쪽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데 정말로 광화문 해태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를
만든 이유도 딱히 알려진 것은 없으나 호암산의 기를 누르고 서울을 지키려는 비보풍수의 일환
으로 여겨진다.

석구상은 그 모습이 참으로 아담하고 깜찍하여 등산객들의 눈길을 제대로 잡아맨다. 보는 이들
마다 귀엽다는 말이 연거푸 터져 나오고,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적지 않은 웃음을 선사하며,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는 등 그의 인기는 좀처럼 식을 줄을 모른다.


▲▼  숲속 오솔길에 묻힌 호암산성터 - 사적 343호

석구상에서 바로 남쪽 능선길을 조금 가면 산길의 일부가 되버린 호암산성의 아련한 흔적을 만
날 수 있다. 흔적이라고 해봐야 성돌과 흙이 뒤섞인 1~2m 높이의 성터 윤곽이 전부로 이리저리
돌이 박혀있어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그냥 산길로 여기며 밟고 지나가기 일쑤다.

호암산성은 호암산 남쪽 봉우리에 둘러진 퇴뫼식 산성으로 자연 지형을 이용했다. 산성의 길이
는 약 1.250m로 지금은 300m 정도만 간신히 살아있다. 성곽은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쭉한 마름모꼴로 축성 시기와 목적은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으나 1990년 봄, 한우물과 호
암산성 일대를 발굴하면서 우물 2곳과 건물터 4곳이 드러났고, 6,500여 점에 이르는 막대한 토
기와 갖은 유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들 유물과 관련 기록을 통해 신라 중기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금천구청 자료에 따르면 672년(문무왕 11년) 신라가 당나라의 공격을 막고자 세운 요새
로 여기고 있는데, 당시 신라는 한강 이북에서 당나라와 힘겹게 줄다리기를 하던 상황이었다.

조선시대에도 한우물과 관련된 여러 기록과 제2한우물터, 건물터 등의 흔적을 통해 산성이 그런
데로 구실을 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딱 1번 크게 쓰인 적이 있는데 바로 임진왜란이 한참이던
1593년 1월로 이때 수원 남쪽 독산성<禿山城, 오산 세마대(洗馬臺)>에서 왜군을 격파한 권율(權
慄) 장군이 서울을 수복하고자 행주산성(幸州山城)에 들어가 진을 치고, 전라병사(全羅兵使) 선
거이(宣居怡)에게 군사 4,000명을 주어 호암산성으로 보내 자신의 후방을 지키게 했다. 호암산
은 서울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호랑이 모양의 뫼답게 서울로 공격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왜란 이후, 산성은 계속 유지되었으나 점차 그 중요성이 떨어지면서 조선 후기에 그 이름이 지
워지고 만다. 이후 산성의 운명은 지금의 상태가 여실히 말해준다. 버림을 받은 호암산성은 관
리 소홀과 자연의 무정한 장난, 그리고 세월의 덧없는 무게까지 더해지면서 서서히 녹아내려갔
고, 등산객들의 속절없는 발길이 성곽을 짓누르면서 담장만도 못한 상태가 되버린 것이다. 아무
리 인간이 멋드러지고 견고하게 건축물을 세워도 대자연 형님 앞에서는 일개 장난감에 불과하다.


▲  오르막을 타는 호암산성터

▲  호암산성 능선에서 바라본 매끄러운 곡선의 삼성산 줄기
삼성산 줄기 너머로 관악산 정상이 흐릿하게 보인다.

▲  호암산성 능선에서 만난 바위
바위 밑은 천길 낭떠러지이므로 주의 요망~

▲  제2한우물터 북쪽에 뿌리를 내린
옛 사람의 무덤


석구상에서 제2한우물터로 가는 길목에 조그만 무덤 1기가 뿌리를 내렸다. 삼성산이 있는 동쪽
을 바라보는 이 무덤은 대략 100여 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다른 무덤과 달리 산의 기맥이 이어
져 있지 않고 그냥 봉분(封墳)만 올린 조촐한 형태로 그 뒤쪽에는 바위가 누워있다.

무덤 앞에는 묘의 주인을 알리는 묘비가 없어 무덤의 자세한 정보는 알 수 없으며, 별다른 장식
이 없는 소박한 모습으로 보아 인근에 살던 백성의 무덤으로 보인다. 비석과 상석(床石) 대신
돌을 두툼하게 깔아 예를 올리는 공간을 마련했고, 봉분은 자연석으로 네모나게 호석(護石)까지
둘렀는데, 그 모습이 마치 이가 서로 맞물린 듯 불규칙해 보인다.


▲  호암산성 건물유적

호암산성터를 지나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면 호암산 남쪽 봉우리의 정상부이다. 이곳에는 잡초가
무성한 드넓은 공간이 있는데, 서쪽에는 제2한우물터가, 동쪽에는 건물유적이 있다.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지 수풀 속에 잠긴 건물유적에는 건물을 받쳤을 주춧돌과 건물터의
윤곽이 떠받들 대상을 상실한 채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으며, 나무에게 버림받은 낙엽들이 그 허
전한 빈터를 따스히 덮어주며 서로 동병상련의 이웃이 되어준다. 이곳은 조선 때 호암산성을 관
리하던 관청이나 장대(將臺), 또는 군사들의 숙소나 창고로 여겨지며, 조선 후기에 무너져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  수풀 속에 묻혀 분간이 쉽지 않은 호암산 제2한우물터

건물유적 맞은편에는 제2한우물터가 있다. 호암산성이 버려진 이후, 땅 속에 묻혀 강제로 기나
긴 잠을 자다가 1990년 발굴조사로 다시금 햇살을 보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우물의 길이는 남북이 18.5m, 동서 10m, 깊이 2m에 이르며
산꼭대기에 하나도 아닌 2개의 커다란 우물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은 실
감이 나지 않지만 옛날부터 호암산의 중요성이 얼마나 지대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물로 하늘에
제를 지내거나 기우제 등 여러 의식이 거행된 곳처럼 마냥 신비롭게 보여 우물 가까이 다가서기
가 두려울 정도다. 괜히 저곳에 내려가다가 천벌을 받거나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 같은 기분 말
이다.

제2한우물터는 발굴 이후, 한우물처럼 온전히 재현되지 못하고 풀이 무성하도록 방치되고 있으
며, 석축과 우물을 구성하는데 쓰인 돌들이 무수히 널려있다. 복원할 계획이 있다고는 하는데
그게 언제가 될지는 호암산 산신(山神)도 모른다. 어차피 복원된 한우물이 있으니 제2한우물은
그냥 저대로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산 정상부에 둥지를 튼 거대한 옛 우물, 호암산 한우물
- 사적 343호

호암산 남쪽 봉우리 서쪽에는 호암산의 또 다른 상징물인 한우물이 누워있다. 여기서 한우물은
큰 우물이란 뜻으로 산 정상부에 이런 거대한 못이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천하가
훤히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해 있어 하늘의 우물인 천정(天井) 분위기도 물씬 풍기며, 이곳에 물
을 대줄 마땅한 수원(水源)도 없다고 하는데, 어디서 그 많은 물이 나오는 것인지 늘 물로 풍부
하다. 특히 가뭄 때도 물이 가득해 그 신비로움을 더욱 끌어올린다.

한우물은 천정, 용복, 용초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7~8세기 경에 축조된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우물 자리 밑에서 신라 못의 흔적이 확인되었는데 그 시절에도 못의 규모는 상당하여 동서 약
17.8m, 남북 약 13.6m, 깊이 약 2.5m에 달했다고 하며, 이후 조선 때 그 위에 새롭게 동서 22m,
남북 12m, 깊이 1.2m의 장방형 우물을 덧씌웠다.

1990년 봄, 한우물을 발굴할 때 12개 기종의 1,313점의 유물이 햇빛을 보고자 앞을 다투어 쏟아
져 나왔는데, 그중 '仍伐內力 只來..' 글씨가 새겨진 청동 숟가락이 나와 조성시기를 알려주는
열쇠가 되었다. 또한 지표에서 30cm까지는 백자 파편을 비롯한 조선시대 유물이 많이 나왔다.


▲  불영암에서 바라본 한우물

임진왜란이 한참이던 1593년 1월 전라병사 선거이(宣居怡)가 권율 장군의 명으로 군사 4,000명
을 이끌고 호암산성에 머물 때, 이 우물을 사용했으며, 세종 때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
勝覽)에는
'虎岩山 有固城 城內有一池 天早祈雨(호암산에 견고한 성이 있는데 성안에 연못이 있어 일찍이
하늘에 기우제를 지냈다)'
란 기록이 있어 평시와 전쟁 때는 식수로 사용하고, 가뭄이 극성일 때
는 기우제도 지냈음을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서울의 화재를 막으려는 방화용설(防火庸設)도 설
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석구지(石狗池)란 애칭도 가지고 있는데. 이는 한우물에서 '석구지'라 쓰인 장대석이 나왔
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남쪽으로 200m 떨어진 곳에서는 제2한우물터가 발견되었다.

한우물은 식수용으로 태어난 곳이지만 현재는 그의 보호를 위해 식수로는 쓰지 않는다. 우물 남
쪽에는 갈대가 둥지를 트고 있어 운치를 드리우며, 북쪽에는 소나무 1그루가 우물을 거울로 삼
아 자신의 매뭇새를 다듬는다. 그리고 우물의 건강을 위해 그 주위로 돌난간과 철제난간을 2중
으로 둘러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

한우물이 있는 곳은 호암산 남쪽 봉우리로 천하를 굽어보기 좋은 곳이다. 속세가 한눈에 바라보
이는 벼랑에 한우물조망대가 터를 닦아놓아 이곳에 서면 금천구를 비롯한 서울의 서남부와 경기
도 광명시, 부천시 지역이 거침없이 바라보여 두 눈이 너무 호강을 한다. 우물 주변에는 벤치가
여럿 설치되어있어 간식에 막걸리 1잔 걸치며 잠시 쉬어 갈 수 있다.

한우물은 처음에는 서울 지방유형문화재 10호였으나 1991년 호암산성과 제2우물터, 건물유적을
한 덩어리로 묶어 사적 343호로 승진되었다. (지정명칭은 '서울 호암산성')


▲  한우물 조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1)
시흥 벽산아파트와 시흥동과 독산동, 광명시 지역


▲  한우물 조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2)
시흥동 벽산아파트와 금천구, 구로구, 광명시 지역

▲  한우물 조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3)
가까이에 벽산1/2단지와 호암산 서북쪽 줄기가 보이고, 그 산줄기 너머로
관악구와 영등포구, 동작구 지역은 물론 멀리 북한산까지 시야에 잡힌다.
사진 오른쪽 부분에는 호암산의 감시초소인 호압사가 바라보인다.


♠  한우물과 명품급 조망을 든든한 후광으로 삼은 조그만 암자
~ 호암산 불영암(佛影庵)

▲  불영암 대웅전(大雄殿)

한우물 옆에는 그를 든든한 후광(後光)으로 삼은 조그만 암자, 불영암이 포근히 둥지를 틀었다.
가파른 벼랑 위에 터를 다지며 속세를 향해 훤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호압사나 벽산아파트단
지, 호암로에서도 확 눈에 들어온다.

불영암의 내력에 대해서는 속시원한 정보가 없어 파악하긴 힘들지만 관악산과 호암산의 기운으
로부터 서울을 지키고자 이곳에서 기도를 올리니 서울에 큰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전한다.
그런 것을 보면 호랑이가 담배타령을 하던 조선 초기부터 조촐하게 기도처가 있었던 모양으로
호압사가 보일 정도로 가까우니 아마도 호압사 승려의 수행처 역할을 했던 곳으로 보인다. 보통
100년 이상 묵은 절은 그 내력을 담은 안내문을 절 앞에 당당하게 내걸지만 그런 것도 없는 것
으로 봐서는 1950년대 이후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역사가 무지 짧은 손바닥만한 암자로 대웅전과 산신각(山神閣), 요사(寮舍)로 쓰이는 작은 건물
이 전부이며, 그나마 대웅전만 불전(佛殿)의 분위기가 진할 뿐이다. 게다가 절이 들어앉은 위치
도 건물을 크게 짓거나 사세를 늘리기도 여의치 않은 협소한 수준이다. 허나 한우물이 곁에 있
어 물수급은 어렵지 않고, 벼랑에 자리한 탓에 조망 하나는 몸살이 날 정도로 좋다. 그러니 한
우물과 휼륭한 조망, 그리고 기존의 기도처를 후광으로 삼아 절을 세웠을 것이다.

이곳 높이는 해발 310m 정도로 서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하늘과 가까운 절이다. 예
전에는 대웅전과 요사만 있던 볼품 없는 모습이었으나 2009년 이후 대웅전 뒤쪽 바위에 커다란
불두(佛頭)를 얹히고, 절 앞에 돌탑을 심어 돌탑거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2011년에는 제2한우물
터 주변에서 발견된 절구통과 맷돌, 모서리돌 등을 돌탑 앞에 두어 오래된 볼거리를 추가했다.
특히 고려불화의 유일한 전수자인 승려 여지(如智)가 2005년에 그린 '104위 신중탱화(神衆幀畵)
'가 있어 눈길을 끈다.

불영암은 한우물의 이웃으로 그를 지켜주고 있으며, 조망은 천하 일품이라 절의 규모는 눈송이
같지만 뜨락 하나만큼은 천하 제일이다. 게다가 대웅전 옆에는 보기만 해도 정겨운 부뚜막을 설
치해 검은 가마솥으로 밥을 짓고 있는데, 인근에서 가져온 나무 장작으로 불을 땐다고 한다. 부
뚜막 옆에는 장작이 담을 이루고 있어, 심산유곡의 화전민 마을에 들어선 기분이며, 부뚜막이
장작을 먹어 모락모락 구름을 피어내면 나도 모르게 시장기가 돌면서 입 안에 침이 고인다. 또
한 국수와 부침개, 식혜, 커피 등을 파는데, 커피는 500원, 국수와 부침개는 3,000원선이다.


▲  돌탑거리를 이루고 있는 불영암 앞길과 순찰중인 견공(犬公)

▲  바위에 머리만 꽂은 불영암 석불(石佛)

대웅전 우측 바위에 2009년에 만든 석불이 서쪽을 굽어본다. 석불이라고 하나 바위에 커다란 불
두만 심은 형태로 바위는 그의 자연산 몸뚱이가 되었다. 바위에 접착된 불두 주변에 하얀 석고
등이 가득해 다소 이질감은 들지만 장대한 세월의 흐름은 저들을 완연한 하나의 존재로 만들 것
이다. 석불 앞에는 키 작은 소나무가 하늘로 곧게 자라나지 못하고 옆으로 쳐져있는데, 그 모습
이 마치 불상에 예를 올리는 듯 하다.


▲  불영암 돌탑거리

▲  제2한우물터 부근에서 수습된 절구통(절구석)의 일부와 모서리돌
불영암 주지승과 처사가 발견한 유물로 신라 후기 것으로 여겨진다.

▲  제2한우물터 건물유적에서 발견된 절구통(절구석)과 맷돌

돌탑 앞에 놓인 절구통과 맷돌은 호암산성 군사들이 쓰던 것들로 시흥동 주민이 발견하여 불영
암에 알렸다. 그래서 2010년 이곳으로 수습했는데, 신라 또는 조선시대 것으로 여겨지며 다른
절구통과 달리 금, 은, 동, 철의 성분이 많아 상당히 무겁다고 한다. 옆에 맷돌은 어처구니를
상실한 채, 열심히 돌아가던 왕년을 그리워한다.


▲  불영암에서 바라본 호암산 북쪽 줄기, 그 중간에 호암산을 감시하는
호압사가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다.


♠  날카로운 모습의 바위이자 호암산의 또 다른 명물 ~ 칼바위

▲  예리한 칼날 같은 칼바위 (바로 밑에 벽산5단지)
서울을 위협하던 호암산의 날카로운 발톱은 아닐까?

불영암에서 5분 정도 내려가면 칼바위 조망대가 나온다. 바로 그 밑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피가
나올 것 같은 예리한 기세의 칼바위가 자리해 있는데, 가파른 산등성이에 아슬아슬하게 자리해
있어 자칫 살짝만 건드려도 밑으로 쿨하게 굴러떨어질 것 같다. 이 바위는 위에서 보는 것보다
는 밑에서 봐야 그 위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데, 그 모습이 당장이라도 속세를 향해 칼질을
벌일 것 같은 기세라 보기만 해도 염통이 긴장을 한다.

이런 바위에는 옛사람들이 붙인 그럴싸한 전설이 있기 마련이라 다음의 믿거나 말거나 전설이
한토막 전해온다.
때는 임진왜란 시절, 왜군이 시흥(始興) 고을<당시 시흥(금천)의 중심지는 시흥동>까지 쳐들어
오자 장사 1명이 혼자서 왜군을 때려잡으며 분투를 벌였다. 이에 염통이 쫄깃해진 왜장은 장사
가 이기면 무조건 물러가겠다는 조건을 달며 칼바위에서 턱걸이 내기를 제안했다. 그래서 장사
와 왜군 대표 병사와 손에 땀을 쥐는 턱걸이 승부를 벌였는데, 왜군이 100번째 턱걸이를 하려는
순간 힘이 다해 바위 밑으로 떨어져 죽었다. 그때 바위 끝이 쪼개져 나갔다고 전한다.
내기에서 진 왜군은 분을 삼키며 철수를 하자 긴장이 풀린 장사는 소변을 보았는데, 그 줄기가
얼마나 강했는지 바위 한가운데가 움푹 패여 나갔다고 하며, 그 바위가 인근에 있는 팽이바위라
고 한다.

칼바위가 세워진 틈새는 매우 좁아보이지만 속은 매우 넓어서 6.25시절 이곳에 숨어 지낸 사람
도 여럿 있었다고 전한다. 허나 바위는 위치상 출입 통제구역이라 그것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  칼바위에서 바라본 천하 (1) - 벽산5단지와 금천구, 광명시 지역

▲  칼바위에서 바라본 천하 (2) - 시흥동, 광명시 소하동, 구름산과
가학산 산줄기, 그리고 일몰

※ 호암산 찾아가기 (2013년 12월 기준)
* 지하철 2호선 신림역(3번 출구)에서 152번 시내버스를 타고 호압사입구나 벽산5단지 하차
*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3번 출구)에서 5517, 6515번 시내버스를 타고 호압사입구나 벽산5
  단지(6515번만 해당) 하차
* 지하철 1호선 금천구청역에서 금천구 마을버스 01번 청색 차량을 타고 호압사입구 하차
* 올라가는 코스
① 호압사 → 소나무 산림욕장 → 약수터에서 왼쪽 → 호암산 남쪽 능선 → 한우물 (35분)
② 호압사 → 호암산 정상 → 호암산 남쪽 능선 → 한우물 (40~45분)
③ 벽산5단지 → 칼바위 → 한우물 → 석구상 → 호암산 남쪽 능선 → 호암산 정상 (45분)
* 한우물에서 내려가는 경우
① 한우물 → 칼바위 → 벽산5단지 또는 시흥5동
② 한우물 → 제2한우물터 → 남서울약수 → 석수역
③ 한우물 → 호암1터널 → 관악산둘레길 경유(시흥계곡) → 석수역

* 호암산성터 소재지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산 83-1외
* 한우물과 불영암 소재지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산93-2


 * 까페(동호회)에 올린 글은 공개일 기준으로 1주까지만 수정,보완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
   집니다. <단 블로그와 원본은 1달까지임>
 * 본글의 내용과 사진을 퍼갈 때는 반드시 그 출처와 원작자 모두를 표시해주세요.
 * 글씨 크기는 까페와 블로그는 10~12pt, 원본은 12pt입니다.(12pt기준으로 작성됨)
 * 오타나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즉시 댓글이나 쪽지 등으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외부링크 문제로 사진이 안뜨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모니터 크기와 컴퓨터 사양에 따라 글이 조금 이상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 공개일 - 2013년 12월 10일부터
 
* 글을 보셨다면 그냥 가지들 마시고 바로 밑에 있는 네모난 박스 안의 손가락 View on을
   흔쾌히 눌러주세요. 댓글도 환영합니다.

☆★ 손가락 view on을 꼭 눌러주세요 ★☆


Copyright (C) 2013 Pak Yung(박융), All rights reserved

서울에서 가볼만한 명소 360곳 (2013년 4월 기준)


★ 서울에서 가볼만한 명소 360곳 (2013년 4월 기준) ★
* 명소에 대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본글에 문의 댓글(명소에 대한 정보나 교통정보, 역사 등)을
  달아주시면 아는 한도에서 최대한 답변 드립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셔도 됨)
* 불펌은 사절합니다. 무조건 출처와 원작자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가급적 스크랩 기능을 사용하시기 바람)
* 본인 기준으로 작성된 만큼 쓸데없는 태클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1. 서울 종로구 내부 (북악산~인왕산 줄기 남쪽)
1. 경복궁
2. 국립고궁박물관 (경복궁 남쪽)
3. 국립민속박물관 (경복궁 동쪽)
4. 청와대 앞길
5. 청와대와 육상궁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관람신청)
6. 윤동주시인의 언덕 (윤동주문학관)
7. 청운공원

8. 인왕산길

9. 사직단공원 (사직단)

10. 황학정

11. 수성동계곡

12. 선희궁터 사우

13. 통의동 백송터

14. 청와대사랑채

15. 서촌 일대

 

16. 해공 신익희가옥

17. 이상범 가옥(화실)

18. 필운대 (배화여고 안에 있음)

19. 삼청동길

20. 삼청공원

21. 북악산 정상 (촛대바위, 북악산 한양성곽길)

22, 북악산 말바위

23. 숙정문

24. 창덕궁 후원뒷길 (감사원에서 성대로 넘어가는 고개)

25. 와룡고개 (와룡공원)

26. 창덕궁과 후원

27. 창경궁

28. 종묘

29. 성균관 (문묘, 은행나무)

30. 송시열집터 (증주벽립 바위글씨) 

 

31. 대학로거리 (마로니에공원)

32. 이화장

33. 함춘원터 (서울대병원 북쪽)

34. 구 서울대본관

35. 구 대한의원본관 (서울대병원 남쪽)

36. 낙산공원 (낙산 일대)

37. 비우당과 자지동천(자주동천)바위글씨

38. 청룡사와 정업원구기

39. 낙산 이화마을 (이화벽화마을)

40. 서울국립과학관

 

41. 동대문(흥인지문)

42. 청계천 일대

43. 광장시장

44. 동묘

45. 인사동거리

46. 조계사와 불교중앙박물관

47. 우정총국 (우정박물관)

48, 세종문화회관

49. 경희궁

50. 서울역사박물관

 

51. 홍파동 홍난파가옥

52. 딜쿠샤와 행촌동은행나무

53. 보신각

54. 종로2,3가 거리

55. 경인미술관

56. 천도교 중앙대교당

57. 운현궁

58. 관상감 관천대

59. 인왕산

60. 대림미술관

 

61. 목인박물관

62. 광화문광장

63. 북촌한옥마을

64. 북촌문화센터

65. 한국불교미술박물관

66. 원서동 고희동가옥

67. 원서동 빨래터 (신선원전 외삼문)

68. 배렴가옥(북촌게스트하우스)

69. 중앙중고교

70. 인문학박물관

71. 가회민화박물관

72. 한상수자수박물관

73. 재동백송

74. 정독도서관

75. 서울교육박물관

 

76. 북촌생활사박물관

77. 북촌4,5,6,7경

78. 번사창

79. 부엉이공예박물관

80. 동아일보 일민미술관

81. 성곡미술관

82. 떡박물관

83. 혜화문(동소문)

 

 2. 서울 종로구 외곽 (북악산~인왕산 줄기 북쪽)
 1. 창의문(자하문)
 2. 부암동 (부암동 산복도로)
 3. 무계정사터 (안평대군집터)
 4. 반계 윤웅렬별서
 5. 능금마을 (뒷골마을)
 6. 북악산 백석동천
 7. 서울미술관과 석파정

 8. 석파랑 (석파정 별당)
 9. 환기미술관
 10. 홍지문

 11. 세검정
 12. 북악산 백사골 (백사실계곡)
 13. 평창동 소나무 (평창동 남쪽 북악산 자락)

 14. 보현산신각
 15. 북한산 금선사
 16. 동령폭포
 17. 북한산 승가사
 18. 북한산 문수사
 19. 북한산 비봉
 20. 화정박물관


 21. 평창동 박종화가옥

 22. 구기동계곡
 23. 북한산둘레길 옛성길 (탕춘대성 암문)
 24. 삼성출판박물관

 25. 북한산둘레길 평창마을길

 26. 북악산길

 27. 자하미술관

 

 

 3. 서울 중구
 1. 덕수궁(경운궁)
 2. 덕수궁돌담길
 3. 서울시립미술관
 4. 옛 러시아공사관터와 정동공원
 5. 중명전

 6. 배재학당역사박물관

 7. 이화여고박물관과 유관순우물

 8. 정동교회

 9. 서울광장

 10. 서울도서관 (옛 서울시청사)

 11. 서울시청 신청사

 12. 환구단 (황궁우)

 13. 명동거리

 14. 명동성당

 15. 남대문시장

 

 16. 남대문(숭례문)

 17. 서울역 (문화역 서울284)

 18. 약현성당

 19. 손기정공원 (손기정월계관수)

 20. 화폐금융박물관 (한국은행본관)
 21,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

 22. 남산 와룡묘

 23. 남산N서울타워

 24. 남산 정상 주변 (봉수대, 팔각정)

 25. 남산골한옥마을

 26. 동대문쇼핑타운

 27. 동대문역사문화공원
 28. 장충단공원

 29. 신당동 떡복기골목

 30. 신당동 중앙시장


 31. 금호산 (금호산 벚꽃축제)

 32. 광희문(수구문)

 33. 대한성공회성당 서울교구, 경운궁 양이재

 

 4. 서울 강북 서부 (은평, 서대문, 마포, 용산구)
 1. 북한산 삼천사 (삼천리골)
 2. 북한산 삼천사지 (삼천사에서 등산 2km)

 3. 북한산 진관사

 4. 진관사계곡

 5. 숙용심씨묘표

 6. 영산군묘역

 7. 북한산둘레길 내시묘역길 (내시묘역은 없음)

 8. 경천군송금물침비 (내시묘역길 중간에 있음)

 9. 북한산성 대서문

 10. 북한산둘레길 마실길 (은행나무숲길)

 11. 북한산둘레길 구름정원길

 12. 북한산 불광사계곡

 13. 금성당

 14. 금암문화공원 (금암기적비)

 15. 인조별서유기비

 

 16. 수국사

 17. 백련산 백련사

 18. 불광천 (불광천길)

 19. 옥천암 마애좌상 (보도각백불)

 20. 인왕산 환희사

 21. 홍제동 개미마을

 22. 안산(鞍山)

 23. 안산 무악봉 동봉수대터

 24. 봉원사 (연꽃축제)

 25. 서대문역사공원 (옛 서대문형무소)

 26. 독립문과 영은문주초

 27. 인왕산 선바위, 국사당

 28. 연세대 근대건축물 (언더우드관, 스팀슨관 등)

 29. 신촌거리

 30. 홍대거리


 31. 효창공원

 32. 용문동 남이장군 사당 (남이장군제)
 33. 원효로성당

 34. 전쟁기념관

 35. 이태원거리

 36. 남산야외식물원

 37. 용산가족공원

 38. 국립중앙박물관

 39. 공덕동, 마포 먹자골목

 40. 절두산성지와 잠두봉

 

 41. 양화진외국인묘역

 42. 망원정

 43. 평화의공원과 난지연못

 44. 월드컵경기장 주변

 45. 하늘공원과 월드컵공원

 46. 난지캠핑장

 47, 무악재 고갯길

 48. 삼성미술관리움

 49. 화의군묘역

 

 5. 서울 강북 동부 (동대문, 성북, 성동, 광진, 중랑구)
 1. 선농단 (선농대제)

 2. 세종대왕기념관
 3. 영휘원과 숭인원
 4. 홍릉수목원

 5. 고려대박물관

 6. 동망봉

 7. 보문사

 8. 개운사

 9. 보타사

 10. 개운산공원

 

 11. 삼군부총무당 (삼선어린이공원)

 12. 최순우옛집

 13. 돈암장

 14. 선잠단터

 15. 간송미술관

 16. 성북동 성락원

 17. 길상사

 18. 성북동 이종석별장

 19. 수연산방

 20. 성북구립미술관

 

 21. 심우장

 22. 삼청각

 23. 북악산 김신조루트(북악하늘길)

 24. 정릉

 25. 봉국사

 26. 경국사

 27. 정릉계곡

 28. 북한산둘레길 솔샘길

 29. 경동시장과 약령시장

 30. 서울풍물시장

 

 31. 서울숲

 32. 수도박물관

 33. 뚝섬

 34. 화양리느티나무

 35. 어린이대공원

 36. 아차산생태공원

 37. 아차산 홍련봉보루유적
 38. 아차산성과 아차산 보루유적

 39. 용마폭포공원

 40. 서울시립대, 배봉산공원

 

 41. 의릉

 42. 망우리공원 (망우리묘지)

 43. 중랑캠핑숲

 44. 봉화산 (봉화대)

 45. 살곶이다리

 

 6. 서울 강북 북부 (강북, 도봉, 노원구)
 1. 북한산 화계사
 2. 북한산둘레길 흰구름길

 3. 조병옥박사묘

 4. 북한산 본원정사

 5. 북한산 구천폭포

 6. 4.19국립민주묘지

 7. 북한산둘레길 순례길

 8. 우이동 솔밭공원

 9. 북한산 소귀천계곡

 10. 북한산 도선사

 

 11. 봉황각

 12. 손병희선생묘

 13. 우이령길 (우이동~우이동유원지~우이령)

 14. 북서울꿈의숲

 15. 초안산공원 (초안산조선시대분묘군)

 16. 옹기민속박물관

 17. 연산군묘

 18. 방학동은행나무와 원당샘

 19. 양효공안맹담과 정의공주묘역

 20. 북한산둘레길 소나무숲길

 

 21. 도봉산둘레길 (우이동~무수골~도봉산입구)

 22. 중랑천 (중랑천둑방길)

 23. 도봉산 무수골

 24. 도봉산 도봉서원

 25. 도봉산 천축사

 26. 도봉산 만월암

 27. 도봉산 우이암 봉우리

 28. 도봉산 만장봉, 자운봉

 29. 창포원

 30. 수락산 벽운동계곡


 31. 수락산 정상

 32. 수락산 학림사

 33. 불암산 (불암산성, 불암산둘레길)

 34. 불암산 학도암

 35. 이윤탁한글영비 (한글고비)

 36. 태릉 (조선왕릉전시관)

 37. 강릉 (태릉 동쪽, 제한관람)

 38.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39. 화랑대역

 40. 태릉이스턴캐슬공원 (옛 태릉푸른동산)

 

 7. 서울 강서 (강서, 양천, 구로, 영등포, 금천구)
 1. 강서습지생태공원
 2. 개화산 약사사 (개화산)
 3. 개화산 미타사

 4. 서남물재생센터공원

 5. 겸재정선기념관

 6. 양천향교

 7. 궁산공원 (옛 양천고성터)

 8. 허준박물관

 9. 구암공원, 허가바위

 10. 안양천 (안양천 둑방길)


 11. 우장산공원

 12. 서서울호수공원

 13. 궁동 정선옹주묘역

 14. 궁동저수지생태공원

 15. 오류동 류순정, 류홍묘역

 16. 선유도공원

 17. 여의도 여의도둑방길 (여의도 벚꽃축제)

 18. 여의도공원
 19. 63빌딩

 20. 샛강생태공원

 

 21. 가산(가리봉)로데오거리

 22. 금천아트캠프, 금천구청역~독산역 벚꽃거리

 23. 시흥동 은행나무 (은행나무4거리)

 24. 호암산 호압사

 25. 관악산둘레길 호암산 구간

 26. 호암산성터와 한우물, 석구상 (불영암)

 27. 호암산 칼바위

 

 8. 서울 강남 (동작, 관악, 강남, 서초구)
 1. 사육신묘
 2. 흑석동 효사정
 3. 상도동 양녕대군묘역
 4. 국사봉 사자암 (국사봉)
 5. 보라매공원
 6. 신림동 굴참나무

 7. 난곡 강사상/강홍립(진주강씨)묘역, 신도비

 8. 삼성산성지
 9. 관악산 (관악산 철쭉제)

 10. 관악산 둘레길 (사당~낙성대~삼성산성지 구간)

 11. 낙성대
 12. 봉천동마애미륵불
 13. 사당동 임당 정공신도비 (동래정씨묘역)

 14. 효간공 이정영 묘역

 15. 관악산 관음사

 16. 구 벨기에공사관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17. 국립서울현충원

 18. 호국지장사
 19. 동작충효길 (동작구 둘레길)
 20. 잠실뽕나무 (잠원동)

 

 21. 강남역거리

 22. 도산공원

 23. 봉은사

 24. 삼성역 코엑스 (코엑스 아쿠아리움)

 25. 선정릉

 26. 효령대군묘역

 27. 우면산

 28.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29. 양재시민의숲

 30.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31. 양재천

 32. 구룡산

 33. 대모산

 34. 대모산 불국사

 35. 헌인릉

 36. 광평대군묘역

 37. 완남부원군 이후원 묘역

 38. 한국자수박물관

 39. 호림박물관

 

 9. 서울 강동 (송파, 강동구)
 1. 잠실종합운동장

 2. 석촌호수

 3. 잠실롯데월드

 4. 삼전도비

 5. 석촌동고분군

 6. 방이동고분군

 7. 오금공원

 8. 올림픽공원, 몽촌토성

 9. 한성백제박물관

 10. 방이동 생태학습관

 

 11. 풍납토성

 12. 암사동 선사유적지

 13. 일자산 (일자산 해맞이공원, 둔굴)

 14. 일자산 허브천문공원, 강동그린웨이 가족캠핑장

 15. 길동자연생태공원
 
16. 고덕산 (고덕산림욕장, 강동그린웨이, 광주부원군묘역)

 17. 성내천 

 

 

 

★ 손가락 뷰온좀 흔쾌히 눌러주세요 ★

 

 

[추천 여행도서] 여행책의 백미, '남한 명승비경 79곳'

"예예원출판사(드라이브사)"에서 만든 "남한 명승비경 79곳" 책을 추천합니다.
이 책은 수도권부터 강원,충청,경상,전라도까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산,계곡, 폭포 등의

명소 79곳을 소개하는 책으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사진,지도가 잘 나와있습니다.

특히 여름휴가철이나 계곡,폭포,명승비경 여행에는 아주 요긴한 책이지요.

책에 실려있는 사진들은 전문사진작가가 찍었다고 하며, 사진은 정말 괜찮습니다.
일부는 사진대회에도 출품하여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하며 여러 번 언론에 소개된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의 단점이 딱 하나 있다면 숲,계곡,폭포 주변 음식점, 숙박업소에 대한 정보가

약간 미흡한 점인데, 그건 별로 신경쓸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만큼 명승지 관련 설명과

사진,정보가 풍부하니까 말이죠.


이 책은 현재 왠만한 유명서점,대형서점에서 판매되고 있구요.
저도 이책 1권을 가지고 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계곡 등에 갈때 이 책을

아주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정확한 제목은 "남한 명승비경 79곳"입니다.
가격은 13000원..

한번 봐보세요.  저도 여기서 많은 정보를 얻었습니다. ^^*
후회하지는 않을 겁니다. 노련한 여행/사진 전문가가 만든 책이니까요.

 
 

 

 

prev 1 2 3 4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