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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속초, 고성 역사기행 ~ (2005년 6월 5일)'
'상편 ― 관동8경의 제3경 청간정(淸澗亭) '
 

현충일을 하루 앞둔 6월 5일 일요일, 아직도 청정함을 간직한, 그러나 남북분단의 아픔과 상처, 1996년
대산불의 휴유증이 남아있는 남한의 최북단, 강원도 고성(高城)을 찾았다.

고성지역은 1992년 수학여행으로 통일전망대와 청간정(淸澗亭)을 가본 것이 전부인지라, 아직까지는 나에게
미지의 땅이나 다름이 없던 곳이다.

이번 고성 기행에서 내가 문을 두드린 곳은 관동8경의 하나인 청간정, 무지개를 닮은 육송정 홍교(虹橋),
한때 우리나라 4대 사찰의 하나로 전성기를 누렸던 건봉사(乾鳳寺) 등으로, 청간정이야 7번국도 변에 있어
찾아가는데 별 어려움은 없으나 건봉사 같은 경우, 비무장지대에 숨어 있고 교통이 매우 안좋아 그늘 하나
없는 2차선 고갯길을 5km나 걸어가는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했다. 그렇지만 그런 식의 여행답사가 거의
다반사(茶飯事)가 되어버린지라 "오늘도 이렇게 걷는구나.. 5km야 뭐 식은죽 먹기보다도 더 쉽지" 등등의
생각을 하며 걸어갔다.

6월 5일 아침 6시, 별로 졸립지도 않은 눈을 비벼대며 아침 고요에 잠긴 동네를 빠져나와 동서울터미널을
찾았다. 넓은 터미널 내부는 연휴를 이용해 어디론가 놀러 가려는 사람들로 거의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처음에는 간성(고성)으로 바로 가려고 했으나 차를 놓치는 바람에 그 남쪽인 속초로 가는 버스에 신세를
지기로 하였다.
내가 신세 질 버스는 7시 20분 속초 행 무정차, 속초를 포함한 동해바다 방면 버스는 하나의 예외도 없이
사람들을 만땅으로 실으며 각자 갈 길로 움직인다.

동서울 출발 약 2시간 만에 홍천에 있는 화양강휴게소에서 약 20분간 쉬고 다시 강원도의 품으로 파고
들어가 우리나라의 제일 명산(名山) 설악산의 북쪽자락을 지나 험하기로 이름난 미시령(彌矢嶺)을 가뿐히
넘으며 바다와 휴양의 도시 속초로 진입, 동서울 출발 3시간 40분만인 11시에 속초시외터미널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바로 근처에 바다가 있는 듯 바다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 그 향기를 따라 동쪽으로 약간
걸으니 푸르른 동대해(東大海)가 그 넓은 가슴으로 나를 맞이해준다.
바닷가에는 속초여객선터미널을 비롯하여 항구와 어시장, 수복기념탑이 있는 탑공원이 있다.

* 본 글은 상,중,하 3부로 나눠서 작성했습니다.
* 본 글에 사용한 글씨체는 굴림체, 돋음체, 바탕체입니다.
* 따로 익스플로어 창으로 보고자 할 경우 여기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 사진을 올린 웹 사이트의 점검,기타 사유로 인해 아주 간혹가다 사진이 안뜰 수 있습니다.


♠ 민족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수복기념탑(收復記念塔)



◀ 수복기념탑과 모자상

나무들로 가득한 '탑공원'이라는 조그만 공원 안에
수복기념탑이라 불리는 커다란 탑이 세워져 있다.
탑 위에는 애타게 북쪽을 바라보며 북에 남아 있는
남편을 기다리는 듯한 모자(母子)의 모습이 마치 오늘날
이산가족(離散家族)의 비애를 상징하듯 그렇게 서 있다.

1945년 타의로 광복(光復)을 맞이한 후, 38도를 기준으로
북쪽으로 소련, 남쪽으로 미국이 들어와 각각 절반씩
점령을 했는데, 이 곳 속초는 38도 이북에 속해 북한의
영역이 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 1951년 1.4후퇴 이후 1953년
7월까지 한치의 땅이라도 더 챙기려는 한국군/미군/
유엔군과 북한군/중공군 간의 치열한 전쟁 끝에 속초는
남한의 영역이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1954년,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군부대,
피난민, 속초읍 주민들의 정성을 모아 이렇게 수복기념탑을
세운 것.


탑을 세운 이유에 대해서는 북한 치하(治下)의 속초를 남한
이차지했다는 것, 이북에서 넘어온 사람들의향수를 달래
기 위한것 등을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당시 제일
중요시 여겼던반공(反共) 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 공산당이란 말만 입밖에 나와도 경찰서나 군부대로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던 시절이니. 전쟁으로흉흉해진
지방 민심을 반공을 이용하여 잡으려는 정부의 숨은 의도가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대변하고 있는 저 탑을 바라보니 마음 한편이 매우 씁쓸하고 개운치가 않다.
언젠가 우리나라가 통일이 된다면 나는 그 기념으로 저 씁쓸한 기념탑을 제일 먼저 부셔버리고 싶다.
물론 속초시청은 그것을 기념물로 보존하려 들겠지만..

▲ 수복기념탐 안내문

▲ 속초항과 동해바다, 그리고 방파제
(방파제 너머로 '조도'라는 조그만 섬이 보인다)


수복기념탑에서의 씁쓸했던 생각들을 털어버리고 청간정으로 가기 위해 탑공원 앞에서 거진, 대진으로
올라가는 속초시내버스 1-1번(대포동 ~ 간성 ~ 거진/대진)을 탄다.
청간정까지는 무려 1090원.. 탑공원을 출발한지 근 20분 만에 청간정 입구에 도착했다.

청간정은 1992년 수학여행 이후 거의 15년 만에 와보는데 정작 와보니 그 때와 비교해서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주차장도 그대로, 청간정도 그대로, 송림(松林)도 그대로, 동대해(東大海)의 푸르름도
그대로.. 다만 바뀐 것이 있다면 나라는 존재.. 15년 만에 찾아온 나는 세상물정 모르던 중학생에서 어느덧
어엿한 20대 중,후반으로 그렇게 변해 있었다.


♠ 관동8경(關東八景)의 제3경, 천하제일의 경관 ~ 청간정(淸澗亭)

동해바다가 한 눈에 바라보이는 청간천 하구 언덕 꼭대기에는 청간정이라는 오래된 누각(樓閣) 형태의
2층 정자가 바다를 바라보며 그렇게 서 있다.

청간정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현재로써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오래되었다는 것 밖에는..
단지 중종 14년(1520년)에 고성군수(高城郡守) '최청'이란 사람이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진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 이후 관동8경의 하나로 이름을 떨치며 수많은 시인묵객들과 양반, 관리들이 수시로 이 곳을 찾아와
풍경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시를 읊고 술을 마시면서 신선놀음을 즐기던 경승지로 1884년에 불에 타버려
주춧돌만 황량하게 남은 것을 1928년에 다시 세웠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전(前) 대통령,
최규하 전(前) 대통령 등이 이 곳에 놀러와 기념 현판(懸板)을 남겼다.

청간정은 강원도 지방유형문화재 32호로 지정되었으며, 주변 풍광이 너무 아름답고 바다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고성 지역의 대표적인 경승지로 정자(亭子)가 무너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아온다.

※ 청간정 찾아가기
① 대중교통 (2005년 8월 현재)
* 속초고속버스터미널,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간성, 대진 방면으로 가는 속초시내버스 1,1-1번 이용
청간리 하차, 버스는 10 ~ 15분 간격으로 운행

② 승용차
* 서울 ~ 영동고속도로 ~ 동해고속도로 ~ 양양 ~ 속초 ~ 청간정
* 서울 ~ 6,44번 국도 ~ 홍천 ~ 인제 ~ 백담사입구 ~ 미시령 ~ 원암리 ~ 청간정
* 서울 ~ 6,44번 국도 ~ 홍천 ~ 인제 ~ 백담사입구 ~ 진부령 ~ 간성 ~ 청간정


* 주차장이 있으나 그리 넓지 않음
* 입장료는 없으며, 편의시설로는 주차장에 매점이 하나 있을 뿐이다.
* 청간정으로 올라가는 계단길과 정자 주변을 제외한 구역은 함부로 들어가지 말 것.

청간정 올라가는 길
울창하게 우거진 소나무로 올라가는 길이 그리 덥지는 않다.

송림 사이로 바라본 천진리 평야

송림 사이로 하늘 높이 솟은 백두대간(설악산)이 보인다.
내가 저 높은 곳을 과연 넘어왔단 말인가?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는다.

소나무가 멋있는 청간정 산책로

바닷바람에 맞춰 멋진 가곡을 들려주는 대나무숲

언덕 꼭대기에 이르면 수줍은 듯
고개를 약간 숙인 단아한 모습의
청간정을만날 수 있다.

청간정은 특이하게도 '정(亭)'의 형태가
아닌 2층'누각(樓閣)'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시원스런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정자 2층에는 청간정에 반해 버린 여러
유명 인사 들이 기념으로 남기고 간
현판들이 복잡하게 걸려있다.

오감(五感)이 즐거운 곳 청간정 ~
누각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은겨우
한 사람만 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폭이
작고 계단의 높이가 커서 오르락내리락
할 때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정자에 오르면 보기만 해도 땀이 도망갈
것 같은 시원스런 동해가 한 눈에바라
보이니 두 눈이 즐겁고, 정자 주변으로
정자를 에워싸듯 늘어서 있는 송림의
솔내음에 코가 즐겁고, 대나무의 음악
향연(饗宴)과 바다의 파도소리에 귀도
즐겁다.
오랜 세월의 때가 가득 낀 정자의 매끈한
기둥을 더듬으면 촉각도 즐거울 것이고..
거기에 동동주 같은 술 1병과 약간의 안주
를 겻드린다면 입도 덩달아 즐거울 것이니
정말 오감(五感)이 즐겁고도 남음이 있는
관동 제일의 경승지이다.

청간정 현판 ~ 가히 명필(名筆)이라 하겠다.

정자 내부에 걸린 청간정 현판 ~
1953년 휴전 이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이 곳을 방문하여 기념으로 남긴 현판이다.

청간정 중수기(重修記)

주두(柱頭)와 보, 도리 부분에 곱게 칠해진 단청(丹靑)

최규하 전 대통령이 남긴 현판
1979년 10. 26 사건 이후, 임시로 대통령 위(位)에 올라 약 1년 가량 집권하다가
전두환에 의해 밀려난 최규하 전 대통령이 1980년 여름, 이 곳을 방문하여
기념으로 남긴 현판이다.

현판의 내용을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면 '설악산과 동해바다가 서로 조화를 이룬 옛 누각 위에
(오르니) 과연 이 곳이 관동에서 제일 빼어나고 편안한 풍경이로구나..
경신년(1980년) 한여름, 청간정에서 대통령 최규하 ~'

청간정에서 바라본 동해바다 그리고 넓은 백사장
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이는 파란 바다.. 그 바다의 뽀얀 하얀 물결이
민간인 통제구역인 백사장의 흙을 살짝 어루만져 주고 있다.

청간정에서 바라본 청간리 바닷가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작은 섬 ~ 죽도(竹島)
천진리 바닷가에서 약 2km 떨어진 외딴 무인도이다.

청간정을 뒤로 하며..
청간정을 찾아와 신선을 꿈꾸던 많은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북적이던
정자 주변은 다시 고요함에 빠져든다.

무정하게 떠나가는 사람들을 굽어보며
싫은 내색 하나 보이지 않으며 잘가라고
인사를 건네는 청간정의 쓸쓸한 모습..
 

 


♠ 고성군의 임시 중심지 간성읍
청간정을 둘러본 후, 간성읍(杆城邑)으로 가기 위해 거진/대진 방면으로 가는 속초시내버스 1-1번을
타고 동해바다와 벗삼으며 북쪽으로 올라간다. (청간에서 간성까지 무려 1810원)

약 20분을 달려 도착한 고성군(高城郡)의 중심지, 간성읍(杆城邑), 읍내의 규모는 동서(東西)로 좀 길뿐
규모는 작으며 우리나라 최북단의 행정도시로 비무장지대와는 불과 5km거리에 불과한 최전방 지역이다.

원래 고성군의 중심지는 해금강(海金剛) 근처에 있는 고성읍(高城邑)으로 간성은 고성군에 속한 일개 면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남북분단 이후 고성군 지역이 통째로 북한의 영역이 되었고, 한국전쟁 이후, 현내면 이하 지역은
남한의 영토가 되었으나 고성읍과 금강산 지역을 끝내 점유하지 못한 체, 전쟁이 끝나버리면서 고성군 또한
남북으로 분단되고 말았다. 그래서 간성면을 고성군의 임시 서울로 정하였고, 인구가 어느 정도 늘어남에
따라 읍으로 승격되어 지금에 이른다.

간성터미널에 이른 시간은 12시 30분 정도, 건봉사의 초입(初入)인 해상리로 가는 버스가 13시 40분에 있으니
아직도 1시간에 여유가 있는 셈. 그래서 점심을 먹고 멍청히 시간이나 죽이고 앉아 있으니 13시 30분에
해상리로 가는 고성군내버스가 들어온다. 버스에 올라 해상리에서 건봉사까지 얼마나 들어가야 되는지
물으니 운전사는 한 4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고 그런다. 그러면서 그 입구에 세워줄테니 거기서부터
걸어가라면서..
간성에서 해상리까지는 겨우 6km도 안되는 거리인데 요금은 1010원, 운전사는 인심좋게도 10원씩이나
깎아준다.

시간이 되자 버스는 더 이상의 미련을 버리고 간성을 출발, 간성향교 앞을 지나 건봉사를 알리는 누런
이정표를 따라 해상리 안쪽으로 넘어가서, 어느 군부대 앞 3거리에 이르니 운전사 왈 "여기서 내려서
왼쪽 길로 쭈욱 올라가면 되요"




▲ 3거리에 세워진 건봉사, 화진포 이정표
차에서 내리니 건봉사와 화진포를 알리는 이정표가 말없이 나를 쳐다보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서쪽으로 4km(실제로는 5km)를 가라는.. 그의 메세지..
4 ~ 5km정도는 거의 밥먹듯이 걸어다닌 나인지라 "저 정도야 뭐 거뜬하니.. 허허허"
그러나 건봉사 가는 길은 그리 만만하지가 않았다. 차로 가면 뭐 6분이면 갈 거리이나
걸어서 가려면 고개를 하나 넘어야 되고, 게다가 날씨는 덥지 그늘은 하나도 없지, 걸어다니는
인간도 없지, 사람이 사는 민가 한 채도 없지.. 완전히 더위와 고독, 체력과 한판 싸움을
벌여야 된다. 그 싸움에서 이기면 건봉사를 보게 되겠지만, 만약 지게 된다면 건봉사를 포기해야
된다.

 

~~ 아쉽지만 상편은 여기서 끝. ~~
 

* 상편 작성 시작일 - 2005년 7월 8일
* 상편 작성 완료일 - 2005년 7월 15일
* 상편 수정,보완,편집 ~ 2005년 7월 17일 ~ 8월 21일
* 공개일 - 2005년 8월 29일부터

* 중,하편은 각각 8월 30일 이후 공개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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