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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동해 ~ 태백 자연기행 (2006년 11월 15일)'
'상편 ― 동해 감추사(甘湫寺)'

푸르름으로 가득한 감추사앞 東大海  ~
▲ 동해 감추사 앞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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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상, 하 2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1월의 딱 중간인 15일, 강원도의 산해(山海)가 보고 싶은 지극한 마음에 오랜 만에 영동 지역으로
훌쩍 길을 떠났다.
그 날은 유난히도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는데 나와 함께 하고 싶었는지 하루 종일 슬금슬금
따라다니며 나를 귀찮게 해댄다.

태백고원의 서쪽인 횡성(橫城)에 이르니 비구름은 겨울 제국의 압력으로 돌연 눈구름으로 둔갑하여
강원도의 산하를 온통 새하얀 세상으로 꾸며 놓는다. 뜻하지 않게 만난 겨울의 백색 향연(饗宴)은
나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에 충분했으나 '올해도 이제 그 끝에 이르렀구나' 싶은 생각에 한편으로는
심히우울해진다.

눈바람이 몰아치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의 품으로 파고 들어가 드디어 그 절정인 대관령을 훌쩍 뛰어
넘으니 눈구름은 다시 비구름으로 변하여 동해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 비를 뿌린다.
다행히도 동해에 이르니 비구름도 무척이나 지쳤는지 빗방울의 양은 상당히 줄어들어 그것을 위안
삼으며 감추사가 있는 동대해(東大海)로한 발짝씩다가선다.

▲ 복선(複線)의 영동선 철로와 동해바다
영주에서 강릉을 향해 부지런히 산을 넘은 영동선(嶺東線)은 동해역을 지나 안인역까지 바다
와 벗삼으며 북으로 달린다.
바닷가에 자리한 감추사로 가기 위해서는 부득불 저 철로를 건너야 되는데, 보행 건널목이나
열차가 지나갈 때 인마(人馬)의 통행을 막는 차단기 등의 안전시설이 없으며. 다만 신호기만
이 땡땡 울어대며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철길을 건널 때 너무 서두르지 말고 부디 한번 더 살펴보는 여유를 갖기를 바란다.

▲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감운당(甘雲堂)의 공덕비와 부도(浮屠)
철로를 조심스레 건너 절로 통하는 조그만 산길을 따라 야트막한 언덕을 넘으면 절로 들어서
기 직전, 우측으로 1965년에 감추사를 중창한 감운당의 공덕비와 묘탑(墓塔)이 나온다.
햐얀 피부를 간직한 부도의 탑신(塔身)에는 '甘雲堂'이라 또렷히 쓰여 있어 탑에 고이 잠든
주인이 누군지를 알려준다.


♠ 동해바다를 앞에 품으며 바닷가에 들어앉은 조그만 절,
선화공주가 병을 치유했다는 전설이 서린 ~ 동해 감추사(甘湫寺)


우리나라에는 수만 곳의 달하는 절집들이 있지만 거의 대부분 산 속에 숨어 있다. 하지만 그런 법
칙을 깨고 넝실넝실 바다 곁에 둥지를 튼 절도 몇 곳
-양양 홍련암(紅蓮庵), 부산 용궁사(龍宮寺)
, 여수 향일암(向日庵), 서산 간월암(間月庵)-
있으니 이번에 찾은 동해감추사가 바로 그 중의
하나이다.

감추사는 태고종(太古宗)에 속한 절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은 하지만 구체적인 내력과
창건시기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창건과 관련되어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딸인 선화공주(善花公主)가 창건했다는 전설이 전해
오지만 역시나 신빙성은 전혀 없다. 하지만 본 글에서는 그저 전설에만 충실할까 한다.

◀ 감추사 삼성각(三聖閣) ~
산신(山神)과 칠성신(七星神),
독성(獨聖)의 보금자리이다.


선화공주는 진평왕이 매우 아끼던 딸이었으나 백제왕족인 서동(薯童)의 치밀한 작업(?)으로 인해
서동의 부인이 된다. 물론 정략결혼의 성격이 강하다.
서동은 나중에 백제 30대 제왕인 무왕(武王, 재위 600 ~ 641)이 되는데 그는 성왕(聖王) 이후 50
년이상 침체된 백제의 중흥과 신라에게 빼앗긴 실지(失地)를 회복하기 위해 장인의 나라를 공격
하면서양국은 다시 전쟁 모드에 들어갔다.
두 나라의 평화를 위해 왕족끼리 혼인도 했지만 그 평화는 나라의 이익 앞에서는 역시오래가지
못했던 것이다.

신라의 진평왕 역시 그런 사위가 몹시 못마땅하여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심정으로 서해바다 건
너중원 왕조(수나라, 당나라)와 친분을 쌓으며 백제를 압박하는 한편, 군사를보내맞대응 한다.
상황이 이러니 자연히 그 중간에 낀 선화공주의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장인과
사위가 계속 티격태격 싸우는 만큼 그 근심은 더욱 커져 결국 병으로까지 발전하여 공주의 수명을
단축시켰을 것이다.

과연 그 탓일까? 공주는 백풍병(白風病)이라는 병에 걸렸다고 한다. 무왕은 좋은 약재를 구하고
명의를 부르는 등, 안간힘을 썼으나 좀처럼 호전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최후의 수단으
로익산 사자사(師子寺)에 머물러 있던 지명법사(知命法師)에게 도움을 청했다.

법사는 공주에게 동해안 감추(甘湫)로 가서 기도를 드릴 것을 권하니, 바로 감추로 달려가 자연동
굴에 불상을 모시고 매일낙산용소(龍沼)에서 목욕을 하면서 3년동안기도를 드렸다.
그랬더니 정말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하며 그 기쁨으로 부처의 은덕을 기리고자 감추사를 세웠
다고 한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죽음을 직감한 공주는 이 곳에 다시 찾아와동대해를 바라보며 숨을 거뒀다고
하며 그의 묘를 근처에 썼다고 전한다.<참고로 선화공주의 묘는 전북 익산의 쌍릉(雙陵)이다>

▲ 감추사 뒤쪽에서 바라본 동해바다


그 이후 오랫동안 터만 덩그러니 있던 것을 1902년 다시 절을 세우고 신건암() 또는 대은사
분암()이라 하였는데 어쩌면 절의 실질적인 창건시기가 이 때가 아닐까 싶다.

1959년 해일이 들이닥쳐 동굴과 전각(殿閣)이 모두 무너져 내린 것을 1965년에 인학()이 중건
하였다.
사우(寺宇)로는 관음전과 삼성각, 요사채 등이 전부이며 옛날의 흔적은 전혀 남아있질 않다.상황
이 이러니 소장 문화재는 없으며 절이 예상외로 너무 작아서 거의 5분이면 관람이 끝난다.
하지만 절 앞으로 푸르른 바다가 관음전 앞뜰마냥 드넓게 펼쳐져 있어 보기만 해도 마음이 시원하
며절 주변이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닷가에 있는 샘터에는 물이 솟아나는데 최근 수질에
문제가생겨 마실수는 없으며 가뭄이 심할 때는 이 곳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낸다고 한다.


산자락에 둥지를 튼 산사(山寺)와는 다른 풍경으로 여름 피서철 외에는 대체로 한적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으며 조용히 바다를 원하거나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정리하고 싶을 때 한번쯤 찾고 싶
은절집이다.

~ 감추사 찾아가기 (2007년 2월 기준) ~
1. 동해시외터미널에서 택시로 7분, 도보 30분
(동해시외터미널 → 동해시청 → 동해경찰서 → 철길과 나란히 한 해변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
감추사입구)
2. 동해역에서 시청, 묵호 방면 시내버스로 경포해군아파트 하차. 도보 10분
3. 동해고속터미널 / 묵호역에서 동해역 방면 시내버스로 경포해군아파트 하차. 도보 10분
4. 감추사 앞을 지나는 시내버스가 있으나 극히적음.

~ 승용차로 갈 경우 ~
- 동해고속도로 -> 동해나들목 -> 천곡동 -> 해안로 -> 감추사 주차장
- 동해고속도로 -> 망상나들목 -> 묵호역 ->해안로 -> 감추사 주차장
- 동해안 7번국도 -> 북평 -> 해안로 -> 감추사주차장

* 감추사 입구에 주차장 있음
* 입장료는 없으며 절 부근에 감추해수욕장이 있다.



▲ 감추사의 법당,
관음전(觀音殿)

바다를 옆에 끼고 남쪽을 바라보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관음보살(觀音菩薩)
을 모시고 있다.
이 자리는 선화공주가 기도를 드렸다는 동굴이 있던 곳으로 해일로 동굴이 붕괴되면서 그 자리
에 이렇게 관음전을 세웠다. 몇몇 감추사 관련 정보에는 동굴이 있다고 나와있으나 모두 거짓
이다.

◀ 지극한 효성이 담긴 날렵한 몸매의감추
사 5층 석탑

1979년, 감추사의 여신도 하나가 세상을 뜨면
서그의 아들에게 유언으로 탑을 하나 만들어
줄것을 부탁했는데, 그런 어미의 마지막 심
부름을 받들어 만든 탑이 바로 이 불탑이다.

마치 북망산(北邙山)을 향하듯 북쪽을 바라보
며 서 있는데 탑의 모습이 불탑(佛塔)이라기
보다는 거의 정원용 탑을 보는 것 같으며 4개
의 돌기둥으로이루어진
기단부(基壇部)는 날
씬한 탑신(塔身)을 받쳐들고 있다.

탑신은 구멍이 송송 뚫려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이니 어둑어둑한 밤에 저 안에 촛불을 넣어
두면 가히 장관일 것이다.


▲ 관음전 추녀 밑에 풍경물고기

동해바다를 동경하며 푸른 하늘을 바다로 삼은 풍경 물고기가 해풍(海風) 가락에 맞춰 은은한
하모니를 연출한다.
풍경소리는 다양한 소리를 내지 못하는 터라 얼핏 단순하고 지루해 할 수도 있겠으나 그 소리
에는 중생들의 극락왕생을 소망하는 부처님의 소망이 담겨져 있으며 울적하거나 불안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신비로운 힘을 지니고 있다.


▲ 감추사 북쪽 해변

바닷물이 너무 맑아 수면 밑이 거의 다 보일 정도로 아무리 걸출한 화가라도 저런 색채는 감히
흉내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여름 피서객으로 가득했을 조그만 백사장에는 모래와 바다와의 끊임없는 속삭임만이 들릴 뿐이
다.


▲ 바다 파도와 바위와의 숙명적인 만남

비구름의 거침없는 희롱에 동대해의 심기가 매우 불편한지 바위의 따귀를 때리는 파도 소리가
은근히 날카로웠다. 바위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들에게 마구 화풀이를 하는 것일까..?
바다의 폭력(?) 앞에 한없이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는 바위들의 운명, 그들의 신세 한탄이 들
리는 듯 하다.


▲ 거침없이 펼쳐진 동대해(東大海)

이렇게 보니 말로만 듣던 지구의 둥그런 모습이 더욱 실감이 난다.
마음이 뻥 뚫릴 것처럼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니 속세의 온갖 번뇌(煩惱)들로 가득했
던나의 마음과 머리가 잠시나마 확 후련해 지는 것 같다.

▲ 바다 위에 뜬 조각구름
푸른바다 위로 푸른 하늘이 바다와 비슷한 색깔로 바다 윗 세상을 색칠해 버렸다.
하늘에는 동대해를 동경하듯, 조각구름 1점이 계속 머무르며 바다를 바라본다.

저 풍경 그대로를 고스란히 집으로 옮겨오고 싶다. 구름은 신선의 구름처럼 개조하여 하늘을
날며 바다를 바라보고 싶다.


거의 손바닥만한 감추사를 둘러보는데는 거의 5분이면 충분하나 절 앞뜰과도 같은 동해바다와
주변기암괴석의 모습에 한없이 매료되어 그만 30분이나 머물고 말았다.

절의 왜소함을 바다로 능히 커버해 버린 감추사. 지나치게 외형만을 추구하는 대다수의 절보다
는 은근히 정감이 간다.
현재 감추사 주변은 군부대가 있어 절의 확장도 용이하지 못하다.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한
반도가 하나 되는 그 순간까지 동해바다와 함께 할 것이다.
툭하면 자신의 거처를 파괴하며 행패를 부리는 바다를 자비로써 감싸며 늘 같은 자리에 머무는
감추사 관음보살의 인자함 앞에 속세의 찌든 수많은 인간의 하나로써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
다.

감추사를 벗어나 송정동 시내에서 동해역으로 가는 동해시내버스를 타고 동해역을 찾았다.
역을 찾은 이유는 열차를 타고 태백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마침 시간도 적당히 맞아떨어져약
20분의 대기시간으로 13시 26분에 부전(釜田)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열차는 6월 이후 근 5개월 만에 타보는터라 감회가 정말 새롭다. 기적소리를 울리며 역으로 미
끄러지듯 들어오는 열차에 올라타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반대편 강릉으로 가는 열차가 거의 15
분씩이나 연착을 하면서 그 시간 만큼이나 더 머물다가 간신히 출발을 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기가 막힌 가을풍경과 강원도 산간지역 특유의 풍경들이 서로 하모니를
이루며 하나의 거대한 그림 전시회를 펼치고 있었다.
울긋불긋 색채로 가득한 가을의 산하는 아무리 보고 또 봐도 결코 질리지가 않다. 오히려 안보
면 눈이섭섭해 하지~~
늦가을 풍경은 사람들을 가슴 설레게 만들기도 하고, 문학가로 만들기도 하며, 반면에 그들의
마음을 한없이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특히 귀를 접고 누워있는 낙엽의 모습은 더욱우울의
강도를 높여준다.

나한정역에 이르러 열차는 갑자기 후진을 하며 진행 반대 방향으로 약 10분 동안산자락을 오
르다가 흥전역에서 다시 앞 방향으로 전진을 하는데, 이 구간은 우리나라에서 딱하나 있다는
스위치백 구간이다.

이 구간(통리재)은 워낙에 산이 높아서 아무리 빠르다는 열차도 고개를 절래 흔들 정도로 산을
단숨에 넘질 못하고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움직일 수 밖에 없는데 흥전역부터 통리역까지 지그
재그 식으로 빙빙 돌아갈 수 밖에 없다.

한번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고 일진양퇴를 거듭하는 열차의 모습이 참 애처롭다. 하지만 차라
리 그 정도라면 산간지대의 철로치고는 그나마 양호한 편, 태백산맥의 통리재는 그마저도 봐주
려 하질
않는다.그래서 탄생한 것이 흥전역과 나한정역 구간의 거꾸로 운행하는 이른바 스위
치백(switchback) 구간이다.
이 구간이 얼마나 힘든지 통리역에서 도계역까지 직선으로는 불과 7km밖에 안되나 라면처럼 꼬
불꼬불 늘어선 철도의 연장은 거의 17km이며 소요시간은 거의 25분에 이른다.
하지만 그런 매력 때문에 영동선의 명물이 되버린 스위치백구간도 2009년 이후 영구히 사라질
지도 모른다.
현재 영동선 직선화 공사가 진행 중으로 그것이 완성되면 태백산맥의 눈치를 보며 더 이상 힘
겹게 통리재를 오르락 내리락 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에 따라서영동선의 운행거리와 소요시
간, 운임이 다소 줄어들 것이나 그 대신 스위치백을희생시켜야 되니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가
득하다.

통리재를 힘겹게 넘어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불리는 통리역(桶里)에 이른다.
통리는 태백을 이루는 4대 고을(황지, 장성, 철암, 통리)의 하나로 방문을 열어 놓으면 구름이
방안으로 들어와 창문으로 빠져나갈 정도로 높은 곳(700 ~ 800m)에 들어앉아 있다.

통리에 오기 전, 원래는 도계에 잠시 들려 그 지역의 명물인 수령 1000년의 '긴잎느티나무'를
보려고 했으나 빗방울도 떨어지고 내리기도 귀찮아서 통리까지 바로 올라와 버렸다. ~~


~~ 아쉽지만 상편은 여기서 끝.
~~

* 답사, 촬영 일시 - 2006년 11월 15일
* 작성 시작일 - 2006년 11월 19일
* 작성 완료일 - 2006년 11월 21일
* 숙성기간 - 2006년 11월 21일 ~ 2007년 2월 21일
* 공개일 - 2007년 2월 21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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