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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가탄신일 기념 서울 서북부 지역 사찰 순례기 ~
하편 - 북한산 삼천사(三千寺) <2005년 5월 15일>'

* 원본을 보고자 할 경우(따로 익스플로어 창으로 보고자 할 경우) 여기를 클릭바랍니다.
* 본 글은 2003년 6월에 작성한 진관사,삼천사,북한산성 답사기의 내용을 약간 참조했습니다.
* 사진을 올린 웹 사이트의 점검,기타 사유로 인해 아주 간혹가다 사진이 안뜰 수 있습니다.


흥국사를 2시간 가까이 둘러보고 북한산 서쪽 삼천리골에 숨어있는 삼천사로 발걸음을 향한다.
삼천사는 흥국사에서 약 4km거리에 있는데 차편도 마땅치가 않아 약 40 ~ 50분 정도를 걸어 들어가야 된다

▲ 삼천리골입구 ~ 기자촌을 연결하는 도로
삼천리골입구에서 삼천사까지는 차 1대 지나갈 정도의 조그만 길을 따라 들어가야 했는데
2003년에 기자촌입구에서 진관사입구를 거쳐 삼천리골을 이어주는 4차선의 외곽도로가
개통되어 진관사와 삼천사로 들어가기가 한결 수월해 졌다.

▲ 삼천사 입구
외곽도로를 버리고 삼천사로 들어서는 조그만 길로 들어선다
길 주변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의 연등들이 나를 삼천사로 인도한다.

▲ 사슴농장의 사슴들 (1)
시골에나 있을 법한 사슴농장이 서울에도 버젓히 자리해 있다.
하늘 높이 자란 뿔을 높이 치켜세우며 오후 산책을 즐기고 있는 그들의 모습

▲ 사슴농장의 사슴들 (2)
사슴의 뿔을 바라보며 나름대로 입맛을 다셔본다.

사슴농장을 지나면 다른 관광지, 등산로와 마찬가지로 주막촌이 나오는데
주막촌 사이로 언제 봐도 정이 가질 않는북한산 국립공원 매표소와 직원들이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애타게 바라보고 있다.

매표소에 이르니 직원이 "삼천사 가세요?", 그러자 내가 "네. 그렇습니다"
직원 "그럼 그냥 들어가세요"

석가탄신일이라 절을 찾는 중생들을 위해 특별히 입장료를 징수하지 않았다. 솔직히 삼천사 하나
보는데 1600원의 거금을 내는 것은 좀 아깝지 않는가..? 그렇다고 북한산 등산을 하러 온 것도
아니고..

▲ 가파른 고개와 삼천사 표석
주막촌을 지나면 가파른 고개가 나온다. 고개 앞에 멀뚱멀뚱 세워진 삼천사 표석,
삼천사까지는 고개 두 개를 넘어야 되는데 삼천사의 인자한 마애불을 뵙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되는 시련의 과정이다.
그렇지만 이 고갯길은 주막촌 동쪽으로 지름길이 있으므로 굳이 이 고개를 넘을 필요가 없다.

▲ 삼천리골 계곡
고개를 넘으면 북한산에서 제일 깨끗하고 아름다운―나의 생각에는―계곡, 내가 제일 마음에
들어하는 계곡, 삼천리골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 계곡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으며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초소에 신고를
하고 신분증을 맡겨야만 삼천사까지 접근이 가능할 정도로 삼천리골 지역은 일반인의 통행이
매우 부자유스러웠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들어와 그런 것이 다소 완화되었지만 부근에 철조망, 초소 등의 군부대
시설과 군전용 수영장이 옥의 티처럼 버티고 있으며 계곡 또한 접근이 금지되어 있어 매우
아쉬움을 준다.

그렇지만 그 덕분에 삼천리골은 아직까지도 그 청정함을 유지할 수가 있었으며 서울에서 제일
깨끗한 계곡으로써의 명성을 지킬 수가 있었다.

◀ 삼천리골 계곡과 연등
계곡과 아름다운 연등들이 삼천사를 향해
올라가는 나의 다정한 말벗이 되어 주었다.

하얀 피부의 암반 사이로 졸졸 흐르는
계곡물은 저 담(潭)에 모여 잠깐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끝없는 여정에 들어간다.

티끌 하나 없이 맑은 황홀한 색채의 계곡물,
보기만 해도 마음이 흥분되어 뭔가 일을
저지를 것만 같다.
 

▲ 삼천리골 계곡의 어느 담(潭)
이름 모를 담(潭)에 담겨져 있는 계수(溪水)들..
매일 밤 선녀들과 신선들이 이 곳에 내려 와서 목욕을 하지 않을까?
언젠가 저 바위 뒤쪽에 숨어 그들을 훔쳐보리라..

▲ 드디어 삼천사에 이르렀다
삼천리골의 아름다움의 취하기도 잠시. 다시 오르막길이 펼쳐진다.
그 오르막을 10분 가량 오르면 대진국(大震國, 발해)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의
석등(石燈)을 닮은 우람한 석등 1쌍이 힘들게 올라온 중생들을 맞이하니.
여기서부터 산사의 향기가 가득한 삼천사 경내가 펼쳐진다.


♠ 서울에서 제일 오래된 마애불상이 계신 곳 ~ 북한산 삼천사(三千寺)
삼천사(三千寺)는 북한산 서쪽 삼천리골 계곡에 숨어있는 오래된 산사로 서울에서 제일 오래된 마애불을
간직하고 있는 매우 유서 깊은 절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사찰 출입의 많은 제한이 따랐으나 1990년대 이후 비봉과 북한산성으로 통하는 등산로와
함께 개방되면서 절의 존재가 널리 알려졌다.

서울에서 제일 깊숙한 골짜기에 숨어 있는 이 절은 신라가 한참 백제와 고구려와 맞짱을 뜨던 시절인 661년,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신뢰수준이 상당히 떨어지며 자세한 것은 흥국사 편을 참조하기 바람,
절의 조성시기는 경내에 있는 마애불로 미루어 볼 때 대략 신라 후기 ~ 고려 초기로 생각된다.

창건 이후 절의 사적(事蹟)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으나 조선 성종 때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북한지(北漢誌)에 의하면 이 절은 최대 3000명이 머무를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며 거기서 절의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지휘아래 삼천사는 승병(僧兵)들의 주요 집결지가
되었으나 왜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었으며 그 이후 진영화상이 중창하여 이름을 '삼천사'라 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파괴된 것을 1960년에 지금의 자리에 다시 절을 세웠고 1970년대에 성운(聖雲)화상이 삼천사의
주지가 되면서 그동안 은자(隱者)처럼 숨어 살던 고려시대 마애불을 찾아내고, 약 20년 동안 계속해서 불사
(佛事)를 진행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절 경내에는 대웅보전, 산령각, 천태각, 요사채 등의 전각과 석가세존사리탑, 5층 나한사리탑, 지장보살상
등이 있으며 문화유적으로는 고려초기에 조성된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절의 위치가 시내와 제법 멀리 떨어져 있고 흥국사, 금선사, 화계사와 달리 버스에서 내려서 약 1시간을
걸어들어와 될 정도로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 있어 나름대로 조용한 산사의 향기를 느낄 수가 있다.
계곡에 오묘하게 자리잡은 이 곳에 오면 한여름의 더위도 계곡 바람에 씻겨 사라지고 온후한 모습의
마애불은 중생들의 소원을 위해 언제나 한결같이 그 하얀 바위에 서 계시는 곳, 삼천사,

그럼 지금부터 삼천사 경내를 둘러보도록 하자.

*삼천사 찾아가기 (2005년 9월 현재)
① 서울시내버스 704번을 타고 삼천리골 입구에서 하차, 도보 30 ~ 40분.
② 서울시내버스 571,720,7211번을 타고 기자촌 진관사입구에서 하차 도보 40분
③ 구파발역 2번출구에서 삼천사행 셔틀버스가 운행한다. (평일에는 오전 3회 운행, 법회가 있을 때는
오전시간에 30분 간격으로 운행, 단 석가탄신일에는 저녁까지 10 ~ 30분 간격으로 운행)

*삼천사 입장료
삼천사는 북한산국립공원 내에 속해있으므로 국립공원 입장료를 내야 된다.
어른(19 ~ 64세) - 1600원, 청소년(13~18세)/군경/학생 - 600원, 어린이 - 300원
아침 9시 이전과, 저녁 6시 이후에는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 연등으로 곱게 꽃단장을 한 4사자(獅子)
5층석탑(石塔)
이 탑은 1988년, 삼천사 주이인 성운화상이 미얀마
마하시타타나 사원에서 아판디타 대승정(大僧正)에게
부처의 사리 3과와 나한사리를 선물 받았는데
부처의 사리는 마애불 앞 사리탑에 봉안하고
나한사리는 이 5층석탑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4마리의 돌사자가 5층의 탑신을 가볍게 떠받들고
있는 형태로 구례 화엄사(華嚴寺)와 제천 월악산
빈신사지(頻迅寺址)에 있는 4사자 석탑을모델로
하여 만든 것 같다. 이 탑의 조성 시기는 1980년대,

연등 사이로 바라본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

지장보살상에서 바라본 5층석탑

◀ 연못과 물을 내뿜는 용머리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저 용머리는 북한산옥계수
(玉溪水)를 하염없이 뿜어내고 있다.
못 가운데에 솟아난 돌그릇에는 중생들이던진 온갖
동전들로 가득하다.

▲ 삼천사 일주문(一柱門)
다른 절의 일주문은 보통 절로 들어 서는 입구에 서 있으나 여기는 특이하게도 대웅보전으로 들어서기 바로
직전에 세워져 있다.
세로로 걸린 현판(懸板)에는 '三角山 三千寺'라 쓰여 있으며 절을 찾아온 중생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일주문 좌우에는 법주사(法住寺) 석등을 닮은 새하얀 석등 1쌍이 부처의 광명을 상징하듯 그렇게 서 있다.

▲ 연등으로 가득한 대웅보전(大雄寶殿) 앞뜰
대웅전 앞뜰에는 헤아리기조차 무의미한 수많은 연등들이 허공을 뒤덮고 있다.
그 덕분에 대웅전의 온전한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지.

▲ 겹지붕으로 되어 있는 대웅보전
대웅전 안에는 부처의 탄신을 하례 드리러 온 수많은 중생들로 그야 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대웅전 내부를 담은 사진이 너무 찐하게 나와버려 여기서는 겹지붕으로 되어 있는 대웅전의 뒷꽁무니만
공개한다.

대웅전 내에는 석가여래 3존불을 비롯하여 지장보살(地藏菩薩)등이 모셔져 있으며, 전각 내부는 매우 넓다.

▲ 1년 만에 바깥 나들이를 나온 아기부처의 희열(喜悅)
중생들이 그의 머리에 물을 껴얹는 이른바 거룩한 관정의식을 행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데 나 역시 그들의행렬에 동참을 하였다.

관정의식의 주된 목적인 시주함에 돈을 넣은 중생들은 바가지에 물을 담고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하게
치장된 세트 안에 서 있는 아기부처의 몸에 조심스럽게 물을 껴얹으며 자신의 소원을 빈다.
나도 역시 관정의식을 치르며 소원을 빌었는데 시주는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관정의식을 맡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줌마들이 얼마나 눈치를 주던지..

삼천사의 아기부처 관정의식 세트는 다른 절의 그것보다 엄청 화려하고 규모도 크다.
삼천사에서 자랑으로 삼는 것 중에 하나인데 기둥과 천장, 부처 주변에 빼곡히 달려 있는 밝은 색 계통의
꽃과 장식물로 거의 눈이 부실 지경이다.


♠ 서울에서 제일 오래된 마애불 ~ 삼천사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 - 보물 657호

▲ 삼천리골의 영원한 은둔자(隱遁者) ~ 삼천사 마애여래입상

대웅보전을 지나면 계곡 왼쪽으로 범상치 않은 모습의 바위를 만날 수 있다. 그 바위에는 내가 제일로
사모(?)하는 마애불 한 분이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살아오고 계시니 바로 서울에서 제일
오래되었다고 하는 마애불, 삼천사 마애여래입상이다.

불상 앞에는 그에게 예불을 드리는 기도처가 넓게 펼쳐져 있는데 1992년 내가 이 곳을 처음 찾아왔을 때만
해도 저런 넓은 기도처가 없었다. 계곡을 건너가서 바위 바로 앞에 조그만 예불의 장소가 있었을 뿐.
그러나 지금은 삼천사의 탄탄한 재정을 과시라도 하는 듯 계곡 위를 복개(覆蓋)하여 거대한 기도처를
만들었다.


서울에 있는 4개의 고려시대 마애불 중의 하나로 고려
초기(혹은 신라 후기로 보는 견해도 있음)에 만들 어진
것으로 보이며 선으로 표현된 대표적인 선각마애불
(線刻磨崖佛)로 불상의 대부분은 선으로 처리했지만,
일부는 바위에서 약간 튀어나온 형태로 양각된 저부조
(低浮彫) 형태로 전체 높이는 3m, 불상의 높이는 2.6m
에 이른다.

이 마애불은 전체적으로 윤곽을 따라 금분이 칠해져
있었는데, 2000년대 이후 없어졌으며, 불상의 오른쪽
부분을 자세히 바라보면 약간 붉은 색채를 띠고 있는데
이는 불상에 붉은 채색을 했던 흔적이다.
마애불의 색을 칠한 것은 삼천사 마애불과 왜관(倭館)
부근에 있는 노석동 마애불 등이 전부로 그 예가 거의
남아 있질 않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불상의 머리 뒤에 떠 있는 두광(頭光)은 2겹으로 된 둥근
모양으로 소발(素髮)한 머리 위에 무견정상(無見頂相)이
우뚝 솟아 있다.
눈은 지긋이 감으며 명상에 잠긴 듯한
모습이며, 코의 끝부분은 두툼하다. 입은 오무려서
중생들에게 약간의 미소를 띄우고 있으며, 눈썹 사이에
둥그런 모양의 백호(白毫)가 있다.
 

불상의 키는 장신(長身)으로, 몸의 윗부분에는 두 어깨를가린 법의(法衣)를 걸쳤는데, 법의가 약간 두꺼운
인상을 주니. 아무래도 마애불이 추운 겨울에 만들어진 모양이다.
불상의 아랫 쪽에는 연화대좌(蓮花臺座)가 있으며, 신체 뒤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광배(光背)가 양각되어 있다.
마애불은 전체적으로 신체적인 균형이 맞으며, 몸매는 단정하고 단아한 인상을 주며 오른손은 아래로 내렸고,
왼손은 배 앞에서 받쳐든 모습인데, 이는 석가모니의 성도(成道)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


그리고 마애불 어깨 좌우와 윗부분 바위 면에 4각형
모양의
구멍이 파여져 있는데, 이는 자연현상이 아닌
마애불을 모시는 목조 전각을 세웠던 흔적으로 목조
전각은 오래 전에 화재 또는 홍수로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마애불은 위쪽에 있는 눈썹 모양의 바위의
보호를 받으며 눈과 비를 피했으며 깊숙한 계곡 바위에
자리해 있는 탓으로 태풍 등의 거센 바람의 공격을
피할 수 있어서 천 년의 세월을 살았음에도 보존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또한 오랜 세월을 삼천리골의 은자로
조용히 숨어 산 것도 그의 건강비결 중 하나일 것이다.

솔직히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 불상은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냥 아는 사람만 찾아올 정도로.. 그러나
2000년 이후 삼천사의 존재와 함께 마애불의 존재가 약간
알려지면서 마애불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예전에 비해
조금 늘어난 것 같으니 아직까지는 인지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내가 이 마애불의 존재를 안 것은 1992년,
처음에는 진관사 부근 야산에 숨어 있는 줄 알고 부근
야산을 뒤적거리다가우연찮게 이 곳 삼천사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는데 바로이 곳에서 그 마애불과
첫 대면을 하였다.

서울에도 이렇게 휼륭한 마애불이 있다니,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고 감탄을 연발하면서 슬슬 그에게
매료되고 말았지. 그 때 이후로 이렇게 3번째 만남을 가지게 되었는데 마애불은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하나도없는 것 같다. 여전히 정정한 모습으로 오늘도 삶에 지친 중생들을 반가운 미소로 맞아들인다.


이 불상은 지금은 삼천사 경내에 자리해 있지만,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삼천사로
들어가는 길목을 지키는 불상으로 그 주변은 그냥 계곡과 바위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파괴된 삼천사를 마애불 주변에 다시 세우면서 지금처럼 되었던 것.

이 마애불은 소원을 들어준다는 영험(靈驗)을 가진 부처님으로 소문이 자자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10리를 걷는 수고로움을 마다하고 이 곳을 찾는다.



◀금분(金粉)이 칠해져 있던 시절의 마애여래입상 (1990년대)








 


수만년의 세월이 느껴지는 커다란 바위와 마애불의 눈과 비를 막아주는 눈썹바위,
그리고 그 바위 밑에 아늑하게 자리한 마애불,

마애불의 양쪽으로 네모난 구멍이 보이는데 저 구멍은 예전에
마애불을 보호했던 보호각의 흔적으로 보호각이 감싸주었던 부분은
까무잡잡한 다른 바위의 표면과 달리 어둠 속의 하나의 촛불처럼 유난히도 밝고 하얗다.

마치 광배(光背)에서 나온 빛이 그의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는 것처럼..


아주 가까이에서 바라본 마애불의 모습 (2장)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치 살아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머리와 몸 뒤에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은 마치 그의 몸에 빛이 발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도록 그의 모습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어 준다.

마애불 앞에서 정성스럽게 촛불을 켜고 있는 중생들

연등으로 가득한 마애불 기도처

마애불 기도처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석등(石燈)
석등 왼쪽에 마애불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바위 위에 우뚝 솟은 날렵한 모습의 5층석탑

부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의 앞쪽
1988년 삼천사의 주지인 성운 화상이 미얀마를 방문하여 마하시타타나 사원에서
아판디타 대승정(大僧正)으로 부터 부처의 사리 3과를 증정받았는데
그 사리를 정성스레 이 곳으로 모셔와 이 부도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이 부도는 사각형의 넓직한 지대석(址臺石) 위에 석종(石鐘) 모양의 탑신을 세운
석종형 부도로 부도(탑신) 주변으로 중생들이 갖다 놓은 촛불들로 가득한데
초들이 한결같이 분홍색을 하고 있어 부도까지 분홍색 비슷한 색채로 보이는 것 같다.
게다가 초들의 대단한 협동심으로 주변이 너무 환하다 못해 황홀한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다.

연등과 초, 부도가 삼위 일체가 된 세존사리탑 (뒷부분)

삼천사에만 있는 독특한 전각 ~ 천태각(天台閣)
마애불 동쪽 담장 너머에는 천태각이라 불리는 약간 특이한 불전(佛殿)이 있다.
이 전각은 과연 무슨 용도의 건물일까? 무엇을 모신 건물일까? 매우 궁금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천태각은 천태산(天台山)에서 몸을 일으킨 나반존자(那畔尊者)의 보금자리로 다른 절의 독성각
(獨聖閣)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인데 삼천사는 독성각이란 이름을 취하지 않고 그가 일어난
천태산의 이름을 따서 천태각이라 하였다.

이 건물은 1990년대에 세워졌으며, 건물 내부는 인등(引燈)이 내뿜는 무더운 열기로 거의 한증막과
다름이 없다.
이 인등은 그냥 촛불을 하는 것이 아닌 기름으로 불을 켜서 하는 것으로 인등에는 언제나
기름으로 가득하여 24시간 내내 불을 밝힌다고 한다. 그래서 전각 내부가 찜질방처럼 더운 것이다.

하루 종일 불을 밝히는 것은 뭐라 할 수는 없겠으나 요즘처럼 경기도 안좋고, 기름값이 하루가
멀다하고 치솟는 형편인데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지 어느 정도 기름을 절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건물 지붕에는 더운 열을 외부로 배출하고 공기를 통하게 하여 내부의 온도를 어느 정도 유지
시키기 위한 통풍구가 설치되어 있다.

천태각은 다른 전각과 달리 내부로 들어가는 문이 2개이다.
바깥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으나 안쪽 문은 인등의 불을 지키기 위해
항시 닫혀져 있으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황토 찜질방에 버금가는
천태각 내부가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천태각 찜질방의 주인, 독성(獨聖, 나반존자)
대머리의 둥근널쩍한 얼굴, 길다란 귀, 약간 두꺼워 보이는 옷(얼마나 더울까?),
배 앞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한 나반존자의 여유로운 모습..
마치 무슨 생각에 한없이 잠겨 있는 듯한 그의 표정..

이 곳의 독성상은 특이하게도 돌로 만들었으며 그의 뒤에는 그가 몸을 일으킨
천태산이 그려져 있다.

천태각 앞에 석등


연등으로 꽃단장을 한 산령각(山靈閣)
천태각의 북쪽, 마애불의 동쪽에는 산령각이 불리는 2층 전각이 있다.
산령각은 보통 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산신각(山神閣)으로 아까전 천태각처럼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명칭 대신 약간 어려운(?) 듯한 이름을 선택하였다.

맞배지붕의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산령각은 주로 윗층을 일컬으며
삼천사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해 있어 삼천사 경내가 한 눈에 다 바라보인다.

산령각 산신도(山神圖)
대웅보전 만큼 넓은 산령각 내부에는 나무로 새겨진 거대한 산신도가 걸려 있다.
날씨가 더운지 시원한 노송 밑에 아줌마 스타일로 걸터앉아 호랑이를 쓰다듬는
그의 여유로운 모습,

산신의 귀여움을 받는 호랑이는 호랑이 가면을 쓴 고양이 같다.
그의 무서운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재롱둥이 고양이만 있을 뿐.

산신 좌우에는 앳된 얼굴의 동자(童子) 2명이 정중히 시립해 있다..

이 산신도가 다른 산신도와 다른 것이 있다면 그림의 배경으로 많이 나오는
산이 생략되어 있고 커다란 나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산령각 옆에 바위
이 바위는 마애불이 의지하고 있는 눈썹바위와 연결되어 있으며
중생들이 소망이 담긴 동전들이 바위 곳곳에 둥지를 트고 있다.
사진을 자세히 바라보면 바위 곳곳으로 동그란 무엇인가가 보일 것인데
그것들은 모두 동전들이다. 10원짜리부터 500원짜리까지..
외국에서 건너온 동전도 눈에 띄고..

약간의 틈이 있거나 붙이기 쉬운 곳에는 어김없이 동전들이 들어서 있으며
저 동전들은 모두 삼천사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게 된다.

산령각에서 바라본 나무다리와 돌탑들
삼천사에서 비봉(碑峰), 북한산성 방면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로
다리 아래 계곡 바위에는 중생들이 쌓아놓은 탑들로 가득하다.


삼천사에서 북한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1990년대 이후 개방되었다.


어느덧 시간은 저녁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약 1시간에 걸친 삼천사 답사. 세상과 영원히 단절되어 있을
듯한 이 곳에도 서서히 어둠의 물결이 밀려온다.
나는 저녁 공양도 하고 7시에 있을 연등행렬과 기타 행사도 보고 갈까 했으나 진관사(津寬寺)를 봐야
된다는 압박이 나의 마음을 억누르면서 이만 삼천사를 나와야 했다.

삼천사 셔틀버스 타는 곳(5층석탑과 기념품 가게 앞)에 이르니 마침 외부 세계로 나가는 셔틀버스 2대가
대기하고 있는 터라, 버스를 타고 나가기로 하였지. 그런데 언제 출발할지, 요금을 얼마나 받을지 몰라서
버스를 기다리는 등산객과 신도들에게 물으니 요금은 무료이고 곧 출발한다고 그런다.

잠시 뒤, 구파발역으로 나가는 중형버스 1대가 외부로 나가려는 사람들 앞으로 나와 사람들을 태우고
첩첩산중(疊疊山中)에 숨어 있는 삼천사를 뒤로 한 채, 바깥세상으로 나온다.

나는 진관사로 가고 싶은 생각에 기자촌4거리(진관사 입구)에서 내렸으니 이미 시간이 시간인지라
과감히 포기하고, 집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진관사는 이미 4번이나 가봤던 곳이라 굳이 안가도 아쉬울 것은 없었지..

이로써 욕심만 가득 부리다가 반도 못 둘러본, 2005년 석가탄신일 기념 서울 지역 사찰 순례기를 마친다.
2006년 석가탄신일(유감스럽게도 어린이날과 겹쳤음)을 기대하면서..

 

* 하편 작성 시작일 - 2005년 8월 27일
* 하편 작성 완료일 - 2005년 9월 4일
* 하편 숙성 기간 ~ 2005년 9월 28일 ~ 10월 28일
* 공개일 - 2005년 10월 31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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