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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가탄신일 기념 서울 서북부 지역 사찰 순례기 ~
하편 - 북한산 삼천사(三千寺) <2005년 5월 15일>'
* 원본을 보고자 할 경우(따로 익스플로어 창으로 보고자 할 경우) 여기를 클릭바랍니다.
* 본 글은 2003년 6월에 작성한 진관사,삼천사,북한산성 답사기의 내용을 약간 참조했습니다.
* 사진을 올린 웹 사이트의 점검,기타 사유로 인해 아주 간혹가다 사진이 안뜰 수 있습니다.
흥국사를 2시간 가까이 둘러보고 북한산 서쪽 삼천리골에 숨어있는 삼천사로 발걸음을 향한다.
삼천사는 흥국사에서 약 4km거리에 있는데 차편도 마땅치가 않아 약 40 ~ 50분 정도를 걸어 들어가야 된다
▲ 삼천리골입구 ~ 기자촌을 연결하는 도로 | |
▲ 삼천사 입구 | |
▲ 사슴농장의 사슴들 (1) | |
▲ 사슴농장의 사슴들 (2) | |
▲ 사슴농장을 지나면 다른 관광지, 등산로와 마찬가지로 주막촌이 나오는데 | |
▲ 가파른 고개와 삼천사 표석 | |
▲ 삼천리골 계곡 | |
◀ 삼천리골 계곡과 연등 | |
▲ 삼천리골 계곡의 어느 담(潭) | |
▲ 드디어 삼천사에 이르렀다 |
♠ 서울에서 제일 오래된 마애불상이 계신 곳 ~ 북한산 삼천사(三千寺)
삼천사(三千寺)는 북한산 서쪽 삼천리골 계곡에 숨어있는 오래된 산사로 서울에서 제일 오래된 마애불을
간직하고 있는 매우 유서 깊은 절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사찰 출입의 많은 제한이 따랐으나 1990년대 이후 비봉과 북한산성으로 통하는 등산로와
함께 개방되면서 절의 존재가 널리 알려졌다.
서울에서 제일 깊숙한 골짜기에 숨어 있는 이 절은 신라가 한참 백제와 고구려와 맞짱을 뜨던 시절인 661년,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신뢰수준이 상당히 떨어지며 자세한 것은 흥국사 편을 참조하기 바람,
절의 조성시기는 경내에 있는 마애불로 미루어 볼 때 대략 신라 후기 ~ 고려 초기로 생각된다.
창건 이후 절의 사적(事蹟)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으나 조선 성종 때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북한지(北漢誌)에 의하면 이 절은 최대 3000명이 머무를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며 거기서 절의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지휘아래 삼천사는 승병(僧兵)들의 주요 집결지가
되었으나 왜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었으며 그 이후 진영화상이 중창하여 이름을 '삼천사'라 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파괴된 것을 1960년에 지금의 자리에 다시 절을 세웠고 1970년대에 성운(聖雲)화상이 삼천사의
주지가 되면서 그동안 은자(隱者)처럼 숨어 살던 고려시대 마애불을 찾아내고, 약 20년 동안 계속해서 불사
(佛事)를 진행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절 경내에는 대웅보전, 산령각, 천태각, 요사채 등의 전각과 석가세존사리탑, 5층 나한사리탑, 지장보살상
등이 있으며 문화유적으로는 고려초기에 조성된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절의 위치가 시내와 제법 멀리 떨어져 있고 흥국사, 금선사, 화계사와 달리 버스에서 내려서 약 1시간을
걸어들어와 될 정도로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 있어 나름대로 조용한 산사의 향기를 느낄 수가 있다.
계곡에 오묘하게 자리잡은 이 곳에 오면 한여름의 더위도 계곡 바람에 씻겨 사라지고 온후한 모습의
마애불은 중생들의 소원을 위해 언제나 한결같이 그 하얀 바위에 서 계시는 곳, 삼천사,
그럼 지금부터 삼천사 경내를 둘러보도록 하자.
*삼천사 찾아가기 (2005년 9월 현재)
① 서울시내버스 704번을 타고 삼천리골 입구에서 하차, 도보 30 ~ 40분.
② 서울시내버스 571,720,7211번을 타고 기자촌 진관사입구에서 하차 도보 40분
③ 구파발역 2번출구에서 삼천사행 셔틀버스가 운행한다. (평일에는 오전 3회 운행, 법회가 있을 때는
오전시간에 30분 간격으로 운행, 단 석가탄신일에는 저녁까지 10 ~ 30분 간격으로 운행)
*삼천사 입장료
삼천사는 북한산국립공원 내에 속해있으므로 국립공원 입장료를 내야 된다.
어른(19 ~ 64세) - 1600원, 청소년(13~18세)/군경/학생 - 600원, 어린이 - 300원
아침 9시 이전과, 저녁 6시 이후에는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 연등으로 곱게 꽃단장을 한 4사자(獅子) | |
▲ 연등 사이로 바라본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 | ▲ 지장보살상에서 바라본 5층석탑 |
◀ 연못과 물을 내뿜는 용머리 | |
▲ 삼천사 일주문(一柱門) | |
▲ 연등으로 가득한 대웅보전(大雄寶殿) 앞뜰 | |
▲ 겹지붕으로 되어 있는 대웅보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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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만에 바깥 나들이를 나온 아기부처의 희열(喜悅) |
♠ 서울에서 제일 오래된 마애불 ~ 삼천사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 - 보물 657호
▲ 삼천리골의 영원한 은둔자(隱遁者) ~ 삼천사 마애여래입상
대웅보전을 지나면 계곡 왼쪽으로 범상치 않은 모습의 바위를 만날 수 있다. 그 바위에는 내가 제일로
사모(?)하는 마애불 한 분이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살아오고 계시니 바로 서울에서 제일
오래되었다고 하는 마애불, 삼천사 마애여래입상이다.
불상 앞에는 그에게 예불을 드리는 기도처가 넓게 펼쳐져 있는데 1992년 내가 이 곳을 처음 찾아왔을 때만
해도 저런 넓은 기도처가 없었다. 계곡을 건너가서 바위 바로 앞에 조그만 예불의 장소가 있었을 뿐.
그러나 지금은 삼천사의 탄탄한 재정을 과시라도 하는 듯 계곡 위를 복개(覆蓋)하여 거대한 기도처를
만들었다.
서울에 있는 4개의 고려시대 마애불 중의 하나로 고려 | |
불상의 키는 장신(長身)으로, 몸의 윗부분에는 두 어깨를가린 법의(法衣)를 걸쳤는데, 법의가 약간 두꺼운 |
그리고 마애불 어깨 좌우와 윗부분 바위 면에 4각형 모양의 구멍이 파여져 있는데, 이는 자연현상이 아닌 마애불을 모시는 목조 전각을 세웠던 흔적으로 목조 전각은 오래 전에 화재 또는 홍수로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마애불은 위쪽에 있는 눈썹 모양의 바위의 보호를 받으며 눈과 비를 피했으며 깊숙한 계곡 바위에 자리해 있는 탓으로 태풍 등의 거센 바람의 공격을 피할 수 있어서 천 년의 세월을 살았음에도 보존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또한 오랜 세월을 삼천리골의 은자로 조용히 숨어 산 것도 그의 건강비결 중 하나일 것이다. 솔직히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 불상은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냥 아는 사람만 찾아올 정도로.. 그러나 2000년 이후 삼천사의 존재와 함께 마애불의 존재가 약간 알려지면서 마애불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예전에 비해 조금 늘어난 것 같으니 아직까지는 인지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내가 이 마애불의 존재를 안 것은 1992년, 처음에는 진관사 부근 야산에 숨어 있는 줄 알고 부근 야산을 뒤적거리다가우연찮게 이 곳 삼천사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는데 바로이 곳에서 그 마애불과 첫 대면을 하였다. | |
서울에도 이렇게 휼륭한 마애불이 있다니,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고 감탄을 연발하면서 슬슬 그에게 |
이 불상은 지금은 삼천사 경내에 자리해 있지만,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삼천사로
들어가는 길목을 지키는 불상으로 그 주변은 그냥 계곡과 바위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파괴된 삼천사를 마애불 주변에 다시 세우면서 지금처럼 되었던 것.
이 마애불은 소원을 들어준다는 영험(靈驗)을 가진 부처님으로 소문이 자자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10리를 걷는 수고로움을 마다하고 이 곳을 찾는다.
◀금분(金粉)이 칠해져 있던 시절의 마애여래입상 (1990년대)
▲ 수만년의 세월이 느껴지는 커다란 바위와 마애불의 눈과 비를 막아주는 눈썹바위, |
▲ 마애불의 양쪽으로 네모난 구멍이 보이는데 저 구멍은 예전에 |
▲ 아주 가까이에서 바라본 마애불의 모습 (2장) |
▲ 마애불 앞에서 정성스럽게 촛불을 켜고 있는 중생들 |
▲ 연등으로 가득한 마애불 기도처 |
▲ 마애불 기도처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석등(石燈) |
▲ 바위 위에 우뚝 솟은 날렵한 모습의 5층석탑 |
▲ 부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의 앞쪽 |
▲ 연등과 초, 부도가 삼위 일체가 된 세존사리탑 (뒷부분) |
▲ 삼천사에만 있는 독특한 전각 ~ 천태각(天台閣) |
▲ 천태각은 다른 전각과 달리 내부로 들어가는 문이 2개이다. |
▲ 천태각 찜질방의 주인, 독성(獨聖, 나반존자) |
▲ 천태각 앞에 석등 |
▲ 연등으로 꽃단장을 한 산령각(山靈閣) |
▲ 산령각 산신도(山神圖) |
▲ 산령각 옆에 바위 |
▲ 산령각에서 바라본 나무다리와 돌탑들 |
어느덧 시간은 저녁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약 1시간에 걸친 삼천사 답사. 세상과 영원히 단절되어 있을
듯한 이 곳에도 서서히 어둠의 물결이 밀려온다.
나는 저녁 공양도 하고 7시에 있을 연등행렬과 기타 행사도 보고 갈까 했으나 진관사(津寬寺)를 봐야
된다는 압박이 나의 마음을 억누르면서 이만 삼천사를 나와야 했다.
삼천사 셔틀버스 타는 곳(5층석탑과 기념품 가게 앞)에 이르니 마침 외부 세계로 나가는 셔틀버스 2대가
대기하고 있는 터라, 버스를 타고 나가기로 하였지. 그런데 언제 출발할지, 요금을 얼마나 받을지 몰라서
버스를 기다리는 등산객과 신도들에게 물으니 요금은 무료이고 곧 출발한다고 그런다.
잠시 뒤, 구파발역으로 나가는 중형버스 1대가 외부로 나가려는 사람들 앞으로 나와 사람들을 태우고
첩첩산중(疊疊山中)에 숨어 있는 삼천사를 뒤로 한 채, 바깥세상으로 나온다.
나는 진관사로 가고 싶은 생각에 기자촌4거리(진관사 입구)에서 내렸으니 이미 시간이 시간인지라
과감히 포기하고, 집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진관사는 이미 4번이나 가봤던 곳이라 굳이 안가도 아쉬울 것은 없었지..
이로써 욕심만 가득 부리다가 반도 못 둘러본, 2005년 석가탄신일 기념 서울 지역 사찰 순례기를 마친다.
2006년 석가탄신일(유감스럽게도 어린이날과 겹쳤음)을 기대하면서..
* 하편 작성 시작일 - 2005년 8월 27일
* 하편 작성 완료일 - 2005년 9월 4일
* 하편 숙성 기간 ~ 2005년 9월 28일 ~ 10월 28일
* 공개일 - 2005년 10월 31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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