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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고려산 청련사, 백련사


' 늦겨울 산사 나들이, 강화 고려산 청련사~백련사 '

고려산 청련사

▲  고려산 청련사

고려산 백련사 백련사 철조아미타여래좌상

▲  고려산 백련사

▲  백련사 철조아미타여래좌상

 


겨울 제국의 추위 갑질이 한참이던 2월 첫 무렵, 강화도(江華島)의 북쪽 지붕인 고려산(高
麗山, 436m)을 찾았다.
고려산에는 청련사와 백련사, 적석사(積石寺) 등의 늙은 절이 안겨져 있고, 봄에는 연분홍
진달래가 산 정상부를 가득 채워 수도권의 대표 진달래 성지(聖地)로 추앙을 받는다. 강화
도를 30번이 넘게 오갔으나 고려산은 아직까지 미답처(未踏處)로 남아있었는데, 고려산 식
구 중 청련사와 백련사는 오랜 세월 목말라했던 곳이다. 그래서 추위가 약간 가신 때를 틈
타 그들을 잡으러 강화도로 흔쾌히 출동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여차여차해서 강화터미널에 도착했다. 거기서 10여 분 대기하다가 강
화군내버스 39번(강화터미널↔내가시장)을 타고 10분 정도를 달려 국화리 청련사입구에 두
발을 내렸다. 여기서부터 고려산 산사(山寺) 나들이가 시작된다.


♠  늙은 나무와 오래된 탱화, 불상을 두루 간직한
고려산 청련사(靑蓮寺)

▲  국화리 소나무 - 강화군 보호수 61호

청련사입구 정류장에서 청련사로 인도하는 1차선 길(고비고개로188번길)을 조금 오르면 큰나
무라 불리는 국화리 소나무가 마중을 한다.
그는 200년 정도 묵은 것으로 높이 10m, 나무둘레 1.8m의 괜찮게 생긴 소나무이다. 원래 2그
루로 부부송(夫婦松)이라 불렸으나 2016년에 1그루가 고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면서
홀몸이 되고 말았다. 오랜 세월 마을에 그늘을 드리우던 정자나무이자 청련사를 알리는 이정
표로 그 역할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


▲  청련사 느티나무 - 강화군 보호수 4-9-10호

국화리 소나무를 지나 길을 더 재촉하면 그 길의 끝에 청련사가 크고 오래된 느티나무와 은행
나무를 정면에 내밀며 모습을 드러낸다.
앞서 소나무와 달리 겨울 제국에게 몽땅 털린 느티나무는 약 360년 묵은 것으로 높이 32m, 나
무둘레 4.3m의 큰 덩치를 지녔다.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추정 나이는 약 318년)


▲  청련사 은행나무 - 강화군 보호수 4-9-51호

해우소 옆에 높이 솟은 은행나무는 160년 정도 묵은 것으로 높이 28m, 나무둘레 4.2m의 단단
한 덩치를 지녔다.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될 때 추정 나이가 약 118년) 절을 들어서기가 무섭
게 크고 늙은 나무들이 마중을 나오니 청련사의 오랜 내력을 뼛속 깊이 느끼게 한다.


▲  청련사 부도군(왼쪽이 은화당탑, 오른쪽은 당화당탑)

경내 서쪽 구석에는 고색의 때를 머금은 조그만 승탑<僧塔, 부도(浮屠)> 2기가 나란히 자리해
있다. 그들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동그란 몸매의 탑은 당화당(唐華堂)탑, 네모난 탑신
은 은화당(隱華堂)탑이다.
당화당탑은 8각 바닥돌에 네모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그 위에 사다리형의 지붕돌을 올린 단
순한 형태로 높이 144cm, 지붕돌 폭 70cm, 지붕돌 높이 32cm의 사이즈를 지녔다. 그 옆에 있
는 은화당탑은 탑신과 머리장식이 하나의 돌로 지어진 것으로 기단(基壇)은 별도의 돌로 닦여
졌는데, 높이 149cm, 머리장식 높이 23cm, 탑신 지름 67cm이다. 탑의 주인인 은화당과 당화당
은 이곳을 거쳐간 승려이나 자세한 정보는 전하지 않는다.


▲  청련사 큰법당(法堂)

큰법당은 청련사의 중심 건물로 그 흔한 대웅전(大雄殿) 대신 남양주 봉선사(奉先寺)의 큰법
당처럼 큰법당이란 한글 간판을 내걸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내부에
청련사 제일의 보물인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탱화들이 봉안되어 있으니
꼭 살펴봐야 나중에 명부(冥府, 저승)에 가서도 꾸중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럼 여기서 잠시
청련사의 내력을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고려산에 안긴 늙은 절 3형제의 일원인 청련사는 416년에 천축(天竺, 인도대륙)에서 온 이름
이 전하지 않는 승려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흔히 천축조사(天竺祖師)로도 많이 나오는데, 그
는 불법(佛法) 전파를 위해 진나라를 거쳐 고구려(高句麗)의 변방까지 들어왔고, 적당한 절터
를 찾아 정신없이 돌아다니다가 어느덧 강화도 고려산에 이르렀다. (그 시절 강화도는 고구려
영역임)
고려산 정상부에서 다섯 색깔의 연꽃이 피어있는 연지(蓮池)를 발견하고는 무척 신기하여 다
섯 송이의 연꽃을 따서 허공으로 날렸는데, 그 연꽃이 주변으로 적당히 흩어져 떨어졌다. 하
여 연꽃이 떨어진 곳을 좋은 터라 여겨 절을 닦으니 푸른 연꽃이 떨어진 곳에 청련사, 하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백련사, 붉은 연꽃이 떨어진 곳에 황련사(黃蓮寺)를 세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절에서 내세우는 믿거나 말거나 창건설화일 뿐이며, 경내에 700년 이상 묵은 느
티나무가 있고 고려 후기에 조성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전하고 있어 빠르면 신라 말에서 고
려 초기, 늦어도 고려 중/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창건 이후에도 오랫동안 적당한 내력을 남기지 못했다가 19세기에 이르러 겨우 제대로 된 기
록이 등장한다.
1821년에 비구니 포겸(包謙)이 황폐화된 절을 중창했으며, 1906년에 비구니 계근(戒根)이 법
전(法殿, 법당)을 중수했다. 1909년 선혜(善慧)가 산신각을 새로 지었고, 1916년 정현(淨賢)
이 불상을 개금하고 감로왕탱을 조성했으며, 1919년에 범종을 조성했다. 그리고 1936년에 크
게 중수를 벌였다. 원래는 비구(남자 승려) 절이었으나 1821년부터 비구니 절로 바뀐 것으로
여겨진다.

조촐한 경내에는 법당인 큰법당을 비롯해 삼성각, 산신각, 원통암, 요사 등 7~8동 정도의 건
물이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으로는 국가 보물인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삼장보살도, 현왕도, 원
통암 감로도 등의 지방문화재를 지니고 있다. 그 외에 조선 후기 부도탑 2기와 탱화 여러 점,
석조불좌상, 늙은 보호수를 지녀 고색의 기운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강화읍내에서도 매우 가깝고 고려산으로 인도하는 기점의 하나로 여기서 30~40분 정도 오르면
고려산 정상에 이르며, 절 북쪽 능선에서 정상 대신 서쪽 길로 넘어가 20분 정도 가면 백련사
와 이어진다.

* 청련사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547 (고비고개로188번길112 ☎ 032-933-
  3886)


▲  큰법당에 봉안된 청련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 국가 보물

큰법당 불단에는 파리도 미끄러질 정도로 맨들맨들한 금동 피부를 지닌 잘생긴 목조아미타여
래좌상이 보관(寶冠)을 눌러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좌우에 대동하며 자리해 있다.

결가부좌(結跏趺坐)로 앉아있는 아미타불은 오른손은 가슴 앞에 들고 왼손은 배 부분에 놓아
엄지와 중지를 맞댄 중풍하생인(中品下生印)에 제스쳐를 취하고 있는데 얼굴은 몸에 비해 조
금 커 보이며 턱선은 둥글고 눈꼬리가 올라가 있다. 육계(무견정상)는 머리와의 경계가 불분
명하고 둥글며 나발은 촘촘히 표현되었다.

옷은 편삼 위에 대의(大衣)를 걸친 변형통견식으로 오른쪽 어깨 위에 반달형으로 걸쳤고, 그
옆구리 사이에 대의를 넣어 옷주름이 사선으로 표현되었다. 왼쪽 어깨에는 지그재그식으로 곡
선을 그리며 흘러내리는 옷 주름 밑으로 잔주름이 있으며, 그 밑의 맞주름은 입체감 돋게 표
현되었다.
활짝 드러낸 가슴에는 수평으로 가로지른 승각기에 띠 매듭을 묶어 고정했으며, 무릎 밑으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그 끝이 왼쪽 무릎 위에 나뭇잎 형상으로 접혀 있고, 양 무릎 밑으로 수평
의 주름을 이루며 흘러내린다.
이런 특징들은 서울 개운사(開運寺)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관련글 보기), 수국사(守國寺) 목
조아미타여래좌상(☞ 관련글 보기), 서산 개심사(開心寺)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 13세기 전반
기 불상과 양식적으로 가까워 13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며, 다른 곳에서 넘어온 것이 아
닌 청련사의 주불(主佛)로 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어쨌든 고려 후기 불교 조각의 단정하
고 세련된 조형미가 잘 드러낸 불상으로 평가를 받아 뒤늦게 국가 보물의 큼직한 지위를 받았
다.


▲  가까이서 바라본 목조아미타여래좌상(아미타삼존상)의 위엄

▲  큰법당 현왕도(왼쪽, 인천 유형문화유산)와
삼장보살도(오른쪽, 인천 유형문화유산)


삼장보살도와 현왕도는 별도의 탱화이나 서로가 너무 붙어있다 보니 마치 한 캔버스에 구획을
나누어 그려진 것처럼 보인다.
1881년에 그려진 삼장보살도는 등장 인물이 너무 많아 앞서 감로도에서 고통 받은 안구에 다
시금 고통을 선사하고 있는데, 그림은 상하 2단으로 나누어 위에는 천장보살(天藏菩薩)을 중
심으로 좌우에 보살을 배치하고 그 사이에 권속들을 넣었다. 밑에는 이들 보살의 협시(夾侍)
와 권속들로 채워져 있으며, 삼장보살(三藏菩薩)은 네모난 수미단 위에 앉은 천장보살의 신광
(身光)만 금니(金泥)로 처리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두광(頭光)과 신광을 갖추고 결가부좌하
였다.
채색은 주로 적색과 청색, 백색, 황색을 이용했으며, 부분적으로 금니도 썼는데, 천장보살과
지지보살, 지장보살의 몸색은 황색을 사용했고, 나머지 인물은 백색으로 처리했다.

삼장보살도 옆에 붙은 현왕도는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염라대왕(현왕)을 담은 탱화이다. 황색
벽을 배경으로 가운데 의자에 염라대왕이 앉아있고 성왕(聖王), 판관(判官), 녹사(祿仕), 동
자, 동녀 등 현왕의 식구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현왕은 머리에 경책을 얹은 관을 눌러쓰고 있
는데,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으며, 머리에는 푸른색 두광이 달려
있다.
좌/우측에는 성왕이 협시해 있고, 아래쪽에는
경권(經卷)과 경책을 지닌 판관, 기록을 하는
녹사, 사자, 동자, 동녀 등이 있다.
현왕 뒤편에는 작게 표현된 인물들이 번과 부
채, 삼지창 등을 들고 있으며, 인물 복장에는
주로 적색과 청색을 사용했으나 황색, 백색도
많이 썼다. 1881년에 조성된 것으로 탱화의 크
기는 가로 104.5cm, 세로 156cm이다.

▲  큰법당 옆에 길게 자리한 팔작지붕
선방(禪房)

◀  삼성각(三聖閣)
삼성각이란 이름에 맞지 않게 산신도와
칠성도만 들어있다. (독성은 없음)

             ◀  산신각(山神閣)
1칸짜리 맞배지붕 건물로 경내에서 가장 하늘
과 가까운 곳에 자리해 있다.
1907년에 조성된 산신도와 독성도가 봉안되어
있는데, 앞서 삼성각에 산신이 들어있음에도
별도의 산신각을 두고 있어 청련사가 산신을
꽤 높이 치고 있음을 알려준다.


♠  청련사 마무리

▲  선방 앞 느티나무 - 강화군 보호수 4-9-12호

선방 앞에는 누렇게 뜬 느티나무가 가지를 높이 치켜들며 애타게 봄의 해방군을 열망하고 있
다. 겉으로 보면 앞서 봤던 느티나무보다 어린 것 같지만 이래 봬도 청련사에서 가장 늙은 존
재로 추정 나이가 무려 730년 정도 된다.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될 때 추정 나이가 약 688년)
높이 32m, 나무둘레 4.3m로 그를 통해 청련사가 고구려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고려 때 창건
되었음을 살짝 알려주고 있다.


▲  청련사의 또 다른 늙은 느티나무 - 강화군 보호수 4-9-11호
이 나무도 추정 나이가 730년(1982년 보호수로 지정될 때 추정치가 688년)으로
앞서 느티나무와 나이, 높이, 나무둘레가 같다. 청련사는 유난히 늙은
느티나무가 많은데 무슨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  청련사 원통암<圓通庵, 원통전(圓通殿)>

경내 북쪽에 자리한 원통암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원래는 청련사의 부속암
자였다.
이후 청련사의 일원으로 완전히 녹아들면서 원통전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원통암은 이 건물이
전부라 저 안에 예불공간과 생활공간이 싹 들어있다. 그래서 내부는 완전 방처럼 이루어져 있
으며, 예불공간에 조선 끝 무렵에 조성된 석조불좌상과 감로도 등의 탱화들이 풍성하게 깃들
여져 있다. 하여 청련사에서 큰법당 다음 급의 보물 창고이니 조선 후기 탱화에 관심이 있거
나 여로(旅路)를 더 살찌우고 싶다면 꼭 살펴보기 바란다. (내부 관람 자유)


▲  원통암 독성탱
1907년 4월에 조성된 것으로 푸른 옷을 걸치며 지팡이를 든 독성 할배와 그의
활동 무대인 천태산(天台山)이 그려져 있다. 그 앞에는 하얀 피부의
조그만 독성상이 별도로 유리막에 봉안되어 있다.

▲  원통암 지장시왕탱
1874년 7월에 조성된 것으로 푸른 민머리의 지장보살과 명부(저승)의
식구들이 담겨져 있다.

▲  원통암 아미타회상도(阿彌陀會上圖)와 조그만 석조불좌상

원통암 불단에는 아주 작고 귀여운 모습의 석조불좌상이 자리해 있다. 마치 동자승이나 아기
가 석가여래와 보살의 옷을 걸치고 큰 대좌에 앉아있는 모습들인데, 가운데 불상이 석불좌상
(석조불좌상), 그 좌우로 승려 머리의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이 자리하여 어엿하게 삼존상을
이룬다.
석조불좌상과 지장보살은 돌로 만들어 개금을 입혔고, 관세음보살은 특이하게 철로 다져 개금
을 했는데, 철로 만든 불상/보살상은 고려 초기 이후로는 흔하지 않은 존재이다. 저들은 19세
기 말에서 1900년대 초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며, 그들 뒤로 1907년에 제작된 아미타회상도
가 고색의 기운을 한껏 드러내며 든든하게 걸려있다.


▲  원통암 감로도(甘露圖) - 인천 유형문화유산

꽤나 복잡해 보이는 감로도는 죽은 자의 천도를 위해 우란분경(盂蘭盆經)의 내용을 도상화한
것으로 그림 가운데 커다란 상에 성반을 차려놓고 제를 올리는 모습을 중심으로 위에 7불이
있고, 좌측편에는 아미타삼존불, 우측편에 지장보살과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 있다. 성반
밑에 아귀(餓鬼) 2마리가 있고, 그 밑에 지옥과 현세의 여러 생활상들이 그려져 있는데, 왜정
(倭政) 초기인 1916년에 조성된 것으로 그 시절의 우울한 상황을 상징하듯 전반적으로 색이
흐릿하다.

탱화의 크기는 가로 166.5cm, 세로 146cm로 청련사에는 이것 외에 9살(1907년 작)이 더 많은
감로도가 1점 더 전하고 있다.


▲  원통암 신중탱
1874년에 조성된 법당 지킴이 탱화로 호법신중의 무리가 빼곡히 담겨져 있다.

▲  겨울에 잠긴 고려산 산길 (청련사에서 주능선 방향)

청련사를 싹 둘러보고 다음 메뉴인 백련사로 길을 재촉했다. 그곳에 가려면 고려산 주능선을
넘어야 되는데, 경사는 그리 각박하지 않으며 묵묵히 오르면 금세 주능선에 이르게 된다. 여
기서 주능선을 타고 서쪽으로 가면 고려산 정상으로 4월에 왔더라면 진달래의 향연이 열리는
정상부로 흔쾌히 두 발을 움직였을 것이나 황량한 2월이고 마음도 백련사에 이미 가 있어 그
곳은 다음으로 미루었다.
그때만 해도 진달래축제가 열리는 이번 4월에 바로 인연을 지으리라. 다짐을 했건만 이후 마
음이 변덕을 부려 아직까지도 고려산의 진달래 향연은 구경하지 못했다.

주능선에서 서쪽 내리막길로 내려가 고개를 하나 넘으면 백련사로 인도하는 포장길이 나오고
그 길의 끝에 백련사가 산문을 활짝 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백련사로 내려가는 산길 (주능선에서 백련사 방향)


♠  청련사와 비슷한 창건설화를 지닌 고즈넉한 산사
고려산 백련사(白蓮寺)

▲  해우소 윗쪽 느티나무 - 강화군 보호수 4-9-28호

백련사에 들어서니 청련사처럼 늙은 나무들이 마중을 나와 이곳의 내력도 만만치 않음을 강조
한다.
해우소 윗쪽에 솟은 느티나무는 480년 정도 묵은 것으로(1997년 보호수로 지정될 때 추정치가
450년) 높이 15m, 나무둘레 4.8m의 덩치를 지녔다. 건강도 괜찮은 편으로 절의 풍경을 돋구는
풍치목(風致木)으로 식재된 것으로 여겨진다.


▲  백련사 큰나무(느티나무) - 강화군 보호수 185호
350년 정도 묵은 것으로 높이 18m, 나무둘레 3.5m이다. 키가 커서 큰나무라
불리며, 주차장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데, 그를 지나 언덕을
오르면 백련사 경내에 이르게 된다.

▲  극락전 옆 은행나무 - 강화군 보호수 4-9-29호

극락전과 범종각 사이에 솟은 은행나무로 약 110년 정도 묵었다. (2016년 보호수로 지정될 당
시 추정치가 100년)
높이 20m, 나무둘레 좌 2.5m, 우 3.1m 규모로 1947년에 백련사 주지인 성탄이 심었는데, 이곳
에 뿌리를 내린 이후 이상하게도 은행 열매가 1번도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하여 나무 번식을
위해 1990년대에 접을 붙여보았으나 여전히 소용이 없었다고. 그래서 이를 두고 숫나무라서
그렇다는 의견도 있으나 접까지 붙인 것을 보면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또한 1990년대에 갑자
기 크게 자라나 지금의 모습처럼 되었는데 과하게 자라난 원인은 아직도 아리송하다고 한다.
어쨌든 백련사의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비록 은행 열매도 열리지 않고 110살 정도의 나무이나
은행잎만큼은 풍성하게 열려 짙푸른 녹음(綠陰)과 늦가을 황금 단풍으로 백련사의 운치를 크
게 거들어준다.


▲  백련사 극락전(極樂殿)

극락전은 이곳의 법당으로 거의 'ㅁ'구조를 지닌 팔작지붕 집이다. 집 가운데에 작은 마당이
있으며, 법당 외에 종무소(宗務所)와 선방, 요사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지금이야 건물이 여
럿 있으나 예전에는 저 건물이 절의 전부였다. 극락전 예불 공간에는 이곳의 보물인 철조아미
타여래좌상과 조선 후기에 조성된 탱화가 여럿 있으니 꼭 둘러보기 바란다.
그럼 여기서 백련사의 내력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고려산 북쪽 자락에 깃든 백련사는 416년에 천축(인도대륙)에서 온 이름이 전하지 않는 승려
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창건설화는 앞서 청련사와 같은데, 이곳에 흩날린 백련(白蓮) 꽃잎이
떨어져 절을 짓고 백련사라 했다고 하며, 산 정상 연못에서 다섯 색깔의 연꽃잎을 따서 주변
에 흩날린 연유로 산 이름을 오련산(五蓮山)이라 했다고 한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 창건설화일 뿐이며 경내에 480년 묵은 느티나무와 14세
기 말에서 15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철조아미타여래좌상이 있어 고려나 조선 초에
창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1881년 벽담(碧潭)이 현왕도를 조성했고, 1888년 그가 지장보살도와 신중도, 칠성도, 독성도
를 추가로 제작해 법당에 봉안했다. 1905년 인암(忍庵)이 박보월(朴寶月)과 함께 퇴락된 건물
을 중건했으며, 1908년 불상을 개금하고 탱화를 봉안했다.

조촐한 경내에는 법당인 극락전을 비롯해 삼성각, 칠성각, 요사, 찻집 등 6~7동 정도의 건물
이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으로는 국가 보물인 철조아미타여래좌상, 강화군 보호수인 느티나무
와 은행나무가 전한다. 그 외에 19세기에 조성된 의해당탑과 비, 부도 3기와 19세기 후반 탱
화가 여럿 전하고 있어 고색의 기운도 청련사 못지 않게 풍성하다.

* 백련사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231 (고려산로61번길 270, ☎ 032-933-
  5082)


▲  윗쪽에서 바라본 극락전

▲  극락전 철조아미타여래좌상 - 국가 보물

극락전의 주인인 철조아미타여래좌상은 백련사에서 가장 오래된 존재이자 이곳의 1급 보물이
다. 철로 만들어 개금을 입힌 작고 단단한 불상으로 고려 후기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갸름한
얼굴과 단정하고 잘생긴 얼굴, 미소가 깃든 작은 입, 좁은 어깨, 손발의 곡선 처리 등은 절제
된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옷은 두꺼우나 주름은 단순하다. 그리고 왼쪽 팔꿈치 윗
부분에는 독특한 모양의 옷주름이 표현되었다.
왼발은 옷 속에 감싸여 있고, 오른발은 보이도록 앉은 길상좌(吉祥坐)를 취하고 있으며, 길상
좌 자세와 단아한 모습 등에서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좌우로는 근래 조성된 관세음보살상과 지장보살상을 붙여놓아 아미타삼존상을 이루고 있
으며, 그들 뒤로 아미타후불탱이 든든하게 자리해 있다.


▲  연분홍 연등이 환하게 비추는 극락전 내부
왼쪽 불단에 보이는 금동 피부의 존재들이 철조아미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한 아미타삼존상이다.

▲  극락전 신중탱
호법신들의 무리를 담은 탱화로 1888년 3월에 조성되었다.

▲  극락전 현왕탱
현왕(염라대왕)과 그의 식구들을 머금은 탱화로 1881년에 그려졌다.

▲  산신과 독성, 칠성의 거처인 삼성각

▲  백련사 승탑과 처활대사비

경내 뒤쪽에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승탑(부도) 3기와 비석 1기가 전하고 있다. 그들 중, 의해
당 처활대사(義海堂 處活大師)의 탑과 비석은 1801년에 세워진 것으로 그는 60살에 입적했는
데, 서산대사(西山大師)의 법맥을 이은 천봉의 제자이다.
다른 1기는 여화당(麗華堂)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어 여화당의 탑임을 알려주고 있으며, '청신
녀 신령지탑(淸信女 信靈之塔)'이라 쓰인 승탑은 여자 신도 신령의 탑으로 보인다. 그들의 정
보와 탑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기록도 없고 고려산 산신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실정이라 그 이
상은 알 수 없다.


▲  백련사 승탑과 비석 형제들

▲  백련사에서 속세로 내려가는 길

백련사를 둘러보고 늙은 나무들의 배웅을 받으며 속세로 내려왔다. 잘 닦여진 포장길(고려산
로61번길)을 2.9km 정도를 내려가야 군내버스를 탈 수 있는 부근3거리에 이르는데 내리막길의
연속이라 어려운 것은 그리 없다.
내려가는 길 정면으로 멀리 보이는 산(금동산, 봉천산) 너머로 흐릿하게 다가오는 곳이 있는
데, 저곳은 80년 가까이 금지된 땅으로 꽁꽁 묶인 개성(開城) 땅이다. 고려산 정상에서는 더
잘보인다고 하는데, 여기서도 그 통한의 땅이 조금씩 보여 이 땅의 우울한 현실에 치를 떨게
한다.

부근리로 내려와서 민가에 숨겨진 조그만 고인돌을 만났으나 본글에서는 분량상 쿨하게 생략
하며 고려산 겨울 나들이는 이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다음에 다시 인연을 짓는다면 4월
에 찾아와 이곳의 진달래 향연을 꼭 구경하고 싶다.


▲  부근리에서 바라본 고려산의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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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5년 1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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