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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악산 한양도성 숙정문

숙정문은 한양도성의 북문으로 남대문(숭례문), 동대문(흥인지문), 서대문(돈의문)과 함께 도성 4대

문의 일원이다. 하여 북문, 북대문이라 불리기도 했으나 가파른 산능선에 자리해 있고 규모가 작아서

도성의 대문이라기 보다 산성의 조촐한 성문 분위기가 진하다.

 

성문 이름인 숙정(肅靖)은 엄숙히 다스린다는 뜻으로 원래 이름은 가운데 1자만 다른 숙청문(肅淸門)

이었다. 1396년 지금보다 약간 서쪽에 지어졌는데, 1413년 풍수학자인 최양선이 태종에게 창의문과

숙정문은 경복궁의 양팔과 같아 길을 내어 지맥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건의하여 이들 문을 닫아

걸고 소나무를 잔뜩심어 통행을 금지시켰다.

게다가 숙정문을 품은 북악산 주능선은 도성 내부가 훤히 바라보이는 예민한 위치라 서울을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의 출입을 거의 통제했고, 설령 이 성문을 나와도 이어지는

은 숲이 무성한 북악산(백악산) 북쪽 자락과 북한산, 성북동이 고작이었다.

또한 평소와 비가 많이 올 때는 숙정문을 닫아 걸고 가뭄이 심할 때는 남대문을 닫고 이 문을 열어 기

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는 1416년에 제작된 기우절목에 따라서 북쪽은 음(陰). 남쪽은 양(陽)을 상

징하는 음양 원리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니 통행문으로서의 존재감보다는 도성 수비와 풍수지리적인

존재감이 훨씬 컸던 것이다.

 

1504년 성곽을 보수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으며, 숙청문이 언제 숙정문으로 이름이 갈렸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1523년부터 숙정문 이름이 등장한다. 숙정문 외에도 북정문(北靖門)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이들 명칭이 같이 쓰이다가 언제부턴가 숙정문으로 슬쩍 통합되었다.

1968년 1.21사태 이후 북악산 대부분과 숙정문이 금지된 구역이 되었으며, 1976년 북악산 일대 성곽

을 손질하면서 문루를 세워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숙정문 문루에 올라서면 북악산 북쪽 능선과 성북동 일대가 바라보이며, 높은 곳에 자리한 것은 분명

하지만 문 남쪽은 울창한 수목이 시야를 방해하고 있고, 북쪽도 겨우 성북동과 삼청각, 북악산 북쪽

능선이 전부라 조망은 생각보다 별로이다.

매년 봄에는 사대부 여인들이 숙정문 남쪽에서 봄꽃놀이를 즐겼다고 하며, 그거 외에는 딱히 숙정문

주변에 대한 옛 사람들의 시(詩)나 문구(文句)는 전하는 것은 없다.

 

2. 북쪽을 향해 입을 반쯤 연 숙정문

숙정문은 북악산 주능선 한양도성의 동쪽 부분이다. 문 북쪽 밑에 숙정문안내소가 있으며, 남쪽으로

내려가면 촛대바위 밑도리와 삼청안내소로 이어지는 산길이 있다. 그리고 성곽길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 말바위와 말바위안내소, 삼청공원, 성북동으로, 서쪽으로 가면 곡장과 청운대, 북악산 정상(백

악마루), 창의문으로 이어지는 등, 동/서/남/북으로 길이 뻗어있어 북악산 주능선에서 가장 요충지로

꼽힌다.

 

3. 숙정문 안쪽

숙정문 문루는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접근이 통제되어 있다. (문루 협문이 굳게 닫혀있음) 문 안쪽에

서 탐방로가 동/서/남/북으로 나 있는데, 2022년 4월 촛대바위 밑도리와 삼청안내소로 이어지는 숙정

문 남쪽 산길이 개통되면서 숙정문은 사통팔달의 요충지가 되었다.

 

4. 숙정문~말바위안내소 구간 한양도성길

소나무가 무성한 한양도성 너머로 성북동 지역이 시야에 들어온다.

 

5. 숙정문~말바위안내소 한양도성길에서 바라본 북악산 북쪽 자락

북악산 북쪽 자락 능선에는 서울의 대표적인 지붕 도로인 북악산길(북악스카이웨이)이 닦여져 있다.

사진 가운데로 북악산길 한복판에 자리한 북악팔각정이 작게 시야에 들어오고 그 너머로 북한산(삼

각산) 봉우리가 살짝 고개를 내민다.

 

6. 숙정문~말바위안내소 한양도성길에서 바라본 성북동 지역

북악산 동북쪽 끝자락 품속에 이 땅에서 대표적인 부자 동네로 꼽히는 성북동이 포근히 뉘어져 있다.

평창동과 장충동, 한남동, 강남에 돈이 많은 졸부들이 많이 살지만 성북동은 전국의 0.1%가 산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로 그들을 능가하는 부촌이다. (성북로를 중심으로 북쪽에 졸부들이, 남쪽에

서민들이 주로 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