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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도심 속의 포근한 산사, 성북동 길상사(吉祥寺) '
▲ 연등이 하늘을 가린 극락전 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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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정권의 실력자들이 들락거리던 고급요정에서 도시인들이 편안히 |
생이 되었다. 그녀는 왜국(倭國)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문학가로 유명한 백석(白石, 1912~1995) 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 당시 그는 조선일보 기자였다. 백석은 그녀를 자야(子夜) 라 불렀는데, 그들은 혼인을 약속했으나 백석의 부모가 쌍수를 들고 반대하면서 혼인은 좌절되 고 결국 이별하고 만다. 오기가 생긴 그녀는 악착같이 돈을 벌고 공부를 하여 1953년 중앙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몇 편의 수필과 '내 사랑 백석','하규일 선생 약전' 등을 쓰기도 했다. 또한 계곡물이 흐르는 성북동에 땅을 구입하여 청암장(靑岩莊)이란 한식당을 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운영을 맡겼는데, 그 이후 대원각으로 이름이 바꿨다. 박정희 정권 시절 대원각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면서 정권 실력자들의 단골요정이 되었고, 돈 꽤나 주무르던 사람들이 앞다투어 찾아오면서 삼청각, 청운 각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요정의 하나로 악명을 떨쳤다. 이렇게 막대한 수입을 자랑하던 김영한은 죽을 때까지 혼인을 하지 않고 살았다. 비록 돈은 하 늘에 닿을 만큼이나 많았으나 나이를 먹으면서 그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서서히 깨닫던 중, 법 정의 '무소유'를 읽고 적지 않은 감명을 받았다. 그를 친견하여 여러 법문을 들으면서 모든 것 을 내놓기로 결심, 1987년 절로 만들어달라며 대원각을 기증했다. 허나 법정은 펄펄 뛰며 거절 했다. 당시 대원각의 면적은 7천여 평, 시가는 무려 1,000억원을 헤아렸다고 한다. 김영한은 8년 동안이나 끈질기게 기증의 뜻을 보였고, 결국 1995년 법정은 그곳을 받아 순천 송 광사(松廣寺)에 시주했다. 송광사는 대원각을 대법사(大法寺)로 이름을 고치고 송광사의 말사( 末寺)로 삼았다. 그러다가 1997년 송광사의 옛 이름인 길상사로 이름을 갈았으며, 그해 12월 14 일 개원법회를 열었다. 법회에는 천주교의 고(故) 김수환 추기경(樞機卿)을 비롯한 각계 인사와 시민, 불자 4,000여명이 참석했다. 법정의 소개로 법회에 선 그녀는 자신의 부질없는 삶을 이렇 게 드러내며 대중의 심금을 진하게 울렸다. '저는 죄가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 (저쪽에 보이는 팔각정을 보면서)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요정시절 기생들)이 옷을 갈아입던 곳이었습니다. 제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입니다...' 길상사의 창건주가 된 김영한은 법정으로부터 길상화(吉祥花)란 법명(法名)과 염주(念珠)를 받 았으며, 옛 사랑인 백석을 기리고자 2억원을 내놓아 백석문학상을 만들기도 했다. 불교에 귀의하며 말년을 지내던 그녀는 1999년 11월 14일 83세의 나이로 외로운 삶을 마감했다. 그는 죽기 하루 전날, 절에 들어와 목욕재계하고 예불을 올리며, 길상헌에서 인생의 마지막 밤 을 보냈다고 하며, 당시 길상사 주지 청학(靑鶴)에게 이렇게 유언을 했다. '내가 죽으면 눈이 내릴 때 절 마당에 뿌려주세요' 중생의 오열 속에 그녀의 육신은 산산히 화장(火葬)되고 유골은 49재 이후 유언에 따라 첫눈이 절을 하얗게 수놓던 날, 길상헌 뒤쪽 언덕에 뿌려졌다. 그 자리에는 조촐하게 공덕비를 만들어 그녀를 기리고 매년 음력 10월 7일에 기제(忌祭)를 올린다. 절은 그녀의 뜻을 받들어 대중에 널 리 문을 열었고 '맑고 향기롭게 길상화 장학금'을 만들어 해마다 30여 명의 중고생에게 장학금 을 지원하고 있다. 김영한은 막대한 재산을 가진 부자였지만, 돈을 신으로 모시는 우리나라 태반의 치졸한 부자들 과는 달리 그 모든 것을 속세에 내버리고 빈털털이로 인생을 마무리했다. 그는 후손도 없고 한 줌의 재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간지 10년이 넘었지만 그녀의 눈물 어린 사연과 함께 아름다운 넋 과 마음은 여전히 그녀의 유작(遺作)이라 할 수 있는 길상사에 고이 깃들여져 속세에 오염되고 상처받은 중생의 메마른 마음에 감동의 싹과 눈물을 틔우게 한다. * 길상사의 현재 길상사의 불전(佛殿)은 지장전을 제외하고 기존 요정시절에 건물을 개조한 것이다. 경내에는 법 당인 극락전을 비롯하여 지장전, 설법전, 종무소, 범종각, 길상선원, 유마선방, 침묵의집, 찻집 등이 있으며, 극락전과 지장전, 설법전은 한결같이 규모가 상당하다. 절 북쪽 언덕에는 승려의 생활 및 참선공간으로 쓰이는 조그만 집들이 줄지어 있다. 오래된 절이 아니다 보니 문화유산은 없으며, 수령(樹齡) 200년 정도 먹은 오랜 느티나무 2그루가 뜨락에 그늘을 드리운다. 또한 시민운동 '맑고 향기롭게'의 근본도량(根本道場)으로 매년 5월에 법회와 길상음악회를 연 다. 법회 때는 고(故) 법정이 자주 법회를 주관했으며, 그를 보려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었다. 길상음악회는 다양한 테마의 음악을 선보이는 자선음악회로 여기서 나오는 수입은 어려운 이들을 위해 쓴다. 절 주지는 1년마다 바뀌며, 2010년 4월 현재 덕현이 6대 주지로 절을 꾸리고 있다. * 도시인들을 위한 다양한 참선 프로그램 1. 길상선원(吉詳禪院) - 상설 시민선방으로 길상사에서 하는 1박 2일 선수련회에 3회 이상 참 여하거나 3박 4일 여름 특별 선수련회 참여자, 그리고 다른 절의 선수련회에 참여한 뒤 길상사 1박2일 선수련회에 1회 참여한 사람에 한해 방부<房付, 선방에 안거(安居)를 청하거나 승려가 다른 절에 가서 잠시 있기를 청하는 것>가 가능하다. 기존 이용자는 매월 25~31일까지, 신규 이 용자는 매월 1~3일에 방부를 들일 수 있다. 방부가 승인된 사람은 일정액의 방부비를 내고 이용 할 수 있으며, 한달에 5일 이상은 출석해야 된다. 선원 출입시간은 매 정시에서 10분 사이이다. 2. 침묵의집 - 길상사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는 침묵의집은 '침묵의집에서 침묵을, 침묵 속에 서 고요함을, 고요함 속에서 평화를'이란 테마로 누구나 자유롭게 명상과 좌선(坐禪)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용시간은 오전 10시부터 17시까지이며, 일요일(10시~16시까지)과 특별 행사가 있는 날에는 개방하지 않는다. 3. 템플스테이(Temple Stay) - 길상사 템플스테이는 선수련회와 별도로 매월 개최하고 있다. 개 인 및 단체 모두 가능하며, 108배가 가능한 사람만 참여할 수 있다. 일정은 1박 2일로 토요일 14시부터 일요일 15시까지이며, 참가비는 5만원이다. 4. 선수련회 - 템플스테이와 별도로 열리는 선수련회는 참선과 수행 경험이 없거나 적은 사람을 위한 초심반과 참선 경험이 많은 이를 대상으로 하는 구참반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초심반은 매 월 3째 주말, 구참반은 매월 4째 주말에 열리며, 1박 2일로 진행된다.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반 드시 108배가 가능해야 된다. 참가비는 5만원이며, 자세한 정보는 길상사 홈페이지를 참조. ※ 길상사 찾아가기 (2010년 3월 기준) *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6번 출구)에서 1111,2112번 시내버스를 타고 성북초교 하차, 내린 방향을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2분 걸으면 성북초교3거리가 나오는데, 거기서 길상사 표시를 따 라 왼쪽으로 15분 정도 들어가면 길상사이다. * 길상사 셔틀버스가 한성대입구역에서 1일 8회 운행한다. 타는 곳은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를 나와서 50m 떨어진 동원마트 앞이며. 8:30, 9:20, 9:40, 10시, 12시, 13시, 15시, 16:30분에 떠난다. 길상사에서 나가는 시간은 8:10, 9:10, 9:30, 9:50, 11:45, 12:45, 14:45, 16:15분이 다. 시간이 안맞으면 시내버스로 성북초교에서 내려서 가볍게 걸어가면 된다. * 매년 음력 10월 7일에는 길상화 기제(忌祭)가 열린다.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2동 323 (☎ 02-3672-5945~6) * 길상사에서 북쪽으로 도보 5분 거리에 한국가구박물관이 있다. * 길상사 홈페이지는 위의 링크나 아래 사진을 클릭한다. |
♠ 길상사 극락전(極樂殿) | |
길상사의 법당인 극락전은 옛 대원각의 중심 건물이다. 극락전에는 방이 꽤 많은데, 가운데 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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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아미타3존불은 길상사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으로 1997년 11월에 조성되어 12월에 봉안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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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이나 고급 한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품격 | 중생들이 갖다놓은 무수한 동전에 조금은 언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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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에는 2그루의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다. 모두 극락전과 정문 사이에 있는데, 사진에 나온 |
♠ 길상사 지장전(地藏殿) |
경내 북서쪽에는 '나누는 기쁨'이란 이름의 찻집과 지장전이 자리해 있다. 설법전과 극락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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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전 내부는 설법전만큼이나 넓다. 불단에는 육환장을 든 지장보살이 해맑은 미소로 앉아 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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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별, 철새의 무리가 아무리 많다고 한들 이곳의 연등보다는 적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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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상사 나머지 부분 (길상헌, 길상화공덕비, 침묵의집) | |
찻집 부근 쉼터에서 계곡을 건너면 절의 고참 승려가 머무는 길상헌과 길상화의 공덕비가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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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주 길상화를 기리고자 그의 2주기인 2001년에 세운 것이다. 비석이라고는 하지만 기존과는 | |
![]() | ◀ 길상사 경내를 가로지르는 계곡 이 계곡은 정릉 뒷산에서 발원하여 성북천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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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집은 중생들이 자유롭게 참선을 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즐길 수 있는 열린 공간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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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관람을 마무리하고 지장전 옆의 '나누는 기쁨' 찻집에서 기분 좋게 차 1잔의 여유를 누 |
이루어집니다. <단 블로그는 한달까지이며, 원본은 2달까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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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 시작일 - 2009년 12월 11일
* 작성 완료일 - 2009년 12월 12일
* 숙성기간 - 2009년 12월 12일 ~ 2010년 4월 3일
* 공개일 - 2010년 4월 3일부터
* 마지막 수정 - 2010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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