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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학동 전형필가옥에서 북한산둘레길 방학동길, 방학동사지로 인도하는 숲길

방학동 전형필가옥을 간만에 둘러보고 시루봉 북쪽 숲속에 숨겨진 방학동사지를 오래간만에 복습하

고자 북쪽 숲길로 들어섰다. 숲길 서쪽에는 방학동계곡(계곡 이름은 따로 없음. 그래서 지역 이름을

따서 편의상 방학동계곡이라 하였음)이 작게 흐르고 있는데, 그곳에는 '와운폭'과 '귀록계산' 바위글

씨가 숨겨져 있다. 그들도 간만에 볼까 했으나 마음이 변덕을 부리면서 쿨하게 통과했다.

 

2. 방학동사지로 인도하는 잘 닦여진 숲길

이 숲길을 조금 오르면 북한산둘레길19구간 방학동길(서울둘레길21코스)과 만나며, 그곳을 지나면

장수주말농장과 방학동사지로 이어진다.

 

3. 방학동사지 (절터의 2단, 3단 석축)

장수주말농장에서 산속으로 더 들어가면 숲속에 묻힌 체육시설이 마중을 한다. 이곳은 방학동 주민

들이 만든 장수산악회에서 닦아놓은 운동시설로 도시 뒷산에 널리고 널린 공원 운동시설로 여기고

지나치기 쉽다. 허나 문제는 그 운동시설이 자리한 곳에 돌로 쌓은 심상치 않은 석축이 요란하게 있

다는 점이다. 게다가 석축을 이루고 있는 돌도 꽤 고색이 깊어 보여 이곳에 무슨 사연이 있음을 살짝

속삭인다.

 

그렇다면 이곳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고 무슨 일이 있었을까? 놀랍게도 이곳은 오래된 절터이다. 이

곳에 둥지를 틀었던 절의 이름과 창건 시기, 망한 시기에 대해서는 전혀 전하는 내용이 없어 안타까

울 따름인데, 절터에 남아있는 석축과 맷돌은 마지막 날의 충격이 참 대단했던지 여전히 입을 굳게

닫고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남쪽 계곡(방학동계곡)에 별서를 지었던 조현명의 기록에도 이곳

절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처럼 절의 모든것이 수수께끼에 덮여있어 지역 이름을 따서 편의상 '방

학동사지'라 부른다.

 

이 미지의 절터에는 돌을 거칠게 다듬어 쌓은 석축 3단이 남아있다. 가장 위에 있는 1단 평탄지는

길이 60m,너비 17m로 20~120cm 크기의 장방형 석재를 5단 정도로 쌓아서 구축했다. 터가 가장

넓어서 법당 같은 건물이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1단 밑에는 2단을 두었는데, 평탄지 길이

15m, 너비 5m이며, 석축 길이는 10m, 높이 1.5m로 15~95cm 크기의 석재를 6단 정도로 쌓았다.

그리고 3단 석축 평탄지는 길이 14m, 너비 6m이다. 석축 앞에는 완만하게 내리막 경사가 펼쳐져

있고, 바위와 온갖 돌들이 널려 있다.

 

3단의 석축 외에 맷돌과 우물이 있으며, 서울역사박물관이 2003년에 1,100㎡를 조사하면서 어골

문과 종선문, 사선문, '官'이 새겨진 기와, 청자 양각 접시, 청자와 백자, 기와, 토기 파편 등을 건졌

다. 이들 유물을 통해 고려 중/후기 이전에 세워져 조선 중/후기에 홀연히 망한 것으로 보인다.

 

절이 사라진 이후, 터만 황량하게 전해오다가 1970년대 이후 장수산악회에서 체육시설을 닦으면서

크게 훼손되었다. 아직까지도 문화유산으로 제대로 인정도 받지 못해 관리의 손길마저 부실한 실정

이며, 그나마 절터 석축과 맷돌이 간신히 남아있으니 눈썰미가 조금 있다면 이곳이 늙은 절터임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방학동사지는 서울에 몇 남지 않은 제대로 된 절터 유적으로 그 희소성이 크다. 허나 그 가치를 제

대로 인정 받지 못한 채 무책임하게 버려져 있으니 실로 안타깝다.

 

4. 방학동사지 2단 석축

 

5. 방학동사지 약수터

옛날 이곳에 있던 절의 식수 역할을 했던 샘터로 지금도 그 역할은 거의 녹슬지 않았다.

 

6. 약수터 주변에 널부러진 돌덩어리들

 

7. 방학동사지 1단 석축 평탄지에 무심히 조성된 체육시설들

 

8. 형태만 남은 늙은 맷돌

이 맷돌을 이용해 절 사람들은 음식을 만들고 공양을 했을 것이다. 이곳 절터의 유일한 옛 생활 유물

로 가치가 있으나 현실은 버려져 있다. (조선 중~후기 것으로 여겨짐)

 

9. 방학동사지 마애불

절터 서쪽 바위에는 아주 잘생긴 늠름한 모습의 마애불이 깃들여져 있다. 이 석불은 옛 방학동사지와

는 전혀 관련이 없는 존재로 동네 주민들이 장수산악회를 조직하면서 그 기념으로 1973년 5월에 마

련한 것이다. 절도 아니고 산악회에서 자체적으로 마애불을 만들어 봉안한 점이 이채로운데, 그들은

이곳이 절터였음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마애불은 이곳의 상징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켰으나 그 망할 기독교 애들이 마애불에 해코지를 하여

훼손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하여 산악회 회장이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1993년 음력 4월에 복원하

고 불상복원비를 그 곁에 세웠다.

마애불을 살펴보면 윗쪽에 비와 눈을 막아줄 보개 같은 것이 두툼히 씌워져 있다. 머리와 몸통에는

각각 두광과 신광이 달려있어 그를 윤기나게 빛내주고 있으며, 머리는 민머리 스타일로 머리 정상

에는 무견정상이 두툼하게 솟아있다.

눈썹은 무지개처럼 살짝 구부러져 있고, 두 눈은 지그시 감고 있으며, 코는 약간 오똑하고, 다물어진

입술에는 그런데로 미소가 피어나 있다. 볼살은 풍만하며, 두 귀는 어깨까지 축 늘어져 중생들의 소

리만큼은 정말 잘 들을 것 같다.

 

불상의 체격은 매우 당당해 보이며, 오른쪽 어깨를 드러냈다. 손에는 보주 같은 것을 들고 있고 오른

손은 무릎에 대었으며, 연꽃 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명상에 임한다. 대좌 밑에는 법륜 2글자가

굵직하게 쓰여 있다.

 

10. 방학동사지 마애불 불상 복원비

 

11. 방학동사지 1단 석축 위에 들어앉은 체육시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