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가장 하늘과 맞닿은 절집, 청정한 약수로 유명한 금정산 미륵사


' 부산 금정산 나들이 <2> (미륵사)'
금정산 미륵사
* 부산 금정산 나들이 <1> (국청사, 금정산성) ☞ 러가


♠ 부산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 자리한 산중암자
맑고 신성한 약수로 명성이 자자한 ~ 금정산 미륵사(彌勒寺)

▲ 산신각에서 바라본 미륵사 경내


▲ 미륵사의 든든한 후광 미륵봉(좌선바위)

금정산 미륵봉(彌勒峰)의 그늘 아래 660m 고지에 둥지를 튼 미륵사(미륵암이라고도 함)는 부산
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절이다. 멋드러진 미륵봉을 병풍으로 삼고 둥실둥실 흘러가는 구름을
두르며 남쪽을 굽어보는 이곳은 부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서 나오는 맑은 약수로도 유명하다.

절의 창건시기는 범어사(梵魚寺)와 비슷한 678년이나 그 이전이라고 한다. 678년 의상대사(義湘
大師)가 범어사를 창건하자 비슷한 시기에 원효대사가 고당봉 아래에 미륵사를 세워 미륵삼부경
전(彌勒三部經典)의 하나인 미륵상생경종요(彌勒上生經宗要)를 썼다고 한다. 허나 그 책을 썼다
는 미륵사가 과연 이곳인지 검증도 되지 않았고, 원효가 세웠다는 구체적인 기록도 없는 터라
그걸 그대로 믿는 것은 곤란하다. 또한 정말로 황당한 전설이 하나 전해오고 있는데, 다음과 같
다. 이 역시 믿거나 말거나 전설로만 받아들이길 바란다.

원효가 미륵사에 머물던 어느 날이다. 왜군이 무려 5만 척(임진,정유란 때 끌고 온 왜선이 2천
척도 되질 않는데 어떻게 5만까지..? 1척에 50명씩 쳐도 무려 250만명??)의 배를 이끌고 부산
앞바다에 나타났다. 왜군은 앞바다에 진을 치면서 우선 첩자를 보냈는데, 원효는 사미승(沙彌僧
)에게 호리병 5개를 준비하게 하여 탑 앞에 나란히 세우고 가장 높은 바위에 신라 장군기를 꽂
았다. 그 깃발을 보고 첩자 2명이 미륵사까지 올라왔다. 대사는 호리병으로 도술을 부려 첩자의
목을 졸랐다. 첩자가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호리병 3개를 우두머리에게 전하라며 풀어주었다. 그
것을 받은 왜장은 뚜껑이 폭발한 나머지 칼로 호리병을 내리쳤는데, 그 순간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꼬꾸라진 것이다. 이를 본 왜군은 모두 혼비백산하여 죄다 목을 붙잡고 줄행랑을 쳤다고
한다.

창건된 이후 구체적인 내력은 전해오는 것이 없으며 지금의 절은 1960년대 이후에 새롭게 손질
한 것이다. 미륵도량(彌勒道場)과 나한도량(羅漢道場)으로 명성이 높은 절로 바위로 이루어진
미륵봉 자락 낭떠러지에 독성각이 아슬아슬하게 자리해 있어 더욱 장엄함을 선사한다. 이곳에
오르면 금정산 일대와 금성동이 두 눈에 바라보이며 날씨가 좋으면 부산시내도 눈 속에 달려온
다.

경내에는 법당인
염화전
(拈華殿)을 비롯하여 미륵전과 칠성각, 독성각 등 8~9동의 건물이 있으
며, 국청사보다는 다소 가람의 규모가 크다. 소장문화유산으로는 400년 정도 묵었다는 미륵보살
상과 300년 정도 되었다는 시왕탱화 2점, 호법선신(護法善神) 1점이 절의 오랜 내력을 대변하나
지정문화재는 아직 없는 실정이다.

미륵사란 이름은 절 뒤쪽 바위(미륵봉)가 승려가 좌선(坐禪)한 모습을 닮아 좌선바위라 불리며,
그 위쪽에 서 있는 2개의 바위는 도솔천(兜率天)의 주인인 미륵불처럼 생겼다 하여 유래된 것이
라 한다. 그래서 봉우리 이름도 미륵봉이 된 것이다.

미륵사의 명물은 뭐니뭐니해도 염화전 좌측에 자리한 샘물이다. 부산에서 가장 하늘에 맞닿은
샘물이라 그런지 하늘과 금정산 고당봉의 기운을 아낌없이 받아 물이 맑고 신성하기로 명성이
자자하여 부산의 대내외적 공식 행사 때 정화수(井華水, 정안수)로 많이 사용된다. 특히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 북한에서 가져온 물과 합친 물도 바로 이곳의 물이다.

부산시내와 가깝긴 하지만 버스에서 내려 1시간을 걸어 올라가야 되는 산중암자로 속세의 물과
는 확연히 틀린 그곳의 우물을 마시며 눈 아래 펼쳐진 천하를 내려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속
세의 짐을 과감히 내던지고 마음과 안구를 정화하며 잠시 안기고 싶은 그런 절집으로 부산의
소중한 명소이다.


※ 미륵사 찾아가기 (2011년 1월 기준)
* 구포시장(2,3호선 덕천역 5번 출구), 2호선 화명역(4번 출구)에서 금정구 마을버스 1번(8~10
분 간격)을 타고 금성동주민센터 하차
* 1호선 온천장역(3번 출구)에서 203번 좌석버스(10~20분 간격)를 타고 금성동주민센터(중리마
을) 하차
* 금성동주민센터에서 북쪽(부산청소년수련원, 미륵사 방면) 길로 20분 정도 가면 3거리가 나온
다. 여기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25분 가량 가면 미륵사입구에 이르며 왼쪽 산길로 20분 정
도 오르면 미륵사이다.

★ 미륵사 관람정보
* 절까지 차량 접근이 불가능하며 주차는 금성동주민센터에서 부산청소년수련원으로 가는 길가
나 미륵사로 오르는 길목에 있는 옛 교회 주변에 하면 된다.
* 미륵사에서 금정산의 정상인 고당봉까지 30분 정도 걸린다.
* 염화전 좌측에 자리한 미륵사 약수는 꼭 마셔보기 바라며 미륵봉 낭떠러지에 아슬아슬하게 걸
린 독성각도 반드시 둘러보기 바란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제법 일품이다.
* 미륵전에 400년 되었다는 미륵보살상이 있으며, 염화전 불단 오른쪽에 300년 되었다는 시왕탱
화 2점과 호법선신(護法善神) 1점이 있다. (보관장소는 변동 가능)
* 소재지 -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산 1-1 (☎ 051-508-4707)


▲ 싸리나무 담장 너머로 보이는 미륵사의 바깥 모습
절 아래로 조그만 밭이 펼쳐져 있다.

▲ 미륵사 독성전에서 바라본 천하


♠ 미륵사 염화전 주변


▲ 경내 좌측에 자리한 조그만 연못
절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구석에 놓여진 연못을 만나게 된다.
연못의 위치가 워낙 외진 곳이라 다들 그냥 지나치기 일쑤며 연못 주변으로
절을 지키는 견공(犬公)들이 느긋하게 오후 햇살을 즐긴다.


▲ 연등으로 주변을 치장한 미륵사의 법당, 염화전(拈華殿)

미륵봉 바로 밑에 자리를 잡은 염화전은 미륵사의 법당으로 불전(佛殿)의 이름치고는 매우 생소
하다. 한참 6.25전쟁 중인 1952년에 지어진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불단 오른쪽에는 300년 묵은 오래된 시왕탱 2점과 호법선신 1점이 유리 액자 안에 소중히 담겨
져 있어 절의 깊은 내력을 가늠케 한다.


▲ 염화전 불단에 모셔진 석가3존불
1985년에 조성된 금동불로 붉은 색채의 후불탱화가 어두운 건물 내부를 더욱
화사하게 해준다. 후불탱화는 1974년에 승려 석정이 그린 것이다.

◀ 염화전 문짝에 피어난 꽃창살
나무 문짝에도 인위적이긴 하지만 화사한
꽃들이 피어나 벚꽃과 서로 아름다움을
견준다.


▲ 염화전과 바위 봉우리인 미륵봉(좌선바위)
승려가 좌선을 한 모습과 같다고 하여 좌선바위라고도 한다.


▲ 염화전 앞뜰에 기와로 '卍' 마크가 새겨져 있다.


▲ 부산에서 꼭 마셔야 되는 부산의 대표 약수 ~ 미륵사 약수

하늘과 무척이나 가까운 곳의 샘물이라 그런지 더욱 경건한 마음이 드는 미륵사 약수터, 이곳의
약수는 인간은 감히 맛볼 수 없는 신선들만 마신다는 천상세계의 약수는 아닐까? 하늘의 청명한
기운과 금정산의 기운이 양념으로 첨가되어 속세의 약수와 달리 물의 맛이 담백하고 신묘한 것
같다. 물을 마심으로써 '나도 신선과 같은 레벨이다!!' 싶은 즐거운 착각이 나를 감싼다.

미륵사 약수는 부산의 대내외적 공식 행사 때 정화수로 많이 사용되며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 북한에서 가져온 물과 합친 물도 바로 이곳의 물이다.


▲ 미륵사 선방(禪房)


♠ 미륵사 오백전, 산신각 주변

▲ 오백전(五百殿) 내부를 가득 메운 5백나한과 석가3존불

오백전은 부처의 제자인 500명의 나한(羅漢)을 봉안한 건물이다. 하얀 피부의 제각각인 표정과
제스처를 지닌 조그만 오백나한 사이로 흑백사진 속의 칼라사진처럼 석가불을 중심으로 미륵보
살과 제화갈라보살이 3불을 이룬 석가3존불이 자리해 있다. 석가와 협시불(미륵보살, 제화갈라
보살) 사이로 합장인을 선보인 금강역사(金剛力士)가 서 있다.
이 건물은 염화전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석고로 된 500나한은 1970년대에 조성되었다.


▲ 경내 동쪽 산자락에 자리한 산신각(山神閣)
산신과 호랑이가 그려진 산신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산신의 귀여움을 받는
호랑이는 무서운 표정 대신 재미난 표현으로 중생들에게 즐거운 웃음을 선사한다.


▲ 한참 순백의 아름다움에 젖어 있는 벚꽃나무


▲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벚꽃


▲ 독성각 올라가는 길목에 자리한 미륵전(彌勒殿)

미륵전은 미륵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1950년대 이전부터 있었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조
촐한 맞배지붕 건물로 원래는 독성각이었다. 허나 위쪽 낭떠러지에 새로 독성각을 지으면서 염
화전에 있던 미륵불을 가져와 미륵전으로 용도를 바꾸었다. 불단에는 미륵사에서 가장 연대(年
代)가 깊은 보물인 미륵보살상이 있는데, 400년 정도 되었다고 하며 뒤에는 1986년에 그려진
미륵탱화가 있다.

◀ 미륵전 천정에 매화로 보이는 하얀 꽃이
한가득 절정을 이루고 있다.


▲ 독성각으로 오르는 계단길 중간에 자리한 조그만 샘
약수 대부분은 염화전 좌측의 정화수로 내려간다. 옛날에는 이 바위 구멍에서
쌀이 졸졸졸 나와 미륵사 승려를 먹여살렸다고 한다. 아마도 쌀과 관련된 보관
장소가 있었던 모양이다.


▲ 나뭇가지에 걸린 조그만 연꽃 장식


♠ 부산 제일의 조망지, 미륵사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미륵사 독성각(獨聖閣)

경내에서 미륵전을 거쳐 경사가 급한 계단을 2분 가량 오르면 미륵봉 낭떠러지에 아슬아슬하게
둥지를 닦은 독성각이 나온다. 어떻게 저런 절벽에 건물을 세울 생각을 했을까? 낭떠러지에 터
를 닦아 건물을 짓는 것도 그리 쉽지가 않을텐데 말이다. 절묘하게 들어앉은 독성각에 그저 놀
라울 따름이다. 미륵사에 왔다면 꼭 들려야 직성이 풀리는 미륵사의 백미로 하늘에 뜬 구름을
맨손에 잡을 수 있을 만큼 높다란 곳에 자리해 있다.

독성각은 부처의 제자로 천태산(天台山)에서 몸을 일으킨 나반존자<那畔尊者=독성(獨聖)>를 모
신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불전으로 1970년대에 지은 것이다. 원래 이곳에는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그렸다는 마애미륵불(磨崖彌勒佛)이 있었다고 한다. 허나 독성각을 세우면
서 그 흔적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과연 손톱으로 긁었는지는 모르지만 불상과 관련된
기록이 없으니 확인할 길은 없다.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 전설일 것이다.


▲ 화강암에 새겨진 독성상(나반존자상)

이곳의 독성상은 그림이 아닌 화강암에 새겨진 마애(磨崖)독성상이다. 돋음새김으로 조성된 독
성은 부드러운 인상으로 앉은 자세가 아줌마 자세처럼 편안하다. 그의 왼쪽에는 귀여운 동자가
차를 다리고 있으며 그가 몸을 일으킨 천태산과 그곳의 소나무가 살짝 새겨져 있다. 독성상 앞
불단에는 '나반존자해동근본도량(那般尊者海東根本道場)'이라 쓰여 이곳이 나반도량임을 강조한
다.

▲ 독성각과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계단길이다.

▲ 독성각 못미쳐 바위 아래로 중생들이
정성스럽게 가져다 놓은 동자상과 불상 등이
빼곡히 자리를 메운다.


▲ 독성각에서 바라본 천하
금성동을 포근히 감싼 금정산의 남쪽 줄기가 희미하게 바라보인다.


독성각은 조망(眺望)이 가히 일품이다. 비록 금정산 산줄기에 막혀 산 너머 세상까지는 보이지
않지만(잘하면 부산시내까지도 희미하게 보임) 해발 300m에 터를 닦은 금성동 일대가 두 눈에
바라보인다.


▲ 우리가 걸어온 길이 까마득하게 바라보인다.
우리는 금성동에서 저 길을 통해 하늘 아래 이곳까지 올라온 것이다.

▲ 금정산의 동쪽 산줄기가 비슷한 시선에서 바라보인다.


▲ 독성각 난간에 나타난 석룡자(石龍子, 도마뱀)
어디선가 나타나 독성각 난간에 걸터앉은 도마뱀, 그는 사람들이
별로 무섭지 않은지 이리저리 주변을 맴돌다가 좌측 바위로 사라졌다.


♠ 금정산 마무리


▲ 미륵사를 뒤로하며 다시 속세로 나오다.

부산에서 하늘 아래 첫 절인 미륵사를 둘러보고 다음 인연을 기약하며 속세로 나온다. 산내음이
가득 깃들여진 운치어린 오솔길은 동화 속의 세상같다. 정말로 우리집으로 고이 훔쳐 오고 싶은
풍경으로 그냥 지나치기가 너무 아쉽다.

미륵사에서 금성동 중리마을까지 내려오는데 1시간 정도 걸렸다. 점심도 못먹은 터라 마땅한 주
막을 물색하다가 죽전마을 가는 길목에 자리한 어느 커다란 주막에 들어가 자리를 폈다.


▲ 본격적인 식사에 앞서서 ~ 동동주와 도토리묵

▲ 닭백숙과 맛깔스런 반찬들

그 주막은 금성동의 명물인 동동주와 염소고기를 비롯하여 여느 관광지의 주막처럼 백숙과 도토
리묵, 파전 등을 내놓는다. 무척 시장기가 깃들여진 우리는 동동주와 도토리묵, 닭백숙을 주문
했다. 가장 먼저 채소와 어우러진 도토리묵과 동동주가 차려진다. 양념이 잘 버무러진 도토리묵
이 입안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목구멍이 즐겁다고 쾌재를 부른다. 거기에 시원한 동동주 1잔을
걸치니 그야말로 황홀지경이다.

10분 정도 지나자 본메뉴인 닭백숙과 10여 가지의 반찬이 나타난다. 더덕 등이 어우러진 닭백숙
은 고기가 쫄깃쫄깃 무르익어 먹기가 좋다. 백숙 국물로 만든 밥(별도 주문)도 맛을 더욱 돋게
한다. 염소고기도 먹고 싶었지만 가격이 그다지 착하지가 못하여 먹진 못했다. 그렇게 1시간 가
량을 제왕(帝王)처럼 먹으니 행복한 포근함에 졸음이 배깔고 한숨 주무시라며 희롱을 한다. 주
막에는 등산을 마친 등산객들이 계속해서 들어와 자리를 채워 빈자리가 좀처럼 생기질 않는다.
시원한 산바람과 커피를 후식으로 즐기며 주막을 나선다.

우리는 금성동주민센터로 나와 금정구 마을버스 1번을 타고 구포시장으로 나왔다. 이렇게 하여
금정산 봄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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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일 - 2011년 1월 17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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