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이 빚은 어이없는 작품, 화천 평화의댐 (세계평화의종공원)

' 한겨울의 강원도 화천 나들이 <2>'
(평화의댐 ~ 세계평화의종공원 ~ 춘천의 먹거리들)
평화의댐 세계평화의종공원
▲ 세계평화의종공원에 걸린 염원의 종
한겨울의 강원도 화천 나들이 <1> (산천어축제, 딴산) ☞ 러가



이름도 재밌는 딴산에 잠시 머물던 우리는 평화의댐을 향해 다시 길을 재촉했다. 구슬픈 전설이
나그네의 심금을 울리는 처녀고개를 넘어 풍산리에 이르니 길은 2갈래로 갈라진다. 여기서 평화
의댐으로 가려면 오른쪽 460번 지방도(해산령길)를 타야 된다. 물론 직진을 해도 댐으로 통하긴
하지만 민통선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풍산리검문소에서 강제 회차를 당한다.

평화의댐으로 가는 해산령은 강원도 산길의 진수로 그야말로 굽이굽이 고갯길이다. 뱀의 허리에
올라탄 듯 정신없이 10분을 돌면 해발 700m 고지에 자리한 해산터널이 나타난다. 터널 길이는 2
km로 이제 험한 길은 다 올랐구나 싶었으나 그게 아니었다. 터널을 지나면 99굽이길이라 불리는
20리에 달하는 험령(險嶺)이 나타난다. 터널 이전에 지났던 길은 정말 명함도 내밀 수 없는, 한
계령(寒溪嶺)과 진부령(陳富嶺)도 애교로 보일 정도로 어지러움의 위엄이 강하게 서렸다.

평화의댐 방향을 기준으로 왼쪽은 산 오른쪽은 가파른 낭떠러지이다. 자칫 핸들을 잘못 놀릴 경
우 까마득한 저 아래로 정신 없이 굴러 떨어진다. 여기서 떨어지면 정말 찾기도 힘들 정도이다.
게다가 수레만 가끔 지나갈 뿐, 인적이 없으며,풍산리부터 댐을 지나 양구 오미리에 이르기까지
민가(民家)는 단 1채도 없다. 아무래도 휴전선과 가까운 변방이다 보니 그런 것이다. 여기서 도
로 북쪽 산을 넘으면 바로 민통선이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과 비슷한 위치를 정신없이 지나면 중간에 해산전망대가 있다. 전망대라하여
무슨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조망이 적당한 곳에 나무로 대(臺)를 쌓고 그것을 전망대로 삼은
것이다.

7리 정도를 가니 북한강의 물굽이가 어렴풋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화천 제일의 벽지인 비수구
미 입구를 지나 터널 2개를 지나면 좌우가 무척이나 허전한 직선길을 지나게 된다. 바로 평화의
댐이다. 댐을 지나 왼쪽으로 가면 비목공원과 평화의댐 물문화관이 나그네를 맞는다.


♠ 남북분단이 빚어낸 어이없는 작품, 지금은 평화를
강조한 안보관광지로 소나기를 피한 평화의댐(Peace Dam)


▲ 눈에 덮힌 평화의댐 북쪽

▲ 평화의댐 남쪽

파로호 위쪽인 북한강 상류에 또아리를 튼 평화의댐은 워낙 유명하여 모르는 이들이 없을 것이
다. 북한이 금강산댐을 만들고 이를 폭파시켜 수도권을 수공(水攻)으로 밀어버린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나라 전체를 겁에 질리게 만들어 코흘리개 아이들의 돈까지 뜯어서 만든 댐이 바로 평화
의댐이다.

1986년 전두환 정권은 북한이 금강산댐(임남댐)을 만들고 있음을 알아냈다. 그것을 기회로 삼아
방송과 언론을 시켜 북한의 수공을 대대적으로 떠들었다. 북한이 댐을 터뜨리면 서울은 모두 잠
기고 63빌딩의 절반이 잠긴다는 모의 결과를 요란하게 들이밀며 국가의 불안을 조장했던 것이다.
거기에 제대로 낚인 백성들은 죄다 겁에 휩싸였다. 금강산댐이 북한강 상류에 있어 그것이 터지
면 물줄기를 따라 화천과 춘천, 가평, 남양주, 하남, 서울을 쓸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간
에서는 댐이 터지기 전에 서둘러 높은 곳으로 피난을 가자는 말도 많이 나왔다.

전두환 정권은 북한의 수공을 대비하자며 댐 건설을 촉구했고, 대대적인 성금운동을 벌였다. 언
론에 놀아난 어리석은 백성들은 앞다투어 성금에 동참했고, 초등학교를 비롯한 많은 학교에서
성금을 거뒀다. 그때 아마 성금을 안낸 학교는 없었을 것이다. 나라의 중심인 수도권이 물바다
가 된다는데,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도
성금을 걷었는데 300원 정도 뜯은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렇게 전국적으로 뜯은 성금액이 639억원(지금으로 따지면 거의 6,000억 정도?), 그것을 포함
하여 1,666억원의 돈을 들여 군사분계선 남쪽 9km에 대응댐을 지어 1989년 1월, 80m 높이로 1단
계를 마무리 지었다. 허나 얼마 뒤 북한에서 금강산댐 건설을 중도 포기했고, 금강산댐의 위협
이 크게 부풀려졌음이 온 천하에 밝혀지면서 댐 건설은 흐지부지 중단되었다. 댐이라고는 하지
만 수력 전기를 내는 기능과 홍수를 조절하는 기능이 없으며, 그저 물만 막아둔 밋밋한 둑으로
북한에서 내려온 북한강 강물 대부분은 평화의댐에서 더 이상 남쪽으로 흘러가지 못하게 되었다.
즉 북한강도 거의 남북으로 토막이 난 것이다. (댐 밑에 조그만 수문이 있을 뿐이다) 그로 인해
한강수는 전체 수량의 약 12%를 쓰지 못하게 되면서 댐의 무용론(無用論)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그 이후 댐의 이름은 평화의댐으로 바뀌었고 1995년과 1996년 집중호우로 북한에서 흘러온 물을
막음으로서 홍수 조절 기능도 어느 정도는 있음이 밝혀져 존재가치가 조금씩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후 금강산댐이 부실하여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2002년에 2단계 공사를 벌여 2005년 10월
완공되었는데, 이때 높이를 125m로 올려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김영삼 시절 청문회에서 평화의댐을 '정권안보용','국면전환용'으로 만든 사기극으로 결론을 내
렸다. 댐 건설에 모인 성금 대부분은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그 시절 권력자의 호주머니로 고
스란히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전두환 정권의 최대 쌩쇼였던 평화의댐, 허나 나름대로 홍수조절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북한의 수공 시도도 무시할 수가 없어, 2009년 여름에 벌어진 임진강(臨津江) 참사
처럼 북한이 댐에서 물을 방류할 경우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을 수 있으므로 그 대비용의 역할
도 하고 있다.

어찌보면 필요해 보이면서도 쓰잘데기가 없는 필요악의 존재, 그리고 남북분단이 빚은 어이없는
작품이 바로 평화의댐이다. 댐에 얽힌 자세한 역사와 개인의견은 이정도로 마무리를 짓는다. 내
가 숨쉬는 동안 진행된 극히 예민한 현대사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통일
의 그날이 오면 가장 먼저 평화의댐을 말끔히 부셔버려 댐으로 망가진 이곳의 풍경을 살리고 분
단에 막힌 북한강 물길을 트이게 하고 싶다.


▲ 평화의댐 관련 언론보도


댐의 높이는 125m, 저수용량은 26.3억톤, 길이는 601m로 수력의 기능이 없는 거대한 둑이다. 이
댐이 생기기 이전에 이곳에는 인위적인 시설(군사시설 제외)이나 공간이 없었으며, 민통선 지역
으로 사람의 발길이 없는 그야말로 청정의 자연지대였다. 산림은 원시림(原始林)을 이루며 수달
을 비롯한 온갖 희귀동물들이 마음 놓고 살았다. 그런 조용하던 곳에 요란법석을 떨며 댐을 만
들고 도로를 파면서 파로호 상류의 적지않은 옥의 티를 내었다. 다행히 댐과 도로를 만드는 것
으로 더 이상의 개발 난도질이 없음이 다행이다.

천덕꾸러기 같은 평화의댐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도 국가적인 낭비라 김영삼 정권 이후 안보관
광지로 개방했다. 허나 볼거리가 없어 관광객의 수가 줄자 비목공원과 물문화관 등을 만들었고,
2000년 이후에는 평화를 염원하는 공간으로 내세워 세계평화의종 공원과 평화 관련 다양한 볼거
리를 만들어 평화테마파크로 새로운 도약을 꿈꾼다. 하지만 세상과 워낙 외진 곳이고 휴일 외에
는 들어오는 사람도 별로 없어 편의시설도 턱없이 부족하다.


▲ 평화의댐 위치

▲ 평화의댐 북쪽의 비목공원
고산지대의 차디찬 겨울 바람이 댐과 공원을 감싸돌 뿐 썰렁하기 그지없다.


▲ 평화의댐에서 발이 묶인 얼어붙은 북한강 상류

평화의댐에서 더 이상 북쪽으로 올라갈 수 없다. 내 마음은 미지의 땅이나 다름없는 민통선 구
역으로 계속 들어가고 싶은데, 현실이 받쳐주질 못하기 때문이다. 손오공처럼 둔갑술이 있다면
한 마리의 수달로 변신하여 들어가보고 싶다. 민통선과 그 이북은 우리가 언젠가는 누려야 될
잃어버린 땅이기 때문이다.


▲ 평화의댐물문화관

물문화관은 평화의댐을 관리하는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세운 2층 규모의 문화관이다. 내부에는 '
자연속의 평화의댐','물은 귀중한 자원','평화의댐과 임남댐','주변 둘러보기','영상실' 등을
갖추고 있으며, 주로 평화의댐과 임남댐, 댐 주변의 자연, 물의 대한 이해 등이 주류를 이룬다.
전시실이 모두 조그만하여 관람시간은 10분이면 충분하며, 특히 포토존의 인기가 높다. 포토존
에서는 댐과 그 주변 풍경을 배경으로 직접 기념사진을 찍어 이메일로 전송할 수 있다.


▲ 물문화관 앞에 있는 '민족의 염원을 담은 평화의 물그릇'

▲ 물문화관 뜨락에 있는 귀여운 수달상
수달은 파로호 이북에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 겨울제국에 모든 것을 접고 숨을 죽인 좌안광장 폭포

▲ 아직 미완성인 세계평화의종

세계평화의종은 지구촌 30여 나라의 분쟁지역과 6.25전쟁 국군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면서 나온
탄피를 녹여 만든 종이다. 2009년 종이 완성되자 6.25시절에 활약한 백선엽 장군과 옛 소련의
전 대통령 고르바초프 등 세계 각국의 귀빈들을 초청하여 세계평화의종공원 준공식을 개최했다.

종의 높이는 5m, 폭 3m로 탄피 1만관(37.5톤)이 쓰였으며, 종의 머리에는 4마리의 비둘기가 새
겨져 있는데, 그중에서 북쪽을 향한 비둘기만 한쪽 날개가 절반만 있다. 나머지 절반은 통일이
되는 그날에 붙이려고 따로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완전한 날개를 이룰 그날을 꿈꾸는 반쪽 날
개의 무게는 탄피 1관(3.7kg)으로 현재 평화의종 무게는 정확히 9,999관이다. 즉 0.01%가 부족
한 것이다. 비록 간의 기별도 안되는 수치이긴 하지만 평화의종은 엄연한 미완성의 종이다. 그
는 통일이 되지 못한 채, 주변 나라에 발리고 사는 불완전한 한반도를 진하게 상징하여 분단의
아픔을 더욱 배가시킨다.

동그란 테두리 안에 간직된 평화의종, 평화의 메세지를 담은 종소리가 울리면 북한강을 따라 우
리가 갈 수 없는 북한 땅에도 울려 퍼질 것이다. 종을 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적막에 사로
잠긴 이곳의 고요함을 깨뜨리고 싶지가 않았다.

▲ 종에 새겨진 비둘기 문양
비천상(飛天像) 자리에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힘차게 날개짓을 하고 있다.

▲ 통일이 되는 그날 종에 부착될 용뉴의 비둘
기 날개 문양(3.7kg) - 내 생전에 저 문양이 종
과 하나가 될 그날이 과연 올 것인가?


▲ 아픈 역사를 가리고 싶은 이 땅의 한이 하늘을 자극시킨 것일까?
눈으로 그 현장을 하얗게 가렸다. 저수지의 제방처럼 댐의 경사는
크게 급하지는 않다.

▲ 세계평화의 종 옆에 있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흑백사진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노벨상을 탄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있다.

▲ 세계평화의종 공원 개막식에 초청된 여러 나라의 귀빈들

▲ 평화의댐 남쪽에 자리한 세계평화의 종공원

평화의댐에서 비목공원을 거쳐 댐의 동쪽 옆구리를 지나면 세계평화의종공원이 나온다. 이곳은
지구의 평화를 염원하며 만든 다양한 종들이 걸린 공원으로 2009년에 문을 열었다. 북한강이 훤
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는 염원의 종이 터를 닦았으며, '마음의 종'과 '세계 평화 및 남북평화
기원의 종' 등이 있다. 앞서 언급했던 '세계평화의 종'도 몸은 비록 따로 있지만 엄연한 이곳의
식구이다. 특별한 종이다 보니 따로 댐 위쪽에 갖다 둔 것이다. 또한 댐을 제외한 주변 풍경이
아름다워 두 눈을 제대로 호강시킨다.


▲ 거대한 둑, 평화의댐의 위엄

▲ 동그란 테두리 안에 걸린 염원의 종

▲ 허공에 매달려 결코 칠 수 없는 염원의 종(The Desire Bell)

평화의댐에 있는 세계평화의 종과 똑같은 동그란 테두리 안에 걸린 염원의 종은 남북분단의 서
글픈 현실을 담은 종으로 종이라고는 하지만 종을 치는 것(명칭을 모르겠음)이 없어 지금은 칠
수가 없다. 저 종이 침묵을 깨고 기지개를 켜는 날이 과연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날이 도래한다
면 지구의 평화가 오고, 이 땅의 통일이 올 것이다. 허나 아무리 평화와 통일을 애원하더라도
권력층이 그걸 원하지 않으면 그저 뜬 구름일 뿐이다.

염원의 종은 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 세계평화의 종과 비슷한 모습이다. 종의 겉면이 밝은 색이
라 종 안에 마치 등이 켜진 듯 하다. 허공에 높이 달려 종소리를 낼 그날을 기다리는 종의 마음
은 통일을 바라는 우리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 염원의 종 전망대에서 바라본 얼어붙은 북한강

평화의댐이 없었다면 이 깊은 벽지까지 인간들이 거의 들어오진 않았을 것이다. 자연의 공간에
옥의 티처럼 들어앉은 것이 바로 평화의댐과 세계평화의종 공원이다. 인간이 만든 것이 아무리
아름답고 대단하다 한들 자연이 빚은 대작품만은 못하며, 자연 앞에서는 일개 장난감이자 모래
일 뿐이다.

겨울의 제국이 눈치챌라 조용히 봄을 잉태한 북한강은 겨울의 시련을 견디며 우리가 통일을 염
원하는 것처럼 봄의 해방군을 기다린다. 소쩍새가 우는 그날 거추장스러운 얼음과 눈을 벗어던
지며 기지개를 켤 것이다. 이 땅에 통일의 메아리가 울리면 저 얼어붙은 강에서 산천어 낚시를
즐기며 얼음썰매를 타보고 싶다.

※ 평화의댐 찾아가기 (2011년 2월 기준)
* 동서울터미널에서 화천행 직행버스가 거의 1시간 간격으로 떠난다.
* 상봉터미널에서 화천행 직행버스가 거의 1~2시간 간격으로 떠난다.
* 춘천터미널(경춘선 남춘천역 1번 출구)에서 화천행 직행버스가 6시 30분부터 20~30분 간격으
로 다닌다.
* 화천군내버스터미널에서 평화의댐까지 군내버스가 1일 3회(7시 10분, 12시, 18시 20분) 있다.
하지만 버스는 해산령으로 가지 않고 민통선 구역인 당거리를 지나 북한강 다리(우리나라 한
강의 최북단 다리)를 건너 평화의댐 이북 강변도로를 걸치므로 군인과 지역 주민을 제외한 일
반인은 풍산리검문소에서 무조건 내려야 된다. 즉 버스 등의 육상대중교통으로는 접근이 불가
능하다. <문의 화천군내버스터미널 ☎ 033-442-2092>
* 파로호 선착장(구만리)에서 평화의댐(세계평화의종공원)까지 물빛누리호가 운항한다. 2010년
4월 3일 신설된 물빛누리호는 방천리(수달연구센터)와 동촌리, 법성치, 비수구미를 경유하여
세계평화의 종공원까지 운항하며 약 80분(24km) 정도 걸린다. 주말과 휴일에 1일 2회 운항하
며, 평일과 겨울에는 30명 이상 단체관람 예약이 있을 때만 배를 띄운다. 예약은 1일 전까지
하면 된다. 수송인원은 70명, 승용차 6대를 실을 수 있으며, 운임은 성인 8천원, 어린이 5천
원, 승용차는 3~4만원, 승합차는 5~12만원이다. 문의 ☎ 033-440-2731~3
* 승용차로 가는 경우 (주차장 있음, 주차비 공짜)
① 서울춘천고속도로 → 춘천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 춘천방면 → 춘천나들목을 나와서 직진 →
춘천시내(남춘천역, 호반로) → 소양2교 → 화천방면 5번 국도 → 화천읍내로 들어서지 말고
강변도로로 직진 → 화천교를 건너 직진 → 풍산리 → 해산터널 → 평화의댐
② 서울춘천고속도로 → 동홍천나들목에서 인제 방면 44번 국도 → 신남에서 양구 방면 46번 국
도 → 양구읍 → 방산면 → 오미리 → 평화의댐
* 화천에서 들어갈 때 풍산리(평화의댐입구)에서 무조건 오른쪽 해산령(해산터널)길로 간다. 직
진할 경우 풍산리검문소에서 강제 회차를 당한다.

★ 평화의댐(물문화관, 세계평화의 종공원) 관람정보
* 입장료와 주차비는 없음
* 물문화관 관람시간은 10시부터 17시까지(동절기는 16시까지)이며, 매주 월요일과 설,추석 연
휴에 쉰다. (평화의댐과 세계평화의종공원, 비목공원은 365일 언제나 관람 가능)
* 세계평화의종공원 강변에는 민통선 턱밑에서 하룻밤 야영을 즐길 수 있는 평화의댐오토캠핑장
이 있다. 이용료는 없음, 허나 식료품이나 야영에 필요한 용품을 파는 가게가 적당치 못하므
로 화천읍이나 방산면(오미리, 현리), 양구읍에서 미리 준비하기 바란다.
* 평화의댐 소재지 -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산321 (문의 ☎ 033-480-1532)
* 세계평화의종공원 소재지 -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 양구군 방산면 천미리
(☎ 033-440-2542)


세계평화의종공원을 둘러보니 땅꺼미가 천하를 드리우기 시작한다. 햇님도 슬슬 휘장을 치며 그
만의 공간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우리의 여행도 이제 결말로 들어선다.

어디를 거쳐 서울로 갈까 궁리하다가 양구(楊口)를 거쳐 춘천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평화의댐
에서 양구로 가는 길은 화천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구불구불하다. 천미계곡과 오천터널을 지나
오미리에 이르니 드디어 민가들이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이제 긴장이 감도는 북쪽 전방을 조금
은 벗어난 셈이다.

방산면과 양구읍을 지나 춘천으로 가는 46번 국도로 들어서 직선화가 된 소양호(昭陽湖) 상류길
을 거쳐 마의 구간으로 통하는 배후령에서 막바지로 강원도 산길의 험준함을 체험하며,닭갈비집
이 무데기로 몰려있는 소양댐 아래 윗샘밭으로 넘어갔다. 주말이라 주막들마다 사람과 수레들로
만원이다. 간신히 약간의 여유가 있는 숯불닭갈비집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저녁을 먹었다.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저녁은 정말 푸짐하게 먹었다. 춘천에서 꼭 먹어야 된다고 호들갑을 떠는
막국수와 숯불맥반석으로 익힌 닭갈비를 비롯하여 빙어회와 빙어튀김,거기에 동동주까지 겯드렸
다. 또한 아이스크림과 커피로 후식을 정리하면서 정말 배가 터질 뻔했다.


▲ 커다란 접시에 수줍은 듯 나온 막국수
김과 계란, 여러 채소가 막 버무려져 나온 국수, 맛은 그런데로

▲ 맥반석이라 불리는 검은 돌 위에 구워먹은 닭갈비
닭갈비는 허벌나게 맵기만 할 뿐, 맛은 별로다. 고기도 몇 점 되지도 않고,
매워서 몇개만 집어먹고 말았지, 떡도 너무 익어버려서 그다지..

▲ 빙어튀김
빙어를 볶아서 만든 빙어튀김, 간장에 찍어 먹으니 제법 맛이 난다.
닭갈비보다 맛있었던..

▲ 빙어회

처음으로 먹어본 빙어회, 빙어회라고 해서 토고미마을에서 먹은 산천어회와 비슷한 것을 생각했
는데, 살아서 꿈틀거리는 빙어를 즉석에서 초장을 찍어 먹는 것이 빙어회라는 것이다.죽인 것도
아니고 살아있는 것을 잡아먹는 것이 다소 잔인하긴 하지만 그것이 빙어회의 어쩔 수 없는 매력
이라고 한다. 빙어를 젓가락으로 집어 빨간 초장에 찍어 먹는데 거의 초장 맛이다. 빙어들은 어
떻게든 살려고 젓가락에 집히는 순간에도 열심히 발버둥을 친다. 그래서 밥상에 놓친 빙어도 몇
마리 된다.

이렇게 저녁을 먹고 원점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난다. 저녁을 마무리하고 나오니 시간
은 21시, 가는 길은 거의 막히지 않아 서울에는 23시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오니 24시,이렇게하
여 다양한 것을 체험하고 느끼고 온 한겨울의 화천 나들이는 대단원의 마침표를 찍는다.

정말 번개처럼 날아가 재미나게 보냈던 그날 하루, 그곳이 그리워지고 같이한 이들이 보고 싶은
마음에 비록 보잘 것은 없지만 이렇게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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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촬영 일시 - 2010년 1월 30일
*작성 시작일 - 2010년 2월 9일
*작성 완료일 - 2010년 2월 11일
*숙성기간 ~ 2010년 2월 11일 ~ 2011년 2월 8일
*공개일 - 2011년 2월 8일부터
* 본글을 1편과 2편으로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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