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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부암동(付岩洞) 역사 기행 ~ 2005년 9월 16일'
'상편 ― 초가을에 찾아간 부암동 백석동천 별서 유적지(백사골)'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9월 16일, 남들은 '시골이다, 고향이다, 여행이다'해서 지방과 국외로 한참
빠져나가고 있을 그 시간, 초가을에 잠긴 백사골의 모습이 보고 싶어 또다시 북악산 백사골(백석동천)에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저번과 달리 하림각 코스를 이용하지 않고 세검정 코스를 이용했는데 5월과 8월, 그 코스로
2번이나 내려 왔던 탓에 길을 찾는 데는 별로 어려움은 없었다.
세검정초교에서 세검정, 상명대 방면으로 가다보면 '28 홍지천길'이라는 골목길이 나온다.
그 골목길로 쭉 들어가서 '혜문사(慧門寺)'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면 그 절 입구에 이르는데
거기서 '현통사(玄通寺)'를 알리는 문구를 따라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백사골의 입구인 현통사가 나온다.
* 원본을 보고자 할 경우(따로 익스플로어 창으로 보고자 할 경우) 여기를 클릭.
* 2005년 5월 14일에 갔던 '백석동천 별서유적지와 백사골의 봄'을 보고자 한다면 여기를 클릭,
2005년 8월 20일에 갔던 '백석동천(백사골)의 여름'을 보고자 한다면 여기를 클릭하기 바라며
그 2개의 글과 내용이 다소 비슷할 수 있습니다.
* 사진을 올린 웹 사이트의 점검,기타 사유로 인해 아주 간혹가다 사진이 안뜰 수 있습니다.
♠ 초가을에 잠긴 백사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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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시원스런 ~ 현통사 옆 백사폭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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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바라본 백사폭포와 바위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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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위에서 바라본 담(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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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통사 문짝에 새겨진 금강역사(金剛力士)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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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골로 들어서는 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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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건너편에서 바라본 백석동천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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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옆으로 흐르는 백사골의 옥계수(玉溪水) |
♠ 서울 도심 속의 무릉도원(武陵桃源) ~ 북악산 백석동천 별서 유적지
서울도성의 서북문에 해당되는 자하문(紫霞門)을 넘어서면 기가 막힌 수려한 경치가 눈 앞에 펼쳐진다.
자하문 너머로 부암동, 홍지동, 신영동 지역은 북악산과 인왕산, 북한산 자락에 안겨 있는 동네로
지금은 비록 도시화가 많이 되었지만 그래도 산림(山林)등의 녹지(綠地) 비율이 서울 지역에서는 매우
높은 편으로 인왕산, 북악산 등지에서 흘러내려오는 백사골 등의 깨끗한 계곡도 아직까지 볼 수가 있다.
예로부터 서울 부근 경승지로 이름이 높았던 이들 지역은 홍지천(弘智川)―지금은 물이 거의 폐수 급으로
전락되었으나 예전에는 정말 깨끗하여 물놀이 장소로 이름이 높았다―을 중심으로 옛 사람들의 풍류(風流)
유적이 하나 둘, 남아 있으니, 백사골에 숨어 있는 이 백석동천 별서 유적 역시 그 중에 하나라 할 수가
있다.
이처럼 자하문 너머 북악산, 인왕산 자락의 부암동, 홍지동 지역은 고위직을 지낸 양반사대부와 조선황족
들의 별서(別墅, 별장)및 피서(避暑), 유흥을 즐기는 장소 등으로 매우 인기가 높았다.
세종(世宗)의 3자(子)인 안평대군(安平大君)의 별장, 무계정사(武溪精舍)―지금은 '武溪洞'이라 쓰인
각자만 남아 있다―가 부암동에 있었고, 안동김씨의 별장이었다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중간에
가로챈 석파정(石坡亭), 휴식과 유흥의 장소로 만들어진 세검정(洗劍亭), 연산군이 사냥과 여가를 즐기기
위해 만들었다는 탕춘대(蕩春臺), 그리고 바로 이 곳 백사골 유적까지.
이 백석동천 유적은 18세기에 조성되었던 어느 양반사대부의 별서(別墅)로 누구의 별장인지, 별서의
이름이 도대체 무엇인지는 현재로써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의 상태이다.
다만 백석동천을 포함한 이쪽 계곡 일대를 '백사골'이라 부르는데 그것은 16세기의 활약했던 이항복
(李恒福)의 별장이 이 곳에 있었다고 하여 그의 호인 백사(白沙)를 따서 백사골이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예전 이항복의 별서가 이 곳에 있었다가 18세기 이후에 그의 후손 혹은 다른 사대부가 이 곳에
들어와 새로운 별서를 세운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유적은 백사골 자락에 산천이 수려한 곳에 자리해 있는데, 현재는 사랑채, 정자 등의 건물터와 연못,
각자(刻字) 2개만이 남아 있을 뿐이며, 북악산 깊숙한 곳에 자리해 있어 정말 신선의 거처가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이 곳을 보는 순간 입이 딱 벌어져서는 좀처럼 다물어 지지가 않았다. 서울 도심에 이런
무릉도원(武陵桃源)같은 곳이 있었다니, 나는 그만 그 곳에흠뻑 빠져들고 말았지. 그래서 그 곳을 또
찾게 되었던 것이다. 횟수로는 벌써 3번 째..
이 곳은 그동안 비지정문화재의 서러움을 간직하며 그렇게 숨어 있었으나 2005년에 이르러 사적 462호로
특진되어 그 존재가 약간이나마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인지도가 많이 떨어지며 관계당국의
직무유기와 무관심은 지금도 어련하여 그럴싸한안내문이나 이정표도 없는 실정이다.
※ 백석동천 별서 유적지 찾아가기
*부암동 하림각 정류장 → 신도슈퍼 → '44번 백석동길'로 쭈욱 올라간다 → 백사골(백석동천)
*세검정초교 → '44번 홍지천길'로 쭈욱 올라간다 → 혜문사 입구 → 현통사 → 백사골(백석동천)
♠ 세검정초교(세검정) 교통편
* 경복궁역(3호선)에서 서울시내버스 0212번(이북5도청∼옥수동), 1020번(정릉,청수장∼종로1가),
1711번(국민대학교∼합정동), 7022번(구산동∼서울역)을 이용, 세검정초교(신영상가) 하차
* 신촌(2호선)역에서 서울시내버스 170번(우이동∼서강대), 110번(정릉,청수장∼이태원) 이용,
세검정초교(신영상가)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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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세월무상이로다~~ 돌기둥과 돌계단만 남아버린 정자(亭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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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에 비해 연못의 물이 제법 늘어나 그새 하나의 거대한 연못을 이루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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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개의 돌기둥 사이로 바라본 연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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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덕의 토사가 쓸려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랑방이 있던 언덕 아래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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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춧돌만 남은 사랑채의 서쪽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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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방에서 바라본 연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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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방에서 바라본 연못의 서남쪽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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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못 북쪽에서 바라본 연못의 서남쪽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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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이서 바라본 연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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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고 있는 월암(月巖) 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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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암(月巖)에서 바라본 별서유적 |
▲ 이끼의 보금자리가 된 백사골 계곡의 어느 바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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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사골을 내려가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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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이서 바라본 백사골 계곡물 | ▲ 백사골과 현통사 방면 등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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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통사로 내려가는 소나무길 |
* 답사,촬영 일시 - 2005년 9월 16일 오후
* 상편 작성 시작일 - 2005년 9월 25일
* 상편 작성 완료일 - 2005년 9월 30일
* 상편 숙성기간 ~ 2005년 10월 1일 ~ 12월 2일
* 공개일 - 2005년 12월 3일부터
* 하편 공개일 - 2005년 12월 4일 이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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