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바다를 건너 찾아간 제주도 한라산 (서해바다 ~ 제주 ~ 백록담)



' 제주도 한라산(漢拏山) 기행 - 2005년 8월 26 ~ 28일'
'상편 ― 인천에서 서해바다를 가로질러 제주도 한라산(성판악,백록담)까지'



한반도를 바라보며 언제나 연륙(連陸)의 정을 꿈꾸는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대륙, 제주도(濟州島),
1988년 그 섬을 처음 찾아간 이래, 거의 17년 동안 제주도를 잊고 살았다. 설사 가고는 싶어도 제주해협을
건널 재간이 없어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그 신비의 섬,

그러다가 2005년에 이르러 제주도가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탐라(耽羅) 상륙 작전을 계획하고 있던 중, 8월에
이르러 단돈 99000원에 갈 수 있는 제주도 한라산 2박 3일 여행 상품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얼씨구나~ 싶어
신청을 하였다.
제주도까지 정말로 99000원에 오 갈 수가 있단 말인가? 처음에는 '저 돈으로 과연 여행사와 선박회사가 본전이나
뽑을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었으나 갔다와 보니 그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다.

제주도와의 재회(再會)를 꿈꾸며 아무런 미련도 없이 8월을 하루, 이틀, 사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세월의
저편으로 내던지고 보니 어느덧 그 날, 8월 26일의 찬란한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제주도에 가기는 하지만 가는 목적이 어디까지나 우리나라―미수복지 제외(북한)―에서 제일 높다란 한라산을
등반하는 것이므로 세세한 것까지 엄청나게 신경을 썼다. 한라산은 서울의 진산(鎭山)인 북한산(北漢山)과 조산
(朝山)인 관악산(冠岳山), 그리고 속리산(俗離山), 태백산(太白山)의 수준을 넘어서는 험산(險山)으로 멀리서
한라산을 바라보면 마치 여성적인 모습으로 매우 부드러워만 보인다.
그래서 한라산을 여성적인 산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원경(遠景)일 뿐, 산으로 들어서면 그
부드러움은 온데 간데 없는 완전한 남성적인 산으로 돌변해 버린다. 그것이 바로 한라산의 이중성이다.

그의 이중성을 무시하고 자칫 만만히 보고 덤빌 경우 한라산의 큰 노여움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 노여움을
받으면 피차 이로울 것은 없지. 지금도 가끔 그런 일이 발생하긴 하지만 예전에는 멋모르고 산에 오르다가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각별한 준비를 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산을 올라야
한라산도별다른 심술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인간이 대단한 존재라고 열심히 자화자찬을 해도 자연 앞에서는 결국 두 발 달린 일개 동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될 것이다.

부친(父親)이 20년 넘게 신고 다니신 오래된 등산화를 신고, 긴 소매옷, 비옷, 책 등을 챙기고 룰루랄라 집을
나섰으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연(delay)의 제왕' 1호선 전철이 변함없이 말썽을 피우는 통에 자칫 배를
놓칠 뻔했다. 동인천역에 예상보다 너무 늦게 도착하여 인천연안부두로 가는 인천시내버스 12번(일신동∼
연안부두)
을 탔는데, 운전사가 나의 마음을 헤아려 준 듯, 열심히 달려준 덕에 배 출항 시간(19시) 바로 10분
직전에 도착하여, 부랴부랴 배에 오를 수가 있었다.

* 원본을 보고자 할 경우(따로 익스플로어 창으로 보고자 할 경우) 여기를 클릭바랍니다.
* 사진을 올린 웹 사이트의 점검,기타 사유로 인해 아주 간혹가다 사진이 안뜰 수 있습니다.
* 인천 출발부터 다시 인천 도착까지 거의 모든 일을 사실에 기초한 이른바 직서(直敍)주의에 따라 작성했습니다.
* 중립의 원칙에 따라 본 글에서는 모임 이름과 같이 간 사람들의 이름은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 본 글은 상,하 2편으로 나눠서 작성했습니다.

◀ 인천 ~ 제주 구간 1000리(520km)를 운행하는
오하마나호 모습 -
배에 탈 때는 배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가고,
내릴 때는 주로 사진 왼쪽으로 차가 들어가는
창고를 통해 밖으로 나온다.
(제주여객터미널에서 촬영)

* 인천 연안부두 출발 ~ 매주 월,수,금 19시
(겨울에는 18시 30분)
* 제주 여객터미널 출발 ~ 매주 화,목,토 19시
(겨울에는 18시 30분)
* 배삯(요금) ~ 이곳을 클릭하여 검색 바람

19시가 되자, 도저히 뜨지 못할 것 같던 1만톤 규모의 오하마나호는 600명의 사람을 거뜬히 태우고 인천(仁川)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털어버리며 슬슬 바다로 미끄러지듯 서해바다로 나간다. 이로써 13~14시간에 걸친 대항해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속도가 느려 배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이나 배가 점점 용을 쓰면서 비록 고속전철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시속 40km까지 속력을 낸다. 배에 오르면서 "2시간 이상 배를 타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13시간씩이나 버틸 수 있을까?"
싶은 걱정도 약간 있었으나 배가 워낙에 크고 넓어서 그런 걱정은 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우리가 13시간 동안 머물 방은 3등실, 말이 3등실이지 제일 아랫 등급이라고 보면 된다. 넓다란 방에 30명이
들어가 각자 영토분할을 시도하면서 조금의 빈 공간도 남질 않았다.
그 많은 사람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은 딱 2명, 1명은 예전에 본 적이 있고, 다른 1명은 우리 모두를 인솔하는
진행자로 등산 경력이 대단한 30대 후반의 산악인(이후 대장이라 쓰도록 하겠다)이다.
그 외에는 모두 모르는 사람, 간혹 아는 이들끼리 온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저 눈만 멀뚱멀뚱, 조용함이
감돈다.

배가 출항하자, 바닷바람도 쐴 겸, 갑판으로 나왔다.

▲ 점점 멀어져만 가는 인주(仁州, 인천)
인천이 나를 그렇게 떠나 보내 듯, 나도 인천을 저 멀리 떠나 보낸다.

▲ 통행세(?)룰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갈매기들
바닷배를 타면 꼭 만나게 되는 무리들이 있다. 바로 갈매기들..
배가 어느 정도 바다로 들어서자, 사람들로부터 통행세(?)를 받기 위해
하나,둘 배 주위를 어슬렁대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새우깡 등으로 나름대로 타협을 시도해 본다.

▲ 어느덧 인천과 저만큼 멀어져 버렸다.

▲ 어둠 속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인천 영흥도(靈興島) 지역

▲ '댄서의 순정' 촬영 장소 ~
배의 진행 방향을 기준으로 제일 윗층 갑판 오른쪽 부분에 있다.


20시가 되자 선내 안내 방송이 나온다. 배표를 가지고 중앙로비로 나와서 이불을 가져가라는 방송.
그래서 대장과 함께 일행들에게 배표를 거둬서 로비에서 이불을 가져오는데 1사람에 달랑 이불 1개씩,
베게는 객실 위쪽 천장에 있으므로 꺼내서 쓰면 된다.

21시가 되자 한라산 여행을 맡은 여행사 가이드가 우리 방으로 들어와 한라산 등반 일정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을 해준다. 그 내용을 요약해 보면 '한라산은 만만한 산이 아니다. 다리가 안좋은 사람은 포기해라.
지정 시간까지 어느 위치까지 오르지 못하면 그냥 내려가라, 사고가 날 경우 우리가 책임지지 않는다.
17시 30분까지 관음사에 도착해라. 날씨 변화가 심하니 우의를 가져가라...'

가이드의 거의 겁을 주는 듯한 설명을 들은 몇몇 사람들은 벌써부터 지레 겁을 먹기 시작한다. '내가 과연
그 산을 오를 수 있을까. 도저히 자신이 없어. 산행시간이 무려 8시간이래잖아. 어머 어떻게..?'

나는 걱정에 휩싸인 그들의 눈동자를 지긋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겁먹을 필요는 없는데..

21시 30분이 되자, 대장을 중심으로 몇몇 사람들은 선실의 갑갑함에서 벗어나고자 갑판으로 나가 자리를
깔고 과자와 오징어 등을 안주로 삼으며 맥주파티를 벌였다. 원래는 소주를 마실려고 했으나 선내(船內)
매점―새벽 1시까지 영업―에서는 안타깝게도 소주를 팔지 않아 꿩 대신 닭으로 맥주를 마시게 되었던 것.

22시가 되자 오하마나호 관계자들이 준비한 특별 이벤트가 화려하게 펼쳐졌다. 바로 불꽃축제..
이 축제는 매주 금요일에만 열린다고 하는데, 거기에는 전제조건이 하나 깔려 있다. 바로 승객이 600명을
넘어야 된다는 것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음..― 그렇지 않으면 축제는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번 항해에서는 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승선하여 축제는 별 탈없이 진행되었다.

선상(船上)에서 바라본 불꽃들의 화려한 향연(饗宴), 비록 여의도(汝矣島)의 불꽃축제 만은 못하지만, 바다
위에서 바라본다는 매력 때문인지 불꽃들이 참 특별하게 보인다. 불꽃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의 환호성은 계속
터져나오고, 축제 진행자의 노련한 진행솜씨와 신나는 음악으로 갑판은 거의 춤판이 되어 버렸다.
그 때 배는 안면도(安眠島) 앞바다를 통과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의 즐거운 환호성으로 안면도 사람들 아마도
잠 다 잤을 것이다.

그런 불꽃축제도 약 20분 만에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사람들은 객실로 들어가거나 혹은 갑판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바닷바람을 벗삼아 속칭 술판을 벌인다.
우리도 제일 윗층 갑판에 자리를 잡고 판을 벌이는데 일행 중 10여명이 그 술판에 동참하였다.
다들 처음 만나는 사람들, 초반에는 좀 서먹서먹한 감은 없지 않아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니 그 서먹함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다.

여기서 만난 그들은 우리나라 5000만 인구의 한 명이자 일부로, 그들과 이렇게 만났다는 그 인연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모른다. 같은 하늘 밑, 같은 나라에, 그것도 같은 민족으로 살면서도 서로가 스쳐 지나가는
것이 바로 인간의 생태이기 때문이다. 혹 그들이 나에게 손해가 되는 존재라 하더라도, 인연이 짧아 금방
서로를 잊는다 하더라도.. 이렇게 만났다는 그 자체에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술자리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바닷바람이 약간 심통이 난 듯, 바람이 약간 추워지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알콜
성분이 몸에 차곡차곡 누적되니 추위도 금방 잊혀져 쌀쌀하게 느껴진 바람은 이내 시원한 선풍기 바람으로
변해 버린다.

술판이 계속 무르익어 감에 따라 참여하는 사람의 수도 약간 늘어나면서 그 인원은 20명을 넘어섰다.
나를 포함한 이들은 거의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여 여행이 끝날 때까지 거의 같이 동행하며 동고동락하는 사이가
되었으나, 여행이 끝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추억이라는 호리병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시간이 가면서 술을 마시는 사람의 수는 계속 줄어들고, 하나 둘, 객실로 들어가 잠을 청하면서 0시 정도에
이르러 술판을 모두 파하고 객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아까 전과 달리 이미 앞서 잠들어 버린 사람들이 자리를 비운 사람들의 영토까지 침범하여 약 10명은
바깥 로비로 쫓겨났고, 나는 간신히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방에서 잠을 청했다.
그렇지만 잠은 좀처럼 오질 않는다. 방바닥에 기대니 배의 힘찬 심장소리가 느껴지고 옆에 잠든 사람들이
나의 영역을 침범하며 소음공해(?)까지 일으키면서 잠이 오려고 해도 도저히 올 수가 없는 상황.

그래서 잠깐 갑판으로 나가 어둠에 잠긴 바다를 바라보았다. 망망대해(茫茫大海)에 홀로 떠 있는 배,
주위는 온통 어둠.. 어둠 속에 갇힌 나와 오하마나호, 하늘에는 달이 높다란 위치에서 나를 내려다 보고,
서울에서는 만나기 힘든 별들이 여기저기서 빛의 향연을 연출하고 있었다. 정말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바다.
그 자체였지..

바다를 바라보며, 배가 어느 정도 와있나 확인하기 위해 중앙 로비에 있는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 모니터는 배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그 때 겨우 변산(邊山) 앞바다를 통과하고 있었다.

새벽 3시, 다시 방으로 들어가, 오지 않는 잠을 강제로 붙잡으며 겨우 잠이 들었다.


새벽 5시 40분, 스르륵 잠이 깼다. 아직까지는 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몇몇 사람들은 벌써부터 잠에서 일어나
서해 해돋이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해에서의 해돋이라, 동대해(東大海)나 남해바다에서 해돋이를 맞이한 적은 있었지만 아직 서해에서는 맞이
한 적이 없다. 그저 서쪽으로 지는 일몰(日沒)을 바라 본 것 밖에는...

새벽 6시가 넘자, 8월 27일의 여명이 동쪽에서부터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땅 속으로 들어가
잠을 잤던 해가 슬슬 출근 준비를 하며 졸린 자신의 몸뚱아리를 바다 위로 올리기 위해 열심히 안간힘을 쓴다.

사람들은 해돋이를 보기 위해 삼삼오오 갑판으로 모여들고, 6시 30분 경, 드디어 해는 그 머리를 시작으로
바다 위로 그 화려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 서해바다 선상에서 맞이한 해돋이
시계(視界)가 망망한 수평선 속으로 쏙 숨어버린 해가 이제 슬슬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장엄한 얼굴을 내민 햇님 ~
사람들은 그 황홀한 광경(일출)에 하나 둘, 넋을 잃는다.

▲ 둥근 해가 떴습니다. ~ (사진 2장)


햇님과의 아침인사를 마치고, 나를 포함한 약 10여명은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조타실(操舵室)로 조심스럽게
이동하였다. 바로 전날에 대장이 선박 관계자와 어떻게 이야기를 하여 아침에 견학을 허가 받았던 것.
조타실은 배를 조종, 통제하는 곳으로, 최첨단을 자랑하는 온갖 기계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선장(혹은 1등 항해사)의 안내를 받으며 이것저것 기계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 호기심 가득한 어린
아이처럼 이것저것 만져보기도 하고..

약 20분 동안 조타실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는데, 이상하게도 앉는 의자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어
보니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배를 조종하는데 의자에 앉아 졸음에 빠진다면
자칫 100년 전의 타이타닉호처럼 큰 사고가 일어 날 수 있으므로,
그리고 선장(1등 항해사)은 태평양전쟁에 관한 짧막한 이야기도 하나 해주었다. 이야기의 내용을 대략 정리하면
'처음 왜국(倭國)은 우세한 위치에서 태평양 전쟁을 이끌어 갔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에 떠 있는 별을 관측하여
대충 각도를 짜는 이른바 천문관측으로 미사일을 쏘는 방식으로, 미국(米國)의 자동관측기계를 이용하여 긱도를
맞춰서 쏘는 방식에 밀려 결국 왜국은 패망했다'

▲ 조타실 책상 위에 놓인 다도해(多島海), 제주해협(濟州海峽) 주변 지도

▲ 배 주변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는 모니터
노란색은 섬이고, 하얀 점은 부근을 지나고 있는 선박들

▲ 잠시 뒤를 돌아보는 여유 ~
배가 지나온 구간에는 저렇게 거대한 물길이 생겨 났다.


해돋이와 조타실을 둘러보고 식당에서 제주도산 해산물과 채소로 가득한 아침(무려 5000원)을 먹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일행들은 한라산 등반에 대해 다들 조심스럽게 한마디씩 한다 '그 높은 데를 어떻게
올라가지?','저는 산을 잘 못타는데 님은 산 잘타세요?','8시간 산행이니 두둑히 먹어두는게 좋겠죠',
'올라가다 저 쓰러지면 업어 주세요'...
이렇게 아침을 먹고나니 어느덧 7시 30분,,
이제 30분만 있으면 땅을 밟아보게 되는구나.. 아 신난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조류의 영향으로
약 20분 가량 연착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면서 사람들은 너도 나도 한숨을 쉰다. 당연히 그럴 수 밖에,
배에서 13시간이나 찌그러져 있었으니..

그러나 영영 나오지 않을 것 같던 제주도도 슬슬 그 모습을 우리에게 드러내기 시작하고 건물과 아파트로
가득한 남국(南國)의 수도, 제주시(濟州市)는 계속 우리를 향해 성큼 다가온다.

그런데 그 청명하던 날씨가 제주도에 가까워짐에 따라 갑자기 구름이 가득히 끼더니만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이다. 분명히 그날은 날씨가 좋을 것이라고 기상청에서 그렇게나 강조를 했는데 왜 갑자기 비가..
혹 17년동안 자신을 찾지 않은 나에 대한 제주도의 서운한 마음의 표현은 아닐까? 그러나 비는 이내 그치고,
그 넓은 가슴으로 나를 맞이해주는 제주도..

인천을 출발한지 13시간 20분 만인, 8월 27일 아침 8시 20분, 드디어 제주도의 관문인 제주항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릴 때는, 배의 아랫층 창고를 통해 제주도의 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선박 측에서는 창고 쪽으로 하선(下船)을 유도한 것이다.
제주도의 품에 오랜만에 안기고 보니 좋기는 좋다. 그새 '탐라(耽羅)'도 나처럼 많이 변했구나..

배에서 내리니 10여대가 넘는 관광버스와 차량들이 한라산, 제주도 관광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버스 2대에 나눠 타고, 제주시를 남북으로 관통하여 원시림(原始林)에 가까운 한라산의 북쪽 자락으로
파고들어가, 516도로라 불리는 11번 국도를 따라 아침 9시 30분, 한라산의 동쪽 입구인 성판악(城板岳)에
도착했다.


▲ 성판악 휴게소
성판악에 이르니 한라산에 감히 도전장을 내민 수많은 사람들로 정말 발디딜 틈이 없다.
한결같이 '백록담(白鹿潭)의 물을 마시고 말 것이다'라는 비장한 표정들..
산행에 들어가기 전, 나를 비롯한 일행들은 서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고..

드디어 9시 40분, 대장의 출발 신호와 함께 역사적인 한라산 산행이 시작되었다.

* 한라산 성판악 찾아가기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5.16도로 경유 서귀포(西歸浦)로 가는 직행버스를 타고
성판악에서 내리면 된다.

▲ 요구조건이 엄청나게 적혀 있는 한라산 등산 안내문
한라산 일대는 천연기념물 182호로 지정되어 특별 보호되고 있다.
그래서 산에서의 야영, 취사도 금지되어 있고, 등산로도 겨우 성판악과 관음사, 영실 정도만
개방되어 있으며, 등산에도 엄청난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있어 솔직히 많은 아쉬움을 준다.
그렇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한라산에 왔으면 한라산의 규칙을 따르는
것이 산을 찾은 이의 마땅한 도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싫다면 아예 오지 말던가..?

◀ 현무암(玄武岩)으로 된 한라산국립공원
표석 ~ 남국(南國,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모습의 표석.

▲ 성판악 등산로 입구 (해발 700m고지)
여기서부터 장장 18km의 걸친 한라산 대장정이 시작된다.
그저 평범하게만 보이던 등산로, 그러나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 한라산은 다른 국립, 도립, 군립공원의 산과 달리 통제가 매우 심하다.
등산로에는 저렇게 '몇시까지 어디에 도착해라. 아니면 못올라간다'는 식의 안내문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어 등산객들에게 엄청난 심적 압박감을 주고 있다.
그래서 등산 시작과 동시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속력을 내며 마치 등산대회라도 하는 듯, 거의
속보(速步)로 올라간다. 산을 잘 오르지 못하는 사람들까지도 덩달아서.. 그래서 금방 지치고..
체력이 약한 이들은 차차 뒤로 쳐지고.. 어떤 이는 포기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오직 앞만 보고 열심히 올라가기만 할 뿐, 주변을 살펴보는 여유를 부리지
못한다. 속세에서도 그렇게 사느라 지치는데, 여기까지 와서도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일까? 다들
그저 백록담에 눈이 어두워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등산을 하는 것은 한라산에 대한 큰
무례가 아닐까싶다. 시간이 그렇게 촉박하지 않는 이상은 주변 풍경도 살펴보는 여유를 부리는
것이 답사나등산의 참 목적이 아닐까? 등산로 주변으로 수많은 나무와 꽃, 바위, 계곡들이
잠깐이라도 자신들을보고 가라며 그렇게 손짓을 하건만. 뭐가 그리 급해서 다들 무시하고
지나치는 것일까? 백록담만 중요하고 그들은 중요치 않다는 것일까?

그렇게 올라갈 바에는 뭐하러 머나먼 남국(南國)까지 왔을까?단순히 백록담이나 보자고..?
한라산 꼭대기를 정복하고 싶어서? 산이 어째서 인간들의 정복 대상이란 말인가? 사람과 산이
뭐 맞짱이라도한판 붙었는가? 정복을 못해서 그렇게도 안달이 났는가?
산을 느끼면서, 그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올라가는 것이 그리도 힘든 일인가? 비록 지정 시간
내에특정 장소에 도착을 못해 다시 돌아나올지언정 그렇게 앞만 보고 올라가고 싶지는 않다.

산으로 올라가는 동안 정말 지나치기 아까운 풍경들이 하나, 둘, 나의 눈을 유혹한다. 나는 그런
유혹에 상당히 민감한 편이라,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무시하며 그저 앞만 보고 헉헉거리며 올라
갈 때, 나는 그들을 하나씩 만나며, 만져가며, 이야기하며, 사진에 담으며 그렇게 올라갔다.

그러다 보니 약간 뒤로 쳐지긴 했지만.. 누가 빨리 오르나 시합하러 온 것도 아닌데, 뒤로
처지면 어떠하리.. 그런 것이 다 한라산과 친해지는 과정이거늘...

▲ 성판악 출발 겨우 40분 만에, 속밭이라 불리는 곳에 도착했다.

▲ 속밭을 지나고..
'성판악~백록담' 등산로는 거의 흙길이 없다. 순 돌로 가득한 돌길..
돌도 워낙에 뾰족해서 한라산 전용 등산화 외에는 다 무용지물.. 이는 한라산이 오만에 빠진
인간들에게 내린 시련의 하나일 것이다.

그나마 근래에 들어 몇몇 구간은 저렇게 나무 길을 깔아놓아 편하게 등,하산 할 수는 있으나
그런 구간은 그리 길지는 않다.

◀ 사라악 약수 ~ 속밭을 지나면 성판악
코스의 유일한 약수터인 사라악 약수터가
나온다.
한라산이 자신에게 도전한 오만한 인간들
에게 하사한 선물로 물은 언제나 넘쳐
흐른다.

이 곳을 지나면 더 이상 약수터가 없으며
왠만하면 여기서 물을 가득 보충해서
올라가야 뒷 탈이 없을 것이다.

◀ 1400m 고지를 지나면 등산로가 갑자기
미치기(?) 시작한다.
거의 40도에 가까운 돌계단으로 가득한
등산로,
성판악 등산로에서 제일 힘든 구간이다.


▲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먹은 점심 도시락
성판악 출발 7.3km 지점인 진달래밭 대피소에 11시 30분 경에 도착했다.
여기서 우리는 좀 이르긴 하지만 점심을 먹었다, 너무 배가 고파서...
제주도의 어느 도시락 업체에서 정성스레 만든 도시락에는 하얀 쌀밥과 오뎅, 소고기, 멸치,
김치, 단무지, 닭고기, 고추 등의 반찬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옵션으로 누군가가 가져온 고추
참치캔한 통, 그러나 일행들(남자 2명, 여자 6명)의 젓가락질 몇 번에 금세 바닥을 드러내
보인다.

하늘과 가까이서 먹는 음식이라 그런지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간에 모두 맛있는 것 같다.
평소에는 잘 거들떠 안보는 음식이라 할 지라도.. 게다가 친한 사람들과 같이 옹기종기 먹으니,
그 맛은 더욱 좋아질 수 밖에..

▲ 진달래밭 대피소
여기서도 간단하게 먹을 꺼리를 팔고는 있으나 가격은 시중보다 많이 비싸며
그 양도 그리 충분치 못하다.

▲ 진달래밭 대피소에 있는 안내문
이 곳에서는 13시 이전에 출발해야 백록담까지 갈 수 있으며, 그 이후는 올라가지 못한다.
이처럼 통제가 심해 좀 야속하긴 하지만 한라산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니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 1500m 고지
점점 하늘과 가까워지고 있다. 이러다 정말
천인(天人)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

◀ 하얗게 변해버린 어느 고사목(枯死木)
세월의 아픔이 가지마다 걸려 있다.

◀ 하늘과 가까이 살고 있는 산닥나무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저 나무가
산닥나무라고 한다.

▲ 돌로 가득한 등산로
흙 길은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는 돌 길의 연속..
인간들의 산행을 방해하기 위해 한라산이 내린 최대의 시련이자 방해물이다.
그렇지만 그런 것으로 호기심 강한 인간들의 산행을 막을 수는 없다.
단지 그들의 발걸음을 약간 지체만 시킬 뿐..

▲ 파란빛 향기를 간직한 어느 파란색 꽃
아름다운 생명의 신비 앞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두근..

▲ 1700m 고지를 넘으니 한라산의 정상이 저만치나 가깝게 다가온다.

▲ 운무(雲霧)가 정상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혹 신선이나 선녀들이 하강(下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정상에 가까워 질 수록, 커다란 나무 대신 키 작은 나무와 수풀들이
마치 한라산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듯 그렇게 늘어서 있다.
이렇게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도 생명의 신비는 살아 숨쉬고 있었다.

▲ 정상 주변에는 아무렇게나 생긴 현무암과 바위들이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마치 폐허의 현장을 보는 듯한..

◀ 드디어 1900m 고지에 이르렀다.

▲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 길
민족의 성산(聖山) 한라산으로 부지런히 올라가는 사람들

▲ 드디어 정상을 100m 앞두다..


~~ 아쉽지만 상편은 여기서 끝.
~~


*답사, 촬영일 - 2005년 8월 26일, 27일
*상편 작성 시작일 - 2005년 10월 4일
*상편 작성 완료일 - 2005년 11월 3일
*상편 숙성기간 ~ 2005년 11월 4일 ~ 2006년 2월 20일
*공개일 - 2006년 2월 21일부터
* 상,중,하편을 상,하편으로 통합 - 2005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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