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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가탄신일 기념 서울 동남부, 성남 지역 사찰 순례기 ~
중편 - 서울 봉은사(奉恩寺) <2006년 5월 5일 / 6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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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3편으로 나누어 작성했습니다.
봉은사 상편 ^^ 보러 가기 ^^


♠ 봉은사의 법당, 대웅전(大雄殿) 주변 풍경 (2) ~

▲ 하늘을 가득 메운 붉은 연등의 끝없는 물결
내가 초파일에 유독 절을 찾는 이유는 우선 초파일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좋고, 다양한 행사(음
악회, 전시회, 공연)와 먹꺼리를 공짜로 즐길 수 있으며 특히 하늘 가득 뒤덮은 다양한 색채
의 연등과 그들의 화려한 향연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의 마음이자 중생들의 소망을 가득 품은 연등은 초파일의 꽃이자 사찰을 먹여살리는 주
요 밥줄로 상당수의 사찰이 초파일 연등 장사로 1년을 먹고 산다고 하던데, 하늘 아래 두둥실
떠 있는저 연등의 가격을 모두 합친다면 그 수입은 가히 천문학적 그 이상일 것이다.

◀ 화사석(火舍石)이 환하게 밝혀진 대웅전 앞
석등
<2006, 6, 8일> -
부처의 광명을 상징하는 석등, 그 광명을 상징
하는 듯, 어두운 저녁을 환하게 밝혀준다.
단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면 촛불 대신 전구가
등을 밝혀주고 있다는 것.

▲ 대웅전 불단(佛壇)에 모셔진 석가여래 3존불
대웅전으로 들어서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중생들의 행렬에 기꺼이 동참하였다.
초파일 특수라 사람들이 많다보니 대웅전의 동쪽 문으로 출입하여 서쪽 문으로 나가는 형태로
봉은사 신도들이 안내 및 통제를 하고 있었다.
법당으로 들어서려면 신발을 벗어야 되는데, 신발을 담으라며 중생들에게 봉다리 하나씩을건
네 준다.

행렬에 동참한지 2분 정도 만에 겨우 내부로 들어설 수 있었는데, 밖에서는 그렇게나 넓어보
이던 건물이 안으로 들어서니 예불을 올리는 수십 명의 신도들로 앉을 자리조차 없었다.
간신히 여유가 있는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가 불단 위에 앉아 중생들의 하례를 받고 있는 3존불
을 사진에담아본다.
이들 불상은 17세기 중반에서 18세기 초반에 조성된 것으로 가운데는 석가여래, 양쪽으로 아미
타여래(阿彌陀如來)와 약사여래(藥師如來)가 앉아 있으며 그들 뒤로는 1892년에 그려진 삼회불
도(三會佛圖)가 든든한 후불탱화의 역할을 하고 있다.

◀ 봉은사에서 2번 째로 오래된 보물, '홍무25
년 장흥사명 동종(洪武25年長興寺銘銅鐘)' -
서울 지방유형문화재 76호


대웅전 내(內) 동쪽 구석으로 약간 고즈넉한 멋
이 풍기는 조그마한 종 하나가 걸려 있다.

이 종은 원래 경기도 여주 지역에 있던 장흥사
(長興寺)에 있던 것으로 언제 무슨 이유로 이
곳까지 흘러 들어왔는지는 좀처럼 알려진 것이
없다.
아마도 그 절이 폐사되어 부근 절로 이리저리
유랑하는 과정에서이 곳까지 흘러들어온 모양
인데 종을 매다는 용뉴는 오래 전에 사라져 버
렸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종을 제외하고 서울에
남아 있는 제일 오래된 종임에도 건강상태는매
우 양호하다.

종 아랫도리로 연화대(蓮花臺)를 두었는데 구름을 탄 보살과 종을 치는 당좌는 각각 1개씩 배
치되어 있으며, 홍무 25년, 즉 1392년에 만들어졌다는 명문(銘文)이 분명히 새겨져 있다.
종의 크기는 1m도 채 되지 않는 미니 종으로 봉은사에 있는 보물 중, 2번째로 오래된 것인데
제일 오래된 것은 보물 321호로 지정된 14세기에 만들어진 은입사(銀入絲) 향로로 현재 동국대
박물관에 있다.

종 앞에는 종을 치는 망치 모양의 도구가 있던데, 마음 같아서는 한번 쳐보고 싶었으나 사람
들이 많아서 그러지도 못한다. 종이 오래되었음에도 아직까지 종을 칠 정도로 건재하다고 하니
언제 그 은은한 종소리에 내 귀를 맡겨보고 싶다.


♠ 봉은사 운하당(雲霞堂), 미륵전(彌勒殿) ~

◀ 대웅전 서쪽에 있는 운하당(雲霞堂)
봉은사 초창기 시절부터 있던 건물이라고하며
1939년 대화재로 소실되어 1941년에 다시지었
다.
이 불전은 승방(僧房)으로 쓰이고 있으며, 숨
기고 싶은 비밀이라도 있는지 건물 입구에 발
을 2중으로 내려놓아 그내부를 가려놓았다.

▶ 미륵전(彌勒殿)▶
문루 형태의 불전으로 원래는 법왕루였다.
1996년 미륵대불이 완성되자 기존의 법왕루를
이 곳으로 옮겨와 미륵전으로 삼았다.

저 문루를 들어서면 거대한 체격의 미륵대불
를 만나게된다.


♠ 서울에서 제일 큰 불상 ~ 봉은사 미륵대불(彌勒大佛)

▲ 남쪽을 바라보며 서 있는 거대한 미륵대불
봉은사 서쪽 산자락에 세워진 거대한 석불로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 석불은 1986년 영암큰스님의 발원으로 1만명이 넘는 신도들의 시주와 정성을 모아 10년간
에 걸친 대불사(大佛事) 끝에 1996년에 완성되었다.

서울에서 제일 큰 석불로 높이는 무려 23m에 이르며 석불이 완공되자 예전 법왕루를 그 입구
로 옮겨와 미륵전으로 삼았다.
봉은사의 막강한 재력을 보여주는 대불(大佛)로 중생들의 발길과 시주가 끊이질 않는다.

◀ 연꽃(연화대좌) 위에 서 있는 미륵대불
초파일로 들떠 있는 중생들을 시무외인(施無
畏印)으로 맞이하는 석불의 얼굴에는 환희의
미소가 가득해 보인다.
자신은 비록 현생의 부처는 아니지만 56.7억
년 후에는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
이다.

석불의 보관(寶冠) 양 모서리에는 풍경과 물
고기가 푸른 하늘을 바다로 삼으며 유유히
떠있다.


♠ 봉은사 보물들의 안식처 ~ 판전(板殿)

▲ 봉은사에서 제일 오래된 불전 ~ 판전(板殿) <2006,6,8일>
1855년 조선 정부의 지원으로 편찬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소초 81권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판고(板庫)로 조선 후기 판본 3438점을 비롯하여 19세기에 만들어진 석가모
니불좌상 등 불상 몇 점이 생사고락을 함께하고 있다.

판전에 보관된 판본 중에서 '대방광불화엄경 소초 81권'은 서울 지방유형문화재 84호로 지정되
었으며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화엄경판을 만들어 봉안했다고 한다.
불전이 아닌 판고의 역할을 하다보니 건물 양쪽으로 통풍을 위한 일종의 창문들이 마련되어
있으며 습기를 방지하기 위해 바닥을 온돌로 하였다.
현재는 문화재 관리를 위해 극히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비공개로 되어 있어 약간의
아쉬움을 주지만 문화재 도난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현실 앞에서는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 추사 김정희가 직접 쓴 판전 현판(懸板) - 서울 지방유형문화재 83호
1855년 '판전'이 완성되자 말년을 불교에 귀의(歸依)하며 봉은사에 머물러 있던 추사 김정희
선생이 그 기념으로 친히 써준 현판이다.

현판 우측에는 '71과 병풍작<七十一果病風(?)作>'이라 쓰여 있으며, 현판을 쓰고 3일 후에(혹
은 한달 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추사 선생이 남긴 마지막 글씨로 그는 비록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 없지만 그의 글씨만은 저렇
게 살아 숨쉬며 추사의 숨결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해준다.


♠ 봉은사 연등길을 거닐다. ~~

◀ 영각(影閣) = 충녕각(忠靈閣)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봉은사와 깊은 인연이있는 승려들(연회
국사, 보우선사, 서산대사, 사명대사..)

의 진영(眞影)이 모셔져 있으며 오른쪽
벽면에는 영단(靈壇)이 자리해 있다.

원래 이 곳은 승려들의 진영을 모신 '영
각'이었으나6.25전쟁때 전사한 이들의
영령을 위로하면서 충녕각이란 이름까지
지니게 되었다.

▲ 미륵전에서 바라본 봉은사 경내
전통 사찰과 높다란 빌딩과의 만남, 그리고 서로간의 조화.. ~
강남 한복판에 들어앉은 봉은사에서만 누려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 ~~

▲ 연등 숲길을 거닐다 (1)
연등으로 가득한 연등 숲길을 거닐으니 기분이 참 묘하다. 연등이 한결같이 나에게 준 잔잔
한 감동 때문일까..
특히 연등이 환하게 달아오르는 밤시간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 연등 숲길을 거닐다 (2)
사람이 만든 숲길 가운데 이 정도로 아름다운 길이 또 있을까?
그렇다고 단순히 연등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이 세상
열심히 살아가는 중생들의 조그마한 정성과 소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 연등 숲길을 거닐다 (3)
하나의 동화 속 풍경..? 아니지.. 동화 속에는 저런 연등 숲길은 안나오니까.
그렇다면 하나의 극락(極樂) 속 풍경이라고 하면 딱 어울리려나..?


♠ 삼성(三聖)을 모신 - 봉은사 북극보전(北極寶殿)

▲ 그 이름도 생소한 북극보전
연등 숲길을 따라 위쪽으로 올라가다보면 '북극보전'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불전이 나온다.
북극보전이라 과연 누구를 모신, 누구를 위한 건물일까? 혹 북극성(北極星)이나 북극과 관련
된 어느 존재를 모신 불전은 아닐까?

불전 앞 조그마한 상 위에는 요구르트가 푸짐히 놓여져 있었다. 초파일 봉사나온 아줌마 신
도들은 북극보전을 찾은 사람들에게 하나씩 건네주고, 나는 그요구르트를 마시며 그들에게
이 전각의 용도를 물었더니. '칠성(七星), 산신(山神),나반존자(那畔尊者, 독성)를 모신 건
물입니다'
이러는 것이다. 즉 이 곳은 3명의 성스러운 신을 모신 바로 '삼성각(三聖閣)'이다.
참고로 북극보전의 북극은 사람의 목숨을 관장하는 칠성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조선 중기에 세워진 것으로 1939년 대화재로 무너져 1942년에 새로 지었다.
불전 내(內)에는 1886년에 그려진 칠성도(七星圖)와 1942년에 새롭게 그려진 산신도(山神圖),
독성도(獨聖圖)가 걸려 있다.

▲ 북극보전 풍경물고기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물고기인 풍경물고기가 하늘을 유유히 헤엄치며 청아한 풍경소리로
나의 귀와 마음을 한없이 붙잡는다.

◀ 북극보전 현판
북(北)의 모습이 너무 특이하다. 마치
물개 2마리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듯한
모습,
보(寶)의 모습도 갓머리 위에 동그라미
하나만 추가한다면 영락없는 사람의 모
습.


♠ 봉은사 영산전(靈山殿)

▲ 하얀 연등으로 가득한 맞배지붕의 영산전
북극보전에서 동쪽으로 약 50m 정도 떨어진 불전으로 조선시대에 세워진 것이다.
1939년 대화재로 무너져 내린 것을 1942년에 다시 세웠으며, 전각 내에는 조선 후기에조성
된 석가여래를주불(主佛)로 하여 좌우로 가섭존자(迦葉尊者)와 아난존자(阿難尊者)를 모시
고, 그 주변으로 16나한(羅漢)이 그런 3존불을 호위하고 있다.

▲ 영산전 석가여래 3존불
19세기에 만들어진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그 좌우로 1895년에 만들어진 가섭존자(迦葉尊
者)와 아난존자(阿難尊者)가 정중히 합장인(合掌印)을 하며 시립(侍立)해 있다.

방금 불상을 손질 한 듯, 윤이 유난히도 빛나는 석가여래는 중생들이 바친 과일 등의 진상품
을 바라보며 흡족한 표정을 짓고 계신다.


♠ 봉은사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

해수관음상은 바닷가 사찰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존재로, 양양 낙산사(洛山寺)의 해수관음
이 그으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다와는 전혀 접하지도 않은 서울 땅에
도 바닷가에만 있어야 된다는 법칙을 깨고 해수
관음이 한 분 숨어 계시니, 바로 봉은사의 해수
관음상이다.

이 관음상은 낙산사의 그것을 유난히도 많이 닮
은것 같은데, 1996년 이후에 조성되어 해수관음
상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선의 아름다운 미가 느껴지는 그의 몸매, 미인의
얼굴처럼 어여쁜 그의 표정, 돌로 만들었지만화
려함이 듬뿍 배어있는 보관(寶冠), 연화대좌(蓮
花臺座)위에 단아하게 서 있는 그 모습, 영락없
는 여인의 모습 그 자체로 그를 향하는 나의눈
이 그저 즐겁기만 하다.

▲ 둥그런 섬에 보금자리를 편 해수관음상
봉은사의 해수관음상은 원형(圓形)의 연못 안에 두둥실 떠 있는 동그란 섬에 서 있다.
관음보살은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들을 챙겨주는 보살로 중생들에게 있어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어루만져주는 어찌보면 성모(聖母)와 같은 존재라 할 수있다.
그런 연유로 예로부터 중생들의 높은 인기를 한 몸에 받았고, 그를 추앙하는 관음신앙(觀音信仰)
까지 생겨나 널리 유행하였다.
그러나 정작 관음보살의 그런 무거운 짐은 과연 누가 덜어주는 것일까? 무거운 짐에 푹 눌린 듯
가녀린 어깨 위로 여전히 미소를 띄우는 그의 모습에 왠지 모를 연민이 생긴다.

관음상 아래로는 빨간 바가지로 가득한 약수터가 있어 자신을 찾은 중생들을 위해 아낌없이 생
명수(단 수질은 장담 못함..)를 베푼다.


♠ 봉은사 마무리 ~

▲ 봉은사 주최, 천진불의 세상 작은 음악회
주요 유명 사찰의 초파일 행사에서 음악회와 풍물패 공연은 거의 필수 요소가 되어버린 것
같다. 하긴 그 뜻 깊은 행사에서 음악이 빠지면 어디 흥이 제대로 나겠는가..?

종각 아래에 마련된 무대에는 검은 바지의 흰 티를 입은 엄숙한 분위기의 봉은사 성악단원
들이 그 동안 갈고닦은 실력들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이며 초파일 부처님 탄생을 찬양하고
있다.
이 날 공연에는 재즈 가수와 국악인들의 공연도 준비되어 있었으나, 성남까지 가야 되는욕
심으로, 음악회를 잠깐 관람하고 봉은사 주차장 공터에 임시로 들어앉은 먹거리촌과장터를
찾았다.
초파일 특수를 누리며 잔뜩 들어앉은 먹거리 주막과 장터, 역시 장사도 대박이다.
사람들로 가득하여 조금의 공간도 보이질 않는 주막, 그리고 주막 장사꾼들의 환희의 미소..

장터에는 불교 용품과 차(茶), 쌀 등을 팔고 있었다. 마침 몸에 매우 좋다는 보이차 무료
시음(試飮)을 하는 곳이 있어 막 우려낸 보이차를 한잔마시며, 도시 속 고찰에서 잠시 차
의 향기를 즐겨본다.

불교 용품을 파는 코너로 가니 내가 좋아하는 풍경물고기가 허공 가득 매달려 애타게 새 주
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사찰 순례 기념품이라도 하나 남겨야 될 것
같아서 풍경 물고기를 하나 사들고 들어왔다. 가격은 무려 5000원.

그 물고기는 현재 내 옆 책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내가 풍경소리를 듣고 싶을 때면, 그 물고기는 그 시간이 언제가 되었던 아낌없이 그소리
를 들려준다.
비록 절에서 듣는 것 만큼은 못하지만 집에서도 그 비슷한 소리를 언제든지 들을 수 있으니
그것으로도 좋지 않은가..? 다음에도 풍경 물고기를 사올 기회가 있다면 하나, 둘사들고
와서 방 전체를 그들의 거대한 어항으로 꾸미고 싶다.

이렇게 하여 약 2시간에 걸쳐 진행된 초파일 봉은사 나들이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 법고(法鼓)를 두드리는 승려 <2006,6,8일>
초파일 다음 달인 6월 8일 늦은 오후 다시 봉은사를 찾았다.
마침 저녁 시간이라 승려들이 종각 2층으로 올라가 열심히 사물(四物)을 연주한다.
사물이란 법고, 목어(木魚), 범종(梵鍾), 운판(雲版)으로 제일 먼저 법고를 친다.

마치 신이 들린 듯, 법고를 치는 승려의 모습에 마침 절을 찾았던 서양 사람과 동남아 사람
이 거의혼이 나간 듯 그 모습을 지켜본다.
나도 신묘(神妙)에 가까운 법고 소리에 잠시 눈과 귀, 마음을 기꺼이 맡기며 그 소리 속으로
한없이 흡수되어 간다.
법고 연주가 끝나자 그 다음으로 목어를 두드린다. 목어 뱃속을 여러번 두들기고는 곧바로
운판을 치고, 그 다음에 최종으로 범종을 치는데,그 은은한 종소리가 조금의 여유도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강남 시내를 잠시 고요에 잠기게만든다. 주변 직장인들도 그 소리를 듣고
마음의 평안을 얻었겠지.

그렇지만 종이 땅바닥이 아닌 2층에 있어 그 소리는 그리 멀리 가지는 못한다.
종은 땅바닥에 거의 붙어 있어야 그 소리가 멀리 가는 데, 요즘에는 그런 법칙이 잘 지켜지
지 못하는 것 같다.

▲ 웃는 모습이 아름다운 하얀 코스모스 <2006,6,8일>
코스모스는 보통 늦여름에 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일부 성질이 급한 코스모스는 초
여름부터 피어난다고 한다. 마치 한명회(韓明澮)가 어미 뱃속에서 9달을 가만히 있지 못하고
7달 만에 태어난 것처럼 벌써부터 꽃망울을 터뜨려 버렸다.

~~ 아쉽지만 중편은 여기서 끝. ~~

* 답사, 촬영 일시 - 2006년 5월 5일 / 6월 8일
* 중편 작성 시작일 - 2006년 6월 13일
* 중편 작성 완료일 - 2006년 6월 17일
* 중편 숙성기간 ~ 2006년 6월 18일 ~ 2007년 5월 30일
* 공개일 - 2007년 5월 30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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