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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우 공양
[아함경]에 말씀하기를 적게 먹으면 병이 적다고 했다. 사찰에서의 아침 공양은 매우 간단하다. 결제가 시작되면 죽을 먹는 곳도 있다. 정진 기간에 탐심과 졸음을 적게 하고 가능하면 후원의 수고를 덜자는 뜻도 있다.
그러나 시간은 엄격하게 지켜진다. 거의 모든 사찰이 아침 6시면 아침 공양을 한다. 큰방 부전은 5시 50분이 되면 큰방 앞마루에 놓여진 작은 종을 다섯 번 친다. 공양 시간 10분 전의 소식이다.
나이 많은 노스님들의 걸음 속도와 좀 떨어진 전각에서 거처하는 여러 스님들이 모이기 위해서 10분 정도를 배려한 것이다. 종이 울리면 공양주와 갱두와 채공과 간상은 큰방에 들어갈 어간과 대중의 반찬상과 천수물, 밥, 국, 등의 공양 거리 일체를 큰방 뒷마루에 갖다 놓는다. 그걸 다시 큰방의 어간 앞에 정돈하는 일은 학인 스님들의 일이다.
큰방에는 조실 스님부터 사미에 이르기까지 절의 대중이 좌차(座次)대로 발우를 앞에 놓는 선반이 만들어져 있어 공양 전에 내린 발우는 공양이 끝나면 또 다시 자기 자리에 올려 놓게 된다.
큰방의 어간 쪽을 상판(上板), 젊은 스님들이 앉는 탁자 밑 지역을 하판(下板)이라고 부른다. 절에는 나이보다 승랍(승려 생활을 한 휫수)의 차례대로 좌차를 정한다. 큰방에는 대개 정면에 부처님을 모신다. 부처님의 정면 출입구가 어간(御間)이다. 이 어간은 조실스님의 정용 출입문이다.
일반 대중은 어간을 비낀 좌우문으로 출입한다. 이 어간을 중심으로 왼쪽은 청산(淸山)이라 하여 선방 스님들이 앉는다. 오른쪽은 백운(白雲)이라 하여 종무소 소임자 스님들과 강원의 강사 스님 그리고 학인 스님들이 앉는다. 이런 법식이 있어 어간의 정면 부처님 탁자 밑에는 선방과 강원의 초심자들이 앉게 되고 공양 시간의 모든 진지는 그들이 도맡게 된다.
6시 정각 이윽고 찰중(대중을 살펴 돕는 소임) 스님의 손에서 죽비가 세 번 울린다. 대중은 합장한 다음 발우를 편다. 하얀 발우 수건을 세 겹으로 접어 잔으로 접은 다음 오른쪽 무릎의 한 뼘 앞에 반듯하게 놓는다. 발우보도 풀러 세 겹으로 접은 다음 다시 세 겹으로 접어 오른 무릎 앞의 한 뼘 공간에 놓는다. 수저집도 발우보 위에 얹는다. 발우 뚜껑을 벗겨 발우보 아래 놓고 한 손에 발우를 들고 발우 받침을 펴서 발우를 놓는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엄지와 검지로 조금 당기듯 반찬 발우(제일 작은 그릇 : 반찬만 담는다)를 들어 왼쪽에 놓는다. 다음 천수 발우(세번째 그릇 : 물만 담는다) 들어오른쪽에 놓고, 마지막으로 국발우(두번째 그릇 : 국만 담는다) 들어오른쪽에 놓게 되면 어시 발우(제일 큰 그릇 : 밥만 담는다)와 어울려 네 짝의 발우는 직사각형의 대형으로 조용히 펴지게 된다.
다음 수저집을 들고 소리나지 않게 젓가락 먼저 빼내어 천수발우에 세워 담고 다시 수저를 빼내어 젓가락과 함께 세워 담는다. 수저집을 한 번 곱게 접어 발우보 위에 얹고 다시 발우 수건을 얌전히 집어 수저집 위에 놓아 가지런히 정돈한다. 발우는 바르게 흐틀짐 없이 펴져 있는가 확인하고 호흡 조절하여 묵묵히 죽비 소리를 기다린다.
대중이 발우를 다 편 것을 확인한 찰중은 죽비를 한 번 친다. 이윽고 진지가 시작된다. 먼저 천수물이 돈다. 천수물은 어시 발우로 받는다. 적당한 양이 되면 발우를 앞뒤로 몇 번 흔든다('그만 부으시오'라는 뜻이다.) 천수물은 한 모금 마셔도 된다.
좀 미지근하게 데워 쓰지만 더러 찬물로 쓰기도 한다. 공양 전에 시원한 냉수 한모금마시는 맛은 각별한 데가 있다. 천수물을 조신 하게 국발우와 반찬 밭우를 거쳐 세번째의 천수 발우로 간다. 언제나 천수 발우는 물만을 담는다.
밥통의 밥이 온다. 천수물은 초심자가 돌리지만 밥 진지는 아무나 못한다. 숙련이 괼요하다. 주걱으로 밥 살짝 밀어 돌려빼며 살짝눌러 주면 삼각형이 된다. 그 삼각형의 밑변에 부드럽게 주걱을 넣어 떠서 발우에 담아 윗부분을 조금 어루만지면 예쁘고 곱게 담겨 진다. 밥의 양은세 홉이 원칙이다. 한번 뜨면 정확하게 세 홉 반이 담겨야 한다.
밥 담는 행동이 거칠거나 서투르면 공사에 회부되어 참회를 해야 한다 밥 담는 것에도 이렇듯 엄한 법도가 있다. 대중 생활을 익히기 위해 겨울에는 눈을 그릇에 담아 밥 담는 훈련을 시키기도 한다. 진지하는 모습 하나하나가 다 수행의 차원이다.
다음에는 국, 국은 뜨겁고 출렁거리기 때문에 조심해서 다룬다. 국자로 뜰 때도 국거리 내용에 따라 약간의 기술이 필요하다. 두부나무, 아욱이나 쑥국은 그런대로 뜨기가 쉽지만 콩나물이나 미역을 사용했을 때는 우선 국물부터 뜨고 다음에 국자로 건더기 올려, 받는 사람이 젓가락으로 건더기를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 받은 사람은 국물만, 나중에 받는 사람은 건더기만 하는 식이 되어 불평이 있게 된다.
진행되는 진지의 모습을 살펴 진지의 모양이 매끄럽거나 숙련되지 못하면 찰중은 따로 모아 교육을 시킨다. 규모있는 사원일수록 일거수 일투족에 대한 잔소리가 많다. 이런 잔소리를 통해서 장판 때가 묻고 완전한 수행자로 성장하게 된다.
공양주는 인원수대로 미감으로부터 정확하게 쌀을 받아 밥을 짓는다. 타거나 누룽지가 많이 나오면 밥이 모자라는 경우가 있다.
그렇때는 밥 나누던 그릇을 들고 한 바퀴 돈다. 평상시에는 가반(加飯 : 밥을 더 드십시오)의 뜻이 있지만 이때는 감반(減飯:밥 좀 주십시오)의 뜻이 된다. 그러면 대중들은 자기 밥발우에서 한 숟가락씩 덜어 낸다. 글자 그대로 십시 일반(十匙一飯)이다.
그렇게 해서 모자란 밥을 보충한다. 천수물, 밥, 국이 차례로 나눠지는 동안 중간 중간에 놓여졌던 반찬상은 자기가 먹을 만큼 덜어 낸 다음 차례차례 아래로 내려간다.
나누기가 끝나고 나누기를 담당했던 하판 스님들이 그릇들을 밖에 내놓고 들어온 것이 확인되면 다시 죽비 세 번이 울리고 먹기가 시작된다.
공양할 때는 큰 소리를 내며 씹어서는 안 된다. 한쪽 볼따구니가 불룩 나오도록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 수저와 젓가락을 한꺼번에 쥐어서도 안 된다. 밥을 뜰 때는 어시 발우를 들고 떠야 한다. 국을 뜰 때는 국발우를 들고 떠야 한다. 반찬을 집을 때는 반찬 발우를 들고 집어야 한다.
밥을 뜨거나 국을 뜨거나 반찬을 집거나 한 뒤에 수저와 젓가락은 반드시 천수 발우에 담가 놓아야 한다 발우 공양은 조용하고 까다롭지만 위생적이고 경제적이다. 자기 발우는 자기만 쓰도록 되어 있다.
개개인마다 자리가 정해져 있어 늘 자기 관리 아래에 놓여 있다. 발우에 담은 음식은 남겨져서도 안 되고 남겨질수도 없다. 때문에 애당초 음식을 담을 때 남기지 않을 정도의 음식만 누구나 담는다. 때문에 발우 공양을 할 때는 자기 소화 능력을 고려하여 담는 양을 잘 조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먹기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죽비를 든 찰중은 숭능 죽비를 두 번 친다. 그러면 숭늉이 들어온다. 숭능은 어시 발우에 받는데 대개 밥을 두어 숟가락 남겨 그 위에 물을 받는다. 그리하여 밥을 살살 으깨는 듯하여 발우에 붙어 있던 밥 찌꺼기를 긁어 낸다. 그런 다음 그 숭늉은 국발우로 가서 국 찌꺼기를 씻어 낸다. 다시 그 숭능은 반찬 발우로 간다. 닦어 있던 고춘가루나 반찬 국물을 헹구고 난 다음 그 물을 먹는다.
이 반은 건1찝찔하다. 처음에는 역해서 잘 못 먹지만, 익숙해지면 이 건건찝찔한 승늉을 먹어야 입안이 개운해진다. 만약 반찬물이 깨뜻하게 헹구어지지 않으면 천수물 두어 숱가락 덜어 내어 깨끗이 한다. 물론 그 물은 자기가 마신다.
하관 스님틀은 진지(밥 나누고 숭늉 가져오는 등의 일)하랴 공양하랴 매우 바쁘다. 그래서 매우 빠른 속도로 밥을 먹게 된다. 어떤 노스님은 그들을 위해 당신이 천천히 공양을 드신다.
어간의 공양 속도에 맞추어 진지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대중 전체가 공양이 끝나면 다시 죽비가 한 번 울린다. 찬상도 내가고 천수통(발우 씻을 물을 담아 내는 그릇)도 들여 오고 발우도 씻으라는 신호다. 세번째 발우에 담겨 있던 천수물을 어시 발우에 옮겨 담아 엄지손가락을 뺀 나머지 손가락을 모아 조용조용 문질러 씻은 다음 국발우로 옮겨 닦어 수저와 젓가락을 씻고 다시 반찬 발우까지 씻는다. 이때 찌꺼기가 없어야 한다.
만일 찌꺼기가 있으면 가라앉혀 윗물을 따라 낸 다음 그 찌꺼기를 마셔야 한다. 어쨌든 천수물통에 붓는 물은 찌꺼기가 있으면 안 된다.
사람을 잡아먹고 사는 아귀가 있었다. 그는 매우 큰몸집이라 한 끼 식사에 사람 수십 명이 필요했다. 부처님은 신통력으로 그의 목을 졸라 식도를 바늘 구멍만하게 좁혀 버렸다. 아귀는 언제나 배파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바늘 구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먹을거리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참다 못한 아귀는 부처님을 찾아와 배고픔을 호소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공양 뒤 찌꺼기 없는 헹군물로 아귀의 식사를 만들어 주도록 하셨다.
천수물은 아귀의 먹이이다. 바늘 구멍을 통과하지 못하는 찌거기가 있으면 아귀의 목에 걸리게 된다. 그래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천수물은 그래서 아무 데나 버리지 않는다. 정갈한 곳에 붓는 곳을 마련해 놓고 있다. 거기가 아귀들의 식탁이다.
수행자는 음식을 맛으로 먹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아귀가 아니더라도 발우 공양은 매우 위생적이고 검소한 정신이 있다.
발우는 모두 네 개로 되어 있다. 발우보(발우를 싸매는 보자기.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되면 발우도 가져가야 하므로 펼치면 자루처럼 되어 있어 그 속에 발우를 넣고 양쪽을 잡아맬 수 있도록 되어있다)와 발우 수건, 발우 뚜껑과 받침보가 한 벌을 이룬다. 거기에 수저와 젓가락과 반대 (새와 물고기들에게 밥을 주기 위한 조그마한 수저 )를 담는 수저집이 있다.
이 발우는 처음 사미가 될 때 은사 스님으로부터 하사받는바. 발우와 가사와 장삼을 의발(衣鉢)이라고 부른다. 스님이면 누구나 이 세 가지는 지니고 있다. 여행중에도 반드시 지니도록 되어 있다. 특히 가사는 법복(法服)이기 때문에 불이가사(不離袈沙 :자기 몸에서 떨어지지 않게 함)가 원칙이다
한때 이 의발은 법을 전하는 신표로 사용되었다. 덕이 높은 스님이 상수(上首) 제자에게 의발을 뻔하면 그가 전법인(불교인)이 되어 대중을 이끈다. 때문에 스승의 의발이 누구에게 가느냐 하는 문제로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본래 무일물(無一物), 청빈과 검소를 생활의 원칙으로 살아가는 수행자가 죽고 나면 그를 상징하는 유일한 물건은 그가 쓰던 발우와 그가 입던 가사와 장삼 그리고 헌 누더기다. 그래서 납자는 떠날 때 짐이 한 걸망을 넘으면 실격이 된다. 그래서 의발이 더욱 값어치가 있게 된 것일까.
현실적으로는 은사 스님에게 이 발우를 받지만 정신적으로는 본사(本師)이신 부처님으로부터 전수(傳受)한 뜻이 있다. 가사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나 부처님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려가 되면 누구나 석(釋)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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