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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4월 초파일 기념, 사찰 순례기 1편'
<서울 대모산 불국사(佛國寺)>

대모산 불국사
▲ 연등으로 가득한 불국사


불국사하면 다들 의심의 여지도 없이 경주(慶州)의 불국사를 머리 속에 떠올릴 것이다. 불
국사란 글의 제목에 '경주까지 갔다 온 모양이구나~' 생각했을 것이고 불국사 갔다는 말에
주변사람들 모두 경주에 갔었냐고 그럴 정도니 어느 누구도 다른 불국사를 머리 속에 두지
못했던 것이다.

불국(佛國)은 말그대로 부처의 나라를 뜻한다. 그 나라는 바로 불교가 꿈꾸는 세상인 불국
정토(佛國淨土)를 의미하는데 절의 이름으로는 아주 최상급이다. 이처럼 좋은 이름을 어째
서 경주의 불국사 혼자서만 누려야 되겠는가? 같은 이름을 지닌 절이 여럿 있듯이, 불국이
란 이름을 가진 절도 몇 곳 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대략 6곳이 걸려들었다.

본 글에서 소개하는 불국사는 경주가 아닌 서울 대모산의 불국사로 이곳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2008년 초반에 일이다.
'
아니~ 서울에도 불국사가 있었단 말인가!! 그것 참~ 근데 이곳에도 오래된 보물이 숨겨져
있었구나~ 앞으로 등잔 밑을 잘 살펴봐야겠다'
서울 땅에서 오랜만에 나의 호기심을 건드린 불국사, 솔직히 절집 자체는 그다지 끌리지는
않았고 그곳에 있는 오랜 약사불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야말로 절보다는 절밥에 마
음이 더 가 있었던 것이다. (약사여래불이 없었다면 굳이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강남에 있으므로 막연히 강남의 재물을 먹으며 두툼하게 자라지 않았을까? 여겨진 불국사,
그곳에 깃든 불상에 입맛을 다시고 있던 중, 변함없이 4월 초파일이 다가왔다. 2003년부터
초파일의 기쁨에 둘러싸인 절의 풍경이 좋아 신자(信者)도 아님에도 순례를 칭하며 정기행
사처럼 오랜 절을 찾아 다녔는데, 이번 초파일도 절대로 예외는 아니다. 마침 초파일이 월
요일이라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자연스럽게 2~3일의 연휴가 형성되어 날씨가 화창하던 연
휴 첫날 불국사를 접수하러 갔다.

내가 사는 도봉동(道峰洞)에서 불국사가 있는 일원동(逸院洞)까진 비록 같은 서울 하늘 밑
이지만 거의 북쪽 끝에서 남쪽 끝이다. 거리는 대략 30km,거기까진 한방에 가는 차편이 없
어 강남으로 넘어가는 서울시내버스 146번을 타고 삼성역에서 성남으로 가는 서울시내버스
4419번으로 바꿔타서 일원동 한솔아파트(대모산입구)에서 내렸다.

대모산입구4거리에서 우측으로 불국사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300m 남짓 들어가니 대모산
의 품으로 들어가는 가파른 길이 나오며, 그 길의 끝에는 큼지막한 대모산 안내도가 있다.
여기서 등산로는 크게 3갈래로 갈라지는데, 불국사로 가려면 산림초소가 있는 제일 오른쪽
길로 가야 된다.


♠ 대모산(大母山)의 품에 안기다.


▲ 산에서 묻혀온 먼지를 싹 털어내 주는 에어브러쉬(air brush)


대모산은 강남을 품에 안은 큰 산으로 해발 293m에 이른다. 서쪽으로 구룡산(283m)과 이어져 있
으며, 산 이름 그대로 강남권 사람들에게는 어머니 같이 포근한 산이자 허파와 같은 곳이다. 어
린 시절, 헌인릉에서 대모산 정상을 찍고 지금은 하얀색의 아파트단지로 변해버린 개포동을 거
쳐 도곡동으로 내려간 기억이 살짝 머리 속에 떠오른다.

구룡산을 포함한 대모산의 덩치는 관악산(冠岳山)에 버금갈 정도로 넓었으나 1980년대 후반 이
후, 개포동과 일원동, 포이동(浦二洞), 수서동 일대에 대단위 아파트와 주거지가 들어서면서 그
크기가 현저히 줄었다. 게다가 근래에는 일원동 산자락에 대규모 아파트와 터널 건설이 계획되
어 있어 대모산의 미래는 그리 밝지가 못하다.

등산로 입구에 으례 있는 산림초소를 지나면 가장 먼저 먼지를 털어내는 에어브러쉬가 나온다.
등산객들을 기다리며 잠시 오후 낮잠에 빠진 브러쉬의 꼭지를 누르니 바람이 요란한 소리를 내
며 튀어나온다. 그 소리에 먼지들이 기겁을 해 줄행랑을 칠 정도로, 옷에 묻은 먼지를 말끔히
털어준다.


▲ 대모산 자락에 펼쳐진 밭


불국사 가는 산길은 오르막이긴 하나 대체로 평탄하다. 초파일이라 연등이 절까지 이어져 그것
만 묵묵히 따라가면 된다. 산길 곳곳에는 옥수수와 나물, 과일, 간식거리 등을 파는 아줌마 행
상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피며 나그네의 오감을 자극시킨다.

산내음과 봄꽃의 향기가 가득 서린 산길을 걸으니 정말 속세(俗世)의 온갖 번뇌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난 기분이다. 번뇌들이여 제발 바람을 따라 저 멀리 훌쩍 날라가 버려라~~ 100년도 채우지
못할 인생 왜 이리 번뇌는 가득할까~~? 허나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또한 번뇌이다. 멀
리 날라가지 못하고, 산 아래서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해탈하기는 다 틀린 것 같다. 솔솔 나부
끼는 산바람은 에어컨보다 시원하여 정말 집으로 훔쳐오고 싶다.

산길 중간에는 과일과 채소를 기르는 밭이 펼쳐져 있다. 빌딩과 아파트, 호화 주택이 연상되는
강남하고는 전혀 맞지 않는 풍경~ 여기가 과연 서울 강남이 맞더냐..? 이런 별천지와 같은 풍경
은 그냥 지나치기가 아쉽다. 물론 서울이라고 높다란 건물만 있는 것은 아닌데, 사람들이 서울
에 대한 고정관념이 너무 강해서인지 이런 풍경에는 다소 어색해들 한다. 밭 너머로 보이는 강
남시내, 부디 이곳까지 개발의 칼질이 밀려오지 않기를 조심스럽게 바랄 뿐이다. 허공에 떠 있
는 구름도 이곳이 걱정되는지 잠시 길을 멈추고 강남을 굽어본다.

불국사는 과연 어떻게 생긴 절일까? 머리 속으로 대충 그곳을 그려보며 10여 분을 오르니 불국
사의 모습이 한걸음씩 다가오기 시작한다. 내가 그린 모습이 어느 정도 맞을까? 나의 입맛을 돋
군 약사여래불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떨리기 시작한다.

절 밑에는 옥계수가 흐르는 약수터가 있다. 보통 절에는 샘터가 하나씩은 있기 마련인데, 물맛
이 좋은지 물을 뜨는 사람들이 많다. 물은 수도꼭지 형태로 꼭지를 돌리면 물이 나온다. 이 샘
은 불국사에서 관리하는데, 저녁 9시부터 새벽 5시까지는 물을 잠궈둔다고 한다. 절에 오면 꼭
마시는 샘물, 바가지에 한 가득 담아 마시니 목구멍도 시원하다고 쾌재를 부른다. 물도 마셨으
니 이제 슬슬 절 구경을 해볼까 ~~ 우선 불국사의 내력에 대해 간단히 짚어보도록 하자.


♠ 대모산 북쪽 자락에 둥지를 튼 고려 후기 사찰
~ 대모산 불국사(大母山 佛國寺)

▲ 하늘을 가득 메운 연등의 물결

▲ 불국사에서 바라본 강남 시내

대모산 북쪽 자락에는 그 이름도 좋은 불국사가 조용히 안겨져 있다. 이곳은 약사여래를 중심으
로 한 약사도량(藥師道場)으로 태고종(太古宗) 소속의 절이다. 처음 생각과는 달리 상당히 조그
만 규모로 법당(法堂)인 약사보전과 삼성각, 나한전, 가건물 1채를 포함하여 약 5동의 사우(寺
宇)가 절집을 이루고 있다.

이 절은 특이하게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형태로 강남을 굽어보고 있다. 하지만 절의 지형을 보
면 정말 북쪽을 향해 지을 수 밖에 없으며, 건물을 새로 짓고 절을 넓히는 것도 그리 용이해 보
이지는 않는다. 가람배치는 법당 앞에 석탑 1기를 세운 1법당 1탑 배치로 일주문(一柱門) 등의
문은 없다. 우선 경내로 들어서려면 넓적한 돌계단을 올라야 되는데 정면으로 약사보전과 그곳
에 모셔진 약사여래불과 시선이 딱 마주친다.

약사보전 앞 뜰에는 알록달록 연등이 허공을 가득 메워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아직은 초
파일을 2일 앞둔 시점이라 사람은 별로 없었고, 승려와 신도들이 부산히 움직이며 초파일을 준
비하고 있었다. 그럼 불국사는 언제 창건되었을까?
고려 공민왕(恭愍王) 시절, 절 아랫마을에서 농부가 밭을 갈다가 석불(지금의 약사여래불)을 발
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마을 뒷산에 자리를 만들고 불상을 모셨는데, 진정국사(
眞靜國師)가 그 소식을 듣고 1385년 지금의 자리에 절을 세워 약사여래불을 모신 절이란 뜻에서
약사절(藥師寺)이라 했다고 한다.

그 이후 500년 동안 이렇다 할 내력을 남기지 못했으며, 조선 고종 시절에 대모산 남쪽 헌인릉
(獻仁陵)에서 물이 나오자 고종은 약사절 주지승에게 방도를 물었다고 한다. 주지승은 머리를
조아리며 대모산 동쪽(현 성지약수터)의 수맥을 끊으면 된다고 답을 올려 그렇게 조치를 취하니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고종은 고마움의 뜻으로 불국정토를 이루라는 뜻에서 '불
국사'란 이름을 내렸다고 하며. 그때부터 불국사란 이름을 지니게 된 것으로 보인다.

6.25전쟁 때 처참히 파괴되고 오로지 약사여래불만 남았는데, 1964년 안양 삼막사(三幕寺) 주지
인 권영선 승려의 노력으로 법당과 칠성각, 나한전을 세웠다. 그후 건물이 낡고 협소하여 현 주
지승이 1993년부터 3년 동안 대불사를 벌여 나한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을 다시 세우고, 탱화(幀
畵)를 새롭게 제작하는 등, 절을 새롭게 꾸며 지금에 이른다. 강남에서는 봉은사(奉恩寺) 다음
으로 오래된 절로 소장 문화유산으로는 절의 오랜 내력을 유일하게 증명하는 고려 후기 불상인
약사여래불이 있다.

강남구의 거의 유일한 산사(山寺)로 약사불의 인자함이 깃들여진 이곳은 일원동 아파트단지에서
불과 10여 분 거리로 접근이 편리하다. 시내와 가깝긴 하지만 한적하고 아늑한 산사의 멋과 여
유를 누리기에 그리 부족함은 없으며, 경주 불국사와 달리 두 눈에 쏙 들어올 정도로 아늑하여
은근히 정감이 간다.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정리하고 싶을 때 무작정 부비적거리고 싶은 그런 절
집이다.

절을 둘러보고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강남의 뒷동산인 대모산을 거닐어 보는 것도 괜찮다. 산세
가 완만하고 그리 높지 않아 가볍게 산책 삼아 오를 수 있으며, 정상까지는 40분 정도면 충분히
다다를 수 있다. 정상을 찍고 개포동이나 일원동, 자곡동, 세곡동, 헌인릉, 염곡동 방면으로 내
려갈 수 있으며, 정상에는 옛 대모산성(大母山城)의 흔적이 아련히 전한다.


▲ 불국사 5층석탑

♠ 불국사 찾아가기 (2009년 5월 기준)
① 지하철 3호선 일원역 5번 출구에서 450m가량 걸으면
대모산입구 4거리이다. 여기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불국
사로 들어가는 산길이 나온다. 일원역에서 불국사까진
걸어서 25분

시내(광화문, 여의도, 압구정역, 삼성역, 양재역)에
서 버스로 이동시
- 401, 402, 461, 4419번 시내버스를
타고 일원동 한솔아파트 하차, 걸어서 20분
수서역(1번 출구), 가락시장 방면에서 버스로 이동
시 -
16, 401, 402, 461, 4419번을 타고 푸른마을아파
트 하차, 바로 왼쪽으로 60m 가면 대모산입구 4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왼쪽으로 길 건너 불국사 이정표를 따
라 도보 20분

*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 산442
(☎ 02-445-4543)


♠ 불국사 나한전, 삼성각


▲ 불국사 나한전(羅漢殿)


▲ 나한전 내부

돌계단을 올라 경내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5층석
탑과 약사보전이 있고 그 좌측 높은 곳에 나한전
이 자리해 있다. 나한전은 고찰(古刹)의 내음이
거의 사라진 불국사에서 그나마 가장 오래된 건
물로 1964년에지어졌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을 얹힌 단촐한
모습으로 약사보전과 더불어 북쪽을 바라보고 있
다. 불단(佛壇)에는 석가여래와 관음보살(觀音菩
薩)등의 3존불이 있고 그 좌우로부처의 제자인
16나한(羅漢)이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자리를 지
킨다.


▲ 나한전 풍경물고기

절에서 풍경소리를 듣는 재미도 정말 쏠쏠하다. 혹 바람이 없어 풍경물고기가 가만히 쉬고 있는
경우는 손으로라도 그들을 흔들어 깨워 그 소리를 듣고 싶다. 풍경소리가 좀 단순하게 들릴 수
도 있겠지만, 듣는 순간 머리와 마음이 싹 정리가 된 듯, 뭔가 모르는 정신적 편안함이 밀려 오
는것 같다.
고즈넉한 산사의 정적을 조용히깨뜨려 주는 풍경물고기. 허공을바다로 삼고시원한 산바람을
파도로 삼은 물고기는 마치신이라도 난 듯, 부산히 몸을 움직여댄다. 그가 맨바닥에 혹 떨어
지지 않을까 꽉 붙들어 맨 바람방울(풍경)도 덩달아 춤을 추며 그윽한 풍경소리를 아낌없이 속
베푼다.

약사보전 앞에는 때깔과 맵시가 고운 5층석탑이 서 있다. 탑 주변으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하
얀 연등이 구름 마냥가득 서려 있어 마치 구름에 휩싸인 듯 하다.이 탑은 1993년 이후에 세워
진 불국사 유일의 탑으로 팔부중상(八部衆像), 용 등의 조각이 탑신(塔身)과 기단 곳곳을 빼곡
히 채워준다.

▲연등 사이로 간신히 고개를 내민
삼성각 현판

▲ 2층 구조의 삼성각(三聖閣)

약사보전 우측으로 'ㄱ'모습의 삼성각이 자리해 있다. 기존의 칠성각을 1993년에 새로 지은 것
으로 겉으로 보기에는 1층으로 보이나, 실은 2층이다, 그러니까 삼성각은 2층이 되며, 아랫층은
밥을 먹는 공양간과 요사 등의 생활공간으로 쓰인다.
삼성각은 우리나라의 토속신으로 불교의 일원이 된 산신(山神), 칠성신(七星神), 독성(獨聖)의
보금자리이다.


♠ 불국사 약사보전(藥師寶殿)과 약사여래불

약사보전(약사전)은 불국사의 법당이다. 절의 크기는 정말 손바닥만한데 반해, 약사보전이 다소
비례에 맞지 않게 큰 덩치를 지니고 있어 절이 더 협소해 보이는 것 같다.
약사전 앞에는 5층석탑이 서 있고 건물로 오르는 돌계단 앞에는 향을 피우는 향로 모양의 석물
이 있다. 돌계단 끝에는 수호의 의미를 지닌 2마리의 돌사자가 듬직하게 자리해 있는데, 가까이
서 보면 정말 쓰다듬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모습이다. 마치 사자의 탈을 쓴 고양이라고나 할까~


▲ 단란한 모습의 그들 ~ 약사보전 5존불


으례 법당이나 불전(佛殿)에는 하나의 불상 또는 3개의 불상 즉 3존불이 모셔져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관례를 비웃듯, 3존불도 아닌 무려 5존불을 봉안하여 눈길을 끈다. 왜 특이
하게 5존불로 불단을 장식했을까? 실제로 다른 절에서는 3존불 주변에 별도의 불상을 두는 사례
가 많고
―서울 조계사(曹溪寺) 대웅전에는 불단에 3존불이 있고, 우측 구석에 따로 관음보살이
있음―
불국사 같은 경우는 절의 확장이 용이하지 못해 다른 여래(如來)나 보살을 중심으로 하는
불전을 둘 수가 없으므로 그 역할을 약사전이 도맡아 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무난할 듯 싶다.
즉 약사전이라고 꼭 약사불만 집중적으로 다뤄야 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불단 가운데에 약사
전의 주인인 약사불을 높다랗게 배치하고 좌우로 보통 4개의 협시불(夾侍佛)을 배치하여 5존불
로 구성했다.

약사전의 5존불은 한결같이 하얀 피부를 지닌 백불(白佛)로 돌로 만든 석불이다. 자신을 찾은
중생들을 환한 표정으로 맞이하는 그들의 얼굴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다. 그들의
미소에 아무리 악귀라 한들 반하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할 것이다. 이들은 모두 연꽃이 새겨진
연화대좌(蓮花臺座)에 앉아들 있는데, 연꽃은 하늘을 우러러 꽃잎을 벌린 앙련(仰蓮)이다.

5존불 중 가장 맏이는 가운데에 자리한 약사여래불이다. 불국사의 상징이자 오랜 내력을 증명해
주는 소중한 보물로 나를 이곳으로 부른, 이곳의 존재를 알려준 주인공이다. 불국사의 주불(主
佛)답게 좌우에 거느린 불상보다 대좌의 높이가 높다. 그의 우측으로 육환장(六環杖)이란 기나
긴 지팡이를 든 승려머리의 불상은 지장보살(地藏菩薩)이며, 약사불 좌측에 금관(金冠)을 쓰고
가슴에 금색 장식을 단 이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이다. 양쪽 끝에 자리한 조그만 불상들은 그 정
체가 아리송한데, 아마도 문수보살(文殊菩薩)이나 보현보살(普賢菩薩)로 여겨진다. 이들 뒤로
부처를 중심으로 한 후불탱화가 든든히 자리한다.

◀ 불국사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 -
서울 지방문화재자료 36호


5존불 중 제일로 관심가는 존재는 단연 약사
여래불이다. 이 불상은 불국사 창건설화에
등장하는 석불로 정말로 밭에서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불국사는 이 불상을 토대로 약사
도량을 칭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절의 명맥
을 잇게 해준 소중한 존재이다.
그런데 기존의 고려시대 약사불과는 다소 차
이가 있어 처음부터 약사불은 아니었던 것으
로 보이며, 아미타불(阿彌陀佛) 등의 불상으
로 조성되었다가 나중에 약사불로 둔갑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불상의 높이는 79.5cm로
머리의 크기가 신체에 대비하여 너무 크다.
하얀 피부의 몸과 달리 머리는 검은 색이며
꼽슬인 나발이다.

머리 꼭대기에는 육계로 보이는 하얀 혹이 솟아 있으며, 홍예처럼 구부러진 눈썹 사이로 백호가
있다. 지그시 뜬 두 눈으로 중생을 바라보는 약사불의 표정은 그야말로 인자함이 느껴진다. 오
뚝 솟은 코와 붉은 입술, 살이 두툼해 보이는 양쪽 볼은 정말 손으로 비벼보고 싶다. 두 귀는
중생들의 소망을 하나도 빠짐없이 접수하려는 듯, 안테나처럼 크다.

그의 몸을 걸친 법의(法衣)는 석굴암(石窟庵)의 본존불처럼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
런 형태를 유식한 말로 우견편단(右肩偏袒)이라고 한다. 다리 위에 놓여진 두 손은 선정인(禪定
印)을 취하고 있으며, 손 위로 알 모양의 빨간색 물건이 있는데, 이는 약사불이 늘 지니고 다니
는 약합(藥盒)이다. 약합에는 중생들의 아픔을 치료해 주기 위한 그만의 만병통치약이 들어 있
을 것이다.

원래는 맨돌의 불상이었으나 나중에 호분
(胡粉, 조개껍데기를 태워서 만든 것으로 여자들 화장
용으로 많이 사용)
을 칠해 지금처럼 백불이 되었다. 호분을 여러 번 떡칠하여 원래의 모습을 많
이 잃었다고 한다. 나말여초(羅末麗初) 시절에 유행했던 불상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머리와 신
체의 비례가 맞지 않으며, 자연스럽지 않은 옷주름 조각 등으로 고려 후기 것으로 여겨진다.

불상을 둘러보는 중, 아줌마 신도 2명이 들어온다. 그들은 꽃과 병을 한아름 들고 와 5존불 주
변을 꽃으로 치장한다. 일일이 꽃꽂이를 하는 그들의 모습에는 석가여래와 약사불에 대한 지극
정성이 가득 깃들여져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의 양해를 구하며 초파일을 준비하는 모
습의 일부를 그렇게 지켜보았다. 치장이 끝나자 꽃 때문에 그런지 5존불의 인상이 더 환해진 것
같다. 안그래도 하얀 불상이라 어두운 곳에서도 환하게 보이는데, 너무 환해 눈이 멀 지경이다.

약사불과 5존불에게 조그만 소망 하나를 올리고 잠시 머물러 있다가, 불국사를 뒤로 하며 다시
속세로 나왔다. 지금 내가 있어야 될 곳은 극락도 아니고 절도 아닌 바로 아비규환의 속세이기
때문이다.

두 눈에 쏙 들어올 정도로 아담한 불국사, 3분이면 다 둘러보고도 남음이 있으나, 강남 시내를
앞뜰로 삼으며 산자락에 아늑히 안긴 산사로
지나치게 외형만을 추구하는 커다란 절보다는 은근
히 정감이 가는 곳이다.

이렇게 하여 불국사 답사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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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촬영 일시 - 2008년 5월 10일
*작성 시작일 - 2008년 8월 2일
*작성 완료일 - 2008년 8월 11일
*숙성기간 ~ 2008년 8월 11일 ~ 2009년 5월 6일
*공개일 - 2009년 5월 6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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