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추천명소'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2.08.08 태백 검룡소, 구문소 여름 나들이 (금대봉골, 황지천)
  2. 2015.10.03 하늘과 맞닿은 강원도의 남쪽 지붕 ~ 정선 함백산, 만항재 (야생화탐방로)
  3. 2014.02.12 눈꽃의 향연 속으로 ~ 태백산 눈꽃 나들이 (당골, 눈꽃축제장, 석탄박물관)

태백 검룡소, 구문소 여름 나들이 (금대봉골, 황지천)

태백 검룡소, 구문소



' 태백 검룡소, 구문소 여름 나들이 '

태백 검룡소
▲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

태백 구문소 검룡소 숲길

▲  태백 구문소

▲  검룡소 숲길

 



 

1년의 절반이 뉘엿뉘엿 저물던 6월의 끝 무렵, 태백산맥 한복판에 자리한 고원(高原)의
도시, 태백(太白)을 찾았다.

아침 일찍, 청량리역에서 동해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3시간 반을 달려 태백역에
도착, 여기서 일행을 만나 택시를 잡아타고 20분 정도를 달려 태백시 북쪽 끝에 자리한
검룡소로 들어갔다.



 

♠  한강의 고향이자 발원지, 태백 검룡소(儉龍沼) - 명승 73호

▲  한강의 발원지임을 강조하는 검룡소 표석

대덕산(大德山, 1307m)과 금대봉(金臺峰, 1418m) 사이 골짜기(금대봉골)에 묻힌 검룡소는 한
강의 고향이자 발원지로 유명하다. 정확히는 남한강(南漢江)의 시작점으로 여기서 작은 계곡
으로 시작된 물줄기는 점차 하천, 강으로 몸집을 불리며 정선과 평창, 영월, 단양, 충주, 여
주, 양평, 남양주, 서울, 고양을 거쳐 서해바다로 흘러간다.
한강의 길이는 약 514.4km로 잃어버린 땅을 제외한 이 땅에서 낙동강(洛東江) 다음으로 길며,
1987년 국립지리원(국토지리정보원)에서 도상실측 결과 검룡소를 최장 발원지로 공식 인정했
다.

검룡소는 1억 5천만 년 전, 백악기(白堊紀)에 형성된 석회암동굴 소(沼)로 매일 2,000~3,000
톤의 지하수를 내뿜고 있으며, 수온(水溫)은 4계절 모두 9도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작은 계
단식 폭포가 20m 이상 줄지어 있고, 깊이 1~1.5m, 폭 1~2m 정도로 암반이 파여 그곳으로 물이
흐르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용틀임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옛 사람들이 그 모습에 맞게 적
당한 전설을 지어 붙이니 내용은 대략 이렇다.

호랑이가 담배 맛을 알아가던 어느 옛날, 서해바다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려고 한강 물줄기
를 열심히 거슬러 올라갔다. 한참을 가다 보니 어느덧 종점인 검룡소에 이르렀는데, 더 갈 곳
이 없어 몸부림을 치니 그 흔적이 바로 검룡소 폭포라는 것이다.
이후 이곳에 살면서 목이 말라서 찾아온 소를 잡아먹는 등, 말썽을 피우자 열받은 동네 사람
들이 소를 메워버렸다고 한다. 전설이야 어쨌든 소(못)가 메워진 것은 사실이며 1986년에 태
백문화원에서 메워진 못을 복원하고 주변을 정비해 예전의 모습을 거의 되찾았다.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는 일이 거의 없으며 늘 비슷한 양의 물이 나와 한강수를 채
우니 자못 신기하기 그지 없다.

참고로 태백은 한강 뿐만 아니라 낙동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태백시내에 있는 황지(黃池)가
낙동강의 시작점으로 천하의 큰 물줄기 2개가 태백을 고향으로 하고 있으니 태백산 그늘에 자
리한 태백이 예사로운 지역이 아님을 느끼게 한다.

주차장에서 검룡소까지 20~25분 정도 걸리며 탐방로가 잘 닦여져 있다. 중간에 대덕산으로 이
어지는 산길이 있으며 문화재 및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검룡소와 계곡(금대봉골) 주변은 출입
이 통제되어 있다. 또한 검룡소는 태백산국립공원의 일원이기도 하다.


▲  검룡소 숲길에 들어서다.

검룡소 일대는 숲이 매우 빽빽하다. 예사롭지 않은 계곡과 못(소), 그리고 완전 청정한 대기
와 계곡물까지 갖추고 있어 도끼자루가 금방 썩어난다는 난가(爛柯) 속 세상은 바로 이런 곳
이 아닐까 싶다. 이런 곳이라면 신선이나 선녀(仙女) 누님이 살아도 이상할 것은 없다.


▲  늘씬하게 솟아나 하늘을 찌르는 나무들
이곳의 맑은 기운을 맡으니 잠시나마 10년은 젊어진 것 같다.
(무심한 세월에 언제나 고통받는 우리네 인생 ㅠㅠ)

▲  하늘도 쌈 싸 먹을 정도로 깊게 우거진 검룡소 숲
숲이 얼마나 빽빽한지 한낮에도 거의 어두울 정도이다.

▲  검룡소의 깊은 숲속으로 ①

▲  검룡소의 깊은 숲속으로 ②

▲  숲 사이로 보이는 금대봉골(검룡소계곡)
계곡 일대는 금지 구역으로 꽁꽁 묶여있다. 그러니 계곡과 자연이
고통받지 않도록 멋대로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한다.

▲  푸른 이끼가 두텁게 낀 금대봉골
따닥따닥 붙은 푸른 물이끼는 이곳이 때묻지 않은 청정한 곳임을 보여준다.

▲  하늘의 조그만 거울 같은 금대봉골
하늘과 지나가는 구름, 햇님, 달님, 주변 수목들이 앞다투어 거울로 삼으며
자신의 매뭇새를 다듬는다.

▲  검룡소 나무데크길
나무데크길을 닦은 것은 탐방과 이동 편의도 있지만 흙과 식물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목적도 있다. 저들을 닦음으로써 흙과 그 흙에 의지한 식물들이 인간의 발에서
다소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대신 데크길 관리는 철저히 해야됨)

▲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한강의 원초적 고향, 검룡소

검룡소 탐방로의 끝에는 이곳의 중심인 검룡소가 있다. 이곳은 해발 900~950m대 고지로 검룡
소를 이루는 저 조그만 폭포와 개울에서 한강이 거룩하게 시작된다. 저 작은 물줄기가 내가
살고 있는 천하 제일의 대도시 서울까지 간다니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곳은 탐방로의 끝으로 더 이상 길은 없으며 검룡소를 비롯한 탐방로 바깥은 금지된 공간이
라 넘어가서는 안된다.


▲  확대해서 바라본 검룡소

▲  금대봉골을 가로지르는 나무데크 다리 (검룡소 직전)

이렇게 검룡소를 둘러보고 다시 주차장으로 나왔다. 한강과 관련된 검룡소를 봤으니 이제 낙
동강과 관련된 현장을 보는 것이 딱 적당할 것이다. 낙동강은 앞서 이른데로 태백 도심인 황
지에서 시작되는데 황지는 여러 번 인연을 지었던 곳이라 그리 땡기지가 않아서 그곳 대신 태
백 남쪽 끝에 자리한 구문소를 찾기로 했다.

검룡소에서 구문소까지는 태백 땅을 완전 남북으로 가로질러 가야되는데 시내까지 가는 버스
편도 여의치 않아 앞서 탔던 택시를 소환하여 가기로 했다. (택시 운전사가 연락처를 알려주
고 갔음)
하여 택시를 부르니 거의 20분 만에 나타났고, 그를 타고 남쪽으로 40분 가까이를 달려 구문
소에 이르렀다.

* 검룡소 소재지 :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산1-1 (☎ 033-550-2828)



 

♠  낙동강이 오랜 세월 빚은 작품, 고생대의 환경과 지형에 대해
아낌없이 해답을 주는 태백 구문소(求門沼) - 천연기념물 417호

▲  거대한 돌문과 깊은 못으로 이루어진 구문소

태백 구문소는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의 최상류, 황지천과 통리(通里) 서쪽 산자락에서 시작
된 철암천(鐵岩川)이 만나는 곳이다. 석회동굴이 땅 위에 드러난 커다란 동굴로 '구문'은 구
멍, 굴의 강원도 방언이며 '구무소'라 불리기도 한다.

구문소를 이루는 석회암에는 건열, 물결의 자국, 소금 흔적 등의 퇴적구조와 삼엽충(三葉蟲),
완족류(完足類), 두족류(頭足類) 등의 옛 생물들의 화석(化石)이 나오고 있어 하부 고생대의
퇴적환경과 생물상을 살펴 볼 수 있다. 또한 구문소 동굴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산이 황지천
(낙동강) 물줄기에 의해 뚫린 굴로 하천 물길의 변천을 연구하기에 아주 그만이며 주변 암벽
등과 함께 침식지형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해발 550m에 자리한 이곳은 약 5억년 전에는 적도 부근 바다였다고 하며 한반도의 고향이 어
디였는지를 알려주는 현장으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천천(穿川, 구멍 뚫린 하
천)'이란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어 오래전부터 적지 않게 존재감이 있던 곳이다.

구문소 서쪽과 동쪽에는 마치 단단한 성벽처럼 깎아지른 벼랑이 있으며, 서쪽 벼랑 밑도리에
도 굴이 있다. 허나 그 굴은 사람과 차량 통행을 위해 인간이 뚫은 것으로 그 앞에 콘크리트
덩어리가 두텁게 깔려져 적지 않게 옥의 티를 선사한다.
지금이야 우회도로가 생겨 차량 통행이 많이 줄었지만 예전에는 태백에서 석포, 봉화(奉化)로
넘어가는 길은 여기 밖에 없었다. 그래서 부득이 이곳에 굴을 뚫고 콘크리트 길을 깐 것이다.
(지금은 태백시내, 장성 방향만 통행 가능, 반대 방향은 서쪽 동점터널을 이용해야 됨)


▲  구문소에 있는 2개의 굴 (왼쪽은 차량 통행을 위해 인공으로 뚫은 굴)

구문소의 신비로운 절경에 대한 탄성 만큼이나 구문소에 얽힌 전설도 참 많다.
① 구문소는 수심이 깊어 자살하는 사람이 종종 있었는데 그러면 며칠 안에 꼭 비가 내려 자
살한 이의 부정함을 말끔히 씻는다고 한다.

② 안동(安東)에 영호루(映湖樓)를 지을 때, 대들보로 쓸 싸리나무를 화전동 싸리밭골에서 구
해 황지천에 띄워 운반하던 중, 갑작스러운 홍수로 급류에 휩쓸리며 정신없이 떠내려가다 이
곳 절벽을 세게 때리면서 그 충격으로 큰 구멍이 뚫렸다고 한다. 그래서 부근으로 우회하던
황지천의 물줄기가 이 구멍으로 흐르게 되었다고 한다. (하천 유수에 의해 구문소가 형성되었
음을 보여주는 전설임)

③ 온 세상이 거의 워터월드였던 초고대 시절, 중원대륙(서토) 고대 전설에 나오는 하우씨(夏
禹氏)가 이곳에 와서 칼을 내리치니 그 충격으로 물이 모두 빠져 태백 지역은 비로소 바다 위
로 솟아났다고 한다. <중원대륙 모화사상(慕華思想)에 빠진 어느 생각 없는 선비나 유생이 지
어낸 것으로 여겨짐>

④ 구문소에 구멍이 뚫리기 전, 석벽(石壁)을 사이에 두고 동쪽 철암천(鐵岩川) 큰 소(沼)에
청룡이 살고 있었고, 서쪽 황지천에는 백룡(白龍)이 있었다. 그들은 낙동강의 지배권을 두고
항상 티격태격 싸웠으나 좀처럼 승부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백룡이 편법으로 석벽 밑에 굴
을 파고는 석벽 꼭대기에서 싸우는 척 하다가 그 굴로 청룡을 기습하여 몰아냈는데 그 여세를
몰아 하늘로 승천했다고 한다.
그가 승천할 때 지나친 산을 '용우이산'이라고 하며 바로 구문소 앞에 솟은 산이다. <경치가
멋드러진 곳의 전설에는 선녀나 신선, 용이 단골로 등장한다>

⑤ 옛날에 이곳에서 고기를 잡아 생활하던 엄종한(嚴宗漢)이란 어부가 있었다. 하루는 구문소
에 쳐놓은 그물이 사라져 그물을 찾던 중, 실수로 물에 빠지고 말았는데 물 속으로 한없이 빨
려 들어가면서 용왕이 사는 용궁(龍宮)에 이르게 되었다.
어부는 용왕이 사는 곳이라 여기고 용궁으로 들어갔는데 궁문(宮門)에 자기가 찾던 그물이 걸
려있어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물을 가져가려고 하니, 안에서 노인(용왕)이 나와
'여기는 인간들의 세상이 아닌데 어떻게 왔냐?'
물었다.
이에 엄씨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노인이
'내 아들이 그물 때문에 자칫 죽을 뻔했다. 너가 그물의 주인인 걸 알면 반드시 가만두지 않
을 터이니 어여 도망쳐라'

엄씨 왈 '길을 모르는데 어찌 가란 말이냐? 제발 도와주셔~'
용왕 왈 '흰 강아지 1마리를 줄테니 따라 가라. 그리고 배고프면 이 떡을 먹도록 ~~'

엄씨는 강아지를 따라 떡을 먹으면서 주변 경치를 구경하다가 드디어 물 밖으로 나왔다. 밖으
로 나와보니 무당 굿소리와 함께 조문객들이 왔다 갔다 해서 무슨 일인가 살펴보니 글쎄 그의
두 아들이 부친이 물에 빠져 죽은 지 3년이 되었다며 3주기 제사를 지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
물을 찾아 잠깐 수중에 갔다 왔을 뿐인데 그 잠깐 동안 무려 3년이 훌쩍 가버린 것이다.

이후 강아지는 천수를 누리다 죽었고 그 강아지를 관에 넣어 산에 묻어주었다. 그리고 용궁에
서 가져온 남은 떡은 딱딱한 돌이 되어 용궁 여행 기념으로 길이 간직해 두었더니 날이 갈 수
록 가세(家勢)가 번창하여 부자가 되어 잘 살았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이니 용궁을
보겠다며 구문소로 풍덩하는 일이 없기를 바람)

* 구문소 소재지 :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 산6-3 (동태백로 11)


▲  동굴 안 구문소의 위엄
소 안에 신룡(神龍)이 살던 굴이 있다고 하는데 못이 하도 깊어서 어느 누구도 깊이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만큼 구문소는 옛 사람들의 호기심과 함께 두려움도 듬뿍
안겨주던 곳으로 용왕에게 제를 지내던 민간신앙의 현장이기도 하다.

▲  구문소 안쪽 암벽에 새겨진 바위글씨
배가 아니면 접근도 불가능한 저곳에 옛 사람들의 낙서가 새겨져 있다. 눈이
침침하여 무슨 글씨인지는 모르겠으나 못 수심이 깊고 사방이 깎아지른
벼랑이라 보기만 해도 염통이 쫄깃해진다.

▲  구문소 전설에 나오는 백룡상

편법으로 청룡을 몰아내고 낙동강과 하늘을 거머쥐었다는 그 백룡이다. 불의(不義)가 판치는
이 땅에서는 편법과 불법을 써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니 옛 사람들이 만든 백룡과 청룡 전
설이 정말로 소름이 돋는다.


▲  구문소 북쪽에서 바라본 구문소 동굴
이렇게 보니 어두운 어딘가로 통하는 무시무시한 구멍 같다.
마치 지옥의 문 같은...

▲  주름진 바위들이 켜켜히 자리한 구문소 북쪽 황지천
(한복판에 보이는 검은 구멍이 구문소)

▲  구문소 북쪽 황지천 ①

건열 구조와 물결 흔적 등 대자연이 오랜 세월을 두고 다듬은 신기한 흔적들이 역력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구문소 일대는 '태백 구문소 오르도비스기 지층과 제4기 하식지형(河蝕地形)'
란 긴 이름으로 국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구문소 북쪽 황지천 ②

이곳 바위와 암반은 거의 석회암으로 마치 화산 용암이 곳곳을 들쑤시며 흐르다가 그대로 굳
어버린 듯 꽤나 울퉁불퉁하다. 이곳 이전까지는 하천 폭이 넓어 사이좋게 흘러갔으나 이곳에
이르러 그 폭이 현저히 좁아지고 물줄기 또한 비포장처럼 완만하지 못하면서 서로 먼저 갈려
고 아우성을 치는 통에 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요란벅적하다. 옆 사람과의 대화
가 거의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  구문소 북쪽 황지천 ③
왼쪽에 보이는 하늘색 존재는 자개루로 인도하는 다리이다.

▲  자개루로 인도하는 다리

다리 바로 옆에는 황지천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구문소 일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
싼 공간이라 거의 금지된 구역으로 묶여 있으나 이곳만큼은 개방이 되어있어 황지천 주변 암
반으로 직접 발을 들일 수 있다.
그곳에는 대자연의 오랜 메세지가 바위에 겹겹히 담겨져 있어 직접 살펴보는 것도 좋다. 그러
니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여행이거나, 지구과학과 자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북쪽에
있는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과 이곳 황지천 암반은 꼭 살펴보기 바란다. (단 황지천 물살이
꽤 성질이 있고 바위 피부가 거칠고 미끄러우니 주의하기 바람)


▲  자개루로 인도하는 다리에서 바라본 황지천
구문소 북쪽에는 태백 고생대자연사박물관이 있다. 그곳도 보려고 했으나
시간 부족과 귀차니즘을 구실로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으로 넘겨버렸다.

▲  구문소 자개루(子開樓)

구문소 언덕 정상에는 자개루란 팔작지붕 누각(樓閣)이 있다. 구문소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으로 이곳에 오르면 구문소 주변과 황지천이 훤히 발 아래로 펼쳐지고 주변 뫼들도 나와 비
슷한 눈높이로 나를 바라본다. 단 구문소와 동굴은 바로 밑에 있으므로 보이지 않는다.

자개루는 태백 고생대자연사박물관에서 올라가는 길과 구문소 주차장(구문소 버스정류장)에서
올라가는 길이 있어 주차장 쪽으로 내려가 구문소 주변을 다시 복습하고 10년 만에 다시 찾은
구문소와 작별을 고한다. 다음 인연은 언제쯤 닿을지는 태백산 산신(山神)도 모르는 실정이나
최소 1번 이상은 닿지 않을까 싶다.

이후 내용은 별도의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으며 본글은 여기서 흔쾌히 마무리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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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2년 7월 20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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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맞닿은 강원도의 남쪽 지붕 ~ 정선 함백산, 만항재 (야생화탐방로)

 


' 강원도의 남쪽 지붕, 함백산(咸白山) 나들이 '

▲  함백산 꼭대기


 


얄미운 여름 제국(帝國)이 한참 기반을 다지던 6월 끝 무렵에 일행들과 강원도 태백, 정선 지
역을 찾았다.
오전에 삼척(三陟) 통리협곡에 숨어있는 미인폭포(美人瀑布)를 둘러보고 태백(太白)으로 넘어
와 돌솥밥정식으로 배불리 점심을 먹으며 시장한 배를 달랜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그날의 마
지막 답사지인 함백산으로 이동했다.

태백에서 고한으로 이어지는 38번 국도를 따라 두문동재터널을 지나는데 이 터널이 생기기 전
에는 한계령(寒溪嶺)이 애교로 보일 정도로 꽤나 험준함을 자랑하던 두문동재(싸리재)를 뱀의
허리에 올라탄 듯 꼬불꼬불 넘어야 했다. 싸리재의 높이는 무려 1268m, 약 20여 년 전 고한에
서 태백으로 가는 완행버스를 타고 넘은 적이 있었지. 그 시절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느
새 고개 밑에 땅굴이 뚫려 고개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두문동재를 넘어 고한읍을 코앞에 둔 상갈래3거리에서 함백산로로 좌회전하여 잠시 태백선 철
로와 나란히 달린다. 허나 정암터널에서 철로는 사라지고 대신 정선 굴지의 명소로 추앙을 받
는 정암사(淨巖寺)가 잠시 들렸다가라며 손을 내민다. 이곳은 수마노탑(水瑪瑙塔)으로 유명한
절로 거의 10여 년 전, 발자국을 남긴 바가 있다. 그때의 빛바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가
무섭게 정암사를 지나쳐 한적한 고갯길을 정신없이 오르니 1100m 고지에 자리한 만항(晩項)마
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만항마을(고한1리)은 만항재 북쪽에 자리한 깊은 산골로 왜정 때 탄광이 개발되면서 1970년대
까지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하지만 석탄의 시대가 저물면서 정선,태백 일대를 검게 주름잡던
탄광(炭鑛) 상당수가 문을 닫았고, 만항마을의 탄광 역시 그 거친 흐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
라지면서 존재감도 느끼기 힘든 적막한 마을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가 대자연이 내린 소중한 선물을 바탕으로 매년 여름에 함백산 야생화축제롤 속세에 선
보이면서 마을의 부흥을 다시 꿈꾸고 있다.

만항마을을 지나 만항재를 힘겹게 오르던 버스는 함백산 소공원에서 그 장대한 바퀴를 멈춘다.
이곳은 만항재쉼터(약 1300m) 동쪽으로 함백산 등산로 기점의 하나이다. 이미 해발 1300m까지
편하게 올라왔으니 여기서부터 달랑 해발 273m 정도만 오르면 된다. 꼭대기까지는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고 하며 등산이 싫은 사람은 이곳에 펼쳐진 야생화를 둘러보라고 그런다. 허나 야
생화는 아직 철이 아닌지라 꽃망울을 터트린 꽃은 별로 없었고, 나는 함백산에 마음을 빼앗긴
상태라 함백산 트래킹에 나섰다.

우리가 오른 만항재는 북한과 만주, 왜열도 등, 실지(失地)를 제외한 이 땅에서 가장 높은 고
개로 4발 수레로 속편히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만항재의 높이는 1,330m로 고한과 태백산(太白山) 북쪽을 이어주며, 탄광의 쇠퇴와 주변 도로
의 개선으로 많이 한가해졌으나, 근래 관광/드라이브 수요가 많이 늘어났다. 천상(天上)의 드
라이브 코스로 명성을 누리고 있지만 고개의 굽이가 각박하고 난이도가 높으니 각별히 주의가
요망된다. 단순히 인왕산길/북악산길을 생각하고 오면 큰 오산이다.


▲  만항재 야생화 탐방로 입구
저 숲속에 많은 야생화들이 수줍은 미소를 머금으며 숨어있다. 이 탐방로는
만항재쉼터까지 이어진다.

▲  야생화 옆에 심어진 야생화 탐방로 표석


♠  구름 속의 등산, 함백산 더듬기

▲  함백산 만항재 기점

함백산으로 오르는 등산 기점은 만항재와 적조암입구(만항마을 북쪽), 두문동재, 태백 절골 등
이 있다. 이중에서 가장 쉬운 코스는 만항재로 1시간 20분이면 정상에 이른다. 우리가 가는 코
스가 바로 만항재 코스로 기점에서 윗사진에 나온 창옥봉(1238m)을 넘으면 커다란 산이 앞에 나
타나는데, 그 산이 바로 함백산이다. 산행 시간을 조금이나마 줄이고 싶다면 태백선수촌과 오투
리조트로 넘어가는 수레길로 가면 함백산 아랫도리이다. (창옥봉 산길과 만남)

창옥봉 코스는 경사가 완만하고 숲이 무성하여 오르는데 별로 힘든 것은 없으나 문제는 함백산
이다. 꽤 높은 산이다보니 가까운 거리임에도 오르는 것이 만만치가 않다. 그렇다고 낭떠러지나
암벽을 타야 되는 정도는 아니지만 산길 경사가 속세살이처럼 무척이나 각박하다. 게다가 날씨
도 여름이니 힘든 정도는 더하다. 그래서 40명이 넘는 일행 중 함백산 정상까지 오른 이는 12명
에 불과하며, 18명 정도는 중간 포기, 10여 명은 아예 만항재 야생화밭에 눌러앉았다.

해발 1,300m가 넘는 만항재와 함백산 주변은 하늘과 무척이나 가까운 곳이라 그런지 한기가 느
껴질 정도로 선선하며, 사방이 구름으로 덮여있다. 그래서 시야도 썩 좋은 편은 아니다. 거기에
안개까지 손을 보태면서 시야는 더욱 흐려진다. 하얀 구름이 산길을 오르는 나의 몸을 관통해
지나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진한 구름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이다.
아직 야생화철이 아니라 피어있는 꽃은 적지만 온갖 수풀들이 앞다투어 자라나고 있으며, 숲도
제법 울창하여 천상의 화원(花園)이 따로 없다. 하늘과 가까워질수록 숲은 조금씩 변화를 보이
는데, 정상에 가까워지면 하늘을 가리고 선 숲은 사라지고 잡초만 무성하다. 거기에 오리무중(
五里霧中) 보다 더한 안개까지 자욱히 끼었으니 인간이 가서는 안될 하늘나라나 신선 세계의 경
계를 넘어선 것은 아닌지 걱정까지 들 정도이다. 갑자기 신선이나 하늘나라 관계자가 튀어나와
왜 우리 경계를 침범했냐고 잡아갈 것 같은 분위기였지. 만약 정말 그렇다면 뭐라고 변명을 해
야 될까? 그냥 길이 있어서 올라왔다고 하면 되려나?

하늘과는 한뼘도 안될 정도로 높은 함백산 정상에는 정상 표석과 돌탑이 세워져 신비로운 풍경
을 더해준다. 물론 표석과 돌탑은 근래에 세운 것이다. 힘들게 정상까지 올라와 마치 새나 용의
등에 올라탄 듯 천하를 바라보는 재미도 참 쏠쏠한데, 안개가 주변을 싹 지워버렸으니 굽어보는
재미 마저 없다. 솔직히 20m 앞도 흐릿하게 보일 정도이다.


▲  함백산 서쪽인 창옥봉 산길
오르막으로 시작된 산길은 이곳에서 조금 급해진다. 허나 이곳을 지나면
다시 진정을 되찾으면서 마실 수준으로 길이 완만해진다.

▲  실타래처럼 가늘게 변하는 창옥봉 산길

▲  숲터널을 이룬 산길 -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하니
혹 하늘 위로 올라선 것은 아닐까?

▲  창옥봉 정상(1238m)에 자리한 함백산 기원단(祈願壇)

창옥봉 정상부에는 태백산 천제단(天祭壇)과 비슷하게 생긴 돌로 쌓은 제단(祭壇)이 있어 마음
을 잠시 숙연하게 만든다.
함백산 기원단이라 불리는 이 제단은 큰 돌로 고인돌처럼 얹혀 제단을 만들고 그 3면에 돌로 담
을 두른 형태로 오랜 옛날부터 주변 백성들이 하늘에 제를 올리고 소원을 들이밀던 민간신앙의
현장으로 전해진다.

왜정 이후 함백산 주변에 많은 탄광이 들어서자 붕괴사고를 비롯한 온갖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
났는데, 광부의 가족들이 이곳을 찾아 무사 안전을 기도했다. 허나 탄광이 사라지면서 그 풍습
도 사라졌고 지금은 함백산을 꾸며주는 오랜 장식물이자 산악/민간신앙의 현장으로 조용히 자리
를 지킨다.


▲  기원단 바깥부분 (기원단 돌담)

▲  함백산의 위엄

창옥봉을 넘어서니 바로 앞에 커다란 산이 우리를 단단히 주눅들게 만든다. 저 산이 바로 우리
가 올라야 될 함백산. 그래도 꽤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물론 거리상으
로는 절반은 왔음) 지금까지 함백산의 조삼모사(朝三暮四) 장난에 보기 좋게 속은 것이다. 본격
적인 산행은 이제부터~~~ 지금까지는 그저 몸풀기용.. 비로소 본색을 드러낸 함백산의 위엄 앞
에 일행 상당수는 기가 질려 산행을 포기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  함백산 남쪽을 가로질러 태백선수촌, 오투리조트로 넘어가는 서학로

▲  함백산으로 오르는 산길
서학로와 만나는 곳에서 함백산 정상까지 40분 정도를 더 올라가야 된다.
처음에야 경사가 만만하지만 하늘과 가까워질 수록 서서히 각박해진다.

▲  함백산 정상부 산길 (1)

경사가 각박한 숲길을 힘겹게 올라서면 키 작은 나무와 잡초만 무성한 함백산 정상부에 이른다.
하늘과 지척이라 안개가 자욱하여 주변이 보이질 않는다. 이 길을 계속 가면 나도 저 안개 속에
묻혀 속세에서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함백산 꼭대기를 인간들에게 보이기 싫은 하늘의 수
작을 뚫고 계속 길을 임한다.


▲  함백산 정상부 산길 (2)
정상은 가까워진 듯 싶은데, 안개가 떼어갔는지 좀처럼 나오질 않는다.

▲  함백산 정상 밑에 자리한 동그란 함백산 안내문

▲  함백산 안내문에서 싸리재, 적조암입구로 내려가는 길

▲  안개에 둘러싸여 희미하게 보이는 돌탑이 바로 함백산 정상(1572.9m)이다.

▲  드디어 도착했다. 함백산 정상 (정상 표석과 돌탑)

함백산이 내린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드디어 당당하게 함백산 정상에 두 발을 딛는다. 나의 등
장에 함백산도 조금은 쫄았는지 급히 안개를 소환하여 정상 주변을 안개로 두르나 소용이 없는
짓이다. 이미 정상은 나에게 적나라하게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일행 가운데 3번째로 정상에 도착했는데, 정상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서 오른 이들은 내
려갔음) 아무도 없는 꼭대기에 나홀로 있으니 마치 산신이 되어 산을 접수한 기분이다. 정상을
하얗게 감싼 안개는 함백산을 신비로운 풍경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하늘과 가까운 이곳에 발을
들이면 마치 큰일날 것처럼 말이다. 허나 이곳도 엄연한 인간의 세상이다. 하늘과 가깝다고는
해도 하늘의 세상은 아닌 것이다.

함백산(1572.9m)은 북한과 만주, 왜열도 등 잃어버린 땅을 제외한 이 땅에서 6번째로 높은 산이
다. 태백산 북쪽에 자리해 있으며, 태백시 서쪽을 크게 감싸고 있는데, 예전 이름은 대박산(大
朴山)이었다. 신경준(申景濬)의 산경표(山經表)에는 대박산으로 나와 있으며, 함박산(函朴山)이
라 불리기도 했다.
이 산은 상/중/하함박산이 있어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며, 상함박산은 지금의 은
대봉, 중함박산은 본적산, 하함박산은 바로 이곳이다. 대박/함박이라 불리던 것이 언제부터 함
백산으로 이름이 갈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에 변경된 것으로 보이며, 함백이나 대박,
함박 모두 '크게 밝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인근 태백산에 가려 존재감이 덜하긴 하지만 태백
산 못지 않게 위엄 돋는 산이다.

함백산 정상에는 근래에 세운 함백산 표석과 돌탑이 제단처럼 자리해 있는데, 표석은 네모난 단
(壇) 위에 세워져 있으며, 돌탑은 그 뒤에 자리해 표석을 수식한다. 내가 오른 산 가운데서 2번
째로 높은 산으로 제일 높은 곳은 한라산(漢拏山, 1950m)이고, 그 다음이 이곳 함백산이다.

정상 일대는 선선함을 넘어 쌀쌀하다. 여름의 제국도 고개를 숙이고 비켜간다는 함백산, 무더위
는 함백산과 태백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그 쌀쌀한 정상을 혼자 지키고 있으니 잠시 뒤 다른
일행들도 쏙쏙 모습을 드러내 꼭대기로 올라온다. 그래서 앞서 간 사람 2명을 포함해 12명이 정
상을 찍게 되었다.
정상에 올랐으면 내려가는 것도 당연한 일인데, 사람의 마음이 그렇지가 못해 계속 정상에 머물
고 싶은 욕심이 일어난다. 등산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고, 정상에 올라섰으면 적당히 머물다가
내려가야 뒷탈이 없는데, 그걸 지키지 못해 탈이 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산도 마찬가지로 정상
에 왔으면 잠시 머물다가 다음 사람을 위해 넘겨주는 것이 예의이지만 기념사진을 찍는다 뭐한
다 해서 금방 비켜주지를 않는다. 정상이란 그저 잠시 지나가는 경유지일뿐인데, 왜 이리도 욕
심이 큰지 특히나 이 땅의 상류층과 위정자들이 더한 것 같다. 적당히 먹고 좀 내려와라. 많이
먹었다 아이가..?

하늘을 향한 비밀의 문 같은 함백산 정상에서 약 15분 정도 머문 것 같다. 힘들게 올라온 정상
과 작별하기가 너무 아쉬워 제일 끝으로 내려갔는데, 그래도 아쉬운지 몇 번이나 정상을 돌아봤
는지 모른다. 다음에 또 인연이 있을까?? 서울에서 가까우면 종종 찾아오겠는데, 500리가 넘는
곳이니 그것도 쉽지가 않다.


▲  정상 돌탑의 뒷모습


▲  정상에서 속세로 내려가는 길 (만항재 방면)

▲  함백산 밑 서학로

속세로 내려갈 때는 올라갈 때와 달리 금방 내려갔다. 올라가는 것은 어려워도 내려가는 건 반
대로 쉽기 때문이다.

내려갈 때는 만항재 기점까지 가지 않고 태백선수촌으로 넘어가는 길과 만나는 지점까지만 갔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관광버스가 그곳까지 몸소 바퀴를 굴렸기 때문이다. 하늘의 기가 서린 함
백산의 청정한 기운을 온몸으로 누린 일행들이 모두 타자 만항재 기점으로 이동해 나머지 일행
을 태우고 속세로 내려왔다.

이렇게 하여 함백산을 비롯한 그날의 강원도 나들이는 대단원의 휘장을 걷는다 ~~

※ 만항재, 함백산 찾아가기 (2015년 9월 기준)
* 청량리역, 양평역, 원주역, 제천역, 동해역에서 영동선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고한역 하차
* 동서울터미널에서 고한(고한사북)행 직행버스가 20~50분 간격으로 떠난다.
* 인천, 수원, 안산, 부천, 고양, 의정부, 성남, 원주, 제천, 대구(북부), 부산(노포동), 포항
  에서 고한(사북고한)행 직행버스 이용
* 고한사북터미널과 고한역에서 만항행 군내버스 이용 (고한사북터미널에서 7:30, 9:50, 14:10,
  19시 출발) → 적조암 코스는 적조암입구에서 내리면 되며, 만항재 코스는 만항마을 종점에서
  40분 올라가야 된다. (택시를 타고 들어가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움)
* 승용차로 가는 경우
① 중앙고속도로 → 제천나들목을 나와서 38번 국도 직통 → 고한터널을 지나 상갈래교차로에서
   함백산로로 직진 → 정암사 → 적조암입구 → 만항마을 → 만항재
② 중앙고속도로 → 제천나들목을 나와서 38번 국도 직통 → 석항에서 태백방면 31번 국도 →
   상동읍 → 화방재에서 만항로로 좌회전 → 만항재

* 매년 8월 초/중순에 만항재 산상의 화원, 야생화공원, 고한시장 일대에서 함백산 야생화 축제
  가 열린다. 함백산 산신제와 등반대회, 숲속음악회, 야생화 분재와 사진/작품 전시, 축하공연,
  향토음식 장터등의 프로그램이 있으며, 자세한 축제 정보는 ☞ 함백산 야생화 축제 홈페이지
  참조 (☎ 문의 고한함백산축제위원회 033-592-5455)
* 만항재(만항재마을, 야생화공원)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 함백산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 태백시 황지동


▲  함백산 지도 (정선 관광문화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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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개일 - 2015년 9월 22일부터
 
* 글을 보셨으면 그냥 가지들 마시구 공감이나 추천을 흔쾌히 눌러주시거나 댓글 몇 자라도
   달아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Copyright (C) 2015 Pak Yung(박융), All rights reserved

 

눈꽃의 향연 속으로 ~ 태백산 눈꽃 나들이 (당골, 눈꽃축제장, 석탄박물관)

 

' 태백산(太白山) 눈꽃 나들이 '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  태백산 설경

장공(長空)에 뛰어들어 안개 속에 파묻히니
 비로소 정상에 오른 줄 알았네
 둥근 해는 머리 위에 나직하고
 주위의 뭇 산봉우리들이 눈 아래에 내려앉네
 구름 따라 몸이 날으니 학(鶴)의 등에 올라탄 듯
 돌을 밟고 허공에 길이 걸렸으니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인가
 비 그치자 골짜기마다 시냇물이 흘러넘치니
 굽이굽이 오십천(五十川) 건널 일이 걱정스럽네


*
고려 후기 문신인 근재 안축(謹齋 安軸, 1282~1348)이 태백산에 올라 지은 시

 


겨울의 한복판이자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인 설날 연휴를 맞이하여 진한 설경을 맛보고자 강원
도 태백(太白)을 찾았다. 마침 후배 하나가 태백 서쪽 동네인 고한(古汗)에 잠시 머물고 있어
서 그와 함께 우리 민족의 성산(聖山)인 태백산을 찾기로 했다.

원래는 설 연휴 전날 아침에 일찌감치 열차를 타고 가려고 했으나 급히 일이 생겨서 내려가는
것을 취소했다. 그러다가 그날 오후에 급히 연락을 넣어 심야 열차로 가겠다고 하니 사북역에
서 대기하여 합류하겠다고 그런다.

설날 연휴인지라 태백까지 열차표를 힘들게 예약히고 21시 반에 대문을 나섰다. 방학역에서 1
호선 전철을 타고 회기역에서 신통치 못한 배차를 자랑하는 중앙선 용문(龍門)행 전철로 갈아
타서 근 1시간을 달려 용문역에 두 발을 내린다. 여기서 잠시 대기를 타다가 강릉(江陵)행 심
야 무궁화호 막차에 몸을 싣는다.
거의 2년 만에 타보는 추억의 심야열차, 옛날에는 서울에서 당일로 오가기 버겨웠던 광주, 목
포, 여수, 경주, 부산, 동해 등 장거리를 갈 때 많이 타고 다녔는데, 도로망이 나날이 좋아지
면서 안그래도 비좁은 국토가 더 좁아져 2006년부터 탈 일이 크게 줄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1
년에 1회도 타질 않는다.

용문에서 태백까지는 3시간 반 정도 걸린다. 자리에 앉아 잠을 간곡히 소환해 봤지만 잠이 좀
처럼 강림하질 않으니 아무래도 잠님이 나를 원치 않은 듯 싶다. 한밤중이라 차창 밖 풍경은
온통 검은 도화지라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고 심심치 않게 보이는 불빛이 그런 도화지에
살짝 작은 점을 찍는다. 그렇게 뜬 눈으로 원주와 제천, 영월, 예미를 지나 사북역에 이르니
대기하던 후배가 열차에 올라타 옆 자리에 앉는다.

정선과 태백의 경계를 가르는 두문동재터널을 지나 첩첩한 산주름에 묻힌 태백 관내로 들어서
니 창 밖 풍경이 다소 달라지기 시작한다. 정선 땅까지 별로 보이지도 않던 눈이 터널을 지나
서부터는 완전 눈천지로 변한 것이다. 그래서 차창 밖 검은 도화지는 하얀 색이 추가되어 2색
의 흑백 도화지가 되었다. 단지 터널 하나에 천지가 뒤바뀐 것이다.

열차는 강원도의 산주름을 열심히 지나 드디어 태백역에 도착했다. 열차가 멈추자 등산복으로
중무장한 사람들이 우루루 나와 적막이 감돌던 태백역에 잠시나마 활력을 불어 넣는다.
밥이나 먹을 겸 식당을 찾아보니 역전 주변 식당은 죄다 자고 있었고, 실비집 한 곳만 환하게
불을 밝히며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집에 들어가니 열차에서 내린 등산객 10여 명 정
도가 밥을 먹으며, 몸을 녹이고 있었다.
우리는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생각한 것과 달리 맛이 괜찮았다. 고기도 풍부하게 들어가 있고
밑반찬도 가짓수가 많아서 찬이 제법 풍성했다. 저녁을 먹고 왔지만 다시 시장기가 강하게 돋
으면서 밥을 2그릇이나 먹고 찌개와 반찬을 죄다 비우고서야 식당을 나섰다.

아침이 멀지 않았으니 찜질방에서 잠시 눈이나 붙이자고 했으나 후배는 여관에서 편하게 자자
면서 자기가 방값 내겠다고 그런다. 그래서 터미널(역 앞에 터미널 있음) 인근 여관에 들어가
눈을 붙였다.
아침 8시 반이 되자 찬란한 여명의 재촉에 스르륵 잠에서 깨었다. 4시간 밖에는 못잤지만, 더
이상 잠도 오질 않는다. 나는 태백산을 보러 여까지 온 것이지 잠이나 퍼자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도 꿈나라에서 허우적거리는 후배를 강제로 깨워 9시 반에 여관을 나섰다.

고원(高原)의 도시, 태백이라 제법 추울 줄 알았더만 아침임에도 그다지 춥지는 않다. 터미널
로 들어서니 마침 당골로 가는 태백시내버스 7번이 기지개를 켜고 있어 그것을 잡아타고 태백
산의 품으로 들어섰다. 터미널에서 당골 종점(태백산관리사무소)까지는 20~25분 정도 걸린다.


▲  당골 종점(태백산관리사무소 앞)


♠  하얗게 분을 칠한 태백산(太白山, 1567m) 간보기

▲  태백산관리사무소에서 당골광장으로 오르는 길

버스에서 내리니 바로 매표소를 겸하고 있는 태백산관리사무소 앞이다. 우리나라의 신령스러운
산인 태백산의 안기려면 반드시 매표소를 거쳐야 되는데, 등산객들의 호주머니를 뚫어지라 쳐다
보는 그곳에서 입장권을 구입하고 안으로 들어서니 하얗게 분을 바른 태백산의 모습이 속세에서
오염되고 상처받은 안구와 마음을 말끔히 정화시켜준다.

이곳에 온 목적은 오랜만(거의 7년 만)에 태백산 정상(1567m)과 천제단(天祭壇, 1561m)을 보고
자 함인데, 후배가 겨울 산행에 아주 바람직하지 못한 신발을 신고 있어서 정상까지 가는 것은
어려웠다. 괜히 그랬다가 119헬기를 불러야 될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식
총(虎食塚)까지만 갈까 하다가 눈이 제법 많고 미끄러워 후배가 오르기 힘들다고 투정하여 당골
광장에서 1km 정도만 오르고 철수하고 말았다.

태백산은 우리나라 백두대간(白頭大幹)의 남쪽 척추인 태백산맥(太白山脈)의 중심 산으로 위엄
돋는 산의 이름만큼이나 험준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허나 정작 올라보면 별로 힘들지 않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금강산(金剛山)이나 설악산과 달리 순수 흙으로 이루어진 육산(肉山)이
라 능선의 곡선이 완만하고 산세가 부드럽기 때문이다. 게다가 버스와 수레로 800~900m 고지(당
골, 백단사, 유일사, 금천동)까지 올라갈 수 있어 거기서부터 등산에 임하면 되며, 제일 단거리
인 유일사와 백단사에서 정상까지 2시간, 당골에서는 2시간 30분(문수봉 경유는 3시간 30분) 정
도면 충분히 닿는다. (금천에서는 4시간 소요)

매표소에서 당골광장까지는 야트막한 오르막 길의 연속이다. 4발 수레들도 마음껏 바퀴를 굴리
게끔 2차선 도로가 놓여져 있는데, 길이 온통 눈투성이라 수레들도 겁을 먹고 가기를 꺼려한다.


▲  태백산 눈썰매장 입구

▲  한참 몸단장중인 눈조각품

태백산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운 곳이지만 눈으로 뒤덮힌 겨울이 단연 갑(甲)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겨울 산행의 성지(聖地)로 백설(白雪)이 두텁게 쌓인 겨울 산행의 장쾌함을 누리고자
많은 산꾼들이 몰려온다. 봄과 여름, 가을보다는 겨울 산꾼이 훨씬 많다고 하니 기온이 낮을 수
록 찾는 이가 반비례로 늘어난다. 그리고 겨울의 한복판인 1월에는 눈꽃축제(눈축제)를 벌이는
데, 이 축제는 겨울 축제의 성지이자 대명사로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미국(米國)을 비롯한 여
러 나라에서 이 축제를 찬양했고, 미국의 CNN방송은 한국에서 가봐야 될 50곳의 하나로 선정하
며 찬양의 수준을 높였다. 솔직히 태백산은 국내에서만 머물기는 진짜 아까운 산이다. 국내 명
소/축제를 넘어 세계적인 겨울 축제와 명소의 성지로 우뚝 서기를 고대해 본다.

태백산은 겨울 산행의 성지, 겨울 축제의 성지이지만, 호랑이가 담배맛을 알던 옛날부터 제천의
식(祭天儀式)을 거행하던 성지였다. 산 정상에는 천제단(天祭壇, 중요민속문화재 228호)과 장군
단(將軍壇)이 있는데, 이들은 천하의 국조(國祖)인 단군(檀君)을 비롯하여 어린 나이에 숨져 태
백산신으로 추앙 받은 단종(端宗)에게 제를 올리던 곳으로 돌로 쌓은 조촐한 제단이지만 강화도
참성단(塹星壇)만큼이나 신령스러운 기운이 가득하다. 이렇게 하나도 아니고 3가지의 성지로 일
컬어지니 태백산의 명성은 나날이 하늘을 찌른다.


▲  설송(雪松) 밑에 자리한 석탄박물관 표석

▲  태백석탄박물관(太白石炭博物館)

당골광장 동북쪽에 자리한 태백석탄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석탄 전문 박물관으로 1997년 5월
에 문을 열었다. 초창기에는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으나 꾸준히 업그레이드를 벌여 이제는 태백
에서 꼭 가봐야되는 명소로 단단히 부각되었다.

박물관 규모는 지상 3층, 지하 1층으로 8개의 전시실과 야외전시장을 갖추고 있으며, 단순히 석
탄 관련 내용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역사와 지질(地質)을 시작으로 광물(鑛物)의 탄생
과 종류, 화석(化石), 석탄과 탄광 관련 문서와 기계/장비, 탄광 정책 관련 자료, 태백 관련 향
토자료, 탄광 광부들의 생활상, 탄광갱도 체험 등을 다루고 있다. 특히 3층에서 지하로 내려갈
때 엘리베이터는 층수가 아닌 -100m 단위로 거의 -900m까지 수치가 내려가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 마치 탄광 엘리베이터를 탄 듯한 오싹함을 선사한다. 지하층으로 내려오면 탄광 체험 갱도관
이 있으며, 그곳을 나오면 기념품과 특산품을 파는 기념품점이 나온다.

태백석탄박물관은 지금까지 2번 구경을 했는데, 이번에는 내려올 때 관람을 했다. 박물관과 관
련된 내용은 이쯤에서 정리를 하겠으며, 전시실을 모두 둘러보는데, 보통 1시간 반 정도, 길게
는 2시간 정도 잡으면 된다.


▲  제1전시실 지질관에서 만난 자수정(紫水晶)의 위엄
지질관에서는 자수정 같은 귀에 익은 광물부터 낯설은 광물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와 지구 곳곳에서 수집한 광물 진품이 진열되어 있다.


※ 태백석탄박물관 관람정보 (2014년 2월 기준)
* 관람시간 : 9시 ~ 18시 (17시까지 입장해야 됨, 쉬는 날 없음)
* 입장료는 공짜인 듯 싶지만 엄연히 태백산도립공원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음
* 소재지 -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 166 (천제단길 195 ☎ 033-552-7730 / 033-550-2743)
* 석탄박물관 홈페이지는 위의 자수정 사진을 클릭한다.


▲  당골광장 부근에 조성된 공원과 연못
소쩍새가 우는 그날이면 연못도 거추장스러운 얼음을 박차고 기지개를 켤 것이다.

▲  당골광장에서 문수봉으로 올라가는 길
당골광장에서 산길은 2개로 갈리는데, 왼쪽은 제당골과 문수봉으로, 오른쪽은
호식총과 망경사, 천제단으로 이어진다. 문수봉으로 가도 천제단까지
갈 수 있으나 3시간 30분 정도 잡아야 된다.

▲  막바지 매뭇새를 다듬고 있는 눈축제장

태백산의 백미(白眉) 중 하나인 눈축제는 보통 1월 중순에 열린다. 허나 우리가 갔을 때는 열리
기 직전이라 축제 분위기도 누리지 못하고 축제를 위해 조성된 눈조각품만 바깥에서 보는 것으
로 만족해야 했다.


▲  설림(雪林)으로 들어서다 (문수봉 방면)

▲  설림에 한가운데에 서다.
키가 큰 늘씬한 수목들이 앞다투어 하늘을 가리면서 산길이 좀 어둡다.
나무들은 겨울 제국이 내린 눈을 소복으로 삼으며 묵묵히 봄을 기다린다.

▲  고려 후기 문인인 안축(安軸)이 태백산에 올라 지은 시가 담긴 표석
시의 내용은 앞부분에 있음 (당골광장에서 망경사 방면)


♠  태백산 마무리

▲  태백산의 또 다른 수호신 석장승 - 강원도 지방민속문화재 4호

당골광장에서 단군성전 입구를 지나면 길 오른쪽에 별다른 모양이 없는 석상이 마중한다. 이 석
상은 바로 석장승으로 원래는 북쪽으로 1.2km 떨어진 미루둔지(장승둔지)에 있었는데, 1960년대
에 망경사로 옮겼다가 1987년 태백문화원이 지금의 자리에 안착시킨 것이다. 

장승의 모습을 보면 얼굴 부분이 손상된 문인석(文人石)처럼 보이기도 하며, 미륵상으로 보이기
도 한다. 얼굴이 워낙 심하게 손상되어 원래 모습을 알기 힘들며, 머리에는 관(冠)처럼 생긴 것
을 쓴 것으로 보인다. 얼굴 양쪽에는 귀로 보이는 길쭉한 부분이 있다.
그의 탄생시기는 딱히 알려진 것은 없으나, 천제단 가는 길목인 태백산 북쪽에 자리해 있어 성
역(聖域) 임을 알리는 역할과 이정표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며, 덩달아 산신의 수호신상의 역
할까지 겸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코 부분이 많이 닳아있어 마을의 수호신까지 겸한 것으로 여
겨진다. 예전에는 장승 옆에 3마리의 오리가 새겨진 솟대가 있었으나 지금은 어디로 마실을 갔
는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석장승이 많이 전해오고 있지만
정작 강원도에는 이 장승이 유일하다. 옛날에는
태백산 정상 천제단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장승
<장생(長生)>을 많이 세워 성역(聖域) 및 이정
표의 역할을 했으며, 장승모랭, 장승백이, 장승
둔지, 장승거리 등의 지명이 남아있어 태백 땅
에 장승이 제법 많았음을 보여준다.
허나 무심한 세월과 몰지각한 사람들의 만행으
로 장승은 죄다 자취를 감추어 이제는 전설 속
의 이야기가 되었으며, 오로지 당골의 석장승만
살아 남아 태백이 왕년에는 장승의 낙원이었음
을 아련하게 귀뜀해줄 따름이다. 참고로 태백의
조선시대 지명인 장생은 바로 장승에서 유래된
것이다.
<태백을 이루는 동네의 하나인 장성(長省)이 장
생에서 변경된 이름임>


▲  태백산으로 올라가는 하얀 숲터널 (석장승에서 망경사 방면)

▲  당골계곡과 함께 이어진 산길
이 세상에 색깔은 하얀색과 하늘색, 갈색(나무 줄기) 밖에 없는 것 같다.

▲  설림 속을 거닐다
집으로 고이 훔쳐와 혼자서만 두고두고 누리고 싶은 절경이다. 허나 나는 조물주가
아닌지가 저 풍경을 가져오지는 못하고 대신 사진이란 것으로
그 장면을 복사해 담아가지고 왔다.

▲  단군성전 앞에 마련된 단군상
명세기 우리의 국조(國祖)인데, 보호각 하나 놓아드려야 되는거 아닐까?
저렇게 눈과 바람을 맞게 놔두는 것은 그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  단군성전(檀君聖殿)

석장승을 지나 대략 1km 정도만 전진하고 발걸음을 접고 말았다. 후배가 힘들다고 그러니 더 이
상 끌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 수 없이 다음 인연을 고대하며 발길을 접
었다. 발을 돌린 지점은 아마도 해발 1,000m 정도 될 것이다. (당골광장이 거의 850m임)

내려가는 길에 당골광장 남쪽에 자리한 단군성전에 들렸다. 이 성전은 옛 조선(朝鮮)의 시조이
자 우리의 국조인 단군의 사당으로 1975년에 구성된 '국조단군봉사회'가 1982년에 성금을 모아
창건하고 단군성전이라 하였다. 그의 사당을 이곳에 지은 것은 그에게 제를 지내는 천제단으로
가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1993년에 태백산도립공원 개발계획에 따라 성전을 수리했으며, 매년
10월 3일 개천절(開天節)에 제례를 올리고 있다. 성전 현판의 글씨는 신덕선이 썼다.

비록 오래된 문화유산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뿌리를 생각하게 하는 의미심장한 현장이다. 하지
만 등산객과 탐방객들 대부분은 그냥 지나치고 만다. 등산로에서 계단을 타고 조금 올라가야 되
는 곳에 있기도 하지만 썩어빠진 이 땅의 권력층에 의해 점차 오염되가는 역사교육의 부실과 무
관심 조장도 한몫한다.


▲  단군성전에 봉안된 단군 영정

오로지 상상으로 그려진 단군의 영정(影幀), 후덕한 인상과 긴 수염, 황색 옷이 인상적이다. 단
군은 옛 조선 군주의 명칭으로 여겨지며, 조선의 군주가 정치와 제사를 모두 관장한 제정일치(
祭政一致) 사회였다.

옛 조선은 기원전 2333년 경에 건국되어 기원전 108년에 문을 닫은 장수국가로 한반도를 비롯하
여<남한 지역에 있던 삼한(三韓)>도 조선의 간접 영역으로 보기도 함> 요동(遼東)과 만주, 요서,
화북(華北) 일부를 다스린 동아시아 강대국이다. 조선의 건국시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여전하나
산소도 아까운 식민사관(植民史觀) 패거리들은 기원전 10세기 이내로 창건 연대를 잡고 있으며,
영역도 한반도 북부와 요동으로 크게 축소시켰다.

조선의 중심지는 요동으로 보이며, 춘추전국시대에 연나라를 공격하여 대륙의 지배권을 차지하
려했으나 철기(鐵器)로 중무장한 연나라의 반격에 오히려 크게 밀려 요하(遼河)를 비롯한 서쪽
2,000리의 땅을 잃고 만다. 당시 조선은 청동기 무기였다. 그러니 어찌 게임이 되겠는가?
이후 대륙에서 넘어와 준왕(準王)의 신임을 받은 위만(衛滿)이 반란을 일으켜 준왕을 남쪽으로
쫓아내고 왕이 되었다. 준왕은 그를 따르는 신하와 배를 타고 남쪽으로 건너가 한왕(韓王)을 칭
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마한(馬韓) 영역인 전라도나 충청도로 내려간 것이 아닌가 싶다.

위만이 조선을 장악하자 철기무기를 개발하고 국력을 길러 한나라를 비롯한 주변 나라를 공격해
영토를 확장하고 동아시아 무역을 독점해 막대한 부를 누렸다. 이에 한나라 무제(武帝)는 조선
이 동방(東方) 무역 독점으로 배를 불리며 나날이 국방력을 다지는 것에 크게 위협을 느끼며 우
선 주변 나라를 말끔히 정복하고 그 자신감으로 조선을 협박했다.
조선이 반발하며 먼저 대륙을 공격하자 한무제는 이때다 싶어 군사를 보내 반격을 가했는데, 한
나라군 내부 분열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패했다. 그러자 뚜껑이 단단히 열린 한무제가 다시
군사들을 다그치자 정신을 차린 한군(漢軍)은 정비를 가다듬고 반격을 가해 끝내 왕검성까지 포
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쉽사리 함락시키지 못하며 끙끙 앓던 차에 조선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 조선의 마지막
군주인 우거왕(右渠王)이 반대파에게 피살되고, 왕을 잃은 조선 조정은 그 혼란을 잠재우지 못
해 결국 성은 함락되고 만다.

이렇게 옛 조선은 망하고, 그 땅 일부에 그 유명한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했는데, 그것도 조선
유민들의 끊임없는 비협조와 반발, 그리고 고구려(高句麗)와 부여(夫餘)의 등장으로 그 땅에 제
대로 침도 바르지 못하고 쫓겨나고 만다.
한사군의 존재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은데, 식민계열 쓰레기들은 평안도와 황해도, 요동 일부로
보고 있으며, 강단사학자와 많은 사학자들은 요동과 요서 쪽으로 보고 있다. 한4군의 하나로 유
명한 낙랑(樂浪)이란 존재도 낙랑국과 낙랑군(樂浪郡) 2개가 있었다고 하는데, 아직 의견이 분
분하나 대체로 낙랑국은 평양 지역, 낙랑군은 요서로 보고 있다. 그러니 호동왕자(好童王子)와
낙랑공주(樂浪公主) 설화로 유명한 낙랑은 낙랑군이 아닌 낙랑국으로 보는 것이 맞다. 만약 낙
랑군이라면 낙랑공주는 공주를 칭할 수가 없다. 그냥 군을 다스리는 태수(太守)의 딸일 뿐이다.

옛 조선은 전성기였을 때 인구가 무려 1억 8천만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조선의 문화와 문명
은 중원대륙과 주변의 많은 나라와 민족에 영향을 주었다. 한자(漢字) 같은 경우도 동이족(東夷
族)으로 대표되는 조선에서 만들어 대륙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으며, 그 문자가 대
륙으로 넘어가 크게 발전하면서 동아시아 통용 글자가 되었다. 또한 대흥안령산맥 쪽에서 발생
한 홍산문명(紅山文明)도 조선의 찬란했던 흔적이며, 한반도와 만주에서 많이 발견되는 엄청난
양의 고인돌(지석묘) 또한 조선의 청동기시절 흔적이다.


▲  하얀 기와집이 된 단군성전 삼문(三門) - 단군성전에서 바라본 모습
성전 뜨락에는 눈이 수북하게 덮여 설경의 극치를 이룬다.

▲  단군성전 삼문 - 바깥에서 본 모습
눈이 지붕에 가득하니 혹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눈 자체는 거의 무게가 없지만 저리 두툼하게 쌓이면 정말 몇톤이 되버린다.

▲  석장승에서 당골광장으로 내려가는 길

▲  눈축제를 위해 조성된 커다란 눈 이글루
마치 눈을 뒤집어 쓴 거대한 석실고분(石室古墳) 같다.

▲  당골광장에서 당골 종점으로 내려가는 길

▲  당골 통나무집에서 먹은 곤드레밥과 반찬들

정상까지 오르지 못한 아쉬운 마음을 눈 속에 애써 묻으며 당골 종점으로 나왔다. 그때 시간은
12시, 뱃속에서 배고프다고 난리를 친다. 하여 허기진 배를 달래고자 적당한 곳을 찾다가 통나
무집이란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폈다.

이곳은 여행사 단체 손님들로 북적거렸는데, 신발을 벗어야 되는 뜨끈한 방에 들어가 곤드레밥
과 해물파전, 동동주, 소고기국밥을 시켰다. 잠시 뒤 콩나물과 더덕, 김치, 두부 등 8가지의 정
갈한 밑반찬이 앞에 펼쳐진다. 이들 가운데 양념장이 버무러진 커다란 두부는 반찬의 갑(甲)으
로 두부 맛이 좋아 2번 정도 더 시킨 것으로 기억이 난다.

반찬을 먹고 있으니 곤드레밥과 소고기국밥 등의 식사가 나타난다. 곤드레밥은 정선과 평창, 영
월, 태백 지역의 토속음식으로 곤드레나물을 비롯한 산채 나물과 김가루가 버무려진 일종의 비
빔밥이다. 곤드레밥에는 늘 구수한 된장찌개가 짝궁처럼 나타나는데, 이곳의 찌개는 두부가 풍
부하다. 그렇게 먹고 있으려니 동그란 해물파전과 동동주가 3차로 나타난다.
파전은 가격에 비해 좀 커보인다. 허나 반찬과 곤드레밥으로 어느 정도 배가 들어찬 상태기 때
문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파전은 일부를 남기고 거진 다 먹었는데, 뱃속에서 그만
보내라고 북소리가 울린다. 그러다보니 동동주는 둘이서 절반 밖에 마시질 못했다.


▲  해물파전의 위엄

이렇게 풍성하게 점심을 먹으니 졸음이 슬쩍 나를 희롱하며 배 깔고 한숨 자라고 보챈다. 졸음
의 희롱을 과감히 내던지고, 커피와 식당 내부 연탄 난로에서 대핀 보리차를 여러 잔 마시며 식
곤증과 추위를 몰아내고 밖으로 나선다.

이렇게 태백산과의 짧은 인연을 마치고, 어디로 갈까 머리를 굴리다가 미인폭포로 가기로 하고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그곳으로 향했다. 이후 내용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기 바란다.
(☞ 미인폭포 보러가기)

★ 태백산 당골 찾아가기 (2014년 2월 기준)
① 철도 이용
* 청량리역과 양평역, 원주역, 제천역에서 태백역으로 가는 강릉행 무궁화호 열차가 1일 6회(휴
  일에는 7회) 운행한다.
* 강릉역과 동해역에서 청량리행 열차(1일 6회, 휴일 7회)를 타고 태백역 하차
② 시외버스 이용
* 동서울터미널에서 태백행 직행버스가 20~40분 간격으로 떠난다.
* 부산에서 태백행 직행버스가 1일 6회, 대구(북부)에서 태백행 직행버스가 1일 10여 회(직통은
  1일 9회 운행) 떠난다.
* 인천, 고양, 의정부, 부천, 성남, 안산, 수원에서 태백행 직행버스 이용
* 원주, 제천, 삼척, 강릉, 영주에서 태백행 직행버스 이용
③ 현지교통
* 태백역전에 있는 태백터미널에서 당골행 7번 시내/좌석버스가 1일 20여 회 운행
④ 승용차
* 중앙고속도로 → 제천나들목을 나와서 영월 방면 38번 국도 → 영월 → 고한 → 태백시내 →
  당골주차장
* 중앙고속도로 → 제천나들목을 나와서 영월 방면 38번 국도 → 영월 → 상동 → 유일사/백단
  사 → 당골주차장

※ 태백산 관람 정보 (2014년 2월 기준)
* 입장료(단체는 30인 이상) : 어른 2,000원 (단체 1,500원) / 학생,군인 1,500원 (단체 1,000
  원) / 어린이 700원 (단체 500원)
* 주차비 : 대형 4,000원 / 소형 2,000원
* 태백산 눈축제는 1월 중/하순에 2주 정도 열린다. (열리는 시기는 매해마다 다름)
* 당골에는 콘도형 태백산민박촌이 있다. 현재 15동 73실이 있으며, 인터넷에서 예약하면 된다.
  ☞ 태백산 민박촌 홈페이지 가기 (문의 ☎ 033-553-7440~41)
* 태백산 눈썰매장 이용료 : 어른 5,000원 / 어린이 4,000원
* 태백산 당골 소재지 -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 (태백산도립공원 사업소 ☎ 033-550-2741~42)
* 태백산도립공원 홈페이지는 ☞ 이곳을 클릭한다.


 * 까페(동호회)에 올린 글은 공개일 기준으로 1주까지만 수정,보완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
   집니다. <단 블로그와 원본은 1달까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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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부링크 문제로 사진이 안뜨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모니터 크기와 컴퓨터 사양에 따라 글이 조금 이상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 공개일 - 2014년 2월 4일부터
 
* 글을 보셨다면 그냥 가지들 마시고 바로 밑에 있는 네모난 박스 안의 손가락 View on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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