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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충효길 고구동산길, 서달산, 까치산길


' 동작구의 지붕을 거닐다 '
<동작충효길~서달산~까치산>

서달산 잣나무숲길 (동작충효길 고구동산길)

▲  서달산 잣나무숲길 (동작충효길 고구동산길)

서달산자락길 서달산 정상

▲  서달산자락길

▲  서달산 정상

 


동작충효길은 서울 동작구의 대표 둘레길이다. 충효(忠孝)란 이름은 동작구에 자리한 국
립서울현충원과 사육신묘(死六臣墓)에서 비롯된 것으로 국립서울현충원과 동작구의 여러
산(서달산, 까치산, 용마산 등), 공원, 한강을 활용해 7개에 코스를 닦아 세상에 내놓으
니 그 코스는 대략 이렇다.

① 동작충효길 제1코스 고구동산길(3.4km) : 노들역~서달산~현충원 상도출입문
② 동작충효길 제2코스 현충원길(3.4km) : 현충원 상도출입문~동작역
③ 동작충효길 제3코스 한강나들길(4.6km) : 동작역~한강~노량진역
④ 동작충효길 제4코스 노량진길(3.4km) : 노량진역~용마산~신대방3거리역
⑤ 동작충효길 제5코스 보라매길(2.9km) : 신대방3거리역~보라매공원~보라매역
⑥ 동작충효길 제6코스 동작마루길(4.8km) : 신대방삼거리역~국사봉~현충원 상도출입문
⑦ 동작충효길 제7코스 까치산길(4.4km) : 현충원 상도출입문~까치산~사당역

동작충효길 식구 중 제1코스(고구동산길)와 제2코스(현충원길), 제7코스(까치산길)는 숲
에 푹 파묻힌 산길로 이들 코스와 제6코스(동작마루길)는 동작구의 지붕길을 이룬다. 서
울 한복판에서 이런 숲길은 도저히 참지 못하는 편이라 2015년 여름에 처음 인연을 지은
이후, 내 즐겨찾기로 삼아 매년 적지 않게 재활용을 하고 있다. (주로 국립서울현충원과
서달산, 국사봉을 낀 1코스와 2코스, 6코스를 많이 찾음)


♠  동작충효길 고구동산길 (서달산 잣나무숲길)

▲  흑석동과 상도동 사이를 지나는 고구동산길 (잣나무숲길 직전)

여름 제국(帝國)의 무더위 갑질이 한참이던 8월 한복판에 동작충효길과 서달산을 찾았다. 그
곳이 몸살이 날 정도로 그리워져 간만에 찾은 것인데, 이번에는 고구동산길(제1코스)의 중간
지점인 중앙대후문 정류장에서 동작충효길 나들이를 시작했다.


흑석동과 중앙대에서 상도동, 상도역(7호선)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자리한 중앙대후문 정
류장(5511번 시내버스와 동작구 마을버스 01, 10, 21번이 경유함)은 고구동산길의 중간으로
여기서 흑석동(黑石洞)으로 내려가는 북쪽 길(흑석로)을 조금 가면 고구동산길 북쪽 구간(노
량진근린공원, 고구동산)이 손을 내밀며, 남쪽 길(상도로53길)로 들어서면 서달산의 품으로
인도하는 고구동산길 남쪽 구간이 계단길을 내민다.

동작충효길의 제1코스인 고구동산길(3.4km)은 노들역(9호선)에서 국립서울현충원 상도출입문
까지 이어지는 길로 고구동산과 서달산 등 2개의 산을 지난다. 이들은 넉넉하게 숲을 지니고
있어 고구동산에서 서달산으로 넘어가는 중앙대후문 주변을 제외하고 싹 숲길로 이루어져 있
는데, 서달산 구역에는 잣나무숲이 진하게 닦여져 있어 예삿 숲길이 아님을 느끼게 한다.


▲  고구동산길의 자랑, 서달산 잣나무숲길

고구동산길 중앙대후문~서달산 생태다리 구간은 상도동(上道洞)과 흑석동의 경계를 이루는 서
달산 서쪽 산줄기를 따라 이어진다. 이 산줄기는 주거지로 가득한 회색빛 도시 사이에서 완충
지대 역할을 하고 있는데, 산줄기도 제법 길고 숲도 무성하나 산길 좌우로 주택과 아파트들이
또렷히 보일 정도로 그 폭은 좁다.


▲  서달산 잣나무숲길 ①

고구동산길 중앙대후문~숲속도서관 사이에는 잣나무숲이 짙게 뿌리를 내렸다. 이곳은 고구동
산길의 자랑이자 백미(白眉)로 동작구가 동작충효길을 닦으면서 잣나무를 더욱 확충했다.
잣나무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많이 베푸는 나무로 그들이 우거진 숲은 산림욕 장소로 아
주 그만인데, 천하 제일의 대도시로 콧대가 높은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니 그저 놀라
울 따름이다. 그것도 변두리도 아닌 도시 속에서 말이다. 하여 동작충효길은 나에게 여러 번
씩 신선한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 범상치 않은 숲길이다. 이러니 내가 이곳에 퐁당 빠져 즐겨
찾기 명소로 삼아 두고두고 찾는 것이다.


▲  서달산 잣나무숲길 ②

▲  장봉옥 영모비와 송덕비 <백운암 창건주 장대보화(張大寶華) 송덕비>

서달산 잣나무숲길을 지나 야생초화원 쪽으로 조금 가면 장봉옥(장대보화) 송덕비와 영모비가
모습을 비춘다. 이들은 고구동산길에서 남쪽으로 조금 비껴있어 지나치기가 정말 쉬운데, 고
구동산길에서 유일한 오래된 비석이자 진정한 보살행(菩薩行)을 실천했던 장봉옥(1904~1981)
을 기리고자 세운 것으로 고구동산길을 거닌다면 꼭 챙겨보기 바란다.

장봉옥은 1904년 8월 평양(平壤)에서 태어났다. 동덕여학교를 졸업하여 돈이 많은 친일파 관
료의 소실(첩)로 들어갔는데, 남편 몰래 조경한(趙擎韓) 등의 독립운동가를 도우며 독립운동
자금을 넉넉히 지원했고, 그 사연으로 해방 이후, 신문에서는 '광복군(光復軍)의 어머니'라
표현하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로 1930년대부터 모녀(母女)가 같이 절을 다녔는데, 안국동에
있는 선학원(禪學院)에 들어가 열심히 수행을 하여 깊은 불심을 다졌고, 그 인연으로 많은 승
려와 불교계 인사들과 두루두루 알고 지냈다. 그리고 1950년대에 마야부인회를 조직하는 등,
불교 지도자의 면목까지 보여주었다.

6.25 이후 어머니가 별세하자 그의 명복을 빌고자 현재 비석이 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20,000
평의 부지를 매입하여 1961년에 백운암(白雲庵, 현재 상도선원)을 지었다. 그리고 남편이 죽
자 그의 막대한 재산까지 물려받았는데, 그것으로 크게 사업을 벌여 더 큰 돈을 만졌고 도심
한복판인 무교동(武橋洞) 일대의 땅을 거의 가지고 있을 정도로 막대한 재력을 자랑했다. 그
재력을 기반으로 온갖 불사(佛事)에 나서 불교계에서 '불사를 많이 일으킨 화주보살'로 격하
게 칭송을 받았다.
또한 백운암 주변에 160여 채의 연립주택을 지어 '나라사랑반'이라 이름 짓고 전몰군경의 유
가족과 집이 없는 어려운 이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했다. 그리고 노인대학을 지어 노인들을 배
려했으며, 1964년에 성조장학회를 세워 학생과 청년, 어려운 이웃을 넉넉히 도왔다. 그 장학
회는 지금도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 공로로 1966년 서울시경으로부터 '청소년 선도 유공자 표창장'을, 1979년 정부로부터 국민
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다.

한평생 모은 재산을 어려운 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풀면서 불법(佛法)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
고, 노승과 불교 수행자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하여 주변 사람들은 그를 '살아있는 보살'이라
추앙했고, 대보화(大寶華)란 법명(法名)까지 받았다. 또한 조계종 5대 종정을 지낸 서옹(西翁
)도 그를 크게 찬양하며 종종 백운암에 들려 법문을 전했다.

딱히 자녀가 없던 그는 수양딸을 맞이했는데, 그 수양딸이 1982년 어음사기 사건으로 천하를
크게 경악하게 했던 '장영자' 그 사람이었다. 장영자도 독실한 불교 신자였으나 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장봉옥은 그를 수양딸로 삼아 많은 것을 베풀었으니 그것이 그의 거의 유일
한 실책이었다.

지붕돌을 지닌 검은 피부의 장봉옥 송덕비(頌德碑)는 1974년에 서옹이 직접 비문을 쓰고 지어
준 것이며, 그 옆에 자리한 영모비(永慕碑)는 그의 신세를 졌던 독립운동가 백강 조경한(1900
~1993)이 나라사랑반 주민과 상도동 주민들을 대표해 1982년 4월에 세운 것이다. 그는 비문(
碑文)에
'나라사랑반 주민들이 장여사(장봉옥)의 시은(施恩)을 잊지 않기 위해 비를 세우니 이 땅에
보은의 씨앗이 살아있음을 기뻐하며 기꺼이 비문을 쓴다'
고 소감을 밝혔다.

이들 비석과 장봉옥의 무덤은 백운암 뒷쪽에 있었으나 이곳 일대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절은
아랫쪽으로 자리를 옮겼고, 비석과 묘소도 제자리를 잃고 김포로 옮겨졌다. 그러다가 2010년
비석만 지금의 자리로 돌아와 옛 백운암 자리를 쓸쓸히 지키고 있다.


▲  서달산 숲길 (서달산 수목학습원)
숲이 아주 무성하여 한낮에도 거의 어두울 정도이다. 이렇게 보면 서울
변두리 산속이나 교외 산속 같은 기분이나 현실은 서울 한복판이다.

▲  서달산 수목학습원 연못
근래 닦여진 작은 연못으로 더위에 지친 나그네들을 위해 조촐하게
분수쇼를 선보인다.

▲  서달산 수목학습원 숲길 (고구동산길)

▲  서달산 생태다리에서 바라본 흑석동과 한강, 남산

서달산 생태다리는 흑석동에서 상도동, 숭실대를 잇는 서달로 개설로 강제로 끊긴 서달산 자
락을 다시 연결하고 양쪽 산줄기의 동물 이동을 위해 닦여졌다. 다리 밑에는 터널을 뚫어 차
량 통행을 배려했으며, 생태다리 윗도리에는 산책로를 닦고 나무와 수풀을 심어 산의 자연스
런 일부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감쪽 같이 만들었다.
고구동산길이 생태다리를 지나 동서로 흘러가며, 다리 동쪽에는 달마사(達磨寺)란 절이 있는
데, 그곳 이름을 따서 육교 동쪽 산자락을 달마공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 고구동산길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흑석동, 상도동


▲  조그만 새집을 주렁주렁 머금은 나무조각품
새집이긴 하지만 너무 작게 지어져서 어느 새도 들어오기가 어렵다.
하여 새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 같은 장식물이다.


♠  서달산(西達山) 정상 주변 (서달산자락길)

▲  고구동산길과 서달산자락길이 갈라지는 곳 (서달산 피톤치드숲 서쪽)

서달산 생태다리를 지나면 서달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고구동산길과 숲에 묻힌 여러 산길, 나
무데크길이 나타나 서로 이곳으로 오라며 손짓을 벌인다. 갑자기 여러 갈래의 숲길이 나타나
길 선택을 어렵게 하는데, 동작충효길과 서달산 정상이 목적이라면 조금 넓게 닦여진 고구동
산길을 따라가면 되며, 서달산자락길과 피톤치드숲(잣나무숲)을 원한다면 나무데크길로 바로
들어서면 된다.

서달산자락길은 서달산 서남쪽 자락 잣나무숲에 닦여진 숲길로 서달산 생태다리 동쪽에서 숭
실대후문(백운119안전센터)까지 이어지는 463m에 짧은 길이다. 동작충효길과는 별도의 길로
잣나무가 무성하여 숲내음과 피톤치드가 아주 그윽하며, 거닐기 좋게 전 구간이 나무데크길로
닦여져 있다. 그리고 중간에 쉼터들이 있어 잠시 행동식을 섭취하며 쉬어가기에 좋다.


▲  피톤치드를 따라 그윽하게 펼쳐진 서달산자락길

▲  하늘을 훔친 서달산 잣나무숲 (서달산자락길) ①
잣나무의 좋은 기운이 진하게 꿈틀거리는 싱그러운 현장으로 삼삼하게
자리한 잣나무들로 하늘이 움푹 낮아진 기분이다.

▲  하늘을 훔친 서달산 잣나무숲 (서달산자락길) ②

▲  하늘을 훔친 서달산 잣나무숲 (서달산자락길) ③

▲  서달산자락길 숭실대후문(백운119안전센터) 종점
여기서 길을 돌려 서달산 잣나무숲에 나를 다시 숨겼다. 잠시나마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게끔.. 허나 나를 찾는 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 함정..

▲  서달산자락길에서 만난 거북바위 (사진이 엉망으로 나왔음)

서달산은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듯한 형상으로 산세가 동서남북으로 거침없이 펼쳐져 호랑이
가 담배 맛을 알기 이전부터 명당(明堂) 자리로 격하게 꼽혔다. 그런 서달산에는 거북바위란
이름을 지닌 바위가 2개 있는데, 하나는 달마사 경내 뒷쪽에 있고, 다른 하나는 서달산자락길
에 있다.

서달산자락길 옆에 자리한 거북바위 밑에는 영천(靈泉)이란 샘이 있었는데, 차가운 물이 솟았
다고 전한다. 게다가 영험한 기도처로 명성이 자자하여 동네 사람들이 용왕상을 봉안해 매년
용왕제를 지냈다. 믿거나 말거나 전설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곳에 내민 소망을 거북바위가 1년
에 1~2번씩 모아서 한강 속에 있는 용왕에게 전달하고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만큼 이
바위에 대한 지역 사람들의 각별함은 대단했다.


▲  서달산 정상으로 인도하는 숲길

서달산자락길 중간중간에 서달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여럿 손짓을 한다. 비록 이정표는
고구동산길과 만나는 곳 외에는 거의 없으나 무조건 산 위로 올라가면 서달산 정상이 나오며,
수목이 그야말로 울울창창하여 잣나무숲을 비롯한 서달산 정상 주변은 숲내음과 숲그늘 맛이
아주 진국이다.


▲  동작구의 지붕, 서달산 정상

서달산(西達山, 179m)은 동작구의 대표 지붕으로 동작구 및 동작충효길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
운 곳이다. 이 땅의 대표 성역(聖域)인 국립서울현충원을 품은 특별한 뫼로 오랫동안 화장산(
華藏山)이라 불렸는데, 이는 현충원 뒷쪽에 자리한 화장사<華藏寺, 호국지장사(護國地藏寺)
☞ 관련글 보기>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그리고 산세가 마치 공작이 날개를 펼친 모습이라 하
여 공작봉(孔雀峰)이란 별칭도 지니고 있다.

서달산의 범위는 국립서울현충원과 주변 산자락, 서달산 정상 주변, 서달로 서쪽 산줄기까지
로 숲이 삼삼하여 동작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 현충원이 조성되면서 서달산 정상을 비롯한 현
재 현충원 외곽이 현충원 영역에 묶였는데, 동작구가 그 외곽을 공원으로 삼고자 서울시, 국
방부와 협상해 2009년 8월 현충원 영역에서 근린공원으로 풀렸다. 즉 현충원 철책 바깥은 자
유의 공간으로 해방된 것이다.
이를 기리고자 2010년 봄, 정상에 동작대란 전망대를 세웠고, 주변 산길과 숲을 정비해 아주
휼륭한 시민들의 쉼터로 거듭났다.

서달산 정상에는 정상을 알리는 표석과 토지지신(土地之神) 표석, 동작대, 쉼터 등이 있으며,
산세도 완만하다.


▲  서달산 정상에 세워진 동작대(銅雀臺)

서달산의 새로운 명물인 동작대는 국립서울현충원 철책 바깥이 시민들의 공간으로 해방된 것
을 기리고자 2010년 봄에 장만한 3층짜리 8각형 정자이다.
동작대란 이름은 동작구에서 따온 것으로 동작구에서 가장 하늘과 맞닿은 동작대 3층에 오르
면 일품 조망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그를 둘러싼 숲의 패기가 대단하여 주변 조망은
그리 시원치 못하다. 동작대가 아무리 높다 한들 서달산 숲속에 묻힌 정자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도 나무들의 눈치를 피해가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상도동과 사당동, 관악구 지역, 관악
산(冠岳山), 여의도(汝矣島) 등이 시야에 잡히며, 북쪽은 겨우 서달산 정상만 시야에 들어온
다.

* 서달산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상도동, 사당동


▲  서달산 정상에서 현충원 상도출입문으로 이어지는 고구동산길 ①

이제는 익숙해진 공간이 되어버린 서달산 정상에서 짧게 두 다리를 쉬고 고구동산길의 나머지
구간인 동쪽 산길로 들어섰다.
서달산 정상에서 동쪽 산길을 거쳐 현충원 상도출입문까지 약 5~6분 거리로 내리막길과 완만
한 길이 꾸준히 이어지다가 상도출입문 전에서 잠시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허나 경사는 그리
각박하지 않으며, 이곳 역시 숲이 삼삼하여 숲내음이 진하다.


▲  서달산 정상에서 현충원 상도출입문으로 이어지는 고구동산길 ②

▲  국립서울현충원 상도출입문 앞

노들역에서 시작된 고구동산길은 국립현충원 상도출입문에서 그 장대한 끝을 맺는다. 고구동
산길(1코스) 뿐 아니라 동쪽으로 현충원길(2코스), 남쪽으로 동작마루길(6코스)과 까치산길(7
코스) 등 동작충효길의 4개 코스가 이곳을 기점 및 종점으로 두고 있어 동작충효길의 허브와
같은 곳이다. 게다가 이곳은 국립현충원의 남쪽 후문으로 그 문을 들어서면 호국지장사와 국
립서울현충원으로 이어지는데, 보통 6시부터 18시까지(주말과 현충일은 19시까지) 문을 열어
둔다.

이렇듯 고구동산길을 포함 5개의 상큼한 산길이 서로 자기네 길로 오라고 호객행위를 하니 선
택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다소 괴로울 수 있다. 허나 나는 7코스를 정처(定處)로 정해둔 터라
나머지 길의 유혹을 거뜬히 뿌리치고 남쪽 길(7코스)로 들어섰다.


♠  동작충효길7코스 까치산길

▲  상도출입문에서 백운고개로 내려가는 길 (동작충효길 6코스, 7코스)

동작충효길7코스 까치산길은 국립서울현충원 상도출입문에서 까치산을 거쳐 사당역까지 이어
지는 3.6km의 숲길이다.
까치산길이란 이름 그대로 길의 상당수가 까치산 숲길로 상도출입문에서 백운고개(사당이고개
) 생태다리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좀 각박하다. 그 경사를 조금 순화시키고자 계단길을 냈
으나 힘든 것은 마찬가지라 올라갈 때는 적지 않게 숨을 헐떡이게 하며, 내려갈 때도 무릎에
조금은 무리가 갈 수 있으니 조심해야 된다.


▲  백운고개(사당이고개) 생태다리

상도동과 사당동을 이어주는 백운고개(사당이고개)에 백운고개 생태다리가 높게 자리해 있다.
서달산 남쪽에 있는 백운고개는 동작구에서 꽤 각박한 고갯길로 서달산과 까치산을 이어주고
있는데, 사당로 건설로 이들 산줄기는 맥없이 끊기고 만다. 하여 그들을 다시 잇고자 사당로
위에 생태다리를 닦은 것이다.
그의 등장으로 관악산(冠岳山)~까치산~서달산~고구동산/국사봉(國師峰)까지 산줄기가 완전히
이어지게 되었으며, 동작구와 관악구(冠岳區)의 환상적인 지붕길이 형성되어 지역 명소와 도
보길을 크게 늘려주었다.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산길로 되어 있음)


▲  백운고개(사당이고개) 생태다리에서 사당동 방향 (까치산길)

동작충효길 6코스(동작마루길)와 7코스는 상도출입문에서 백운고개까지 함께 하다가 백운고개
생태다리를 건너서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그래서 6코스는 서쪽(봉천고개 방향)으로, 7코스는
남쪽(사당동 방향)으로 간다.


▲  까치산길 관악로30길 구간 (남쪽 방향)

관악로30길은 동작구와 관악구의 경계선으로 서쪽에는 관악구 봉천동 관악푸르지오아파트가
펼쳐져 있고, 동쪽은 동작구 사당동 까치산숲이 푸른 숲을 드러내고 있다.
까치산숲과 관악푸르지오아파트가 마주하고 있는 약 600m 구간에는 푸른색 도보길과 보도블록
을 지닌 도보길, 그리고 1차선 크기의 차로가 닦여져 있으며, 까치산숲에는 동작충효길 까치
산길이 별도로 자리하여 골라서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길 좌우로 벚꽃나무가 가득해
지역의 벚꽃 명소로 명성이 자자하다.


▲  아파트와 까치산 숲 사이를 가르는 관악로30길 (북쪽 방향)

▲  관악로30길에서 까치산으로 이어지는 까치산길

관악로30길 동쪽 옆구리를 살짝 지나던 까치산길은 관악로30길이 서쪽으로 90도 휘어지는 곳
에서 그와 결별하고 까치산 속으로 들어간다. 여기서부터 남부순환로와 만나는 까치산생태다
리(생태육교)까지 까치산 능선을 따라 숲길(까치산길)이 달달하게 펼쳐진다.


▲  무성한 수풀 속을 지나는 까치산 숲길 (사당5동 방향 산길)

▲  까치산 능선을 타고 흘러가는 까치산길 (까치산근린공원)

동작충효길7코스 까치산길이 신세를 지는 까치산은 동작구 사당동과 관악구 봉천동 경계에 자
리한 낮은 뫼이다. 까치산이란 이름은 사당동 280번지에 있는 까치고개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곳은 숲이 무성하여 까치가 많이 서식했다고 하며, 그로 인해 까치고개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
다.
하지만 개발의 칼질이 주변을 요란하게 지나가면서 그 많던 까치들은 거의 사라졌고, 까치산
또한 적지 않은 고통을 겪었다. 도로 개설로 산줄기 곳곳이 아작이 나고 시골 풍경 그윽했던
산자락에 주택들이 홍수처럼 밀려든 것이다. 다행히 산을 괴롭히던 개발의 칼질은 거의 멈추
었고, 끊어진 산줄기에 생태다리(생태육교)를 놓으면서 산줄기가 다시 관악산과 서달산으로
희미하게 이어지게 되었다.

까치산 영역 중 368,425㎡가 '까치산근린공원(까치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동쪽 자락
에 서울의 주요 명당자리로 꼽히는 동래정씨 임당공파 묘역과 효간공 이정영 묘역 등의 문화
유산이 있다. 그리고 동작충효길7코스 까치산길이 능선을 타고 남부순환로와 서달산으로 흘러
가며, 체육시설과 쉼터가 넉넉히 닦여져 있어 지역 사람들의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한다. 

* 까치산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관악구 봉천동


▲  까치산길에서 만난 돌탑
동작충효길 까치산길을 닦으면서 만든 장식용 돌탑으로 이 땅에서
매우 흔한 돌탑 스타일이다.

▲  까치산에서 사당4동, 이정영묘역으로 내려가는 산길

부드럽게 펼쳐진 까치산길을 신나게 거닐다가 솔밭로 생태다리를 지나면 효간공 이정영 묘역
을 알리는 이정표가 마중을 한다. 원래는 까치산길을 타고 사당역으로 내려갈 생각이었으나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그 이정표 앞에서 발길이 완전 얼어붙었다. 하
여 잠시 고심을 하다가 일정에 변덕을 주어 까치산을 버리고 이정영 묘역, 사당4동으로 내려
갔다.
그 길로 내려가면 길 옆으로 철책이 꽁꽁 둘러져 있는데, 그 너머로 무덤들이 무더기로 보이
니 그곳이 바로 이정영을 중심으로 한 이정영 묘역으로 이정영의 신도비를 머금은 비각(碑閣
)이 철책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다.


▲  효간공 이정영 신도비(神道碑)를 품은 비각

사당4동 까치산 동쪽 자락에는 효간공 이정영(孝簡公 李正英) 묘역이 넓게 둥지를 틀고 있다.
이정영을 비롯하여 그의 아들과 자손의 무덤이 주렁주렁 묘역을 이루고 있는데, 그중에서 이
정영 묘와 신도비가 '효간공 이정영 묘역'이란 이름으로 서울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
다.

묘역의 주인공인 이정영(1616~1686)은 조선 2대 군주인 정종(定宗)의 10번째 아들 덕천군(德
川君)의 후손이다. 자는 자수(子修). 호는 서곡(西谷)이며, 1636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
제했다.
병자호란 이후 소현세자(昭顯世子)가 볼모로 청나라 심양(瀋陽)으로 가게 되자, 사서(司書)의
자격으로 그를 따라갔으며, 이후 서울로 돌아와 정언(正言)과 수찬(修撰), 응교(應敎)를 역임
했다. 효종(孝宗) 때는 교리(校理), 헌납(獻納) 등을 지냈으며, 1651년 술에 취한 상태로 경
연(經筵)에 참여하는 실수를 범해 파직되었다.
허나 다시 복직되어 겸사서(兼司書), 이조정랑(吏曹正郞)을 거쳐 1660년 대사간(大司諫)이 되
었으며, 1651년 '진위겸진향부사(陳慰兼進香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갔다. 이후 평안도관찰사
가 되었고, 1672년 동지부사(冬至副使)로 다시 청나라에 갔으며, 1674년 산릉도감당상(山陵都
監堂上)을, 1675년에는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승진되었다.
1677년 형조판서(刑曹判書)를 지내던 중, 시관(試官)이 되어 부정을 저지른 죄로 강원도 철원
(鐵原)으로 귀양을 가기도 했으며, 돈령부판사(敦寧府判使)가 되었다가 1685년 기로소(耆老所
)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이듬해 70세의 나이로 사망하니 숙종(肅宗)은 크게 슬퍼하며 '효간
공'이란 시호를 내렸다.

이정영은 글씨를 매우 잘 썼는데, 전서(篆書)와 주서(籒書)에 뛰어났으며, 그가 남긴 글씨로
는 '이순신명량대첩비(李舜臣鳴梁大捷碑)','민기신도비(閔箕神道碑)' 등이 전하고 있다.


▲  철책 너머에서 까치발로 바라본 이정영 묘역

이정영 신도비는 1718년 10월에 세워진 것으로 그의 조카인 이익성 묘 앞에 자리한다. 신도비
는 보통 무덤 동남쪽에 세우기 마련이나 공간이 여의치 못해 동북쪽 구석에 두었으며, 비좌(
碑座)와 빗돌, 지붕돌로 이루어진 단촐한 모습으로 글씨는 서계 박세당(西溪 朴世堂)이 썼다.

* 효간공 이정영 묘역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산44-7


▲  이정영 신도비 뒷쪽에 자리한 이익성묘

▲  함풍역사도서관에서 바라본 이정영 묘역

이정영 신도비와 그를 머금은 비각, 그리고 이정영 묘역 일대는 오랜 세월 금지된 곳으로 묶
여 있다. 다행히 동작구가 이정영 후손들(전주이씨 함풍군파)을 설득하여 묘역 밑도리에 나무
데크 스타일의 둘레길을 닦아 2024년 4월 속세에 내놓았는데, 둘레길만 고분고분 움직여야 되
며, 둘레길 밖 묘역은 여전히 휴전선 너머의 금지된 땅처럼 남아있어 아쉬움이 여전하다. 인
근에 있는 동래정씨 임당공파묘역처럼 개방 범위를 넓히고자 계속 협의는 하고 있으나 잘 안
되는 모양이다.
그래도 둘레길에서 이정영묘를 비롯한 어지간한 무덤들은 비록 가깝게 대하지는 못하지만 다
볼 수 있다. 단 안내문이 부족해 누구의 무덤인지는 여전히 아리송하게 한다. 그리고 보현선
원(普賢禪院)이 있던 곳에는 함풍역사도서관을 만들었으며, 그 남쪽에는 기와집 스타일의 '한
옥까페R1'을 만들어 동네의 조촐한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  사당4동 은행나무 - 서울시 보호수 20-2호

한옥까페R1 옆구리(사당로16라길)에는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된 늙은 은행나무가 동네에 그늘
을 드리우고 있다.
그는 추정 나이 390년(1968년 7월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추정 나이가 335년)으로 높이 28.5m,
나무둘레 5.8m에 이르는 큰 나무이다. 키가 30m 가까이에 이르러 주변에 가득 들어찬 빌라와
주택들을 모두 그의 그늘에 두고 있는데, 나무의 위치상 이정영의 후손이 심은 것으로 여겨진
다.
이곳은 까치산 동쪽 밑이자 사당4동의 구석진 곳으로 여기까지 들어온 것은 처음인데, 이정영
묘역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다가 여기까지 들어왔고, 뜻밖에도 내 데이터에 전혀 없던 늙은 은
행나무까지 보너스로 챙기면서 이날의 여로(旅路)도 넉넉히 살찌웠다.

사당4동 은행나무를 둘러보고 다시 까치산의 품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여름 제국의 무더위
핍박에 몸이 은근히 지쳐 여기서 쿨하게 일정을 마무리 짓고, 사당4동과 사당1동 주택가를 가
로질러 사당역으로 이동했다. 까치산과 까치산길은 여러 번 인연을 지은 곳이라 이날 굳이 복
습을 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이렇게 하여 동작충효길, 서달산, 까치산 여름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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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6년 9월 28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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