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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척동 능골산, 신정동 신정산


' 구로구와 양천구의 상큼한 뒷동산, 능골산~신정산 '

도리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상조도, 하조도

▲  신정산둘레길

고척동 고인돌 능골산자락길

▲  고척동 고인돌

▲  능골산자락길

 


여름이 무심히 깊어가던 6월의 한복판에 서울 서남부 지역에 자리한 능골산과 신정산을
찾았다.
능골산과 신정산은 구로구(九老區)와 양천구 지역의 상큼한 뒷동산으로 같은 서울 하늘
밑에 있음에도 아직까지 미답(未踏)의 장소로 남아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남들 훨
씬 이상으로 서울을 구석구석 돌아다닌 나에게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미답처들은 정말로
참기가 어려운 존재들이다. 비록 미답처를 0개로 만들지는 못해도 95% 이상을 지우고자
틈틈히 길을 나서고 있는데, 그들을 잡으러 가는 길은 늘 마음이 설레고 즐겁다.


♠  고척동 능골산 들어서기

▲  덕의근린공원 덕의정(德義亭)

덕의근린공원은 능골산과 고척동(高尺洞) 주거지 사이에 둥지를 튼 작은 공원이다. 공원 이름
인 '덕의(德義)'는 이곳의 옛 이름인 '덕의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고척동에 있던 마을 중 가
장 오래되었는데, '덩어리'란 별칭도 지니고 있었다. 도시 확장으로 마을은 강제로 사라졌으
나 마을 이름은 이곳 공원과 초등학교(덕의초등학교)에 살짝 묻어있다.

공원에는 운동시설과 놀이터, 무료 물놀이장(여름에만 운영함), 덕의정 등이 있으며, 공원 북
쪽에는 능골산에서 가장 늙은 무덤인 여계 묘역이 있다. 그리고 능골산자락길(2.4km)이 이곳
에서 시작하여 능골산 윗도리로 흘러간다.


▲  여계 묘역으로 인도하는 계단과 정문

덕의근린공원 북쪽에는 여계 묘역이 둥지를 틀고 있다. 묘역의 주인공인 여계(呂稽, ?~1428)
는 함양여씨 사람으로 고려 말에 관직에 올라 조선 초에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와 형조판서
(刑曹判書)를 지낸 정평공 여칭(靖平公 呂稱)의 아들이다.
여계는 호조좌랑(戶曹佐郞) 등을 지냈으나 태어난 시기와 자세한 행적은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에 대부분 떠내려가 전하는 것이 거의 없다. 그에게는 아들이 5명 있었는데, 모두 번창하
여 현재 함양여씨의 90% 이상이 여계의 후손이라고 한다. 하여 사실상 함양여씨의 중시조 같
은 중요한 존재이다.

묘역의 규모는 1,025㎡로 여계와 청송심씨 내
외의 무덤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윗쪽에 여계
의 네모난 봉분(封墳)이 있고, 밑에 부인(청송
심씨)의 네모난 봉분이 있다. 사각형 봉분은
고려~조선 초기에 많이 나타나는 무덤 양식으
로 봉분 밑도리에 호석(護石)을 둘렀고, 그 주
위로 묘표(묘비)와 상석, 혼유석(魂遊石), 향
로석, 문인석(文人石) 2쌍을 두었다.
그리고 1991년에 문중에서 묘역을 손질하여 새
묘표와 상석, 부인 묘의 호석을 새로 갈았다.

▲  굳게 닫힌 여계 묘역 정문

여계 묘역은 서울 유형문화유산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데, 무덤 주변으로 담장을 꽁꽁 둘렀고,
덕의근린공원이 있는 남쪽으로 태극무늬가 그려진 기와 정문을 내었다. 허나 묘역 보호를 위
해 속세에는 문을 거의 열지 않는 곳이라 늘 굳게 닫힌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바깥에서
묘역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담장을 높이 둘렀고, 담장 바깥은 수풀까지 무성하여 접근도
어려워 까치발도 어림도 없다. 그야말로 휴전선 이상으로 접근도 어려운 철벽 방어에 오래된
무덤이다.

담장 바깥에서라도 묘역 안쪽을 일부라도 보고자 담장 주변을 열심히 기웃거려 보았으나 정말
로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하여 여계 묘역에서 본 것은 담장과 굳게 닫힌 정문이 전부
이다. 그렇다고 묘역을 보려는 욕심에 억지로 문을 뚫거나 월담을 하는 행위는 절대로 안된다
. 이곳과의 인연이 이것 뿐인 것을 어찌하랴.

* 여계 묘역 소재지 : 서울특별시 구로구 고척동 산6-3


▲  능골산으로 들어서다 (능골산자락길 덕의근린공원 북쪽 구간)

능골산(갈탄봉)은 구로구의 북쪽 지붕이자 양천구(陽川區)의 남쪽 지붕으로 구로구 고척동과
양천구 신정동(新亭洞)에 걸쳐있는 해발 69m의 낮은 뫼이다. 북쪽으로 정랑고개를 통해 신정
산과 이어지며, 서쪽은 매봉산, 동쪽은 목동11단지, 남쪽은 고척근린공원까지 덩치를 걸치고
있다.
예전에는 개봉동(開峯洞)까지 그의 산주름이 미쳤으나 도시화를 앞세운 개발의 칼질이 산 주
변을 마구 들쑤시면서 산 면적이 크게 줄어들었고, 그로 인해 도시에 갇힌 조금은 외로운 뒷
동산이 되었다. 그래도 여계 묘역과 평산신씨 묘역 등 늙은 무덤들의 보우로 이 정도라도 남
은 것이지 만약 그들도 없었다면 능골산은 달동네로 전락하거나 머리 부분만 겨우 남았을 것
이다.

능골산이란 이름은 고척고등학교 서쪽에 있던 능골마을에서 비롯된 것으로 고려 때 황실에서
그곳에 능 자리를 잡아서 생겨난 이름이라고 전한다. (능자리만 잡았지 능을 쓰지는 않았음)
능골산이란 이름 외에 가열봉과 갈탄봉, 부누꿀산 등의 이름도 있는데, 가열봉은 능골산 남쪽
밑인 개봉동에 갈대와 여울이 많아서 그곳을 가린열, 가린여울이라 불렀고, 그 뒷산이라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그리고 산주변으로 마치 칡넝굴처럼 여러 갈래의 개천들이 안양천(安養川)으로 흘러가 여울(
개울)이 많다는 뜻에서 갈탄봉이란 했는데, 오랫동안 갈탄봉이라 주로 불렸고 지금도 능골산
대신 종종 불린다. 또한 부누꿀(개봉1동, 가린열마을 북쪽) 뒷쪽에 있는 산이라 하여 부누꿀
산이란 이름도 지니고 있다.

능골산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함양여씨 여계묘역을 비롯해 평산신씨묘역, 고척동고인돌 등
의 문화유산이 있으며, 우렁바위란 지역의 명물 바위와 우렁바위약수터가 전한다. 그리고 능
골산과 신정산을 하나로 묶어 계남근린공원(면적 440,173㎡)으로 삼았는데, 계남(桂南)이란
이름은 신정동과 신월동(新月洞), 구로구의 옛 지명인 부평군(富平郡) 계남면에서 따온 것이
다.
또한 구로구의 야심작인 구로올레길의 산림형1코스(1.8km)가 능골산을 동서로 가로질러 가며,
능골산자락길(2.4km)이란 도보길도 별도로 닦여져 있는데, 이는 2015~2016년에 한국공항공사
에게 항공기 소음대책 주민지원사업 예산을 받아 만든 것으로 전 구간이 거닐기 좋게 무장애
나무데크길로 조성되었다. 이 자락길은 덕의근린공원에서 고척고등학교 서쪽 홍진연립까지 이
어진다.
그리고 양천구의 야심작인 양천둘레길(24.5km)도 구로올레길 산림형1코스와 비슷하게 능골산
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신정산생태순환길(2.7km)도 능골산 북쪽 자락을 지나가 모두 4가지의
둘레길이 앞다투어 거쳐가는 지역의 달달한 뒷동산이다.


▲  능골산자락길 덕의근린공원 북쪽 구간

▲  계남근린공원 축구장 옆을 지나는 능골산자락길
(덕의근린공원 방향)

▲  계남근린공원 축구장 옆을 지나는 능골산자락길
(능골산 정상부 방향)

▲  능골산자락길에서 만난 무궁화들
붉은 피부의 무궁화와 하얀 피부의 무궁화가 방긋 웃음을 보이며
서로 미소 경쟁을 벌인다.

▲  능골산 구로올레길 산림형1코스 동쪽 구간

능골산 축구장과 운동시설을 지나면 계남실내테니스장에서 올라온 구로올레길 산림형1코스와
양천둘레길과 만난다. 산림형1코스는 능골산 숲속을 가르는 달달한 흙길로 홍진연립까지 100%
나무데크길로 이루어진 능골산자락길 옆을 따라간다. 하여 취향에 따라 길을 골라서 움직이면
되며, 두 길 모두 경사도 완만하다.


▲  능골산 중간 부분을 지나는 능골산자락길
능골산은 비록 작은 산이나 숲이 제법 깊고 무성하여 잠시나마
대도시 한복판임을 잊게 해준다.

▲  능골산자락길 옆을 지나는 구로올레길 산림형1코스 숲길

▲  능골산 구로올레길 산림형1코스 중간 구간
능골산의 푸른 숲을 가르며 시원스럽게 뻗어있다.

▲  능골산 구로올레길 산림형1코스 서쪽 구간

▲  능골산 계남근린공원 철쭉동산

능골산 서쪽 자락이자 고척동 고인돌 동쪽에는 철쭉동산이 닦여져 있다. 2020년 4월에 산철쭉
과 산벚나무, 산딸나무, 팥배나무, 사철나무 등 5종 24,000주를 심어 철쭉동산으로 꾸몄는데,
이때는 6월 한복판이라 산철쭉, 산벚꽃은 만나지 못하고 그저 푸른 잎사귀를 드러낸 나무들이
나를 맞이했다.


♠  능골산과 신정산 (고척동 고인돌, 신정산 정상부)

▲  고척동 고인돌

능골산 서쪽 끝자락에 고척동 고인돌이 살짝 깃들여져 있다. 이곳은 오류중학교 마을버스 정
류장(구로구 마을버스 05번 종점) 동북쪽 산자락으로 산길 옆에 하얀 펜스가 둘러진 곳이 있
는데, 그 안에 막 빚은 된장 같은 주름진 피부의 견고한 돌덩어리가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
으니 그가 바로 고척동 고인돌이다.

두 귀에 너무 익숙한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유물로 한자로는 고인돌(支石墓), 서양 말로는 돌
멘(dolmen)이라 부른다. 우리 겨레를 중심으로 한 동이족(배달민족)의 특허 유물로 우리나라
와 북한, 만주, 요동반도, 하북성, 산동반도에 주로 분포하고 있는데, 고인돌의 서식지를 통
해 그 시절 우리 겨레의 활동 영역과 가늠하기도 어려운 큰 영토를 누렸던 옛 조선(고조선)의
영역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북한에 고인돌의 상당수가 존재하고 있고 굵직한 것
들도 많아서 고인돌의 성지(聖地)로 추앙을 받고 있다.
그렇게나 남아돈다는 고인돌이지만 정작 천하 제일의 대도시인 서울에는 고덕동(高德洞)과 자
곡동(紫谷洞), 그리고 이곳 정도만 남아있는 실정인데, (고려대학교에도 고인돌 여러 기가 있
으나 그들은 모두 지방에서 가져온 것들임) 서울 고인돌은 다른 유명 고인돌에 비해 덩치와
명성이 너무 떨어져 지역 사람들도 그들의 존재를 많이 눈치채지 못하는 실정이다.

고척동 고인돌은 땅바닥에 붙은 덮개석(뚜껑돌, 덮개돌) 1기가 전부로 부근에 동일한 피부의
돌이 존재하지 않아서 원래 위치에서 벗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덮개석의 재질은 화강편마암(
花崗片麻巖)이고, 크기는 190x105x28cm이며, 덮개석의 밑도리로 여겨지는 곳에서 동남쪽으로
110cm 정도 떨어져 있다. 즉 덮개석은 인위적이나 대자연의 괴롭힘으로 윗도리와 아랫도리가
분리되어 떨어진 것이다.
1998년 서울대박물관에서 조사를 했는데, 밑도리 조사 때 벽을 축조한 흔적을 확인했으며, 크
기는 180cm 정도로 추정한다. 그리고 부장품은 나오지 않았다.

▲  하얀 철책에 꽁꽁 감싸인
고척동 고인돌

▲  땅바닥에 자석처럼 붙은 고인돌


▲  남쪽에서 바라본 고척동 고인돌

이렇게 보면 땅에 붙은 평범한 바위처럼 보인다. 허나 그는 인공이 가해진 고인돌의 윗도리이
다.
무척 늙은 고인돌 주변으로 수풀이 덥수룩하게 자라났으며, 그 주위로 하얀 철책을 둘러 그를
지키고 있다. 비록 다른 유명 고인돌(강화도, 양구, 옥천, 고창, 화순, 김해 등)에 비하여 볼
품이 많이 떨어지나 서울에 흔치 않은 고인돌로 보존 상태가 좋은 고덕동 고인돌과 함께 지방
문화재로 삼아 대우할 필요가 있다.

* 고척동 고인돌 소재지 : 서울특별시 구로구 고척동 산8


▲  고척동 고인돌 주변에 솟아난 돌탑
능골산 계남근린공원 수식용으로 닦여진 돌탑으로 온갖 잡석들이
강인한 협동심을 보이며 견고한 돌탑을 뽐내고 있다.

▲  숲내음이 진한 능골산(갈탄봉) 북쪽 숲길

▲  신정산으로 이어지는 능골산 북쪽 숲길 (신정산 생태순환길) ①

능골산과 신정산은 정랑고개를 사이에 두고 바짝 살을 붙이고 있다. 그들은 원래 하나의 산줄
기였으나 신작로(신정로) 개설로 산줄기가 끊긴 것을 신정로 상에 생태다리(생태통로)를 닦아
끊어진 그들을 다시 잇고 있다.
신정로와 맞닿은 능골산 북쪽 자락을 신정산 영역으로 보기도 하며, 양쪽 뫼 모두 계남근린공
원(면적 440,173㎡)으로 묶여있다. 허나 산이 다르고 공원의 덩치가 넓어서 능골산 부분을 계
남근린공원, 신정산 부분을 계남근린공원1로 분류하기도 한다.


▲  신정산으로 이어지는 능골산 북쪽 숲길 (신정산 생태순환길) ②

▲  정랑고개를 넘어 신정산으로 들어서다

능골산 북쪽이자 신정동(新亭洞) 한복판에 자리한 신정산(新亭山)은 해발 85m(84.3m)의 낮은
뫼로 능골산과 함께 양천구의 남쪽 지붕을 이루고 있다.
산의 덩치는 동서 약 1km, 남북 600m 정도(능골산까지 포함하면 700~800m)로 예전에는 단산,
당산, 쪽박산, 장군봉이라 불렸으며, 지금은 지역 이름을 따서 신정산이라 많이 부르고 있다.

늙은 명소들이 여럿 깃든 능골산에 비해 신정산은 딱히 오래된 명소는 없다. 산 동쪽 자락에
송진우(宋鎭禹) 선생묘가 있었으나 근래 다른 곳으로 이전되어 없으며, 정상에는 장군정이란
2층 정자가 있으나 이는 계남근린공원 수식용으로 지어진 것이다. 다만 능골산보다 숲이 매우
짙고, 4.5km 길이의 신정산 생태순환길과 2022년 2월 초에 모두 개통된 2.7km의 신정산둘레길
이 둘러져 있어 마음 편히 짙은 숲과 숲길, 둘레길을 누리면 된다.
신정산둘레길은 2011년 11월에 조성된 1,023m의 신정산자락길 무장애데크길에서 시작된 것으
로 2016년부터 조금씩 연장을 거듭하여 2022년 2월 최종 마무리가 되었다. 코스는 남명초교에
서 다락골, 장수초교, 정랑고개, 다목적체육관(유아숲체험원)을 지나 다시 남명초교로 이어지
며, 무장애데크길 2.4km, 흙길 0.3km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정산 생태순환길은 능골산까지 포
함해 신정산을 구석구석 둘러보는 길이고, 신정산둘레길은 산을 1바퀴 도는 산길이다.

* 신정산 소재지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정동


▲  신정산 남쪽 숲길 (신정산 정상 방향) ①

▲  신정산 남쪽 숲길 (신정산 정상 방향) ②
숲이 삼삼하여 한낮에도 거의 어두울 정도이다.

▲  신정산 정상에 자리한 장군정(將軍亭)

정랑고개를 지나 7~8분 정도 오르니 벌써 신정산 정상에 이르렀다. 이곳이 신정산~능골산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으로 그 현장에 장군정이란 2층 팔각정을 닦아 신정산의 새로운 명소를
꿈꾼다.
장군정이란 이름은 신정산의 옛 이름인 장군봉에서 따온 것으로 정자 1층에는 마루가 닦여져
있어 잠시 누워서 쉬기에 좋으며, 2층에는 정자 난간을 따라 의자가 둘러져 있다. 비록 이곳
이 산 정상이긴 하나 이곳을 둘러싼 숲의 위엄이 대단해 정자에 올라가도 보이는 것은 주변
숲 뿐이다. 허나 숲 그늘에 푹 묻혀있어 숲내음이 그윽하며, 그늘 맛이 좋아 여름 제국도 슬
슬 눈치를 보며 피해간다.


▲  신정산에서 만난 돌탑
녹음이 가득한 숲속에 산악신앙으로 많이 지어지는 돌탑 하나가 뿌리를
내렸다. 그는 계남근린공원 수식용으로 근래에 마련된 것으로
시커먼 피부의 잡석들이 모여 어엿하게 돌탑을 이룬다.


♠  신정산 마무리 (신월동 열녀문)

▲  도시 속의 작은 뫼, 신정산의 푸른 속살을 거닐다
(신정산 생태순환길)

▲  신정산둘레길로 들어서다

신정산둘레길은 신정산 허리에 둘러진 2.7km의 숲길이다. 2011년 11월에 닦여진 1,023m에 신
정산자락길 무장애데크길에서 시작된 길로 2016년부터 조금씩 늘려나가 2022년 2월에 마무리
를 보았다. 이때 신정산둘레길로 간판을 갈았다. 무장애 나무데크길 2.4km, 흙길 0.3km로 이
루어져 있으며, 남명초교~다락골~장수초교~정랑고개~다목적체육관(유아숲체험원)~남명초교로
이어지는 순환형 숲길이다.

이곳 둘레길은 능골산자락길보다 숲의 농도가 진하여 숲내음도 아주 달달하다. 도시 속에 갇
힌 작은 산에 이런 숲이 숨겨져 있었나? 싶을 정도로 격하게 감동을 주는 곳으로 1바퀴 가볍
게 둘러보면 30~50분 정도 걸리며, 길이 너무 좋아서 지루할 틈을 거의 주지 않는다.
둘레길도 좋지만 산에 왔다면 그 꼭대기도 가급적 가보는 것이 산에 대한 예의라 꼭대기(장군
정)를 겯드려 둘레길을 1바퀴 돌면 최소 50~70분 정도 걸리며, 신정산생태순환길도 최대한 챙
겨 볼 경우 족히 2시간은 넘게 걸린다.


▲  신정산둘레길을 거닐다~~

▲  신정산의 푸른 숲속을 가르는 신정산 생태순환길

▲  다시 신정산둘레길로
신정산을 고루고루 살피고자 신정산 생태순환길과 신정산둘레길,
기타 숲길을 계속해서 갈아타 그의 속살을 마음껏 탐험했다.

▲  싱그러운 녹음 속을 누비는 신정산둘레길

이렇게 보니 도시에서 머나먼 산골을 거니는 기분이다. 하지만 현실은 대도시 서울의 한복판.
허나 신정산은 숲이 깊고 무성하여 그의 품속에서만큼은 잠시 서울, 도시, 속세를 잊어도 좋
다. 이렇게 좋은 곳을 이제서야 인연을 지었다니 정말로 등잔 밑이 어두웠고, 이곳을 오랫동
안 몰라보고 지나쳤던 나의 눈썰미가 쓰레기였음을 깨달았다.


▲  신월동 열녀문<烈女門, 숭정각(崇旌閣)>

신정산을 충분히 둘러보고 북쪽 방향인 신월2동으로 내려갔다. 신월2동을 벗어나면 신월로가
나오는데, 그 길 북쪽에 신월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 장수공원이 있다.
신정산 이후로는 딱히 후속 메뉴도 마련하지 않았고, 시간도 18시가 훌쩍 넘은 상태라 간만에
신월동 동네 구경도 할 겸, 신월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했는데, 신성미소지움2차아파트 앞
길가에서 생각치도 못한 맞배지붕 건물이 튀어나와 마중을 하는 것이다. 내 돌머리에는 전혀
없는 존재이고 양천구는 딱히 늙은 기와집도 없는 동네라 '이건 무엇인가?' 호기심을 내밀며
살펴보니 열녀문(숭정각)이란 존재이다.

열녀문은 절개를 지킨 여인을 기리고자 나라에서 지어준 건물로 정문(旌門), 정려문(旌閭門),
홍문(紅門)이라 불리기도 한다. 전국에 열녀문과 열녀비(烈女碑)가 무수히 존재하고 있으나
천하 제일의 대도시로 없는 것이 거의 없다는 서울에는 오직 이곳이 유일하다. 그만큼 서울
땅에서 매우 희귀한 존재로 이곳의 사연은 대략 이렇다.

열녀문의 주인공은 18세기 초기 인물인 전의이씨 부인이다. (이름은 전하지 않음) 그는 어려
서부터 효성이 지극했고 품행이 단정했으며, 총명까지 갖추어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송이 자자
했다고 한다.
그는 장성하여 신월동 지역에 살던 원주이씨 원정익(元鼎翼)에게 시집을 갔는데, 남편을 정성
껏 섬기고 시부모 봉양에 정성을 다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허나 그 행복도 아주 잠시 남편이
20대에 한참 나이에 중병에 걸리자 백방으로 약을 구해 밤을 새며 보살폈으나 결국 세상을 떠
나고 말았다.
이후 남편의 3년상을 치렀으나 남편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에 식음을 완전히 끊어 20대 후반에
꽃다운 나이에 사망하고 말았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음식을 아무도 모르게 버리며 단식을 했
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영조(英祖) 임금은 1729년 '烈女學生元鼎翼妻 孺人全義李氏之門(열녀학생원정
익처 유인전의이씨지문)'이란 정문을 내리고 열녀문을 세워 그의 뜻을 기렸다. 원정익 일가는
이 열녀문 덕에 홍문댁이라 불렸는데, 홍문은 열녀비의 다른 이름이다.

이후 후손들의 집(신월동603번지 3호)에서 보존하고 있다가 2004년 6월 원정익의 10대손인 원
재연이 양천구청에 흔쾌히 기증을 했다. 하여 현재 위치에 1칸짜리 맞배지붕 건물인 숭정각을
세우고 열녀문을 이곳으로 옮겨 속세에 공개했다.


▲  열녀문 정문(旌門)

정문은 열녀문의 중심이 되는 존재로 영조가 1729년에 내린 것이다. 허나 정문 내용에 '영묘(
英廟) 5년'이란 내용이 있는데, 영묘5년은 영조 5년을 뜻한다. 하여 영조 사후(정조 시절이나
19세기)에 정문 훼손이나 화재 등으로 다시 정문을 받거나 후손들이 손질한 것으로 여겨진다.
열녀문에 주어진 이름인 숭정각은 이곳에 담긴 정문을 숭상한다는 뜻이다.


▲  단정한 모습의 숭정각 현판의 위엄
원정익의 11세손이 쓴 것이다.


신월동을 어렸을 적부터 무수히 오갔지만 이 열녀문은 처음 만난다. 그도 그럴 것이 2004년에
세상에 공개되어 이곳에 안착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를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서울에서 유
일한 조선시대 열녀문으로 지방문화재 자격은 충분하다 여겨지나 아직까지 비지정문화재에 머
물러 있다.
능골산과 신정산 나들이에서 덤으로 얻은 신월동 열녀문으로 이날의 여로(旅路)는 정말로 배
가 터질 정도이다. 게다가 적지 않은 미답처를 지웠으니 마음까지 정말 뿌듯하다.

이렇게 하여 초여름 능골산~신정산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 신월동 열녀문 소재지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월동 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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