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산 정상 주변
▲ 남산 팔각정(八角亭) |
하늘과 맞닿은 남산 정상에는 남산서울타워와 팔각정, 남산봉수대가 둥지를 틀고 있다. 남산
서울타워는
남쪽, 팔각정은 중앙, 남산봉수대는 북쪽에
각각 자리해 있는데, 그중 인파가 가
장 많은 곳은 남산서울타워(높이 236.7m)와 팔각정 주변이다.
팔각정은 남산서울타워와 더불어 남산의 주요 장식물로 이곳에는 원래 1959년에 이승만(李承
晩) 대통령을 치켜세우고자 세운 우남정(雩南亭)이 있었다. 여기서 우남은 이승만의 호로
1960년 4.19의거로 그가 물러나자 바로 철거되었다.
이후 1968년
11월 탑골공원 팔각정을 모델로 삼아 지금의 팔각정을 지었으며, 남산 정상을 수
식하는 존재로 삼았다. 정자 서쪽에는 한양도성 여장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산바람이 주변
에
늘 머물고 있어 한여름에도 시원하다. 정자 자체는 60년도 채 안된 존재이나 관광객들로
늘
붐비며, 매년 1월 1일 새해 해맞이 행사가 성황리에 열린다. |
▲ 옛 국사당(國師堂)터 표석 |
남산 정상은 늘 사람들로 미어터지지만 팔각정 부근 구석에 누워있는 국사당터 표석에는 눈길
을 주는
이들이 거의 없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지나는 이들의 눈길과 관심을 호소하나 거의
외면을 받는 국사당 표석,
표석에
쓰인 국사당은 앞서 언급했던 남산의 수호신 목멱대왕의 사
당으로 1395년에 태조가 세웠다.
1404년에 목멱대왕을 호국(護國)의 신으로 높이면서 목멱신사(木覓神祠)라 불리기도 했던 남
산의 성역이자 중심이었으나 1925년 왜정이 조선신궁을 지을 때 국사당이 그보다 높은 곳에
있는 것에 쓸데없이 아니꼬움을 드러내면서 다른 데로 옮기라고 난리를 쳤다. 그래서 태조와
무학대사(無學大師)가 기도를 했던 곳이라 전하는 인왕산 선바위 밑으로 눈물을 머금고 이사
를 가게
되었고, 목멱대왕의 남산은 왜열도의 온갖 잡귀들이 판을 치는 일그러진 현장이 되었
다.
국사당을 핍박했던 왜정도, 조선신궁도 다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그곳에 건방지게 들어앉던 왜
열도의 잡귀들도 추방되었지만 남산의 주인인 국사당은 끝내 제자리로 오지 못하고 인왕산에
뿌리를 내려 선바위와 함께 무속신앙의 성지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집과 탑, 비석 등의 부동산 문화유산은 가급적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맞겠지만 사람들로 미
어터지는
이곳에 다시 와봐야 너무 시끄러운 나머지 국사당 신들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다
. 그만큼 남산은 많이도 변했다. |
▲ 남산 목멱산봉수대(木覓山烽燧臺) - 서울 지방기념물 14호 |
정상 북쪽에는 남산의 오랜 상징물인 남산봉수대가 도심을 바라보며 우뚝 자리해 있다. 남산
의
옛 이름을 취해 목멱산봉수대(문화재청 지정 명칭은 '목멱산봉수대터')라 불리기도 하며,
서울에 있다고 해서 '경(京)봉수대'란 별칭도 있으나 그냥 속편하게 남산봉수대라 불러도 크
게 문제는 없다. 어차피 남산이나 목멱산이나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봉수대란 불을 피우거나 연기를 이용하여 변방에 소식을 알리던 옛날 통신 수단으로 주로 산
꼭대기에
설치되었다. 낮에는 연기로 알리고, 밤에는 불을 피워 소식을 전했으며, 비가 많이
오는 경우에는 봉수지기가 직접 다음 봉수대까지 힘들게 달려가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봉수대는 크게 5개 노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변경인 압록강(鴨綠江)과 두만강(豆
滿江), 남해바다에서 시작하여 남산을 종점으로 삼았으며, 평소에는 봉화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경계에 다다르면 3개, 경계를 넘으면 4개, 전쟁이 터지면 5개를 올렸다.
전국 봉수대의 종점 남산봉수대는 1394년에 설치되어 하루도 연기가 마를 날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으며, 동쪽에서부터 서쪽을 향해 5개소가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1895년 봉수
제도가 폐지되면서 문을 닫았고, 왜정 때 싹 철거되면서 그만 그 위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청구도(靑邱圖)를 통해 봉수대터 1곳을 발견하니 그곳이 지금 봉수대로 철저한 고증을
통해 1994년에 복원되었다. (나머지 4곳은 아직도 위치를 모른다고 함;;)
남산봉수대는 벽돌로 쌓은 5개의 봉수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금은 불과 연기를 피울 일이
없는 죽은 봉수대로 남산 정상을 수식하는 상징적인 존재이자 조선시대 봉수제도의 중앙봉수
대란 의미 밖에는 없다. 그것이 현역에서 물러난 사물의 쓸쓸한 뒷모습이다. 봉수대는 관람이
가능하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가히 장관이라 이곳이 왜 조선 봉수대의 중심이 되었는
지 이해가 될 것이다. 남산이 서울 한복판에 솟아 있고 조망이 뛰어나 사방에서 날라오는
봉
수대 연락을 받기에 아주 좋기 때문이다.
참고로 서울에는 남산 외에도 무악봉(毋岳峰) 동봉수대와 봉화산(烽火山) 봉수대(아차산봉수
대터), 봉산 봉수대, 개화산 봉수대
등이 있었으며, 이들은 모두 근래에 복원된 따끈따끈한
상태로 봉산과 어설프게 재현된 개화산봉수대를 빼고 모두 서울시 지방기념물의 지위를 누리
고 있다.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8-1 |
▲ 벽돌로 잘 지어진 목멱산봉수대
불을 피우는 봉수대는 벽돌로 쌓고 그 밑도리는 성벽처럼 돌을 다듬어서 쌓았다.
1994년에 복원된 상태라 고색의 때는 채 익지 못했으며 아직까지는
파리가 미끄러질 정도로 매끄러운 피부를 유지하고 있다.
▲ 목멱산봉수대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서울 도심은 어디로 갔지?)
천하의 최대 민폐덩어리 중공이 보낸
미세먼지의 농간으로 바로 밑인 서울
도심도 짙은 안개에 감싸인 듯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차라리
저게 안개였으면 좋겠다.
▲ 남산 정상에 묻힌 85타임캠슐
1985년 10월 17일에 묻은 것으로 딱 500년 뒤인 2485년에 봉인을 푼다고 한다.
500년 전 사람들의 물건을 본 그들의 반응은 과연 어떠할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 남산 숲길 (북측순환도로로 내려가는 길) |
정상이란 자리는 오래 머물려고 들면 반드시 탈이 나는 법, 게다가 남산은 어린 시절부터 수
없이 안겼던 곳이라 20분 정도 머물고 왔던 길로 내려가 북측순환도로로 질러가는
숲길로 들
어섰다.
이 숲길은
숲이 울창한 아름다운 길로 남산 정상과 북측순환도로, 장충단공원을 빠르게 이어
준다. 예전에는 시멘트 계단길로 닦여져 있었고, 길 좌우에 철조망이 둘러져
있었으나 길을
순화시키면서 철조망을 없애고 계단을 크게 줄였다. 허나 길의 상당수는 여전히 시멘트로
되
어 있어 그 점이
아쉽다. 산에 걸맞게 흙길로 깔았다면 발걸음이 더 즐거웠을텐데 말이다. |
▲ 남산의 숨겨진 숲길 (남산약수터 방면) |
숲길을 조금 가다보면 샛길 하나가 살짝 손을 내민다. 그 길은 한양도성 남산약수터 주변 구
간으로 이어지는 따끈따끈한 숲길로 근래 닦여졌는데,
2010년 이후 금지된 땅에서 해방된 남
산의 숨겨진 속살로 성곽 조망대로 이어지며,
성곽 조망대에서 한양도성 밑도리를 따라 남측
순환도로 시작점(남산약수터 입구)까지 이어진다. |
▲ 아직까지 금지된 구역으로 묶여있는 성곽 조망대 남쪽 한양도성
▲ 성곽 조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국립극장, 장충동 주변)
여전히 미세먼지 밑에 가려져 보이는 것이 별로 없다. |
숲길 성곽 부분에는 성 안과 성 밖을 이어주는 나무 계단이 닦여져 있다. 국가 사적으로 지정
된 귀한 몸을 배려해 성곽 여장에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통로를 내었는데, 북쪽으로 돌출된
부분에 성곽 조망대가 닦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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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쪽을 향해 거칠게 달려가는 한양도성 (성곽 조망대
북쪽) |
성곽조망대에서 나무
계단을 통해 성 밖으로 넘어가면 가파른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여기서
남산약수터 입구 갈림길까지는 2010년 이후에 개방된 구간으로 성 바깥에 탐방로를 닦았다.
경사가
다소 거칠어 올라갈 때는 다소 진땀을 빼야 되며, 성곽길(성곽 안쪽)은 성곽 보존과
자연보호 때문에 아직까지 통제의 봉인에서 풀리지 않았다.
하긴 속세에 너무 풀어버리면 남
산의 건강에도 문제가 생긴다. |
▲ 성곽 바깥 탐방로 (남산약수터 입구 방향)
▲ 각박하게 펼쳐진 성곽 바깥 탐방로 (성곽
조망대 방향)
▲ 다시 만난 남측순환도로 (남산약수터 입구) |
성곽 탐방로를 내려오면
다시 남측순환도로와 만난다. 여기서 오른쪽(남쪽)은 남산 정상, 왼
쪽은
국립극장 방면이며, 성곽은 도로에서 잠깐 끊겼다가 길 건너편에서 다시 부활하여 제 갈
길을 간다.
우리는 왼쪽 길로 접어들어 국립극장을 거쳐 동대입구역(3호선)으로 내려갔다. 이미 정상을
찍고 내려왔으니 또 올라갈 필요는 없고 오로지 뚜벅이 길로 이용되는 북측순환도로(국립극장
~소파로)도 종종 복습을 하는 길이니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다.
이렇게 하여 남산 봄꽃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