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금산(錦山) 역사기행 (2005년 2월 20일)'
'중편 ― 진악산 보석사(寶石寺) ~ 산신각, 은행나무, 진악산자연휴양림'

▲ 보석사에서 영천암으로 올라가는 산길(진악산 등산로)
* 이번 여행 코스
' 서울 → 천안역 → 대전역 → 마전 → 금산읍 → 보석사입구(석동리) →
보석사 경내(일주문 → 의병승장비 → 대웅전 → 의선각 → 산신각 → 은행나무)
→ 진악산 자연휴양림(영천암) → 보석사 경내 → 금산읍 → 칠백의총(순의비 →
칠백의총 → 종용사 → 기념관) → 마전 → 대전 → 천안 → 서울 '
* 본 글은 상,중,하 3부로 나눠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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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석사 산신각(山神閣)의 풍경물고기~

| ◀ 보석사 산신각(山神閣) -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을 한 조그마한 전각으로 우리에게 매우 친근한 존재인 산신 (山神)을 모시고 있다. 별 부담없는 모습의 이 전각은 아까전 의신각 처럼 문이 굳게 잠겨져 있어 안에는들어가지 못했으며 건물의 높이가 너무 낮아 현판(懸板)에 머리가 닿을 정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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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면에서 바라본 산신각 |

| ◀ 산신각 추녀에 매달린 풍경물고기 - 다른 절에서는 보통손이 닿지도 않은 높은 위치에 매달려 있어 중생들의 목을 꽤 아프게 만들던 풍경물고기, 그런 풍경이 여기서는 바로 내 눈높이에서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춤을 추고 있다. 그래서 풍경을 유심히 살펴볼 수도 있고 직접 만져볼 수도 있다.
내가 가본 수많은 절중에서 풍경을 만져보고 이리저리 흔들어 볼 수 있는 곳은 이곳 보석사가 유일한 것 같다. 추녀 밑에 마치 그림의 떡처럼 높이 매달린 풍경을 바라보면서 평소 직접 만져보며 집으로 가져가고픈 생각이 매우 절실했는데 이제서야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 같아 매우 기쁘다. 절에 있는 것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존재가바로 풍경과 물고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 풍경을 따가지고 온 것은 아님. 실제로 만져보니 생각 외로 무게가 꽤 나가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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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에 새겨진 비천상(飛天像) 조그마한 풍경의 몸뚱이에도 범종(梵鐘)처럼 비천상이 자리해 계신다. 연꽃자리 위에 무릎을 꿇으며 두 손으로 소중히 뭔가를 떠받들고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비천상의 천의(天衣) 자락이 하늘 높이 마치 불이 활활 타오르듯 요란스레 휘날리고 있으니 아무래도 연꽃구름을 타고 어디론가 급히 행차하는 모양이다.
풍경의 아랫 부분에는 당초문(唐草紋)으로 보이는 무늬가 마치 꼬부랑 아랍어처럼 새겨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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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에 안쪽 부분 방울 안쪽으로 십자(十字)처럼 생긴 추가 달려 있는데 저 추는 풍경이 그윽한 소리를 내는데 큰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풍경의 추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처음. 솔직히 방울 안에 저런 것이 있다는 것은 여기서 처음 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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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에 맞쳐 춤을 추는 풍경과 물고기 (1) - 매섭고 강한 바람이 계속 불어대면서 풍경물고기도 조금의 휴식도 없이 계속 몸을 움직여 댄다. | ▲ 바람에 맞쳐 춤을 추는 풍경과 물고기 (2) - 오늘따라 그 소리가 정말 한 곡의 가곡(歌曲)을 듣는 듯 하다. |
 | ◀ 바람에 맞쳐 춤을 추는 풍경과물고기 (3) - 푸르른 하늘을 자신의 푸른 바다로 삼으며 열심히 바다를 거닐듯 살랑살랑움직이는 풍경물고기, 풍경 물고기는 불전(佛殿)의 화재를 막고자 하는 의미도 있다고 하며자나깨나 죽으나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처럼 열심히 수행하라는 뜻도 담겨져 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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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고기를 잡았다 내 손에 잡힌 풍경물고기,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제발 놔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다. 간만에 정말 시원하게 들어보는 풍경물고기의 연주곡을 약 20분 가량 들으니 머리 속에 산재해 있는온갖 복잡한 생각들이 잠시나마 잊혀지는 듯 하다.
풍경물고기는 앞날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 잡힌 나에게 이렇게 충고를 해준다. "하루하루 열심히 정진하며 살아가시오. 쓸데없는 과욕을 부리지 말고, 자연에 거스르지 말고, 자신의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꼭 좋은 날이 올것이외다. 인생이라는 것은 첫술에 배부를 수가 없다오.." |
♠ 하늘 높이 자라난 보석사 은행(銀杏)나무 ~
 | ◀ 1000년을 살아온 보석사 은행나무 - 보석사에서 제일 오래된 보석으로 일컬어지는 보석사의 은행나무. 이 나무는 보석사를 창건한 조구대사 가 그의 제자와 함께 심었다고 전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수령(樹齡)은 적어도 약1000살 이상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한국 최대의 은행나무로 지존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용문사(龍門寺) 은행나무에 버금가는 나이로 나무의 높이는 무려 34m, 가슴둘레는 약 11m의 거대한 나무이다. 나무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과 차량을 비교해보면 그 규모가얼마나 큰 지 실감이 날 것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과 그들이 만든 문명의 이기(利器)들은 이 나무앞에서 는 일개 하잖은 존재에불과할 뿐이다.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 3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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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타게 봄을 기다리는 은행나무 가을에 왔으면 황금색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은행나무를 볼 수 있었는데, 이렇게 늦겨울에 오는 바람에 가지만 앙상한 벌거숭이 나무만 보고 말았다. 봄의 입구라는 입춘(立春)도 지나 이제 봄만 오면 되는데 이렇게 강추위가 몰려와 전국을 꽁꽁 얼려버리니 봄을 애원하는 은행나무는 더욱 조바심이 들어 가지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하늘을 원망하고 있다. |
 | ◀ 보석사 은행나무 - 덩치도 크고 오래된 나무치고 신비하지 않은 나무가 없는것 같다. 이 나무 역시 석동리 마을에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으면 미리소리를 내어 알려준다고 하며 예로부터 석동리 마을을 지키는신성한 나무로써 매년 2월 15일마다 나무에게 제를지낸다. 또한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마다 이 나무는 소리를 내어 운다고하는데 1945년 8.15광복과 한국전쟁 때나무가 하루종일 소리를 내어 울었다고한다. 물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이 나무에 대해 마치 사람을 대하듯 소중히 여기던 지역 주민들의 사랑이 저런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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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나무 표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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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나무의 아랫 부분 둘레가 무려 11m에 이르는 엄청난 허리사이즈, 저 비만스러워 보이는 그의 굵직한 허리에는 1000년의 무수한 세월이 담겨져 있다. 그 엄청난 시간을 매일 매일 먹어대니 저렇게 무책임하게 살이 찐 것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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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끼를 뒤집어 쓴 기린암(麒麟巖) 은행나무 북쪽에는 기린암이라 불리는 제법 큰 바위가 이끼를 옷으로 삼으며 그렇게 앉아 있다. 이 바위에는 옛 사람들의 낙서가 남겨져 있는데 '기린'(麒麟)이란 목이 긴 동물이 아닌 상상 속의 상서로운 동물로 '기린이 나타났다'하는 식의 역사기록이나 전설이 많이 남아 있어 여기서도 기린 같은 것이 나타났던 모양이다. 아니면 상서로운 존재인 은행나무를 기린으로 빗대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다.
'麒麟巖'의 3글자 밑에는 이 곳에 다녀갔던 사람들의 이름 석자(字)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

▲ 은행나무에서 바라본 보석사 경내(境內)
마치 어미와 자식처럼 나란히 서 있는 대웅전과 의신각의 모습이 매우 다정스러워 보인다.
♠ 진악산 자연휴양림을 거닐며 사색에 잠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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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석사 계곡 보석사의 방화수(防火水) 역할을 하는 계곡으로 절 부근에 12폭포가 있다고 해서 보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골짜기를 뒤적거려 보았으나 결국 찾지도 못하고 대신 3단으로 쏟아지는 조그만 계류(溪流)를 발견하는데 그쳤다.
비록 떨어지는 높이는 1m에 불과하지만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니 폭포는 폭포가 아닌가?
유리처럼 투명한 물의 유혹으로 잠시 그의 곁으로 다가가 그를 만졌는데 얼마나 차갑던지 한동안 손이 얼어 움직이지를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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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개처럼 떠 있는 나무다리 저 나무다리를 건너면 금산군청에서 꾸며놓은 휴양림 산책로가 펼쳐진다. 산책로의 길이는 약 200~300m정도로 정자와 의자, 그리고 온갖 운동 시설 등이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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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쓸쓸한 겨울 산길 인적이 없는 조용한 산길, 앙상한 가지만 드러낸 채 봄을 갈망하는 나무들, 그리고 그 길을 혼자 걷고 있는 '나'라는 존재. 정말 사색(思索)에 한없이 잠기기에는 매우 적당한 곳이다.
마치 내가 저 길을 혼자 전세라도 낸 듯 아무도 없는 저 길을 걸으며 온갖 번뇌로 가득한 속세로부터 잠시나마 해방감을 누려본다.
시적(詩的) 감각이 뛰어났다면 정말 멋있는 시라도 한 수 지었을텐데 그러지를 못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울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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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양림 산책로에서 만난 6각형 정자(亭子) 별로 정자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잠시나마 쉬어가기에는 괜찮은 곳이다. 저 난간에 걸터앉아 동동주 한잔 걸쳤으면 좋으련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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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잠시 수학공부를..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겹게 배워온 1㎥의 존재를 그동안 까맣게 잊고 살다가 여기서 이렇게 재복습을 하게 되었다.
이 곳 진악산휴양림은 역사공부, 문화유산공부, 불교공부, 자연공부 외에도 보너스로 수학공부도 할 수 있는 매우 알차고 좋은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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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수터 길가에 이름 모를 샘터가 지나가는 이들의 목을 축여준다. 나는 물을 많이 마시는 편으로 약수터나 샘터 등을 만날 때마다 꼭 물을 한모금씩 마시는 편이다. 여기서 진악산이 제공해준 깨끗한 물을 한모금 마시고 잠시 숨을 가다듬으며 다시 산책을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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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 1쌍 이들 장승들은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는지 표정이 매우 밝아 보인다. 내가 온게 너무 기뻐서 그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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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곡 옆에 주먹도끼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가 푸른 이끼를 옷으로 삼으며 그렇게 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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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곡 위에 걸려 있는 외나무다리 저런 모습의 다리를 본 것도 참 오랜만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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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돌덩어리는 아까전 주먹도끼처럼 생긴 바위에 뒷부분이다. 산에서 굴러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바위로 지금은 계곡과 숲 사이에 경계역할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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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다리와 휴양림 벤치 저 나무다리를 건너 저 벤치에 앉아 잠깐 자연과 이야기를 해본다. 날씨가 따뜻할 때 왔다면 저 의자에 걸터앉아 잠시 낮잠이라도 즐겼으면 싶지만 추운 겨울이라 감히 그럴 생각을 하지 못한다. |
 ▲ 산에 수북히 쌓여 있는 눈의 잔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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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사에서 15분 가량 올라가면 보석사의 부속암자인 영천암(靈泉庵)을 만날 수 있다. 이 절에는 영천(靈泉)이라 불리는 유명한 샘이 있는데 절에서 일반인들의 출입을 제한한다는 안내문을 입구에 버젓히 세워놓아 굳이 절 안까지는 들어가지 않았다. 물론 몰래 들어가는 것이 나의 취미이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억지로라도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
절로 들어서는 입구 부근 공터에는 어느 산악회에서 방금 시산제(始山祭)를 마치고 진악산 정상으로 올라갈 체비를 하는데 그들이 놀고 먹은 자리는 거의 쓰레기장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산에 시산제를 지내러 왔으면서 오히려 산에서 먹고 놀고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것은 또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굳이 시산제 흔적을 그곳에 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는데 말이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눈이 녹으면서 등산로 전체가 진흙 길로 화(化)해 버려 좀처럼 올라가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저번 태백산처럼 등산화를 신고 온 것도 아니라서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한 고비를 맞기도 하였지. 아무래도 진악산이 나를 반기는 눈치가 아닌 것 같다는 핑계를 둘러대며 등산을 접고 다시 보석사로 내려왔다. |
 | ◀ 보석사 옆을 흐르는 계곡 보석사로 들어설려면 저 계곡을 꼭 건너야 된다. 이 계곡은 보석사의 방화수(防火水) 역할도 하겠지만 속세의 모든 번뇌 (煩惱)는 저 계곡 물에 흘러보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들어오라는 뜻도 담겨져 있을 것이다.
아까 전에 둘러봤던 보석사를 그냥 지나치기가 몹내 아쉬워 다시 절로 들어갔지. 경내는 아까 전과 달리 매우썰렁한상태, 그 덕에 대웅전에 다시 들어가잠시 예불도 드리고, 내부 곳곳을이리저리 살펴도 보고 산신각으로 가서풍경 물고기와 놀기도 하면서 잠시 여유를 부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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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석사를 나가면서~~ 약 3시간에 걸친 보석사, 진악산 답사는 이렇게 끝을 맺게 된다. 사람들이 떠나간 전나무 숲에는 다시 기나긴 고요가 찾아왔다. |
 | ◀ 보석사에는 비록 혼자 왔지만 여기서 동행을 만나 같이 움직였으니 그는 바로 왼쪽에 있는 나무막대기. 저 나무는 보석사 범종루에 누가놓고 간 것을 내가 취하여 그 옛날먼 길을 나선 나그네들처럼지팡이삼아 같이 진악산과 보석사를둘러보았지. 단 대웅전으로 들어갈때는문 앞에 대기시켜 놓고. 막대기의 높이는 1m가 조금 넘으며 별로 무겁지도 않고 촉감이 좋아 나의 마음에 쏙 들었지. 그래서 산을 내려오면서 집으로 가져갈 야심찬 생각까지 해보았으나 나무도 그걸 원하지 않는 것 같고, 현실적으로 서울까지 그것을 지고 가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그 막대기를전나무에 저렇게 기대어 기념촬영을 하며 작별을 고하니 마치 옛 벗과헤어지 듯한 아쉬움이 가슴 가득히 밀려온다. 나는 그 막대기를 주차장 부근에 꽂아놓고 왔는데 그 옛날승려, 선인 들이 땅에 꽂아놓은 지팡이가 나무가 되었다는거짓말같은전설에 따라 나도 그들을흉내내보았지. 부디 큰 나무로 성장하라는뜻에서~ 혹시 아는가. 정말로 그렇게될지도.. |
진악산(보석사) 관람이 이렇게 마무리가 되자, 보석사 입구 정류장으로 나온다. 어차피 갈데는 거기 밖에
없으니 정류장에는 조그만 구멍가게가 하나 있는데 거기서 차시간을 물어볼 생각으로 문을 열어보았으나
왠걸 문이 열리지를 않는다. 가게 주인은 가게를 비워놓고 어디로 증발해 버린 상태.. 게다가 정류장
주변으로 집, 사람도 없고 물어볼 데가 마땅치가 않다.
이 곳은 버스가 1일 5회 밖에 안다니니 최소한 몇시간은 기다려야 차가 올 것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지나가는 차에 신세를 지는 이른바 히칭을 시도하였지. 그렇지만 가족단위 나들이 차량이 많아서 쉽게
잡혀지지가 않는다. 낮시간이라 추위는 조금 풀리긴 했지만 추운 것은 여전하다.
그래서 석동초교 못미쳐로 가서 보석사 쪽에서 나오는 차를 노리는데 마침 거기서 차 한대가 나온다.
나는 손을 흔들며 태워달라는 신호를 보내니 그 차의 운전사는 나에게 손가락으로 금산 방면을 가리킨다.
즉 금산 쪽으로 가냐는 무언의 신호.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니 그는 내 앞에 차를 세우며 타라는 신호를
보낸다.
나를 태워준 차량 운전사는 보석사 신도로 보이는데 절에서 볼일을 마치고 읍내로 돌아가는 중이다.
보조석에는 그의 동무로 보이는 사람이 앉아있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비지니스를 이야기 하느라 정신이
없어 나는 그냥 앉아있기만 하였지.
석동리를 출발한지 15분 만에 금산읍내 터미널에 도착,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다시 터미널로 들어선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갈까? 이미 갈 곳을 정해두긴 했지만 별로 가고픈 생각이 나질 않는다.
날씨가 워낙에 춥다 보니, 나의 마음까지도 은근히 약해지고 있었지. 마음 한편으로는 '그냥 대전으로
넘어 가자' 다른 한편에서는 '마전으로 가서 이태조(李太祖)의 태실(胎室)이나 보자', 이렇게
나의 마음은 사분오열 되어 다툼이 일어났으나 과감히 마음을 다잡으며 새말(의총리)에 있는 칠백의총
(七百義塚)을 찾아가기로 하였지.
그래서 대전동부로 가는 직행버스를 타고 마전 방향 5분 거리에 있는 새말로 간다.
새말에 이르니 칠백의총을 알리는 커다란 돌덩어리가 나를 맞이해준다.
~~ 아쉽지만 중편은 여기서 끝.
~~
* 중편은 2005년 6월 11일에 상편의 보석사 산신각, 은행나무와
하편의 진악산 자연휴양림 부분을 따로 분리한 것으로
7월 4일부터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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