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의 제국도 굴복시킨 밀양의 4대 기적의 하나이자 여름 피서지의 성지(聖地), 얼음골 둘러보기
 ▲ 얼음골 용바위 |
얼음골 버스종점에서 길은 2갈래로 갈린다. 동쪽으로 가면 그 유명한 호박소계곡이 나오고 남쪽 다리를 건너면 얼음골로 통한다. 나의 목적지는 얼음골이니 당연히 천황산(天皇山)의 품으로 인 도하는 다리를 건너야 된다. (호박소도 가고 싶지만 거리의 압박이 ;;)
다리를 건너려고 하니 안내문 하나가 잠깐 나좀 보고 가라며 발목을 붙든다. 안내문을 보니 계 곡에 발을 담근 용바위의 전설이 담겨져 있었다. 다리 밑에 흐르는 냇물은 호박소에서 내려왔는 데, 이곳에서 용바위를 빚어 얼음골과 합류하여 낙동강으로 흐른다. 여기서 잠시 용바위의 믿거 나 말거나 전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주 먼 옛날 동해 용왕(龍王)의 궁녀인 용녀(龍女)가 용왕의 아들과 밀애를 즐기다가 된통 걸 렸다. 아들은 용왕의 자식이라 하여 10년 유배형을 받고 어딘가로 추방되고, 용녀는 궁녀라 하 여 그의 3배인 30년 유배형(流配刑)으로 속세로 쫓아내면서 그 시간 동안 놀지 말고 베를 짜라 고 지시를 내렸다. 그녀는 호박소 상류에 있는 베틀바위에 터를 잡고 베를 짜며 돌아갈 날을 꿈 꾸었다.
그러던 여름날 밤, 목욕을 하던 용녀는 우연히 호박소 상공에서 조화를 부리는 이무기를 발견했 는데, 다름이 아닌 자신과 밀애를 즐겼던 용왕의 아들이었다. 그는 용녀와 가까운 호박소에 머 물러 있었던 것이다. 용녀는 반가운 마음에 매일 밤 찾아가 다시 만나자고 청했지만 부왕의 눈치 때문인지 그는 단호 하게 거절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무기와 정을 나누는 꿈을 꾸었는데, 이상하게도 태기가 생 겨 10달 뒤에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 드디어 용왕의 아들이 10년 형기를 마치고 동해로 돌아가는 날, 승천(昇天)하는 뒷모습을 바라 보며, 애절하게 울부짖던 용녀 모녀는 울다 지친 나머지 떡실신하여 바위로 변했다는 것이다.
안내문을 기준으로 30m 전방에 우측의 큰 바위가 용녀이고, 좌측의 두 바위가 쌍둥이 아들이라 고 하며, 비구름이 오는 날에는 이들의 울부짖음인 양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물론 이 전설 은 얼음골과 호박소를 찾은 옛 사람들이 빚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절경(絶景)을 이루는 곳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용이나 학(鶴), 선녀, 신선(神仙)과 관련된 전설이 꼭 서려있으니 이는 그 절 경이 옛 사람들을 무한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
 ▲ 시원하게 쏟아지는 얼음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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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바위가 보이는 다리를 건너 5분 정도 가면 '아이스리조트'란 숙박업소가 나오고, 그곳을 지나 면 얼음골 매표소가 애타게 나그네의 호주머니를 바라본다. 입장료는 1,000원(어른 기준), 동전 을 싹 털어서 입장권을 구입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독거리며 신비로움이 감도는 얼음골 내부 로 들어선다.
매표소를 지나니 풍경부터가 싹 달라진다. 우선 길이 시멘트에서 산길로 바뀌면서 경사가 속세( 俗世)살이처럼 잠깐 각박해진다. (그러다가 다시 진정을 되찾음) 숲도 더욱 삼삼해져 햇빛도 거 의 들어오질 못한다. 그늘이 진하게 드리워 벌써부터 시원해진다. 산길 옆에는 얼음골 계곡이 흘러가고 계곡 바위에는 아침부터 피서객들이 여기저기 진을 치며, 여름제국에 맞선다. |
 ▲ 천황사 입구 (명상교와 네모난 돌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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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를 지나 10분 정도 가면 천황사 입구이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가마불협곡(가마볼이라 고도 함)이고, 정면의 명상교(冥想橋)란 다리를 건너면 바로 천황사가 나온다. 얼음골 결빙지( 빙혈)로 가려면 천황사를 지나 오른쪽에 걸린 나무다리를 건너면 된다.
이정표 옆에는 파란 바가지가 놓인 물이 가득한 조그만 돌샘이 있는데, 물이 계속 솟아올라 샘 을 가득 채운다. 목도 마르고 해서 한모금 마셨는데, 정말 얼음골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상당 히 차갑다. 마치 얼음물을 마신 듯 너무 찬 나머지 속쓰림을 걱정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야말 로 냉수 1잔에 정신이 싹 든다.
천황사(이곳은 나중에 언급함)를 지나 나무다리를 건너니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 저 위에서 시 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름에 맞아본 바람 가운데 가장 시원했던 바람, 바람 의 세기도 적당하고 에어컨 보다 더 냉기(冷氣)가 진한 바람이 잠깐도 아니고 위쪽 돌밭에 이 르기 까지 계속 불어대니 역시 예사로운 곳이 아님을 느낀다. 길이 가파르긴 하지만 바람의 보 우로 땀은 아예 얼굴도 비추질 않는다. |
 ▲ 찬 바람이 풍기고 얼음이 어는 얼음골 결빙지 - 천연기념물 2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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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힘입어 3분 정도를 오르면 거대한 돌밭이 나온다. 돌밭은 가파른 경사진 부분에 넓게 펼 쳐져 있는데, 보호 철책에 둘러싸인 부분이 얼음골의 핵심인 결빙지(結氷地)이다. 그리고 철책 안 가까운 곳에 조그만 빙혈(氷穴)이 있는데, 거기가 바로 산길을 따라 내려오던 냉풍이 나오는 곳이다.
빙혈에서는 쉬지 않고 시원한 바람이 나와 온 천하를 녹일 것 같은 여름의 제국을 무색케 만든 다. 여름도 오금을 저리며 피해가는 그곳에서 얼음이 언다고 해서 내 눈은 열심히 구멍 안쪽과 돌밭을 헤매고 있었으나 얼음 비슷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얼음은 인간들을 피해 구멍 안쪽으로 피신하여 자라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구멍 앞에서도 얼음이 얼었다고 하는데, 인간들이 얼음 을 따느라고 하도 구멍을 들쑤시고 망가뜨려 아작을 내니 그곳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 얼음 구 멍이 많은 부분 주변에 보호 철책을 둘러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 그 이후로 얼음도 안심이 가 는지 예전보다 많이 생겼다고 한다.
얼음골은 천황산(天皇山) 북쪽 중턱 해발 600~750m 고지에 자리해 있다. 옛날에는 시례빙곡(枾 禮氷谷)이라 불렸으며, 계곡의 동, 서, 남 3면이 절벽으로 되어있고, 그 끝에 가마볼협곡과 폭 포가 있다. 산 남쪽 자락은 돌밭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이곳은 여름의 제국이 마수(魔手)를 뻗는 5~6월부터 바위 틈에 슬슬 얼음이 생기기 시작하여 삼 복 더위에 여름을 비웃듯 가장 많은 얼음이 생성된다. 특히 더위가 극성일 수록 얼음도 정비례 로 많이 생긴다고 한다. 제국의 기운이 떨어지는 처서(處暑, 8월 말)가 지나면 냉기가 줄어들어 얼음이 사라지며, 반대로 겨울에는 바위 틈에서 따스한 공기가 나와 계곡을 겨울의 제국으로부 터 보호한다. 그래서 한겨울에도 계곡이 얼지 않는다. 또한 빙혈 부근의 나무는 빙혈의 기운 때 문에 나뭇잎이 매년 덜 피고 마는 기현상을 빚고 있는 것이다. |
 ▲ 무수한 얼음 구멍을 품은 돌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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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이곳은 한여름에도 얼음이 얼까? 그 원리는 다음과 같다. 여름으로 바깥 온도가 높아지면 바위 틈의 작은 틈서리를 통해 바깥 공기는 저온인 바위 표면을 스쳐 지하로 들어간다. 이때 공기는 8도 정도로 냉각된다. 이렇게 차가워진 공기는 지하를 흐르 는 차가운 지하수와 함께 하류로 흘러가다가 얼음골에 와서 작은 틈서리를 통해 바깥으로 방출 되는데, 이때 공기는 단열냉각(斷熱冷却)되어 영하로 내려간다. 이렇게 되면 대기 중의 수분이 응결되어 바위틈 사이로 얼음이 생기는 것이다. 이는 바깥 온도가 높을 수록 현저하게 일어난다. 겨울에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며, 따스한 공기가 지표로 나와 서늘한 공기와 만날 때 안개가 형성되므로 얼음골의 겨울은 항상 안개에 쌓여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과학으로 증명은 되었지만 여전히 신비로운 얼음골은 예로부터 밀양의 4대 기적의 하나 로 손꼽다. 그 4대 기적이란 얼음골을 비롯하여 국가의 위기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표충비(表忠 碑),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나타난다는 태극나비, 한겨울 눈 속에서 새 죽순이 돋는 무봉사(舞 鳳寺) 대나무숲을 일컫는다.
이렇게 여름에 얼음이 얼고 찬 바람이 나오는 곳은 이곳 외에 의성 빙계계곡이 대표적이다. |
 ▲ 유일하게 눈에 띈 얼음 구멍 바로 저기서 바람이 나오며, 저 안쪽에 얼음들이 둥지를 텄다. 허나 너무 깊이 있어서 얼음 구경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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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구멍을 뚫어지라 바라보는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한결같이 빙혈에 시선을 두며 서로 앞자리로 가려고 한다. 더 머무는 것도 한계가 있어 일단은 자리를 비키고 가마불협곡으로 넘어 갔다. 그곳을 보고 다시 결빙지로 오려고 했는데, 결국 오지도 못했다.
가마불협곡으로 가는 길은 인적이 없다. 다들 얼음과 찬 바람이 나오는 빙혈에만 관심이 가 있 었지 가마불협곡은 안중에도 없던 것이다. 실제로 가마불까지 오는 사람은 빙혈을 찾는 사람의 채 절반도 되지 않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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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빙지에서 바라본 천하 건너편에 보이는 오른쪽 산은 백운산(885m), 왼쪽에 멀리 보이는 산은 운문사(雲門寺)를 품은 운문산(1188m)이다.
 ▲ 얼음골의 신비를 더욱 올려주는 돌밭들
 ▲ 가마불협곡으로 가는 돌밭길
 ▲ 가마불폭포를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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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으로 넘어가는 길은 별로 험하진 않다. 무책임하게 펼쳐진 돌밭을 지나고 녹음(綠陰)에 짙 은 숲길을 조금 거닐면 깎아지른 듯한 높다란 벼랑이 나타나고 길은 그 안으로 속인(俗人)들을 안내한다. 그곳이 바로 얼음골의 또다른 명물인 가마불협곡(峽谷)이다. 가마불이란 말에 처음에 는 찜질방과 무슨 관련이 있나 싶은 말도 안되는 생각도 품기도 했지.
그리 길지 않은 협곡 안으로 들어서면 사방이 막힌 막다른 곳이 나오는데, 그곳에 가마불폭포가 숨겨져 있다. |
 |  |
▲ 깊숙한 곳에 가려진 가마불폭포 | ▲ 가마불폭포 인근 벼랑의 다른 폭포 |
이름도 재밌는 가마불협곡은 마치 가마솥을 걸어 놓는 아궁이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것이라 한 다. 협곡 가장 깊숙한 곳에 박힌 가마불폭포는 30m가 넘는 폭포로 경사가 완만하여 마치 물이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듯 하다. 폭포 앞에는 출입금지를 알리는 금줄이 쳐져 있어 애써 안 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기분 같아서는 안쪽으로 다가가 폭포수를 만지고 싶었지만 금줄의 통제 에 별다른 미련 없이 따랐다.
두 벼랑 사이로 내려오는 폭포의 모습을 담는 게 여간 힘들지가 않았다. 폭포의 모습이 벼랑에 부분부분 가려 시원스럽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울창한 숲과 협곡을 빚은 높다란 벼랑 앞에 햇빛은 들어오는 것을 포기했다. 빙혈 정도는 아니지만 시원한 기운이 충만해 땀을 흘리는 것은 여기서만큼은 다른 세상 이야기이다.
가마불폭포 못미쳐 왼쪽(폭포 방향 기준)에도 벼랑을 타고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있다. 높 이가 20m 정도 되는 폭포로 떨어지는 수량이 적어 조금은 답답해 보인다. 폭포의 전경(全景)을 담으려고 했더만 나무들이 시야를 방해하여 시원하게 나온 것이 없고, 폭포도 온전히 보이질 않아 바로 앞에서 고개를 90도 올리며 목이 아파라 위로 올려다 봐야 된다.
가마불에서 빙혈로 가지 않고 천황사로 내려갔다. 얼음골 등산로는 '천황사~빙혈(결빙지)~가마 불~천황사'로 1바퀴 도는 순환 형태로 빙혈에서 옆길로 새서 재약산(1189m)과 표충사(表忠寺)로 넘어갈 수도 있다.
천황사로 가는 길도 숲이 삼삼하여 양지는 없다. 계속 그늘진 시원한 길과 계곡의 연속이다. 내 려가는 도중에 폭포가 하나 있는데, 거기서 잠시 쉬었다 갈까 했지만 이미 몇몇 사람들이 자리 를 점거하고 있던 터라 더 내려갔다. 마침 인적이 없는 적당한 곳을 발견하여 그곳으로 들어가 짐을 풀고 두 다리를 쉬게 했다. 신발은 슬리퍼를 신었고 반바지이니 계곡물에 그냥 다리를 담 구면 된다. 물이 얼마나 차갑던지 체 3분도 버티기가 힘들다. 얼음골은 무더위는 정말 발 붙일 곳도 없는 그야말로 피서의 성지이다. 여름의 제국도 굴복시키는 얼음골의 위엄과 자연의 신비 앞에 만물의 영장을 참칭하는 인간의 하나로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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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가마불에서 천황사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폭포 폭포 줄기가 별로 시원치 못하다. |
 ▲ 내가 잠시 쉬었던 가마불 아래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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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 발을 담구고 적당한 바위에 드러누워 잠을 청하며 1시간 정도 머물렀다. 정말 신선놀음 이 따로 없었지, 더 머물까 하다가 갈 길도 멀고 피서지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도 많고 해서 자 리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천황사로 내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