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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가탄신일 기념 서울 동남부, 성남 지역 사찰 순례기 ~
중편 - 성남 망경암(望京庵), 봉국사(奉國寺) <2006년 5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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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상, 중, 하 3편으로 나누어 작성했습니다.
봉은사 상편 ^^ 보러 가기 ^^ 봉은사 하편 ^^ 보러 가기 ^^


봉은사(奉恩寺) 순례를 마치고, 성남으로 넘어가기 위해 서울시내버스 4419번(성남시 창곡동 ~
신사동)
을 타고 정말 오랜만에 성남시(城南市)를 찾았다.

성남시는 원래 광주군 중부면(廣州郡 中部面)으로 1970년대 초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서울
인구를 분산시키려는 의도로 서울시에 의해 만들어진 계획도시이다. 처음에는 '광주대단지'라
불렸으며 1973년 8월 10일, '광주대단지' 사건을 계기로 광주군에서 분리되어 성남시로 승격,
1990년대 분당신도시 건설로 지금은 인구 90만명을 지닌 준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태평고개(수진리고개)에서 내려 영장산(靈長山)이 품고 있는 두 절을 찾아 약 4리 정도를 걸어
들어가야 된다.


▲ 망경암 올라가는 길

성남은 남한산(南漢山)과 영장산, 검단산 산자락
에 조성된 도시라 무시무시한 경사를 가진 고갯길
이 상당히많다. 봉국사로 올라가는 2차선 길 역
시 그 경사의정도가 얼마나 경악스럽던지, 4발
수레들도숨을 헐떡이며거북이가 비웃을 정도로
엉금엉금 기어간다.

'망경암'을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나무로 무성한
영장산오솔길을 15분 정도 오르니, 서울을 바라
보는 암자(庵子), 망경암이 나를 맞이한다.


♠ 서울을 바라보는 암자, 거침없이 펼쳐진 북쪽 풍경을 바라보며 ~
영장산 망경암 (靈長山 望京庵)


▲ 망경암 경내

서울의 강남과 송파(松坡) 지역이 한 눈에 바라보이
는 영장산(193.6m) 북쪽 자락에 '망경암'이라는 조
그마한 암자가 있다.
이 절은 이름 그대로 서울을 바라보는 암자로 대웅
전과마애불, 미륵불 모두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서울과 무슨 연관이 있길래, 자신이 속한 성남을 등
지고늘 언제나 서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망경암은 고려 후기,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세웠다
고전한다.

조선이 개국(開國)된 이후, 조선의 역대 제왕들이
친히이곳을 찾아 나라의 평안을 기원했다고 전하
며 15세기후반에는 세종의 아들인 평안대군(平安大
君)과 제안대군(齊安大君)의 명복을 빌기 위해 칠성
단(七星壇)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후 오랫동안 터만 덩그러니 남아오다
가1897년왕족인 이규승(
李奎承)의 시주로 다시 절
을 일으켜 세웠다.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한 5 ~ 6동의 불전과 함께
미륵불,5층석탑이 있으며,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조선후기마애불이 있다. 또한 매년 10월 말에는
미륵축제를 개최한다.

망경암은 인지도가 낮아서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
다.
하지만 조망은 일품이라 마음이 답답할 때,이 곳을
찾아와 북쪽으로 거침없이 펼쳐진 서울 땅을 바라보
며소망을 빌거나 넋두리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 망경암 5층석탑과 미륵불

* 망경암 찾아가기
- 지하철 분당선 태평역(2번 출구)이나 태평고개(수진리고개), 성남중앙시장에서 77번 마을버
스 이용, 봉국사에서하차하여 도보 20분


♠ 망경암 대웅전, 미륵전

◀ 북향을 한 망경암 대웅전(大雄殿)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고운
색깔의 연등으로 몸 주변을 치장하였다.

◀ 맞배지붕의 미륵전(彌勒殿)


♠ 망경암 마애불 - 경기도 지방유형문화재 102호


▲ 마애불이 들어앉은 바위, 그 주변으로 서울을 바라보며
서 있는 미륵불과5층석탑


망경암은 초파일 특수로 거의 북새통을 이룬 다른 절과는 달리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고작 해
봐야 아줌마 신도들과 찾아온 이들 한 30명 정도..
아무래도 약간의 등산을 필요로 하는 산 정상부에 위치해 있고, 절 입구에 성남을 대표하는사
찰,봉국사가 들어앉아있어, 초파일 수요 대부분이 그 곳으로 몰리는 편이다.


▲ 암굴 속의 은자(隱者) ~ 망경암 마애불(磨崖佛)

대웅전 서쪽 바위에 석굴 비슷한 것을 만들고 그 안에 돋음새김의 마애불을 새겼는데, 그 위쪽
으로는 14곳에 굴을 파고 글씨를 암각(岩刻)하였다.
이 석불은 고종이 황제 위(位)에 오르던 1897년, 이규승
(李奎承)의 시주로 조성된 것으로 불과
100년 남짓의 나이임에도 건강상태가 매우 심각하여, 얼굴과 몸 부분이심하게망가져 있으며,
불상이 있는 석굴 쪽으로는 접근이 거의 통제되어 있어 자세한 것은살펴보기 어렵다.
마애불의 자세한 생김새를 알고 싶어서, 문화재청 사이트를 뒤적거려 보았으나, 역시나 없었음.

19세기 후반에 조성된 마애불로 그리 특별한 것은 없지만, 조선 후기 마애불의 큰 특징이라할
수 있는 불상의 조성 시기, 시주자의 명단 등이 바위 위쪽에 빼곡히 새겨져 있는 점이 참작되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마애불 앞에는 비석 2기가 세워져 있는데 그 중 앞쪽의 조그만 비석은 망경암을 다시 일으켜세
운이규승이 1874년에 세운 것으로 이규승은 제안대군 혹은 평원대군의 후손으로 생각된다.


석불 옆에 큰 비석에는 '大韓民國 廣州 靈長山望京庵七星臺 重修序'라는 내용과 함께 나라의
번영을 영장산신령(靈長山靈)과 봉국사 불상(奉國世尊)과망경암 약사불(望京藥師), 칠성대성
신(七星臺 聖神)에게 기원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 절 제일 위쪽에 있는 삼성각(三聖閣)

▲ 수령 200년의 망경암 느티나무
망경암의 휼륭한 정자나무로 더운 여름, 나무 아래에 걸터앉아 시원한 식혜나
수박을 먹으며 서울을 바라보는 재미도 꽤 쏠쏠할 것 같다.

성남시 보호수 18호 / 지정일 - 1982년 10월 15일 / 나무 높이 25m / 나무 둘레 2.5m

▲ 망경암에서 바라본 강남 지역 (탄천, 수서, 삼성, 가락동 지역)
서울의 대기 오염이 정말로 심각하긴 심각한 모양이다.
서울의 하늘이 마치 오리무중의 안개가 낀 듯, 너무 뿌옇다.


▲ 망경암으로 통하는 영장산 오솔길

망경암은 규모가 작아서 한 30분 정도 머물렀던 것 같다.
시간은 어느덧 6시를 넘긴 가운데, 이렇게 망경암과 짧은 인연을 마치고, 이번 초파일의 마지
막순례지, 봉국사로 발걸음을옮긴다.

망경암에서 봉국사까지는 15분 정도 거리로, 푸르른 나무의 속삭임으로 가득한 영장산의 오솔길
을 거닐며 산내음에 흠뻑 취해본다.

봉국사에 이르니 성남의 대표격 사찰답게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아까 전 그곳과는 크게
대조를 보일 정도.. 그리 넓지 않은 경내에 정말 발 디딜 틈이없을정도로 사람이 가득 몰려
있었다.
그 이유를 알고 보니, 태반이 저녁 7시부터 시작될 산사음악회를보러 온 사람들.. 그 음악회에
는 무언가 특별한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다고 하는데...


♠ 고려 초기에 창건된, 성남 불교의 중심지 ~ 영장산 봉국사(奉國寺)

영장산 서남쪽 자락에 있는 고찰(古刹)로, 성남 지역의대표적인 전통사찰이다.
성남 불교의 중심지로 '성남불교역사문화연구소'를 창설, 관리하고 있는 이 절은 1028년(고려
현종 19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며, 1395년(태조 3년) 태조의 칙령으로 중수하였다.

현종(顯宗) 연간에 이르러 현종이 아끼던 두 딸, 명혜공주(明惠公主)와 명선공주(明善公主)가
어린 나이에 병사하자, 그들의 무덤을 성남 지역(아마도 산성동이나 창곡동이아닐까?)에 썼다.
현종의 비, 명성왕후(明聖王后)는 딸의 명복을 빌기 위해 금강산에 있던 승려 축존(竺尊)에게
공주묘부근에절을 세워줄 것을 부탁했다.

그래서 1674년(현종 15년)지금의 절을 새로 중창하
고 이름을 '봉국사'라 하였으며. (그 이전 이름은 모
르겠음) 그런 연유로 창건 시기를고려 초가 아닌
1674년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1950년 6.25전쟁으로 대광명전을 제외한 당우들이 잿
더미가 되었으며 1958년에 대대적인 중수를 벌였다.

경내에는 법당(法堂)인 대광명전(大光明殿)을 비롯하
여심검당, 삼성각 등 8 ~ 9동의 불전이 있으며,지
정문화재로는 대광명전이 있다.

성남의 상징적인 사찰이다 보니 사월초파일 행사도
가히으뜸이며 여기서는 성남시가지의 모습이 두 눈
에 훤히 바라보인다.
* 봉국사 찾아가기
- 지하철 분당선 태평역(2번 출구), 성남 중앙시
장에서77번 마을버스 이용, 봉국사하차,

▲ 대광명전 앞 3층석탑


♠ 봉국사 일주문 ~ 범종각 ~ 심검당

◀ 봉국사 일주문(一柱門)
가는 사람, 오는 사람, 신분이 높은 사람, 낮은
사람,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며 중생들을
맞이하느라 여념이 없는 일주문,

일주문을 들어서면 별로 넓지 않은 봉국사 경내
가 유감없이 펼쳐진다.


▲ 범종각 1층, 사천왕상(四天王像) 그리고 어린 아이

봉국사도 봉은사처럼 사천왕상을 절 입구에 세워두었으나 정작 그들의 보금자리인 천왕문(天王
門)을갖추고 있지 않다. 모두 자신들과 성격이 맞지 않은 다른 문에 얹혀 살고 있음..
봉국사의 사천왕상은 범종각 1층, 유리 안에 모셔져 있는데, 형상을 세운 다른 절과는 달리 돋
음새김의 벽화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왼쪽으로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비파를 연주하고 있으며, 머리 뒤로 활활
타오르는 모습의 두광(頭光)을 갖추고 있다.
오른쪽의 천왕은 황금색의 칼을 들고 마치 검술을 연습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으니, 이는 지
국천왕(持國天王)이다. 그의 뒤에도 역시 지글지글 타오르는 두광(頭光)이 그의 모습을 밝혀주
고 있다.

◀ 심검당(尋劒堂)
심검(尋劒)이란 '지혜의 샘을 찾는다'는 뜻으로
참선을칼에 비유한 말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시원스런 팔작지붕을 한
심검당에서는 마침 초파일 기념으로 '부처님 진
신사리' 15과를 특별 공개하고 있었다.
이들 진신사리는 봉국사에서 초청한 스리랑카
'네가디파 라즈마하 비하리 사원(寺院)' 승려가
직접 모셔온 것으로 4월 28일부터 5월 5일까지
친견법회를 가졌으며, 초파일을 맞이하여많은
중생들이그의 사리를 친견하기 위해 길게줄을
섰다.


♠ 봉국사의 법당, 대광명전(大光明殿) - 경기도 지방유형문화재 101호

▲ 봉국사 대광명전
봉국사의 법당으로 1674년 봉국사 중창 때 세워진 것으로 생각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전각으로 6.25전쟁 때 상처를 약간 입은 것을 1958년에 중수
하였으며, 1974년에 해체, 복원하였다.

기둥 위에만 공포를 배치한 주심포(柱心包) 양식으로 건물의 크기는 작고 아담하여 두 눈으로
보기에는 별로 부담이 없다.
불전 내(內)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모셔져 있는데 원래 대광명전은 비로전(毘盧殿)의또
다른 명칭으로 원래는 비로전의 주인인 비로자나불을 모셔야 성격에 맞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아미타불이 들어앉아 있으니, 아마도 처음에는 극락전(極樂殿)으로 불렸을 것이나 무슨 연유인
지 지금의 이름으로 살짝 변경된 것 같다.
성남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로 초파일을 맞이하여 불전 주변을 연등으로 곱게 치장하였다.

◀ 분홍색 연등 위로 수줍은 듯 고개를 내
민 대광명전 현판(懸板)

▲ 대광명전 아미타여래 3존불
17 ~ 18세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둥근넓적한 얼굴에 무견정상(無見頂相)이 튀어나온 온화한미
소의 주인공, 아미타불이 중생들의 하례를 받고 있다.
그의 왼쪽(아미타불이 바라보는 방향 기준)으로 보기에도 꽤 무거워 보이는 보관(寶冠)을 쓴
보살이 앉아있는데, 이는 아마도 문수보살(文殊菩薩)로 생각되며, 오른쪽의 불상은 승려머리
를 한 것으로 봐서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일 것이다.

3존불 앞에는 그들의 경호를 위해 유리막을 쳐놓았으며, 그들 뒤로 조선 후기에 그려진 후불
탱화가 걸려있다.

◀ 대광명전을 지키는 우측 석수(石獸)
대광명전 양쪽으로 앙증맞은 모습의 석수2
마리가 사뿐히 앉아 있다.

이들 석수는 대광명전을 화재로부터 수호하
려는 용도로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우측 석
수는 목에 방울 같은 것을 달고 있어 꼭 개
나 고양이를보는 것 같다.

이들은 돌의 색깔로 봐서는 18세기 경에만
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 대광명전을 지키는 좌측 석수(石獸)
이 석수는 거의 새끼 호랑이를 닮은 것 같
다.붉게 물든 꽃을 바라보며 꽃놀이를즐기
고 있는 그의 싱그러운 모습,

▲ 대광명전 뒤쪽에 주렁주렁 매달린 연등, 그리고 풍경물고기
봄처녀의 설래이는 마음 마냥 살랑살랑 불어오는 5월의 봄바람에 연등은 덩실덩실 춤을 추고
풍경물고기는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흥을 돋군다.


♠ 봉국사 삼성각(三聖閣)

◀ 삼성각
우리나라의 토속신(土俗神)으로 불교의 일원
이 된 칠성신(七星神, 치성광여래), 나반존자
(那畔尊者, 독성<獨聖>), 산신(山神)을 모시
고 있다.


▲ 삼성각 산신도(山神圖)

그림 가운데에 수염이 지긋한 산신이 촉한(蜀漢) 제갈량(諸葛亮)의 그것과 비슷한 우선(羽扇)
을들고 있고, 그 왼쪽으로 꼬리가 귀여운 호랑이가 왼쪽을 향해 무섭게 으르렁거리고 있다.
산신 오른쪽으로 흰 얼굴의 동안(童顔)인 동자(童子) 하나가 선(扇)을 들고 있으며그 오른쪽
동자는 오른손으로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데, 그 정체는 잘 모르겠다.

그림의 왼쪽을 보면 뿔 달린 사슴 1마리가 산신을 우러러 보고 있고, 곳곳으로 흰 구름이 오묘
하게 덮여져 있어 그림의 신비감을 한층 더해 준다.

▲ 우리와 피부색이 다른 스리랑카 승려들
봉국사 초파일 행사에 초대받은 인도 남쪽의 불교국가, 스리랑카에서 온 승려들,
그들의 승복(僧服)이 우리의 그것과 디자인과 색깔 면에서는 많이 다르지만, 승복의 기본적인
형태는 거의 비슷하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이번에 처음 보는지라, 호기심 삼아 그들을 살짝 사진에 담아 보았다.
봉국사를 찾은 어린이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들이 참 정감이 간다.

부처님 앞에서는 한국 사람도 스리랑카 사람도 모두 하나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현장이다.

▲ 삼성각에서 바라본 범종각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신선세계의 누각을 보는 것 같다. 범인(凡人)은 감히 접근도하지 못할
그런 곳.. 연등 구름 위로 솟아난 범종각의 모습이 참 신비로워 보인다.
범종각 뒤로 인구 90만의 도시, 성남시가지가 보인다.


♠ 2006년 초파일 사찰 순례의 대미를 장식한 ~ 봉국사 산사음악회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그 날 봉국사에서는 화려한 산사음악회가 준비되어 있었다.
작년 초파일 때는 도봉산에 있는 도봉사(道峰寺)의 산사음악회로 초파일 순례를 마무리 짓고자
했으나 부질없는 욕심에 그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해 아쉬움이 너무나 컸다.
하지만 하늘의 가호와 석가의 자비로 드디어 그 음악회를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 음악회는 단순한 불교만의 음악회를 뛰어넘어 우리의 고전 음악과 서양 음악, 스리
랑카 음악,거기에 유명가수의 특별 공연까지 정말 다양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었다.
봉국사 측에서는 음악회 관람객들을 위해 별로 넓지 않은 대광명전 앞뜰에 의자 수백 개를 베풀
어 놓았으나 음악회를 보기 위해 성남시민 2천여 명이 몰려들어, 자리는 금세 동이 나버린다.
나머지 1천여 명은 뒤쪽에 서서 보거나 혹은 대광명전이나 삼성각, 심검당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음악회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나는 절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통에 따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그냥 뒤쪽에 서서 음악회를 기다린다.

예상외로 많은 인원의 음악회 분위기는 벌써부터 고조된 가운데, 저녁 6시 30분, 음악회에 앞서
'봉축연합법회'가 열린다.
봉국사 주지승이 나와 법회를 주관하였고, 시장통처럼 시끄럽던 음악회 분위기는 일시적이나마
엄숙한분위기로 변한다.

법회가 끝나고 드디어 저녁 7시, 이번 순례의 대미(大尾)를 장식할 '봉국사 산사음악회'가 두두
둥~~ 시작되었다.
성남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인지라 성남시장을 비롯, 성남시 국회의원, 성남시의원 등의 높은 나
으리들과 망경암 주지, 성남불교역사문화연구소장 등 성남 불교계의 주요 인사들이 음악회에 초
청되었는데, 제일 먼저 봉국사 주지의 음악회 축사(祝辭)가 있었다.

▲ 성남시장의 축사

주지승의 축사가 끝나자, 성남시장이 주지승의 손에 이끌려 무대로 올라와 축사를 전한다.
그 다음으로 성남시 국회의원, 시의원 순서대로 축사 한마디씩을 하는데, 그들의 지루하면서도
침에발린 형식적인 메세지에 사람들 대부분은 짜증과 하품을..
'저 사람들 이야기는 도대체 언
제 끝나는거야.열라 짜증나네', '그러게 말이야..'
이런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고통에 가까운 그들의 축사 시간이 끝나자, 7시 30분부터 본격적인 산사음악회가 시작된다.

자태가 고운 여인네가 사회자로 나와 인사를 하고, 음악회 시작을 선언하면서, 높은 나으리들로
인해 상당히 저하된 음악회의 분위기는 다시 들뜨기 시작한다.

음악회의 서두는 봉국사 성악단이 장식을 하였다. 어여쁜 한복을 차려입은 성악단 10여명이 사뿐
히 무대로 나와 노래를 부르며 부처의 탄생을축하한다.
8시부터 약 30분 동안은 전통 공연이 펼쳐졌는데, 경기민요 무형문화재 전수자가 나와 민요 한
곡절 멋드러지게 뽑고, 곧 이어서 판소리의 한판 무대가 펼쳐진다.

산사의 밤이 깊어가면서 음악회의 분위기가 점점 고조됨에 따라 부처의 마음을 닮은 연등들도 서
서히 빛을발하며환하게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중생들의 소망이 가득 담겨진 연등, 그들의 소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태우는 연등,그들이 서
서히 달아 오름에 따라 어둠이 짙게 드리운 산사의 저녁은 대낮처럼 밝아지고,하얀 피부의 3층
석탑도 황홀한 색채로 변신해 간다.
초파일 연등으로 가득한 절의 풍경도 멋있지만, 그 연등이 일제히 자신을 태우는 저녁시간은 더
욱 장관이라. 가히 초파일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다.
만약 연등이 한결같이 1가지 색깔만을 하고 있다면 그 색이 아무리 어여쁜 색깔이라도 그 감동
은 그리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양한 색깔을 하고 있어 그 색깔에 맞쳐 각가지 빛깔
을 연출해내는 연등의 모습은 정말 환상적이면서도 신비롭다.
그리고 그 연등으로 가득한 절의 풍경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을 것이다. 거의 극락의 경지라고 할
까..?

전통 공연이 거의 끝날 무렵, 전혀 예상치 못한 큰 사건이 벌어졌으니 바로 디지털카메라의반
란. 밥을 충분히 먹여줬음에도 어찌된 영문인지 음악회를 사진에 담고자 하는나의 뜻을 거스르
며좀처럼켜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음악회는 이제 시작이거늘, 카메라는 나의 지극한 마음을 몰라주고 말썽만 피우니 참 야속할 뿐
이다.
멀리 여기까지 왔는데 그 화려한 공연들을 사진에 담지 못한다니 앞이 얼마나어둑어둑하던지..
'하나를 줬으니 다른 하나는 포기하라' 즉 산사음악회를 보여 주는 대신, 사진에는 담지 말라는
하늘의야속한 뜻이란 말인가..?
'좋은 것을 사진에 담거나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하는 것은 사람
들이 지닌 인지상정이거늘 그 본성도 지키지 못하게 하다니 하늘이 몹시나 원망스럽다 ~'


전통 공연이 끝나자 이번에는 서양 음악 공연이 펼쳐진다.
제일 먼저 아리땁게 차려 입은 여자 성악가가 나와 옥구슬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로 노래 한곡절
신나게뽑고, 그 다음에 남자 성악가가 나와 힘찬 목소리로 가곡을 부른다.신이 난 관람객들은
앵콜을외치고,이에 화답하기 위해, 그들은 거의 한조를 이루며 가곡을 부른다. (노래 제목은
모르겠음..)

여기까지는 음악회 분위기가 대체로 조용하고 차분하며, 대중들이 자주 접하지 못하는전통적이
면서 엄숙하고, 지적인 공연이 중심이 되었다. 거의 산사 분위기의 어울릴법한공연들이주를이
루었다고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산사음악회의 이미지를 뛰어넘는 유명가수들의 신나는 콘서트가 펼쳐진다.
과연 이것이 산사음악회가 맞나 의문이 들 정도로 말이다.

8시 30분 경, '홍콩의 밤거리'란 노래로 유명한 70대의 할머니 가수 금사향이 나와 자신의히트
곡인그 노래를 부른다. 나이는 80인데, 목소리는 정말 20대. 그 소리가 얼마나 곱던지꾀꼬리
도 샘을 낼 정도이다.
관람객들의 앵콜로 신이 잔뜩 난 금사향은 노래를 몇 곡절 더 뽑아내고, 재밌는 이야기도 몇 개
겻드리면서자신의 무대를 정리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간이 다되도록 그 가수는 나오질 않는다. 음악회에 온 사람들 대부분은어쩌
면그를보러 온 것이라 할 수도 있는데, 좀처럼 나타나질 않으니.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수근수
근..9시 30분이 되자 드디어 그 가수가 무대에 등장하니 바로 중년층의 우상이라 할 수 있는
'남진'이다.
그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노래를 부르며 무대에 나타나니 관람객들은 그
야말로벌집을 건드린 듯 난리가 났다. 어린 소녀처럼 열광하는 중년층 아줌마와 아저씨들.. 엄
청나게 쏟아지는 박수와 환호.. 지금까지의 공연 중 제일 요란법석, 그 자체이다.
가히 그들의 열광과 환호가 성남시를 가득 뒤덮고도 남을 정도..

원래 남진의 무대는 8시 30분경에 준비되어 있었으나 그가 늦게 오는 통에 무대 제일 끝으로시
간을 옮긴 것. 덕분에 그에게 주어진 공연시간도 30분 이상으로 늘어나 거의 남진 스폐셜이 되어
버렸다.
남진의 공연을 약 10분 가량 구경하니, 시간은 어느덧 10시,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음악회에
너무 열광하다보니 시간이 벌써 그리 되어 버렸다.

그래서 한참 흥에 오른 봉국사를 뒤로 하며 약 4시간에 걸친 봉국사와의 인연을 마무리짓는다.


~ 이리하여 2006년 석가탄신일 사찰 순례는 100%의 목표달성을 마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


※ 이번 초파일 순례에서 가장 큰 소득은 아무래도 봉국사의 산사음악회가 아닐까 싶다.
조용한 분위기가 연상되는 산사음악회의 이미지를 완전히 뛰어넘은 거의 대중적인 공연으로 펼쳐진
이번 음악회를 통해 대중과 보다 가까워지려 하는 불교계의 강인한 의지가 엿보인다.
솔직히 다소 엄숙하고 경건을 요하는 절에서 1년에 한번 정도는 시끌벅적하게 축제를 한다고 한들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 답사, 촬영 일시 - 2006년 5월 5일 / 6월 8일(봉은사)
* 중편 작성 시작일 - 2006년 6월 17일
* 중편 작성 완료일 - 2006년 6월 20일
* 중편 숙성기간 ~ 2006년 6월 21일 ~ 2007년 6월 1일
* 공개일 - 2007년 6월 1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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