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진주 ~ 사천 지역 역사기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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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천포 대방진굴항 ~ 남해바다 유일의 인공 굴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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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정, 고운 정다 들었던 을유(乙酉)년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 채 그렇게 저물어가고 새로이
병술(丙戌)년의 찬란한 여명이 온 천하를 비추기 시작한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좋은 일들만 가득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여러 가지 다짐을 해본다, 그 중
에서 하나만 여기에 공개하자면 전국에 널린 미답지(未踏地)의 2할 이상을 지우기로 했는데 그
시작으로 경남 남부의 진주, 함안, 창원 지역을 택했다.
그 시작점은 서울에서 3시간 50분이면 닿는 진주로 삼았는데 거기서 제일 먼저 문을 두드린 곳
은 진주역 뒤쪽에 있는 금선암(金仙庵)이란 조그만 암자이다.
그곳에는 천년 묵은 석불이 산문을 활짝 열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망진산 동쪽 자락에 안긴 조그만 암자, 진주시내가 훤히 바라보이는 조망이 일품인 금선암(金仙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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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선암 약사전(藥師殿)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단성석조여래좌상(약사여래)의 거처이다. |
진주역 서쪽으로 망진산(望晋山)이라 불리는 야트막한 산이 있다. 그 동쪽 자락, 그러니까 진주 역에서 바라보이는 산자락을 자세히 살펴보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기와집이 눈에 띌 것이다. 그 곳이 이번 기행의 첫 답사지인 금선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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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선암은 1950년대 후반 '박수'라는 할머니가 세운 절로 그 는 1957년 산청군 단성면 사원리 남사들의옛 절터에 오랫 동안 파묻혀 있던 석불을 손수 파내어 이 곳으로옮겨와 안 착시키니 그 석불이 바로 금선암에서 자랑하는 단성석조여 래좌상이다.
금선암을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훤히 바라보이는 절을 주시 하며 가다보면 절 아랫쪽으로 농가(農家)와 과수원이 나온 다. 과수원은 이미 겨울의 제국(帝國)에게 모든 걸 공출 당 한 채, 앙상한가지만을 드러내 보이며 애타게 봄의 해방군 을 기다릴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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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선암 대웅전(大雄殿) 정면 3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
과수원을 지나면 산사(山寺)에는 으례 있는 샘터가 나온다. 갈증난 목을 촉촉히 적시고자 물이 라도 한 바가지 마시려고 했건만, 샘이 모두 얼어붙어 마시는 것조차 여의치가 못하다. 샘터 옆으로는 이수(螭首)를 갖춘 복천비(伏泉碑)가 서 있는데 아마도 샘을 만들거나 가뭄으로 메마른 샘에 물을 솟게 한기념으로 세운 비석으로 여겨진다. |
샘터를 지나면 약사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108계단까지는 아니지만 높은 곳에 앉아 진주 시내를 넌지시 바라볼 인자한약사여래(단성석조여래좌상)를 친견하기 위해서라면 계단을 오르 는 수고야기꺼히 감당해야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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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사전(藥師殿) 앞뜰에는 절을 세운 '박수' 할머니의 묘탑 (墓塔)으로 보이는 하얀 피부의 부도탑이 있고 추녀를 시원 스레 치켜 올린 석등이 세워져 있다. 석등 주변으로는 통일기원(統一祈願)이라 쓰여진 한반도의 모형과 함께 산청 옛 절터에 파묻혀 있던 약사여래를 이 곳 으로모시고 온 일화를 적은 비석이 약사전 앞뜰에 적당히 배치되어 나의 두 눈을 심심치 않게 해준다. 약사전 우측으로 법당(法堂)인 대웅전이 조촐한 모습으로 동향을 하고 있으며, 그 앞으로 팔부신장(八部神將)으로 아랫도리를 두룬 하얀 피부의 3층석탑이심어져 있다. |
▲ 금선암 요사(寮舍)와 대웅전 앞 3층석탑 |
그런 석탑 건너편으로 승려들의 생활공간인 요사(寮舍)가 동남향을 하고 들어앉아 있고 대웅전 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부처의 중생 구제를 향한 메세지가 담긴 범종(梵鍾)의 보금자리 범종각이 있는데, 진주시내 특히진주역과 동진주가 훤히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해 있어 마치천상(天上) 세계에 온 듯한 즐거운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종이 울리면 그 은은한 소리가 진주시내로 골고루 퍼져 나가진주시민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것이다. 주택가 위쪽에 들어앉아 있어 산사의 분위기는 다소 떨어지지만 진주시내라는 넓은 앞뜰을 가슴에 품고 있는 절, 거침없이 펼쳐진 조망으로마음이 시원해지는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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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멘트 땜질로 얼굴이 약간 손상된 단성석조여래좌상 - 보물 371호 |
약사전에 모셔진 단성석조여래좌상은 산청군 단성면 남사들의 옛 절터에 오랫동안 파묻혀 있던 것을 금선암을 세운 '박수'가 이 곳으로 모셔왔다. 1964년 보물 문화재로 지정되자 지금의 약사 전을 세워 석불의 거처로 삼았다.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모두 갖춘 석불로 천년이 넘는 세월의 상처가 너무나 커서 몸 여기 저기 성한 데가 별로 없을 지경이다. 그래서 시멘트로 땜질은 했지만 대충 발라놓은 티가 역력 하여 기존의 모습마저도 많이 손상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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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멘트로 약간 넓어진 그의 우중충한 얼굴에는 아 직도 미소가 살아 있었다.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일 까? 우헤헤 미소진 그의 모습이 좀처럼 인상에서 지워지 지 않는다. 어깨는 꽤나 단련을 한 듯, 듬직해 보이나 약간 얇아보이 는 그의 허리가 그런 어깨를 받쳐주지 못하는 것 같다. 왼손으로는 약합(藥盒)을 들고 있는데 그걸로 봐서 이 불 상이 약사여래(藥師如來) 임을 눈치 챌 수 있다. 그래서 불상을 안치한 건물도 약사전(藥師殿)이란 이름을달고 있다. (단 현판은 없음) 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모퉁이 부분이 심하게 깨져나 간 광배(光背)에는 연화문(蓮華紋), 공양상(供養像), 구 름무늬 등이 베풀어져 있고, 불상의 대좌(臺座)에도 보살 상(菩薩像), 신장상(神將像), 연화문이 새겨져 있으나 상 처가 심해 유심히 살펴봐야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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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사전 앞 석등(石燈) - 모습이 심히 불균형적이긴 하지만 천 편일률적인 모습에서 벗어난 개성미 가 강한 석등으로 그의 특이한 모습 이 나의 시선을 계속 붙잡고 늘어진 탓에 조그만 절,금선암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
※ 금선암 찾아가기 (2008년 1월 기준, 아래 지도 참조) * 서울강남고속터미널에서 진주까지 고속버스가 15 ~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서울남부터미널에 선 직행버스가 20 ~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 인천, 수원, 성남, 대전(동부/고속), 대구(동대구/서부), 부산(노포동/사상), 광주, 마산에서 진주행 고속/직행버스가 운행한다. * 고속버스 이용시 고속터미널에서 내리면 되며, 직행버스 이용시 고속터미널 부근 진주산업대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 부전역, 마산역, 순천역, 동대구역에서 진주행 무궁화호 열차 이용 (운행횟수는 별로 없음) * 진주역에서 도보 15분 / 진주고속터미널(진주산업대)에서 도보 20분 * 진주역 남쪽으로 철길을 건너가는 다리가 있다. 그 다리를 건너 기와집이 보이는 산자락으로 접근하면 된다. (절 입구에 커다란 교회와 함께 절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음) * 승용차로 절 아래까지 접근 가능 * 소재지 - 경남 진주시 망경동 586 (☎ 055-752-10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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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선암과 단성석조여래좌상을 둘러보고 진주산업대에서 삼천포로 넘어가는 완행버스로 미답지 의 하나인 사천읍(泗川邑)을 찾았다. 사천은 남해의 미항(美港) 삼천포와 합쳐진 도농통합시로 진주에서 삼천포, 고성, 통영으로 가 는 길목에 자리한 교통의 요충지이자 임진왜란 시절 치열한 격전이 벌어진 역사의 현장이다.
사천읍내 동쪽에는 옛 사천고을의 흔적인 사천읍성과 그 읍성을 바탕으로 조성된 사천시민들의 아담한 휴식처 산성공원이 자리해 있다. 내가 사천읍을 찾은 것도 바로 그들을 보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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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 산성공원(山城公園) 둘러보기 ~ ※ 사천읍성(泗川邑城) - 경남 지방기념물 1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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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읍성 사이로 펼쳐진 산성공원 산책로 |
평지에 펼쳐진 사천읍내 동쪽에는 사천시민의 휴식처인 산성공원이 자리해 있다. 야트막한 언덕에 조성된 이 공원은 산성(山城)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옛 사천읍성의 흔적들이 곳곳에 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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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읍성은 1442년(세종 24년) 병조참판 신인손(兵曹參判 辛引孫)이 왕명(王命)을 받아 축성한 것으로 성이 완성되 자 1445년 성 안에 관청을 짓고 고을 이름을 동성(東城)에 서 사천(泗川)으로 고쳤다.
초창기에는 성둘레가 3,015척, 성벽의 높이는 10.5~11.5척 , 성문과 옹성(甕城)이 각각 3개였다고 하며. 이후 둘레가 5,015척(1.5km)으로 길어지고성벽의 높이는 15척으로 높 아졌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점거하여 오랫동안 머물렀으며 1598 년 9월 정기룡(鄭起龍) 장군은명나라군과 연합하여 이 곳 을 공격했다. 그 과정에서 명나라장수 노득공(盧得功)이 전사하는 등, 정말로 치열한 혈전을치른 끝에 성을 탈환하여 수천의 왜군을 죽이고 생포했다.
1910년 이후 읍내 개발이란 이유로 읍성과 관청은 말끔히 파괴되었으며 이 때부터 사천 시내는 좁은읍성에서 벗어 나 서쪽과 남쪽으로 넓어지게 된다. |
▲공원 서쪽에 있는 어느 사천현감(縣監)의 불망비(不忘碑)
▲ 사천읍성의 동쪽 부분 |
지금은 산성공원 일대에 약 300m 정도만 간신히 남아 옛 사천 고을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천시민의 편안한 휴식처로 생활 공간이 아닌 여가의 공간으로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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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함에 잠긴 산성공원 산책로 |
▲ 산성공원 꼭대기에 서 있는 4층 팔각정 팔각정 주변으로 조그만 연못들이 둘러쳐져 있으며, 일반 동물원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동물들의 모형이 배치되었다.
▲ 호국영령 980명의 신위가 봉안된 충혼탑(忠魂塔) | 산성공원에 이르니 제일 먼저 높다란 계단길이 나온다. 공 원으로 들어서는 길은 이 곳 외에도 많이 있으나 초행이라 달리 다른 길을 찾을 만한 여유는 없었다. 마치 '공원과 읍성을 보고자 한다면 이 곳을 오르라. 안그러면 택도 없 어'식으로 바라보는 계단의 요구에 108계단보다 더높을 것 같은 그 계단을 올라 산성공원 내로 당당히 들어선다.
산성공원은 읍성이 있던 야산에 조성되었는데, 그리 넓지 도 그렇다고 좁지도 않은 딱 적당한 크기인 것 같다. 사천 고을을 지키던 현역에서 물러나 지금은 공원의 담장 역할 을 하는 옛 성곽들, 큼지막한 돌들이 모이고모여 빼곡히 성곽을 이루고 있다.
공원에는 오후 산책을 즐기는 읍민들(주로 노인들) 몇 명 이 눈에 보일 뿐, 대체로 한적하다.
공원 꼭대기에는 4층 규모의 커다란 팔각정이 하늘을 뚫을 기세로 높이솟아 있다. 사천읍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라 할 수 있는 이 정자는 88올림픽 기념으로 세웠다고 한다. 사천군이 심혈을 기울여 세운 이 정자에는 기념품점과매 점 등이 있었으나 요즘은 영업을 하지 않는 것 같으며 찾 는 이도 없어 거의폐가의 쓸쓸함만이 감돈다.
팔각정 서남쪽에는 어느 동네나 꼭 1개씩은 있는 충혼탑이 남녘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으며, 그 우측으로 3.1의거 기 념비가 우뚝 세워져 있어 우울함으로 가득한 그러나 결코 지울 수없는 우리의 근대사를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충혼탑에서 관덕정으로 가다보면 조그만 연못 2개가 나온 다. 연못에는 무지개다리가 하나씩 걸쳐 있어 운치를 자아 내며물고기가 겨울잠을 주무시는지 수면은 그저 잔잔하기 만 하다. |
공원의 동쪽 끝부분에는 관덕정(觀德亭)이란 정자가 있다. 왜정 때 지어진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 붕 건물로 정자 부근에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관덕정을 둘러보고 다시 안쪽으로 들어오면 아담한 샘터가 나온다. 마침 노공(老公) 1명이 물을 뜨고 있어 양해를 구하고 한 바가지 가득 담아 메마른 목 을 축인다. 물이 얼마나 시원하던지, 목이 뻥 뚫린 기분이다. 자칫위(胃)가 부담을 느껴 탈이 나는건 아닐까 걱 정이 될 정도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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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절구와 맷돌 팔각정 앞뜰에는 옛 사천 사람들이 쓰던 돌절구, 맷돌 등의 생활용 석물(石物)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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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 제일의 누각, 수양루(洙陽樓) 공원의 거의 중간 부분에는 선비처럼 의젓한 자태의 수양루가 들어앉아 있다. 수양루는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사천읍성 성문의 열고 닫는 시간을 알리던 곳이다. |
누각 안에는 역대 사천 군수와 현감, 지방 유지들이지어 붙인 시판(詩板) 30여 개가 즐비하게들 걸려져 있어 나의 눈과 머리를 다소 어지럽게 만든다.
원래는 사천관아 옆에 있던 것을 왜정 이후에 지금의 자리 로 옮겼으며,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마루 아래쪽은 시멘트로 모조리 채워버려 누각의 이미지를 상당 히 실추시키고 있다. |
▲ 수양루 앞에 늘어선 사천현감 들의 공덕비(功德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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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읍성 사적비와 수양루 ※ 산성공원, 사천읍성 찾아가기 (2008년 1월 기준) *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사천 경유 삼천포행 직행버스 1 ~ 2시간 간격으로 운행 * 부산(사상), 대전(동부), 마산, 진주에서 사천 경유 삼천포행 직행버스 이용 * 사천터미널에서 사천읍사무소 방면(동쪽)으로 도보 10분, 읍내 동쪽 부분으로 야트막한 언덕 이 있는데 그 곳이 바로 산성공원이다. * 공원 주변으로 주차 장소가 마땅치 않다. 인근 골목길에 잠시 세워두는 수 밖에는 ~~ * 소재지 - 경남 사천시 사천읍 정의리
사천읍성과 수양루를 간직한 산성공원을 1시간 정도 둘러보고 사천에서 남쪽으로 40리 떨어진 항구도시 삼천포(三千浦)를 찾았다.
삼천포는 사천에 딸린 고을로 1956년 시로 승격되어 잠시 분리되었으나 1990년대 후반 사천군과 합쳐져 다시 사천의 일원이 되었다, 지리산을 뒷뜰로 삼고 한려수도를 앞뜰로 삼은 아름다운 항구도시로 근래에 남해 창선도(昌善島) 를 잇는 삼천포대교와 창선대교가 놓이면서, 남해로 통하는 또 다른 길목으로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삼천포는 2001년 이후 2번째 방문으로 시외터미널에서 창선도 가는 사천시내버스25번을 타고 주요 번화가인 삼천포 부두를 지나 남해바다를 옆에 끼고 삼천포대교가 바라보이는 대방동 4거리 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려 바다 쪽을 바라보니 오래된 나무로 우거진 곳이 눈에 띈다. 저 곳에 내가 찾는 것이 숨어있음을 눈치채고 그 곳으로 다가선다. 작년 11월 이후, 2달 만에 만나는 푸른바다가 나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며, 오랜 만에 맡아보는 바다 특유의 짠 냄새는 그날 따라 커피 향기마냥 향기롭기만 하다. |
♠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인공 군항(軍港), 바닷가 안쪽으로 교묘히 몸을 숨긴 ~ 대방진굴항(大芳鎭掘港) - 경남 지방문화재자료 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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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진굴항은 대방동 바닷가 안쪽에 숨어 있는 조그만 항구로 고려시대 때 구라량(仇羅梁)의 수군기지가 있던 곳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구라량 진영(陣營)은 폐쇄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이 곳에 거북선을 감추고, 왜의 수군을 공격하여 대승을 거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곤 있으나 이 를 뒷받침할 만한 기록은 없다. (그의 난중일기(亂中日記)에는 '구라량'은 나오나, 굴항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음) |
지금의 굴항은 순조 연간에 진주 병마절도사(兵馬節 度使)가 진주목(晋州牧) 소속의 창선도와적량첨사 (赤梁僉使)와의 군사적 연락을 위해 진주목 백성 수 천명을 동원하여 1820년경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땅을 파서 수로와 굴항을 만들고, 돌로 축대를 쌓고 주변에 나무를 심어서 바다에선 전혀 보이지 않도록 교묘하게 숨겨 놓았다.
이 곳에는 300여명의 상비군과 전함 2척을 배치했다 고 하며 지금은 어선의 보금자리 역할을하고 있다. 굴항의 구조는 'Ω' 모양으로 면적은 635평인 그야 말로 장난감처럼 조그만 항이다.
굴항에는 남해바다가 넝실넝실 들어와 조그만 연못 을 이루고 있는데, 그 모습이 참 아담한 것이 아기 자기하다.
수군 전함이 있던 굴항에는 동네 어선 몇 척이 월척 을 꿈꾸며 한가로이 겨울잠을 자고 있을 뿐, 분위기 는 차분하다. |
▲ 굴항으로 통하는 수로
▲ 굴항의 안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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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방진굴항 표석 |
항아리 겉을 돌 듯 돌아나가는 둑길은 갯바람이 산들거려 몇 번이고 계속 걷고 깊은 길이다. 하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1바퀴 도는 것으로 만족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또 올 것이니까..
굴항 주변으로 200년 정도 묵은 나무들이 많이 자라나 있다. 굴항 입구에 솟아난 팽나무는 이 곳의 신목(神木)으로 포구나무라고 부르며, 나무 아래는 예전 군사들의 활터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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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항으로 흘러 들어온 바닷물을 거울로 삼으며 매무새를 다듬느라 여념이 없는 나무들은 일종 의 호안림(護岸林)으로 팽나무와 서나무 40여 그루가 심어져 있다. 겨울의 제국에게 모든 걸 빼앗긴 나무들, 후일을기약하며 조용히 웅크려 봄의 해방군을 기다 리는나무들의 모습이 참 쓸쓸하다.
남쪽 둑방에는 남해바다의 영원한 수호신, 충무공의 동상이 왼손에 칼을 쥐며 바다와 주변섬 들을 굽어보고 있다. 임진란 이후, 남해바다는 영국의 거문도 점령 사건(1886년)을 제외하고는 외세의 침범이나전 쟁이 전혀 없었으니 이는 그의 넋이 남해의 수호신이 되어 바다를 지켜준때문이 아닐까..?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으로 굴항 주변에는 횟집들이많이 늘어서 있어 나그네의 발길을 쉬어 가게 해준다. |
※ 대방진굴항 찾아가기 (2008년 1월 기준)
* 삼천포터미널에서 대방동, 창선도 방면으로 가는 사천시내버스 20번, 25번을 타고 대방4거리 하차, 바다 쪽을 바라보면 오래된 나무들이 우거진 곳이 눈에 띌 것이다. 바로 거기~ * 승용차로 대방진굴항까지 접근이 가능하며 부둣가에 잠시 주차시키면 된다. * 소재지 - 경남 사천시 대방동 251 |
대방진굴항 앞 쪽에는 푸르른 남해바다가 넝실넝실 춤을 추며 드넓게 펼쳐져 있고, 곳곳으로 창선도와 학섬, 늑도 등의 여러 섬들을 띄워놓았다. 삼천포와 창선도, 늑도를 잇는 삼천포대교의 자태는 단연 으뜸으로 특히 야경(夜景)이 끝내준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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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천포와 창선도, 늑도를 하나로 이어주는 삼천포대교 ~ 바다에 다리를 담구며 양 지역을 연결하는 한려수도의 새로운 건널목이다. |
굴항 동쪽으로는 방파제와 부두가 있다. 낚시 삼매에 빠진 강태공(姜太公)들은 방파제를 가득 메우며 혹시나 모를 월척을 꿈꾸느라 여 념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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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파제와 등대 ~ 방파제 양쪽 끝으로 하얀 등대와 빨간 등대가 서로를 연모하듯 자리해 있다. 저 멀리 높다란 굴뚝에서 가득 뿜어져 나오는 요상한 연기가 그림으로 옮겨도 손색이 없는 미항(美港)의 모습을 크게 해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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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방동 앞바다 마음이 뻥 뚫릴 것처럼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니 속세의 온갖 번뇌로 가득했던 나의 마음과 머리가 잠시나마 확 후련해 지는 것 같다.
어둠이 짙어가는 바닷가에는 자갈과 바다파도와의 끊임없는 속삭임만이 들릴 뿐이다. |
~~ 아쉽지만 여기서 끝
~~
* 답사, 촬영 일시 - 2007년 1월 16일
* 작성 시작일 - 2007년 1월 23일
* 작성 완료일 - 2007년 2월 4일
* 숙성기간 ~ 2007년 2월 5일 ~ 2008년 1월 11일
* 공개일 - 2008년 1월 11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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