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효대사의 재미난 설화가 깃들여진 산중 암자, 불광산 척판암(擲板庵) '

▲ 불광산의 늦가을
☞ 불광산 장안사 후기(본글의 앞편) ^^ 보러 가기 ^^
장안사를 벗어나 이제는 불광산 산등성이에 자리한 척판암을 향해 발길을 재촉한다. 그곳으로 가
는 길은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산길로 가는 것, 다른 하나는 백련암을 거쳐 척판암까지 이어진
포장도로를 따라가는 것이다.하지만 기왕 산에 왔으니 가을낙엽이 귀를 접고 누워있는 산길이 더
호젓하지 않겠는가.
 ▲ 가을이 떠나간 불광산 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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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떠나려는 산길에는 겨울을 원망하며 땅으로 곤두박질 친 낙엽들만이 가득하다. 차디찬겨울산 을 따스히 덮어주며 흙으로 들어갈 그 순간을 기다리는 낙엽의 말로(末路)..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 이나 마지막에는 결국 흙의 일원이 되고 만다. 시작과 중간은 크게 다를지언정 그 종점은 모두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허무한 모양이다. |
 | 척판암 가는 길은 산의 느긋함을 보여주듯, 경사는 그리 급하진 않다. 낙엽을사각사각 밟아가며 산을 오르니 장안사 출발 20분 만에 불광산 능선에 이르 고, 곧 척판암의모습이 조금씩 드러난다. 작아 보이던 척판암은 가까이 다가갈수록정비례로 커져 가면서 장안사 출발 25분 만에척판암 산문에 다다른다.
108계단보다는 적지만 촘촘히 박힌 돌계단을 올라 불광산 척판암이라 쓰인 척판암의 대문을 거쳐 고요 함이 감도는 경내로 들어선다. 그럼 여기서 잠시 척판암의 내력을 살펴보도록하자. ◀ 문을 활짝 열어 힘들게 올라온 이들을 맞이하는 척판암 정문 |
♠ 불광산 산중턱 가파른 곳에 둥지를 튼 조그만 암자. 원효대사가 현판을 날려 사람을 구했다는 척판구중(擲板求衆)의 설화가 담긴 ~ 불광산 척판암(擲板庵)
 ▲ 척판암 대웅전(大雄殿) 척판암의 법당으로 사세를 확장하기 어려운 가파른 곳이라 대웅전 안에 승방(僧房, 종무소의 역할도 겸함)과 공양간을 갖추었다. |
해발 300m 고지에 둥지를 튼 척판암은 현판을 날린다, 널판지를 날린다는 뜻으로 절의 이름치고 는 상당히 독특하다. 예전에는 소반을 날린다는 뜻의 척반암(擲盤庵)이었다고 한다. 이 절은 장안사와 마찬가지로 신라 문무왕 12년(673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나 신빙성은 역시나 떨어진다.
척판암에는 재미난 창건설화가 귀에 생생히 전해져 오고 있는데, 이 설화는 송고승전(宋高僧傳) 에도 실려있다. 또한 양산 천성산(千聖山)의내원사(內院寺)와 홍룡사(虹龍寺), 원효암(元曉庵) 의 창건설화와도 많이 비슷한데, 그 이유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이 되있기 때문이다. 그럼 잠시 전설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불교계 일부에선 전설이 아닌 실화로 여기고 있다고 함)
▶ 원효대사는 이곳에 조그만 암자를 짓고 머물고 있었다. 어느 날 도안(道眼)으로 당나라를 살 피고 있었는데, 당나라 장안(長安) 남쪽 종남산 태화사(終南山 太和寺)가 산사태가 나기 직전이 라 절에 있던 1,000명의 승려가 위험에 처해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급히 '해동원효척판 구중(海東元曉擲板救衆, 여기서 절의 이름이 유래됨)'이라 현판을쓰고 신통력으로 태화사로 횡 날려보냈다. 현판은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며 태화사를 맴돌았는데 이를 보려고 승려들이 삼삼오오 밖으로 나 오고, 드디어 1,000명이 모두 나왔을 때, 뒷산이 무너져 절을 확 덮쳐버렸다.
그들은 그 현판을 들고 자신들을 구해준 원효대사를 뵈기 위해 바다를 건너 신라로 왔다.원효는 그들이 올 것을 알고 지금의 천성산 내원사 계곡에 판자로 절을 짓고 음식을 만들어 그들을 기다 리니, 이에 크게 감복하여 모두 엎드리며 제자가 되기를 원했다. 원효는 그들을 수습하여 내원사 와 원효암 등 89개의 암자를 지어 머물게 했다. 그들은 지금의 천성산 화엄벌에서 원효대사의 화엄경(華嚴經)을 수강하여 모두 득도(得道)했다고 하며, 천성산(千聖山)이란 이름도 그들 1천 명이 도를 깨달아 성인이 되었다 해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 또한 987년 송나라 승려 찬녕(贊寧)이 편찬한 송고승전(宋高僧傳)에는 위의 내용과 약간 다르 게 실려있는데, 현판(板) 대신 소반(盤)을 던진 것으로 나온다. 그 내용도 살펴보면. 원효는 어느 날, 도안(道眼)으로 당나라를 살피고 있으니 당나라 장안(長安)의 종남산 운제사(雲 際寺, 아마도 태화사의 다른 이름인 듯)가 무너질 지경에 처했음을 발견했다. 원효는 운제사 승 려를 구할 방편을 모색하던 중, 마침 다과상이 들어왔다. 그는 다과상(소반)을 번쩍 들어 서쪽을 향해 공중으로 날렸는데, 소반은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서해바다를 건너 금세 수천 리 떨어진 운 제사에 이르렀다. 그때 운제사 승려 하나가 하늘을 빙빙 도는 소반을 발견하고는 사시공양(巳時供養, 오전 10시경 의 식사)을 하던 이들에게 알리니 너도나도 그 광경을 보고자 죄다 우루루 몰려 나왔다. 그때 갑 자기 큰방 대들보가 부러지면서 건물이 붕괴되고, 소반은 그제서야 땅에 떨어졌다. 자칫 건물에 깔려 오징어가 될 뻔한 그들은 소반을 수습하여 보니 뒷면에 '해동원효척반구중(海 東元曉擲盤球衆)'이란 글씨가 쓰여 있었다. 운제사 승려들은 그들의 스승이 신라에 있음을 깨닫고 원효를 뵈기 위해 바다를 건너 내원사 골 짜기를 찾았다. 그 이후는 앞에 설화와 비슷하다.
이들 설화는 어디까지나 설화이다. 허나 불교계에선 근거가 없는 전설이 아닌 실화로 여기고 있 다고 하는데, 원효는 엄연한 승려이지 그런 도술을 부리는 도술사가 아니다. 허나 그 전설은 원 효의 명성과 불도의 깊이가 천하 제일의 수준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나온 일종의 영웅설화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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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처의 진신사리가 담겨진 척판암 3층석탑
| 척판암의 실질적인 창건시기는 장안사보다 훨씬 이 후로 여겨진다. 허나 그 이후 이렇다 할 내력은 전 해오지 않으며, 다만 대웅전에 조선후기에 만들어 진 불상이 있어 조선때도 법등(法燈)을 유지했음 을 보여준다. 지금의 절은 1938년 승려 경허가 지 은 것으로 1972년 3층석탑을 올렸다.
장안사의 부속암자로 절의 규모는 그야말로 조촐하 다. 건물이라고 해봐야 대웅전과 낭떠러지위에세 운 독성각 등 3동이 전부이며 급경사에둥지를 튼 탓에 건물을 크게 짓거나 새로만드는 것이 매우 어렵다. |
하지만 심산유곡(深山幽谷)에 자리하여 산내음으로 가득하며 조그만 산사의 멋과 여유로움을 느 끼기에 딱 그만인 곳이다. 이곳에 올라서면 불광산의 서쪽과 남쪽자락이두 눈에 시원스레 다가 온다. |
 ▲ 대웅전 석조여래좌상 - 부산 지방문화재자료41호 대웅전에는 조선후기에 만든 척판암의 오랜 보물인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이 있다. 복장유물은 오래 전에 없어진 것을 1996년에 도금을 입히면서 새로 만들어 넣었다. 그 좌우로 근래에 만든 관음보살상과 지장보살이 협시(夾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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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에는 척판암의 유일한 보물인 아미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한 3존불이 모셔져 있으며, 근래 에 만든 후불탱화와 지장탱화, 신중탱화 등이 그 주변을 빼곡히 채운다. 그 외에 작은 동종(銅鍾 )과 원효대사의 진영(眞影)이 있다. 대웅전을 지나면 옥계수로 가득한 샘터가 나온다. 여기서 불광산이 베푼 물을 한 바가지떠다 마 시니 등산에 따른 목마름과 속세에 대한 온갖 잡념이 말끔히 해소된 듯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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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옆에는 용왕(龍王)으로 보이는 그의 조그만 보금자리가 있다. 얼핏 보기에는산신(山神)처럼 보이지만 옷 차림새와 어깨 좌우로 삐죽나온 용머 리를 보니 동해바다의 용왕인 것 같다. 그가 바라 보는 방향도 영락없이 동해바다이다. 산마루에 있 는 절이 어째서 용왕을 모시고있는지 그저 궁금 할 따름이다.
용왕상을 지나면 척판암의 현재의 모습을 상징하듯 , 소박한 모습의 3층석탑이 나온다. 이 탑은1972 년에 세운 것으로 부처의 진신사리 5과가 봉안되어 있는데,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1960년대에 어느 재일교포가 왜열도에서 오래된 불 상을 하나 구입했는데 그 안에서 무려 53과에 달하 는 진신사리가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 를 그의 고향인 제주도 관음사(觀音寺)에 기증했는 데, 관음사에서 그중 5과를 척판암에 선물하여 그 사리의 공간으로 석탑을 만든 것이다. |  ▲ 척판암 용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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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을 지나면 승방으로 보이는 건물이 하나 있고 그걸 지나치면 척판암의 명물인 독성각(獨聖閣) 으로 오르는 계단길이 나온다. 칼로 다듬은 듯한 깎아지른 낭떠러지에 가파르게 베풀어진 계단길 을5분 정도 오르면 나온다고 하는데, 나는 오르기 귀찮아서 그만 지나치고 말았다.그곳은 소원 1가지를 빌면 반드시 들어준다고 소문이 자자한 곳으로 척판암에 왔으면 반드시 독성각을 들리라 는말도 있던데, 그걸 그대로 지나쳤으니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심정이다.
※ 척판암 찾아가기(2009년 1월 기준) * 기장중학교, 한신아파트, 기장도서관, 기장지구대(치안센터), 좌천, 월내역에서 상장안까지 기 장군마을버스 9번이 1일 17회(40~60분 간격) 운행, 상장안에서 척판암까지 도보 45분 * 2호선 해운대역(1번 출구)에서 39번 버스, 부산역(10번 출구)에서 급행좌석 1003번을 타고 기 장지구대, 한신아파트, 기장도서관에서 9번 마을버스로 환승 * 해운대역(1번 출구)에서 181번 버스, 동래전철역(3번 출구) 건너편 정류장에서 183번 버스, 서 면역(7번 출구)에서 1005번 급행좌석을 타고 기장중학교에서 내려 건너편 정류장에서 9번 마을 버스로 환승 * 해운대역(2번 출구)에서 180번 버스(1시간 간격)를 타고, 기장시장입구나 좌천, 월내시장에서 9번으로 환승 * 부산종합터미널(노포동)에서 37번 버스를 타고 좌천, 월내시장에서 9번으로 환승 * 울산터미널에서 남창 경유 해운대로 가는 직행버스를 타고 하근에서 하차, 9번으로 환승 또는 걸어서 1시간 45분 * 승용차로 갈 경우 (척판암까지 접근은 가능하나 주차 공간이 없음, 주차는 장안사에서) ① 부산(해운대 / 반송) → 기장 → 울산 방면 14번 국도 → 하근 → 장안사 → 척판암 ② 울산 → 부산 방면 14번 국도(또는 부산~울산 고속도로) → 남창 → 하근 → 장안사 → 척판암
* 소재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산 53-1(☎ 051-337-3547) |
 ▲ 아직 늦가을이 머물러 있는 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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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판암까지는 수레가 들어오게끔 1차선 크기의 콘크리트길이 놓여져 있다. 길 주변으로는 아직 늦가 을의 잔재가 남아 올해의 마지막 향연을 펼치고 있는데, 그 풍경은 정말로 집으로 고이 훔쳐가고 싶 은 풍경이다. 저 길을 15분 가량 내려가면 장안사의 또 다른 부속암자인 백련암이 나온다. |
 ▲ 백련암(白蓮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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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암은 근래에 지어진 절로 법당인 2층짜리 미타전(彌陀殿)과 생활공간으로 쓰이는 슬레이트 지붕 집이 전부인 조그만 암자이다. 절로 들어서려면 대나무 밭을 지나야 되는데 바람에 나부끼는 대나무 이파리 소리에귀가 즐거워진다. |
 ▲ 불광산에서 만난 그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다시 속세로 내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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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암을 둘러보고 늦가을과 초겨울이 교차하는 숲길을 따라 15분 정도 내려가니 다시장안사가 나 를 반긴다. 상장안에서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9번 마을버스를 타려고 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거의 10리 거리인 하근까지 걸어 나오고 말았다. 불만에 잠긴 두 다리를 위로하며 울산행 직행버스를 타 고울산(蔚山)에서 서울로 떠나는 장거리 직행버스에 몸을 실어 보낸다. 이렇게 하여 불광산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다음에 다시 찾게 된다면 척판암 독성각을 꼭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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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일 - 2009년 1월 28일부터
* 최종 수정 - 2009년 1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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