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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의 신비가 서린 충주 미륵리사지(彌勒里寺址)
~ 하늘재 고갯길 '
여름제국의 잔여세력이 가을과 천하를 놓고 막바지 다툼을 벌이던 9월 하순, 충주전통문 |
♠ 천년의 신비를 간직하며 지금도 그 해답을 주려고 하질 않는 야속한 절터, | |
조선 초기까지 영남(嶺南)에서 충주, 서울을 이어주던 주요 고갯길인 하늘재 아래에 자리한 거대 | |
현재 마의태자와 관련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記) 경순왕 조와 삼국유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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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륵리사지 연화문 당간지주(蓮花紋 幢竿支柱) ~ 미륵리귀부 | |
절터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육중한 덩치의 돌기둥, 당간지주를 만나게 된다. 하늘을 마주하며 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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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부 앞쪽의 둥그런 석조는 자연과 미륵리석불의 중생을 향한 넉넉한 마음가 담겨져 있는 듯, 언 | |
◀ 석조 부근에 우두커니 서 있는 커다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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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를 지나면 입을 벌어지게 만드는 거대한 귀부(돌거북)가 북쪽을 바라보며 서 있다. 우리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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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륵리 5층석탑 ~ 보물 95호 | |
돌거북과 석불입상 중간에 키가 제법 큰 5층석탑이 서 있다. 탑 앞에는 석등이 세워져 있고, 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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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륵리석등 너머로 바라본 하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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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륵리 석불입상 ~ 보물 96호 | |
석등을 지나면 비로소 미륵리사지의 간판인 미륵리석불입상 앞에 이르게 된다. 석불은 절터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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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의 생김새를 살펴보면, 불상의 높이는 10.6m이다. 석불의 머리는 꼽슬머리인 나발을 하고 있 | |
▲ 미륵리 석조보살의상(彌勒里石造菩薩倚像) - 충북 지방문화재자료 47호 | 석불을 동,서,남으로 에워싼 석굴은 경주 석굴 |
♠ 미륵리사지 공기돌바위 ~ 3층석탑 ▲ 온달장군이 가지고 놀았다는 공기돌바위 거북바위 위에 동그랑땡 모양의 돌이 놓여져 있는데, 큰 바위와 돌은 붙어있지 않고 서로 떨어져 있다. 저 바위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 |
공기돌바위를 더듬거리듯 만져보고 있던 중 절터 안내를 담당하고 있는 문화유산해설사 아저씨가 | |
▲ 옛 미륵리절터 화려했던 전각들은 장대한 세월의 흐름 속에 녹아 없어지고 받쳐들던 주춧돌만이 황량하게 남아 세월의 무상함을 일깨워 준다. 이곳은 나그네의 숙식을 제공하고 장터가 열렸던 일종의 역원(驛院) 자리로 여겨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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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 맞은편에는 언덕이 하나 있는데, 그 언덕 ◀ 미륵리 3층석탑 - 충북 지방유형문화재 33호 |
♠ 하늘재 고갯길 - 명승 49호 |
미륵리사지를 지나 문경 관음리까지 이어진 하늘재는 2천년 가까이 된 오래된 고갯길이다. 5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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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늘재를 신선처럼 거닐고 나오는 길에 빈신사지(頻迅寺址) 사자석탑을 보려고 했으나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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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일 - 2009년 10월 20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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