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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10.23 서울 도심의 상큼한 서쪽 뒷동산, 안산 1바퀴 <무악산 동봉수대, 안산자락길, 안산 메타세콰이어숲길, 흔들바위>
  2. 2014.07.02 충남의 조그만 금강산, 기암괴석이 일품인 홍성 용봉산 (용봉산 자연휴양림)

서울 도심의 상큼한 서쪽 뒷동산, 안산 1바퀴 <무악산 동봉수대, 안산자락길, 안산 메타세콰이어숲길, 흔들바위>

서울 안산 (안산자락길, 무악동봉수대)



' 서울 도심의 서쪽 뒷동산, 안산 '
(무악산 동봉수대, 안산자락길)

무악산 동봉수대에서 바라본 안산 남쪽 자락

▲  무악산 동봉수대에서 바라본 안산 남쪽 자락

안산 잣나무숲길 안산 북쪽 메타세콰이어 숲길

▲  안산 잣나무숲길

▲  안산 북쪽 메타세콰이어 숲길

 



 

봄을 몰아낸 여름 제국(帝國)이 서서히 이빨을 드러내던 6월의 끝 무렵, 서울 도심의 서
쪽 뒷동산인 안산(鞍山)을 찾았다.

안산 서남쪽 자락에 깃든 봉원사(奉元寺, ☞ 관련글 보기)에서 길을 시작하여 15분 정도
숲길을 오르니 무악정이란 2층 정자가 마중을 나온다. 무악정은 근래에 지어진 8각형 정
자로 여기서 길은 크게 2갈래로 갈리는데, 북쪽으로 내려가면 홍제1동과 연희동(延禧洞)
으로 이어지며, 동쪽 길을 10여 분 오르면 안산 정상과 무악산 동봉수대이다. 그럼 여기
서 잠시 안산에 대해 간단히 짚어보도록 하자.


▲  녹음에 잠긴 안산 숲길 (봉원사에서 무악정으로 오르는 길)



 

♠  안산의 지붕, 무악산 동봉수대(毋岳山 東烽燧臺)

▲  정상 입구에 자리한 무악정(毋岳亭)

서울 도심 서쪽에 누워있는 안산은 해발 295.9m의 조촐한 산이다. 대륙을 향해 뻗어가는 의주
로(義州路)를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 서울의 영원한 우백호(右白虎)인 인왕산(仁王山, 338m)과
마주하고 있으며, 서북쪽으로는 홍제천(弘濟川)을 사이에 두고 백련산(白蓮山)과 이어진다.
산의 영역은 남쪽으로 천연동(天然洞)과 북아현동(北阿峴洞), 북쪽은 홍제동과 연희동, 동쪽
은 의주로, 서쪽은 서대문구청 뒷쪽과 연세대에 이르며, 남북으로 아무리 길게 잡아봐야 3km
내외이다.

안산이란 이름은 산의 모습이 말이나 소의 등에 짐을 싣고자 걸치는 길마처럼 생겼다고 해서
유래된 것으로 길마재라고도 부른다. <안(鞍)은 안장을 뜻함> 모래내, 추모련, 무악산이란 이
름도 지니고 있으며,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서 봉우재라 불리기도 했다. 그만큼 안산에 대한
속세의 관심이 지대했다는 뜻이다.
서울의 남주작(南朱雀)인 남산(南山, 목멱산)보다는 조금 높으나 인왕산과 서울의 북현무(北
玄武)인 북악산(北岳山, 백악산)보다는 조금 낮으며, 이들 산과 비슷하게 덩치도 고만고만해
아무리 산행을 길게 잡아도 2시간 내외면 충분하다. 또한 바위와 벼랑이 많은 동쪽 정상부를
제외하면 산세가 완만하고 산길이 잘 닦여져 있어 누구든 부담 없이 안길 수 있으며, 조망도
일품이고 수맥도 풍부하여 20여 개의 약수터가 나그네의 목마름을 어루만진다.

지리적인 위치를 보면 인왕산과 함께 서울 도심을 서북쪽으로 둘러싼 형태로 예나 지금이나
서울을 지키는 주요 요충지이다. 하여 산을 둘러싼 다툼도 여럿 있었으니 그 대표적인 것이
1623년에 일어났던 이괄(李适)의 난이다.
인조반정(仁祖反正, 1623년)의 주역이던 이괄은 논공행상(論功行賞)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
으켜 순식간에 서울을 점령했으며, 서인(西人) 패거리에 의해 왕위에 오른 얼떨떨한 인조(仁
祖)는 서인 일당을 데리고 충청도 공주(公州)로 급하게 줄행랑을 쳤다.

도원수(都元帥) 장만(張晩)은 인조의 어명을 받아 군사를 이끌고 반란군을 토벌하고자 안산에
진을 쳤는데, 도성을 점령하여 잔뜩 자만감에 빠진 이괄은 도성 사람들에게
'내가 저것들을 단숨에 때려잡을 것이니 나와서 싸움이나 구경하도록!' 자신감을 강하게 내비
췄다. 그리고 군사를 이끌고 인왕산 서쪽으로 나가 장만의 군사와 대치했다. 도성 백성들은
그 싸움을 구경하고자 인왕산에 구름처럼 모여들었는데, 사람들이 대체로 하얀 옷을 즐겨입다
보니 산을 가득 메운 그들로 인해 산이 마치 하얀 백로처럼 보였다고 한다.
 
관군을 맞은 이괄은 처음에는 여유롭게 전쟁을 진행했으나 난데없이 불어닥친 강풍에 기가 꺾
여 장만에게 몰리고 말았다. 그래서 서둘러 도성으로 도망쳤으나 백성들이 성문을 죄다 걸어
잠구면서 도성을 포기하고 한강을 건너 이천, 여주까지 줄행랑을 쳤다. 하지만 내부 갈등으로
결국 부하에게 살해되어 목 없는 귀신이 되고 만다.
이때 살아남은 이괄의 부하들은 목을 붙잡고 후금(後金)으로 도망쳤는데, 그들은 청태종(淸太
宗)에게 광해군(光海君)의 복수를 구실로 조선을 치라고 들쑤셨다. 그래서 그 푸닥거리로 일
어난 것이 바로 정묘호란(丁卯胡亂, 1627년)이다.
1636년 12월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청나라군이 안산과 무악재의 눈치를 보며 서울로 진격
했고, 1950년 9월에는 인천(仁川)에 상륙한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되찾고자 북한군과 격전
을 벌였다.

안산의 품으로 들어서려면 서대문구청이나 홍제천 인공폭포(연희숲속쉼터). 봉원사, 천연동,
독립문파크빌, 무악재역, 홍제1동, 한성과학고 등지에서 접근하면 된다. 또한 서대문구청에서
안산자락길이라 불리는 둘레길(7km)을 야심차게 닦아놓았는데, '쉽게 걸을 수 있는 편안한 여
행길 10선'에 꼽혀 국민적인 둘레길로 격하게 칭송을 받고 있다.

안산 서남쪽 자락에는 서울 지역의 주요 고찰(古刹)이자 영산재(靈山齋)의 성지(聖地)인 봉원
사가 있고, 산 동쪽 정상에는 무악산 동봉수대가 있으며, 연희숲속쉼터와 안산자락길, 메타세
콰이어숲길, 잣나무숲길 등의 명소가 준비되어 있어 지루할 틈이 거의 없다.


▲  안산 동쪽 정상 밑에 자리한 헬기장
(서쪽 정상과 동쪽 정상 사이)

▲  안산 동쪽 정상에 씌워진 무악산 동봉수대 - 서울 지방기념물 13호

하늘과 맞닿은 안산의 지붕에는 2개의 봉우리가 봉긋 솟아있다. 이중 서쪽 봉우리가 안산 정
상으로 안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나 그곳에는 군사시설이 있어 출입이 100% 통제되어 있다. 하
여 자유로운 공간인 동쪽 봉우리(동쪽 정상)가 실질적인 정상의 역할을 맡고 있다. 서쪽 봉우
리보다 약간 낮을 뿐, 높이는 거의 비슷하며 바로 그 봉우리에 무악산 동봉수대(문화재청 지
정 명칭은 '무악산 동봉수대터')가 천하를 굽어보며 요새처럼 자리해 있다.

봉수대는 불을 피워 연기와 불빛을 이용해 변방의 소식을 서울로 빠르게 전달하던 것으로 주
로 산 정상에 자리를 닦았다. 지금처럼 전화나 인터넷이 있던 시절이 아니니 봉수대의 역할은
더욱 클 수 밖에 없었고 그 봉수대를 이용한 봉수체제가 그나마 제일 빠른 통신 수단이었다.
비와 눈이 내려 연기가 여의치 못할 때는 봉수지기가 다음 봉수대까지 달려가 소식을 전했다.

조선시대 봉수제(烽燧制)는 1438년에 확립되었는데, 그때 무악산(안산) 정상에 봉수대가 만들
어진 것으로 보인다. (무악산은 안산의 다른 이름으로 안산과 인왕산 경계에 자리한 무악재에
서 비롯됨)
지금은 동봉수대 1개 밖에 없지만 원래는 2개로 동,서로 구분되어 있었다. 동봉수대는 조선의
제3봉수로(烽燧路)의 경유지로 평안도 강계(江界)에서 시작하여 황해도(黃海道)와 파주, 고양
해포나루, 무악산 동봉수대를 거쳐 남산 훈도방(남산 목멱산 봉수대)에서 그 끝을 맺는다. 이
노선은 직봉 78곳, 간봉 22처를 경유한다. 그리고 서봉수대는 제4봉수로의 경유지로 황해도에
서 시작하여 경기도 해안을 따라 고양시 고봉, 무악산 서봉수대를 거쳐 남산 명래방으로 연결
되며, 직봉 71처, 간봉 22처를 경유한다.

이들 봉수대는 1894년 이후 봉수제가 폐지되면서 귀신도 모르게 녹아 없어졌으며, 그 터만 아
련히 남아 전하던 것을 1994년 서울 정도(定都) 600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동쪽 정상에 있던
동봉수대만 복원되었다. 허나 서쪽 정상에 있던 서봉수대터는 군부대가 있는 관계로 복원되지
못했다.

비록 동봉수대가 복원되긴 했으나 주위가 문화유산과 어울리지 않고 추락사고의 위험이 있다
는 문제점이 2008년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다. 하여 그때부터 2011년까지 서울시 문화재위원들
이 현장실사와 고증을 통해 화강석 성곽으로 재현하기로 결정하고 기존의 봉수대를 부시고 2
단의 석축을 다진 다음 그 위에 봉수대를 얹혔다.
허나 이번에는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의 맛이 떨어진다고 민원이 들어와 지금의 모습으로 어
색하게 재현되었다. 그러니까 원래의 모습이 아닌 그저 사람들 입맛에 맞게 이리저리 변질을
시킨 꼴이다. 굳이 좋게 포장한다면 융통성이 있고 시대에 맞게 재현된 것이 되겠지.
그러다보니 봉수대를 받치고 있는 석축과 불을 피우던 봉수대, 봉수대 주변 테두리의 돌 피부
가 확연히 차이가 나서 어색하기 그지 없다. 봉수대 석축을 이루는 돌은 고색의 기운이 약간
돌지만 봉수대와 테두리에 쓰인 돌은 하얀 피부로 파리가 능히 미끄러질 정도로 맨질맨질하다.


▲  천하를 굽어보며 왕년의 향수를 달래는 봉수대
연기를 모락모락 풍기며 불빛을 날리던 왕년의 시절이 있었건만 이제는
안산 정상을 수식하는 장식용이자 전망대 그 이상도 아니게 되었다.

    ◀  때깔이 고운 하얀 피부의 봉수대
봉수대 가운데에 있는 네모난 창을 통해 불과
연기를 피웠는데, 그 연기는 봉수대 꼭대기를
통해 하늘로 솟구쳤다.

▲  남쪽에서 바라본 동봉수대

▲  새롭게 둘러진 봉수대 테두리

봉수대를 모자처럼 눌러쓴 안산 동쪽 정상, 그 동쪽은 바위로 이루어진 낭떠러지이고, 북쪽과
남쪽은 경사가 다소 각박해 봉수대 복원 이후 추락사고의 위험이 늘 제기되었다. 하여 2011년
이후 봉수대를 새로 갈면서 주변에 하얀 피부의 테두리를 성곽처럼 두른 것이다. 그러다보니
기존의 봉수대 모습을 다소 잃게 되었다.


▲  안산 정상에서 바라본 인왕산과 무악재
그날따라 안개가 말썽이라 시야는 다소 흐릿했다. 이렇게 보면 인왕산이
좀 낮아보일 수 있지만 저곳이 이곳보다 무려 40m 이상 높다.
그래도 서울을 지키는 당당한 우백호가 아니던가~~


▲  안산 정상에서 바라본 흐릿한 천하 ①
홍제동과 홍은동, 녹번동, 평창동, 북한산(삼각산) 서남부

▲  안산 정상에서 바라본 흐릿한 천하 ②
바로 밑으로 옛 서대문형무소를 간직한 서대문독립공원과 독립문 주변을
비롯하여 서울 도심부와 남산이 바라보인다. 안개만 아니었다면
시야가 더욱 나래를 펼쳤을 것인데 하늘의 심술이
그저 아쉽기만 하다.

▲  안산 정상에서 바라본 흐릿한 천하 ③
안산 남쪽 자락과 서울 도심부, 아현동 지역

▲  안산 정상에서 바라본 흐릿한 천하 ④
안산 남쪽 자락과 봉원사, 신촌, 서대문구 지역


안산 정상은 높이에 비해 조망이 아주 휼륭하다. 천하 제일의 대도시로 콧대가 높은 서울 장
안을 발 아래 두며 굽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뫼에 오르는 이유의 큰 하나는 바로 이런 조망
맛을 누리고자 함으로 이때만큼은 제왕도, 옥황상제도, 청와대 주인도 부럽지가 않다.
정상에서 보이는 범위는 가까이로 인왕산과 무악재, 독립문, 서울 도심부, 홍제동, 신촌, 북
한산(삼각산), 북악산(백악산)을 비롯해 멀리 서울 동부, 불암산, 아차산, 여의도, 서울 서남
부, 동작구, 강남구, 관악산과 호암산 등이 앞다투어 시야에 들어와 속세에서 오염되고 상처
받은 두 눈이 제대로 호강을 누린다. 그래서 왜 이곳에 봉수대를 세우고 이괄의 난(1623년)과
6.25전쟁, 그리고 지금까지 군사적인 요충지로 절찬리에 쓰이고 있는지 십분 이해가 간다.

* 무악산 동봉수대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봉원동 산1



 

♠  안산에 녹아들다 (잣나무숲, 메타세콰이어숲길)

▲  가파른 벼랑을 이루고 있는 안산 북쪽 자락

안산 동쪽 정상에서 시원스러운 산바람과 조망을 누리며 20분 정도 머물렀다. 비록 하늘의 비
협조로 시야는 썩 좋지 못했으나 마치 학의 등에 올라탄 개미처럼 흐릿한 천하를 굽어보니 기
분은 즐겁다.
이곳은 예전에도 가끔씩 찾았던 곳이고 땅꺼미가 자욱한 저녁에도 침침한 두 망막을 무릅쓰고
올라가 도심 야경을 즐기며 일행들과 곡차(穀茶) 1잔 걸치기도 하였다. 지금도 1년에 서너 번
정도 찾으며 안산에 대한 나의 변치 않는 마음을 비춘다.

동쪽 정상에서 다시 무악정 방면으로 내려가면 헬기장이 있다. 여기서 길은 3갈래로 갈리는데
, 서쪽은 무악정으로, 남쪽은 안산 남쪽 능선, 그리고 북쪽은 홍제동으로 이어진다. 그중 북
쪽 길은 아직 미답(未踏)의 상태라 미답지를 하나라도 더 지우고자 북쪽 길을 선택했다. 그
길은 각박한 경사로 가늘게 이어져 있으며 바로 동쪽이 무악재와 접한 벼랑이라 각별한 주의
가 필요하다. (길 중간중간에 바위들이 있음)


▲  안산 정상 북쪽 밑에 자리한 안천약수터 주변

정상 헬기장에서 북쪽 길을 6~7분 정도 내려 가면 안천약수터가 모습을 비춘다. 안산에서 가
장 높은 곳에 자리한 약수터로 하늘과 가까운 곳에 있으니 물맛도 좀 특별할 것이라 여겨지
나 내가 갔을 때는 여름 가뭄으로 물은 완전히 말라버렸고, 여러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이 검
출되어 '음용 부적합' 빨간 딱지를 받은 상태였다.
하긴 이곳만의 일이랴. 안산을 비롯해 남산과 인왕산, 북악산(백악산)의 많은 약수터도 비슷
한 곤란을 겪고 있어 서울 도심에서 깨끗한 자연산 물을 섭취할 수 있는 공간이 줄고 있다.
그만큼 서울의 건강이 나쁘게 변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샘터 주변에는 간단한 운동시설과 쉼터 등이 닦여져 있으며, 동쪽에는 주름진 바위들이 옹기
종기 모여 있다.

▲  깔끔하게 정비된 보람도 없이 부적합
판정을 받은 안천약수터

▲  샘터 동쪽에는 주름진 바위와 간단한
운동시설이 모여있다.


▲  안천약수터에서 바라본 무악재와 인왕산

▲  안산 북쪽 자락 숲길
인적도 없는 호젓한 산길을 혼자 거닐으니 마치 아비규환의 속세를
벗어난 기분이다. 이런 것이 바로 해탈감이라고나 할까?
비록 잠시뿐이지만..


▲  안산 메타세콰이어 북쪽 숲 직전 숲길

안천약수터에서 북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직진하면 안산자락길과 홍
제동으로 바로 이어지고, 왼쪽(서쪽)으로 가면 메타세콰이어숲이 싱그러운 모습을 드러낸다.

안산에는 북쪽 자락과 서쪽 자락(숲속무대 주변)에 메타세콰이어숲을 닦았는데, 이들은 안산
을 꾸미면서 조성된 안산의 아름다운 얼굴이다. 북쪽 숲은 서쪽 숲에 비해 덩치가 매우 작아
정말 순식간에 숲길이 끝나 조금은 섭섭하다. 허나 늘씬하게 솟아나 하늘을 찌르는 모습이 시
원시원하니 그것이 발음도 어려운 외래종 메타세콰이어의 매력이라 하겠다. 안산자락길은 북
쪽 숲 밑을 지나가며 서쪽 숲 한복판을 가로질러 안산을 1바퀴 휘감는다.


▲  안산 북쪽 메타세콰이어숲길
군살 없이 쭉쭉 솟은 메타세콰이어가 하늘을 가리며 우수한 그늘을 베푼다.


▲  한낮에도 거의 어두운 메타세콰이어숲의 위엄
해가 긴 여름을 우걱우걱 씹어먹으며 낮의 길이를 감소시킨다.

▲  북쪽 메타세콰이어숲에서 잣나무숲으로 이어지는 호젓한 숲길

▲  드디어 이른 안산자락길 (잣나무숲길)

북쪽 메타세콰이어 숲에서 서쪽 산길을 고집하면 무장애길로 이루어진 안산자락길이 마중을
한다.
안산 허리를 따라 이어진 안산자락길은 이 땅에 흔한 둘레길의 하나로 '둘레길' 대신 '자락
길'을 칭하고 있는 점이 이채로운데, 총 길이는 7km로 2010년 10월부터 3단계 과정을 거쳐
2013년 12월 완성을 보았다.
총 사업비는 48억(서울시 지원 33억, 서대문구 15억)으로 노약자와 장애인, 휠체어나 유모차
의 편의를 위하여 전 구간을 무장애자락길(나무데크길, 마사토 포장길)로 싹 닦았다. 그래서
2016년 4월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쉽게 걸을 수 있는 편안한 여행길 10선'의 하나로 꼽
혀 국민적인 둘레길로 널리 칭송을 받기도 했다.
허나 너무 편리를 강조하다 보니 산길의 진미인 흙길이 거의 없는 것이 단점이다. 하여 흙길
을 원한다면 다른 산길을 이용하거나 자락길 안쪽에 닦여진 초록숲길을 이용해야 되며, 자락
길이 산자락에 있기 때문에 시내에서 접근하려면 어느 정도 오르막길과 산길을 겪어야 만날
수 있다.

안산자락길은 연희숲속쉼터 윗쪽, 자락길전망대, 천연마당쉼터, 안산천약수터, 숲속무대, 메
타세콰이어숲, 잣나무숲을 두루 거쳐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순환형으로 봉원사나 천연동
뜨란채아파트, 독립문파크빌아파트, 무악재역, 기원정사, 연희숲속쉼터, 서대문구청에서 접근
하면 된다.


▲  잣내음으로 그윽한 잣나무숲길

안산자락길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잣나무숲이 진한 잣내음을 들이밀며 나타난다. 이곳은 연희
숲속쉼터와 메타세콰이어 서쪽 숲 사이에 자리해 있는데, 숲 한복판에 안산자락길이 흘러가
그림 같은 잣나무숲길을 빚어내고 있으며, 숲길의 길이는 0.3km로 메타세콰이어숲과 함께 안
산을 꾸미면서 조성된 안산의 또 다른 얼굴이다.
잣내음이 가득해 상쾌한 느낌을 안겨주며, 잣나무가 베푼 산바람이 비록 약하긴 하지만 속세
의 기운과 여름의 기세를 꾸준히 털어간다. 이 숲을 지나면 바로 메타세콰이어 서쪽 숲길이
펼쳐지나 그곳은 이미 여러 번 인연을 지은 터라 길을 접고 아직 발자국을 남기지 못한 안산
자락길 북쪽 구간으로 방향을 돌렸다.


▲  저 자락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시원스럽게 뻗어가는 잣나무숲길의 위엄

▲  잣나무숲길 남쪽 구간

서울에 대표적인 잣나무숲으로는 이곳 외에도 동작충효길 고구동산 잣나무숲과 호암산(虎巖山
) 잣나무숲이 있다. 이들이 시골에 있었다면 감흥이 덜했겠지만 번잡함이 연상되는 서울 한복
판에 고스란히 박혀 있으니 그 감흥은 클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자연은 인간에게 소중하다.



 

♠  안산자락길 마무리

▲  안산자락길 북쪽 전망대

잣나무숲에서 잠시 자락길을 버리고 서쪽으로 내려가면 넓게 잘 닦여진 안산 산책로(연희로32
길)가 나온다. 그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올라온 길로 안산자락길이 이 길의 신세를 잠시
지며 동북쪽으로 흘러가는데 그 길의 끝에서 폭이 확 줄어들면서 북쪽 전망대가 고개를 내민
다.

북쪽 전망대는 안산의 가장 북쪽 끝(모래내로 이북은 제외)으로 비록 조망의 질은 정상보다
엷어도 홍제동과 홍은동, 무악재, 탕춘대능선, 북한산(삼각산) 등이 흔쾌히 시야에 들어온다.
앞서 잣나무숲에서 내려온 자락길과 연희로32길이 합쳐지는 곳에서 북쪽 전망대까지 1890년대
부터 고약했던 왜정(倭政) 시절까지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100여 인의 정보가 담긴 안내문이
차례대로 걸려 있어 잠시 옷깃을 여미게 한다. (자락길 전망대에도 일부가 있음)
이들의 안내문을 설치한 것은 안산 동남쪽 밑에 서대문독립공원이 있어서 그런 것인데, 자락
길을 거닐면서 이 땅의 광명을 위해 숭고하고 거룩한 삶을 살다간 그들을 생각하고 기려보자.
그것이 안산이 우리에게 준 의무이자 숙제이다.

북쪽 전망대에서 무악재를 거쳐 독립문파크빌까지 나무로 다진 무장애데크길이 펼쳐지며, 홍
제동과 무악재에서 안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길만 있었을 뿐, 무악재 옆을 가로질러 남북으
로 이어지는 산길은 원래 없었다. 그러다가 자락길이 닦이면서 발길이 어려웠던 안산 무악재
구간 접근이 가능해졌다.


▲  안산자락길 북쪽 전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바로 앞에 홍제동과 홍은동을 위시하여 인왕산과 북한산(삼각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  안산자락길 북쪽 구간과 무악재 구간이 만나는 곳
길 경계에 계수기(計數機)를 설치하여 안산자락길을 이용하는
사람 수를 조용히 체크한다.

▲  안산자락길 무악재 구간 (북쪽 전망대에서 무악재 방면)

▲  서울에도 흔들바위가?? 귀엽게도 들어앉은 안산 흔들바위

안산자락길 북쪽 전망대에서 자락길을 따라 남쪽으로 조금 가면 흔들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마
중을 한다.
커다란 암반에 바짝 붙어있는 돌덩어리가 흔들바위로 흔들바위의 대명사인 설악산 흔들바위보
다는 볼품과 위엄이 많이 떨어진다. 허나 손으로 밀면 아주 조금은 흔들거려 흔들바위의 자격
은 그런데로 갖추고 있다. 허나 대부분 사람들이 지나칠 뿐, 그를 밀어 흔들바위의 이름값을
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어 속세의 관심이 시급하다.

이 바위는 안산자락길 조성으로 발견된 것으로 암반 위에 철썩 붙은 것이 충주 미륵리절터의
공기돌바위와 비슷한 폼이다.
안산은 돌이 많은 산이라 동쪽 정상 주변과 동쪽 자락을 중심으로 바위와 벼랑이 즐비하니 이
바위 역시 그중의 하나로 대자연이 안산에 살포시 얹혀놓은 소소한 작품이다. 그 동쪽에도 잘
생긴 바위 하나가 이름도 없이 자리해 있는데, 동쪽에서 보면 거북이가 바위에 웅크리고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다.

▲  흔들바위 동쪽에 있는 이름 없는 바위

▲  너와집쉼터 입구

흔들바위를 지나 무악재 쪽으로 움직이면 너와집쉼터 이정표가 마중한다. 그 이정표의 안내를
받으며 서쪽 산길을 오르면 숲속에 묻힌 너와집이 진하게 모습을 비춘다. 서울 도심에서 너와
집이라니? 흔들바위만큼이나 신선하기 그지 없는데 그는 서대문구청에서 안산자락길을 다지면
서 조촐한 여흥거리로 마련한 것으로 경상북도 산골의 너와집을 현대식으로 조금 손질하여 지
은 것이다.
사람이 거주하는 살림집은 아니라고 하며, 관리하는 사람이 매주 여러 번 찾아와 관리를 하거
나 잠깐씩 머문다. 서울에 거의 유일한 너와집으로 너와집 체험 겸 전통찻집으로 활용하는 것
이 좋을 듯 싶은데, 그냥 눈요깃감으로만 두고 있는 것이 조금 아쉽다.

집 옆에는 하얀 피부의 위성방송 안테나가 귀를 열고 있어 이런 산골까지 TV가 들어오나 놀라
울 따름이다. 허나 생각해보니 여긴 엄연한 서울 한복판이다. 지리산이나 태백산맥, 개마고원
산골이 아니다.
집 앞에는 안산이 베푼 조그만 개울이 속세를 향해 흘러가는데, 그 개울에는 나무다리가 있으
며, 집 주변에는 장독대와 너와집쉼터가 있어 잠시 쉬어가기에 좋다.


▲  안산 산골에 숨겨진 너와집
이렇게 보면 강원도나 경북의 첩첩한 산골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엄연한
서울 한복판이다. (서울 4대문이 바로 지척임)

▲  너와집 옆에 자리한 너와집쉼터

▲  너와집 샘터

▲  시원스럽게 뻗은 안산자락길
무악재 구간

▲  무악재 서쪽 벼랑에 닦여진
자락길전망대


자락길전망대는 무악재 서쪽 벼랑에 아슬아슬하게 닦여져 있다. 이곳은 자락길을 닦으면서 달
아놓은 공간으로 필체가 돋보이는 '자락길전망대' 현판이 인상적인데, 이 글씨는 2012년 10월
에 작성된 것으로 글씨 좌우에 도장 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곳에는 투구처럼 생긴 바위와 두 다리를 쉴 수 있는 의자가 여럿 설치되어 있고, 바로 밑에
자리한 홍제동을 비롯해 홍은동과 무악재, 인왕산, 북한산(삼각산) 등이 시야에 잡히나 보이
는 범위는 좁다.


▲  자락길전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회색빛으로 물든 홍제동과 홍은동 지역을 비롯해 북한산(삼각산) 서남쪽 자락과
인왕산 일부가 두 망막에 들어온다.

▲  자락길전망대 바위 (투구바위)
바위 이름은 아직 없으나 일부가 투구처럼 생겨서 투구바위라 불러도 손색은
없어 보인다. 자락길전망대 개설로 바위 아랫도리가 가려져서 그렇지
저 바위 자체가 장대한 바위 벼랑이다.

▲  남쪽에서 바라본 자락길전망대

▲  잠깐 포장길로 안면을 바꾼 안산자락길 무악재 구간 (무악재 남쪽)

▲  숲속에 자리한 조그만 야외 독서실, 자락길 북까페(Book cafe)

자락길 전망대에서 무악재 구간을 넘으면 조그만 책장을 지닌 북까페가 마중한다. 이곳은 책
장과 기와 정자, 그리고 동그란 탁자와 의자 세트가 여럿 놓여져 있는데, 책은 대부분 기증받
은 것으로 누구든 기증과 독서가 가능하다. 허나 그렇다고 책을 소장용으로 가져가지는 말자.
이곳이 공용 북까페의 성격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말이다.


▲  북까페에서 바라본 안산 정상 (가운데 보이는 봉우리가 정상)

나는 1시간 전까지만 해도 저 봉우리 정상(무악산 동봉수대)에 서 있었다. 허나 눈을 떠보니
나는 그 한참 밑 북까페에서 서성이고 있는 것이다.
앞서 정상에 있던 것은 혹여 꿈속은 아닐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축지법이나 순간이동을 쓴
것일까? 산과 자락길은 그대로인데 나란 존재는 계속 바뀌니 말이다. 이렇게 보니 정말 안산
을 휘감듯 돌아다녔다.


▲  한성과학고 뒷쪽 안산자락길

▲  한성과학고 뒷쪽 안산자락길에서 바라본 서대문독립공원과 독립문 주변

▲  안산자락길 현저동 구간

무악재를 넘은 안산자락길은 현저동(峴底洞) 구간으로 들어서면서 한성과학고와 독립문파크빌
아파트의 뒤쪽을 지나간다. 이 구간은 벼랑 일색이라 잔도(棧道)처럼 나무데크길을 길게 내었
으며, 벼랑길을 지나면 포장길이 펼쳐진다.


▲  벼랑 밑을 지나는 안산자락길 현저동 구간

안산자락길이 너무 안(安)스럽게 닦여진 탓에 움직이는 길이 정말 순식간이다. 북까페에서 한
성과학고 뒷쪽을 지나 어느덧 독립문파크빌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부터 나무데크길은 끝나고
포장길이 펼쳐져 안산 남부까지 이어지는데, 제아무리 여름이라고 해도 19시가 넘어간 상태라
햇님은 꼴딱꼴딱 지평선 너머로 꽁무니를 뺀다. 그 사이를 비집고 어두운 땅꺼미가 자리를 피
며 천하에 어두운 물감을 물들인다.

독립문파크빌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가 독립문삼호아파트 뒷쪽에서 안산자락길과 인연을 정리
하고 시내로 내려왔다. 이렇게 하여 안산 여름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 안산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천연동, 신촌동, 연희동, 홍제동



* 까페(동호회)에 올린 글은 공개일 기준으로 1주까지만 수정,보완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
  집니다. <단 블로그와 원본은 1달까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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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3년 10월 9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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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아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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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의 조그만 금강산, 기암괴석이 일품인 홍성 용봉산 (용봉산 자연휴양림)

 


' 홍성 용봉산(龍鳳山) 나들이 '

▲  신경리에서 바라본 용봉산의 위엄


♠  용봉산 신경리 마애여래입상(新耕里 磨崖如來立像) - 보물 355호

봄이 천하만물의 폭발적인 성원에 힘입어 반년 가까이 지구 북반구를 지배한 겨울 제국(帝國)을
몰아내고 천하를 진정시키던 4월 첫 무렵 주말에 홍성 용봉산을 찾았다.

용봉산은 충남의 금강산(金剛山)으로 널리 칭송 받는 산으로 주말에는 천하 곳곳에서 달려온 산
꾼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용봉산 등산로의 주요 기점인 구룡대(九龍臺)를 시작으로 나를 이곳으
로 부른 용봉사(龍鳳寺)를 둘러보고 우측으로 난 산길을 10분 정도 오르면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이 모습을 비춘다.

신경리 마애불은 하늘로 솟은 바위 피부에 얕게 감실(龕室)을 파고 4m 높이에 석불을 돋음새김
으로 새긴 것으로 용봉사의 옛 유물이다. 용봉사 법당(法堂)은 원래 이곳에 있었다 하며, 1906
년 평양조씨 집안의 명당을 향한 집착으로 건물은 사라지고 마애불만 외롭게 남게 되었다. 마애
불 앞은 법당을 비롯해 3채 정도는 거뜬히 지을 수 있는 평탄하고 너른 공간으로 현재는 예불을
올리는 네모난 야외 기도처가 닦여져 있으며, 숲과 살을 댄 공간 모서리에는 의자를 여럿 두어
나그네로 하여금 잠시나마 마애불의 외로움을 달래주도록 배려했다.


▲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이 석불은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민머리 위에 육계가 두툼하게 솟아있다. 얼굴은 몸통보다
진하게 새겨져 있는데 살이 많아 보이며, 입술에는 그런데로 미소가 드리워져 중생의 마음을 다
독거린다. 눈썹은 서로 마주보며 45도 각도로 기울어져 있고, 눈은 완전히 감았다. 그리고 코는
무심한 세월과 무지한 이들의 장난으로 흔적만 남았다.
 
몸통에 걸친 법의(法衣)는 목 밑에서 여러 가닥의 선으로 표현되었지만 밑에는 가느다란 선으로
처리되었으며, 석불을 받치는 광배(光背)는 바위 피부를 이용해 희미하게 윤곽선만 나타내어 지
나치기가 쉽다.

용봉사 경내 밑에 자리한 마애불처럼 머리와 상체 부분만 진하게 나와있고, 아래로 내려 갈 수
록 양감(量感)이 정비례로 떨어져 조금은 부족한 인상을 남긴다. 다행히도 용봉사 마애불보다
건강 상태도 좋고 선명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 눈으로 확인하는데 그리 지장은 없다.


▲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앞 너른 공간 (1)
용봉사 법당이 있던 자리로 여겨진다.

▲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앞 너른 공간 (2)
숲 너머로 용봉산의 주요 봉우리인 악귀봉이 보인다.

▲  신경리 마애여래입상에서 바라본 병풍바위의 위엄 (용봉산 동쪽 능선)

신경리 마애불 앞에 뿌리를 내렸을 법당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이곳에 올라서면 동쪽 너머로 병
풍바위가 위엄을 부리고 있고, 악귀봉을 비롯한 용봉산의 주요 봉우리가 가까이에 보인다. 또한
용봉사와 신경리, 상하리 일대가 훤하게 바라보여 조망(眺望)도 그런데로 괜찮다. 그런 조망을
낀 능선 정상부에 있으니 그 위풍과 경관은 자못 대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조의순 무덤에는 요
사와 선방 등 주요 건물을 세워 법당과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실제와 달리 체감 면적도 넓게 보
이도록 했다.

이렇게 마애불을 둘러보고 잠시 두 다리를 쉬었다가 계획에도 없던 용봉산 종주를 단행했다. 어
차피 오르막은 거의 다 오른 상태이고, 여기서 정상도 가까우니 욕심을 조금 더 부려도 그리 문
제될 것은 없다.
마애불에서 3분 정도 가면 용봉산 주능선과 만나는 임간(林間)휴게소에 이른다. 휴게소라고 해서
먹을 것을 파는 매점이나 편의시설이 있는 것이 아닌 그냥 의자와 밥을 먹을 수 있는 탁자가 고
작인 그냥 친환경적인 쉼터이다.


▲  임간휴게소 부근에서 바라본 천하 - 예산군 덕산면 지역

▲  전망대(왼쪽)가 있는 봉우리와 병풍바위


♠  용봉산 악귀봉, 노적봉

▲  악귀봉 부근에서 바라본 내포(內浦)신도시 건설현장 (2012년 사진)

홍성 지역의 명산(名山)으로 명성이 자자한 용봉산은 예당평야(禮唐平野) 서쪽 끝에 자리해 있
다. 해발 381m의 작은 산이지만 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많아 예로부터 충남의 금강산, 제
2의 금강산 등으로 일컬어졌고, 산의 모습이 운무(雲霧) 사이를 휘도는 용의 형상과 달빛을 감
아 올리는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용봉산이란 아주 비싼 이름을 얻게 되었다.
산 전체가 바위산이라 대자연이 빚어놓은 가지각색의 멋드러진 바위들이 그럴싸한 전설을 품으
며 산을 수식하고 있는데, 산에서 보는 해돋이 광경 또한 천하 일품이다. 그러다보니 국립공원
이나 도립공원, 대도시나 인구 밀집 지역을 낀 산이 아님에도 인기가 나날이 높아져 휴일만 되
면 산꾼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이 산이 속세에 이름을 드러낸지는 그리 오래되진 않았으나 이제는 홍성과 충남의 대표적인 뫼
로 계룡산과 칠갑산, 대둔산(大芚山)을 긴장 타게 만든다.

용봉산에는 백제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여겨지는 용봉사를 비롯해 앞에서 언급한 신경리 마애여
래입상 등의 불교문화유산이 있으며, 산 동쪽 자락에는 자연휴양림과 청소년수련원이 있어 자연
과 함께 호젓한 하룻밤을 지낼 수 있다. 또한 산세가 작다보니 30~40분 정도면 주능선에 이르며,
주능선과 정상을 거쳐 빠르면 2시간 정도면 거뜬히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다만 산이 급하게 솟
아있다 보니 경사가 각박하고 위험지대가 많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산을 구성하는 주요 봉우리로는 북쪽의 수암산을 비롯하여 악귀봉과 노적봉, 최고봉(용봉산 정
상), 투석봉 등이 있으며, 산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자 한다면 장항선 열차를 타고 삽교에서 홍
성으로 이동할 때(또는 그 반대로) 보기 바란다. 정말 찬사가 나올 것이다.


▲  악귀봉 구름다리

임간휴게소에서 용봉산의 주요 봉우리인 악귀봉까지는 주능선을 따라 10분 정도 걸린다. 구름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보이고, 하늘과도 무척이나 가까워 마치 학의 등에 올라탄 기분이다. 또
한 천하가 발 밑으로 보이니 천하를 손에 넣은 듯 즐거운 기분마저 넝실거린다.

악귀봉은 해발 369m로 용봉산에서 2번 째로 높다. 왜 악귀봉이란 기분 나쁜 이름을 지니게 되었
는지는 모르겠으나 멀리서 보면 악귀처럼 보이거나 그만큼 험준한 봉우리라서 사람들이 그런 이
름을 강제로 씌운 모양이다. 굳이 다른 이름도 많은데 왜 신(神)과 동물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자리만 축내는 인간이란 것들이 좋지도 않은 이미지의 이름을 붙였는지 악귀봉도 무척 서운해
할 것이다.


▲  삽살개바위
삽살개보다는 엄지손을 치켜든 모습처럼 보인다. 엄지손바위란 이름도 좋지 않을까?
참고로 용봉산에 있는 바위 이름은 거진 홍성군청에서 보이는 모습에 따라 멋대로
지어 붙인 것이다.

▲  악귀봉에서 바라본 용봉산 줄기 ~ 노적봉과 용봉산 정상(최고봉)

용봉산이 좀 작다보니 각 봉우리와 바위 간의 거리도 짧다. 허나 짧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된다.
산에서의 거리는 평지의 최대 2배 정도 되기 때문이다. 임간휴게소에서 악귀봉까지 0.38km라 쓰
여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0.7km에 가깝다. 그런 숫자의 농간에 괜히 마음을 놓지 말고 서두르지
말 것이며, 자존심을 곱게 접어 산행에 임해야 뒷탈이 없을 것이다. 산은 자신을 만만히 보거나
무시하는 이를 가만 두지 않는다.


▲  악귀봉에서 본 내포신도시 현장 (2012년 사진)
충남도청 이전과 충남 서부지역 발전을 위해 예당평야 서쪽에 내포신도시를 닦았다.
내포 조성으로 용봉산 접근성은 예전보다 좋아졌고, 내포의 후광으로
용봉산의 존재감도 그만큼 두터워졌다.

▲  사람들로 가득한 악귀봉 주변

▲  물개바위에서 전망대로 내려가는 길

▲  두꺼비바위 - 바위 봉우리가 병풍을 이루며 절경을 자아낸다.

▲  확대해서 본 두꺼비바위
내 눈이 이상한 건지 두꺼비로 보이지는 않고 고개를 들고 있는 멍멍이로 보인다.

        ◀  하늘로 곧게 솟은 행운바위
서울 관상감(觀象監)의 관천대(觀天臺)처럼 생
긴 바위가 엉뚱하게 행운바위란 이름으로 등산
객들의 심심풀이 표적이 되고 있다. 아마도 바
위 꼭대기에 움푹 들어간 공간 때문에 돌을 던
져 행운을 비는 기복(祈福) 형태의 바위가 된
듯 싶은데, 등산객들이 무심히 던진 돌이 탑 정
상에 수북히 쌓여 조그만 돌탑을 이룬다.


▲  행운바위 꼭대기 너머로 본 용봉산 북쪽 줄기

▲  행운바위 주변에서 본 악귀봉

▲  노적봉에서 본 내포신도시 남쪽

▲  아직도 갈 길이 먼 용봉산 정상 (노적봉에서 바라본 모습)

악귀봉에서 노적봉까지는 0.23km로 10분 정도 걸린다. 가는 길은 그런데로 양호한 수준, 노적봉
은 악귀봉과 용봉산 정상(최고봉) 사이의 봉우리로 해발 350m이다. 이곳에는 시원한 아이스크림
과 음료수를 파는 행상이 있는데, 속세(俗世)보다 2배를 더 얹혀 팔고 있었다. 하긴 여기까지
들고 온 수고가 있으니 산에서 그 정도면 그러려니 봐줄 만은 하겠다.
행상은 '아이스케키 사세요~~!' 소리를 치는데, 땀도 흘리고 목도 마른 등산객들의 심리를 제대
로 들쑤셔 금세 1통을 비웠다. 나도 목이 말라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었는데, 정말 꿀맛이 따
로 없다.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먹어서 그런 것일까?


▲  노적봉에서 본 홍성 지역 (홍북면과 홍성읍)


♠  용봉산 정상과 최영장군 활터

▲  용봉산 정상을 이루고 있는 최고봉(最高峯, 381m)

노적봉에서 최고봉까지는 0.36km로 8분 정도 걸린다. 최고봉은 용봉산의 꼭대기로 삼각(三角)처
럼 솟은 바위가 아담하게 정상을 이루고 있는데, 최고봉이란 가장 높은 봉우리란 뜻으로 근래에
지어진 이름이다.
바위 정상에는 용봉산 정상을 알리는 표석이 있는데, 산꾼들이 정상에 왔음을 알리는 인증 사진
을 찍느라 표석 주변은 늘 부산하다. 한 사람이나 한 단체가 사진을 찍기가 무섭게 바로 다른
이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으니 말이다. 그래서 잠깐 비어있는 틈을 이용해 정상 표석을 사진에
담았다.


▲  용봉산 정상 표석의 위엄

▲  용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홍성 홍북면과 예당평야
용봉산에서 저 멀리 보이는 산까지 펼쳐진 드넓은 대지가 예당평야이다.
이렇게 보니 이 땅도 결코 좁지는 않은 모양이다.

▲  용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내포신도시 건설 현장 (2012년 사진)

마치 불모의 사막에 한줄기 도시를 짓는 듯, 드넓은 예당평야 서쪽에 자리를 닦아 충남의 야심
작 내포신도시를 조성했다. 홍성군과 예산군의 경계 지점으로 2013년에 대전(大田)에 있던 충남
도청을 비롯해 충남교육청, 충남지방경찰청이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고, 계속해서 주거지를 조성
하고 있어 2016년에 대략 공사가 끝날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과 각종 회사의 이전으로 홍성과 예산에 적지 않은 인구와 기대감을 더해줄 것이며, 그
리되면 용봉산은 내포의 듬직한 뒷동산이 되어 안그래도 많은 산꾼이 더 늘어나 이름 석자도 더
욱 견고해질 것이다. 다만 개발의 칼질은 저 정도에서 멈춰야 될 것이며, 신도시와 용봉산의 영
역을 엄격히 구분 지어 용봉산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는 일이 없어야 될 것이다.


▲  최영 장군 활터에 자리한 정자

최고봉에서 용봉산 자연휴양림으로 10분 정도 내려가면 정자가 있는 봉우리(339m)가 나온다. 이
곳은 '~~봉' 대신 '최영장군활터'라 불리는데, 정자에 올라서면 내포신도시를 비롯해 예당평야
와 홍성 서북부 지역, 예산 서부 지역이 훤히 바라보여 조망이 꽤 일품이다.

봉우리 이름에 등장하는 최영(崔瑩)은 고려의 마지막 보루(堡壘)로 동아시아를 누비며 80회 가
까운 전투를 승리로 이끈 명장이며, 금을 돌처럼 여겨 검소하게 살았고, 백성을 살피고 나라를
지켰던 명장이다. 바로 그가 태어난 곳이 홍성이다.
그는 어린 시절 용봉산에서 무예를 닦았다고 하는데 바로 이곳에서 활쏘기 연습을 했다고 하며,
그 연유로 최영장군활터가 되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로 그를 흠모하는 지역 사람들이
용봉산에서 조망이 제일 좋은 이곳을 그가 활을 쏘며 무예를 익힌 곳으로 삼고 그럴싸한 전설을
덧붙였는데, 그 전설은 다음과 같다.

최영은 어린 시절 말을 타고 무예를 연마하다가 문득 말의 능력을 시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말
에게 '내가 여기서 화살을 쏘겠다. 만약 너가 화살보다 먼저 도착하면 맛있는 상을 줄 것이고,
화살이 먼저 도착하면 너의 목을 베겠다. 어떠냐?'

그러자 말이 '좋다. 흔쾌히 해보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에 찬 모습을 드러냈다.

최영은 말을 타고 지금의 최영장군활터에서 동남쪽으로 5km 떨어진 홍성읍 은행정 방향으로 화
살을 날렸다. 그러자 말은 목이 걸린 일이라 화살이 날라가기 무섭게 그곳으로 번개처럼 달려갔
다. 허나 목적지에 이르니 화살은 보이지가 않았다. (말의 품종이 무엇이길래..? 5km를 단숨에
갔단 말인가?) 발끈한 최영은 화살이 먼저 도착한 것이라 여기고 말의 변명도 듣지 않은 채, 단
칼에 죽이고 말았다. 바로 그때 산에서 쐈던 화살이 무심히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최영은 자신의 경솔함에 크게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자고 약
속했던 자신의 말을 그 자리에 묻어주었는데, 홍성읍 은행정 옆에 금마총이라 불리는 말무덤이
바로 최영의 말 무덤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전설은 이곳 뿐만 아니라 광주 무등산(無等山)에도 전해온다. 그곳에는 김덕령(金
德齡)이 최영과 같은 테스트를 했는데,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다만 말을 죽이기 직전에 화살이
지나가 김덕령의 말은 목숨을 건진다. 이들 전설은 그들을 흠모하는 지역 사람들이 지어낸 것이
나 아무리 우수한 말이라고 해도 5km를 단숨에 가는 것은 불가능하며, 아무리 높은 곳에서 활을
쏴도 그 사정거리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그런 말도 안되는 테스트로 자신의 말을 죽이려고 했던 속 좁은 위인으로까지 비쳐질 수
도 있으니 그리 썩 바람직한 전설은 아닌 것 같다.


▲  최영장군 활터 정자 옆에 뿌리를 내린 돌탑 -
중생들의 소망을 먹고 자란 산악신앙(山岳信仰)의 현장이다.

▲  최영장군 활터에서 바라본 홍성 지역과 예당평야

▲  기묘하게 자리한 흔들바위

최영장군활터를 지나면 길이 다소 아찔해 질 것이다. 마치 천길 낭떠러지 같은 절벽을 내려오는
듯한 기분이 진하게 들면서 긴장감의 끈을 더욱 조여야 된다. 여기서 자연휴양림까지는 손에 잡
힐 듯 바라보이는데, 내포신도시와 홍성, 예산 지역이 파노라마처럼 숨가쁘게 펼쳐진다.

활터에서 조금 내려가면 암석 위에 기묘하게 목을 붙잡고 있는 흔들바위를 만나게 된다. 흔들바
위는 손이나 몸으로 밀면 조금 흔들리다 마는 바위로 설악산(雪嶽山) 흔들바위가 그 갑(甲)이다.
있는 힘을 힘껏 가하면 바위를 저 아래로 떠밀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좀처럼 밀리지 않는다. 어
찌 저렇게 자리를 잡았는지, 장대한 세월의 태클이 적지 않았음에도 제자리를 끝까지 고집한 흔
들바위의 집념과 절개가 참으로 대단하다.


▲  온갖 기암으로 치장된 용봉산 사자바위 능선


♠  용봉산 마무리

▲  용봉산 자연휴양림 표석

용봉산 최고봉에서 최영장군활터와 흔들바위를 지나 25분 정도 정신 없이 내려가면 용봉산자연
휴양림 내부에 이른다. 이곳은 야외취사장을 비롯하여 산림휴양관과 숲속의 집, 청소년수련원,
체육시설 등의 숙박 시설을 갖추고 있다.


▲  산림체험전시관

숲속의 집과 청소년수련원 사이에 자리한 산림체험전시관은 2층 규모로 홍성(洪城)의 역사와 문
화, 자연을 다루고 있는데, 1층은 전시관과 휴식공간으로 쓰이며, 2층은 휴양림관리사무소로 쓰
인다.
용봉산을 찾는 사람은 허벌나게 많지만 정작 산림체험전시관에 발을 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그곳에 대한 관심이 없다. 다들 용봉산에 눈이 멀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냥 지나칠까 했으나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지나간다고 잠시 둘러보고 나왔다.

* 산림체험전시관 관람시간 : 10시부터 16시 30분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산림체험전시장을 지나면 청소년들의 심신수련 및 단체 숙박을 위한 청소년수련원이 있다. 수영
장과 교육관까지 갖춘 우람한 규모로 그곳을 지나면 용봉산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을 통해 주차장에 이르니 시간은 13시가 넘었다. 내가 10시에 용봉산의 품에 들어섰으니
3시간 이상을 산속에 묻혀있던 것이다.

이렇게 용봉산과의 짧은 인연을 정리하고 덕산(德山)으로 가는 홍성군내버스를 타고 10여 분을
달려 예산군 덕산으로 넘어갔다. 덕산은 예산군 서부에 자리한 고장으로 그 유명한 덕산온천과
윤봉길(尹奉吉)의사 유적지, 수덕사(修德寺), 남연군(南延君)묘 등의 굵직한 명소를 간직하고
있어 관광 수요가 대단하다.

아직 점심 끼니를 때우지 못해 예전 남연군묘에 갔을 때 갈비탕을 먹었던 식당을 찾아보았으나
그새 망했는지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적당한 식당을 물색하다가 '불고기나라'란 이름의 큰 식
당이 눈에 들어와 그곳에 들어갔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내부가 썰렁해 식사가 되는지 문의하니 된다고 해서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
를 잡고 하루 종일 고생한 두 다리를 쉬게 했다. 그리고 무엇을 먹을까 궁리하다가 육개장이 땡
겨서 그것을 시켰는데, 처음에는 그리 기대는 하지 않았다.


▲  덕산 불고기나라에서 먹은 육개장의 위엄

기다리는 시간만큼 지루하고 긴 것은 없다. 고속으로 흘러가는 세월을 저속으로 흘러가게 하려
면 기다리는 것을 많게 하면 된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는데, 15분 정도를 간신히 기다리니 나의
허기진 배를 채워줄 육개장과 밑반찬이 내 앞에 차려진다. 정갈하게 차려진 밑반찬은 배추김치
와 파김치, 콩나물과 메추리알로 수저를 들어 육개장을 들어보니 생각 외로 맛이 괜찮다. 소고
기도 제법 들어가 있고, 고기와 계란, 파, 고사리 등이 버무러진 육개장 국물은 얼큰하고 맛깔
스러웠다.

그렇게 배고픈 배의 불만을 잠재우며, 열심히 숫가락을 움직여 밥과 육개장, 밑반찬까지 싹 먹
어치웠다. 육개장은 국물까지 죄다 섭취하고, 밥은 밥알 하나도 허용치 않았으니 무척 배가 고
프긴 했나보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나니 졸음이 슬쩍 찾아와 배 깔고 한숨 자라며 나를 희롱하
려든다. 그 희롱에 떨어지면 몸에도 좋지 않고, 나는 아직 가야 할 길이 있길래 커피로 졸음에
대항하며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다.

아쉽지만 본글은 여기서 끝~~ 이후 내용은 추후 별도의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


※ 용봉산 찾아가기 (2014년 6월 기준)
① 홍성 경유
* 용산역과 영등포역, 수원역, 천안역, 군산역, 익산역에서 장항선 열차를 타고 홍성역 하차
*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센트럴시티에서 홍성행 고속버스가 1일 8회 떠나며, 동서울터미널에서
  1일 5회, 남부터미널에서 1일 2회 떠난다.
* 인천, 성남, 안산, 대전(서부/동부/유성), 천안, 서산, 보령에서 홍성행 직행버스 이용
② 내포신도시 경유
*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센트럴시티에서 내포행 고속버스가 1일 8회, 동서울터미널에서 1일 5회,
  남부터미널에서 1일 2회 떠난다. (모두 홍성까지 운행함)
* 인천, 성남, 대전(서부/동부/유성), 천안, 청주, 보령, 서산에서 내포시행 직행버스 이용.
③ 예산 경유
* 용산역과 영등포역, 수원역, 천안역, 군산역, 익산역에서 장항선 열차를 타고 예산역 하차
*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센트럴시티에서 예산행 고속버스가 1일 5회, 동서울터미널에서 1일 3회,
  남부터미널에서 1일 4회 떠난다.
* 인천, 천안, 대전(서부/동부), 서산에서 예산행 직행버스 이용
④ 현지교통
* 홍성터미널(홍성역을 나와서 도보 5분 거리)에서 용봉산 경유 내포(도청)/덕산/수덕사행 900
  번대 군내버스를 타고 용봉산 하차 (1일 20여 회 운행)
* 내포신도시 도청대로 환승센터(고속/직행버스 정류장)에서 용봉산까지 군내버스(1일 30여 회
  운행) 또는 택시 이용 (도청대로 환승센터 ☎ 041-333-2914)
* 예산터미널과 예산역에서 덕산, 도청 경유 용봉산행 군내버스 1일 14회 운행

⑤ 승용차 (용봉산 자연휴양림 주차장은 휴양림 숙박객만 사용 가능)
* 서해안고속도로 → 홍성나들목을 나와서 홍성 방면 29번 국도 → 옥암2교차로에서 좌회전 →
  소향3거리 우회전 → 덕산통4거리 좌회전 → 용봉산입구 → 용봉산주차장 (용봉사까지 접근
  가능)
* 당진대전고속도로 → 고덕나들목을 나와서 덕산 방면 40번 국도 → 덕산119안전센터 직진 →
  내포신도시 도청대로 → 용봉산입구 → 용봉산주차장

★ 용봉산/용봉산자연휴양림 관람정보
* 입장료(단체는 30인 이상) - 어른 1,000원(단체 800원) / 청소년과 군인 800원(단체 600원) /
  어린이 400원(단체 200원) / 자연휴양림 숙박시설 사용자는 입장료 면제
* 주차료 - 소형 3,000원 / 대형 5,000원
* 용봉산 자연휴양림 숲속의 집은 10인용 5동으로 성수기 1박은 15만원, 비수기 1박은 10.5만원
  이다.
* 자연휴양림 산림휴양관에는 4인실과 6인실이 있다. 4인실은 성수기 1박은 5만원, 비수기 1박
  은 3만 5천원이며, 6인실은 성수기 1박 7만원, 비수기 1박 4만 9천원이다.
* 자연휴양림 숙박시 개인세면도구는 지참해야 되며, 예약과 문의는 용봉산자연휴양림 홈페이지
  를 참조한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해당 홈페이지로 이동됨)
* 용봉산자연휴양림 -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 상하리 104-57 (용봉산2길 87, ☎ 041-630-1785)


▲  용봉산 등산로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용봉산자연휴양림 홈페이지가 번쩍 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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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개일 - 2014년 6월 24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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