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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4.30 서울 서남쪽 끝자락에 깃든 상큼한 명소들, 푸른수목원~항동저수지~항동철길 1바퀴
  2. 2023.04.27 서울의 서남쪽 끝으머리, 오류동 류순정 류홍부자묘역~항동철길~푸른수목원 봄나들이

서울 서남쪽 끝자락에 깃든 상큼한 명소들, 푸른수목원~항동저수지~항동철길 1바퀴

구로구 푸른수목원, 항동철길 가을 나들이



' 구로구 푸른수목원, 항동철길 가을 나들이 '

푸른수목원 항동저수지

▲  푸른수목원 항동저수지

항동철길(오류선) 푸른수목원 장미원 분수대

▲  항동철길(오류선)

▲  장미원 분수대

 



 

천하 제일의 대도시로 콧대가 높은 서울에도 수목원이 있다. 바로 홍릉수목원과 서울 서
남쪽 변두리에 있는 푸른수목원이 그것이다.
구로구의 일원으로 서울의 서남쪽 끝을 잡고 있는 항동(航洞)에 자리한 푸른수목원은 이
미 2~3번 인연이 있으나 주마등(走馬燈)으로 둘러본 것이 전부이다. 그래서 가을이 늦가
을로 숙성되어 가던 10월의 한복판에 겸사겸사 그곳을 찾았다.

비록 나와 같은 서울 하늘 밑에 있으나 나는 서울의 동북쪽 끝, 푸른수목원은 서남쪽 끝
으로 완전 끝에서 끝이다. 거리만 해도 최소 34km가 넘는다. 우리 동네 전철역인 방학역
에서 1호선을 타고 70분을 달려 오류동역에서 하차, 여기서 서울시내버스 6614번(양천차
고지↔옥길지구)으로 환승하여 푸른수목원 후문에서 두 발을 내렸다.



 

♠  푸른수목원 입문 (항동저수지)

▲  활짝 열린 푸른수목원 후문

서울의 서남쪽 변두리인 항동 한복판에 서울 최초의 시립 수목원(樹木園)인 푸른수목원이 상
큼하게 누워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수많은 사람과 차량, 그리고 번잡한 시가지가 크게 연상
되는 서울에도 수목원이 있었나?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짙은 숲으로 이루어진 국립산림과학
원 소속의 홍릉수목원과 오산(烏山)의 물향기수목원과 비슷한 푸른수목원을 가지고 있다.

푸른수목원 자리에는 지금도 건재한 항동저수지와 경작지가 펼쳐져 있었다. 저수지 동쪽에는
구로구(九老區)의 지붕인 천왕산(天王山, 144m)이 자리해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형태도 그런
데로 띄고 있었다.
시골 향기 그윽했던 변두리로 조용히 묻혀있던 항동, 바로 그곳에 서울시는 수목원을 닦기로
하고 2004년 6월 30일에 수목원 기본계획용역을 실시해 같은 해 12월 30일, 수목원 실시설계
용역을 시행했다. 2005년 12월 15일 수목원 조성사업 실시계획 인가를 얻어 2006년 3월 8일까
지 토지 측량, 경계 측량, 분할 측량을 완료했으며, 4월 15일 실시계획 변경 인가를 받아 6월
16일 보상계획 공고를 하여 12월까지 수목원 토지 보상과 공사 시행을 완료했다.

2009년 10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1단계 조성 공사로 저수지 생태탐방로, 목재방틀을 설치했
으며, 2010년 9월 2단계 조성 공사에 들어갔으나 2011년 6월, 캠핑장 반영 변경 계획에 따른
시민들의 반대로 공사가 잠시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2012년 7월 17일 시민들의 제안을 받아들
여 정원 개념을 도입한 수목원으로 공원조성계획이 통과되어 2013년 3월, 3단계 조성 공사에
들어가 그해 6월 5일, 상큼한 모습으로 속세에 문을 열었다. 그리고 2018년 서울시 1호 공립
수목원으로 지정되었다.

수목원 면적은 103,354㎡로 2,400여 종 52만 주의 다양한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잔디마
당과 향기원, 초화원, 장미원, 암석원 등 20개의 테마공간과 북까페 등의 편의시설이 닦여져
있으며, 숲해설 등의 자연 교육 프로그램과 친환경관리의 중심인 '생태의 섬(Eco-island)'을
내세우고 있다. 또한 도심 속에서 식물과 인간, 환경이 공존하고 3무(無, 농약과 무화학비료,
쓰레기 배출을 하지 않음) 운동을 실천하는 생태공간임을 내세우며 실천하고 있다.
수목원 동쪽에는 천왕산이 포근히 감싸고 있고, 북쪽은 주거지와 성공회대학교, 서쪽과 동쪽
은 들녘과 항동지구가 공존하고 있다. 수목원 남쪽에는 철길 관광지로 크게 인기를 누리고 있
는 항동철길(오류선)이 지나가며, 천왕산과 구로올레길 산림형3코스가 동쪽에 있어 볼거리도
넉넉하고 거닐 곳도 정말 많다. 하여 푸른수목원과 항동철길을 한 덩어리로 둘러보거나 천왕
산과 구로올레길 산림형3코스까지 보태면 정말 알차고 배부른 나들이가 될 것이다.

수목원이긴 하지만 나무가 빽빽한 그런 수목원이 아니라 정원 및 공원 같은 분위기로 정문과
후문, 2개의 쪽문(항동철길, 더불어숲길)을 통해 들어설 수 있으며, 나는 후문으로 들어가서
항동철길 쪽문으로 나왔다. 쉬는 날과 입장료는 없으며, 관람시간은 5시부터 22시까지로 이
땅의 수목원 중 이렇게 관람시간이 긴 곳은 여기 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도시와 도시 사람
들에게 최적화된 수목원이다.

* 푸른수목원 소재지 : 서울특별시 구로구 항동 81-1(연동로 240 ☎ 02-2686-3200)
* 푸른수목원 홈페이지는 ☞ 이곳을 흔쾌히 클릭한다.


▲  장미원 ①

후문을 들어서면 바로 장미원(장미정원)이 마중을 한다. 수목원을 대표하는 정원으로 붉은 장
미와 분홍 장미 등 천하의 온갖 장미 69종이 모여 아름다움을 견주고 있는데, 그들이 심어진
부지는 장미의 꽃잎과 푸른 잎의 모양을 따서 만들었으며, 분수대가 정원 한복판에 자리하여
경관을 크게 돕는다.


▲  장미원 ②
늦가을 장미의 향연이 한참 펼쳐져 나그네의 정처 없는 마음에
마구 돌을 던진다.

▲  장미원 ③
수목원 너머로 항동지구 아파트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어 도시 속의
장미공원을 보는 듯 하다.

▲  꾸벅꾸벅 졸고 있는 장미원 분수대

▲  더불어숲길 안내도

장미원 동쪽에는 천왕산으로 인도하는 더불어숲길 쪽문이 있다. 더불어숲길은 서울시와 구로
구청, 성공회대, 사단법인 더불어숲이 함께 조성한 짧은 숲길로 더불어숲길 쪽문에서 성공회
대 뒷쪽(천왕산 북쪽 자락) 언덕까지 이어지며 거기서 구로올레길 산림형3코스와 만난다.


▲  장미원 남쪽이자 조망원 주변 산책로

▲  항동저수지 수생식물원

항동저수지는 푸른수목원의 상큼한 거울이자 터줏대감이다. 근처의 궁동저수지(궁동저수지생
태공원)와 더불어 서울에 몇 없는 저수지로 경기도 농산물원종장의 농업용수를 위해 왜정(倭
政) 때 닦여졌다.
경기도 농산물원종장은 1917년 5월에 여기서 가까운 부천 역곡(벌응절리)에 세워진 경기도종
묘장에서 시작되었는데, 1932년 경기도 농사시험장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949년에 경기도
농사기술원으로, 1957년에는 경기도농사원으로 이름이 갈렸다.
196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항동은 경기도 부천군(富川郡)에서 서울로 바뀌었으며, 서울의 지
나친 도시화로 1998년 폐지되면서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경기도 농업기술원에서 그 기능을 담
당하고 있다.

이 저수지는 농업용수 외에도 낚시터와 물놀이 장소로 바쁘게 살았는데, 겨울에는 썰매와 얼
음 낚시 명소로도 유명했다. 주변이 온통 경작지와 산이라 한때 존폐 위기까지 갔던 궁동저수
지와 달리 좋은 수질을 유지했으나 푸른수목원이 닦이면서 농업용수 제공은 중단되고 낚시와
썰매도 모두 금지되는 등, 그동안의 존재의 이유를 모두 빼앗기긴 했으나 대신 궁동저수지와
비슷한 수생식물원 및 생태저수지로 새롭게 살아가고 있다.
저수지 동부에는 나무로 다진 생태탐방로를 닦았고 연꽃 등 수초(水草)들이 무성해 저수지의
왕성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저수지 주위로 산책로가 닦여져 있으며, 물가는 접근이 통제되어
있으니 저수지 수중 식구들을 위해 접근을 삼가하기 바란다. 푸른수목원의 절반은 항동저수지
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곳에서 매우 비중이 크며, 그가 없는 푸른수목원은 정말 상상
할 수가 없다.


▲  저수지 위에 그물처럼 닦여진 수생식물원 생태탐방로

▲  푸르기 그지 없는 항동저수지
농업용수 제공과 낚시터, 피서지 바쁘게 살았던 그는 이제 인간의 손을
덜 받는 생태저수지로 새 삶을 누리고 있다.

▲  저수지 외곽에 삼삼하게 자라난 수초들
온갖 수초들이 저수지와 속세의 경계를 팽팽히 그으며 저수지 식구들을
지킨다.

▲  항동저수지 서쪽 산책로

▲  평화로운 모습의 항동저수지와 천왕산
천왕산은 물론 주변 나무와 하늘, 구름, 햇님, 달님까지 저수지를
거울로 삼으며 매뭇새를 다듬는다.

▲  항동저수지와 가까이에 보이는 옥의 티들(항동지구)

푸른수목원이 닦여졌을 때는 주변은 산과 들판이 전부인 자연의 공간이었다. (집들이 여럿 있
었음)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농촌이었으나 이곳까지 개발의 칼질이 들어와 춤을 추면서 수목원
주변으로 회색빛 아파트들이 마구 들어서 일명 항동지구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곳은 서울의 영원한 시골로 남았으면 했는데, 이 변두리까지 가만두지를 않고 자꾸 성냥갑
아파트를 올려 난개발을 일삼은 것이다. 아직 시골 들판이 좀 남아있긴 하나 그마저도 안전을
장담하지 못한다. 서울의 인구는 미세하게나마 줄고 있고, 전국적으로 비어있는 아파트가 즐
비하다고 하는데, 자연이 잘 남아있는 이곳까지 공간을 낭비해야 했을까? 아파트보다는 자연
공간을 크게 조성하여 푸른수목원의 확장판으로 삼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수목원과 천왕
산 일대는 숲을 중심으로 한 자연공간으로, 수목원 서쪽과 남쪽은 수목원 수식용 자연 공간과
주말농장 등의 경작지로 손질해야 했음)

▲  북쪽에서 바라본 항동저수지

▲  저수지와 습지식물원 사이 산책로



 

♠  푸른수목원 둘러보기

▲  참여정원의 평화로운 풍경
속세에서 오염되고 상처받은 안구가 싹 정화되는 기분이다.

▲  가을에 푹 잠긴 붉은 단풍나무
올해의 마지막 앞에서 처절한 아름다움을 선보이며 늦가을 향연을
준비하고 있다.

▲  습지식물들의 조그만 낙원, 습지식물원

이곳은 동그란 작은 웅덩이가 여러 개 모여 이루어진 습지대(濕地帶)로 다양한 수생식물과 수
서곤충(水棲昆蟲)이 살아가고 있다. 습지대는 생태공원의 필수 요소로 오염된 물을 정화시켜
주며, 조그만 생물들의 삶터와 먹거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습지를 이룬 물은 항동저수지로 흘
러가 저수지를 살찌워준다.


▲  야생화원과 계류원 주변 산책로

▲  계류원에 차려진 하얀 천막(국화정원)

계류원은 수목원 이전부터 있던 물길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다양한 수생식물이 살아가고 있
다. 그 위에는 나무다리를 닦고 천막을 씌워 국화정원으로 삼아 아름답게 꾸며진 국화와 분재
를 전시하고 있다. (전시 내용은 매달 다를 수 있음)


▲  계류원 국화정원의 학 모양 분재
학 분재 1쌍이 서로를 각별히 바라보며 정을 속삭인다. 그 앞에는 다양한
피부색의 국화들이 서로 아름다움을 견준다.

▲  불꽃처럼 화사하게 돋은 노란
국화의 위엄 (국화정원)

▲  늦가을에 점차 물들어가는 활엽수원
(闊葉樹園)


▲  활엽수원 산책로
단풍나무와 참나무, 벚나무 등의 활엽수가 중심을 이루고 있어
늦가을에는 단풍의 고운 향연을 구경할 수 있다.

▲  KB숲교육센터 유리온실

수목원 동쪽 끝자락에는 KB숲교육센터라 불리는 유리온실이 있다. 하얀 피부를 지닌 이 온실
은 국민은행(KB)의 후원(기부채납)으로 2015년에 지어진 것으로 시민을 위한 친환경 휴식 공
간과 체험형 생태교육공간으로 조성되었으며, 초승달 모양을 지닌 정남향 온실(溫室)로 다른
나라에서 가져온 열대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조촐하게 실내 식물원 역할을 한다.
수목원 구성원 중 유일한 실내 공간(관리사무소와 까페는 제외)으로 안으로 들어가면 조금은
더울 수 있다. (겨울에는 따스해서 좋으나 여름에는 다소 더울 수 있음)

▲  2015년 KB숲교육센터 조성 기념으로
전 서울시장 박원순이 심은 소나무

▲  열대 밀림 같은 KB숲교육센터
유리온실 내부 ①


▲  열대 밀림 같은 KB숲교육센터 유리온실 내부 ①

▲  KB숲교육센터 유리온실 내부의 조그만 문

▲  '아라우카리아'라 불리는 열대식물

▲  스코파리움호주매화(마누카)
이름도 무지하게 어렵고 생김새도 요상한 나무로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가
고향이다. 최대 3m까지 자란다고 하며, 잎과 가지에서 오일을 추출한다.

▲  만지면 꽤 아플 것 같은 선인장 무리들
저들은 생긴 것 자체가 단단한 무기이다.

▲  벌써 휴식기에 잠긴 무궁화원
130여 종의 무궁화가 향연을 펼치는 곳이나 계절 관계로 벌써부터
휴식에 들어가 잠잠한 모습이다.

▲  무궁화원 부근에 닦여진 돌탑

▲  영국정원과 가로수


▲  영국정원과 늘씬하게 솟은 가로수들
영국(잉글랜드) 양이(洋夷) 스타일의 자연풍경식 정원의 소박함과 아름다움을
수목원 구석에 구겨 넣었다. (바로 옆에 억새원이 있음)

▲  야생화원
이 땅에 자생하는 야생화를 잔뜩 머금은 공간으로 그중에서
구절초(九節草)가 제일 많이 아른거린다.

▲  구절초의 앳되고 청초한 미소가 깃든 야생화원

▲  야생화원의 풍경 하나 (커다란 돌과 식물, 꽃들)

▲  프랑스정원(오른쪽)과 억새원(왼쪽)
영국정원이 있으니 그에 대비되는 프랑스정원도 그 옆에 구겨 넣었다.

▲  향기원
이곳에는 오감을 흥분시키는 다양한 허브식물과 약용식물, 식용식물 등이
닦여져 있다. 이들은 자원봉사자들이 정성을 들여 조성했다.

▲  항동철길 쪽문 방향

후문을 통해 푸른수목원으로 들어와 수목원 내부를 고루고루 둘러보고 항동철길 쪽문으로 나
갔다. 일몰이 턱 밑이라 흐리게 나오거나 별로인 사진이 적지 않아 수목원의 ¼> 정도의 분량
은 본글에서 쿨하게 뺐다. 나머지는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에 다시 인연을 지어 별도의 글에
서 채울 생각이다. (생각에서만 멈출 수도 있음)



 

♠  서울에서 유일한 철길 명소, 항동철길(오류선)

▲  푸른수목원 남쪽을 지나는 항동철길 (수목원 정문 방향)

푸른수목원 바로 남쪽에는 철길이 지나고 있다. 속세에서는 그 철길을 항동철길이라 부르는데
, 정식 명칭은 오류선(梧柳線)으로 오류동역(1호선)에서 광명시 옥길동에 있던 경기화학을 이
어주던 4.5km의 화물열차 전용 단선 철로이다. ('경기화학선'이란 별칭도 지니고 있음)

경기화학주식회사는 이 땅 최초의 비료 공장으로 1954년 옥길동에 설립되었다. (그 시절 지명
은 '부천군 소래면 옥길리') 원료와 비료 운송을 위해 1957년 9월 26일 철길을 닦기 시작해
1959년 5월 30일에 완성을 보았는데, 경기화학 외에도 한때 오류동에 있던 삼천리연탄공장과
동부제강도 이 철로의 신세를 졌다.
경기화학은 울주 온산공장으로 통합, 이전되면서 광명 공장은 문을 닫았으며, 그로 인해 열차
가 다닐 일이 거의 없어지면서 완전 한가한 신세가 되었다. (동부제강과 삼천리연탄공장도 다
른 곳으로 이전됨)
그렇게 열차의 기적소리도 사라지고 열차의 바퀴자국도 녹이 슬면서 철로에는 잡초가 덥수룩
하게 끼었으며, 무쓸모급 철길로 전락했지만 주변에 천왕산공원, 푸른수목원이 조성되면서 그
들을 수식하는 철길 명소로 덕을 보게 되었고, 2014년 이후 방송매체에서 이곳을 줄기차게 홍
보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항동철길은 오류동역에서 1호선 경인선에서 살짝 갈라져 나와 서해안로와 오리로가 만나는 광
덕4거리를 지난다. 여기서부터 뚜벅이들이 거닐 수 있다. (광덕4거리~오류동역 구간은 접근
금지) 오리로11길 골목길이 바로 남쪽에 붙어있으며, 금강수목원아파트와 맞닿은 철길 북쪽에
는 짧게 숲길을 닦아놓아 눈길을 부드럽게 배려했다.
철길은 주택가의 끝인 우창굿모닝아파트를 지나면 숲에 감싸인 야트막한 고갯길을 지난다. 천
왕산 산세가 움푹 낮아진 곳에 산의 살을 파서 생긴 틈으로 그 고개를 지나면 푸른수목원 항
동철길 쪽문과 천왕산 등산로가 나온다. 그들을 지나면 푸른수목원 정문이 나오며, 항동우남
퍼스트빌까지 이동할 수 있다. 허나 그 이상은 곤란하다.
 
철길에 잡초가 덥수룩하고 골목길과 바로 붙어있어 열차도 완전히 등을 돌린 철길처럼 보이지
만 가뭄에 콩 나듯 화물열차가 지나간다. 주택가와 뚜벅이길이 바로 옆에 붙어있어 폭주는 하
지 못하고 천천히 지나가지만 그래도 조심은 해야 된다. 그것만 유념한다면 철길 산책은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또한 열차가 아주 드문드문 지나가므로 산책 중에 열차를 만난다면 꼭
복권을 사보기 바란다. 그만큼 열차를 보기 힘들다.
한때 이 철길을 두고 관광지로 두느냐 안전을 위해 접근 불가로 봉인하느냐를 두고 말이 많았
으나 이제는 관광지로 크게 무게가 쏠리고 있다.

이 땅에 철길 명소가 여럿 있지만 서울은 이곳이 거의 유일하다. (옛 경춘선 철길과 옛 경의
선 철길은 폐선된 철로라 제외) 게다가 주거지와 골목길 속을 거리낌없이 지나가므로 매우 친
숙하게 다가온다. 철길 주변 풍경도 주택가와 자연(천왕산, 푸른수목원)이 어우러진 모습이라
가히 싫지는 않다. 특히 우창굿모닝아파트에서 푸른수목원으로 넘어가는 나무에 감싸인 그늘
진 고갯길은 이곳의 백미로 소박한 자연 풍경을 보여준다.


▲  푸른수목원 남쪽을 지나는 항동철길 (수목원 정문 방향)

▲  푸른수목원 남쪽을 지나는 항동철길 (오류동 방향)

▲  항동철길의 유일한 간이역(簡易驛), 항동철길역

항동철길에도 간이역이 있었다. 바로 항동철길역이 그것이다. 간이역이라고 하지만 정작 이곳
에 바퀴를 멈추는 열차는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무늬만 역이다. 항동철길이 관광지로 뜨고 바
로 옆에 푸른수목원이 들어서면서 수식용으로 달아놓은 장식물이기 때문이다.
요즘 인기가 높은 레일바이크(Rail bike) 명소로 삼아도 좋을 듯 싶으나 화물열차가 랜덤 수
준으로 지나다녀 그것도 여의치 않다.

역무원 모자를 쓴 귀여운 개모형 옆에는 하얀 피부로 된 조그만 역명 간판이 달려있는데, 동
쪽 역은 무려 개성(開城), 서쪽 역은 해남(海南)으로 나와있다. 여기서 개성과 해남이 그렇게
나 가까웠던가? 갑자기 나의 둔한 돌머리에 혼돈이 온다. 해남은 비록 철도는 들어가지 않으
나 시외직행버스와 승용차로 언제든 갈 수 있지만 개성은 분명 우리 영역임에도 이상하게 70
년 이상 금지된 땅으로 봉해져 전혀 갈 수가 없다. 거리는 해남보다 개성이 훨씬 가까움에도
말이다. (항동철길에서 해남까지 400여km, 개성은 체감 거리가 달나라보다 훨씬 멈)

* 항동철길 소재지 : 서울특별시 구로구 오류2동, 항동


▲  아무것도 정차하지 않는 간이역, 항동철길역 주변

▲  천왕산의 북쪽 틈을 지나는 항동철길 (오류동 방향)
철길을 닦고자 산세가 낮은 이곳을 손질했다. (나쁘게 말하면 천왕산 북쪽
산줄기를 철길로 끊어버림) 철길 좌우로 뚜벅이길이 닦여져 있는데
뚜벅이길로 가던 철길로 가던 그건 각자의 취향대로 하면 된다.

▲  천왕산의 북쪽 틈을 지나는 항동철길 (푸른수목원 방향)
항동철길을 끝으로 늦가을 초입에 벌인 푸른수목원, 항동철길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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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서남쪽 끝으머리, 오류동 류순정 류홍부자묘역~항동철길~푸른수목원 봄나들이

구로구 오류동 봄나들이 (류순정 류홍묘역, 항동철길)



' 구로구 오류동 봄나들이 '
(류순정 류홍 부자 묘역, 항동철길)
 

류순정 류홍 부자묘역

▲  류순정, 류홍 부자 묘역

항동철길 (오류선) 류홍 신도비와 류사필 묘갈

▲  항동철길 (오류선)

▲  류홍 신도비와 류사필 묘갈

 


 

서울 서남쪽 끝으머리를 잡고 있는 구로구 오류동(梧柳洞)에는 류순정, 류홍 부자 묘역과
항동철길, 천왕산 등의 명소가 있다. 이들은 아직까지도 미답처(未踏處)로 남아있어 나의
심기를 적지 않게 건드리고 있는데, 별처럼 무수히 뿌려진 이 땅의 미답처를 다 지우지는
못해도 내가 있는 서울만큼은 미답처를 싹 지우고자 매년 부지런히 행동에 옮기고 있다.
남들 훨씬 이상으로 서울 구석구석을 다녔다고 자부하나 아직도 미답처가 차고 넘치니 겨
우 605㎢에 불과한 서울 땅이 실로 우주 이상만큼이나 장대해 보인다.


 

♠  서울에서 유일한 부자(父子) 2대 공신 묘역
류순정, 류홍 부자 묘역 - 서울 지방기념물 22호

▲  무덤들이 물결을 이루는 류홍 묘역 (제일 위쪽에 류홍 묘가 있음)

구로구의 대표 지붕인 천왕산(天旺山. 144m) 북쪽 끝자락 구석에 류순정(유순정), 류홍(유홍)
부자를 중심으로 한 진주류씨(유씨) 묘역이 넓게 누워있다.

류순정과 류홍은 조선 초기 인물로 중종반정(中宗反正)에 참여해 부자가 나란히 공신(功臣)이
되었다. 1512년 류순정이 병사하자 중종(中宗)은 매우 슬퍼하며 3일 동안 조회(朝會)를 열지
않았으며, 왕족들에게만 주던 장생전<長生殿, 장흥고(長興庫)>의 관곽(棺槨)을 특별히 내주어
장례를 도왔다. 또한 오류동과 온수동(溫水洞), 부천시(富川市) 여월동과 작동 지역에 300만
평(9,917,355㎡)에 이르는 너른 땅까지 내렸는데, 류순정은 그 땅 중에서 제일 명당으로 꼽히
는 천왕산 자락에 유택(幽宅)을 썼다.
1551년 류홍이 사망하자 아비 묘 서남쪽 자락에 묻혔으며, 이후 후손들은 중종에게 하사받은
다른 동네 땅에 묻혔다.

20세기 이후, 묘역 주변을 조금씩 처분하면서 묘역 규모가 줄어들었고, 속세로 떨어져나간 묘
역 동북쪽에는 동부제강에서 사원용 아파트로 세운 동보아파트가, 동남쪽에는 금강수목원아파
트와 주택이 들어섰다. 그렇게 해서 남은 묘역은 26,531㎡로 비록 옛날만큼은 못해도 여전히
넓은 편이다.
묘역 서북쪽과 서쪽, 서남쪽은 딱히 건드리지 않아 자연 지대로 남으면서 개발의 칼질에 완전
히 고립되는 꼴은 면했으며, 주변에 흩어진 류순정의 후손 묘 5기도 그 땅을 처분하면서 모두
류홍 묘 밑으로 가져와 7대가 모여있는 문중 묘역이 되었다.

20세기가 끝나도록 묘역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아 적지 않게 훼손이 되었으나 2004년에 서울시
지방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더 이상 망가지는 꼴은 면했다. 또한 후손들은 집안의 보물로 16세
기에 제작된 류순정의 영정 4점과 류홍의 영정 1점을 안전하게 후대에 전하고자 서울시에 흔
쾌히 기증해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 보관되고 있다. 이들은 이 땅에 흔치 않은 16세기
초상화로 그림 바닥에 채전이 등장하는 최초의 예로 가치가 대단해 서울시 지방유형문화재의
지위를 얻었다. (솔직히 국가 보물급임)
이들 영정은 고약했던 6.25 시절 진주류씨 종손인 유종식(柳宗植)이 목숨을 걸고 지킨 것으로
그때 식솔과 가재도구는 챙기지도 않고 오직 영정함만 챙겨 어깨에 맸다. 그의 부인이 피난길
에 가솔은 안중에도 없고 영정만 챙기냐고 따지자. 집안의 종손으로 그것을 잃어버리면 조상
을 잃어버린 것과 같다고 답을 했다고 한다.
어쨌든 영정과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던 서적들, 필요한 가재도구를 챙겨 가솔들과 무사히 피
난을 떠났고, 그렇게 영정은 살아남아 그 가치는 백두산에 붙어있을 정도로 커졌다.

류순정, 류홍 묘역은 후손들의 배려로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다. 묘역 밑에 후손이 거처하는
집이 있으며, 그 집을 중심으로 북쪽에 묘역의 주인공인 류순정 묘, 서쪽에 류홍과 후손들의
묘가 자리해 있다. 류홍과 류순정 묘는 16세기 무덤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무덤 석물과
신도비도 그 시절 것으로 가치가 높다. 그리고 후손들의 무덤도 묘비 등 일부를 제외하고 옛
날 것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류홍 묘는 뒤쪽에 숲이 있으나 류순정 묘는 바로 북쪽과 동쪽 담장 너머로 동보아파트가 들어
앉아 묘역을 굽어보고 있어 보기에도 좀 딱해 보인다. 적어도 류순정 묘 주변 땅은 지켰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 했던 것이다.


▲  진흥군(晋興君) 류식(柳寔)과 청풍김씨(오른쪽 무덤)의 합장묘,
류중광(柳重光)과 나주정씨(왼쪽 무덤) 합장묘


류식은 류돈의 손자이자 류시경의 아들로 류순정의 7대손이며, 류중광은 류준의 아들로 류순
정의 4대손이다. 무덤을 지키고 있는 문인석(文人石)과 망주석(望柱石), 동자석(童子石), 상
석(床石), 혼유석(魂遊石)은 조선 중기 것으로 고색의 때가 역력하며, 묘비는 1989년 이후에
새로 장만했다.

▲  진흥군 류식과 청풍김씨의 묘비

▲  류중광과 류식 묘 (남쪽에서 본 모습)


▲  류사필(柳師弼)과 청주한씨의 합장묘(왼쪽),
류준(柳浚)과 연안이씨의 합장묘(오른쪽)


류중광, 류식 묘 바로 위에는 류사필과 류준의 묘가 나란히 자리해 있다. 류사필(1501~1559)
은 류홍의 아들로 어머니(풍양조씨)가 2살에 사망하자 외가에서 자랐는데, 공신의 자손으로
과거시험도 거치지 않고 음보(蔭補)로 관리가 되어 사복시 주부(司僕寺 主簿), 사헌부 감찰(
司憲府 監察), 금성현령, 김포현령, 예빈시 주부, 온양군수를 지냈다. 부인은 청주한씨로 영
의정을 지낸 한효원(韓效元)의 딸이다.

류준은 류사필의 아들로 아버지나 할아버지 만큼의 공적은 없으나 그들의 신도비를 세우지 못
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하여 1567년에 증조할아버지인 류순정의 신도비를 마련했고, 류
홍 신도비를 세우고자 친분이 있던 강령군(江寧君) 홍섬(洪暹)에게 신도비의 비명(碑銘)을 부
탁했다. 그래서 홍섬이 흔쾌히 글을 짓고 당대 문장가였던 여성군(礪城君) 송인(宋寅)이 글씨
를 써서 1573년 신도비를 완성시켰다.
또한 1574년에는 그들(홍섬, 송인)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인 류사필의 묘갈까지 장만했으니 묘
역 관리만큼은 아주 100점 감이었다. 이들 묘갈과 신도비는 류홍 묘역 밑에 나란히 자리해 있
다.

류중광, 류식의 묘처럼 문인석과 망주석, 키 작은 동자석, 상석, 묘비를 지니고 있으며, 1989
년 이후에 세운 묘비 정도를 제외하고 모두 16세기 것들이라 고색이 넘친다.

▲  류준과 류사필묘 (북쪽에서 본 모습)

▲  450년 가까이 묵은 류사필 묘갈(墓碣)


▲  류돈(柳焞)과 삭녕최씨묘
류돈은 류중광의 아들로 류중광묘 바로 남쪽에 자리해 있다. 묘비와
상석을 제외하고 16세기 것을 유지하고 있다.

▲  류홍(柳泓)묘

류홍 묘역 제일 높은 곳에는 류홍 묘가 자리해 후손들의 무덤을 굽어보고 있다. 류순정과 더
불어 이곳 묘역의 터줏대감으로 구름무늬 이수를 갖춘 늙은 묘표(묘비)와 문인석, 장명등, 망
주석, 상석을 지니고 있으며, 묘역 밑에는 높은 사람만 장만할 수 있던 신도비까지 두어 그의
높은 위치와 행적을 알려준다.

류홍(1483~1551)은 류순정의 아들로 어머니는 안동권씨<권효충(權孝忠)의 딸>이다. 자는 자연
(子淵)으로 1506년 중종반정 때 반정에 가담한 아버지를 도와 부자가 나란히 정국공신(靖國功
臣) 4등에 책록되는 위엄을 보였다. 그 인연으로 그들 부자의 무덤은 서울에서 유일한 부자 2
대 공신 묘역으로 천하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반정 이후 사복시주부, 형조정랑(刑曹正郞) 등을 거쳐 공조정랑(工曹正郞)이 되었으며, 1510
년 부산포와 제포(薺浦), 염포(鹽浦)에서 왜인(倭人)들이 소란을 일으킨 삼포왜란(三浦倭亂)
이 터지자 남정도원수(南征都元帥)로 파견된 부친을 따라가 왜인을 토벌했다. 그들 부자는 무
예에 아주 능했는데 특히 활을 잘 쏘았다고 전한다.

삼포왜란을 평정하고 내자시(內資寺)와 군기시(軍器寺)의 첨정(僉正)이 되었다가 1511년 무과
에 급제해 사복시 부정(副正)에 올랐으며, 훈련원부정을 거쳐 제포첨사(薺浦僉使, 창원 웅천)
가 되었다.
그는 역대 첨사들이 왜인들에게 뇌물을 받고 그들에게 발급한 도서(圖書)의 검사를 소홀히 한
점을 지적하고 왜인들의 왜관(倭館) 출입과 왜선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다. 이듬해 경상좌도
수군절도사가 되었다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오위장(五位將)을 겸임했다.
1519년 이후 원주와 정주 목사를 거쳐 훈련원도정, 충청도병마사, 수군절도사, 경상우도병마
사, 전라도수군절도사, 회령부사, 북병사(北兵使) 등의 주요 군직을 지냈으며, 1544년 진산군
(晋山君)에 봉해지고 부총관(副摠管)을 겸했다. 1545년 을사사화(乙巳士禍) 때는 위사원종공
신(衛社原從功臣)에 책록되어 가의대부(嘉義大夫)가 되었으며, 1547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
府事)가 되었다.

무인이지만 문인, 선비들과 많은 교류를 하였고, 청렴하고 검소하여 공조정랑으로 있을 때 선
임자들이 관청의 기명(器皿)을 멋대로 사용하던 폐습을 근절시켰다.

   ◀  류홍 묘의 동그란 봉분과 묘표(墓表)
비좌 위에 비신(碑身)을 세우고 그 위에 구름
무늬가 물결치는 이수(螭首)를 두었다. 비신과
이수에는 무심한 세월이 강제로 달아놓은 검은
주근깨와 온갖 상처들로 가득하여 고색의 향기
를 깊이 뿌린다.

        ◀  류홍 묘 문인석과 망주석
문인석은 고된 세월에 지쳤는지 일그러진 표정
을 짓고 있으나 대체로 멀쩡한 모습이다. 허나
그 옆의 망주석은 장대한 세월의 칼날을 정통
으로 맞아 밑둥만 일부 남은 가련한 신세이다.


  류홍 묘에서 바라본 류순정, 류홍 묘역 일대
가운데 부분에 보이는 집이 후손이 사는 집(재실)으로 그 너머 언덕에
아파트에 둘러싸인 류순정 묘가 있다.

▲  류홍의 행장이 적힌 류홍 신도비(神道碑)

류홍 신도비는 1573년에 손자 류준이 세웠다. 그는 류홍이 사망한지 20년이 넘도록 신도비를
장만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워 좌의정을 지낸 강령군 홍섬에게 비명(碑銘)을 부탁했고, 여
성군 송인에게 글씨를 부탁하여 비로소 신도비를 세우게 되었다.
비좌(碑座) 윗면에 엎드린 연꽃잎 모양의 복련(伏蓮)을 새기고 비신 앞뒤에는 3구획의 안상(
眼象)과 그 밑에 당초문(唐草紋)을, 옆면에는 두 구획의 안상과 당초문을 새기고, 머리에 지
붕돌을 얹혔다. 그 곁에는 아들 류사필의 묘갈이 나란히 있는데 그 모습이 서로 비슷하나 비
석의 명칭은 다르다. (신도비는 3품 이상의 당상관과 왕족들의 무덤에만 쓸 수 있음)
류순정 묘에도 신도비가 있으며, 오랜 풍상에 시달린 비신에는 검은 주근깨가 여기저기 피어
나 중후한 멋을 보인다.


▲  류순정의 후처, 평창이씨묘

류홍 묘역과 류순정 묘역 중간 산기슭에는 류순정의 부인인 평창이씨묘가 홀로 자리해 있다.
류홍과 류순정 묘역은 2기 이상의 무덤이 몰려있어 심심치는 않아 보이나 평창이씨묘의 무덤
만 그 중간에 외롭게 자리해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마도 풍수지리에 따라 그렇게 묘를
쓴 것 같다. 
여기서는 류홍과 류순정 묘역은 물론 금강수목원아파트, 천왕산이 훤히 두 망막에 들어와 묘
역에서 위치가 아주 좋으며, 봉분(封墳)과 묘표, 상석, 문인석을 지니고 있는데, 이들은 16세
기 것으로 묘표 같은 경우 조선 초에 많이 나타나는 연꽃 봉오리 지붕돌로 작고 앙큼한 형태
이다.

▲  뒷쪽에서 바라본 평창이씨묘

▲  연꽃 봉오리 지붕돌을 지닌
평창이씨묘표

▲  눈이 유난히도 크고 귀여운 평창이씨묘의 꼬마 문인석
왼쪽 문인석은 피부가 덜 탔지만 오른쪽 문인석은 세월을 너무 예민하게 탔는지
피부가 아주 검다.

▲  평창이씨묘에서 바라본 류홍 묘역
제일 왼쪽 모퉁이에 류돈 묘, 바로 오른쪽에 류중광 묘와 류식 묘, 그 위쪽에
류사필 묘와 류준 묘가 차곡차곡 들어앉았다. 그리고 그 한참 위에
류홍 묘가 자리하여 후손의 무덤을 굽어본다.

▲  류순정(柳順汀)묘

묘역 북쪽에는 이곳의 시조인 류순정묘가 있다. 짙은 숲을 뒤에 둔 류홍묘와 달리 묘 북쪽과
동쪽에 아파트가 비집고 들어와 그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무덤을 굽어본다. 무덤과 키다리 아
파트의 어색한 조화. 이는 개발의 칼질이 개념 없이 자행되는 이 땅의 씁쓸한 현실의 산물로
이곳과 비슷한 처지의 조선시대 묘역이 서울과 수도권에 비일비재하다.

류순정(1459~1512)은 류양(柳壤)의 아들로 어머니는 정즙(鄭楫)의 딸이다. 자는 지옹(智翁),
호는 청천(菁川)이며, 부인은 안동권씨와 후처인 평창이씨가 있다.
청년 시절에는 김종직(金宗直) 문하에서 공부했는데 활쏘기를 비롯한 무예에 뛰어나 그와 대
적할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1487년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홍문관전적
(弘文館典籍)이 되었으며, 훈련원정(訓鍊院正)이 되어 전라도에 들어온 왜구를 수색하여 잡아
들이는데 공을 세웠고, 1491년 함경도평사로 도원수(都元帥) 허종(許琮)의 막료가 되어 평안
도평사를 역임했다.

연산군 시절에는 임사홍(任士洪)의 잘못을 논박했고, 평안도절도사 전림(田霖)의 권력 남용을
추궁했으며, 북방 야인 문제에 대한 대책을 진언했다. 그 뒤 홍문관교리가 되었는데, 문신임
에도 활솜씨가 뛰어나 부응교(副應敎)에 배수되었다. 이어 사헌부집의를 거쳐 의주목사가 되
었는데, 조선의 그늘에 있던 압록강 이북 지역의 야인을 토벌했을 때, 적정 탐지에 큰 공을
세웠다. 또한 군자금 확보와 성곽 수축 등 국경 경비 강화에도 힘썼다.

1503년 공조참판(工曹參判)이 되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으며, 1504년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 이때 연산군에게 밤사냥에 대해 진언하다가 임사홍의 모략으로 추국을 당하기도 했다.
1506년 연산군에게 불만을 품은 박원종(朴元宗), 성희안(成希顔) 등과 반란을 모의하여 그 유
명한 중종반정을 일으켰다. 그 공으로 정국공신 1등에 청주부원군(淸州府院君), 숭정대부(崇
政大夫)란 큰 감투를 받았다.

반정 이후 병조판서가 되어 영경연사(領經筵事)를 겸임했으며, 연산군 시절에 폐지된 경연 부
활에 앞장섰다. 이후 우의정과 병조판서(兵曹判書)가 되었으며, 1507년 이과(李顆) 등이 견성
군(甄城君)을 추대하려고 역모를 꾀하자 이를 처리해 정난공신(定難功臣) 1등에 봉해졌다.
1508년 평안도 인산(麟山)과 강계(江界) 지역에 둔전(屯田)을 설치했으며, 좌의정(左議政) 시
절에는 인천과 김포, 통진 지역에서 도둑들이 설치자 박영문(朴永文)과 유담년(柳聃年)을 포
도대장으로 삼아 그들을 토벌케하고 유민의 안집책을 마련했다.
1510년 삼포왜란이 터지자 도체찰사(都體察使)가 되어 병사를 총괄했으며, 다시 도원수가 되
어 왜란을 토벌하고 삼포(부산포, 제포, 염포)에 비왜방략(備倭方略)을 마련했다. 이때 대간
들이 재물을 늘린다는 명목으로 그를 탄핵했으나 오히려 군공(軍功)을 인정받아 영의정(領議
政)까지 올랐지만 불과 2달 뒤에 53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중종은 크게 슬퍼하며 장흥고의 관곽까지 내주는 등, 장례를 특별히 챙겨주었으며, 무안(武安
)이란 시호를 내려주었다가 나중에 문정(文定)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후 중종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  류순정 묘표

▲  류순정 묘를 지키는 꼬마 동자석

류순정 묘는 이수를 갖춘 묘표와 상석, 동자석, 망주석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16세기에 조성
된 것들로 고색이 흠씬 묻어나있는데, 묘 바로 밑에는 부인 안동권씨 묘가 있으며, 서쪽 산자
락에는 앞서 언급한 부인 평창이씨묘가 있다. 부인 묘에는 모두 문인석을 갖추고 있어 류순정
묘에는 작은 동자석으로 대신했다. (장명등은 안동권씨 묘에만 세웠음)


▲  류순정 묘의 뒷통수 (뒷쪽에서 바라본 모습)

▲  류순정의 부인 안동권씨 묘
안동권씨 부인은 류홍의 어머니로 그가 불과 2살 때 세상을 떠났다. 봉분과 묘표,
상석, 문인석, 장명등을 지니고 있으며, 동자석과 망주석은 류순정 묘가
대신 지니고 있어 따로 갖추지는 않았다.

▲  뒷쪽에서 본 안동권씨 묘

▲  이수를 지닌 안동권씨 묘표

▲  얼굴과 왼쪽 어깨에 세월의 때가
가득 낀 안동권씨묘 문인석

▲  고된 세월에도 의연함을 잃지 않은
안동권씨묘 장명등


▲  류순정 신도비

안동권씨묘 옆구리에는 류순정 신도비가 우두커니 서 있다. 류순정 묘 바로 동쪽까지 아파트
가 들어서고 묘역과 아파트 경계에 돌담이 둘러지면서 신도비 정면 공간이 좀 야박하게 되었
다. 하여 부득불 옆에서 그를 담았다.

신도비의 모습은 류홍 신도비와 비슷한데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을 지낸 진천군(晉川君) 강
혼(姜渾)이 글을 짓고 여성군 송인이 글씨를 썼다. 허나 글만 받았지 비석을 세우지 못한 상
태로 50년 정도가 흐른 1567년에 류준이 비로소 비석을 세웠다. 비좌와 비신, 지붕돌로 이루
어진 형태로 비좌 윗면에 복련을 새겼고, 전면에 안상 3구획을, 측면에 안상 2구획을 새겼다.

* 류순정, 류홍 부자 묘역 소재지 : 서울특별시 구로구 오류동 산 43-31, 43-32(오리로13가길
  42)


▲  류순정 묘역에서 바라본 류홍과 후손들의 묘역
저 공간에 류홍을 비롯한 6대의 유택이 둥지를 틀었다.


 

♠  서울에서 유일하게 마음 놓고 거닐 수 있는 철길 명소,
항동(航洞)철길(오류선)

▲  오류2동 주택가를 지나는 항동철길 ①

금강수목원아파트 바로 남쪽에는 오리로11길과 나란히 달리는 철길이 있다. 속세에서는 그 철
길을 항동철길이라 부르는데 정식 명칭은 오류선(梧柳線)으로 '경기화학선'이란 별칭도 지니
고 있으며, 경인선 오류동역(1호선)에서 광명시(光明市) 옥길동에 있던 경기화학을 잇는 4.5
km의 단선 철로이다.
경기화학주식회사는 이 땅 최초의 비료 공장으로 1954년 옥길동에 설립되었다. (그 시절 지명
은 부천군 소래면 옥길리) 원료와 비료 운송을 위해 1957년 9월 26일에 철길을 닦기 시작하여
1959년 5월 30일에 완성을 보았는데, 경기화학 외에도 한때 오류동에 있던 삼천리연탄공장과
동부제강도 이 철로의 신세를 졌다.

경기화학은 울주 온산공장으로 통합, 이전되면서 광명 옥길동 공장은 문을 닫았으며, 그로 인
해 열차가 다닐 일이 없어져 완전 한가한 신세가 된다.
그렇게 열차의 기적소리도 거의 사라지고 열차의 바퀴자국도 녹이 슬면서 철로에는 잡초가 덥
수룩하게 끼었으며, 무쓸모급 철길로 전락했지만 주변에 천왕산 공원, 푸른수목원이 조성되면
서 그들을 수식하는 철길 명소로 덕을 보게 되었고, 2014년 이후 방송매체에서 이곳을 줄기차
게 홍보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항동철길은 오류동역에서 1호선 경인선에서 살짝 갈라져 나와 서해안로와 오리로가 만나는 광
덕4거리를 지난다. 여기서부터 뚜벅이들이 거닐 수 있다. (광덕4거리~오류동역 구간은 접근
금지) 오리로11길 골목길이 바로 남쪽에 붙어있으며, 금강수목원아파트와 맞닿은 철길 북쪽에
는 짧게 숲길을 닦아놓아 눈길을 부드럽게 배려했다.
철길은 주택가의 끝인 우창굿모닝아파트를 지나면 숲에 감싸인 야트막한 고갯길을 지난다. 천
왕산 산세가 움푹 낮아진 곳에 산의 살을 파서 생긴 틈으로 그 고개를 지나면 푸른수목원 항
동철길 쪽문과 천왕산 등산로가 나온다. 보통 여기서 철길 산책을 시작하거나 접거나 하지만
서쪽으로 더 들어가 푸른수목원 정문까지 이동할 수 있으며, 그 이상은 어렵다. 즉 광덕4거리
에서 푸른수목원 정문까지 1.3km 구간만 뚜벅이들이 자유롭게 거닐 수 있다.

비록 버려진 철길로 지금은 관광지로 꽤 바쁘게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열차가 완전히 끊긴 것
은 아니다. 가뭄에 콩나듯 아주 가끔씩 다닌다고 하며, 만약 산책 중에 열차를 만났다면 꼭
복권을 사보기 바란다. 그만큼 열차를 보기 힘들다. (나도 몇 번 가봤지만 열차 구경도 못했
음)
한때 이 철길을 두고 관광지로 두느냐 안전을 위해 접근 불가로 봉인하느냐를 두고 말이 많았
으나 이제는 관광지로 완전히 무게가 쏠렸다.

이 땅에 철길 명소가 여럿 있지만 서울은 이곳이 거의 유일하다. 게다가 주거지와 골목길 속
을 거리낌없이 지나가므로 매우 친숙하게 다가온다. 철길 주변 풍경도 주택가와 자연(천왕산,
푸른수목원)이 어우러진 모습이라 가히 싫지는 않으며, 특히 우창굿모닝아파트에서 푸른수목
원으로 넘어가는 숲에 감싸인 그늘진 고갯길은 이곳의 백미로 소박한 자연 풍경을 보여준다.


▲  오류2동 주택가를 지나는 항동 철길 ②

▲  오류2동 주택가를 지나는 항동 철길 ③

▲  항동철길과 금강수목원아파트 사이에 닦여진 짧은 숲길

▲  천왕산의 북쪽 틈을 지나는 항동철길 (푸른수목원 방향)
철길을 닦고자 산세가 낮은 이곳을 손질했다. (나쁘게 말하면 천왕산 북쪽
산줄기를 철길로 끊어버림) 철길 좌우로 뚜벅이길이 닦여져 있는데,
뚜벅이길로 가던 철길로 가던 그건 각자의 취향대로 하면 된다.

▲  천왕산의 북쪽 틈을 지나는 항동철길 (금강수목원아파트 방향)

▲  푸른수목원 옆구리를 지나는 항동철길 (수목원 정문 방향)

항동철길에 한참 빠져들 무렵이 되면 푸른수목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철길도 그렇고 주변 풍
경도 잠시 서울과 속세를 잊게 할 정도로 전원(田園) 풍경을 그려냈지만 안타깝게도 이 변두
리까지 개발의 칼질이 자행되어 아파트가 마구 들어서면서 그 흥이 많이 깨졌다.
게다가 철길은 수목원 정문까지만 거닐 수 있으니 그 이상은 가지 않기 바란다. (뚜벅이길도
없음) 저 철길의 끝에는 우리가 꿈꾸던 세상이 아닌 공장이나 군부대가 있으니 더 갈 이유가
없다.

푸른수목원 정문까지 항동철길(오류선)의 신세를 지고 남쪽에 닦여진 산길을 통해 천왕산 품
으로 들어섰다. 본글은 분량상 여기서 마무리를 지으며 이후 내용은 별도의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 항동철길 소재지 : 서울특별시 구로구 오류2동, 항동


▲  항동철길에서 바라본 천왕산과 푸른 봄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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