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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1.05 겨울맞이 산사 나들이 ~ 나주 지역 제일의 고찰, 덕룡산 불회사 (불회사 석장승, 나주곰탕 1그릇)
  2. 2018.05.23 서울의 대표음식인 설렁탕의 탄생지, 제기동 선농단 ~~~ (선농대제 축제, 선농단 역사문화관, 선농단 향나무, 따끈한 설렁탕 1그릇)
  3. 2014.08.05 본인 제작 여행답사기 모음집 (2014년 8월초 기준)

겨울맞이 산사 나들이 ~ 나주 지역 제일의 고찰, 덕룡산 불회사 (불회사 석장승, 나주곰탕 1그릇)

 


' 겨울맞이 산사 나들이, 나주 불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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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회사 석장승
◀ 원진국사 부도
▶ 불회사 진여문과 사천왕문
▼ 불회사 대웅전

불회사 진여문, 사천왕문
   

 


 

겨울 제국이 천하만물의 격한 미움을 받으며 세력 확장에 열을 올리던 12월 첫 무렵에 따
뜻한 남쪽 땅인 전남을 찾았다. 그 전남에서 내가 격하게 반응을 보인 곳은 나주(羅州)의
유서 깊은 고찰 불회사이다. (불회사를 목적지로 정함)

오랜만에 햇님보다 일찍 부지런을 떨며 새벽의 차디찬 기운을 뚫고 한강을 건너 영등포역
으로 넘어갔다. 그곳에서 호남의 중심지인 광주(光州)로 가는 첫 열차를 타고 5시간 가까
이를 달려 광주역에 두 발을 내리니 겨울 제국에게 점령된 북쪽과 달리 가을의 따스한 기
운이 나를 맞이한다.

광주역에서 불회사까지는 그리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접근성도 영 좋지가 않다. 예전에는
광주역을 비롯한 광주 도심부에서 불회사입구까지 바로 가는 나주시내버스가 있었으나 이
제는 남평에서 무조건 환승을 해야된다. (남평에서도 40~50분 정도 들어가야 됨)


 

♠  불회사 입문 (석장승, 원진국사부도)

▲  불회사 일주문(一柱門)

불회사입구에 이르니 웅장한 모습의 일주문이 마중을 나왔다. 문 현판에는 '초전성지 덕룡산
불회사(初傳聖地 德龍山 佛會寺)' 10글자가 쓰여있는데, 여기서 초전성지란 '불교가 처음 전
해진 성지'란 뜻이다. 이는 백제에 불교를 전한 인도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가 366년에 창
건했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땅 최초의 절이란 자부심을 담은 것이다. 허나 그 창건설은
그저 믿거나 말거나 설화일 뿐이며, 실제 그가 불교를 들고 백제를 찾은 것은 384년이다.


▲  일주문 부근에 자리한 도암선사부도(道巖禪師浮屠)와 하얀 승탑

일주문을 지나면 가장 먼저 승탑(부도) 2기와 비석 1기, 그리고 속세와 그들을 이어주는 돌다
리를 만나게 된다. 승탑은 돌다리보다 1단 높은 곳에 나란히 자리해 있는데 세월의 때가 가득
입혀진 왼쪽 승탑이 도암선사의 승탑이다.

도암선사(1805~1883)는 장성 백양사(白羊寺)를 중창했던 승려로 성은 차씨이다. 1817년 백양
사 심옥(心沃)에게 출가하여 1827년 인월(印月)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으며, 하루에 1끼
만 먹으면서 계율을 철저히 지키는 한편 전국의 이름난 승려를 찾아가 불경을 익혔다.
1840년 화월(華月)의 법을 이어받았는데, 이때부터 백양사에 머물며 후학들을 지도하고 계율
을 엄히 지키도록 했으며, 백양사 뒷쪽 백학봉 밑에 자리한 석실(石室)에 들어가 10여 년 동
안 불도를 닦고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천진암(天眞庵)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1883년에 78세의
나이로 입적했다.
그가 이승을 뜨자 잠깐 인연이 있던 불회사에 탑을 만들어 사리를 봉안했는데, 승탑과 관련된
어떠한 안내문도 없어 무심히 지나치기가 쉽다. 그 옆에는 한참이나 후배인 하얀 피부의 승탑
이 서있고, 그 앞에 하얀 승탑의 주인을 기리는 비석이 서 있다.


▲  고색의 때로 자욱한 도암선사 승탑(부도)
이 땅에 흔한 석종형(石鐘形)승탑으로 검은 주근깨가 여기저기 피어났다.

▲  불회사 숲길 (일주문과 주차장 사이)

▲  그림처럼 펼쳐진 불회사 숲길 (석장승 직전)

불회사 숲길은 자연의 향이 그윽한 아리따운 숲길이다. 사찰 숲길의 갑(甲)으로 칭송받는 곡
성 태안사(泰安寺) 숲길과 오대산 월정사(月精寺) 전나무 숲길을 바짝 긴장시킬 정도로 아름
답기 그지 없는데, 300~400년 묵은 비자나무와 측백나무, 전나무, 삼나무 등이 무성해 온갖
내음을 누릴 수 있다. 특히 대웅전 뒷쪽에는 춘백(春栢)이 삼삼하게 숲을 이루고 있어 5월에
연두빛으로 막 피어날 때 바라보는 대웅전과 그 뒷산의 모습은 놓치기 아까운 봄 풍경으로 꼽
힌다.
게다가 단풍이 늦게 들고 늦게 지기 때문에 11월 후반까지 단풍의 향연을 즐길 수 있고, 단풍
색깔이 광주 인근에서 가장 곱다고 한다. 허나 그 좋은 시기가 싹 지나간 시점이라 단풍은 거
의 다 지고 간신히 나뭇가지에 붙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초췌한 단풍잎만 남아있을 뿐이라
안그래도 늦가을이다 연말이다해서 우울해진 나의 정처없는 마음을 더욱 우울의 끝으로 밀어
넣는다. (불회사 비자나무 숲은 산림유전자원 보호림으로 지정됨)


▲  불회사 석장승 - 국가 민속문화재 11호

랫 주차장에서 3~4분 정도 가면 불회사의 오랜 상징이자 지킴이인 석장승 1쌍이 마중을 한
다.
장승은 예로부터 부정한 기운을 막는 존재로 마을이나 절 입구에 세웠다. 지킴이 역할 외에도
경계를 표시하는 역할도 겸하고 있는데, 청동기시대에 많이 나타나는 선돌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불회사 석장승은 절로 가는 길목에 자리해 있는데, 절 수호와 절의 경계를 알리는 기능을 담
당했다. 그러니까 석장승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불회사의 영역이 시작되는 것이다. 길 양쪽에
1기씩 자리해 서로를 바라보고 있으며, 돌난간을 두룬 네모난 보금자리에 퉁방울 눈으로 뻣뻣
하게 서 있다. 서쪽 장승은 남자(이하 남장승), 오른쪽 장승은 여자(이하 여장승)로 초보자가
봐도 누가 남자고 여자인지 쉽게 구분이 간다.

남장승(키 315cm, 몸둘레 170cm)은 여장승보다 키가 크며, 동그란 큰 눈은 왕방울처럼 부라리
고 있고, 세모난 코는 주먹처럼 크다. 입은 일자로 그어져 있고, 입 밑에는 수염이 약간 묘사
되어 있으며 머리 위에는 불상의 무견정상(無見頂相)처럼 두툼히 솟아 있다. 몸통에는 그의
이름을 알리는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 5자가 쓰여 있고, 얼굴 표정은 약간 인상을 쓰고 있
지만 그리 싫지만은 않은 표정으로 절을 지키는 수호신의 얼굴치고는 좀 귀엽다.

그의 동반자인 여장승(키 180cm, 몸둘레 162cm)은 인심 좋은 아지매를 보듯 표정이 매우 부드
럽다. 두 눈은 남장승 못지 않은 왕방울로 눈 위에는 살짝 구부러진 눈썹과 광장처럼 넓은 이
마가 있으며, 코는 남장승 못지 않게 크다. 입은 아래로 살짝 구부러져 엷은 미소까지 띄우고
있으며, 몸통에는 그의 이름을 알리는 '주장군(周將軍)' 3글자가 쓰여 있는데 원래 이름은 상
원주장군(上元周將軍)이다. 남장승에 비해 키는 작으나 다정한 표정이며, 둘다 귀엽고 익살스
러운 포스로 무서움은 커녕 즐거움을 준다.


아무리 굳은 얼굴이거나 인상을 쓴 얼굴도 그
들을 보면 절로 주름이 풀어질 것이다. 그리고
절에 볼일이 있어 찾아온 나쁜 기운도 그들의
표정에 넋이 나가 본연의 임무를 깜빡 잊고 돌
아갈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진리가 아닐까?
이들 석장승은 서쪽 산너머에 있는 운흥사(雲
興寺) 석장승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1719년 전
후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며, 장승을 숭배하
는 민간신앙과 불교신앙이 혼합된 존재이자 이
땅에 몇 안되는 사찰 장승으로 가치가 높다.

▲  여장승을 늘 살피는 남장승

▲  남장승을 바라보는 여장승

▲  남장승의 뒷모습과 여장승


  연리지(連理枝)라 불리는 느티나무(가운데 나무) -
나주시 보호수 15-4-12-6호


석장승을 지나면 왼쪽 숲에 불회사의 또다른 명물인 연리지가 나온다. 이 땅에서 매우 희귀한
나무로 두 나무가 서로 맞닿아 엉켜있는 모습이 마치 남녀가 예민한(?) 짓거리를 하는 모습처
럼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절 주변에서 그런 연리지가 종종 목격되어 그것도 참 흥미로운
데 여색을 멀리하며 불도에 정진해야 되는 승려의 한이 모여 나무로 표출된 모양이다.

연리지는 가뭄에 콩 날 정도로 희귀한 나무라 나라의 경사나 부모에 대한 효성, 화목한 부부
등을 상징하며, 그의 수종(樹種)은 느티나무이다. 높이는 30m에 이르러 하늘을 가릴 정도이고
둘레는 1.5m로 키에 비해 꽤 늘씬하다. 나이는 약 600년으로 짐작된다.


▲  불회사 사적비와 소나무

연리지를 지나면 불회사의 장대한 역사를 머금은 사적비(事蹟碑)가 나온다. 듬직하게 생긴 귀
부(龜趺)와 글씨가 빼곡히 담겨진 검은 피부의 빗돌, 여의주를 두고 다투는 이무기 2마리가
생동나게 새겨진 이수(螭首)로 이루어져 있으며, 조성된지 얼마 안되어 윤기가 주르르 흐른다. 그런 사적비 옆에는 하늘을 향해 곧게 자란 소나무가 주변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  원진국사부도로 오르는 산길

▲  진여문 부근의 승탑들

사적비를 지나면 불회사 방향을 기준으로 왼쪽에 덕룡산으로 오르는 산길이 나온다. 원진국사
부도를 보고자 한다면 그 산길을 꼭 오르기 바란다. 조그만 계곡을 건너서 대나무숲으로 들어
서면 좌우로 갈라진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오르면 부도(승탑)가 나온다.
나는 사적비 뒷쪽 산길을 몰랐던 터라 진여문까지 갔음에도 부도를 알리는 길이 없어 그냥 지
나칠까 했었다. 허나 부도와의 술래잡기는 끝내야겠다 싶어서 길도 없고 경사도 각박한 진여
문 남쪽 산자락을 무대포 정신으로 올라가서 끝내 술래 신세를 면했다.

진여문 남쪽에는 승탑(僧塔) 2기가 초췌한 모습으로 중생들의 눈길을 호소한다. 오른쪽 승탑
은 탑신(塔身)이 온전히 남아있고, 6각형 머릿돌에는 중생들이 올려놓은 돌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그 위에는 돌기둥이 서 있는데, 피부색이 전혀 틀려 승탑의 일원은 아니었던 듯 싶다.
탑의 밑도리는 돌에 묻혀 윗도리만 간신히 고개를 내민다.
왼쪽 승탑은 거친 세월의 흐름을 과민하게 탔는지 머릿돌과 바닥돌만 간신히 남은 처량한 신
세이다. 이들 승탑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탑의 주인은 알 수 없다.

▲  머릿돌과 바닥돌만 남은 가련한 승탑

▲  불회사 원진국사부도(圓眞國師浮屠)
전남 지방유형문화재 225호

경내 남쪽 산자락에 원진국사부도가 살짝 터를 닦고 있다. 원진국사 승형(承逈, 1171~1221)은
능엄선(楞嚴禪)의 주창자로 성은 신씨, 고향은 경북 상주(尙州)이다. 3살 때 고아가 되어 숙
부인 시어사(侍御史) 신광한(申光漢)에게 양육되었으며, 13세에 문경 봉암사(鳳巖寺)에서 출
가하여 김제 금산사(金山寺) 계단(戒壇)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1197년 스승인 동순(洞純)이 입적하자 승과(僧科)를 포기하고 수도에 정진했으며, 명종(明宗)
이 그의 소문을 듣고 특별히 불러 초선(初選)을 치르게 했다. 이후 조계산 수선사(修禪社)에
들어가 지눌(知訥)에게 법요(法要)를 받고 오대산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에게 예불한 뒤 크
게 감응을 얻었으며, 춘천 청평사(淸平寺)에서 이자현(李資玄)의 유적을 찾다가 '수릉엄경(首
楞嚴經)은 마음의 본바탕을 밝히는 지름길'
이란 이자현의 문수원기(文殊院記)에 크게 감명을
받아 능엄경을 열심히 연구했다. 그 인연으로 불법(佛法)을 알릴 때 능엄경을 으뜸으로 삼겠
다고 발원했으며, 이후 이 땅의 선종(禪宗)에서 크게 숭상을 받게 되었다.

1210년 연법사(演法寺) 법회의 법주(法主)가 되어 선풍(禪風)을 떨쳤고, 1213년에 삼중대사(
三重大師), 1214년에 선사(禪師)가 되었으며, 이듬해 대선사(大禪師)가 되어 포항 보경사(寶
鏡寺)에 머물렀다. 1220년에는 희종(熙宗)의 4째 아들인 경지(鏡智)의 스승이 되었고, 1221년
능엄경을 설법한 뒤, 팔공산 염불사(念佛寺)로 자리를 옮겨 승려치고는 젊은 50세에 입적했다.

고종(高宗)은 그에게 원진이란 시호를 내렸으며, 보경사에 그의 승탑을 세웠으나 사리의 일부
를 가져와 잠깐 인연이 있던 불회사에도 승탑을 두었다. 탑신 밑도리에 연우(延祐, 원나라 인
종의 연호) 4년 5월에 세웠다는 글씨가 있어 1318년에 조성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탑신 앞
쪽에는 해서체(楷書體)로 '圓眞國師 通照之塔(원진국사 통조지탑)'이라 쓰여있어 탑의 이름과
주인까지 소상히 알려준다.

높이 1.7m의 조촐한 모습으로 조각 기법이 형식화되어 딱히 섬세한 면은 없으며, 탑신과 지붕
돌이 8각이고 그 밑도리는 동그란 전형적인 8각원당형 승탑이다. 또한 탑신에 탑의 주인공과
탑 이름, 조성 연대가 쓰여있어 고려 후기 승탑 양식을 연구하는데 아주 소중한 자료가 되어
준다. 바로 이 점이 이 승탑의 강한 매력이다.


▲  승탑의 주인과 탑 이름이 희미하게 쓰여있다. (원진국사 통조지탑)


 

♠  불회사 진여문, 대웅전 주변

▲  한몸으로 이루어진 진여문(眞如門)과 사천왕문(四天王門)

원진국사부도와의 숨바꼭질을 승리로 마무리 짓고 경내를 코앞에 둔 진여문으로 향했다. 진여
문은 하나로 이어진 사천왕문과 함께 1990년대 후반에 지어진 것으로 계곡 위에 홍예 돌다리
를 걸치고 그 위에 복도식 건물을 씌웠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한 지붕을 이고 있는 사천왕문
을 지나게 되는데, 이곳은 부처를 지키는 사천왕(四天王)의 보금자리로 그들의 목상(木像) 대
신에 그림 4개가 자리를 대신한다.
사천왕문은 원진국사부도가 있는 남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사천왕의 검문을 거치면 비로소 불
회사 경내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러면 여기서 잠시 부처의 모임터를 뜻하는 불회사의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  홍예 돌다리를 갖춘 진여문

▲  사천왕문 사천왕도

▲  2층으로 이루어진 대양루(大陽樓)

▲  대양루의 1층을 차지하고 있는
천수전(千手殿)

불회사는 덕룡산 북쪽 자락 숲속에 포근히 터를 닦은 오래된 절이다. 경내 앞쪽(남쪽)에는 계
곡이 흐르고, 뒷쪽(북쪽)으로 산을 베게 삼아 누운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으로 사방이 덕
룡산의 첩첩한 산줄기에 감싸인 고적한 곳이다. 절 입구에서 절까지 속세의 민가(民家)도 거
의 없으며, 절 부근에는 적당한 마을도 없다.

이 절은 366년(또는 384년)에 인도 승려인 마라난타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366년이면 고구려(
高句麗)에 불교가 전해지기 무려 6년 전이고, 백제는 18년 전이 된다. (가야는 제외) 불회사
가 366년 창건설을 자신 있게 우기는 것은 1978년 큰법당 기와 불사 때 발견된 '호좌(호남 좌
도) 남평 덕룡산 불호사(불회사의 옛 이름) 대법당 중건 상량문(上樑文)'
에 366년<동진(東晉)
태화 원년>에 창건되었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연유로 이 땅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
해진 초전성지(初傳聖地) 임을 일주문을 통해 아주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불회사의 주장이 맞는다면 이 땅의 불교사를 다시 정리해야 되겠지만 굳이 그리할 필요는 없
을 것 같다. 마라난타의 366년(384년) 창건설은 어느 기록에도 없고, 백제 유물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가야의 불교 전래설도 외면받고 있는 마당에 불회사의 366년 창건설은 어디 주목이
나 받겠는가?

창건 이후, 656년에 희연조사(熙演祖師)가 중창을 했다고 하며 신라 후기에 도선국사(道詵國
師)가 중창을 하고, 1264년에 원진국사가 크게 중창을 벌였다고 한다. 그런데 원진은 앞서 그
의 승탑에서 밝혔듯이 1171년에 태어나 1221년에 세상을 떴다. 그런데 뜬금없이 1264년이라니
? 원진이 입적한지 53년 뒤에 홀연히 부활하여 절을 중창했단 말인가?? 허나 경내 주변에 그
의 승탑이 있으니 원진이 절을 손질한 것은 맞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창건했을 지도 모르겠
다.

1798년 화재로 절 전체가 소실되자 주지인 지명(知明)이 1799년에 중건을 했으며, 절의 원래
이름은 부처를 지킨다는 뜻의 불호사(佛護寺)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큰법
당에서 나온 상량문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다가 1808년 경에 불회사로 이름이 바뀐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그런데로 법등(法燈)을 유지하다가 1990년대 후반부터 절을 크게 손질하여 기존의 가람
(伽藍)배치 외에 동쪽에 진여각과 요사채, 대양루 등을 건립하여 절의 몸집을 더욱 늘렸다.

절을 수식하는 전설 가운데 호랑이와 도승의 이야기가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려 후기에 참의(參議) 벼슬을 지낸 조한용(이하 승려)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불
사이군(不事二君)을 외치며 벼슬을 그만두고 승려가 되었다. 표주박 하나와 누더기 1벌로 천
하를 떠돌던 그는 불회사에 이르자 쇠락한 절의 모습에 발끈하여 절 중창을 계획하고 주변 마
을로 탁발을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탁발을 하고 절로 돌아오다가 난데없이 호랑이를 만났다. 그런데 호랑
이는 그를 보자 입을 크게 벌리고 눈물을 흘려 애원하는 것이 아닌가. 호랑이의 출현에 염통
이 적지않게 쫄깃해졌던 그는 용기를 내어 입을 살펴보니 글쎄 목에 비녀가 걸려있던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사람을 잡아먹지 말아라. 그것을 약속하면 내 비녀를 뽑아주마' 그러자 호랑
이가 '알았어. 앞으로 사람은 해치지 않을테니 비녀 좀 뽑아줘!' 그래서 비녀를 뽑아주니 호
랑이는 고마움을 표하고 사라졌다.

그해 겨울, 호랑이가 그를 찾아왔다 '야 나와봐! 아주 좋은 거 가져왔어!' 그가 나와보니 호
랑이가 어디서 아리따운 여인네를 물어다 마당에 놓고 간 것이 아닌가. 호랑이가 앞서 은혜를
갚고자 참 기특한 일을 하였지만 이미 출가한 몸이라 대놓고 흑심을 품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혼절한 여인을 외면하기도 그래서 일단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알고보니 안동(安東) 만석꾼
김상 공(이하 김공)의 외동딸이었다.
여인이 기력을 회복하자 남장을 시켜 안동으로 데려가니 김공은 너무 기뻐 크게 보답할 길을
알려달라고 했다. 이에 불회사 복원에 필요한 시주를 청하니 김공이 쾌히 승락하자, 승려는
가지고 온 걸망을 꺼내 쌀을 담아 달라고 했다. 걸망이 너무 작아서 이거 얼마나 들어가겠는
가 싶어 김공의 부인은 우려했으나 아무리 부어도 끝없이 들어가는 쌀을 보며, 크게 놀라 아
예 곳간을 열테니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고 했다.
이에 승려는 신통력으로 공양미를 절로 보냈다고 하며, 그때 쌀을 보관한 곳이 인근 화순 중
장터라고 한다.

김공이 준 쌀로 불회사 대웅전을 지으며, 좋은 날을 택해 상량식을 올리려고 했으나 일이 너
무 장대하여 그 시간을 맞추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뒷산 봉우리에 올라가 '호법 선신중이
시여! 부처의 대작불사가 해가 짧아 원만히 회향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피를 드리워 주소서
'
기도를 올리니 해가 잠시 길을 멈추면서 제시간에 상량식을 마쳤다고 한다.
이후 그가 기도를 한 자리에 암자를 세우고 해를 멈추게 한 곳이라 하여 일봉암(日奉庵)이라
했으나 6.25 때 파괴되어 샘터만 남았다.

그 승려는 말년에 건너편에 남암(南庵)이란 암자를 짓고 머물렀는데 아침과 저녁마다 까만 새
가 날라와 뒷편에 있는 잣나무 가지에 앉아 승려와 대화를 했다고 하며, 그 나무를 흑조수(黑
鳥樹)라 불렀다고 한다. 그 나무는 남암터에 2그루가 있었으나 태풍으로 하나가 쓰러지고 지
금은 1그루만 남아있다. (현재 부속 암자는 모두 사라진 상태)

비자나무와 측백나무 등에 싱그럽게 둘러싸인 경내에는 대웅전과 영산전, 명부전, 대양루, 심
검당, 사운당, 천왕문, 진여문, 불국원 등 1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으며, 소장문화유산
으로는 국가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과 건칠비로자나불좌상, 민속문화재인 석장승, 지방문화재
인 원진국사부도, 소조보살입상 등이 있고, 그외에 도암선사부도와 조선 후기 승탑, 연리지,
괘불지주 등이 있어 고색의 내음도 숲내음 만큼이나 진하다.

※ 나주 불회사 찾아가기 (2018년 12월 기준)
* 광주 전남대후문과 산수5거리, 조선대, 광주1호선 남광주역(3번 출구), 백운광장, 인성고(
  효천역)에서 나주시내버스 999, 999-1번을 타고 남평정류장에서 하차 → 중장터, 도동 방면
  으로 가는 나주 200번으로 환승하여 불회사 하차 (1일 10회 운행)
* 나주터미널과 영산포터미널에서 나주 403번을 타고 불회사 하차 (1일 13회 운행)
* 승용차 (석장승과 일주문 사이에 주차장이 있으며, 경내에도 있음)
① 광주 → 남평읍내 → 도래마을 → 다도 → 불회사입구 우회전 → 불회사
② 광주 → 칠구재터널 → 도곡온천입구 → 도암면 → 운주사입구 → 중장터 우회전 → 불회
   사입구 → 불회사

* 불회사 입장료는 없음
* 불회사는 산사힐링체험(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7~8월에 열리는 관음대참회 수련
  회, 매월 3째주 토요일에 1박 2일로 열리는 주말산사문화체험, 녹차(비로다)만들기 체험 등
  이 있으며, 자세한 일정과 가격은 불회사 홈페이지를 참조하거나 전화로 문의한다.
* 소재지 :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마산리 999 (다도로 1224-142 ☎ 061-337-3440)
* 불회사 홈페이지는 아래 사진을 클릭한다.


▲  불회사 경내와 부드러운 곡선의 덕룡산

▲  대웅전 주변 (대웅전 우측에 극락전, 삼성각 등이 있음)

사천왕문을 지나면 1990년대 후반에 지어진 2층 대양루가 나타난다. 대양(大陽)이란 큰 햇님
으로 부처의 법을 상징하는데, 1층은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통로와 종무소(宗務所), 차 1잔과
공양물품을 판매하는 비로다경실이 있다. 여기서 비로다(榧露茶)는 불회사에서 생산되는 녹차
(綠茶)로 절 주변 비자나무 밑에서 이슬을 머금고 자란 찻잎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비로다는 오랜 역사를 가진 불회사의 살아있는 전통으로 절에서 창건주로 우기고 있는 마라난
타가 불회사를 세우고 재배한 차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을 바탕으
로 이 땅에서 처음으로 차가 재배된 곳이라고 주장까지 하나 실제 재배 시작 시기는 조선시대
> 불회사 녹차로 인해 이곳의 예전 지명은 다소(茶所)였으며, 다도면(茶道面)이란 이름도 바
로 여기서 비롯되었다.

2층은 대양루 대신 천수전이란 별도의 간판을 달고 있는데, 천수관음보살(千手觀音菩薩)을 봉
안하고 있으며, 온갖 새와 토끼, 물고기, 소나무, 과일 등을 담은 그림이 평방(平枋) 등에 그
려져 있다. 보통 사찰의 벽화나 그림은 부처를 찬양하고 불교와 관련된 내용을 담기 마련이나
천수전은 그 규칙을 와장창 깨고 민화(民畵)나 사대부들이 그리는 그림처럼 치장되어 있다.


▲  불회사 대웅전 - 보물 1310호

대양루 밑도리를 통해 안쪽으로 들어서면 3단의 기단 위에 높직하게 들어앉아 남쪽을 바라보
는 대웅전 앞에 이른다.
불회사의 법당(法堂)인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추녀를 살짝 들어올
린 모습이 마치 새가 날개짓을 하듯 경쾌하기 그지 없는데 상량문을 통해 1799년에 중건되었
음이 밝혀졌다.

건물 정면에 달린 문짝은 4분합의 빗살문으로 두터운 통판자로 짜서 창살무늬, 불상, 새와 꽃
등이 꽃살문을 이루며 장식되어 있었으나, 6.25 시절에 공비들이 그들의 소굴을 덮기 위해 모
두 약탈해 갔다. 기둥을 받치고 있는 초석(礎石)은 덤벙주초로 비교적 큰 편이며, 그 위에 세
운 기둥은 민흘림 수법을 보여준다.
기둥 위에는 창방과 평방을 놓고, 전/후면의 각 주칸에는 외3출목, 내4출목 공포를 2조씩, 양
측면에는 1조씩 배치했으며, 내부에는 화려한 연꽃봉오리형으로 마무리 지었다. 특히 용 4마
리를 건물 안팎으로 치장하여 법당의 장엄함을 드높였는데, 정면 어칸(가운데 칸)에 2마리의
용머리가 있고, 그 꼬리는 건물 내부 대들보 밑에서 살랑살랑 흔들거리고 있다. 또한 천정 중
앙 대들보에도 용 2마리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건물 양측면 중앙에는 건물 내부로 2개의 충량(衝樑)을 걸어 그 머리를 용머리로 장식하여 큰
대들보에 걸쳤는데 이런 결구법은 조선 중기 이후에 많이 나타난다. 내부 천정은 빗천정과 우
물천정을 같이 했는데, 빗천정에는 물고기, 연꽃무늬 등을 조각하여 달았다.


▲  옆에서 바라본 대웅전의 위엄

▲  새와 연꽃 등이 그려진 아름다운 우물 천정과 대들보에 고개를 대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용 2마리


건물 내부와 바깥에 용 장식을 달고 연꽃봉오리 등을 장식한 기법은 부안 내소사(來蘇寺) 대
웅보전에도 나타나고 있어 같은 장인이나 그 후학들이 만들었음을 짐작케 하며, 조선 후기 건
립 당시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어서 2001년 4월에 전남 지방유형문화재 3호에서 보물로 지
위가 높아졌다.


▲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 용의 살랑거리는 꼬리와 붉게 채색된 천정

▲  대웅전 비로자나3존불
가운데 본존불이 불회사 건칠비로자나불좌상 - 보물 1545호
좌우 협시불은 불회사 소조보살입상 - 전남 지방유형문화재 267호


불회사의 상큼한 보물 창고인 대웅전 내부에는 석가불 대신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을 중심으
로 한 비로자나3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삼존불의 중심인 비로자나불은 종이로 만들어 금칠을
입힌 이 땅에 흔치 않은 건칠불(乾漆佛)로 고려 후기 불상 양식을 계승한 조선 초기 불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비로자나불은 붉은 연화좌(蓮花座) 위에 앉아 그의 전용 수인(手印)인 지권인(智拳印)을 취하
고 있으며, 머리는 검은색 나발로 무견정상(無見頂相)이 두툼하게 솟아 있다. 두 귀는 어깨까
지 축 늘어져 중생의 조그만 하소연까지 듣고자 애쓰고 있고, 얼굴은 약간 굳은 듯한 표정이
지만 입가에서는 엷게 미소가 퍼지고 있다.
그의 좌우에 선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상은 흙으로 빚어서 만든 조선 초기
보살상으로 15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본존불과 마찬가지로 잘 만들어진 우수한
작품으로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 불상/보살상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


 

♠  불회사 마무리

▲  대웅전 좌측에 자리한 명부전(冥府殿)

대웅전 좌우에는 온갖 군소 건물들이 학의 날개처럼 펼쳐져 있는데, 좌측 바로 옆에는 명부전
이 둥지를 틀고 있다.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지장보살(地藏菩薩)과 시왕(十王)을 비롯한
명부(冥府, 저승)의 주요 식구들이 봉안되어 있는데, 1402년에 세워져 1799년에 중수되었으며,
근래 손질을 했는지 고색의 기운이 대웅전 보다는 못해 보인다.


▲  후덕한 표정을 지으며 육환장(六環杖)을 쥐고 있는 명부전 지장보살상
그 좌우로 밝은 색채의 10왕을 비롯한 저승의 식구들이 빼곡히
자리를 채우고 있다.

▲  삼성각(三聖閣)

대웅전 바로 좌측에는 삼성각이 자리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9세기
에 중건되었는데, 예전 이름은 칠성각(七星閣)이었다. 산신(山神)과 칠성(七星)을 비롯해 용
왕(龍王)까지 봉안하고 있으며, 그들을 담은 탱화는 모두 근래에 새로 제작되었다.

▲  용을 타고 짙푸른 바다를 질주하는
용왕의 모습이 담긴 용왕탱

▲  산신 가족의 단란함이 엿보이는 산신탱


▲  나한전(羅漢殿)
석가불과 그의 열성 제자인 16나한 그리고 고려 때 절을 크게
일으킨
원진국사의 진영(眞影)이 봉안되어 있다. (예전 이름은 영산전)

▲  나한전 석가불과 16나한상

▲  원진국사의 진영

▲  대웅전 좌측에 자리한 극락전(極樂殿)
가장 최근에 지어진 건물로 아미타불과 영가
(靈駕)들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  공양간과 요사(寮舍)로 쓰이는 사운당
1층은 공양간, 2층은 요사이다.


▲  어처구니를 상실한 옛 맷돌
불회사 승려와 중생들의 공양밥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맷돌, 이제는 절의
찬란했던 역사를 머금은 화석이 되어 대양루 부근에 조용히 누워있다.
어처구니가 불이 나게 돌아가던 왕년의 시절을 애타게 그리워하겠지.

▲  진여문 부근 숲길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불회사를 열심히 둘러보고 대양루 부근에서 잠시 두 다리를 쉬었다. 기
분 같아서는 속세(俗世)에서 나란 존재를 잠시 지우며 이곳에서 며칠 머물고 싶지만 내가 있
어야 될 곳이 아니기에 다시 속세로 아쉬운 발걸음을 땐다.
절을 둘러싼 비자나무와 춘백, 소나무의 청정한 내음을 배불리 들어마시며 결코 지루하지 않
는 숲길을 뚜벅뚜벅 걸으니 어느새 연리지와 석장승이 나타나 배웅을 한다. 그들을 지나치기
가 싫어 앞서 지겹게 봤음에도 다시 사진에 담느라 약간의 시간을 흘려보냈고, 다시 길을 재
촉하니 주차장과 도암선사부도, 일주문이 나타난다.


▲  불회사 숲길과 단장의 이별을 하다.
나중에 또 인연을 지을 수 있을까? 그때는 덕룡산과 운흥사(雲興寺) 석장승까지
모두 살펴보고 싶다.

▲  불회사 숲길 (주차장 부근)

불회사입구 정류장에서 다시 두 다리를 쉬며 버스를 기다렸다. 목포로 가야 되기 때문에 나주
시내(영산포, 나주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오면 정말 대환영인데 20분 정도 기다리니 남평으로
가는 나주 200번이 나타나 입을 벌린다. 남평으로 나가면 나주시내로 가는 시내버스가 수시로
있어 그것을 잡아타고 첩첩한 덕룡산 골짜기에서 탈출했다.
남평으로 나와 영산포로 가는 999번 시내버스로 환승하여 나주시내 북부에 자리한 나주터미널
에 두 발을 내렸다.

아직 점심도 제대로 때우지 못한 상태라 나주곰탕이나 한 뚝배기 들고자 터미널 서쪽 금성관
주변에 진을 치고 있는 나주곰탕 골목을 찾았다. 이곳은 예전에 2~3번 와본 적이 있는데, 어
느 집으로 갈까 궁리하다가 7년 전에 들렸던 곰탕집으로 들어갔다.


▲  잘 차려져 나온 나주곰탕의 위엄

내가 곰탕집을 찾은 시간은 15시대라 손님은 거의 없었다. 송송(깍두기)과 김치, 양파, 고추
장 등의 밑반찬을 거느린 곰탕이 내 앞에 차려지자 시장기가 왕성하게 솟구쳐 곰탕과 밑반찬
들은 이내 밑바닥을 드러낸다. 그래도 성이 차질 않아서 국물과 밥을 더 청하여 아주 든든하
게 배를 채웠다.

그렇게 늦은 점심을 먹고 부근에 있는 나주목문화관과 정수루를 오랜만에 둘러보고 목포로 넘
어갔다. 이후 내용은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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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대표음식인 설렁탕의 탄생지, 제기동 선농단 ~~~ (선농대제 축제, 선농단 역사문화관, 선농단 향나무, 따끈한 설렁탕 1그릇)



' 설렁탕의 탄생지, 제기동 선농단 (선농대제) '


▲  선농단 선농대제 제례상 (2012년)


 

 

봄이 한참 절정에 이르는 4~5월이 되면 천하 방방곳곳에서 다양한 축제와 문화행사가 열
려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천하 제일의 대도시로 콧대가 높은 서울에서는 종묘대제(5월 1주 일요일)와 연등회(석가
탄신일 1주 전 토~일), 석가탄신일(음력 4월 8일), 선잠제향(5월 중), 선농대제(4월) 등
이 열리는데(그 외에도 더 있음) 이들 축제 중에서 비싼 설렁탕을 무려 공짜로 제공하는
착한 축제가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제기동 선농단에서 열리는 선농대제(先農大祭)이다.
< 3글자로 줄여서 선농제(先農祭)라고도 함>


▲  제기동역에서 선농단으로 이어지는 가로수길(왕산로19길)
선농단 입구인 함경면옥에서 선농단 방향으로 약 110m의 꿀 같은 숲길이
펼쳐져 있다.

▲  담장 너머로 보이는 선농단 향나무
향나무가 있는 곳이 바로 선농대제의 뜨거운 현장인 선농단이다.


드디어 선농대제가 열리는 4월 말 토요일, 따사로운 오전 햇살의 응원을 받으며 도봉동(
道峰洞) 집을 나섰다.
1호선 전철을 타고 20여 분을 달려 제기동역에서 하차했는데 선농대제 관람과 잘 숙성된
설렁탕을 먹는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랜다. 그렇다고 설렁탕 때문에 온 것은 절
대로 아니다. 어디까지나 우리의 고유 전통 행사인 선농대제를 참관하러 온 것이다. (참
관하러 간 것임~~~ 강조!! 근데 왜 발이 저리지..??)

선농단 입구에 이르니 선농대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시원한 봄바람에 펄럭이며 대제를 구
경하러 온 사람들을 인도한다. 현수막은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으
며, 이제 막 제왕(帝王)의 제례 행렬이 끝나고 제례를 봉행(奉行)할 시간(10:30~12시)이
되어 선농단 주변은 제관(祭官)과 행사요원, 취재진, 나들이객, 동네 사람 등 수천 명의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 회색빛 도시 속에 조용히 묻혀지내는 망국의 제단 선농단, 국가
지정문화재라는 굵직한 지위를 누리고 있지만 원래 임무인 제단에서 강제 은퇴한 몸이라
꽤 적적한 신세이다. 그런 그에게도 천하가 미치도록 주목을 하는 때가 1년에 딱 하루가
있으니 바로 선농대제일이다.


 

♠  설렁탕의 탄생지, 농사의 중요성을 알리고 풍년을 기원하던
조선의 주요 국가 제단, 선농단(先農壇) - 사적 436호

▲  선농단 (선농대제가 끝난 직후의 모습)

선농단은 종암초교 남쪽이자 제기동 주택가 한복판에 고즈넉하게 누워있다. 이곳은 1476년에
조성되었는데, 처음 이름은 관경대(觀耕臺)로 조선의 제왕들이 신하를 거느리고 농사의 소중
함을 알렸다는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게 제를 지내 풍년을 기원했다. 이 제사를
선농제(선농대제)라고 하며, 거기서 선농단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선농
제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청동기시대부터 농사가 시작되었다고 하니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은 그때부터 있었다. 하지만
제왕이 직접 제사를 챙기고 농사를 권장했다는 기록은 신라 초인 기원전 41년에 처음으로 나
타난다.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朴赫居世)가 왕비와 함께 6부(六部)를 순행(巡行)하여 농사와 잠사(
蠶事)를 권장하고 감독했다고 하며, 매년 경칩(驚蟄)이 지나고 첫 해일(亥日)을 택하여 왕이
제를 지내고 적전을 갈거나 또는 관리를 보내 제를 지냈다.
그러다가 나중에 경주 동쪽인 명활산성(明活山城) 남쪽 웅살곡(熊殺谷)에서 선농제를 지냈으
며, 입하(立夏) 뒤 첫 해일에 후농제(後農祭)를 지냈다. 선농제란 이름은 바로 신라 때 생겨
난 것이다.

고려 때는 983년 1월, 성종(成宗)이 원구단(園丘壇)에서 기곡제(祈穀祭)를 지내고 몸소 적전
을 갈아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제를 지냈다. 하여 이때부터 이 땅의 토속적인 농사 신(神) 대
신에 중원대륙에서 가져온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제를 지낸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 성종은 송
나라와 교류를 하며 중원(中原) 문화에 깊이 심취해 그곳의 문화와 제도를 마구잡이로 가져온
군주이기 때문이다.
허나 고려는 황제(皇帝)가 원구단에 나가 하늘에 제를 지낼 때, 풍년을 같이 기원했고, 매년
열리는 연등회(燃燈會)와 팔관회(八關會)에서도 일종의 기곡제(祈穀祭)를 지내 별도의 선농제
는 거의 갖지 않았다.

그러던 선농제가 크게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조선 초부터이다. 태조 때 적경공제지법(籍耕供
祭之法)을 제정하고 태종 때는 적전단(籍田壇)을 수축했으며, 1430년에는 박연(朴堧)의 건의
로 선농지악(先農之樂)에 쓰이는 토고(土鼓)를 대체하고자 가죽 테를 한 북을 만들어 사용하
였다. 그러다가 1476년 성종의 왕명으로 관경대를 만드니 그것이 지금의 선농단이며, 사직단(
社稷壇), 선잠단(先蠶壇), 영성단(靈星壇)과 더불어 국가의 주요 제단으로 큰 대접을 받았다.

선농제를 지낼 때는 제왕이 직접 신하를 거느리고 제를 지냈으며, 그것이 끝나면 동적전<제기
동과 전농동(典農洞) 일대>으로 이동한다. 거기서 적전을 관리하는 적전령(籍田令)이 푸른 보
자기에 감싸인 쟁기를 제왕에게 올리며, 그것을 받은 제왕은 직접 쟁기를 잡고 밭에 5번 쟁기
질을 하는 이른바 친경(親耕) 쇼를 벌였다.
쟁기가 끝나면 관경대로 올라가 백성 가운데 특별히 선발된 70세 이상 노인들을 위로하고 그
들이 밭을 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런 다음 농작물 씨앗이 얼어죽는 것을 막는 절차까지 마
무리 되면 의식이 끝났음을 선포하고 궁궐로 돌아간다. 이렇듯 친경의례는 농사의 소중함을
제왕이 몸소 보여주고 비록 잠깐이지만 백성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으로도 활용되었
다.
허나 친경의례는 성종 이후 어쩌다 1번 벌일 정도로 거르는 경우가 많았으며(연산군 1회, 중
종 2회, 명종 1회, 선조 1회, 광해군 1회~) 인조에서 현종까지는 아예 하지도 않았다. 숙종(
肅宗)은 의식을 치루려고 단단히 준비까지 했으나 날씨가 받쳐주지 못해 무산되었으며, 영조
시절에 비로소 다시 치러지게 된다.

동적전이 있던 제기동과 전농동 지역은 지금은 완전 주택가라 썩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20세
기 초까지만 해도 너른 경작지였다. <제기동(祭基洞)은 제사를 지내는 터란 의미로 선농단에
서 비롯된 이름임>
왕실에서 관리하던 적전(籍田)은 2곳이 있었는데 선농단 근처에 동적전이 있었고, 개성(開城)
동쪽 전농동에 서적전(西籍田)이 있었다. 동적전은 제사용 곡식을 저장했는데, 선농단(관경대
)과 희우정(喜雨亭), 필분각(苾芬閣)이 있었고, 다수의 창고가 있었다. 반면 개성에 있는 서
적전에는 형향각(馨香閣)과 창고가 있었다.
동적전에서 나온 곡물은 종묘제례에 주로 썼으며, 서적전 곡물은 왕실에서 벌이는 온갖 제사
의식에 동원되었다. 이들 적전에서 쓰고 남은 곡물은 백성을 구휼할 때 쓰거나 의약청(議藥廳
), 산실청(産室廳) 및 제왕과 왕비의 예장(禮葬)에 사용했다.

▲  청량대 표석

▲  선농단 북쪽 홍살문

이렇듯 왕실의 주요 행사로 바쁘게 살았던 선농제는 1909년까지 잘 유지되었으나, 1908년 이
후 향사이정(享祀釐正)에
관한 순종의 칙령(勅令)에 따라 국가 제단을 정리하면서 사직단에
통합되었다. 허나 동적전 친경의례는 1910년 5월까지 이루어졌는데 그때 순종이 신하와 백성
을 거느리고 친경을 하는 장
면이 빛바랜 흑백사진으로 남아있다.

왜정(倭政) 때는 지역 사람들에 의해 선농제가 조촐히 진행되었으나 1940년대 왜정이 망국의
제단을 욕보이고자 선농단 주변에 청량대공원(청량대)을 닦으며 제단을 아작내고 동적전이 있
던 곳에는 전농공원을 닦았다. 이때 제단 북쪽 땅이 떨어져나가 보통학교(현 종암초교, 1922
년 개교)가 지어졌고, 1935년에 제단 남쪽에 경성여자사범학교(현 서울대 사범대학)가 들어서
면서 남쪽 땅까지 썰려나갔다. 또한 군수물자 징수란 명목으로 제사 도구를 거의 뜯어가 제사
도 중단되고 말았다.
어둠의 시절 이후에도 수난은 여전하여 1946년 이후 제단 주변에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차 30
년 이상 잠수 아닌 잠수를 타며 주택가에 묻혀있었다. 그러는 사이 선농단의 이름도, 존재감
도 모두 희미해져 세상의 뇌리 속에서 완전히 잊혀져 갔다.
그러다가 1979년 제기동에 뜻있는 이들이 '선농단친목회'를 결성하여 자비를 들여 1년에 1번
씩 치제(致祭)를 올리기 시작했다. 세상의 무관심 속에 세월의 저편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선
농단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그렇게 선농단은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고, 동대문구와 같이 제례를 지내다가 1988년 행
정기관장 최초로 동대문구청장이 선농제 초헌관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후 1992년에는 '선
농대제 보존위원회'가 결성되었고, 동대문구의 흔쾌한 지원과 폭풍 홍보에 힘입어 지역의 대
표 축제이자 문화행사로 제대로 거듭났다. 행사 규모도 비록 옛날만큼은 못해도 나날이 커져
갔다.
그러다가 선농단 복원 여론이 강하게 피어나면서 2013년 8월, 선농단 주변에 장막을 치고 복
원 공사에 들어갔고 2015년 4월 공사가 완료되어 다시금 세상에 위엄을 드러냈다. 옛 선농단
의 모습이 상당수 회복된 것이다. 또한 선농단 북쪽에는 선농단 역사문화관을 닦아 선농단과
선농대제의 이해를 돕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선농단의 구조는 단 주위로 크게 터를 다지고 그 한복판에 단을 두었다. 단이라고 해서 높이
구축된 것은 아니며 땅바닥에서 조금 솟은 정도이다. 제단 테두리는 돌로 잘 다지고 안쪽은
흙으로 다졌는데, 2015년 원래 모습으로 복원되면서 부득이 하얀 피부의 석재가 다소 섞여있
다. 기존에 쓰였던 옛 석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여 오래된 돌과 새 돌이 어색하게 조화
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새 돌도 선배 돌을 닮아가며 고색의 기운을 머금을 것
이다.
제단 외곽에는 낮은 키의 토담을 쌓았고, 동쪽과 서/남/북쪽 테두리 중앙에 붉은 피부의 홍살
문을 세웠는데. 이들 문과 토담은 2015년에 복원된 것이다. 선농단 남쪽에 1단의 석축을 두었
으며, 단 서남쪽에는 500년 이상 묵은 향나무가 영욕의 세월을 견딘 제단을 굽어보고 있다.

▲  선농대제의 한 모습

▲  펄펄 끓는 가마솥 설렁탕

선농대제는 처음에는 정월 길(吉) 해일(亥日)에 했으나 태종(太宗) 때 경칩이 지난 첫 해일로
변경되었다. 그때가 농사가 시작되는 3월이기 때문이다. 음력 2월 첫 신일(辛日)에도 제사를
지내기도 했으며, 1910년에는 양력 5월에 거행되었다. 그러다가 1979년 이후에는 4월 말~5월
초/중순 사이에 하다가 지금은 4월 하순 토요일에 하고 있다.


제향(祭享)은 10변(籩) 10두(豆)의 중사(中祀)로 거행하고, 친림제향 때는 아헌관(亞獻官)은
왕세자(王世子)나 황태자(皇太子)가, 종헌관(終獻官)은 영의정이 맡았다. 집례(執禮)의 창홀
(唱笏)에 따라 음악을 연주하고 육일무(六佾舞)를 추며, 제례 봉행 순서는
① 전폐례<奠幣禮, 농업신에게 예물을 올리는 의식> → ② 천조례<薦俎禮, 제신(祭神)에게 음
식을 올리는 진찬(進饌)의식> → ③ 초헌례<初獻禮, 초헌관이 1번째로 농업신에게 작을 올리
는 의식> → ④ 아헌례<亞獻禮, 아헌관이 2번째로 농업신에게 작을 올리는 의식> → ⑤ 종헌
례<終獻禮, 종헌관이 3번째로 농업신에게 작을 올리는 의식> → ⑥ 음복례<飮福禮, 제관이 제
사를 마치고 신이 내린 제물을 먹는 의식> → ⑦ 망료례<望燎禮, 폐백과 축문을 태워 땅에 묻
는 의식> 순으로 거행된다.

영신악(迎神樂)은 경안지악(景安之樂)을 연주하고 전폐례에는 숙안지악(肅安之樂). 진찬례에
는 옹안지악(雍安之樂), 초헌례에는 수안지악(壽安之樂)을 연주하며 일무생들은 문무(文舞)를
춘다. 이어서 서안지악(舒安之樂)을 연주할 때는 일무생들은 무무(武舞)를 추기 시작하며, 아
헌례와 종헌례 때는 수안지악을 다시 연주하고 철변두(徹籩豆)할 때는 옹안지악을, 송신할 때
는 경안지악을 연주한다. (절차가 매우 복잡함)

제사 제물로는 소와 돼지, 양의 고기와 피, 쌀과 기장, 과일, 떡, 술 등을 올렸으며, 모든 행
사가 끝나면 친경에 쓰인 소를 잡고, 제물로 쓰인 소고기를 넣어 탕을 끓였다. 그리고 제물로
쓰인 쌀과 기장으로 밥을 짓고 돼지고기는 편육으로 썰었는데, 탕에 밥을 말고 편육과 여러
반찬을 겯드려 행사에 참여한 신하와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
제물에 김치가 없기 때문에 파를 씻어다 놓았고, 간장도 쓰지 않기 때문에 소금으로 탕의 간
을 맞추었다. 오늘날 설렁탕을 먹을 때 파와 소금을 겯드리는데, 그 전통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선농단에서 끓인 탕이라 하여 '선농탕(先農湯)','설농탕','설롱탕'이라 불렸
으며,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가운데 글자가 살짝 움직여 지금은 '설렁탕'으로 주로 불린다.
우리나라 대표 음식의 하나이자 서울의 토박이 음식 설렁탕은 이렇게 선농대제 뒷풀이 음식으
로 태어난 것이다.

또한 설렁탕의 옛 이름 중 하나인 설농탕의 유래에 대해서 1940년에 홍선표가 쓴 '조선요리학
'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이는 앞서 선농탕과는 약간 다른 것이라 햇갈림을 준다.
'세종대왕이 선농단에서 친경하던 때에 비가 심하게 내려서 촌보(寸步)를 옮기지 못할 형편에
이르렀다. 신하들이 배가 고파서 견디기가 힘드니 왕이 친경에 쓰던 소를 잡아서 맹물에 넣고
끓이라 하였다. 고기 끓인 국물에 소금을 넣어 먹으니 이것이 설농탕이다'

그 외에 오랫동안 탕을 끓이면 국물이 흰빛을 띠어 '눈처럼 뽀얗다','눈과 같이 무르녹는다'
는 뜻에서 설롱탕이 되었고, 그것이 설렁탕으로 변했다는 견해도 있다. 허나 보통은 선농탕
유래를 많이 신뢰한다.

동대문구의 대표적인 문화행사로 거듭난 선농대제는 보통 10시부터 시작된다. 왕산로에서 선
농단까지 짧게 어가행렬을 비롯한 제례행렬을 선보이며, (예전에는 동대문구청에서 출발했음)
10시 20분 정도에 개회식을 갖고 10시 30분부터 12시까지 제례를 봉행한다.
제례를 치르는 동안 선농단 북쪽 종암초교에서 동대문구 공무원과 새마을단체 사람들이 점심
을 준비하며 12시부터(보통 11시 30분 이후부터 배식함) 선농대제의 백미(白眉)이자 상징인 '
전통
설렁탕 재현 및 나누기' 시간을 갖는다. 설렁탕은 누구든 먹을 수 있으며, 전통에 따라
탕에 밥이
말아져 나온다. 반찬으로는 설렁탕의 단짝인 김치와 깍두기를 비롯해 떡과 생수가
제공된다.
설렁탕은 넉넉히 준비하기 때문에(보통 2,000~3,000명 분을 준비함~)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
다. 초반에 가면 사람이 너무 미어터져 밥이 오기까지 상당한 인내를 요하니 차라리 사람이
많이 빠져나간 12시 30분 이후에 먹기를 권한다. 음식은 각자가 알아서 챙겨먹는 것이 아닌
새마을단체 사람들과 자원봉사 학생들이 알아서 갖다준다. 늦게 갔을 경우에는 밥을 먹을 의
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으며, 가급적 13시 이전에 가는 것이 좋다. (떡과 김치 깍
두기 등이 빨리 떨어
짐)

공짜 설렁탕이지만 맛은 생각 외로 괜찮아 왠만한 설렁탕 전문점을 울게 할 정도이다. 시중에
서 거의 7,000~9,000원 하는 설렁탕을 선농대제의 일환으로 공짜로 먹을 수 있으니 정말 좋은
축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13시부터는 선농단 역사문화관에서 설렁탕 요리대회(설롱 요리대회)가 열리며 요리가
끝나면 시식 기회를 제공한다. (대회 참가 자격은 동대문구 관내 식당이나 학교, 단체에 한함
) 음식을 맛보고 괜찮은 음식에게 점수를 주면 되며 그것을 토대로 요리대회 승부를 결정한다.

※ 선농단, 선농단역사문화관 찾아가기 (2018년 5월 기준)
*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 1번 출구를 나가면 바로 선농단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그의 지시
  에 따라 오른쪽으로 나무가 우거진 가로수길을 5분 들어가면 선농단이 나온다. 선농단 역사
  문화관은 그 북쪽 3거리(종암초교 정문 동쪽)에 자리한다.
* 지하철 6호선 안암역(3번 출구)에서 성북구 마을버스 04번을 타고 종암초교에서 하차, 여기
  서 길 반대쪽으로 건너면 종암초교로 인도하는 골목길(무학로44길)이 있는데 그 길로 도보
  3분
* 선농단 관람 시간 : 10시 ~ 18시까지 (11~2월은 17시까지)
* 선농대제는 4월 하순 토요일에 열린다. (4월 중순 쯤에 선농단 역사문화관에 전화문의를 해
  보는 것이 제일 좋음)
* 선농단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동 274-1 (무학로44길 38, 선농단역사문화관 ☎
  02-355-7990)
* 선농단역사문화관 홈페이지는 아래 사진을 흔쾌히 클릭한다.


▲  남쪽 홍살문에서 바라본 선농단과 선농대제


 

♠  선농단과 선농대제 둘러보기

▲  서남쪽에서 바라본 선농단과 선농대제

선농단에는 푸른색 시트 커버를 걸친 제사상 4개가 놓여져 있다. 이중 큰 상은 선농단 북쪽과
동쪽에 배열하니 이들은 농업신인 선농씨와 후직씨의 밥상이며, 다른 조그만 상 2개는 선농단
밑에 둔다.
제단에서 남쪽 홍살문까지 붉은 카페트를 쫘악 깔고, 서쪽과 남쪽에도 붉은 카페트를 깔아 바
로 남쪽으로 향하게 했는데, 이들은 제왕을 비롯한 제관이 움직이는 동선이다. 제단 남쪽 정
면 길로 제단으로 들어가 의례를 치른 다음, 서쪽이나 동쪽 카페트를 따라 다시 남쪽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선농단 주위로 갑옷을 입거나 무관 복장을 갖춘 무관(武官)들이 삼엄하게 늘어서 있어 선농대
제의 엄숙함을 한껏 고조시킨다. 1시간 반 가까이 저렇게 서 있는 것도 그리 쉽지는 않을텐데
말이다. 허나 옛날과 달리 그저 자리만 지키면 되며, 옆 사람과 수다를 떠는 모습도 쉽게 목
격이 된다. 그것이 옛날과 오늘날 선농대제의 차이이다. 만약 옛날에 그렇게 산만하게 행동했
다면 바로 파직감이다. 그만큼 까다로움을 요구했던 국가의 제례의식이었기 때문이다.


▲  전통 방식으로 재현된 가마솥 설렁탕 부뚜막

선농단 서쪽에는 누런 피부의 부뚜막을 설치하여 정겨운 가마솥을 걸고 설렁탕을 끓이고 있다.
장작을 넣어 부뚜막을 계속 흥분시키면서 탕을 숙성시키고 있는데, 선농대제가 무르익을 수록
설렁탕도 그만큼 익어간다.


▲  동남쪽에서 바라본 선농대제

선농단 남쪽 밑에는 금관조복(金冠朝服)을 갖춘 제관들이 홀(忽)을 쥐어들며 3줄로 늘어서 있
다. 이들 상당수는 선농대제 보존위원회 위원들로 석전대제와 사직대제, 종묘대제 보존위원들
도 섞여있다. 제왕은 보통 동대문구청장이 담당하고 있는데, 대례복(大禮服)과 12면류관을 갖
춘 자못 제왕다운 모습으로 대제에 임하고 있다.
제관들은 노천에 멍석을 깔고 앉거나 절을 하지만 제왕은 그들 동쪽에 차려진 노란색 천막 안
에서 햇살을 피하며 대기한다. 그리고 의식을 행할 때는 옆에 자리한 내관이 붉은 일산(日傘)
을 받쳐들고 그를 따르니 역시나 제왕이나 우두머리 자리가 좋긴 좋다.

제관 자리 남쪽에는 하얀 천막이 쳐져 있고 의자가 넉넉히 놓여져 있어 행사 관계자들과 세금
이나 축내는 구의원과 국회의원 밥버러지들, 지역 유지들, 관람객들이 앉아있으며 제관들 서
쪽에는 붉은 옷을 입은 여인들이 무리를 지어 앉아있는데 이들은 일무(佾舞)를 맡은 사람들이
다. 그리고 그들 북쪽에는 제례악을 맡은 사람들이 각기 악기 1개 또는 2개씩 거느리며 악기
를 조정한다.


▲  선농대제에 임하고 있는 제관들
전통 행사로 진행되는 지금도 이러한데 옛날에는 정말 숨소리도 내기 힘들 정도로
정성과 엄숙을 다했다. 그때는 조금의 실수나 긴장 풀린 모습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만약 걸리면 파직을 시키거나 징계를 주었다.

▲  동쪽 홍살문 남쪽에서 바라본 선농대제
(노란 천막은 제왕이 대기하는 특별 공간)

▲  제례 봉행이 시작되면 제관들은 전폐례부터 망요례까지 무려 7개의 의식을
수행해야 된다. 그때마다 단으로 올라가 의식을 치루고 다시 내려와
대기하다가 다음 의식이 시작되면 또 올라간다.

▲  선농단 남쪽에서 대기하고 있는 일무생들
사단법인 아악일무보존회 사람들로 모두 여자들이 맡는다. 앳된 20대부터
중년층에 이르기까지 36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  문무(文舞) 율동을 선보이는 일무생들

▲  제례악을 맡은 사람들 (경기도립국악단)

▲  서쪽에서 바라본 선농단과 선농대제

▲  북서쪽에서 바라본 선농단과 선농대제

▲  음복례가 진행되고 있는 선농단
음복례는 제관이 제사를 마치고 제물로 올린 술을 마시는(음복) 의식이다.

▲  음복례도 거의 끝나가고

▲  대제의 마지막 단계, 망요례

음복례가 끝나면 폐백과 축문을 태우고 선농단 북쪽에 마련된 공간에 묻는다. 망요례를 끝으
로 1시간 반에 걸친 선농대제는 마무리가 되며, 원래대로라면 친경 의식도 해야 되나 부근에
친경을 벌일 경작지가 없기 때문에 계속 생략되고 있다. 그러니 선농대제는 '설렁탕 나누기'
를 포함해 2/3 정도만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허나 어찌하겠는가? 아무리 전통 행사라고 해도
시대에 맞게 변형과 축소는 어쩔 수가 없다.


▲  망요례를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제관들
다들 속으로 '이제 행사도 끝났으니 밥 묵으러 가자~~!' 이랬을 듯~~

▲  선농대제에서 활약한 전통 악기들
궁중 의례나 종묘제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몸값 비싼 악기들이 주류를 이루어
선농대제의 높은 품격을 보여준다.


대제가 끝나자 선농단 주변의 통금은 모두 풀렸다. 제관들과 행사 요원들, 높은 작자들은 기
념사진을 찍거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하나 둘 밥 먹으러 사라지고, 제단 주변은 관리
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어수선한 상황이 되었다. 대제를 구경하던 사람들은 제단으로 들어와
초롱초롱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제삿상과 제물, 제기, 악기 등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느라 부산
하다. 그렇다고 제물과 제기를 가져가지는 말자~! 그냥 손으로 쓱쓱 어루만지고 끝내면 된다.


▲  선농대제 제삿상 <후직씨에게 올리는 제삿상, 2012년>

▲  금동 빛깔의 장엄스런 제기들
사극에서나 보던 고급 제기들이 속인들의 호기심을 건드린다. 백성들은 감히 쓰지도,
만지지도 못했을 저들을 직접 두 눈에 담으니 기분이 참 새롭다. 저들은 가격이
얼마나 하려나? 몇 개 장만하여 내 밥그릇으로 쓰고 싶다.

▲  제주(祭酒)을 담은 그릇과 의식 때마다
손을 씻는 정화수와 수건들

▲  창고로 퇴장하는 제기들
이제 1년 뒤에나 볼 수 있겠구나...


▲  가벼운 태풍이 지나간 듯 어수선한 선농단 (대제 직후의 모습)

제관과 행사요원들이 밥 먹으러 가고 선농대제로 잠시 긴장을 탔을 선농단은 제사 소품이 어
지럽게 깔린 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저 소품들은 점심 이후에 모두 정리되어 창고로 옮겨지며, 제단 주변을 깨끗히 손질하여 언제
시끌벅적한 대제를 지냈냐는 듯 원래의 적막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아무리 점심시간이
라고 하지만 제단 위에 저렇게 소품을 방치하는 것은 좀 결례가 아닐까 싶다. 선농단이 마치
제례용품 창고가 되버린 듯한 씁쓸한 현장처럼 보여 적어도 제단 밖으로 모두 옮겨놓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싶다.


 

♠  선농단 마무리 (향나무, 설렁탕, 선농단 역사문화관)

▲  선농단 향나무 - 천연기념물 240호

선농단 서쪽에는 나이도 지긋한 오래된 향나무가 넓게 그늘을 베풀고 있다. 그는 선농단의 오
랜 상징이자 얼굴로 나이가 무려 500년 이상을 헤아린다. 20세기 후반에도 추정 나이가 500년
이었다고 하니 선농단과 나이가 그런데로 비슷할 듯 싶으며, 1476년 선농단을 닦을 때 성종이
기념으로 심거나 15세기 후반 선농대제 기념으로 심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천하에 널리고 널
린 나무 중에 유독 향나무를 심은 것은 제사 때 피울 향을 충당하고자 함이다.

아무리 먹어도 줄지 않는 세월이란 무한 양분과 국가 제단에 자리한 잇점으로 관리들과 귀족
들의 보살핌이 대단했다. 게다가 대제 때마다 곡차(穀茶)의 기운을 듬뿍 받으니 키가 13.1m,
둘레 2.28m에 어엿한 나무로 성장했다. 대제가 끝나면 막걸리를 비롯하여 제사에 쓰인 술은
이 나무에 모두 부었다고 하며, 어렸을 때부터 강제로 술에 길들여지다보니 이제는 내성이 생
겨 어지간한 술에도 눈 까딱하지 않을 것이다.


▲  선농단의 흑역사, 바닥에 눕혀진 청량대(淸凉臺) 표석

향나무 북쪽에는 '청량대' 3자가 쓰인 표석이 표석이 벌러덩 누워있다. 여기서 청량대는 왜정
이 선농단을 욕보이고자 제단 주변에 닦은 공원으로 '청량대공원'이라 불렸다. 공원 앞에 청
량대 표석을 세워 선농단의 이름을 억지로 대신했는데, 1945년 8.15이후 제기동과 용두동 주
민들이 몰려와 왜정이 세운 청량대 표석을 때려 눕혀 땅에 묻어버리면서 어둠의 시절에 대한
울분을 조금이나마 달랬다.
그러다가 2013년 이후 선농단을 복원할 때 다시 꺼내서 이곳에 눕혀놓았다. 90도로 세워놓으
면 왜정 잔재에 기만 살려주는 꼴이 되니 이렇게 눕힌 것이다. 비록 왜정이 남긴 고약한 흔적
이지만 기왕 다시 햇살을 보게 된 거 이런 상태로 선농단 곁에 두어 후대에 경계로 삼는 것이
좋을 것이다. 허나 이 땅에는 아직도 때려눕힐 왜정의 잔재가 너무 많다. 그것들을 모두 잡는
그날, 이 땅에 진정한 광명이 올 것이나 그럴려면 아직도 까마득하니 그저 곡소리만 나올 뿐
이다.


▲  선농대제는 끝났지만 숙성의 끝을 향해 부뚜막에 몸을 기대며
제 갈 길을 고집하는 가마솥 설렁탕


선농대제도 다 끝나고 사람들도 대부분 빠져나간 선농단에서 유일하게 펄펄 흥분을 내는 존재
가 있다. 바로 황토색 부뚜막에 걸린 가마솥 설렁탕이다. 부뚜막에는 아직도 온기(溫氣)가 여
전해 뜨거운 입김을 불어대며 탕이 아주 사골이 되도록 펄펄 숙성시키고 있는데 탕 국물이 아
주 하얗게 변해 뽀얀 눈이 내려앉은 것 같다.
설렁탕 나누기 행사에서 이 가마솥 설렁탕을 쓸 것 같지만 절대로 쓰지 않는다. 동대문구에서
따로 조리하여 가져와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이 설렁탕은 어디까지나 재현용이며 가마솥 안에
는 국물만 보일 뿐 고기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허나 냄새만큼은 설렁탕 냄새 비슷하여 아
마도 소뼈 등을 넣고 삶은 듯 싶다.


▲  선농단 북쪽 밑에 자리한 선농단 역사문화관

선농단 역사문화관은 선농단을 복원하면서 새로 닦은 것으로 2015년 4월에 문을 열었다. 이곳
에는 선농단과 선농대제의 역사와 유물, 디오라마를 비롯하여 설렁탕의 깊은 유래, 농업의 역
사와 농기구들을 다루고 있으며, 어린이를 위해 선농단 탁본 체험, 선농대제 의복 체험, 선농
대제 사진 촬영 등의 여흥거리도 준비되어 있다.
지하 2층 규모로 지하 1층에는 선농단과 선농대제, 어가행렬, 제왕의 친경의례 등을 다루었고,
지하 2층은 설렁탕과 농업 관련 유물과 서적 전시, 체험 코너, 청소년 쉼터와 배움터, 중정(
시간의 방)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정 같은 경우는 향나무 남쪽에 있었던 옛 선농단을 투영
한 곳으로 내,외부에 24절기를 표현하여 그 24절기에 따라 빛과 그림자가 햇님의 운행에 따라
시간과 계절, 날씨의 변화된 조건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알려주는 공간이다.

허나 다른 박물관, 전시관과 비교해서 크게 두드러지는 부분이나 매력은 별로 없으며, (체험
코너나 중정 정도~) 전시 유물도 좀 빈약한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관련 해설과 사진, 디오라
마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선농단 후식거리로 1바퀴 둘러보며 선농단을 복습하는 공간으로 활
용하면 될 것이다. 특히 아이들을 동반하여 왔다면 꼭 들려서 체험 코너에서 놀게 해주는 것
도 좋다. (선농대제 의복 체험, 사진 촬영 등)


문화관 정문에는 전통 찻집과 기념품점이 있어 잠시 일다경(一茶頃)의 여유도 누릴 수 있으며,
마침 정문 앞에서 설렁탕 요리 대회(설롱 요리대회)가 열리고 있어서 분위기가 가마솥 설렁탕
처럼 아주 뜨거웠다.

★ 선농단 역사문화관 관람정보 (2018년 5월 기준)
* 관람시간 : 9시~18시 (겨울 11~2월에는 17시 30분까지)
* 관람료 : 무료 (매주 월요일과 법정공휴일은 휴관)
* 상설 전시 해설 : 1일 6회 (10~16시까지 매시 정각, 12시는 없음)
* 단체 전시 해설은 10~20명 단체에 한하며 관람 5일 전까지 전화로 신청 요망
*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동 274-1 (무학로44길 38, ☎ 02-355-7990)


▲  선농단과 동적전의 위치

▲  1739년에 작성된 친경의궤(親耕儀軌)

▲  동적전식례(東籍田式禮)
동적전에 관해 기록한 책으로 1824년부터 1853년까지 쓰였다.

▲  신농씨 제례상

▲  선농대제에서 먹은 설렁탕의 위엄

선농단과 선농대제를 둘러보고 그날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는 설렁탕을 먹으러 종암초교로
이동했다. 선농단 일대를 동분서주하다 보니 시장기가 무척 치솟아 뱃속이 아주 반란 직전이
다.

설렁탕은 동대문구청에서 마련하여 제공하는 것으로 행사 관계자는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무
료로 대접하고 있다. 그러니 누구든 와서 운동장에 설치된 천막에 앉으면 설렁탕과 김치, 깍
두기, 떡, 생수, 1회용 숟가락과 젓가락을 제공받는다. 직접 줄을 서서 음식을 받는 것이 아
닌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갖다주는 방식으로 초반에 가면 자리를 잡기도 힘들뿐 더러, 음식이
내 앞에 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려 차라리 좀 늦게 가는 것이 낫다.
12시 30분 이후에는 빈 자리가 많아서 적당한 곳에 앉아 음식을 나르고 치우느라 바쁜 그들에
게 1그릇 청하니 바로 잘차려진 설렁탕을 가져다준다. 혹자(或者)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
다. '공짜 설렁탕이니 맛도 별로고 고기도 별로일 것이다'
하지만 동대문구가 지역 이름과 선농단, 선농대제의 이름을 걸고 제공하는 설렁탕인지라 맛은
시중의 유명 설렁탕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그러니 안심하고 먹자. 파도 넉넉히 들어있고, 고
기도 그런데로 담겨져 있으며, 김치와 깍두기도 맛이 괜찮다. (예전에는 밥과 탕을 따로 주었
으나 이제는 탕에 말아서 제공함)

설렁탕의 양은 사람마다 틀리겠지만 나한테는 좀 적었다. 뱃속도 1그릇을 더 조공으로 보내라
고 극성인지라 1그릇을 더 청하여 2그릇을 비웠다. 어차피 늦게 가면 초반과 달리 음식 여유
가 있기 때문에 1그릇을 더 먹고 반찬을 더 축내도 상관은 없다. 그날 배식이 어여 끝나야 설
렁탕 나누기 행사도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분 좋게 설렁탕 섭취를 마치고 나오니 시간은 어느덧 13시 20분이 되었다. 선농단에
3시간 가까이를 머물며 선농단과 선농대제, 선농단 역사문화관, 향나무, 거기에 설렁탕까지
정말 남부럽지 않은 시간을 보내며 눈과 입, 코, 귀 등 5각(五覺)이 즐거웠던 답사였다.
이렇게 하여 내년 선농대제와 설렁탕을 벌써부터 고대하며 '설렁탕의 고향, 선농단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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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개일 - 2018년 5월 2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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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제작 여행답사기 모음집 (2014년 8월초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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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평구 진관사, 삼천사, 북한산성 2003, 5 200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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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북구 성북동(간송미술관 / 심우장 / 성락원 / 선잠단터) 2003, 10 20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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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관악구

관악산(낙성대유지 / 낙성대 / 봉천동 마애불) 2004, 2 200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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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북구 성북동(간송미술관 / 선잠단터) 2004, 10 200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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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종로구 북악산 백석동천 2005, 5 200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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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종로구 경복궁, 인사동 2006, 1 200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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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은평구 숙용심씨 묘표, 영산군 묘역 2006, 2 200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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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중구 덕수궁 2006, 3 200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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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중구
종로구

서울시립미술관, 정동교회, 옛 러시아공사관터,
인사동

2006, 3 200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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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종로구 창경궁 (1) 2006, 4 20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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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종로구 창경궁 (2) 2006, 4 20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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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강남구 봉은사 1 (사월초파일) 2006, 5 200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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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강남구 봉은사 2 (사월초파일) 2006, 5 200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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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종로구
서대문구

세검정, 대원군별장, 홍지문
보도각백불

2006, 8 200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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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종로구

북한산 금선사

2008, 4 200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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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금천구

호암산 호압사

2008, 4 200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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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금천구

호암산 (호압사, 석구상, 한우물, 호암산성) 2009, 1 200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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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종로구

선희궁터, 청와대분수대, 청와대앞길,
경복궁신무문, 인사동

2008, 11 200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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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강남구

대모산 불국사 (사월초파일)

2008, 5 200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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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은평구

북한산 삼천사 (사월초파일)

2008, 5 200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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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이종석 별장

2008, 10 200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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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노원구 수락산 학림사 2009, 4 2009, 8 ☞ 글보러 가기

23

종로구 북악산 백석동천 2008, 11 2009, 12 ☞ 글보러 가기

24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 2008, 5 2010, 4 ☞ 글보러 가기

25

은평구 태화산 수국사 2009, 5 2010, 7 ☞ 글보러 가기

26

종로구 부암동 뒷골마을, 북악산길, 창의문 2010, 1 2011, 3 ☞ 글보러 가기

27

관악구

관악산 관음사, 효민공이경직묘역, 사당동백제요지,
구벨기에공사관

2009, 3 2011, 4 ☞ 글보러 가기

28

성북구

흥천사

2010, 5 2011, 5 ☞ 글보러 가기

29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2010, 5 2011, 5 ☞ 글보러 가기

30

종로구

가회박물관, 삼청동(북촌), 인사동

2009, 8 2011, 9 ☞ 글보러 가기

31

성북구

성북동 삼청각, 홍련사, 북악산

2010, 5 2011, 10 ☞ 글보러 가기

32

도봉구

방학동 은행나무, 원당샘, 양효안맹담/정의공주묘
목서흠묘역

2009, 10 20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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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종로구

북악산 백석동천 2010, 1 2012, 2 ☞ 글보러 가기

34

종로구

장의사지당간지주, 세검정, 석파정별당, 홍지문

2010, 1 2012, 2 ☞ 글보러 가기

35

강서구

구암공원(광주바위), 허가바위, 허준박물관

2010, 3 2012, 3 ☞ 글보러 가기

36

노원구

불암산 학도암, 이윤탁한글영비

2010, 4 2012, 4 ☞ 글보러 가기
37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2011, 5 2012, 5 ☞ 글보러 가기
38

동작구

상도동 사자암

2011, 5 2012, 5 ☞ 글보러 가기
39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창빈안씨묘역, 호국지장사)

2010, 6 2012, 6 ☞ 글보러 가기
40

종로구

북악산 백석동천(백사골)

2009, 10 2012, 8 ☞ 글보러 가기
41

성북구

북악산 북악하늘길(김신조루트), 북악산길

2011, 5 2012, 9 ☞ 글보러 가기
42

성북구

성북동 심우장, 최순우옛집, 선잠단터

2010, 5 2012, 10 ☞ 글보러 가기
43

종로구

북촌문화센터, 관상감관천대, 계동길, 창덕궁길,
요금문, 고희동가옥, 백흥범가옥, 빨래터

2011, 7 2013, 1 ☞ 글보러 가기
44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 2012, 5 2013, 4 ☞ 글보러 가기
45 종로구

석파정별당(석파랑), 부침바위터, 무계정사터,
현진건집터, 청계동천, 반계윤웅렬별장

2011, 11 201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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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종로구

재동백송, 재동초교, 백인제가옥, 북촌3경 일대,
정독도서관(서울교육박물관), 안국동 윤보선가

2011, 9 201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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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강북구

북한산 본원정사

2012, 5 201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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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성북구

정릉동 경국사

2012, 5 201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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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종로구

북악산 백사실(백석동천) 2012, 7 201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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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도봉구

도봉산 (자운봉, 포대능선, 만월암, 도봉서원,
광륜사)

2012, 5 201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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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2012, 10 201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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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금천구

호암산 (석구상, 호암산성터, 한우물, 불영암,
칼바위)

2011, 11 201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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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종로구

윤동주시인의 언덕(윤동주문학관), 청운공원

2011, 8 201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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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종로구
중구

서울연등회 (서울연등축제)
조계사, 우정국로, 청계천, 광통교

2013, 5 201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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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종로구

북한산 승가사 (구기동 마애여래좌상) 2012, 5 201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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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중구

환구단(원구단), 덕수궁 대한문, 성공회 서울성당,
양이재, 구세군 중앙회관

2010, 4 201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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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인천 - 27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

글 공개시기

링크

1

부천

야인시대촬영장, 루미나리에축제 2003, 10 200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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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화

석모도 보문사, 매음리해변 2004, 11 200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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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강화 광성보, 용두돈 2004, 11 200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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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강화 강화도 선원사 연꽃축제장 2005, 8 200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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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양 북한산성(대서문, 중흥사터, 북한산행궁터) 2006, 8 200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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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고양 북한산성(태고사, 산영루터, 북한산성계곡) 2006, 8 200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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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성남 망경암, 봉국사 (사월초파일) 2006, 5 200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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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오산
수원

오산 물향기수목원 / 수원 팔달문

2006, 11 200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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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남양주 수락산 흥국사 2007, 12 2008, 3 ☞ 글보러 가기

10

남양주 덕릉마을 산신각, 덕흥대원군 묘역 2006, 12 2008, 5 ☞ 글보러 가기

11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용암사) 2007, 9 2008, 10 ☞ 글보러 가기
12

안양

안양사, 석수동마애종, 석수동석실고분 2007, 11 2009, 3 ☞ 글보러 가기
13

안성

서운산 석남사 (사월초파일)

2008, 5 2009, 5 ☞ 글보러 가기
14

하남

춘궁동동사지(동사지3/5층석탑), 광주향교

2008, 10 2010, 2 ☞ 글보러 가기
15

안양

삼성산 염불암, 중초사지당간지주, 안양예술공원

2008, 11 2010, 12 ☞ 글보러 가기
16

양평

용문산 사나사, 사나사계곡

2010, 5 2011, 5 ☞ 글보러 가기
17

강화

강화도 선원사 (연꽃축제)

2009, 8 2011, 8 ☞ 글보러 가기
18

고양

북한산성 중성문, 노적사, 중흥사터, 봉성암,
산영루터

2008, 4 2011, 8 ☞ 글보러 가기
19

포천

반월성, 청성공원, 포천향교

2009, 8 2011, 10 ☞ 글보러 가기
20

하남

선법사(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2008, 10 2011, 11 ☞ 글보러 가기
21

고양

한미산(노고산) 흥국사

2008, 11 2011, 12 ☞ 글보러 가기
22

고양

중남미문화원, 벽제관터

2010, 4 2012, 5 ☞ 글보러 가기
23

강화

장정리 석조여래입상, 장정리5층석탑, 고려궁터,
김상용 순절비

2009, 8 2012, 8 ☞ 글보러 가기
24

이천

관고리 석불입상, 설봉공원(설봉저수지),
설봉서원, 설봉산 영월암

2009, 5 2012, 10 ☞ 글보러 가기
25

양평

용문산 용문사,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

2010, 11 2012, 11 ☞ 글보러 가기
26

파주

고령산 보광사

2009, 12 2013, 2 ☞ 글보러 가기
27

화성

제암리 3.1운동순국유적 2012, 3 2014, 3 ☞ 글보러 가기

 

강원도 - 18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양양

낙산사, 홍련암, 오색약수, 성국사, 설악산 주전골 2004, 2 200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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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릉 객사문, 오죽헌, 경포대, 굴산사터, 신복사터 2004, 6 200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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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양구 양구 향토사료관, 심곡사 2004, 9 200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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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속초
고성

속초 탑공원, 고성 청간정 2005, 6 200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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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성 건봉사 2005, 6 200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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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평창 대관령 양뗴목장 2006, 5 200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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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강릉
동해

경포대해수욕장, 등명낙가사, 묵호항 2006, 5 200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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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동해 감추사, 감추해변 2006, 11 200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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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태백 구문소 2006, 11 200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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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양구

양구 선사박물관 2008, 12 20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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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화천

토고미마을(산천어축제), 딴산 2010, 1 2011, 1 ☞ 글보러 가기
12

화천,양구
춘천

화천 평화의댐(세계평화의종공원), 춘천 윗샘밭 2010, 1 2011, 2 ☞ 글보러 가기
13

평창

남산공원, 송학루, 노산성

2009, 9 2011, 12 ☞ 글보러 가기
14

삼척

미인폭포(통리협곡), 여래사

2012, 1 2012, 6 ☞ 글보러 가기
15

정선

정선5일장, 봉양리뽕나무, 아우라지

2009, 10 2012, 7 ☞ 글보러 가기
16

영월

보덕사, 금몽암, 낙화암, 금강정, 금강공원

2009, 10 2013, 11 ☞ 글보러 가기
17

태백

태백산 (당골, 석탄박물관, 석장승, 눈꽃축제장,
단군성전)

2012, 1 2014, 2 ☞ 글보러 가기
18

동해

추암(추암해수욕장, 촛대바위), 해암정,
추암조각공원, 북평5일장

2012, 6 2014, 7 ☞ 글보러 가기

 

충청북도 - 10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충주

미륵리사터, 미륵리가마터

2003, 7

200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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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천

빈신사지 석탑, 덕주사, 덕주산성, 송계9곡

2003, 7

20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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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보은
대전

보은 삼년산성
대전 동춘당 / 송애당 / 법동 석장승

2003, 11

20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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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단양 구인사 2004, 12 200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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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청주 상당산성 2005, 6 200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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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영동 영동향토민속자료전시관, 가학루, 황간향교 2008, 2 200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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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충주

단호사, 사문리당산나무숲, 미륵리사터,
하늘재, 충주호

2008, 9 200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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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단양

사인암, 청련암, 중선암, 북상리 시골

2009, 10 20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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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괴산

각연사 (각연사계곡)

2009, 11 20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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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괴산

원풍리 마애2불병좌상, 홍범식고가, 개심사

2009, 11 20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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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충청남도 - 12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서산 서산 마애3존불, 보원사터 2004, 8 200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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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금산 진악산 보석사 (1) 2005, 2 200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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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금산 진악산 보석사 (2) / 진악산 자연휴양림 2005, 2 200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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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금산 칠백의총 2005, 2 200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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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천안 태화산 광덕사 2008, 5 200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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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당진
태안

행담도, 꽃지해수욕장, 방포항, 안면도자연휴양림,
안면암

2009, 3 200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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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대전 식장산 고산사 2008, 11 2009. 11 ☞ 글보러 가기

8

공주 계룡산 동학사 2011, 2 2012. 3 ☞ 글보러 가기

9

공주 계룡산 남매탑, 삼불봉, 천진보탑, 용문폭포 2011, 2 2012. 3 ☞ 글보러 가기

10

공주

계룡산 갑사

2011, 2 2013. 2 ☞ 글보러 가기

11

태안

신진도(안흥외항), 마도, 안흥항, 안흥성(태국사)

2010, 2 2013, 8 ☞ 글보러 가기

12

홍성 용봉산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용봉산자연휴양림) 2012, 4 2014, 6 ☞ 글보러 가기

 

전라북도 - 7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부안 상록해수욕장, 내소사, 곰소항 2003, 8 200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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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임실 오수 의견비, 사선대 / 운서정 2006, 6 200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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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수 의암사(논개사당) 2008, 2 200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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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무주
장수

한풍루, 무주향교
의암송, 장수향교

2008, 2 200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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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전주 전주한옥마을, 오목대(이목대), 한벽당 2010, 1 20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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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군산

동국사, 은적사, 발산초등학교

2009, 9 20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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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군산

응항, 선유도, 고군산군도 일주

2012, 4 201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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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전라남도 - 11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장성
담양
나주

장성 방울샘,
담양 관방제림 / 담양읍 5층석탑 / 석당간
나주 남고문 / 정수루

2003, 12 200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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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광주 무양서원, 장고분 2005, 4 200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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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광 내산서원 2006, 10 200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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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주
광주

정수루, 금성관
광주 풍영정

2006, 10 200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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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순천 금전산 금둔사 2008, 11 2009, 11 ☞ 글보러 가기

6

순천 개운산 동화사 2008, 11 2010, 1 ☞ 글보러 가기

7

순천 조계산 천자암 2008, 11 2010, 2 ☞ 글보러 가기

8

장성 백암산 백양사 2009, 9 2011, 9 ☞ 글보러 가기

9

광주 무등산 원효사 2009, 9 2011, 10 ☞ 글보러 가기

10

구례 지리산 천은사(천은제) 2011, 4 2012, 4 ☞ 글보러 가기

11

곡성 동리산 태안사(태안사계곡) 2010, 4 2013, 5 ☞ 글보러 가기

 

대구, 경상북도 - 17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경주

반월성, 석빙고, 남산 서쪽(용장사터, 천룡사터)

2003, 4 200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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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주 경주읍성, 경주관아터, 옛 경주신사 2005, 11 200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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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주

노서동 고분군, 노동동 고분군 2005, 11 200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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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안동 제비원 석불, 옥동3층석탑 2005, 12 200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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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주 성산관, 쌍충사적비, 성밖숲, 성산동 고분군 2006, 3 200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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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성주
대구

성산동 고분군, 경상감영공원 2006, 3 200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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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문경 문경새재(여궁폭포, 혜국사, 주흘산, 주흘관) 2006, 10 200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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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달성 비슬산(유가사 / 암괴류), 현풍석빙고 2006, 10 200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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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구미 의구총, 낙산리고분군, 낙산리3층석탑 2008, 2 200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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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예천
상주

개심사지5층석탑
용화사(증촌리석불좌상/입상), 전고령가야왕릉

2007, 12 200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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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경주

남산 불곡 석불좌상, 신문왕릉 2008, 7 2009, 7 ☞ 글보러 가기

12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불무사) 2008, 7 2009, 9 ☞ 글보러 가기

13

영덕
울진

고래불해수욕장, 후포항, 월송정, 월송해변 2009, 6 2011, 6 ☞ 글보러 가기

14

달성

다람재, 도동서원, 이노정 2009, 7 2012, 12 ☞ 글보러 가기

15

청도

남산 낙대폭포 2011, 6 2013, 7 ☞ 글보러 가기

16

달성

비슬산 용연사 2011, 3 2014, 2 ☞ 글보러 가기

17

예천

회룡포, 비룡산 2011, 11 2014, 7 ☞ 글보러 가기

 

부산 - 13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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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운대구

해운대해수욕장, 장산(폭포사 / 장산폭포) 2005, 4 200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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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구
연제구

부산근대역사관, 연산동고분군

2006, 4 200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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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영구
강서구

광안리해수욕장, 가덕도(외양포, 대항, 세바지)

2007, 2 200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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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강서구
서구

망상도/유주암, 송도해변, 송도해수욕장

2007, 7 2008, 9 ☞ 글보러 가기
5

기장군

불광산 (장안사. 장안사계곡) 2007, 11 2009, 1 ☞ 글보러 가기
6

기장군

불광산 (척판암, 백련암) 2007, 11 2009, 1 ☞ 글보러 가기

7

서구
북구

내원정사, 만덕사(만덕사 당간지주), 알터유적 2008, 8 2009, 9 ☞ 글보러 가기

8

금정구

금정산(금정산성, 국청사) 2009, 4 2011, 1 ☞ 글보러 가기

9

금정구

금정산 미륵사, 금성동 2009, 4 2011, 1 ☞ 글보러 가기

10

강서구

가덕도(가덕도등대, 외양포, 대항, 새바지) 2009, 7 2012, 7 ☞ 글보러 가기

11

사상구
강서구

백양산 운수사, 백양산 숲길,
범방동3층석탑, 부산경남경마공원

2009, 4
2009, 6

2012, 12 ☞ 글보러 가기

12

사하구

몰운대, 다대포

2011, 6

2013, 7 ☞ 글보러 가기

13

남구

백운포, 오륙도 (오륙도등대, 등대섬)

2010, 6

2014, 1 ☞ 글보러 가기

 

울산, 경상남도 - 22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울산
부산

처용암
옥련선원 / 정묘사(배롱나무)

2003, 8 200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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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해
부산

은하사, 수로왕비능, 구지봉, 초선대, 봉황동 유적
다대포(몰운대)

2004, 1 200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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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창원 창원 불곡사 2005, 4 200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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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거제
통영

학동해변, 옥포대첩비, 한산도 2005, 10 200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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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통영 한산도 제승당 2005, 10 200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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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창원 무학산(관해정), 가포해변 2006, 4 200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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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김해

김해 수로왕릉

2006, 4 200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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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진주
사천

진주 금선암
사천읍성(산성공원), 대방진굴항

2007, 1 2008, 1 ☞ 글보러 가기
9

함안
창원

함안박물관, 말산리/도항리고분군
진해 우체국

2007, 1 2008, 1 ☞ 글보러 가기
10

창원

불모산 성흥사, 대장동계곡

2007, 7 2008, 9 ☞ 글보러 가기
11

밀양

밀양 표충비, 무안리 향나무(홍제사) 2007, 11 2009, 1 ☞ 글보러 가기
12

양산

천성산 홍룡사(홍룡폭포), 원효암 2008, 10 2009, 6 ☞ 글보러 가기

13

울산 일산해수욕장, 대왕암공원 2008, 8 2009, 7 ☞ 글보러 가기

14

창녕

창녕석빙고, 송현동석불좌상, 송현동고분군,
진흥왕척경비, 만옥정공원, 남지철교

2008, 9 2010, 5 ☞ 글보러 가기

15

거창

수승대(귀연서원, 요수정)

2008, 10 2011, 7 ☞ 글보러 가기

16

울주
밀양

서생 나사리해변,
밀양 얼음골(천황사)

2010, 7 2011, 7 ☞ 글보러 가기

17

함양

상림공원, 한남군묘역

2009, 7 2012, 7 ☞ 글보러 가기

18

산청

목면시배유지, 배산서원, 덕천서원, 남명조식유적

2008, 10 2012, 9 ☞ 글보러 가기

19

남해

호구산 용문사, 남해자생식물단지, 미국마을,
용소리/금평해변

2009, 11 2012, 11 ☞ 글보러 가기

20

통영

통영 달아공원

2011, 3 2013, 3 ☞ 글보러 가기

21

울주

가지산 석남사 (석남사계곡)

2010, 7 2013, 9 ☞ 글보러 가기

22

고성

연화산 옥천사, 공룡발자국화석

2010, 10 2013, 11 ☞ 글보러 가기

 

제주도 지역 - 2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제주 서해바다, 한라산(성판악 / 사라악 / 진달래밭) 2005, 8 200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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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주 한라산(백록담 / 탐라계곡), 서해바다 2005, 8 200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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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지역 - 1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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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열도

동경 지역(긴자, 록뽕키, 우에노, 도쿄도청타워,
아사쿠사<관음사>, 신주쿠, 코쿄, 디즈니랜드)

2002, 5 200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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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개된 글 중에서 하자가 없는 글들만 선정해서 지역별로 모았습니다.
2. 2003년 5월 이전(2개 제외) 글과 아직 공개되지 않은 답사기는 제외했습니다.
3. 답사기 내용과 사진을 전체 혹은 일부 퍼갈 경우, 반드시 출처와 원작자(박융) 이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4. 사진이 일부 혹은 모조리 뜨지 않는 글들(주로 2004 ~ 2005년판)이 꽤 많습니다. 이 점 널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5. 공개된 글 중, 추후 업데이트 판이 나올 경우, 이전 판은 모음집에서 삭제 될 수 있으며 2개 이상의 시리즈로
작성된 글 중 본인 필요에 따라 1개나 2개로 통폐합 정리될 수 있습니다.
6. 지역 별로 분류했으나 지역이 2개 이상 겹치는 글은 먼저 간 곳을 기준으로 분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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