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고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10.03 하늘과 맞닿은 강원도의 남쪽 지붕 ~ 정선 함백산, 만항재 (야생화탐방로)
  2. 2012.12.18 우리나라 서원의 떠오르는 성지 ~ 달성 도동서원 (다람재, 이노정) 1

하늘과 맞닿은 강원도의 남쪽 지붕 ~ 정선 함백산, 만항재 (야생화탐방로)

 


' 강원도의 남쪽 지붕, 함백산(咸白山) 나들이 '

▲  함백산 꼭대기


 


얄미운 여름 제국(帝國)이 한참 기반을 다지던 6월 끝 무렵에 일행들과 강원도 태백, 정선 지
역을 찾았다.
오전에 삼척(三陟) 통리협곡에 숨어있는 미인폭포(美人瀑布)를 둘러보고 태백(太白)으로 넘어
와 돌솥밥정식으로 배불리 점심을 먹으며 시장한 배를 달랜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그날의 마
지막 답사지인 함백산으로 이동했다.

태백에서 고한으로 이어지는 38번 국도를 따라 두문동재터널을 지나는데 이 터널이 생기기 전
에는 한계령(寒溪嶺)이 애교로 보일 정도로 꽤나 험준함을 자랑하던 두문동재(싸리재)를 뱀의
허리에 올라탄 듯 꼬불꼬불 넘어야 했다. 싸리재의 높이는 무려 1268m, 약 20여 년 전 고한에
서 태백으로 가는 완행버스를 타고 넘은 적이 있었지. 그 시절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느
새 고개 밑에 땅굴이 뚫려 고개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두문동재를 넘어 고한읍을 코앞에 둔 상갈래3거리에서 함백산로로 좌회전하여 잠시 태백선 철
로와 나란히 달린다. 허나 정암터널에서 철로는 사라지고 대신 정선 굴지의 명소로 추앙을 받
는 정암사(淨巖寺)가 잠시 들렸다가라며 손을 내민다. 이곳은 수마노탑(水瑪瑙塔)으로 유명한
절로 거의 10여 년 전, 발자국을 남긴 바가 있다. 그때의 빛바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가
무섭게 정암사를 지나쳐 한적한 고갯길을 정신없이 오르니 1100m 고지에 자리한 만항(晩項)마
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만항마을(고한1리)은 만항재 북쪽에 자리한 깊은 산골로 왜정 때 탄광이 개발되면서 1970년대
까지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하지만 석탄의 시대가 저물면서 정선,태백 일대를 검게 주름잡던
탄광(炭鑛) 상당수가 문을 닫았고, 만항마을의 탄광 역시 그 거친 흐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
라지면서 존재감도 느끼기 힘든 적막한 마을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가 대자연이 내린 소중한 선물을 바탕으로 매년 여름에 함백산 야생화축제롤 속세에 선
보이면서 마을의 부흥을 다시 꿈꾸고 있다.

만항마을을 지나 만항재를 힘겹게 오르던 버스는 함백산 소공원에서 그 장대한 바퀴를 멈춘다.
이곳은 만항재쉼터(약 1300m) 동쪽으로 함백산 등산로 기점의 하나이다. 이미 해발 1300m까지
편하게 올라왔으니 여기서부터 달랑 해발 273m 정도만 오르면 된다. 꼭대기까지는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고 하며 등산이 싫은 사람은 이곳에 펼쳐진 야생화를 둘러보라고 그런다. 허나 야
생화는 아직 철이 아닌지라 꽃망울을 터트린 꽃은 별로 없었고, 나는 함백산에 마음을 빼앗긴
상태라 함백산 트래킹에 나섰다.

우리가 오른 만항재는 북한과 만주, 왜열도 등, 실지(失地)를 제외한 이 땅에서 가장 높은 고
개로 4발 수레로 속편히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만항재의 높이는 1,330m로 고한과 태백산(太白山) 북쪽을 이어주며, 탄광의 쇠퇴와 주변 도로
의 개선으로 많이 한가해졌으나, 근래 관광/드라이브 수요가 많이 늘어났다. 천상(天上)의 드
라이브 코스로 명성을 누리고 있지만 고개의 굽이가 각박하고 난이도가 높으니 각별히 주의가
요망된다. 단순히 인왕산길/북악산길을 생각하고 오면 큰 오산이다.


▲  만항재 야생화 탐방로 입구
저 숲속에 많은 야생화들이 수줍은 미소를 머금으며 숨어있다. 이 탐방로는
만항재쉼터까지 이어진다.

▲  야생화 옆에 심어진 야생화 탐방로 표석


♠  구름 속의 등산, 함백산 더듬기

▲  함백산 만항재 기점

함백산으로 오르는 등산 기점은 만항재와 적조암입구(만항마을 북쪽), 두문동재, 태백 절골 등
이 있다. 이중에서 가장 쉬운 코스는 만항재로 1시간 20분이면 정상에 이른다. 우리가 가는 코
스가 바로 만항재 코스로 기점에서 윗사진에 나온 창옥봉(1238m)을 넘으면 커다란 산이 앞에 나
타나는데, 그 산이 바로 함백산이다. 산행 시간을 조금이나마 줄이고 싶다면 태백선수촌과 오투
리조트로 넘어가는 수레길로 가면 함백산 아랫도리이다. (창옥봉 산길과 만남)

창옥봉 코스는 경사가 완만하고 숲이 무성하여 오르는데 별로 힘든 것은 없으나 문제는 함백산
이다. 꽤 높은 산이다보니 가까운 거리임에도 오르는 것이 만만치가 않다. 그렇다고 낭떠러지나
암벽을 타야 되는 정도는 아니지만 산길 경사가 속세살이처럼 무척이나 각박하다. 게다가 날씨
도 여름이니 힘든 정도는 더하다. 그래서 40명이 넘는 일행 중 함백산 정상까지 오른 이는 12명
에 불과하며, 18명 정도는 중간 포기, 10여 명은 아예 만항재 야생화밭에 눌러앉았다.

해발 1,300m가 넘는 만항재와 함백산 주변은 하늘과 무척이나 가까운 곳이라 그런지 한기가 느
껴질 정도로 선선하며, 사방이 구름으로 덮여있다. 그래서 시야도 썩 좋은 편은 아니다. 거기에
안개까지 손을 보태면서 시야는 더욱 흐려진다. 하얀 구름이 산길을 오르는 나의 몸을 관통해
지나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진한 구름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이다.
아직 야생화철이 아니라 피어있는 꽃은 적지만 온갖 수풀들이 앞다투어 자라나고 있으며, 숲도
제법 울창하여 천상의 화원(花園)이 따로 없다. 하늘과 가까워질수록 숲은 조금씩 변화를 보이
는데, 정상에 가까워지면 하늘을 가리고 선 숲은 사라지고 잡초만 무성하다. 거기에 오리무중(
五里霧中) 보다 더한 안개까지 자욱히 끼었으니 인간이 가서는 안될 하늘나라나 신선 세계의 경
계를 넘어선 것은 아닌지 걱정까지 들 정도이다. 갑자기 신선이나 하늘나라 관계자가 튀어나와
왜 우리 경계를 침범했냐고 잡아갈 것 같은 분위기였지. 만약 정말 그렇다면 뭐라고 변명을 해
야 될까? 그냥 길이 있어서 올라왔다고 하면 되려나?

하늘과는 한뼘도 안될 정도로 높은 함백산 정상에는 정상 표석과 돌탑이 세워져 신비로운 풍경
을 더해준다. 물론 표석과 돌탑은 근래에 세운 것이다. 힘들게 정상까지 올라와 마치 새나 용의
등에 올라탄 듯 천하를 바라보는 재미도 참 쏠쏠한데, 안개가 주변을 싹 지워버렸으니 굽어보는
재미 마저 없다. 솔직히 20m 앞도 흐릿하게 보일 정도이다.


▲  함백산 서쪽인 창옥봉 산길
오르막으로 시작된 산길은 이곳에서 조금 급해진다. 허나 이곳을 지나면
다시 진정을 되찾으면서 마실 수준으로 길이 완만해진다.

▲  실타래처럼 가늘게 변하는 창옥봉 산길

▲  숲터널을 이룬 산길 -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하니
혹 하늘 위로 올라선 것은 아닐까?

▲  창옥봉 정상(1238m)에 자리한 함백산 기원단(祈願壇)

창옥봉 정상부에는 태백산 천제단(天祭壇)과 비슷하게 생긴 돌로 쌓은 제단(祭壇)이 있어 마음
을 잠시 숙연하게 만든다.
함백산 기원단이라 불리는 이 제단은 큰 돌로 고인돌처럼 얹혀 제단을 만들고 그 3면에 돌로 담
을 두른 형태로 오랜 옛날부터 주변 백성들이 하늘에 제를 올리고 소원을 들이밀던 민간신앙의
현장으로 전해진다.

왜정 이후 함백산 주변에 많은 탄광이 들어서자 붕괴사고를 비롯한 온갖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
났는데, 광부의 가족들이 이곳을 찾아 무사 안전을 기도했다. 허나 탄광이 사라지면서 그 풍습
도 사라졌고 지금은 함백산을 꾸며주는 오랜 장식물이자 산악/민간신앙의 현장으로 조용히 자리
를 지킨다.


▲  기원단 바깥부분 (기원단 돌담)

▲  함백산의 위엄

창옥봉을 넘어서니 바로 앞에 커다란 산이 우리를 단단히 주눅들게 만든다. 저 산이 바로 우리
가 올라야 될 함백산. 그래도 꽤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물론 거리상으
로는 절반은 왔음) 지금까지 함백산의 조삼모사(朝三暮四) 장난에 보기 좋게 속은 것이다. 본격
적인 산행은 이제부터~~~ 지금까지는 그저 몸풀기용.. 비로소 본색을 드러낸 함백산의 위엄 앞
에 일행 상당수는 기가 질려 산행을 포기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  함백산 남쪽을 가로질러 태백선수촌, 오투리조트로 넘어가는 서학로

▲  함백산으로 오르는 산길
서학로와 만나는 곳에서 함백산 정상까지 40분 정도를 더 올라가야 된다.
처음에야 경사가 만만하지만 하늘과 가까워질 수록 서서히 각박해진다.

▲  함백산 정상부 산길 (1)

경사가 각박한 숲길을 힘겹게 올라서면 키 작은 나무와 잡초만 무성한 함백산 정상부에 이른다.
하늘과 지척이라 안개가 자욱하여 주변이 보이질 않는다. 이 길을 계속 가면 나도 저 안개 속에
묻혀 속세에서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함백산 꼭대기를 인간들에게 보이기 싫은 하늘의 수
작을 뚫고 계속 길을 임한다.


▲  함백산 정상부 산길 (2)
정상은 가까워진 듯 싶은데, 안개가 떼어갔는지 좀처럼 나오질 않는다.

▲  함백산 정상 밑에 자리한 동그란 함백산 안내문

▲  함백산 안내문에서 싸리재, 적조암입구로 내려가는 길

▲  안개에 둘러싸여 희미하게 보이는 돌탑이 바로 함백산 정상(1572.9m)이다.

▲  드디어 도착했다. 함백산 정상 (정상 표석과 돌탑)

함백산이 내린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드디어 당당하게 함백산 정상에 두 발을 딛는다. 나의 등
장에 함백산도 조금은 쫄았는지 급히 안개를 소환하여 정상 주변을 안개로 두르나 소용이 없는
짓이다. 이미 정상은 나에게 적나라하게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일행 가운데 3번째로 정상에 도착했는데, 정상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서 오른 이들은 내
려갔음) 아무도 없는 꼭대기에 나홀로 있으니 마치 산신이 되어 산을 접수한 기분이다. 정상을
하얗게 감싼 안개는 함백산을 신비로운 풍경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하늘과 가까운 이곳에 발을
들이면 마치 큰일날 것처럼 말이다. 허나 이곳도 엄연한 인간의 세상이다. 하늘과 가깝다고는
해도 하늘의 세상은 아닌 것이다.

함백산(1572.9m)은 북한과 만주, 왜열도 등 잃어버린 땅을 제외한 이 땅에서 6번째로 높은 산이
다. 태백산 북쪽에 자리해 있으며, 태백시 서쪽을 크게 감싸고 있는데, 예전 이름은 대박산(大
朴山)이었다. 신경준(申景濬)의 산경표(山經表)에는 대박산으로 나와 있으며, 함박산(函朴山)이
라 불리기도 했다.
이 산은 상/중/하함박산이 있어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며, 상함박산은 지금의 은
대봉, 중함박산은 본적산, 하함박산은 바로 이곳이다. 대박/함박이라 불리던 것이 언제부터 함
백산으로 이름이 갈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에 변경된 것으로 보이며, 함백이나 대박,
함박 모두 '크게 밝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인근 태백산에 가려 존재감이 덜하긴 하지만 태백
산 못지 않게 위엄 돋는 산이다.

함백산 정상에는 근래에 세운 함백산 표석과 돌탑이 제단처럼 자리해 있는데, 표석은 네모난 단
(壇) 위에 세워져 있으며, 돌탑은 그 뒤에 자리해 표석을 수식한다. 내가 오른 산 가운데서 2번
째로 높은 산으로 제일 높은 곳은 한라산(漢拏山, 1950m)이고, 그 다음이 이곳 함백산이다.

정상 일대는 선선함을 넘어 쌀쌀하다. 여름의 제국도 고개를 숙이고 비켜간다는 함백산, 무더위
는 함백산과 태백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그 쌀쌀한 정상을 혼자 지키고 있으니 잠시 뒤 다른
일행들도 쏙쏙 모습을 드러내 꼭대기로 올라온다. 그래서 앞서 간 사람 2명을 포함해 12명이 정
상을 찍게 되었다.
정상에 올랐으면 내려가는 것도 당연한 일인데, 사람의 마음이 그렇지가 못해 계속 정상에 머물
고 싶은 욕심이 일어난다. 등산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고, 정상에 올라섰으면 적당히 머물다가
내려가야 뒷탈이 없는데, 그걸 지키지 못해 탈이 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산도 마찬가지로 정상
에 왔으면 잠시 머물다가 다음 사람을 위해 넘겨주는 것이 예의이지만 기념사진을 찍는다 뭐한
다 해서 금방 비켜주지를 않는다. 정상이란 그저 잠시 지나가는 경유지일뿐인데, 왜 이리도 욕
심이 큰지 특히나 이 땅의 상류층과 위정자들이 더한 것 같다. 적당히 먹고 좀 내려와라. 많이
먹었다 아이가..?

하늘을 향한 비밀의 문 같은 함백산 정상에서 약 15분 정도 머문 것 같다. 힘들게 올라온 정상
과 작별하기가 너무 아쉬워 제일 끝으로 내려갔는데, 그래도 아쉬운지 몇 번이나 정상을 돌아봤
는지 모른다. 다음에 또 인연이 있을까?? 서울에서 가까우면 종종 찾아오겠는데, 500리가 넘는
곳이니 그것도 쉽지가 않다.


▲  정상 돌탑의 뒷모습


▲  정상에서 속세로 내려가는 길 (만항재 방면)

▲  함백산 밑 서학로

속세로 내려갈 때는 올라갈 때와 달리 금방 내려갔다. 올라가는 것은 어려워도 내려가는 건 반
대로 쉽기 때문이다.

내려갈 때는 만항재 기점까지 가지 않고 태백선수촌으로 넘어가는 길과 만나는 지점까지만 갔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관광버스가 그곳까지 몸소 바퀴를 굴렸기 때문이다. 하늘의 기가 서린 함
백산의 청정한 기운을 온몸으로 누린 일행들이 모두 타자 만항재 기점으로 이동해 나머지 일행
을 태우고 속세로 내려왔다.

이렇게 하여 함백산을 비롯한 그날의 강원도 나들이는 대단원의 휘장을 걷는다 ~~

※ 만항재, 함백산 찾아가기 (2015년 9월 기준)
* 청량리역, 양평역, 원주역, 제천역, 동해역에서 영동선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고한역 하차
* 동서울터미널에서 고한(고한사북)행 직행버스가 20~50분 간격으로 떠난다.
* 인천, 수원, 안산, 부천, 고양, 의정부, 성남, 원주, 제천, 대구(북부), 부산(노포동), 포항
  에서 고한(사북고한)행 직행버스 이용
* 고한사북터미널과 고한역에서 만항행 군내버스 이용 (고한사북터미널에서 7:30, 9:50, 14:10,
  19시 출발) → 적조암 코스는 적조암입구에서 내리면 되며, 만항재 코스는 만항마을 종점에서
  40분 올라가야 된다. (택시를 타고 들어가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움)
* 승용차로 가는 경우
① 중앙고속도로 → 제천나들목을 나와서 38번 국도 직통 → 고한터널을 지나 상갈래교차로에서
   함백산로로 직진 → 정암사 → 적조암입구 → 만항마을 → 만항재
② 중앙고속도로 → 제천나들목을 나와서 38번 국도 직통 → 석항에서 태백방면 31번 국도 →
   상동읍 → 화방재에서 만항로로 좌회전 → 만항재

* 매년 8월 초/중순에 만항재 산상의 화원, 야생화공원, 고한시장 일대에서 함백산 야생화 축제
  가 열린다. 함백산 산신제와 등반대회, 숲속음악회, 야생화 분재와 사진/작품 전시, 축하공연,
  향토음식 장터등의 프로그램이 있으며, 자세한 축제 정보는 ☞ 함백산 야생화 축제 홈페이지
  참조 (☎ 문의 고한함백산축제위원회 033-592-5455)
* 만항재(만항재마을, 야생화공원)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 함백산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 태백시 황지동


▲  함백산 지도 (정선 관광문화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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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개일 - 2015년 9월 22일부터
 
* 글을 보셨으면 그냥 가지들 마시구 공감이나 추천을 흔쾌히 눌러주시거나 댓글 몇 자라도
   달아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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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서원의 떠오르는 성지 ~ 달성 도동서원 (다람재, 이노정)

 


♠  대구 현풍(玄風) 나들이 ~ 도동서원, 이노정 ♠
도동서원 담장
▲  도동서원 담장
 


여름의 제국이 한참 무르익어가던 7월 중순, 경북의 중심지인 대구(大邱)를 찾았다. 대구에서
현풍(玄風) 지역 투어를 같이 할 여인네와는 북부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하여 동서울터미널에서
구미행 직행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서울에서 바로 대구 북부로 가는 차편이 없음)
피서객들로 미어터지는 동서울터미널에서 강원도와 충청도, 전라도, 경주 방면 버스는 대기시
간이 무지 긴데 반해 구미행 버스는 무척이나 한산하다.

피서차량으로 여름 몸살을 앓는 중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하여
구미까지는 무려 4시간이나 걸렸다. 구미에 발을 내리기가 무섭게 대구 북부행 직행버스를 잡
아타고 오후 2시에 북부정류장에 도착했다. 그곳에 이르니 만나기로 한 여인네는 그의 4발 수
레를 끌고 일찌감치 나와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의 차에 오르니 현풍에서 왔다는 그의 친구도
같이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셋이서 현풍 나들이를 떠나게 되었지~~

아직 다들 점심을 못먹은 터라 현풍 직전 달성1차공단에서 그들의 단골 식당에 들어가 간단하
게 뼈다귀해장국을 먹었다. 그렇게 점심을 채우고 그의 친구가 만든 과자를 후식으로 배의 나
머지 공간까지 꾸역꾸역 채우니 포만감의 행복에 쓰러질 지경이다.

잠시 현풍터미널에서 들려 부산으로 가는 직행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1번째 답사지인 도동서원
으로 길을 재촉했다. 그 여인네는 고향이 달성군 구지면이라 현풍과 구지 일대를 훤하게 꿰고
있어 나들이에 그리 불편은 없었다.

현풍에서 도동서원까지는 성하리와 자모리를 거쳐 낙동강변을 따라가다가 대니산(戴尼山, 408
m) 북쪽에 둘러진 험한 고갯길 다람재를 넘어야 된다. 다람쥐가 연상되는 다람재는 그 귀여운
이름과 걸맞지 않게 강원도의 고갯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험준하기 그지 없어 눈이 오
면 아예 통행이 불가능하다.
구불구불의 극치를 누리며 힘겹게 고개를 오르니 드디어 전망이 확트인 고개 마루에 이른다.
고개 정상에는 고개를 오르느라 지친 나그네와 수레가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도록 조촐하게 공
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곳에선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을 비롯하여 도동서원 주변과 강 건너로
고령군 개진면이 시원스레 두 눈에 다가와 조망도 괜찮다. 이런 평화로운 풍경에 마음까지 여
유로워지는 이런 곳에 서면 멋드러지게 시(詩) 한 수 읊어야 폼이 나겠지만 그럴 실력이 되지
못해 그냥 쉽게 감탄사만 연발했다.


▲  다람재 정상에 세워진 6각형 정자
정자에 오르면 낙동강을 비롯하여 도동리, 강 건너의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
오사리, 옥산리 지역이 시원스레 시야에 들어온다.

▲  다람재에서 굽어본 천하 (1)
강 왼쪽은 도동서원이 있는 도동리로 기와가 씌워진 도동서원이 희미하게 보인다.
강 오른쪽은 고령군 개진면이다.

▲  다람재에서 굽어본 천하 (2)
장마로 누런빛을 드러낸 낙동강 너머의 비옥한 평야는 고령군 개진면 옥산리

▲  뭉글뭉글한 다람재 표석
도동서원을 찾는 답사객이 늘자 대구시에서는 서원으로 가는 길목의 하나인 다람재를
정비하고 고갯 마루에 다람재 표석과 정자를 갖춘 아담한 쉼터를
만들어 그들의 발길을 배려했다.

▲  김굉필(金宏弼)의 시 한 수가 담긴 표석

 <
길가의 소나무(路傍松)>
  一老蒼髥任路塵  한 그루 늙은 소나무 길가에 서 있어
勞勞迎送往來賓  괴로이도 오가는 길손 맞고 보내네
    歲寒與汝同心事  찬 겨울에 너와 같이 변하지 않는 마음
  經過人中見幾人  지나가는 사람 중에 몇이나 보았는가


다람재에서 비록 보이는 범위는 좁지만 눈 아래로 펼쳐진 천하를 바라보며 대니산과 낙동강이
제공헌 선선한 기운을 즐기다가 구비구비 고갯길을 내려와 도동서원을 찾았다. 서원 주차장에
이르니 잔뜩 인상을 찌푸리던 먹구름이 조금씩 빗방울을 뿌려 천하를 적히기 시작한다.
서원을 둘러보기 전에 잠시 도동서원의 내력을 흔쾌히 짚어보도록 하자.


♠  우리나라 서원 건축의 백미(白眉)로 일컬어지는 서원
한훤당 김굉필을 배향한 도동서원(道東書院) - 사적 488호
(강당과 사당, 담장은 보물 350호)

▲  다람쥐와 서화 무늬
자모에서 도동으로 넘어오는 다람재란 고개 이름이 이 다람쥐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하늘을 향해 꼬랑지를 흔들며 열심히 올라가는
모습은 조정으로의 출세를 염원하는 유생들의 욕심이 담겨진 것이다.


대구의 대표적인 서원인 도동서원은 앞에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뒤로는 나지막한 대니산을
배경으로 삼아 자리해 있다. 이 서원은 1568년 조선5현(朝鮮五賢)의 하나로 꼽히는 한훤당 김굉
필(寒暄堂 金宏弼, 1454~1504)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유림(儒林)에서 현풍 동쪽 비슬산(琵
瑟山) 자락에 세웠다. 여기서 조선5현이란 정여창(鄭汝昌), 이황(李滉), 조광조(趙光祖), 김굉
필, 이언적(李彦迪)을 일컫는다. 1573년 쌍계서원(雙溪書院)으로 정식으로 사액(賜額)되었으나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파괴되었다.

1605년 김굉필의 외증손인 한강 정구(寒岡 鄭逑)가 유생들의 후원을 받아 김굉필의 무덤 밑인
지금의 자리에 서원을 재건하고 보로동서원(甫老洞書院)이라 했다. 김굉필의 명성 탓인지 유생
들이 보낸 후원금이 상당하여 제법 많은 돈이 남았다고 하며, 정구는 그 돈을 다른데 쓰지 않고
죄다 서원을 꾸미는 데 쏟아부었다고 한다. (차라리 왜란 이후 어렵게 살던 백성들을 도왔으면
좋지 않았을까?)

1607년 공자(孔子)의 도가 동쪽에 이르렀다는 뜻에서 도동서원으로 사액되면서 동네 이름도 도
동(道東)으로 강제로 변경되었다. 1871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 철폐령도 운좋게 비켜
가면서 조선 중기 서원 양식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달성군이 경상북도 시절에는 도동서원이 경북 제일 남쪽 끝으머리에 자리한 탓에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았다. 서원을 이루는 건물도 거의 폐가처럼 변해갔고, 용머리와 여러가지 조각들이 도난
당하고 훼손되기가 바뻤던 것이다. 그러다가 1996년 대구에 강제로 편입된 이후, 비로소 제대로
관리가 이루어지면서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곳은 산지형(山地形) 서원의 배치형태로 진입공간과 강학공간, 제향공간으로 나눠져 있다. 진
입공간에는 수월루와 외삼문이 있고, 공부를 하는 강학공간에는 강당과 동재, 서재, 장판각이
있으며, 서원에서 제일 뒤쪽이자 가장 높다란 곳에 제향공간인 사당이 자리한다.

도동서원은 달성군(達城郡)의 이름난 명소로 필수 답사지로 손꼽힌다. 비록 안동 도산서원(陶山
書院)이나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의 명성까지는 아니지만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고 시간이 흐
를수록 찾는 이도 정비례로 늘어나 우리나라 서원의 새로운 성지(聖地)로 부각되고 있다. 이곳
이 세상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다른 서원과 차별화된 매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우선 서원 주변을 두르는 흙담장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보물로 지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담장으
로 유명하며, 강당은 기단이 높고, 용머리와 다람쥐 등의 동물상, 서화(瑞花) 등이 조각되어 건
물의 품격을 드높인다. 게다가 강당으로 들어서는 환주문(煥主門)은 특이한 구조로 눈길을 잡아
맨다. 이들 담장과 강당은 서원에서 따로 분리하여 보물 350호로 지정되었다.

서원 앞에는 김굉필나무라 불리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아름드리 그늘을 드리워주며, 신도비와 사
적비 등이 자리한다. 유물전시관에는 왕이 서원에 내린 서책과 제기(祭器), 경현록(景賢錄) 목
판 등이 전시되어 있으나 거의 문을 열지 않는다.

그윽하고 정겹기 그지없는 도동서원, 400년 묵은 오랜 은행나무가 선사한 그늘로 마음이 시원하
며, 선비의 낭낭한 글읽는 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서원 내부, 다른 서원과 차별을 둔 다양한 볼
거리로 눈과 마음이 즐거운 곳이다.

※ 도동서원 찾아가기 (2012년 12월 기준)
* 대구지하철 1호선 대곡역(1번 출구)에서 600, 655, 달성5번 시내버스를 타고 현풍터미널 하차
* 대구지하철 1호선 대곡역(1번 출구)에서 급행좌석 4번을 타고 유가치안센터 하차
* 대구서부정류장에서 현풍 경유 창녕, 의령 방면 직행버스 이용
* 현풍터미널과 유가치안센터, 구지에서 달성4번(1일 7회 운행)을 타고 도동 종점 하차, 버스에
  서 내리면 바로 도동서원이다.
* 승용차로 가는 경우 (이정표가 잘 갖추어져 있어 찾기는 쉬움)
① 구마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 → 현풍나들목을 나와서 우회전 → 구지 → 수라리 → 도
   동서원
② 구마고속도로 → 달성나들목 → 논공카톨릭병원 → 현풍외곽도로 → 현풍3교 지나서 우회전
   → 자모 → 다람재 → 도동서원

★ 도동서원 관람정보
* 입장료와 주차비는 없음
* 관람시간 : 9시 ~ 18시 (겨울은 17시)
* 사당은 향사(享祀)를 지내는 매년 음력 2월 중정일과 8월 중정일에만 공개된다.
* 유물전시관은 평소에는 문이 잠겨져 있다. 사전에 문의하기 바란다.
* 도동서원 뒷산에 김굉필의 묘소가 있다.
* 도동서원 문화관광해설사가 2월부터 11월까지 매일 근무하고 있다. 근무시간은 10시~18시까지
  이며 설과 추석연휴에는 근무하지 않는다. 해설을 원하면 도동서원 관광안내소를 찾는다.
*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35 (구지서로 726) <☎ 053-617-7620>


▲  김굉필나무라 불리는 은행나무 - 대구 보호구 3-9호

도동서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존재가 바로 김굉필나무라 불리는 커다란 은행나무이
다. 나무의 덩치가 얼마나 거대한지 그의 앞에서는 그저 주눅이 들 수 밖에 없다. 위대한 자연
의 힘과 400년의 세월이 그를 산만한 덩치로 만든 것이다.
이 나무는 서원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존재로 1607년에 안동부사(安東府使)로 있던 한강 정구가
서원이 사액된 기념으로 손수 심은 것이라 전하나 확실하진 않으며, 서원에 배향된 김굉필을 기
리고자 조선 후기에 서원 관계자들이 김굉필나무라 이름을 붙인 것이지 절대 김굉필이 심은 나
무가 아니다.

400년의 지긋한 나이에도 변함없이 울창한 모습을 간직한 은행나무의 자태와 웅장함에 그저 감
탄사 밖에는 쏟아지지 않는다. 천연기념물이나 적어도 지방기념물로 삼아도 정말 손색이 없어
보이는데, 나무의 품격에 걸맞지 않게 아직까지 보호수(保護樹) 등급에 머물러 있다. 먹구름의
영향으로 나무 사진이 다소 흐리게 나왔지만 여름의 제국이 사라지고 가을이 오면 가을에 물든
아름다운 그를 보게 될 것이다.


▲  노쇠한 나무의 가지를 받치는 기둥들

아무리 울창하고 거대한 모습을 지녀도 400년의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모양이다. 400년의 노구를
지탱하기 힘들어 기둥을 여러 개 세워 지구의 중력에 힘겹게 저항하고 있다. 나무의 동쪽 줄기
는 이미 장대한 세월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역시나 세월보다 무거운
것은 천하에 아무것도 없다. 손으로 만질 수 없을 따름이지 세월의 무게는 무한대(∞)이기 때문
이다, 옛날에는 동네 애들이 땅에 내려앉은 가지를 타고 나무에 올라가 놀았다고 한다.


▲  서원의 정문인 수월루(水月樓)

수수한 모습을 지닌 수월루는 서원의 정문이자 외삼문(外三門)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 누각이다. 누각에 오르면 은행나무 너머로 낙동강의 풍광이 속시원하게 다가온다. 이곳은
유생들이 공부로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며 바람을 쐬는 쉼터 및 교육의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누
각으로 들어서는 계단이 2명 정도가 지나다닐 정도로 좁은데, 이는 세상의 번잡함을 멀리하고
서원에 지나치게 사람이 많은 것을 경계하며, 정말로 학문에 정진할 소수정예만을 받아들이겠다
는 서원의 의지로 보인다.

수월루란 이름은 누각에 오르면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밤하늘을 비추는 달이 바라보여 지어진
풍류적인 이름이다. 강과 달을 바라보며 시를 짓고 헛제사밥을 차려 음식과 곡차를 끼며 달놀이
를 즐기던 현장으로 선비들의 해학적이고 고풍스런 풍류가 와 닿는 공간이다. 지금은 노쇠한 수
월루의 보존을 위해 누각 출입이 통제되어 그들의 풍류를 따라하지 못함이 애석할 따름이다.

◀  수월루에서 강당으로 들어서는 환주문(煥主
門)
수월루를 지나면 강당으로 향하는 조그만 계단
과 함께 환주문이 나온다.
환주문은 주인을 부르는 문이란 뜻으로 주인의
식을 가지고 들어오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한
다. 이곳의 계단도 수월루의 계단처럼 폭이 좁
고, 문의 높이도 낮아 부득이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가야 된다. 이는 옛 사람들의 키가 작아서
가 아니라 서원에 들어온 이들에게 자신을 낮추
고 서원에 배향된 김굉필과 서원에 있는 덕망있
는 이들에게 머리를 숙여 예의를 표하란 뜻에서
문의 높이를 일부로 낮게 만든 것이다.
머리가 부딪쳐 혹여나 문이 손상되지 않도록 머
리를 푹 숙여 문을 들어서니 마음가짐이 절로
숙연해진다.

여닫이 문을 고정시키는 정지석(현판이 걸린 평
방의 양쪽 모서리)에는 아름다운 꽃무늬가 새겨
져 있으니 살펴보기 바란다.

▲  도동서원 서재<西齋, 거의재(居義齋)>

▲  도동서원 동재<(東齋), 거인재(居仁齋)>

환주문을 들어서면 강학공간인 강당이 정면에 나타난다. 그 좌우로 서원 유생들의 숙소인 조그
만 서재와 동재가 서로 마주보며 자리해 있는데, 서재는 의로움이 산다는 뜻에서 거의재, 동재
는 인자함이 사는 뜻에서 거인재라 불린다. 서원의 명성을 듣고 가르침을 받고자 구름처럼 몰려
왔을 유생들의 고무신이 가득했을 섬돌에는 먼지만이 자욱하여 세월의 무상함을 드러낸다. 아무
도 없는 방문에 귀를 대면 학문의 어려움에 넋두리를 떨던 그들의 목소리가 아련히 들려올 것만
같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는 어려운 것이다.


▲  강당 앞뜨락에 머리를 내민 거북이
화마(火魔) 등의 나쁜 기운을 막고자 만든 것으로 보인다.

▲  강당 우측에 자리한 장판각(藏板閣)
서원의 소중한 보물인 경현록(景賢錄)이 있었으나 지금은 유물전시관에 가 있다.

▲  도동서원의 강당인 중정당(中正堂) - 보물 350호

고색의 때가 만연한 서원의 강당(중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반의 맞배지붕 건물로 1.5m의
높은 기단 위에 자리하여 웅장함과 품격이 더욱 돋보인다. 건물 좌측과 우측 방은 온돌방이고
가운데 3칸은 개방된 대청마루로 유생들이 유학의 도를 배우며 토론하던 장이다.
건물의 모습은 여느 한옥과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이 건물의 매력은 바로 기단부에 있다. 기
단을 이루는 돌은 일정한 법칙이 없이 제멋대로의 모습으로 자유분방하게 늘어서 눈길을 끈다.
그런 기단에는 여의주와 물고기를 물고 있는 용머리 4개가 삐죽 나와 있으며, 다람쥐 모양의 동
물상과 서화(瑞花)무늬 2쌍이 조각되어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이들 무늬는 모두 나름대로
의 뜻을 담고 있으니, 기단을 유심히 살펴 괜한 보물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  삐죽 고개를 내민 용머리

멀뚱한 표정으로 기단 밖으로 고개를 내민 4마리의 용은 예(禮)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움직이지도 말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의미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화마(火
魔)의 피해를 막고자 만든 것으로 여겼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이들 용머리는 겉으로 보기에
는 아무렇지 않게 보이지만 여러 차례 도난을 당했던 아픔의 과거를 간직하여 듣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저 중에서 1~2개만 진품이고 나머지는 모조품이
라고 한다. 모조품의 진품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유물전시관이나 대구에 있는 모박물관
에 보관 중이라고 한다.


▲  해학적인 표정의 용머리 ~ 용머리의 눈이 마치 누군가에게 단단히
얻어터진 듯, 밤탱이가 된 것처럼 보여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  강당 내부에 걸린 2개의 현판

▲  강당 좌측에 있는 굴뚝
연기를 모락모락 뿜어내던 왕년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그의 모습에 쓸쓸함이 비쳐진다.

▲  사당으로 들어서는 내삼문(內三門)

강당 뒤에는 서원의 중심인 사당이 있다. 김굉필이 배향된 사당으로 들어서려면 내삼문을 지나
야 되는데 제향일을 제외하고는 입을 굳게 봉한 채, 좀처럼 열릴 줄을 모른다.



▲  도동서원의 백미, 담장 - 보물 350호

고색이 가득 깃들여진 담장은 자연석을 정렬시킨 바닥돌 위에 자연막돌을 쌓고 그 위에 암키와
를 5단으로 놓아 그 사이에 진흙층을 쌓아 거의 1m 간격으로 수막새를 엇갈리게 끼웠다. 담장에
암키와와 수막새를 사용한 것은 음양(陰陽)의 조화를 통해 담장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장식효과
를 살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밋밋한 모습의 다른 서원의 담장과 달리 정겹고 아름다운 모습
으로 우리나라의 오래된 담장 중에서 최초로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흙과 돌, 기와를 적절히 이용했으며 수막새를 달아놓은 매력적인 담장으로 나중에 한옥을 짓고
산다면 저런 담장을 만들어 집을 두르고 싶다. 서원과 외부의 경계선 역할을 하는 담장에 미적
(美的)인 부분이 크게 배려되어 밤손님조차도 담을 아껴줄 것 같다. 담에 쓰인 흙에는 오랜 세
월의 누런 때가 가득 끼여 담장에 대한 눈길을 단단히 붙들어 맨다.


♠  김굉필과 정여창 두 노인이 말년을 보내며, 석별의 정을 나누던 곳
이노정(二老亭) - 대구 지방문화재자료 30호

▲  이노정 전경 (정자를 가린 건물은 정자를 관리하는 노부부의 집)

▲  담장 너머로 바라본 이노정

▲  곁에서 바라본 이노정

도동서원을 둘러보고 구지(창리)를 거쳐 내리에 있는 이노정을 찾았다. 모정에서 이노정을 알리
는 갈색 이정표를 따라 조그만 농로로 들어서면 막다른 곳에 녹음이 짙은 숲을 병풍으로 두르며
부뚜막 연기가 뿜어 나올 것 같은 정겨운 풍경의 기와집, 이노정이 나온다.
세상과 거리를 두며 강가에 홀로 자리한 외로운 기와집인 이곳까지는 현대의 이기(利器)는 전혀
들어오지 못하고 전통 방식으로 초롱불로 어두운 밤을 밝히며 장작을 뗄 것 같은 분위기가 엄습
한다. 허나 안으로 들어가보면 티비에 냉장고까지 현대의 이기는 이미 여기까지 손을 썼다. 이
곳은 도동서원처럼 낙동강변에 자리해 있는데 그곳과는 달리 강이 바라보이는 높다란 곳에 터를
잡았다.
 
고색창연해 보이는 이노정은 다른 말로 제일강정(第一江亭)이라고도 하며, 김굉필과 정여창(鄭
汝昌)이 말년을 보낸 곳이라 전한다. 무오사화(戊午士禍)로 화를 당한 그들이 시골(김굉필은 도
동서원이 있는 도동리, 정여창은 함양)로 내려와 살다가 1504년 이곳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들은 정자를 짓고 학문을 논하며 팔자 좋게 지내다가 연산군(燕山君)이 훈구파(勳舊派)와 건
방진 사림계열 유생들을 때려잡고자 일을 벌린 갑자사화(甲子士禍, 1504년)로 석별의 정을 나누
었고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처단되었다. 정자의 이름인 이노(二老)는 김굉필과 정여창 두 노인
네를 지칭한 것으로 그 당시 그들의 나이는 50대 중반이었다.

도동에 머물던 김굉필은 배를 타고 10km 떨어진 이곳을 자주 왕래했다고 하며 그들이 사라진 이
후 정자는 그들을 추모하는 이들이 관리하였다. 1885년 영남 유림에서 중수를 했고, 1904년에도
수리를 하였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정자의 두 이름(이노정, 제일강정)이 새
겨진 현판과 그들이 지은 유악양(遊岳陽, 악양을 거닐다)이란 시가 걸려있다.

이곳은 우물마루를 둔 정자 건축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평면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천정에는
우물정(井) 모양의 통풍구를 두어 산바람과 강바람이 서로 어우러지게 하여 한여름에도 더위를
잊을 정도로 시원하다. 정자 주변으로는 얕은 담장을 둘렀으며 정자 밖에 뒷간을 두었다.

현재 이노정은 어느 노부부가 관리하고 있다. 그들은 정자 앞에 딸린 조그만 기와집에 살고 있
는데, 드문드문 오긴 하지만 정자를 찾은 답사객에게 정자 내부를 둘러볼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다. 우리가 갔을 때는 처음에는 조금 경계의 눈빛을 보냈는데,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자 표정을
바로 하고는 구경하고 가라며 내부로 안내해 주었다.

그들은 이노정에서도 가끔 잠을 자고 생활을 하는지, 정자 내부는 모기장이 쳐져있고, 여러 생
활용품이 널려 있는 등 다소 어수선해 보인다. 비록 세상물정 모르고 공자와 성리학 사상만 들
쑤시던 지배층의 전유물이긴 하지만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 살고자 했던 그들의 마음가짐이 보
이는 정자로 두 노인네가 술 한잔 걸치며 시를 짓고 달놀이를 즐길 때 그들의 노비는 강에 돌을
던지며 신세 한탄을 했을 것이다. 그들이 비록 벼슬을 박탈당하고 시골에 숨어 사는 처지긴 하
나 잘나가는 집안의 양반이자 조선의 중심계층인 선비이며, 그들을 추종하는 제자들이 많기 때
문에 먹고 사는 문제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  중후한 멋이 엿보이는 이노정 현판

▲  제일강산(第一江山) 현판


▲  정자 밖에 자리한 뒷간 - 하얀 털의 견공(犬公)이 처음 본 우리에게
경계의 메세지를 보낸다.

▲  정자 담장 밖으로 장맛비로 불어난 낙동강이 보인다.
강 건너로 보이는 곳은 고령군 우곡면이다.

▲  온돌방을 지피던 아궁이의 흔적

▲  아마존의 깊은 늪지대처럼 다가서기가 두려운 이노정 앞 낙동강 늪지대
홍수가 심할 때는 저 늪지대는 물론이고 정자 앞까지 강물이 넝실거린다.


※ 이노정 찾아가기 (2012년 12월 기준)

* 대구서부정류장에서 현풍 경유 이방, 의령 방면 직행버스를 타고 모정(내리) 하차 (1일 20회
  남짓 운행)
* 현풍터미널에서 이방, 신반, 의령 방면 직행버스 또는 달성7번 시내버스(1일 6회)를 타고 모
  정(내리) 하차
* 모정에서 대암리, 의령 방면으로 2분 정도 걸으면 이노정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거기서
  5분 정도 들어가면 이노정이다.
* 승용차로 가는 경우 (이노정까지 차량 접근 가능, 단 길이 좁으므로 정자를 둘러보고 차를 돌
  려 나갈 때 주의 요망)
① 구마/중부내륙고속도로 → 현풍나들목을 나와서 우회전 → 구지 → 모정 → 이노정
*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내리 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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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니터 크기와 컴퓨터 사양에 따라 글이 조금 이상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 공개일 - 2012년 12월 13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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