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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1.14 서울의 거대한 동쪽 지붕, 용마산~아차산~망우산 나들이 <서울둘레길2코스, 용마산1보루, 용마산5보루, 망우산1보루>
  2. 2020.01.24 수도권 고구려 유적의 성지이자 서울의 부드러운 동쪽 지붕, 아차산~용마산~망우산 나들이

서울의 거대한 동쪽 지붕, 용마산~아차산~망우산 나들이 <서울둘레길2코스, 용마산1보루, 용마산5보루, 망우산1보루>

용마산~망우산 나들이


' 수도권 고구려 유적의 성지, 용마산~망우산 나들이 '
용마산1보루와 서울시내
▲  용마산1보루 봉우리와 서울 시내
 



 

용마산은 아차산(峨嵯山, 295m)의 일원으로 한강에서 중랑구 북쪽까지 이어진 아차산 산
줄기의 중간을 맡고 있다. (북쪽은 망우산이 맡고 있음) 아차산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봉우리로 용마봉(龍馬峰), 장군봉(將軍峯)이라 불리기도 하며, 봉우리가 커서 대봉(大峰
)이란 별칭도 지니고 있었다.
광진구와 중랑구(中浪區), 그리고 중랑구와 구리시(九里市)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서
울 동부와 동북부, 동남부 지역과 구리, 남양주, 하남 지역을 훤히 조망할 수 있는 전략
적 요충지로 고구려(고구리)와 신라(新羅)가 보루를 주렁주렁 달며 애지중지 했다. 또한
아차산에서 시작된 아차산장성(長城)이 용마산을 거쳐 망우산까지 이어지는데, 군데군데
장성의 흔적이 아련히 남아있다.

용마산에는 아기와 용마의 짧막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는데, 삼국시대에는 장사급 아이가
태어나면 이유 불문하고 그 가족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정말 그
럴까?) 그 시절 이곳에서 장사급 아기가 태어났는데, 집안 몰살을 두려워한 부모가 아기
를 죽였다. 그러자 용마봉에서 아기가 타고 다닐 용마(龍馬)가 나타나 다른 곳으로 갔다
고 하며 (또는 죽었다고도 함) 그 연유로 용마산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 전설일 뿐이며, 다른 곳에서도 이와 비슷한 전설이
여럿 전하고 있어 무인(武人)을 차별했던 고려 중기나 조선 때 빚어진 전설이 아닐까 싶
다. 또한 용마산과 아차산 서쪽 자락에는 조선 왕실에서 운영하던 살곶이 말목장이 있었
는데, 용마급 말이 많이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또는 용마가 나왔다고 해서;) 용마
산이라 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여 전해온다. 그러니 후자가 맞을 것이다.

용마산은 아차산과 더불어 나의 진심 어린 즐겨찾기 뫼의 일원으로 지금까지 200번 넘게
그의 품을 찾았다. 그렇게 오지게 안겼음에도 질리기는커녕 매년 꾸준히 나의 마음을 비
추고 있는데, 늦가을이 깊어가던 11월 첫 무렵에 용마산의 여러 보루를 복습하고자 다시
발걸음을 했다.


▲  긴고랑공원



 

♠  용마산1보루와 2보루(堡壘)

▲  용마산 남쪽 능선길

이번 용마산 나들이는 중곡4동 긴고랑에서 시작했다. 긴고랑은 아차산과 용마산 사이에 자리
한 골짜기로 골이 길어서 긴골, 진골이라 불리다가 긴고랑으로 이름이 갈렸는데, 아차산과 용
마산이 베푼 물이 긴고랑계곡을 이루며 중랑천과 한강으로 흘러간다.
아차산 일원(아차~용마~망우산)에서 가장 크고 상태도 좋은 계곡으로 물도 많고 바위와 너른
반석이 즐비하며, 풍경도 괜찮아서 도심 속 피서의 성지(聖地)이자 쉼터로 바쁘게 살고 있다.
(계곡 상류~중류에 괜찮은 곳이 많음)

계곡 하류에 닦여진 긴고랑공원 서쪽에 용마산 정상으로 인도하는 남쪽 능선길이 있다. 바로
그 길로 가야 용마산1/2보루를 만날 수 있는데, 간만에 긴고랑에 왔지만 마음은 이미 보루에
가 올라가 있어 바로 능선길로 들어섰다.
용마산 남쪽 능선길은 시작부터 속세살이만큼이나 각박한 경사가 펼쳐져 숨을 제대로 가쁘게
만든다. 흥분한 경사를 순화시키고자 계단길을 적지 않게 깔았으나 그래도 힘든 것은 마찬가
지이다. 이런 길은 그저 자존심을 곱게 접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좋다. 그렇게 10여 분 정도
오르면 경사가 조금씩 순해지며 닿지 않을 것 같던 용마산1보루터가 활짝 마중을 나온다.


▲  용마산 남쪽 능선(용마산1보루 남쪽)에서 바라본 아차산의
부드러운 산줄기

▲  용마산 남쪽 능선(용마산1보루 남쪽)에서 바라본 천하
바로 앞에 광진구 중곡동과 중랑구 남부 지역을 비롯해 동대문구와 성북구,
멀리 인왕산과 북악산(백악산), 북한산(삼각산) 산줄기까지 흔쾌히
시야에 들어온다.

▲  용마산1보루터 남쪽 외곽

▲  용마산1보루터 - 사적 455호

용마산1보루는 용마산 남쪽 능선 183m 봉우리에 살짝 깃들여져 있다. 용마산 보루 중 가장 남
쪽으로 돌로 다진 석축 부분은 거의 노출되어 있지 않으나 30~40cm 정도의 할석이 곳곳에 튀
어나와 햇살을 받고 있다. 비교적 평탄한 석축 안쪽에는 흙이 쌓여있는데, 그 남쪽 부분 퇴적
토(堆積土)에서 고구려 토기편이 여럿 나와 고구려가 다진 보루임을 강하게 어필한다.

1보루의 규모는 직경 5m, 길이 16m 정도로 파악되고 있으며, 조그만 군사시설이나 초소로 한
강과 중랑천에서 용마산 정상, 아차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이다. 하여 바로 위에 있는 2/3보루
를 보조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보루는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사라지고 흔적 일부가 수풀과 땅 속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뒤
늦게 발견되어 대륙을 꿈꾸는 우리로 하여금 고구려를 다시 기억하게 해준다.


▲  자연의 일부로 녹아든 용마산1보루

이 보루가 용마산1보루, 즉 넘버원 보루라고 해서 딱히 특별한 것은 없다. 물론 고구려가 만
든 그 자체로도 아주 특별한 존재이나 이곳이 1보루가 된 것은 용마산에서 가장 먼저 발견된
보루이기 때문이다. 6개의 보루가 나온 아차산도 발견된 순서대로 1보루~6보루로 매겼고, 망
우산도 그렇다. (망우산은 3보루까지 확인됨)

현재 용마산에는 보루터 7곳이 있으나 그게 전부라고 볼 수는 없다. 아직까지 숨바꼭질을 하
고 있는 보루터가 더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차산과 망우산도 마찬가지이다. 어쨌든
이곳을 비롯한 용마산 보루 7형제는 '아차산 일대 보루군'이란 이름으로 국가 사적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  용마산1보루에서 바라본 천하
바로 밑에 긴고랑과 중곡동, 구의동(九宜洞)을 비롯해 송파구, 강동구,
강남 지역, 남한산, 대모산 산줄기가 두 눈에 들어온다.

▲  용마산1보루~2보루 구간에서 바라본 천하
세상을 향해 고개를 쳐든 정면 봉우리에 용마산1보루가 있다. 그 너머로
광진구, 성동구, 송파구, 강남구, 우면산, 관악산 등이 두 망막에
잡힌다.

▲  용마산2보루 남쪽 오르막길

▲  용마산2보루터 - 사적 455호

용마산1보루에서 북쪽으로 250m 정도 떨어진 해발 225~230m 능선에 용마산2보루터가 있다. 면
적 약 379㎡, 둘레 약 60~79m, 폭 8m로 1보루보다 훨씬 덩치가 큰데, 윗 부분이 평탄하게 닦
여졌고 그 주위로 석축이 둘러져 있다. 보루 동쪽 중간 경사진 곳에 무덤 1기가 있고 무덤 옆
에는 소토층이 노출되어 있는데, 거기서 흑갈색과 황갈색 피부의 고구려 토기편이 여럿 발견
되어 고구려가 다졌음을 살짝 귀띔해 준다.

이곳은 한강과 중랑천에서 용마산 정상, 아차산으로 가는 길목으로 밑으로 1보루를 관리하고
위로는 3보루를 보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1보루보다 더 하늘과 가까운 곳이라 조망도 우수하
며 여기서 천하를 굽어봤을 2보루의 모습에 대해서는 딱히 정답은 없으나 강화도에 널려있는
조그만 돈대(墩臺)를 생각하면 될 듯 싶다.


▲  용마산2보루에서 바라본 천하
왼쪽은 아차산이고, 아차산과 용마산 사이로 움푹 들어간 곳이 긴고랑이다.

▲  용마산2보루 북쪽에서 바라본 천하
용마산 서쪽 능선과 중랑구, 동대문구, 성북구, 북한산(삼각산), 도봉산 등

▲  용마산 명품소나무 제1호

용마산2보루에서 남쪽 능선길을 15분 정도 오르면 서울 시내를 굽어보는 용마산전망대에 이른
다. 그 전망대 남쪽에 좌우로 넉넉하게 퍼진 소나무가 있는데, 그가 용마산 명품소나무 1호이
다.
광진구(廣津區)는 용마산 능선부에서 잘생긴 소나무를 선별해 2009년에 명품소나무의 지위를
주었는데, 처진소나무처럼 좌우로 넉넉하게 퍼져 상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용마산전망대

천하를 향해 고개를 쳐든 용마산전망대는 용마산 정상 서남쪽에 닦여져 있다. 서/남/북이 확
트인 곳에 자리해 있어 용마산 구역에서 가장 조망 맛이 좋은데, 천하 제일의 대도시로 콧대
가 높은 서울 시내가 저 밑에 납작하게 펼쳐져 마치 천하가 내 것처럼 즐거운 기분이 모락모
락 피어오른다. 산을 오르는 재미가 바로 이런 맛 때문이지.

여기서는 서울 동부와 동북부(도봉구, 강북구), 동남부(송파구, 강동구), 강남권(강남구, 서
초구), 서울 도심부(중구, 종로구), 도봉산, 북한산(삼각산), 북악산(백악산), 남산, 관악산,
대모산, 남한산, 한강 등이 거침없이 시야에 들어오며, 특히 야경(夜景) 맛이 좋다.


▲  용마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①
두껍게 다가오는 아차산 산줄기 너머로 강동구와 송파구, 강남구, 성남시,
남한산, 대모산 산줄기가 바라보인다.

▲  용마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②
긴고랑과 용마산1보루, 광진구, 성동구, 송파구, 강남구, 관악산 등

▲  용마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③
중랑구와 동대문구, 성북구, 강북구, 서울 도심부, 인왕산, 북악산(백악산),
북한산(삼각산), 도봉산 등



 

♠  용마산3보루, 4보루, 망우산

▲  용마산 정상(348m)

용마산 정상은 아차산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으로 남쪽과 동쪽, 서쪽은 조금 가파르고 북
쪽은 약간 완만하다. 아차산 주능선과 망우산, 긴고랑에서 접근했을 때는 정상 동남쪽 체육시
설에서 계단길로 정상으로 올라가면 되며, 용마폭포공원 주변에서 올랐을 때는 북쪽 계단길을
통해 정상으로 들어서게 된다.
바위로 이루어진 용마산 정상부에는 정상 인증 모델로 인기가 높은 살짝 둥근 얼굴의 용마산
표석과 삼각점(三角點, 대삼각본점). 태극기가 펄럭이는 게양대가 있으며, 인공이 가해진 듯
한 돌들의 무리가 정상부와 정상 남쪽 경사면, 정상 북쪽 곳곳에서 눈에 띄는데, 그들은 용마
산3보루의 흔적들이다.

이곳 보루는 정상부에 씌워진 것으로 3보루터 흔적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어 얼핏 보면 봉우리
전체가 인공으로 다진 언덕처럼 보이나 봉우리는 순수 자연산이 맞다. 정상부에 헬기장(지금
은 없음)을 닦으면서 보루 상당수가 파괴되고 헝클어졌는데, 평탄하게 깎여진 부분과 산길 주
변에서 흑회색과 황갈색, 홍갈색 피부의 토기를 중심으로 다량의 토기 파편들이 햇살을 보았
다.
이들은 전형적인 고구려 토기라 고구려가 다진 보루임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는데, 신라가 만
들었다는 의견도 있어 고구려가 먼저 3보루를 닦고 신라가 수리해서 쓴 것으로 여겨진다. 그
리고 옛 헬기장 서쪽 부분에 적갈색의 소토층이 있다.

* 용마산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7동, 광진구 중곡4동


▲  정상 인증 모델로 인기가 높은 용마산 정상 표석의 위엄
평일 오후라 한가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주말과 휴일, 평일 저녁에는
정상 인증을 하려는 사람들로 바쁜 시간을 보낸다.

▲  용마산 동쪽 능선(용마산 정상~아차산 주능선)에서 바라본
아차산 산줄기 ①

▲  용마산 동쪽 능선(용마산 정상~아차산 주능선)에서 바라본
아차산 산줄기 ②


▲  용마산 동쪽 능선길(용마산 정상~아차산 주능선)

용마산 정상과 아차산 주능선을 이어주는 용마산 동쪽 능선길은 쑥 내려갔다가 바위가 펼쳐진
중간에서 다시 올라갔다가 서서히 내려가는 구조이다. 오르락 내리락을 2번을 해서 그렇지 대
체로 완만한 능선길로 남쪽으로 아차산 주능선과 광진구, 송파구, 한강 등이 바라보이며, 북
쪽으로 중랑구와 망우산 등이 늘 시야에 따라붙어 두 눈을 즐겁게 한다.


▲  용마산4보루터 - 사적 455호

용마산 정상에서 동쪽 능선을 가다 보면 아차산 주능선을 만나기 직전에 'H'마크가 새겨진 헬
기장이 있다. 바로 그곳에 고구려가 심은 조그만 점 용마산4보루가 살짝 깃들여져 있다.

용마산4보루는 용마산3보루와 아차산 주능선 보루를 연결하는 곳으로 보루 둘레는 약 228m이
다. 동쪽 무덤 주변에서 회흑색 연질토기와 대형 항아리 조각, 대상파수편이 나왔고, 북서쪽
에서는 철제 화살촉 1개가 발견되었는데, 보루터 동쪽 지상에서는 석축 구조물이 일부 노출되
어 있으며, 동쪽과 서쪽 중간 지점 저지대는 집수(集水)시설로 여겨진다.
1994년에 구리문화원에서 조사했을 때는 동쪽과 서쪽을 별개 보루로 여겼으나, 2003년에 서울
시에서 다시 조사를 벌여 하나의 보루임을 확인했다. 아직 전체적인 발굴조사는 받지 못했으
나 하루 속히 주변을 뒤집어 이곳에 숨겨진 옛날 이야기 보따리가 싹 풀렸으면 좋겠다.


▲  동쪽에서 바라본 용마산4보루터

▲  아차산~망우산 주능선길 (용마산 동북쪽 능선)

용마산4보루에서 동쪽으로 조금 가면 아차산~망우산 주능선과 만난다. 이 능선은 아차산생태
공원에서 아차산성, 아차산 정상, 아차산4보루, 용마산5보루을 거쳐 망우산으로 이어지는 능
선길로 대자연이 내린 서울의 거대한 동쪽 벽이다.
아차산과 용마산 일부 구간에서 조금 각박한 경사를 보이나 거의 완만한 편이며, 동/서/남/북
으로 일품 조망이 펼쳐져 환상적인 지붕길을 보여준다. 또한 천하 둘레길의 성지로 추앙을 받
는 서울둘레길2코스(용마~아차산 코스)도 이 주능선의 신세를 지며 남북으로 흘러간다.


▲  용마산5보루 - 사적 455호

아차산~망우산 주능선으로 들어서 북쪽으로 조금 가면 헬기장이 나오면서 용마산5보루터를 알
리는 안내문이 마중을 한다.

용마산5보루는 아차~망우산 주능선 해발 316m 고지에 자리해 있다. 아차~용마~망우산 보루 식
구 중 용마산3보루 다음으로 하늘과 가까운 곳으로 성벽 둘레 약 132m. 내부 면적은 약 936㎡
정도로 파악되고 있는데, 보루 북동쪽 비탈면에 성벽으로 여겨지는 석축 일부가 약간 드러나
있을 뿐, 대자연에 제대로 녹아들어 흔적은 희미하다.
보루 북쪽에서 고구려 토기인 몸통긴항아리(회흑색 연질토기)가 깨진 채로 출토되었고, 물미
로 추정되는 철제품도 발견되어 고구려가 닦은 보루임이 분명해졌다. 석축과 상층부에 보루
건물터가 있을 것으로 여겨지나 아차산3보루와 4보루처럼 헬기장이 닦이면서 상당수가 파괴되
었다.
1994년 구리문화원에서 조사하여 고구려 보루임을 확인했고, 2000년에 서울대박물관에서 조사
를 했으며, 2003년 서울시에서 측량 조사를 했다. 허나 이곳도 완전한 발굴 조사를 받지 않은
상태라 언젠가 이 일대를 싹 뒤집고 조사를 해야 될 것이다.

이곳은 동/서가 뻥 뚫려있는 곳으로 서쪽으로 중랑천과 서울 동부, 동북부 지역이, 동쪽으로
는 한강과 구리시 지역이 훤히 바라보여 조망 하나는 끝내준다. 그러니 여기에 보루를 닦아
아차산과 용마산에서 망우산, 봉화산, 수락산을 잇는 요충지로 사용했던 것이다. 고구려가 이
처럼 아차~용마~망우산에 보루를 주렁주렁 달은 것은 오랜 라이벌이자 숙적인 백제와 신라를
견제하고 한강 유역을 수비하고자 함이다.
이후 신라가 서울 지역을 차지하면서 고구려가 다진 보루 일부를 손질해 요새로 삼았고 신라
말 이후 전략적 가치가 떨어지면서 보루들이 모두 버려진 것으로 여겨진다.

* 용마산5보루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 산1-2


▲  아차산~망우산 주능선길 (용마산 동북쪽 능선길)

▲  아차산~망우산 주능선(용마산 동북쪽 능선길)에서 바라본
한강과 구리시, 강동구, 하남시 지역


용마산5보루를 지나면 내리막길이 하염없이 펼쳐진다. 나무로 다져진 나무데크길이 잘 닦여져
있으나 경사가 좀 각박하고 계단이 많아 이곳으로 오를 경우 숨이 제대로 찰 것이다.
그 산길을 쑥 내려가면 용마산 북쪽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서쪽으로 내려가면 면목동 사
가정공원, 동쪽으로 가면 구리시 아치울마을과 시루봉, 북쪽 산길을 오르면 망우산이다. 여기
서 바로 내려갈까 했으나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망우산을 조금 복습하
기로 했다.


▲  망우산(忘憂山)

아차산과 용마산 북쪽에 넓게 솟은 망우산(忘憂山, 281m)은 아차산 식구의 일원으로 그 유명
한 망우리공동묘지를 품고 있다. 현재는 묘지란 이름 대신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세탁되었는
데, 고구려가 심은 보루 유적 3곳이 발견되어 망우산1보루와 2보루, 3보루란 이름으로 살아가
고 있다. 허나 1보루만 간신히 남아있으며, 나머지는 완전 중환자 이상의 상태이다. 그래서 1
보루만 아차산일대 보루군 식구로 들어가 사적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  어둠에 잠긴 망우산1보루 - 사적 455호

용마산 북쪽 갈림길에서 10분 정도를 오르면 망우산 남쪽 봉우리(해발 280.3m)에 깃든 망우산
1보루가 마중을 나온다.
이곳은 1994년 지표 조사에서 고구려 토기편이 여럿 나와 고구려 보루로 여겨지며, 보루로 밝
혀지기 훨씬 이전부터 헬기장과 군부대 시설, 묘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철저히 고통을 받았다.
그러다가 근래에 헬기장과 참호를 없애고 보루가 있던 자리를 정리하여 보루터 티를 조금이나
마 내게 했다.
안내문이 없다면 그냥 지나쳐도 용서가 될 정도로 보루터 흔적은 딱히 없으며, 여기서 더 북
쪽으로 향하면 2보루와 3보루가 나오는데, 마음 같아서는 그곳까지 가고 싶었으나 아직 여유
가 있을 것 같던 땅꺼미가 그새 짙어지면서 그곳을 향한 내 마음을 완전히 접고 철수했다. 산
은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가는 것이 상책이다. (아차산과 용마산은 야간 등산으로 많이 올랐지
만 정작 망우산은 야간 경험이 없음)

이렇게 하여 용마산, 망우산 늦가을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 망우산1보루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3,8동


▲  망우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와 일몰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산은 북한산(삼각산)과 도봉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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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고구려 유적의 성지이자 서울의 부드러운 동쪽 지붕, 아차산~용마산~망우산 나들이

 


'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나들이 '

▲  망우산, 용마산 산줄기

▲  아차산4보루

▲  망우산1보루


 

여름 제국이 저물고 가을이 서서히 고개를 들던 9월의 한복판에 나의 즐겨찾기 산의 하나
인 아차산을 찾았다.
아차산은 고구려(高句麗) 유적의 성지이자 해돋이와 일몰 명소로 유명하여 오랫동안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야무진 산이다. (나들이와 산행, 답사, 야간 등산 팬들이 많음) 산세
가 완만하여 두 다리만 멀쩡하면 누구든 마음 편히 안길 수 있으며, 산 좌우가 죄다 평지
다보니 낮은 높이에 비해 조망이 아주 일품이다.
게다가 고구려의 거룩한 넋이 깃든 보루가 20개 가까이 펼쳐져 있고, 아차산성과 아차산3
층석탑, 온달샘석탑, 석실고분 등의 문화유산과 영화사(永華寺)와 범굴사 등의 오래된 절,
긴고랑계곡, 관룡탑 등 다양한 볼거리가 존재해 눈이 마음이 심심치가 않다.
아차산 북쪽에는 용마산, 그 북쪽에는 망우산이 자리해 있는데, 이름만 다를 뿐, 모두 아
차산 식구들이며, 조선 때는 아차산의 영역이 중랑구 봉화산(烽火山)까지 이르렀다.
(본글은 편의상 아차산4보루부터 시작하겠음)


 

♠  고구려 보루의 정석, 아차산4보루(堡壘) - 사적 455호

▲  용마산에서 바라본 아차산4보루 (사진 가운데가 4보루)

아차산4보루는 아차산(용마산 ,망우산 제외) 보루 중 가장 북쪽에 자리해 있다. 남한에 있는
고구려 성터 중 건물터와 성벽의 구조가 제대로 밝혀진 최초의 현장으로 의미가 꽤 남다른데,
아차~용마~망우산 산줄기에서 발견된 보루 중 거의 유일하게 성벽의 흔적이 조금 남아있었다.
나머지 보루는 터만 간신히 남은 것에 비하면 상태가 다소 나았던 것이다.
복원 이전 성벽의 최대 잔존 높이는 1.8m로 남벽과 동벽은 잘 다듬은 성돌을 이용한 탓에 그
런데로 남아있었으나 북벽과 서벽은 훼손이 심해 남아있는 높이가 0.8m를 넘지 않았으며, 부
정형의 석재를 사용해 조잡하게 축조되었다.


▲  아차산4보루 남쪽 2중치 (2개의 치로 이루어진 부분)

구리시(九里市)가 4보루에 숨겨진 옛날 이야기를 풀고자 1997년부터 문화재청과 경기도의 도
움을 받으며 1998년까지 발굴조사를 벌였다. 하여 온돌과 배수로, 저수조 등을 갖춘 건물터가
확인되었으며, '後部○兄'이라 쓰인 토기가 나와 고구려가 5~6세기에 쌓은 보루임이 명백해졌
다. 여기서 후부(後部)는 고구려 5부의 하나이며, '○兄'은 고구려 관등의 하나로 여겨진다.
고구려는 '형(兄)'자가 들어가는 관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후 2007년에 다시 조사를 벌여 숨겨진 치성을 발견했고, 보루 형태와 성벽 축성 방식을 확
인하면서 복원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래서 구리시(4보루가 구리시 땅임)에서 2008년부터 복원
을 적극 추진하여 2년 동안 공을 들여 2010년 12월 24일 복원 준공식을 가졌다. 아차산 일대
보루 중 처음으로 복원된 행운의 보루인 것이다. (나중에 시루봉 보루도 복원되었음)

보루 복원을 위해 보루터에서 나온 오래된 성돌을 주로 사용했으나 수량이 달려 부득이 새 성
돌로 모자란 부분을 때웠다. 그러다보니 고색이 짙은 옛 돌과 하얀 피부의 새 돌이 어색하게
조화를 이룬다. 허나 이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발굴조사를 토대로 고구려 축성 양식에 맞춰
왕년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을 했고, 건물터와 온돌 유구 등은 보존을 위해 모두 땅으로 덮었
다. 그리고 보루 중앙 쪽에 탐방로를 내고, 건물터 쪽에는 금줄을 쳤으며, 보루 북쪽과 남쪽
에 보루로 오르는 계단을 냈다.

보루의 둘레는 약 249m, 성벽 높이는 최소 4m 이상이다. 허나 탐방객의 안전을 고려하여 2.5~
3.1m 높이로 축소 재현했다. 지형의 경사면을 이용해 바깥 쪽에 성벽을 쌓고, 안쪽 경사면에
는 뒷채움돌과 흙으로 다졌는데, 방어력을 높이고자 동,서,남,북에 5개의 치성(雉城, 치)을
두었다. 남쪽에는 이중치를 두었는데, 두 성벽 사이가 서로 떨어져 있어 보루 출입구로 여겨
지며, 고구려 축성 양식의 하나인 들여쌓기 형식이 잘 깃들여져 있다.


▲  아차산4보루의 독특한 구조물 남쪽 2중치

4보루 남쪽에는 2중 구조로 이루어진 독특한 치가 눈길을 끈다. 전체 길이 13.2m로 나무로 목
책(木柵)이 둘러진 중간에 2.5m의 뚫린 공간이 있어 이를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 치로 구분
된다.
뚫린 공간에는 치의 성벽에 잇대어 4개의 후대 석축단이 축조되었고, 그 좌우로 목책을 세웠
는데, 아마도 보루의 출입구로 여겨진다. 이런 구조는 용마산2보루와 개발의 칼질에 이슬처럼
사라진 구의동(九宜洞)보루에서도 일부 확인되고 있어 고구려 보루의 독특한 구조를 보여주며
보루의 끝이 들여쌓기로 차곡차곡 쌓여져 있어 안정감을 준다.


▲  4보루로 올라가는 남쪽 계단

보루 내부에서는 건물터 7곳, 온돌 유구 2기, 배수로, 저수조 흔적, 치성 5곳이 발견되었다.
여기서는 항아리와 글씨가 새겨진 토기, 시루, 투구, 찰갑(가벼운 갑옷), 창, 도끼, 화살촉,
낫, 쇠스랑, 말에 물리는 재갈 등이 쏟아져 나와 인근 아차산3보루와 함께 아차산 일대 병참
기지로 추정된다.

▲  4보루 서남쪽 치

▲  4보루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남쪽 계단을 통해 4보루로 올라서니 그런데로 너른 보루 내부가 펼쳐진다. 이곳에는 군사들이
머물던 숙소와 창고, 방어시설 등이 들어서 있었는데,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과 대자연 형
님의 집요한 괴롭힘 앞에 모두 휩쓸려 사라지고 앙상하게 터만 남아 사람들의 상상력을 살찌
워준다.
이곳을 재현한 모형이 서울대박물관에 있으나 이 역시 100% 정답은 아니니 고구려 건축 양식
에 맞춰서 적당하게 4보루 내부가 어땠을지 상상해보기 바란다. 이것이 4보루가 우리에게 주
는 숙제이다.

건물터는 7개가 발견되었는데, 이중 1호 건물터가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해 있다. 여기서는 온
돌유구 2기와 주춧돌, 글씨가 새겨진 토기, 철제 투구 등이 나와 높은 사람이 머물던 곳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3호 건물터 밑에서는 'ㅡ'자형 온돌유구 2기가 나왔는데, 층위(層位)로 보
아 건물터보다 먼저 조성되었음이 밝혀졌으며, 이를 통해 4보루 내부 구조물이 같은 시기에
지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보루를 먼저 쌓고 나중에 온돌과 내부 시설을 지었던 것이다.


▲  북쪽에서 바라본 4보루 1호 건물터

▲  한강을 향해 약간 튀어나온 4보루 동쪽 치

▲  4보루 내부 (북쪽 방향)

▲  4보루 내부 (남쪽 방향)

▲  4보루 저수시설
4보루에는 2개의 저수시설이 나왔다. 이들은 암반 흙을 파내고 바닥과 벽에
뻘을 발라 방수처리를 한 것으로 이들의 규모는 '430x300x깊이230cm',
'670x610x깊이 350cm'이다.

▲  4보루 1호 건물터 앞에서 바라본 한강과 강동구, 하남시 지역

4보루는 아차산 능선 높은 곳에 둥지를 틀고 있어 북쪽을 제외하고 조망이 제법 일품이다. 서
울 광진구와 성동구, 송파구, 강동구, 경기도 하남시, 구리시, 남양주시 지역이 속시원히 시
야에 들어오며 해돋이와 일몰을 모두 맞이할 수 있어 새해 해돋이 수요가 많다. 게다가 아차
산과 용마/망우산을 이어주는 매우 중요한 위치라 아차산 능선의 목구멍과 같은 곳이다.


▲  4보루 동북쪽 치
치 너머로 한강과 구리, 하남 지역이 바라보인다.

▲  4보루 동북쪽 치 주변에서 바라본 천하 ①
한강과 구리암사대교, 강동구, 하남시 지역

▲  4보루 동북쪽 치 주변에서 바라본 천하 ② 강동구, 송파구 지역

▲  4보루 동북쪽 치

▲  4보루 북쪽 치


▲  4보루 북쪽 치

* 아차산4보루 소재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4동,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52-2


 

♠  아차산 산줄기 중간에 자리한 용마산(龍馬山)

▲  아차산에서 바라본 용마산

아차산4보루에서 북쪽 능선길을 10여 분 정도 가면 능선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서쪽은 용
마산, 북쪽은 망우산으로 이어지는데, 우리는 용마산 정상을 찍고 망우산으로 가기로 했다.

아차산과 망우산 사이에 자리한 용마산(348m)은 아차산의 일원으로 용마봉(龍馬峰), 장군봉(
將軍峯)이라 불리기도 한다. 봉우리가 커서 대봉(大峰)이란 별칭도 가지고 있으며, 아차산에
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봉우리로 아차산보다 50m 이상 키가 크다.
광진구와 중랑구(中浪區)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서울 동부와 구리 지역을 훤히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일찌감치 고구려와 신라가 능선에 보루를 주렁주렁 달아놓았다. 지금까
지 발견된 보루는 7개로 1,2,4,5보루는 고구려, 3,6,7보루는 신라(新羅)가 세운 것으로 여겨
진다. 또한 아차산에서 시작된 아차산장성이 용마산을 거쳐 망우산까지 이어지는데, 군데군데
장성의 흔적이 아련히 남아있다.

용마산에는 아기와 용마의 짧막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는데, 삼국시대에는 장사급 아이가 태어
나면 이유 불문하고 그 가족을 역적으로 죽이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그 시절
이곳에서 장사급 아기가 태어났는데, 집안 몰살을 두려워한 부모가 아기를 죽였다. 그러자 용
마봉에서 아기가 타고 다닐 용마(龍馬)가 나타나 다른 곳으로 갔다고 하며 (또는 죽었다고도
함) 그 연유로 용마산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
나 전설이며, 다른 곳에서도 이와 비슷한 전설이 여럿 전해오고 있어 아마도 무인(武人)을 차
별하던 고려 중기나 조선시대에 빚어진 전설이 아닐까 싶다.
또한 용마산과 아차산 서쪽 자락에는 왕실에서 운영하던 살곶이말목장이 있었는데, 용마급 말
이 많이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또는 용마가 나왔다고 해서) 용마산이라 했다는 이야기
도 덧붙여 전해온다. 그러니 후자가 맞을 듯 싶다.

* 용마산 소재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 중랑구 면목4동/면목7동


▲  헬기장이 되버린 용마산4보루 - 사적 455호

용마산 능선 갈림길에서 용마산 정상으로 가다보면 중간에 헬기장이 있다. 바로 이곳에 고구
려가 심어놓은 조그만 점, 4보루가 있었다.
용마산4보루는 성벽 둘레 약 228m로 동쪽 무덤 주변에서 회흑색(灰黑色) 연질토기와 대형 항
아리 조각, 대상파수편이, 북서쪽에서는 철제 화살촉 1개가 발견되었다. 동쪽 능선에 보루를
이루던 석축터가 일부 남아있고, 동쪽과 서쪽의 중간 지점인 저지대는 집수시설로 여겨진다.
1994년 구리문화원에서 조사했을 때는 동쪽과 서쪽을 별개 보루로 여겼으나, 2003년 서울시에
서 다시금 조사한 결과 하나의 보루로 확인되었다. 아직 전체적인 발굴은 이루어지지 않았으
며, 하루 속히 주변을 싹 뒤집어 이곳에 숨겨진 구수한 옛날 이야기 보따리를 꺼냈으면 좋겠
다.


▲  용마산4보루 주변에서 바라본 천하
아차산(왼쪽 산)과 용마산 사이 움푹 들어간 골짜기는 긴고랑이다.
그 너머로 광진, 성동, 송파, 강남 지역이 훤히 시야에 잡힌다.

▲  시내를 향하고 있는 용마산 조망대

용마산4보루를 지나 가파른 길을 오르면 용마산 정상이다. 정상에서 남서쪽 길로 내려가면 서
울을 향해 고개를 쳐든 조망대가 있으니 꼭 가보기 바란다. 그곳의 조망 맛이 아주 일품이기
때문이다.
그 조망대는 정면이 확 트인 곳에 자리해 있어 마치 하늘에서 천하를 굽어보는 기분인데, 산
으로 막힌 동쪽을 제외하고 북쪽, 서쪽, 남서쪽이 훤히 시야에 들어오며, 눈 밑으로 천하 최
대의 대도시로 콧대로 높은 서울 시내가 납작하게 바라보인다. 여기서는 광진구와 성동, 중랑
, 동대문, 성북, 도봉, 중구, 송파, 강남, 서초, 동작, 용산구 지역과 남산, 도봉산, 북한산(
삼각산), 북악산(백악산), 관악산, 대모산, 남한산, 한강 등이 거침없이 시야에 들어오며, 특
히 야경(夜景) 맛이 좋다.


▲  용마산 조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①
용마산 서남쪽 산줄기와 긴고랑을 비롯해 광진구, 송파구, 강남구,
관악산 등이 바라보인다.

▲  용마산 조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②
광진구, 중랑구, 동대문구, 강남구, 한강, 중랑천 등이 바라보인다.

▲  용마산 조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③
중랑구, 동대문구, 성북구, 도봉구, 북한산, 도봉산 등이 바라보인다.

▲  밋밋하게 솟은 용마산 돌탑 (아차산~망우산 주능선)
아차/용마산을 꾸미면서 새로 심은 돌탑으로 딱히 의미는 없다.

▲  용마산 돌탑 주변에서 바라본 천하
아차산 동쪽 자락과 구리암사대교, 한강, 하남시 지역이 시야에 들어온다.


용마산 조망대에서 다시 아차산~망우산 능선길로 나와서 북쪽으로 향했다. 헬기장을 지나 부
드럽게 이어진 능선길을 고집하면 돌탑 하나가 넉넉한 모습으로 마중을 하고, 그를 지나치면
얼마 안가 헬기장이 나오는데, 그곳에도 고구려가 뿌린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용마산5보루
이다.


▲  남쪽에서 바라본 용마산5보루 - 사적 455호

용마산5보루는 아차~망우산 주능선 해발 316m 고지에 자리해 있다. 동,서가 뻥 뚫려있는 곳으
로 서쪽으로 중랑천과 서울 동부 지역이, 동쪽으로는 한강과 구리 지역이 훤히 바라보여 조망
하나는 끝내준다. 그러니 고구려가 이곳에 보루를 세워 아차~용마~망우산 주변을 지켰던 것이
다.
성벽 둘레는 약 132m. 내부 면적은 약 936㎡ 정도의 조그만 보루로 보루 북동쪽 비탈면에 성
벽으로 여겨지는 석축 일부가 약간 드러나 있을 뿐, 흔적은 희미하다. 보루 북쪽에서 고구려
토기인 몸통긴항아리(회흑색 연질토기)가 깨진 채로 출토되었고, 물미로 추정되는 철제품도
발견되어 고구려 보루임이 분명해졌다. 석축과 상층부에 보루 건물터가 있을 것으로 여겨지나
이미 헬기장이 들어앉으면서 상당수가 파괴되었다.
1994년 구리문화원에서 조사하여 고구려 보루임을 확인했고, 2000년 서울대박물관에서 조사했
으며, 2003년 서울시에서 측량 조사를 하였다. 허나 이곳 역시 완전한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
은 상태라 언젠가 이 일대를 싹 뒤집고 조사를 해야 될 것이다.


▲  헬기장에 짓눌린 보루의 현실 - 용마산5보루
산 밑을 바라보며 위엄을 부렸던 보루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H'마크가 새겨진
헬기장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정말 세월무상 그 자체로다.

▲  용마산5보루에서 바라본 서울 중랑구와 광진구, 동대문구 지역

▲  용마산 북쪽 능선에서 바라본 동쪽 천하
구리시 아천동과 구리암사대교, 한강, 강동구, 하남시 지역


 

♠  아차산 산줄기 북쪽에 자리한 망우산(忘憂山)

▲  용마산 북쪽 능선에서 바라본 망우산

용마산5보루를 지나면 내리막길이 하염없이 펼쳐진다. 나무로 다져진 나무데크길이 잘 닦여져
있어 통행은 그리 어렵지는 않으나 경사가 좀 각박하고 계단이 많아서 이곳으로 오를 경우 숨
이 제대로 찰 것이다.
그 산길을 쑥 내려가면 용마산 북쪽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서쪽으로 내려가면 면목동 사
가정공원, 동쪽으로 내려가면 구리시 아치울마을과 시루봉, 북쪽 산길을 오르면 망우산이다.
우리는 망우산을 조금 둘러보고 사가정공원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망우산은 해발 281m로 아차산 산줄기의 북쪽을 이루고 있다. 아차산의 엄연한 일원으로 위치
상 망우산으로 불리고 있으며, 북쪽은 망우리고개까지 이어진다. 서울 시민들의 사후 안식처
로 그 유명한 망우리시립묘지(망우리 공동묘지)를 품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현재는 묘지란
이름 대신 망우리공원으로 세탁되었다.

망우산에는 고구려가 심어놓은 보루 유적이 3곳 발견되었다. 허나 1보루만 간신히 흔적만 남
아있으며, 나머지는 모두 중환자 상태이다. 하여 1보루만 아차산보루군의 일원으로 사적 455
호의 지위를 부여했다. 다행히 그곳은 용마산 북쪽 갈림길에서 10분 정도 가면 된다.


▲  망우산 산길 (1보루 방면)

망우산에는 망우리시립묘지가 넓게 누워있다. 이곳이 졸지에 서울 시민들의 사후(死後) 공간
이 된 것은 왜정(倭政) 시절로 이태원(梨泰院)에 있던 공동묘지를 서울 시가지 확장을 위해
1933년 이곳으로 모두 옮겼다.
공동묘지를 옮긴 것까지는 그러려니 하겠는데, 심술 고약한 왜정이 굳이 망우산을 고른 이유
가 있었다. 바로 인근에 자리한 조선 최대의 왕릉(王陵) 밀집 구역 동구릉(東九陵)을 엿먹이
기 위함이었다. 동9릉은 망우산 동북쪽에 자리해 있는데, 동9릉과 한줄기로 이어진 망우산에
공동묘지를 써서 동9릉의 기를 누르려고 했다. 이는 왜정이 산마다 천박하게 말뚝을 박으며,
이 땅을 모욕한 것과 같은 것이다.

해방 이후에도 무덤이 많이 조성되어 최대 3만 기 넘게 들어찼으나 이후 이장을 장려하면서
지금은 절반 이하로 크게 줄었다. 특히 이곳에는 독립운동가와 문학가, 정치인들도 적지 않
게 신세를 지고 있는데, 만해 한용운(韓龍雲)과 오세창(吳世昌), 안창호(安昌浩), 종두법으
로 유명한 지석영(池錫永)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사람이 꽤 있다. 안창호 선생 등 일부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아직도 많은 20세기 초~중반 역사 인물들이 묻혀 있어 그들 무
덤을 찾아다니며 숨바꼭질을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립묘지를 1바퀴 돌던 5.2km의 순환도로는 손질하여 1998년 5월에 '사색의 길'이란 그럴싸한
간판을 달았는데, 숲이 짙고 기운이 맑아 산책 명소로도 아주 좋으며, 늦가을 풍경이 특히 아
름답다. 단풍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사색의 길은 완전 동화 속의 풍경, 선경(仙境) 그 자체이
다.


▲  망우산1보루 - 사적 455호

망우산1보루는 망우산 남쪽 끝 봉우리(해발 280.3m)에 자리해 있다. 1994년 지표 조사에서 고
구려 토기편이 여럿 나와 고구려 보루로 여겨지며, 보루로 밝혀지기 훨씬 이전부터 헬기장과
군부대 시설, 묘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철저히 고통을 받았다. 그러다가 근래에 헬기장과 참호
를 없애고 보루가 있던 자리를 싹 정리하여 보루터 티를 조금이나마 내게 했다.
안내문이 없다면 그냥 지나쳐도 용서가 될 정도로 보루터 흔적은 딱히 없으며, 여기서 더 북
쪽으로 향하면 2보루와 3보루가 나온다. 허나 이들은 매우 심각한 상태라 문화재청에서도 현
재 손을 놓은 상태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모두 갈아 엎어야 된다. 그래야 망우산 보루에 대한 진실이 나오기 때문이다.

* 망우산1보루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3,8동


▲  망우산1보루 옆구리를 지나는 탐방로
보루 보존을 위해 보루 아랫쪽과 윗쪽 옆구리에 탐방로를 냈다.

▲  망우산1보루에 둥지를 튼 조그만 무덤
후손들의 손길이 그쳤는지 무덤이 잡초에 완전 뒤덮여 주변과 동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나마 묘비와 상석(床石)이 있으니 망정이지 그들도
없었다면 이 무덤은 자연 속에 완전히 잊혀졌을 지도 모른다.


망우산1보루를 둘러보니 시간은 어느덧 18시가 되었다. 저녁 시장기가 한참 피어오를 시간이
된 것이다. 아차산역에서 시작된 아차산 답사로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치고 배도 고프다. 게
다가 햇님의 퇴근 시간 임박으로 여기서 곱게 길을 접고 용마산 북쪽 갈림길로 돌아왔다.

속세로 내려갈 때는 사가정공원으로 길을 잡았다. 중간에 용마제일약수터가 있는데, 아직은
적합 수준이라 졸고 있는 바가지를 깨워 한 모금 마시며 갈증을 털어낸다. 산에서 약수터나
샘터만큼 반가운 존재가 없다.


▲  용마제일약수터

▲  사가정공원으로 내려가는 계곡길

용마제일약수터에서 계곡길을 따라 10분 정도 내려가면 망우산 서남쪽에 자리를 닦은 사가정
공원에 이른다. 공원을 지나면 시내의 모습이 더욱 짙게 다가오고 공원 입구인 용마한신아파
트 교차로에서 아차~용마~망우산 나들이의 끝을 맺었다.
이렇게 하여 고구려의 역사가 배인 현장, 아차~용마~망우산 가을 나들이는 막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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