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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1.14 늦가을에 찾아간 청송 주왕산 단풍 나들이 ~~~ (절골에서 가메봉, 용연폭포, 절구폭포, 용추폭포, 자하성터, 대전사까지)
  2. 2014.07.02 충남의 조그만 금강산, 기암괴석이 일품인 홍성 용봉산 (용봉산 자연휴양림)

늦가을에 찾아간 청송 주왕산 단풍 나들이 ~~~ (절골에서 가메봉, 용연폭포, 절구폭포, 용추폭포, 자하성터, 대전사까지)

 


' 주왕산 늦가을 나들이 '
(절골, 가메봉, 용연폭포, 용추폭포, 주왕계곡)

▲  대전사에서 바라본 주왕산

▲  용추폭포

▲  절골계곡


 

늦가을이 하늘 아래 세상을 곱게 수놓기 시작하던 10월의 한복판에 늦가을 단풍 성지로 격
하게 추앙받고 있는 청송(靑松) 주왕산을 찾았다.
주왕산은 대자연이 경북 한복판에 빚은 크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호남 내장산(內藏山)에 버
금가는 단풍의 대표 성지(聖地)이다. 서울에서 약 600리(옛 10리는 약 5km) 거리로 당일로
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좀 넉넉하게 무박 2일 코스로 다녀왔다.

토요일 저녁 10시, 신도림역(1,2호선)에서 일행들을 만나 준비된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주
왕산이 있는 동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늦가을 단풍의 화려한 향연과 아직까지 미답처(未踏處)로 남아있는 주왕산에 대한 강한 설
레임에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고 검은 도화지가 되버린 차창 밖만 열심히 바라보며 나름대
로 주왕산을 그려본다. 말로만 듣던 주왕산의 실물은 어떠할까?? 단풍은 제법 물이 올랐겠
지? 대전사까지 모두 볼 수 있을까? 등등...

서울을 출발하여 약 5시간 30분 만에 주왕산 남쪽 끝에 자리한 주산지 주차장(상이전마을)
에 이르렀다. 아직 새벽 어둠에 잠긴 주차장에는 천하 곳곳에서 산꾼과 나들이꾼을 바리바
리 싣고 온 관광버스로 가득한데, 간신히 비집고 들어가 주차장 모퉁이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먹었다.
밥과 반찬을 가져온 이들이 많았고, 취사 도구까지 가져와 라면과 찌개, 오뎅탕 등을 해먹
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렇게 갖은 먹거리들이 모두 모이니 그야말로 출장 뷔페가 따로 없
으며, 주차장 옆에는 식당을 겸한 가게가 환하게 불을 켜며 간단한 먹거리를 팔고 있었다.

그렇게 아침을 때우고 4시 30분에 다시 버스를 타고 서쪽에 자리한 절골교로 이동했다. 그
림 같은 비경을 자랑하는 주산지(注山池)도 봤으면 좋으련만 그곳은 일정에 없었기 때문에
공간의 여유가 있는 주산지 주차장에서 아침만 먹고 바로 철수한 것이다.
절골교에서 모두 버스에서 내려 절골탐방지원센터까지 12분 정도 걸었다. 여기서 주왕산의
빗장이 열리기를 기다리다가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 5시, 빗장이 열리기가 무섭게 주왕
산의 품으로 들어섰다.


 

♠  주왕산 절골, 가메봉, 사창골

▲  주왕산 뒷쪽에 숨겨진 절골

절골(절골계곡)은 주왕산 동남쪽에 깃든 계곡으로 주왕산 뒷통수에 해당된다. 주산천(注山川)
의 상류로 골짜기가 꽤 깊고 숲이 울창하며, 옛날에 절이 있었다고 해서 절골이라 불린다. 계
곡 길이는 8km로 주왕산 동쪽 대관령(731m)에서 발원한 갈전골(갈절골)과 신술골이 한데 모여
절골을 이룬다.
삼삼한 숲에 포근히 감싸여 태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여름 제국도 눈치를 보며 피해갈 정
도로 시원하다. 계곡은 물이 풍부하고 기암괴석과 반석, 간간히 나오는 조그만 폭포가 운치를
더해주며. 상류로 올라갈수록 풍경의 질이 높아지니 꼭 상류(대문다리)까지는 오르기 바란다.
  
절골코스는 절골탐방지원센터에서 계곡을 따라 펼쳐지는데 여러 차례 계곡을 건너야 된다. 반
듯한 다리 대신 징검다리가 놓여져 있으나 부실한 곳이 적지 않아 자칫 물에 빠지기 쉽다. 하
지만 수심이 얕아 그리 위험은 없으며, 계곡 트래킹 및 피서지로 아주 그만이다.

절골은 인근 주산지와 함께 '내주왕계곡'이라 불리며, 풍경이 고와 주왕계곡(周王溪谷) 못지
않다. 계곡을 옆에 끼고 상류로 올라가다가 대문다리를 지나서부터 계곡과 서서히 멀어지며,
산길 경사도 점차 각박해져 깔딱 직전까지 이른다. 그렇게 각박한 산길을 오르면 가메봉 동쪽
갈림길에 이르고, 여기서 서쪽 능선길로 가면 가메봉이다.

* 절골탐방지원센터 → 대문다리 → 가메봉 (3시간 20~30분 소요)


▲  고요함에 잠긴 절골 (절골 중류)
늦가을 향연을 준비하는 나무들이 계곡을 거울 삼아 자신의 매뭇새를
다듬느라 여념이 없다.

▲  벼랑 사이를 흐르는 절골

▲  늦가을 채색이 짙은 절골 상류
너른 반석과 조촐한 폭포가 풍경의 아름다움을 돕는다.

▲  가메봉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바라본 주왕산 남쪽 줄기
산 아랫도리와 중간 도리는 단풍의 향연이 한참이나 해발 700m 이후로는 벌써부터
앙상한 분위기를 자아내 올해도 거의 저물었음을 실감케 한다.

▲  주왕산 가메봉(882m) 바위와 그 너머로 보이는 왕거암

가메봉은 주왕산 구역에서 두수람(923m), 왕거암(907m)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이다. 주왕산 동
쪽에 자리한 가메봉은 넓직한 바위로 이루어져 동쪽과 남쪽, 서쪽이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으
며, 하늘에서 가까운 봉우리이나 칼처럼 솟은 뫼에 꽁꽁 둘러싸여 있어 조망의 질은 그리 시
원치 못하다.

우리는 여기서 간단히 행동식을 섭취하고 주왕계곡으로 내려갔다. (일부는 칼등고개를 경유하
여 주왕산 정상으로 이동)


▲  가메봉에서 바라본 천하 (주왕산 남쪽)
가메봉이 아무리 높다한들 하늘 아래 뫼이로다.

▲  가메봉에서 주왕계곡, 사창골로 내려가는 산길


 

♠  주왕산 사창골, 용연폭포

▲  사창골 상류

가메봉에서 울퉁불퉁한 산길을 20~30분 정도 내려가면 사창골이 슬쩍 모습을 비춘다. 가메봉
북쪽에서 발원하여 주왕계곡으로 흘러가는 사창골은 숲이 매우 삼삼하고 바위와 소(沼)가 많
아 절골 못지 않은 고운 매력을 드러내고 있으며, 후리메기3거리를 지나 40~50분 정도 내려가
면 주왕계곡이 모습을 비춘다.


▲  동그랗게 자리를 닦은 조그만 소(못)
해가 지고 밤이 되면 하늘에서 선녀 누님들이 이곳으로 내려와 목욕을
하지는 않을까? 그러고 보니 못의 사이즈도 선녀 누님에 걸맞게
아담하다.

▲  너른 반석과 조그만 폭포
계곡 주위로는 낙엽이란 쓸쓸한 꼬리표를 단 단풍들이 귀를 접고
인생의 마지막을 노래하고 있다.

▲  풍덩 스킨쉽을 하고 싶은 동그란 소
사창골 냇물은 여기서 숨 좀 고르다가 다시 종점 없는 길을 재촉한다.

▲  사창골 하류 산길
사창골 산길은 하류에 이르러 잠시 계곡과 멀어지고 벼랑길로 돌변한다.
벼랑 밑에는 사창골이 빚은 절구폭포가 있으며, 벼랑길을 지나면
주왕계곡에 이르게 된다.

▲  주왕계곡 용연폭포(龍淵瀑布, 제3폭포)

주왕계곡(주왕천계곡, 주방천계곡)은 주왕산(720m)의 중심 계곡으로 '내주왕계곡'이라 불리기
도 한다. 주왕산 동쪽에서 발원한 큰골에서 시작하여 주왕산 심장부를 구비구비 돌다가 대전
사를 지나서 주방천(周房川)이란 이름으로 속세로 흘러간다.
용연폭포와 용추폭포, 시루봉, 학소대, 급수대 등 대자연이 빚은 온갖 작품이 가득해 눈을 부
시게 하며, 특히 용추폭포 주변은 주왕산의 모든 것을 긁어모은 것처럼 대장관을 이룬다.
깊은 산골에 숲이 울창하고, 계곡 좌우는 높은 벼랑으로 이루어져 협곡이 적지 않은데, 그런
계곡을 둘러싸고 600m가 넘는 많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그래서 주왕산을 석병
산(石屛山)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험한 지형을 지닌 탓에 예로부터 산적들이 많았고, 난리가
날 때마다 이곳으로 피난을 온 사람들이 많았다고 전한다. 특히 바위 봉우리가 많아 설악산,
월출산(月出山)과 더불어 이 땅의 3대 암산(岩山)으로 격하게 꼽히기도 하며, 경북의 금강(金
剛)으로 추앙받기도 한다.

신라 선덕왕(宣德王, 재위 780~785)의 족자(簇子)이자 원성왕(元聖王)에게 밀린 김주원(金周
元)이 머물렀다고 해서 주방산(周房山)이라 불렸는데, 이후 그는 명주군왕(溟州郡王)에 봉해
졌다. 하여 그 연유로 주왕산으로 이름이 갈린 것으로 보이며, 고려 후기에 나옹화상이 그리
바꾸자고 해서 이름이 갈렸다는 이야기도 덧붙여 전해온다.
다른 유래로는 당나라 사람인 주도(周鍍)가 8세기 후반,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을 칭하며
진나라 재건을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당나라군에게 보기 좋게 털렸다. 그래서 요동을 거쳐
신라로 도망, 주왕산이 험하다는 풍문을 듣고 그곳에 들어가 주변을 약탈하며 후일을 도모하
다가 당나라의 토벌 요청을 받은 신라에게 털리고 자신은 잡혀 처단되었다. 그래서 주왕산이
라 했다고 한다.
허나 이 전설은 마땅한 기록도 없고 역사적인 근거가 없으며, 조선 때 명나라에 대한 꼴통 사
대주의(事大主義)에 젖은 지역 유생들이 지어낸 것으로 여겨진다. 명나라가 있던 중원대륙과
청송의 명산인 주왕산을 연결시켜 지역의 자부심을 어떻게든 높이려고 머리를 싸맸던 유생들
의 그릇된 생각이 지어낸 산물인 것이다.

주왕계곡은 '청송 주왕산 주왕계곡 일원'이란 이름으로 국가 명승 11호로 지정되었다.


▲  용연폭포의 위엄 (윗폭포)

주왕계곡 상류에 자리한 용연폭포는 제3폭포, 쌍폭, 용폭이라 불리기도 한다. 예전에는 간단
하게 제3폭포라 불렸으며, 2단으로 이루어진 장대한 폭포가 위엄을 자랑하며 하얀 실타래 같
은 물줄기를 밑으로 뽑아낸다. 폭포 밑에는 푸른 못이 펼쳐져 있는데, 영덕 강구항 앞바다와
이어져 용이 머물렀다는 믿거나 말거나 전설이 있다. 그래서 용연폭포란 간판을 지니게 되었
다.
윗폭포 옆에는 얕게 파인 3개의 동굴이 있어 폭포의 경관을 더욱 신비롭게 꾸며주며, 물소리
가 우렁차 귀신도 도망을 칠 정도이다. 못 남쪽에는 탐방로와 조망대가 있는데, 사람들이 폭
포를 구경하느라 금방금방 빠지지를 않아 정체가 심하다. 그만큼 폭포가 사람들의 마음을 제
대로 앗아간 것이다. 우리도 폭포를 구경하느라 한동안 발을 움직이지 못했지. 대자연의 기묘
한 작품 앞에 우리가 할 일이란 그저 감탄사 연발과 사진 촬영 뿐이다.

▲  용연폭포 옆에 패인 3개의 동굴

▲  푸르게 익은 용연폭포 못 (윗폭포)


▲  용연폭포 아랫폭포
아랫폭포도 윗폭포 못지 않은 장쾌함을 보여준다. 이곳은 못 바로 앞까지
접근이 가능하다.


 

♠  주왕계곡의 백미, 절구폭포~용추폭포

▲  절구폭포로 인도하는 좁은 사창골 협곡

용연폭포를 둘러보고 다시 왔던 길로 내려가면 절구폭포로 인도하는 좁은 협곡이 마중을 한다
. 앞서 사창골 산길의 아랫쪽으로 사창골의 하류이기도 한데, 그 협곡을 5분 정도 들어가면
그 길의 끝에 절구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  절구폭포 (제2폭포)

바위 너머 윗쪽에서 2단으로 쏟아지는 절구폭포는 제2폭포라 불리기도 한다. 응회암(凝灰巖)
에 주로 생성되는 절리(암석이 갈라진 틈)에 의해 생긴 폭포로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윗폭
포 밑에는 선녀탕(仙女湯)이 수줍은 듯 숨겨져 있으며, 아랫 폭포 밑에는 수심이 얕은 못이
형성되어 있어 물놀이 장소로 아주 그만이다.
이곳은 사창골 하류로 폭포 주변이 모두 벼랑으로 막혀 길이 없다. 그래서 다시 되돌아나가야
된다. 전쟁 때 만약 이곳으로 몰린다면 정말 몰살을 각오해야 될 정도로 궁벽한 곳이나 주변
풍경이 아름답고 물이 시리도록 맑아서 내 즐겨찾기 명소로 살짝 숨기고 싶다. 현재 선녀탕과
윗폭포는 출입이 통제되어 있으니 얌전히 아랫폭포 앞에서만 머물기 바란다.


▲  옆에서 바라본 절구폭포

▲  병풍바위

절구폭포를 둘러보고 주왕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주변 풍경이 서서히 흥분을 하면서 나도 모르
게 장대한 벼랑에 감싸이게 된다. 그 벼랑은 병풍바위로 계곡 양쪽으로 거의 직각으로 솟은
낭떠러지가 병풍처럼 둘러져 그야말로 하늘만 보이는데, 벼랑 밑에는 옥처럼 맑은 주왕계곡이
청정함을 자랑하며 힘차게 흐르고 있다.
발을 전혀 들일 수도 없을 이런 험지에 인간들은 산천유람 욕구를 위해 마구 탐방로를 내었는
데, 벼랑 밑부분에는 혹시나 모를 대자연의 테러(낙석)에 대비해 지붕까지 둘렀다. 주왕산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웅장한 멋을 지닌 병풍바위 밑에는 제1폭포라
불리는 용추폭포가 달려있는데, 이곳 풍경은 가히 압권이라 앞서 제2폭포, 제3폭포를 능가한
다.
대자연의 위대한 작품에 혼이 탈탈 털린 속인들은 사진을 찍고 풍경을 구경하느라 좁은 탐방
로는 늘 정체를 빚어 행렬이 다소 버벅거리는데, 풍경이 풍경인지라 정말 그럴 수 밖에 없다.
그게 동물과 신(神)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자리나 축내는 인간들의 인지상정이 아니던가?
아무리 여름 제국이 무더위 갑질로 천하를 뜨겁게 달구어도 이곳만큼은 어림도 없을 정도로
무더위를 잊게 한다. 벼랑에 감싸여 햇살도 마음 놓고 착륙을 못하고, 계곡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주니 땀이 붙어있을 재간이 없다.

용추폭포 윗쪽에는 선녀탕이 있고, 그 위에 구룡소(九龍沼)가 있으며, 탐방로 밑은 계곡과 벼
랑으로 되어있어 계곡과 폭포로의 접근은 통제되어 있다.


▲  대륙의 협곡 같은 병풍바위의 위엄
협곡 사이로 탐방로가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있다. 이렇게 보니 주왕산의 옛 이름인
석병산(石屛山)이란 이름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었다.

▲  용추폭포 구룡소
수심도 깊고 지형도 각박한 이곳에 9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전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  구룡소와 용추폭포 사이에 자리한 선녀탕
선녀 누님들이 들어가기에는 수심이 좀 깊다. 하늘나라 선녀들은
키가 나무만 했던 것일까?

▲  용추폭포(제1폭포)
제2폭포, 제3폭포와 달리 폭포의 정면 모습을 담을 수가 없다. 그만큼
이곳은 칼처럼 솟은 벼랑 밑에 무섭게 펼쳐진 첩첩한 협곡이다.
그나마 탐방로가 닦여져 있으니 이 정도로라도 보는 것이다.

▲  가까이에 있으나 그림의 떡처럼 보이는 용추폭포 밑 동그란 못

▲  벼랑 사이로 각박하게 이어진 병풍바위 협곡 (서쪽 부분)


 

♠  주왕산 마무리

▲  주름선이 인상적인 시루봉 ▲

병풍바위 협곡을 지나면 계곡을 건너는 학소교가 나온다. 다리 옆에는 홀로 솟은 날씬한 돌기
둥이 손짓을 하는데, 그 돌기둥이 시루봉이다.
시루봉은 대자연이 오랜 세월을 두고 다듬은 작품으로 그 모습이 떡을 찌는 시루처럼 생겼다
하여 시루봉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바위 피부에는 주름선이 많은데 옆에서 보면
어두운 표정을 지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여 신비감을 더한다. 완전 깎아지른 듯한 벼랑으로
무장된 천험의 돌기둥이라 접근은 정말 어림도 없어 보이는데, 저 봉우리 위에는 주왕산 산신
이나 신선만의 공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들의 숨겨진 보물이라도? 그러니까 대자연
이 사람들이 오르지 못하게끔 저렇게 깎아 놓았을 것이다.

이런 절경에는 꼭 옛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붙여놓은 전설이 하나씩은 꼭 있기 마련, 그 내용
은 대략 이렇다.
옛날 어느 추운 겨울, 한 도사가 바위 위에 올라가 열심히 도를 닦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신선 2명이 하늘에서 내려와 도사가 추위에 떨지 않도록 바위 밑에 불을 지폈는데, 그 연기가
바위 전체를 감싸며 봉우리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이게 끝임.


▲  시루봉 밑 주왕계곡


▲  학소대(鶴巢臺)

시루봉 맞은편에는 학소대라 불리는 커다란 낭
떠러지가 장대한 모습을 자랑하며 시루봉과 자
웅을 겨룬다.

계곡 바로 옆에 직각으로 높이 솟아있어 그 장
엄함에 주눅을 들게 만드는데, 시루봉 마냥 낭
떠러지로 이루어져 있어 철옹성 마냥 범접하기
가 어려워 보인다.
절벽 꼭대기에는 키 작은 나무들이 자라 세상
을 굽어보고 있으며, 학소대의 덩치가 대단하
여 주변 계곡에 늘 그늘을 드리운다.
옛날에 청학(靑鶴)과 백학(白鶴)이 무리를 지
어 살았다고 해서 학소대라 불리며, 그 학소대
밑에 도승(道僧)이 절을 짓고 살았는데, 꿈에
신선이 나타나 빨리 피하라고 재촉하므로 밖으
로 나오니 위에서 바위가 굴러떨어져 절을 덮
쳤다는 믿거나 말거나 전설이 한 토막 전해온
다.


▲  인간이 만든 비루한 작품, 학소교 (학소대 밑)
대자연의 걸쭉한 작품을 쭉 보다가 인간이 만든 콘크리트 다리를 보니 정말로
못봐주겠다. 아무리 아치형으로 만들어도 거기서 거기임..

▲  급수대(汲水臺)

학소대를 지나면 육중한 바위 봉우리인 급수대가 모습을 비춘다. 그 역시 낭떠러지로 이루어
진 30여m의 주상절리(柱狀節理) 바위로 옛날 주왕의 군사들이 바위 위에 무자위를 설치해 계
곡 물을 위로 소환했다는 전설이 있어 급수대란 간판을 지니게 되었다. 물론 주왕의 전설도
거짓이며 급수대의 전설 또한 거짓이다.


▲  주왕계곡 북쪽에 솟아난 벼랑 (이름은 모르겠음)

▲  자하성(紫霞城)터

급수대를 지나 계곡 하류(대전사)로 계속 길을 재촉하면 길 오른쪽에 자하성터가 초췌한 몰골
로 마중을 한다.
자하성은 주왕굴을 중심으로 하여 지형을 이용해 쌓은 산성(山城)으로 주방산성, 주왕산성이
라 불리기도 한다. 주왕이 신라군을 막고자 쌓았다고 하나 현실은 삼국시대 또는 고려 때 축
성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곳을 거쳐 갔다는 신라 왕족 김주원이 자신에게 돌아올 왕위를
가로챈 김경신(원성왕)을 크게 원망하며, 여기서 잠시 딴 마음을 품지 않았을까 싶다. 허나
그 마음도 부질 없음을 깨달았는지 강릉(명주)으로 내려가 거기에 둥지를 틀었다.

성 둘레는 12km에 이르렀다고 하며, 대자연의 끊임없는 태클과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에 죄
다 무너지고 지금은 일부만 겨우 남아 있다. 그 모습도 돌무더기처럼 남아있어 자하성터 안내
문이 없었다면 그냥 자연산 돌무더기로 지나쳐도 이상할 것이 없다.


▲  주왕계곡의 흥미로운 존재, 아들바위

자하성터를 지나면 계곡 냇가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인 아들바위를 만나게 된다. 덩치가 큰 네
모난 바위가 다소 기운 모습으로 자리해 있는데, 겉모습은 딱히 유별난 것은 없으며, 그냥 계
곡에 놓인 커다란 바위 정도 외에는 특별한 것은 없다. 허나 어찌된 영문인지 아들을 낳게 해
준다는 신비한 존재로 각인되어 옛날부터 아들바위란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땅의 오랜 고질병이라 할 수 있는 아들 선호 사상이 빚은 산물이라고나 할까? 냇가 한복판
에 저런 커다란 바위가 있으니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돌을 던졌을 것이고, 바위 위에 얹혀지면
마치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것이 점차 확장되어 아들을 낳게 해준다는 이
야기까지 생겨난 모양이다.
그런데 다른 바위와 달리 여기서는 그냥 던지면 안된다. 바위를 등지고 다리 가랑이 사이로
돌을 던져 바위에 골인을 해야 아들을 얻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냥 왼팔로 던져 골인을
하면 된다고 했는데, 그새 수법이 바뀐 모양이다. 어쨌든 오랜 세월 사람들이 던질 돌이 바위
위에 수북히 쌓여 그의 높은 인기를 실감케 한다.


▲  잠시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다 (주왕계곡 하류와 주왕산 산줄기)

▲  주왕계곡 하류 (대전사 동쪽)

▲  주왕산 서쪽 자락에 자리한 대전사

주왕산에 들어서면서 시간이 되면 주왕굴과 대전사(大典寺)까지 말끔히 둘러보려고 했다. 주
왕산 상의주차장까지 13시까지 모이기로 해서 시간이 좀 넉넉할 줄 알았는데 벌써 12시 반이
넘어버렸다. 상의주차장까지는 앞으로도 30분을 더 가야 된다. 그러니 이들을 제대로 볼 시간
이 없는 것이다.
하여 산을 좀 타야 되는 주왕굴은 다음으로 미루고 상의주차장 직전 길목에 있는 대전사라도
어떻게 해보려고 했다. 이 절은 신라 후기에 창건된 오래된 절로 주왕산의 터줏대감격 존재인
데, 문화유산이 여럿 있어서 사진에 모두 담고 싶었다. 허나 시간 부족이란 현실 앞에 경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주마등(走馬燈)처럼 지나쳐야 했다.
그렇다고 무리를 해서 보는 것도 단체 활동에 대한 예의는 아니며, 너무 시간에 쫓기듯이 보
느니 쿨하게 다음으로 넘기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하지만 얼마나 아쉽던지 아무리 다음에
오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그 다음이란 것이 언제가 될지는 미지수이다. 서울에서 제
법 먼 거리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전사를 지나니 바로 주왕산의 대표 관문인 상의 매표소이다. 이곳은 대전사 때문에
문화재 관람료란 명목으로 입장료를 뜯고 있는데, 매표소 사람들의 눈빛에는 어느 누구도 그
냥 들여보내서는 안된다는 비장한 각오가 엿보였다. 그 돈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주왕산 상의(대전사)매표소만 입장료를 징수함, 나머지(절골, 월외리 등)는 입장료 없음>

상의매표소를 지나니 다른 유명 산과 마찬가지로 먹거리촌이 징하게 펼쳐진다. 도토리묵과 파
전, 송이, 동동주, 산채비빔밥, 백숙 등을 취급하고 있는데, 서둘러 길을 재촉하려는 찰라 낯
익은 얼굴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적지 않은 일행들이 거기서 동동주 1잔에 간단한 요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늦을까봐 대전사 등 많은 것을 두고 왔는데, 이렇게 여유롭게 산행
뒤풀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이럴줄 알았다면 대전사라도 제대로 보고 오는 건데
갑자기 기분이 허탈해진다.
상황이 뭐 그리 되었으니 다시 대전사로 가기는 틀렸고, 일행들과 어울려 주왕산의 명물인 송
이와 도토리묵, 동동주 1잔을 걸치며 같이 상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  상의주차장에서 바라본 주왕산과 주왕계곡

상의주차장에 도착하니 13시 20분, 늦게 오는 사람들이 속출하여 13시 40분이 되어서야 출발
을 했다. 주차장에는 산꾼과 나들이꾼을 태운 관광버스와 차량들로 홍수를 이루었고 그에 아
랑곳하지 않고 차량들은 계속해서 밀려들어온다. 그러나보니 들어오는 길은 정체가 대단하여
많은 차량들이 마을 밑에 차를 대고 걸어오기도 했다.

주왕산을 벗어난 우리는 안동(安東)으로 넘어갔다. 안동댐 주변에 자리한 식당에 들어가 안동
의 토속 음식인 헛제사밥 정식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는데, 헛제사밥 정식은 일반적인 제삿상
음식과 비슷하다.
헛제사밥의 유래는 조선 때 유생들이 배가 고프거나 비싼 음식을 먹고 싶어서 성현(聖賢)들에
게 제사를 지낸다고 거짓말을 치고 노비와 주변 백성들을 닥달하여 만들게 한 음식상으로 '헛
'이란 접두어를 붙여 그런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그 음식상이 이제는 안동의 대표 밥상이 되
어 전국에 불티나게 팔리는 것이다.

이곳 헛제사밥 정식은 나물이 버무려진 놋쇠 그릇에 밥을 비벼 먹는 것인데, 제사 때 쓰는 국
과 간고등어, 전, 떡, 잡채 등이 정식을 이룬다. 맛도 그런데로 괜찮은 편, 순식간에 밥과 반
찬을 비우고, 술도 여러 잔 마시니 졸음이 밀려와 나를 희롱한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식당 남쪽에 자리한 낙동강(落東江)과 월영교에서 잠시 소화 좀 시키다가
16시 30분에 출발했다. 아무리 목적지가 주왕산이라고 해도 마지막 종점은 결국 집이다. 서울
까지는 4시간 정도 걸렸으며, 피곤한 탓에 자다깨다를 무한으로 반복했다.

정말 번개처럼 날라가 재미나게 보냈던 무박 2일, 그곳이 그리워지고 같이한 이들이 보고 싶
은 마음에 비록 보잘 것은 없지만 이렇게 글을 남긴다. 다소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 아쉬움은
다음이란 인연을 잡아 해결하면 될 것이다.

* 절골 소재지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
* 주왕계곡(용연폭포, 용추폭포 등) 소재지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
* 주왕산국립공원(☎ 054-870-5300) 홈페이지는 ☞ 이곳을 흔쾌히 클릭한다.


* 까페(동호회)에 올린 글은 공개일 기준으로 1주까지만 수정,보완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
  집니다. <단 블로그와 원본은 1달까지임>
* 본글의 내용과 사진을 퍼갈 때는 반드시 그 출처와 원작자 모두를 표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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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0년 10월 25일부터
* 글을 보셨으면 그냥 가지들 마시구 공감이나 추천을 흔쾌히 눌러주시거나 댓글 몇 자라도
 
달아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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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의 조그만 금강산, 기암괴석이 일품인 홍성 용봉산 (용봉산 자연휴양림)

 


' 홍성 용봉산(龍鳳山) 나들이 '

▲  신경리에서 바라본 용봉산의 위엄


♠  용봉산 신경리 마애여래입상(新耕里 磨崖如來立像) - 보물 355호

봄이 천하만물의 폭발적인 성원에 힘입어 반년 가까이 지구 북반구를 지배한 겨울 제국(帝國)을
몰아내고 천하를 진정시키던 4월 첫 무렵 주말에 홍성 용봉산을 찾았다.

용봉산은 충남의 금강산(金剛山)으로 널리 칭송 받는 산으로 주말에는 천하 곳곳에서 달려온 산
꾼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용봉산 등산로의 주요 기점인 구룡대(九龍臺)를 시작으로 나를 이곳으
로 부른 용봉사(龍鳳寺)를 둘러보고 우측으로 난 산길을 10분 정도 오르면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이 모습을 비춘다.

신경리 마애불은 하늘로 솟은 바위 피부에 얕게 감실(龕室)을 파고 4m 높이에 석불을 돋음새김
으로 새긴 것으로 용봉사의 옛 유물이다. 용봉사 법당(法堂)은 원래 이곳에 있었다 하며, 1906
년 평양조씨 집안의 명당을 향한 집착으로 건물은 사라지고 마애불만 외롭게 남게 되었다. 마애
불 앞은 법당을 비롯해 3채 정도는 거뜬히 지을 수 있는 평탄하고 너른 공간으로 현재는 예불을
올리는 네모난 야외 기도처가 닦여져 있으며, 숲과 살을 댄 공간 모서리에는 의자를 여럿 두어
나그네로 하여금 잠시나마 마애불의 외로움을 달래주도록 배려했다.


▲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이 석불은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민머리 위에 육계가 두툼하게 솟아있다. 얼굴은 몸통보다
진하게 새겨져 있는데 살이 많아 보이며, 입술에는 그런데로 미소가 드리워져 중생의 마음을 다
독거린다. 눈썹은 서로 마주보며 45도 각도로 기울어져 있고, 눈은 완전히 감았다. 그리고 코는
무심한 세월과 무지한 이들의 장난으로 흔적만 남았다.
 
몸통에 걸친 법의(法衣)는 목 밑에서 여러 가닥의 선으로 표현되었지만 밑에는 가느다란 선으로
처리되었으며, 석불을 받치는 광배(光背)는 바위 피부를 이용해 희미하게 윤곽선만 나타내어 지
나치기가 쉽다.

용봉사 경내 밑에 자리한 마애불처럼 머리와 상체 부분만 진하게 나와있고, 아래로 내려 갈 수
록 양감(量感)이 정비례로 떨어져 조금은 부족한 인상을 남긴다. 다행히도 용봉사 마애불보다
건강 상태도 좋고 선명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 눈으로 확인하는데 그리 지장은 없다.


▲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앞 너른 공간 (1)
용봉사 법당이 있던 자리로 여겨진다.

▲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앞 너른 공간 (2)
숲 너머로 용봉산의 주요 봉우리인 악귀봉이 보인다.

▲  신경리 마애여래입상에서 바라본 병풍바위의 위엄 (용봉산 동쪽 능선)

신경리 마애불 앞에 뿌리를 내렸을 법당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이곳에 올라서면 동쪽 너머로 병
풍바위가 위엄을 부리고 있고, 악귀봉을 비롯한 용봉산의 주요 봉우리가 가까이에 보인다. 또한
용봉사와 신경리, 상하리 일대가 훤하게 바라보여 조망(眺望)도 그런데로 괜찮다. 그런 조망을
낀 능선 정상부에 있으니 그 위풍과 경관은 자못 대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조의순 무덤에는 요
사와 선방 등 주요 건물을 세워 법당과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실제와 달리 체감 면적도 넓게 보
이도록 했다.

이렇게 마애불을 둘러보고 잠시 두 다리를 쉬었다가 계획에도 없던 용봉산 종주를 단행했다. 어
차피 오르막은 거의 다 오른 상태이고, 여기서 정상도 가까우니 욕심을 조금 더 부려도 그리 문
제될 것은 없다.
마애불에서 3분 정도 가면 용봉산 주능선과 만나는 임간(林間)휴게소에 이른다. 휴게소라고 해서
먹을 것을 파는 매점이나 편의시설이 있는 것이 아닌 그냥 의자와 밥을 먹을 수 있는 탁자가 고
작인 그냥 친환경적인 쉼터이다.


▲  임간휴게소 부근에서 바라본 천하 - 예산군 덕산면 지역

▲  전망대(왼쪽)가 있는 봉우리와 병풍바위


♠  용봉산 악귀봉, 노적봉

▲  악귀봉 부근에서 바라본 내포(內浦)신도시 건설현장 (2012년 사진)

홍성 지역의 명산(名山)으로 명성이 자자한 용봉산은 예당평야(禮唐平野) 서쪽 끝에 자리해 있
다. 해발 381m의 작은 산이지만 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많아 예로부터 충남의 금강산, 제
2의 금강산 등으로 일컬어졌고, 산의 모습이 운무(雲霧) 사이를 휘도는 용의 형상과 달빛을 감
아 올리는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용봉산이란 아주 비싼 이름을 얻게 되었다.
산 전체가 바위산이라 대자연이 빚어놓은 가지각색의 멋드러진 바위들이 그럴싸한 전설을 품으
며 산을 수식하고 있는데, 산에서 보는 해돋이 광경 또한 천하 일품이다. 그러다보니 국립공원
이나 도립공원, 대도시나 인구 밀집 지역을 낀 산이 아님에도 인기가 나날이 높아져 휴일만 되
면 산꾼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이 산이 속세에 이름을 드러낸지는 그리 오래되진 않았으나 이제는 홍성과 충남의 대표적인 뫼
로 계룡산과 칠갑산, 대둔산(大芚山)을 긴장 타게 만든다.

용봉산에는 백제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여겨지는 용봉사를 비롯해 앞에서 언급한 신경리 마애여
래입상 등의 불교문화유산이 있으며, 산 동쪽 자락에는 자연휴양림과 청소년수련원이 있어 자연
과 함께 호젓한 하룻밤을 지낼 수 있다. 또한 산세가 작다보니 30~40분 정도면 주능선에 이르며,
주능선과 정상을 거쳐 빠르면 2시간 정도면 거뜬히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다만 산이 급하게 솟
아있다 보니 경사가 각박하고 위험지대가 많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산을 구성하는 주요 봉우리로는 북쪽의 수암산을 비롯하여 악귀봉과 노적봉, 최고봉(용봉산 정
상), 투석봉 등이 있으며, 산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자 한다면 장항선 열차를 타고 삽교에서 홍
성으로 이동할 때(또는 그 반대로) 보기 바란다. 정말 찬사가 나올 것이다.


▲  악귀봉 구름다리

임간휴게소에서 용봉산의 주요 봉우리인 악귀봉까지는 주능선을 따라 10분 정도 걸린다. 구름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보이고, 하늘과도 무척이나 가까워 마치 학의 등에 올라탄 기분이다. 또
한 천하가 발 밑으로 보이니 천하를 손에 넣은 듯 즐거운 기분마저 넝실거린다.

악귀봉은 해발 369m로 용봉산에서 2번 째로 높다. 왜 악귀봉이란 기분 나쁜 이름을 지니게 되었
는지는 모르겠으나 멀리서 보면 악귀처럼 보이거나 그만큼 험준한 봉우리라서 사람들이 그런 이
름을 강제로 씌운 모양이다. 굳이 다른 이름도 많은데 왜 신(神)과 동물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자리만 축내는 인간이란 것들이 좋지도 않은 이미지의 이름을 붙였는지 악귀봉도 무척 서운해
할 것이다.


▲  삽살개바위
삽살개보다는 엄지손을 치켜든 모습처럼 보인다. 엄지손바위란 이름도 좋지 않을까?
참고로 용봉산에 있는 바위 이름은 거진 홍성군청에서 보이는 모습에 따라 멋대로
지어 붙인 것이다.

▲  악귀봉에서 바라본 용봉산 줄기 ~ 노적봉과 용봉산 정상(최고봉)

용봉산이 좀 작다보니 각 봉우리와 바위 간의 거리도 짧다. 허나 짧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된다.
산에서의 거리는 평지의 최대 2배 정도 되기 때문이다. 임간휴게소에서 악귀봉까지 0.38km라 쓰
여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0.7km에 가깝다. 그런 숫자의 농간에 괜히 마음을 놓지 말고 서두르지
말 것이며, 자존심을 곱게 접어 산행에 임해야 뒷탈이 없을 것이다. 산은 자신을 만만히 보거나
무시하는 이를 가만 두지 않는다.


▲  악귀봉에서 본 내포신도시 현장 (2012년 사진)
충남도청 이전과 충남 서부지역 발전을 위해 예당평야 서쪽에 내포신도시를 닦았다.
내포 조성으로 용봉산 접근성은 예전보다 좋아졌고, 내포의 후광으로
용봉산의 존재감도 그만큼 두터워졌다.

▲  사람들로 가득한 악귀봉 주변

▲  물개바위에서 전망대로 내려가는 길

▲  두꺼비바위 - 바위 봉우리가 병풍을 이루며 절경을 자아낸다.

▲  확대해서 본 두꺼비바위
내 눈이 이상한 건지 두꺼비로 보이지는 않고 고개를 들고 있는 멍멍이로 보인다.

        ◀  하늘로 곧게 솟은 행운바위
서울 관상감(觀象監)의 관천대(觀天臺)처럼 생
긴 바위가 엉뚱하게 행운바위란 이름으로 등산
객들의 심심풀이 표적이 되고 있다. 아마도 바
위 꼭대기에 움푹 들어간 공간 때문에 돌을 던
져 행운을 비는 기복(祈福) 형태의 바위가 된
듯 싶은데, 등산객들이 무심히 던진 돌이 탑 정
상에 수북히 쌓여 조그만 돌탑을 이룬다.


▲  행운바위 꼭대기 너머로 본 용봉산 북쪽 줄기

▲  행운바위 주변에서 본 악귀봉

▲  노적봉에서 본 내포신도시 남쪽

▲  아직도 갈 길이 먼 용봉산 정상 (노적봉에서 바라본 모습)

악귀봉에서 노적봉까지는 0.23km로 10분 정도 걸린다. 가는 길은 그런데로 양호한 수준, 노적봉
은 악귀봉과 용봉산 정상(최고봉) 사이의 봉우리로 해발 350m이다. 이곳에는 시원한 아이스크림
과 음료수를 파는 행상이 있는데, 속세(俗世)보다 2배를 더 얹혀 팔고 있었다. 하긴 여기까지
들고 온 수고가 있으니 산에서 그 정도면 그러려니 봐줄 만은 하겠다.
행상은 '아이스케키 사세요~~!' 소리를 치는데, 땀도 흘리고 목도 마른 등산객들의 심리를 제대
로 들쑤셔 금세 1통을 비웠다. 나도 목이 말라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었는데, 정말 꿀맛이 따
로 없다.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먹어서 그런 것일까?


▲  노적봉에서 본 홍성 지역 (홍북면과 홍성읍)


♠  용봉산 정상과 최영장군 활터

▲  용봉산 정상을 이루고 있는 최고봉(最高峯, 381m)

노적봉에서 최고봉까지는 0.36km로 8분 정도 걸린다. 최고봉은 용봉산의 꼭대기로 삼각(三角)처
럼 솟은 바위가 아담하게 정상을 이루고 있는데, 최고봉이란 가장 높은 봉우리란 뜻으로 근래에
지어진 이름이다.
바위 정상에는 용봉산 정상을 알리는 표석이 있는데, 산꾼들이 정상에 왔음을 알리는 인증 사진
을 찍느라 표석 주변은 늘 부산하다. 한 사람이나 한 단체가 사진을 찍기가 무섭게 바로 다른
이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으니 말이다. 그래서 잠깐 비어있는 틈을 이용해 정상 표석을 사진에
담았다.


▲  용봉산 정상 표석의 위엄

▲  용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홍성 홍북면과 예당평야
용봉산에서 저 멀리 보이는 산까지 펼쳐진 드넓은 대지가 예당평야이다.
이렇게 보니 이 땅도 결코 좁지는 않은 모양이다.

▲  용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내포신도시 건설 현장 (2012년 사진)

마치 불모의 사막에 한줄기 도시를 짓는 듯, 드넓은 예당평야 서쪽에 자리를 닦아 충남의 야심
작 내포신도시를 조성했다. 홍성군과 예산군의 경계 지점으로 2013년에 대전(大田)에 있던 충남
도청을 비롯해 충남교육청, 충남지방경찰청이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고, 계속해서 주거지를 조성
하고 있어 2016년에 대략 공사가 끝날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과 각종 회사의 이전으로 홍성과 예산에 적지 않은 인구와 기대감을 더해줄 것이며, 그
리되면 용봉산은 내포의 듬직한 뒷동산이 되어 안그래도 많은 산꾼이 더 늘어나 이름 석자도 더
욱 견고해질 것이다. 다만 개발의 칼질은 저 정도에서 멈춰야 될 것이며, 신도시와 용봉산의 영
역을 엄격히 구분 지어 용봉산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는 일이 없어야 될 것이다.


▲  최영 장군 활터에 자리한 정자

최고봉에서 용봉산 자연휴양림으로 10분 정도 내려가면 정자가 있는 봉우리(339m)가 나온다. 이
곳은 '~~봉' 대신 '최영장군활터'라 불리는데, 정자에 올라서면 내포신도시를 비롯해 예당평야
와 홍성 서북부 지역, 예산 서부 지역이 훤히 바라보여 조망이 꽤 일품이다.

봉우리 이름에 등장하는 최영(崔瑩)은 고려의 마지막 보루(堡壘)로 동아시아를 누비며 80회 가
까운 전투를 승리로 이끈 명장이며, 금을 돌처럼 여겨 검소하게 살았고, 백성을 살피고 나라를
지켰던 명장이다. 바로 그가 태어난 곳이 홍성이다.
그는 어린 시절 용봉산에서 무예를 닦았다고 하는데 바로 이곳에서 활쏘기 연습을 했다고 하며,
그 연유로 최영장군활터가 되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로 그를 흠모하는 지역 사람들이
용봉산에서 조망이 제일 좋은 이곳을 그가 활을 쏘며 무예를 익힌 곳으로 삼고 그럴싸한 전설을
덧붙였는데, 그 전설은 다음과 같다.

최영은 어린 시절 말을 타고 무예를 연마하다가 문득 말의 능력을 시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말
에게 '내가 여기서 화살을 쏘겠다. 만약 너가 화살보다 먼저 도착하면 맛있는 상을 줄 것이고,
화살이 먼저 도착하면 너의 목을 베겠다. 어떠냐?'

그러자 말이 '좋다. 흔쾌히 해보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에 찬 모습을 드러냈다.

최영은 말을 타고 지금의 최영장군활터에서 동남쪽으로 5km 떨어진 홍성읍 은행정 방향으로 화
살을 날렸다. 그러자 말은 목이 걸린 일이라 화살이 날라가기 무섭게 그곳으로 번개처럼 달려갔
다. 허나 목적지에 이르니 화살은 보이지가 않았다. (말의 품종이 무엇이길래..? 5km를 단숨에
갔단 말인가?) 발끈한 최영은 화살이 먼저 도착한 것이라 여기고 말의 변명도 듣지 않은 채, 단
칼에 죽이고 말았다. 바로 그때 산에서 쐈던 화살이 무심히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최영은 자신의 경솔함에 크게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자고 약
속했던 자신의 말을 그 자리에 묻어주었는데, 홍성읍 은행정 옆에 금마총이라 불리는 말무덤이
바로 최영의 말 무덤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전설은 이곳 뿐만 아니라 광주 무등산(無等山)에도 전해온다. 그곳에는 김덕령(金
德齡)이 최영과 같은 테스트를 했는데,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다만 말을 죽이기 직전에 화살이
지나가 김덕령의 말은 목숨을 건진다. 이들 전설은 그들을 흠모하는 지역 사람들이 지어낸 것이
나 아무리 우수한 말이라고 해도 5km를 단숨에 가는 것은 불가능하며, 아무리 높은 곳에서 활을
쏴도 그 사정거리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그런 말도 안되는 테스트로 자신의 말을 죽이려고 했던 속 좁은 위인으로까지 비쳐질 수
도 있으니 그리 썩 바람직한 전설은 아닌 것 같다.


▲  최영장군 활터 정자 옆에 뿌리를 내린 돌탑 -
중생들의 소망을 먹고 자란 산악신앙(山岳信仰)의 현장이다.

▲  최영장군 활터에서 바라본 홍성 지역과 예당평야

▲  기묘하게 자리한 흔들바위

최영장군활터를 지나면 길이 다소 아찔해 질 것이다. 마치 천길 낭떠러지 같은 절벽을 내려오는
듯한 기분이 진하게 들면서 긴장감의 끈을 더욱 조여야 된다. 여기서 자연휴양림까지는 손에 잡
힐 듯 바라보이는데, 내포신도시와 홍성, 예산 지역이 파노라마처럼 숨가쁘게 펼쳐진다.

활터에서 조금 내려가면 암석 위에 기묘하게 목을 붙잡고 있는 흔들바위를 만나게 된다. 흔들바
위는 손이나 몸으로 밀면 조금 흔들리다 마는 바위로 설악산(雪嶽山) 흔들바위가 그 갑(甲)이다.
있는 힘을 힘껏 가하면 바위를 저 아래로 떠밀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좀처럼 밀리지 않는다. 어
찌 저렇게 자리를 잡았는지, 장대한 세월의 태클이 적지 않았음에도 제자리를 끝까지 고집한 흔
들바위의 집념과 절개가 참으로 대단하다.


▲  온갖 기암으로 치장된 용봉산 사자바위 능선


♠  용봉산 마무리

▲  용봉산 자연휴양림 표석

용봉산 최고봉에서 최영장군활터와 흔들바위를 지나 25분 정도 정신 없이 내려가면 용봉산자연
휴양림 내부에 이른다. 이곳은 야외취사장을 비롯하여 산림휴양관과 숲속의 집, 청소년수련원,
체육시설 등의 숙박 시설을 갖추고 있다.


▲  산림체험전시관

숲속의 집과 청소년수련원 사이에 자리한 산림체험전시관은 2층 규모로 홍성(洪城)의 역사와 문
화, 자연을 다루고 있는데, 1층은 전시관과 휴식공간으로 쓰이며, 2층은 휴양림관리사무소로 쓰
인다.
용봉산을 찾는 사람은 허벌나게 많지만 정작 산림체험전시관에 발을 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그곳에 대한 관심이 없다. 다들 용봉산에 눈이 멀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냥 지나칠까 했으나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지나간다고 잠시 둘러보고 나왔다.

* 산림체험전시관 관람시간 : 10시부터 16시 30분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산림체험전시장을 지나면 청소년들의 심신수련 및 단체 숙박을 위한 청소년수련원이 있다. 수영
장과 교육관까지 갖춘 우람한 규모로 그곳을 지나면 용봉산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을 통해 주차장에 이르니 시간은 13시가 넘었다. 내가 10시에 용봉산의 품에 들어섰으니
3시간 이상을 산속에 묻혀있던 것이다.

이렇게 용봉산과의 짧은 인연을 정리하고 덕산(德山)으로 가는 홍성군내버스를 타고 10여 분을
달려 예산군 덕산으로 넘어갔다. 덕산은 예산군 서부에 자리한 고장으로 그 유명한 덕산온천과
윤봉길(尹奉吉)의사 유적지, 수덕사(修德寺), 남연군(南延君)묘 등의 굵직한 명소를 간직하고
있어 관광 수요가 대단하다.

아직 점심 끼니를 때우지 못해 예전 남연군묘에 갔을 때 갈비탕을 먹었던 식당을 찾아보았으나
그새 망했는지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적당한 식당을 물색하다가 '불고기나라'란 이름의 큰 식
당이 눈에 들어와 그곳에 들어갔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내부가 썰렁해 식사가 되는지 문의하니 된다고 해서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
를 잡고 하루 종일 고생한 두 다리를 쉬게 했다. 그리고 무엇을 먹을까 궁리하다가 육개장이 땡
겨서 그것을 시켰는데, 처음에는 그리 기대는 하지 않았다.


▲  덕산 불고기나라에서 먹은 육개장의 위엄

기다리는 시간만큼 지루하고 긴 것은 없다. 고속으로 흘러가는 세월을 저속으로 흘러가게 하려
면 기다리는 것을 많게 하면 된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는데, 15분 정도를 간신히 기다리니 나의
허기진 배를 채워줄 육개장과 밑반찬이 내 앞에 차려진다. 정갈하게 차려진 밑반찬은 배추김치
와 파김치, 콩나물과 메추리알로 수저를 들어 육개장을 들어보니 생각 외로 맛이 괜찮다. 소고
기도 제법 들어가 있고, 고기와 계란, 파, 고사리 등이 버무러진 육개장 국물은 얼큰하고 맛깔
스러웠다.

그렇게 배고픈 배의 불만을 잠재우며, 열심히 숫가락을 움직여 밥과 육개장, 밑반찬까지 싹 먹
어치웠다. 육개장은 국물까지 죄다 섭취하고, 밥은 밥알 하나도 허용치 않았으니 무척 배가 고
프긴 했나보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나니 졸음이 슬쩍 찾아와 배 깔고 한숨 자라며 나를 희롱하
려든다. 그 희롱에 떨어지면 몸에도 좋지 않고, 나는 아직 가야 할 길이 있길래 커피로 졸음에
대항하며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다.

아쉽지만 본글은 여기서 끝~~ 이후 내용은 추후 별도의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


※ 용봉산 찾아가기 (2014년 6월 기준)
① 홍성 경유
* 용산역과 영등포역, 수원역, 천안역, 군산역, 익산역에서 장항선 열차를 타고 홍성역 하차
*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센트럴시티에서 홍성행 고속버스가 1일 8회 떠나며, 동서울터미널에서
  1일 5회, 남부터미널에서 1일 2회 떠난다.
* 인천, 성남, 안산, 대전(서부/동부/유성), 천안, 서산, 보령에서 홍성행 직행버스 이용
② 내포신도시 경유
*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센트럴시티에서 내포행 고속버스가 1일 8회, 동서울터미널에서 1일 5회,
  남부터미널에서 1일 2회 떠난다. (모두 홍성까지 운행함)
* 인천, 성남, 대전(서부/동부/유성), 천안, 청주, 보령, 서산에서 내포시행 직행버스 이용.
③ 예산 경유
* 용산역과 영등포역, 수원역, 천안역, 군산역, 익산역에서 장항선 열차를 타고 예산역 하차
*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센트럴시티에서 예산행 고속버스가 1일 5회, 동서울터미널에서 1일 3회,
  남부터미널에서 1일 4회 떠난다.
* 인천, 천안, 대전(서부/동부), 서산에서 예산행 직행버스 이용
④ 현지교통
* 홍성터미널(홍성역을 나와서 도보 5분 거리)에서 용봉산 경유 내포(도청)/덕산/수덕사행 900
  번대 군내버스를 타고 용봉산 하차 (1일 20여 회 운행)
* 내포신도시 도청대로 환승센터(고속/직행버스 정류장)에서 용봉산까지 군내버스(1일 30여 회
  운행) 또는 택시 이용 (도청대로 환승센터 ☎ 041-333-2914)
* 예산터미널과 예산역에서 덕산, 도청 경유 용봉산행 군내버스 1일 14회 운행

⑤ 승용차 (용봉산 자연휴양림 주차장은 휴양림 숙박객만 사용 가능)
* 서해안고속도로 → 홍성나들목을 나와서 홍성 방면 29번 국도 → 옥암2교차로에서 좌회전 →
  소향3거리 우회전 → 덕산통4거리 좌회전 → 용봉산입구 → 용봉산주차장 (용봉사까지 접근
  가능)
* 당진대전고속도로 → 고덕나들목을 나와서 덕산 방면 40번 국도 → 덕산119안전센터 직진 →
  내포신도시 도청대로 → 용봉산입구 → 용봉산주차장

★ 용봉산/용봉산자연휴양림 관람정보
* 입장료(단체는 30인 이상) - 어른 1,000원(단체 800원) / 청소년과 군인 800원(단체 600원) /
  어린이 400원(단체 200원) / 자연휴양림 숙박시설 사용자는 입장료 면제
* 주차료 - 소형 3,000원 / 대형 5,000원
* 용봉산 자연휴양림 숲속의 집은 10인용 5동으로 성수기 1박은 15만원, 비수기 1박은 10.5만원
  이다.
* 자연휴양림 산림휴양관에는 4인실과 6인실이 있다. 4인실은 성수기 1박은 5만원, 비수기 1박
  은 3만 5천원이며, 6인실은 성수기 1박 7만원, 비수기 1박 4만 9천원이다.
* 자연휴양림 숙박시 개인세면도구는 지참해야 되며, 예약과 문의는 용봉산자연휴양림 홈페이지
  를 참조한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해당 홈페이지로 이동됨)
* 용봉산자연휴양림 -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 상하리 104-57 (용봉산2길 87, ☎ 041-630-1785)


▲  용봉산 등산로 안내도
(사진을 클릭하면 용봉산자연휴양림 홈페이지가 번쩍 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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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개일 - 2014년 6월 24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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