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바다'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7.08.07 피서의 성지를 찾아서 ~~~ 부산 기장 동해바다 40리를 거닐다 (죽성리 월전, 대변항, 죽도, 오랑대, 해동용궁사)
  2. 2016.06.17 임진왜란의 쓰라린 흔적, 울산 서생포왜성 (진하해변)
  3. 2014.08.05 본인 제작 여행답사기 모음집 (2014년 8월초 기준)
  4. 2014.08.04 해돋이가 일품인 동해바다 제일의 경승지, 동해 추암 (촛대바위, 추암해수욕장, 북평5일장)
  5. 2014.01.16 부산의 상징을 거닐다 ~ 오륙도 (등대섬, 오륙도등대, 백운포)

피서의 성지를 찾아서 ~~~ 부산 기장 동해바다 40리를 거닐다 (죽성리 월전, 대변항, 죽도, 오랑대, 해동용궁사)



' 기장 동해바다 나들이 (죽성리 월전에서

대변을 거쳐 해동용궁사까지) '

▲  연화리 앞바다 (멀리 보이는 곳은 대변항)


 

  월전에서 대변까지

▲  남쪽에서 바라본 월전포구

기장읍 동쪽 죽성리(竹城里)에서 시작된 우리의 기장 동해바다 봄나들이는 죽성리 일대의 명소
<죽성리해송(海松), 죽성리왜성(倭城), 황학대(黃鶴臺), 죽성성당>를 두루 둘러보고 월전을 거
쳐 대변으로 향했다. <기장 죽성리 부분은 ☞ 이곳을 흔쾌히 클릭
>

월전에서 대변까지는 3km 정도 된다. 이 구간을 운행하는 대중교통은 하나도 없으며, 1.5~2차
선 정도의 길(기장해안로)이 바다와 적당히 거리를 두며 펼쳐진다. 월전 남쪽에는 식당을 비롯
해 분위기를 내세운 카페들이 여럿 뿌리를 내렸고, 그 이후 대변 동쪽까지는 드문드문 별장처
럼 생긴 집들이 보일 뿐이다. 휴일이라 그런지 대변이나 월전으로 외식을 하러 가거나 드라이
브를 나온 차량들이 수시로 매연을 뿜고 지나갔고, 대변~월전 구간을 걸어서 이동하는 도보꾼
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바닷가는 중간에 등대가 있는 곳과 몇몇 장소를 빼고는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


▲  가지각색의 기암들이 율동을 부리는 월전 남쪽 바닷가

▲  바다와 자갈과의 속삭임
물이 얼마나 푸르던지 4월 중순이란 시간을 잊고 풍덩풍덩 들어가고 싶다.

▲  바닷가에서 만난 튤립(Tulip)의 위엄
아주 잘익은 빨간 튤립 6송이와 노란 튤립 2송이가 바다 바람을 따라 경쾌하고도
귀엽게 봄의 율동을 선보인다.

▲  월전과 대변 사이의 바닷가
바다에 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설마 저기서 석유를 시추하는 것은 아니겠지?

▲  잠시 우리가 왔던 북쪽(죽성, 월전)을 돌이켜보다.

▲  대자연의 물감이 빚어낸 동대해

아무리 천재화가라 한들 대자연 형님이 빚은 작품 앞에서는 그저 한줄기 낙서에 불과하다. 아
무리 용을 써서 흉내를 내어 본들 저런 빛깔은 나오기 힘들 것이다. 사람이 만든 색깔이 어찌
대자연이 빚은 천연의 색깔만 하리요. 그만큼 인간은 대자연 앞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
럼에도 인간은 자연과 공존하거나 섬기지는 못할 망정 계속 괴롭히고 정복하려고만 드니 자연
의 인내력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지 의문이다. 그의 인내가 폭발하면 결국 서로가 좋지 못할
텐데 말이다.


▲  대변 북쪽 바닷가
이 부근에 영화 '친구'를 찍은 바닷가가 있다.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
수영하고 놀던 그 현장 말이다.

▲  대변 동쪽 방파제
좀처럼 나오지 않을 것 같던 대변항이 끝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대변항(大邊港) 둘러보기

▲  대변항의 심장부에 들어서다, 대변항 어시장

월전에서 3km를 가니 나올 것 같지 않던 대변이 방파제를 시작으로 서서히 속살을 보이기 시작
한다. 바다를 따라가면서 수다도 떨고 이리저리 사진도 찍고 바다에 무심히 돌도 던지며 가다
보니 그 거리가 썩 지루하지 않았던 것이다.


▲  대변항 앞바다
방파제가 남,북으로 길게 방패처럼 둘러져 있고 동쪽에는 죽도가 떠있어
파도와 태풍에도 거의 끄떡없는 안전한 항구의 요건을 갖추었다.


이름도 좀 거시기한 대변리(大邊里)에 뉘어있는 대변항은 기장군에서 가장 큰 항구이자 기장을
포함한 부산을 대표하는 어촌(漁村)으로 천하에 제법 알려진 곳이다. 기장의 명물인 미역과 멸
치회로 유명하며, 매년 4월에는 기장 멸치축제가 성황리에 열린다,

대변항은 거의 'C'자 모양으로 육지쪽으로 크게 움푹 들어갔는데, 항구의 남북 폭은 300m 정도
이며, 항구 앞에는 죽도란 조그만 섬이 두둥실 떠 있어 자연산 방파제가 되어준다. 하여 일찍
부터 어촌으로써 크게 발전을 누렸으며 방파제까지 2중으로 두르면서 안전한 항구로 그 품격을
높였다.
새벽을 시작하는 도시, 기장 고을에 걸맞게 아침 일찍부터 바다로 조업을 떠나는 배들로 대변
항은 정신이 없으며 동이 트면 어시장도 활기를 누린다. 늦은 시간까지 싱싱하고 물오른 해산
물을 구경하고 먹을 수 있으며, 이곳으로 끌려온 생선과 해산물은 다양한 판매 경로를 통해 서
울을 비롯한 천하로 절찬리에 팔려나간다.
 
대변리 한복판에 있는 대변초교에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부질없는 쇄국정책의 꿈이 담긴
척화비(斥和碑)가 있는데 학교 바깥에서도 바라보이며, 기장읍내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토암도
자기공원이 있다. 또한 바다를 따라 남쪽으로 가면 오랑대공원으로 이어지며 북쪽으로는 죽성
리와도 이어져 대변항을 중간지 또는 기/종점으로 삼아 해안 산책이나 트래킹을 즐길 수 있다.


※ 대변항 찾아가기 (2017년 7월 기준)
* 부산 지하철2호선과 동해선 벡스코역(9번 출구)에서 부산시내버스 139, 181번을 타고 대변이
  나 대변항입구 하차
* 부산 지하철2호선 해운대역(7번 출구)에서 181번 시내버스 이용
* 부산 동해선 송정역(1번 출구 건너편)에서 139번 시내버스 이용
* 승용차
① 부산시내 → 송정3거리 우회전 → 기장해안로 → 대변항 (또는 송정3거리에서 직진하여 연
   화육교 교차로나 청강4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들어가도 됨)
② 부산시내(반송) / 울산 → 기장군청 → 청강4거리 좌회전 → 대변항
* 소재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


▲  풍어(豊魚)를 꿈꾸며 항구에 몸을 기대 고단한 몸을 쉬는 어선들

▲  대변항 풍경
평화로운 어촌 풍경이 오염된 안구를 조금이나마 정화시켜준다.

▲  바다 너머로 보이는 대변항 북쪽과 붉은 피부의 등대

▲  대자연이 대변 앞바다에 살짝 던져놓은 푸른 점 하나, 죽도(竹島)

앞서 죽성리에 황학대가 있다면 대변리에는 죽도가 있다. 둘 다 섬이긴 하나 황학대는 연륙되
어 버렸고 오직 죽도만 섬으로 남아있는데, 기장 지역의 유일한 섬으로 (조그만 바위섬 제외)
예로부터 기장 제일의 해안 명소로 명성이 자자했으며, 기장8경의 하나로 추앙을 받고 있다.
섬의 모습이 거북이를 닮았다고 하며 대나무가 많아 죽도란 흔한 이름을 지니게 되었는데, 비
오는 날 밤에 빗방울이 대나무잎을 스치면서 내는 청아한 소리가 사람들의 귀를 부여잡으면서
야우(夜雨)의 승경으로 꼽히기도 했다. 또한 시원한 샘이 있어 마을 사람들이 애용했으며, 조
그만 암자가 있었으나 이미 옛날에 사라지고 없다.

예전에는 육지와 200m 정도 떨어져 있어 사람들이 배를 타고 들락거렸으나 주변 바다를 야금야
금 메우면서 섬의 덩치가 조금 불었다. 그래도 섬의 성격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으나 섬 전체
가 어느 개인에게 넘어가면서 아무나 갈 수 없는 금지된 섬이 되버렸다.
섬 주인은 육지까지 다리를 가설해 섬을 한반도에 단단히 붙들어 두었으나 기왕 다리까지 만든
거 대변항의 상징으로 속세에 개방해 관광지로 꾸미면 어떨까 싶다. 허나 섬 주인은 그럴 생각
은 전혀 없는 모양이다. 원래부터 기장의 공유 명소였던 죽도를 왜 혼자서만 누리고 있는지 그
저 야속할 따름인데 기장군에서 섬을 매입하거나 섬 주인과 협의하여 시민들의 품으로 흔쾌히
돌려주는 것이 어떨까 싶다.


▲  대변항 남쪽 앞바다 - 푸른 물감이 잔잔한 여울을 이룬다.

▲  대변항 남쪽에서 바라본 연화리

▲  대변항 앞바다 바위를 점거한 구공(鷗公, 갈매기)들
사람들의 손이 미치기 어려운 조그만 바위섬에 구공들이 들어와 그들만의 조그만
세상을 꾸린다. 한때 새우깡의 제왕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입맛이 고급이
되었는지 이제는 별로 거들떠도 안보는 것 같다.

▲  대변항 남쪽 풍경 (녹음이 우거진 중간 부분이 죽도)


 

  연화리에서 오랑대까지

▲  연화리에서 멀리감치 바라본 대변항

▲  물빛이 진한 연화리 앞바다

대변항에서 연화리 앞바다까지는 길이 이어져 있다. 길가에는 해산물을 취급하는 식당들이 많
이 있는데 4월의 한복판임에도 벌써부터 옷깃을 풀게하는 철모르는 더위와 죽성리부터 걸어온
피곤함으로 잠시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며 두 다리를 달래기로 했다.
허나 가게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마침 이쁘게 치장된 까페 하나가 사막 속에 오아시스
처럼 나타나 우리를 손짓한다. 그를 보는 순간 시원한 걸 마시며 쉬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솟
구쳐 별 망설임 없이 그곳에 발을 들였다. 처음에는 빙수를 먹으려고 했으나 여름에만 판다고
해서(그때 날씨가 거의 여름이었음;;;) 흔한 이름의 커피 종류를 시켰다.

여기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10리 이상 부려온 두 다리의 불만도 잠재우고 이른 더위의 압박
에서 벗어나 일다경(一茶頃)의 여유를 누린다. 까페는 2층 규모인데, 차를 마시러 온 가족 단
위와 중년층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  연화리 까페에서 마신 커피의 위엄

▲  멀리서 본 오랑대(五郞臺)

까페에서 30분 정도 머물다가 다시 길을 떠났다. 시간은 이미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바
다 위에 높이 뜬 햇님은 퇴근시간이 점점 늦어짐을 원망하며 햇살의 강도를 점차 줄이면서 퇴
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연화리 까페에서 바다를 따라 1km 정도를 가니 머리에 조그만 건물과 탑을 지고 있는 허벌나게
큰 바닷가 바위가 모습을 비춘다. 그가 바로 오랑대이다.


▲  꼬깔모자를 연상시키는 오랑대 (꼭대기에 자리한 건물은 용왕각)

오랑대는 기장의 주요 해안 명소의 하나이다. 조선 어느 때에 이곳으로 유배를 온 사람이 있었
는데, 그의 친구 5명이 머나먼 이곳까지 놀러와 오랑대 바위에서 곡차(穀茶)를 겯드리며 가무(
歌舞)을 즐기고 시를 읊으며 놀았다고 한다. 그래서 5명의 선비를 뜻하는 뜻에 오랑대란 이름
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 전설임)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 광경이 가히 장관으로 주변에는 멋드러진 기암괴석이 많다. 오랑대를
원시적인 모습으로 내버려 두었으면 좋으련만 오랑대 바닷가에 자리한 혜광사(慧光寺)가 그곳
을 접수하여 바위 꼭대기에 석축으로 자리를 다지고 용왕각(용왕단)을 달면서 보기가 좀 딱하
게 되었다. 용왕각 지붕에는 괴상하게도 하얀 피부의 3층석탑을 올려놓았는데 멀리서 보면 오
랑대 용왕각의 모습이 마치 만화에 나오는 꼬깔모자처럼 보인다.


▲  오랑대 지붕에 자리한 용왕각

▲  용왕각에 봉안된 동해 용왕상

오랑대를 옆구리에 낀 혜광사는 법등(法燈)이 매우 짧은 현대 사찰이다. 오랑대 옆에 터를 다
지고 들어선 바닷가 절집으로 대자연이 빚은 오랑대를 휼륭한 후광(後光)으로 삼아 절을 꾸린
다.
오랑대 용왕각에는 용왕이 봉안되어 있는데 그 좌우에는 앳된 동자(童子)상이 있으며 용왕 뒤
로 유리창을 내어 그의 활동무대인 동대해가 보이게끔 했다. 지붕에는 네 모서리에 용머리를
달아 건물의 품격을 높이려고 애썼으나 시멘트 집이라 썩 정감은 가지 않는다. 절집답게 목조
기와집으로 지으면 좋으련만 그런 것을 배려하지 않은 것이다.

※ 오랑대 찾아가기 (2017년 7월 기준)
* 부산지하철 2호선 해운대역(7번 출구)에서 부산시내버스 100, 181번을 타고 혜광사 하차, 혜
  광사 방면으로 도보 7~8분 (100번이 그나마 배차간격이 짧다. 139번과 181번은 거의 20분 간
  격)
* 부산 동해선 송정역(1번 출구 건너편)에서 139번 시내버스를 타고 혜광사 하차.
* 승용차 (혜광사에 주차장 있음)
① 부산시내 → 송정3거리 우회전 → 기장해안로 경유 → 혜광사입구 우회전 → 혜광사
② 부산시내(반송) / 울산 → 기장군청 → 연화육교 교차로 좌회전 → 기장해안로 → 혜광사입
   구 좌회전 → 혜광사

* 오랑대 소재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연화리 (혜광사 ☎ 051-721-3167)


▲  1칸 규모로 조촐한 용왕각

▲  오랑대 주변 풍경 - 낚시삼매에 빠진 강태공들이 여럿 보인다.

▲  오랑대에서 바라본 대변항

오랑대를 둘러보고 바다를 따라 해동용궁사 방면으로 이동했다. 허나 군부대로 그만 길이 막혀
부득이 혜광사 뒤쪽 산길을 이용해 기장해안로로 탈출했다.

기장해안로 주변은 혜광사입구부터 당사리까지 관광단지와 쇼핑타운를 짓는다면서 산과 들판을 
죄다 밀어버려 폐허의 공간처럼 아주 흉물스러운 모습이었다. 인근에 오랑대와 해동용궁사, 대
변항, 국립수산과학원, 국립부산과학관 등의 명소를 받쳐주기 위한 관광단지라고 우기고 있으
나 굳이 그런 것이 없어도 이들 명소를 찾는 발길은 여전하다. 고위 위정자 밥버러지들이 그저
개발과 돈, 치적 쌓기에만 급급해 안그래도 좁은 강토를 자꾸 바람직하지 않게 건드리니 실로 
씁쓸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개발의 칼질과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이 어색하게 공존하는 시랑리를 지나니 어느덧 용궁사입구
에 이르렀다. 여기서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를 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고심하다가 이곳
까지 온 거 잠깐 들리기로 했다.
용궁사는 2000년과 2014년에 가본 기억이 있는데, 오랜만에 발을 들인 바닷가 사찰, 용궁사는
관람객들로 완전히 시장통을 이루었다. 경내 곳곳에 불전함이 깨알처럼 자리해 돈을 요구하고
있고 바닷가든 대웅전(大雄殿) 앞이든 사람들이 징그럽게 많아서 거의 사람들 뒷통수만 본 것
같다. 이곳은 딱히 정도 들지 않고 사진에 담고 싶은 생각도 없어 대충 1바퀴 살피고 나왔다.

용궁사를 나오니 시간은 18시, 송정까지 마저 행군할까 하다가 너무 피곤하여 걷는 것은 여기
서 쿨하게 접고 부산시내버스 181번(기장 청강리↔센텀시티)에 고된 몸을 싣고 시내로 나왔다.

이날 죽성리에서 용궁사까지 걸은 거리는 거의 40리 정도, 우스개 소리로 거의 몇 달 걸을 분
량을 그날 하루에 다 걸었고, 바다도 정말 지겹게 두 눈에 넣어서 당분간 바다를 안봐도 섭섭
하지 않을 듯 싶다.

이렇게 하여 봄의 한복판에 판을 벌인 기장 동해바다 나들이는 재생이 불가능한 아련한 과거의
일부로 산산히 흩어지고 말았다. 역시나 사람의 인생은 무상(無常)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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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17년 7월 17일부터
* 글을 보셨으면 그냥 가지들 마시구 공감이나 추천을 흔쾌히 눌러주시거나 댓글 몇 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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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쓰라린 흔적, 울산 서생포왜성 (진하해변)

 


' 울산 왜성(倭城) 나들이, 서생포왜성 '

▲  서생포왜성 내성의 동쪽 성벽


 

 

♠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자리한 옥의 티 같은 옛 왜성 ~
서생포왜성(西生浦倭城) - 울산 지방문화재자료 8호

▲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서생포왜성 외성
푸른 잡초들이 임진왜란의 쓰라린 흔적을 가리느라 부산하다.
 

여름이 슬슬 기지개를 켜며 천하를 무더위로 내몰던 6월 첫 무렵에 서울에서 머나먼 남동임해
(南東臨海) 지역을 찾았다.
부산에서 먼저 볼일을 마치고 다음날 아침 울산(蔚山)으로 넘어오면서 문득 옛날에 갔었던 서
생포왜성이 생각이 났다. 하여 이유도 따지지 않고 왜성이 있는 진하로 길을 잡았다.

울산의 동남쪽 끝으머리인 서생면 진하(서생리) 뒷쪽 언덕(해발 133m)에는 임진왜란의 쓰라린
흔적인 서생포왜성이 평화롭게 누워 있다.
이 성은 규슈 구마모토(雄本) 지역의 우두머리인 가토기요마사(加藤淸正)가 군사와 지역 백성
을 들볶아서 만든 것으로 1592년 가을에 쌓기 시작하여 1593년에 완성을 본 순수 왜성 스타일
의 성이다. 성 둘레 2.5km(4.2km), 성벽 높이 2~6m, 면적은 대략 15만 2천㎡에 이르며, 이 땅
에 남아있는 왜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성을 지을 때 근처에 있던 만호진성(萬戶鎭城)을 부시고 그 돌을 가져와 축성했는데, 산 정상
에 내성을 쌓고 동쪽 경사면에 복잡한 구조로 3단의 부곽(副郭)을 두었으며, 그 동쪽 산 밑에
드넓은 외성을 설치하니 그 범위는 성내마을(진하 서쪽)까지 미친다.
성 밖에는 2중, 3중으로 호(壕)를 파서 수비에 만전을 기했으며, 외성은 바깥쪽에 돌을 쌓은
내탁식(內托式)으로, 내성은 안과 밖 모두를 돌로 쌓은 협축식(夾築式)으로 축성했다. 성벽의
기울기는 60도 정도로 왜성에서 많이 보이는 특징이며, 산 정상에는 왜장이 머무는 천수각(天
守閣)을 두었다.

함경도를 지나 무려 두만강(豆滿江)까지 건너갔던 가토기요마사는 조선군과 강추위에 형편없이
쫓겨 내려와 이곳에 틀어박혔다. 1594년 사명대사(四溟大師)가 4번이나 찾아와 왜장과 교섭을
벌였으며, 1598년 9월에는 김응서(金應瑞)와 마귀(麻貴)가 이끄는 조선,명나라 연합군이 이곳
을 점령하여 울산 왜성의 배후를 위협했다.
1599년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53명의 충신을 배향하고자 창표당(蒼表堂)을 세웠으며 견고하게
축성된 덕에 성을 버리지 않고 1895년까지 조선 수군의 동첨절제사영(同僉節制使營)으로 사용
되었다.

왜란 당시에 기장 죽도성(竹島城), 울산왜성과 봉화를 주고 받아서 봉화성(烽火城)으로도 불리
며, 16세기 왜성의 양식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산증인이라 왜열도에서도 많은 답사객들이 찾아
온다. 성의 이름인 서생(西生)은 명나라 장수 마귀가 성 서쪽 문을 가리켜 생문(生門)이라 했
는데, 그게 이름이 바뀌어 서생이 되었다고 한다.

왜정 때 사적 54호로 지정되었고, 1963년에 국가 지정문화재 목록을 다시 손봤을 때도 정리되
지 않고 그 지위를 유지했다. 허나 그 자리가 너무 외람되어 1997년 학성(울산왜성)과 더불어
사적에서 정리되었으며, 이후 울산 지방문화재로 살아가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4개에 100년이 지났지만 성곽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내성(內城)은 대부분이 남
아 있으며, 외성(外城)은 성곽의 일부가 전하고 있다. 그럼 지금부터 서생포 왜성을 살펴보도
록 하겠다.

※ 서생포왜성 찾아가기 (2016년 6월 기준)
* 태화강역, 울산시외고속터미널 건너편, 학성공원, 울산광역시청, 공업탑에서 715번 시내버스
  (30~40분 간격)를 타고 서생포왜성이나 진하 하차. 진하에서 내리면 정면(서쪽)에 산성 같은
  것이 보이는 야트막한 산이 있다. 거기가 바로 서생포왜성이다.
* 공업탑 남쪽 울산대공원 동문앞 정류장에서 405, 715번 시내버스 이용
* 해운대터미널(부산2호선 해운대역 2번 출구)에서 진하행 직행버스 이용 (50~60분 간격)
* 부산1호선 노포역(1번 출구, 부산종합버스터미널)에서 부산시내버스 37번을 타고 월내초교(
  길천)에서 울산시내버스 715번이나 진하행 직행버스로 환승
* 승용차 (성 아래 조그만 주차장이 있으며, 왜성 정상까지 차량 접근 가능)
① 울산시내 → 남창 → 진하 → 서생포왜성
② 부산시내 → 좌천 → 월내 → 서생 → 진하 → 서생포왜성

*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 711일원


▲  서생포왜성 남문터

서생포왜성은 2002년 6월에 인근에 살던 여인네와 와본 기억이 있다.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
속에 산산히 흩어진 그 시절의 추억을 아련히 되새기며 외성 남문터를 통해 왜성의 품으로 들
어섰다.

남문터는 문을 양쪽에서 붙잡던 성벽만이 잡초를 옷삼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거의 담장 신세
가 되버린 성벽은 멀리 보이는 산 정상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옛 위용을 희미하게 드러내고 있
는데, 성내마을에서 내성1관문까지는 넉넉잡아 15분 정도 걸린다.


▲  마을의 담장과 수풀의 수북한 보금자리로 살아가고 있는 외성

▲  남문터 부근에 심어진 조그만 비석 4기
동첨절제사영 동첨절제사의 선정비(善政碑)나 불망비(不忘碑)로 여겨진다.

▲  풍년 예감, 서생리(진하) 들판
왜성 남쪽 산이 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매뭇새를 다듬는다.


▲  서생포왜성으로 오르는 길 (마을에서 내성으로)

▲  내성 주출입구 밑 산길

▲  내성1관문(주출입구)
성내마을(진하)에서 15분 정도 오르면 내성 출입구가 나온다. 칼로 싹둑 다듬은 듯,
정연하게 쌓여진 성벽은 400년의 세월에도 여전히 건재함을 드러낸다.

▲  내성1관문 안쪽

▲  돌출형 소곽(小郭) - 내성2관문
그 우측으로 성으로 들어서는 작은 출입구가 있다.

▲  잠시 뒤를 살피는 여유 (진하해수욕장)
진하해수욕장과 동대해(東大海), 그들을 후광으로 삼은 진하(서생리) 마을이
저 밑에 바라보인다.

▲  내성3관문 성벽에 뿌리를 내린 돌탑


♠  서생포왜성 내성 부분

▲  내성 중심부로 오르는 산길

내성1관문을 지나 산내음이 가득한 산길을 하나씩 오르면 2관문과 3관문이 차례로 모습을 비춘
다. 비록 문루는 녹아 없어졌지만, 밑을 바라보고 자리했을 문루의 위용이 가히 상상이 간다.
3관문을 지나 성곽이 서로 엇물려진 이른바 엇물림형 출입구를 지나면 왜성의 중심인 산 정상
부에 이른다. 평평한 정상에는 천수각을 비롯해 왜군 숙소, 무기창고가 있었다.


▲  내성의 남쪽 성벽

▲  엇물림형 출입구
왜성의 중심인 천수각을 보호하고 적군을 효과적으로 막고자 성벽을 아주 복잡하게
짜놓았다. 수비하기에는 좋지만 공격하기에는 아주 쥐약 수준으로 만든 것이다.

▲  왜성의 정상부 ▼
녹음이 서린 나무와 잡초가 아픈 역사의 현장을 잔잔히 덮어준다.



▲  왜성의 중심인 천수각(天守閣)이 있던 곳

사진에 보이는 성곽 위에 천수각(텐슈가쿠)이 있었다. 천수각의 모습은 왜열도의 오사까성이나
구마모토성의 천수각을 참조하면 될 것이다. 영주(領主) 출신인 왜장들은 그들의 특권을 여기
서도 변함없이 누리며 호화롭게 천수각을 지어 부하들과 지역 사람들을 쥐어짰는데, 그 천수각
은 오래 전에 녹아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지적측량을 위한 지적삼각점이 대신 서 있다.


▲  왜성 정상부의 북서쪽 부분

▲  왜성의 특징이 잘 드러난 내성 성벽 ▼
우리나라 성벽은 거의 80도 기울기이지만 왜성의 기울기는 거의 60~70도이다.
무거운 세월의 때와 자연의 태클에 많이 헝클어졌지만
여전히 옛 모습과 위용을 자랑한다.


▲  내성 서쪽 성벽에서 남쪽 산줄기로 인도하는 오솔길

내성의 서쪽 성벽 끝에 성 밑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있다. 길이 좀 가파르기 때문에 조심을 기
해야 되는데, 그 밑으로 내려가면 조그만 오솔길이 나오며, 그 길을 내려가면 성내마을(진하)
에 이른다.
내려가는 길목에는 약수터가 있어서 나그네의 목을 아낌없이 축여주며 정겹기 그지 없는 흙길
은 속세의 물을 먹으며 점차 콘크리트 길로 변한다.

이렇게 하여 오랜만에 들린 서생포왜성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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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제작 여행답사기 모음집 (2014년 8월초 기준)

 

서울 - 56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

글 공개시기

링크

1

은평구 진관사, 삼천사, 북한산성 2003, 5 200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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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북구 성북동(간송미술관 / 심우장 / 성락원 / 선잠단터) 2003, 10 20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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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관악구

관악산(낙성대유지 / 낙성대 / 봉천동 마애불) 2004, 2 200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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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북구 성북동(간송미술관 / 선잠단터) 2004, 10 200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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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종로구 북악산 백석동천 2005, 5 200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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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종로구 경복궁, 인사동 2006, 1 200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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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은평구 숙용심씨 묘표, 영산군 묘역 2006, 2 200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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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중구 덕수궁 2006, 3 200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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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중구
종로구

서울시립미술관, 정동교회, 옛 러시아공사관터,
인사동

2006, 3 200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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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종로구 창경궁 (1) 2006, 4 20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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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종로구 창경궁 (2) 2006, 4 20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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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강남구 봉은사 1 (사월초파일) 2006, 5 200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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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강남구 봉은사 2 (사월초파일) 2006, 5 200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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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종로구
서대문구

세검정, 대원군별장, 홍지문
보도각백불

2006, 8 200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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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종로구

북한산 금선사

2008, 4 200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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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금천구

호암산 호압사

2008, 4 200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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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금천구

호암산 (호압사, 석구상, 한우물, 호암산성) 2009, 1 200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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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종로구

선희궁터, 청와대분수대, 청와대앞길,
경복궁신무문, 인사동

2008, 11 200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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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강남구

대모산 불국사 (사월초파일)

2008, 5 200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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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은평구

북한산 삼천사 (사월초파일)

2008, 5 200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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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이종석 별장

2008, 10 200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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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노원구 수락산 학림사 2009, 4 2009, 8 ☞ 글보러 가기

23

종로구 북악산 백석동천 2008, 11 2009, 12 ☞ 글보러 가기

24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 2008, 5 2010, 4 ☞ 글보러 가기

25

은평구 태화산 수국사 2009, 5 2010, 7 ☞ 글보러 가기

26

종로구 부암동 뒷골마을, 북악산길, 창의문 2010, 1 2011, 3 ☞ 글보러 가기

27

관악구

관악산 관음사, 효민공이경직묘역, 사당동백제요지,
구벨기에공사관

2009, 3 2011, 4 ☞ 글보러 가기

28

성북구

흥천사

2010, 5 2011, 5 ☞ 글보러 가기

29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2010, 5 2011, 5 ☞ 글보러 가기

30

종로구

가회박물관, 삼청동(북촌), 인사동

2009, 8 2011, 9 ☞ 글보러 가기

31

성북구

성북동 삼청각, 홍련사, 북악산

2010, 5 2011, 10 ☞ 글보러 가기

32

도봉구

방학동 은행나무, 원당샘, 양효안맹담/정의공주묘
목서흠묘역

2009, 10 20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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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종로구

북악산 백석동천 2010, 1 2012, 2 ☞ 글보러 가기

34

종로구

장의사지당간지주, 세검정, 석파정별당, 홍지문

2010, 1 2012, 2 ☞ 글보러 가기

35

강서구

구암공원(광주바위), 허가바위, 허준박물관

2010, 3 2012, 3 ☞ 글보러 가기

36

노원구

불암산 학도암, 이윤탁한글영비

2010, 4 2012, 4 ☞ 글보러 가기
37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2011, 5 2012, 5 ☞ 글보러 가기
38

동작구

상도동 사자암

2011, 5 2012, 5 ☞ 글보러 가기
39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창빈안씨묘역, 호국지장사)

2010, 6 2012, 6 ☞ 글보러 가기
40

종로구

북악산 백석동천(백사골)

2009, 10 2012, 8 ☞ 글보러 가기
41

성북구

북악산 북악하늘길(김신조루트), 북악산길

2011, 5 2012, 9 ☞ 글보러 가기
42

성북구

성북동 심우장, 최순우옛집, 선잠단터

2010, 5 2012, 10 ☞ 글보러 가기
43

종로구

북촌문화센터, 관상감관천대, 계동길, 창덕궁길,
요금문, 고희동가옥, 백흥범가옥, 빨래터

2011, 7 2013, 1 ☞ 글보러 가기
44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 2012, 5 2013, 4 ☞ 글보러 가기
45 종로구

석파정별당(석파랑), 부침바위터, 무계정사터,
현진건집터, 청계동천, 반계윤웅렬별장

2011, 11 201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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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종로구

재동백송, 재동초교, 백인제가옥, 북촌3경 일대,
정독도서관(서울교육박물관), 안국동 윤보선가

2011, 9 201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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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강북구

북한산 본원정사

2012, 5 201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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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성북구

정릉동 경국사

2012, 5 201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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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종로구

북악산 백사실(백석동천) 2012, 7 201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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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도봉구

도봉산 (자운봉, 포대능선, 만월암, 도봉서원,
광륜사)

2012, 5 201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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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2012, 10 201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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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금천구

호암산 (석구상, 호암산성터, 한우물, 불영암,
칼바위)

2011, 11 201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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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종로구

윤동주시인의 언덕(윤동주문학관), 청운공원

2011, 8 201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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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종로구
중구

서울연등회 (서울연등축제)
조계사, 우정국로, 청계천, 광통교

2013, 5 201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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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종로구

북한산 승가사 (구기동 마애여래좌상) 2012, 5 201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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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중구

환구단(원구단), 덕수궁 대한문, 성공회 서울성당,
양이재, 구세군 중앙회관

2010, 4 201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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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인천 - 27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

글 공개시기

링크

1

부천

야인시대촬영장, 루미나리에축제 2003, 10 200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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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화

석모도 보문사, 매음리해변 2004, 11 200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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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강화 광성보, 용두돈 2004, 11 200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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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강화 강화도 선원사 연꽃축제장 2005, 8 200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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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양 북한산성(대서문, 중흥사터, 북한산행궁터) 2006, 8 200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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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고양 북한산성(태고사, 산영루터, 북한산성계곡) 2006, 8 200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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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성남 망경암, 봉국사 (사월초파일) 2006, 5 200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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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오산
수원

오산 물향기수목원 / 수원 팔달문

2006, 11 200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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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남양주 수락산 흥국사 2007, 12 2008, 3 ☞ 글보러 가기

10

남양주 덕릉마을 산신각, 덕흥대원군 묘역 2006, 12 2008, 5 ☞ 글보러 가기

11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용암사) 2007, 9 2008, 10 ☞ 글보러 가기
12

안양

안양사, 석수동마애종, 석수동석실고분 2007, 11 2009, 3 ☞ 글보러 가기
13

안성

서운산 석남사 (사월초파일)

2008, 5 2009, 5 ☞ 글보러 가기
14

하남

춘궁동동사지(동사지3/5층석탑), 광주향교

2008, 10 2010, 2 ☞ 글보러 가기
15

안양

삼성산 염불암, 중초사지당간지주, 안양예술공원

2008, 11 2010, 12 ☞ 글보러 가기
16

양평

용문산 사나사, 사나사계곡

2010, 5 2011, 5 ☞ 글보러 가기
17

강화

강화도 선원사 (연꽃축제)

2009, 8 2011, 8 ☞ 글보러 가기
18

고양

북한산성 중성문, 노적사, 중흥사터, 봉성암,
산영루터

2008, 4 2011, 8 ☞ 글보러 가기
19

포천

반월성, 청성공원, 포천향교

2009, 8 2011, 10 ☞ 글보러 가기
20

하남

선법사(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2008, 10 2011, 11 ☞ 글보러 가기
21

고양

한미산(노고산) 흥국사

2008, 11 2011, 12 ☞ 글보러 가기
22

고양

중남미문화원, 벽제관터

2010, 4 2012, 5 ☞ 글보러 가기
23

강화

장정리 석조여래입상, 장정리5층석탑, 고려궁터,
김상용 순절비

2009, 8 2012, 8 ☞ 글보러 가기
24

이천

관고리 석불입상, 설봉공원(설봉저수지),
설봉서원, 설봉산 영월암

2009, 5 2012, 10 ☞ 글보러 가기
25

양평

용문산 용문사,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

2010, 11 2012, 11 ☞ 글보러 가기
26

파주

고령산 보광사

2009, 12 2013, 2 ☞ 글보러 가기
27

화성

제암리 3.1운동순국유적 2012, 3 2014, 3 ☞ 글보러 가기

 

강원도 - 18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양양

낙산사, 홍련암, 오색약수, 성국사, 설악산 주전골 2004, 2 200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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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릉 객사문, 오죽헌, 경포대, 굴산사터, 신복사터 2004, 6 200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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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양구 양구 향토사료관, 심곡사 2004, 9 200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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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속초
고성

속초 탑공원, 고성 청간정 2005, 6 200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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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성 건봉사 2005, 6 200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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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평창 대관령 양뗴목장 2006, 5 200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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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강릉
동해

경포대해수욕장, 등명낙가사, 묵호항 2006, 5 200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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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동해 감추사, 감추해변 2006, 11 200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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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태백 구문소 2006, 11 200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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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양구

양구 선사박물관 2008, 12 20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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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화천

토고미마을(산천어축제), 딴산 2010, 1 2011, 1 ☞ 글보러 가기
12

화천,양구
춘천

화천 평화의댐(세계평화의종공원), 춘천 윗샘밭 2010, 1 2011, 2 ☞ 글보러 가기
13

평창

남산공원, 송학루, 노산성

2009, 9 2011, 12 ☞ 글보러 가기
14

삼척

미인폭포(통리협곡), 여래사

2012, 1 2012, 6 ☞ 글보러 가기
15

정선

정선5일장, 봉양리뽕나무, 아우라지

2009, 10 2012, 7 ☞ 글보러 가기
16

영월

보덕사, 금몽암, 낙화암, 금강정, 금강공원

2009, 10 2013, 11 ☞ 글보러 가기
17

태백

태백산 (당골, 석탄박물관, 석장승, 눈꽃축제장,
단군성전)

2012, 1 2014, 2 ☞ 글보러 가기
18

동해

추암(추암해수욕장, 촛대바위), 해암정,
추암조각공원, 북평5일장

2012, 6 2014, 7 ☞ 글보러 가기

 

충청북도 - 10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충주

미륵리사터, 미륵리가마터

2003, 7

200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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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천

빈신사지 석탑, 덕주사, 덕주산성, 송계9곡

2003, 7

20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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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보은
대전

보은 삼년산성
대전 동춘당 / 송애당 / 법동 석장승

2003, 11

20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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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단양 구인사 2004, 12 200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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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청주 상당산성 2005, 6 200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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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영동 영동향토민속자료전시관, 가학루, 황간향교 2008, 2 200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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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충주

단호사, 사문리당산나무숲, 미륵리사터,
하늘재, 충주호

2008, 9 200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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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단양

사인암, 청련암, 중선암, 북상리 시골

2009, 10 20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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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괴산

각연사 (각연사계곡)

2009, 11 20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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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괴산

원풍리 마애2불병좌상, 홍범식고가, 개심사

2009, 11 20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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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충청남도 - 12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서산 서산 마애3존불, 보원사터 2004, 8 200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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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금산 진악산 보석사 (1) 2005, 2 200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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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금산 진악산 보석사 (2) / 진악산 자연휴양림 2005, 2 200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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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금산 칠백의총 2005, 2 200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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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천안 태화산 광덕사 2008, 5 200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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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당진
태안

행담도, 꽃지해수욕장, 방포항, 안면도자연휴양림,
안면암

2009, 3 200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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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대전 식장산 고산사 2008, 11 2009. 11 ☞ 글보러 가기

8

공주 계룡산 동학사 2011, 2 2012. 3 ☞ 글보러 가기

9

공주 계룡산 남매탑, 삼불봉, 천진보탑, 용문폭포 2011, 2 2012. 3 ☞ 글보러 가기

10

공주

계룡산 갑사

2011, 2 2013. 2 ☞ 글보러 가기

11

태안

신진도(안흥외항), 마도, 안흥항, 안흥성(태국사)

2010, 2 2013, 8 ☞ 글보러 가기

12

홍성 용봉산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용봉산자연휴양림) 2012, 4 2014, 6 ☞ 글보러 가기

 

전라북도 - 7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부안 상록해수욕장, 내소사, 곰소항 2003, 8 200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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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임실 오수 의견비, 사선대 / 운서정 2006, 6 200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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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수 의암사(논개사당) 2008, 2 200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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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무주
장수

한풍루, 무주향교
의암송, 장수향교

2008, 2 200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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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전주 전주한옥마을, 오목대(이목대), 한벽당 2010, 1 20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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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군산

동국사, 은적사, 발산초등학교

2009, 9 20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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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군산

응항, 선유도, 고군산군도 일주

2012, 4 201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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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전라남도 - 11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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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성
담양
나주

장성 방울샘,
담양 관방제림 / 담양읍 5층석탑 / 석당간
나주 남고문 / 정수루

2003, 12 200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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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광주 무양서원, 장고분 2005, 4 200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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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광 내산서원 2006, 10 200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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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주
광주

정수루, 금성관
광주 풍영정

2006, 10 200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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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순천 금전산 금둔사 2008, 11 2009, 11 ☞ 글보러 가기

6

순천 개운산 동화사 2008, 11 2010, 1 ☞ 글보러 가기

7

순천 조계산 천자암 2008, 11 2010, 2 ☞ 글보러 가기

8

장성 백암산 백양사 2009, 9 2011, 9 ☞ 글보러 가기

9

광주 무등산 원효사 2009, 9 2011, 10 ☞ 글보러 가기

10

구례 지리산 천은사(천은제) 2011, 4 2012, 4 ☞ 글보러 가기

11

곡성 동리산 태안사(태안사계곡) 2010, 4 2013, 5 ☞ 글보러 가기

 

대구, 경상북도 - 17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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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주

반월성, 석빙고, 남산 서쪽(용장사터, 천룡사터)

2003, 4 200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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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주 경주읍성, 경주관아터, 옛 경주신사 2005, 11 200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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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주

노서동 고분군, 노동동 고분군 2005, 11 200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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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안동 제비원 석불, 옥동3층석탑 2005, 12 200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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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주 성산관, 쌍충사적비, 성밖숲, 성산동 고분군 2006, 3 200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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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성주
대구

성산동 고분군, 경상감영공원 2006, 3 200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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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문경 문경새재(여궁폭포, 혜국사, 주흘산, 주흘관) 2006, 10 200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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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달성 비슬산(유가사 / 암괴류), 현풍석빙고 2006, 10 200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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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구미 의구총, 낙산리고분군, 낙산리3층석탑 2008, 2 200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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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예천
상주

개심사지5층석탑
용화사(증촌리석불좌상/입상), 전고령가야왕릉

2007, 12 200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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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경주

남산 불곡 석불좌상, 신문왕릉 2008, 7 2009, 7 ☞ 글보러 가기

12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불무사) 2008, 7 2009, 9 ☞ 글보러 가기

13

영덕
울진

고래불해수욕장, 후포항, 월송정, 월송해변 2009, 6 2011, 6 ☞ 글보러 가기

14

달성

다람재, 도동서원, 이노정 2009, 7 2012, 12 ☞ 글보러 가기

15

청도

남산 낙대폭포 2011, 6 2013, 7 ☞ 글보러 가기

16

달성

비슬산 용연사 2011, 3 2014, 2 ☞ 글보러 가기

17

예천

회룡포, 비룡산 2011, 11 2014, 7 ☞ 글보러 가기

 

부산 - 13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해운대구

해운대해수욕장, 장산(폭포사 / 장산폭포) 2005, 4 200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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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구
연제구

부산근대역사관, 연산동고분군

2006, 4 200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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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영구
강서구

광안리해수욕장, 가덕도(외양포, 대항, 세바지)

2007, 2 200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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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강서구
서구

망상도/유주암, 송도해변, 송도해수욕장

2007, 7 2008, 9 ☞ 글보러 가기
5

기장군

불광산 (장안사. 장안사계곡) 2007, 11 2009, 1 ☞ 글보러 가기
6

기장군

불광산 (척판암, 백련암) 2007, 11 2009, 1 ☞ 글보러 가기

7

서구
북구

내원정사, 만덕사(만덕사 당간지주), 알터유적 2008, 8 2009, 9 ☞ 글보러 가기

8

금정구

금정산(금정산성, 국청사) 2009, 4 2011, 1 ☞ 글보러 가기

9

금정구

금정산 미륵사, 금성동 2009, 4 2011, 1 ☞ 글보러 가기

10

강서구

가덕도(가덕도등대, 외양포, 대항, 새바지) 2009, 7 2012, 7 ☞ 글보러 가기

11

사상구
강서구

백양산 운수사, 백양산 숲길,
범방동3층석탑, 부산경남경마공원

2009, 4
2009, 6

2012, 12 ☞ 글보러 가기

12

사하구

몰운대, 다대포

2011, 6

2013, 7 ☞ 글보러 가기

13

남구

백운포, 오륙도 (오륙도등대, 등대섬)

2010, 6

2014, 1 ☞ 글보러 가기

 

울산, 경상남도 - 22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울산
부산

처용암
옥련선원 / 정묘사(배롱나무)

2003, 8 200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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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해
부산

은하사, 수로왕비능, 구지봉, 초선대, 봉황동 유적
다대포(몰운대)

2004, 1 200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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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창원 창원 불곡사 2005, 4 200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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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거제
통영

학동해변, 옥포대첩비, 한산도 2005, 10 200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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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통영 한산도 제승당 2005, 10 200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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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창원 무학산(관해정), 가포해변 2006, 4 200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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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김해

김해 수로왕릉

2006, 4 200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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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진주
사천

진주 금선암
사천읍성(산성공원), 대방진굴항

2007, 1 2008, 1 ☞ 글보러 가기
9

함안
창원

함안박물관, 말산리/도항리고분군
진해 우체국

2007, 1 2008, 1 ☞ 글보러 가기
10

창원

불모산 성흥사, 대장동계곡

2007, 7 2008, 9 ☞ 글보러 가기
11

밀양

밀양 표충비, 무안리 향나무(홍제사) 2007, 11 2009, 1 ☞ 글보러 가기
12

양산

천성산 홍룡사(홍룡폭포), 원효암 2008, 10 2009, 6 ☞ 글보러 가기

13

울산 일산해수욕장, 대왕암공원 2008, 8 2009, 7 ☞ 글보러 가기

14

창녕

창녕석빙고, 송현동석불좌상, 송현동고분군,
진흥왕척경비, 만옥정공원, 남지철교

2008, 9 2010, 5 ☞ 글보러 가기

15

거창

수승대(귀연서원, 요수정)

2008, 10 2011, 7 ☞ 글보러 가기

16

울주
밀양

서생 나사리해변,
밀양 얼음골(천황사)

2010, 7 2011, 7 ☞ 글보러 가기

17

함양

상림공원, 한남군묘역

2009, 7 2012, 7 ☞ 글보러 가기

18

산청

목면시배유지, 배산서원, 덕천서원, 남명조식유적

2008, 10 2012, 9 ☞ 글보러 가기

19

남해

호구산 용문사, 남해자생식물단지, 미국마을,
용소리/금평해변

2009, 11 2012, 11 ☞ 글보러 가기

20

통영

통영 달아공원

2011, 3 2013, 3 ☞ 글보러 가기

21

울주

가지산 석남사 (석남사계곡)

2010, 7 2013, 9 ☞ 글보러 가기

22

고성

연화산 옥천사, 공룡발자국화석

2010, 10 2013, 11 ☞ 글보러 가기

 

제주도 지역 - 2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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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주 서해바다, 한라산(성판악 / 사라악 / 진달래밭) 2005, 8 200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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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주 한라산(백록담 / 탐라계곡), 서해바다 2005, 8 200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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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지역 - 1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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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열도

동경 지역(긴자, 록뽕키, 우에노, 도쿄도청타워,
아사쿠사<관음사>, 신주쿠, 코쿄, 디즈니랜드)

2002, 5 200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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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개된 글 중에서 하자가 없는 글들만 선정해서 지역별로 모았습니다.
2. 2003년 5월 이전(2개 제외) 글과 아직 공개되지 않은 답사기는 제외했습니다.
3. 답사기 내용과 사진을 전체 혹은 일부 퍼갈 경우, 반드시 출처와 원작자(박융) 이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4. 사진이 일부 혹은 모조리 뜨지 않는 글들(주로 2004 ~ 2005년판)이 꽤 많습니다. 이 점 널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5. 공개된 글 중, 추후 업데이트 판이 나올 경우, 이전 판은 모음집에서 삭제 될 수 있으며 2개 이상의 시리즈로
작성된 글 중 본인 필요에 따라 1개나 2개로 통폐합 정리될 수 있습니다.
6. 지역 별로 분류했으나 지역이 2개 이상 겹치는 글은 먼저 간 곳을 기준으로 분류했습니다.

 

해돋이가 일품인 동해바다 제일의 경승지, 동해 추암 (촛대바위, 추암해수욕장, 북평5일장)

 


' 강원도 동해(東海) 나들이 ~ 추암해수욕장, 촛대바위(능파대) '

▲  촛대바위와 동해바다


름 제국이 봄을 몰아내고 무한 팽창의 위엄을 드러내던 6월 중순에 오랜만에 강원도 동해를
찾았다. 6월하고도 중순이면 조금씩 더워지는 시기인데, 온도계는 벌써 30도를 기웃거리고 있
으니 올해 여름살이가 살짝 걱정이 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동해 경유 삼척(三陟)으로 가는 고속버스 첫차를 타고 영동고속도로와 대관
령(大關嶺), 동해고속도로를 신나게 넘어 딱 3시간 만에 동해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는 나를
비롯한 여러 명을 쏟아내고 바로 외마디 부릉소리를 남기며 삼척으로 내려간다.

정말 간만에 발을 들인 동해(東海) 땅은 고비사막의 기운이 엄습한 듯 무척이나 더웠는데, 추
암으로 가는 시내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30분 뒤에 망상 종점을 출발한다고 한다. 거기서 동해
터미널까지는 20분 정도 걸릴 것이니 그 사이 약 50여 분의 시간이 남는다. 그래서 여름 제국
의 핍박도 잠시 벗어날 겸, 인근 편의점에 들어가 삼각김밥과 라면으로 간단히 요기를 했다.

요기를 마치고 버스가 올 때까지 더 머물까 했지만 눈치도 있고 해서 바로 밖으로 나왔다. 정
말 지옥이 따로 없네, 버스는 적어도 20분 이상을 기다려야 나타난다. 그래서 그 시간을 억지
로 죽여가며 기다리고 있으니 20여 분 뒤, 추암으로 가는 동해시내버스 61번이 머리를 들이민
다. 원래는 물 흐르듯 자주 다니는 삼척터미널행 시내버스를 타고 대구동(추암입구)에서 뚜벅
뚜벅 걸어가려고 했는데, 마침 차 시간이 맞아 거기까지 편하게 들어가게 된 것이다.
허나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반드시 있는 법. 노선이 힘겨운 속세살이처럼 매우 굴곡진 것이다.
동해시청과 천곡동을 빙글빙글 돌고, 효가4거리까지 직선으로 내려오더니 다시 동해역까지 빙
돌고, 북평장터에서 단봉으로 또 빙돌고, 다시 국도로 나와 추암길을 거쳐 추암해변 종점에서
비로소 육중한 바퀴를 접는다. 동해터미널에서 추암까지는 직선 거리로 겨우 8km 밖에 안되건
만 뜻하지 않은 강제투어로 무려 50분이나 걸렸다. 완전 강제 동해시티투어를 한 것이다.

추암해변 종점에서 발을 내리니 추암으로 인도하는 네모난 땅굴(굴다리)이 나온다. 동해와 삼
척을 잇는 삼척선(三陟線) 철로의 아랫도리로 그 위에 추암역이 있다. 그 땅굴을 들어서면 바
로 왼쪽에 주차장과 추암조각공원이 있고, 정면에는 추암마을이 있다. 촛대바위와 동해바다를
영원히 꺼지지 않는 후광(後光)으로 삼아 삶을 꾸리는 조촐한 어촌(漁村)으로 그 마을을 지나
면 해암정을 비롯해 촛대바위가 있는 푸른 언덕과 추암해수욕장이 차례대로 모습을 비춘다.


▲  추암으로 인도하는 땅굴 (추암역 굴다리)
속세에서 4발 수레들이 추암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이 통로가
막히면 사람은 몰라도 수레는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  추암(湫岩) 남쪽에 자리한 추암해수욕장

동해시 남쪽 끝으머리 해안에 자리한 추암(湫岩)은 바다와 바위, 백사장, 해돋이가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해안 경승지로 예로부터 동해의 해금강(海金剛), 삼해금강으로 널리 찬양을 받았다.
동해/삼척권 해안 명소의 으뜸인 촛대바위와 능파대를 비롯하여 추암해수욕장, 해암정, 추암조
각공원 등을 지니고 있는데, 원래 추암은 촛대바위와 능파대 일대를 일컬었으나 남쪽 해변까지
범위가 확대되어 이 일대를 한 덩어리로 추암이라고 부른다.

추암해변은 남쪽으로 가늘게 삼척 증산해수욕장과 이어져 있고, 북쪽은 촛대바위와 능파대, 군
부대로 막혀있다. 그리고 동과 서는 각각 동대해(東大海)와 삼척선 철로로 막혀있어 조금은 궁
색한 벽지 같은 곳이다.
추암 서쪽에는 북평국가산업단지가 자리를 닦고 넓은 도로를 내면서 예전보다 접근성은 좋아졌
지만 추암으로 가려면 어차피 추암역 굴다리를 지나야 된다. 사람이야 삼척선을 넘던 남쪽에서
넘어오던 상관이 없으나 수레는 오로지 굴다리만 통행이 가능하다.


촛대바위 남쪽에 자리한 추암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가 약 300m, 폭 50m 남짓으로 매우 조촐한
크기이다. 해변 남쪽은 산을 사이에 두고 삼척 증산해수욕장과 이사부(異斯夫)사자공원으로 이
어지며, 해변의 수심이 얕고 조금은 한적한 분위기로 가족 피서지로 아주 적합하다. 또한 동해
의 다른 해변과 마찬가지로 해산물이 풍부해 오징어와 소라, 해삼 등 갖은 해산물을 먹을 수 있
고, 해변 서쪽에는 피서객과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민박과 펜션, 횟집, 가게 등이 늘어
서 있다.

※ 추암(촛대바위, 추암해수욕장) 찾아가기 (2014년 7월 기준)
① 동해까지
* 서울강남고속터미널에서 동해, 삼척행 고속버스가 30~40분 간격으로 떠난다.
* 동서울터미널에서 동해행 고속/직행버스 이용 (고속버스는 50~70분 간격, 직행버스는 30~50분
  간격으로 운행, 임시차를 제외한 전 차량이 우등으로 강남 우등보다 7~8천원 저렴함)
* 청량리역과 양평역, 원주역, 제천역에서 강릉행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동해역 하차 (평일은 1
  일 6회, 금요일과 주말, 피서철에는 1일 7회 운행)
* 부산(동부), 대구(동부), 대전(복합), 울산, 포항, 춘천, 강릉에서 동해행 직행버스 이용
* 부전역, 태화강역, 경주역, 동대구역, 안동역에서 강릉행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동해역 하차
② 현지교통
* 동해터미널 건너편과 동해역에서 동해시내버스 61번을 타고 추암해변 종점 하차 (1일 7회 운
  행)
* 동해터미널 건너편과 동해역에서 삼척으로 가는 21-1, 21-2번, 91번 시내버스를 타고 대구동
  에서 하차. 내린 방향을 기준으로 왼쪽(남쪽)으로 가면 공단3거리로 여기서 추암 방면 공단1
  로를 따라 도보 30분
* 강릉역과 삼척역을 오가는 바다열차(정동진, 묵호, 동해, 삼척해변역 경유)를 타고 추암역 하
  차. 이 열차는 1일 2회 운행 운행하며, 1월과 주말, 공휴일, 피서철 일부 평일에는 아침 열차
  1회가 추가 운행한다. (운임은 일반 15,000원, 어린이와 경로는 10% 할인)
  <바다열차 문의 033-573-5474, ☞ 바다열차 홈페이지(클릭)>
③ 승용차편 (추암해수욕장까지 접근 가능, 추암조각공원 남쪽과 추암 종점에 주차장 있음)
* 동해고속도로 → 동해나들목을 나와서 삼척 방향 우회전 → 공단3거리에서 좌회전 → 추암
* 대구/울산/부산 → 동해안 7번 국도 → 추암3거리(또는 공단3거리)에서 우회전 → 추암

★ 추암 관람정보 (2014년 7월 기준)
* 해수욕장 개장기간 - 7월 10일부터 8월 20일까지 (시작과 종료일은 변경될 수 있음)
* 매년 1월 1일에 해맞이행사가 열리며, 9월에는 동해일출 및 누드촬영회가 열린다.
* 해수욕장 먹거리, 숙박 정보는 ☞ 동해시청 동해관광 홈페이지를 참조한다.
* 소재지 - 강원도 동해시 추암동 (문의 동해시청 관광진흥과 ☎ 033-530-2234)

▲  추암해수욕장 북쪽 - 나무가 우거진
언덕이 바로 능파대로 그 동쪽에
촛대바위가 있다.

▲  발자국이 무수히 찍힌 백사장
살색의 백사장과 엷은 파란색의 동해바다가
서로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다.


▲  파도소리만이 살짝 정적을 건드리는 추암해수욕장
해변 남쪽에 솟아난 저 산을 넘으면 바로 삼척 증산해수욕장과 이어진다.

▲  추암 앞바다에 뜬 형제바위 - 2개의 바위섬이 형제처럼 다정하게
보인다고 하여 형제바위라 불린다. 하지만 저들에게 딱히
갖다 붙인 전설은 없는 모양이다.

▲  촛대바위에서 바라본 추암해변 앞바다

바다가 얼마나 순수하고 청정한지 밑바닥이 죄다 보일 정도이다. 안그래도 날씨도 더운데, 바다
의 진한 유혹을 참 이기기가 힘드네. 7~8월에 온다면 쿨하게 바다에 뛰어들어 바닷물과 진한 스
킨쉽을 즐기고 싶다.


♠  동해바다의 조촐한 해금강이자 소금강 ~ 촛대바위

▲  대자연이 빚은 온갖 바위들이 앞다투어 기교를 부리는 추암 (오른쪽에
날씬하게 솟은 바위가 촛대바위)

추암해수욕장 북쪽에는 소나무가 우거진 조그만 해안 언덕, 능파대(凌波臺)가 있다. 그 언덕 동
쪽 해안에는 촛대바위를 비롯한 온갖 바위들이 앞다투어 아름다움을 뽐내며 나그네의 눈과 마음
을 빼앗고 주기를 반복하는데, 그중에서도 바로 이 촛대바위가 단연 으뜸으로 이곳의 진정한 주
인이다.

이 땅의 TV방송은 애국가(愛國歌)로 시작하여 애국가로 마무리가 된다. 그 애국가 첫 소절의 배
경이 바로 이 촛대바위로 그 모습이 마치 촛대처럼 생겨 촛대바위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
한자로는 기존 추암과 앞 글자만 다른 추암(錐岩)임>
보면 볼 수록 참으로 기묘한 자태라 대자연 형님의 경이로운 작품 앞에 인간이 만든 작품은 부
끄럽게 보일 정도이다. 또한 바위를 끼고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해돋이가 아주 일품이라 해돋이
의 성지인 정동진과 호미곶을 제대로 긴장 타게 만든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승지임에도 관동8경
반열에 들지 못한 것이 이상하다. 하긴 추암 뿐이겠는가? 동해안에 빼어난 명소들이 몰려있으니
그중 8경을 가리는 것도 쉽지는 않다. 허나 나중에 관동8경을 재편하거나 9경이나 10경으로 늘
릴 경우 추암은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

추암은 예전에는 용추(龍湫)라 불렸다. 그러다가 1463년 세조(世祖)의 최측근이던 한명회(韓明
澮)가 강원도 체찰사(體察使)가 되어 관동(關東) 지방을 둘러보다가 이곳 경관에 단단히 감동을
먹었다. 그래서 그는 추암을 미인의 걸음걸이에 비유하여 능파대(凌波臺)란 애칭을 지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삼척 지역의 해금강이자 소금강(小金剛)으로 척주(陟州)8경의 하나로 꼽히기도 했
는데, 여기서 척주는 삼척의 옛 이름으로 추암을 비롯한 동해시 북평(北坪) 지역은 원래 삼척
땅이다. 하지만 지금은 동해8경의 제1경으로 그 명성을 누리고 있다.
또한 척주지(陟州誌)에는 '추암(楸岩)은 삼척부 북쪽 15리 바닷가에 우뚝 높이 솟아 있는데, 바
다로 들어갈수록 그 모습이 더욱 기이하다. 추암 서쪽 바위에는 신우(神牛)의 수레바퀴 자국이
있다.~~ 그 북쪽의 굴암(窟岩)은 추암과 마주보고 있는데 해상명구(海上名區)라 일컫는다'
는 기록이 있어 촛대바위는 옛날부터 추암이란 이름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주며, 그것을 순 우
리말로 풀이한 것이 바로 촛대바위이다.

추암 주변에는 촛대바위를 중심으로 하여 형제바위, 거북바위, 부부바위, 두꺼비바위, 코끼리바
위, 해금암 등 이름값 제대로 하는 잘생긴 바위들이 잔뜩 포진해 있어 바위의 성지(聖地)와 같
은 곳이다. 또한 강릉 정동진이 서울의 정동(正東)쪽임을 내세우며 홍보에 열을 올리자 추암을
품은 동해시청도 자극을 받았는지 서울도 아닌 그렇다고 성남(城南)도 아닌 경기도 광주의 남한
산성(南漢山城) 정동쪽임을 요란하게 강조하고 있다. 실제도로 남한산성의 정동쪽이 되는데, 그
리 유쾌하지도 않은 남한산성(병자호란의 치욕)의 정동임을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
다. 서울과 그 주변의 정동쪽이 그리도 중요하단 말인가..?


▲  근래에 복원된 능파대 바위글씨의 위엄

▲  태극기가 펄럭이는 언덕 정상 전망대

언덕 정상에는 동그란 모습의 2층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꼭대기에는 망원경이 하나 달려있는데,
그 망원경을 통해 추암의 속살과 잔주름까지 세세히 살펴볼 수 있다. (망원경은 무료임)

전망대 북쪽에는 새로 지은 바위가 있는데, 그 피부에 '능파대' 바위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글
씨는 이곳에 능파대란 이름을 선사한 한명회가 썼다고 하나 정확한 것은 없다. 바닷가에 있다보
니 수시로 몰아치는 바닷바람이 모진 지우개가 되어 글씨를 깨뜨리고 지우면서 알아보기 어려울
지경에 이른 것을 근래에 손질했다.


▲  전망대 남쪽에서 바라본 형제바위
나무들도 아비규환의 속세가 싫었는지 고적한 바위섬으로 후손들을 날려보냈다.
뿌리를 내릴 만한 흙도 여의치 않을 저곳에 어떻게 정착을 했을까?
대자연 형님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  언덕 남쪽에서 바라본 형제바위

▲  남한산성의 정동방임을 강조하는 표석
이러다 동해 어딘가에서 북한산성의
정동방을 강조하는 명소도 생길 듯

▲  밑바닥이 보일 정도로 청정함을
자랑하는 추암 앞바다


▲  동해항과 이어지는 추암 북쪽 바다

▲  늘씬하게 자라난 촛대바위

추암 주변은 바위의 보호를 위해 사람들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다. 추암과 비슷하게 생긴 바위가
1개 더 있었다고 하는데, 1681년 5월 강원도에 지진이 났을 때 중간 부분이 10척 정도 부러졌다
고 한다. 지금은 아랫도리만 남아있으며, 주변 바위들도 그 이후 벼락에 맞아 무너지거나 사람
들이 만지작거려 많이 망가졌다. 바위의 모습이 마치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라 하늘이 겁을 먹
은 나머지 벼락을 던진 것은 아닐까?  

촛대바위를 가까이서 보니 촛대보다는 약간 구부러진 칼이나 선사시대 사람들이 쓰던 길다란 돌
방망이처럼 보인다. 이렇게 기묘하고 잘생긴 바위에는 옛 사람들이 붙인 그럴싸한 전설이 하나
씩은 있는 법, 다음의 믿거나 말거나 전설이 걸쭉하게 전해온다.

옛날 추암해변에 금슬이 좋은 부부가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실을 하나 들였는데, 그때부터
본처와 소실간의 다툼이 벌어져 집안이 편할 날이 없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하늘은 아껴두던
벼락을 여인들에게 내던져 죽게 만들고 남자만 남겨 놓았는데, 홀로 서 있는 촛대바위가 바로
남자의 형상이라고 한다. 또한 본처와 소실을 상징하는 비슷하게 생긴 바위 2개가 더 있었으나
이들도 벼락을 맞아 부러졌다고 한다.


▲  보다 가까이서 바라본 촛대바위

촛대바위 자체도 참 감탄을 나오게 만드는데, 주변 바위와 동해바다까지 서로 진한 협동심을 발
휘해 1폭의 해금강을 빚었다. 지나가던 물고기와 새도 그 절경에 반해 오래 머문다는 촛대바위,
인간의 언어와 글자가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저들을 온전하게 표현하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감
히 인간의 한낱 언어나 글로 저들을 희롱한다는 것은 어쩌면 대자연에 대한 큰 결례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절경에는 입을 크게 벌리며 그저 감탄사만 연발하자 그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촛대바위의 위엄 (3장)





▲  추암 북쪽 해금암과 해암정 북쪽 언덕

▲  해금암에 있는 이 기묘한 바위의 정체는?

촛대바위에서 해암정으로 내려오면 추암 북쪽 해금암 바닷가에 기묘하게 생긴 바위가 눈길을 붙
들어 맨다. 거의 30도 정도 구부러진 모습으로 구부러진 부분을 빼면 촛대바위와 많이 비슷해보
인다. 혹 제2의 촛대바위나 새끼 촛대바위는 아닐까? 그에게 적당한 이름이 있을 듯 싶은데, 안
내문이 없으니 그저 답답하다.


▲  해암정에서 바라본 능파대(추암) 언덕

▲  북평 해암정(海岩亭) - 강원도 지방유형문화재 63호

추암 북서쪽에 자리한 해암정은 삼척심씨의 시조이자 고려 후기 문신인 심한<沈漢, 심동로(沈東
老)>이 세운 것으로 1361년(공민왕 10년) 벼슬을 버리고 삼척으로 내려가자 왕이 매우 섭섭해하
며 '노인이 동쪽으로 돌아간다'는 뜻에 동로(東老)란 이름을 하사했다. <이후 진주군(眞珠君)에
봉해짐>

이후 건물이 불탄 것을 1530년에 후손인 심언광이 중건하고, 1794년에 다시 중수하여 지금에 이
른다. 낮은 기단 위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조촐한 팔작지붕 건물로 4면 모두 기둥과 문
짝만 있지 벽면은 없다. 남쪽에서 해암정 앞까지 박석(薄石)을 깔아 길을 닦았으며, 주변에 풀
과 소나무를 심어 조금이나마 경관을 돕는다. 또한 정자 뒷쪽에는 멋드러진 바위가 많고 동대해
가 늘 출렁거려 경관도 제법 일품이다.
하지만 해안 쪽에 철조망이 길게 둘러져 있어 적지 않게 옥의 티를 선사하고 있으며, 능파대 북
쪽 밑에 자리한 탓에 추암의 핵심인 촛대바위와 형제바위 등이 보이지 않는 것이 흠이다.

해암정의 주인인 심동로는 추암을 배경으로 삼아 이곳에 머물며 후학을 양성했다고 하며, 조선
현종(顯宗) 때 함경도 덕원(德源)으로 유배를 가던 송시열(宋時烈)이 가는 길에 들려 '草合雲深
逕轉斜(풀은 구름과 어우르고 좁은 길은 비스듬히 돌아든다)'란 글을 남겼다고 전한다.

삼척심씨의 시조가 지은 건물이라 삼척심씨들이 각별히 옆구리에 끼며 관리하는 삼척심씨의 성
지로 추암을 수식하는 추암 식구의 일원이다. 추암을 둘러보고 추암 북쪽 해안으로 넘어갈 때
꼭 살펴보기 바라며, 건물 내부는 문이 꽉 닫혀있어 내부 관람은 어렵다.

▲  측면에서 바라본 해암정

▲  해암정 동남쪽에 드러누운 바위


♠  해암정 북쪽 해변과 추암조각공원

▲  해암정 북쪽 해안 산책로에서 바라본 능파대(추암)

해암정 북쪽에는 능파대와 비슷하게 소나무가 우거진 해안 절애(絶崖)가 절경을 자아내고 있다.
이곳은 군부대로 인해 오랫동안 출입이 통제된 구역으로 추암을 동해의 성지로 키우려는 동해시
의 제안에 따라 속세에 개방되었다. 소나무와 철조망 사이로 나무로 만든 산책로를 냈는데, 산
책로 외에는 거진 통제구역이니 괜히 해안 쪽으로 내려가거나 길을 이탈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괜히 말썽부렸다가 애써 개방된 곳이 다시 통제구역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추암과 달리 소나무가 무성하여 바다내음과 함께 솔내음이 진하며, 해안에는 기암절벽이 적절하
게 풍경화를 이룬다. 산책로의 길이는 약 300m 정도로 중간에 쉬어가는 공간이 있으며, 길 북쪽
끝에는 군부대가 있다. 여기서 서쪽으로 나오면 바로 추암조각공원과 이어진다.


▲  해암정 북쪽 산책로에서 만난 동해바다

▲  추암조각공원

추암조각공원은 동해시청에서 추암을 크게 키우고자 해암정 서북쪽에 넓게 터를 다진 공원으로
2010년에 조성되었다. 현대 작가들의 조각품 30여 점이 공원을 수식하고 있는데 넓다란 규모에
비해 조각품이 너무 적어 공원 상당수가 자연의 공간이다. (늪지대도 있음)

대자연이 빚은 추암이란 걸죽한 작품 곁에 인간이 만든 작품의 공간을 두니 마치 자연과 인간의
경연장 같은 모습이다. 허나 한낱 인간의 작품이 어찌 대자연 형님의 작품에 비하겠는가? 촛대
바위는 커녕 형제바위나 해금암의 적수가 될만한 인간의 조각품은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어른
이 빚은 작품과 어린이의 작품이 서로 싸우는 격이라고나 할까? 작품들은 이 땅에 흔한 조각공
원과 그리 다를 것은 없어보이나 산책로는 그림 속의 풍경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조각
품에 관심은 없어도 산책로는 꼭 거닐어 보기 바란다.


▲  추암조각공원의 가운데 부분

▲  추암조각공원 북쪽 산책로
온갖 화초(花草)들이 살랑살랑 미소를 보인다.

▲  커다란 밥그릇 조각품
공원 한쪽에 엎어져 있는 저 그릇은 하늘나라 우두머리가 쓰던 밥그릇은 아닐까?
밥을 먹다 그릇을 속세로 떨어뜨려 공교롭게도 추암 곁인 이곳에 박힌 모양이다.

▲  텅 비어있는 야외 공연장

▲  잡초가 우거진 길쭉한 공간은 늪지대이다.

▲  눈이 붉게 충혈되어 밤탱이가 되버린 새 조각품
추암조각공원 조각품 가운데 가장 인상이 깊은 존재이다.

▲  추암조각공원에서 담은 조각품들

이곳에 조각품이 30여 점이 있지만 다 담기도 귀찮아 극히 일부만 담았다. 추암에서 자연의 위
대한 작품에 단단히 매료되어 보는 눈이 높아진 탓인지 인간의 작품은 그리 눈에 들어오질 않는
다. 게다가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현대 미술에는 그다지 정이 가질 않는다. 그래서 공원 전체
를 다 돌지 않고 절반 정도만 돌고 끝내버렸지. 그저 추암을 수식하는 공간으로 지어진 일종의
옵션이라 그리 큰 의미는 두지 않았다.


▲  늪지대 동쪽을 지나는 산책로

▲  늪지대 서남쪽 산책로

추암조각공원을 끝으로 2시간에 걸친 추암 답사는 마무리가 되었다. 집으로 몰래 가져와 촛대로
쓰고 싶은 촛대바위를 비롯한 추암의 식구들과 작별을 고하며 다시 추암해변 종점으로 나왔다.

추암해변 종점에서 버스 시간을 확인해보니 무려 1시간이나 기다려야 된다. 그 적지 않은 시간
기다리기가 지루하여 지친 두 다리를 독려하여 공단1로를 따라 7번 국도로 나왔다. 어차피 걸어
도 30분 거리 밖에 안된다.
추암입구인 대구동에서 동해시내버스 21-2번을 타고 동해역으로 가다가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
라고 동해의 주요 번화가인 북평동에서 북평5일장이 열리고 있었다. 북평장은 매월 3,8,13,18,
23,28일에 열리는 장터로 북평을 순 우리말로 희석해 '뒷두르장','뒷드리장' 이라 불리기도 한
다. 정선(旌善)5일장 못지 않게 크게 흥하고 있는 오래된 장터로 마침 장날이기도 하니 한번 둘
러봐야 여한이 없겠지. 그래서 버스에서 내려 장터의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북평장은 북평3거리, 북평시장을 중심으로 넓게 장터가 형성되어 동대해에서 잡아올린 수산물과
동해와 삼척, 강릉 땅에서 기른 농산물, 기타 의류와 농기구, 갖은 물건들이 장터에 나와 새주
인을 기다린다. 거기에 기존 식당들은 바깥 골목까지 상과 의자를 설치해 토속 음식인 메밀국수
와 메밀전, 메밀전병 등을 내밀며 장터 손님을 유혹한다.
동해역에서 내가 탈 열차시간까지 아직 1시간의 여유가 있어 무엇을 먹을까 궁리하다가 적당한
식당에 들어가 메밀전병을 시켰다. 국수를 먹을까도 했지만 국수보다는 전병이 크게 땡겼지. 전
병 1인분은 3,000원인데, 예전 정선5일장에서 먹던 전병의 맛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게다가 인
심이 후한 듯, 양도 두둑해 먹다보니 배가 2/3는 찼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열차에서 또 먹을려
고 1인분을 포장해달라고 했다. 식당 아줌마는 아까보다 전병을 3개 정도 더 넣어주면서 가급적
빨리 먹으라고 그런다.

북평에서 묵호 방면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동해역으로 이동, 태백(太白)으로 가는 열차표를
끊고 북평장터에서 사온 메밀전병 일부를 섭취했다. 이윽고 시간이 되어 열차에 올라타 남은 전
병을 싹 섭취했다. 마음 같아서는 몇 인분을 더 구입하여 집까지 가져오고 싶었지만 날씨가 더
우니 전병의 안전은 100% 장담하지 못한다. 게다가 갑자기 많이 먹으면 질릴 수가 있으니 다음
에 다시 올 때 배터지게 먹으면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동해 추암(촛대바위)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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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상징을 거닐다 ~ 오륙도 (등대섬, 오륙도등대, 백운포)

 


' 부산의 상징, 오륙도(五六島) 나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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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륙도

오륙도등대에서 바라본 영도와 조도 백운포 방파제

▲  오륙도등대에서 바라본
영도와 조도

▲  백운포 방파제


여름의 제국(帝國)이 봄을 몰아내고 한참 성하(盛夏)의 기반을 닦던 6월 중순에 천하 제일의
항구 도시인 부산(釜山)을 찾았다.
광안리 해변과 가까운 광안동(廣安洞)의 친한 형님 집에 여장을 풀고 달이 기울도록 회포(懷
抱)를 풀다가 밤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이튿날 오전, 간단한 차림으로 오륙도와 백운
포를 찾았다. 광안역에서 백운포까지는 거리도 가깝고 부산시내버스 39번(기장읍 교리↔용호
동)이 바로 앞에까지 데려다주니 접근성은 참 좋다.

백운포(白雲浦)는 용호동 남쪽 해안으로 체육공원과 남구국민체육센터, 해군기지가 있고, 서
쪽에는 숲이 무성한 신선대(神仙臺)가 있다. 신선대는 태종대(太宗臺)에 버금가는 해안 경승
지로 유명했으나 신선대컨테이너터미널과 항구 조성으로 옛날의 운치가 많이 녹아내렸다.


▲  백운포에서 바라본 오륙도

▲  백운포 방파제
백운포 둑방에는 많은 강태공(姜太公)들이 월척을 꿈꾸며 낚시삼매에 빠져있고
한국해양대를 품은 조도(朝島)와 영도 태종대가 그리 멀지 않게 바라보인다.


▲  수레들로 가득한 오륙도선착장 주차장


♠  부산의 아담한 상징, 오륙도(五六島)에 들어서다 - 명승 24호

▲  오륙도 - 명승 24호
(가장 왼쪽부터 방패섬과 솔섬,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

▲  오륙도등대에서 바라본 천하

용호동 앞바다 부산만(釜山灣)에 두둥실 떠 있는 오륙도는 6개로 구성된 바위섬이다. 그렇다면
6개의 섬이란 뜻의 육도(六島)라 불려야 맞는 것 같은데 왜 5와 6을 같이 붙인 오륙도가 된 것
일까? 이는 섬의 구성원인 방패섬과 솔섬 때문이다. 이들은 썰물 때는 하나의 섬이 되지만 밀물
때는 엄연히 2개의 섬으로 나눠진다. 이렇게 기가 막힌 자연의 눈속임으로 하루에 2번씩 5개의
섬이 되었다가 6개의 섬이 되는 것인데, 그래서 그 이름도 오륙도가 된 것이다.

오륙도는 12만년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와 이어진 조그만 반도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장대한 세
월이 흐르면서 거센 파도의 시달림에 따른 침식작용으로 한반도와 분리되었으며, 그마저도 내버
려두지를 않아 5~6개의 섬으로 쪼개졌다. (선착장 부근 지질과 방패섬의 지질적 구성이 동일하
여 옛날에 서로 이어져 있었음을 보여줌)


오륙도
란 이름은 1740년에 편찬된 동래부지 산천조(東萊府誌 山川條)에 '오륙도는 절영도(絶影
島, 영도) 동쪽에 있다. 봉우리와 뫼의 모양이 기이하고 바다 가운데 나란히 서 있으니 동쪽에
서 보면 여섯 봉우리가 되고 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가 되어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
기록이
있어 조선 말 이전부터 오륙도라 불렸음을 보여준다.
 
섬의 구성원을 보면 육지와 가장 가까운 방패섬은 거센 바람과 파도를 막아준다는 뜻이며, 방패
섬과 거의 한몸인 솔섬은 섬 꼭대기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방패섬
과 솔섬을 합쳐서 '우삭도'라 부르기도 한다.
그 다음 수리섬은 갈매기를 노려 독수리들이 모여드는 곳이란 뜻이며, 송곳섬은 작고 뾰족하게
생겨서, 굴섬은 오륙도에서 가장 큰 섬으로 커다란 굴이 있는데, 천정에서 흐르는 물로 능히 1
명 몫의 식수는 해결할 수 있다고 하여 굴섬이라 부른다.
등대섬은 오륙도 형제 가운데 가장 한반도에서 먼 섬으로 선착장에서 1km 해상에 있는데, 오륙
도등대를 달고 있어서 등대섬이라 불린다. 예전에는 섬에 평탄한 곳이 있어서 밭섬이라 불렸으
며, 등대 직원과 관리인이 거주하고 있어 오륙도 유일의 유인섬이다.


오륙도 부근은 조류가 무지 빨라 이곳을 지나던 뱃사람들은 공양미(供養米)를 바다에 던져 해신
(海神)을 달랬다고 한다. 근래까지 용신제(龍神祭)를 지내기도 했으며, 신라 후기에는 동아시아
바다를 점유한 해상왕 장보고(張保皐)가 오륙도 앞 항로를 이용하기도 했다.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의 단골 소재로 많은 시와 노래에 등장했으며, 그중에서 노산 이은상(李殷
相)의 오륙도란 시가 유명하다. 부산을 드러내는 오랜 상징이자 관문으로 동해바다와 왜열도에
서 부산항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오륙도의 눈치를 보며 지나야 된다.

오륙도는 부산의 대표적인 명소이자 섬이지만 낚시터로도 명성이 높아 섬만 둘러보고 가는 관광
객에 비해 낚시꾼의 비중이 매우 높다. 오륙도 식구를 비롯하여 오륙도일자(一字)방파제(북항방
파제)에는 굳은 날씨를 제외하고는 늘 낚시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한반도에서 오륙도에 가려면 일단 용호동 오륙도선착장으로 가야된다. 거기서 오륙도를 이어주
는 유람선을 타면 되는데, 일정한 운항시간표는 없다. 대체로 30~50분 간격으로 다니며 휴일에
는 거의 20~30분 간격으로 자주 뜬다. 운항노선은 선착장을 출발하여 오륙도일자방파제를 먼저
들른 다음 등대섬과 굴섬, 수리섬, 방패섬을 두루 돌고 육지로 돌아온다. (운항순서는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음)
일반 관광객은 오륙도등대가 있는 등대섬에서 많이 승/하선을 하지만 낚시꾼들은 등대섬을 포함
해 배가 다니는 모든 섬과 방파제에서 승/하선을 한다. 등대섬과 방파제에는 배를 대는 공간이
있어 거기서 타면 되지만 나머지 섬은 따로 들리는 곳이 없다. 손을 흔들어 승차 의지를 밝히면
그 부근에 세워준다. 섬과 방파제를 찾은 사람들은 배가 끊기기 전에 나와야 되며, 그렇지 않으
면 섬에서 강제로 1박을 보내야 된다. 운항시간은 일출 30분 전부터 일몰 30분 후까지이다.

동해바다와 남해바다가 만나는 공간에 자리한 오륙도는 가까이로 신선대와 백운포를 비롯해 조
도와 영도, 태종대가 보이며, 동구(東區), 해운대 일대가 두 눈에 박힌다. 태종대와 더불어 부
산의 해금강(海金剛)으로 전혀 손색이 없으며, 예전에는 부산 지방기념물 22호였으나 2007년 문
화재청 지정 명승 24호로 승진되었다.

▲  방패섬

▲  수리섬과 송곳섬

▲  굴섬

▲  송곳섬

※ 오륙도 찾아가기 (2014년 1월 기준)
* 부산지하철 2호선 경성대부경대역(5번 출구를 나와서 부경대 방면)에서 27, 131번 시내버스를
  타고 오륙도SK뷰 후문에서 하차, 오륙도 선착장까지 도보 5분
* 부산지하철 1호선 부산역(10번 출구)에서 27번 시내버스 이용
* 오륙도 선착장에서 오륙도 유람선이 일출 30분 전부터 일몰 30분 후까지 운항한다. 2척이 운
  항하며, 운임은 어른 1만원, 어린이는 5천원이다. (유람선 문의 ☎ 051-626-8953)
* 소재지 -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산936~941


▲  선착장 주변 풍경

▲  선착장 서쪽 풍경

오륙도선착장을 비롯한 오륙도SK뷰아파트 주변은 2008년까지만 해도 용호농장과 조그만 마을이
전부인 도심 속 시골이었다. 마을 북쪽에는 이기대를 품은 장산봉이 있고, 오륙도와 이기대, 신
선대가 한 덩어리로 어우러져 해안 풍경의 갑(甲)을 자랑하던 곳이다.
개발의 칼질은 정말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평화롭던 현장이었는데, 개발의 물결이 소리소문도
없이 밀려오면서 마을과 농장, 숲을 아작 내고 거대한 옥의 티인 아파트가 무차별 솟아났다. 그
리고 선착장 입구까지 넓은 신작로(新作路)가 들어섰으며, 개발의 칼질이 여기저기 난도질을 하
면서 아름다운 풍경에 적지 않은 손상을 주었다. 굳이 여기까지 밋밋한 회색빛 고층아파트를 심
어 오륙도를 눌러야 했는지 관계 당국 철밥통들의 수준이 참 의심된다. 그냥 산듯하게 공원으로
꾸며 태종대나 암남공원에 버금가는 해안 관광지로 꾸미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오륙도를 제
외하고는 주변이 너무 다르게 변질되어 버린 것이 안타깝다.


▲  바위를 희롱하며 하얀 물보라를 자아내는 바다

오륙도선착장 주변은 오륙도를 찾은 탐방객과 낚시꾼들로 북새통이다. 그들이 끌고 온 수레들로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고, 바닷가와 선착장, 주차장 주변에는 해산물을 파는 길거리 행상들로 조
그만 먹거리촌을 이룬다.

선착장 매표소에서 오륙도 뱃표를 구입하니 어른 1인당 무려 10,000원씩이나 한다. 운임은 왕복
요금으로 섬과 방파제에서 다시 한반도로 나올 때는 그냥 타면 된다. 뱃표를 사들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독거리며 배를 기다리는데, 오륙도 덕분에 정말 간만에 바닷배를 타본다.


▲  한반도와 오륙도를 이어주는 오륙도 유람선
낚시꾼과 관람객들의 소중한 발이다.

10분 정도 기다리니 드디어 배가 선착장에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방파제와 오륙도에서 주섬주섬
태운 사람들이 말끔히 내리자 선장의 안내로 관광객과 낚시꾼들이 승선을 한다. 그렇게 약 20여
명의 승객을 태운 배는 승선이 끝나자 바로 뱃고동을 울리며 바다로 향한다. 우리는 갑판으로
나와 바닷바람을 맞으며 수시로 모습을 달리하는 바다와 오륙도를 열심히 사진에 담았다.

배는 코앞에 보이는 오륙도를 등 뒤에 두고 서쪽에 있는 오륙도일자방파제(북항방파제)로 먼저
갔다. 섬처럼 떠 있는 길다란 방파제에는 이미 강태공들로 자리가 없을 지경인데, 여기서는 오
륙도보다 영도가 더 가깝게 보인다.
방파제에서 볼일을 마친 배는 잠시 잊었던 오륙도로 방향을 돌려 오륙도의 핵심이자 가장 남쪽
인 등대섬에 뱃머리를 댄다. 여기서 낚시꾼을 제외한 관광객이 죄다
내렸다.


▲  잠시 뒤를 바라보는 여유 - 오른쪽 벼랑에 오륙도 스카이워크라는
새로운 명물이 생겼다. (내가 갔을 당시에는 그딴 것은 없었음)


♠  부산의 조그만 해금강, 오륙도 둘러보기

▲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방패섬과 솔섬 (우삭도)
육지와 제일 가깝지만 수영으로 가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일자방파제
다음으로 낚시꾼들이 제일 많이 포진한 곳으로 방패섬 앞부분에
넓고 평탄한 곳이 있어 안전하게 낚시하기에 좋다.

▲  유람선에서 바라본 방패섬(왼쪽)과 솔섬(오른쪽)
썰물 때라 둘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솔섬은 머리 꼭대기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 솔섬이라 불리는데, 온갖 풍우를 겪으며 의연함을
잃지 않은 키 작은 소나무의 패기가 무척 돋보인다.

▲  오륙도 인근의 옥의 티, 오륙도SK뷰아파트
허허벌판에 무책임하게 세운 도시처럼 보인다. 저 아파트를 지울 수 있다면
이기대를 품은 장산봉이 속 시원히 미소를 보일텐데..

▲  오륙도와 한반도 사이로 아련하게 보이는 저곳은
해운대 지역이다.

▲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 사이로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이 포근히 둥지를 닦았다.

▲  오륙도일자방파제(북항방파제)
방파제는 배를 대는 곳이 마련되어 있어 거기서 여기서 승/하선을 하면 된다.
방파제 너머로 조도와 영도 일대가 바라보인다.

▲  두 푸른색의 만남
아무리 천재화가가 그린다고 해도 결코 나오기 힘든 자연의 색깔~~
사람이 만든 색깔이 어찌 대자연이 만든 천연의 물감만 하리?

▲  오륙도일자방파제에서 바라본 오륙도
오륙도선착장에서 그렇게나 가까이 보이던 오륙도와 저만치나 떨어져 버렸다.

▲  수리섬(왼쪽)과 송곳섬
수리섬은 독수리들이 갈매기 사냥을 위해 모여드는 곳이라 하며, 송곳섬은
작고 뾰족하게 생겨서 불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수리섬은 낚시를
원할 경우 배를 세워주지만 가파른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낚시 장소로는 위험하다.

▲  송곳섬과 굴섬
굴섬은 오륙도 형제 가운데 가장 큰 섬으로 한 사람 몫의 식수가 나오는
커다란 굴이 있어서 굴섬이라고 한다. 섬 대부분이 깎아지른 절벽이라
배는 섬 서쪽에만 잠깐 멈춰준다.


▲  송곳섬의 위엄
바다가 오랜 세월을 빚은 대작품 앞에 우리가 할 일은
그저 감탄사 연발과 사진 찍기 밖에는 없었다.


▲  수리섬 쪽에서 바라본 굴섬
굴섬은 발디딜 평평한 곳이 없는 각박한 경사의 바위섬이다. 허나 그런
척박한 섬에도 불구하고 월척을 꿈꾸는 낚시꾼들의 발길은 막지 못한다. 
비록 위험하긴 하지만 방패섬이나 백운포보다는 인적이 적고
수심이 깊으니 월척의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

▲  도시와 바다가 어우러진 부산의 자화상과
굴섬에 뱃머리를 대고 낚시꾼을 태우는 유람선


♠  오륙도등대(五六島燈臺)와 등대섬 둘러보기

▲  오륙도등대와 등대섬

등대섬은 오륙도의 백미로 오륙도등대를 품고 있다. 예전에는 정상에 평탄한 곳이 있어서 밭섬
이라 불렸는데 지금은 등대섬이란 이름으로 속세에 명함을 내밀고 있다. 아무래도 등대가 있으
니 자연히 등대섬으로 강하게 각인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오륙도에서 가장 남쪽에 자리한 등대섬 꼭대기에 등대(燈臺)가 둥지를 튼 것은 1937년이다. 그
해 11월 최초 점등을 했으며, 1971년에는 무신호(전기폰)를 설치했고, 1998년 등탑(燈塔)을 개
량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크게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래서 마치 섬을 누르고 앉은 거대한 요새처
럼 다가온다. 그해 12월에는 등명기(燈明機)를 개량했으며, 등대 높이는 53.35m, 면적은 3,416
㎡이다.
예전 오륙도등대 사진을 보면 야트막한 하얀 등대건물이 마치 둥지에 새가 앉은 듯 사뿐한 모습
이었으나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규모도 커지고 등탑의 높이도 상당해져 오히려 섬을 능가하는 수
준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예전보다 주변 풍경과의 어울림이 좀 떨어져 보인다.
 
유람선이 등대섬 뱃터에 머리를 대자 우리는 섬에 상륙했다. 뱃터는 승/하선이 가능하도록 벼랑
아랫쪽에 설치된 것으로 여기서 등대까지는 계단을 올라야 된다. 계단 중간에는 섬의 동쪽 해변
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으며, 거기서 굴섬의 남쪽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등대는 가운데 전망대까지만 오를 수 있는데, 등탑은 출입금지이며, 현재 해양항만청 소속 등대
직원들이 2인1조로 3박4일 간격으로 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속세와 무척 가깝긴 해도 배를 타
고 들어가야 되는 엄연한 외딴섬이니 이곳 등대지기도 외로운 신세를 면할 수는 없다.


▲  등대섬 뱃터에서 등대로 오르는 꼬불꼬불 계단길
길이 각박하고 계단 밑은 바닷물이 넝실거리는 벼랑이므로 절대 주의해야 된다.

▲  등대섬 동쪽에서 바라본 굴섬의 옆구리

바다 파도가 허구헌날 오륙도를 쪼아대며 심술을 부리니 육지에서 떨어져 나가고 다시 5,6개의
섬으로 조각난 것이 십분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파도가 저리 보면 약하고 부드러운 것처럼 보여
설마 바위의 피부를 깎겠나 싶지만 띠끌 모아 태산이라고 저런 파도가 1~2번도 아닌 무량의 세
월 동안 친다고 생각해보라. 그 파도 앞에 성할 수 있는 것은 천하에 아무 것도 없다.


▲  오륙도등대에서 바라본 백운포와 신선대

▲  오륙도등대에서 바라본 부산시내 (영도와 중구 일대)
하늘을 수놓은 구름의 모습이 가히 예술이다.

▲  지적측량기준점

▲  지적측량기준점에 적힌 내용들

▲  부산 앞바다를 밝히는 등탑
등탑의 높이는 27.55m에 이른다.

▲  조망이 일품인 등대 전망대에
마련된 8각형 쉼터


▲  등대 전망대에서 굽어본 천하
바다 한가운데로 오륙도일자방파제(북항 방파제)가 보이며, 그 뒤로 건물숲을
이루고 있는 동구와 중구 일대가 덩달아 시야에 들어온다.

▲  등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영도와 조도
왼쪽에 길게 누운 산이 태종대이다. 오륙도를 품은 용호동에서 영도까지는
육상으로 가면 제법 거리가 되지만 바다로 가면 정말 지척이다.
(오륙도에서 영도까지는 4km 남짓)

▲  망망대해에 뜬 외로운 배 1척

▲  오륙도등대의 위엄 ▼


▲  우리가 탈 배가 굴섬 인근으로 오고 있다.

오륙도와 바다의 아름다움에 취해 등대섬에서 1시간 정도 머물렀다. 등대 관리인이 다들 어디로
갔는지 얼굴을 거의 내밀지 않아 전망대와 후미진 곳에서 요란하게 판을 벌이며 밥과 술을 먹는
이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들어온다. 그들을 수용하거나 간단하게 차 1잔, 간식 1끼 때울 수 있
는 매점이나 까페 같은 것이 있었다면 돈도 좀 벌고, 관광객들도 간단하게 출출함을 달랠 수도
있고, 아무데서나 음식판을 벌이며, 거기서 버려지는 쓰레기도 줄일 수 있고, 정말 금상첨화였
을텐데, 등대의 생각은 아직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예전 가덕도(加德島)등대(☞ 관련글 보러가기) 이후 2번째 등대 방문인 오륙도 등대, 기분 같아
서는 속세에서 나란 존재를 잠시 지우며 며칠 머물고 싶었다. 허나 내가 있어야될 곳은 이런 외
딴섬이 아닌 속세이다. 고독한 등대지기가 될 여유도 없이 한반도로 나가는 유람선이 다가와 승
선을 보챈다. 그래서 속세에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몸을 싣고 등대와 오륙도와의 인연을 모두
정리하며 육지로 나왔다.

대자연의 시리도록 아름다운 작품을 감히 인간의 하찮은 말과 단어를 빌려 표현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 어쩌면 자연에 대한 불경죄인지도 모르며,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하는 단어가 없을
수도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 훨씬 이상으로 알차고 아름다운 섬이자 남해와 동해의 위대한 합
작품, 오륙도 나들이는 이렇게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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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개일 - 2014년 1월 10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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