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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구석기시대 유적의 대표 성지, 연천 전곡리선사유적지 ~~ (전곡선사박물관, 연천 구석기 겨울여행축제)

 


' 천하 구석기 유적의 성지, 연천 전곡리 선사유적지 '

(연천 구석기 겨울여행 축제)

▲  구석기 스타일의 눈사람 (전곡리 선사유적지 구석기축제장)



선사시대(先史時代, Prehistory)란 문자가 없던 시대로 구석기시대(舊石器時代)와 중석기
시대,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를 일컫는다. (청동기시대도 일부 포함됨)
선사시대는 그리 재미도 없고 관심도 별로 없는지라 이따금씩 관련 유적지나 박물관을 찾
는 것이 고작인데, 겨울의 한복판인 1월에 전곡리 선사유적지에서 '연천 구석기 겨울여행
축제'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축제의 대한 호기심도 채우고 미답지(未踏地)도 하
나 줄일 겸 친한 후배와 겸사겸사 그곳을 찾았다.

햇님이 하늘 복판에 머물던 13시, 집 부근 방학역에서 그를 만나 1호선 전철을 타고 수도
권 전철의 북쪽 끝인 소요산(逍遙山)역으로 이동했다. (소요산행 열차는 거의 30~40분 간
격으로 운행)
소요산역에서 호떡으로 허기를 좀 달래고, 경기도 최북단 고을인 연천(漣川) 땅으로 넘어
가는 의정부시내버스 39번을 타고 차디찬 삭풍(朔風)을 가르며 북쪽으로 더 올라갔다. 수
도권 북방을 가르는 한탄강(漢灘江)을 건너니 전곡리 선사유적지가 누워있는 언덕이 보이
기 시작하고, 그 밑에 둥지를 튼 전곡선사박물관에서 두 발을 내린다. 전곡리 선사유적지
답사는 바로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  밑에서 바라본 전곡선사박물관


 

♠  전곡리 선사유적지 입문

▲  은빛으로 이루어진 전곡선사박물관 지붕 (지붕에 산책로가 있음)

전곡리 선사유적지 남쪽에 자리한 전곡선사박물관은 구석기시대 유적의 영원한 성지(聖地)이
자 상징으로 전곡리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과 구석기시대,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옛 인류의 진
화 과정을 집대성한 선사시대 전문 박물관이다.
박물관을 이루고 있는 건물이 마치 상상 속의 우주 기지를 보는 듯, 심플하게 은색으로 이루
어져 있어 구석기시대를 취급하는 박물관에는 썩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2004년 전곡리 선사유적지 종합정비 기본계획이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자 2005년 도립(道立)박
물관을 짓기로 결정했다. 하여 2006년 온 천하에 박물관 디자인 국제현상공모를 하였는데, 천
하 곳곳에서 앞다투어 응모해 아시아 131건, 아프리카 5건, 유럽 169건, 북미 17건, 남미 20
건, 오세아니아 4건 등 총 346건의 응모작이 접수되었다.
그래서 이들을 심사한 결과 1등은 프랑스 양이(洋夷)가 먹었으며, 2등은 미국 양이, 3등은 미
국 양이와 왜인(倭人)이 수상했다. 이들 수상작 40건을 서울 인사동 학고재에서 그해 4월 17
일부터 4월 23일까지 전시회를 열었고, 박물관 부지의 발굴조사가 끝나자 2009년 3월 23일에
삽을 뜨기 시작해 2011년 4월 25일에 완성을 보았다.

원시 생명체의 아름다운 곡선을 모티브로 했다는 박물관 내부에는 전곡에서 발견된 주먹도끼
를 주인공으로 하여 고고학체험실과 상설전시실, 체험 전시실 등을 두어 구석기시대와 무수한
세월을 겪으며 진화된 원시인의 변화 과정에 대해 소상히 다루고 있으며, 700만 년 전 투마이
부터 1만 년 전 만달인까지 14개체의 원시인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복원하여 전시했다. 그 외
에 도서실, 교육실, 야외체험장 등을 갖추고 있다.

박물관을 구경하고자 입장료를 살펴보니 성인은 무려 4,000원을 받는다. 1,000원 정도로 생각
을 했는데 생각보다 4배 이상이나 얹혀진 가격에 우리는 한없이 작아지고 말았다. 그 돈을 박
물관에 쥐어주면서까지 구경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리 땡기지도 않아 언제가 될지 모를 미래
로 쿨하게 넘겼다.
(박물관 입장료는 2017년 9월부터 무료로 바뀌었음, 이곳을 포함한 우리나라 박물관 대부분은
월요일과 1월1일, 설날, 추석 당일에 쉬므로 그날은 꼭 피해서 찾기 바람)

* 전곡선사박물관 소재지 -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 178-7 (평화로 443번길 2, ☎ 031-
830-5600)
* 전곡선사박물관 홈페이지는 아래 사진을 클릭한다.


▲  전곡 선사박물관 야외에 재현된 구석기 사람들의 매머드 사냥 현장
오른쪽은 지금은 먹을 수도 없는 매머드 고기 육포를 말리는 모습

▲  겨울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황야에 재현된 코뿔소로 보이는 동물상

▲  전곡 선사박물관에서 전곡리 선사유적지로 인도하는 계단
계단 앞에는 원숭이와 비슷하게 생긴 옛 인류의 모형이 멀뚱히 서 있다. 오늘날
인간의 과거형이 저런 모습이었다고?? 하지만 진화론도 흔쾌히 정확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과연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그저
궁금~ 궁금할 따름이다.

▲  북쪽에서 바라본 전곡 선사박물관의 위엄

전곡선사박물관 지붕에는 서쪽 언덕과 동쪽 언덕을 잇는 지붕 산책로가 있다. 지붕에 오르면
한탄강 주변 남쪽 산하가 보이긴 하나 박물관 건물이 키가 좀 작기 때문에 보이는 범위는 그
뿐이다. 박물관 동쪽 언덕에는 산책로와 숲이 있고, 서쪽 언덕 너머에 전곡리 선사유적지가
있다.

선사박물관을 지나 야트막한 북쪽 언덕을 오르면 전곡리 선사유적지 후문이다. 선사유적지는
선사박물관과 별도로 소소하게 입장료를 받고 있는데, (어른 1,000원 / 학생과 어린이 500원)
구석기 축제 기간이라 잠시 무료의 공간으로 해방되어 아주 기분 좋게 선사유적지 내부로 들
어섰다.
(단 구석기축제 행사장은 유료의 공간이며,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은 문을 닫아걸고 쉼)


 

♠  천하 구석기 유적의 소중한 꿀단지, 아슐리안 주먹도끼의 등장으로
구석기 역사를 새로 쓰게 하였던 전곡리 선사유적지 - 사적 268호

▲  전곡리 선사유적지 내부

한탄강이 'U'자로 크게 굽이쳐 흐르는 전곡읍 서남쪽 강변 언덕에 구석기 유적지의 성지로 추
앙받고 있는 전곡리 선사유적지가 넓게 누워있다.

인류의 본격적인 첫 시대라 할 수 있는 구석기시대는 약 300만년 전부터 1만년 전까지를 일컫
는데 약간의 중석기시대를 거쳐 신석기시대로 발전하게 된다. 구석기 사람들은 강가나 동굴에
주로 살면서 과실을 따먹거나 동물을 사냥해 식량을 해결했으며, 여기까지는 다른 동물과 거
의 비슷해 보인다. 허나 그들은 일반 동물과 다르게 돌을 다듬어서 사냥 도구로 사용했다. 또
한 불을 지피는 방법을 터득하여 추위를 이겨내고 맹수들의 공격을 막았으며, 잡은 동물을 불
로 구워 먹었다. 이것이 동물과 사람의 큰 차이점이다. 

구석기 사람들은 자연석을 다듬거나 바위에서 돌을 떼어내 주먹도끼 등을 만들었는데, 주먹도
끼가 바로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역사/국사 교과서에 아주 지겹도록 등장한다. 이
도끼는 구석기 초기에 등장하며, 프랑스 생따슐(St. Acheul)에서 발견되어 지역 이름을 따서
아슐리안 주먹도끼라 불린다.
그 주먹도끼는 전곡리 유적이 발견되기 이전까지 주로 유럽과 아프리카, 서남아 지역에서 많
이들 나왔으며, 1940년대 초, 미국 하버드대학의 모비우스(H.L. Movius) 교수가 그동안의 고
고학 자료를 근거로 내세우며 이상한 학설을 내뱉었다. 인도를 중심으로 그 서쪽 유럽과 아프
리카, 서남아를 아슐리안 주먹도끼 문화권으로, 인도 동쪽 아시아를 찍개 문화권으로 나눈 것
이다. 찍개 역시 돌로 다듬은 도구이나 주먹도끼보다는 다소 떨어진다.
그래서 그걸 두고 구석기시대부터 이미 서양이 동양보다 우월했고 아시아는 주먹도끼가 없으
므로 그때부터 정체되었다고 주장했다. 털만 많은 양놈들의 그런 삐뚤어진 생각을 보기 좋게
참교육시킨 현장이 바로 이곳 전곡리이다.
전곡리의 등장으로 그동안 서양 오랑캐들의 의해 그릇되게 작성된 구석기 역사는 새로 쓰여지
게 되었으며, 천하 굴지의 구석기 유적으로 꽤 무거운 존재가 되었다. 이곳을 통해 동아시아
구석기 문화를 새롭게 조명하게 되었고, 전곡리를 시작으로 아시아 곳곳에서 주먹도끼가 쏟아
져 나왔다.


▲  전곡리 선사유적지 발견을 대서특필한 1978년 봄 신문기사들

한탄강변에 자리한 전곡리 선사유적 일대는 숲과 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속에는 억겁의
세월이 숙성된 보물이 잠들어 있었고, 이미 그 일대에 석기들이 적지 않게 노출되어 속세(俗
世)의 관심을 애타게 바랬건만 사람들은 단순 돌로만 생각했지 아무도 그들을 크게 여기지 않
았다. 허나 주머니 속의 송곳은 언젠가는 크게 드러난다는 말이 있듯이 결국 일이 터지고 말
았다.

때는 1978년 3월 '그렉 보왠(Mr. Gred Bowen)'이란 주한 미군이 한탄강에 놀러왔다. 그는 인
디애나대학교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자로 돈벌이를 위해 주한 미군에 들어왔다.
한탄강을 거닐던 그는 강 주변에 석기로 보이는 돌맹이가 많은 것에 크게 놀랬다. 자신의 짧
은 소견으로 볼 때 분명 선사시대 석기로 여겨져 석기 사진과 발견 경위를 작성하여 프랑스의
저명한 구석기 학자 보르드(Bordes) 교수에게 편지를 보냈다.
보르드는 그 사진을 보고 크게 놀랐다. 바로 아슐리안 주먹도끼였던 것이다. 허나 그 역시 전
형적인 양이라 그걸 쉽사리 믿지 않으며 '이 유물이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발견되었다면 아
슐리안 문화의 석기가 맞다. 내가 직접 가보고 싶을 정도로 중요한 발견이지만 그럴 수가 없
으니 우선 서울대학교 김원용 교수를 찾아가 자문을 얻으라'
답을 하였다.
그러자 보웬은 그 석기를 들고 서울대를 찾아가 김원용 교수를 만났는데 그 석기를 살펴본 김
원용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여 발굴단을 꾸려 전곡으로 달려갔고, 그해 5월 14일 전곡리
일대를 지표 조사하였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김원용 교수와 영남대 정영화 교수가 진단학보
에 '전곡리 아슐리안 양면핵석기 문화예보'를 발표하여 전곡리 유적은 서양 고고학자들의 염
통을 쫄깃하게 만들 정도로 크게 이름을 드러낸다.


▲  오래 잠들어있던 전곡리 구석기 유적을 깨우다.
1978년 5월 전곡리 유적 지표 조사 장면


1979년 3월 26일, 김원용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 박물관 발굴단과 경희대와 영남대, 건국대가
연합해 본격적으로 발굴조사를 벌였다. 이후 전곡리 유적을 중심으로 전곡리 일대에서 30여
년 동안 17회의 발굴조사를 벌였으며, 약 8,500점의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들 유물은
인근 강에서 가져온 강자갈로 제작된 것으로 다소 거칠게 다듬은 아슐리안 주먹도끼와 잘 다
듬어진 찍개, 가로날도끼, 긁개, 소형 박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곡리의 명성을 듣고 다른 나라에서도 앞다투어 교수와 고고학자들이 찾아와 이곳을 조사했
으며,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30만 년 전으로 판단되고 있다. 참고로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유적은 평양(平壤) 부근에 있는 상원 검은모루동굴 유적으로 약 100만년
을 헤아린다.

전곡리 선사유적은 크게 5지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1지구는 처음으로 석기가 발견된 곳이고,
2지구는 1지구 남쪽 건너편으로 주먹도끼가 많이 나왔으며, 3지구는 발굴유구와 습지가 있고,
4지구는 제1차 발굴(1979년) 때 발견된 강 건너 고능리 지역이고, 5지구는 유적지의 동편 언
덕 일대이다.


▲  전곡에서 발견된 아슐리안 주먹도끼의 위엄
그의 등장으로 한참이나 잘못된 구석기 역사는 새로 쓰여지게 되었고, 뼛속까지
서양 우월주의로 물들었던 양이 고고학자들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아시아에는 찍개만 있던 것이 아니라 이런 섬세한 주먹도끼도
일찌감치 있었던 것이다.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로 돌을 전체적으로 손질하여 끝부분이 뾰족
하고 몸체는 둥근 모습이며, 석기의 양측면에 날카로운 날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이용해 나
무를 벗기고나 동물 사냥, 가죽 벗기기 등에 사용했다. 그래서 만능석기라 불리기도 한다.

전곡리에서 나온 주먹도끼는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주먹도끼와 달리 몸체가 두텁고, 자
연면이 많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채석을 통해 규소 성분이 풍부한 양질의 석재를 이용
한 유럽, 아프리카와 달리 전곡리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석영이나 규암 등으로 된 강자갈을 주
로 사용하여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측면날보다는 뾰족한
끝부분의 손질에 더 집중한 경향이 있어 자르는 도구로 주로 사용된 서양과 달리 대상을 찍거
나 땅을 파는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  토층전시관에 전시된 전곡리 유적 발굴 이야기와 이곳을 발굴한
구석기시대 전문가 김원용의 빛바랜 수첩
김원용 교수는 1993년 세상을 뜨면서 전곡리 유적에 유해를 뿌려달라는 유언을 했다.
그만큼 이곳은 그에게 의미가 각별한 곳이자 그의 존재를 세상에 각인시켜준
소중한 현장이기 때문이다.


전곡리 유적의 지층 구조는 2001년에 조사된 E55S20 발굴피트를 통해 알 수 있다. 이곳은 현
무암을 기반암으로 하여 그 위에 사질층, 실트층, 점토층이 쌓여 있는데, 퇴적층의 최상부에
서부터 일정한 간격을 두고 토양쇄기가 4~5차례 반복되며, 1번 째 토양쇄기면과 2번 째 토양
쇄기면 상부에서 왜열도에서 날라온 2개의 화산재와 AT(약 25,000년 전), K-Tz(약 95,000년
전)가 발견되었다. 이들 화산재는 분출된 연대가 대략 밝혀졌기 때문에 전곡리 유적의 장대
한 나이를 추정할 수 있는 소중한 단서가 되었다.
퇴적층 하부의 사질층과 실트층은 하천 퇴적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상부의 붉은 색조의 점토
층에 대해서는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날라온 풍성퇴적물이라는 설과 강의 범람으로 쌓인 퇴적
물이라는 설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구석기 유물 상당수는 붉은 색조의 점토층에서 많이 발견
된다.


▲  전곡리 선사유적 외곽 산책로

홍적세 중기 무렵, 강원도 평강 오리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한탄강을 따라 흐르며 전곡을 비롯
한 강 주변을 용암대지(鎔巖臺地)로 칠해버렸다. 이후 수많은 물줄기가 용암대지를 적셔주었
고, 곳곳에 작은 습지와 호수가 만들어졌다. 또한 강에 떠내려온 퇴적물은 용암대지 위에 차
곡차곡 쌓이면서 숲이 우거지고 강에는 물고기들이 둥지를 틀었으며 온갖 동물들이 식량과 식
수 해결을 위해 모여들었다. 구석기 사람들 역시 이곳에 정착을 하였다. (전곡에 살았던 구석
기 사람들을 ''전곡리안'이라 부름) 그때가 약 30만 년 전으로 여겨진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언제까지 살다가 사라졌는지는 귀신도 모르는 실정이나 그들이 떠난 이
후, 그들이 남긴 석기와 흔적은 자연의 거친 흐름 속에 죄다 묻히게 되었다. 그 흔적이 배인
퇴적층이 용암대지 위에 잘 보존되어 수천 년을 비밀리에 숨바꼭질을 하다가 1978년 이후 발
견된 것이다.

발굴조사가 마무리 되자 유물은 전곡선사박물관과 토층전시관, 여러 대학교 박물관으로 옮겨
졌고, 유적은 영구 보존을 위해 흙으로 빼곡히 덮고 그 위에 숲과 잔디를 깔았다. 그래서 겉
으로 다가오는 전곡리 선사유적지의 모습은 유적지가 아닌 그냥 공원 같은 분위기이다.

전곡리 유적은 숲과 잔디로 뒤덮힌 지역과 토층전시관, 선사체험마을 등이 있으며,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또한 매년 1월과 5월에는 '전곡리안의 숨소리'라는 태마로 구석기 축제를
열어 크게 호응을 얻고 있다. 5월에는 그냥 '연천 구석기축제'란 이름으로 열고 있으나 겨울
축제는 '연천 구석기 겨울여행축제'란 이름으로 열리고 있는데, 선사시대 체험 프로그램, 원
시 퍼포먼스, 공연 행사, 전문가의 강연과 선사시대 전시 행사 등이 열린다.
구석기시대를 완전히 익히고 싶다면 전곡리 선사유적지를 꼭 찾기 바란다. 그러면 누구든 구
석기 전문가가 될 수 있다.

* 소재지 :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 515 (양연로 1510, ☎ 031-832-2570)
* 전곡리 선사유적지 홈페이지는 오른쪽 링크를 클릭하기 바라며 ☞ 전곡리 선사유적지
  겨울 축제 홈페이지는 아래 사진을 클릭한다.
* 2019년 겨울여행축제는 1월 12일부터 2월 6일까지 열린다.


▲  인공눈이 깔린 전곡리 구석기축제장


 

♠   전곡리 선사유적지, 구석기 축제장 둘러보기

▲  전곡 구석기축제를 맞이하여 멀리 서유럽에서 온 신석기 사람의 미라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겨울 제국의 매서운 폭정에도 불구하고 구석기 축제로 뜨거웠다. 평일임
에도 어린이를 데리고 온 가족 나들이객들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이 축제
장 곳곳을 뛰어놀거나 썰매타기, 바베큐 체험 등. 온갖 체험에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모르고 있
어 겨울 제국을 무색하게 만든다.

축제장 일부에는 인공눈을 깔아 조촐하게 하얀 설원을 자아냈는데 그곳에 썰매장과 얼음 조각
등을 두었으며, 그 서쪽에 여러 부스와 천막을 설치하여 먹거리 장터와 구석기 체험 현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아름다운 말이 있듯이 점심도 제대로 못먹은 시장기를 달래고자 간단
하게 어묵으로 배를 때웠다. 가격은 시중보다 2배 정도 비쌌으나, 꿩 대신 닭을 고를 권한이
여기서는 없는지라 그냥 사먹었다.

그렇게 요기를 마치고 옆 부스로 가니 멀리 서유럽에서 왔다는 뼈다귀 미라가 전시되어 있었
다. 이 미라는 1991년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경계선인 외츠탈 알프스에서 발견된 것으로
온몸이 얼음 속에 묻혀있어서 미라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발견된 곳의 이름을 따
서 이미 영혼이 빠져버린 그에게 '외찌'라는 이름을 붙여주면서 아이스맨이란 별명도 지어주
었다.
그는 약 5,300년 전 사람으로 그때면 신석기시대 한복판이다. 그가 어찌하여 알프스 산맥에서
그 지경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전곡리 구석기 축제를 맞이하여 수만 리나 떨어진 이곳까지
소환되어 휼륭한 눈요깃감이 되어준다. 설마 그가 나의 전생은 아니겠지?


▲  구석기 스타일로 지어진 눈사람
인공눈을 빚어서 두텁게 만든 눈사람으로 장소가 장소인 만큼 구석기 스타일로
만들었다. 귀여움이 묻어난 그는 눈, 코, 입, 머리까지 갖추고 있고
오른손에는 돌도끼까지 쥐어들고 있다.

▲  눈 속에 묻힌 돌 운반 체험장
무거운 돌을 끌어야 되는 일종의 3D 체험장이라 체험 수요가 없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  어린이들의 인기를 먹고 자라는 눈썰매장 (유료임)
때가 겨울인지라 눈썰매장까지 갖추었다. 딱 30년만 어렸다면 한번 타보는 것인데
다 큰 장정이 눈썰매를 타는 것도 좀 그래서 그냥 구경만 했다.

▲  빙어잡이 삼매경에 빠진 어린이들 (빙어잡이 현장)
조그만 낚시 도구로 빙어를 탄압한다. 여기서 잡은 빙어는 비닐봉지에
담아서 가져가면 된다. 그 이후는 알아서...

▲  빙어잡이 현장 - 빙어의 마지막 몸부림 (죽어있는 빙어도 적지 않음)

▲  돼지고기 바비큐 체험 현장

제아무리 눈썰매와 빙어잡이가 인기가 대단하다 한들 돼지고기 바비큐 체험 앞에서는 어림도
없다.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구석기 축제의 백미(白眉)나 다름없는 바비큐 체험은 길다란 나무 꼬챙이에 돼지고기를 직접
구워 먹는 것으로 흙으로 다진 네모난 화로에 숯을 넣어 고기를 구우면 된다.
편하게 고기를 굽게끔 나무 의자도 설치되어 있으나 고기가 익는데 시간이 다소 걸린다. 또한
나무 꼬챙이를 들고 있어야 되기 때문에 팔도 아프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적당하게 걸쳐놓고
딴짓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잘못하면 고기가 화로로 자빠지거나 검게 타버리는 경우도 발생
한다.
돼지고기 바비큐는 1꼬치에 3,000원(예전에는 2,000원)으로 잘만 구우면 유명 고깃집 못지 않
은 맛있는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으나 잘못하면 거의 타버리거나 흙, 숯에 묻혀 난감한 경우
도 생길 수 있다. 여기서는 그저 인내력과 근성, 요령이 있는 사람만이 맛있는 고기를 쟁취한
다. 나는 인내력을 발하며 고기 굽기에 매진한 결과 그런데로 잘 익어서 맛있게 고기 바비큐
를 섭취했다. 허나 후배는 잘못 구워서 반 정도를 버리고 말았지. 구석기 사람들은 이렇게 화
로 비슷한 것에 불을 지피고 사냥한 동물을 구워 먹었다고 한다. 바로 그 체험을 하는 것이다.
단 다른 것이 있다면 숯으로 불을 지핀다는 것과 고기를 돈주고 사먹는다는 것 정도. 구석기
축제에 왔다면 뱃속도 채울 겸 바비큐 체험을 꼭 해보기 바란다.


▲  노릇노릇 익어가는 돼지고기 바비큐

▲  구석기 생활상 복원존(Zone) ▼

축제장 동쪽에는 구석기 사람들의 생활상을 재현해 놓은 복원존이 있다. 사냥 모습을 위시하
여 잡은 동물을 손질하는 모습과 구석기 가족들의 단란한 모습, 석기 제작 모습 등이 있으며,
지금은 사라진 그 시절 동물의 모형 등도 담겨져 있다.

▲  말을 사냥하는 모습

▲  구석기 가족의 생활 모습


▲  지금은 사라진 넙적큰뿔사슴
지구 역사상 가장 큰 뿔을 가진 사슴과로 홍적세 중기~후기를 누볐던 동물이다.
구석기 사람들의 좋은 먹잇감으로 평양 상원 검은모루동굴에서 그의
뼈가 출토되기도 했다.

▲  역시나 화석만 남은 검치호랑이
오늘날 호랑이의 조상격으로 길이 18~20cm에 달하는 큰 송곳니를 가진 홍적세
시절 맹수이다. 아주 매섭게 재현되어 비록 모형이지만 오금을 지리게
하는데 동아시아에 살던 검치호랑이는 서양보다 검치의 크기가
작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구석기 사람과의 기념촬영 코너
의자는 구석기 스타일에 걸맞게 동물 뼈와 가죽으로 이루어져 있다.
(뼈와 가죽은 가짜임)

▲  매머드 뼈로 지어진 뼈다귀 집

구석기시대 후반(1~2만년 전)에 구석기 사람들이 메머드를 때려잡아 그 뼈로 만든 집으로 이
때부터 집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우크라이나에서 발견된 매머드뼈 집터를 복원한 것으로 그
안에 불을 피운 흔적이 발견되었다.


▲  사냥감을 들고 귀가하는 구석기 사람들
사슴 같은 것을 잡은 모양이다. 저 사람들은 그날 고기 회식을 했겠지.

▲  겨울 제국에게 영혼까지 싹 털린 연천자생식물원 (야생화단지)
전곡리 선사유적 동편에 야생화 등을 심어놓은 자생식물원을 닦아놓았다. 허나
그러면 뭐하랴? 겨울 제국에게 몽땅 털려 황량한 벌판이 되버린 것을..
이곳의 진면목을 보려면 봄과 여름, 가을에 오기 바란다.

▲  축제장 북쪽에 자리를 닦은 얼음숲 연천 (얼음조각품)
한겨울에 걸맞게 축제장 한쪽에 얼음 조각품을 배치하여 겨울 축제의 분위기를
한껏 드높이고 있다. 이들을 한 덩어리로 '얼음숲 연천'이라 이름지었는데,
전곡리 선사유적지의 캐릭터인 고롱이와 미롱이, 매머드를 비롯하여
재인폭포, 움집, 연천의 특산물을 형상화 하였다.

▲  고롱이(왼쪽)와 다롱이(오른쪽) 얼음 조각품
이 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린이 모습에 구석기 스타일을 입혀 이곳의
귀여운 캐릭터로 삼았다.

▲  얼음으로 재현된 매머드

▲  연천의 명물, 재인폭포(才人瀑布)를 겨울 버전으로 형상화하였다.

▲  얼음 미끄럼
바닥이 차갑기 때문에 포대자루 같은 것을 깔고 타면 된다. 타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그놈의 나이 때문에 그냥 구경만 했다. 얼음 미끄럼을 신나게 타고
내려오는 어린이들의 표정에 화창함이 가득하다.

▲  알록달록 소원지를 달아놓은 현장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소망을 하나씩 머금은 소원지가 차디찬 삭풍에
몸을 떨고 있다. 적당하게 소원지가 들어차면 불에 태워버린다.


 

♠   전곡리 선사유적지 마무리

▲  아슐리안 주먹도끼를 정면에 내세운 토층전시관

토층전시관은 발굴조사를 벌였던 땅 속 지층(토층) 구조와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 그리고 다
른 나라에서 업어온 구석기 유물을 다루고 있다. 현관 윗쪽에는 전곡리 선사유적의 상징이자
인도 동쪽 아시아에서 최초로 발견된 아슐리안 주먹도끼 황금색 모형을 달아놓았다.


▲  토층전시관 내부에 있는 지층(토층) 구조
저 밑에서 장대한 세월의 의해 봉인되어 있던 구석기 유물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  전곡리 유적에서 나온 구석기 유물들
그 시대 원시인들의 유물은 거의 대부분 돌이다. (동물뼈 일부) 얼핏 보면
그냥 일반 돌맹이처럼 보여 보통 사람들은 구분하기가 어렵다.

◀  아프리카 케냐에서 가져온 구석기 유물


▲  토층전시관 옆에 자리를 닦은 선사체험마을 (연천마당)
이곳은 선사시대 및 전통 체험 공간으로 쓰인다. 마당 한쪽에 옹기종기 모인
초가집은 전통 체험 공간으로 그 남쪽에 선사 체험 공간이 있다. 이곳은
주로 어린이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선사시대 기술, 생활방식 등을 체험할 수 있다.

▲  겨울에 잠겨 한적한 연천마당 (선사체험마을 잔디밭)

▲  선사체험공간 한쪽에 자리한 귀여운 고롱이와 다롱이

▲  토층전시관 옆에 닦여진 움집과 원시인 모형 기념 촬영장
가운데 원시인 모형에 얼굴을 대고 기념촬영을 하면 된다. 그때만큼은
정말 구석기나 신석시기대로 순간 이동을 당한 기분일 것이다.

▲  전곡리 선사유적지 산책로 (정문으로 나가는 길)

▲  유럽 양이 스타일의 성(城) 눈조각품

전곡리 유적 정문 남쪽에는 인공눈을 빚어 만든 눈조각품이 막바지 눈 호강을 시켜준다. 옛날
유럽 성을 비롯하여 피라미드와 동굴 등이 재현되어 있는데 눈조각품 주변에는 인공눈이 짙게
깔려 있어 설원을 거니는 기분을 들게 한다.


▲  피라미드, 스핑크스 눈조각품(오른쪽)과
호주 오페라하우스 눈조각품 (그 뒷쪽)

▲  거대한 하얀 언덕 눈조각품 - 저 안에 얼음 동굴이 있다.

▲  하얀 언덕에 새겨진 재미난 형상들
창을 든 원시인과 매머드, 현대인으로 보이는 형상, 그 형상이
내뱉은 수상한 연기(?)가 새겨져 있다.

▲  하얀 언덕 - 왼쪽과 오른쪽에 언덕 동굴로 인도하는 문이 있다.
동굴 내부는 무척 시원하여 여름에 가면 아주 극락이 따로 없겠으나
여름에는 날씨 관계로 눈조각품을 운영하지 않는다.

▲  역 이름이 구석기역(?)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유적지 외곽을 도는 관광 레일카를 운행하고 있다.
그 레일카는 구석기역에서 타면 되며, 속도가 너무 굼뱅이라
1바퀴 도는데 20분 정도 걸린다.

▲  전곡리 선사유적지 정문 주변에서 다시 만나는 고롱이와 미롱이
칼라버전 모형들

▲  전곡리 선사유적지 정문
동굴처럼 생긴 정문 위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은 구석기 원시인의 얼굴상을
달아놓았다. 역시나 전곡리 스타일에 걸맞는 정문이다.


정문을 나섬으로써 2시간에 걸친 전곡리 선사유적지 답사는 마무리가 되었다. 시간도 벌써 16
시가 넘은 상태, 햇님도 고단한지 벌써부터 칼퇴근을 준비하면서 슬슬 땅꺼미가 어슬렁거리기
시작한다.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껍데기만 남은 딱딱한 선사유적지를 탈피하여 선사시대 관련 다양한 체
험을 누릴 수 있는 현장으로 특히 돼지고기 바비큐 체험이 인상적이었다. 집안에 아이나 조카
들이 있다면 구석기 축제 기간에 맞춰 가족 나들이로 한번 가보기를 바란다.
이렇게 하여 구석기시대로의 짧은 나들이, 전곡리 선사유적지 겨울 나들이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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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19년 1월 21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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