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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영인산 세심사


' 한겨울 산사 나들이, 아산 세심사 '
세심사 다층탑
▲  세심사 다층탑
 


겨울 제국의 차디찬 기운이 옷깃을 더욱 여미게 하던 연말 한복판에 친한 후배와 아산 세
심사를 찾았다.

둥근 햇님이 하늘 높이 걸린 12시에 신도림역(1,2호선)에서 그를 만나 천안으로 가는 1호
선 급행전철을 타고 1시간 정도를 달려 평택역에 도착했다. 크게 치솟은 시장기를 잠재우
고자 평택역 부근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배불리 섭취하고 평택역 남쪽에 있는 평택시외터
미널로 이동하여 아산(牙山)으로 가는 시내버스(아산 500, 501, 510번)를 기다리니 501번
(아산고속터미널↔평택시외터미널)이 기지개를 켜며 슬금슬금 타는 곳으로 들어온다.
501번은 둔포면과 음봉면 사이에서 신양리와 봉재리로 크게 돌아가는 노선이나 그것을 알
지 못해 무작정 그를 잡아탔다. 만석의 기쁨을 누린 버스는 입을 닫고 평택터미널을 출발,
안성천(安城川)을 건너 팽성읍과 둔포면, 501번의 특별 코스인 신양리~봉재리 굴곡 구간,
음봉면을 거쳐 아산시내 코앞인 석정리 엑스포아파트 정류장에서 우리를 내려놓는다.
여기서 남쪽으로 조금 가면 곡교천을 앞에 둔 송곡4거리로 그 서쪽 정류장에서 인주면(仁
州面) 지역으로 가는 아산 620번(신인2통↔걸매4거리)을 타고 염치읍내를 지나 산양3리에
서 두 발을 내렸다.

아산시내에서 산양3리(세심사입구)까지는 아산 620, 621, 622번이 통합 50~60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어 접근성도 그런데로 괜찮다. (시골에서 50~60분 간격은 양호한 편임)


♠  아산 세심사(洗心寺) 둘러보기

▲  세심사로 인도하는 숲길(산양길)

산양3리 정류장에서 시골길(산양길)을 따라 산양3리와 산양1리 마을을 지나면 속인들의 집은
끝나고 온갖 나무에 푸짐하게 감싸인 숲길이 달달하게 펼쳐진다. 오르막길이 꾸준히 절까지
이어지나 절 직전에서 경사가 조금 흥분을 보일 뿐, 거의 느긋하며, 숲내음도 청정하기 그지
없어 온갖 번뇌에 고통받는 내 돌머리와 마음이 잠시나마 맑아지는 기분이다.
숲길 옆에는 중상골이라 불리는 작은 계곡이 있으나 주변 땅과 나무들이 너무 목들이 탔는지
물은 다 말라버렸으며, 귀를 접고 누운 낙엽만이 가득해 황량한 모습을 보인다.


▲  한겨울에 푹 잠긴 세심사 숲길(중상골)
산양3리 정류장에서 세심사까지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

▲  세심사 직전 오르막길

겨울 제국에게 모든 것이 털린 수목들은 텅 비어있는 가지를 앙상하게 드러낸 채, 숨죽여 봄
의 해방군을 기다린다. 허나 그 봄은 아직까지 3달 이상이나 남았고, 겨울의 차디찬 압정(壓
政)은 이제 시작이다. 그저 '이또한 지나가리라~' 여기며 견디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다.


▲  영인산 그늘에 잠긴 세심사 (대웅전과 다층탑, 범종각 등)

영인산(靈仁山, 363.5m) 서남쪽 자락에 묻혀있는 세심사는 공주 마곡사(麻谷寺)의 말사(末寺)
이다. 백제(百濟) 후기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며, 654년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중창했다고 하
나 관련 기록과 유물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창건 이후 오랫동안 이렇다 할 내력도 거
의 전하지 않는다.
비록 절의 일기장은 대부분 분실되었으나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
覽)과 조선 후기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 범우고(梵宇攷) 등에 신심사(神心寺)란 이름
으로 등장해 그것이 원래 이름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고려 때 조성된 다층탑과 1563년에
제작된 부모은중경판(父母恩重經版)과 청문판(請文板), 그리고 조선 중기에 지어진 소조여래
좌상 등이 전하고 있어 고려는 물론 조선 후기까지 조용히 법등(法燈)을 유지했음을 알려준다.
1968년 일타(日陀)와 도견(道堅)이 절 이름의 앞 글자를 바꿔 세심사로 이름을 갈았는데, 이
는 절 입구에 있던 세심당(洗心堂)탑에서 따온 것이다.

조촐한 경내에는 법당인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산신각, 범종각, 요사 등 7~8동 정도의 건
물이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으로는 국가 보물로 지정된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목판(佛說大
報父母恩重經(諺解)木板)과 다층탑, 소조여래좌상, 신중도 등의 지방문화재, 그리고 조선 후
기 부도탑 2기 등이 전한다.
영인산 숲에 푹 안긴 고즈넉한 산사로 절로 인도하는 숲길이 고우며, 봉곡사 등과 함께 아산
지역의 이름난 늙은 절로 꼽힌다.

* 세심사 소재지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0 (산양길180, ☎ 041-543-2696)

           ◀  세심사 요사(寮舍)
종무소(宗務所)의 역할도 겸하고 있는 'ㄱ' 구
조의 팔작지붕 집으로 건물 뒷쪽에 샘터와 공
양간이 있다.

       ◀  요사 뜨락에 있는 샘터(석조)
영인산의 넉넉한 마음이 담긴 듯, 연꽃 문양을
지닌 석조(石槽)에는 늘 물로 가득하다.
산사에 왔다면 샘물은 한 모금 마셔봐야 되겠
지. 하여 졸고 있는 바가지를 깨워 한가득 담
아 섭취하니 목구멍과 몸속의 갈증이 싹 가신
듯 시원하기 그지없다.


▲  세심사 다층탑(多層塔) - 충남 문화유산자료

대웅전 뜨락 한복판에는 세심사의 오랜 명물로 꼽히는 다층탑이 우뚝 솟아있다. 하얀 피부의
3층 기단(基壇) 위에 검은 피부의 기단부와 9층 탑신(塔身)을 얹히고 머리장식으로 마무리를
지은 늘씬하고 잘생긴 탑으로 높이는 3.9m이다. 특이하게도 3층 기단은 화강암, 윗쪽 기단부
와 탑신부, 머리장식은 벼루를 만드는 돌인 점판암(粘板巖, 청석)으로 만들어 탑 아랫도리와
중간~윗도리가 서로 다른 석질과 피부색을 보인다.
기단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으며 곳곳에 연꽃무늬를 새겼다. 그리고 탑신부는
1층 몸돌만 4단의 널돌로 만들고, 윗층 몸돌은 1매의 널돌로 만들었으며, 각 몸돌마다 모서리
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 받침이 2단씩이고, 윗면 경사가 완만하게 처리되어 있
으며,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려있지 않고 깎여져 있다.

돌을 다듬은 수법과 재질의 특수성, 조각양식 등을 통해 고려 때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며 예
전에는 지금처럼 훤칠한 모습이 아닌 탑신 지붕돌과 3층 기단만 남아있던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러던 것을 1956년에 일타와 도견이 손질하면서 세월이 훔쳐간 탑신부 몸돌과 머리장식을 새
로 만들어 붙였는데, 그로 인해 탑은 원래 모습을 다소 잃게 되었고, 기존 기단부 위에 또 기
단을 두는 황당한 일까지 발생했다.
만약 지금 모습이 원래 모습이었다면 능히 국가 보물의 지위를 받았을 것이다. 허나 너무 성
형이 된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라 그 등급까지는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 또한 그가 늙어가
는 과정의 하나일 뿐이다.


▲  세심사 대웅전(大雄殿)과 범종각(梵鍾閣)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소조여래좌상과 신중도가 들어있으니 꼭 살펴보도록 하자.

▲  대웅전 신중도 - 충남 유형문화유산

법당 지킴이인 신중도는 1794년에 승초(勝初), 원정(元正), 보심(普心), 품보(品寬), 대운(大
云) 등이 그린 것으로 원래는 마곡사 백련정사(白蓮精舍)에 있었다.
이후 이곳까지 들어와 세심사의 보물을 하나 늘려주었는데, 탱화 상단에는 제석(帝釋) 식구들
을, 하단에는 위태천(韋太天) 식구들을 배치해 마치 제석 중심의 탱화와 위태천 중심의 탱화
를 하나로 이어붙인 듯한 모습이다.

화기(畵記)가 남아있어 탱화 조성시기와 조성화원들을 고맙게도 알려주고 있으며, 비록 규모
는 작으나 18세기 말 충청도 지역 탱화 화풍을 잘 보여주고 있다.


▲  대웅전 소조여래좌상 - 충남 유형문화유산

대웅전의 주인장인 소조(塑造)여래좌상은 나무로 기본 형태를 다지고 흙을 붙여서 얼굴과 몸
통, 옷주름 등을 표현하고 금색 도금을 입힌 불상이다.
불상 내부 구조를 서로 붙이고자 전통적 꺽쇠못을 사용했으며, 감마레이로 촬영을 해보니 불
상 표면에 많은 균열이 보였다. 이는 나무에 덧붙인 흙이 갈라지면서 생긴 현상으로 조선 후
기 소조불에서 많이 관찰되는 특징이다.

제작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머리 나발과 두꺼워보이는 얼굴, 대의(大衣)의 옷주름 표현에서
17세기 불상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조선 후기에 조성된 소조불로 자료적 가치가
높아서 2017년 9월에 지방문화재의 지위를 얻었다.

            ◀  영산전(靈山殿)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석가삼
존상을 중심으로 석가여래의 열성제자인 16나
한상, 판관(判官) 1위, 영산회상도, 나한도 2
점, 독성도 2점이 봉안되어 있다.

▲  영산전의 주인장, 석가삼존상과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  다양한 모습을 지닌 16나한상과
그들이 담긴 나한도(羅漢圖)


▲  영산전 앞에 있는 늙은 부도탑(浮屠塔)들

영산전 앞에는 길쭉한 계란이나 대추알처럼 생긴 부도탑<승탑(僧塔)> 2기가 쌍둥이 형제처럼
바짝 붙어있다.
부도탑은 승려의 무덤탑으로 보통 경내 외곽이나 산자락에 두기 마련인데, 이곳은 대웅전 옆
구리이자 영산전 앞인 경내 한복판에 두어 고개를 좀 갸우뚱하게 한다. 허나 그들은 원래 경
내에서 떨어진 절 입구에 있던 것으로 3기가 있었는데, 그중 1기가 안 좋은 손에 의해 도난을
당하자 남아있던 2기의 보호를 위해 경내로 가져와 특별히 챙기고 있다.

이들은 '송매당(松梅堂)'과 '세심당'이란 승려의 부도탑으로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인데, 바
닥돌과 둥근 탑신, 지붕돌로 이루어진 단출한 모습이다. 특히 세심당탑은 세심사의 이름 유래
가 된 탑이기도 하다.


▲  산령각(山靈閣)

경내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 자리한 산령각은 1칸짜리 맞배지붕 집으로 산신탱과 칠성
탱이 봉안되어 있다. 산신(山神) 식구들이 그려진 산신탱은 1937년, 칠성(七星) 식구들이 담
긴 칠성탱은 1935년에 조성되었다.


▲  세심사 서쪽 언덕에서 바라본 작은 천하 (염치읍, 신창면 지역)
천하를 비추던 햇님이 퇴근시간이 임박하자 슬슬 그만의 공간으로
빠질 채비를 하고, 달님이 그 자리를 대신하여 천하를 비춘다.
이렇게 하여 세심사 연말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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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5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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