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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 아차산 봄나들이


~~~ 수도권 고구려 유적의 성지, 용마산~아차산 봄나들이 ~~~

용마산 정상부에 깃든 용마산3보루
▲  용마산 정상부에 깃든 용마산3보루터

아차산4보루

용마산 능선

▲  아차산4보루

▲  용마산 능선길

 


서울의 커다란 동쪽 벽이자 수도권 고구려 유적의 대표 성지(聖地)로 크게 애지중지되고
있는 아차산 식구(아차산, 용마산, 망우산)들은 내 즐겨찾기 명소의 일원이다. 그들은 1
년에 30~40회 정도 발걸음을 하며 내 마음을 꾸준히 비추고 있는데, 차디찬 겨울이 저물
고 봄이 오기가 무섭게 그동안 잠잠했던 아차산 앓이가 다시 도졌다. 이 병은 오로지 아
차산에 안겨야만 낫을 수 있는 희한한 병이라 4월 한복판에 그의 품을 찾았다. 아차산의
품은 마치 불고기가 불을 만난 듯 안기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  용마산(龍馬山) 입문

▲  봄의 향연이 펼쳐진 뻥튀기공원

이번 아차산 나들이는 용마산 서쪽 밑에 자리한 중곡동(中谷洞) 뻥튀기공원에서 시작했다. 이
름도 무지 재미있는 뻥튀기공원은 자연 공간인 용마산과 집들로 가득한 중곡동 주택가의 경계
를 이루고 있는데, 꽃과 나무가 무성하고 쉼터와 산책로가 잘 닦여진 산 밑에 아주 흔한 상큼
한 근린공원이다.
공원 남쪽에는 용암사(龍巖寺)가 있으며, 용마산이 베푼 계곡이 흐르고 있으나 인공 조미료가
너무 과하여 볼품은 많이 떨어진다.


▲  뻥튀기공원의 싱그러운 봄풍경 ①
천하를 평정한 봄이 겨울제국에게 오랫동안 고통받은 천하만물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며 천하 곳곳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  뻥튀기공원의 싱그러운 봄풍경 ②

▲  뻥튀기공원에서 용마산 정상으로 인도하는 산길

뻥튀기공원에서 용마산으로 올라가는 산길은 처음에는 완만하나 하늘과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감춰왔던 흥분기를 서서히 보여 은근히 숨을 차게 한다. 용마산은 아차산, 망우산과 달리 성
질이 급한 뫼라 면목4동이나 중곡동, 긴고랑계곡에서 오를 때는 각박한 경사길을 감내해야 된
다.
허나 그것은 잠시 뿐이며, 자존심을 곱게 접고 묵묵히 한발자국씩 오르다 보면 용마산 정상이
알아서 모습을 비출 것이다.

뻥튀기공원에서 용마정까지 15분 정도 걸리며, 거기서 용마산 정상은 15~20분 정도 올라가면
된다.


▲  구불구불 이어진 용마산 산길 (뻥튀기공원에서 용마정 방향)

▲  용마정 밑 너럭바위에 닦여진 나무데크길

용마정 밑에는 아차산과 용마산에 아주 흔한 너럭바위가 펼쳐져 있다. 예전에는 딱딱한 피부
의 저 바위를 산길 삼아 오갔으나 근래 나무데크 계단길이 닦여져 통행이 한결 편해졌다. 여
기서부터 서쪽과 남쪽을 중심으로 일품 조망이 펼쳐지는데, 아쉽게도 서토(西土, 중공) 잡것
들이 악의적으로 날려보낸 미세먼지로 대기가 흐릿하여 조망의 질은 그리 좋지 못했다.


▲  밑에서 바라본 용마정(龍馬亭)의 위엄

▲  천하를 굽어보고 있는 용마정

용마산 서쪽 자락 220m 고지에 자리한 용마정은 근래 지어진 팔각형 정자이다. 벼랑 밑에 높
이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정자를 얹힌 형태라 밑에서 보면 마치 하늘의 누각처럼 꽤 높게 다
가오는데, 면목4동(용마폭포공원)이나 뻥튀기공원에서 용마정을 경유하여 오를 때는 이곳에서
꼭 쉬었다 간다.
이곳은 서쪽과 서남쪽, 서북쪽이 확 트여있어 천하 제일의 대도시로 콧대로 높은 서울 시내가
눈 밑으로 장대하게 펼쳐진다. 그러다 보니 여기서 바라보는 서울 조망과 야경(夜景) 맛은 아
주 진국으로 명성이 높으며, 시내(아차산과 용마산 산줄기가 잘 바라보이는 광진구 북부 지역
과 중랑천, 동대문구 동부 지역 등)에서도 그의 존재가 쉽게 시야에 잡힌다.


▲  용마정에서 바라본 뿌연 천하 ①
중곡동과 군자동, 화양동 등 광진구 지역과 송파구, 성동구, 동대문구 등

▲  용마정에서 바라본 뿌연 천하 ②
광진구와 성동구, 동대문구, 중구, 남산, 인왕산 등 (사진 가운데 뫼가 남산)

▲  용마정에서 바라본 뿌연 천하 ③
중곡동과 장안동, 동대문구, 종로구, 성북구, 중구, 인왕산,
북악산(백악산), 북한산(삼각산) 등

▲  용마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길
용마정에서 용마산 정상까지는 15~20분 정도 더 발품을 팔아야 된다.
(해발 120m 이상 올라가야 됨)

▲  용마산 산길에서 만난 작은 굴

용마정에서 용마산 정상 쪽으로 가다가 능선길 대신 남쪽의 한적한 길로 들어서면 조그만 자
연산 굴이 살짝 모습을 비춘다. 아차산과 용마산은 흙과 바위가 적절히 섞인 뫼라 바위와 벼
랑이 제법 많으며 작은 굴도 여럿 존재하고 있다.
이 굴은 길이가 짧아서 바깥에서도 그의 속살과 끝자락이 훤히 바라보이는데, 굴 안에는 쓰레
기들이 많아 이곳에 신세를 진 사람이 많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인적도 별로 없고 숲에 가려
진 곳이라 밤에 잠시 숨어지내기에는 딱 좋아 보이는데, 하지만 윗쪽 벼랑에 낙석 위험이 있
고 사람들에 의한 좋지 않은 사고가 발생하기 쉬워서 광진구에서 굴 앞에 철조망을 치고 돌을
쌓아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그러니 괜히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한다.


▲  드디어 도착한 용마산 정상부 북쪽 (용마산3보루터)


♠  용마산 정상과 용마산3보루

▲  용마산 정상부 북쪽 용마산3보루(국가 사적)

용마산(348m)은 아차산 식구의 일원으로 한강에서 망우리고개 북쪽까지 이어진 아차산 산줄기
의 중간을 맡고 있다. 아차산 식구 중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이자 가장 서쪽에 자리한 뫼로
용마봉(龍馬峰), 장군봉(將軍峯)이라 불리기도 하며, 봉우리가 커서 대봉(大峰)이란 별칭도
지니고 있었다.
서울 광진구와 중랑구, 구리시(九里市)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서울 동부 지역과 구리, 남
양주 지역을 훤히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라 고구려가 보루(堡壘)를 주렁주렁 달며 애
지중지 했다. 또한 아차산에서 시작된 아차산장성(長城)이 용마산을 거쳐 망우산까지 이어지
고 있는데, 군데군데 장성의 흔적이 아련히 남아있다.

용마산에는 아기와 용마(龍馬)의 짧막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으니 내용은 대략 이렇다. 장사급
아이가 태어나면 무조건 그 가족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전설에는 삼
국시대라고 하는데 글쎄??)
그 시절 산 밑에서 장사급 아이가 태어났는데, 집안 몰살을 두려워한 부모는 결국 아기를 죽
였다. 그러자 용마봉에서 아기가 장차 타고 다닐 용마가 나타나 다른 곳으로 갔다고 하며(또
는 죽었다고도 함) 그 연유로 용마산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 전설이며, 다른 곳에서도 이와 비슷한 전설이 여럿 전해
오고 있어 무인(武人)을 차별했던 조선 때 만들어진 전설이 아닐까 싶다. 또한 용마산과 아차
산 서쪽 자락에는 조선 왕실에서 운영하던 살곶이 말목장이 있었는데, 용마급 말이 많이 태어
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또는 용마가 나왔다고 해서) 용마산이라 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여 전
해온다. 그러니 후자가 맞을 것이다.

용마산 정상은 서울 시내가 있는 서쪽을 향해 크게 고개를 들고 있어 자연히 서울 조망에 최
적화되어 있다. 하여 여기서는 북쪽으로 도봉산과 북한산(삼각산), 불암산, 서쪽으로 중구와
종로구, 인왕산, 북악산(백악산), 남쪽으로 광진구와 한강, 강남구 등이 시야에 들어와 일품
조망을 자랑한다.

* 용마산 정상, 용마산3보루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7동, 광진구 중곡4동


▲  용마산 정상부에서 바라본 천하 ①
용마산과 망우산 서쪽 자락, 중랑구, 봉화산, 노원구, 불암산,
남양주 별내 지역 등

▲  용마산 정상부에서 바라본 천하 ②
바로 앞에 용마산7보루를 품은 용마폭포공원 북쪽 능선을 비롯해 면목동과
중화동 등 중랑구 지역, 동대문구, 천장산, 성북구 지역이 바라보인다.

▲  용마산 정상부에서 바라본 천하 ③
용마산6보루가 깃든 용마폭포공원 남쪽 능선과 면목동, 중곡동, 장안동,
전농동, 동대문구 지역이 시야에 들어온다.


용마산 정상에는 용마산3보루터가 깃들여져 있다. 용마산에는 지금까지 7개의 보루가 발견되
었는데, 그들 중 이곳이 가장 규모가 크다. 이 보루는 정상 동쪽 산비탈부터 정상을 거쳐 정
상 북쪽까지 길게 흔적이 남아있는데, 정상 주변 곳곳에 사람이 건드린 티가 느껴지는 돌의
무리들이 바로 3보루의 흔적들이다.

이곳 보루는 정상부에 씌워진 것으로 3보루터 흔적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어 얼핏 보면 봉우리
전체가 인공으로 다진 언덕처럼 보이나 봉우리는 순수 자연산이 맞다. 정상부에 헬기장(지금
은 없음)을 닦으면서 보루 상당수가 파괴되고 헝클어졌는데, 평탄하게 깎여진 부분과 산길 변
에서 흑회색과 황갈색, 홍갈색 피부의 토기를 중심으로 다량의 토기 파편들이 햇살을 보았다.
이들은 전형적인 고구려 토기라 고구려가 다진 보루임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는데, 신라가 만
들었다는 의견도 있어 고구려가 먼저 3보루를 닦고 나중에 신라가 수리해서 쓴 것으로 여겨진
다. 그리고 옛 헬기장 서쪽 부분에는 적갈색의 소토층이 있다.
희미하게 터만 남은 다른 용마산보루와 달리 그나마 흔적들이 많이 남아서 대륙을 꿈꾸는 우
리로 하여금 고구려를 다시 기억하게 해준다.

용마산보루 7형제 중 4개는 고구려, 3개는 신라가 만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용마산보루 7형
제와 아차산보루 6형제, 망우산1보루, 시루봉보루, 홍련봉보루 형제 등 아차산에 깃든 보루
17기는 '아차산일대 보루군'이란 이름으로 국가 사적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  용마산 정상에 깃든 용마산삼각점(대삼각본점)과 태극기

용마산 정상에는 정상을 알리는 표석과 용마산삼각점(三角點)을 품은 석대(石臺), 그리고 천
하 제일의 국기인 태극기가 나란히 둥지를 틀고 있다.

석대 한복판에 작게 깃든 용마산삼각점은 대삼각본점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1910년 조선에서
토지조사사업을 위해 서울 주변에 설치한 2개의 대삼각본점의 하나이다. 무려 110년 이상 묵
은 이 땅에서 가장 늙은 삼각점으로 서울시가 1994년 7월 7일 서울 정도(定都) 600주년 기념
사업으로 삼각점 주위에 돌로 네모나게 석대를 쌓아 삼각점의 덩치를 늘렸으며, 2013년에
울미래유산 196호
로 지정했다. (지위가 많이 떨어지는 서울미래유산보다는 지위가 확실한 국
가 등록문화유산이나 서울시 지방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이 좋을 듯 싶음)
지금도 '세계축지계' 도입에 따른 측량기준점으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으며, 엄연한 국가시설
이라 그를 무단으로 옮기거나 파손하는 경우 '공간 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 제
108조'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되니 괜히 괴롭히는 일이 없도록 한다.


▲  둥글게 생긴 용마산 정상 표석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단골 사진 모델로 바쁘게 살고 있다. 이날은 평일
오후라 많이 한가한 모습이지만 주말과 휴일에는 정상 인증을
하려는 사람들로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룬다.

▲  용마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의 동쪽 벽 ①
용마산 북쪽 능선과 망우산

▲  용마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의 동쪽 벽 ②
용마산 동쪽 능선과 아차산

▲  용마산 정상 동쪽 산비탈에 깃든 용마산3보루터

인공티가 느껴지는 돌의 무리들이 모두 3보루의 흔적들이다. 차가운 봉우리를 따스하게 덮어
주었던 견고한 돌덩어리의 보루는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과 온갖 좋지 않은 손에 의해 분해
되고 지금은 산봉우리의 일부로 녹아내렸다.


▲  동쪽에서 바라본 용마산 정상 봉우리(용마산3보루터)

▲  용마산 동쪽 능선에서 바라본 천하
아차산(왼쪽)과 용마산(오른쪽) 사이로 협곡처럼 파인 곳은 긴고랑계곡이다.
그들 너머로 중곡동, 구의동, 광장동, 어린이대공원, 한강, 송파구,
강남구 지역이 두 망막에 들어온다.


용마산 정상과 아차산 주능선을 이어주는 용마산 동쪽 능선길은 쑥 내려갔다가 바위가 펼쳐진
중간에서 다시 올라갔다가 서서히 내려가는 구조이다. 오르락 내리락을 2번을 해서 그렇지 대
체로 완만한 능선길로 남쪽으로 아차산 주능선과 광진구, 송파구, 한강이 바라보이며, 북쪽으
로 중랑구와 망우산 등이 늘 시야에 따라붙어 두 눈을 즐겁게 한다.


▲  용마산4보루터 - 국가 사적

용마산 정상에서 동쪽 능선을 가다 보면 아차산 주능선을 만나기 직전에 'H'마크가 새겨진 헬
기장이 있다. 바로 그곳에 고구려가 심은 조그만 점, 용마산4보루가 살짝 깃들여져 있다.

용마산4보루는 용마산3보루와 아차산 주능선 보루를 연결하는 곳으로 보루 둘레는 약 228m이
다. 동쪽 무덤 주변에서 회흑색 연질토기와 대형 항아리 조각, 대상파수편이 나왔고, 북서쪽
에서는 철제 화살촉 1개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보루터 동쪽 지상에서는 석축 구조물이 일부
노출되어 있으며, 동쪽과 서쪽 중간 지점 저지대는 집수시설로 여겨진다.

1994년에 구리문화원에서 조사했을 때는 동쪽
과 서쪽을 별개 보루로 여겼으나, 2003년 서울
시에서 다시 조사를 벌여 하나의 보루임을 확
인했다.
아직 전체적인 발굴조사는 받지 못했으며, 하
루 속히 주변을 싹 뒤집어 이곳에 숨겨진 옛날
이야기 보따리가 싹 풀렸으면 좋겠다.

 
          ◀  용마산4보루의 흔적들


▲  용마산4보루터 주변에서 바라본 아차산 주능선
주능선 왼쪽 부분에 아차산4보루가 있고, 오른쪽에 두툼하게 솟은 부분이
아차산 정상으로 저곳에 아차산3보루가 깃들여져 있다.

▲  아차산 주능선길 (긴고랑입구)

용마산4보루를 지나 서울의 거대한 동쪽 벽인 아차산 주능선으로 들어섰다. 여기서 남쪽으로
빠져 아차산4보루로 길을 잡았는데, 긴고랑입구까지는 내리막길이라 신나게 내려가다가 그곳
을 지나면 산세가 잠시 흥분기를 보이면서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허나 나무데크 계단길이 친절하게 닦여져 힘든 것은 별로 없으며, 구간도 짧아 금세 아차산4
보루 밑에 닿는다. 그리고 계단길 옆에는 인공티가 풍기는 돌 무리들이 길게 늘어서 나그네들
의 관심을 호소하고 있는데, 이들은 아차산장성(長城)의 아련한 흔적들로 계단길이 닦이기 전
에는 그들을 사정없이 밟으며 지나갔다. (문득 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듬;;)


▲  아차산4보루로 인도하는 아차산 주능선 계단길 (서울둘레길5코스)


♠  아차산4보루와 아차산3보루 - 국가 사적

▲  아차산4보루 남쪽 2중치와 동남쪽 성곽

아차산4보루는 용마산과 망우산을 제외한 아차산 보루 식구 중 가장 북쪽에 자리해 있다. 잃
어버린 땅을 제외한 우리나라의 고구려 성곽 유적 중 건물터와 성벽의 구조가 제대로 밝혀진
최초의 현장으로 의미가 아주 남다른 곳인데, 아차산~용마산~망우산 보루 중 거의 유일하게
성벽의 흔적이 조금 남아있었다.
복원 이전 성벽의 최대 잔존 높이는 1.8m로 남벽과 동벽은 잘 다듬은 성돌을 이용한 탓에 그
런데로 남아있었으나 북벽과 서벽은 훼손이 심해 남아있는 높이가 0.8m를 넘지 못했으며, 부
정형의 석재를 사용해 조잡하게 축조되었다.


▲  들여쌓기의 정석을 보여주는 4보루 남쪽 2중치

구리시가 4보루에 숨겨진 옛날 이야기를 풀고자 1997년부터 문화재청과 경기도의 도움을 받아
1998년까지 발굴조사를 벌였다. 하여 온돌과 배수로, 저수조 등을 갖춘 건물터를 확인했으며,
'後部○兄'이라 쓰인 토기가 나와 고구려가 5세기 후반에서 6세기에 닦은 보루로 보고 있다.
토기에 쓰인 후부(後部)는 고구려 5부의 하나이며, '○兄'은 고구려 관등의 하나로 여겨진다.
고구려에는 '형(兄)'자가 들어가는 관직이 많기 때문이다. 그 시절 고구려(고구리)는 동쪽으
로 연해주(沿海州), 서쪽은 중원대륙의 하북성과 산서성(山西省) 너머까지 갔으며, 남한과 북
한 지역은 고구려의 흔한 변방이었다.

이후 2007년에 다시 조사를 벌여 숨겨진 치성을 발견했고, 보루 형태와 성벽 축성 방식을 확
인하면서 복원 가능성이 높아졌다. 4보루 사이로 서울시와 구리시의 경계선이 지나가 절반은
서울시, 나머지 절반은 구리시 영역인데, 구리시가 2008년부터 복원을 적극 추진하여 2년의
공사 끝에 2010년 12월 24일에 복원 준공식을 가졌다. 아차산일대 보루 중 처음으로 복원된
행운의 보루인 것이다. (나중에 시루봉 보루도 복원되었음)

보루 복원을 위해 보루터에서 나온 늙은 성돌을 주로 사용했으나 수량이 적어서 부득이 새 성
돌로 모자란 부분을 때웠다. 그러다 보니 고색이 짙은 옛 돌과 하얀 피부의 새 돌이 어색하게
조화를 이룬다. 허나 이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발굴조사를 토대로 고구려 축성 양식에 맞춰
왕년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했고, 건물터와 온돌 유구 등은 보존을 위해 모두 땅으로 덮었다.
그리고 보루 중앙 쪽에 탐방로를 내고 건물터 쪽에는 금줄을 쳤으며, 보루 북쪽과 남쪽에 보
루로 오르는 계단을 냈다.

▲  동쪽에서 바라본 4보루 남쪽 2중치

▲  4보루로 올라가는 남쪽 계단

보루의 둘레는 약 249m, 성벽 높이는 최소 4m 이상이다. 하지만 탐방객의 안전을 이유로 2.5~
3.1m 높이로 축소 재현하여 마치 역사 왜곡의 현장 같은 아쉬움을 준다. 지형의 경사면을 이
용해 바깥 쪽에 성벽을 쌓고, 안쪽 경사면에는 뒷채움돌과 흙으로 다졌는데, 방어력을 높이고
자 동/서/남/북에 5개의 치성(雉城, 치)을 두었다.
치성(치)은 성곽 방어를 위해 앞쪽으로 다소 튀어나온 성벽으로 고구려표 축성 양식의 하나이
다. 그 양식은 백제와 신라, 발해, 고려, 금, 조선은 물론 왜열도와 서토(중원대륙)까지 전해
져 절찬리에 쓰였다.


▲  아차산4보루의 독특한 구조물 남쪽 2중치

4보루 남쪽에는 2중 구조를 지닌 독특한 치가 남쪽으로 길게 나와있다. 그는 전체 길이 13.2m
로 중간에 목책(木柵)이 둘러진 2.5m 정도 들어간 공간이 있는데, 그것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 치로 구분된다.
뚫린 공간에는 치의 성벽에 잇대어 4개의 후대 석축단이 축조되었고, 그 좌우로 목책을 세웠
는데, 보루의 출입구로 여겨진다. 이런 구조는 용마산2보루와 개발의 칼질로 사라진 구의동(
九宜洞)보루에서도 일부 확인되고 있으나 사실상 아차산4보루가 유일하며, 고구려 보루의 독
특한 구조를 보여줌과 동시에 보루의 끝이 들여쌓기로 차곡차곡 닦여져 안정감을 준다.


▲  4보루 서남쪽 치

보루 내부에서는 건물터 7곳, 온돌 유구 2기, 배수로, 저수조 흔적, 치성 5곳이 발견되었다.
여기서는 항아리와 글씨가 새겨진 토기, 시루, 투구, 찰갑(가벼운 갑옷), 창, 도끼, 화살촉,
낫, 쇠스랑, 말에 물리는 재갈 등 다양한 유물이 쏟아져 나와 아차산3보루와 함께 아차산 일
대 병참기지로 추정된다.


▲  한강을 향해 약간 튀어나온 4보루 동쪽 치

4보루로 올라서니 그런데로 너른 보루 내부가 펼쳐진다. 이곳에는 군사들이 머물던 숙소와 창
고, 방어시설 등이 들어서 있었는데,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과 대자연 형님의 꾸준한 괴롭
힘 앞에 싹 사라지고 터만 남아 사람들의 상상력을 살찌워준다.
이곳을 재현한 모형이 서울대박물관에 있으나 이 역시 100% 정답은 아니니 고구려 건축 양식
에 맞춰서 적당하게 4보루의 모습을 상상해보기 바란다. 이것이 4보루가 우리에게 주는 숙제
이다.


▲  4보루 1호 건물터

4보루의 7개 건물터 중 남쪽에 있는 1호 건물터가 가장 높다. 여기서는 온돌 유구 2기와 주춧
돌이 나왔으며, 온돌 아궁이 주변에서는 글씨가 새겨진 토기, 철제투구 등이 나와 4보루를 관
리하던 높은 장수나 지휘관의 숙소로 여겨진다.
1호 건물터 주변에는 6호 건물터와 7호 건물터, 2호 건물터 등이 있으며, 3호 건물터 밑에서
는 'ㅡ'자형 온돌유구 2기가 나왔는데, 층위(層位)로 보아 건물터보다 먼저 조성되었음이 밝
혀져 4보루 내부 구조물이 같은 시기에 지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보루를 먼저 쌓고 나중
에 온돌과 내부 시설을 닦았던 것이다.


▲  4보루 내부 (남쪽 방향)

탐방로 좌우로 잔디와 흙이 두툼히 덮여진 건물터와 저수시설 유적이 있고, 키가 작은 금줄을
둘러놓아 고구려의 거룩한 흔적을 지키고 있다. 금줄의 의미처럼 줄 안으로 들어가면 안되지
만 지키는 사람이 딱히 없어서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펴고 쉬거나 음식을 처묵처묵하는 골
빈 작자들이 적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  4보루 저수시설

4보루에서는 물을 저장하는 2개의 저수조(貯水槽) 흔적이 나왔다. 이들은 깊이 3.5m 정도 수
직으로 암반 흙을 파내고 바닥과 벽에 입자가 고운 회색 뻘흙을 발라 물이 새지 못하도록 방
수처리를 한 것으로 규모는 '430x300x깊이230cm','350x310x깊이240cm'이다.


▲  한강을 향해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4보루 동북쪽 치

4보루는 북쪽을 제외하고 동/서/남이 확 트여있어 조망이 아주 휼륭하다. 여기서는 광진구와
성동구, 동대문구, 중구, 송파구, 강동구, 한강은 물론 하남시, 구리시, 남양주시 지역이 시
야에 들어오며, 해돋이와 일몰을 모두 맞이할 수 있어 해돋이 수요와 일몰 수요, 야간 등산
수요가 많다. (1월 1일에는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들로 완전 미어터짐)
게다가 아차산과 용마~망우산을 이어주는 매우 중요한 위치라 아차산 주능선의 목구멍 같은
곳이다. 그러니 고구려가 이곳에 큰 보루를 쌓아 무척 애지중지했던 것이다.


▲  4보루 북쪽 치

4보루 바깥에는 우회 산길이 있다. 4보루 속으로 들어가기 싫다면 그 우회길을 이용하면 되는
데, 아차산에 왔다면 4보루는 무조건 찍고 가는 것이 이곳의 관례처럼 되어있다.

* 아차산4보루 소재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4동,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52-2


▲  아차산3보루 북쪽 부분

아차산4보루에서 편안하게 이어진 아차산 주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10분 정도 가면 아차산3보
루와 함께 아차산 정상부가 마중을 한다.

아차산 정상(295.7m)에 깃든 아차산3보루는 성벽 둘레 약 450m, 내부면적 약 6,500㎡로 정상
부에 남북으로 길게 누워있어 아차산 보루 중 가장 규모가 크다. 2005년에 보루 일부를 들추
면서 배수로와 건물터, 기단, 성벽 일부가 발견되었는데, 디딜방아의 불씨로 여겨지는 존재가
나와 이곳이 아차산의 식량 창고로 추정된다. 허나 겨우 보루터의 일부만 꺼낸 상태라 나머지
를 모두 들춰야만 이곳에 정확한 기능과 숨겨진 이야기를 캐낼 수 있을 것이다.


▲  아차산 정상, 아차산3보루 (남쪽 방향)

▲  말끔하게 정비된 아차산3보루

3보루 외곽은 나무가 무성하나 3보루 안쪽은 땅에 바짝 붙은 잡초와 탈모된 흔적처럼 풀이 벗
겨진 흙길, 그리고 잘려진 나무 밑둥이 대부분을 이루어 말끔하면서도 뭔가 허전한 기분이다.
이는 보루터 보존을 위해 그렇게 밀어버린 것이다.
보루터 한복판에는 탐방로는 내었고, 그 좌우로 난쟁이 반바지 접은 것보다 낮은 금줄을 설치
했는데, 지키는 이가 없어서 금줄을 넘는 이가 종종 눈에 띈다. 이곳은 아차산 정상이긴 하지
만 완만한 능선이라 정상 같은 느낌은 나지 않으며, 3보루 동쪽에 우회길이 있다.
 
* 아차산3보루 소재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산49-1


▲  아차산3보루에서 바라본 한강과 강동구, 하남시 지역

아차산3보루를 둘러보고 아차산 주능선을 따라 아차산5보루와 1보루, 낙타고개, 아차산성(阿
且山城)을 거쳐 아차산생태공원으로 내려갔다. 아차산5보루와 1보루도 사진에 담았으나 사진
이 영 좋지 않게 나와서 본글에서는 쿨하게 생략한다.

이렇게 하여 용마산~아차산 봄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이미 500번이 넘게 복습을 했
던 곳이라 벌처럼 날라와서 잽싸게 가려고 했지만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그냥 못 지나친다고
그들을 모두 더듬으며 가다 보니 개미처럼 천천히 보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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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5년 10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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