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0.07.26 서울 서쪽 변두리에 깃든 상큼한 호수공원, 신월동 서서울호수공원 (능골산, 백인의식탁, 몬드리안정원)
  2. 2019.04.21 남해바다를 건너 찾아간 옛 탐라의 현장, 제주도 새해 나들이 (외도 월대, 수산리곰솔, 납읍 금산공원, 제주올레길15,16,17코스)

서울 서쪽 변두리에 깃든 상큼한 호수공원, 신월동 서서울호수공원 (능골산, 백인의식탁, 몬드리안정원)

 


' 도심 속의 상큼한 호수공원, 서서울호수공원(능골산) '

▲  서서울호수공원 중앙호수와 소리분수


 

여름 제국(帝國)이 막바지 위엄을 보이던 8월 끝 무렵에 일행들과 서서울호수공원을 찾았
다.
서서울호수공원은 서울 서남쪽에 생겨난 호수공원으로 그 이름은 익히 듣고 있었다. 비록
나와 서울 하늘을 같이 이고는 있지만 나는 서울 동북쪽 끝인 도봉동(道峰洞)이고 호수공
원은 그 반대인 서남쪽 끝에 있으니 서로의 거리가 무척 멀다. 하여 쉽게 인연이 닿지 않
았었지. 그러다가 이번에 억지로 인연을 갖다 붙여 그를 찾게 되었다.

오후 2시, 신도림역에서 일행을 만나 서울시내버스 662번을 서서울호수공원으로 이동했는
데, 나머지 일행은 까치산역(2,5호선)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왔다.


 

  그림 같은 호수를 품은 서울 서남권 최대의 시민공원
~ 서서울호수공원 (제생정원, 능골산)

▲  정수장 시절 수도관을 활용한 제생정원

천하 제일의 대도시로 콧대가 높은 서울에 그림 같은 호수를 품은 호수공원이 있다. 그 현장
은 바로 양천구 신월3동 신월나들목 북서쪽에 넓게 자리한 서서울호수공원(이하 호수공원)이
다.

이곳은 원래 물을 정화하여 상수(수도물)를 생산하던 정수장(淨水場)이었다. 얼핏 봐서는 이
곳이 설마? 믿겨지진 않겠지만 제생정원과 몬드리안정원 등 공원 곳곳에 정수장 시절의 흔적
이 짙게 남아있어 사연을 알게 된다면 아마 놀라게 될 것이다. 쾌쾌한 약품 냄새와 하수도 냄
새가 풍겼던 통제구역 정수장이 포근한 시민공원으로 완벽하게 변신을 꾀한 의미 깊은 현장이
기 때문이다.

1959년 경기도 김포군(金浦郡)은 이곳에 김포정수장을 닦았다. 당시 신월동(新月洞)을 비롯한
강서/양천구 지역은 모두 김포군 땅이었다. 1963년 이들 지역이 서울에 편입되었으나 계속 김
포군에서 소유하고 있던 것을 1979년 서울시에서 인수하여 신월정수장으로 이름을 갈았다.
이곳은 매일 12만 톤의 수도물을 공급했으나 2003년 10월 '서울시 정수장 정비계획'에 의거하
여 정리 대상이 되면서 강제로 심장을 멈추게 된다. 이로써 44년이나 이어오던 정수장으로서
의 생명은 끝이 난 것이다.

이후 신월정수장 자리를 두고 청소년 유스타운 건설, 임대주택 조성, 징그럽기 그지 없는 영
어 사대주의 현장 조성(영어체험마을) 등 다양한 계획이 쏟아져 나왔으나 어느 것도 답이 되
지 못한 채, 갈팡질팡했다.
그러다가 2006년 서울의 지역간 불균형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김포공항 비행기 소음에 매일
고통받는 지역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마땅한 넓은 공원이 없던 강서/양천 지역 공원 확충을
위해 서울 서남권 제일의 테마공원을 닦기로 결정했다. 하여 3년 가까이 공원화 작업을 벌였
고, 정수장 뒷쪽에 자리한 능골산까지 공원에 포함시켜 숲을 복원하고 산길을 정비해 2009년
10월 26일 '서서울호수공원'이란 새로운 현판을 내걸며 세상에 공개되었다. 금지된 구역에서
누구나 안길 수 있는 시민공원으로 새롭게 거듭난 것이다.

이곳은 옛 정수장을 발판으로 삼아 일어선 친환경 공원이라 그에 걸맞게 '물'과 '재생'을 테
마로 내세웠다. 공원 면적은 217,946㎡(능골산 포함)로 여의도공원, 양재시민의숲에 버금가는
서울 서남권 최대의 공원이며, 소나무 등 47종의 나무와 눈주목 등 44종의 관목, 수호초와 원
추리 등 3종의 초화, 금잔디(22,961㎡)와 양잔디(417㎡)로 이루어진 잔디밭까지 갖추었다.
김포정수장 시절부터 있던 중앙호수에는 노즐 41개로 이루어진 소리분수를 닦아 비행기가 뜰
때마다 흥분하게 했고, 실개천과 생태수로 등의 물줄기와 백인의 식탁, 제생정원, 정수장 건
물을 활용한 몬드리안정원과 미디어벽천 등을 갖추어 새로운 볼거리를 선사한다.

호수공원에 왔다면 공원의 심장부(중앙호수, 몬드리안정원 일대)만 살피지 말고, 공원 서쪽에
자리한 능골산도 올라가보자. 그 산도 엄연한 호수공원의 일원(부천 구역은 제외)으로 정상까
지는 길어봐야 10분 정도이다.
정상을 찍고 서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조선 초기 무인(武人)인 변종인과 20세기 초/중반 유명
시인인 수주 변영로가 묻힌 밀양변씨묘역이 있으니 그들까지 둘러보면 정말 배부른 나들이가
될 것이다.


▲  제생정원

호수공원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마주친 것은 제생공원이라 불리는 공간이다. 이곳은 정수장
에 쓰인 직경 1m짜리 수도관을 손질하여 깔아놓고 그 주변에 풀, 억새를 심은 정원이다. 즉
정수장 시절 수도관을 활용하여 짠 공간이다.
그 옆에는 네모난 얕은 연못을 깔았는데, 수도관과 정수장 기둥을 심고 다양한 색채를 입히거
나 기둥 위에 꽃을 두었다. 완전 친환경공원에 어울리게 말이다.


▲  서서울호수공원 스타일로 재현된 제생정원 연못

▲  호수공원 개원 기념으로 심어진 소나무 (2009,10,26일에 식수됨)
호수공원이 진국으로 숙성될수록 이 소나무도 덩달아 숙성의 기쁨을 누린다.

▲  강렬한 붉은 피부에 하얀 점을 지닌 백인의 식탁

제생정원 남쪽에는 붉은 피부에 네모난 하얀 점을 지닌 길쭉한 식탁과 의자가 있다. 그가 바
로 호수공원의 대표 명물인 '백인의 식탁'이다. 그 이름 그대로 100명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규모로 공원 조성 때 현상 공모에서 당선된 작품을 현실화시켰다. <씨토포스와 지안건축사사
무소에서 제출한 작품임>
여기서는 도시락이나 간단한 먹거리를 섭취할 수 있다. 다만 음식을 만들거나 취사는 절대로
안된다. 이렇게 휼륭한 식사 장소가 있으니 동네 축제나 모임 뒷풀이 장소, 야외 결혼식이나
생일잔치 피로연 장소로 활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  큐브(cube) 모양으로 이루어진 어린이놀이터

미끄럼틀을 밖으로 내민 저 정육면체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살짝 들어가고는 싶어도 순
수 어린이 싸이즈다보니 나는 들어갈 수가 없다. 우리 때는 저런 신선한 놀이터도 없었는데,
이럴 때는 잠시나마 어린 시절로 역주행하고 싶다.


▲  푸른 잔디가 곱게 입혀진 열린마당(열린풀밭)
이곳은 이름 그대로 누구든 들어가 자리를 피고 쉴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  능골산, 몬드리안 정원으로 인도하는 오르막길

▲  능골산 정자

호수공원 서쪽에는 짙은 숲을 지닌 능골산이 병풍처럼 자리해 있다. 산이라 하기에는 좀 아쉬
운 모습이나 그래도 하늘을 향해 작게나마 솟아있으니 뫼는 뫼이다.

능골산은 해발 71.5m의 조그만 뫼로 거의 뒷동산 규모이다. 서울 신월동과 경기도 부천시(富
川市) 고강동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산 남쪽으로 서울과 부천의 경계를 이루는 지양산(芝
陽山), 와룡산(臥龍山)과 이어져 있었으나 경인고속도로로 그 줄기가 끊겼다. 서쪽과 북쪽은
주거지(고강동, 신월3동)로 막혔고, 동쪽 또한 호수공원으로 막혀있다. 그야말로 속세(俗世)
에 좁게 갇힌 외로운 신세이다. 그나마 신월정수장과 밀양변씨묘역 덕분에 이 정도라도 살아
남은 것이다.

호수공원을 조성하면서 숲을 짙게 깔아놓아 생태숲탐방로로 활용하고 있으며, 산 남쪽에는 다
목적운동장을 닦았다. 그리고 산 서쪽 고강동(古康洞)에는 변종인(卞宗仁, 1433~1500)의 묘를
중심으로 한 밀양변씨 묘역이 자리해 있는데, 비록 왕족의 묘역은 아니나 정2품 벼슬을 지낸
변종인의 묘가 있어 능골이라 불리게 되었고, 그게 산 이름으로 굳어졌다.

변종인묘역은 능골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넘어가면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신도비(神道碑)까지
갖추고 있으며 '논개(論介)'란 시로 유명한 수주 변영로(卞榮魯, 1898~1961)의 무덤도 그 곁
에 함께 있어 같이 둘러보기를 권한다. 호수공원에서 길어봐야 도보 20분 이내 거리이다.

▲  능골산 정상 표석
호수공원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이다.

▲  고강동, 변종인 묘역으로 이어지는
능골산 서쪽 산길


 

♠  서서울호수공원의 상징이자 아름다운 거울, 중앙호수와 소리분수

서서울호수공원의 상징이자 얼굴은 바로 중앙호수이다. 그가 있었기에 이곳이 호수공원이란
명분과 간판을 달게 된 것이다.
서울 서남쪽 변두리에 이렇게 큰 호수가 있었다니?? 처음에는 공원을 닦으면서 만든 호수로
단순하게 생각을 했다. 허나 그는 김포정수장 시절부터 있던 50년 이상 묵은 호수였다. 다만
정수장이 엄격히 금지된 보안시설이기 때문에 아무나 발을 들일 수 없었고, 그로 인해 그 존
재가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오랜 세월 철저히 베일에 감싸여 그 속살을 드러내지 않던 숨
겨진 호수였던 것이다.

천하에 그 미모를 드러낸 호수의 면적은 18,000㎡로 정수장에서 제공한 물을 먹고 자랐다. 정
수장을 지우고 공원을 한참 닦을 때 호수를 그대로 보전하고 연꽃을 비롯한 여러 수생식물과
동물을 풀어놓아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치장했다.
호수에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왔으나 정작 와보니 대단했다. 비록 인공호수지만 자연산처
럼 변해버린 생태 호수, 거기에 호수를 둘러싼 산책로도 일품급이다. 특히 호수 복판에 분수
를 깔아놓았는데, 비행기가 지날 때마다 격하게 흥분하여 스스로 물줄기를 뿜어내는 이색 분
수쇼를 선보인다. 그가 바로 호수의 운치를 크게 돋구는 명물, 소리분수이다.
분수는 41개 노즐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비행기 소음(81db)을 감지하여 자동으로 흥분하
게끔 했다. 또한 조명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밤에도 볼 수가 있다.
안그래도 이 지역은 김포공항 근처고 그곳으로 착륙하는 경로라 비행기 소음에 늘 고통을 받
고 있었는데, 비록 2001년에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하여 국제선 대부분이 그곳으로 옮겨갔지만
소음은 여전하다. 그 소음을 이용한 것이 바로 소리분수이다. 지역 환경의 단점을 역발상으로
공원 명물로 꾸민 것이다. 하여 이곳만큼은 비행기를 애타게 기다리게 된다. 소음이 들려야
분수가 흥분을 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분수가 1년 내내, 24시간 내내 흥분하는 것은 아니며,
호수 주변에서 너무 시끄럽게 떠드는 경우 자칫 비행기 소리로 잘못 인식해 흥분하는 경우도
있다. 어디까지나 인간이 달아놓은 기계라 그 한계는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다.

* 소리분수 가동기간 : 5월1일~9월30일 (12~18시에만 가동, 비가 오거나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에는 움직이지 않음)


▲  저기 비행기가 떴다

▲  비행기가 소음을 선사하며 호수 하늘을 가르자 소리분수는
슬슬 흥분을 낸다.

▲  비행기를 향한 그리움인가? 비행기 소음에 대한 단체 항의인가?
일제히 허공을 찌르는 소리분수의 위엄

▲  비행기가 사라질 때까지 분수는 계속 하늘을 찌르고

▲  비행기가 사라지자 분수는 남쪽부터 진정을 되찾는다.
지금까지 많은 분수를 보았지만 비행기 소음을 양분으로 삼은 분수는 처음이다.

▲  슬슬 가라앉는 소리분수
소리분수는 남북으로 41개의 노즐이 펼쳐져 있다. 비행기가 남쪽에서 오니
자연히 남쪽부터 반응을 보이며, 북쪽이 제일 늦게 흥분을 보인다.

▲  남쪽에서 바라본 소리분수의 격한 흥분 ▼



▲  북쪽에서 바라본 중앙호수와 소리분수의 향연

▲  호수 서쪽, 문화마당에서 바라본 중앙호수
호수에 개구리 운동장(연잎)이 넓게 닦여져 있다.

▲  목재로 닦아놓은 문화마당과 중앙호수

▲  비행기가 뜨는 중앙호수 남쪽

▲  서쪽에서 바라본 중앙호수

▲  호수를 지키는 물고기들 (이곳에서 낚시는 안됨)

▲  호수 동쪽 산책로 ①

중앙호수 주위로 마치 테이프를 두른 듯, 산책로를 빙 둘렀는데, 그중에서 북쪽과 동쪽 산책
로가 가장 호젓하다. 온갖 나무와 강아지풀 등 다양한 수풀이 진한 녹음을 휘날리며 운치를
강렬히 수식하기 때문이다. (호수 서쪽에는 문화마당과 방문자센터가 있음)
호수에서 잔잔히 불어오는 바람과 능골산이 불어주는 산바람이 교차해 여름 제국의 한복판에
도 늘 시원하며, 호수는 보는 지점에 따라 늘 모습을 달리하여 그의 다양한 얼굴을 만날 수
있다.


▲  호수 동쪽 산책로 ②

▲  호수 동쪽 산책로 ③
집으로 살짝 훔쳐와 혼자서만 누리고 싶은 길이다. 허나 그럴 재주가
없으니 가끔 찾아와 거닐어야겠다.


 

♠  서서울호수공원 몬드리안정원과 미디어벽천

▲  옛 정수장과 자연의 조화, 몬드리안 정원

중앙호수 남쪽에는 마치 폐허의 유적지 같은 공간이 있다. 초췌한 기둥과 벽 사이로 온갖 꽃
과 나무들이 어깨를 펴고 있는데, 그곳은 정수장 시절에 쓰인 침전조 등의 여러 시설이 있던
공간으로 그 시설을 부시고 몬드리안 정원을 새로 심었다.
정수장 시설을 다 밀어버리지 않고 기둥과 천정 등을 남기고 추상화가 몬드리안의 구성 기법
을 도입해 수직과 수평의 선이 조화되게끔 만들었는데, 미디어벽천과 수생식물원, 하늘정원,
생태수로 등이 있으며, 공간마다 꽃과 나무를 심어 조촐하게 야외식물원(야생화원)의 역할도
겸하게 했다. 또한 옛 시설을 재활용한 수질정화 시스템과 빗물을 이용한 물순환 시스템 등의
친환경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정원 주위로 늘 깨끗한 물이 흐른다.


▲  온갖 키 작은 화초들이 자라고 있는 몬드리안 정원 (야생화원)

▲  물과 화초, 옛 정수장 시설이 어우러진 몬드리안 정원

▲  수풀의 보금자리가 되버린 옛 정수장 벽
여러 갈래로 쪼개진 정수장 벽이 도처에 남아 옛 정수장 시절을 아련히 귀뜀해준다,
마치 일부만 남은 폐허의 근대 유적지 같은 모습으로 푸른 옷을 걸친 벽은
친자연적으로 변화한 이곳의 긍정적인 현실을 대변해준다.

▲  옛 정수장 벽 사이로 이어진 정원 통로
마치 20세기에 벌어진 전쟁의 흔적 마냥 폐허의 벽에는 담쟁이덩굴이 무성하다.

▲  몬드리안 정원 야생화원 탐방로
야생화초가 나와 비슷한 눈높이에서 환한 미소를 짓는다.

▲  야트막한 경사에 마치 눈이 흩날리듯 메밀꽃으로 보이는 하얀 꽃이
심어져 있다.

▲  폭포처럼 이루어진 미디어벽천(Media Waterfall)

미디어벽천은 몬드리안 정원의 명물로 파워글라스라는 투명 디스플레이 글라스를 사용하여 문
자나 이미지, 동영상 등을 표현한다. 그러니까 디지털영상을 벽천이라 불리는 90도 직각면에
표현하는 것이다.
허나 우리가 갔을 때는 오후 늦은 시간이라 그냥 맨바닥만 있었을 뿐 아무 것도 재현된 것이
없다. 소리분수보다 훨씬 보기 힘든 존재로 그를 보려면 12~13시대에 와야 된다.

* 미디어벽천 가동 시간 : 5월1일~9월30일까지 (12시~12시30분, 13시~13시30분)


▲  위에서 바라본 미디어벽천
벽천 앞에는 늘 물이 머물러 있다. 이들은 생태수로의 일원으로 수심은 매우 얕다.
그렇다고 물에 들어가지는 말자. (물놀이, 발담구기 금지)

▲  서서울호수공원을 닦은 기념으로 세워진 비석 (2009년 10월 26일)

▲  물순환시스템이 적용된 몬드리안 정원 생태수로

▲  물이 모여있는 몬드리안 정원 남쪽 끝

▲  옛 정수장 기둥이 남아있는 몬드리안정원 하늘정원

몬드리안정원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 하늘정원이 자리해 있다. 그래서 이름도 하늘정원
인 모양이다. 하얀 기둥 끝에는 철골이 을씨년스럽게 노출되어 있어 옛 정수장 시절을 애타게
그리는 듯 하다.
이곳에는 여러 꽃과 풀이 심어져 있으며, 의자가 넉넉히 깔려있어 밑에 펼쳐진 중앙호수를 바
라보며 잠시 쉬어가기에 좋다.


▲  다채로운 화초가 심어진 하늘정원
마치 빌딩 옥상 정원 같은 기분이다.

▲  몬드리안 정원 허공을 가르는 윗 탐방로 ①

▲  몬드리안 정원 허공을 가르는 윗 탐방로 ②

▲  몬드리안 정원 허공을 가르는 윗 탐방로 ③

▲  중앙호수와 접한 몬드리안정원 북쪽 구역

호수공원을 한바퀴 둘러보니 시간은 어느덧 18시가 되었다. 햇님도 슬슬 빈틈을 보이기 시작
하고 그 틈을 노려 달이 세상을 훔치려 든다. 열심히 돌아다녔더니 배도 고프고 슬슬 따끈한
저녁밥이 간절해지는 시간이라 부근에서 저녁에 곡차(穀茶) 1잔 걸치고 각자 제자리로 돌아왔
다.
이렇게 하여 늦여름 서서울호수공원 나들이는 막을 내린다.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월3동 149-20 (남부순환로64길20, ☎ 02-2604-3004)
* 서서울호수공원 홈페이지는 아래 중앙호수 사진을 클릭한다.


▲  남쪽에서 바라본 중앙호수
은빛 물결이 출렁이는 잔잔한 호수에도 어느덧 어둠이 몰려온다.


* 까페(동호회)에 올린 글은 공개일 기준으로 1주까지만 수정,보완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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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0년 7월 6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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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바다를 건너 찾아간 옛 탐라의 현장, 제주도 새해 나들이 (외도 월대, 수산리곰솔, 납읍 금산공원, 제주올레길15,16,17코스)

 


' 제주도 겨울 나들이  '
(외도 월대, 수산봉, 납읍리 금산공원)

▲  제주해협이 바라보이는 외도 해변

수산리 곰솔 납읍리 금산공원 (납읍리 난대림)

▲  수산리 곰솔

▲  납읍리 금산공원

 


 

묵은 해가 아쉬움 속에 저물고 새해가 막 기지개를 켜던 1월의 첫 무렵, 사흘 일정으로
천하에서 가장 작은 대륙, 제주도(濟州島)를 찾았다.
제주도는 거의 13년 만에 방문으로 비행기나 장거리 여객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야 되는
부담감 때문에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다. 허나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수천~수만 리가 되
는 것도 아니고 고작 500km 남짓에 불과하며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로 1시간 내외면 충분
히 닿는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천하를 마음대로 주유한다는 내가 제주도에게 너무나 소심하게 대한
것 같고, 이러다가는 제주도란 존재를 깜빡 잊어먹을 것만 같았다. 하여 나를 제주도에
팍 떨어트리기로 작정하고 부랴부랴 준비를 했다. (준비라고 해봐야 비행기표 예약밖에
는 없음)

평일 아침 6시대 비행기라 널널하게 새벽 2시에 도봉동 집을 나서 심야시내버스(N버스)
를 1회 갈아타고 다시 일반시내버스로 환승하여 5시에 김포국제공항 국내선청사에 도착
했다. (2시 50분대에 방학사거리에서 N15번 시내버스를 타고 종로2가로 이동 → 3시 50
분대에 N26번 시내버스를 타고 공항시장까지 이동 → 4시 50분대에 공항시장 건너편 정
류장에서 6629번을 타고 김포공항 진입)

공항은 여행 비수기인 겨울 평일임에도 이른 아침부터 제주도를 꿈꾸러 온 사람들로 거
의 북새통을 이루었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30여 분 정도 지루하게 시간을 때우다가 제
주로 가는 아시아나항공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시간이 되자 비행기는 그 작은 입을 닫
고 넓은 활주로를 10분 남짓 방황하다가 드디어 하늘 높이 비상한다.
제주도에 처음 발을 들였던 초등학교 시절, 김포공항에서 50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하
고 있다. 그 소요시간은 여전히 유효하여 제주국제공항에 착륙하여 바퀴를 멈출 때까지
딱 50분이 걸렸다. (보통은 활주로 방황 시간까지 포함하여 1시간~1시간 10분을 소요시
간으로 잡고 있음)

활주로 한쪽에 멈춰선 비행기에서 내려서니 공항청사로 인도하는 저상형 셔틀버스가 대
기하고 있었다. 그 버스를 타고 3분 정도를 달려 공항청사로 이동했는데 공항이 바닷가
와 가까워서 그런지 바람이 다소 매서웠다. 제주도는 여름에만 와봤지 겨울에는 처음이
다. 따뜻한 남쪽이라 별로 춥지 않을 것이라 방심을 하였으나 바닷가는 바람 때문에 오
히려 본토 이상만큼이나 추웠다. (단 내륙 쪽은 따뜻함)

제주도에서 이미 정처(定處)는 정해둔 상태라 그곳만 얌전히 찾아가면 된다. 남들은 렌
트카로 많이 이동을 하지만 난 마음 편하게 대중교통을 선택하여 돌아다녔다. 제주도는
비록 일부 노선을 제외하면 버스 배차간격은 긴 편이나 본토보다 시내버스 차비가 저렴
하고 무료환승제가 아주 휼륭해 섬 1바퀴(180km)를 기본요금(현금 1,200원, 카드 1,150
원)이면 돌 수 있다. (제주도 급행버스와 공항버스는 제외)

제주국제공항에서 첫 답사지인 외도 월대를 가고자 제주시내버스 315번(국제여객선터미
널↔수산리)을 탔다. (다른 노선들도 있으나 그것이 먼저 와서 탔음)
버스는 오랜만에 건너온 나에게 신제주 일대를 신나게 강제투어를 시켜주고 8시가 조금
넘어서 외도초교 정류장에 나를 가져다 주었다. 외도초교에서 남쪽으로 가면 광령천(光
令川)이 있는데 바로 그곳에 나를 여기로 부른 월대가 있다.


 

♠  달놀이와 은어로 유명했던 제주시내 외곽 명승지
외도 월대(月臺)

▲  현무암으로 닦여진 월대

월대는 광령천(외도천)과 도근천<都近川, 수정천, 조공천>이 만나는 곳에 닦여진 명승지이다.
월대 앞을 흐르는 광령천을 따로 월대천이라 부르기도 하며, 남해바다도 이곳까지 손을 대고
있어 자연히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수심이 깊고 청정해 예로부터 은어
와 숭어, 뱀장어가 많이 노닐고 있다. (지금도 많이 서식하고 있음)

월대 주위로 하천을 따라 200~300년 숙성된 팽나무와 해송이 멋드러지게 늘어서 있는데 이곳
지형이 반달과 비슷하다고 하며, 달님이 뜰 때 주위와 어우러져 수면에 비친 달빛이 아주 예
술이라고 한다. 반달을 닮은 곳에 달빛 또한 그윽하니 이곳에 퐁당퐁당 빠진 옛 사람들은 누
대(樓臺)를 짓고 신선이 내려와 달놀이를 하던 곳이란 의미로 '월대'라 하였다.

월대는 제주도에서 가장 흔한 현무암으로 낮게 네모난 기단을 깔고, 그 위에 동그란 낮은 대
를 다져 4각형 위에 동그라미가 있는 모습처럼 되었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이른바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돌로 쌓은 석대만 있을 뿐, 건물은 없으며 선비와 관리들, 지역 사람들이 앞다투어 찾아와 시
를 짓고 낚시를 하며 풍류를 즐겼다. 그들은 월대를 포함한 외도동(外都洞) 일대에 적당한 풍
경 8곳을 골라 외도팔경(外都八景)이라 이름 짓고 찬양을 하니 그 8경은 다음과 같다.

1. 월대피서(月臺避暑) - 월대에서의 피서
2. 야소상춘(野沼賞春) - 들이소(월대천 남쪽)에서의 봄구경
3. 마지약어(馬池躍漁) - 마지(연대입구 마이못)에서 뛰는 물고기
4. 우령특송(牛嶺特松) - 우왓동산의 큰 소나무
5. 대포귀범(大浦歸帆) - 큰 포구(조공포)로 돌아오는 돛단배
6. 광탄채조(廣灘採藻) - 넓은 여에서 해조를 캐는 모습
7. 사수도화(寺水稻花) - 절물 벼밭에 벼꽃이 핀 모습
8. 병암어화(屛岩漁火) - 병풍바위에서 고기잡이 불구경


▲  시커먼 피부의 월대 비석
비석 피부에 쓰인 '월'이 그 흔한 '月'이 아니라 거의 초승달 같은 모습이다.
(사람이나 동물의 삐뚤어진 눈처럼 보이기도 함)
비석까지도 달을 표현했으니 이곳은 그야말로 달을 찬양하는 공간이다.


월대 주변은 완전 시골이었으나 제주 시내가 동/서/남으로 크게 살을 찌우면서 그 주위로 시
가지가 형성되었다. 하여 옛날의 운치는 다소 깎이긴 했으나 월대와 광령천, 하천을 따라 늘
어선 나무들은 거의 그대로이며, 광령천 동쪽은 전원(田園) 풍경을 여실히 간직하고 있어 월
대의 위엄은 아직 녹슬지 않았다. 또한 제주도의 야심작인 제주올레길 17코스(제주시내 원도
심~광령, 18.1km)가 이곳을 살짝 지나가며 올레길 뚜벅이들을 인도한다.


▲  월대 주변에 자리한 키 작은 비석 4형제
난쟁이 반바지 접은 것보다 작은 비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들은
지역 사람들의 공덕비로 기단석은 현무암으로 지어졌다.

▲  월대 해송 - 제주시 보호수 13-1-15-30(2) / 13-1-15-30(3)호

월대 옆에 제주시 보호수로 지정된 해송 2그루가 있다. 이들은 280년 묵은 것들로(1982년 보
호수로 지정될 당시 추정 나이가 250년) 지정 번호가 앞선 것을 기준으로 높이는 각각 10m와
3m, 나무둘레는 3.2m와 2m이다.


▲  월대 산책로의 평화로운 아침 풍경 (제주올레길 17코스)

▲  월대 산책로와 오래된 해송<제주시 보호수 13-1-15-30(1)호>
정면에 보이는 수형(樹形)이 좋은 소나무가 제주시 보호수인 해송으로 앞서 언급한
해송들과 나이(약 280년)가 비슷하다. 나무높이는 12m, 나무둘레 3.2m

▲  이제는 무늬만 남은 고망물(수정천)

월대가 있는 외도동에는 조부연대(煙臺)와 고인돌(지석묘), 마이못, 고망물, 수정사(水精寺)
터, 제주도에서 유일한 자갈해변인 알작지 등의 소소한 명소들이 전하고 있다.
나는 월대와 수정사터만 알고 있었지 다른 명소는 전혀 몰랐다. 여기서 덤으로 알게 된 그들
을 싹 보고 가면 좋겠으나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도 여의치 않았고 마음은 벌써부터 다음 행선
지를 재촉하고 있어서 월대에서 가까운 고망물만 보기로 했다. 그곳은 월대교에서 광령천 천
변길(통물길)을 따라 2~3분 정도만 가면 된다. (제주올레길 17코스가 그 길을 따라감)

고망물은 오래된 샘터로 외도동에 크게 둥지를 틀었던 수정사의 샘터로 전해진다. 그래서 수
정천이란 이름도 지니고 있다.
수정사는 고려 충렬왕(忠烈王, 재위 1274~1308) 때 원나라(몽고)의 황후(皇后)가 물이 잘 나
오기를 기원하고자 세웠다고 한다. 몽고 왕비(또는 몽고 조정)가 그들과 전혀 관련도 없을 것
같은 머나먼 제주도에 왜 절을 세웠나 싶겠지만 그 시절 고려는 몽고의 그늘에 있었고, 몽고
는 고려의 영역이던 제주도, 함경남도, 평안도, 요동(遼東) 지역을 강제로 접수해 그들 땅에
넣어버렸다. <평안도와 요동에 동녕부(東寧府)를, 함경남도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 제주
도에 탐라총관부(耽羅摠管府)를 설치하여 통치함>
기마병 중심인 몽고에게 말은 꽤 중요한 전투 자원으로 제주도는 말목장으로 아주 휼륭했다.
그러니 몽고의 제주도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으며, 절도 여럿 설치하여 통치수단으로 삼았다.
그런 배경에서 태어난 수정사는 제주도에서 제법 덩치가 있던 절로 서귀포에 있던 법화사(法
華寺)와 함께 제주도 2대 사찰(또는 3대 사찰)로 꼽혔다. 허나 17세기 말 화마(火魔)의 먹이
가 되어 부질없이 사라졌으며, 20세기 이후에 새로운 수정사가 들어서 작게나마 옛 터를 지키
고 있다.

고망물은 늘 물이 풍부하게 나와 동네 사람들의 식수가 되었으며, 왜정(倭政) 때 지금의 모습
으로 정비하고 그 기념비를 세웠다. 여전히 물은 나오고 있으나 개발의 칼질이 주변까지 미치
면서 수질은 장담이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그러니 아무리 갈증이 나더라도 이곳 물은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  세월이 씌워놓은 온갖 주근깨로 범벅이 된 수정천 신축기념비
왜정 때 고망물을 손질한 기념으로 세워진 것으로 옆구리에 조성시기가 쓰여있다.
허나 시대가 시대인지라 서기 대신 왜왕(倭王)의 연호가 쓰여있었고,
1945년 이후 그 부분은 뜯겨졌다.

▲  고망물에서 바라본 한라산(漢拏山)의 위엄
제주도는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모두 한라산이 바라보인다. 한라산은
제주도를 빚은 장본인이자 제주도의 어머니와 같은 큰 존재이다.

▲  광령천과 바다가 만나는 외도 해변 <조공포(朝貢浦)>

고망물에서 광령천을 따라 월대를 거쳐 외도 해변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고려와 조선 때 제주
도에서 조정으로 보내는 공물선(貢物船)이 오가던 포구로 조공포라 불렸는데, 그 조공선은 도
근천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하여 도근천을 조공천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늘에 점점이 떠있는 구름 밑으로 푸르기 그지없는 제주해협이 넓게 펼쳐져 있다. 혹시나 추
자도(楸子島)나 본토가 보이지 않을까 싶어 주름선이 일그러질 정도로 눈에 힘을 주고 살펴봤
으나 역시나 거리 때문인지 보이지가 않는다. 바다 파도는 조금 흥분기를 보이며 뭍을 때리고
있었고 바닷바람은 그리 춥지 않았다.


▲  외도 해변 (대원암 동쪽)
왼쪽에 보이는 돌탑은 대원암에서 만든 것이다.


외도 해변 서쪽에는 천하 유일의 해수관음보살(海水觀音菩薩) 와상(臥像)을 봉안한 대원암이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에 지어진 조그만 절집으로 내가 갔을 때는 와상의 존재도 전혀 몰랐
고, 그곳에는 딱히 손이 가지 않아 해변만 잠깐 기웃거리고 외도초교 정류장으로 나왔다.

* 외도 월대 소재지 : 제주도 제주시 외도2동 230, 240, 241일대


 

  제주해협을 바라보고 있는 조그만 오름(봉우리)
수산봉(水山峰)과 수산리(水山里) 곰솔

▲  수산봉 충혼묘지(모감동) 기점 (제주올레길 16코스)

외도초교 정류장에서 제주도 간선 202번을 타고 하귀를 지나 모감동에서 내렸다. 202번은 제
주터미널에서 제주도 서쪽 일주로(애월, 한림, 고산, 대정, 화순, 중문)를 따라 서귀포 중앙
로터리(서귀포등기소)까지 가는 긴 노선으로 외도부터 다음날 찾아간 천제연폭포(天帝淵瀑布)
까지 쭉 그의 신세를 졌다. (총 5번을 탔음)
이 노선은 달랑 1km를 가던, 40km를 가던, 전 구간을 가던 무조건 기본 요금이며, 제주시내버
스(300, 400번대)와 서귀포시내버스(500, 600번대), 제주시와 서귀포 외곽버스(700번대), 제
주도 장거리 간선버스(200번대)와 무료환승이 가능하다. (100번대 제주도 장거리 급행버스도
환승이 되나 약간의 차액이 나가며 구간요금 있음)

모감동 정류장 남쪽에 야트막한 산이 손짓을 하니 그곳이 수산봉이다. 차량의 왕래가 빈번한
도로(일주서로)를 신호등의 도움을 받아 건너면 수산봉으로 인도하는 길이 마중을 나오는데,
제주올레길16코스(고내~광령, 15.8km)가 그 길을 따라 수산봉 남쪽까지 이어진다. 16코스는
광령에서 17코스로 간판을 갈아 월대와 제주시내로 달려가며, 고내에서는 15코스로 이름을 바
꾸고 한림읍으로 이어진다.


▲  수산봉 북쪽 산길 (1)

수산봉은 해발 122m의 낮은 뫼로 '수산봉오름','수산오름','물메오름','물메' 등의 별칭을 가
지고 있다. 옛날에는 주로 물메라 불렸는데, 이는 봉우리 정상에 못이 있어서 그렇게 불린 것
이다. (물뫼, 물메)
지금은 딱히 특별한 것이 없어보이는 평범한 뒷동산이나 그 태생은 무시무시했던 화산으로 화
산 폭발로 못과 지금의 산이 형성되었다. 이런 식의 산은 제주도에 매우 많다.

조선 때는 정상에 물메봉수를 두었는데 동쪽에 도두봉수, 서쪽으로 고내봉수와 연락을 했으며,
기우제를 지냈던 터가 있어 영산(靈山)으로 추앙을 받기도 했다. 해송이 울창해 솔내음이 그
윽하며 서쪽 자락에는 애월읍 충혼묘지가 닦여져 있어 호국(護國) 신들이 안식을 취하고 있다.

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크게 모감동(충혼묘지), 대원정사, 수산리 곰솔 등 3개가 있는데, 산이
작다보니 어디로 올라가든 10분 안에 정상부에 닿는다. 산 정상은 군부대가 있어 금지된 곳이
되었으며, 봉수대터는 그 안에 있어 관람이 어렵다.
내가 수산봉을 찾은 것은 봉우리보다는 산 남쪽에 있는 수산리 곰솔을 보고자 함이다. 그곳으
로 가려면 수산봉을 거쳐가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  수산봉 북쪽 산길 (2)

▲  수산봉 북쪽 산길 (3)
겨울의 한복판이지만 해송 외에도 많은 나무들이 버젓히 푸른 옷을 걸치고 있어
겨울임을 무색하게 만든다. 그만큼 제주도는 따뜻한 남쪽이다.

▲  수산봉 정상부
바다가 바라보이는 정상부에는 쉼터용 정자와 여러 운동시설이 닦여져 있다.

▲  수산봉 남쪽 숲길

▲  수산리 곰솔 - 천연기념물 441호

수산봉 동남쪽에 곱게 늙은 곰솔이 있다. 수산저수지를 거울로 삼으며 도도한 모습을 드러내
고 있는 그는 높이 11.5m, 나무둘레 4.7m, 수관폭 26m로 400년 정도 묵은 것으로 여겨진다.
나무의 눈덮힌 모습이 마치 백곰이 물을 마시고자 웅크리고 있는 모습처럼 보여 곰솔이라 불
리며 나무 껍질이 검은색이라 흑송(黑松)이라 불리기도 한다. 또한 바닷가에 많이 자라고 있
어 해송이란 이름도 지니고 있다. 지상 2.5m 높이에 원줄기가 잘려진 흔적이 있고, 거기서 4
개의 큰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으며, 호수 쪽 가지가 밑동보다 2m 정도 낮게 물가에 드리워
져 있어 나무의 자태가 곱다.

이 나무는 수산봉 밑에 마을이 지어졌을 때 그 기념으로 심어진 것이라 전하며, 수산리 사람
들은 그를 수호목으로 삼아 애지중지하고 있다. 나무 북서쪽에는 나무에게 당제를 지내는 맞
배지붕 당집이 있다.


▲  물을 향한 마음, 호수로 뻗은 남쪽 가지
물이 많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아니면 갈증이 심했는지도) 나무의 남쪽 가지가
계속 호수로 손을 내밀고는 있으나 호수는 액체라 그의 손을 잡을 만한
것이 없어 서로 뻔히 보임에도 전혀 닿지를 못하고 있다.

▲  수산봉과 곰솔의 잘생긴 거울, 수산저수지

수산저수지는 현무암 피부를 지닌 제주도에서 거의 흔치 않은 저수지이다. 예전에는 유원지가
들어서 한때 시끌벅적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 흔적들이 거의 지워져 고요하다. 다만 그 고요
함을 툭하면 건드리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제주공항으로 착륙하는 비행기들이다.
이곳은 비행기들이 제주국제공항으로 진입하는 길목으로 5분이 멀다하고 지나간다. 비록 소음
이 있긴 하나 형형색색의 비행기들이 날개를 낮추며 들어서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으며, 저렇
게 많은 비행기가 들어오고 그만큼 바깥으로 나가니 제주도의 위엄과 인기를 정말 실감케 한
다. (현재 제주공항은 거의 포화상태임)

수산봉을 넘어온 제주올레길16코스는 저수지 서쪽을 지나 남쪽으로 흘러가며, 나는 곰솔과 당
집 주변만 둘러보고 다시 수산봉 정상부를 거쳐 모감동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  수산리 곰솔에게 제를 지내는
마을 당집

▲  곰솔 맞은편에 자리한 무덤들
현무암으로 무덤 경계를 닦았다.

* 수산봉 소재지 :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
* 수산리 곰솔 소재지 :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 1935


 

♠  오래된 난대림을 간직한 납읍리의 상큼한 언덕
납읍 금산공원(錦山公園)


▲  납읍리 돌담길

모감동 정류장에서 다시 202번을 타고 애월을 지나 한림읍내에서 내렸다. 여기서 제주도 간선
291번(제주터미널~한림읍)으로 환승하여 금산공원을 간직한 납읍리에 두 발을 내린다.
모감동에서 여기까지 바로 가는 292번 버스가 있으나 운행횟수가 너무 적고 시간이 전혀 맞지
않아서 부득이 한림으로 돌아간 것이다. (한림읍에서 납읍리로 가는 버스가 30~40분 간격으로
있음)
애월읍 납읍리(納邑里)는 제주도에서 이름난 양반 마을로 꼽힌다. 14세기에 마을이 조성된 것
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납읍을 중심으로 사방 10리 이내에 곽지, 애월, 고내, 상가, 하가, 어
음, 봉성 등 7개의 마을이 들어서 있어 그것을 아우르는 뜻에서 동네 이름에 읍을 쓴 것으로
보인다.
납읍리 지역에서 처음 사람이 산 곳은 곽남(郭南)으로 여겨진다. 그곳의 처음 이름은 곽지남
동으로 그것을 줄여 곽남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이후 '곰팡이','둥덩이' 등지에 사람들이 터
전을 닦으면서 마을이 확대되었다.

현재 납읍리는 본동, 서동, 중하동 등 3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본동에 나를 이곳으로
부른 금산공원이 있다. 제주시(북제주)에서 가장 감귤이 잘되는 동네로 제주올레길15-A코스(
한림~납읍~고내, 16.5km)가 납읍리와 금산공원 내부를 지난다.


▲  귤나무밭을 가르는 납읍리 돌담길

▲  금산공원 정문

납읍리사무소 정류장(반대편 정류장은 '납읍리')에서 납읍로2길을 따라 9분 정도 들어가면 무
성한 숲을 드러낸 금산공원이 모습을 비춘다. 납읍리사무소에 이르면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양
쪽 길이 비슷하게 생겨서 햇갈리기가 쉽다. (이정표도 없음) 여기서는 무조건 서쪽(진행 방향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된다.
현무암 돌담과 귤나무, 마을 가옥이 잘 어우러진 제주도의 전형적인 시골 마을로 귤나무 가지
에 감귤이 달린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띄어 제주도 한복판에 왔음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금산공원은 납읍리의 허파이자 아름다운 뒷동산으로 33,980㎡(약 13,000여 평) 면적에 후박나
무와 생달나무, 종가시나무, 모밀잣밤나무, 동백나무, 식나무, 아왜나무, 자금우, 마삭줄, 송
이 등 200여 종의 식물이 우거진 상록수림(常綠樹林)이다. 다른 말로는 난대림(暖帶林)이라고
도 한다. 제주시 서부에서 평지에 남아있는 유일한 상록수림으로 온난한 기후에 적합한 식물
들이 강인한 협동심을 보이며 1년 내내 삼삼한 모습을 자랑한다.

허나 금산공원은 원래부터 숲동산은 아니었다. 옛날에는 돌만 가득한 돌언덕으로 볼품이 없었
다고 하며, 그 언덕 건너편으로 금악봉(430m)이 훤히 바라보여 마을에 화재가 잦았다고 한다.
그래서 비보풍수(裨補風水)의 일환으로 금악봉이 보이지 않게끔 돌언덕에 나무를 심었고 마을
제사를 지내는 포제단을 담으면서 마을의 성역으로 부상하게 된다. 성역을 품은 숲은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것이 법칙이라, 마을에서는 나무 벌채나 식물 채취를 엄격히 금하여 숲이 마음
놓고 자라게끔 배려했으며, 숲 주위로 돌담을 둘러 속세와 숲의 경계를 분명히 하였다.
처음에는 숲 벌채를 금한다는 뜻으로 금산(禁山)이라 불렸으나 나중에 이름을 순화시켜 비단
뫼를 뜻하는 금산(錦山)으로 한자를 갈았다고 한다.

공원을 덮고 있는 숲은 '납읍리 난대림'이란 이름으로 천연기념물 375호의 지위를 누리고 있
으며(예전에는 천연기념물 182-4호였음) 공원 전체가 국가 천연기념물 보호 구역이라 지정된
탐방로 외에는 접근을 금하고 있다. 아무리 공원 감독이 느슨하다고 해도 자연보호를 위해 탐
방로를 벗어나거나 식물을 괴롭히는 행동, 나뭇잎과 식물을 따는 행위는 절대로 해서는 안된
다.


▲  금산공원 정문 갈림길

원시림과 같은 공원으로 들어서면 길은 3갈래로 갈린다. 넓은 흙길로 된 중앙 숲길은 이곳의
성역인 포제청으로 이어지며, 서쪽 숲길과 동쪽 숲길은 흙길과 나무데크길이 섞여있다. 어느
길로 가든 남쪽에서 모두 만나며, 다시 정문으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공원으로 들어서는 문은
정문 1개 뿐이며, 공원 밖에는 경작지가 펼쳐져 있다. 즉 밭 한복판에 숲이 있는 것이다.


▲  송석대(松石臺)

정문 동쪽(진행 방향 왼쪽)에는 송석대란 높은 대가 있다. 이곳은 정헌 김용징(靜軒 金龍徵)
이 후학을 가르치던 곳으로 1850년대 말에 그의 제자들이 지었다. 구릉지를 다듬어 3개 층으
로 겹돌을 쌓아 터를 다진 다음 반지름 4.5m의 원형 정자를 닦았는데, 현재 정자는 없고 완전
히 개방된 공간으로 있으며 매년 여름마다 애월문학회에서 시낭송회와 출판기념회를 열고 있
어 문학 공간의 기능은 녹슬지 않았다.


▲  인상정(仁庠亭)

송석대 맞은편(정문 서쪽)에는 인상정이라 불리는 공간이 있다. 이곳은 천문에 능했던 현일문
(玄日文)이 공부를 했던 곳으로 1889년 그의 후학들이 구릉지를 다지고 인상정이라 불리는 공
간을 지었다. 송석대처럼 정자가 없는 그냥 열린 공간으로 그 한복판에 오래된 나무가 자리하
여 고품격의 그늘을 선사한다.


▲  난대림 속에 나를 숨기다 (공원 서쪽 숲길)
아무리 따스한 남쪽이라고 해도 동남아나 아프리카가 아닌 이상은 이렇게까지
푸른 잎을 대놓고 드러내며 무성하기가 쉽지가 않은데 이곳은 계절의
변화도 안중에 없는 별천지 같은 곳이다.

▲  밀림처럼 우거진 서쪽 숲길 (1)

▲  밀림처럼 우거진 서쪽 숲길 (2)

통행 편의와 식물 보호를 위해 서쪽 숲길과 동쪽 숲길 일부에 나무데크길을 닦았다.


▲  정낭이 걸쳐진 포제단(酺祭壇) 출입구

금산공원 한복판에는 돌담에 둘러싸인 포제단이 있다. 이곳은 납읍리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는
마을의 성역으로 서쪽에 제주도 스타일의 정낭이 있는 출입구가 있어 그곳으로 들어서면 된다.
허나 제삿날을 제외하면 정낭이 모두 걸쳐져 있어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다행히 정낭이
그리 높지가 않아서 실례를 무릅쓰고 살짝 안으로 발을 들였다.

▲  포제청 건물
제사 때를 제외하고는 늘 적적한 모습이다.

▲  난대림에 둘러싸인 포제단 뜨락
저 끝부분에 3개의 단이 있다.


이곳에서 지내는 제사를 '납읍리 포제','납읍리 마을제'라고 하는데, 남자들이 행하는 유교적
마을제인 포제와 여자들이 하는 무속 마을제인 당굿을 같이 벌이고 있다. 예전에는 음력 정월
초정일(初丁日)에 춘제(春祭)를 지냈고, 7월 초정일에 추제(秋祭)를 지냈으나 20세기 중반 이
후부터는 춘제만 지내고 있다. 그리고 마을에 일이 생겨서 정월 초정일에 제를 지내지 못하는
경우, 그 다음 중정일(中丁日)에 제를 지내는 융통성도 가지고 있다.
포제단으로 들어서면 남쪽(오른쪽)에 포제청이란 기와집이 있다. 이곳은 제를 지내고 준비하
는 건물로 원래는 초가였으나 최근에 기와집으로 손질했다. 북쪽(왼쪽)에는 3개의 조그만 석
단(石壇)이 누워있는데 이들 단은 손님신을 봉안한 포신단(酺神壇), 마을의 수호신을 봉안한
토신단(土神壇), 홍역이나 마마신을 봉안한 서신단(西神壇)이다.
예전에는 포신, 토신, 서신에게 모두 제를 올렸으나 홍역과 마마가 사실상 사라진 상태라 포
신과 토신에게만 제삿밥을 올린다.

이곳 제사는 '납읍리 마을제'란 이름으로 제주도 지방무형문화재 6호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  현무암으로 닦여진 3개의 제단 (서신단, 토신단, 포신단)
제단 앞에는 술이나 향로 등을 두는 조그만 돌이 있고, 단 위에는 위패 역할을
하는 키 작은 돌이 세워져 있다.

▲  금산공원 동쪽 숲길 (1)

▲  금산공원 동쪽 숲길 (2)

▲  주황색 피부를 드러낸 납읍리 감귤

금산공원을 1바퀴 둘러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서쪽 숲길로 들어서 포제청을 찍고 동쪽 숲
길로 나왔으니 공원의 공개된 공간은 모두 본 셈이다. (통제구역은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음)

이렇게 금산공원과의 인연을 마무리 짓고 다음 답사지로 가고자 제주도 간선 291번을 타고 한
림읍으로 나왔다. 이후 내용은 분량상 별도의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 금산공원 소재지 :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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