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4.12 동백꽃에 둘러싸인 전설의 절터, 광양 백계산 옥룡사터 (동백나무숲, 도선대사천년숲길)
  2. 2014.08.05 본인 제작 여행답사기 모음집 (2014년 8월초 기준)
  3. 2012.12.29 부산 도심 속에 숨겨진 아늑한 고색의 절집 ~ 백양산 운수사 (백양산 숲길, 범방동3층석탑)

동백꽃에 둘러싸인 전설의 절터, 광양 백계산 옥룡사터 (동백나무숲, 도선대사천년숲길)

 


' 광양 동백꽃 나들이 (백계산 옥룡사터, 동백나무숲) '

▲  동백숲에 둘러싸인 광양 옥룡사터


 

봄이 겨울 제국(帝國)을 몰아내고 하늘 아래를 파릇파릇 수놓던 4월 첫 무렵에 전남 광양(光陽)
땅을 찾았다.

아침 일찍 부산서부(사상)터미널에서 광양행 직행버스를 탔는데, 광양과 동광양(東光陽)으로 출
근이나 출장, 통학하는 사람들로 만석을 이룬다. 그렇게 자리를 몽땅 채우고 남해고속도로를 질
주해 섬진강휴게소에서 잠시 바퀴를 접고, 동광양을 거쳐 부산 출발 약 2시간 20분 만에 광양터
미널에 이른다.

광양 땅은 나와 지지리도 인연이 없는 곳으로 2001년 이후 10여 년 만에 와본다. 오랫동안 눈길
조차 주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 가득 들지만, 서울과도 거리가 멀고 인연 또한 잘닿지 않으니 나
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래도 이번에 옥룡사터와 동백림을 목표로 왔으니 광양 땅도 서운
함을 어느 정도 잊어 줄 것이라 믿는다.

터미널 바깥 시내버스 정류장(옛 광양역 앞)에서 옥룡 방면 시내버스를 타면 되는데, 마침 옥룡
면 논실로 가는 버스가 1분 뒤에 온다고 정류장 전광판에 뜬다. 읍내에서 추동 방면은 거의 50~
60분 간격으로 다녀 시간표를 따로 확인하지 않고 왔는데, 이처럼 시간이 딱 맞아떨어지니 이보
다 기쁜 것이 없다.
이윽고 논실로 가는 광양시내버스 21-3번이 들어와 활짝 입을 연다. 광양5일장의 영향으로 버스
는 오전부터 노공(老公)들을 가득 태워 만차의 기쁨을 누리며 읍내를 벗어나 옥룡면으로 달린다.

백운산 남쪽에 펼쳐진 옥룡면(玉龍面)의 산하를 가로질러 어느덧 추동에 이른다. 여기서 북쪽으
로 가면 옥룡사터 입구와 백운산자연휴양림이며, 동쪽으로 다리를 건너면 동곡계곡과 백운산(白
雲山)으로 이어진다. 나야 목적지가 옥룡사터이니 북쪽으로 길을 잡는다.


♠  옥룡사 동백나무숲 - 천연기념물 489호

▲  운암사 입구에서 바라본 백계산
(중앙에 보이는 금빛 물체가 운암사 약사여래불)

추동마을에서 북쪽으로 6분 정도 걸으면 운암사 입구이다. 여기서 동북쪽을 보면 금빛을 비추는
커다란 불상이 두 눈을 놀라게 하는데, 바로 그곳에 운암사가 있다. 그곳을 거쳐 동백림과 옥룡
사로 가도 되지만 나의 머리 속에는 운암사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운암사 입구에서 5분 정도 올라가니 옥룡사터 입구이다. 여기서 이정표의 지시로 오른쪽으로 들
어서면 주차장과 해우소(解憂所)가 나오고, 그 뒤로 옥룡사터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나온다. 이
길은 수레가 마음 놓고 절터까지 들어갈 수 있게끔 잘 닦여져 있지만 중간에 볼라드를 설치하여
4발 수레의 통행을 막고 있었다. 어차피 절터까지 거리도 얼마되지 않고, 문화유산 보호 및 동
백림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100번 지당하다.

근래에 둘레길 유행에 따라 주차장에서 옥룡사터를 거쳐 백계산 정상 입구인 금목재까지 이어지
는 산길에 '도선국사 천년숲길(둘레길)'이란 이름을 붙었다. 옥룡사에 딱 어울리도록 말이다.


▲  봄에 완전 물들어진 옥룡면의 산하 (옥룡사터 입구 주변)
고요하고 목가적(牧歌的)인 시골 풍경에 속세에서 오염되고 상처받은 두 안구는
싹 정화되고 마음도 조금씩 평안을 누린다. 봄이 한참 붓질을 하고
지나간 천하는 싱그러운 녹색의 세상이다.

▲  옥룡사터 입구 주차장에서 만난 벚꽃

▲  순백의 아름다움으로 봄에게 보답하는 배꽃의 위엄
광양 땅이 오랜만에 찾은 나에게 보답 차원에서 봄꽃 구경을 시켜주는 모양이다.

▲  옥룡사 동백나무숲 바로 직전 (수레의 통행을 막는 볼라드의 위엄)

주차장에서 별로 급하지 않은 오르막길을 7분 정도 가면 속인(俗人)들의 농가가 끝나면서 푸르
게 우거진 동백나무 숲이 진하게 모습을 드러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혹여 건방진 수레의 발길
을 막고자 길 가운데를 버티고 선 철기둥(볼라드)을 지나면 본격적인 동백나무 숲에 들어서게
된다.


▲  옥룡사 동백나무숲길 (1)
동백나무와 속인들의 경작지가 숲길을 사이에 두고 팽팽히 경계를 이룬다.

▲  옥룡사 동백나무숲길 (2)

▲  옥룡사 동백나무숲길 (3)
이제 완전하게 동백나무 숲에 들어섰다. 친겨울 성향이 강한 동백은 겨울부터
4~5월까지 순홍(純紅)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  옥룡사 동백나무숲길 (4)

▲  옥룡사 동백나무숲길 (5) - 옥룡사터를 코 앞에 둔 지점

옥룡사터를 넓은 바다의 외딴 섬처럼 꽁꽁 둘러싼 옥룡사 동백나무숲은 백계산(白鷄山) 남쪽 자
락에 자리한다. 옥룡사터 주변과 운암사 북쪽까지 펼쳐진 이 숲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동백나
무 군락지로 옥룡사를 세운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땅의 기운이 약한 것을 보완하고자 비보풍수(
裨補風水)의 일환으로 동백을 심어 숲을 조성했다고 전한다.
허나 도선대사 시절만큼 오래된 동백나무가 하나도 남아있지를 않아 그가 과연 조성했는지는 의
문이다. 하지만 이곳을 메운 동백은 100년에서 수백 년 이상 묵은 것들로 초창기 동백들이 계속
후손을 뿌린 것으로 보이며, 계속해서 씨를 주변에 내려 보내 7,000여 그루의 나무가 15만㎡의
장대한 숲을 이루었다. 나무의 높이는 5~6m, 줄기는 20~40cm에 이른다.
남부지방 사찰 동백나무숲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어 '광양 옥룡사 동백나무숲'이란 이름으로
천연기념물 489호
의 지위를 얻었으며, 산림청에서 정한 제7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함께
나누고픈 1,000년의 숲'으로 선정되어 아름다운 공존상(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우리나라 동백숲의 성지(聖地)로 동백이 전성을 누리는 3~4월에는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루어 속
인들의 눈과 마음을 완전히 앗아가 돌려줄 생각을 않는다. 제아무리 어여쁜 미녀라 한들 순홍의
동백 앞에서는 두 다리 달린 동물에 불과할 것이다.


▲  옥룡사터 샘터

동백나무 숲을 지나면 옥룡사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 절터 밑에는 약수터가 있어 이곳을 찾은
속인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준다. 백계산이 베푼 약수로 네모난 석조(石槽)에는 언제나 물이 넘쳐
흐르는데, 가뭄 때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이 샘터는 옛 옥룡사의 샘터로 근래에 정비되었으며, 옛날 광양고을의 사또가 즐겨 마셨다고 전
한다. 그만큼 물맛이 좋다는 뜻인데, 동백의 향기나 기름이 첨가되서 그런 것일까? 허나 마셔보
니 딱히 다른 맛은 없어 보이며, 옛날에는 약수에서 숯가루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  연꽃들의 와신상담(臥薪嘗膽)의 현장 - 옥룡사터 연못
동백의 향연이 끝나면 연꽃이 그 자리를 대신해 9월까지 화려한 연(蓮)의 향연을 펼친다.
그 이후에는 늦가을의 향연이 펼쳐지고, 그것이 끝나면 바로 동백의 시대가 열린다.
옥룡사터는 1년 내내 대자연이 베푸는 향연(饗宴)의 장인 것이다.


♠  도선국사가 창건하여 머물던 유서 깊은 고찰, 지금은 동백나무 속에
터만 남아 옛날의 영화를 아련히 들려주는 백계산 옥룡사(玉龍寺)
- 사적 407호

광양의 듬직한 진산(鎭山)인 백운산(1228m), 그의 남쪽을 이루고 있는 백계산(505m) 서남쪽 자
락에 동백숲에 감싸인 옥룡사터가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 옥룡사는 864년에 도선국사(827~898)
가 창건한 것으로 그가 세운 것이 100% 확실한 천하에 몇 안되는 절로 의미가 대단한 곳이다.

그는 동리산 태안사(泰安寺, ☞ 관련글 보러가기)를 찾아가 혜철대사(惠徹大師)에게 선종(禪宗)
을 배웠고, 운봉산(雲峯山)과 태백산(太白山)에 들어가 불도를 닦다가 백계산에 들어오게 되었
다. 이곳에 오니 풍경이 그야말로 그윽한지라 '지네가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형국이요,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극찬하며 여기서 평생 머물기로 작정하고 864년에 옥룡사를 짓고 정
착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옥룡자(玉龍子)라 칭하며 절 이름도 옥룡사라 했는데, 여기서 34년을
머물다가 898년 71세의 나이로 입적했다.
그가 열반에 들자 신라 효공왕(孝恭王)은 요공선사(了空禪師)란 시호를 내렸고, 고려 태조(太祖
) 왕건의 스승이었던 인연 탓에 숙종(肅宗, 재위 1095~1105)은 대선사(大禪師)에 왕사(王師)의
호를 추가했다. 그리고 인종(仁宗, 재위 1122~1146)은 선각국사(先覺國師)로 추봉(追封)했으며,
의종(毅宗, 재위 1146~1170)은 그의 비석까지 세웠다.

도선이 이곳에 들어왔을 때 절터에는 연못이 있었는데, 그 안에 9마리(또는 2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 절을 세우고자 하니 다른 곳으로 가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용 8마리는 <2
마리 전설에서는 황룡(黃龍)이 응해줌> 별말없이 응하려고 했으나 백룡(白龍)이 크게 반발하며
대들자 열받은 도선이 활을 쏘아 그의 왼쪽 눈을 맞추니 (또는 지팡이로 두들겨 팼다고 함) 백
룡은 인근 구룡소(九龍沼)로 도망쳤다. (다른 전설로는 용 9마리가 이곳에 머물며 인근 백성들
을 괴롭히자 도선이 그들을 몰아냈다고 함)
이들 전설을 통해 옥룡사 자리에는 토착신앙이나 다른 종교가 들어와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걸
도선이 들어와 그들과 일종의 싸움을 벌여 그 자리를 차지하거나 그들을 설득하여 불교의 일원
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백룡으로 상징되는 존재가 비협조로 일관하자 일종의 폭력으로 그를 강제
로 추방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걸 적당히 전설로 다듬어서 창건설화로 삼은 것이다.

용을 몰아낸 도선은 연못을 메우고자 속세에 안질(眼疾)을 널리 퍼뜨렸다. 그리고 연못에 숯 한
덩이를 넣고 그 물로 눈을 씻으면 낫는다는 이야기를 퍼뜨리자 사람들이 몰려와 숯을 넣고 눈을
씻으면서 금세 연못이 메워졌다고 하며, 바로 그 자리에 옥룡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 전설은 당시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던 신라 후기 상황을 이용해 창건 시주를 하면 복을 받는다
는 식으로 말을 퍼뜨려 얻은 재원으로 창건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숯을 넣어 눈을 씻는다
는 것은 시주금이나 집을 지을 때 땅 속에 묻는 숯을 제공하면 도선이 법문을 주거나, 예불 관
련 의식을 제공하거나, 절을 하고 소망을 빌었다는 뜻으로 보면 될 듯 싶다. 참고로 예전 옥룡
사 샘터에서 숯가루가 종종 섞여 나왔다고 한다.

그렇게 옥룡사를 세운 도선은 차밭을 일구어 차(茶)를 참선 수행에 사용토록 했고, 절터의 기운
이 약한 것을 채워주고자 동백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했다고 한다. 또한 그가 이곳에 머물며 명
성을 떨치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제자 되기를 청했으며, 이때 '옥룡사파(玉龍寺派)'란 지파(
支派)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사람들이 얼마나 몰려왔는지 그들을 수용하고자 동백림 동쪽에 별
도로 운암사를 세웠다고 한다.

898년 도선이 입적하자 부도와 탑비를 만들어 모셨는데, 그의 제자인 경보대사(慶甫大師, 동진
대사)가 도선의 법맥(法脈)을 이어 옥룡사를 지켰고 그 또한 이곳에 뼈를 묻었다.
도선은 죽음에 임할 때 '백(白)씨 성을 가진 애꾸눈 중을 들여서는 안된다' 유언을 남겼다고 한
다. 19세기까지 그런데로 법등(法燈)을 유지하던 옥룡사는 1878년에 화재를 만나 완전히 망하고
말았는데, 이는 그 당시 백암(白庵)이란 애꾸눈 승려가 들어와 그리 되었다고 한다.

절이 망할 때 용케도 살아남았던 도선국사와 경보대사의 부도와 비석도 1920년을 전후하여 장대
한 세월의 태클과 무지한 이들의 테러로 모두 파괴되어 넘어졌으며, 비석의 내용마저 크게 훼손
되어 내용을 알기가 어려워졌다. (조선금석총람에 다행히 비문의 내용이 있음)

이후 순천대 박물관에서 절터 일대를 조사하면서 도선과 경보대사의 부도 자리와 비석 자리, 건
물터, 석탑의 부재(部材), 깨진 비석 조각 90여 점을 발견했으며, 도선의 것으로 보이는 유골과
그 유골을 안장한 것으로 보이는 석관(石棺)이 발견되어 신라 후기 고승(高僧)의 장례 풍습을
알게 해주었다.
발굴을 마치고 절터에 풀을 입혀 산듯하게 정비했으며, 약수터 동쪽에 문화유산해설사가 머무는
안내소를 만들어 필요할 때는 그의 해설을 들을 수 있다. 현재 절터에는 건물터와 석탑의 부재
등이 남아있고, 운암사로 넘어가는 길목에 근래에 복원된 도선국사와 경보대사의 부도/탑비가
있다. 또한 그 남쪽에는 운암사가 있어 옥룡사터를 지키고 있다.

절은 없고, 전설과 역사, 황량한 절터만 남아 속인들의 상상을 무한대로 살찌우는 옥룡사터, 동
백의 그윽한 향기가 절터의 허전함을 보듬어주며, 내가 가본 수많은 절터 가운데서도 꽃밭에 둘
러싸인 천하 제일의 동백꽃 명소이자 행복한 자리가 아닐까 싶다.

※ 옥룡사터, 옥룡사 동백나무숲 찾아가기 (2015년 4월 기준)
① 광양까지
*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광양행 고속버스가 1일 7~8회 떠난다.
* 동서울터미널에서 광양행 고속버스가 60~90분 간격으로 떠난다.
* 부산(사상)에서 광양행 직행버스가 40~90분 간격으로 떠난다.
* 인천, 부천, 수원, 성남, 안산에서 광양행 직행버스 이용
* 대전(복합), 대구(서부), 광주, 진주, 마산, 여수에서 광양행 직행버스 이용
* 부전역, 창원역, 마산역, 진주역, 광주송정역에서 경전선 열차를 타고 광양역 하차, 운행횟수
  가 별로 없으며(편도 1일 4회 이내) 역에서 광양터미널까지 버스나 택시로 나와야 된다.
* 순천시내(삼산동, 순천대, 순천터미널, 순천역)에서 77, 777번 시내버스를 타고 광양터미널
  종점 하차
② 현지 교통
* 광양터미널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21번 시내버스를 타고 옥룡사 입구 하차 (1일 5회 운행) 옥
  룡사터까지 도보 15분 / 21-2, 21-3번 버스를 타고 추동 하차 (1일 13회 운행), 추동에서 옥
  룡사터까지 도보 25분
③ 승용차 (옥룡사터와 운암사에 주차장 있음)
* 남해고속도로 → 광양나들목을 나와서 광양읍내로 우회전 → 우시장4거리에서 우회전 → 옥룡
  입구에서 우회전 → 옥룡면사무소 → 추동에서 직진 → 옥룡사터 또는 운암사

* 도선국사 천년숲길(둘레길)은 옥룡사터 주차장에서 옥룡사터를 거쳐 백계산 정상과 금목재를
  지나 백운산자연휴양림에 이르는 약 7km의 산길이다. (백계산 정상은 둘레길 범위 아님)
* 옥룡사터 소재지 - 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304-1 (백계1길 71 ☎ 061-762-3578)

▲  복원된 도선국사, 경보대사 탑/탑비

▲  언덕 너머로 보이는 운암사 약사여래불


♠  전설의 옥룡사터 둘러보기

▲  잡초에 묻힌 옥룡사터 앞부분

남쪽을 바라보며 자리한 옥룡사터는 제법 넓은 규모이다. 찬란했던 절이 화마(火魔)의 좋은 먹
이가 되어 끔찍하게 유린당했던 1878년의 대혼돈을 간직한 절터에는 받쳐들 대상을 상실한 채,
막연히 하늘을 이고 있는 주춧돌과 석축이 고개를 내밀며 세월을 원망한다. 봄의 기운을 받아
성장한 잡초들은 옥룡사의 그 아픔을 덮고자 절터를 푸르게 수놓으며 그 허전함을 약간이나마
달래준다.

절터는 남쪽이 낮고 북쪽이 높은 형태로 남쪽에는 천왕문이나 중요성이 낮은 건물이 포진해 있
었을 것이고, 중간 부분에 법당(法堂)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쪽에 삼성각(三聖閣)이나
도선국사와 경보대사의 영정을 봉안한 일종의 영각(影閣)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터
만 앙상하게 남았을 뿐, 건물터의 구체적인 정체는 밝혀지지 못했다. 그저 상상 속에서 '이곳은
이 런 건물이 있었고, 이렇게 생겼겠구나?' 스케치 할 수 밖에는 없다. 그 가운데 정답은 있겠
지만 어느 누구도 100% 정답은 알 수 없다. 그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라~~!


▲  절터 뒤쪽 석축 - 절터와 동백숲의 경계 역할을 하고 있다.

▲  절터 한복판에 있는 이것은 무엇인고?

예전 시골에서 김치나 숙성을 요하는 음식을 담던 공간과 비슷하게 생겼다. 허나 사람들이 떠나
간 절터에서 그런 공간은 전혀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위한 공간일까? 옛날
절터 한가운데에 있었다는 샘터의 흔적이 아닐까 여겨진다. (절터 남쪽에 있는 샘터의 조상으로
여겨짐) 이럴줄 알았으면 문화유산 해설사에게 물어보는 건데, 그만 깜박했네..


▲  붉은 주춧돌이 3열 종대를 이룬 건물터 - 무슨 건물이 있었을까?

▲  붉은 주춧돌의 위엄 - 주춧돌의 피부가 유난히 붉다. 저들은
1878년 이곳에서 일어난 기억 밖으로 꺼내기 조차 껄끄러운
대재앙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  유난히 넓은 건물터 - 법당과 그 부속 건물이 있던 자리는 아닐까?

▲  절터에서 가장 높은 부분 - 무슨 건물이 있었을까?
나한테만 살짝 이야기해주면 안될까?

▲  절터에 버려진 기와 조각들 - 기와조각을 맞추며 잃어버린
옥룡사의 모습 맞추기 퍼즐을 해보고 싶다.

▲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본 옥룡사터 전경
옥룡사터가 동백숲에 단단히 묻혀 있어 속세에서는 절터의 속살이 보이지 않는다.

▲  절터에서 수습된 석탑 부재와 여러 석재(石材)들

옛 석탑의 일부를 이루던 돌(지붕돌과 탑신 부분)과 건물 주춧돌 등으로 쓰인 석재를 이곳에 수
습했다. 절이 그리 곱지 않게 파괴되었음을 알리는 증인들로 절이 파괴되고 절터에 대한 도굴과
속인들의 석재 절도 행위, 장대한 세월과 자연의 괴롭힘으로 형편없이 뜯겨져 초췌한 모습이 되
고 말았다. 보금자리를 잃은 저들을 도와줄 존재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세상의 버림을 받은 그들은 이곳에 모여 왕년의 시절을 그리워한다. 왼쪽에 세워진 돌기둥은 석
련(石蓮)이나 그릇 형태의 석물을 받치던 기둥으로 여겨지며, 조금의 힘만 가해도 흔들거린다.
그러니 괜히 때려 눕히지 말기 바란다.


▲  가까이서 본 석탑의 부재들
그 모습이 마치 파괴된 지 수백 년이 넘은 탑 같다.

▲  절터에서 수습된 기와조각들이 한데 모여 그들만의 조그만 세상을 이루었다.

▲  절터 동쪽 부분

▲  동쪽 부분에서 바라본 절터 전경
속세를 바라보며 자리했을 옥룡사의 모습은 자못 웅장했을 것이다.
지금은 대머리처럼 빈 자리만 요란하니 그 실감이 적을 뿐이다.

▲  절터 동쪽에 있는 토굴

절터 동쪽의 동백림을 보면 동백림 밑에 조그만 토굴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암석을 깨고 뚫은
토굴은 완전 몸을 반으로 접고 들어가야 될 정도로 입구가 좁다. 내가 들어가다가는 굴이 무너
질 것 같아서 몸도 사릴 겸 바깥에서 내부를 살폈으나, 내부가 어두워 보이는 건 거의 없다. 그
런데 절터에 왠 생뚱 맞게 굴이 있는 것일까? 설마 북한이나 왜열도 애들이 여기까지 굴을 파고
내려온 것은 아니겠지?
언제 생긴 굴인지는 모르겠으나 옥룡사 시절부터 있었다면 식량을 보관하던 창고나 독한 수행을
위한 공간이 아닐까 싶다. 몇몇 고승들은 절 부근에 굴을 파고 들어가 수행하면서 1주 정도에 1
번씩 음식을 들이는 것 외에는 바깥에서 굴을 막게 했다. 오로지 수행에 전념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수행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판사인 효봉(曉峰, 1888~1966)이 있다.


♠  동백나무숲 산책

▲  옥룡사 동백숲 서쪽 산책로

옥룡사터에서 동백숲 산책로는 2갈래가 있다. 연못을 거쳐 동백숲 서쪽으로 가는 산책로는 나무
로 신작로를 내어 경사도 완만하다. 허나 5분 정도 가면 철조망 앞에서 길은 끊어지고 만다. 마
치 휴전선 철조망처럼 말이다. 철조망 너머는 어느 개인의 땅으로 그 구역에는 동백나무는 없고
그냥 숲과 초원만 있다. 예전에는 동백숲까지도 개인 소유였으나 이제는 광양시청에서 관리하며,
관람객들은 여기서 길을 180도 돌아 다시 옥룡사터로 나와야 된다. 굳이 철조망을 넘어봐야 볼
것도 없으니 괜히 무리하지 않도록 한다.


▲  순홍의 아름다움으로 천하를 매혹시킨 동백꽃의 위엄

▲  동백숲 동쪽 산책로 고개

옥룡사터에서 오르막으로 된 동쪽 산책로(운암사 방면)를 오르면 바로 고개 중턱이다. 길은 여
기서 2갈래로 갈리는데, 동쪽 내리막으로 가면 운암사이며, 왼쪽으로 가면 도선국사 천년숲길로
백계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정상까지는 2.7km, 금목재는 3.7km이다. 나는 절터와 동백숲을 보러
온 터라 등산은 하지 않았다.

고개 갈림길에는 동백나무 밑에 쉼터를 만들어 잠시 두 다리를 쉬어가게 배려했다. 쉼터에는 고
개가 꺾여 떨어진 동백꽃이 정신없이 흩어져 있어 한폭의 멋드러진 수채화를 자아낸다.


▲  고개에서 바라본 천하 - 삼삼한 동백숲 너머로 하늘과 천하가 보인다.

▲  복원된 도선국사탑/탑비와 경보대사 탑/탑비

고개에서 동백숲을 가로질러 운암사 방면으로 내려가면 부도 2기와 비석 2기를 만나게 된다. 처
음에는 근래에 지어진 운암사 관련 승려의 탑/탑비로 생각했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그게 아니었
다. 바로 옥룡사를 세우고 꾸리던 도선국사와 경보대사의 복원된 탑/탑비였다.

도선국사와 경보대사의 탑/탑비는 1920년대에 처참하게 파괴되어 쓰러졌으며, 탑비의 비문(碑文)
도 훼손되었다. 다행히 1919년 왜정(倭政)에서 발간한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에 비문의 내
용이 있어 도선과 경보의 인생을 조금이나마 알려준다. 이후 순천대에서 절터를 조사할 때 탑과
탑비의 조각을 수습했고, 도선/경보의 유골을 안장한 것으로 보이는 석관이 발견되어 화재가 되
기도 했다.
지금의 탑과 탑비는 옥룡사터를 정비하면서 신라 후기와 고려 초기의 부도/비석 양식에 맞게 복
원된 것이라 원래 모습과는 좀 다를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나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  선각대사 도선 징성혜등탑(澄聖慧燈塔)

▲  동진대사(洞眞大師) 경보 보운탑(寶雲塔)

도선국사야 워낙 유명한 인물이니 따로 설명은 필요없을 듯 싶다. 그가 898년에 세상을 뜨자 효
공왕은 요공선사(了空禪師)라는 시호와 함께 징성혜등(澄聖慧燈)이란 탑 이름을 내렸으며, 탑비
는 고려 의종 때 세워졌다.

경보대사(869~948)는 도선과 고향이 같은 전남 영암(靈岩)에서 알찬(閼粲) 김익량(金益良)의 아
들로 태어났다. 19세에 팔공산 부인사(符仁寺)로 출가했으며, 옥룡사에 들어와 도선의 1등 제자
가 되어 선율(禪律)을 익혔다. 화엄사(華嚴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아 정식 승려가 되었고
보령 성주사(聖住寺)와 강릉 굴산사(掘山寺)에서 선종(禪宗)을 배웠다.

892년 당나라로 건너가 이름 있는 절을 돌아다니다가 무주<撫州, 강서성(江西省)> 소산에서 조
동종(曹洞宗)의 광인(匡仁)을 만났다. 광인은 '가자미 바다에서 온 용'이라고 하면서 선법(禪法
)을 전했다. 이후 광인의 소개로 강서 지방의 노선(老善)을 찾아갔는데, 그가 '흰구름에 가리어
길이 막혔네' 운을 띄웠다. 그러자 경보가 '본디 푸른 하늘 길에 흰구름이 어찌 있나?' 답을 하
니 노선이 감동해 곁에 있게 해주었다.

거기서 얼마 동안 있다가 노선의 만류를 뿌리치고 당나라 전국을 돌아다녔으며, 921년 귀국하여
임피군(臨陂郡, 전북 군산)에 발을 내리니 후백제(後百濟)의 군주 견훤(甄萱)이 남복선원(南福
禪院)에 머물게 하면서 스승으로 예우했다. 이후 다시 옥룡사에 들어왔다가 936년 견훤이 숨을
거두자 태조 왕건(王建)이 왕사(王師)로 삼았다.

943년 태조가 붕어(崩御)하자 혜종(惠宗)과 정종(定宗)의 왕사가 되었으며, 정종의 명으로 개경
(開京)에 머물다가 옥룡사로 다시 내려와 상원(上院)에 머물렀다. 948년 열반에 임하면서 제자
들에게 '옷차림을 바로 하고, 음식을 평등히 하고, 선열(禪悅)로써 맛을 삼아라'는 임종게(臨終
偈)를 내리며, '탑과 비석을 세우지 말아라' 당부하고 눈을 감으니 그때 나이 79세 법랍(法臘)
62세였다.

그가 입적하자 정종은 옥룡선화상(玉龍禪和尙)이라 부르고, 동진대사란 시호와 보운(寶雲)이란
탑 이름을 내렸다. 비석은 958년 김정언(金廷彦)이 짓고, 비문은 제자인 현가(玄可)가 썼으며,
계묵(繼默)이 새겨서 옥룡사에 세웠다.

나말여초 시절에 크게 활약한 그들의 탑/비가 잘 살아있었다면 정말 국보급에 대접을 받았을 것
이고, 우리나라 미술사/역사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텐데, 그 점이 참 아쉽다. 그래도
그 유명한 도선국사가 고이 잠든 승탑(僧塔)을 보니 유명인사를 만난 듯 감개가 무량하다.


▲  운암사에서 도선/경보대사 탑으로 인도하는 동백숲길


♠  동백나무숲 동쪽 끝에 자리한 옥룡사의 이웃 사찰
백계산 운암사(雲岩寺)

▲  1칸 크기의 단촐한 운암사 산신각(山神閣)

도선/경보대사 탑에서 동쪽으로 3분 정도 내려가면 새집 냄새가 물씬 진동하는 운암사가 나온다.
옥룡사 동백나무숲은 운암사에서 더 이상 가지를 뻗지 못하고 길을 멈추는데, 여기가 바로 동백
숲의 동남쪽 한계선이다. 

운암사는 겉으로 보면 아주 최근에 지어진 역사도 거의 없는 절집으로 보인다. 나도 그렇게 생
각을 했으니까. 게다가 절을 알리는 안내문도 없으니 그런 생각을 더욱 키우게 한다. 하지만 겉
보기와는 달리 옥룡사와 관련이 있는 오래된 절로 도선국사가 옥룡사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수용
하고자 865년(옥룡사는 864년에 창건)에 창건했다고 한다. 옥룡사와 동백숲을 사이에 두고 이웃
한 절로 도선은 두 절에 머물며 제자를 양성했으며, 그 이후 쭉 옥룡사와 생사고락을 같이 했을
것이다. (옥룡사의 부속 사찰로 생각됨)

17세기까지 법등을 이어왔으나 차차 기울다가 18세기(또는 1878년)에 망하고 말았다. 망한 이유
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리고 100여 년 뒤에 옥룡사마저 망하니, 도선이 세운 두 절은
100년 간격(또는 비슷한 시기)으로 사라져버렸다.

옥룡사와 달리 터도 희미하게 남아있던 것을 1969년에 승려 박득수가 이 자리를 매입해 절을 짓
고 운암사라 했다. 한때 옥룡사 재건을 위해 절터에 조그만 건물도 들어섰으나 운암사의 탄생으
로 말미암아 그곳에 모두 통합되었다. 어차피 동백림에 있는 절이고 역사도 거의 같으니 옥룡사
까지 무리하면서 지을 필요는 없다. 운암사가 옛 운암사와 옥룡사의 뒤를 이어 지금의 자리를
지키면 그만인 것이다.

다시 태어난 운암사는 옥룡사와 동백숲 덕분인지 짧은 시간에 벌써 많은 건물을 지어올렸다. 특
히 2007년에 완성된 황동(黃銅) 약사여래입상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로 무려 40m에 이르며, 속리
산 법주사(法住寺)의 청동미륵불보다 13m가 높다. 허나 아래 10m는 약사전(藥師殿)으로 쓰이고
있어 실질적인 불상 높이는 30m이다. 그래도 법주사보다는 키다리이다. 황동이 자그만치 75톤이
소요되었다고 하며, 도선국사의 도선비기(道詵秘記)에 따라 만들었다고 한다. (도선비기의 내용
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경내에는 대웅전과 조사전, 약사전, 삼성각, 명부전, 요사 등 8~9동의 건물이 있으며, 고색(古
色)의 내음은 전혀 없다. 소장 문화유산은 하나도 없으며, 건물도 모두 새것이라 새집 냄새가
진동한다. 그리고 하나같이 규모가 장대하고 돈을 꽤나 들인 듯, 장엄하고 화려하다.


▲  산신각 산신탱 - 산신(山神)과 호랑이, 동자 2명 등
산신 가족의 단란함이 엿보인다.

▲  조사전(祖師殿) - 운암사를 세운
도선국사의 진영(眞影)이 봉안되어 있다.

▲  산신과 칠성(七星), 독성(獨聖)이 봉안된
삼성각

▲  명부(冥府, 저승)의 식구들이 봉안된
명부전(冥府殿)

▲  똥배와 축쳐진 귀가 매력인
포대화상(布袋和尙)


▲  운암사의 법당인 대웅전(大雄殿)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석가3존불과 문수,보현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  3불 2보살이 봉안된 대웅전 불단(佛壇)

▲  정면에서 본 약사전과 약사여래불

▲  약사여래불 주변

운암사의 명물인 황동 약사여래불은 2006년 여름에 짓기 시작하여 2007년 5월에 완성을 보았다.
이 땅에서 가장 큰 불상으로 무려 30m의 장대한 키를 자랑하며, 불상 밑에는 약사전이 있는데,
그 건물 높이가 10m로 일종의 대좌(臺座) 역할을 한다. 그 높이까지 합치면 40m에 이르는 거구
이다.

불상이 큰 것까지는 좋은데, 너무 높이에 연연하다보니 약사불의 표정이 영 어색하다. 보는 이
의 눈에 따라 얼마든 달리 보일 수 있겠으나 그 흔한 미소도 없고, 표정도 그리 밝아보이진 않
는다. 게다가 지나치게 크다보니 그리 정감도 가지 않고, 그를 올려다보느라 애궂은 고개만 아
프다. 그냥 외형만 중시하는 그런 분위기인 것이다. 물론 한참의 시간이 지나면 21세기 초반 불
상 양식을 잘보여준다며 지정문화재의 지위를 누릴 것이다.

동쪽을 바라보고 선 그의 왼손에는 그의 필수품인 약합이 들려져 있고, 오른손은 시무외인 비슷
한 수인(手印)을 하고 있다.

▲  절 남쪽 언덕 너머로 본 약사여래불
마치 언덕 위에 서 있는 듯 시각을
혼란시킨다.

▲  코끼리를 탄 관음보살상
약사전 앞에 2기의 코끼리를 탄 관음보살상이
있다. 이들도 장대한 규모인건 마찬가지~~
불교가 인도에서 태어난 존재이다 보니 자연히
코끼리가 많이 등장한다. (부처의 법을 상징)


▲  약사전(藥師殿)에 봉안된 약사여래불과 후불탱화

▲  운암사 연못

경내 남쪽이자 약사전 동쪽에는 동그란 모습의 큰 연못이 기를 질리게 한다. 처음 그를 봤을 때
는 무슨 수영장인 줄 알았다. 절에 왠 수영장 같은 것이 있나 싶었는데, 물 속을 살펴보니 물이
잔뜩 오른 물고기가 꼬리를 흔들며 순찰하는 모습을 보고 비로소 연못인 줄 알았다.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이 아닌 완전 새로운 형태의 연못으로 그 동쪽에 기도를 하고 물고
기를 방생(放生)하는 공간이 있으며, 연못 주위로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자 철난간을 빙 둘러 삼
엄한 분위기까지 자아낸다. 연못을 짓더라도 전통 양식에 맞춰 정겹게 만들었으면 좋으련만 지
나치게 옥의 티를 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  연못을 순찰하는 물고기의 위엄
다양한 피부의 잉어들이 회, 매운탕 생각을 간절하게 만든다.
오늘 저녁은 정말 매운탕 1그릇 먹어야겠다.

▲  옥룡사터, 운암사를 뒤로 하며~~

운암사를 둘러보고 약사전에 들어가 3배를 올리며 일종의 신고식을 마친 다음, 절을 나섰다. 이
제 내가 있어야 될 아비규환의 속세(俗世)로 돌아가야 될 시간이 온 것이다. 옥룡사터와 동백나
무 숲, 거기에 덤으로 운암사까지 둘러보고 나오니 어언 3시간의 시간이 흘렀다. 제자리로 돌아
가야 될 시간이 이르면 왜 이렇게 한숨이 나오고 다리에 힘이 빠지는지 모르겠다.
이제 4월이건만 여름의 제국이 벌써 도래했는지 날씨가 초여름 수준이다. 그래서 동백숲 적당한
곳에 자리 피고 한숨 자고 갈려고 했으나 그런 여유까지는 부리지 못했다.

추동으로 나와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20분 뒤에 있다고 한다. 마땅히 쉴 공간도 없어서 버스정
류장 옆인 보건지소 부근에 머물며 차를 기다리는데, 무려 15분씩이나 늦게 온다. 장날 때문에
늦은 것이라고 한다. 그 버스를 타고 광양읍내로 나와 순대국으로 점심을 먹고 광양터미널에서
순천시내버스 77번을 타고 순천시내로 이동했다.

순천(順天)도 정말 오랜만에 오는 곳인데, 어디로 갈까 궁리를 하다가 날씨가 시간 개념도 없이
덥다보니 지치기도 하고, 전날 잠을 적게 자서 피곤도 하고, 시간도 애매하고, 거기에 오늘 너
무 많은 곳을 둘러보면 탈이 날 것 같아서 내키지는 않지만 일찍 철수하기로 했다. 그래서 순천
역으로 이동하여 용산(龍山)행 무궁화호를 타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렇게 하여 광양 동백꽃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 까페와 블로그에 올린 글은 공개일 기준으로 딱 8일까지만 수정/보완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집니다.
 * 본글의 내용과 사진을 퍼갈 때는 반드시 그 출처와 원작자 모두를 표시하시기 바랍니다.
   (상업적 이용은 댓글이나 메일, 전화연락 등으로 반드시 상의바람, 무단 사용은 안됨)
 * 글씨 크기는 까페와 블로그는 10~12pt, 원본은 12pt입니다.(12pt기준으로 작성됨)
 * 오타나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즉시 댓글이나 쪽지 등으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외부링크 문제로 사진이 안뜨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모니터와 컴퓨터 사양, 사용 기기(컴퓨터와 노트북, 스마트폰 등)에 따라 글이 조금
   이상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 공개일 - 2015년 4월 3일부터
 * 글을 보셨으면 그냥 가지들 마시구 공감이나 추천을 흔쾌히 눌러주시거나 댓글 몇 자라도
   달아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Copyright (C) 2015 Pak Yung(박융), All rights reserved

본인 제작 여행답사기 모음집 (2014년 8월초 기준)

 

서울 - 56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

글 공개시기

링크

1

은평구 진관사, 삼천사, 북한산성 2003, 5 2003, 7

☞ 글보러 가기

2

성북구 성북동(간송미술관 / 심우장 / 성락원 / 선잠단터) 2003, 10 2003, 11

☞ 글보러 가기

3

관악구

관악산(낙성대유지 / 낙성대 / 봉천동 마애불) 2004, 2 2004, 3

☞ 글보러 가기

4 성북구 성북동(간송미술관 / 선잠단터) 2004, 10 2005, 1

☞ 글보러 가기

5 종로구 북악산 백석동천 2005, 5 2005, 9

☞ 글보러 가기

6 종로구 경복궁, 인사동 2006, 1 2006, 1

☞ 글보러 가기

7 은평구 숙용심씨 묘표, 영산군 묘역 2006, 2 2006, 5

☞ 글보러 가기

8 중구 덕수궁 2006, 3 2006, 7

☞ 글보러 가기

9

중구
종로구

서울시립미술관, 정동교회, 옛 러시아공사관터,
인사동

2006, 3 2006, 7

☞ 글보러 가기

10 종로구 창경궁 (1) 2006, 4 2006, 10

☞ 글보러 가기

11 종로구 창경궁 (2) 2006, 4 2006, 10

☞ 글보러 가기

12 강남구 봉은사 1 (사월초파일) 2006, 5 2007, 5

☞ 글보러 가기

13 강남구 봉은사 2 (사월초파일) 2006, 5 2007, 5

☞ 글보러 가기

14

종로구
서대문구

세검정, 대원군별장, 홍지문
보도각백불

2006, 8 2007, 8

☞ 글보러 가기

15

종로구

북한산 금선사

2008, 4 2008, 7

☞ 글보러 가기

16

금천구

호암산 호압사

2008, 4 2008, 11

☞ 글보러 가기

17

금천구

호암산 (호압사, 석구상, 한우물, 호암산성) 2009, 1 2009, 3

☞ 글보러 가기

18

종로구

선희궁터, 청와대분수대, 청와대앞길,
경복궁신무문, 인사동

2008, 11 2009, 4

☞ 글보러 가기

19

강남구

대모산 불국사 (사월초파일)

2008, 5 2009, 5

☞ 글보러 가기

20

은평구

북한산 삼천사 (사월초파일)

2008, 5 2009, 5

☞ 글보러 가기

21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이종석 별장

2008, 10 2009, 6

☞ 글보러 가기

22

노원구 수락산 학림사 2009, 4 2009, 8 ☞ 글보러 가기

23

종로구 북악산 백석동천 2008, 11 2009, 12 ☞ 글보러 가기

24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 2008, 5 2010, 4 ☞ 글보러 가기

25

은평구 태화산 수국사 2009, 5 2010, 7 ☞ 글보러 가기

26

종로구 부암동 뒷골마을, 북악산길, 창의문 2010, 1 2011, 3 ☞ 글보러 가기

27

관악구

관악산 관음사, 효민공이경직묘역, 사당동백제요지,
구벨기에공사관

2009, 3 2011, 4 ☞ 글보러 가기

28

성북구

흥천사

2010, 5 2011, 5 ☞ 글보러 가기

29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2010, 5 2011, 5 ☞ 글보러 가기

30

종로구

가회박물관, 삼청동(북촌), 인사동

2009, 8 2011, 9 ☞ 글보러 가기

31

성북구

성북동 삼청각, 홍련사, 북악산

2010, 5 2011, 10 ☞ 글보러 가기

32

도봉구

방학동 은행나무, 원당샘, 양효안맹담/정의공주묘
목서흠묘역

2009, 10 2011, 12

☞ 글보러 가기

33

종로구

북악산 백석동천 2010, 1 2012, 2 ☞ 글보러 가기

34

종로구

장의사지당간지주, 세검정, 석파정별당, 홍지문

2010, 1 2012, 2 ☞ 글보러 가기

35

강서구

구암공원(광주바위), 허가바위, 허준박물관

2010, 3 2012, 3 ☞ 글보러 가기

36

노원구

불암산 학도암, 이윤탁한글영비

2010, 4 2012, 4 ☞ 글보러 가기
37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2011, 5 2012, 5 ☞ 글보러 가기
38

동작구

상도동 사자암

2011, 5 2012, 5 ☞ 글보러 가기
39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창빈안씨묘역, 호국지장사)

2010, 6 2012, 6 ☞ 글보러 가기
40

종로구

북악산 백석동천(백사골)

2009, 10 2012, 8 ☞ 글보러 가기
41

성북구

북악산 북악하늘길(김신조루트), 북악산길

2011, 5 2012, 9 ☞ 글보러 가기
42

성북구

성북동 심우장, 최순우옛집, 선잠단터

2010, 5 2012, 10 ☞ 글보러 가기
43

종로구

북촌문화센터, 관상감관천대, 계동길, 창덕궁길,
요금문, 고희동가옥, 백흥범가옥, 빨래터

2011, 7 2013, 1 ☞ 글보러 가기
44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 2012, 5 2013, 4 ☞ 글보러 가기
45 종로구

석파정별당(석파랑), 부침바위터, 무계정사터,
현진건집터, 청계동천, 반계윤웅렬별장

2011, 11 2013, 4

☞ 글보러 가기

46

종로구

재동백송, 재동초교, 백인제가옥, 북촌3경 일대,
정독도서관(서울교육박물관), 안국동 윤보선가

2011, 9 2013, 5

☞ 글보러 가기

47

강북구

북한산 본원정사

2012, 5 2013, 5

☞ 글보러 가기

48

성북구

정릉동 경국사

2012, 5 2013, 5

☞ 글보러 가기

49

종로구

북악산 백사실(백석동천) 2012, 7 2013, 7

☞ 글보러 가기

50

도봉구

도봉산 (자운봉, 포대능선, 만월암, 도봉서원,
광륜사)

2012, 5 2013, 10

☞ 글보러 가기

51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

2012, 10 2013, 10

☞ 글보러 가기

52

금천구

호암산 (석구상, 호암산성터, 한우물, 불영암,
칼바위)

2011, 11 2013, 12

☞ 글보러 가기

53

종로구

윤동주시인의 언덕(윤동주문학관), 청운공원

2011, 8 2014, 3

☞ 글보러 가기

54

종로구
중구

서울연등회 (서울연등축제)
조계사, 우정국로, 청계천, 광통교

2013, 5 2014, 4

☞ 글보러 가기

55

종로구

북한산 승가사 (구기동 마애여래좌상) 2012, 5 2014, 5

☞ 글보러 가기

56

중구

환구단(원구단), 덕수궁 대한문, 성공회 서울성당,
양이재, 구세군 중앙회관

2010, 4 2014, 6

☞ 글보러 가기

 

경기도, 인천 - 27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

글 공개시기

링크

1

부천

야인시대촬영장, 루미나리에축제 2003, 10 2003, 10

☞ 글보러 가기

2

강화

석모도 보문사, 매음리해변 2004, 11 2005, 5

☞ 글보러 가기

3 강화 광성보, 용두돈 2004, 11 2005, 5

☞ 글보러 가기

4 강화 강화도 선원사 연꽃축제장 2005, 8 2005, 11

☞ 글보러 가기

5 고양 북한산성(대서문, 중흥사터, 북한산행궁터) 2006, 8 2007, 1

☞ 글보러 가기

6 고양 북한산성(태고사, 산영루터, 북한산성계곡) 2006, 8 2007, 1

☞ 글보러 가기

7 성남 망경암, 봉국사 (사월초파일) 2006, 5 2007, 6

☞ 글보러 가기

8

오산
수원

오산 물향기수목원 / 수원 팔달문

2006, 11 2007, 12

☞ 글보러 가기

9

남양주 수락산 흥국사 2007, 12 2008, 3 ☞ 글보러 가기

10

남양주 덕릉마을 산신각, 덕흥대원군 묘역 2006, 12 2008, 5 ☞ 글보러 가기

11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용암사) 2007, 9 2008, 10 ☞ 글보러 가기
12

안양

안양사, 석수동마애종, 석수동석실고분 2007, 11 2009, 3 ☞ 글보러 가기
13

안성

서운산 석남사 (사월초파일)

2008, 5 2009, 5 ☞ 글보러 가기
14

하남

춘궁동동사지(동사지3/5층석탑), 광주향교

2008, 10 2010, 2 ☞ 글보러 가기
15

안양

삼성산 염불암, 중초사지당간지주, 안양예술공원

2008, 11 2010, 12 ☞ 글보러 가기
16

양평

용문산 사나사, 사나사계곡

2010, 5 2011, 5 ☞ 글보러 가기
17

강화

강화도 선원사 (연꽃축제)

2009, 8 2011, 8 ☞ 글보러 가기
18

고양

북한산성 중성문, 노적사, 중흥사터, 봉성암,
산영루터

2008, 4 2011, 8 ☞ 글보러 가기
19

포천

반월성, 청성공원, 포천향교

2009, 8 2011, 10 ☞ 글보러 가기
20

하남

선법사(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2008, 10 2011, 11 ☞ 글보러 가기
21

고양

한미산(노고산) 흥국사

2008, 11 2011, 12 ☞ 글보러 가기
22

고양

중남미문화원, 벽제관터

2010, 4 2012, 5 ☞ 글보러 가기
23

강화

장정리 석조여래입상, 장정리5층석탑, 고려궁터,
김상용 순절비

2009, 8 2012, 8 ☞ 글보러 가기
24

이천

관고리 석불입상, 설봉공원(설봉저수지),
설봉서원, 설봉산 영월암

2009, 5 2012, 10 ☞ 글보러 가기
25

양평

용문산 용문사,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

2010, 11 2012, 11 ☞ 글보러 가기
26

파주

고령산 보광사

2009, 12 2013, 2 ☞ 글보러 가기
27

화성

제암리 3.1운동순국유적 2012, 3 2014, 3 ☞ 글보러 가기

 

강원도 - 18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양양

낙산사, 홍련암, 오색약수, 성국사, 설악산 주전골 2004, 2 2004, 3

☞ 글보러 가기

2

강릉 객사문, 오죽헌, 경포대, 굴산사터, 신복사터 2004, 6 2004, 6

☞ 글보러 가기

3 양구 양구 향토사료관, 심곡사 2004, 9 2005, 1

☞ 글보러 가기

4

속초
고성

속초 탑공원, 고성 청간정 2005, 6 2005, 8

☞ 글보러 가기

5 고성 건봉사 2005, 6 2005, 9

☞ 글보러 가기

6 평창 대관령 양뗴목장 2006, 5 2006, 8

☞ 글보러 가기

7

강릉
동해

경포대해수욕장, 등명낙가사, 묵호항 2006, 5 2006, 8

☞ 글보러 가기

8 동해 감추사, 감추해변 2006, 11 2007, 2

☞ 글보러 가기

9 태백 구문소 2006, 11 2007, 2

☞ 글보러 가기

10

양구

양구 선사박물관 2008, 12 2010, 1

☞ 글보러 가기

11

화천

토고미마을(산천어축제), 딴산 2010, 1 2011, 1 ☞ 글보러 가기
12

화천,양구
춘천

화천 평화의댐(세계평화의종공원), 춘천 윗샘밭 2010, 1 2011, 2 ☞ 글보러 가기
13

평창

남산공원, 송학루, 노산성

2009, 9 2011, 12 ☞ 글보러 가기
14

삼척

미인폭포(통리협곡), 여래사

2012, 1 2012, 6 ☞ 글보러 가기
15

정선

정선5일장, 봉양리뽕나무, 아우라지

2009, 10 2012, 7 ☞ 글보러 가기
16

영월

보덕사, 금몽암, 낙화암, 금강정, 금강공원

2009, 10 2013, 11 ☞ 글보러 가기
17

태백

태백산 (당골, 석탄박물관, 석장승, 눈꽃축제장,
단군성전)

2012, 1 2014, 2 ☞ 글보러 가기
18

동해

추암(추암해수욕장, 촛대바위), 해암정,
추암조각공원, 북평5일장

2012, 6 2014, 7 ☞ 글보러 가기

 

충청북도 - 10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충주

미륵리사터, 미륵리가마터

2003, 7

2003, 10

☞ 글보러 가기

2

제천

빈신사지 석탑, 덕주사, 덕주산성, 송계9곡

2003, 7

2003, 11

☞ 글보러 가기

3

보은
대전

보은 삼년산성
대전 동춘당 / 송애당 / 법동 석장승

2003, 11

2003, 12

☞ 글보러 가기

4 단양 구인사 2004, 12 2005, 2

☞ 글보러 가기

5 청주 상당산성 2005, 6 2005, 9

☞ 글보러 가기

6 영동 영동향토민속자료전시관, 가학루, 황간향교 2008, 2 2008, 12

☞ 글보러 가기

7

충주

단호사, 사문리당산나무숲, 미륵리사터,
하늘재, 충주호

2008, 9 2009, 10

☞ 글보러 가기

8

단양

사인암, 청련암, 중선암, 북상리 시골

2009, 10 2011, 11

☞ 글보러 가기

9

괴산

각연사 (각연사계곡)

2009, 11 2012, 1

☞ 글보러 가기

10

괴산

원풍리 마애2불병좌상, 홍범식고가, 개심사

2009, 11 2012, 3

☞ 글보러 가기

 

대전, 충청남도 - 12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서산 서산 마애3존불, 보원사터 2004, 8 2004, 10

☞ 글보러 가기

2 금산 진악산 보석사 (1) 2005, 2 2005, 7

☞ 글보러 가기

3 금산 진악산 보석사 (2) / 진악산 자연휴양림 2005, 2 2005, 7

☞ 글보러 가기

4 금산 칠백의총 2005, 2 2005, 7

☞ 글보러 가기

5 천안 태화산 광덕사 2008, 5 2009, 7

☞ 글보러 가기

6

당진
태안

행담도, 꽃지해수욕장, 방포항, 안면도자연휴양림,
안면암

2009, 3 2009, 8

☞ 글보러 가기

7

대전 식장산 고산사 2008, 11 2009. 11 ☞ 글보러 가기

8

공주 계룡산 동학사 2011, 2 2012. 3 ☞ 글보러 가기

9

공주 계룡산 남매탑, 삼불봉, 천진보탑, 용문폭포 2011, 2 2012. 3 ☞ 글보러 가기

10

공주

계룡산 갑사

2011, 2 2013. 2 ☞ 글보러 가기

11

태안

신진도(안흥외항), 마도, 안흥항, 안흥성(태국사)

2010, 2 2013, 8 ☞ 글보러 가기

12

홍성 용봉산 (신경리 마애여래입상, 용봉산자연휴양림) 2012, 4 2014, 6 ☞ 글보러 가기

 

전라북도 - 7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부안 상록해수욕장, 내소사, 곰소항 2003, 8 2003, 9

☞ 글보러 가기

2 임실 오수 의견비, 사선대 / 운서정 2006, 6 2006, 8

☞ 글보러 가기

3 장수 의암사(논개사당) 2008, 2 2008, 11

☞ 글보러 가기

4

무주
장수

한풍루, 무주향교
의암송, 장수향교

2008, 2 2009, 3

☞ 글보러 가기

5 전주 전주한옥마을, 오목대(이목대), 한벽당 2010, 1 2012, 1

☞ 글보러 가기

6 군산

동국사, 은적사, 발산초등학교

2009, 9 2012, 12

☞ 글보러 가기

7 군산

응항, 선유도, 고군산군도 일주

2012, 4 2014, 7

☞ 글보러 가기

 

광주, 전라남도 - 11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장성
담양
나주

장성 방울샘,
담양 관방제림 / 담양읍 5층석탑 / 석당간
나주 남고문 / 정수루

2003, 12 2004, 1

☞ 글보러 가기

2 광주 무양서원, 장고분 2005, 4 2005, 8

☞ 글보러 가기

3 영광 내산서원 2006, 10 2007, 4

☞ 글보러 가기

4

나주
광주

정수루, 금성관
광주 풍영정

2006, 10 2007, 4

☞ 글보러 가기

5

순천 금전산 금둔사 2008, 11 2009, 11 ☞ 글보러 가기

6

순천 개운산 동화사 2008, 11 2010, 1 ☞ 글보러 가기

7

순천 조계산 천자암 2008, 11 2010, 2 ☞ 글보러 가기

8

장성 백암산 백양사 2009, 9 2011, 9 ☞ 글보러 가기

9

광주 무등산 원효사 2009, 9 2011, 10 ☞ 글보러 가기

10

구례 지리산 천은사(천은제) 2011, 4 2012, 4 ☞ 글보러 가기

11

곡성 동리산 태안사(태안사계곡) 2010, 4 2013, 5 ☞ 글보러 가기

 

대구, 경상북도 - 17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경주

반월성, 석빙고, 남산 서쪽(용장사터, 천룡사터)

2003, 4 2003, 5

☞ 글보러 가기

2

경주 경주읍성, 경주관아터, 옛 경주신사 2005, 11 2006, 1

☞ 글보러 가기

3

경주

노서동 고분군, 노동동 고분군 2005, 11 2006, 2

☞ 글보러 가기

4 안동 제비원 석불, 옥동3층석탑 2005, 12 2006, 3

☞ 글보러 가기

5 성주 성산관, 쌍충사적비, 성밖숲, 성산동 고분군 2006, 3 2006, 7

☞ 글보러 가기

6

성주
대구

성산동 고분군, 경상감영공원 2006, 3 2006, 7

☞ 글보러 가기

7 문경 문경새재(여궁폭포, 혜국사, 주흘산, 주흘관) 2006, 10 2006, 12

☞ 글보러 가기

8 달성 비슬산(유가사 / 암괴류), 현풍석빙고 2006, 10 2007, 10

☞ 글보러 가기

9 구미 의구총, 낙산리고분군, 낙산리3층석탑 2008, 2 2009, 2

☞ 글보러 가기

10

예천
상주

개심사지5층석탑
용화사(증촌리석불좌상/입상), 전고령가야왕릉

2007, 12 2009, 4

☞ 글보러 가기

11

경주

남산 불곡 석불좌상, 신문왕릉 2008, 7 2009, 7 ☞ 글보러 가기

12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불무사) 2008, 7 2009, 9 ☞ 글보러 가기

13

영덕
울진

고래불해수욕장, 후포항, 월송정, 월송해변 2009, 6 2011, 6 ☞ 글보러 가기

14

달성

다람재, 도동서원, 이노정 2009, 7 2012, 12 ☞ 글보러 가기

15

청도

남산 낙대폭포 2011, 6 2013, 7 ☞ 글보러 가기

16

달성

비슬산 용연사 2011, 3 2014, 2 ☞ 글보러 가기

17

예천

회룡포, 비룡산 2011, 11 2014, 7 ☞ 글보러 가기

 

부산 - 13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해운대구

해운대해수욕장, 장산(폭포사 / 장산폭포) 2005, 4 2005, 8

☞ 글보러 가기

2

중구
연제구

부산근대역사관, 연산동고분군

2006, 4 2006, 11

☞ 글보러 가기

3

수영구
강서구

광안리해수욕장, 가덕도(외양포, 대항, 세바지)

2007, 2 2008, 4

☞ 글보러 가기

4

강서구
서구

망상도/유주암, 송도해변, 송도해수욕장

2007, 7 2008, 9 ☞ 글보러 가기
5

기장군

불광산 (장안사. 장안사계곡) 2007, 11 2009, 1 ☞ 글보러 가기
6

기장군

불광산 (척판암, 백련암) 2007, 11 2009, 1 ☞ 글보러 가기

7

서구
북구

내원정사, 만덕사(만덕사 당간지주), 알터유적 2008, 8 2009, 9 ☞ 글보러 가기

8

금정구

금정산(금정산성, 국청사) 2009, 4 2011, 1 ☞ 글보러 가기

9

금정구

금정산 미륵사, 금성동 2009, 4 2011, 1 ☞ 글보러 가기

10

강서구

가덕도(가덕도등대, 외양포, 대항, 새바지) 2009, 7 2012, 7 ☞ 글보러 가기

11

사상구
강서구

백양산 운수사, 백양산 숲길,
범방동3층석탑, 부산경남경마공원

2009, 4
2009, 6

2012, 12 ☞ 글보러 가기

12

사하구

몰운대, 다대포

2011, 6

2013, 7 ☞ 글보러 가기

13

남구

백운포, 오륙도 (오륙도등대, 등대섬)

2010, 6

2014, 1 ☞ 글보러 가기

 

울산, 경상남도 - 22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울산
부산

처용암
옥련선원 / 정묘사(배롱나무)

2003, 8 2003, 9

☞ 글보러 가기

2

김해
부산

은하사, 수로왕비능, 구지봉, 초선대, 봉황동 유적
다대포(몰운대)

2004, 1 2004, 2

☞ 글보러 가기

3 창원 창원 불곡사 2005, 4 2005, 8

☞ 글보러 가기

4

거제
통영

학동해변, 옥포대첩비, 한산도 2005, 10 2005, 12

☞ 글보러 가기

5 통영 한산도 제승당 2005, 10 2005, 12

☞ 글보러 가기

6 창원 무학산(관해정), 가포해변 2006, 4 2006, 11

☞ 글보러 가기

7

김해

김해 수로왕릉

2006, 4 2006, 11

☞ 글보러 가기

8

진주
사천

진주 금선암
사천읍성(산성공원), 대방진굴항

2007, 1 2008, 1 ☞ 글보러 가기
9

함안
창원

함안박물관, 말산리/도항리고분군
진해 우체국

2007, 1 2008, 1 ☞ 글보러 가기
10

창원

불모산 성흥사, 대장동계곡

2007, 7 2008, 9 ☞ 글보러 가기
11

밀양

밀양 표충비, 무안리 향나무(홍제사) 2007, 11 2009, 1 ☞ 글보러 가기
12

양산

천성산 홍룡사(홍룡폭포), 원효암 2008, 10 2009, 6 ☞ 글보러 가기

13

울산 일산해수욕장, 대왕암공원 2008, 8 2009, 7 ☞ 글보러 가기

14

창녕

창녕석빙고, 송현동석불좌상, 송현동고분군,
진흥왕척경비, 만옥정공원, 남지철교

2008, 9 2010, 5 ☞ 글보러 가기

15

거창

수승대(귀연서원, 요수정)

2008, 10 2011, 7 ☞ 글보러 가기

16

울주
밀양

서생 나사리해변,
밀양 얼음골(천황사)

2010, 7 2011, 7 ☞ 글보러 가기

17

함양

상림공원, 한남군묘역

2009, 7 2012, 7 ☞ 글보러 가기

18

산청

목면시배유지, 배산서원, 덕천서원, 남명조식유적

2008, 10 2012, 9 ☞ 글보러 가기

19

남해

호구산 용문사, 남해자생식물단지, 미국마을,
용소리/금평해변

2009, 11 2012, 11 ☞ 글보러 가기

20

통영

통영 달아공원

2011, 3 2013, 3 ☞ 글보러 가기

21

울주

가지산 석남사 (석남사계곡)

2010, 7 2013, 9 ☞ 글보러 가기

22

고성

연화산 옥천사, 공룡발자국화석

2010, 10 2013, 11 ☞ 글보러 가기

 

제주도 지역 - 2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제주 서해바다, 한라산(성판악 / 사라악 / 진달래밭) 2005, 8 2006, 2

☞ 글보러 가기

2

제주 한라산(백록담 / 탐라계곡), 서해바다 2005, 8 2006, 2

☞ 글보러 가기


 

기타 지역 - 1개

연번

지역 가본 곳 가본시기(연,월)

글 공개시기

링크

1

왜열도

동경 지역(긴자, 록뽕키, 우에노, 도쿄도청타워,
아사쿠사<관음사>, 신주쿠, 코쿄, 디즈니랜드)

2002, 5 2002, 6

☞ 글보러 가기


1. 공개된 글 중에서 하자가 없는 글들만 선정해서 지역별로 모았습니다.
2. 2003년 5월 이전(2개 제외) 글과 아직 공개되지 않은 답사기는 제외했습니다.
3. 답사기 내용과 사진을 전체 혹은 일부 퍼갈 경우, 반드시 출처와 원작자(박융) 이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4. 사진이 일부 혹은 모조리 뜨지 않는 글들(주로 2004 ~ 2005년판)이 꽤 많습니다. 이 점 널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5. 공개된 글 중, 추후 업데이트 판이 나올 경우, 이전 판은 모음집에서 삭제 될 수 있으며 2개 이상의 시리즈로
작성된 글 중 본인 필요에 따라 1개나 2개로 통폐합 정리될 수 있습니다.
6. 지역 별로 분류했으나 지역이 2개 이상 겹치는 글은 먼저 간 곳을 기준으로 분류했습니다.

 

부산 도심 속에 숨겨진 아늑한 고색의 절집 ~ 백양산 운수사 (백양산 숲길, 범방동3층석탑)

 


' 부산의 숨겨진 명소 둘러보기 ~
백양산 운수사, 범방동3층석탑 '
백양산 운수사
▲  백양산 운수사


백양산(白羊山)은 부산 사상구(沙上區)의 동쪽을 보듬은 해발 641m에 큰 산이다. 바로 그 산
서쪽 기슭에 운수사란 오래된 절이 조용히 묻혀있다. 그 절의 이름 석자를 우연히 듣고 부산
에 사는 선배한테 물어보니 절의 이름은 들어봤다고 그런다.
그래서 이번 부산 봄나들이에서는 금정산을 등산하면서 미륵사(彌勒寺, ☞ 관련글 보러가기)
와 국청사(國淸寺, ☞ 관련글 보러가기)를 둘러보고 여건이 된다면 한번 문을 두드리기로 하
였다. 다행히 약간의 여유가 있어서 구포시장에서 모라동으로 들어가는 148번 시내버스를 타
고 모라주공아파트 종점에서 내린다.

백양터널 위쪽(백양터널 사업소)을 지나 숲에 묻힌 운수사 길로 들어선다. 초반부터 약간 가
파른 길이 금정산을 갔다온 우리를 기운 빠지게 만든다. 그 길을 1분 정도 오르니 길은 수레
길과 계곡길로 갈라선다. 어디로 가든 운수사는 나오지만 우리는 수레의 핍박이 싫어서 시원
한 계곡길을 택했다. (계곡길이 수레길보다 조금 지름길이다. 운수사까지는 15분)


▲  인공(人工)이 가미되어 다소 볼품이 떨어진 운수사 계곡
백양산이 베푼 계곡물이 졸졸졸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계곡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돌과 시멘트로 정비한 인공적인 모습이라 그다지 정이 가질 않는다.

▲  자연의 모습을 간직한 조그만 폭포
하얀 피부의 바위를 타고 비스듬하게 떨어지는 폭포 소리에
철모르고 찾아온 더위가 나 살려라 줄행랑을 친다.

▲  계곡과 저만치 떨어지면 녹음이 깃든 넓은 산길이 나타난다.
군데군데 산악신앙(山岳信仰)의 현장인 돌탑이 중생들의 소망을
차곡차곡 품으며 뿌리를 내렸다.

윗 사진의 산길을 넘으면 2갈래로 갈라졌던 길은 다시 하나가 된다. 야트막한 고개를 넘으면
운수사 주차장이 나오고 주차장 너머 높다란 언덕에 수미산의 궁전과 같은 거대한 건물이 나
의 눈을 자극시킨다. 그 건물은 운수사의 또 다른 법당인 대웅보전(大雄寶殿)이다.


▲  높은 언덕 위에 새로 지어진 대웅보전

절에서 가장 높은 곳에 터를 닦은 대웅보전은 1993년에 착공하여 2006년에 완성되었다. 13년
에 걸친 공사에 걸맞게 운수사에서 가장 규모가 장대하며, 정면 7칸, 측면 4칸에 달한다. 절
중심 경내와 약간 거리를 두고 터를 닦은 저곳에 오르면 낙동강과 김해평야가 두 눈에 달려
올 만큼 조망이 일품이다.
허나 우리는 저곳으로 오르지 않았다. 덩치만 큰 건물의 위용이 그리 달갑지가 않았고, 운수
사에 서린 오랜 보물에만 오로지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내부에는 웅장한 규모의 석가삼존불
이 모셔져 있는데, 높이가 무려 2.6m에 달하여 주눅들기가 쉽다.


♠  백양산 자락에 조용히 안긴 오랜 절집
~ 백양산 운수사(雲水寺)

구름이 물처럼 흐른다는 뜻의 운수사는 백양산 서쪽 자락에 포근히 묻혀있다.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 대부분이 낙동강이 바라보이는 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주변 풍경이 아름다워 구름도 앞다
투어 발길을 멈추는 곳이다.

부산 땅에서 범어사(梵魚寺)와 선암사(仙岩寺), 미륵사에 비해 인지도는 턱 없이 낮으며, 백양
산 등산객 일부만 발걸음을 하는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찾는 조촐한 절이다. 내가 그곳의 존재
를 안 것은 방문 2달 전에 일이다.

운수사의 창건시기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금관가야(金官伽倻) 시절에 창건되었다
는 것, 다른 하나는 원효대사가 선암사를 세우고 산을 건너와 세웠다는 것이 그것이다. 허나 이
를 입증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 설에 지나지 않는다.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범어사, 선암사 등과 더불어 같은 시대에 지어진 절로
나와있어 이곳의 깊은 역사를 가늠케 한다. (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중기에 창건된 것으로 짐작
됨)
1592년 4월 임진왜란으로 절이 모조리 잿더미가 되었으며, 1660년에 중건을 했다. 경내는 물론
이고 경내에서 200m 정도 떨어진 승탑(僧塔) 주변에서도 옛 운수사 시절의 기왓조각이 다량으로
출토되고 있어 예전에는 지금과 달리 규모가 제법 있었음을 아련히 보여준다.
또한 1740년대에 편찬된 동래부지(東來府誌) 불우조(佛宇條)에는 '初名 新水庵(운수사의 처음
이름은 신수암이다)'이라 나와있어 18세기 이전에 지금의 이름으로 갈렸음을 보여주며, 그 당시
대대적인 중창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예로부터 사상8경(沙上八景)의 하나로 운수모종(雲水暮鐘)을 꼽았다. 이는 운수사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보듬어 주었음을 보여주며, 빼어난 절경으로 많은 사람
들이 찾아오는 부산의 숨겨진 명승지였다.

근래에는 화명종합사회복지관을 세워 복지, 문화사업에 앞장서고 있으며, 불교대학을 설립하는
등 불교 대중화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또한 '아름다운 인연'이란 이름으로 각종 후원회를 설
립하여 사회의 그늘진 곳을 향해 따뜻한 정을 펼치고 있다.

소장문화유산으로는 지방문화재인 대웅전과 석조여래3존좌상, 아미타3존도(부산 지방문화재자료
43호, 관람 거의 불가)가 있으며, 부근 소나무숲에 조선 초기에 조성된 승탑 2기가 있다. 절을
이루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대웅보전, 삼성각 등 7~8동의 건물이 있다. 특히 청양의 장곡사(長谷
寺)처럼 대웅전이 2개나 있다는 것이 이곳의 큰 특징이다.

풍광이 수려한 산중암자로 부산 도심과도 무척이나 가까워 번뇌가 복잡하고 싹둑 정리가 필요할
때,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모든 걸 잠시 내려놓고 안기고 싶은 절이다. 대웅보전을 제외하고 건
물의 크기도 적당하며 고색의 때가 만연한 아담한 대웅전은 정감을 많이 불러 일으킨다.

※ 운수사 찾아가기 (2012년 12월 기준)
* 부산지하철 2호선 모라역(3번 출구)에서 148번 시내버스, 2호선 사상역(6번 출구를 나와서 뒷
  쪽)에서 31, 338번 시내버스를 타고 모라주공아파트 종점에서 하차.
  버스에서 내려서 왼쪽으로 가면 막다른 길(모라로 192번길)이 있다. 여기서 직진을 해도 되고
  오른쪽으로 가도 되는데, 쉽게 갈려면 직진을 해서 백양산터널 윗쪽을 지나 운수사로 올라가
  는 길로 들어서면 된다. 오른쪽으로 갈 경우 3분 정도 가면 3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으
  로 가면 모라예비군훈련장이다. 훈련장을 지나 넓직한 산길을 계속 오르면 운수사 남쪽이다.
  (모라주공아파트에서 운수사까지 도보 30분 거리) 
* 소재지 -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 산5 (☎ 051-332-5671)


▲  운수사 약수터

대웅보전을 외면하고 경내로 들어서기 직전에 백양산의 옥계수가 흘러나오는 약수터가 있다. 어
느 절집이나 약수터는 꼭 있기 마련으로 절에 갈 때마다 몇 모금씩 마신다. 이곳의 물은 시원하
기 그지없어 마음 속에 담긴 온갖 때가 싹 가신 듯, 오장육부가 시원하다. 물을 마시고 경내를
가린 건물을 지나서면 대웅전이 중심이 된 운수사 경내가 조촐하게 펼쳐진다.


▲  건물 중간에 나 있는 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선다.

▲  대웅전 우측에 자리한 삼성각(三聖閣)
1996년에 지어진 건물로 삼성각의 주요
식구인 칠성탱과 산신탱, 독성탱이
봉안되어 있다.

▲  대웅전 좌측에 자리한 용왕각(龍王閣)
1998년에 지어진 건물로 용왕탱화와 1.8m에 달하는 목어(木魚)가 있다.


▲  작지만 속은 알찬 운수사 대웅전(大雄殿) - 부산 지방유형문화재 91호

서쪽을 바라보며 자리한 운수사 대웅전은 안으로 들어가면 무너지지 않을까 겁날 정도로 고색의
때가 만연하다. 고려 후기 건축물인 수덕사(修德寺) 대웅전이나 봉정사(鳳停寺) 극락전보다 더
나이가 들어보이니 말이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柱心包) 맞배지붕 불전으로 범어사 대웅전과 더불어 부
산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손꼽힌다. 건물의 크기는 조촐하지만 법당(法堂)으로서의 위
엄과 격식이 진하게 돋보인다. 18세기에 지어진 것으로(혹은 19세기로 보기도 함) 그 당시는 부
산 지역에서 건물 조영이 활발하게 진행되던 시기였다. 또한 운수사의 공역 여건과 기반도 상당
한 수준에 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대웅전에서 발견된 송판(松板)을 보면 1770년대에 이루어진 범어사 대종(大鐘) 주조불사,
동래향교 대성전(大成殿) 중수공사, 범어사 종루 이건공사 등에도 참여한 사람이 확인되어 18세
기 부산지역 공장(工匠)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한다.

임진왜란의 큰 피해지인 탓에 임란 이전의 목조건물이 남아 있지 않은 부산 지역에서 조선 중기
건축기법을 두루 갖추고 있는 유일한 건물로 그 가치가 뒤늦게 인정되어 2008년 9월 지방문화재
로 지정되었다.


▲  대웅전과 5층석탑

대웅전 앞에는 울퉁불퉁하게 다져놓은 돌계단이 놓여져 있는데 이 역시 오래된 때가 느껴진다.
잘 다져진 석축 위에 뿌리를 내린 대웅전의 조촐한 모습은 정말 두 눈에 쏙 넣어도 부담이 적을
정도로 정감이 많이 간다.


▲  대웅전 좌측 기둥에 선명히 새겨진 이름
부산진(釜山鎭)에 사는(혹은 그곳에 소속된) 이상길(李常吉)이란 사람이
대웅전 공사에 참여했음을 보여준다.

▲  대웅전 석조여래삼존좌상(石造如來三尊坐像) - 부산 지방유형문화재 92호

꽃그림이 가득한 대웅전 불단(佛壇)에는 포근하고 넉넉한 인상의 소유자인 석조여래3존불이 중
생을 맞는다. 이들은 17세기 이후에 불석(제오라이트)이란 돌로 만든 것으로 3존불 가운데 좌협
시 보살은 여래(如來)의 옷을 입은 우협시 보살과 달리 보살상의 전통적 착의법인 천의(天衣)를
걸치고 있으며, 팔찌와 같은 형태의 장신구를 양팔에 착용하고 있어 조선후기 여타 삼존상과는
다르다.

양쪽 보살은 선정인(禪定印)을 지그시 취하고 있으며 조선 후기 조각승의 개인 양식 혹은 지역
성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또한 부산, 경남 지역에 현존하는 17~18세기 불상으로 그
가치가 인정되어 2008년 9월 대웅전과 함께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대웅전 뜨락에서 바라본 운수사의 든든한 후광, 백양산의 위엄

▲  좌우로 길쭉한 운수사 선방(禪房)

▲▼  호젓함이 깃들여진 백양산 숲길

운수사 남쪽에는 녹음이 짙은 백양산 숲길이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모라동으로 내려가는 길로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이 길은 백양산 허리를 따라 멀리 당감동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집
으로 살짝 가져와 늘 옆구리에 끼고 거닐고 싶은 아름다운 숲길로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당감동
까지 걸어보고 싶다. 여기서 거기까지 10리가 넘는 길이지만 이토록 어여쁜 숲길에게는 10리도
너무 짧다.
숲이 무성하여 벌써부터 여름을 사칭한 봄의 뜨거운 햇살도 감히 들어오질 못한다. 솔솔 나부끼
는 산내음에 속세의 찌듬이 완전히 정화된 듯 몸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  경사의 기복이 심하지 않아 느긋하게 거닐 수 있는 백양산 숲길
우리는 10분 정도 숲길을 거닐다가 모라주공아파트, 예비군훈련장으로 내려가는 길을
통해 다시 속세로 나왔다. 꿈에서도 잊지 못할 그 길을 다시 거닐 그날을 염원해 본다.


김해 삼각주(三角洲)에 자리한 강서구(江西區)는 낙동강 동쪽의 부산 본토와 달리 드넓은
평야로 이루어진 시골이다. 2000년 이후 명지와 녹산 일대에 공업단지와 주거지가 무진장
들어섰지만 아직 강서구의 태반은 촌 분위기를 여실히 간직하면서 부산의 또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런 강서구를 이루고 있는 동네 가운데 부산경마공원 뒤쪽에는 범방동(凡方洞)이란 시골
동네가 있다. 그곳에는 예전부터 나를 아련히 손짓하는 존재가 하나 있었다. 범방동3층석
탑이 그것이다. 촌구석에 숨어있는 그 조그만 탑에 왜 그리 끌렸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 탑을 보러 강서구 벽지투어란 이름으로 그곳을 찾게 되었다.
(백양산 운수사와는 전혀 다른 날에 간 것임)

부산 시내에서 범방동에 가려면 하단에서 강서구 마을버스 7번(하단역↔조만포)을 타야된
다. (지금은 범방동 개발로 인해 버스가 들어가지 않음)  벽지라 그런지 마을버스도 거의
농어촌 버스나 다름없다. 배차간격이 무려 30~40분이기 때문이다.

많은 버스를 하염없이 흘려보내며 30여 분을 기다리니, 그제서야 7번 번호판을 단 조그만
카운티 버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자리를 가득 채우며 하단을 떠나는 우리의 마을버스, 승
객들은 세산3거리 이전에서 모두 다 내리고 우리만 남았다.
세산3거리부터는 큰 길을 과감히 버리고 2차선도 안되는 조그만 농로로 들어선다. 대도시
속 시골길을 쿵쾅쿵쾅거리며 드디어 3층석탑이 있는 범밤동 탑동에 도착했다. (지금은 탑
동 경유하지 않음, 세산초교에서 차를 돌려 경마공원으로 바로 운행)

탑동마을 입구에는 탑동을 상징하는 근래에 만든 뾰족한 3층석탑이 마을을 찾은 나그네를
맞는다.
여기서 범방동3층석탑까지는 대략 500m 거리로 마을을 지나 마을 뒤쪽 야산에 자
리해 있다. 조용함이 감도는 탑동마을은 녹산공단 배후지역 재개발 때문에 빈집과 파손된
집이 많아 다소 어수선해 보인다. (지금은 마을 전체가 철거됨)


♠  잡초가 무성한 이름없는 절터를 홀로 지키고 선
범방동3층석탑 - 부산 지방유형문화재 23호

탑동마을 뒤쪽 야산 정자나무 그늘에 자리한 범방동3층석탑은 이름과 역사가 전해오지 않는 옛
절터에 홀로 서 있다. 절터라고는 하나 절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다.
이 탑은 가락국(駕洛國) 수로왕(首露王) 시절에 이곳에 절을 지으면서 세운 것이라 전해오고 있
으나 전혀 신빙성이 없다. 그는 고려 때 세워진 탑으로 2중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을 얹
힌 전형적인 고려 석탑이다. 높이는 4m 정도로 1층 탑신이 상당히 두꺼워 보여 배가 풍만하게
나온 뚱보 같다. 탑의 비례는 그리 맞아보이지 않으며 탑 꼭대기에 두툼하게 노반(露盤)이 솟아
있다.
원래는 경상남도 지방유형문화재였으나 1989년 낙동강 서부 지역이 부산 강서구에 강제로 들어
가면서 부산지방문화재로 변경되었다.


▲  커다란 정자나무 밑에 자리한 범방동3층석탑
탑만 남기고 사라진 이름 모를 옛 절터를 푸른 수풀이 가득 보듬어 준다.

▲  가까이서 바라본 범방동3층석탑 - 1층 탑신이 유난히 두꺼움을 알 수 있다.


▲  녹음에 젖은 탑동마을의 당산나무 - 범방동 팽나무
나무의 나이는 200년 정도로 범방동 일대에 개발의 칼질이 자행되는 지금은
어찌 지내는지 모르겠다. 부디 별일이 없어야 될텐데 말이다.
나무높이는 14m, 둘레는 2.3m, 지정번호는 2-12-6-3호


※ 범방동3층석탑 찾아가기 (2012년 12월 기준)
* 부산지하철 1호선 하단역(1~8번 출구) 중앙차로 정류장에서 220, 221번 좌석버스(30~40분 간
  격)나 강서구마을버스 7번(30~40분 간격)을 타고 부산경남경마공원 입구에서 하차. 경마공원
  입구3거리에서 경마공원 남문 방면 2차선 도로로 계속 들어가면 옛 탑동마을이 나오는데, 마
  을 뒤쪽 야산에 탑이 있다. 현재 범방동 일대 개발로 탑까지 진입이 어렵다.
* 소재지 - 부산광역시 강서구 범방동 1345


▲  부산경남경마공원 남문

범방동3층석탑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부산경남경마공원(이하 경마공원)이 가까이로 바라보인다.
경마공원이 여기보다는 차편이 좋을 것이므로 거기서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마침 폐장시간이라 드넓은 주차장은 짐을 꾸리고 나가려는 수레들만 보일 뿐, 썰렁하기 그지 없
다. 공원에 들어있는 범방동 패총(貝塚, 조개더미)을 보려고 했으나 공원 겉만 맴돌았을 뿐, 안
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  부산경남경마공원 관람대
경마공원이 시민을 위한 공간이긴 하지만 사행성을 조장하는 곳임은 부인할 수 없다.
달리는 말에 모든 걸 내걸며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의 함성소리, 그리고 백성들의
그런 심리를 이용해 막대한 돈을 챙기는 썩어 문드러진 지배권력층의 행복한
비명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오는 듯 하다.

▲  텅빈 경마공원 경마트랙
인간이란 동물의 사행성을 위해 오늘도 말은 열심히 말발굽 소리를 낸다.

▲  부산경마공원 정문 옆 분수대에 말상
허무맹랑 역사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적토마(赤兎馬)가 물 위를 뛰는 듯,
역동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  부산경남경마공원 정문
어둠이 어슬렁 다가오자 문에서 알록달록 빛이 쏟아져 정문을 수식한다.
불빛도 거의 없는 황량한 벌판인지라 정문의 야경이 꽤 돋보이고
멋스러울 것이다. 이것으로 본글을 마무리 짓는다. ~~


 * 까페(동호회)에 올린 글은 공개일 기준으로 1주까지만 수정,보완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
   집니다. <단 블로그와 원본은
1달까지임>
 * 본글의 내용과 사진을 퍼갈 때는 반드시 그 출처와 원작자 모두를 표시해주세요.
 * 글씨 크기는 까페와 블로그는 10~12pt, 원본은 12pt입니다.(12pt기준으로 작성됨)
 * 오타나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즉시 댓글이나 쪽지 등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외부링크 문제로 사진이 안뜨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모니터 크기와 컴퓨터 사양에 따라 글이 조금 이상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 공개일 - 2012년 12월 21일부터
 
* 글을 보셨다면 그냥 매정히 가지들 마시고 바로 밑에 있는 사각 박스 안에 담긴 손가락
   모양의 View on을 꾹꾹 흔쾌히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도 환영합니다.


 
★☆ 손가락 안에 있는 숫자를 꾹 눌러주세요 ☆★



Copyright (C) 2012 Pak Yung(박융), All rights reserved


※ 아래는 최근에 본인 다음 블로그에 올린 글과 사진입니다.
(글 제목을 클릭하시면 해당글로 바로 이어집니다)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