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동강이 오랜 세월 빚어놓은 대작품 ~ 태백 구문소


' 강원도 동해 ~ 태백 자연기행 (2006년 11월 15일)'
'하편 ― 태백 구문소(求門沼)'


▲ 낙동강이 수만 년에 걸쳐 갈고 닦은 작품, 구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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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상, 하 2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상편 (동해 감추사) ^^ 보러 가기 ^^



구름도 쉬어 간다는 하늘 아래 첫 동네, 통리에서 장성 방면으로 가는 태백시내버스 20번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간다.
구름이 걸쳐있는 높다란 산들 사이로 쑥 들어간 부분에 계류가 흐르고 그 주변으로 마을과 도로,
탄광 관련 공장들이 형성되어 있다.

한 때 탄광 하나로 인구 15만을 지녔던 광업도시의 메카, 태백시(太白市). 하지만 탄광의 끝없는
몰락으로 인구는 외지로 줄줄 새어나가 지금은 간신히 5만 명 내외를 유지하고 있으며 탄광과 그
와 관련된공장들도 많이 문을 닫았다. 태백을 방긋 웃게 해준 석탄이 끝내는 태백을 울게 만든
셈이다.

탄광산업의 몰락과 함께 태백시도 구문소의 수심만큼 끝없는 수렁에 빠지는 듯 했으나 용케도 관
광산업 쪽으로 눈을 돌려 열심히 동치서주(東馳西走)를 한 끝에 지금은 관광, 휴양 도시로 화려
하게변모하였다.

해발 600 ~ 800m에 있는 고원의 도시로 모기 등의 해충이 없으며 여름에도 날이 선선하여 많은 피
서객들이 찾아오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려 태백산을 중심으로 눈꽃축제가 열리니그 축제는 이
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겨울 축제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거기에 우리나라의 주요 젖줄인 한강(漢江)과 낙동강(落東江)의 발원지라는 것도 태백을 널리 알
리는데 단단히 한몫을 한 것 같다.
태백에서는 어디서든 산을 만날 수 있고, 계곡과 탄광을 만날 수 있다. 철도와 도로는 산 사이로
간신히 지나다니며 지형적 특성상 시내 도로망이 단순하여 금방 태백 지리를 익힐 수 있다.

태백을 구성하는 3읍의 하나인 철암(鐵岩)을 지나 태백의 남쪽 동네인 구문소동에 다다른다.
장성과 동점 방면으로 갈라지는 구문소 3거리에 이르니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 나의 입을 한없이
벌리게 만든다.


♠ 낙동강(洛東江)이 오랜 세월 빚어놓은 작품, 고생대(古生代)의 환경과 지형에
대해 아낌없는 해답을 주는 ~ 태백 구문소(求門沼) -
천연기념물 417호


▲ 구문소와 동쪽 동굴


태백 구문소는 석회동굴이 땅 위에 드러난 형태로 낙동강의 상류라 할 수 있는 황지천 하류에 들
어앉아 있다.
구문소는 다른 말로 '구무소'라고도 하며 '구문'은 구멍, 굴의 방언으로 '굴이 있는 늪'이란 뜻도
지니고 있다.

구문소를 이루는 석회암에는 건열, 물결의 자국, 소금 흔적 등의 퇴적구조와 삼엽충(三葉蟲), 완
족류(完足類), 두족류(頭足類) 등의 옛 생물들의 화석(化石)이 나오고 있어 하부고생대의 퇴적환
경과생물상을 살펴 볼 수 있으며, 구문소 동굴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산이 황지에서 발원한 낙
동강 물줄기에 의해 뚫어진 동굴로 하천 물길의 변천을 연구하기에 아주 그만인 곳으로 주변 암벽
등과 함께 침식지형의 특성을잘 보여주고 있다.

해발 550m의 이 곳은 약 5억년 전에는 적도 부근의 바다였다고 하며 한반도의 고향이 어디였는지
를알려주는 신비로운 곳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천천(穿川)'이란 이름으로 기록에 남아 있는데, 대자
연의 위대한 힘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구문소 서쪽 굴의 뒷모습 ~
태백을 오가는 차량들의 통행을 위해 인위적으로 뚫어놓았다.


* 구문소의 신이한 절경에 대한 탄성 만큼이나 구문소의 얽힌 전설도 참 많다.
① 구문소는 수심이 깊어 종종 자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면 몇 일안에 꼭 비가 내려 자살한이
의 부정함을 말끔히 씻는다고 한다.

② 안동(安東)에 영호루(映湖樓)를 세울 때, 대들보로 쓸 싸리나무를 화전동 싸리밭골에서 구해
황지천에 띄워 운반하던 중, 갑자기 홍수가 일어나 급류에 휩쓸리며 정신없이 떠내려가다가 이 곳
절벽을 세게 때리면서 그 충격으로 큰 구멍이 뚫렸다고 한다. 그래서 부근으로 우회하던 황지천의
물줄기가 이구멍으로 흐르게 되었다고 한다.(하천 유수에 의해 구문소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전설이다)

③ 온 세상이 거의 워터월드였던 초고대 시절, 중국 고대 전설에 나오는 하우씨(夏禹氏)가 이 곳
에 와서 칼을 내리치니 그 충격으로 물이모두 빠져 태백 지역은 비로소 바다 위로솟아났다고 한
다. <중원 모화사상(慕華思想)에 단단히 젖은 어느 선비가 지어낸 전설로 보인다>

④ 구문소에 구멍이 뚫리기 전, 석벽(石壁)을 사이에
두고 동쪽 철암천(鐵岩川)의 큰 소(沼)에 청룡이 살
고있었고, 서쪽 황지천에는 백룡(白龍)이 살고있었
다.

그들은 낙동강의 지배권을 두고 항상 티격태격 싸웠
다고 하는데 좀처럼 승부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백룡이 편법으로 석벽 밑에 굴을 파고는석
벽 꼭대기에서 맞짱을 뜨는 척 하다가 그 굴로 청룡
을기습하여 몰아내 버렸는데 그 여세를 몰아 하늘로
승천했다고 한다. 그가 승천할 때 지나친 산을 '용우
이산'이라고 하며 바로 구문소 앞에 솟은 산이다.

* 경치가 멋드러진 곳의 전설에는 선녀와 용이 단골
로 등장한다

▲ 구문소 전설에 등장하는 백룡(白龍)

⑤ 옛날에 이 곳에서 고기를 잡아 생활하던 엄종한(嚴宗漢)이라는 어부가 있었다.
하루는 구문소에 쳐놓은 그물이 사라져 버려 그물을 찾던 중, 실수로 물에 빠지고 말았는데, 물
속으로한없이 빨려 들어가면서 어느덧 용왕이 사는 용궁(龍宮)에 이르게 되었다.
어부는 용왕이 사는 곳이라 여기고 궁궐로 들어갔는데, 궁문(宮門)에 자기가 찾던 그물이 걸려있
어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물을 가져가려고 하니, 안에서 노인(용왕)이 나와 '여기는 인간들의세상
이아닌데 어떻게 왔냐?'
물었다.

▲ 동쪽 동굴 안의 구문소
소 안에 신용(神龍)이 살던 굴이 있다고 하는데 그 굴의 깊이는 하도 깊어 아무도 알지 못한
다고 한다. 그만큼 구문소는 옛 사람들의 호기심과 함께 두려움을 안겨주던 곳으로 용왕에게
제를 지내던 민간신앙의 현장이기도 하다.


엄씨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노인이 '내 아들이 그물 때문에 자칫 죽을 뻔했다. 너가 그물의
주인인 걸 알면 반드시 가만두지 않을 터이니 어여 도망쳐라'

엄씨가 '길을 모르는데 어찌 가란 말이냐? 제발 도와주셔 ~'
용왕이 '흰 강아지 1마리를 줄 테니 따라 가라. 그리고 배고프면 이 떡을 먹도록 ~~'

엄씨는 강아지를 따라 떡을 먹으면서 주변 경치를 구경하다가 드디어 물 밖으로 나왔다.

▲ 구문소에 새겨진 옛 사람들의 낙서


밖으로 나와보니 무당 굿소리와 함께 조문객들이 왔다 갔다 해서 무슨 일인가 살펴보니 글쎄 그의
두 아들이 부친(父親)이 물에 빠져 죽은지 3년이 되었다며 3주기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그물을 찾아 잠깐 수중에 갔다 왔는데 그 잠깐 동안 무려 3년의 세월이 지나가 버린 것이다.

집으로 컴백한 후, 강아지는 천수를 누리고 죽으니 엄씨는 강아지를 관에 넣어 산에 묻어 장사지
내고 용궁에서 가져온 남은 떡은 돌이 되어 용궁 여행 기념으로 길이 간직해 두었더니 날이 갈수
록가세(家勢)가 번창하여 부자가 되어 잘 살았다고 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전설이다. 부자를 꿈꾸며 용궁의 그 떡을 얻기 위해 저 소에 뛰어드는 어리석은
짓은 부디 하지 말 것...

* 구문소 찾아가기
① 대중교통 - 태백역전에 있는 태백터미널에서
태백시내버스 10번, 20번을 타고 구문소 하차
- 통리역와 철암역에서 태백시내버스 20번 이용,
구문소 하차

② 승용차로 -
1) 중앙고속도로 → 제천 → 영월 → 상동 → 태백
산 → 상장동(문곡)에서 장성 방면으로→ 구문소
2) 동해고속도로 → 동해 → 도계 →통리 → 철암
→ 구문소
3) 중앙고속도로(영주,풍기나들목) → 영주 → 봉
화 → 춘양 → 동점 → 구문소

- 따로 주차장은 없으며, 길가에 잠깐 차를 세우
면 된다.
- 구문소에 철암 방면으로 500m 정도 가면 구문소
일대에서 나온 화석을 전시하는 전시관이 있다.

▲ 구문소 서쪽 동굴의 앞모습

◀ 구문소와 자개루(子開樓) ~
황지에서 시작된 낙동강의 물줄기는 이 곳에서
철암천에 물줄기와 서로 만나 잠시 머물다가 넓
은 세상을 향해 열심히 길을 재촉한다.

구문소의 머리에는 '자개루'란 누각이 들어앉아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낙동강 물을 지켜본다.

▲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구문소 계류(溪流) <1>
계류를 이루는 암반은 거의 모두 석회암으로 마치 화산의 용암이 곳곳을 쑤시며 흐르다가 그대로
굳어버린 것처럼 울퉁불퉁하다.
그런 바위들 사이로 서로 앞다투며 길을 재촉하는 물줄기, 이 곳 이전까지는 천(川)의 폭이 제법
넓어 사이좋게 흘러갔으나 이 곳에 이르러 그 폭이 현저히 좁아지고 물줄기 또한 비포장처럼 완만
치가 못하면서 서로 먼저 갈려고 아우성을 치는 통에 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천둥 소리처럼 요란
벅적하다. 거의 옆사람과의 대화가 어려울 정도..

▲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구문소 계류 <2>

▲ '자개루'로 통하는 빨간색의 다리
구문소의 정상에 들어앉은 자개루는 황지천을 건넌 다음, 저 빨간색 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너
물줄기의 고함 소리를 들으며 가파른 산길을 2분 정도 올라야 된다.

▲ 팔작지붕을 얹힌 자개루
구문소 절벽 위에 오묘히 들어앉은 1층 누각으로 여기에 오르면 구문소 주변이 발 아래로
펼쳐지고 주변 산들이 나와 비슷한 눈높이에서 나를 바라본다.
다만 구문소와 동굴은 바로 밑에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 바로 밑에서 찍은 자개루 현판 ~ 글씨가 가히 명필에 경지인 것 같다.

◀ 자개루에서 바라본 구문소동(동점
동)
- 넓은 도로에 비해 지나가는 차량이
너무 없어 그 허전함이 이루 말할 수
가 없다.
3거리에 세워진 신호등이 정말로 무색
할 정도..


구문소를 둘러보고 태백의 중심지인 황지(黃池)로 갔다.
황지는 예전 삼척군 황지읍으로 지금은 태백의 도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시내 한복판에
낙동강의 발원지로 유명한 황지 연못이 있다.

시내에서 저녁을 먹고 태백역을 찾아 슬슬 태백에서의 일정을 정리하며 열차표를 사들고 잠
시 두 다리를 쉬게 하였다.

내가 탈 열차는 18시 29분에 청량리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인데 그 날따라 열차연착과 무슨
악연이라도 있는지. 이번에도 역시 18분씩이나 지연을 해먹으며 부끄러운 듯 슬그머니 나타
난다.
중앙선과 태백, 영동선은 평일에는 거의 연착할 일이 없는데도 요즘 계속해서 연착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사유는 단순히 신호 정리, 앞 열차 지연 운행 등으로 둘러대고는 있지만
연착을 밥 먹듯이 일삼으며 전혀 미안해 할 줄을모르는 철도공사의 그 고질병은 정말 특단
의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상은 절대로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열차에 올라 역전 부근에서 사들고 온 김밥을 먹고 다시 허전한 배를 채우니 온기(溫氣)의
희롱을 받으며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어버리고..

이렇게 하여 동해 ~ 태백 자연 기행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 답사, 촬영 일시 - 2006년 11월 15일
* 작성 시작일 - 2006년 11월 22일
* 작성 완료일 - 2006년 11월 25일
* 숙성기간 - 2006년 11월 25일 ~ 2007년 2월 26일
* 공개일 - 2007년 2월 26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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