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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8.23 제주도 제주올레길18코스를 거닐다 <조천비석거리~연북정~죽도~닭머르~원당봉 불탑사, 불탑사5층석탑 구간>
  2. 2017.08.07 피서의 성지를 찾아서 ~~~ 부산 기장 동해바다 40리를 거닐다 (죽성리 월전, 대변항, 죽도, 오랑대, 해동용궁사)
  3. 2015.07.27 [피서 성지 순례] 부산 해운대~송정 바다 트래킹 (동백섬, 달맞이고개, 문텐로드, 청사포)

제주도 제주올레길18코스를 거닐다 <조천비석거리~연북정~죽도~닭머르~원당봉 불탑사, 불탑사5층석탑 구간>

제주도 겨울 나들이 (연북정, 제주올레길18코스, 불탑사)



' 제주도 겨울 나들이 '
(연북정, 제주올레길18코스, 불탑사)

조천 앞바다 (제주해협)

▲  조천 앞바다

제주올레길18코스 제주 불탑사5층석탑

▲  제주올레길18코스

▲  불탑사5층석탑

 



 

천하에서 가장 작은 대륙 제주도(濟州島), 그곳은 서울에서 비행기로 불과 1시간이면 닿
는 곳이나 2005년 여름 한라산(漢拏山) 이후, 이상하게도 오랜 세월 손과 마음이 가지를
않았다. 이러다가 제주도란 존재를 새카맣게 잊어버릴 것만 같아서 새해 벽두에 겨울 제
국의 핍박도 잠시 피해볼 겸, 사흘 일정으로 따뜻한 그곳에 나를 던져놓았다.

김포공항에서 이른 아침 비행기로 제주도(제주국제공항)로 넘어가 제주시내 서부에서 서
일주도로를 따라 여러 미답처(未踏處)를 흔쾌히 지워가며 서귀포 시내로 이동했다. 하루
를 꽉꽉 채우며 일정을 짜니 이 구간에서 이틀을 소비했는데, 마지막 날에는 천지연폭포
입구에 떠있는 새섬을 아침거리로 둘러보고 동일주도로를 따라 이동했다.
점심거리로 제주도의 시조인 3신인(三神人)의 혼인 설화가 깃든 온평리의 혼인지(婚姻池
관련글 보기)를 둘러보고 조천읍(朝天邑)으로 이동했는데, 본글은 바로 조천읍에서부
터 시작된다. (첫날과 둘째 날, 새섬과 혼인지 부분은 별도의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음)



 

♠  조천포구 둘러보기 (연북정, 조천진터)

▲  조천비석거리 - 제주도 지방기념물 31호

조천읍내 중심인 조천환승정류장에서 연북정으로 인도하는 조함해안로를 2~3분 정도 들어가면
검은 피부의 비석들이 우루루 나와 마중을 한다. 그들이 조천비석거리로 이름 그대로 비석이
늘어선 거리인데, 모두 9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중 7기가 지방기념물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나머지 2기는 20세기 이후 비석들)

비석의 주인공은 제주목사 김수익(金壽翼, 1600~1673)과 이원달(李源達, 1783~1857), 채동건
(蔡東健, 1809~1880), 백희수(白希洙, ?~?), 이의식(李宜植, 1848년에 재직함), 제주판관 김
응빈(金膺斌, 1846~1928) 등으로 이 땅에 흔한 관리들의 선정비(善政碑)와 불망비(不忘碑)이
다.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으로 비석 뒷면이 다들 아작나면서 비석의 건립 연대는 알 수가
없으며, 비석 6기는 대머리 스타일, 나머지 3기는 지붕돌 머리로 지붕돌 비석은 빗돌 부분을
감실(龕室)처럼 만들고 그 안에 빗돌이 따스하게 안겨져 있다.

관리들이 이곳을 통해 육지를 오가다 보니 여기에 그들의 비석을 세웠는데 (인근 화북포구도
비슷한 이유로 선정비가 많이 세워졌음;) 의미는 참 좋은 선정비이나 그 비석을 받을 자격이
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는지 저들에게 묻고 싶다. 아마도 상당수는 고개를 떨구겠지. 딱
히 공적도 없으면서 백성들을 들들 볶아 비석을 세우거나 돈 떼먹기용으로 비석을 남발한 관
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 조천비석거리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3470 (조함해안로 26)


▲  평화로운 모습의 조천포구

조천비석거리 서쪽에는 제주해협을 향해 가슴을 연 조천포구(조천항)가 펼쳐져 있다. 지금이
야 조그만 어항(漁港)으로 머물러 있지만 화북(禾北)포구와 함께 대한제국 시절까지 제주도와
육지를 잇던 포구로 바쁘게 살았던 제주도의 대표 관문이다. 조정에서 보낸 관리와 육지 사람
들이 이곳과 화북포구를 통해 제주도를 오갔으며, 제주도 사람들도 이 포구로 육지와 다른 세
상으로 나갔다.
조천이란 이름은 천자(天子)의 나라에 조회하러 간다는 뜻으로 그 천자란 제주도를 다스렸던
고려와 조선을 뜻한다. 조정에서 보낸 관리와 왕명(王命)이 이곳을 통해 제주도로 들어왔으며
, 그 중요한 현장에 조천진성과 나를 이곳으로 부른 연북정이 있다.


▲  조천진성(朝天鎭城) - 제주도 지방기념물 68호

조천진성(조천진)은 제주도의 특산물인 현무암으로 다져진 단단한 성곽으로 연북정을 품으며
제주해협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고려 때 조성된 것으로 제주도에 설치된 9개 진성(鎭城) 중
하나인데, 포구 관리와 수비를 담당했다.
1374년에 조천관(朝天館)이 세워졌으며, 1590년 제주목사 이옥(李沃)이 중수하여 둘레 428척,
높이 9척, 성문 1개를 지닌 성곽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이후 초루(礁樓)와 객사(客舍), 청
사(廳舍), 군기고(軍器庫), 포사(砲舍) 등이 세워졌으며, 조방장(助防將) 1명을 중심으로 치
총(雉摠) 2명, 성정군(城丁軍) 92명, 유직군(留直軍) 103명, 서기(書記) 12명이 배치되었고,
사후선(伺候船) 1척을 보유하고 있었다.

고약했던 왜정(倭政) 시절, 연북정을 제외한 시설물은 위치 확인도 어려울 정도로 모두 지워
져 연북정과 성곽만 겨우 남아있다. 성곽은 거의 잘 남아있으며, 성곽 동쪽에 동문터가 있고
북쪽은 북쪽은 바다와 접해있다.
현재 남아있는 성곽의 둘레는 128m, 외벽 높이 2.2~4.3m, 상부 폭 1.6~3.1m 정도이며, 2017~
2018년에 발굴조사를 벌이면서 성곽을 손질했다.

흔히 연북정만 알려져 있으나 그는 엄연한 조천진성의 망루이자 시설물이며, 조천진성과 연북
정은 하나의 몸이나 다름이 없다. 나도 연북정만 생각했지 조천진성의 존재는 생각도 못했다.


▲  조천진성 발굴 현장 (2018년)
이곳의 숨겨진 이야기를 캐내려는 굳은 집념으로 성곽 내부를 싹 뒤집어
조사를 벌이고 있다.

▲  연북정(戀北亭) - 제주도 지방유형문화재 3호

조천진성 성곽(城郭) 위에 기단을 다지고 높이 들어앉은 연북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 정자이다. 정자 안에는 마루가 있으며, 사방이 활짝 열린 모습으로 기둥의 배열과 건축
재료, 배열 방법은 제주도 주택과 비슷하다.
제주목사 이옥이 1590년 조천진성을 중수하면서 조천관을 중창해 쌍벽정(雙璧亭)이라 했으며,
그 쌍벽정이 1599년 중수되면서 연북정으로 이름이 갈렸다.

제주도는 조선 때 유배지<流配地, 귀양지>로 인기가 높았는데, 유배를 온 관리들이 연북정에
올라 육지에서 기쁜 소식(서울로 돌아오라는 제왕의 조서)이 날라 오기를 애타게 고대하며 북
쪽(서울)에 있는 임금을 그리워했다. (한편으로는 격하게 원망했을 듯) 그 연유로 연북정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고 전한다.
조천진의 망루 역할을 했으며 평소에는 제주목사 등의 높은 관리와 지역 양반들이 유흥을 즐
기거나 유배자들이 바다 너머를 바라보며 돌아갈 날을 기다렸다.

제주도에 가면 이 연북정은 꼭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서 이렇게 들리게 되었는데, 조금은 각박
한 성곽 계단을 오르면 연북정에 이르게 된다. 정자 내부까지 들어갈 수 있으며, 여기서 바라
보는 조망과 바닷바람 맛이 일품이다. 또한 제주올레길18코스가 연북정 옆구리를 지나가 예전
보다는 찾는 이가 좀 늘었다.


▲  연북정 현판의 위엄

하얀 피부 현판에 짙은 검은색으로 연북정 3자가 쓰여있다. 북(北)자는 마치 '터지(址)'처럼
보이며, 연(戀)은 가운데 '言'이 너무 격하게 솟아나 제자리로 속히 돌아가고 싶은 유배자들
의 마음과 자신들의 밥줄을 쥐고 있는 제왕에 대한 연모(한편으로는 원망)의 마음이 활활 타
오른 듯한 모습이다.

* 연북정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690


▲  연북정의 옆 모습

▲  연북정에서 바라본 조천포구와 원당봉

저 멀리 아른거리는 산이 원당봉(원당오름)이다. 조천에서 제주올레길을 따라 무려 저곳까지
도보로 이동하기로 했는데, 다행히 일몰 직전에 도착해 원당봉에 깃든 불탑사5층석탑까지 싹
둘러보고 기분 좋게 나들이를 마무리 지었다.


▲  서쪽에서 바라본 조천진성
오른쪽에 보이는 기와집이 연북정이다.

▲  두말치물

연북정 서쪽 해안에는 용천수가 치솟는 두말치물이라는 큰 샘터가 있다. 용천수란 빗물이 지
하로 스며들어 대수층(帶水層)을 따라 흐르다가 암석이나 지층의 틈새를 통해 바깥으로 나오
는 물로 그 틈새가 해안 지역에 많이 나타나 호랑이가 담배를 태우기 이전부터 그 주변에 마
을이 형성되었다. 제주도는 까칠한 현무암 피부라 비가 내리면 거의 지하로 내려가 물 문제가
늘 컸는데, 그 문제를 이런 샘터들이 해결해준 것이다.

두말치물은 물을 1번 뜨면 2말을 뜰 수 있다고 해서 유래된 것으로 그만큼 물이 풍부했다. 용
천수가 솟는 주위로 현무암으로 둑을 다져 바다와 경계를 그었는데, 지금도 물은 넉넉히 나오
고 있으나 상수도 시설에 밀려 거의 이용하지 않아 이제는 동네 명소나 옛날 유물 같은 신세
가 되어 버렸다. 사람도 그렇고 사물이나 건물이나 뒷전으로 밀려난 모습은 참으로 쓸쓸해 보
인다.


▲  두말치물에서 바라본 조천진성과 연북정



 

♠  제주올레길18코스 거닐기

▲  제주올레길18코스 조천리 해안 구간

제주올레길18코스는 조천만세동산에서 제주시내 간세라운지까지 이어지는 19.8km의 긴 올레길
이다. 이 코스에는 조천만세동산과 연북정, 닭머르, 불탑사, 사라봉 등의 명소가 있으며. 읍
내(조천읍)와 포구, 해안마을, 바다, 산, 들녘, 도시 한복판을 두루 거쳐 제주도의 다양한 모
습을 살펴볼 수 있다. 나는 18코스 구간 중 약 ⅓ 정도인 연북정~삼양해수욕장 구간만 거닐었
는데, 코스를 이리 짠 것은 연북정과 불탑사5층석탑을 모두 잡기 위함이다.
연북정에 이른 시간은 거의 15시, 일몰까지는 2시간 정도 밖에 남지 않아 서둘기는 했으나 전
투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아닌 듯. 한편으로는 여유롭게 할 것은 다하면서 움직였다.


▲  조천리 황씨종손(黃氏宗孫) 가옥 - 제주도 민속문화재 4-5호

올레길에 진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수상한 기와집이 살짝 눈빛을 보낸다. 그 눈빛에 이끌려
가보니 조천리 황씨종손 가옥을 알리는 안내문이 마중을 한다. 나를 이곳으로 부르기는 했으
나 사람이 사는 집이라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으며, 현무암으로 다진 제주도 스타일의 담장이
높이 둘러져 있어 아무리 까치발을 하여도 그 속살을 볼 수가 없다. 그렇다고 월담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입을 봉한 대문과 담장만 둘러보고 바로 물러났다.

이 가옥은 네모난 마당을 중심으로 남쪽에 자리한 안거리(안채), 북쪽의 밖거리, 서쪽의 모커
리가 'ㄷ'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동쪽에 대문을 지닌 문간거리(문간채)가 있다.
4칸 규모의 안거리는 16세기에 지어졌다고 전하며, 3m(약 10척)가 넘는 상방의 주칸은 제사를
지내는 종가(宗家)의 모습을 보여준다. 안뒤 공간과 연결된 2칸의 뒷낭간은 집안의 사적인 공
간이며, 3칸짜리 밖거리는 1940년에 지어졌다. 밖거리는 머릿방과 협문이 있는데, 이는 대한
제국 이후 제주도 상류 주택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집의 규모는 크지 않으나 제주도 상
류 기와집의 품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조천리 황씨종손 가옥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373 (조천9길 7)

황씨종손가옥과 멀지 않은 올레길 주변에 수륙
물이란 용천수 샘터가 있다. 샘터 주변을 돌담
으로 둘러 동네 여인들의 목욕 공간으로 만들
었는데, 아들을 얻지 못한 여인들이 자식을 점
지해줄 것을 빌던 곳으로 그 연유로 수덕물이
라 불리기도 한다.
허나 지금은 식수는 커녕 목욕 장소로도 거의
쓰이지 않아 한가로운 모습이며, 사진 중앙에
움푹 들어간 곳에서 용천수가 쏟아져 나와 찾
는 사람 거의 없는 수륙물을 늘 채워준다.

▲  조천리 수륙물(수덕물)

▲  제주올레길18코스 죽도 동쪽 구간
(신촌리 방향)

▲  제주올레길18코스 죽도 동쪽 구간
(조천리 방향)

조천리 구간을 지나면 바다와 땅이 뒤엉킨 곳이 나온다. 그곳의 중심에는 '죽도'란 섬이 있는
데, 남북으로 500m 정도 되는 작은 섬으로 동과 서, 남쪽이 둑방길로 제주도와 단단하게 이어
져 있다. 제주올레길18코스가 그런 죽도의 한복판을 지나가며, 섬 남쪽에 집 몇 채가 있을 뿐
대부분이 경작지와 주름진 바위 해변이다.


▲  지그재그 이어진 제주올레길 18코스 죽도 동쪽 구간

▲  제주해협을 향해 작게 입을 벌린 신촌포구 방파제

▲  신촌리 앞바다
저 까마득한 수평선 너머로 육지가 있다. 그곳이 혹시 보일까 싶어서 눈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살펴보았으나 역시나 거리 때문에 전혀
보이지가 않는다. (솔직히 보일 수가 없음)

▲  닭머르 해변

신촌리 마을을 지나면 닭머르란 해안이 나온다. 닭이 흙을 파헤치고 그 안에 들어앉은 모습처
럼 생겼다고 해서 닭머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는데, 기암괴석이 쭉 늘어서 있고 물고기들이
많아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다. 해변 정상에는 정자가 닦여져 있는데, 저곳까지 가는 것이 도
리가 되겠으나 원당봉까지 갈 길이 멀어 쿨하게 통과해버렸다.

이 날은 아침에는 날씨가 청명했는데 조천에 이른 직후부터 잔뜩 흐려졌다. 바다 또한 흥분기
를 보여 거친 파도로 해변을 마구 때려대고 제주도 특유의 바람까지 거세어 체감 날씨는 겨울
이상이었다. 제주도가 따스한 남쪽이라고 하나 바다 바람이 그 따스함을 크게 떨어트린다. 하
여 해변이나 한라산 나들이 때는 옷을 제대로 갖춰 입어야만 뒷탈이 없다.


▲  닭머르 해변을 거세게 쪼아대는 바다

▲  서쪽에서 바라본 닭머르 해변과 정자

제주올레길18코스 구간 중 신촌리 어촌계 탈의장에서 닭머르입구 구간(1.8km)은 해안누리길의
일원인 '닭머르길'이란 간판도 지니고 있다.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재단에서 선정한 걷기 좋
은 해안길의 일원으로 여기서 '문서천'이란 개천을 따라 5~6분 들어가면 습지 형태의 남생이
못이 있는데, 닭머르에 왔다면 그 습지도 같이 둘러보면 여로(旅路)가 더욱 살찔 것이나 나는
일몰 시간의 압박으로 닭머르만 총알처럼 지나가 버려 남생이못까지는 챙기지 못했다. 핑계이
긴 하지만 언제나 시간이 문제이다.


▲  닭머르 서쪽 해변

▲  점점 멀어지는 닭머르

▲  시비코지 주변 해변

▲  들판과 억새밭을 지나는 제주올레길18코스 (시비코지 남쪽)

조천부터 계속 바다를 따라 다녔던 제주올레길18코스는 시비코지 이후부터 잠시 바다를 버리
고 내륙으로 빠진다. 올레길 주변에는 현무암 돌담으로 구획된 밭들이 정겹게들 펼쳐져 있고
누렇게 뜬 억새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며 나를 반긴다.


▲  들판 사이를 지나는 제주올레길18코스 (시비코지 남쪽)



 

♠  이 땅에서 유일한 늙은 현무암 탑을 지닌 곳
원당봉 불탑사(元堂峰 佛塔寺)

▲  맞배지붕을 지닌 불탑사 사천왕문(四天王門)

들판을 달리던 제주올레길18코스는 원당봉(171m) 자락으로 들어가 불탑사 앞으로 나를 인도한
다.
삼양동 동쪽에 낮게 솟은 원당봉(원당오름)은 겉으로 보면 꽤 평화로운 모습이나 그는 측화산
(側火山) 출신이다. 즉 용암을 내뿜던 무시무시한 화산이었다. 그는 7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뫼로 왕년에는 용암과 화산재를 요란하게 내뱉었으나 몸이 노화되면서 한라산처럼 죽은 화산
이 되었다. 정상부에 있던 분화구는 물이 고여 습지가 되었으며, 이 습지를 '거북못'이라 불
렀는데, 근래에 연못으로 바뀌어 이곳이 먼 옛날 화산의 입이었음을 살짝 귀띔한다.
원당봉이란 이름은 몽골(원나라)의 기황후(奇皇后)가 세운 원당사란 절에서 비롯된 것으로 조
선 때는 원당악(元堂岳)이라 불렸으며, 정상부에 봉수대(烽燧臺)가 있어 이를 원당봉수라 하
였다.

원래 이번 나들이에서 불탑사와 원당봉을 제일 처음 찾아가 그 정상까지 가려고 했으나 코스
가 반대로 바뀌면서 마지막 답사지가 되었다. 또한 일몰 직전에 도착하여 원당봉 정상부는 가
지도 못하고 불탑사만 둘러보고 빠져 나와 다소 아쉽다. 허나 인연이 그것 밖에 안되는 것을
어찌하리요. 나머지 부분은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으로 쿨하게 넘겼다.


▲  불탑사 대웅전(大雄殿)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불탑사의 중심 건물(법당)이다.


원당봉 북쪽 자락에 포근히 둥지를 튼 불탑사는 14세기 중반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창건설
화에 따르면 몽골(원나라)의 제왕인 순제(順帝)가 아들이 없어 무척 애태우던 중, 꿈 속에서
승려가 나타나
'북두의 명맥이 비친 삼첩칠봉(三疊七峰)의 터를 찾아 절과 탑을 세워 기도하면 아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오'
하였다.
하여 신하들을 닥달하여 천하를 수소문해 제주도 동북 해변에서 그 삼첩칠봉을 찾았고, 그곳
에 탑과 절을 세워 사람을 보내 기도를 하니 마침내 아들을 얻었다고 한다.

순제의 2번째 황후가 그 유명한 기황후로 이 양반이 행주기씨 집안이자 친원(親元) 패거리의
핵심인 기철(奇轍)의 여동생이다. 몽골에 공녀(貢女)로 들어갔으나 고려 출신 환관이자 기황
후와 같은 지역 사람인 박불화(朴不花, ?~1364)의 도움으로 궁궐로 들어갔고, 순제의 총애까
지 받게 되어 아들까지 낳게 된다. 그 기세를 몰아 순제를 현혹시켜 기존 황후(皇后)를 내쫓
고 자신이 황후에 올랐으며, 권력까지 손에 쥐어 몽골을 통치했다.
순제가 아들을 얻고자 제주도 원당봉에 절을 세운 것은 기황후의 득남을 기원하고자 그리 한
것으로 여겨진다. 순제는 이미 건장한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들은 기황후의 모함을
받아 크게 고통을 받았음) 어쨌든 아들을 얻자 기황후가 원당사를 세운 것으로 여겨지며, 그
시절 제주도는 몽골이 설치한 탐라총관부(耽羅摠管府)의 관리를 받고 있었다.

원당사는 현재 불탑사와 맞은편 원당사 자리까지 아우른 규모로 법화사(法華寺), 수정사(水精
寺)와 함께 제주도의 대표적인 절이었다. 조선 중기까지 무탈하게 있었으나 숙종(肅宗) 시절
제주목사 이형상(李衡祥)이 제주도에 있던 절과 당집을 대거 정리하면서 파괴되고 만다. 그
시절 제주도에는 당(堂) 오백, 절 오백이 있었다고 전해 그만큼 무속신앙과 불교가 성행하고
있었다. 그러니 유교와 성리학(性理學) 사상이 뼛속까지 파고든 이형상의 눈에 곱게 보일 턱
이 없었다.
조선 후기에 재건되었으나 3번이나 불을 만나 쓰러졌으며, 1914년에 비구니 안봉려관(安蓬廬
觀)이 중건하면서 절 이름을 불탑사로 갈았다. 이후 1949년 4.3사건 때 파괴되었다가 1950년
대에 승려 이경호가 재건했고, 승려 양일현이 중창불사를 벌여 지금에 이른다.

조촐한 경내에는 대웅전과 심우당, 사천왕문 등 5~6동 정도의 건물이 있으며, 그 흔한 일주문
(一柱門)을 아직 갖추지 못해 사천왕문이 절의 정문 역할을 도맡고 있다. 소장문화유산으로는
보물로 지정된 현무암 피부의 5층석탑이 있으며, 발굴조사로 발견된 옛 원당사 시절의 금당터
와 요사터가 있다. 절 남쪽에는 불탑사의 옛 이름을 취한 원당사가 있으며, 제주올레길18코스
가 절 앞을 지나간다.

* 불탑사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1동 696 (원당로16길 41, ☎ 064-755-9283)


▲  불탑사 5층석탑 - 보물 1187호

대웅전 뜨락에는 불탑사의 꿀단지이자 상징물인 5층석탑이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딱 하나
밖에 없는 오래된 현무암 탑이자 제주도에서 가장 늙은 탑으로 불탑사란 이름은 바로 이 탑에
서 비롯되었다.
제주도에 걸맞게 현무암으로 닦여진 시커먼 피부의 탑으로 1단의 기단(基壇)과 5층 탑신(塔身
), 머리장식을 지니고 있는데, 기단은 뒷면을 뺀 3면에 안상(眼象)을 얕게 새겼으며, 무늬의
바닥선이 꽃무늬처럼 솟아나도록 조각했다. 1층 탑신 남쪽 면에는 감실(龕室)을 두었고, 지붕
돌은 윗면의 경사가 크지는 않으나 네 귀퉁이가 뚜렷하게 치켜올려져 있으며, 꼭대기에 올려
진 머리장식은 아래의 돌과 그 재료가 달라서 후대에 별도로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전체적인 탑 모습이 조형성이 적고 무겁게 보인다고 하여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
며, 불탑사 창건설화에 탑이 등장하는데 그 탑이 이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시대가 비슷하므
로 그런데로 맞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천하의 유일한 늙은 현무암 탑으로 제주도 지방유형문
화재 1호
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으나 1993년 국가 보물로 특진되었다.


▲  검은 피부가 매력적인 불탑사 5층석탑 (정면에서 본 모습)

▲  옛 원당사의 요사(寮舍)터

불탑사 경내를 싹 뒤집어 발굴조사를 했을 때, 여기서 건물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독립 기초
가 나왔다. 이곳은 요사(요사채)터로 여겨지며, 기단석과 주춧돌을 수습해 저 밑에 고이 묻고
그 위에 곱게 잔디를 입혔다.


▲  옛 원당사의 금당(金堂, 법당)터
건물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독립 기초와 요사채터와 연결된 계단이 발굴되었다.
이곳 역시 주춧돌을 묻고 그 위에 잔디를 입혔다.

▲  서쪽에서 바라본 옛 원당사의 금당터

불탑사를 둘러보니 어느덧 18시가 넘었다. 이곳을 끝으로 제주도 나들이는 모두 마무리가 되
었으며, 계획한 답사지는 3곳을 제외하고 모두 발자국을 남겼다. 알차고 보람차게 여로를 마
무리 지으니 마음이 뿌듯했으나 한편으로는 '벌써 제자리로 돌아가야 되나?' 싶어 아쉬운 마
음도 실로 컸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를 더 머물고 싶었으나 이번 나들이는 계획대로 여기서
쿨하게 정리했다. 제주도는 바다를 건너거나 하늘을 넘어야 되는 부담감이 있어서 그렇지 언
제든 찾을 수 있는 곳이니 다음 인연을 기다리면 된다.

제주올레길18코스를 마저 타고 삼양동 시내로 내려왔으나 너무 아쉬운 마음에 삼양해수욕장을
저녁거리로 둘러볼까 했다. 허나 바닷바람도 차고 몸도 지쳐서 시내버스를 타고 제주국제공항
으로 넘어갔다.
공항에 들어서니 서울이나 부산, 광주 등 육지로 가려는 사람들과 외국 방면 사람들로 북새통
을 이룬다. 예약한 비행기표를 발권받아 탑승 수속을 밟고 비행기 기다리는 곳에서 제주도 감
귤 초콜렛 2상자를 기념품으로 구입했다.
시간이 되자 김포공항으로 가는 티웨이(T-Way)항공 비행기에 나를 담았는데, 비행기가 탑승동
에 몸을 대지 않고 활주로에서 대기하고 있어서 그곳으로 인도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2~3분 정
도를 가서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는 예정시간보다 30분 늦게 제주공항을 출발했고, 50분 정도를 날다가 서울의 하늘 관
문인 김포공항에 가뿐하게 착륙했다. 사흘 만에 서울 공기를 다시 맡으니 확실히 차긴 차다.

이렇게 하여 제주도 나들이는 다음의 인연을 고대하며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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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의 성지를 찾아서 ~~~ 부산 기장 동해바다 40리를 거닐다 (죽성리 월전, 대변항, 죽도, 오랑대, 해동용궁사)



' 기장 동해바다 나들이 (죽성리 월전에서

대변을 거쳐 해동용궁사까지) '

▲  연화리 앞바다 (멀리 보이는 곳은 대변항)


 

  월전에서 대변까지

▲  남쪽에서 바라본 월전포구

기장읍 동쪽 죽성리(竹城里)에서 시작된 우리의 기장 동해바다 봄나들이는 죽성리 일대의 명소
<죽성리해송(海松), 죽성리왜성(倭城), 황학대(黃鶴臺), 죽성성당>를 두루 둘러보고 월전을 거
쳐 대변으로 향했다. <기장 죽성리 부분은 ☞ 이곳을 흔쾌히 클릭
>

월전에서 대변까지는 3km 정도 된다. 이 구간을 운행하는 대중교통은 하나도 없으며, 1.5~2차
선 정도의 길(기장해안로)이 바다와 적당히 거리를 두며 펼쳐진다. 월전 남쪽에는 식당을 비롯
해 분위기를 내세운 카페들이 여럿 뿌리를 내렸고, 그 이후 대변 동쪽까지는 드문드문 별장처
럼 생긴 집들이 보일 뿐이다. 휴일이라 그런지 대변이나 월전으로 외식을 하러 가거나 드라이
브를 나온 차량들이 수시로 매연을 뿜고 지나갔고, 대변~월전 구간을 걸어서 이동하는 도보꾼
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바닷가는 중간에 등대가 있는 곳과 몇몇 장소를 빼고는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


▲  가지각색의 기암들이 율동을 부리는 월전 남쪽 바닷가

▲  바다와 자갈과의 속삭임
물이 얼마나 푸르던지 4월 중순이란 시간을 잊고 풍덩풍덩 들어가고 싶다.

▲  바닷가에서 만난 튤립(Tulip)의 위엄
아주 잘익은 빨간 튤립 6송이와 노란 튤립 2송이가 바다 바람을 따라 경쾌하고도
귀엽게 봄의 율동을 선보인다.

▲  월전과 대변 사이의 바닷가
바다에 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설마 저기서 석유를 시추하는 것은 아니겠지?

▲  잠시 우리가 왔던 북쪽(죽성, 월전)을 돌이켜보다.

▲  대자연의 물감이 빚어낸 동대해

아무리 천재화가라 한들 대자연 형님이 빚은 작품 앞에서는 그저 한줄기 낙서에 불과하다. 아
무리 용을 써서 흉내를 내어 본들 저런 빛깔은 나오기 힘들 것이다. 사람이 만든 색깔이 어찌
대자연이 빚은 천연의 색깔만 하리요. 그만큼 인간은 대자연 앞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
럼에도 인간은 자연과 공존하거나 섬기지는 못할 망정 계속 괴롭히고 정복하려고만 드니 자연
의 인내력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지 의문이다. 그의 인내가 폭발하면 결국 서로가 좋지 못할
텐데 말이다.


▲  대변 북쪽 바닷가
이 부근에 영화 '친구'를 찍은 바닷가가 있다.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
수영하고 놀던 그 현장 말이다.

▲  대변 동쪽 방파제
좀처럼 나오지 않을 것 같던 대변항이 끝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대변항(大邊港) 둘러보기

▲  대변항의 심장부에 들어서다, 대변항 어시장

월전에서 3km를 가니 나올 것 같지 않던 대변이 방파제를 시작으로 서서히 속살을 보이기 시작
한다. 바다를 따라가면서 수다도 떨고 이리저리 사진도 찍고 바다에 무심히 돌도 던지며 가다
보니 그 거리가 썩 지루하지 않았던 것이다.


▲  대변항 앞바다
방파제가 남,북으로 길게 방패처럼 둘러져 있고 동쪽에는 죽도가 떠있어
파도와 태풍에도 거의 끄떡없는 안전한 항구의 요건을 갖추었다.


이름도 좀 거시기한 대변리(大邊里)에 뉘어있는 대변항은 기장군에서 가장 큰 항구이자 기장을
포함한 부산을 대표하는 어촌(漁村)으로 천하에 제법 알려진 곳이다. 기장의 명물인 미역과 멸
치회로 유명하며, 매년 4월에는 기장 멸치축제가 성황리에 열린다,

대변항은 거의 'C'자 모양으로 육지쪽으로 크게 움푹 들어갔는데, 항구의 남북 폭은 300m 정도
이며, 항구 앞에는 죽도란 조그만 섬이 두둥실 떠 있어 자연산 방파제가 되어준다. 하여 일찍
부터 어촌으로써 크게 발전을 누렸으며 방파제까지 2중으로 두르면서 안전한 항구로 그 품격을
높였다.
새벽을 시작하는 도시, 기장 고을에 걸맞게 아침 일찍부터 바다로 조업을 떠나는 배들로 대변
항은 정신이 없으며 동이 트면 어시장도 활기를 누린다. 늦은 시간까지 싱싱하고 물오른 해산
물을 구경하고 먹을 수 있으며, 이곳으로 끌려온 생선과 해산물은 다양한 판매 경로를 통해 서
울을 비롯한 천하로 절찬리에 팔려나간다.
 
대변리 한복판에 있는 대변초교에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부질없는 쇄국정책의 꿈이 담긴
척화비(斥和碑)가 있는데 학교 바깥에서도 바라보이며, 기장읍내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토암도
자기공원이 있다. 또한 바다를 따라 남쪽으로 가면 오랑대공원으로 이어지며 북쪽으로는 죽성
리와도 이어져 대변항을 중간지 또는 기/종점으로 삼아 해안 산책이나 트래킹을 즐길 수 있다.


※ 대변항 찾아가기 (2017년 7월 기준)
* 부산 지하철2호선과 동해선 벡스코역(9번 출구)에서 부산시내버스 139, 181번을 타고 대변이
  나 대변항입구 하차
* 부산 지하철2호선 해운대역(7번 출구)에서 181번 시내버스 이용
* 부산 동해선 송정역(1번 출구 건너편)에서 139번 시내버스 이용
* 승용차
① 부산시내 → 송정3거리 우회전 → 기장해안로 → 대변항 (또는 송정3거리에서 직진하여 연
   화육교 교차로나 청강4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들어가도 됨)
② 부산시내(반송) / 울산 → 기장군청 → 청강4거리 좌회전 → 대변항
* 소재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


▲  풍어(豊魚)를 꿈꾸며 항구에 몸을 기대 고단한 몸을 쉬는 어선들

▲  대변항 풍경
평화로운 어촌 풍경이 오염된 안구를 조금이나마 정화시켜준다.

▲  바다 너머로 보이는 대변항 북쪽과 붉은 피부의 등대

▲  대자연이 대변 앞바다에 살짝 던져놓은 푸른 점 하나, 죽도(竹島)

앞서 죽성리에 황학대가 있다면 대변리에는 죽도가 있다. 둘 다 섬이긴 하나 황학대는 연륙되
어 버렸고 오직 죽도만 섬으로 남아있는데, 기장 지역의 유일한 섬으로 (조그만 바위섬 제외)
예로부터 기장 제일의 해안 명소로 명성이 자자했으며, 기장8경의 하나로 추앙을 받고 있다.
섬의 모습이 거북이를 닮았다고 하며 대나무가 많아 죽도란 흔한 이름을 지니게 되었는데, 비
오는 날 밤에 빗방울이 대나무잎을 스치면서 내는 청아한 소리가 사람들의 귀를 부여잡으면서
야우(夜雨)의 승경으로 꼽히기도 했다. 또한 시원한 샘이 있어 마을 사람들이 애용했으며, 조
그만 암자가 있었으나 이미 옛날에 사라지고 없다.

예전에는 육지와 200m 정도 떨어져 있어 사람들이 배를 타고 들락거렸으나 주변 바다를 야금야
금 메우면서 섬의 덩치가 조금 불었다. 그래도 섬의 성격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으나 섬 전체
가 어느 개인에게 넘어가면서 아무나 갈 수 없는 금지된 섬이 되버렸다.
섬 주인은 육지까지 다리를 가설해 섬을 한반도에 단단히 붙들어 두었으나 기왕 다리까지 만든
거 대변항의 상징으로 속세에 개방해 관광지로 꾸미면 어떨까 싶다. 허나 섬 주인은 그럴 생각
은 전혀 없는 모양이다. 원래부터 기장의 공유 명소였던 죽도를 왜 혼자서만 누리고 있는지 그
저 야속할 따름인데 기장군에서 섬을 매입하거나 섬 주인과 협의하여 시민들의 품으로 흔쾌히
돌려주는 것이 어떨까 싶다.


▲  대변항 남쪽 앞바다 - 푸른 물감이 잔잔한 여울을 이룬다.

▲  대변항 남쪽에서 바라본 연화리

▲  대변항 앞바다 바위를 점거한 구공(鷗公, 갈매기)들
사람들의 손이 미치기 어려운 조그만 바위섬에 구공들이 들어와 그들만의 조그만
세상을 꾸린다. 한때 새우깡의 제왕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입맛이 고급이
되었는지 이제는 별로 거들떠도 안보는 것 같다.

▲  대변항 남쪽 풍경 (녹음이 우거진 중간 부분이 죽도)


 

  연화리에서 오랑대까지

▲  연화리에서 멀리감치 바라본 대변항

▲  물빛이 진한 연화리 앞바다

대변항에서 연화리 앞바다까지는 길이 이어져 있다. 길가에는 해산물을 취급하는 식당들이 많
이 있는데 4월의 한복판임에도 벌써부터 옷깃을 풀게하는 철모르는 더위와 죽성리부터 걸어온
피곤함으로 잠시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며 두 다리를 달래기로 했다.
허나 가게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마침 이쁘게 치장된 까페 하나가 사막 속에 오아시스
처럼 나타나 우리를 손짓한다. 그를 보는 순간 시원한 걸 마시며 쉬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솟
구쳐 별 망설임 없이 그곳에 발을 들였다. 처음에는 빙수를 먹으려고 했으나 여름에만 판다고
해서(그때 날씨가 거의 여름이었음;;;) 흔한 이름의 커피 종류를 시켰다.

여기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10리 이상 부려온 두 다리의 불만도 잠재우고 이른 더위의 압박
에서 벗어나 일다경(一茶頃)의 여유를 누린다. 까페는 2층 규모인데, 차를 마시러 온 가족 단
위와 중년층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  연화리 까페에서 마신 커피의 위엄

▲  멀리서 본 오랑대(五郞臺)

까페에서 30분 정도 머물다가 다시 길을 떠났다. 시간은 이미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바
다 위에 높이 뜬 햇님은 퇴근시간이 점점 늦어짐을 원망하며 햇살의 강도를 점차 줄이면서 퇴
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연화리 까페에서 바다를 따라 1km 정도를 가니 머리에 조그만 건물과 탑을 지고 있는 허벌나게
큰 바닷가 바위가 모습을 비춘다. 그가 바로 오랑대이다.


▲  꼬깔모자를 연상시키는 오랑대 (꼭대기에 자리한 건물은 용왕각)

오랑대는 기장의 주요 해안 명소의 하나이다. 조선 어느 때에 이곳으로 유배를 온 사람이 있었
는데, 그의 친구 5명이 머나먼 이곳까지 놀러와 오랑대 바위에서 곡차(穀茶)를 겯드리며 가무(
歌舞)을 즐기고 시를 읊으며 놀았다고 한다. 그래서 5명의 선비를 뜻하는 뜻에 오랑대란 이름
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 전설임)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 광경이 가히 장관으로 주변에는 멋드러진 기암괴석이 많다. 오랑대를
원시적인 모습으로 내버려 두었으면 좋으련만 오랑대 바닷가에 자리한 혜광사(慧光寺)가 그곳
을 접수하여 바위 꼭대기에 석축으로 자리를 다지고 용왕각(용왕단)을 달면서 보기가 좀 딱하
게 되었다. 용왕각 지붕에는 괴상하게도 하얀 피부의 3층석탑을 올려놓았는데 멀리서 보면 오
랑대 용왕각의 모습이 마치 만화에 나오는 꼬깔모자처럼 보인다.


▲  오랑대 지붕에 자리한 용왕각

▲  용왕각에 봉안된 동해 용왕상

오랑대를 옆구리에 낀 혜광사는 법등(法燈)이 매우 짧은 현대 사찰이다. 오랑대 옆에 터를 다
지고 들어선 바닷가 절집으로 대자연이 빚은 오랑대를 휼륭한 후광(後光)으로 삼아 절을 꾸린
다.
오랑대 용왕각에는 용왕이 봉안되어 있는데 그 좌우에는 앳된 동자(童子)상이 있으며 용왕 뒤
로 유리창을 내어 그의 활동무대인 동대해가 보이게끔 했다. 지붕에는 네 모서리에 용머리를
달아 건물의 품격을 높이려고 애썼으나 시멘트 집이라 썩 정감은 가지 않는다. 절집답게 목조
기와집으로 지으면 좋으련만 그런 것을 배려하지 않은 것이다.

※ 오랑대 찾아가기 (2017년 7월 기준)
* 부산지하철 2호선 해운대역(7번 출구)에서 부산시내버스 100, 181번을 타고 혜광사 하차, 혜
  광사 방면으로 도보 7~8분 (100번이 그나마 배차간격이 짧다. 139번과 181번은 거의 20분 간
  격)
* 부산 동해선 송정역(1번 출구 건너편)에서 139번 시내버스를 타고 혜광사 하차.
* 승용차 (혜광사에 주차장 있음)
① 부산시내 → 송정3거리 우회전 → 기장해안로 경유 → 혜광사입구 우회전 → 혜광사
② 부산시내(반송) / 울산 → 기장군청 → 연화육교 교차로 좌회전 → 기장해안로 → 혜광사입
   구 좌회전 → 혜광사

* 오랑대 소재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연화리 (혜광사 ☎ 051-721-3167)


▲  1칸 규모로 조촐한 용왕각

▲  오랑대 주변 풍경 - 낚시삼매에 빠진 강태공들이 여럿 보인다.

▲  오랑대에서 바라본 대변항

오랑대를 둘러보고 바다를 따라 해동용궁사 방면으로 이동했다. 허나 군부대로 그만 길이 막혀
부득이 혜광사 뒤쪽 산길을 이용해 기장해안로로 탈출했다.

기장해안로 주변은 혜광사입구부터 당사리까지 관광단지와 쇼핑타운를 짓는다면서 산과 들판을 
죄다 밀어버려 폐허의 공간처럼 아주 흉물스러운 모습이었다. 인근에 오랑대와 해동용궁사, 대
변항, 국립수산과학원, 국립부산과학관 등의 명소를 받쳐주기 위한 관광단지라고 우기고 있으
나 굳이 그런 것이 없어도 이들 명소를 찾는 발길은 여전하다. 고위 위정자 밥버러지들이 그저
개발과 돈, 치적 쌓기에만 급급해 안그래도 좁은 강토를 자꾸 바람직하지 않게 건드리니 실로 
씁쓸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개발의 칼질과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이 어색하게 공존하는 시랑리를 지나니 어느덧 용궁사입구
에 이르렀다. 여기서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를 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고심하다가 이곳
까지 온 거 잠깐 들리기로 했다.
용궁사는 2000년과 2014년에 가본 기억이 있는데, 오랜만에 발을 들인 바닷가 사찰, 용궁사는
관람객들로 완전히 시장통을 이루었다. 경내 곳곳에 불전함이 깨알처럼 자리해 돈을 요구하고
있고 바닷가든 대웅전(大雄殿) 앞이든 사람들이 징그럽게 많아서 거의 사람들 뒷통수만 본 것
같다. 이곳은 딱히 정도 들지 않고 사진에 담고 싶은 생각도 없어 대충 1바퀴 살피고 나왔다.

용궁사를 나오니 시간은 18시, 송정까지 마저 행군할까 하다가 너무 피곤하여 걷는 것은 여기
서 쿨하게 접고 부산시내버스 181번(기장 청강리↔센텀시티)에 고된 몸을 싣고 시내로 나왔다.

이날 죽성리에서 용궁사까지 걸은 거리는 거의 40리 정도, 우스개 소리로 거의 몇 달 걸을 분
량을 그날 하루에 다 걸었고, 바다도 정말 지겹게 두 눈에 넣어서 당분간 바다를 안봐도 섭섭
하지 않을 듯 싶다.

이렇게 하여 봄의 한복판에 판을 벌인 기장 동해바다 나들이는 재생이 불가능한 아련한 과거의
일부로 산산히 흩어지고 말았다. 역시나 사람의 인생은 무상(無常)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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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 성지 순례] 부산 해운대~송정 바다 트래킹 (동백섬, 달맞이고개, 문텐로드, 청사포)

 


' 부산 해운대~송정 바다 산책 '
(동백섬, 달맞이고개, 문텐로드, 청사포, 구덕포)

해운대해수욕장

▲  해운대해수욕장

▲  문텐로드 오솔길

▲  송정해수욕장


 


반년 가까이나 천하의 절반을 지배하던 겨울 제국(帝國)이 완전 저물고 봄이 하늘 아래 세

상을 말끔히 해방시킨 4월 첫 무렵 주말에 따뜻한 남쪽, 부산을 찾았다.
부산(釜山)의 오랜 단골집인 광안동(廣安洞) 선배 집에 여장을 풀고 인근 고깃집에서 삼겹
살에 곡차(穀茶, 술)를 들이키며 간만에 회포를 풀었다. 그렇게 코가 비뚤어지도록 곡차를
마시고 자정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오전, 찬란한 여명과 선배의 재촉에 졸린 눈을 비비며 깨어났다. 해는 이미 중천에
올라 천하를 비춘다. 아직까지는 초봄이지만 따스한 남쪽이라 한낮에는 다소 더울 듯 싶어
반팔 옷을 지원받아 착용하고 그 위에 긴 옷을 걸쳤다. 역시나 시작부터 덥기 시작하여 광
안동으로 돌아올 때까지 내내 반팔로 다녔다. 이렇게 나갈 채비를 하고 11시 정도 집을 나
섰다.

그날 일정은 동백섬에서 시작하여 해운대해수욕장, 달맞이고개, 청사포, 구덕포를 경유 송
정까지 해안을 따라 거닐며 봄꽃 구경까지 겸한 10여 리의 해안 산책으로 광안역에서 부산
시내버스 40번(청강리공영차고지↔구덕운동장)을 타고 해운대 직전인 운촌에서 내렸다. 바
로 여기서부터 대장정의 해안 산책이 시작된다.


▲  해운대 대우마리나아파트 벚꽃길 ▼

운촌 서쪽 부근에 대우마리나아파트가 있다. 그 아파트 주변 도로에 벚꽃이 장관을 이루며
길다란 벚꽃길을 이루고 있는데,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겨울 눈이 봄의 눈치를 받은 탓일까
? 그대로 벚꽃으로 변한 듯하다. 대자연이 빚은 순백(純白)의 아름다움 앞에 우리가 할 일
은 그저 감탄사 연발과 사진 찍기 밖에는 없다. 잔잔히 스치는 바람에 벚꽃잎은 비처럼 우
수수 흩날리며 대지를 적시고, 정처 없는 나그네의 마음을 수 차례씩 앗아간다. 이런 풍경
이 바로 조그만 선경(仙境)이 아니겠는가?


▲  순백의 종결자 - 벚꽃의 위엄
겨울 제국의 오랜 시련을 극복하고 흐드러지게 꽃망울을 피운 벚꽃들
허나 저들의 천하도 김옥균(金玉均)의 3일 천하만큼이나 짧으니
사람이든 꽃이든 인생이란 정말 무상한 것 같다.


♠  해운대의 꽃 ~ 동백(冬柏)섬 (동백공원)
부산 지방기념물 46호

▲  동백섬 산책로 (최치원 동상에서 해운대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 길)

대우마리나아파트 동쪽 길을 가면 동백4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남쪽으로 길을 건너 동백교란 다
리를 건너면 숲이 무성한 해운대의 꽃, 동백섬(동백공원)이 펼쳐진다.
해운대해수욕장 서남쪽에 자리한 동백섬은 그 이름 그대로 동백나무의 섬으로 원래는 해변 앞에
두둥실 뜬 조그만 섬이었다. 그러다가 수영강(水營江)과 장산(萇山)에서 흘러내린 흙과 모래가
억겁의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이면서 동백섬과 해변을 조금씩 이어주었고 끝내는 하나가 되어
한반도의 어엿한 일부가 되었다.

동백과 해송(海松)이 무성한 이곳은 신라가 망해가던 9세기 후반, 최치원(崔致遠)이 벼슬을 버
리고 천하를 방랑하던 중 이곳 풍경에 단단히 매료되어 동백섬 남쪽에 잠시 머물렀다고 한다.
그는 머문 기념으로 누리마루 동쪽 해변에 '해운대(海雲臺)'란 바위글씨를 남겼는데, 해운대란
지명은 바로 여기서 나왔다고 하며, 해운(海雲)은 그의 수많은 호 중의 하나이다. <고운(孤雲)
이 대표적인 호임>
그가 신기루처럼 사라진 이후, 수많은 문인(文人)들이 해운대의 명성을 듣고 앞다투어 찾아와
시와 글, 그림을 남겼으며, 대한8경의 하나이자 부산 제일의 관광지로 변함없는 전성기를 누리
고 있다. 흔히 해운대하면 해운대해수욕장과 해운대역(2호선) 주변 번화가를 생각하기 쉽지만
해운대의 원조는 바로 동백섬이다.

동백섬을 이루는 야트막한 언덕은 운대산(雲臺山)이라 불리는데, 그 정상에는 최치원의 동상과
기념비가 세워져 조그만 최치원 유적지를 이루고 있다. 해안산책로와 누리마루는 사람들로 미어
터지지만 정상 주변은 그 1/10 정도로 인적이 적다. 이는 관광객 상당수가 바다만 생각하지 공
원을 이루는 산(언덕)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안 산책로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거미줄처럼 형성되어 있으므로 어디로 오르든 정상으로 통
하며, 해수욕장과 이어지는 동쪽 해변에는 인어공주상과 해운대 바위글씨가 있고, 남쪽 해변에
는 등대와 2005년 APEC 21개국 정상회의가 열렸던 세계적인 명소, '누리마루 APEC하우스'가 둥
지를 틀었다.

울창한 해송과 여인네의 입술처럼 붉은 동백, 그리고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천하 제일의 명승지
로 해운대의 얼굴이며, 해운대해수욕장을 찾았다면 누리마루를 포함한 동백섬 일대를 꼭 둘러보
기바란다. 동백섬 일대는 길게 잡아도 1~2시간 내외면 충분히 둘러본다.


▲  동백섬 서쪽 해변에서 희미하게 다가오는 광안대교(廣安大橋)

▲  동백섬 남쪽 산책로 (누리마루 입구)

▲  동백섬 남쪽 산책로에서 바라본 천하 (멀리 보이는 산은 이기대)
아무리 천재화가라고 해도 결코 나오기 힘든 바다의 푸른 빛깔~~ 사람이 만든 색깔이
어찌 대자연이 만든 천연 물감만 할까?

▲  누리마루APEC하우스(누리마루)

동백섬 남쪽 해안에는 2005년 APEC 정상회의가 열렸던 특이한 모습의 건물, 누리마루가 시원한
바닷바람을 벗삼으며 자리해 있다. 해운대의 새로운 꿀단지로 크게 조명을 받은 이곳의 정확한
명칭은 '누리마루 APEC 하우스'로 '누리'는 세계, 세상을 뜻하는 우리 말이며, '마루'는 정상,
꼭대기를 의미하는 우리 말이다. 그러니까 순수 우리말로 '세계의 우두머리들이 모이는 집'이란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누리마루는 부산시가 194억의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어 지은 것으로 2004년 9월에 공사를 시작
하여 2005년 9월 30일에 완공을 보았다. 건물 높이는 지상 3층의 24m, 연건평은 905평으로 그
모습은 우리나라 전통 정자(亭子)를 모델로 하였으며, 지붕은 동백섬의 아름다운 능선을 형상화
하였다. 건물을 받치는 12개의 기둥은 부산의 역동적인 모습을, 내부 장식은 우리나라의 전통문
화를 시각적으로 나타내었고, 대들보 형태로 만들어 단청을 입힌 로비 천장과 대청마루를 닮은
로비 바닥, 경주 석굴암(石窟庵)의 천정을 모방한 정상회의장, 그리고 구름 모양을 형상화한 오
찬장까지, 건물 곳곳에 이 땅의 전통 양식이 짙게 배어 있다.

2층에는 오찬장과 행사요원실, 간이주방, 홀 등이 있으며 3층에는 회의장, 정상대기실, 수행원
대기실 등이 있는데 이곳에서 바로 제3차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열렸다.
회의에 참석한 다른 나라 우두머리와 수행원, 언론 기자들은 앞을 다투며 역대 정상회의장 가운
데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평가했다.

APEC회의가 역사의 일부로 사라진 이후, 2006년 2월까지만 일반에 공개하기로 했으나 해운대의
새로운 명소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자 애초의 생각을 바꾸고 지금까지도 별일이 없는
이상은 계속 속세에 문을 열어두고 있다. 나에게도 많은 추억이 서린 곳이라 간만에 들어가 보
려고 했으나 내 마음 같지 않던 선배의 거부권 행사로 그냥 통과하고 말았다.

★ 누리마루 관람정보 (2015년 7월 기준)
* 관람시간 : 9시 ~ 18시 (입장은 17시까지, 매주 1째 주 월요일은 휴관이며, 국제회의나 기타
  주요 행사가 있을 때는 관람 제한)
* 공개된 구역만 고분고분 다녀야 되며, 일반인 금지구역은 애써 들어가지 말 것.
* 입장료는 없으며, 내부 사진촬영은 자유이다. (단 약간의 제약이 있음)
* 1층에는 APEC 기념품점이 있다.
* 소재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동백로 116)
* 누리마루 홈페이지는 위의 누리마루 사진을 클릭한다 (문의 ☎ 051-744-3140)


▲  동백섬 등대
해운대 주변을 지나는 배들을 위해 오늘도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등대.
등대 주변 풍경이 너무 속시원하여 가슴이 확 트이고도 남음이 있다.

▲  해운대 바위글씨 - 부산 지방기념물 45호

동백섬 등대에서 동쪽(해운대해수욕장이 바라보이는 쪽) 아래 자갈밭으로 시선을 옮기면 '海雲
臺'란 글씨가 새겨진 울퉁불퉁한 피부의 바위가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곳이 바로 해운대의 지
명 유래가 된 현장으로 9세기 후반 최치원이 직접 새긴 것이라고 전한다. (해운은 그의 호)
허나 글씨의 건강 상태가 1,100년 묵은 것 치고는 너무 양호한 것 같고 최치원을 흠모하던 이들
이 절경이 좋은 곳에 그와 관련된 적당한 이야기를 만들어 붙인 터라 별로 믿을 바는 되지 못한
다. 아마도 후대에 그를 기리던 누군가가 썼을 지도 모른다. 다만 고려 후기에 활약했던 정포(
鄭誧 1309~1345)의 시에
'대는 황폐하여 흔적이 없고, 오직 해운(海雲)의 이름만 남았구나'
라는 구절이 있어, 그 당시에
도 저 글씨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바위글씨가 바닷가에 있어 오랜 세월 비바람과 파도에 괴롭힘을 받은 탓에 가운데 글씨인 '雲'
자가 조금은 닳았으나 나머지 글씨는 거의 양호하여 시력이 좋고 한자만 안다면 알아보는데 그
리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관광특구 해운대 지역의 유일한 문화유적이건만 눈여겨 보는 이는 별로 없다. 한결같이 바닷가
경치와 누리마루에만 혼들이 빠져있을 뿐이다.


▲  동백섬 정상에 자리한 최치원 동상
동백섬을 이루는 운대산 정상에 최치원의 동상이 있다. 동상 좌우로 병풍처럼
늘어선 하얀 벽면에는 이은상(李殷相)과 김충현(金忠顯)이 직접 쓴 최치원의
시 10편이 새겨져 있으며, 동상 앞에는 넓게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해안 산책로와 달리 이곳은 인적이 적어 한적해서 좋다.

              ▲  최치원 유적비
그가 정녕 해운대의 전설처럼 이곳에 머물렀는
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오로지 잠시 머물렀다
는 한토막 야사 하나만으로 유적비를 세우고 동
상을 세워 그의 유적지를 조성한 것이다.

▲  최치원 동상 동쪽에 자리한 2층 해운정
(海雲亭)
최치원의 후손과 그를 기리는 이들이
세운 정자로 별로 특별한 것은 없다.


▲  최치원 동상에서 속세로 내려가는 산책로
동백섬은 해안도 아름답지만 동백꽃 향기로 무성한 정상으로 오르는 산책로가 단연
백미가 아닐까 싶다. 허나 아쉽게도 많은 이들은 겉으로 드러난 해안산책로와
누리마루만 볼 뿐, 이렇게 아름다운 해운대의 속살을 지나치고 만다.

▲  최치원 동상에서 속세로 내려가는 산책로 (2)

※ 동백섬(동백공원) 찾아가기 (2015년 7월 기준)
* 부산지하철 2호선 동백역(1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누리마루와 최치원동상은 도보 20분)
* 부산 139, 307, 1003번(좌석) 시내버스를 타고 동백섬입구 하차, 도보 5~6분
* 동백섬 북쪽과 송림공원 주변에 주차장이 있다. 공짜 주차를 원한다면 동백섬 민영주차장 서
  남쪽에 자리한 무료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휴일에는 늘 미어터짐)

★ 동백섬 관람정보

* 입장료는 없음, 주차비 징수 (공짜 주차장도 있음)
* 누리마루 주변 일부는 접근이 통제되어 있다.
* 소재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1동


♠  대한8경의 한 곳이자 부산의 화려한 입술
해운대해수욕장(海雲臺海水浴場)

해운대해수욕장은 우리나라 해수욕장의 대명사이자 수백만의 피서객이 몰려오는 피서의 성지(聖
地) 및 국제적인 관광지이다. 예로부터 백사청송(白沙靑松)과 동백섬의 수려한 경관으로 대한8
경의 하나로 손꼽히던 경승지인데, 신라 때부터 명성이 자자하여 해운대 온천에 신라 귀족들이 
놀러왔다는 기록이 있으며, 9세기 후반에 최치원이 이곳 풍경에 퐁당퐁당 빠진 나머지 동백섬에
잠시 머물며 자신의 호 중 하나인 해운(海雲)을 바위에 새겼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이곳 이름
이 해운대가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시인묵객들들이 해변이 닳도록 찾아와 해운대의 아름다움을 시와 노래로 표현했고, 20
세기에 들어와서 해수욕장과 온천, 동백섬을 중심으로 꾸준히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해마다 헤아
리기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국내외 관광객들로 시장통을 이루는 어엿한 세계적인 명소로 성장했
다. 우리나라의 주요 관광 특구로 부산에 처음 가본 사람이라면 필수로 들려야 되는 부산 초보
관광지의 하나이기도 하다.

해운대해변은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가 적어서 물놀이 하기에 좋으며, 여름에는 모래사장이
꺼지도록 피서객들이 몰려와 뉴스에 자주 회자되기도 한다. 피서철 휴일에는 최대 수십만 명이
백사장에 발자국을 남기며, 봄/가을/겨울 주말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찾는다.

해안 길이는 1.6km로 부드러운 곡선의 해안을 따라 여러 호텔과 고층 빌딩이 줄지어 섰으며, 해
운대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아쿠아리움이 있다. 해변 서쪽에는 웨스틴조선호텔이 동백
섬과 해변의 경계를 짓고 있으며, 해변 동쪽에는 횟집이 즐비한 미포가 있고, 그 미포를 지나면
달맞이고개이다.

※ 해운대해수욕장 찾아가기 (2015년 7월 기준)
* 부산지하철 2호선 해운대역(3,5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 부산 139, 307, 1003번(좌석) 시내버스를 타고 해운대해수욕장 하차

★ 해운대해수욕장 관람정보

* 해수욕장 개장기간은 7월 초부터 8월 말까지
* 주차공간 - 4,800대 정도 <주차 요금은 1시간에 3~4천원선>
* 소재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문의 해운대관광안내소 ☎ 051-749-5700)
*
해운대해수욕장 홈페이지는 아래 사진을 클릭한다.


▲  해운대해변 서쪽 (동백섬을 온몸으로 가린 부산 웨스틴조선호텔)
바다는
잔잔한 물결로 백사장 모래를 어루만지며 서로의 정을 확인한다.

▲  백사장에는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흔적과 그들의 추억들이 서려있다.
잔디처럼 부드러운 바다와 눈썹처럼 가지런하게 늘어선 백사장. 해와
달도 반하여 서로 다툰다는 해운대는 부산의 백미이다.


▲  백사장 뒤에 마련된 소나무 산책로
산책로의 길이는 인간의 부질없는 인생만큼이나 짧다.

▲  해수욕장에서 만난 어느 조각품
새가 퍼덕퍼덕 날개짓을 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 같은데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

▲  해변 동쪽을 장악한 백구(白鷗, 갈매기)들 (비둘기도 약간 있음)
해변 서쪽과 중앙은 사람들로 봐글거리지만 미포와 이웃한 동쪽은 한산하다.
사람 대신 하얀 갈매기들이 해변을 장악하며 그들만의 조그만 세상을 꾸린다.

▲  해운대해변 동쪽에 자리한 미포
해운대와 오륙도(五六島), 부산항 주변을 도는 관광유람선이 출발하는 곳으로
횟집들이 갈매기 수만큼이나 즐비하다.

▲  열차도 발길을 끊은 미포 철길건널목

미포 철길건널목은 바다가 코앞에 보이는 시가지에 위치한 탓에 해운대의 명물로 꼽힌다. 드라
마와 영화의 단골 촬영지로 부근 주막들은 드라마/영화 광대들과 촬영 관계자들이 거쳐간 흔적
들이 요란하게 남아있고 식당들은 그것을 내세워 천하에 이름을 알리고자 애를 쓴다.

이 건널목은 포항에서 부산을 잇는 동해남부선의 일부이나 2013년 12월 송정~해운대 구간 철로
가 직선화되면서 더 이상 열차가 지나가지 않는다. 그로 인해 해운대~미포~청사포~구덕포를 거
쳐 송정으로 이어지던 낭만의 해안 구간은 폐선되었다.
허나 이 구간은 역사 속으로 그냥 보내버리기에는 꽤 아까운 구간이니 요즘 철도 직선화와 비수
익 구간 등으로 버려진 철로를 레일바이크(Rail Bike)로 활용하거나 강릉과 삼척을 잇는 해안테
마열차를 운영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  미포 건널목 왕년의 시절 이곳을 지나던 동대구발 부전행
새마을호 열차의 위엄
한때 새마을호는 고급, 쾌속의 상징이었으나 이제는 높은 가격에 비해
실속이 무척 떨어지는 어정쩡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  미포 건널목 부근 할매집원조복국집에서 먹은 복국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이란 아주 의미심장한 말이 있듯이 나들이와 답사에서 먹는 재미를 빠
뜨릴 수 없다. 마침 시간은 오후 1시, 시장기가 하늘을 찌르는 시간이다.
무엇을 먹을까 망설이다가 건널목 부근 복국집에 시선이 멈추면서 그곳에 들어갔다. 식당 내부
벽에는 건널목을 거쳐간 영화 광대들이 남긴 각가지 싸인들이 가히 벽지를 이룬다. 심심풀이로
그 싸인들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갖은 반찬과 밥, 복국이 차례대로 우리 앞에 펼쳐진다. 콩나물
과 복어, 파 등이 일체를 이룬 복국 뚝배기를 뚝딱 비우니 해장을 한 듯 속이 개운하다. 이렇게
점심을 먹고 가득찬 배를 두드리며 달맞이고개로 이동했다.


♠  해운대의 눈썹, 달맞이고개와 해운대의 숨겨진 속살, 청사포

▲  달맞이고개 ▼

달맞이고개는 해운대 동쪽 해안가에 두툼히 솟은 언덕이다. 내륙 쪽은 완만하게 솟아있지만 해
안 쪽은 각박한 속세살이처럼 경사가 급하며 그 해안의 끝에 동해남부선 철도가 간신히 자리를
비집고 지나다녔다.
바닷가에 둥지를 튼 언덕으로 절경이 아름답고 조망이 일품이며, 예로부터 이곳과 부근 청사포
에서 바라보는 저녁달이 운치가 있어서 달맞이고개란 어여쁜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달빛 사냥
장소로 제격인 달맞이고개는 해운대가 부산시내의 일부가 되어 급속히 개발의 칼질이 그어지면
서 고개 자락에는 수많은 아파트와 집들이 들어섰으며, 바다와 마주한 달맞이길 주변에는 미술
관과 갤러리, 찻집(까페), 주막들이 정신없이 뿌리를 내렸다.

해운대의 화려한 눈썹 같은 달맞이고개는 달맞이길이 중심이다. 봄에는 벚꽃놀이 장소로 사람들
을 끌어모으며, 수려한 경관으로 휴일에는 늘 사람과 수레들로 몸살을 앓는다. 달맞이길은 미포
5거리에서 송정에 이르는 고갯길로 부산의 주요 드라이브 코스로 꼽히며, 4발 수레의 눈치를 받
기 싫다면 문텐로드(Moontan Road)라 불리는 오솔길도 아주 괜찮다. 어쩌면 오솔길이 달맞이길
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
문텐로드는 달맞이길 남쪽 해안 언덕에 자리한 달맞이동산(해운대 달맞이공원)에 조성된 오솔길
로 앞서 누리마루처럼 우리말로 적당한 이름을 지어주어도 좋을 터인데 왜 굳이 영어로 지었는
지 관련 공무원들의 사상이 의심된다.


▲  문탠로드 코스 (해운대구청 홈페이지 참조)

문텐로드는 달빛나들목이나 달맞이길입구에서 들어가면 되며 달맞이어울마당과 바다전망대로 이
어진다. 물론 청사포로 넘어가도 된다. 해안 언덕에 자리해 있어 끊임없는 해조음을 감상할 수
있으며, 소나무가 무성하여 동백섬, 암남공원 못지않은 경관을 우려낸다.

※ 달맞이고개, 문텐로드 찾아가기 (2015년 7월 기준)
* 부산지하철 2호선 중동역 5,7번 출구에서 10분 정도 가면 미포5거리이다. 그 5거리를 남쪽으
  로 건너면 바로 달맞이고개(달맞이길)가 시작된다. 문텐로드는 달맞이동산 방면으로 조금 가
  다보면 오른쪽에 나온다.
* 부산지하철 2호선 해운대역(1,7번 출구)에서 39, 100, 141, 200번 시내버스를 타고 '미포 문
  텐로드입구' 하차
* 소재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  달맞이길에서 바라본 천하
왼쪽으로 아련히 보이는 산은 이기대, 오른쪽에 진하게 보이는 곳은 동백섬과 해운대

▲  소나무가 무성한 문텐로드 오솔길
해조음을 먹고 자란 소나무들이 베푼 솔내음에 속세에서 오염되고
상처받은 정신이 싹 정화되는 것 같다.

▲  문텐로드 바다전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푸른 물감이 흐드러진 동해바다가 달맞이 해변을 살포시 어루만진다.

▲  문텐로드 오솔길

▲  송림 너머로 삐죽 고개를 내민 청사포 방파제와 등대

▲  달맞이고개 밑을 지나는 동해남부선 - 이제는 껍데기만 남았다.

▲  청사포(靑沙浦) 마을의 봄

달맞이고개에서 해안 쪽으로 넘어가면 해운대의 숨겨진 속살, 청사포가 모습을 비춘다. 해운대
와 송정 사이 바닷가에 둥지를 튼 조그만 포구로 남쪽은 바다가 넝실거리고 나머지 3면은 산에
꽁꽁 둘러싸여 있다. 부산의 부도심인 해운대 지척에 있음에도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어촌에 발을 들인 듯 마을의 분위기는 평화롭고 한가롭기 그지 없으며, 도심 속의 한적한 어촌
이자 교통이 불편한 벽지로 부산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포구의 이름인 청사포는 말 그대로 푸른 모래의 포구이다. 하지만 원래는 사(沙)가 아닌 뱀이나
용을 뜻하는 사(蛇)였다. 즉 푸른 뱀의 포구인 청사포(靑蛇浦)였던 것이다. 포구 이름의 대해서
는 다음의 전설이 전해온다.

호랑이가 담배를 빨던 머나먼 옛날, 갓 혼인을 한 남자가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
을 만나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자 아내는 소나무와 바위가 있는 곳(이곳을 망부송과 망부대라고
부름)에 올라 남편의 무사귀환을 기도하며 애타게 기다렸다. 그 여인의 정성에 감동을 받은 동
해 용왕(龍王)은 푸른 용을 급파하여 실종된 남편과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 연유로 푸른
용을 뜻하는 청사포가 되었다는 것이다. 허나 시간이 흘러 마을 사람들은 동네 이름에 뱀을 뜻
하는 사(蛇)가 있는 것에 불만을 품게 되었고 그래서 은근슬쩍 사(沙)로 바꿨다는 것이다.

이곳은 동해와 남해 경계에 자리해 있어 예로부터 낚시터로 명성이 높았으며, 회와 조개구이를
파는 주막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조개구이가 유명하여 매스컴을 탄 조개구이 식당이 여럿 있다.
허나 맛은 거의 비슷비슷하니 무작정 유명한 집에만 목숨 걸고 줄 서지 않아도 된다. 또한 앞의
전설에서 여인이 남편을 기다리던 장소를 망부대(亡婦臺)라 부르며, 그곳에 있는 400년 묵은 소
나무를 망부송(亡婦松)이라 부른다. 이들은 청사포의 명소로 너무 바다와 조개구이에만 목숨걸
지 말고 꼭 둘러보길 권한다. (나는 그들의 존재를 몰라 지나치고 말았음)
청사포 마을은 매년 풍어제(風魚祭)를 지내는데 무려 400년 이상이나 이어졌다. 그 풍어제는 해
운대 풍어제의 기원이 되었으며. 근래에 소소하게 구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되어 이미 몇천 년 전
부터 사람들이 살았음을 보여준다.

속세에서 이곳을 찾아가려면 어지간해서는 달맞이고개를 넘어야 된다. 속세로 나가는 수레길은
고개 쪽으로 난 길(청사포로)이 전부라 휴일 저녁에는 외식을 즐기려는 수레들로 자주 막힌다.
그나마 근래 4차선으로 확장되어 다소 숨통이 트였다. 허나 사람은 수레보다는 출입이 자유로워
청사포로 외에도 문텐로드 산길이나 송정으로 넘어가는 가느다란 해안길을 이용해도 된다.

※ 청사포 찾아가기 (2015년 7월 기준)

* 해운대전화국(2호선 해운대역 1번 출구에서 도보 2분)이나 2호선 장산역(5번 출구)에서 청사
  포로 들어가는 해운대구 마을버스 2번 이용 (20~25분 간격)
* 소재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2동


▲  청사포를 동서로 가르는 옛 동해남부선
산 윗쪽에 건물이 빽빽히 우거진 달맞이고개(달맞이길)가 보인다.

▲  청사포에서 바라본 동해바다
수평선 너머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지구가 정말 둥글긴 둥근 모양이다.

▲  월척을 꿈꾸는 강태공 (청사포~구덕포 중간)


♠  해운대 동쪽에 자리한 송정해수욕장, 구덕포

▲  구덕포 해안

청사포 북쪽 끝에는 주차장을 갖춘 커다란 식당이 있다. 언뜻 보면 길이 끊어져 보여 '왔던 길
을 되돌아가야 되나?' 싶은 좌절감이 생길 수 있지만 주차장을 지나면 바닷가로 내려가는 가느
다란 길이 나온다. 그 길로 들어서면 바로 송정까지 갈 수 있다.
길은 바다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가늘게 이어져 있으며, 철길 옆도 지나고 낭떠러지 부분도 제
법 있으므로 반드시 주의를 요한다. 이렇다 할 안전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길 중간중간에 바다
로 내려가는 길이 있어 바다를 원한다면 조심스레 내려가면 된다.

청사포에서 송정으로 가는 해안길은 아는 이가 적고 인적이 적어 한적하고 호젓한 해안 산책을
누릴 수 있다. 해변 바위에는 강태공들이 드문드문 진을 치며 월척을 위해 낚시대를 드리운다.


▲  구덕포(九德浦) 마을

청사포에서 해안 산책로를 15분 정도 가면 조그만 어촌마을, 구덕포가 모습을 비춘다. 송정해수
욕장 남쪽에 자리한 구덕포는 미포, 청사포와 더불어 해운대3포(浦)라 불리는데, 미역과 멸치,
조개가 많이 생산되며, 청사포와 마찬가지로 해산물을 다루는 횟집과 식당, 그리고 민박 등의
숙박업소가 주류를 이룬다. 그래서 이곳으로 1박 여행이나 모임을 오는 부산 지역 학교나 단체,
동호회가 많다.
마을 남쪽과 동쪽은 바다로 막혔고, 서쪽은 산지가 가로막고 있어 오로지 북쪽만 외부로 뚫려있
다. 길도 송정으로 통하는 북쪽 길이 유일하다. 그래서 속세에서 이곳에 오려면 무조건 송정을
거쳐야 된다. 청사포는 그래도 마을까지 들어오는 마을버스라도 있지 구덕포는 그딴 것도 없다.
송정까지 와서 20분 정도 걸어야 된다.

구덕포는 옛날 함안조씨 일가가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며, 마을 서남쪽 산자락에 당
집이 있어 매년 음력 정월 14일과 6월 14일에 용왕제(龍王祭) 거릿대장군제를 지낸다.


▲  구덕포 표석의 위엄

▲  송정해수욕장(松亭海水浴場)

해운대 동쪽에 자리한 송정해수욕장은 해운대와 달맞이고개(신곡산)를 사이에 두고 자리해 있다.
부산의 주요 해수욕장의 하나로 꼽히며 백사장 길이는 1.2km, 면적은 62,150㎡이다. 여름에는
수십 만의 피서객들이 몰려드는 피서의 성지로 수백 만이 모여드는 해운대보다는 조금은 한가하
며, 조개구이와 해산물을 취급하는 식당과 민박 등의 숙박시설이 가득하다.
해변 동쪽 끝에는 죽도산(竹島山)이라 불리는 나무가 우거진 조그만 언덕이 있는데 해발이 고작
24.2m이다. 산이라기 보다는 야트막한 언덕이 더 어울릴 것이다. 죽도산은 원래 해변 앞에 떠있
던 죽도(竹島)란 섬으로 자연의 위대한 힘으로 연륙되어 한반도의 일원이 되었다. 죽도산은 죽
도공원이라 불리기도 하며, 남쪽 해변에 송일정(松日亭)이란 있다. 특히 송정해변과 죽도공원에
서 지켜보는 일출과 월출은 가히 장관이다.

송정은 옛날에는 '갈개', '가을포(加乙浦)'라 불렸다. 지금은 없지만 바닷가에 갈대가 무성했다
고 한다. 그러다가 조선 고종 시절 이곳 출신으로 승지(承旨)에 올랐던 노영경이 자신이 바닷가
에서 태어났음을 감추고자 멋대로 송정으로 고쳐 부르게 했다는 것이다. 갈개 외에 '광어골'로
불리기도 했다.

※ 송정해수욕장(구덕포, 송정역) 찾아가기 (2015년 7월 기준)
* 부산지하철 2호선 해운대역(7번 출구)에서 38, 39, 63, 100, 100-1, 141, 181, 200번 시내버
  스를 타고 송정해수욕장입구 하차 (100, 181번은 송정해수욕장까지 들어감)
* 부산지하철 2호선 장산역 1번 출구에서 182번 시내버스, 10번 출구에서 38, 139, 1001번 시내
  버스 이용 (139번은 해운대역으로 다소 돌아감)
* 부전역과 태화강역, 경주역, 포항역, 동대구역에서 출발하는 동해남부선 무궁화호 열차가 송
  정역에 정차한다.
* 소재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송정동

 
▲  송정역(松亭驛) - 등록문화재 302호

송정해수욕장 북쪽에는 한때 동해남부선의 일원이던 송정역이 자리해 있다. 이 역은 1940년대에
동해남부선의 간이역으로 지어진 것으로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특히 철제
창고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했던 아르누보 양식을 띄고 있어 건축사적으로 가치가 있으며, 2006
년 문화유산의 새로운 등급인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한때 동해남부선 열차가 모두 정차하던 역으로 피서의 꿈을 안고 찾아온 나그네들로 북적거렸지
만 2013년 12월 동해남부선 송정~해운대 구간이 직선화되면서 지금보다 더 북쪽에 새 송정역이
지어졌다. 그로 인해 열차는 모두 그곳으로 갔고, 역의 임무도 새 역이 전담하게 되었다. 기존
송정역은 그래서 현역에서 물러나 한가한 신세가 되었는데, 아마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
다면 건물의 목숨 조차도 위험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이든 건물이든 현역에서 물러나 뒷전
으로 밀려난 모습은 정말 쓸쓸하기 그지 없다.

송정역을 끝으로 해운대 동백섬에서 시작된 해운대~송정 해안 투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구
덕포와 문텐로드를 제외하면 예전에도 여러 번 발걸음을 했었고, 해운대 같은 경우는 정말 지겹
게도 찾았지만 이번처럼 깔끔하게 둘러본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적지 않은 거리를 걸었지만
푸른 바다와 언덕, 봄꽃, 숲길을 겯드린 풍경이 절대로 지루하지 않았기에 정말 짧은 거리를 걸
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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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개일 - 2015년 7월 20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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