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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9.15 짙푸른 숲과 조촐한 계곡을 간직한 도심 속의 싱그러운 쉼터, 북악산 삼청공원 ~~~ (말바위, 영무정, 한양도성. 삼청동길)
  2. 2012.09.10 서울 도심의 허파이자 신선한 명소 ~ 북악산 북악하늘길(김신조루트)

짙푸른 숲과 조촐한 계곡을 간직한 도심 속의 싱그러운 쉼터, 북악산 삼청공원 ~~~ (말바위, 영무정, 한양도성. 삼청동길)



' 서울 도심의 영원한 북현무, 북악산 나들이
(삼청공원, 말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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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바위조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  숲이 무성한 서울 도심의 든든한 허파, 삼청공원(三淸公園)

▲  감사원 서쪽에 있는 삼청공원 후문

여름이 한참 무르익어가던 6월의 한복판에 일행들과 나의 즐겨찾기의 하나인 북촌(北村)을 찾
았다. 북촌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계속 북쪽으로 가니 어느덧 북촌과 북악산(백악산)의 경계인
삼청공원까지 발길이 가게 되었다.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오랜만에 공원이나 1바퀴 둘러보고자
공원 정문을 통해 그의 품으로 들어섰다.

북악산 동남쪽 자락에 넓게 누운 삼청공원은 서울 도심의 북쪽 끝으로 조선시대에도 한양도성(
都城)의 북쪽 끝을 담당했다. 예나 지금이나 싱그러운 나무가 바다를 이루던 명승지로 서울 사
람들의 오랜 나들이 명소였으며, 봄꽃이 만연할 때는 사대부 여인들이 봄꽃놀이를 즐기던 현장
이기도 하다. 조선 초기 학자인 성현(成俔, 1439~1504)은 그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서 도성
안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으로 삼청동 골짜기를 꼽았으니 그곳이 바로 삼청공원으로 '산이
높고 나무가 빽빽한데 바위 골짜기가 깊숙하다'
라며 이곳을 표현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 표현은 유효한데, 공원 일대에는 북악산의 명물인 소나무를 비롯해 노간주
나무, 붉나무, 팥배나무, 쪽동백나무, 신갈나무, 때죽나무, 진달래 등 갖은 나무들이 숲을 이
루고 있으며, 골짜기가 깊고 멋드러진 바위가 여럿 포진해 있다.

이렇게 서울 사람들의 오랜 산책 명소이자 피서지였지만 공원에 서린 옛 흔적은 북악산 주능선
에 붙어있는 숙정문(肅靖門)과 한양도성 밖에는 없다. 이들은 도성 수비용이니 풍류와는 관련
이 없고 기껏해봐야 관리들이 말을 타고 올라와 시를 지었다는 자연산 바위, 말바위 정도가 있
다. <공원 바깥까지 확대한다면 '삼청동문(三淸洞門)' 바위글씨를 비롯한 여러 바위글씨와 유
길준(兪吉濬)이 유폐되어 서유견문(西遊見聞)을 작성했던 취운정(翠雲亭)터 정도가 있음>

왜정(倭政) 시절인 1934년 3월, 삼청골 일대를 삼림공원으로 삼아 관리하기 시작했으며, 1940
년 3월, 총독부고시 208호에 따라 도시계획공원의 하나가 되었다. 당시 왜정은 도시계획공원
140개를 발표했는데 삼청공원이 그 1호로 당시 공원 면적은 약 432,000㎡였으며, 소나무를 비
롯한 온갖 나무들로 울림(鬱林)을 이룬 이곳에 산책로와 정자, 의자, 풀장 등을 설치했다.

1945년 이후에는 정몽주 시조비 등의 시비(詩碑), 영무정, 어린이놀이터, 운동시설 등을 계속
해서 설치했고 산책로와 계곡을 정비했으며 삼청동길과 계곡(삼청골) 사이에 나무데크길을 닦
았다. 그리고 근래에 후문 부근에 숲속도서관을 짓는 등, 자연에 크게 반(反)하지 않는 범위에
서 얌전하게 손질을 했다.
공원 손질이 얌전했던 이유는 공원 주변에 국가의 예민한 곳이 잔뜩 포진해 있어 천박한 개발
의 칼날을 뚝 부러뜨렸기 때문이다. 하여 자연에 쏙 묻힌 싱그러운 공간으로 도심 속에 남게
된 것이다. 다만 시내 확장과 군부대로 공원 면적은 5만㎡가 줄어 현재는 약 388,109㎡이다.

삼청공원은 도심의 핵심인 광화문(光化門)과 종로에서도 무척이나 가깝다. 게다가 공원과 살을
맞댄 북촌과 삼청동길의 인기가 계속 하늘을 찌르면서 찾는 이도 많이 늘어났다. 숲이 매우 짙
어서 그늘도 꽤 깊으며 조촐하게 자연산 계곡까지 갖추어 북악산 서북쪽 자락에 묻힌 백사실계
곡(백석동천, ☞ 관련글 보러가기)과 더불어 도심 속 피서지로 인기를 더하고 있다.
 비록 천하에 이름 꽤나 있는 계곡 앞에 명함조차 내밀기 쑥쓰러운 수준이지만 도심 속에서 발
을 담구며 간단하게 피서를 누릴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대단하다. 공원을 가로질
러 도심으로 향하는 삼청골은 삼청천(三淸川)이라 불리며 청계천 상류의 하나를 이룬다.

시내에서 공원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삼청동(三淸洞) 마을버스 종점에서 들어가는 것과 감사원
서쪽의 후문으로 가는 길이 가장 일반적이다. 북촌에서 들어간다면 후문을 이용하면 되며, 삼
청동길로 접근하거나 마을버스를 이용한다면 삼청동 마을버스 종점에서 들어가면 편하다. 또한
2009년에 공원에서 말바위로 오르는 산길이 뚫리면서 북악산 주능선과 숙정문은 물론 그 너머
성북동(城北洞) 지역까지 바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특히나 이 길이 지나가는 북악산 동남
쪽 자락은 오랫동안 속인(俗人)들의 접근을 허용치 않았던 금지된 곳으로 산길이 닦이면서 이
곳을 잠궜던 자물쇠가 조금이나마 풀렸다.

공원 서쪽에는 경복궁 동십자각에서 시작된 삼청동길이 마을버스 종점을 지나면서 구불구불 또
아리를 튼 2차선 산악도로의 모습을 보이며 삼청터널을 거쳐 성북동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박
정희 정권 시절 성북동에 서식하던 권력 실세들이 그들의 교통 편의와 땅값 상승, 청와대와 정
부기관에서 삼청각/대원각 등 고급요정으로의 접근 편의를 위해 낸 것으로 당시에는 차량이 많
지 않아 조촐하게 2차선으로 만들었다.
 허나 시간이 흘러 차량들이 쓸데없이 늘어나면서 도로와 터널을 넓혀야될 지경에 이르렀지만
개발제한구역이라 그것도 쉽지가 않다. 그래서 2차선으로 마냥 두고 있는 것이다.

삼청터널과 터널로 이어지는 길(삼청공원~삼청터널 북쪽, 삼청각 구간)은 뚜벅이들의 배려 따
위는 안중에도 없는
오로지 차량을 위한 길이니 괜히 도보로 가는 일이 없기 바라며 삼청동에
서 숙정문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있으나 이 길은 오랫동안 통제구역으로 묻혀 속세의 뇌리 속에
잊혀진 상태이다.

※ 삼청공원 찾아가기 (2017년 8월 기준)
* 지하철1/2호선 시청역(4번 출구), 5호선 광화문역(2번 출구)에서 종로구 마을버스 11번을 타
  고 삼청동 종점 하차. 이 버스는 삼청동에서 정독도서관입구, 동십자각, 광화문, 시청, 남대
  문을 거쳐 서울역(서울역전우체국 북쪽)까지 운행한다.
* 지하철 3호선 안국역(2번 출구)에서 종로구 마을버스 02번을 타고 감사원 하차(또는 도보 15
  분), 감사원에서 서쪽(삼청동)으로 내려가면 막다른 3거리가 있는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들어
  가면 공원이다. (왼쪽으로 내려가면 삼청동길)
* 경복궁 동십자각에서 삼청동길을 따라 25분 정도 걷거나 동십자각 북쪽 법련사 정류장에서
  종로구 마을버스 11번 이용
* 삼청공원 숲속도서관 이용시간 : 10시~18시 (여름은 20시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문의 ☎
  02-734-3900)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산2-1 일대 (북촌로 134-1)


▲  삼청공원 후문 안쪽

공원 후문을 들어서면 수목원 같은 삼청공원의 고운 속살이 펼쳐진다. 처음에는 수목원 같지만
속살을 깊이 들어가면 수목원 분위기는 울림으로 변화하고 산내음과 솔내음이 청정한 기운을
볶아내면서 속세에서 오염되고 상처받은 안구와 마음을 제대로 어루만져준다.


▲  숲터널을 이룬 삼청공원 산책로 ▼


▲  시인 김경린(金璟麟, 1918~2003)의 '차창'이 담긴 시비(詩碑)

차창(車窓)
나는 수족관에 온 한마리의 어족
미끄러지는 바깥 세계가 뿜는 향수로
안경은 차웁다

우리나라 현대 시인의 하나인 김경린이 2003년 세상을 뜨자 그의 후학들이
그가 살았던 삼청동에 그의 대표작, 차창을 담은 시비를 세웠다.

▲  동심이 깃든 삼청공원 어린이놀이터
어린이들의 안전과 그들의 흙놀이 공간을 위해 흙으로 놀이터를 닦았다. 나도
어렸을 때 흙장난 참 많이 했었지. 그때는 흙으로 많은 세상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내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도 아리송하다.

▲  삼청공원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옛 약수터
오른쪽에 보이는 네모난 구멍에서 약수가 콸콸 쏟아져 나왔으나
이제는 목구멍이 막힌 죽은 샘터가 되었다.

▲  삼청공원 약수터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담는 약수터로 근래 부적합 판정을 받아 찾는 이가 많이 줄었다.
약수터 맞은편 의자에는 1996년 10월 문화체육부에서 세운 근대 소설가 염상섭
(廉想涉, 1897~1963)의 앉아있는 동상이 있었으나 2014년에 치워버렸다.
(염상섭의 생가터가 이곳 부근이라 동상을 세웠음)


▲  비둘기도 이곳 경관에 반해 뒤뚱뒤뚱 산책을 즐긴다.

▲  정몽주(鄭夢周, 1337~1392)와 그의 어머니의 시조비

정몽주와 그의 어머니의 시조가 담긴 정몽주 시조비는 이곳에서 그나마 오래된 볼거리로 1973
년에 세워진 것이다. 포은(圃隱) 정몽주는 고려의 마지막을 덜 초라하게 해준 3은(三隱)의 하
나로 그의 시조비가 떡하니 있어 이곳과 무슨 관련이 있겠구나 싶지만 실상은 서로 아무런 관
련이 없다.

시조비 오른쪽을 장식하고 있는 시조는 백로가(白鷺歌)로 정몽주의 어머니가 간신과 역신(逆臣
) 등 질이 안좋은 무리와 어울리지 말 것을 훈계하고자 지은 시라고 한다. 허나 조선 영조 때
간행된 청구영언(靑丘永言)에는 작자 미상이라 나와있고 조선 말 학자인 이희령(李希齡)이 지
은 약파만록(藥坡漫錄)에는 연산군 시절에 김정구(金鼎九)가 지은 시라고 나와있어 작자에 대
해서는 아직도 말들이 많다.

시조비 왼쪽에는 정몽주가 지은 그 유명한 단심가(丹心歌)가 쓰여 있다. 이 시는 이성계(李成
桂) 패거리가 고려를 뒤엎고 새 나라를 세우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그의 아들인 이방원(李芳
遠, 후에 조선 태종)이 정몽주를 살짝 찾아와 그 유명한 하여가(何如歌)를 들이밀며 그의 의중
을 물었다.
 허나 정몽주는 그 이름도 높은 단심가로 답을 하며 고려에 대한 일편단심을 강하게 내비췄다.
결국 안되겠다 여긴 이방원은 부하 조영규(趙英珪)를 보내 선죽교(善竹橋)에서 정몽주를 잔인
하게 처단하고 만다. 고려의 마지막 보루인 최영(崔瑩)과 정몽주를 잃은 고려는 더 이상 지탱
하지 못하고 결국 이성계 패거리에 의해 강제로 휘장을 내리게 된다.



백로가(白鷺歌)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낸 까마귀 흰빗을 새오나니
창파(滄波)에 좋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하여가(何如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여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  '영무정의 4계절' 시비
영무정 보존회에서 2008년 10월에 세운 시비이다.


영무정 시비에서 북쪽을 보면 초록색 철책이 빙 둘러진 후미진 공간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
속살에는 조그만 폭포가 동천(洞天)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고 그 밑에 물이 담겨진 욕조처
럼 생긴 통이 있으며, 그 옆에 조그만 정자가 있으니 그곳이 바로 삼청공원의 숨겨진 명물, 영
무정이다.

이곳은 서울에 거의 남지 않은 노천 목욕탕으로 1960년경에 동네 사람들이 목욕터로 만든 곳이
다. 폭포 밑에 3명 정도 들어갈 크기의 욕조를 만들었는데 물이 매우 맑고 차다고 한다. 허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사람 여럿이 욕조에 몸을 담구거나 (물론 옷은 입었음) 주변에 앉아 대
화를 하고 있어서 안에는 굳이 들어가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특히 아저씨와 노공(老公)>의 오랜 목욕터이나 문제는 시민들이 거니는 공원에서
벌거벗고 목욕과 냉수마찰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계속 논란이 불거지자 종로구청에서
이곳을 없애려고 삽을 들었으나 영무정보존회에서 쌍수 들고 반대하여 철거는 하지 못했다. 또
한 방송에도 여러 번 등장해 그 이름의 무게가 더해지면서 철거하기에 좀 애매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하여 종로구청은 기존에 있던 펜스를 치우고 초록색 철책을 둘렀으며, 벌거벗고 씻지
말라는 경고문을 붙이는 선에서 영무정 문제를 마무리 지었다.
 허나 장소가 장소인지라 늦은 밤에 몰래 벗고 씻는 이들도 아직 있을 듯 싶으며 구석진 곳이
라 둘만의 조용한 대화(?)를 원하는 이들이 찾기에 좋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서울의 영원한 남주작(南朱雀)이자 내 어린 시절 뒷동산이었던 남산(
南山)의 여러 약수터에는 이런 노천 목욕탕이 거의 딸려있었다. 약수터와 운동시설 옆에 담장
등을 둘러 벗고 씻는 공간을 둔 것이다. 나도 어린 시절 남산 그늘에 살았을 적에 부친을 따라
남산의 모 약수터에서 냉수마찰을 한 적이 있다. 냉수마찰을 해야 감기가 안걸린다는 말에 깜
빡 속아서 말이다.

영무정이 법에는 다소 저촉은 되지만 동네 사람들의 쉼터이자 피서지로 차가운 물이 모였다는
욕조에 들어가 피서를 즐기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단 물놀이에 적당한 가벼운 옷차림(속옷바
람은 안됨)으로 통에 들어가길 바라며, 삼청골 오염을 방지하고자 비누 사용과 음식물 취사행
위를 금하고 있으니 그냥 몸만 시원하게 담구고 오자.


▲  삼청공원 윗쪽 산책로 (영무정 북쪽)
집으로 살짝 가져와 혼자서만 누리고 싶은 아름다운 길이다.

▲  구부러진 삼청공원 윗쪽 산책로

▲  삼청공원 산책로는 경사가 별로 없어 누구든 마음 편히
거닐 수 있는 착한 오솔길이다.

▲  오랜 가뭄으로 목이 타버린 삼청골
물은 온데간데 없고 흙과 돌만 어지럽게 흩어져 초여름 가뭄의
심각함을 드러낸다.


 

♠  삼청공원의 새로운 산길, 북악산 말바위 산길

▲  말바위 산길 입구

삼청공원 윗쪽에는 북악산 말바위로 인도하는 산길이 있다. 2008년에 닦기 시작하여 2009년에
완성되어 세상에 선보인 산길로 말바위조망대까지 600m 정도 이어져 있으며, 그곳까지는 가볍
게 10~15분 정도 걸린다. (중간에 갈림길이 있음, 거기서 왼쪽으로 가면 소나무 숲길, 직진하
면 말바위임)

말바위조망대에서 성곽을 따라 서쪽(숙정문 방향)으로 조금 가면 성곽 밖으로 나가는 나무데크
길이 있는데 그 길로 내려가면 바로 성북동으로 북악하늘길 제3코스와 만난다. 여기서 왼쪽(서
쪽)으로 가면 삼청각과 김신조루트라 불리는 북악하늘길2/3코스로 이어지고, 오른쪽(동쪽)으로
가면 와룡공원<여기서 성북동 종점이나 성균관대, 감사원 방면으로 내려가면 됨>으로 이어진다.
 또한 성곽길을 더 가면 말바위안내소가 나오는데 여기서 숙정문을 거쳐 북악산 정상과 창의문
(彰義門, 자하문)으로 넘어갈 수 있어 코스 또한 다양하다. 그러니 취향에 따라 코스를 잡으면
된다.
허나 숙정문과 북악산(백악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성곽길은 9시부터 16시(동절기는 10
~15시)까지만 출입이 가능하다. (신분증을 지참하여 출입증을 작성해야 됨)

삼청공원에서 말바위로 오르는 산길이 생기기 전에는 거기서 성북동/북악산 방면으로 가는 정
식적인 길이 없었다. 삼청터널이 있지만 거긴 오직 차량 전용이며, 걸어서 간다면 와룡고개로
우회해서 가야했다. 지도에서 보는 거리는 매우 가깝지만 걸어서 가는 체감거리는 이론과 다르
게 꽤 각박했던 것이다.
 허나 말바위 산길이 생김으로써 비록 산을 넘어야되는 부담은 있지만 서로의 거리가 꽤 줄어
들었고 반대로 성북동(삼청각)에서도 삼청공원과 도심 도보 접근이 수월해졌다.

출입절차를 밟아야 되는 말바위안내소에서 창의문으로 이어지는 북악산 주능선과 달리 말바위
등산로와 성곽 밖 북악하늘길은 언제든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하다. (단 군사시설이 여럿 있으
므로 그곳은 들어가거나 촬영하지 말 것)
 이렇게 삼청동에서 성북동으로 넘어가는 산길이 뚫렸다니 참 세상이 많이 변하긴 변한 모양이
다. 국가의 예민한 곳으로 백성들은 감히 발도 들이지 못하고 먼산 쳐다보듯 해야 했던, 잘못
들어갔다가는 정말 총 맞을 것 같던 그곳이 말이다. 이제 도성 남쪽인 북악산 남쪽만 개방되면
북악산은 거의 완전히 해방이 된다. 하지만 그곳에는 청와대와 여러 예민한 시설이 있으니 당
장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  말바위 입구에 세워진 건강 돌탑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돌탑이든 우선 건강하고 봐야 된다.
건강이 없다면 바닷가의 힘없는 모래성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

▲  소나무가 운치를 우려내는 말바위 산길

북악산은 호랑이가 곶감의 눈치를 보던 시절부터 소나무가 유명했는데, 조선 조정에서는 특별
히 옆구리에 끼고 관리하여 산이 온통 솔내음의 향기가 진동했다. 허나 왜정 이후 관리 소홀과
마구잡이 벌채, 다른 나무의 유입 등으로 소나무가 많이 줄어 지금은 주능선 주변과 고지대에
주로 남아있다. 삼청공원이나 와룡고개 등 속세와 가까운 곳은 소나무가 거의 없고 속세와 어
느 정도 거리를 둔 고지대에서 소나무들이 이슬을 먹으며 자라고 있다.

북악산 일대는 오랫동안 금지된 산으로 묶여있다 보니 나무와 식물이 마음 놓고 뿌리를 내리면
서 숲이 매우 울창하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는데 삼청공원 일대에서는 직
박구리와 박새, 멧비둘기, 오색딱따구리, 꿩, 노랑지빠귀, 다람쥐, 청솔모 등이 살고 있다.


▲  삼청공원과 말바위 사이에 조성된 쉼터
말바위 등산로는 흙길과 나무로 만든 계단길이 적당히 섞여 있다.

▲  한양도성 (말바위 방향) - 사적 10호

삼청공원에서 말바위 등산로를 15분 정도 오르면 한양도성(한양성곽)의 여장이 나타난다. 여장
이란 성곽을 수비하고자 두툼하게 돌벽을 쌓고, 중간에 여러 개의 구멍을 낸 수비시설인데, 이
곳이 성내(城內)이다 보니 여장 안쪽에 있게 된 것이다. 여장 너머는 성밖으로 바로 성북동이
다.


▲  한양도성 (삼청공원 방향)
서울을 지키던 성곽도 부끄러움을 타는 것일까? 몸에 걸친 담쟁이덩굴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성곽은 1974년 이후에 복원한 거라 일부 검은 주근깨가 낀 것을 빼고는
대부분 하얀 피부를 자랑한다.

▲  말바위로 오르는 각박한 계단길 (왼쪽에 보이는 길로 가면 말바위 조망대)

한양도성과 만나는 곳에서 성곽을 따라 서쪽으로 3분 정도 가면 각박한 각도의 계단길이 나타
난다. (동쪽은 군사시설로 길이 막혀 있음) 그 계단을 오르면 바로 말바위인데 계단길 중간에
왼쪽으로 통하는 나무길이 있으며 그 길로 들어서면 말바위 조망대가 모습을 비춘다.


 

♠  북악산 말바위조망대와 말바위

▲  도심을 향해 들어앉은 말바위 조망대

말바위 밑에 자리한 말바위 조망대(전망데크)는 커다란 바위 위에 나무로 만든 조망대로 도심
이 있는 남쪽을 향하고 있다. 천하 굴지의 대도시로 콧대가 높은 서울을 발 밑에 두고 굽어볼
수 있는 곳으로 북악산 정상(342m)이나 그 동쪽 봉우리인 청운대(293m), 인왕산(338m)보다 키
가 낮아 시야에 들어오는 범위도 사대문(四大門) 안쪽으로 좁다. 하여 이곳이 그리 높다는 생
각도 들지 않는다.
 허나 삼청공원을 비롯해 북악산 남쪽 자락과 인왕산(仁王山), 남산(南山), 그리고 그 안쪽에
둥지를 튼 도심이 속시원히 바라보며 그런데로 후한 점수를 줄만하다. 낮은 높이치고는 제법
선전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  말바위조망대에서 바라본 북악산 정상과 남쪽 자락
북악산 너머로 인왕산과 서촌<웃대, 경복궁 서쪽 동네> 일대가 바라보인다.

▲  말바위조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①
바로 정면에 서울의 남주작인 남산이 바라보인다.

▲  말바위조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②
삼청공원과 삼청동, 경복궁 주변 일대가 바라보인다.

▲  북악산의 오랜 명소, 말바위

말바위는 촛대바위와 더불어 북악산에 이름난 바위이다. 이곳까지 삼청공원의 영역에 들어가는
데, 북악산의 오랜 명소로 조선시대에 문인(文人)과 관료들이 말을 타고 이곳으로 올라와 시문
을 짓거나 바람을 쐬며 많이들 쉬었다고 한다. 그래서 말을 타고 올라왔다는 뜻에서 말바위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고 하며, 다른 이야기로는 북악산의 산줄기가 동쪽으로 좌청룡(左靑龍)을
이루며 내려오다가 그 끝에 자리한 바위라 하여 말(末)바위라 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니까 말
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 것이다. (바위가 말처럼 생기지도 않았음)

말바위 옆에는 소나무 1그루가 바위 쪽으로 가지를 뻗어 바위에게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며 서
로의 끈끈한 정을 자랑한다.


▲  말바위의 옆모습

1968년 1.21사건 이후 말바위는 금지된 바위가 되어 속세에서 잠시 그 모습이 지워졌다가 2007
년 4월 다시 공개가 되었다. 그때 말바위에서 북악산 정상을 거쳐 창의문까지 제한적으로 개방
되었으며, 말바위는 24시간 언제든 발을 들일 수 있는 자유의 공간으로 거듭났다.


▲  말바위에서 바라본 북악산 주능선 (북악산 정상에서 숙정문 구간)

▲  도성 밖으로 인도하는 말바위 나무다리와 한양도성 성곽길
탐방객 유의사항 현수막이 걸린 나무다리를 내려가면 도성 밖 성북동이다.
 

말바위와 말바위안내소 중간에는 성밖으로 나가는 나무다리가 있다. 무지 귀한 몸인 성곽 여장
을 부시고 내려가는 길을 낼 수가 없기에 부득이 성곽 위에 나무 다리를 다져 성밖으로 통하는
길을 냈다.
다리 북쪽에는 조망대를 설치하여 도심 속의 전원 마을인 성북동을 굽어보게 했는데, 삼청각과
길상사(吉祥寺), 북악산 북쪽 능선과 김신조투르 일대가 훤히 바라보여 조망도 괜찮다. 여기서
다리를 내려가면 성곽 북쪽 자락길로 삼청각(三淸閣)과 숙정문안내소, 북정마을, 와룡공원, 김
신조루트(북악하늘길) 방면으로 이어지며, 성곽을 따라 서쪽으로 내려가면 북악산 주능선의 동
쪽 관문인 말바위안내소가 마중한다.


▲  말바위 나무다리에서 바라본 북악산(백악산) 주능선

▲  말바위 나무다리에서 바라본 삼청각과 북악산 북쪽 능선
삼청각 뒷쪽에는 2009년에 개방된 북악하늘길(김신조루트)이 숨겨져 있다.

▲  성북동 서부 - 북악산의 두 능선에 막힌 궁벽한 곳이지만 그곳에
자리한 집들은 궁벽과는 거리가 먼 크고 호화로운 집들 투성이다.
빈부격차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 현장이라
눈도 그리 즐겁지가 않다.

▲  성북동 일대
성북동은 북악산 주능선과 북쪽 능선(북악산길이 지나가는 능선) 사이에 포근히 터를
닦은 도심 속의 전원마을이자 완사명월형(浣絲明月形)의 명당 자리로 유명하다.
그러다보니 시커먼 졸부들이 가득 기어들어와 속칭 이 땅의 0.1%가 사는
비싼 동네가 되어버렸다.

▲  성북동 너머로 성북구 삼선동, 돈암동 지역이 바라보인다.

▲  다시 삼청공원으로 (말바위 산길 입구)

말바위 나무다리에서 성밖으로 넘어가 와룡공원을 거쳐 시내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시간도
늦었고 귀찮기도 하여 왔던 길을 다시 재방송하여 삼청공원으로 되돌아왔다.

정몽주시조비를 거쳐 삼청동길로 나오니 길 동쪽으로 북악산이 베푼 삼청골이 착한 풍경을 도
처에 빚으며 도로와 나란히 흘러간다. 허나 오랜 가뭄으로 비리비리한 모습을 보이니 보는 내
가 답답할 따름이다.


▲  가뭄에 타들어가는 가련한 삼청골 (삼청동길 동쪽 계곡)

▲  삼청동길과 삼청골 사이에 만든 뚜벅이용 나무데크길

▲  삼청동길 나무데크길의 남쪽 종점

서울 도심의 거의 흔치 않은 계곡인 삼청골(삼청천)은 공원 남쪽에 있는 삼청테니스장에서 어
두컴컴한 지하로 흘러간다. 개발의 칼질에 강제로 생매장을 당한 것이다. 이 물줄기는 삼청동
길을 따라 경복궁(景福宮) 동쪽을 거쳐 청계천으로 흘러가는데 옛날 경복궁 주변 사진을 보면
경복궁 동쪽과 북촌 주거지 사이로 하천이 하나 보이니 그가 바로 삼청천이다.

삼청공원을 벗어나 2분 정도 가면 삼청동 종점(종로구 마을버스 11번 종점)이 나온다. 삼청동
과 도심을 이어주는 마을버스의 쉼터로 이곳도 엄연한 도심이라 경복궁과 광화문은 물론 시청
까지 걸어가도 될 정도로 가까운 거리이다.

우리는 지친 몸을 마을버스에 담아 시내로 나왔다. 어차피 종점이라 100% 앉아가는 것은 가능
하다. 이렇게 하여 초여름에 찾아간 북악산 삼청공원, 말바위 나들이는 대단원의 휘장을 걷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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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의 허파이자 신선한 명소 ~ 북악산 북악하늘길(김신조루트)

 


' 서울 도심의 허파이자 신선한 명소,
북악산(北岳山) 북악하늘길(김신조루트) 산책 '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  북악산 김신조루트 남마루에서 굽어본 서울시내


봄이 한참 익어가던 5월의 한복판에 일행들과 북악산을 찾았다. 4호선 한성대입구역(4호선)에
서 일행들을 만나 1111번(번동↔성북동)시내버스를 타고 성북동 명수학교 종점에 발을 내린다.
서울 도심 속의 전원마을인 성북동(城北洞)은 내가 즐겨찾는 동네의 하나로 볼거리가 정말 풍
성하다. 십주원<최사영(崔思永) 고택>과 한국가구박물관, 정법사(正法寺) 등을 빼고는 지겹도
록 둘러봤지만 갔다오면 금세 또 가고 싶고, 뒤돌아서면 또 생각나고, 자꾸 가고 싶은 생각만
들게 만드는 그야말로 내 마음을 제대로 훔친 동네이다. 길상사(吉詳寺) 같은 경우는 매년 5~
6회나 찾아갈 정도이고, 간송미술관은 봄, 가을 특별전마다 약속이나 한 듯 찾아간다.

성북동 종점에서 만국기(萬國旗)가 아낌없이 펄럭이는 '우정의 공원'을 지나 삼청각으로 가는
조그만 길로 들어선다. 서울 도심이 바로 지척이건만 도심을 비웃듯 시골 풍경을 여실히 비춘
다. 길 왼쪽에는 북악산 계곡이 졸졸졸♪~~노래를 하며 흘러가는데, 이 계곡은 성북천이란 간
판을 달고 속세로 흘러가며, 북악산에서 잔잔히 이는 산바람은 몸에 비친 땀과 더위를 털어가
며 심신을 시원하게 해준다.

길의 막다른 부분에 이르면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함께 약간의 산길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데, 그 산길을 오르면 바로 삼청터널 북쪽이다. 삼청터널은 성북동과 삼청동(三淸洞), 도심을
이어주는 터널로 수레의 왕래가 잦다. 허나 길은 2차선으로 좁고 신호등은 황색점멸만 일삼아
모른 척 하니, 통행에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수레 전용 터널이라 도보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여기서는 북악산 주능선(한양성곽 능선)과 김신조루트로 불리는 북악산 북쪽 산길(북악하늘길
)이 시작되며, 홍련사(紅蓮寺)와 삼청각이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자리해 있다.


  삼청각 주변

▲  도심과 성북동을 가까이 이어주는 삼청터널

삼청터널은 성북동 서쪽에서 도심인 삼청동을 이어주는 2차선 터널이다. 보통 성북동을 드라이
브한다면 삼선교(한성대입구역)에서 성북동을 가로질러 삼청터널을 지나 삼청동으로 가던가 혹
은 그 반대로 가면 된다.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이곳은 성북동의 가장 막다른 곳이었다. 

이 터널은 군사정권이 절정을 누리던 1969년에 삽을 뜨기 시작하여 1970년 12월 30일에 완성되
었다. 그 시절 성북동에는 차지철을 비롯한 군사정권의 실세들이 여럿 살았는데 그들의 청와대
접근 편의와 땅값 상승을 노리고자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솔직히 당시 성북동과 삼청동은
매우 한적한 동네로 두 동네를 이을 터널의 필요성은 그다지 없었다.
터널이 뚫린 이후, 성북동 땅값은 하늘을 향해 들썩였고, 성북동에서 청와대와 정부청사, 서울
도심과의 접근이 편해지면서 대원각, 삼청각 등의 고급요정이 호황을 누렸다. 

산간지방에 조촐한 터널 같은 삼청터널은 길이가 짧고 폭이 좁아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통행을
금하고 있다. 오로지 수레들만 통행이 가능하다. 예전에는 지배층과 졸부들이 주로 오가던 그들
의 전용 터널이자 청와대의 후문, 도심 속에 숨겨진 터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적
하던 터널이지만, 시대가 바뀌고 성북동이 도심 관광지로 명성을 얻으면서 수레의 발길도 제법
늘었다. 그래서 휴일에는 꼬리에 꼬리를 잡고 버벅거리는 수레의 행렬을 쉽게 구경할 수 있다.
수레의 양은 늘었지만 터널은 아직도 옛날 2차선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터널을 지나면 바로 삼청동과 북촌으로 이어지지만 도보가 금지되어 있으므로 터널에 발을 들이
지 않도록 한다. 차라리 택시를 타고 삼청공원으로 넘어가던가 아니면 숙정문안내소 동남쪽으로
나있는 북악하늘길 제1산책로를 타면 산길 중간에 한양성곽이 모습을 진하게 비추면서 성곽 안
으로 인도하는 나무 계단이 나온다. 그 계단으로 성 안으로 넘어가면 말바위안내소(쉼터) 동쪽
인데, 여기서 삼청공원(三淸公園)으로 내려가면 바로 삼청동과 북촌으로 이어진다.


▲  삼청각(三淸閣) 정문

성북동의 가장 서쪽 구석이자 삼청터널 북쪽에는 으리으리한 한옥으로 치장된 삼청각이 자리해
있다. 이곳은 햔양도성이 지나는 북악산 본줄기와 북악산길이 지나는 북쪽 능선(북한산의 남쪽
줄기이기도 함) 사이 150m고지로 성북동에서 제일 막다른 곳이다.

삼청각은 겉모습에서 우러나오는 모습처럼 원래는 고급요정이었다. 1972년에 지어진 이곳은 군
사정권 시절 악명을 떨친 3대 요정<청운각(淸雲閣), 대원각(
大元閣), 삼청각>의 하나로 삼청각
이란 이름은 북악산 남쪽에 있는 삼청동(三淸洞)에서 유래되었다.

이곳은 주로 국빈(國賓)의 접대와 정치적 회담을 위한 요정으로 운영되었으며, 1972년 7월 4일
7.4남북공동성명 직후 남북적십자대표단의 만찬을 열었던 뜻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권력실세의
공간으로 30년 가까이 폐쇄적으로 이어오다가 2001년 서울시가 인수하여 리모델링을 거쳐 도심
속의 전통문화 공간으로 속세에 활짝 문을 열었으며, 현재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한때 백성들은 감히 명함도 들이밀지 못했던 고급 요정이 누구나 자유롭게 오가고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공간으로 탈바꿈된 현장으로 이는 인근 대원각과 비슷하다. 대원각은 그곳을
관리하던 김영한(金英韓, 1916~1999)이 법정에게 통째로 기증하여 절로 변신한 곳으로 비록 과
정은 다소 다르지만 결과는 비슷하다.

이곳은 오래된 문화유산도 아니고 비록 속세에 개방된 공간이라 해도 여전히 고급요정의 이미지
가 깃들여져 있다. 한식당과 다원의 얄미운 음식/차 가격에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서울의 허파
인 북악산의 품에 포근히 안긴 곳으로 20세기로 전승된 현대 한옥의 아름다움과 기품, 전통 정
원의 미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 삼청각
☞ 관련 글 보러가기~~*
* 삼청각 홈페이지는 ☞ 이곳을 클릭


▲  북악산 전면개방 기념조림 표석 - 숙정문 안내소 부근

▲  숙정문안내소 - 여기서 산길은 숙정문 방면과 북악산길 방면으로 갈린다.

홍련사와 삼청터널 사이에 난 산길을 오르면 북악산 전면개방 기념 조림(造林)을 기념하는 커다
란 표석(標石)이 나그네를 맞는다. 지금은 이 땅에 없는 대통령의 업적이라 그를 좋아하는 사람
들은 여기서 기념촬영을 하고 등산에 임한다.

표석을 지나면 숙정문안내소(☎ 02-747-2152~3)가 나온다. 여기서 길은 2갈래로 갈리는데 안내
소를 지나 직진하면 한양도성의 북문인 숙정문(肅靖門)으로 통한다. 숙정문에서 북악산의 주능
선을 따라 와룡공원이나 창의문(彰義門, 자하문)으로 이어지며, 북악산의 정상인 백악마루(342m
)에서 아시아 최대 도시로 콧대가 높은 서울 도심을 두 눈 아래에 두며 굽어볼 수 있다.
서울을 방어하고자 오랫동안 금표(禁標) 지역으로 있던 북악산이 2006년 속세에 개방이 되었지
만 아직까지는 제약이 많아 숙정문안내소와 창의문안내소, 말바위안내소를 통해 들어가야 되며,
적어도 15시까지는 출입해야 된다. 반드시 신분증을 가져가야 되며, 출입신고서를 작성하고 출
입증을 받아서 가슴에 달거나 목에 걸고 입장해야 된다. 또한 17시까지 등산을 마쳐야 된다.
허나 본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곳은 북악산 주능선이 아닌 북악하늘길이다. (북악산 주능선 관련
정보는 ☞ 이곳을 클릭하여 북악산 관람정보 부분을 참조하거나 숙정문안내소에 문의 요망)
숙정문안내소를 코앞에 두고 오른쪽(홍련사에서 숙정문 방향) 산길로 가면 북악산 북쪽 능선으
로 통하는 북악하늘길 제1산책로이다. 김신조루트라 불리는 제2산책로는 안내소에서 200m 떨어
진 성북천발원지에서 시작된다.

북악산 북쪽 능선 주변은 북악산 주능선과 달리 백성들의 출입이 자유로웠다. 그러다가 1968년
1월 21일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공비패거리 31명이 북한산을 넘어 창의문을 거쳐 시내로 침투했
는데, 그들의 침투 소식을 접한 종로경찰서장 최규식(崔圭植, 1932~1968)은 경찰을 청와대 길목
에  배치하고 직접 현장을 지휘했다.
드디어 공비패거리가 청와대 서쪽 청운동(淸雲洞)에 나타나자 최서장은 그들이 공비임을 눈치채
고 검문을 한다며 길을 막았다. 들통났음을 직감한 공비들은 발작하여 외투 속에 숨긴 기관단총
을 꺼내 선제공격을 가하면서 총격전이 발생했고, 최서장은 불행히도 가슴과 배에 관통상(貫通
傷)을 입고 쓰러지면서 '끝까지 청와대를 사수하라!' 부대원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리고는 장
렬한 최후를 마쳤다.
서장의 죽음에 애끓는 복수심에 불탄 우리 경찰의 반격으로 공비들은 거의 벌집이 되었고 살아
남은 이들은 인왕산(仁王山)과 북악산으로 도주했다. 이후 14일 동안 수색을 벌여 북악산 북쪽
능선를 끝으로 토벌을 완료했으며, 생포된 김신조와 도주 1명을 뺀 29명을 사살했다.

김신조 사건을 계기로 뚜껑이 단단히 폭발한 박정희 전대통령은 북악산 북쪽 능선 주변을 완전
히 통제하여 군사지역으로 삼았으며, 북악산과 인왕산 허리에 군작전 및 관광을 겸한 북악스카
이웨이(북악산길)를 급하게 닦게 했다.

통제를 당하고 무려 41년이 지난 2009년부터 삼청각에서 와룡공원 방면과 성북동과 평창동, 정
릉에서 북악산 북쪽 능선인 북악산길로 이어지는 산길들이 속속 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2010년
2월 27일 삼청각에서 북악산길로 오르는 산길을 손질하여 속세에 개방했다. 그 산길이 이른바
북악하늘길이다. 이 중 제2산책로는 김신조 패거리가 도망친 루트라 하여 김신조루트란 이름으
로 속세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북악하늘길의 백미이자, 안보관광지로 가장 볼거리가 많은 산길
이다. (실제로 김신조는 이 길로 가지 않았다고 함)
이곳이 주능선과 다른 점이 있다면 24시간 언제든 출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행히 내가 팔팔
한 시절에 공개되어 이렇게 가게 되니 기쁘기 그지 없다. 북한이나 휴전선처럼 기약할 수 없는
곳에서 벗어났으니 말이다.

무려 40여 년 동안 폐쇄되어 속인들의 발길이 닿지 못한 탓에 북악산 북쪽 능선의 자연은 군부
대로 인한 몇몇 훼손을 빼고는 거의 대부분 잘 보존되고 있다. 그러 인해 생태적인 가치가 높고
자연경관이 우수하며, 서울 도심을 비웃듯 자연이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어 '서울 속의 비무장
지대','도심의 허파','도심 속의 신세계' 등의 신선한 별명까지 지니게 되었다. 또한 마천루(摩
天樓)의 빌딩들이 즐비한 도심 속의 이색 장소로 한나절 나들이 코스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제1산책로와 제2산책로(김신조루트)는 출입통제 시절 군인들이 오가던 산길로 쓰여 군사시설과
그 당시 만들어진 계단길이 있으며, 산길이 조금은 험하고 경사가 속세살이처럼 급하여 등산객
의 편의를 위해 나무로 만든 등산로를 곳곳에 설치하여 통행하는데 별 어려움은 없다.

참고로 북악산 북쪽 능선을 개방하면서 조성된 북악하늘길 코스는 다음과 같으며, 본글에서 북
악산길과 북악하늘길을 절대 혼돈하지 않도록 한다. (북악산길은 북악스카이웨이 도로, 북악하
늘길은 성북동에서 북악산길로 이어지는 산길)
* 북악하늘길 제1산책로 : 말바위쉼터 ~ 한양성곽 북쪽산길(중간에 성곽 안으로 인도하는 나무
  계단이 있음) ~ 숙정문안내소 ~ 성북천발원지 ~ 북악팔각정 (1.4km)
* 북악하늘길 제2산책로(김신조루트) : 성북천발원지 ~ 계곡마루 ~ 호경암 ~ 하늘전망대 ~ 북까
  페 ~ 하늘교 ~ 하늘마루 (2km)

* 북악하늘길 제3산책로 : 북까페 ~ 동마루 ~ 숲속다리 (640m)


▲  북악하늘길 제1산책로 계단길 (군사통제시절에 만든 계단)

▲  북악하늘길 제1산책로와 그뒤로 보이는 북악산 북쪽 능선

▲  울창한 숲너머로 삼청각 일화당(一和堂)이 고개를 내민다.


  삼삼한 숲에 묻힌 북악산 김신조투르 둘러보기 (1)
성북천발원지 ~ 서마루 ~ 솔바람교


▲  성북천(城北川) 발원지

숙정문안내소에서 200m 정도 오르면 성북천발원지가 나온다. 성북천은 북악산 동북쪽 자락에서
발원(發源)하여 성북동과 삼선교, 보문동, 제기동을 거쳐 청계천으로 흐르는 7.7km의 하천으로
지방 2급하천이다. 조그만 하천의 발원지라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儉龍沼)나 낙동강의 발원지
인 황지(黃池)처럼 뭔가 특별하거나 요란한 것은 없으며, 속세를 향해 흐르는 계곡 주변에는 하
얀 피부의 바위들이 누워 있고, 수심은 대충 무릎이 닿을까 말까 할 정도로 얕다.
성북구청에서는 이곳을 생물서식처로 가꾸고자 수변(水邊)식물과 조류, 곤충류의 먹이식물을 심
었으며, 성북구를 가로 질러 흐르는 성북천의 시작점인 만큼 계곡으로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다.

이곳에서 산길은 2개로 갈리는데, 직진하면 기존의 제1산책로로 바로 북악팔각정과 빠르게 이어
지며, 오른쪽은 김신조루트라 불리는 제2산책로로 호경암을 거쳐 하늘교까지 이어지는 2km 산길
이다. 길 중간중간 조망(眺望)이 괜찮은 곳에 '~~마루'와 '하늘전망대'라 불리는 조망대를 두어
천하를 굽어볼 수 있게 했다.


▲  마치 끝이 없는 하늘로 이어진듯한 김신조루트 계단길 (통제시절의 유물)

▲  서마루에서 바라본 천하 (1)
북악산 주능선 너머로 서울 도심과 남산이 보인다.
아직까지는 조망이 속시원하지는 못하다.

▲  서마루에서 바라본 천하 (2)

북악산 정상(백악마루)이 오른쪽에 보이고, 그 너머로 도심과 용산구, 마포구 지역이 시야에 보
인다. 남산 뒤로 희미하게 관악산(冠岳山)이 모습을 비추며 늘 북악산을 응시한다. 관악산은 풍
수지리적으로 서울을 위협하는 산으로 북악산은 서울을 지키는 주산(主山)인데, 높이로 보나 덩
치로 보나 관악산의 적수가 되질 못했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고자 북한산(北漢山)을 북악산을
돕는 든든한 진산(鎭山)으로 삼아 관악산의 기운을 경계했던 것이다.


▲  서마루에서 바라본 천하 (3)
성북구와 동대문구를 비롯한 서울 동부 지역

성북천발원지에서 서마루까지는 오르막길이다. 서마루에는 두 다리를 쉬어갈 수 있도록 의자와
조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숨을 고르며 천하를 관망하기에 좋다. 이곳에선 북악팔각정이 가
까이에 보이며, 북쪽으로 난 금지된 계단길이 있는데, 이는 군부대로 가는 길이다.
여기서 길은 동쪽으로 급하게 내리막길이 펼쳐져 있어 '벌써 다 올라온거야? 정말 싱거운데..!'
싶은 착각과 방심을 불러 일으킨다. 허나 그건 북악산이 내린 일종의 속임수였다.


▲  솔바람교 주변

▲  약수터에서 바라본 솔바람교
(다리 중간에 계곡마루가 있음)

▲  정면에서 본 솔바람교와 돌밭이
되버린 계곡


▲  솔바람교 밑에 자리한 약수터

나무 계단길을 내려서면 솔바람교라 불리는 나무다리가 나온다. 다리 이름이 순 우리말에 어여
쁜 표현을 넣어 정감이 깊은데. 주변에 소나무를 비롯한 수목이 삼삼하여 그 이름 그대로 솔바
람이 나를 날려보낼 것 같다. 이래 봬도 계곡 위에 걸린 엄연한 다리이건만 계곡이 워낙 부실하
고 돌만 가득하여 계곡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다리 중간에는 계곡마루라 불리는 쉼터가 있는데,
늘 그늘이 드리우고 있어 시원하다.

다리를 내려와 구석으로 가면 이름 없는 약수터가 있는데, 이곳이 북악하늘길의 유일한 샘터이
다. 산에서의 약수터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라 갈증이 없어도 꼭 물을 한 바가지 마시
는데, 그래도 산을 조금 탔다고 목구멍이 시원하다고 쾌재를 부른다. 물맛은 별로 특별한 것은
없어 보인다.
약수터 주변은 숲이 바다를 이루고 있어 햇빛이 쉽게 손을 뻗지 못하며, 북악하늘길에서 가장
깊은 곳으로 북쪽과 서쪽, 남쪽은 산으로 막혀있고, 남쪽만 가늘게 뚫려있는 고독한 곳이다.

서마루에서 솔바람교까지 220m 구간은 급한 경사의 내리막길이다. 다 올라왔구나 싶겠지만 그건
북악산이 인간들을 속이고 시험하는 것이다. 솔바람교를 지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무지막지한
오르막길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내리막길은 고난 앞에서 잠시 즐기는 여유라고나 할까..? 한라
산(漢拏山)도 관음사 방면으로 한참 내려갈 때 중간에 오르막길이 나와 속인들을 좌절하게 만드
는데, 바로 그 이치이다. 남마루까지는 가파른 길이 계속 이어지니 방심의 늪에 빠지지 말자~~


  삼삼한 숲에 묻힌 북악산 김신조투르 둘러보기 (2)
남마루 ~ 호경암


▲  남마루에서 바라본 천하 (1)
성북구, 동대문구를 비롯한 서울 동부지역

솔바람교에서 600m 정도 가파른 길을 오르면 남마루라 불리는 조망대가 나온다. 김신조루트에서
제일 숨이 차는 구간이 솔바람교에서 남마루 구간으로 청운동에서 간신히 도망친 김신조 일당이
목을 붙잡고 열심히 줄행랑을 치던 구간이다.

남마루에 각박한 산길에 지친 두 다리를 쉬게 하며 잠시 천하를 굽어본다. 시원한 산바람이 잠
시 얼굴에 비춘 땀을 보기 좋게 앗아간다. 남마루에서 보이는 범위는 서마루와 거의 비슷하지만
거기보다는 하늘과 좀 더 가까운 곳이라 조망은 좀 업그레이드 된다.


▲  남마루에서 바라본 천하 (2)
북악산 수림 속에 묻힌 삼청각 일화당의 지붕이 보인다.

▲  남마루에서 바라본 천하 (3)
성북동과 혜화동, 성북구, 동대문구, 성동구, 중랑구 등이 눈에 박힌다.

▲  남마루에서 바라본 천하 (4)
북악산 주능선 너머로 서울 도심과 남산(南山)이 보인다.

▲  남마루에서 호경암으로 가는 산길
솔바람교 이후 잔뜩 흥분했던 산길은 남마루 이후 다소 진정을
되찾으며 호젓한 산길의 기품을 보인다.

▲  남마루에서 호경암으로 가는 나무 다리길
이 구간은 길이 야박하여 이렇게 나무다리를 놓았다.

▲  김신조루트의 상징물 ~ 호경암(虎京岩)

남마루에서 360m 오르면 길 왼쪽으로 큼직한 바위가 나그네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도심을 바라
보며 자리한 이 바위가 바로 김신조루트의 상징인 호경암이다. 바위는 그리 잘생긴 편은 아니고
그저 평범한 수준인데, 이 바위는 김신조 일당과의 처절했던 격전지라 남북분단의 가슴 아픈 비
극을 더욱 끌어올려 준다.

청운동에서 종로경찰서장 최규식이 이끈 우리 경찰과의 전투에서 간신히 도망친 김신조 일당은
북악산을 넘어 성북동 뒷산(북악산 북쪽 능선)으로 줄행랑을 치며 몸을 숨겼다. 39대대 2중대는
호경암 주변을 수색하던 중,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공비 3명을 발견, 호경암에서 교전을 벌이다
가 인근 구진봉(북악산 북쪽 능선 봉우리의 하나) 주변에서 모조리 사살했다.

처리된 김신조 일당 29명은 그 시신을 버리지 않고 파주시 적성면에 있는 적군묘지(敵軍墓地)에
묻었다. 여기서 적군묘지는 6.25때 남한 땅에서 죽은 북한군과 중공 떨거지들의 시신을 안치한
공간으로 김신조 사건과 동해 잠수함 침투 때 죽은 공비를 비롯하여 1987년 KAL기 폭파범도 같
이 묻혀있는 분단 비극의 숨겨진 속살이다.

호경암이란 이름은 처음에는 북악산 주변에 숨겨진 경승지가 많으므로 조선시대에 지어진 이름
이 아닐까 싶었으나 1968년 당시 서울을 지키던 맹호부대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  총알구멍이 선명한 호경암

북악산에 귀족들의 기와집과 별장, 바위글씨들
이 많이 있었지만 그 범위는 북악산 주능선의
서쪽과 남쪽에 치우쳐져 있을 뿐, 북쪽 능선인
이곳까지는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던 모양이다.

바위 밑에는 이곳이 격전지임을 알리는 안내문
이 있는데, 1998년 1월 군장병들의 애국심과 경
각심을 돋게 하고자 설치했다고 하며, 울퉁불퉁
한 바위 피부에는 당시 총격전으로 생긴 50여
발의 탄흔이 진하게 남아 당시의 긴장되고 숨막
힌 상황을 아련히 전해준다.
그런 악연으로 북악산의 이름 없는 바위는 김신
조 사건의 격전지로 이들을 격퇴한 부대 이름을
따서 호경암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고, 이곳이
개방되면서 북악산의 새로운 명물이자 이 땅의
처절한 현실을 말해주는 존재로 몸값과 이름을
크게 올리고 있다. 바위를 보면 조금은 표정이
우울해 보이는데, 통일이 되면 그의 표정도 씨
익~ 펴지지는 않을까?


▲  호경암 머리 부분에 난 당시의 상처들

바위 표면에는 당시 인간들이 낸 상처들이 진하게 서려있다. 피부도 괜찮고 그저 조용히 지내던
그가 무슨 죄가 있다고 총알 세례를 받아야 했는지.? 유명해진 것은 좋지만 그때의 상처는 영원
히 치유하지 못하고 간직하고 살아야 되는 호경암에게 인간의 하나로서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  바위에 깊숙히 박힌 탄흔

같은 민족이지만 나라와 이념이 다른 두 존재들이 서로를 죽이고자 총알을 사정없이 갈기던 그
날의 총성이 들리는 듯 하여 마음이 그리 편치가 못하다. 저 총알이 사정 없이 박힌 날, 바위도
울었을 것이다. 얼마나 울었으면 바위 표면이 울퉁불퉁했을까.. 다시는 이 땅의 그 어느 것이라
도 분단 비극의 현실에 희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  호경암 정상에 비스듬히 박힌 호경암 표석
표석이 박힌 호경암 정상은 안전을 이유로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허나 이곳에 올라
바라보는 천하는 앞에서 본 조망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천하 일품이다.

▲  호경암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도심과 남산 등이 보인다. ▼


  삼삼한 숲에 묻힌 북악산 김신조투르 둘러보기 (3)
하늘전망대 ~ 북까페 ~ 북악산길


▲  호경암에서 하늘전망대로 가는 길
호경암을 지나면 오르막길은 거의 나오질 않는다.
녹음에 잠긴 평평한 오솔길만이 조용히 사색을 도울 뿐~

▲  김신조루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하늘전망대

호경암을 지나 230m 가면 하늘전망대라 불리는 조망대가 나온다. 그동안에 나온 '~~마루' 보다
덩치도 넓고 조망도 일품인데, 김신조루트를 포함한 북악하늘길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하늘전
망대란 이름은 북악하늘길에서 따온 것인데, 그만큼 하늘과도 가까운 곳이다 보니 이름이 딱 어
울린다.

앞에 마루에서는 도심과 남산 등의 남쪽과 중랑구 등의 동쪽이 주로 보였는데, 호경암을 경계로
능선 남쪽에서 북쪽으로 넘어왔기 때문에 하늘전망대에 발을 디디면 그와는 반대인 북한산과 강
북구, 성북구, 도봉구, 평창동 등 서울 동북부와 종로구 북부 지역이 훤히 두 눈에 박힌다.


▲  하늘전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1)
북한산 동쪽과 성북구, 강북구 일대는 물론 멀리 도봉구와 노원구,
불암산과 수락산 형제도 흔쾌히 시야에 들어온다.

▲  하늘전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2)
성북구와 동대문구는 물론 멀리 중랑구와 노원구 일대가 눈에 박힌다.

▲  하늘전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3)
가까이에 북부간선도로가 보이고, 서울 동북부가 눈 아래 펼쳐진다.

▲  하늘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산 형제봉

북한산의 남쪽 봉우리인 형제봉이 넌지시 우리를 굽어본다. 북악하늘길과 북한산은 산줄기가 서
로 이어져 있어 마음대로 오갈 수 있으며, 북한산과 북악산은 다 같은 한북정맥(漢北正脈)의 일
원이다. 북악산 북쪽 줄기를 북한산의 최남단 줄기로 보기도 하며, 그런 이유로 길상사과 정법
사가 삼각산(三角山, 북한산)에 있음을 칭하고 있는 것이다.


▲  솔내음이 그윽한 북까페

하늘전망대에서 북쪽으로 110m 가면 북까페라 불리는 공간이 나온다. 이곳은 소나무가 우거져있
고 한쪽에 책장이 있어 소나무 밑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자연을 벗삼아 책을 읽는 곳이다. 북
한산과 북악산의 산바람이 교차하는 곳이라 독서도 무지 잘될 것 같다.
그런데 북까페보다는 '독서마당'이나 '소나무책방','솔내음책방','사색의 공간'이라 했으면 훤
씬 더 좋지 않았을까? 굳이 서양 흰둥이들의 영어로 이름을 지어야 했을까? 웃기는 것은 다른
곳은 '~~마루(마루는 정상을 뜻하는 순 우리말)','하늘전망대' 등의 순 우리말로 이름을 달았으
면서 말이다.

북까페 책장은 달랑 하나인데, 책들로 가득하다. 허나 아직은 많이 부족하니 집에 버려둔 책이
있다면 썩은 내 풍기게 하지 말고 이곳에 기증하는 것도 괜찮다. 다만 이곳의 책은 가져가지 않
도록 한다. 대부분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책(주로 어린이와 청소년용)들이다. 그리고 책을
봤으면 책장에 정성을 담아 꽂아두기 바란다.

이곳에서 길은 2갈래로 갈리는데, 북까페를 등지고 직진하면 하늘교가 나오고, 북까페를 가로지
르면 북악하늘길 3산책로가 시작된다. 3산책로는 이곳에서 숲속다리까지 이어지는 겨우 1리 정
도의 짧은 산길이다.


▲  북까페 책장 - 어린이 도서관 같은 분위기다.

▲  김신조루트의 종점, 하늘마루

북까페에서 1분 정도 가면 하늘교란 콘크리트 다리가 나온다. 다리 밑에는 북악산길이 펼쳐져
있는데, 수레들이 1분이 멀다하고 지나간다. 하늘교는 난간은 성곽(城郭) 여장처럼 만든 것이
특징인데, 그 다리를 건너면 하늘마루가 나온다. 이곳이 김신조루트의 북쪽 종점이다.

이렇게 해서 2km의 김신조루트를 깔끔히 완주했다. 허나 그건 북악산 산길의 하나를 지나간 것
에 불과하다. 다음에는 제1산책로의 나머지 부분과 제3산책로, 북한산 형제봉으로 핏줄처럼 이
어진 산길에 죄다 발도장을 찍고 싶다.

하늘마루에는 6각형 정자와 쉼터, 운동기구 등이 흩어져 있으며,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하늘교에
서 위 아래로 떨어져있던 북악산길과 만난다. 여기서 길은 2갈래로 갈리는데, 서쪽으로 가면 북
악팔각정과 부암동, 창의문, 인왕산으로 이어진다. 북악산길이 수레 전용도로긴 하지만 도로 옆
에 뚜벅이를 위한 길을 내어 창의문을 넘어 인왕산(仁王山), 사직공원까지 걸어갈 수 있다. 물
론 거리의 압박은 심하다. 그렇지만 북악팔각정을 지나서부터는 내리막길 수준이라 힘든 건 별
로 없으니 거닐만 하다.
반면 동쪽으로 가면 북악정과 성북구민회관, 아리랑고개, 정릉동 방면으로 통한다. 중간에 국민
대나 배밭골, 성북동 길상사로 내려가는 길이 있으며, 하늘마루를 조금 지나면 북한산 형제봉으
로 가는 산길이 있어 북한산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 산길은 북악터널 위쪽을 지나는데, 형제봉
으로 가면 중간에 요즘 인기를 한참 닦고 있는 북한산둘레길과도 만난다.
둘레길은 동쪽으로 수유리와 우이동(牛耳洞), 서쪽으로 평창동과 불광동(佛光洞)과 구파발 쪽으
로 연결되어 있어, 마음만 먹으면 북악산에서 북한산 서쪽이나 동쪽을 잇는 장거리 등산도 가능
하다. 
북한산은 북악산과 북악터널에서 서로 이어져 있고, 북악산 북쪽 능선은 북한산의 남쪽 줄기로
도 볼 수 있다. 그래서 길상사와 정법사(正法寺)가 삼각산(三角山, 북한산의 다른 이름)에 있음
을 칭하는 것이다.

저번에 왔을 때는 창의문으로 내려갔으니 이번에는 반대인 아리랑고개 쪽으로 내려갔다. 내려가
는 길의 연속이라 힘든 건 없다. 북악산길을 옆구리에 끼며 가다가 북악정에서 성북동으로 꺾어
서 한국가구박물관을 거쳐 길상사로 내려왔다.


▲  북악산길
서울 도심 속의 산악도로이자 관광도로로 드라이브 코스로 명성이 자자하다.
특히 야간에는 회색빛 대도시 서울의 야경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다.


41년 만에 속세에 개방된 북악하늘길과 김신조루트, 비록 남북분단의 아픈 상처가 서린 서글픈
현장이지만 서울 도심 속의 상큼한 명소로, 자연이 잘 보존되고 경관이 아름다운 보석과 같은
곳이다. 누가 도심에 이런 호젓한 산길이 있으리라 생각이나 했겠는가..?

김신조루트는 마치 미지의 땅에 들어온 듯한 신선한 기분이었고, 서울 땅에서 안가본 곳이 거의
없는 나에게도 공개된지 1년 밖에 안된 서름한 곳이라 길을 거닐면서도 무엇이 나올까? 늘 마음
이 두근거렸다.
이렇게 하여 도심 속의 허파, 북악산 김신조루트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 북악산 북악하늘길(김신조루트) 찾아가기 (2012년 9월 기준)
*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1111, 2112번 시내버스를 타고 성북동 명수학교 종점 하차.
  여기서 서쪽(삼청각 방면)으로 8분 정도 가면 삼청터널이 나오는데, 홍련사 옆길로 들어가면
  숙정문안내소이다. 안내소 못미쳐에서 우회전하면 북악하늘길 1산책로와 김신조루트이다.
*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1162번 시내버스를 타고 성북구민회관 종점 하차. 여기서
  북악산길을 따라 오른다.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3번 출구)에서 1020, 7018, 7022, 7212번 시내버스를 타고 자하문고개
  하차, 북악산길을 따라 오른다.

★ 북악산 북악하늘길 관람정보
* 북악산 주능선과 달리 언제든 출입이 가능하다. 단 군부대 등의 출입금지 지역과 등산로 외에
  구간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 김신조루트는 약수터 1곳과 화장실 1곳(호경암 부근) 밖에 없다.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정릉동
* 문의 : 성북구청 (☎ 02-920-3796) / 숙정문안내소 (☎ 02-747-2152~3, 팩스 02-747-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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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니다. <단 블로그와 원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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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니터 크기와 컴퓨터 사양에 따라 글이 조금 이상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 공개일 - 2012년 9월 5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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