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스카이웨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3.10.15 첩첩한 산주름에 묻힌 서울 도심의 싱그러운 공간, 북악산 북악하늘길~김신조루트 늦가을 나들이 <북악스카이웨이>
  2. 2022.10.19 성북동 북쪽 끝에 숨겨진 고즈넉한 산사, 삼각산 정법사 (복천암터, 산사길, 북악산길)

첩첩한 산주름에 묻힌 서울 도심의 싱그러운 공간, 북악산 북악하늘길~김신조루트 늦가을 나들이 <북악스카이웨이>

북악산 북악하늘길(김신조루트)



' 서울 도심의 신선한 명소
북악산 북악하늘길(김신조루트) '
남마루에서 바라본 천하
▲  남마루에서 바라본 천하
 



 

늦가을이 한참 익어가던 10월의 끝 무렵, 후배 여인네들과 북악산(백악산) 북악하늘길을 찾았
다. 이곳은 김신조루트로 속세에 널리 알려져 있는데, 2010년에 처음 발을 들인 이래 가끔 발
걸음을 한다.

오후 2시에 한성대입구역(4호선)에서 그들을 만나 서울시내버스 1111번(번동↔성북동)을 타고
서울다원학교(한용운활동터) 종점에서 두 발을 내렸다. 서울 도심 속의 전원(田園) 마을로 일
컬어지는 성북동(城北洞)은 내 즐겨찾기 명소의 일원으로 대부분의 명소를 지겹도록 가봤건만
갔다 오면 또 가고 싶고, 자꾸만 안기고 싶은 곳이다.

성북동 종점에서 만국기(萬國旗)가 펄럭이는 '우정의 공원(公園)'을 지나 삼청각으로 가는 조
그만 길로 들어선다. 서울의 심장부가 바로 지척이건만 그런 도심을 비웃듯 숲과 계곡이 어우
러진 전원 풍경이 도시에서 오염된 안구를 어루만진다. 길 옆에는 계곡이 졸졸졸♪~노래를 부
르며 흘러가는데, 이 물줄기는 성북천이란 간판을 달고 속세로 흘러간다.

길의 막다른 부분에 이르면 계곡을 건너는 다리와 약간의 산길이 그림처럼 펼쳐지는데, 그 산
길을 오르면 바로 삼청터널 북쪽이다.



 

♠  북악산(백악산) 북악하늘길 입문

▲  도심과 성북동을 바짝 이어주는 삼청터널

삼청터널은 성북동과 도심 북쪽인 삼청동(三淸洞)을 이어주는 2차선 땅굴이다. 이곳은 성북동
의 가장 막다른 구석으로 한양도성이 흐르는 북악산(백악산)의 주능선과 북쪽 능선(북악산길)
이 갈라지는 곳이며, 산세도 칼처럼 솟은 편이라 오르기가 좀 각박한 편이다. 그런 구석에서
다른 곳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한줄기 희망을 선사한 것이 바로 삼청터널이다.

이 터널은 박정희 군사정권이 절정을 누리던 1969년에 삽을 떠서 1970년 12월 30일 완성을 보
았다. 공사비는 총 2억 4,900만원(민자 1억 9,900만원, 시비 5,000만원)으로 당시 성북동에는
차지철을 비롯한 군사정권의 실세들이 여럿 살았는데 그들의 청와대 접근 편의와 땅값 상승을
위해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솔직히 그 시절 성북동과 삼청동은 한적한 동네로 두 동네를
이을 터널의 필요성은 그다지 없었다.

터널이 뚫리자 안그래도 졸부들로 가득한 성북동의 땅값이 더욱 하늘 높이 치솟아 금싸라기
땅이 되었고, 성북동과 청와대, 서울 도심간의 접근이 편해지면서 대원각, 삼청각 등의 고급
요정과 식당이 생겨났다. 이들은 썩은내와 돈냄새가 풍기는 지배층과 부유층의 공간으로 돈을
포크레인으로 쓸어 담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산간 지방의 조촐한 터널 같은 삼청터널은 길이 302m, 폭 8.5m(2차선)로 오로지 차량만 들락
거릴 수 있다. 예전에는 권력층과 돈 많은 작자들이 주로 이용하던 터널이었지만 시대가 여러
번씩 바뀌고 성북동이 도심 속 명소로 각광을 받으면서 나들이와 드라이브 수요도 크게 늘었
다. 허나 터널도 그렇고 도로도 그렇고 확장은커녕 여전히 2차선을 고수하고 있어 휴일에는
꼬리에 꼬리를 잡고 굼벵이 속도로 버벅거리는 차량의 행렬을 쉽게 구경할 수 있다.

터널을 지나면 바로 삼청동과 북촌(北村)으로 이어지지만 걷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억지
로 터널에 발을 들이지 않도록 한다. (벌금을 내야됨) 차라리 쿨하게 택시를 타고 넘어가던가
숙정문안내소에서 숙정문이나 말바위, 와룡공원을 넘어 북촌으로 넘어가길 바란다.


▲  삼청각(三淸閣) 정문

성북동의 가장 구석이자 삼청터널 북쪽에는 으리으리한 한옥으로 치장된 삼청각이 자리해 있
다. 이곳은 북악산(백악산) 주능선과 북쪽 능선이 갈라지는 150m 고지로 도심이 바로 지척임
에도 이곳을 감싸고 흐르는 공기부터가 무척 산뜻하고 청정하다.

삼청각은 겉모습에서 우러나오는 모습처럼 원래는 고급요정이었다. 1972년에 지어진 이곳은
군사정권 시절 악명을 떨친 3대 요정<청운각(淸雲閣), 대원각(大元閣), 삼청각>의 하나로 삼
청각이란 이름은 북악산(백악산) 남쪽에 있는 삼청동(三淸洞)에서 유래되었다.
이곳은 주로 국빈 접대와 정치적 회담을 위한 요정으로 운영되었는데, 1972년 7월 4일에 벌어
진 7.4남북공동성명 직후 남북적십자대표단이 만찬을 가졌던 곳이기도 하다. 권력실세들의 공
간으로 30년 가까이 폐쇄적으로 이어오다가 2001년 서울시가 인수하여 리모델링을 거쳐 도심
속의 전통문화 공간으로 속세에 활짝 문을 열었으며, 현재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관리한다.

한때 백성들은 감히 발도 들이지 못했던 고급 요정이 누구나 자유롭게 오가고 전통문화를 즐
기며, 식사와 차 1잔, 혼인, 돌잔치 등을 가질 수 있는 대중적인 공간으로 거듭난 현장으로
이는 길상사(☞ 관련글 보기)란 절집으로 변신한 인근 대원각과 비슷하다.
이곳은 오래된 문화유산도 아니고 비록 속세에 개방되었다고 해도 비싼 이미지는 여전히 깃들
여져 있다. 한식당과 다원의 착하지 못한 음식/차 가격과 행사 비용은 서민들에게는 그리 호
락호락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허나 서울의 허파인 북악산(백악산) 품에 포근히 안긴 곳
으로 20세기로 전승된 현대 한옥의 아름다움과 기품, 전통 정원의 미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 삼청각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330-115 (대사관로 3, ☎ 02-765-3000)
* 삼청각 홈페이지는 ☞ 이곳을 클릭한다.


▲  북악산 전면개방 기념조림 표석 - 숙정문 안내소 부근

▲  늦가을의 처절한 향연이 펼쳐진 북악산(백악산) 등산로
(홍련사와 숙정문안내소 중간)

▲  숙정문안내소

홍련사와 삼청터널 사이로 난 산길을 오르면 북악산 전면개방 조림(造林)을 기념하는 커다란
표석이 나그네를 맞는다. 그 표석을 지나면 북악산 주능선(한양도성 능선)의 주요 관문인 숙
정문안내소(☎ 02-747-2152)가 모습을 비추는데, 여기서 길은 크게 3갈래로 갈린다.
안내소를 지나 직진하면 숙정문(肅靖門)과 북악산(백악산) 주능선, 북악산 정상(342m)으로 이
어지며, 안내소 직전 왼쪽(남쪽) 길은 한양도성 북쪽 산길로 말바위와 와룡공원으로 통한다.
그리고 오른쪽(북쪽) 길이 김신조루트로 통하는 북악하늘길이다.


▲  숙정문안내소 주변 북악산(백악산) 산림

북악산 북쪽 능선 주변은 북악산 주능선과 달리 사람들의 출입이 자유로웠다. 그러다가 1968
년 1월 21일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공비 패거리 31명이 북한산(삼각산)을 넘어 창의문을 거쳐
시내로 침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침투 소식을 접한 종로경찰서장 최규식(崔圭植, 1932~1968
)은 경찰을 청와대 길목에 배치하고 직접 현장을 지휘했다.
드디어 공비패거리가 청와대 서쪽 청운동(淸雲洞)에 나타나자 최서장은 그들이 공비임을 눈치
채고 검문을 한다며 길을 막았다. 이에 공비들은 크게 발작하여 외투 속에 숨긴 기관단총을
꺼내 이판사판으로 선제공격을 가하면서 총격적이 발생했고, 최서장은 불행히도 가슴과 배에
관통상(貫通傷)을 당해 쓰러지면서
'끝까지 청와대를 사수하라!'
마지막 명령을 내리며 장렬히 최후를 마쳤다.

서장의 죽음에 애끓는 복수심에 불탄 경찰의 반격으로 공비들은 거의 벌집이 되었고 살아남은
것들은 인왕산(仁王山)과 북악산으로 도주했다. 이후 14일 동안 수색을 벌여 북악산 북쪽 능
선을 끝으로 토벌을 완료했으며, 생포된 김신조와 도주 1명을 뺀 29명을 처단했다.
김신조 사건을 계기로 뚜껑이 단단히 폭발한 박정희 전대통령은 북악산 북쪽 능선 주변을 완
전히 통제하여 백성들의 출입을 막고 군사 지역으로 삼았으며, 북악산과 인왕산 허리에 군작
전 및 관광을 겸한 북악스카이웨이(북악산길)를 급하게 만들게 했다.

금지된 곳으로 묶인 북악산 북쪽은 41년이 지난 2009년부터 삼청각에서 말바위, 성북동과 정
릉, 평창동에서 북악스카이웨이를 잇는 산길이 속속 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2010년 2월 27일
에 삼청각에서 북악산 북쪽 능선으로 오르는 산길을 손질해 '북악하늘길'이란 간판을 걸어 속
세에 개방했다. 그중 제2산책로는 김신조 일당이 도망친 루트라 하여 김신조루트란 이름으로
인기를 더하고 있으며, 북악하늘길의 백미이자 안보관광지로 가장 볼거리가 많은 산길이다.
(실제로 김신조는 이 길로 가지 않았다고 함)

이곳이 주능선과 다른 점이 있다면 24시간 언제든 출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행히 내가 팔
팔한 시절에 공개되어 이렇게 발을 들이니 기쁘기 그지 없다. 북한이나 휴전선처럼 기약할 수
없는 곳에서 벗어났으니 말이다.

무려 40여 년 동안 통제되어 속인들의 발길을 금지한 탓에 북악산 북쪽의 자연은 군부대로 인
한 약간의 훼손을 빼고는 거의 대부분 잘 보존되고 있다. 그리하여 생태적인 가치가 높고, 자
연경관이 우수하며, 서울 도심을 비웃듯 자연이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어 '서울 속의 비무장
지대','도심 속의 허파','도심 속의 신세계'란 별명까지 지니게 되었다. 또한 키다리 빌딩이
즐비한 서울 도심 속의 이색 장소로 한나절 나들이 코스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북악하늘길 제1산책로와 제2산책로(김신조루트) 대부분은 통제 시절 군인들이 오가던 산길로
군사 시설과 그 당시 지어진 계단길이 줄지어 있으며, 제2산책로는 경사가 매우 각박하여 탐
방객의 편의를 위해 나무데크식 등산로를 곳곳에 만들었다.
이렇게 북악산 북쪽 능선을 개방하면서 조성된 등산로 3개는 다음과 같다.

① 북악하늘길 제1산책로 : 말바위쉼터 ~ 한양도성 북쪽 산길 ~ 숙정문안내소 ~ 성북천발원지
   ~ 북악팔각정 (1.4km)
② 북악하늘길 제2산책로(김신조루트) : 성북천발원지 ~ 서마루 ~ 솔바람교 ~ 호경암 ~ 하늘
   전망대 ~ 북까페 ~ 하늘교 ~ 하늘마루 (2km)
③ 북악하늘길 제3산책로 : 북까페 ~ 동마루 ~ 숲속다리 (640m)



 

♠  북악하늘길(김신조투르) 둘러보기 ①
삼청각쉼터 ~ 성북천발원지 ~ 서마루 ~ 솔바람교

▲  삼청각쉼터

숙정문안내소에서 북악하늘길로 접어들면 가장 먼저 높다란 계단길이 나그네의 기를 제대로
주눅 들게 만든다. 시작부터 각박한 계단이 펼쳐지는 것이다. 김신조루트는 이렇게 첫 이미지
에서 보이듯 계단길이 유별나게 많아 숨을 적지 않게 차게 하는데, 이건 맛보기 버전이다. 여
기서부터 지친다면 김신조루트 산책은 어렵다. 자존심을 곱게 버리고 악으로 깡으로 올라간다
면 김신조루트는 자신의 속살을 하나씩 벗겨주며 그대를 반겨줄 것이다.

계단을 오르면 가장 먼저 삼청각쉼터가 마중을 한다. 이곳은 삼청각의 서쪽이자 뒷통수로 소
나무의 산인 북악산답게 소나무 1그루가 쉼터 중간에서 운치를 그윽하게 불어주며 솔내음과
선선한 그늘을 드리운다. 여기서 잠시 삼청각을 비롯한 좁은 천하를 굽어보고 더 올라가면 제
1산책로와 제2산책로가 갈리는 성북천발원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  삼청각쉼터에서 바라본 천하 (삼청각과 성북동, 성북구 지역)
이제 시작 단계라 조망 범위는 매우 좁다. 허나 산길을 오르면서 하늘과
보다 가까워질수록 조망의 품질도 더욱 높아진다.

▲  늦가을의 물감이 야드르르 번진 북악하늘길 제1산책로와
북악산 북쪽 능선 (삼청각쉼터와 성북천발원지 중간)

▲  성북천발원지에 자리한 수고해(水鼓蟹)다리 (가운데에 보이는 다리)

▲  성북천(城北川) 발원지

성북천은 북악산 동북쪽 자락에서 발원하여 성북동과 삼선교, 보문동, 제기동(祭基洞)을 거쳐
청계천으로 흘러가는 7.7km의 지방 2급 하천이다. 조그만 하천의 발원지라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儉龍沼)나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黃池)처럼 뭔가 특별하거나 요란한 것은 없으며,
계곡 수심은 매우 얕고 주변에는 하얀 피부의 바위들이 벌러덩 누워 있는 그야말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성북구청에서 이곳을 생물 서식처로 가꾸고자 여러 식물을 심고 수질에 특별히 신경을 쓴 결
과 가재를 비롯한 여러 조그만 수중 동물들이 좀 늘어났다. 그래서 이를 기념하고자 성북천발
원지 남쪽에 있는 다리 이름을 가재가 물에서 물장구를 치는 다리란 뜻에 수고해(水鼓蟹)다리
라 하였다.

이곳에서 산길은 2갈래로 갈리는데, 직진하면 기존의 제1산책로로 북악팔각정과 빠르게 이어
지며, 오른쪽은 김신조루트라 불리는 제2산책로로 호경암을 거쳐 하늘교까지 이어지는 2km의
산길이다. 이 산길은 중간중간 조망(眺望)이 괜찮은 곳에 '~~마루'와 '하늘전망대'라 불리는
조망대를 닦아 천하를 굽어볼 수 있게 했다.


▲  성북천발원지에서 바라본 삼청각 편운정(片雲亭)과 유하정
편운정에서 계곡을 따라 북악하늘길로 바로 접근할 수 있으나, 이 구간은
통제구간으로 철조망이 둘러져 있고, 길이 헝클어져 있어
조금은 거칠다.

▲  김신조루트 서마루

성북천발원지에서 서마루까지는 속절없는 세상살이처럼 고통스런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나무
데크로 지어진 서마루에 오르면 삼청각쉼터보다 1단계 높아진 조망을 누릴 수 있으며, 의자가
넉넉히 베풀어져 있어 잠시 숨을 고르며 천하를 굽어보기에 좋다.
이곳에선 북악팔각정이 가까이에 보이며, 여기서 길은 동쪽을 향해 급하게 내리막길로 돌변한
다. 그래서 처음 온 이들은
'벌써 다 올라왔나? 이거 정말 싱거운데!' 생각을 하며 방심을 하지만 이는 북악산이 내린 일
종의 속임수이니 속지말자. 북악산이 북한산(삼각산)이나 관악산(冠岳山), 수락산(水落山) 등
서울 주변의 쟁쟁한 산들에 비해 키는 낮지만 그래도 악(岳)이 들어가는 서울의 오랜 북현무(
北玄武)이다.


▲  서마루에서 바라본 천하 ①
소나무 너머로 성북동과 성북구, 도심 동부 지역, 동대문구, 중랑구, 광진구,
강동구, 송파구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  서마루에서 바라본 천하 ②
북악산(백악산)의 두터운 주능선 너머로 서울 도심과 남산이 바라보인다.

▲  이름도 시원한 솔바람교

서마루에서 솔바람교까지 220m 구간은 각박한 경사의 내리막이다. 다 올라왔구나 싶겠지만 솔
바람교를 지나면서 산길은 다시 흥분하여 무지막지한 오르막길로 나그네의 기를 죽인다. 내리
막길은 고난 앞에서 잠시 즐기는 여유라고나 할까..? 한라산(漢拏山)도 관음사(觀音寺) 방면
으로 한참 내려갈 때 중간에 오르막길이 나와 속인들을 좌절하게 만드는데 바로 그 이치이다.
남마루까지는 가파른 길이 계속 이어지니 방심의 늪에 빠지지 말자~~

솔바람교는 계곡 위에 걸린 나무다리로 그 이름이 순 우리말이라 정감이 참 깊다. 주변은 소
나무를 비롯해 온갖 수목이 삼삼하여 그 이름 그대로 솔바람이 나를 날려보낼 것 같다. 계곡
이라고 하지만 워낙 생긴 것이 부실하고 돌만 가득해 이곳에 올 때마다 늘 황량한 모습을 보
여주어 안타깝기 그지 없다.
 
다리를 내려오면 쉼터가 있으며 다리 북쪽 구석으로 가면 약수터가 있는데, 이곳이 김신조루
트의 유일한 샘터이다. 산에서의 약수터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라 갈증이 없어도 꼭 물
은 섭취하기 마련인데, 무심한 가을 가뭄 때문인지 수분은 이미 실종되었다. 약수터 주변은
숲이 바다를 이루고 있어 햇살이 쉽게 손을 뻗치지 못하며, 북악하늘길에서 가장 궁벽한 곳으
로 북쪽과 서쪽, 동쪽은 산으로 막혀있고, 남쪽만 가늘게 뚫려있는 고적한 곳이다.


▲  솔바람교 밑에 자리한 약수터
이름도 없고, 성도 없는 약수터이다.

▲  솔바람교 쉼터
이곳은 김신조루트의 중간 정도로 속세에서 간식거리를 가져왔다면 여기서
잠시 요기를 하며 쉬었다 가는 것도 괜찮다.



 

♠  북악하늘길(김신조투르) 둘러보기 ②
솔바람교 ~ 남마루 ~ 호경암

▲  솔바람교 쉼터에서 남마루로 올라가는 계단길
보기만 해도 회의가 느껴진다.


솔바람교에서 남마루까지는 다시 지독한 오르막길이 펼쳐진다. 그 거리는 약 600m 정도로 여
기가 김신조루트에게 가장 인생의 회의를 느끼게 만드는 곳이다. 하긴 공비 패거리가 살아 돌
아가려는 일념으로 넘었던 곳인데 오죽 험하겠는가. 게다가 이곳은 산길도 없던 구간으로 각
박한 산세를 극복해 나무데크 계단길을 닦았으며, 적당하게 간격을 두며 쉼터를 만들어 턱까
지 밀려오는 숨을 잠시나마 제자리를 찾도록 했다.

그렇게 잔뜩 흥분한 산길을 오르면 남마루라 불리는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은 앞서 서마루보
다더 하늘과 가까운 곳이라 더 휼륭한 조망을 선물로 준다. 이곳 이후 흥분했던 산길은 다소
진정을 되찾으며 호젓한 산길의 기품을 서서히 회복한다.


▲  지옥 끝에 나온 극락, 남마루

▲  남마루에서 바라본 천하
성북동과 성북구, 낙산, 도심 동부 지역, 동대문구, 중랑구, 성동구,
광진구, 송파구, 강동구 지역

▲  서서히 진정되고 있는 산길 (남마루와 호경암 사이)

▲  호경암으로 오르는 계단길

▲  김신조루트의 상징물, 호경암(虎京岩)

남마루에서 360m 오르면 길 왼쪽에 상처를 가득 입은 큼직한 바위가 나그네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도심을 바라보고 선 이 바위가 바로 김신조루트의 상징인 호경암으로 그가 이곳의 유명
바위가 된 것은 김신조 공비 패거리와 격전을 벌였던 남북분단의 서글픈 현장이기 때문이다.

청운동에서 우리 경찰에게 털린 김신조 패거리는 북악산을 넘어 성북동 뒷산(북악산 북쪽 능
선)으로 줄행랑을 치며 몸을 숨겼다. 39대대 2중대는 호경암 주변을 수색하던 중, 등을 보이
고 도망치는 공비 3명을 발견, 호경암에서 교전을 벌이다가 인근 구진봉 주변에서 모조리 사
살했다.
그렇게 처리된 김신조 패거리 29명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파주시 적성면에 있는 적군묘지(敵軍
墓地)에 묻어주었다. 적군묘지는 6.25 때 남한 땅에서 처단된 북한군과 중공군의 시신을 묻은
곳으로 김신조 사건과 동해 잠수함 침투 때 처리한 공비, 그리고 1987년 KAL기를 폭파시킨 폭
파범까지 이곳에 묻혀 있다.


▲  남북분단의 비극이 안겨준 선물 아닌 선물
총탄 자국으로 가득한 호경암


북악산(백악산)이 서울 근교 경승지로 조선시대부터 왕족과 사대부들의 별장과 기와집, 바위
글씨가 즐비했던 탓에 호경암도 그런 곳이 아닐까 생각을 했었다. 허나 막상 확인해보니 1968
년 때 서울을 지키던 맹호부대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옛 사람들의 손길은 북악
산 주능선과 서쪽(부암동, 청운동), 남쪽(삼청동)에 치우쳐져 있을 뿐, 김신조루트와 북쪽 능
선에는 전혀 없는 것이다. 아마도 금표(禁標) 구역으로 오랫동안 금지된 곳으로 묶인 탓이 아
닐까 싶다.

바위 밑에는 이곳이 격전지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있는데, 1998년 1월 호경암 주변에서 복무하
는 군장병들의 애국심과 경각심을 돋게 하려고 안내문을 설치했다고 하며, 바위 피부에는 당
시 총격전으로 생긴 50여 발의 탄흔이 진하게 남아 그 시절 긴장되고 숨막히던 상황을 아련히
전해준다.
그런 악연으로 북악산의 이름 없는 바위는 김신조 사건의 격전지로 이들을 격퇴한 부대 이름
을 따서 호경암이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고, 이곳이 개방되면서 북악산의 새로운 명물이자 이
땅의 비극적인 현실을 담고 있는 산증인으로 몸값과 이름을 크게 올리고 있다. 좋은 쪽으로
이름을 높여야지 영 좋지 않은 쪽으로 높이고 있으니 바위 자신도 어이가 없을 것이다. 바위
를 보면 표정이 조금은 굳어져 있는데, 이 땅이 통일이 되면 그의 표정도 씨익~ 펴지지는 않
을까.


▲  이 땅의 비극은 저렇게 깊었다 - 바위에 박힌 탄흔

▲  호경암 표석
표석이 박힌 호경암 정상에 올라서면 지금까지의 조망을 훨씬 뛰어넘는
국보급의 조망이 발 밑에 펼쳐진다.

▲  호경암 표석에서 바라본 천하 ①
북악산 일대와 성북동, 서울 도심, 남산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  호경암 표석에서 바라본 천하 ②
성북동과 정릉동, 성북구, 강북구, 중랑구, 성동구, 광진구 등

▲  호경암 표석에서 바라본 천하 ③
평창동과 구기동, 북한산(삼각산) 산줄기, 형제봉 등이 두 망막에 들어온다.

▲  호경암에서 하늘전망대로 내려가는 길
호경암을 지나면 더 이상 오르막길은 나오질 않는다. 늦가을에 물들어가는
잔잔한 숲길만이 조용히 사색을 도울 뿐~



 

♠  북악하늘길(김신조투르) 마무리

▲  김신조루트 북쪽에 자리한 하늘전망대

호경암에서 4~5분 정도 가면 하늘전망대라 불리는 전망대가 나온다. 지금까지 나온 '~~마루'
보다 덩치도 훨씬 크고 조망도 괜찮은 편으로 전망대 이름은 북악하늘길에서 따왔지만 그만큼
하늘과도 가까운 곳이다 보니 이름이 그런데로 잘 어울린다.

서마루부터 호경암까는 성북동과 북악산(백악산) 주능선, 서울 도심, 남산 등의 남쪽과 성북
구와 중랑구, 동대문구, 광진구 등 동쪽이 주로 보였다. 허나 호경암을 경계로 능선 남부에서
북부로 넘어왔기 때문에 하늘전망대부터는 그와는 반대인 북쪽으로 파노라마가 바뀌면서 평창
동과 구기동, 정릉동, 북한산(삼각산) 산줄기를 위시해 강북구, 도봉구, 노원구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  하늘전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①
서울의 대표 졸부 동네인 평창동을 비롯해 부암동과 구기동, 탕춘대능선,
북한산 서부가 거침없이 시야에 박힌다.


▲  하늘전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②
정릉동과 길음동, 성북구, 강북구 일대는 물론 멀리 도봉구와 노원구,
수락산~불암산까지 흔쾌히 시야에 들어온다.

▲  하늘전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③
성북구와 동대문구, 중랑구, 광진구, 아차산 산줄기, 구리시 지역 등


▲  하늘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산(삼각산) 산줄기와 형제봉

▲  솔내음이 그윽한 북까페

하늘전망대에서 북쪽으로 110m 가면 북까페라 불리는 소나무숲이 마중을 한다. 이곳에는 책장
과 의자가 있어 자연을 벗삼아 책을 읽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는데, 북한산과 북악산의 산바람
이 교차하는 곳이라 독서도 무지 잘될 것 같다. 그런데 북까페보다는 '독서마당'이나 '소나무
책방','솔내음책방','사색의 공간'으로 이름을 지었으면 훨씬 부드럽지 않을까 싶다. 다른 곳
은 '~~마루(마루는 정상을 뜻하는 순 우리말)'나 '하늘전망대' 등의 우리말을 쓰면서 왜 이곳
만큼은 두 귀에 거북한 영어로 지었을까?

북까페 책장은 달랑 하나로 책은 많이 담겨져 있으나 상당수는 어린이와 청소년 책이거나 소
설이다. 집에 버려둔 책이 있다면 썩혀두지 말고 이곳에 기증하는 것도 공익 차원에서 괜찮을
것이다.
이곳에서 산길은 2갈래로 갈리는데, 북까페를 등지고 북쪽으로 직진하면 하늘교가 나오고, 북
까페를 가로지르면 북악하늘길 제3산책로가 시작된다.


▲  북악하늘길 제3산책로 동마루에서 바라본 천하
정릉동과 길음동을 위시해 성북구와 강북구, 도봉구 지역이 바라보인다.


북까페를 가로질러 동쪽으로 가면 북악하늘길 제3산책로이다. 이 구간은 북악산길 남쪽으로
중간에 호경암으로 가는 샛길이 있으며, 오르락 내리락을 여러 번 반복하다가 숲속다리를 지
난 체육공원에서 그 막을 내리는 1리 정도의 짧은 산길이다.

산길 중간에 동마루라 불리는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 올라서면 북악산 북쪽 자락과 북한산
남쪽 자락을 비롯해 정릉동과 길음동, 성북구와 강북구, 도봉구 등이 훤히 바라보이며, 대자
연이 여기저기 채색한 단풍이 산자락을 곱게 수를 놓으며 1폭의 수채화를 자아낸다.


▲  체육공원에서 마무리를 짓는 북악하늘길 제3산책로 동쪽 종점

동마루에서 북악산길에 걸린 숲속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넘어가면 체육공원이 나온다. 이곳은
동네 주민과 산꾼들이 간단히 몸을 풀 수 있게끔 다양한 운동 기구가 닦여져 있는데, 여기서
서쪽으로 가면 김신조루트의 북쪽 종점인 하늘마루와 하늘교가 나오며, 그 직전에 형제봉과
북한산둘레길로 이어지는 산길이 있다. 그리고 하늘마루에서 더 서쪽으로 가면 북악팔각정과
부암동, 창의문, 인왕산으로 이어진다.
반면 동쪽으로 가면 북악정과 성북구민회관, 아리랑고개, 정릉동 방면으로 통하며, 중간에 국
민대나 배밭골, 길상사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우리는 북악산길을 옆구리에 끼며 해가 뜨는
동쪽으로 가다가 북악정에서 성북동으로 진입하여 길상사를 거쳐 속세로 내려왔다.


▲  북악스카이웨이4교
여기서 직진하면 아리랑고개, 성북구민회관으로 이어지며, 아래로 내려가
북쪽으로 가면 국민대와 정릉, 남쪽은 성북동과 길상사으로 연결된다.
이들 모두 2차선 길이지만 보기와 달리 차량의 왕래가 제법 잦다.


41년 만에 속세에 개방된 북악하늘길과 김신조루트, 비록 남북분단의 상처가 서린 서글픈 현
장이지만 서울 도심 속의 허파이자 달달한 명소로 자연이 잘 보존되고 경관도 아름다운 보석
같은 곳이다. 이곳은 마치 미지의 땅에 들어온 듯한 신선한 기분이었고, 서울 땅에서 안가본
곳이 거의 없는 나에게도 꽤 서름한 곳이라 길을 거닐면서도 무엇이 나올까? 늘 마음이 두근
거렸다.
이렇게 하여 도심 속의 허파, 북악산 김신조루트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 북악하늘길(김신조루트)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정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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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북쪽 끝에 숨겨진 고즈넉한 산사, 삼각산 정법사 (복천암터, 산사길, 북악산길)

성북동 정법사, 북악산길


' 성북동 정법사, 북악산길 5월 나들이 '
 

봄과 여름의 마지막 경계선인 5월의 끝 무렵, 후배 여인네와 내 즐겨찾기 명소의 하나인
성북동(城北洞)을 찾았다.

햇님이 하늘 높이 걸린 14시에 한성대입구역(4호선)에서 그를 만나 최순우(崔淳雨) 옛집
과 길상사(吉祥寺) 등 성북동의 여러 단골 명소를 둘러보니 어느덧 17시가 넘었다. 저녁
을 먹기에는 시간도 이르고 입과 위가 섭취 준비가 덜 되어있어서 잠깐 눈요깃감을 생각
하니 번쩍 '정법사'가 뇌리 속에 스친다. 그곳은 길상사에서 북쪽으로 500m 떨어진 절로
성북동을 100회 이상 들락거렸음에도 아직까지 내 손과 발이 미치지 못한 미답처였다.

정법사가 미답처(未踏處)로 버젓이 남아있던 것은 나를 흥분시킬 요소가 전혀 없는 현대
사찰로 보았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에 창건된 것으로 알고 있었음) 하지만 그곳도 성
북동에 안긴 명소의 일원이라 서울 장안의 미답지를 1개라도 더 지울 겸 그곳을 찾았다.


▲  정법사 입구에 세워진 정법사 표석
표석 옆으로 놓인 계단길을 오르면 바로 정법사 경내이다. 계단길 옆에는
경사진 포장길이 있어 취향에 따라 골라가면 된다.



 

♠  성북동 꼭대기에 들어앉은 고즈넉한 산사, 조선 후기에
지어진 복천암의 옛터를 지키고 있는 정법사(正法寺)

▲  정법사 대웅전과 그 주변

길상사에서 북쪽 오르막길을 7분 정도 오르면 골목(대사관로13길)이 서쪽으로 크게 구부러진
곳에 정법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성북동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이자 제일 북쪽 구석으로 북악산(백악산) 북쪽 능
선 자락에 있으나 넓게 보면 북한산(삼각산)의 남쪽 끝에도 해당되어 '삼각산 정법사'를 칭
하고 있다. 18세기에 호암 체정(虎巖 體淨, 1687~1748)이 창건한 복천암(福泉庵)에서 비롯되
었다고 하는데, 왕실과 나라의 안녕을 비는 원찰(願刹)의 역할도 했다고 전한다.
허나 어느 세월이 잡아갔는지 감쪽같이 사라져 터만 남은 것을 1959년 건봉사(乾鳳寺) 만일
염불회(萬日念佛會)의 회주(會主)인 보광(葆光)과 석산(石山)이 가회동(嘉會洞)에 있던 건봉
사의 포교당인 정법원(正法院)을 이곳으로 옮겨와 절 이름을 정법사라 짓고 오래전에 끊긴
복천암의 뒤를 잇게 했다.
만일염불회의 고명한 염불승(念佛僧)이었던 석산이 주석하면서 염불수행의 새로운 일가를 이
루었으며, 조금씩 절을 키워나가 지금에 이른다.

아담한 경내에는 대웅전과 산신각, 강당 등 4~5동의 건물이 있으며, 비록 옛 복천암을 계승
했다고 하나 엄연히 20세기 중반 이후에 중창된 절이라 고색의 내음은 여물지 못했다. 소장
문화유산으로는 비록 지정문화재는 없으나 조선 후기에 조성된 관세음보살상과 복천암터 주
춧돌, 왜정 때 조성된 산신탱 등을 지니고 있다.

절 바로 서쪽에는 '우리옛돌박물관'이란 이색 박물관이 있는데 서로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
고 있으며, 매년 5월과 9~10월에는 성북동 명소를 중심으로 성북동 야행(夜行) 축제가 성황
리에 열린다. 성북동에 있는 문화유산과 여러 명소들, 미술관, 식당, 찻집, 까페들이 거기에
동참하여 달이 기울도록 흥겨운 분위기를 이어가는데, 정법사도 거기에 동참하여 소소하게
음악회를 열거나 전통차 1잔의 여유를 선사한다.

▲  우수에 잠긴 채, 왕년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옛 복천암 주춧돌들 ▲

대웅전 뜨락 구석에는 옛 복천암의 주춧돌 여럿이 우두커니 서 있다. 저들은 어느 건물을 받
쳐들던 주춧돌이었을까? 크기를 봐서는 법당으로 여겨지나 저들이 침묵으로 일관하니 그저
허공에 내뱉는 나의 부질없는 추측에 불과하다. 지금은 받쳐들 대상을 상실한 채, 크지만 무
게가 없는 하늘을 막연히 이고 있다.

▲  조촐하게 꾸며진 연못과 옛 복천암의
길쭉한 주춧돌들

▲  대웅전 뜨락에 세워진 서쪽 5층석탑
(20세기 중반에 세워짐)


▲  정법사 대웅전(大雄殿)

정법사의 법당(法堂)인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커다란 팔작지붕 건물이다. 그 앞에
는 뜨락이 닦여져 있고 20세기 중반에 지어진 5층석탑 2기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데 동쪽
탑은 벌써부터 피부가 까무잡잡하여 젊은 나이임에도 다소 늙어 보인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
보이면 그리 좋지는 않지만 문화유산과 탑, 석불은 오히려 나이가 들어 보어야 더 보기가 좋
다.
대웅전 맞은편에는 2층짜리 강당이 있어 1금당(법당) 2탑, 강당 형태의 가람배치를 취하고
있으며, 법당 안에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금동관세음보살좌상과 석가3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  동쪽 5층석탑
세월을 너무 예민하게 탔는지 벌써부터
검은 때가 가득 끼었다.

▲  대웅전 맞은편에 자리한 2층 강당(선방)
사진에 보이는 부분이 2층으로 1층에는
종무소와 찻집 등이 들어있다.


▲  경내에서 바라본 천하
성북동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이라 조망도 그런데로 괜찮다. 가까이로 성북동과
와룡공원을 비롯해 멀리 잠실, 강남 지역과 남한산성을 품은 남한산(청량산),
대모산(大母山) 산줄기까지 앞다투어 시야에 들어온다.

▲  대웅전 금동석가3존상 (오른쪽이 관세음보살상, 왼쪽은 지장보살상)

서로 미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대웅전의 주인장 석가3존상, 그들 가운데 보관(寶冠)을 눌러
쓴 관세음보살상이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이다. 그렇다고 옛 복천암의 유물은 아니며 정법원
시절에 다른 곳에서 업어왔다고 한다. (고향은 알지 못함) 그들 뒤에는 조그만 금동 원불(願
佛)이 빼곡히 자리해 일제히 금빛을 쏘아대고 있는데 그 눈부심에 나의 침침한 두 망막이 멀
어질 지경이다.

▲  속세를 걱정하듯 바라보는 하얀 피부의
미륵불입상 (대웅전 옆)

▲  경내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
자리한 산신각(山神閣)


▲  산신각 산신탱(山神幀)
산신각에는 산신과 독성이 봉안되어 있다. 산신탱은 1940년에 조성된 것으로
하얀 부채를 든 붉은 옷의 산신 할배와 그의 심부름꾼인 동자, 호랑이 등
산신의 주요 식구들이 담겨져 있다. (산과 폭포도 그려짐)

▲  산신각 독성탱(獨聖幀)
독성 할배(나반존자)와 동자, 그의 집인 천태산(天台山)이 그려져 있다. 그림이
다소 늙어 보여 산신탱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듯싶다.

▲  주렁주렁 이어진 석조(石槽)
산사에 왔다면 목구멍도 달랠 겸, 물 1모금 마셔줘야 된다. 늦봄 가뭄에도
물이 졸졸 나와 바가지를 금세 채웠고 목구멍에 투하하니 몸속의 때가
싹 가신 듯 마음이 시원해진다. 역시 무더위 갈증에 들이키는
물만큼 달콤한 것은 없다.

▲  정법사에서 만난 정겨운 풍물시, 부뚜막과 검은 가마솥

정법사는 부뚜막에 검은 피부의 가마솥을 두어 밥과 국을 처리하고 있었다. 저기서 숙성된
하얀 쌀밥과 국의 맛은 어떠할까? 몰래 그 뚜껑을 열어 살짝 훔쳐 먹고 싶다. 지금은 전설이
되버린 나의 단양(丹陽) 외가집에도 저런 풍경이 분명 있었는데 이제는 흔적도 없다. 오로지
지우는 것을 좋아하는 세월의 본능 앞에 그 모든 것이 산산이 흩어지고 사라진 것이다.


▲  산사길에서 바라본 정법사 경내와 대웅전의 두툼한 뒷통수

* 정법사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330 (대사관로13길 44, ☎ 02-762-0774)
* 정법사 홈페이지는 이곳을 ☞ 흔쾌히 클릭한다.



 

♠  산사길, 북악산길(북악산로) 거닐기

▲  정법사 뒷쪽 산사길 ①

정법사 서쪽에는 북악산길로 이어지는 산길이 있다. 절 옆구리를 지나는 산길이라 그에 어울
리게 '산사길'이란 정겨운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나는 정법사만 알고 있었지 그 길의 존재는
전혀 몰랐다. 정법사가 준 뜻밖의 선물에 무척 놀라며 '이 길은 어디로 이어질까?' 두근거리
는 마음을 다독거리며 그 미지의 산사길로 발을 들였다.

정법사 옆은 나무데크길이 닦여져 있으며, 정법사 경내가 바라보이는 쉼터를 지나면 철조망
과 철책문이 나온다. 문은 탐방객을 위해 늘 열려있으나 어두울 정도로 숲이 무성하고 군사
시설이 여럿 있으며 밤에는 유해동물이 가끔씩 출현하는 경우가 있어 가급적 햇님 근무시간
에 들어가기 바란다.

철책문 이후부터 경사가 잠시 각박해진다. 게다가 나무가 삼삼해 햇살을 느끼기가 어렵다.
허나 북악산길 밑부분이라 차량 소리가 심심치 않게 두 귀를 때려대 '속세가 지척이구나~'
안도감을 준다.


▲  정법사 뒷쪽 산사길 ②

▲  산사길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성북동과 도심 동부, 멀리 관악산까지)

▲  숲속다리 갈림길

정법사에서 10분 정도 오르면 북악산길 직전인 숲속다리 갈림길에 이른다. 여기서 길은 여러
갈래로 쪼개지는데, 북악산길 위에 걸쳐진 숲속다리를 건너면 다모정, 북악산길 산책로와 이
어지며, 서쪽 숲길은 북악하늘길 제3산책로(640m)로 그 길의 끝인 북까페에서 북악하늘길 제
2산책로(김신조루트)와 만난다. 그리고 서남쪽 숲길은 경사가 다소 있는데 그 역시 북악하늘
길 제2산책로와 이어지며 그 산책로의 정상 부분인 호경암으로 연결된다.

▲  북악산길(북악스카이웨이) 위에
유연하게 걸쳐진 숲속다리

▲  숲속다리 남쪽 (산사길 방향)


▲  서울의 대표 하늘길이자 드라이브 코스인 북악산길(북악스카이웨이)

서울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이 달리는 북악산길(북악스카이웨이), 지금은 그저 평화로운 산책
드라이브 코스로 크게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의 탄생 배경은 그리 곱지 못했다. 바로 1968년
1월에 터진 1.21사태(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무장공비 패거리의 불법 침투 사건)로 뚜껑이 폭
발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서울 수비 강화를 위해 닦여졌기 때문이다.
1968년 2월, 수도 방어를 겸한 관광도로 '스카이웨이(Sky way)'계획을 발표하여 콩 볶듯이
공사에 들어가 그해 9월 28일 완성을 보았다.

북악산길은 돈암동 아리랑고개에서 북악산(백악산) 북쪽 산허리를 지나 자하문고개, 인왕산(
仁王山) 동쪽 허리를 거쳐 사직단(사직공원)까지 이어지는 10km의 길로 서울에 흔치 않은 산
악도로이자 천하 제일로 꼽히는 드라이브 코스이다. 자하문(창의문)을 경계로 북악산 쪽은
북악산길, 인왕산쪽은 인왕산길로 구분하기도 하며 오랫동안 차량을 위한 길로 뚜벅이들은
접근 조차 불가능했으나 둘레길, 도보길 유행에 따라 길 옆으로 산책로를 닦으면서 마음 편
히 두 다리로 거닐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길은 달랑 1번이 아니라 두고두고 걸어야 나중에 명부(冥府, 저승)에 가서도 꾸
중을 듣지 않는다. 다행히 나와 같은 서울 하늘 밑에 있어서 내 즐겨찾기 명소로 삼아 꾸준
히 재탕하고 있으며 북악산길과 인왕산길 모두 완주했다. 이번에도 계획에는 없었지만 정법
사 옆 산사길에 홀려 그만 여기까지 오고 말았는데, 우리네 인생에는 늘 변수가 있기 마련이
다.


▲  북악산길에서 바라본 북한산(삼각산)의 위엄
(북악산길과 정릉로10길, 대사관로가 만나는 곳 서쪽 쉼터에서 바라본 모습)

▲  북악산길에서 바라본 정릉동과 성북구, 강북구 지역
(멀리 수락산과 불암산 산줄기까지 시야에 들어옴)

▲  찻길과 뚜벅이길이 공존하는 북악산길
지형이 여의치 않은 경우 이렇게 나무데크길을 깔아 통행 편의를 배려했다.
뚜벅이길은 폭이 딱 2인용이며 찻길 또한 2차선이다.

▲  숲속을 가르는 북악산길

▲  동쪽으로 흘러가는 북악산길 (정릉 뒤쪽)

숲속다리에서 시작된 북악산길(북악산로) 산책은 성북구민회관에서 마무리를 지었다. 시간도
늦었고(19시가 넘었음) 뱃속도 배고프다고 난리를 친다. 이럴 때는 그저 본능에 따라 조용히
길을 접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여 성북동, 북악산길 산책은 다음 인연을 고대하며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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