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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7.21 서해바다에 떠있는 아름다운 섬의 무리들 ~ 군산 고군산군도, 선유도 나들이 (장자도, 비응항)

서해바다에 떠있는 아름다운 섬의 무리들 ~ 군산 고군산군도, 선유도 나들이 (장자도, 비응항)

 

' 군산 선유도,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 나들이 '

▲  고군산군도

 


봄이 나날이 흥해감과 동시에 여름이 천하를 훔칠 기회를 엿보던 4월 끝 무렵에 군산 선유
도를 찾았다. 이곳은 마음 속 바구니에 담아두며 인연이 닿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
디어 그 인연이 닿았다.

아침 해가 떠오르기가 무섭게 집을 나서 서울강남고속터미널(센트럴시티)에서 군산으로 가
는 일반고속버스를 탔다. 버스는 2시간 40분 동안 열심히 바퀴를 굴려 군산 도심에 자리한
군산고속터미널에 나를 내려준다.

선유도 유람선이 출발하는 비응항까지는 10시 반까지 가야 된다. 남쪽에서 온 일행은 이미
도착한 상태, 군산시내에서 비응항은 시내버스 5개 노선이 운행하고 있는데, 노선 수를 봐
서는 제법 많이 다닐 것으로 보인다. 허나 그것은 치명적인 함정. 그들은 각각 1~2시간 간
격으로 운행하고 있어 인구 28만을 지닌 도시의 시내버스치고는 다소  절망적인 수준이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시외/고속터미널을 경유하는 4개 노선의 버스 시간을 전날 확인해 두
었는데, 그새 시간표가 바뀌었는지 정보 오류인지 차가 좀처럼 오질 않는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지 뱃시간은 다가오지, 초조함으로 제대로 쫄깃해진 염통을 부여잡으며
일단 군산시내버스 상당수가 종점으로 삼는 군산대 방면 시내버스를 타고 군산대 후문에서
내렸다. 그런 다음 서둘러 택시를 낚아 비응도로 이동했다. 시내에서 바로 택시로 가도 되
지만 그럴 경우 막대한 요금 앞에 뒷목을 잡을 수 있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택시는 나의 조급한 마음을 헤아린 듯, 비응도까지 새만금북로로 시원하게 질주했는데, 15
km 거리를 13분에 주파하는 위엄을 보인다. 허나 요금은 14,000원 약간 넘게 나와 늘 돈에
쪼들려 사는 나의 마음을 무척 쓰라리게 만들었지. 고군산군도와 선유도 때문에 이곳에 왔
는데, 그곳을 못본다면 애써 여기까지 온 보람이 없어지고 만다. 그래서 부득이 무리를 하
고 말았다.

비응도(飛鷹島)에 이르니 시간은 오히려 20분의 여유가 있다. 그래서 월명유람선 선착장까
지 안가고 비응항에서 내려 걸어갔는데, 상춘객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선착장에서 일행들을
만나 10시 30분에 출발하는 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  고군산군도 해상 유람 (비응도→선유도)

▲  만선의 꿈을 꾸는 어선들의 보금자리 ~ 비응항(飛鷹港)

고군산군도 유람선인 월명유람선은 비응항(비응도항)을 출발하여 횡경도와 방축도, 명도, 대장
도, 장자도 등을 차례대로 지나 선유도에 배를 대고 잠시 머물다가(1시간 정도 머무는 B코스와
4~5시간을 머무는 C코스가 있음) 다시 비응도로 돌아오는 코스로 비응도에서 선유도까지 약 1시
간, 나오는데 40~50분 정도 걸린다.
비응도에서 방축도와 명도를 경유하여 선유도까지 보통 30~31km 정도 되며, 고군산군도가 한반
도와 좀 떨어져 있긴 하지만 비응도와 오식도(筽篒島)가 섬에서 한반도의 일원이 되면서 서로의
거리가 많이 좁혀졌다. 그 이전에는 군산시내에 위치한 군산항에서 배를 타야 했는데, 꼬박 2시
간 이상 걸렸다. (지금은 1시간) 배를 대는 곳은 오로지 선유도 한곳으로 나머지 섬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나가며, 다른 섬에 발을 들이고 싶은 경우 군산여객선터미널이나 선유도에서 일
반 여객선을 이용해야 된다.
 
유람선은 2층으로 이루어진 배로 1층과 2층 모두 관광객들로 만원을 이룬다. 2층에는 간식과 음
료수, 술을 파는 매점을 비롯해 넓은 노래방 홀까지 갖추고 있는데, 배가 움직이는 내내 중/장
년층 단체객들이 노래방을 점거하며 노래를 부르고 신나게 춤판과 술판까지 벌인다. 일반 여객
선도 아닌 유람선이라 그러려니 해도 너무 지나치면 안하는 것만 못하다고 조금은 눈살을 찌푸
리게 한다. 게다가 그렇게 넋을 놓고 놀다가 만약 사고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하는지 정말 대책
이 안보인다. 물론 배가 움직이는 동안 심한 요동으로 인해 속이 울렁거리거나 현기증이 일어나
거나 심하면 멀미까지 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오가는 시간도 지루하니 그렇게라도 신나게 몸
을 움직이면 그런 것을 잠시나마 떨쳐버릴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어느 정도 선은 지켰으면 좋
겠다. (지켜서 손해볼 것은 없지 않은가?)

우리가 탄 배는 10시 반에 출발하는 것으로 승선이 지연되어 거의 10시 40분에 뱃고동을 울리며
미끄러지듯 비응항을 출발했다. 그렇게 한반도를 뒤로하며 고군산군도로 느릿느릿 다가선다.
우리는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파도로 인해 배가 좀 요동을 치면서 자연히 속에서 불편한
신호가 왔다. 오랜만에 배를 탄 것도 있겠지만 속이 계속 울렁거려 미칠 것 같다. 그래도 계속
참으며 자리를 지키다가 결국 자리를 뜨고 1층으로 내려온다. 배를 타면서 속이 말썽을 부릴 때
는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선창으로 나가 바닷바람을 쐬는 것이 매우 좋지. 1층으로 내려오니 2
층보다는 요동이 적어 불편한 속이 조금 진정이 되었고, 바깥으로 나가 바닷바람을 맞으며 바다
내음에 심취하니 그나마 남아있던 불편함도 거의 가신다. 게다가 사진기를 꺼내 바다와 가까이
다가오는 고군산군도를 열심히 담으니 정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  비응도를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한반도에서 멀게만 느껴졌던
고군산군도가 그 모습을 서서히 비춘다.

▲  서해바다란 넓은 도화지에 대자연 형님이 점을 여럿 찍으니 그 점이
바로 서해바다의 꽃인 고군산군도이다.

▲  길게 드러누운 횡경도(橫境島)

고군산군도에 이르면 가장 먼저 횡경도가 마중한다. 새만금방조제가 생기기 이전에는 야미도(夜
味島)가 가장 먼저였지만 그곳이 방조제로 인해 육지와 끈끈하게 연결되면서 이제는 횡경도가
그 역할을 하게 되었다.

횡경도는 동서로 길쭉한 64.4만㎡의 조그만 섬으로 소횡경도를 거느리고 있다. 사람이 살지 않
는 무인도로 낚시터로 유명해 낚시꾼들의 출입이 잦으며, 이 섬에 들어가려면 선유도나 야미도
에서 어선을 빌려타야 된다. 섬 중앙에는 할배바위(장자할배바위)란 바위가 있는데, 상투에 갓
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형상처럼 생겼고, 소횡경도에는 거북이가 목을 뺀 듯한 모습의 거북바
위와 등대가 있다.


▲  보다 가까워진 횡경도(왼쪽)와 소횡경도(오른쪽)

▲  등대가 있는 소횡경도 서쪽 부분 <왼쪽 벼랑이 거북바위>

▲  서남쪽에서 본 소횡경도와 횡경도
속세에서 잠시 나란 존재를 지우고 싶을 때 살짝 찾아와 아무도 모르게
며칠 정도 머물고 싶다. 아니면 내가 중심이 되는 나만의 나라를
이곳에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안될꺼야..)
 

▲  횡경도 해역에서 바라본 야미도와 신시도(新侍島)

▲  횡경도 해역에서 바라본 선유도와 관리도

▲  고군산군도의 방파제인 방축도(防築島)

횡경도를 지나면 방축도란 섬이 나타난다. 이 섬은 선유도 북쪽에 자리하여 고군산군도의 자연
산 방파제의 역할을 하는데, 그런 연유로 방축도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유인도로 신라 후기에 바다의 제왕 장보고(張保皐)가 완도에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하고 동아시
아의 드넓은 바다를 엄하게 호령하던 시절, 당나라 상인들이 신라에 가다가 표류하여 이곳에 들
어와 정착했다고 전한다. 허나 마을 뒷산에 7기의 고인돌이 발견되어 이미 청동기시대(靑銅器時
代)부터 이 좁은 섬에 사람들이 살았음을 살짝 귀뜀해준다.

섬 주변은 암석이 많고, 수심이 얕아서 조류가 거세고 파도가 강하다. 허나 낚시 장소로는 제격
이라 많은 낚시꾼들이 찾아오며 농어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그리고 해변에는 독립문바위와 시
루떡바위, 책바위 등 대자연이 빚은 여러 바위들이 포진해 섬의 아름다움을 더욱 수식해준다.


▲  방축도와 외부를 이어주는 방축도 포구
저 섬에도 잠시 두 발을 들였으면 좋으련만 이렇게 멀리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된다.

▲  방축도 해역에서 바라본 횡경도

▲  방축도 서부


▲  방축도의 명물 독립문바위가 중앙에 보인다.

방축도 서쪽 해안에 자리한 독립문바위는 조그만 돌다리나 고가도로처럼 생긴 참으로 기묘한 바
위이다. 서울의 독립문(獨立門)처럼 생겼다하여 독립문바위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으며, 북문바
위라 불리기도 한다. 바위 서쪽에도 산을 갖춘 섬 같은 땅이 보이는데, 겉으로 보면 별도의 섬
처럼 보이지만 엄연한 방축도의 일부로 그 사이가 가늘게 이어져있다.


▲  말도(末島)와 명도(明島), 방축도의 서부
푸른 산과 바다 밖에는 안보이는 말그대로 망망대해(茫茫大海)의 고적한 섬이다.


우리를 태운 유람선은 방축도에서 남쪽으로 꺾는다. 그래서 명도와 말도는 이렇게 아주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된다.

밝은 섬이란 뜻의 명도는 달과 해가 합쳐진 것처럼 물이 맑다고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사람들
이 살고 있는 아주 조촐한 섬으로 낚시터로 명성이 높으며, 섬의 야트막한 산에는 수십 가지의
각종 약초가 자라나 약산(藥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말도는 고군산군도의 종점이자 끝으로 가장 서쪽에 자리한다. 끝섬이라 불리기도 하며, 한반도
에서 고군산군도를 왕래하는 여객선의 종점으로 1909년에 지은 말도등대가 서해바다와 군산을
찾는 배들의 밤길을 밝혀준다.
이 섬은 조선 중기부터 사람들이 살았다고 하며, 심씨 성을 가진 판서(判書)가 귀양을 와서 밭
을 일구고 살면서 인구가 늘었다고 한다. 그가 귀양에서 풀려나 서울로 소환된 이후, 섬 사람들
은 그의 공덕을 기리고자 영신당(靈神堂)을 지어 매년 11월에 제를 지냈으나 기독교가 이 섬을
휩쓸면서 당제(堂祭)는 끊기고 말았다.


▲  끝없는 서해바다 - 저 수평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속인(俗人)들이
그렇게나 동경하던 극락이나 유토피아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해가 뜨고 지는 사이에 잠시 머무는 그만의 비밀 공간이 있는지도 모른다.

▲  관리도<串里島, 곶리도>

대장도 서쪽에 자리한 관리도는 곶리도라고도 한다. (어차피 한자는 같음) 원래 이름은 꽂지섬
이었다고 하는데, 섬의 모습이 전쟁에 출진한 장군들이 적의 몸에 화살을 쏘아 꽂아대는 모습이
라 하여 그런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설로는 섬의 지형이 마치 꼬챙이처럼 생겼다
고 하여 꼭지도라고 부르다가 꼬챙이를 뜻하는 관(串)을 붙여 관리도(곶리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 섬에는 완전무장한 장군의 모습 같은 투구봉, 말을 탄 무인의 모습을 한 질망봉, 승려로 이
루어진 승군(僧軍)의 모습을 한 중바위(중바우), 시루떡 모양의 시루봉 등이 있으며, 갖가지 바
위들이 섬을 수식하여 눈을 심심치 않게 한다. 섬 사람들은 대부분 전복을 양식하거나 고기잡이
로 생계를 꾸린다.

▲  관리도 해역에서 바라본 횡경도

▲  관리도 해역에서 본 선유도와 장자도


▲  장자도 서쪽에 홀로 떠있는 등대 - 등대 너머로 방축도의 동부와
동서로 길쭉한 횡경도가 보인다.

▲  대장도(大長島, 왼쪽 섬)와 장자도(오른쪽 섬)

선유도 바로 서쪽에 자리한 대장도는 남쪽으로 장자도와 이어져 있다. 이 섬은 옛날에 어떤 사
람이 섬을 1바퀴 둘러보고는 미래에 크고 긴 다리가 생길 것이라 말을 하고 섬을 떠났는데, 한
반도와의 연륙을 애타게 꿈꾸던 섬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으며 섬 이름을 크고 긴 다리를 뜻하
는 대장도로 갈았다고 한다.
과연 그의 예언대로일까 대장도를 잇는 현수교(懸垂橋)가 생겨나 장자도는 물론 선유도까지 걸
어서 이동이 가능해졌고, 새만금방조제의 등장으로 고군산군도의 동쪽을 이루던 신시도와 야미
도 등이 연륙되었으며, 한반도에서 선유도를 붙들어 맬 다리 공사를 진행중이라 그것이 완성되
면 선유도는 물론 대장도까지 4발 수레로 오갈 수 있게 된다. 그리되면 그야말로 크고 긴 다리
가 생기는 셈이다.

섬 동쪽에는 고군산군도에서 꽤나 이름난 장자할매바위가 있는데, 그 모습이 아이를 등에 업은
형상으로 다음과 같은 믿거나 말거나 슬픈 전설이 전해온다. (바위는 못봤음)
조선시대(또는 고려시대)에 대장도에 살던 선비 부부가 있다. 남편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서울
로 과거를 보러 나갔는데, 부인은 몇달 동안 한결같이 장자봉에 올라 남편의 과거 급제를 기원
했다. 허나 남편은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때를 한참이나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애가 탄 부인은
매일 아이를 업고 장자봉에 올라 남편을 실은 배가 오기를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남편이 돌아왔다. 허나 과거 급제로 금의환향(錦衣還鄕)을 한 것이 아
니라 육지에서 첩실과 그를 통해 얻은 아들을 데리고 온 것이다. 육지에 오랫동안 머물며 소실
까지 맞을 정도면 선비의 집안은 제법 형편이 되었던 모양이다.

남편의 일탈에 크게 뚜껑이 열린 부인은 눈물을 떨구며 뒤로 돌아서는 순간 등에 업힌 아이도
덩달아 발끈했는지 힘을 주었는데, 그 바람에 그들은 즉석에서 돌로 변했다고 한다. 한편 아내
와 아이가 그렇게 사라지자 남편은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며 횡경도에 들어가 그 벌로 돌이
되니 그 돌이 장자할배바위라고 한다.
이 전설은 대장도나 주변 섬에 살던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지만 순간의 실수로 어긋나버린 이
곳에 살던 어느 부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지은 것이 아닐까 싶다. 굳이 과거를 보러 간 것이
아니라도 육지에 일이 있어 나간 남편이 첩을 데리고 오면서 그들의 가정은 파탄이 났고 이에
발끈한 부인은 아이와 함께 장자할매바위에서 투신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게 아내와 자식이
죽자 발작한 남편도 횡경도에서 자살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이후 사랑하는 이와 이 바위에서 사랑을 약속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믿거나 말거나 속설
이 전해오며, 월명유람선은 대장도 뒷쪽으로 가기도 하고 선유도 사이인 앞쪽으로 가기도 하여
뒷쪽으로 가는 경우에는 이 바위를 만날 수 없다. 그날 운에 맡기는 수 밖에는...

그리고 대장도 남쪽에 자리한 장자도는 선유8경의 하나인 장자어화(壯子漁火)의 현장이다. 한때
멸치포구로 유명했고, 고군산군도 제일의 어항(漁港)으로 많은 배들이 심야에 장자도 앞바다에
서 고기를 잡느라 불야성(不夜城)을 이루었는데, 그 배에서 비치는 불빛이 아름다운 풍경을 자
아내 '장자어화'가 된 것이다.

장자도는 옛날에 힘이 센 장사가 나왔다고 하여 유래되었다는 설과 가재미와 장재미를 합쳐 장
자도라 했다는 설이 공존한다. 이곳 포구는 자연이 빚은 대피항으로 유명해 예전에는 고군산군
도와 서해바다에서 가장 잘나가는 섬이었다. 섬의 모습은 말 앞에 놓은 커다란 구유처럼 장자봉
이 우뚝 솟은 형국으로 서 있고, 그 앞에 선유도가 맥을 감싸안고 있어 큰 인재가 많이 나오는
지형이라고 하며, 북쪽의 대장도와 다리로 연결되어 거의 한몸이 되었는데, 서해를 바라보는 사
자바위(사자봉)를 장자도를 지키는 바위로 여기고 있다.
섬 동쪽에는 장자대교를 통해 선유도와 이어져 있다. (차량 통행은 어려움)


▲  대장도 사자바위(사자봉)
사자나 고양이, 개가 땅바닥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 같다. 오른쪽 봉우리에
머리에 해당되는 조형물만 갖다 붙인다면 영락없이 그 모습인데 말이다.

▲  다른 각도에서 본 대장도 사자바위(사자봉)

▲  선유도 인어등대


▲  장자도 해역에서 본 관리도와 말도, 방축도

▲  장자도와 선유도를 잇는 장자대교


♠  고군산군도의 중심지, 선유도(仙遊島)

▲  선유도선착장에서 바라본 선유대교(무녀도와 선유도를 이어줌)

고군산군도를 1시간 정도 배회한 유람선은 이 군도(群島)의 중심지이자 유일하게 상륙하는 선유
도로 들어와 선유도항(선유도여객터미널)에 고된 몸을 기댄다. 이윽고 여기서 1시간 정도 머무
니 반드시 출발시간을 지켜달라는 안내방송이 강하게 나온다. 오랜 뱃길에 심신이 지치거나 고
군산군도의 매력에 눈과 마음이 지나치게 호식(好食)을 누린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나오면서 썰
렁했던 선유도항은 잠시나마 활기를 누린다.


▲  선유도항에 몸을 기댄 월명유람선

선유도는 고군산군도의 중심 섬으로 예전에는 군산도(群山島)라 불렸다. 섬 북쪽에 있는 봉우리
의 형태가 마치 2명의 신선(神仙)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하여 후대에 신
선이 머무는 섬이란 뜻의 선유도란 고운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섬의 면적은 2.13㎢로 5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원래는 3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것을
바다가 실어다준 흙과 모래로 하나의 섬이 되었다. 고려 때는 송(宋)나라와 동남아의 여러 제국
(諸國)을 오가는 중간 기항지로 관청을 두어 그들의 편의와 상거래를 관리했고, 조선 초기에 수
군기지인 군산진(群山鎭)을 두어 수군절제사(水軍節制使)를 파견했다. 군산진은 조선 세종(世宗
) 때 지금의 군산시내로 이전되면서, 군산이란 이름도 같이 따라갔는데, 선유도와 주변 섬들은
옛 군산이 있던 곳이라 하여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1597년에는 천하의 영원한 해신(海神),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진도 울돌목에서 불과 13척의 형
편없는 전력으로 서해바다로 진출하려는 왜선 330여 척을 맞아 분전 끝에 31척을 격파하고 92척
을 사용 불능으로 만들었으며, 18,000여 명의 왜군을 물고기 밥으로 만든 이른바 명량대첩(鳴梁
大捷)의 위업을 이루었는데, (아군의 피해는 왜군의 1%도 안될 정도로 매우 가벼운 수준, 이순
신이 탄 대장선에서 2명 전사, 3명 부상 / 다른 배도 비슷한 수준) 그 대첩을 치르고 잠시 몸을
추스리고자 선유도까지 올라왔다. (1597년 9월 21일)
그는 선유도에 이르자 몸살로 고생을 했으며, 거기에 태풍까지 몰려와 12일 정도 머물렀다. 그
리고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완도 고금도(古今島)에 주둔하며 원균(元均)이 말아먹은 조선 수군
을 빛나게 재건했다.

선유도에는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선유8경이 있다.
1. 선유도 해변에서 바라보는 일몰의 아름다움, 선유낙조(仙遊落照)
2. 가늘고 긴 선유도해수욕장의 명사십리(明沙十里)
3, 선유도로 유배를 온 충신들이 매일같이 올라 임금을 그리워했다는 망주봉(望主峰), 특히 여
   름에 큰 비가 오면 망주봉에서 일시적으로 7~8개의 물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지니 이것을 망주
   폭포(望主瀑布)라고 한다.
4, 선유도 모래사장을 위에서 바라보면 마치 내려 앉는 기러기처럼 생겼다 하여 평사낙안(平沙
   落雁)
5. 무녀도(巫女島)에 속한 3개의 무인도가 풍기는 아름다운 모습, 삼도귀범(三道歸帆)
6. 장자어화 (자세한 것은 앞의 장자도 부분 참조)
7. 신시도에 있는 월영봉(月影峰, 199m)의 가을 단풍이 매우 곱다고 하여 월영단풍(月影丹楓)
8. 방축도와 말도 등 12개 섬이 마치 투구를 쓴 군사들이 도열한 모습과 같다고 하여 무산12봉(
   巫山十二峰)


선유도는 명사십리로 유명한 선유도해수욕장을 비롯하여 망주봉, 옥돌해수욕장, 몽돌해수욕장,
수군절제사 선정비(善政碑) 등의 명소가 있으며, 선사시대의 아련한 흔적인 패총(貝塚, 조개더
미)도 있다. 또한 섬마을답게 오룡묘제, 장생제, 수신제 등의 마을 제사와 풍습이 있었으나 지
금은 모두 사라져 아쉬움을 건네며, 주변 섬과는 다리로 이어져 있는데, 동쪽으로 무녀도, 서쪽
으로는 장자도, 대장도와 이어져 있어 배가 아닌 두 다리나 자전거로 둘러볼 수 있다.

한반도와 선유도를 이어주는 나루터는 2곳으로 선유대교 북쪽에 자리한 선유도항이 가장 크다.
여기서는 월명유람선을 비롯하여 군산을 오가는 여객선이 운행하며, 망주봉 동쪽 선유3구 선착
장에서는 야미도에서 출발한 새만금유람선이 오간다. 허나 선유도를 한반도에 단단히 붙들고자
현재 연륙교를 짓고 있어 그것이 완성되면 선유도까지 편히 수레로 오갈 수 있게 되며, 그때가
되면 군산에서 시내버스와 시외버스가 들어와 교통이 보다 좋아질 것이다.
허나 그로 인해 오랫동안 한반도와 고군산군도를 이어주던 해상교통의 희생은 어쩔 도리가 없어
군산을 오가는 여객선과 유람선의 노선 조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  선유도항 주변

선유도와 한반도를 이어주는 교통의 중심지, 선유도항은 여객선표를 구입하는 매표소를 비롯하
여 식당 몇 곳이 전부이다. 선유1구 마을과 선유2구 마을의 중간 지점이기 때문이다.
길가에는 골프장에서 많이 보이는 카트(Cart) 수십 대가 대기를 타면서 하얀 물결을 이루는데,
이들은 선유도와 무녀도에서 숙박업소나 식당을 하는 이들이 가지고 온 것으로 배를 타고 들어
온 관광객들에게 이거 타고 섬 1바퀴 돌라며 강하게 유혹의 메세지를 건넨다. 이곳에서 주어진
시간은 달랑 1시간, 아무리 선유도가 작다고 해도 그 시간 동안 두 다리에 의지해 돌아다닐 수
있는 범위는 좁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많이들 카트에 올라타는데, 대부분 4인승에서 8인승이
다. 카트는 대부분 카트 주인이 직접 운전하지만, 키를 맡겨 돌고 싶은 곳을 돌라고 하는 경우
도 있다. 물론 돈을 더 줘야 된다. 카트 승차비는 카트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보통 5천원 정도
한다.

우리 일행도 카트의 신세를 많이 졌는데, 나도 일행에 끼어 8인승 카트에 올라탔다. 카트 주인
은 식당/펜션을 하는 아줌마로 선유도해수욕장을 비롯한 선유도 북부를 1바퀴 구경시켜주었다.
코스는 선유도항 → 선유도해수욕장 → 망주봉 주변 1바퀴 → 선유3구 선착장 → 선유도해수욕
장 → 선유도항으로 딱 1시간에 맞는 코스였다. 길의 폭은 선유도항 주변을 빼고는 카트 2대가
교행하기에 적당할 정도로 좁았다.
선유도를 돌면서 선유도해수욕장이나 중간에 내려서 발자국을 남길 시간은 없었고, 오로지 카트
만 타고 움직였다. 마음 같아서는 몽돌해수욕장과 옥돌해수욕장, 장자도와 무녀도도 가고 싶었
지만 시간이 없으니 그건 어렵다. 배가 떠나면 한반도로 나가기가 힘들어진다.


▲  선유도항 주변 갯벌

▲  부드러운 곡선의 선유도해수욕장

선유도항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고군산군도의 아름다운 입술인 선유도해수욕장이 누워있다. 명
사십리(明沙十里)란 걸쭉한 별명까지 지닌 이곳은 약 1.5km의 백사장으로 10리는 커녕 5리도 안
되는 길이다. 서해에 있는 다른 해변과 마찬가지로 수심이 매우 얕아 바다로 100m를 나가도 겨
우 허리에 닿을까 말까 하며, 해가 그만의 공간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면 붉게 타오르는 낙조가
대장관을 이루어 선유8경의 하나인 선유낙조의 현장으로 명성이 높다.

물이 빠졌을 때는 팽나무가 자라고 있는 모래톱 끝까지 갈 수 있으며, 둑방 건너편에 긴 자갈밭
이 펼쳐져 선유도해수욕장의 아름다움을 진하게 수식시킨다. 바다낚시와 갯벌체험, 모터보트,
바나나보트 등을 탈 수 있고, 샤워장과 뒷간, 방갈로, 파출소와 보건소, 숙박시설 등이 주변에
있어 여름 피서지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  여유로운 풍경의 선유도해수욕장 - 바다 건너로 진하게 보이는 산은
장자도의 지붕인 장자봉이다.


▲  선유도해수욕장 북쪽

▲  선유도해수욕장에서 선유3구로 가는 길

▲  바위산인 망주봉
(望主峰, 152m)

선유도해수욕장 동북쪽에 자리한 망주봉은 선유도해수욕장과 더불어 선유도의 소중한 꿀단지이
다. 2개로 이루어진 바위 봉우리로 조선시대에 이곳으로 귀양 온 충신들이 매일 같이 올라 서울
에 있는 군주를 그리워했다고 하여 주군을 바라본다는 뜻의 망주봉이 되었다.
평소에는 그저 조용한 바위 봉우리지만 비가 많이 쏟아지면 산으로 떨어진 빗물이 암벽을 타고
약 7~8개의 물줄기를 이루며 아래로 떨어진다. 그 모습이 폭포와 같아서 망주폭포(望主瀑布)라
고 부른다. 그러니까 비가 많이 올 때만 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폭포인 셈이다.


▲  선유도항에서 바라본 망주봉의 위엄


♠  고군산군도 마무리

▲  선유도를 떠나다

선유도를 항아리 겉돌 듯 둘러보고 유람선으로 돌아왔다. 떠날 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짧은
자유시간을 이용해 선유도 곳곳으로 흩어진 상춘객들도 일제히 돌아와 선착장 주변은 다시 북새
통을 이룬다. 이번에도 늦게 온 몇몇 사람들 때문에 지정 시간보다 15분 정도 늦게 선유도를 출
발했다.

우리는 선유도로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2층에 자리를 잡았는데, 한반도로 돌아가는 길은 대략
50분 정도 걸린다. 선유도로 올 때와 마찬가지로 약간의 너울로 배가 조금 들썩였으나 이미 몸
에 익숙해진 터라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피곤이 물결처럼 밀려와 나를 희롱하니 슬슬 졸리
기 시작한다. 허나 이제 언제 올지 모를 고군산군도와의 작별이 너무 아쉬워 갑판으로 나가 점
점 멀어져가는 선유도를 비롯한 고군산군도의 뒷모습을 열심히 사진에 담았다. 시원하게 느껴졌
던 바닷바람도 이제는 차갑게 다가온다.


▲  선유도 선유3구 선착장 - 야미도에서 오는 새만금유람선이 주로 이용한다.

▲  조금씩 작아지며 흐릿한 점이 되어가는 고군산군도의 식구들

▲  새만금방조제로 한반도의 일원이 된 신시도(新侍島)

선유도를 가리고 선 신시도는 새만금방조제가 섬 동부를 지나가면서 한반도의 어엿한 일원이 되
었다.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큰 섬으로 면적이 4.25㎢에 이르며, 삼국시대 초반에 가락국(駕洛國
)에서 건너온 김해김씨 일가가 청어를 잡기 위해 제일 먼저 들어와 살았다고 전하나 확실한 것
은 없다.
신라 후기에는 천하의 대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이 옥구 자천대(紫泉臺)에 머물러 있다가 신시도
에 우뚝 솟은 월영산(月影山, 당시에는 이름이 없었음)을 보고 천하 명산(名山)이라고 크게 칭
송했다. 그리고 그곳이 급히 땡겼는지 풍선(風船)을 타고 신시도로 건너가 그 봉우리에 단을 쌓
고 거처를 세워 산 이름을 월영봉(199m)이라 했다.
그는 여기서 매일 책을 읽었다고 하는데, 글을 읽는 소리가 어찌나 낭랑하던지 바다 건너 당나
라 상해(上海)까지 들렸다고 전한다. 물론 글 읽는 소리가 바다 건너 대륙에서까지 들렸다는 것
은 믿거나 말거나 전설일 뿐이나 그가 이곳에 잠시 머물렀던 것은 사실인 듯 싶다.

신시도의 기둥인 월영봉은 선유8경의 하나인 월영단풍의 현장으로 단풍에 물든 월영봉의 자태가
마치 1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답다. 신시도란 이름은 왜정 때 지어진 것으로 새만금방조제가 지나
는 동쪽 대각산(187m)에 전망대가 세워져 있고, 그 전망대를 통해 대각산으로 올라가 고군산군
도와 새만금 일원을 두 눈에 조망할 수 있다.


▲  유람선이 남긴 하얀 물보라 자국 ▼

유람선은 푸른 도화지에 물보라를 튀기면서 요란하게 지나간 자국을 남긴다. 허나 그 자국은 이
내 일체의 흔적도 없이 지워지고 다시 원래의 푸른 도화지로 되돌아간다. 나를 비롯해 배에 탄
사람들 모두 선유도를 비롯한 고군산군도에 열심히 다녀간 흔적을 남겼지만 결국은 사진 외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는 것이다.


▲  야미도(夜味島)와 신시도 사이 해역 - 그 사이로 바다의 만리장성이라
자화자찬하는 새만금방조제가 희미하게 보인다.

▲  야미도와 횡경도 사이에 외롭게 뜬 조그만 바위섬, 계도(鷄島, 닭섬)
이렇게 봐서는 닭처럼 생겼는지 꿩처럼 생겼는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  새만금방조제에 붙어있는 야미도

야미도는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한반도와 가까운 섬으로 군산에서 출발한 여객선이 제일 처음 들
렸던 곳이다. 지금은 새만금방조제로 한반도의 일원이 되면서 신시도와 함께 편히 수레로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섬은 밤나무가 많아 밤섬이라 불렸는데, 왜정(倭政)이 이 섬 이름을 지을 때 밤나무를 뜻하
는 율(栗)을 안쓰고 무식하게도 밤을 깜깜한 밤으로 해석해서 야(夜)을 썼다. 그리고 밤은 맛있
다고 하여 맛있다는 뜻의 미(味)를 붙여 본래 섬과는 맞지도 않은 엉터리 이름인 야미도란 이름
을 지니게 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섬 이름을 뜯어고쳐야 되지 않을까?)
섬 서쪽은 고군산군도가 점점이 떠 있는 서해바다, 오른쪽은 새만금방조제에 갇혀버린 새만금호
로 근래에 일출/일몰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선유도를 출발하여 근 50분 만에 비응항으로 귀항했다. 배가 항구에 몸을 대기가 무섭게 상춘객
들이 우루루 육지로 몰려나오고 선착장에서 애타게 다음 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그들의 빈 공
간을 채워주면서 배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바로 선유도로 뜰 준비를 한다.
우리는 관광버스에 올라타 새만금북로 주변에 있는 해물탕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지루할 정도
로 긴 새만금방조제를 넘어 부안 내소사(來蘇寺)로 넘어갔다.

아쉽지만 본글은 여기서 끝~~ 이후 내용은 별도의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 고군산군도 선유도 찾아가기 (2014년 7월 기준)
ⓘ 군산까지
* 서울 강남고속터미널(센트럴시티)에서 군산행 고속버스가 15~20분 간격으로 떠난다.
* 동서울터미널에서 군산행 직행버스가 60~90분 간격으로 떠난다.
* 인천, 고양, 부천, 성남, 수원, 오산, 천안, 청주, 대전(복합), 익산, 광주, 목포, 대구(서부
  ), 부산(노포동), 창원(마산)에서 군산행 고속/직행버스 이용
* 용산역과 영등포역, 수원역, 평택역, 천안역, 대천역, 익산역에서 장항선 열차를 타고 군산역
  하차 (거의 1시간 간격으로 운행)
② 군산시내에서 배타는 곳까지
* 연안여객터미널 : 군산역과 군산시외고속터미널에서 7, 85번 시내버스 이용 (2노선 모두 1시
  간 간격으로 운행하며, 군산역에서 7번은 매시 25분, 85번은 매시 40분에 출발)
* 비응항(월명유람선) : 군산역에서 7, 85번 시내버스를 타거나 군산시외터미널에서 7, 8, 85번
  시내버스를 타고 비응항 종점 하차 (91번은 시외터미널 남쪽 팔마광장에서 승차)
③ 선박편
* 비응항 월명유람선(☎ 063-445-2240)에서 선유도행 유람선이 운항한다. 코스는 3시간짜리 B코
  스(2만원)와 6~7시간짜리 C코스(3만원)가 있으며, 유람선 출항시간과 요금, 전화예약은
  ☞ 월명유람선 홈페이지 참조
* 군산연안여객터미널(☎ 063-462-4000)에서 선유도행 여객선이 1일 3~4회 다닌다. 주말과 피서
  철에는 대폭 증회하며, 자세한 출발시간표와 요금 문의는 위의 월명유람선 홈페이지 참조
* 야미도 새만금유람선 선착장(063-464-1919)에서 선유도행 유람선이 1일 3~4회 다닌다. 코스는
  선유도에서 1시간 정도 머무는 B코스와 3~4시간 머무는 C코스가 있다.
  운항시간과 요금, 예약은 ☞ 새만금유람선 홈페이지 참조
④ 배타는 곳까지 승용차 (주차장 있음)
* 서해안고속도로(동군산나들목) / 호남고속도로(전주나들목) → 전주~군산 21번 국도 → 새만
  금북로 → 비응항(월명유람선)
* 서해안고속도로(동군산나들목) / 호남고속도로(전주나들목) → 전주~군산 21번 국도 → 새만
  금북로 → 옥녀교차로 우회전 → 구 해양경찰서 4거리 우회전 → 대왕제지3거리 좌회전 → 연
  안여객선터미널
* 서해안고속도로(동군산나들목) / 호남고속도로(전주나들목) → 전주~군산 21번 국도 → 새만
  금북로 → 신시도입구3거리 좌회전 → 새만금방조제 → 야미도 새만금유람선

* 선유도해수욕장은 7월 초/중순에 개장하여 8월 하순까지 해수욕 손님을 맞는다.
* 선유도와 고군산군도 관련 자세한 정보는 ☞ 군산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참조 (월명유람선과
  새만금유람선 홈페이지를 참조해도 된다)
* 선유도 소재지 - 전라북도 군산군 옥도면 선유도리 (문의 ☎ 063-454-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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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개일 - 2014년 7월 15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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